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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고도 먼「백두산 가는길」/이인복 숙명여대교수ㆍ국문학(서울시론)

    ◎이산보다 더 아픈 「이념의 벽」실감 40년 이산의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백두산 가는 길은 멀기도 합니다. 백두산행이 아버지를 만나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의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굳이 중국여행계획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전에 깃발을 들고 전세계를 여행하던 벼락부자 일본인들 같은 언행을 보이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지금 중국을 휘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이 그때의 일본처럼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때의 일본인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잘 사는 척 기분을 내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실제 이상으로 못사는 척 일부러 궁상을 떨고 있는 것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신이 나서 유치하게 「우쭐대 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중국인들의 음흉한 속셈에 놀아나는 것이 됩니다. 가이드들은 한결같이 『우쭐대는 일본놈들』이라고 말끝마다 입에 뇌었지만,그들이 조선족 가이드가 아닌 중국계일 경우엔 분명히 『우쭐대는 조선놈들』이라고 등 뒤에서 조롱했을 법도 합니다. 「우쭐댄다」는 말은「주제파악을 못하는 거드름」이란 말이니까요. 우리는 중국의 공항 화장실에조차 휴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중국인의 궁상을 측은히 여길 것이 아니라,오히려 음흉한 계책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펄벅의 「대지」에서 오랑은 태어난 아들을 몸으로 가리고 하늘을 우러러 궁상맞게 부르짖습니다. 『못생겼습니다. 못생겼어요. 별볼일 없는 애입니다』 세인의 주목으로부터 감추어 주어 위험을 없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겸양이 전혀 없고 실제로 가진 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거짓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중국인들은 잘 압니다. 우리는 서독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소련으로부터 동독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2백억을 건네주었다는 말이 있고,또 동독의 경제를 서독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1천억을 투여하리라고 하고,동독의 돈을 서독의 마르크로 바꿔주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수하며 반허리의 동독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정치가 동독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서독 국민이 출자한 개인재산의 태산같은 돈덩어리가 동독을 매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정치로만 남북을 통일시킬 수 있겠습니까. 소련 하나만이 아니라 소련과 중국 두 나라의 간섭으로부터 북한을 구출하기 위하여는 2백억이 아니라 4백억이 필요하고,북한의 경제를 남한 수준까지 상승시키기 위하여는 우리도 1천억의 돈을 남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추렴해야 할 것인데,옆마을에 사는 내 형제자매 부모가 원시상태의 기근속에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진 것 이상으로 가진척 하면서 중국여행에 돈을 퍼붓는 상황을 목격하며 나는 슬픔보다 짙은 분노에 떨었습니다. 북한 전역을 살 돈이 모금되어야 합니다. 훗날에 물건을 팔게 될 일을 위한 광고도 좋지만 지금 무조건 퍼주는 저자세 무역정책도 보기 싫었습니다. 상해ㆍ심양ㆍ장춘 등 내가 갔던 중국의 도시 어디든 공항의 짐 끄는 차와 텔레비전은 한국 것이었습니다. 일본 것이 아닌 한국의 것 뿐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의 60%가 관광에서 오고 그것의 절반정도가 한국인이 쓰는 돈임을알아야 합니다. 나는 주는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이 아니라는 것,중국에 쏟는 돈을 아껴 두었다가 언젠가 이북을 여행하게 될 때 마음껏 씀으로써 북한 동포를 돕자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북은 너무 가난하니까. 공항에서 우리는 이북의 교수님들과 25세의 통역관 여성을 만났습니다. 1920년대의 칼라 넓은 양복을 교수님들은 입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속에 거느린 내적 자긍심을 그들은 애써 과시하려 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영어를 그처럼 잘하느냐고. 그는 평양 외국어대 영문과 출신인데 공부를 못하면 국비 장학금을 못타고 그러면 퇴교 당하니까 일단 졸업하는 사람은 통역에 부족함이 없는 일꾼으로 양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의 외국어학과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에서 북한을 대표하여 당당하게 통역을 한,영국계 캐나디언 영문과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는,유창한 영국발음의 북한 여성 통역관은 1만5천원으로 다 구비할 검소한 원피스,비닐 핸드백 비닐 구두로 당당히 최상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산의 아픔 중에서 제일 큰 것은 보고싶다는 감상적 애통 보다도 북한의 동포들이 못먹고 못입을까봐 그것이 피부를 깎는 애통』이라고 했더니,교수님과 통역관 여성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닙성은 남조선만 못하고,먹는 것도 남조선만 못하지만,굶는 사람 얼어죽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시라요,그리고 우리는 허영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조국 건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니까 안심하시라요』나는 그 말속에서 진실의 고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제일 불행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외국 유학을 못가는 것 그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긍심을 가장해도 정녕 감출 수 없는 그들의 아픔ㆍ부끄러움ㆍ고충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처럼 모시며 달고 다녀야 하는 김일성 배지,가슴에 번쩍이며 빛나는 사람의 배지 그것일 터임을. 다른 것 입는 것이나 먹는 것의 가난함,그것은 극복할 수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사람의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하는 그 일은 지성인에게 있어서 정녕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이 정말 가엾었습니다. 교수님이 우리 일행에게 명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전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명함을 가루가 될 때까지 찢고 비비어 이름자의 흔적이 없게 만들어 쓰레기 통에 넣었습니다. 「국법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국가가 주지 않은 북한 사람의 명함을 나는 지녀서는 안되니까. 나의 아버지와 오라비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나의 정부가 알아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북한 교수가 나누어준 명함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여성을 껴안으며 『딸아. 장하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영국과 캐나다에 유학해라. 서울에서 만나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백두산 가는 길은 아직 멉니다. 아버님 만나기 만큼이나 멀고 멉니다.
  • 책임자 문책인사/빠르면 오늘 단행

    정부는 국군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의혹사건과 관련,빠르면 8일중 지휘 및 관리책임에 대한 문책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이며 그 대상은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8일 낮 노태우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을 통해 관련자의 엄중문책을 건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김윤환 정무1장관 등 당정 고위인사들도 노 대통령과 김 대표 회동 직후 문책인사를 단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이미 청와대측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후임 국방장관 인선에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문책인사가 10일쯤으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충주댐 방류 억제한건 최선의 선택”/수해추궁 국회건설위 중계

    ◎“한강 하류의 피해 덜려 수문 늦게 열어”/“단양지역 주민 이주 ㆍ보상대책은 무엇” 건설부의 수재대책 등을 논의키 위해 18일 하오 민자당 단독으로 소집한 국회 건설위는 정부보고 초반부터 정부측의 안일한 대처 태도를 꾸짖는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이어 11명의 의원이 질의에 나서 열띤 분위기 속에 심야까지 진행됐다. 특히 의원들은 충주댐의 수위조절 실패에 따른 충주댐 상류지역의 침수원인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끝에 권영각건설부장관으로부터 『한강 하류지역의 보다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류지역의 침수에도 불구하고 방류를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을 끌어내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날 의원들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실시한 현장조사결과를 토대로 건설부측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의 허점을 날카롭게 들춰내기도 했다. ○…이날 하오 2시30분 회의가 시작되자 권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중앙재해대책본부장으로서 이번 수해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고 말문을 연 뒤 『이번 수해는 강우량이 예고량을 훨씬 상회한 데다 특히 홍수조절 능력이 없는 한강 중ㆍ하류지역에 강우량이 집중됐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고 수해원인을 설명. 권 장관은 또 『충주댐 상류지역의 침수에 대해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는 지적이 있으나 당시 최악의 상황에서 보다 많은 인명과 재산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상ㆍ하류가 모두 만수인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미리부터 불가항력이었음을 하소연. 그러자 신상우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장관은 84년이나 87년의 홍수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해원인을 불가항력적이었다고 발뺌하고 있다』면서 『수해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종합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은 어디에 갔느냐』고 추궁. 그러자 오용운위원장도 『예상밖으로 비가 많이 와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안이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에 가세. 이어 한수은제2차관보가 수해대책을 보고하면서 피해지역에 대해선 건설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하겠다고 말하자 이해구의원이 책상을 치며 『당신네가 정한 기준대로 하겠다면 무엇 때문에 국회에 나왔느냐』고 호통. 이에 김운환의원이 『지난해 영ㆍ호남지역의 수해때처럼 피해복구액 전액을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라』고 요구. 또 김동주의원은 『소양강댐은 홍수조절능력이 5억t인데 이번 홍수때 4.2억t의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추궁. 건설부측은 『소양강댐은 제방수위인 190.3m를 유지할 경우 5억t의 홍수조절 능력이 있으나 당분간 큰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20일부터 시작되는 갈수기에 대비해 제방수위보다 1.5m 높은 191.8m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4.2억t의 홍수조절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 건설부측은 『그러나 9일 새벽 2시부터 12일 상오 11시까지 예상을 훨씬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데다 한강인도교 수위의 급격한 상승으로 제대로 방류할 수 없었다』면서 『당시 충주댐과 소양강댐에서 방류량을 증가시키지 않더라도 홍수조절 능력이 없는 가평ㆍ여주 등 댐 하류지역의 폭우만으로도 한강인도교의 수위가 11일 하오 3시부터 6시사이에 최고수위인 11∼11.5m에 이를 것으로 예측돼 한강 인도교 수위가 최고수위를 벗어난 후에 방류된 물이 서울에 도착하도록 방류를 조절했다』고 당시의 고충을 토로. 그러자 건설부 수자원국장 출신인 최이호의원은 『이번 수해는 근본적으로 관료들이 나태했기 때문에 잘못된 예측을 한 것』이라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지라고 호통. 책임소재 문제로 의원들 사이에 논란이 계속되자 권 장관은 충주댐의 방류를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만일 충주댐 상류지역의 수몰을 막기 위해 충주댐의 수문을 일찍 열었더라면 한강 하류지역의 피해는 엄청났을 것』이라고 강조. 권 장관이 사실상 충주댐 상류지역 침수가 인재였음을 시인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자 오 위원장은 황급히 『장관의 답변에 이의가 있다』면서 『비록 정부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충주댐 상류지역을 침수시켰는지 모르겠지만 희생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 이때 건설위원석 뒤의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안영기의원이 『침수된 단양출신 의원이 여기에 있다』고 소리치며 앞으로 뛰쳐나오려 했으나 오 위원장이 급히 안 의원을 제지. 결국 김운환ㆍ김동주의원이 충주댐의 계획홍수위(수몰선) 책정의 문제점을 집중추궁한 끝에 건설부측은 『수물선 책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답변. 심명보의원은 『이번 기회에 충주댐과 소양댐을 동일목적으로 양립해 운용하지 말고 소양댐은 경제목적으로,충주댐은 취수 및 홍수조절용으로 사용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이번 수해를 천재다 인재다 하는 말들이 많지만 모두 건설부의 돈이 없는 무재 탓인만큼 항구적 피해방지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인구의원은 『서울을 위해 신단양지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부측의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고 따졌고 이해구의원은 『건설부 지침으로 정해져 있는 복구 및 보상기준을 전면 재조정,현실적인 기준을 새로 마련하라』고 촉구. ○…저녁식사 정회 후 답변에 나선 권영각건설부장관은 『이번 한강유역에 발생한 홍수는 지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다음으로 큰 집중호우』라면서 『특히 남한강의 충주댐 상류에는 1백년 빈도로 설계된 강우량보다 훨씬 많은 1천년 빈도의 강우가 내려 발생된 불가피한 피해』라고 이번 수재가 천재성격이 크다는 점을 강조. 권 장관은 『현재 한국건설기술 연구원장을 단장으로 수문학회 등 전문가 등으로 편성된 조사반을 현지에 파견해 원인을 정밀 조사하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 따라 보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질 것』이라고 계속 원인조사를 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뒤 『피해지역 보상은 중앙합동조사반의 피해조사를 토대로 재해대책차원에서 최대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
  • “한가닥 기대”… 중동평화협상/케야르의 중재노력 성공할까

    ◎후세인 유화제스처에 서방국은 냉담/미,무조건 철수 고수속 봉쇄압력 가중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서는 등 무력대결 양상으로 치닫던 페르시아만사태에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갑자기 활발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외교적 해결시도는 유엔이 대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을 결의하고 미군등 현지주둔 다국적군이 속속 증강돼 무력충돌 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고 이라크와 서방국이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지만 양측 모두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고충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란ㆍ이라크전쟁의 휴전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는 케야르총장은 오는 30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아지즈 이라크외무장관과 회동할 예정이며 후세인 이라크대통령도 케야르총장과 바그다드에서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비아랍권 지도자로서는 최초의 후세인의 협상을 벌이게될 전망이다. 유엔사무총장을지냈던 발트하임 오스트리아대통령도 지난 25일 바그다드로 후세인을 방문,이라크에 억류중인 오스트리아인들의 출국문제에 중점을 두긴 했으나 사태해결 노력을 시도했었다. 케야르총장의 중재시도에 때맞춰 후세인 요르단국왕이 26일 리비아를 첫 기착지로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 영국 서독 스페인 등 북아프리카 및 유럽국 순방길에 올랐고 바시르 수단 국가원수는 리비아특사와 함께 바그다드에서 후세인을 만났으며 이집트도 외무장관을 소련과 프랑스로 보내 평화적인 사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이 외교적 해결노력이 부쩍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대치상태가 장기화 되거나 전쟁으로 비화될 경우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이전까지 배럴당 20달러를 밑돌았던 유가가 이미 30달러선을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고 조속한 평화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더욱 치솟아 세계적인 대공황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케야르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체류중인 2백만명에 가까운 외국인,특히 2만여명이 서방국 인질들의 신변안전확보가 시급하고 요르단 시리아 수단 등 친이라크적인 아랍국들은 이라크의 명분을 살려주면서 아랍권의 분열을 막기 위한 아랍자체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이들의 중재방향이 한가닥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철수시키는 대신 후세인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의 한 정부소식통은 『아랍 중재안에는 쿠웨이트 망명정부의 알사바국왕을 복귀시키도록 돼 있지 않다』고 말해 「시온주의자와 미 제국주의자 편에 선 부패한 왕정」을 폐지시켰다는 명분을 후세인편에 안겨주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교적 해결노력에 대한 서방국들의 시각은 아직 냉담하기만 하다. 미국은 유엔ㆍ이라크간 회담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라크군의 무조건 즉각 철수를 촉구한 유엔안보리의 결의내용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대처 영국총리도 협상에 의한 사태해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원상회복을 촉구했다. 이에대해 이라크도 사면초가에 몰린 나머지 서방국에 협상카드를 내밀고는 있지만 『영국에 의해 부당하게 독립국가로 분리된 쿠웨이트가 원래 이라크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해 당사국들이 입장이 이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당장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어느쪽도 일방적인 양보를 할만큼 다급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외교적 해결노력도 후세인 요르단국왕의 방미를 비롯한 초반의 중재노력처럼 무위로 끝날 공산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이라크가 앞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쿠웨이트 철수거부 ▲체면과 실익을 얻으면서 철수 ▲무조건 철수 ▲일전불사 등 4가지로 요약된다. 현재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방측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체제가 유가급등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붕괴될 가능성등 이라크쪽에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간다면 이라크는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반환등 받아들여지지 않을조건에 연계시켜 쿠웨이트에서의 철수를 계속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서방국의 어려움 못지 않게 이라크의 식략난등 자체문제가 심각해질 경우에는 국경지대 유전 등 쿠웨이트영토 일부를 넘겨받고 쿠웨이트에서 왕정을 폐지하는 대신 자유총선에 의한 공화국을 수립시키는 등 실익과 체면을 세우면서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방국의 어려움에 비해 이라크의 곤경이 극에 달한다면 쿠웨이트에서의 철수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을 공격,아랍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길을 택할 최악의 경우도 가상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중동지역의 평화에 「암적인 존재」인 후세인과 이라크의 군사력을 이번 기회에 무력화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는 있지만 향후 사태진전에 따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철수를 얻어낸다면 후세인 제거는 다음기회로 미루는 차선책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지금 당장 외교적 해결노력이 결실을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미국이나 이라크가 아직은 힘겨루기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이 다같이 힘의 한계가 무엇이고 이번사태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어느정도는 할 수 있는 시점에 왔다는게 최근 부쩍 는 외교행보의 배경이라할 수 있다.
  • 우리안 초대 주한 루마니아대사/본지 특별인터뷰

    ◎“한­루마니아 「경협의 다리」 튼튼히 놓겠다”/전자ㆍ자동차부문 한국기업 진출바라/남북대화 지원… 통일촉진에 보탬될 터/15년간 평양근무… 주민,불만 많지만 드러내지 않아 이시도르 우리안 초대 주한 루마니아 대사. 그가 서울에 부임한지도 한달이 넘었다.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봇물처럼 터진 동구권외교의 개가로 서울에는 헝가리ㆍ폴란드ㆍ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 등 6개국의 상주대사관이 잇따라 개설되고 특명 전권대사가 부임했지만 우리안 대사가 유독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능력 때문이다. 에트레 산도르 헝가리 대사와 함께 난형난제의 한국어 실력을 보이고있는 우리안 대사는 그만큼 한국인에게 친근감이 가는 인물이다. 서울시내 중심부인 뉴서울호텔에 임시대사관 사무실을 설치한 우리안 대사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한달간의 서울생활,남북한 주민의 생활상,그리고 한­루마니아관계 등에 관해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서울에는 언제 부임하셨습니까. 『7월17일 서울에 도착한뒤 19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습니다. 대사관업무도 이날부터 본격 개시 했습니다. 물론 한국과 루마니아는 지난 3월30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구요. 어쨌든 초대 상주대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서울생활도 이제 한달이 넘은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외교관으로서 여러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높은 수준의 경제적ㆍ사회적 발전을 달성한 나라는 보지 못했습니다. 루마니아는 이러한 한국의 발전 특히 경제ㆍ과학기술분야에서 이룩한 대단한 성과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점이 루마니아가 한국과의 수교를 서두른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당시에도 북한과는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울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한국음식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동안 지내시면서 음식으로 인해 곤란한 점은 없었는지요. 『북한ㆍ중국ㆍ인도ㆍ베트남 등 아시아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커다란 불편은 없습니다. 한국음식도 지나치게 짜거나 맵지만 않다면 잘 먹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양식당보다는 한식당에 자주 가는 편이고 특히 갈비와 비빔밥은 제 집사람과 함께 즐겨 찾는 식단입니다』 ­서울의 밤거리는 익숙해지셨는지요. 『낮과 밤이 확연히 구별되는 곳이 서울이더군요. (웃음) 조그만 선술집에도 가보고 포장마차에도 가봤습니다. 특히 지난번 호텔앞 포장마차에서 「꼬치」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신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사는 웃는 얼굴로 기자에게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어를 잘 하시는데 평양에선 오랫동안 사셨는지요. 『55년부터 60년까지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했고 80년에서 83년까지 정무참사관을 지낸 것을 비롯,모두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에서 15년 가까이 지낸 셈이죠. 조선어(한국어가 아닌)를 배운 것도 이때구요. 그렇지만 83년 평양을 떠난 이후 한번도 조선어를 써보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평양에 있을때는 KBS라디오를 통해 한국어방송도 많이 들었습니다』 ­남북한 주민들의 생활상 차이점도 피부로 잘 느끼실 것 같습니다. 『남북간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북한으로서도 적지않은 성과를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주민들의 불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불만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역시 한국어를 잘 하는 에트레 산도르 헝가리 대사와는 자주 만나는가요. 『서울에 부임한 이후 공식석상에서 한번 만났습니다. 에트레 대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한국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한국어만을 사용합니다. 오히려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어 조선어가 달라 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더니 에트레 대사는 「몇개월만 지나면 괜찮다」고 충고해 주더군요』 ­루마니아는 지난해 12월혁명 이후 어떤 상황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지난 5월20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대통령과 국회상ㆍ하원의원을 선출했고 이에 따라 일리에스쿠정권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앞으로 18개월내에 신헌법을 제정하는등 민주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 짐을 떠맡고 있습니다. 현정부는 또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기본골격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1백% 국가소유 형태의 경제를 30∼50% 정도 사유재산화하는 것을 이 기간동안 달성할 최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루마니아에 진출할 수 있는 유망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TV 및 비디오 등의 전자제품과 승용차,그리고 호텔경영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분야는 루마니아정부에서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아이기도 하구요. 특히 루마니아는 이들 분야의 한국업체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협정을 이른 시일내에 체결할 계획입니다』 ­한­루마니아 관계발전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시는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긴밀한 유대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며 이에 따라 정치적인 관계도 보다 결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양국간에 정부대표단의 상호방문과 민간교류가 이어져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리라 봅니다』 ­한­루마니아 관계개선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남북간의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며 루마니아는앞으로 어느 일방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 어느쪽에서든 통일과 관련된 건설적인 제안이 나오면 이를 적극 지지할 것입니다』 서울지리를 익히기 위해 가끔씩 숙소에서 이태원까지 걸어다닌다는 우리안 대사는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도중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메모,상당히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차우셰스쿠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차곡차곡 민주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루마니아를 잘 소개해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 “어민 권익향상에 온힘 쏟겠다”/새 수협회장 이방호씨(인터뷰)

    ◎“수산물시장 개방 대비,일선의견 반영토록 노력” 지난 4월 첫 민선회장선거에서 당선된 홍종문씨가 선거부정혐의로 구속돼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21일 실시된 수협중앙회장 보궐선거에서 당선,오는 94년 4월까지 3년8개월동안 15만여 조합원의 살림을 맡게된 이방호회장은 『조합장으로 어민의 고충을 피부로 느껴왔으므로 이들의 권익을 위해 온힘을 쏟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이회장은 이날 상오 10시부터 시작된 투표결과가 자신에게 사실상 압승으로 나타난 직후인 하오1시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문을 연뒤 『6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유일한 일선조합장으로서 프리미엄이 없지 않았고 40대로서의 추진력이 다른 조합장들의 지지를 얻는데 큰 몫을 한 것 같다』고 당선원인을 분석했다. ­앞으로 수협 운영은. ▲현재 수협은 무엇보다도 대화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앞으로 6개월내에 그 운영방향을 제시하고 1년이내에 수협의 위상정립을 위한 방안을 가시적으로 내놓겠다. ­수협중앙회장은 농ㆍ축협중앙회장에 비해 약하다고 하는데. ▲일선조합장만 해왔기 때문에 거대한 중앙회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데 미흡하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우려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므로 어민의 뜻을 받들어 조합장들과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겠다. ­수산물 시장개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대처하겠다. ­어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민출신으로서 어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 ­앞으로 현 임원진을 개편할 계획이 있는가. ▲이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이며 중요한 문제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바가 없어 추후 입장을 표명하겠다. ­노량진수산시장 인수투쟁을 계속 벌일 계획인가. ▲이 문제는 선거공약에서도 뺐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인수가 가능한지와 반드시 인수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검토하겠다.
  • 내리막 주가의 현황과 문제점(“탈진증시”… 희망은 없는가:상)

    ◎“깨진독 물붓기” 7개월새 시가총액 28조 감소/17개월새 지수 3백90포인트나 폭락/주가 평균 2만7천원서 50% 떨어져/증권사 영업수지 악화… 「대리투자 분쟁」 사회문제로 증권시장이 자생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조금만 삐끗해도 그대로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증권시장이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하는데 일조를 한 6백만명의 투자자들은 1년여전부터 떨어지기만 하는 종합주가지수에 불길함을 느껴왔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이 한가로운 소리에 지나지 않을 만큼 최근의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종합주가지수의 6백선 붕괴가 심각하게 염려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종합지수 6백은 6공화국이 출범하기 1개월전인 지난 88년 1월말에 기록된 「옛시대」의 유물이건만 증시침체 17개월의 생생한 산물로서 투자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됐다. 20일 종가에서 지수 6백20대가 지켜지긴 했으나 이날 역시 주가는 새 바닥을 팠으며 증시사상 최고치(89년 4월1일)와 대비하면 1년5개월이 못 되는 사이에 무려 3백90포인트가 빠져나가고 말았다. 이 기간의 지수하락률은 38.6%,올 연초와 대비한 하락률은 31.7%이다. 이에 따라 97조원이었던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7개월만에 28조원이나 줄어들었다. 현재의 시가총액 69조원 규모는 활황 최고점이었던 지난해 3월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당시에는 이 액수가 25억주의 시가를 합한 것이었던데 비해 지금은 47억주에 가까운 주식들의 총계인 것이다. 그때는 한장 한장의 주식 시세가 평균 2만7천원을 호가했으나 현재는 절반정도인 1만4천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간 물가가 못해도 10% 이상 오른 것과는 반대로 주식의 가중주가 평균은 3년전인 87년 8월 수준으로 뒷걸음친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투자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엄청나게 불어나 6공화국 보통사람들의 가장 흔한 피해라고 지목될 수 있다. 3년전만 해도 상장사 총주주수는 3백10만명이었으나 현재는 1천9백만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투자자를 기준하면 현재 6백만명으로 집계돼 주식이 6공화국 보통사람들의 가장 흔한 투자방식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현 시세로 평가해한푼이라도 투자원금보다 이익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다. 직접적인 주식투자뿐만 아니라 2백만명이 가입한 간접투자 방식인 투신사의 주식형 수익증권에서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이 과반수에 달해 주식투자 피해는 범국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중동건설붐 퇴조로 인한 79년의 증권파동 때만 해도 상장사 총주주수가 87만명에 그쳐 주가붕락의 국민경제적 영향은 지금보다는 훨씬 작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식투자 손실에 대해 침체 1년까지는 투자자들이 울분을 터뜨리는데 그쳤다. 그러나 지난 4월부터 주가하락이 심화되며 증권시장은 정치ㆍ경제ㆍ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재산ㆍ신분 및 사회생활에서의 갈등과 피해사례가 빈발,알게 모르게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증권사 객장을 중심으로한 집단적이고 감정적인 시위대신 투자고객으로서 주문을 맡았던 증권사 직원들에게 투자손실의 책임을 묻는 「대리투자」 분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임의ㆍ일임매매 여부를 둘러싼 이같은 고객과 직원간의 분쟁은 증권투자자 보호센터 상담의 주종을 이뤄 올 들어서 전체 건수의 94%인 6백60건에 달했으며 심지어는 법정으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투신사들이 주식형 수익증권에 대한 가입자들의 환매사태로 자금난이가중되는 것과 함께 증권사들은 주식거래 격감에 따른 영업수지 악화로 적자를 기록,인원감축까지 고려하게 됐다. 주가하락으로 신규 투자자가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 투자자들도 기회만 있으면 시장을 빠져나가고 있고 또 적극적인 거래를 회피,수익성 이전에 주식의 환금성이 위협받고 있다. 금년의 하루평균 거래량은 9백50만주(평일장기준)로 침체시발의 지난해보다 2백30만주가 줄었고 총상장주식수가 올 들어서만 11% 늘어난 점을 감안한 거래회전율은 지난해의 58%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사의 영업수지가 크게 악화돼 89회계연도에 4천4백억원의 세후 당기순이익을 올렸던 것과는 달리 90회계연도 4개월(4∼7월)동안 실제경영 수지가 3백억원의 적자로 역전되고 말았다. 호황을 구가하던 증권사의고전도 크지만 증시를 통해 값싸고 질좋은 직접금융을 조달했던 상장 및 비상장의 기업들이 겪어야 하는 자금조달 애로와 고충은 한층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업 전체자금의 67%인 21조원이 증시를 통해 조달되었다. 이 가운데 주식발행을 통해 조달한 금액이 14조원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침체 대응책으로 신규 주식공급을 강력히 억제함에 따라 직접금융조달 실적은 격감했다. 이달 17일까지의 금년 실적은 7조9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0%에 불과하다. 그것도 조달비용이 주식발행보다 2.7배나 비싼 회사채발행이 주류를 이뤄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증시의 직접금융조달 및 기업공개의 정통적 방식인 주식발행에 의한 직접금융조달은 지난해 실적의 22% 수준인 2조원에 머물고 있다. 특히 주식발행중에서도 유상증자는 1조7천억원으로 신청분의 3분의 2를 소화했으나 기업공개는 대기적체물량이 6천억원이나 되는 가운데 고작 2천8백억원이 실현되는 데 그쳤다. 이 실적은 지난해 동기간의 15%에 지나지 않고 더구나 8,9월에는공개 자체를 중지하게 됐다. 회사채 발행도 상반기 후반부터 조금씩 어려워지는 양상을 띠어 이대로 가면 올 전체 조달실적이 88년의 12조원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되는 것이다.
  • 험난한 앞길 세종대정상화/새이사진ㆍ수습대책위 발족 계기로 본 전망

    ◎학생측의 “이사진 거부”움직임이 큰 변수/“더 이상 「관용」엔 한계”문교당국선 강경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박찬현전문교부장관(73)을 이사장으로 새 이사진을 구성하고 역시 문교부장관 출신의 서명원씨(80)를 위원장으로 「학원정상화수습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말썽도 많던 세종대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직 학생들의 출석률은 20%를 밑돌고 일부 학생들은 벌써부터 새 재단진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을 보이고는 있으나 우선 사태를 장악할 중립적인 행정기구와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기구가 발족된 것이다. 이번 조치로 미루어 문교부로서는 유급대상학생들의 처리여하에 따라 아직도 상당한 사태의 변화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고는 하나 내심 2학기부터라도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문교부로서는 그동안 3차례에 걸친 경고가 학생들에게 「엄포용」으로만 여겨져 별효과를 보지 못한 만큼 더이상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는 문교정책의 신뢰성마저 상실하고 말 것이며 학생들에게 끌려다니는 학교측에 사태수습을 맡길수도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개편을 단행하게 한 것으로 볼수 있다. 문교부관계자는 『만약 수업거부학생들과 학교측이 타협에 성공해 수업이 정상화되더라도 이러한 선례는 앞으로 수업거부가 학생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될 가능성이 크고 이번 세종대사태가 세종대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닌 「전대협」차원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때 다른 학교에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수업거부학생들과의 타협에 의한 정상화보다는 교육적 차원에서 선량한 다수의 학생들을 살리는,그리고 앞으로 세종대를 악습분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이번 조치의 배경이라는 것이 문교부측 주장이다. 문교부는 지난10일 기존재단측이 이사장으로 선임했던 유승필유유산업사장(44) 등 신임이사 4명의 승인을 『세종대 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주영하(78)ㆍ최옥자씨(71) 등 설립자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 물론 수업거부학생들의표적이 되어온 기존재단 이사진을 완전히 퇴진시켜 목표물을 없애버린다는 측면도 고려됐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공유해야할 수업거부학생들과 재단에 한꺼번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도 볼수있다. 문교부는 이와함께 새이사진이 주ㆍ최씨 등 설립자들과 관계가 없다치더라도 연고권이 남아있어 7명의 선임이사중 임기가 2년6개월인 이사 3명이 물러나면 주씨가 아니더라도 다시 그 측근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에 대비해 재단정관에 학사간여를 못하도록 명문화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은 벌써부터 관선이사의 성격과 함께 이사2명의 재단과의 관계를 트집잡아 신임이사진을 거부하는 투쟁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일단 기존재단의 퇴진을 자신들의 승리로 보고 이 기회에 아예 재단의 완전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수업불참학생들을 일단 유급처리한 뒤 대책위 등을 통해 2학기에 학교를 정상화시키고 수업불참학생을 선별처리해 주동학생을 완전 격리시킨다는 수순을 꾀하고 있는 문교부의 구도도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 같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 「소매치기 사살」을 보는 시각/황진선 사회부기자(현장)

    소매치기범 사살사건과 관련,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경찰관의 총기사용이 어느범위까지 정당화되고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여 어느때보다도 더욱 관심이 높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고려해야할 측면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소매치기범이기는 하지만 숨진 김성우씨의 인권ㆍ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총기사용방법과 실제상황ㆍ경찰의 고충과 사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감정이다. 명백한 법규위반이 있었다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경찰관계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뒤 7일 하루에만도 양평파출소와 영등포경찰서 등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잘했다」 「총을 쏜 경찰관의 신상에 어떤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등의 격려전화가 2백50여통이 넘게 걸려왔다고 전한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현재의 치안상황에 대해불안을 느끼고 경찰이 좀더 강력하게 대응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범인의 인권도 무시할수 없지만 경찰의 사기 또한 중요하다. 물론 앞으로 경찰관들은 사격훈련을 생활화해 총기를 사용할때 범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일반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진훈경장이 총기사용상의 미숙한 점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형사처벌까지 받는다면 경찰은 앞으로 각종 흉악범의 검거를 회피하게 되고 결국 민생치안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지난3월 검찰이 흉악범은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검거하도록 지시를 내렸던 점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의 결정이 주목된다.
  • 고르비,리무진 세우고 시민들과 대화/미ㆍ소 정상회담 이모저모

    ◎“개혁 「출산」엔 최소 9개월 필요”조크도/소대사관 오찬땐 현역 배우 대거 참여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저녁 러시아워에 백악관에서 속소인 소련대사관으로 돌아오던중 갑자기 리무진을 세우고 차에서 내려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이날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사관으로 돌아오던 중 인파로 북적대는 백악관 앞의 펜실베이니아 가에서 장갑 리무진을 세우고 보도에 내려서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길을 건너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차로 돌아왔다. 예정에 없는 그의 이같은 행동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것으로 그는 지난 87년 워싱턴 방문 때도,최근 오타와 방문 때도 아무 때나 길에서 차를 내려 경호원들을 당혹케 한바 있다. ○…미국과 소련의 기업가와 정치인 등 약 1백30명의 양국 손님들이 초대된 백악관 환영만찬의 주메뉴는 미국식 메뉴인 스테이크와 바닷가재 요리. 이날 식탁에는 메인주에서 공수된 바닷가재와 통옥수수,로스트 비프와 레몬과 올리브유 드레싱을 친 아스파라거스 스프링 샐러드,그리고 3가지 종류의 미국산 포도주가 올려졌다. ○잭슨ㆍ키신저도 참석 ○…고르바초프 부처가 약 70명의 미국 지식인과 연예계 인사들을 위해 베푼 오찬은 레이건 전대통령 퇴임 이래 최대 규모의 스타모임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논평. 소련의 한 관리는 이날 초대손님의 명단을 작성하는데는 라이사의 역할이 컸다고 은밀히 시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소련을 임신한 여성에 비유,『경제개혁을 낳으려면 최소한 아홉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내를 강조.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과 연예인 등을 위해 이들 부부가 주최한 오찬에는 배우 제인 폰다,그레고리 펙,작가 레이 브래드버리,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 등이 참석했고 현직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제시 잭슨이 초대됐다. 이밖에 로버트 레드퍼드,버트 랭커스터,프랭크 시내트라,잭 레몬,디지 질레스피,밴 클라이번,국립 미술관장 카터 브라운,퇴임하는 데릭 보크 하버드대 총장 등도 하객으로 참석. ○…경호관계자들은 고르바초프가87년 방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워싱턴 이외에 미니애폴리스와 캘리포니아 등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다. 비밀 경호팀의 앨런 크레이머대변인은 자신은 고르바초프가 예정에 없는 곳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고 리무진에서 나와 군중에게 인사를 한다해도 이제는 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라이사 고르바초프와 바바라 부시 등 양국 퍼스트레이디들은 두정상이 회담을 갖는 동안 별도로 마련된 객실에서 차를 마시며 웨슬리여대 졸업참가등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 환영식과 외교사절 접견 등 딱딱한 공식행사가 끝나자 부시여사는 손님들을 백악관으로 안내 링컨의 침실을 비롯해 집안을 보여주었다. ○…스탠퍼드대 학생들은 지난달 31일 자신들이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을 직접 볼 기회를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당첨자명단이 실린 대학신문쟁탈전을 벌이는등 아우성. 고르바초프는 4일 스탠퍼드대를 방문,연설할 예정으로 있는데 강당수용인원이 1천7백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대학당국은 2만3천명의 학생ㆍ교직원을 대상으로 컴퓨터로 추첨,14대1의 경쟁률을 보였던 것. ○…미소 양국 정상의 부인들 자신은 예의를 갖추며 서로를 치켜세우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과 사교계 등에서는 두 퍼스트 레이디를 놓고 한창 비교분석을 행하고 있는데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리처드 블랙웰도 이들의 의상을 촌평해 눈길. 「세계에서 가장 옷을 못입는 여성」과 「세계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를 지목해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미안한 말이지만 라이사가 바바라를 눌렀다』면서 라이사에게 10점 만점중 9점을,바바라에게는 7점을 각각 매겼다. ○…라이사는 지난 31일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러시아의 고문서 전시회를 열고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는데 이곳에 모인 4백명의 참석자들 대부분은 전시물 자체보다도 라이사를 보러 온 이들로 그의 「지성미」에 찬사를 거듭 보냈다. ○라이사 동정에 관심 ○…소련 신문과 TV 등 언론매체들은 서방인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날렵하게 차려입은 그의 부인 라이사가 미국의 중심부를 누비는 모습을 연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특히 TV방송의 경우 지난 31일 백악관에서 있은 환영식의 연설 광경을 특별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을 비롯,정규 뉴스의 전부를 이번 미국방문에 할애하고 있다.
  • 북서 추방된 타스통신 기자/김원홍 사회부차장(오늘의 눈)

    김일성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 북한에서 추방된 소련의 타스통신 평양지국장 알렉산드로 세빈 기자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담과 정치ㆍ경제ㆍ체육회담을 7년이나 취재했던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소련기자였다. 작은 키에 뚱뚱한 체격으로 회담장 주변을 돌며 두꺼운 취재수첩을 들고 열심히 메모를 하던 세빈기자는 한국이나 미국ㆍ일본기자들과 곧잘 어울려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볼펜도 바꾸어 쓰는 등 명랑하고 붙임성있는 성품으로 판문점 출입기자들과도 친숙한 사이였다. 군정위 본회담이 열릴 때마다 그는 공산측의 유일한 백인기자로 유엔군측 경비구역까지 내려와 악수도 하고 명함도 주고받으며 유창한 우리말과 영어로 공산측의 사정을 설명하고 한국측의 현황을 취재하곤 했다. 서울올림픽 기간동안 서울에도 와 한달간 생활을 하며 영동과 남대문ㆍ이태원 등지에서 술을 마시고 쇼핑을 하던 이야기를 즐거운 표정으로 회상하곤 했다. 셰빈기자는 한국정부의 대공산권 무역제한조치,YS의 방소,아에로플로트 서울취항,소련상품전시회 등에 많은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울을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평양에서의 생활중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문화적인 시설이 빈약해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곤 했다. 발레나 오페라ㆍ미술박물관 등이 없어 여유를 즐기기가 곤란하며 소련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가 없어 대사관 직원중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개인교수로 가르치고 있어 어른이고 어린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셰빈기자가 이번에 써서 문제가 됐던 기사도 평양에 주재하는 특파원생활의 어려움을 묘사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의 정직해 보이던 큰 눈이 연상되었다. 28일 판문점 미군유해송환장에 나온 셰빈기자의 후임자 울라지미로 비치는 셰빈이 지난주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타스본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름한 회색양복에 좁은 넥타이 차림의 셰빈기자는 날씨가 추우면 폴리에스터 파카와 곰털모자를 쓴 방한복 차림으로 나오기도 했다. 두터운 손으로 메모를 하면서 한 눈을 찡긋감고 윙크하던 그의 모습을더 볼 수 없게 돼 섭섭했다. 한소국교가 정상화해 소련특파원이 서울에 올때 그의 낙천적이며 성실하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소외계층 실태조사/청와대 비서실

    대통령비서실은 25일 봉천동등 서울시내의 9개 저소득층 밀집지역과 구로공단지역 소외계층의 생활실태를 파악했다. 청와대수석비서관을 비롯한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26일까지 이들 지역의 영세가정과 노인정등을 방문,주민들을 위로하고 이들의 고충과 정부에 대한 요망사항을 파악,정책입안시 참고할 예정이다.
  • “현재 분양가론 타산 안맞는다”/아파트건설 거부 움직임/건설업체

    ◎서울ㆍ신도시등 주택공급 차질 우려 주택건설업체들이 현재의 원가연동제에 의한 분양가격으로는 손해를 본다며 서울지역과 신도시아파트건설을 기피하고 있어 아파트공급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상당수의 아파트건설현장에서 시멘트ㆍ철근등 건축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하거나 지연해 공사를 중단하거나 지연하는 바람에 입주시기도 크게 늦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일 주택건설업계에 따르면 주택건설업체들은 최근모임을 갖고 현재의 분양가격으로는 상당한 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지을수 없는 실정이라며 분양가격을 조속히 현실화 해 줄것을 건설부 등 관계요로에 촉구했다. 특히 이달중 평촌ㆍ산본 신도시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이던 일부건설업체들은 분양가가 현실화 되지 않을 경우 분양을 보이콧한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주택건설업체들은 건설부가 아파트공급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땅값과 건축비의 원가를 반영하는 원가연동제를 도입했으니 땅값산정에서 매입원가와는 관계없이 2인이상의 감정평가사가 감정한 가격의 평균치만을 인정해주고 있어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올들어 인건비와 건축비가 크게 올랐는데도 평형과 층수에 따라 건축비를 평당 소형저층 98만원,중대형고층 1백13만원으로 묶어놓고 있어 현재의 분양가격으로는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주택건설업체들은 땅값과 건축비산정의 비현실성을 내세워 ㈜한양이 지난 3월 쌍문동 아파트를 분양한 것을 제외하고는 서울지역 아파트분양을 미루고 있다. 또 분양가가 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이달중 분양계획을 세워놓았다가 전면 취소한 업체들도 있다. 이같은 업계의 주장에 대해 건설부측은 땅값 산정의 문제점과 건축자재와 인건비앙등에 따른 업계의 고충은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분양가격을 조정할 경우 시기적으로 아파트값과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건축자재구득난은 전국적으로 심각한 상태로 곳곳에서 주택건설을 포함한 모든 건설공사에 큰 타격을 주고있다. 현대산업개발의 한 관계자는 전국 1백여곳의아파트건설현장 가운데 90여곳에서 자재가 없어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 새 정신운동은 「신사고」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데 미국은 9개 서류제출에 27일이 걸리고,일본은 27개 서류에 3백일,한국은 35개 서류에 1천일이 걸린다는 비교가 있다. 한 나라의 관료제가 얼마나 효율적인가,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대국민 봉사업무를 수행하는가의 비교는 여러 면에서 할 수 있다. 기준을 어디다 잡느냐에 따라서 비교의 내용도 갖가지로 달라진다. ○2중압박 고충은 이해 회사설립이라는 기준도 그 중의 한 척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기준으로 한·미·일 세나라를 비교할때 그 차이는 대단하다.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데 1천일이 걸린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설혹 그렇다 해도 이 세나라의 관료제 기능수행의 비교는 좋은 시사가 된다.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데 미국은 9개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데 한국은 35개,일본은 27개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면 적어도 관의 민에 대한 통제가 한국은 미국에 비해 거의 4배나 많고 일본에 비해서도 1.3배나 많다는 것이 된다. 그 설립기간 역시 미국이 27일 걸리는데 우리가 1천일,일본이 3백일이라면 관료제기능의 효율성면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37분의 1밖에 안되고,일본에 비해서도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비교가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 관료는 대국민 통제는 많이 하는데 업무수행은 미국 일본에 비해선 아주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따라서 국민이 하는 일에는 큰일 작은일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정작 해주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태만하다는,혹은 무사안일하다는,혹은 타성에 젖어있다는 지탄에서 또한 벗어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와는 아예 비교조차 안되는 미일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우리 관료가 통제성이 많다느니 비효율적이라는 등의 비교 자체가 전혀 가당치도 않는 조치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60년대와 70년대는 물론 심지어 80년대까지도 관이주도해서 1인당 GNP 5천달러선까지 우리 경제를 올려 놓았다면 그 관료야말로 효율적 관료라는 진단이 나오고도 남음이 있다고 반론할 것이다. 물론 그 면에서 우리나라 관료는 신생국 어느 나라 관료보다 효율적이었고 혁신적이었으며 발전행정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더구나 먼저 발전한 나라들의 관료에 비하면 비교조차되지 않는 봉급을 받으면서 땀은 몇배로 더 흘려야 했던 것은 차치해 두고라도 윗사람들의 재촉과 국민들의 독촉 사이에서 감내해야 했던 2중압박은 세계 어느 나라 관료에 비해서도 우리 관료가 특히 더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지난날의 일이다. 관료­공직자에게 있어 현재는 있어도 과거는 없다. 공직자에겐 현재의 지탄만 있을 뿐 과거의 성과는 거론되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을 회상하는 관료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관료다. 그런 관료는 관료로서 자격상실의 관료가 된다. 「우리 부서의 업적,혹은 우리 관내의 업적 운운」하는 관료는 정년을 앞둔 관료이거나 아니면 해임직전의 관료다. ○지난시대 사고 버려야 이유는 간단하다. 공직자는 언제나 딜레마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 딜레마는 사적인 딜레마가 아니라 공적인 딜레마이다. 개인의 딜레마가 아니라 국가사회의 딜레마다. 한 사회가 발전하느냐 침체하느냐의 딜레마 일뿐 아니라 갈등 상태에 들어가느냐 화합하는상태에 들어가느냐의 딜레마다. 크게는 국가사회의 존속유지에 관계된 딜레마이고 작더라해도 많은 사람들의 이해에 직결된 딜레마이다. 하나의 딜레마를 해결하면 다음 딜레마에 또 부닥친다. 마치 해변을 때리는 파도처럼 공직자에게 딜레마는 언제나 밀려온다. 과거의 성과를 들먹일 여유가 없고 봉급의 과다,일부담의 경중을 따질 여가가 없다. 그것을 논할 때 벌써 공직자는 무사안일에 빠지고 비리가 쌓인다. 공직자 새 정신운동을 전개한다고 한다. 부정부패를 처벌하고 기강을 쇄신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60년대 이래 지난 30년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다. 그 어느 해고 부르짖지 않은 때가 없다. 6공들어 공직자 기강이 말할 수 없이 흐트러져 있다 해도 이 흐트러짐은 서릿발같은 유신때도,5공때도,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똑같이 나온 소리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조때도 그러했고,미상불 고려때도 신라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기나긴 세월동안 그토록 부르짖고 그토록 단속을 하는데도 그 공직자 기강은 공직자들의 생활에서도,그들의 행동에서도 멀어져 있었을까. 그 기강이 왜 유독 공직자에게 생활화가 되지 않고 행동화가 되지 않았을까. 왜 공직자에겐 그런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 역시 명백하다. 신분보장도가 낮고 생활보장도가 낮기 때문이다. 신분보장도는 요즘 와서 결코 높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렇다고 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생활보장도다. 일부의 공직자는 인사청탁도 받고 이권도 차려서 유족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절대다수의 공직자는 그 봉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게 돼 있다. 도시가계의 월평균 소득이 이미 80만원선을 넘어서고 있다. 공직자 중에서 그 선 가까이서 봉급을 받는 수가 몇%가 되느냐. 도시가계의 월평균 지출도 70만원 선을 넘어선지도 이미 오래다. 공직자 중에서 몇%가 그 지출선 가까이에서 봉급을 받고 있느냐. 문제는 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의심할 것이다. 작년 한해 더 거둬들인 세금만 해도 2조원이 넘는다고 했다. 공직자 새 정신운동과 더 거둬들인 세금의 용도는 무관하기만 할 것인가. ○소명의식을 잊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크게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공직자의 소명의식이다. 과거에는 적어도 명분상으로라도 혹은 가치상으로라도 소명의식이 생활의식에 앞서 있었다. 설혹 공론이었다 해도 집단의식이 개인의식을 압도했고,국가관·애국심을 제창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누가 공직자가 됐든,내심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외연으로도 그렇게 부르짖지도 않는다. 생활에서 벗어난 소명의식은 위선이고,개인에게 봉사하지 못하는 집단은 존속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제발 이번의 공직자 새 정신운동만은 가버린 시대의 행위와 사고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운동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의경복무 2개월 단축키로/치안본부/전경ㆍ군인과 같게 30개월로

    치안본부는 23일 최근 전ㆍ의경들의 근무지 집단이탈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점을 중시,근무실태를 정밀조사해 전ㆍ의경들의 고충을 풀어주기로 했다. 경찰은 이날 전ㆍ의경들이 ▲내무반의 잦은 기합 ▲과중한 훈련 ▲부실한 처우 및 복지시설 등에 불만을 느껴 이같은 사건을 일으킨것으로 진단하고 근무실태조사가 끝나는대로 「전ㆍ의경근무 기강확립 및 개선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경찰은 특히 최근 의경 지원자가 미달사태를 빚는 것과 관련,지난 1월부터 35개월에서 32개월로 단축된 의경복무기간을 전경 및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30개월로 더 줄이기로 하고 국방부와 협의하고 있다. 이는 의경의 복무기간이 전경보다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만이 크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또 의경의 모집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징병을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가 발부됐을 때부터 의경지원을 못하게 되어 있는 규정을 고쳐 신체검사를 마치기 전에도 의경지원이 가능하도록 완화시켰다.
  • “당과 협의없이 실명제 변경못한다”/민자 첫당무회의 무슨말 오갔나

    ◎투자의욕 부축ㆍ수출증진위해 불가피/일부 지구당원 합류거부 대응책 세워라 민자당은 「1ㆍ22」 3당합당이후 2개월만인 21일 첫 당무회의를 열고 경제난타개방안등 각종 현안에 대한 당내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ㆍ토지공개념 등 경제개혁조치에 대한 최근의 유보움직임에 대해 당의 입장을 결정짓지 못하고 격론을 벌였다. 1시간30분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10명의 당무위원들이 발언에 나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따른 당의 대응방안과 3당합당이후 일부 지역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조직갈등,대구서갑구 보궐선거 지원대책등 각종 현안에 대해 당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이날 회의는 회의를 주재한 김종필최고위원의 인사말과 사무총장의 당무보고,정책의장의 정책보고,원내총무의 원내대책보고,그리고 토론순으로 진행. 김최고위원은 구 야당 출신의 당무위원들을 의식,『이제 여러분은 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고 말문을 열고 『집권여당으로서 국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책임도 있지만 국태민안의여러 시책을 발굴,행정부가 소신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박준병사무총장은 당무보고를 통해 『앞으로 당무회의를 주1회,최고위원이 참석하는 당직자회의를 주4회정도 열겠다』고 밝히고 『당은 민생안정에 역점을 두고 경제활성화ㆍ민생치안ㆍ법질서 확립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보고. ○…자유토론에서 세번째 질의에 나선 김재광위원은 서울 도봉갑,경기ㆍ파주 고양,충남 천안,경북 경산ㆍ청도지구당 등 새 조직책 선정을 둘러싸고 조직 내분을 겪고 있는 지구당을 거론하면서 『구 민정당조직책이 민정동우회나 지역문제연구소 형태로 별도의 압력 단체를 만들어 조직합류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에대한 대응책을 촉구. 김덕룡ㆍ정상구ㆍ김동규위원 등 민주계 위원들은 이날 차례로 발언에 나서 『3당합당의 신선한 충격이 최근 퇴색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다 금융실명제ㆍ토지공개념 등 경제개혁조치들이 국민에 대한 설득작업이나 토론과정도 거치지 않고 후퇴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금융실명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당과 사전협의없이 변경되어서는 안된다』고 정부측을 성토. 이에대해 김용환정책위의장은 『현재의 경제난국은 노사분규와 고임금에 따른 경쟁력 약화와 수출부진ㆍ정치불안에서 파생된 기업의 투자의욕 위축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고 『정부로서는 투자의욕및 수출증진을 위해 모든 힘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는 원칙론을 개진. ○…황명수위원은 이날 대구서갑구 보궐선거와 관련,『정호용씨가 광주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면 최소한 1년정도 근신해야지 몇달만에 다시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4천만 국민에 대한 도전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성토한 뒤 『우리당도 40여명의 국회의원을 내려보내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다』고 당 지부도에도 화살. 대구 보궐선거의 현재 대책책임을 맡고 있는 최운지위원은 『정씨가 과거 조직책임자로 있다가 탈당하면서 조직원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에 현재 우리당은 백지 상태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고충을 토로하면서 『국회의원 40명이 동원됐다지만 20일부터 겨우 당원교육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 당무위원들의 이같은 의견 개진에 대해 김종필최고위원은 『아직 3당통합의 시일이 일천해 동질화에 미흡한 감은 있으나 각 지구당의 조직책이 책임지고 조직을 융화시켜 조속히 당의 정연한 모습을 갖추도록 하라』고 강조하고 『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을 위해 당무위원들은 안건으로 제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사무처에 제시하라』고 당부.
  • 선원격감… 해운업계 “비상”/「고임」잇점 잃어 2년새 7천명 이직

    ◎2∼3일씩 출항 지연 일쑤/학ㆍ지연 동원,갑판원등 “모셔오기”경쟁 선원이 모자란다. 교역증대로 수출입물동량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가장 큰 수송수단인 상선에 승선할 선원은 갈수록 줄고 있는 것이다. 14일 해운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80년부터 연평균 5.7%의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 87년 11만5천3백26명에 이르렀던 우리나라 취업선원이 88년부터 11만명선으로 급격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해외취업선원은 87년 4만7천7백47명에서 89년엔 4만5천6백33명으로 2년사이 2천1백14명이나 줄었으며 이 가운데 특히 어선을 뺀 상선선원은 87년 3만3천9백24명,88년 3만9백43명,89년엔 2만6천3백명으로 4분의1에 가까운 7천6백24명이나 격감했다. 지난 81년 2만명을 넘었던 우리국적의 내ㆍ외항상선 선원도 85년부터 1만5천명선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선원이 모자라게되자 각 해운선사들은 부족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연 인연 등을 총동원하여 향응을 베풀거나 인정에 호소하는 등 선원들을 찾아나서고 있고 입출항 상선들이 선원을 구하지 못해 2∼3일씩 출항을 미루기가 예사인 실정이다. 부산에 있는 우양상선선원과장 김재호씨(37)는 『선원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배가 운항을 못할 정도』라면서 『법정인원을 모두 승선시키려다보니 선장이나 1항사급 고급선원을 하위직 해기사 등 일반선원으로 위장승선시키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해운산업 연구원은 이처럼 선원이 부족하게 된 까닭에 대해 『87년부터 우리사회에 급격히 번지기 시작한 노사분규의 여파로 각종 근로자들의 임금이 크게 오르고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선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선원취업희망자가 크게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특히 선원급료는 상후하박이 두드러져 3급해기사 이하 일반선원인 조타수 등 수직급과 갑판원 등 원직급선원의 이직 및 부족현상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같은 일반선원의 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외취업선원을 점진적으로 줄여 국적선에 승선시키고 고급선원양성 위주의 선원양성제도를 복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일반선원 양성체제로 전환해야 하며 4급해기사의 3급 승급기회를 확대하는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 그레그 미 대사 농민과 대화/“개방따른 농가 고충 전달 하겠다”

    【청송연합】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대사는 21일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농촌의 심각성을 충분히 파악,이를 숨김없이 본국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그레그대사는 21일 상오11시40분부터 2시간여동안 청송군 현서면 불로마을 박명규씨(38ㆍ농민회원)집에서 군내 농민지도자 및 이 마을 농민 10여명과 가진대화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곳 농민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농산물수입개방 문제에 대해 지난 광주방문때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극렬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 소ㆍ파 등 순회세미나… 북방정책 알려/공보처 업무보고 (요지)

    ◇국정 홍보의 기획ㆍ총괄 조정기능 강화=▲기획 홍보ㆍ사전홍보체제를 구축하고 국민적 충격과 오해가 예상되는 사항은 홍보대책을 미리 강구 ▲각 부처 홍보예산을 유기적으로 활용(홍보자료 영화 VTR 신문광고 예산등) ▲오보 추측 과장보도 발생시 반론 해명 독자투고 유료광고 등으로 신속 대처 ▲정례 기자회견 및 브리핑제도 활성화 ▲국민과 언론의 관심사항에 대한 시책ㆍ정책자료를 최대한 제공하고 정책의 구상이나 고충도 과감히 공개 ▲국민적 관심사건에 대한 백서 발간 ▲각부처의 홍보활동 정례평가제 실시 ◇홍보방법 쇄신=▲한글세대 및 서민층 대상 홍보수요조사 ▲대상층에 부합되는 홍보자료 지속공급 ▲민간광고와 정부홍보의 연계활용 ▲대중매체의 대국민 생활정보 서비스기능 적극 활용 ▲일상생활공간에서의 홍보영역 개척 ▲정부관련 간행물의 효율적 활용체계 확립 ▲정기ㆍ간이 여론조사 실시로 국민여론 수렴제도 활성화 ◇언론빙자 사회악 추방=▲신문협회ㆍ잡지협회 등의 자율활동을 권장 ▲윤리강령 준수 촉구 및 회원사의 협조 유도 ▲소비자 보호단체등의 자율캠페인 실시와 신고 고발 활성화 ◇언론피해 구제 강구=▲명예훼손 재산손실 등에 대한 법적 구제조치 강화 ◇해외 홍보전략과 조직의 전면개편=▲공보관의 전략지역 중점 배치 ▲문화원을 공보원으로 개편하고 공보관ㆍ문화관을 공보관으로 통합,일원화 ▲공보관 직급 일부 재조정 ◇문화홍보의 확충=▲문화홍보 자문기구의 기금확보 및 종합계획 수립 ▲공연ㆍ전시ㆍ영사회 등 문화행사 개최(①창극 「심청전」의 미 일 5개 도시 순회(4∼6월) ②진도 「씻김굿」 미국 LA페스티벌 참가(9월) ③국악연주단 북미 10여개 도시 순회공연 ④한국영화 소련ㆍ구미지역 시사회(10개 도시)) ▲한국 소개 종합화보 제작(90∼91년) ◇통일ㆍ북방정책 홍보의 적극화=▲소련 폴란드 등 동구 순회세미나 ▲영 불 독 일 주요 연구소와의 공동토론회 ▲국제정치학회 서울총회 심포지엄 ▲각국 전직 수반 서울회의 활용 ▲대공산권지역 교민 홍보 추진 ◇외신대책 강화=▲외신 분석기능 강화및 내외신 순환홍보 적극 수행 ▲외국 언론인 학자 등 저명인사 60명 초청
  • 민자당 초대 당3역ㆍ대변인의 “포부”

    ◎박준병 사무총장/대화ㆍ타협으로 당내외 융화에 총력 『화학작용과 용광로 용해작용 등을 통해 다소간의 이질적 요소를 극복,신당이 국민정당ㆍ정책정당ㆍ민주정당ㆍ개혁정당ㆍ통일지향정당으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통합신당인 민주자유당의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민정당에서 두차례 총장을 역임했던 것을 감안할 때 「총장3선」이라는 여권내 보기드문 기록을 가지게된 박준병총장은 인화와 단결,대화와 타협을 거듭 강조했다. 박총장은 88년 4ㆍ26총선직후 여소야대상황에서 또 금년초 5공청산 후유증에서 비틀거리던 민정당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친화력」으로 다독거렸던 인물. 따라서 3당이 합쳐지면서 예상되는 불협화음 해소에도 적격이 아니냐는 판단이 이번 총장임명의 배경인 듯. 박총장은 『15인 통합추진위원으로 일하면서 3당대표들이 하나가 되고자하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그런 마음만 지속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총장은 『일부 국민이 거대여당의 독주 혹은 내부분열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정치의 본질이 대화ㆍ타협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않고 있으며 신당은 대내 이질요소 극복뿐 아니라 지역성 타파에도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총장은 또 『가능하면 지금이나 아니면 14대 총선전후해 진보적 정당이 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혁구도 정립에 대한 기대를 비췄다. 육사 12기로 4성장군출신이면서도 성품이 온화해 「제복」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서울대 및 국민대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고 요즘도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학구파. 금년초 정계개편작업의 중핵인물로 등장하면서 박철언정무1장관과 업무상 호흡이 잘 맞고 있다. 민정계보에서 중부권 선두주자의 1인이나 『아직은 파벌형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계보형성은 자제. 부인 김혜정여사(53)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북 옥천출신ㆍ57세 ▲대전고 ▲육사12기 ▲서울대ㆍ국민대대학원 사학과 ▲국군보안사령관 ▲대장예편 ▲12ㆍ13대 국회의원 ▲국회보사위원장 ◎김용환 정책의장/소외계층ㆍ서민 위한 제도개혁 역점 『국민 모두의 바람과 뜻을 받들면서 시대정신에 뒤지지 않는 정책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당구조의 말석정당정책위의장에서 거대여당의 정책위의장으로 「간택」된 김용환의장은 특히 소외계층과 서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전개를 강조,성장과 안정을 동시 추구해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그는 신당의 정책방향의 초점에 관해 『꾸준한 개혁속에 민주적 제도와 관행을 체질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어려운 국면의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북돋울 수 있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의장은 『법과 제도의 개혁에 앞서 국민의 정치주인이라는 사고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당면 현안법안 등에 대한 제정ㆍ개정노력과 함께 국민들이 민주시민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개발고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침체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을 되찾는 것이며 일단 안정을 회복시킨 뒤 수시로 나타나는 경제변화와 흐름에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등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에 대한 당의 입장과 관련,『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이미 결정된 제도는 계획대로 시행해 나갈 것이며 시행과정에서 역기능이나 문제점이 제기된 경우 그에 대한 보완ㆍ수정은 이후의 문제라고 본다. 당정간에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관리로 출발,지난 78년 4년여동안의 재무장관직을 끝으로 정부를 떠났던 김의장은 12년 만에 다시 집권여당의 정책파트 책임자를 맡아 관운만큼이나 정치운도 따른다는 평을 받고있다. 공화당정책위의장 시절 JP의중을 가장 잘 헤아려 5공청산추진 및 정계개편작업 등에서 「JP대리인」 역할을 해냈다. 작달막한 체구에 출중한 지모를 갖추고 있으나 차가운 성격으로 정치인다운 친화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춘구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충남 보령출신 58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행정과 합격 ▲재무부 이재국장 ▲대통령경제특보 ▲재무장관 ▲13대의원 ▲공화당정책위의장 ◎김동영 원내총무/여야 갈등없는 상호협조체제 유지 『민주자유당내에 유능한 인물이 많은데도 나를 총무로 지명한 것은 당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원내점유율 73%에 달하는 거대여당의 원내총무로 2백16명의 매머드의원단을 지휘하는 원내사령탑을 맡게된 김동영의원은 『16일 의원총회의 인준을 남겨놓고 있는 만큼 아직은 내정자…』라면서도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좋은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총무지명을 고사했었다』고 밝힌 김의원은 자신의 카운터파트가 될 평민당 김영배총무에 대해 『참 좋은 사람』이라며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대야관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피력했다. 김의원은 『평민당은 옛날에 같은 동지였던 만큼 그들의 마음을 내가 잘알고 있고 그들 또한 내마음을 잘알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대야관계가 갈등이 아닌 상호협조차원에서 유지될 것이란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의원은 85년 4월19일 당시 1백2명의 의석을 가졌던 신민당원내총무에 임명됐었던때를 회상하며 『그당시 처음 총무를 맡았을 때는 총무가 뭔지,정치가 뭔지를 모르고 했는데 신의 가호로 욕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 뒤 이번에는 야당이 아닌 여당의 총무가 된 데 대해 『아직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의원은 자신이 민자당 전체의석 2백16석의 정확히 4분의1에 불과한 구민주당측을 대표해 총무직에 지명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듯 『조그만 일이라도 법테두리안에서 일이 진행돼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최고위원 세분이 지명했지만 인준 전에는 총무가 아니다』며 계속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이번 총무지명이 김영삼최고위원의 강력한 지원에 의해 이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의원의 정치경력은 김최고위원과 분리시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졸업후 부산동성중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당시 야당의 원내부총무였던 김최고위원을 보좌하는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불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뚝심과 의리로 뭉쳐져 있다는 평. 12대 국회전반기에 신민당 원내총무로 유성환의원 구속에 책임지고총무직을 물러날 때까지 여당과의 개헌협상을 주도하며 「성가」를 높였다. 부인 신길자여사(47)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남 거창출신ㆍ54세 ▲동국대 정치과졸 ▲9ㆍ10ㆍ12ㆍ13대의원 ▲신민당 원내총무 ▲민주당부총재ㆍ사무총장 ◎박희태 대변인/다양한 목소리 조율… 여의 참모습 국민에 전달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민의 원하는 밝고 희망찬 내일을 건설하기 위해 민주자유당이 믿음직한 목소리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3일 지역구(경남 남해ㆍ하동)활동도중 거대 여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초대 대변인으로 임명통보를 받은 박희태의원은 『과거 여소야대때 야당측을 공격하는 데 치중했던 구태에서 탈피,국정을 주도하는 여당의 참모습이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초년생답지않게 지난 1년2개월동안 중간평가ㆍ공안정국ㆍ5공청산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정국상황아래에서 민정당의 대변인을 맡아 때론 맞받아치고 때론 한발비켜서는 「히트 앤 런」작전을 적절히 구사,「명대변인」으로 평가받았던 박의원은 『앞으로 당내에 상존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적절히 조화시켜 한목소리로 발표하기까지 어휘선택에서도 상당히 고심해야 될 것 같다』며 대변인의 고충을 미리 예견했다. 그는 『이번 정계개편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모두 호의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일부의 오해나 편향된 시각을 인정하면서 『이같은 오해를 빠른 시일안에 불식시키고 민자당을 국민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도 대변인에게 주어진 중대한 책무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한 전달자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을 뜻을 비췄다. 고시 13회의 선두그룹으로 부산고검장까지 지낸 박의원은 특유의 「판단력과 재치있는 화술」로 정치데뷔 2년 만에 민정당의 원내부총무와 대변인을 거치면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정당시절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유달리 부드러운 눈길을 받았던데다 고검장 출신의 경력으로 인해 「3선급」 중진예우를 받아왔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시절에 일어난 중국민항기 납치사건때는 중국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수완을 인정받았으며 원내진출후에는 율사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국정감사및 조사법ㆍ증언감정법 심의당시 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에 맞서 강공으로 치달을 때 「동행명령제」란 묘안을 찾아내 대치정국을 푸는 등 법안심의때마다 자문역으로 떠받들어지곤 한다. 박의원은 매주 한차례씩 지역구인 남해ㆍ하동에 내려갈만큼 조직관리에 열성적. 화전주부대학등 두개의 주부대학을 세워 지역구민들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과는 경남고 동창이어서 인선과정에 불리하게는 작용하지 않았을 거란 관측들.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서울시내에 모르는 술집이 없을 정도로 「폭탄도사」라는 별명을 듣는 애주가. 건국대교수인 김행자여사(49)와의 사이에 딸만 둘. ▲경남 남해출신ㆍ52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13회 ▲미버클리 법대수학(법학박사) ▲법무부출입국관리국장 ▲춘천ㆍ대전ㆍ부산 지검장 ▲부산고검장 ▲민정당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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