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터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신분증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고용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브리핑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 꿈돌이
    2026-03-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
  • ‘군용버스 추락’ 부상자 22명 중 중상자 4명 집중치료

    ‘군용버스 추락’ 부상자 22명 중 중상자 4명 집중치료

    지난 2일 강원 양구군 방산면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발생한 군용버스 추락사고로 육군 21사단 신병교육대 소속 장병 22명이 다쳤는데, 그 중 4명이 집중 치료를 받을 정도로 크게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육군은 부상자 22명 중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4명이고 18명은 단순 골절, 타박상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3일 밝혔다. 크게 다친 4명 중 1명은 하지 마비 증세가 있고, 또 1명은 뇌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았다. 다른 2명은 예방적 차원에서 상태를 관찰 중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다만 군은 중상자 4명을 포함해 부상 장병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군은 강원 양구경찰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과 합동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군 관계자는 “부상 장병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고 있다”면서 “육군 전 부대에 차량 일제 점검 등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날 오후 5시 3분쯤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25인승의 군용버스가 도로 왼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약 20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신병 탄 군용버스 20m 아래로 추락…3명 중상·19명 경상(종합)

    신병 탄 군용버스 20m 아래로 추락…3명 중상·19명 경상(종합)

    강원 양구군 방산면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신병들이 탄 군용버스가 추락해 장병 2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3분쯤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25인승의 군용버스가 도로 왼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약 20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육군 신병교육대 소속 신병 20명을 비롯해 운전병과 인솔 간부 등 22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3명은 중상이고 19명은 경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버스는 바퀴와 차체가 분리되고, 지붕 등 차체가 종잇장처럼 구겨질 정도로 크게 훼손됐다. 다친 장병들은 군 의무대에서 감기 등의 질환으로 검진을 받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사고 당시 장병들이 안전벨트를 착용했는지는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경찰과 군은 군용버스의 제동장치 고장 여부 등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신병 탄 군용버스 20m 아래 추락…3명 중상·19명 경상

    신병 탄 군용버스 20m 아래 추락…3명 중상·19명 경상

    강원 양구군 방산면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군용버스가 추락해 장병 22명이 다쳤다.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3분쯤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의 도고터널 인근에서 군용버스가 도로 옆 약 20m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군용버스에 타고 있던 장병 22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중 3명은 중상이고, 19명은 경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친 장병들은 육군 모 부대 신병교육대 소속으로, 군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서 부대로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포츠&스토리] 빈민 출신 축구 영웅, 대통령 되다

    [스포츠&스토리] 빈민 출신 축구 영웅, 대통령 되다

    1990년대 AC밀란·PSG 등 공격수 활약아프리카 유일 FIFA선수상·발롱도르 동시 수상 라커룸 축구화 몽땅 들고 아이들에 나눈 일화 유명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릴 때도 그는 늘 조국을 걱정했다. 아프리카 중동부의 최빈국 라이베리아. 19세기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돌아와 세운 나라다. 봉급을 모아 조국을 돕는 기금으로 내놓았다. 국가대표팀을 꾸릴 재원이 없는 것을 알고 사재를 털었다. 라이베리아 출신 축구 스타 ‘흑표범’ 조지 웨아(51)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조지프 보아카아(73) 부통령과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결과 61.5%를 득표해 28일 당선이 확정됐다. 지난 10월 10일 대선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해 결선투표를 벌인 웨아는 곧바로 트위터에 “라이베리아 동포들이여, 온 나라의 감격을 절감하게 된다. 오늘 내가 받아들인 막중한 임무의 중요성과 사명감을 깨닫고 있다. 변화가 시작됐다”고 적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AC밀란과 프랑스 리그앙(1부 리그)의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활약했던 그는 세 번째 대권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2005년 1차 투표에서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을 눌렀지만 결선투표에서 졌고, 2011년에는 야당 후보와 러닝 메이트로 출마했지만 부정 선거를 이유로 보이콧해야 했다. 2003년 은퇴하기 전 잠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 몸담았던 웨아는 축구계 최고 영예인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아프리카 선수로 기록된다. 2002년 은퇴를 선언한 뒤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선수 시절 어떤 위치, 어떤 방법으로든 득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6년 AC밀란 시절 베로나를 상대로 수비 진영 페널티 지역에서 드리블해 상대 모든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한 장면은 세계 팬들의 뇌리에 지금도 또렷이 각인돼 있다. 웨아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1995년 이전에는 유럽 선수만 후보에 들어갔지만 규칙 개정으로 유럽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모두 수상할 수 있게 돼 웨아가 첫 영광을 안았다. 지금도 그는 유일한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다. 라이베리아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나설 만한 팀이 전혀 아니었기에 웨아로선 대표팀 경력이라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두 차례 출전과 2002년 말리전에서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웨아와 첼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마리오 멜치옷(네덜란드)은 처음 웨아가 팀에 합류한 날 라커룸에 들어와 “옆에 앉아도 돼요?”라고 물었던 일이 생생하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아주 오래 싸워 온 것을 드디어 얻게 됐다”며 당선을 축하했다. 2000년 맨시티에서 웨아와 함께한 옛 버뮤다 대표팀 공격수 숀 고터는 그가 팀을 떠날 때 “조지, 여벌의 축구화 좀 챙겼어?”라고 농담을 건넸는데 나중에 라커룸에 들어갔더니 몽땅 들고 가버렸더라고 전했다. 이어 조국의 어린이나 다른 선수들에게 챙겨 주려고 그런 것이었으리라 짐작했다고 털어놓았다.웨아 당선인은 2005년 자신을 결선투표 끝에 누르고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던 존슨설리프에게서 권력을 이양받는데 투표로 선출된 정부가 투표로 선출되는 정부로 교체되는 것은 이 나라에서 73년 만의 일이다. 존슨설리프의 전임 찰스 테일러는 오랜 내전 끝에 2003년 반군에 의해 축출됐는데 이웃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획책하고 무기를 공급한 혐의로 영국 법정에서 50년형을 복역 중이다. 웨아는 국내 팬들과도 인연이 있다. 1996년 5월 잠실주경기장에서 한국 대표팀과의 친선경기 전반 4분 선제골을 넣었으나 AC 밀란이 2-3으로 졌다. 서정원(47) 수원 감독과 고정운(51) FC안양 감독, 황선홍(49) FC서울 감독이 득점했고 홍명보(48)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도 선발 출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라이베리아 대통령 당선 조지 웨아, 비유럽 첫 발롱도르 수상

    라이베리아 대통령 당선 조지 웨아, 비유럽 첫 발롱도르 수상

    축구 스타 조지 웨아(51)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결선 투표 끝에 당선됐다. 웨아는 19세기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건국한 라이베리아의 지난 10월 10일 대선 1차 투표 결과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해 아프리카 최초의 선출직 여성 대통령인 엘렌 존슨 서리프 밑에서 12년 동안 부통령으로 일한 조지프 보아카이(73)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결선 투표를 벌였다. 전국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 98.1% 이상 개표한 결과 웨아가 61.5%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웨아는 곧바로 트위터에 “라이베리아 동포들이여. 온나라의 감격을 깊이 느끼게 된다. 내가 오늘 받아들인 이 막중한 임무의 중요성과 의무감을 절감하고 있다. 변화가 시작됐다”고 적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AC 밀란과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활약했던 그는 세 번째 대권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2005년 1차 투표에서 서리프를 눌렀지만 결선 투표에서 졌고, 2011년에는 야당 후보와 러닝 메이트로 출마했지만 부정 선거를 이유로 투표를 보이콧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뛴 뒤 은퇴하기 전 잠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 몸담았던 웨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와 저유명한 발롱도르를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아프리카 선수로 기록된다. 2002년 은퇴한 뒤 정치인으로 변신해 지금까지 상원의원으로 일해왔다. 선수 시절부터 가난한 라이베리아인들을 위해 거금을 쾌척하는 등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0년대 몇 년 동안 그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어떤 위치에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득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6년 AC 밀란 시절 베로나를 상대로 수비 진영 페널티 지역에서 드리블을 시작해 상대 모든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하는 장면이 세계 팬들의 뇌리에 지금도 각인돼 있다.웨아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1995년 이전에는 유럽 출신 선수만 수상할 수 있었지만 규칙을 개정해 유럽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은 모두 수상할 수 있게 해 웨아가 첫 영광을 차지했고, 지금도 그는 유일한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로 남아 있다. 웨아의 수상 이후 21명의 수상자 가운데 유럽 출신은 11명이나 된다. AC 밀란 선수 6명이 영예를 차지했는데 최다 수상자 배출 클럽이다. 대표팀 경력으로는 라이베리아 월드컵 무대에 나설 만한 팀이 전혀 아니었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두 차례 출전해 2002년 말리전 한 골 넣은 게 전부였다. 웨아와 첼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마리오 멜치옷(네덜란드)은 웨아가 첼시에 처음 온 날 라커룸에 들어와 자신에게 “여기 옆에 앉아도 돼요?”라고 물었던 일이 생생하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아주 오랫동안 싸워온 것을 드디어 얻게 됐다”며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버뮤다 공격수였던 숀 고터는 2000년 맨시티에서 웨아와 함께 했는데 그가 다시 팀을 떠날 때 “조지, 여벌 축구화 좀 챙겼어?”라고 말했더니 나중에 라커룸 들어가보니 몽땅 들고 가버렸다. 가난한 조국의 어린이나 다른 선수에게 챙겨주려고 그런 것이었으리라 짐작했다는 얘기다. 기자는 2008년 국제난민기구의 연수 프로그램 참가 차 시에라리온으로 향하던 길에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 공항에 중간 기착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감비아 민항기가 밀림 한 가운데 활주로에 잠깐 내려 몇몇이 내리고 아이를 안은 남루한 30대 여인이 탑승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검은 눈망울이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명색이 수도 관문인데 비행기가 다시 이륙했는데도 수도를 눈으로 찾을 수 없었다. 밀림 밖에 없는 나라로 기억된다. 웨아 당선인은 2005년 자신을 누르고 아프리카 최초의 선출직 여성 대통령인 엘렌 존슨 서리프에게서 권력을 이양받는데 투표로 선출된 정부가 투표로 선출되는 정부로 교체되는 것은 이 나라에서 73년 만의 일이 된다. 서리프의 전임 찰스 테일러는 오랜 내전 끝에 2003년 반군에 의해 축출됐는데 이웃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획책하고 무기를 공급한 혐의로 영국 법정에서 50년 형을 복역 중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알고 계셨나요] 단통법? 줄임말도 ‘룰’따라 룰루랄라 편리하게

    [알고 계셨나요] 단통법? 줄임말도 ‘룰’따라 룰루랄라 편리하게

    얼마 전 출장 때문에 인터넷으로 서울행 고속버스를 예매하려는데, 부서 직원이 평일이라 ‘고터’에서 바로 표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조언해준다. 그런데 ‘고터’가 뭐지? 고속버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가, 아니면 승차권 자동발매기 브랜드인가. 알고 보니 ‘고속버스터미널’의 줄임말이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 ‘버카’(버스카드), ‘게이’(게시판 이용자) 등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신조어가 범람하고 있다.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다. # ‘고터’·‘버카’·‘게이’… 대체 무슨 말인지? 영화 ‘아바타’에서 사용된 나비족 언어만큼이나 딴 세계의 말 같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겨우 습득한 ‘베프’(베스트 프렌드), ‘쌍수’(쌍꺼풀 수술)는 물론이고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 같은 말은 이미 구식어가 되고 있다. 줄임말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장점이 있고 해당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강화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줄임말은 잘 쓰면 품격 있는 ‘약칭’(略稱)이 되지만 잘못 쓰면 외계어 같은 ‘은어’(隱語)가 될 수 있다. 법률에도 이처럼 약칭과 은어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줄임말이 종종 사용된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표적 줄임말에 해당한다.# 국민들 쉽게 알 수 있는 ‘법률 약칭’ 정착돼야 그렇잖아도 어려운 법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고 별거 아닌 것으로 괜히 기죽게 한다. 그렇다고 긴 글자의 법률 이름을 항상 온전히 사용하기도 어렵다. 현행 법률 1400여건 중 절반이 넘는 760여건이 10글자 이상이고, 그중에서 가장 긴 법률은 81글자나 되기 때문이다. 법률 줄임말은 이처럼 법률 이름이 너무 길면 경제적 차원에서 쉽게 말하고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용하는 사람이나 기관에 따라 줄임말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령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공익토지보상법’, ‘공익사업법’, ‘토지보상법’, ‘공토법’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법제처는 이런 문제를 줄이고자 2014년부터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등과 법률 제명 약칭에 대한 통일적 기준을 만들고 있다. 현재까지 720여건의 법률에 약칭 기준을 마련하여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에서 제공하고 있다. 이젠 신문·방송을 통해서도 ‘단통법’이 아니라 ‘단말기유통법’이란 공식 약칭을 사용하는 기사와 보도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정 부류의 사람만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은어’ 같은 줄임말보다는 모든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통일적으로 부를 수 있는 법률 ‘약칭’의 사용이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채향석 명예기자(법제처 대변인)
  • [현장 행정] 식었던 옹기 가마, 시민이 지핀다

    [현장 행정] 식었던 옹기 가마, 시민이 지핀다

    한때 서울 중랑구의 골칫거리였던 화약고 터가 어린이 등 지역민을 위한 쉼터로 변신한다. 서울의 대표적 옹기 마을이었던 역사성을 살려 전통문화체험시설을 조성한 것이다. 9일 중랑구에 따르면 봉화산 북동쪽에 조성 중인 ‘옹기테마공원’이 이달 내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3월 개장한다. 9000㎡(약 2700평) 규모로 만드는 이 공원에는 옛 모습을 되살린 대형 옹기 가마(길이 15m·폭 3m)와 옹기 만들기 체험장 등이 들어선다. 나진구 중랑구청장은 “공원 자리에는 원래 화약고가 있어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1971년 민간업자가 만든 화약고에는 폭약과 도화선, 불꽃놀이용 화약 등 약 10톤이 보관됐다. 머리에 화약고를 얹고 사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나 구청장은 “행정소송 등을 거쳐 2년여 전 어렵게 화약고를 이전시키고, 서울시 예산 17억원을 확보해 주민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원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산 밑 신내동은 해방 전까지 장안의 내로라하는 옹기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이들은 옹기그릇과 항아리 등을 만들었는데 서울에 공급되던 옹기의 70%가량이 신내동 일대에서 만들어져 유통됐다. 4대째 가업을 이어온 옹기장 배요섭(91·서울시 무형문화재 30호)씨는 “1930년대까지 이곳에 옹기 굽는 대형 가마소 8곳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의 경계지역이라 교통이 편리한 데다 봉화산 인근의 흙이 옹기그릇을 빚기 좋은 점토였기 때문이다. 나 구청장은 “과거 왕실에서도 쓰던 푸레도기(유약 대신 소금을 가마에 넣고 구워 색깔이 푸르스름한 옹기)를 제작하는 등 중랑의 옹기는 좋은 질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옹기공원에는 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학습장이 마련됐다. 학생들이 이곳에서 직접 물레를 돌려 옹기그릇을 빚으면 이곳 직원들이 약 7일간 건조시킨 뒤 전기가마로 구워 만든 이에게 전달한다. 전문 해설사로부터 우리 옹기의 역사와 특징 등도 들을 수 있다. 또 옹기체험장 외에 목공예와 한지공예를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목공예 체험 프로그램은 매주 6번 운영할 예정인데 주민들이 나무로 목걸이, 솟대, 문패, 필통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다. 한지 공예장에서는 한지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나 구청장은 “중랑에서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휴 관광벨트’(중랑캠핑숲, 장미터널, 망우 사색의 길, 용마폭포공원 등을 연결하는 사업)의 코스 중 하나로 옹기테마공원이 제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여름철에는 옹기공원 앞에 물놀이터를 만들어 가족끼리 놀러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명품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골목마다 짙게 묻어나는 서민들의 애환

    [명인·명물을 찾아서] 골목마다 짙게 묻어나는 서민들의 애환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길이 많아 걸으면 제법 숨이 차 헐떡이게 하는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길. 생긴 지 채 3년이 안 됐지만 입소문을 타고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꼭 한번쯤 들러보는 부산의 새 명소로 자리잡았다. 부산시와 동구는 2013년 3월 부산역 맞은편 옛 남선창고 터에서 산복도로 까꼬막(산비탈의 경상도 사투리)까지 1.5㎞ 구간을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길’로 조성했다. 이바구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8·15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전쟁과 피란, 힘든 노동과 모진 세파를 이겨낸 삶의 이야기들이 스며 있는 골목길이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로 ‘산허리’(산복·山腹)를 따라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2차로 도로를 말한다. 부산의 다른 산복도로와 마찬가지로 이바구길이 있는 산복마을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졌다. 부산시는 해방 후 귀환동포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자 산 중간에 부산 시내를 이어주는 산복도로를 건설했는데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하지만 도심지가 외곽으로 뻗어나가면서 더 쾌적하고 나은 환경을 찾아 사람들이 떠나면서 마을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산복도로 마을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고자 부산시와 동구는 2011년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골목골목 올라가는 길마다 다양한 시설물과 조형물 등을 설치해 산복도로 자체를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 부산의 근현대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복마을의 특성을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뒀다. 총 6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조성된 이바구길에는 2013년 3월 6일 개통 후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들이 찾기 시작해 지난 6월까지 모두 23만여명이 다녀가는 등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이바구 자전거’도 운행하고 있다. 이바구 자전거는 정부와 동구가 노인 일자리 특화사업의 하나로 도입했다. 관광안내원으로 변신한 지역 노인 34명이 교대로 8대의 자전거를 몬다. 이들은 3인승 전동 세발자전거 뒷좌석에 손님을 태워 초량 이바구길 일대를 돌며 길에 얽힌 사연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동구는 이바구 자전거의 안전을 위해 일부 구간에 전용차선을 마련하는 한편 자전거 앞뒤와 옆면에 형광으로 도색한 뒤 야광색 삼각 깃발을 설치했다. 운행 코스는 2곳. 1코스는 초량동 차이나타운 입구에서 출발, 옛 백제병원 건물과 남선창고 터, 초량시장을 거쳐 이바구길 입구까지다. 2코스는 168계단에서 시작해 이바구공작소와 금수사, 유치환 우체통을 지나 산복도로 체험시설인 까꼬막까지다. 이바구길을 가는 곳곳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이바구길은 옛 남선창고터에서 시작된다. 남선창고는 1900년 3월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물류창고다. 이곳에는 현재 마트가 들어서 있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준다. 남선창고는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들이 경부선을 타고 전국으로 흘러간 거점이었다. 함경도에서 온 명태를 보관했다고 해서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도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때인 1922년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의원이었던 옛 백제병원 건물이 나오는데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백제건물은 부산 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현재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중화민국(중국) 영사관과 치안대 사무소 등으로 사용됐었다.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역시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가 나온다. 부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맞은편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연예인과 부산의 대표적인 문인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걸려 있다. 1937년 개교한 이 학교는 가수 나훈아, 개그맨 이경규, 뮤지컬 감독 박칼린, 연출가 이윤택 등이 다녔다. 담벼락 옆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168계단이 나온다. 계단 중간에 있는 샛길로 향하면 부산 동구 출신의 작사가이자 시인인 김민부(1941~1972) 시인을 기려 만든 김민부전망대가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노랫말을 지었다. 현재 모노레일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동행한 구선희 동구 공보과 주무관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부산항은 일제강점기 부산지역의 해안을 메워 만든 매축과 한국전쟁 때의 피란촌, 부산역전 대화재, 관부연락선 등 애환과 부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했다. 10여분 계단길을 더 올라가면 ‘망양로’라 부르는 산복도로가 가로로 죽 뻗어 있다. 이곳에서는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사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계단식 집들이 이채롭다. 인근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1911~1995)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 기념관’이 있다.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동구에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진료한 그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기념관이다. 망양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청마 유치환(1908~1967)을 기리는 ‘유치환 우체통’이 반긴다. 빨간 우체통이다. 편지를 부치면 1년 뒤 배달된다. 청마는 동구에 있는 경남여고 교장을 두 번이나 지내고 동구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체통은 그가 즐겨 보낸 편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상징으로 청마의 예술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치했다. 이바구길 끝머리에는 ‘이바구공작소’가 있다. 이곳은 연면적 265㎡, 지상 2층 규모로 이바구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영상, 사진, 기록 등으로 초량 산복도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이처럼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산복마을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바구정거장, 게스트하우스 까꼬막, 천지빼가리 카페, 168도시락국, 이바구충전소, 6·25막걸리 등 마을카페와 음식점, 쉼터를 열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부산의 산복도로는 단순한 도로의 기능만이 아니라 부산사람 삶의 소통 장소로서 우리 근대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품은 기억 자산”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우크라이나 내전이 만든 참사…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추락사고 295명 ‘전원사망’

    피격된 여객기에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 등 총 298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승객 47명의 국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레이시아항공이 밝혔다. 후이브 고터 말레이시아항공 수석 부사장은 17일(현지시간) “피격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 283명 중 154명이 네덜란드인이며 47명은 미확인 상태”라고 말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승객 중엔 호주인 27명과 말레이시아인 23명, 인도네시아인 11명을 비롯해 영국과 독일, 벨기에 국적의 승객도 3∼6명씩 포함됐다. 승무원 15명은 모두 말레이시아인으로 확인됐다. 국적이 확인되지 않은 47명의 탑승객 중에는 미국인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우크라이나 관리는 탑승자 가운데 미국인은 23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적이 확인되지 않은 승객 중에 한국인이 포함됐는지 여부와 관련해 우리 정부도 확인에 나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해당 항공 노선에 한국인이 탑승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네덜란드와 말레이시아 소재 공관을 통해 우리 국민의 탑승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변희재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에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보다” 해경·해수부 ‘협박’까지 거론

    변희재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에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보다” 해경·해수부 ‘협박’까지 거론

    변희재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에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보다” 해경·해수부 ‘협박’까지 거론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생방송 도중 한 언론사 기자에게 욕설을 해 화제가 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변희재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상호 기자가 ‘구조요원 좀 다치면 어떠냐’고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보다. ‘좀 다치면 어떠냐. 더 빨리 가자’ 해서 터지는 게 교통사고, 선박사고 등등이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이어 “이상호 기자와 팩트TV의 협박에 못 이겨 무리한 구조 활동을 지시했다면 해경이나 해수부든 그 책임자에 중징계를 내려야 할 거다”라고 덧붙였다. 변희재는 이어 ”팩트TV에서 유족을 선동해 구조당국자들을 공개협박했군요. 만약 저런 협박에 못 이겨 규정에 어긋난 구조 활동하다 더 큰 사고터지면 그거 누가 책임질 건가요”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 “이상호 기자가 ‘구조요원 좀 다치면 어떠냐’고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 보군요”라면서 “좀 다치면 어떠냐. 더 빨리 가자 해서 터지는게 교통사고, 선박사고 등등입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전날 오후 9시 40분쯤 대책본부에서 기자들이 번갈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질문하던 중 이상호 기자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생방송에서 모 언론사 기자에게 욕설을 해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유족들 선동한다니 말 조심해야지”,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왜 자꾸 반대 입장을 내놓지”,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뭐가 싫어서 저렇게 집요하게 그러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변희재 이상호 기자 비난 “유족들 선동…큰 사고 터지면 누가 책임 지냐”

    변희재 이상호 기자 비난 “유족들 선동…큰 사고 터지면 누가 책임 지냐”

    변희재 이상호 비난 “유족들 선동…큰 사고 터지면 누가 책임 지냐”…이상호 ‘욕설’에 맞대응?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생방송 도중 한 언론사 기자에게 욕설을 해 화제가 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변희재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상호 기자가 ‘구조요원 좀 다치면 어떠냐’고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보다. ‘좀 다치면 어떠냐. 더 빨리 가자’ 해서 터지는 게 교통사고, 선박사고 등등이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이어 “이상호 기자와 팩트TV의 협박에 못 이겨 무리한 구조 활동을 지시했다면 해경이나 해수부든 그 책임자에 중징계를 내려야 할 거다”라고 덧붙였다. 변희재는 이어 ”팩트TV에서 유족을 선동해 구조당국자들을 공개협박했군요. 만약 저런 협박에 못 이겨 규정에 어긋난 구조 활동하다 더 큰 사고터지면 그거 누가 책임질 건가요”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 “이상호 기자가 ‘구조요원 좀 다치면 어떠냐’고 유족들 선동하고 있나 보군요”라면서 “좀 다치면 어떠냐. 더 빨리 가자 해서 터지는게 교통사고, 선박사고 등등입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전날 오후 9시 40분쯤 대책본부에서 기자들이 번갈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질문하던 중 이상호 기자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생방송에서 모 언론사 기자에게 욕설을 해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다이빙벨 투입 성사시킨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지?”,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다이빙벨 투입 까지 사사건건 반대일세”, “변희재,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다이빙벨 투입 뭐가 그렇게 싫어서”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국내여행 |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젠 초량동이다!

    시작해 볼까 한다. 거의 40년 전 내가 태어났던 그곳에 대한 이바구를,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오르내렸던 까꼬막에 대한 이야기를.당신이 준비할 것은 기차를 타기 전 2시간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는 이야기, 까꼬막은 비탈길을 뜻한다.고향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오빠야~’를 쫓아 경사진 산복도로를 뛰어다니느라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던 가시내의 기억은7살에 멈추었다.이후 내가 태어났던 외갓집과 초량동은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사람들이 떠났고, 집들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그러나 32년 후 다시 찾아온 여행기자에게초량동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바구 공작소가 생겼고, 유치환 선생과장기려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 만들어졌고,손님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전망대, 카페,까꼬막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산복도로 위에서 보는 초량동과 부산항,북항대교의 풍경은 비탈을 극복한 자만이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근현대사의 축소판, 초량동여행애호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 감천문화마을(감천2동 산복마을)은 부산 산복도로에 말 그대로 ‘르네상스’를 몰고 왔다. 2012년 감천마을을 다녀간 여행자가 10만명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할 정도로 조용하던 산동네는 일약 관심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맥을 잇는 다음 주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량동이라고 했다. 초량동이라니! 전쟁 통에 결혼한 외할머니가 8명의 자식을 낳아 키웠고 그 자식의 자식인 내가 태어난 그 동네가 아닌가.초량동은 한국전쟁 당시 판자촌이 얼기설기한 피난민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나마 물자와 일거리를 구하기 쉬웠던 항구 근처에 난민들은 터를 잡기 시작했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판잣집이 세워져 있곤 했다. 칸칸이 작은 방들로 이루어진 엉성한 집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구봉산龜蜂山(405m)의 거북이 등을 타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집과 집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미로 같은 골목이었고 우마차가 흙길을 다졌다. 산복도로의 시초였다.마을의 풍경은 태생적으로 아름답다. 감천마을의 경우 이미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피난민촌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이 풍경은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다. 파랑색 물탱크를 옥상에 이고 다닥다닥 어깨를 붙인 파스텔톤의 집들은 보따리를 하나씩 머리에 이고 산비탈을 오르는 어머니들을 닮았다.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나선 계집아이의 얼굴엔 때구정물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수도가 없으니 급수차가 오는 날에는 아이들도 세숫대야라도 들고 나서야 했었다. 만만치 않은 세월이었다.감천마을에서 시작되어 산복도로를 타고 질주해 온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초량동이나 수정동 같은 낙후된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구의 생활문화사를 유적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곳인 이바구공작소를 포함해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올 초부터 줄줄이 문을 열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건물들이 아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유도하듯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 전망대, 게스트하우스, 기념관, 카페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무엇이든 이 모든 장소들은 최적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바구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주저앉아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지는 ‘구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과정이 고된 만큼 까꼬막길은 더 큰 보상을 안겨 준다.손쉬운 선택으로 산복도로에만 올라서도 건설 중인 북항대교는 물론이고 오른쪽으로는 남항대교, 왼쪽으로는 광안대교와 산 너머 해운대의 마천루까지 모두 보인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불을 지펴 다급한 소식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던 구봉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부산 앞 바다의 경치는 더 너르고, 더 깊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모든 풍경은 저마다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은하수 같은 야경이다.굽이굽이 이바구가 들린다경험상, 도보여행은 가벼워야 한다.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산 지하철역 사물함에 필요 없는 짐을 맡겨두고 길을 건너니 이바구길종합안내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길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산 사투리, 중국어, 러시아어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생경한 외국인 거리를 정신없이 통과하니 사거리 한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었던 구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한 때 외국의 의사들을 숱하게 초빙할 만큼 큰 병원이었지만 행려환자들의 시신을 인체표본으로 보관한 일이 밝혀지면서 도덕적 질타와 경영 악화로 문을 받았다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평생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알았다면 애통해 했을 일이다. 25년 동안 복음병원의 병원장을 지내며 1968년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던 그는 평생 집 한 채를 소유하지 않고 병원 옥탑에서 생활하며 낡은 의사 가운과 청진기만을 유품으로 남겼다.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더 나눔’은 올해 초량동의 복음병원 분원자리에 문을 열었다.병원에서 몇 발자국을 옮기자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였던 남선창고터가 병원 뒤에 남아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물건들은 1,000평 규모의 창고를 거쳐서 경부선(1905년 개통)을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졌는데 주요 품목이 함경도산 명태여서 ‘명태고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산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최초’라는 수식어는 종종 ‘임시’라는 수식어와 연결된다.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던 초량 교회는 부산이 임시 수도였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그 시절 임시 수도의 정부 교통부로 사용했던 건물은 부산지하철 좌천역 근처에 남아있다.그 당시의 마을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골목길 갤러리다. 흑백 사진 속의 그곳과 지금의 이곳은 수십년의 시차를 마주하게 한다. 그 시차를 극복한 사람들이라면 168계단이 선사하는 아찔한 고도 차이도 우습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올려다보기에도,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추억들은 168계단 옆 우물처럼 파도 파도 깊어진다. 시인 유치환, 개그맨 이경규, 노무현 대통령, 음악감독 박칼린, 가수 나훈아,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국회의원 안철수, 연출가 이윤택 등 동구 출신들을 마치 가족처럼 자랑하는 주민들의 정서는 2013년에도 유효하다. 그들의 사진과 이력이 벽에 걸려 있는 초량초등학교 동구 인물사담장 앞에 서 있으면 “이~갱규가 이 학교 나왔다 아이가. 나하고 동갑인데… 갸가…”로 시작되는 대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를 마중 나가는 초량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부산역 앞 초량이바구길 안내도부산역에서 망양로 산복도로를 오르는 짧은 길은 가난하고 아팠지만 따스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종합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2시간의 산책은 애환 어린 피난시절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역사를 꿰어 줄 뿐 아니라 부산 특유의 정서와 서민생활을 깊숙이 느끼게 해준다.Route (옛)백제병원▶남선창고터▶담장갤러리▶동구 인물사담장▶168계단▶김민부 전망대▶이바구공작소▶장기려박사 기념관 ‘더 나눔’▶유치환의 우체통▶까꼬막까지 이어지는 1.5km①부산역 1905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계통 이후 부산역은 가장 중요한 부산의 관문 역할을 변함없이 해 왔다. 1953년 대화재로 이전의 부산역이 전소되면서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역사를 신축했고 2004년 KTX 개통으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부산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②부산항 부산항은 원래 아주 조그만 어촌이었지만 고종 때 개항하면서 최초의 무역항이 됐다. 물자가 넘쳐나고 그만큼 일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 전쟁이 터지자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항구 근처에 머물렀다. 산복도로 아래 피난민 마을은 그렇게 형성된 곳이다.③상해문 청관거리(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에 있었다)라고 불렸던 이 지역은 중국인들이 밀집한 차이나타운이지만 현재는 러시아, 필리핀 사람들도 대거 거주하는 외국인 거리가 됐다. 소문난 중화요리점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독해 불가능한 외국어 간판이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 한때 텍사스골목이라는 불명예를 품기도 했었지만 2007년 7월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지정되어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④(옛)백제병원 1922년 한국인 최용해가 만든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은 5층 규모의 건물로 외국인 의사들을 초빙할 만큼 번성했었지만 10여 년 만에 경영 악화로 폐업하게 되었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 요리집, 일본 아까즈끼부대의 장교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 영사관, 신세계 예식장 등 여러 용도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가다가 현재는 임대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1972년 화재로 5층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4층 건물로 남아있으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층에는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입주해 있다. 주소 초량동 중앙대로 209번길 16⑤남선창고(터) 백제병원 뒤쪽 탑마트 주차장 정면에는 담쟁이가 엉켜 있는 붉은 벽돌담이 있다. 건물은 2009년 철거되고 담장만 남은 남선창고는 저 멀리 함경도에서 부쳐진 명태를 적재하던 창고라 하여 북선창고(1900년 건립)라고도 불리다 1914년 남선창고로 개명되었지만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곳이다. 경원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함경도의 수산물과 강원도의 목재는 부산으로 옮겨서 경부선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었다. 백제병원 옆(탑마트 주차장). 주소 초량동 393-1⑥김민부 전망대 김민부(1941~1972)라는 이름을 잘 몰라도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 김민부 작사)’이라는 제목은 잘 몰라도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되는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 출신인 그는 부산고 3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이후 부산과 서울 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었다. 부산항의 경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겸 야외카페도 있다.⑦당산 어디 시골마을이나 남아있을 것 같은 당산이 오밀조밀한 주택가 한가운데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매해 음력 3월과 9월의 보름날에 초량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어린 시절에는 당산이 무섭기만 했었지만 피난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런 기복신앙에 기대서 어려울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⑧이바구공작소 해방, 한국전쟁, 월남 파병 등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교과서적 역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은 6·25와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복도로를 지켰던 어르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2013년 3월 오픈한 이바구공작소는 산복도로를 관통했던 역사와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또 다양한 공연과 전시로 관광안내소와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486번길 14-13 관람료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ebagu.or.kr⑨유치환의 우체통 왜 갑자기 우체통? 의아할 수 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을 기리는 대형 우체통이 동구의 산복도로에 세워진 이유는 그가 이곳 경남여고의 교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향한 통유리창 카페에 앉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특권을 놓치지 말자. 커피 한잔으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부산역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컴퓨터과학고에서 하차.⑩천지빼까리 카페 마을 정자 옆에 만들어진 카페는 이름이 예술이다. 이른바 ‘천지빼까리 까꼬막 카페’. 동구청장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 카페는 시원하게 뚫린 유리창을 통해 세상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전망, 특히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부산역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초량6동에서 하차.⑪까꼬막 게스트하우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센터라는 설명보다는 게스트하우스로 이해하면 훨씬 용도가 명확해지는 곳이다. 그것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2층 방에 올라가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면 산비탈 마을의 야경이 별빛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고. 1층은 주방 겸 거실이지만 취사를 금지하는 대신 배달 가능한 동네 맛집 목록을 준비해 두었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terview 新 르네상스의 건축가 김진우그는 초량동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방인이다. 서울에서 판문점 ‘평화의 집’을 설계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지금도 성북동 주택을 설계하느라 바쁜 건축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산복도로를 찾아와 집 한 채를 구입하더니 동네에게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변신시킨 것. 구청 직원들이 ‘꼭 가봐야 한다’며 앞장섰다. 이런 방문에 익숙하다는 듯 건축가 김진우 선생이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놀 유遊’자에 ‘벗 붕朋’자, 유붕정이라는 이름이 게스트하우스화된 이 집의 용도를 설명해 준다면 파티에 최적화된 너른 주방과 식탁, 직접 디자인한 난로와 가구들, 거실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그림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그의 취향을 말해 준다. 비밀스럽게 자리잡은 황토찜질방과 화장실, 기둥 역할을 하는 계단 등등 구석구석이 감탄거리다. 산에서 바다로, 막힘없이 내리꽂히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버렸다는 그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위해 기꺼이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자극받은 이웃들도 스스로 집 단장에 나서고 있다니, 이미 르네상스는 시작됐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부산동구청 051-440-4281
  • 삼성 노트북 ‘뉴 시리즈 9’ 해외언론 호평

    지난 13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전시회(CES) 2012’에서 처음 공개된 삼성전자의 노트북PC ‘뉴 시리즈 9’이 해외 언론으로부터 잇따라 호평을 받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이 제품에 대해 최고급 성능과 유려한 디자인을 갖추고도 휴대성을 개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타임’지 온라인판은 뉴 시리즈 9의 성능과 휴대성에 대해 ‘기존 15인치 랩톱에서는 전례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시넷은 “CES 행사에 공개된 노트북 PC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제품”으로 꼽았고, 노트북PC 전문매체 노트북닷컴은 뉴 시리즈 9을 ‘새해 가장 기대되는 노트북’으로 꼽았다. 실제 뉴 시리즈 9은 올해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으며 IT 전문 매체인 지디넷·데일리테크·더버지·고터비모바일의 부문별 올해 최고 제품으로도 선정됐다. 신제품은 다음 달 국내 시장을 시작으로 세계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금강산 아래 첫물 양구 계곡 2곳

    금강산 아래 첫물 양구 계곡 2곳

    장마 끄트머리, 계곡의 물은 한층 세차고 요란하다. 한바탕 쏟아부은 비가 느슨하게 졸졸거리던 물의 정신을 번쩍 깨운 듯싶다. 불어난 물은 앞다퉈 아래로, 더 넓은 곳으로 가겠다며 시커멓게 모이는가 싶더니 쿨럭거리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비 개인 뒤 내달리는 계곡의 물줄기는 늘 원시(原始)의 생명력이 한가득이다. 하나 이기적인 인간사(人間事)가 남긴 생채기는 엄혹하기만 하다. 민·통·선…. ‘민족·통일·선’이 아니라 ‘민간인출입·통제·선’이다. 분단과 전쟁의 흔적 민통선은 역설적으로 이 계곡이 오랜 시간 동정(童貞)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휴전선 바로 아래 민통선을 품고 있는 강원도 양구는 훼손되지 않은 물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쪽 계곡의 고향으로 남게 됐다. 그중에서도 금강산 아래 첫 물, 수입천(水入川)의 비경(秘景) 2곳을 따라가 본다. ●민통선 품은 두타연… 원시자연미 눈부셔 수입천의 최상류이자 북쪽 금강산에서 흘러나온 첫 물인 두타연은 군부대 안쪽에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흘 전에 양구군 경제관광과(033-480-2278)에 관람신청 예약을 해야 한다. 양구읍 양구명품관 앞에서 오전 9시까지 모인 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출발해야 두타연을 둘러볼 수 있다. 둘러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두 시간 남짓이다. 입소문으로 전해져 아는 사람들만 그 절경을 감상해 왔다. 하지만 명불허전(名不虛傳). 두타연의 색은 초록과 하양, 딱 두 가지다. 초록 빛깔은 물과 산, 두 곳에 있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수목의 초록은 두타연의 계곡과 소(沼)에 그대로 비춰져 있었다. 또한 하얀 빛깔 역시 두 곳이다. 하나는 교태를 부리는 듯 몸을 뒤틀며 쏟아져 부서지는 계곡의 폭포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산등허리를 붙잡고 계곡 구경에 여념없는 구름 한복판에 있었다. 2003년 생태탐방코스로 개방된 두타연은 지난 5월 속살을 좀 더 내보였다. 그간 계곡의 한쪽면에서만 즐길 수 있던 것을 출렁다리, 징검다리를 놓고 곳곳에 전망 데크 등을 만들어 계곡 건너편으로도 건너가 두타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두타연에서 4㎞ 남짓 위로 올라가면 철문이 있다. 그 옛날 내금강 유람가는 길이 그렇게 뚫려 있었다. 이곳에서 16㎞만 더 가면 금강산 장안사다. 호기심에 함부로 갔다가는 곤란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분단의 흔적을-전쟁이 아닌- 이처럼 생생히 볼 수 있는 곳도 흔치 않다. 장미의 유혹이 치명적인 것은 가시 때문이다. 두타연 생태탐방길 양쪽으로 띄엄띄엄 걸려 있는 역삼각형의 붉은색 ‘지뢰’ 표지판이 보인다. 민족간 갈등의 결과물이자 또 다른 불신의 시발점인 한국 전쟁은 대인지뢰를 곳곳에 흩뿌려 남겨놓았다. 그렇게 이곳이 여전히 분단의 최북단 현장임을 온몸으로 역설하고 있다. 관광객은 허용되지 않는 곳으로 발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 양구군 경제관광과 서동호(문화관광해설사)씨는 “두타연 푸른 물의 유혹이 크겠지만 가능하면 안 들어가는 것이 좋다.”면서 “탐방로를 따라서 계곡과 산하의 풍경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파서탕에서 가족과 함께 낚시 즐기세요” 수입천 최상류 두타연이 처녀림과 동정의 계곡을 자랑한다면 수입천의 최하류인 파서탕 계곡은 가족과 함께 어린아이와 함께 낚시, 물놀이 등을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가족형 계곡이다. ‘낚시터의 대명사’ 파로호로 가는 35㎞ 길이 수입천의 마지막 계곡이지만 물 깊이는 야트막해서 꼬마들도 찰박거리며 뛰어다니기에 딱 좋다. 게다가 어른 손가락 한두 개만 한 굵기의 피라미들도 심심찮게 잡히니 어른들은 족대를 들쳐 메고 가서 천렵하는 재미를 즐기기에도 맞춤이다. 파서탕 계곡의 진짜 미덕은 일상과의 완벽한 단절. 방산면 소재지에서 460번 지방도로를 타고 오미리를 거쳐 가다가 남전교 즈음에 이르니 어느 순간 휴대전화의 안테나 막대기가 사라져버렸다. 전화를 받을 수도 걸 수도 없다. 휴가중에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업무를 털어내지 못하기 일쑤인 월급쟁이 직장인의 불안감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전화 불통을 핑계삼아 진정한 휴가를 만끽할 수도 있겠다. 수입천 파서탕 계곡의 사실상 시작이다. 남전교 근처에는 잔잔한 물살에 아이들 무릎 남짓 되는 수심으로 물가에 돗자리 깔아놓고 물놀이하기 적당한 곳들이 즐비하다. 여기에서 놀다가 ‘양구 사람도 모르는’ 파서탕을 둘러보는 게 좋다. 파서탕교를 지나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3㎞ 남짓 가면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이 길을 막아선다. 민박을 하는 개인 공간이라 허락을 받아야 파서탕을 볼 수 있다. 마치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는 파서탕은 과거 군인들만의 여름 단골 휴양지였다고 한다. 모래사장과 잔잔한 물, 절벽 나무들을 개인이 독점 향유하고 있어 씁쓸한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 강일나들목에서 새로 뚫린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춘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춘천으로 간 뒤 46번 국도 따라 양구로 간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먹을거리 양구의 별미는 오골계다. 오골계를 갖은 양념에 재워 놓은 뒤 숯불에 구워 먹는다. 또한 오골계 백숙은 입술을 쩍쩍 달라붙게 만드는 진한 국물을 내준다. 각 3만원. 숯불구이를 먹으면 남은 뼈로 탕을 끓여준다. 이 역시 나름대로 맛있지만 ‘반드시’ 백숙 국물을 먹기 전에 먹을 일이다. 순서가 바뀌면 국물이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양구읍 석장골 오골계숯불구이(033-482-0801)가 제대로 맛을 낸다. 광치휴양림 가는 길의 광치막국수(033-481-4095)는 시원하고 부드럽다. 막국수는 6000원이다. 편육(1만원), 민들레전(6000원) 역시 소박하고 맛나다. 두타연 가는 길에 도고터널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청수골쉼터(033-481-1094)의 산채비빔밥(5000원)은 진짜 산채를 쟁반 수북이 내놓는다. 안타깝게도 카드는 안 받는다. ▲묵을 곳 양구의 유일한 호텔인 KCP(Korea Center Point)호텔(033-482-7700)이 있다. 시설에 비해 비싸다. 대충 하룻밤 때우는 것을 원하면 양구초등학교 건너편에 양구불가마한증막(033-481-2410)이 있다. 특히 8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배꼽축제’ 기간에는 서천변 캠핑장에서 4인용 텐트 100개를 무료로 빌려주고 설치까지 해준다. 한반도 동서남북의 맨끝 지점에서 동서, 남북을 이어보면 그 한가운데 양구가 있다. 축제의 명칭이 ‘배꼽’인 이유다. 백토 머드체험, 야외수영장, 민물고기잡기, 벨리댄스공연 등이 펼쳐진다. 축제 홈페이지(www.centerfestival.com)에서 텐트 대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글ㆍ사진 양구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불에 그슬려 고사위기

    주한 미국대사관 건립이 추진되던 옛 경기여고터(옛 덕수궁터)의 회화나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훼손됐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덕수궁 선원전이 있던 옛 경기여고 자리의 회화나무가 불에 그슬린 채 말라죽어가고 있는 사진을 6일 공개했다. 나이가 200∼300년으로 추정되는 이 회화나무는 밑둥에 방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뚜렷하다.이 때문에 이 회화나무는 한창 새 잎을 피워야 할 5월에 접어들어서도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덕수궁터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는 “옛 경기여고 교정 한가운데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식생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고 이 나무가 건강했음을 밝히고 있다. 옛 경기여고터는 미 대사관 건립 여부에 대한 첨예한 논란이 있어 경찰이 24시간 방범 활동을 펴고 있으며,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누군가 불을 질러 회화나무를 고사케 하려 했음이 분명하다.”면서 “당국은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사설] 美대사관 부지 선정 이제 매듭을

    주한 미국대사관 신축부지 문제는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때다.지난 1986년 경기여고터로 대사관이전 양해각서를 교환한 이후 지금까지 이 문제를 끌어온 데는 여러 곡절이 있었다.착공시기를 놓친 미국측 책임도 있고,우리 정부 역시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우왕좌왕해 온 감이 없지 않다. 용산 미군기지내 캠프 코이너를 대체부지로 하기로 양국 입장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고건 대통령권한대행과 다른 여러 당국자들의 언급을 통해 이같은 움직임은 확인되고 있다.경기여고 자리는 문화재 보존문제가 불거지며 사실상 물건너가게 됐고 송현동 부지 역시 고도제한 문제에 걸렸다.양국이 용산부지로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이런 현실적 문제들이 고려된 것으로 본다. 미우나 고우나 미국은 지난 반세기를 함께해 온 동맹이다.제대로 된 대사관 부지 제공은 우방으로서의 기본 도리다.지금의 대사관은 너무 낡고 비좁아 대사관 직원은 물론,비자 인터뷰 때 긴 줄을 서야 하는 등 우리 민원인들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부지선정 뒤에도 토지 교환,차액 정산 등 행정절차가 간단치 않다.어차피 새로 짓기로 했으면 부지선정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위원회가 경기여고터에 대한 건축심의 결정을 가부간에 빨리 내려야 한다.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정부 입장 등 눈치보기로 계속 미적거리면 이후 절차가 진행될 수 없다.미국도 경기여고터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결정이 내려져야 부지선정과 관련된 공식협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장기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위해서도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야 한다.˝
  • 책 /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글·사진 창작과비평사 펴냄 “한 여울의 철교를 얼른 건느니/전곡리의 정거장도 등에 버렸고/연천대광(連川大光) 두 정거장 잠간 거치니/철원색(色)의 번화함이 눈을 흐리네” 용산에서 원산까지의 여정을 15절로 그린 ‘경원철도가’만 보아도 철원이 얼마큼 번화한 도시였는가 금방 알 수 있다.오죽하면 ‘철원색’이라 했을까.노동당사가 있는 관전리에 서던 철원장은 인근 최대의 시장이었다. 1930년대에는 거래액이 130만원을 넘었다.일제가 미국인 제임스 모스로부터 경인선을 사들인 가격이 18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그만큼 철원장의 명성은 전국적이었다.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풍요는 식민지배가 계속됨에 따라 심각한 빈부의 분열로 이어졌다.철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사진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36).‘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 )을 펴낸 저자는 철원을 ‘통일기행의 일번지’라고 부른다.지난 10년 동안 민통선이라 불리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누빈 그가 유달리 철원에 집착하는것은 그곳이야말로 고달픈 한국현대사와 곧바로 대면할 수 있는 장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10년간 철원·강화·백령도등 누벼 저자는 철원의 민통선 여행코스에서 철원역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한다.철원역은 월정리역에서 노동당사로 가다가 구철원시가지로 꺾어질 즈음의 지뢰밭 뒤에 있다.월정리역에 비해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하지만 철원역의 폐허는 전쟁의 상처를 가장 아프게 전해준다.저자는 “월정리기행이 보이는 것과의 만남이라면,철원역기행은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라고 말한다.그의 여행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정지해버린 박물관 같은 구철원시가지,얼음창고터,철원제사공장터,철원제일감리교회,노동당사,백마고지를 도는 행로 곳곳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난다. 어느날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수백명이 몰살됐다는 신탄리 폐터널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그의 연천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신탄리 폐터널이 미국과 인민군의 격전장이었음을 확인한 저자는 이어 연천군 청산면 열화우라늄탄 사고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현대 고달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 이라크전쟁 때 미국이 사용해 지탄을 받은 그 열화우라늄탄이 1997년 한반도에서 그것도 ‘사고’로 터졌다는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다.1999년 유고전쟁 이후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나타난 집단 백혈병증세도 열화우라늄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저자는 ‘연천 제1의 볼거리’ 태풍전망대의 선전판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6·15선언 이후 선전판 글귀가 ‘귀순자 대환영’에서 ‘우리는 한 형제’로 바뀐 것.6·15선언의 영향이 가장 빨리 나타난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경원선의 분단풍경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그중 하나가 동두천 미군기지다.저자는 동두천에 이르러 불현듯 소요산의 전설을 떠올린다.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원효대와 요석이 머물렀다는 별궁터,그리고 원효가 사랑하는 요석을 두고 이름을 붙였다는 공주봉이 자리잡은 소요산.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소요하면서도 면벽수도를 할 수 있었다니 원효는진정 고승인가.저자의 이런 낭만적인 상념은 동두천 미군기지의 담벽을 따라 뻗어 있는 경원선에 시선이 미치면서 분노로 바뀐다.의정부에서 신탄리까지 달리는 경원선은 사실 출발부터 미군기지와 함께 있다.의정부역사 양쪽에는 ‘캠프 폴링 워터’라는 미군부대가 있다.저자는 “미군의 군홧발에 채이면서도 능청맞게 달려온” 경원선을 “분단의 상처가 가장 아물지 않은 곳”으로 지목한다. 저자가 민통선 기행 길목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게 유실지뢰 문제다.비무장지대 남쪽에 1만개,후방지역에는 7만개 이상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다.파주·연천·양구·고성 등 곳곳에 피해자들이 널려 있다. 저자는 해마다 홍수가 나면 대인지뢰 유실사고 공포에 떠는 신탄리 차탄천을 찾았다.그리고 지뢰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고발하는 산문시 같은 감상적인 글을 남겼다.“아침부터 이장댁 스피커에서 ‘회심곡’이 구슬피 흘러나왔다.지뢰피해자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상주는 돌아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당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행복하다며 내 손을 잡았다.돌아오는 기차에서 보니 지뢰밭이 멀지 않은 동산에서 상여꾼들이 달구질을 하고 있었다.지뢰를 밟고 나서는 인생이 지뢰밭이라고 하더니 그는 죽어서도 지뢰밭에 묻히고 말았다.” 저자는 실제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엄스와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과 함께 한국의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미군기지·유실지뢰 문제 진지한 접근 민통선 기행은 그 자체가 분단극복을 위한 하나의 작은 실천이다.분단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분노는 때로 폭주기관차처럼 불을 뿜는다.양구 평화의 댐에서는 정권의 ‘한판쇼’에 놀아난 씁쓸한 기억을 곱씹으며,동해 북부선 현장과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의 잠수함 승무원들이 사망한 칠성산 억새밭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절규하듯 갈망한다. 이 책은 민통선에 관한 본격적인 기행서로는 국내 처음이다.최초라는 상징성보다는 물론 글에 배어 있는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냉전시대 분단의식을 부추기는 ‘안보관광’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평화운동가로서의 역사인식이 담겨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씨줄날줄] 러시아 대사관

    서울 정동 옛 배재고 터에 마침내 러시아대사관이 세워졌다.착공 3년만이다.러시아대사관에서 400여m쯤 떨어진 옛 경기여고 자리에 미국대사관이,정동교회 부근에 캐나다대사관이 들어올 예정이어서 이 곳은 향후 외교 및 첩보전의 최일선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대사관은 이번에 문을 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대표적인 것은 ‘터’.1910년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측이 고종의 서명이 뚜렷한 서류를 들고와 옛 러시아공사관,즉 아관(俄館) 자리 7500여평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다.1896년 고종과 태자가 파천(播遷)했던 아관은 현 대사관 자리에서 100여m쯤 떨어져 있다.그러나 사적지 253호인 현 아관 자리는 우리측이 광복이후 땅을 떼어 판 탓에 4500여평에 불과하다.우리 측은 처분한 땅값으로 300억원을 주려 했으나 러시아측이 시세대로 3000억원을 주장해 6년 가량 양국이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결국 우리측이 같은 3000억원 짜리 땅인 배재고터를 내주고 현금 200억원을 얹어 줌으로써 러시아대사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공사 자체도 엄청나게 까다로웠다.대사관 건물 답게 KGB가 시시콜콜 참견했다고 한다.심지어 벽돌 파이프 등 모든 자재를 러시아에서 공수해 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그러나 시공사인 삼성물산 등에 따르면 자재 등은 모두 국내 것을 썼고 러시아측은 철저히 보안검색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설계도 처음과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일례로 정문에서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거리가 다른 건물에 비해 훨씬 긴데 이는 수류탄 투척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대사 집무실도 길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라고 한다.게다가 러시아 측은 지난 연말 건물이 다 지어졌음에도,대사관 직원마저 통제한 가운데 KGB 자체적으로 8개월동안 일부구역의 내부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국내 보안전문가들은 이른바 챈서리(chancery),즉모든 전파를 차단하는 ‘철갑방’을 지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근대사의 질곡을 말없이 품고 있는 정동 일대.80여년만에 러시아대사관이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정동 일대의 모습이 100년전과 유사해지고 있다.이번에 열리는 정동 시대에는 비운의역사가 아닌,성장의 역사가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집중취재/ 외국인없는 관광특구

    ‘관광특구’에 외국인 관광객은 없고 내국인들만 넘치고있다. 지난 94년부터 외국인 관광객 유치 및 외화 획득을 위해지정·운영해오고 있는 서울 이태원,제주 등 전국 관광특구21곳 중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기능을 상실한 채 과소비를 부추기는 ‘내국인 유흥특구’로 전락했다.볼거리,먹을거리,쇼핑,오락 등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부대시설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감사원은 올 봄 관광특구에 대한 전면 감사를 실시,이같은문제점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으나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속리산 관광특구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18명,올6월까지 11명에 불과했다.수안보온천도 지난해 109명,올해40명이었으며 백암온천은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234명에 불과했다.정읍 내장산(1,582명),통영 미륵도(5,710명),구례(9,000명)도 1만명 이하였다. 전국 관광특구 21곳 중 이태원,남대문,부산,제주,경주 등5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간판만 관광특구일 뿐 사실상내국인 관광지가 됐다.특히 지리산온천지구와 화엄사로 나눠져 있는 구례특구의경우 전체 면적의 94%가 임야와 전답이다.대관령은 1지구(강릉)와 2지구(횡성)가 130km나 떨어져 있는 데도 1개 특구로 지정돼 외국인관광객은 물론 내국인관광객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관광연구원 김영준 책임연구원은 “94년 관광특구지정제도 도입 당시 유흥업소의 영업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혜 때문에 서로 특구로 지정받으려고 달려든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99년 영업시간 제한제도가 폐지되면서특구의 존재가치도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정부의 빈약한 지원도 관광특구 부실화에 한몫했다.정부는올해 2,000억원 규모의 관광진흥개발기금 중 227억여원을관광특구에 지원했지만 호텔 신축,개보수 등에 편중돼 관광기념품 개발,음식점 등 특구내 영세사업에는 지원금이 돌아가지 않았다. 문화관광부 라종민 관광개발과장은 ““내년중 21개 특구전반에 대해 실사작업을 벌인 뒤 관광특구제도의 존속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관광특구 실태.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인천광역시북성동 월미관광특구. 월미도에서 영종도를 오가는 유람선 코스모스호에는 내국인관광객 20여명만이 선실을 지키고 있었다. 월미관광특구는 전국 21개 관광특구중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지정된 만큼 주민들의 기대가 높지만 외화를 벌어들일부대시설은 전무한 실정이다.이곳의 279개 업소 중 횟집과식당이 29곳으로 가장 많고 모텔도 17곳에 이르지만 토산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곳은 전혀 없다. 국내 대표적인 미군기지 기반 관광위락단지인 경기도 평택시 송탄관광특구 신장쇼핑몰거리 한가운데는 미군 군수품운반용 철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성추 송탄상공인회 회장은 “그동안 주민들을 중심으로철로 철거와 특구옆 탄약고터 반환운동을 펼쳐왔지만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군 앞에선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된 서울 이태원의 사정도 별반 다를바 없다. 99년 3월 유흥업소 심야영업제한 철폐 이후 별다른 지원과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아 외국인유치 관광지로서의 매력을잃고 있다. 유흥시설 7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은 뒤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하는 임윤빈씨(29)는 “외국인 손님들이 ‘주차공간도 없는 형편없는 곳’이라고 투덜대는 소리를 매일 듣는다”면서 “주차장,화장실과 같은 기반시설도 없어 욕을 먹는 이태원을 개선시킬 생각은 않고 남대문에 이어 동대문까지 관광특구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혀를 찼다. 경북 울진군 백암온천관광특구는 97년 경북지역에서는 두번째로 관광특구로 지정됐다.그러나 이곳에서는 좀처럼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지 못한다.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234명에 불과했다. 대전 유성관광특구도 외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특구 지정취지와는 달리 서울 강남에 필적하는 ‘내국인 유흥특구’로 변질된 지역이다.최근 숙박업소 117곳 중 68곳이 온천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도돼 망신을 사기도 했다. 노주석기자. ■관광특구란. 관광특구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관광진흥법에의거,관광활동과 관련된 관계법령의 적용이 배제되거나 완화되는 지역을 가리킨다. 지정요건은 ▲최근 1년간 외국인 방문관광객이 10만명 이상인 지역 ▲접객,쇼핑,오락,숙박,관광안내시설이 유치된지역 ▲지정지역이 바다,산림,하천 또는 도로 등에 의해 구분된 곳 등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특구내 사업자에게는 관광진흥개발기금에서 융자도 해준다. 94년 8월 제주도,경주,부산 해운대,대전 유성,설악산 일대등 5곳이 처음 지정됐으며 97년과 2000년,2001년 등 4차례에 걸쳐 모두 21개 지역 2,758만8,824㎢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 중견기업 자금 악화설 일부투자자 오해로 와전

    자금경색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일부 중견기업의 자금악화설은 금융당국과주채권은행의 강력한 부인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자금악화설의 한복판에 있는 쌍용양회의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16일 “대우로 넘어간 쌍용자동차를 쌍용그룹 계열사로 혼돈한 일부투자자들이 쌍용차에 대한 긴급자금지원을 쌍용그룹 자금난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쌍용양회의 올해 만기차입금은 약 3조원.이중 회사채가 1조8,000억원,기업어음(CP) 3,000억원이다.관계자는 “쌍용정유를 매각하면서 3,400억원을 상환하는 등 올들어 2금융권 여신을 꾸준히 상환하고 있다”면서 “회사채 차환과 CP 연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위성복(魏聖馥)조흥은행장은 지난 15일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자 “서울 삼각지 창명여고터와 대구 석회석공장 등 부동산 5,000억원어치를 미국계 벌처펀드 ‘론스타’에 매각하는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쌍용정보통신의 주가급등으로 4,500억∼6,000억원의 평가익도 기대된다고 부연했다.쌍용양회가 자구계획으로 1조5,000억원정도는 충분히 마련할수 있다고 채권단은 판단한다. D그룹의 경우 부채비율이 200%를 넘고 금융비용부담률이 14%대에 육박한 점이자금위기설로 작용했다. 또다른 D그룹은 회사채 등급이 ‘BBB+’인데다 주력사의 부채비율도 166%로 우량하다는고 주채권은행측은 설명했다. 금융전문가들은 문제는 일부 기업의 자금난이 아니라 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5월 들어 투신권에서 8조2,000억원,종금사와 은행권 신탁계정에서 약 7조원이 빠져나가 이들 금융기관의 회사채및 CP매수여력을 축소시켜 채권시장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현재 금융시장 불안설이 증폭되고 있음에도 채권금리가 안정돼 있는 것은 거래자체가 없기 때문.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BBB’인 회사의 회사채도 할인이 안되는 자금경색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올 들어 회사채 순발행은 계속 마이너스이며,CP 순발행마저 5월 들어 1조7,522억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기업들의 돈줄이 얼마나 막혀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신용경색해소를 위해 시장루머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이 즉각적으로 진위여부를 확인토록 하는 한편 마찰적 자금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박현갑 안미현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