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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빛 문자, 날기를 욕망하다

    먹빛 문자, 날기를 욕망하다

    불꽃처럼, 때론 폭풍처럼, 그리고 때로는 조용한 호숫가의 미풍처럼 춤추는 글. 문자의 틀안에 갇힌 서체가 아니라 자유로움을 지닌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나간다. 여류 서예가 고숙희씨가 20여년 갈고 닦은 서예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써왔다.”고 하지만 그의 다양한 서예 작품들을 대하면 그동안 부단히 연마해 온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이 맑고 단아하게 써 내려간 글속에는 기운생동(氣韻生動)함이 넘쳐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선비의 글처럼 치장하지 않고 잘 가다듬어 써 내려간 글씨에는 그의 깔끔한 품성이 엿보인다. 그가 추구하는 서예는 고전을 중시, 외재적인 형태와 형식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안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내적인 골격을 지녔다.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한문 서체인 예서, 초서, 행서 등을 고루 익혀 선보이는 각각의 작품에서는 옛 전통을 익히면서도 고유의 개성을 드러내도록 했다. 한발 더 나아가 그 자신만의 특유한 글씨체를 만들어 냈다.8폭의 한글 병풍에 흘림으로 써 내려간 그의 글씨는 현대적 감각과 세련미가 돋보인다. 새로운 스타일의 고숙희식 흘린 글씨체는 한문의 초서와 행서를 섞어 놓은 듯하다. 그는 글씨도 글씨지만 글의 내용 또한 자신이 직접 창작하는 열의를 지녔다. 고씨는 “글이 갖는 완벽한 추상성을 깨부수어 제 글이 새처럼 날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12월7∼13일 세종문화회관 신관 2실.(02)399-1111.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치매치료제·반도체칩 집중육성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 ‘AAD-2004’ 실용화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또 반도체 칩 하나로 갖가지 기능을 통합·처리할 수 있는 ‘정보기술(IT)-시스템온칩(SoC)’이 집중 육성된다. 정부는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주재로 제 12회 과학기술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심의, 확정했다.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오는 2009년 3월까지 3년간 알츠하이머병 발병을 지연시킬 수 있는 AAD-2004의 약효 및 동물실험, 인체에 대한 1단계 임상시험 등을 실시한다. 모두 200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의 재원은 정부가 120억원, 참여업체인 뉴로테크가 80억원을 분담한다. 정부 투자금은 연구개발협약에 따른 기술료와 코스닥·나스닥 상장 등을 통해 연차적으로 회수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본격적인 시장형성이 이뤄지는 2013년에는 세계 치매약물시장의 5%를 차지, 연간 4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정부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글로벌 신약펀드’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정부는 또 IT 융·복합화 추세에 대비해 앞으로 5년간 6954억원을 투자,IT-SoC 개발을 비롯한 IT 부품소재산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SoC는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기판에 모아 시스템을 구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반도체 칩에 하나의 시스템을 구현하는 고밀도 고집적 반도체 기술로 차세대 IT 핵심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2010년까지 IT-SoC 분야 전문인력 6000명, 매출 1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 15개를 각각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조직과 인력을 재편성,‘IT부품·융합연구센터’(가칭)를 설립할 계획”이라면서 “또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과 와이브로(휴대인터넷) 등을 조기 도입하고, 디지털홈과 유비쿼터스 로봇 등의 시범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내년 7월 ‘연인 3탄’ 으로 컴백”

    “내년 7월 ‘연인 3탄’ 으로 컴백”

    “내년 여름 더 나은 드라마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드라마에도 특유의 브랜드가 있다. 특히 PD와 작가가 콤비를 이뤄 히트 작품을 연달아 합작해내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허준’,‘대장금’의 이병훈-김영현,‘애정의 조건’,‘장밋빛 인생’의 김종창-문영남 등이 대표적이다. 신우철 PD와 김은숙 작가도 이 대열에 어울리는 커플이 됐다. 지난해 ‘파리의 연인’에 이어 올해 ‘프라하의 연인’의 성공으로 ‘연인’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는 것. 지난 22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프라하’ 종방연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번 작품을 70점 정도로 자평한 신 PD는 “‘연인’ 시리즈가 최소 3부작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며 “해외 도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르면 내년 7월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 때 방송에 임박해 기획에 돌입,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이번에는 5∼6개월이라는 기간을 거쳤지만 그래도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음에는 더 꼼꼼하고, 더 철저하게 계산된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말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당초 기대에 못 미쳤다는 지적에 김 작가는 “스토리 라인에 무리수를 두기도 했던 나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김민준의 자살 시도는 원래 전도연을 구하려다 다친다는 설정이었는데 자신의 고집으로 바꾼 것이 그만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극중 대통령 캐릭터가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논란에 대해 김 작가는 “정치는 잘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내 “이상적인 대통령을 모델로 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을 참고했지만,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오히려 놀랐다.”고 덧붙였다. ‘파리’의 반전 결말 때문에 이번에도 엔딩을 5∼6번이나 고쳐 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녀는 어떤 결론이든 재미있게 써달라는 신 PD의 권유에 결국 해피엔딩을 선택했다고 한다. 또 결혼 이후를 담았던 엔딩이 ‘뿌리가 있는 사랑’을 보여준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차기작도 미리 배우를 정해놓고 기획에 돌입하는 것은 아닐까. 신 PD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캐스팅이 쉬운 게 아니다.”면서 “생각 같아서는 방영 시기를 조금 늦춰달라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싶다.”며 벌써 내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의미 있는’ 외도를 하게 된다. 현빈이 주연을 맡은 ‘백만장자의 첫 사랑’은 촬영에 들어갔고, 내년 초쯤 ‘사랑하다’를 크랭크인할 예정이라며 웃어보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GS·삼성건설 “네탓”공방

    국내 굴지의 두 건설업체가 공사현장 사고 책임을 놓고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이고 있어 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GS건설과 삼성물산건설부문은 지난달 경기도 이천시 GS홈쇼핑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PC)구조물 붕괴사고로 9명이 사망하는 등 원시적인 대형 사고를 일으키고도 책임을 회피한 채 연일 상대방 헐뜯기에 나서고 있다.검찰은 23일 두 업체와 현장 소장, 감리단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상, 건설산업기본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법원에서 형사상 책임이 가려지더라도 두 업체가 계속 책임을 전가할 경우 민사상의 2라운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GS건설 물귀신 작전 GS건설은 문제가 된 공사의 경우 삼성건설이 특허를 갖고 있어 어쩔 수없이 일괄하도급을 줬는데 삼성이 무면허 시공사에 재하도급을 줘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삼성도 책임이 있는데 무조건 발뺌하는 바람에 모든 잘못이 마치 GS에 있는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임을 나눠야 하지만 GS만 당하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사고의 원인이 PC공사 설계-제작-시공 등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삼성건설이 원천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언론이 사고의 책임을 따지는 취재에 들어가자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삼성물산 법적 대응 고집 삼성은 사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형사상 판결이 나온 뒤 민사 부문도 따져 책임을 가리겠다는 입장이다.또 PC공사를 맡은 업체(삼연 PCE)가 사실상 삼성에서 분사한 독립 회사인데도 GS는 마치 삼성 본사가 사고를 저지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나아가 건설 현장의 최종 책임은 원청사 관리에 있는데도 책임 규모를 줄이기 위해 억지로 하도급업체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사고 원인이 모두 PC조립 공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골조 공사 등 공기 단축을 강행한 GS에도 있으며, 법원이 가려줄 잘잘못을 언론 로비를 통해 풀려는 GS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건설업계 “이름값도 못하는 한심한 작태” 건설업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한 건설사 사장은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사고 발생 방지대책을 세워도 부족한 판인데 언론 로비 등 이전투구를 벌이는 바람에 건설업계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며 두 업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이 본업이 아닌 무역·제조업 등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룹 건설사들의 한계”라며 “영업정지처분 등 치명타를 회피하기 위해 사고를 떠넘기려는 의도가 짙다.”고 지적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vs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우리는 맞수 CEO]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vs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국민드링크’ 타이틀 공방전이 치열하다. 40여년간 독주해온 ‘박카스’에 신예 ‘비타500’의 도전이 거세다. 지난 4월 비타500은 처음으로 박카스를 따돌리고 국민드링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방심은 금물.9월들어 박카스가 타이틀을 회수하자 비타500이 매섭게 반격하고 있다. 타이틀전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은 한국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백전노장들이다. 박카스 수성에 나선 강신호(78) 동아제약 회장과 비타500으로 승부수를 띄운 최수부(69) 광동제약 회장. 산전수전을 다 치른 두 최고경영자(CEO)는 박카스와 비타500을 차에 ‘무장’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권하며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연간 국내 드링크 시장 규모는 4000억∼4500억원. ●40년 넘버 원 vs 40년 최씨 고집 박카스는 강신호 회장이 1961년 직접 작명했다. 유학시절 독일 함부르크 시청의 지하홀 입구에 서 있는 석고상 ‘바커스’를 눈여겨봤다가 따온 이름이다. 포도송이와 곡식뭉치를 든 술의 신 바커스가 동아제약에서 ‘박카스 신화’로 재현됐다.1963년 지금의 병 형태로 나온 박카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8억 5000만병이 팔렸다. 팔린 병의 길이를 모두 더하면 지구를 45바퀴 돌고도 남는다.40여년 동안 독주하며 ‘국민드링크’라는 칭호를 얻었다. 반면 2001년 4월 출시된 비타500은 작명할 때 대박의 꿈을 담았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사먹을 수 있으며 매출 5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비타500은 지난달 말까지 10억병이 팔렸다. 매출은 지난해 854억원을 넘겨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올해 한 때는 박카스의 매출을 추월, 드링크 지존에 등극하기도 했다. 박카스의 성공 신화에는 광고가 빠지지 않는다. 광고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다.‘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지킬 것은 지킨다.’…. 약효보다 누구나 공감하는 광고가 설득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강 회장은 “대량생산, 대량광고, 대량판매의 3M 전략의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비타500의 성공은 차별화에서 출발한다. 박카스나 자사의 쌍화탕과는 다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최 회장은 “약국을 넘어서 슈퍼마켓·찜질방·할인점 등에서도 살 수 있는 의약외품(혼합음료수)으로 신고한 것”을 대박의 밑천으로 꼽았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웰빙 트렌드가 ‘타는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건강엔 내가 최고야! 국민 건강에도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어렵던 60년대에 탄생한 박카스는 비타민과 무기질에다 간을 튼튼하게 하는 강간제(强肝劑)를 섞었다. 강 회장은 “박카스는 40여년간 마셔온 국민이 입증했다.”며 효능을 자부했다. 최근엔 인체 필수아미노산인 타우린을 두배로 보강한 박카스D로 변신했다. 음주전후·피로회복 등에 좋다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박카스는 발매후 지금까지 맛과 품질에서 원칙을 지키고 있다. 박카스 1병을 만들기 위해 30여가지의 공정과 완벽한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마시는 비타민 음료를 표방한 비타500의 대박은 40년 외길을 걸어온 최씨 고집에 대한 ‘신이 내린 축복’으로 곧잘 비유된다. 건강열풍에 비타민C가 항암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비타민C를 주성분으로 하는 비타500에는 비타민의 소화와 흡수를 돕고 시큼한 맛을 줄여주는 10여가지의 성분이 들어간다. 최 회장은 “품질관리는 의약품과 같을 정도로 엄격하다.”고 강조했다. ●블루오션을 찾아서 국내 시장은 이미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레드오션 상태다. 따라서 새 신화창조를 위해 두 노장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박카스는 지난 81년 최초로 미국에 수출됐다.89년엔 박카스 수출 300만명을 돌파한 이래로 수출국은 20개국을 넘어섰다. 중국에는 현지 공장도 가동 중이다. 비타500은 2003년 처음 미국으로 수출됐다. 이후 일본·중국 등을 거쳐 타이완까지 수출되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우황청심원을 수출한 광동제약은 내년에 중국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두 노장의 치열한 국민드링크 공방전에서 진정한 승자는 안심하고 마시는 소비자일 것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경형칼럼] ‘初心’으로 돌아가기

    [이경형칼럼] ‘初心’으로 돌아가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주초 열린우리당의 새 지도부와 만찬을 갖는 자리에서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한 말은 뭔가 아리한 여운을 준다.10·26 재선거의 완패로 교체된 신임 당 지도부와 가진 청와대 회동이어서 뭔가 민주당과 통합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리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정치인 노 대통령의 맛은 우직스러운 고집과 항상 허를 찌르는 의외성의 발휘에 있다. 이번 창당 초심 발언도 ‘바보 노무현’답게 일시적인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창당 당시의 명분과 일관성을 지켜나가자는 뜻일 게다. 사실 ‘초심’은 지역 정당을 탈피하고 전국 정당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지만 이번 초심 발언은 좀더 포괄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집권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열린우리당만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할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도 초심에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년9개월간 국정이 초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또 초심의 첫단추 자체가 잘못 끼워진 것은 없는지 짚어보는 것은 앞으로 남은 2년의 성공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참여정부는 당초 이념적 깃발을 진보적 개혁주의에 두고 경제정책면에서는 빈부격차 축소, 복지 강화 및 사회안전망 확충, 적극적인 시장 개입, 반 재벌 정책 등에 역점을 두어왔다. 하지만 빈부간의 격차는 더 늘어나고, 최근 일반 기업의 신입 사원 채용 경쟁률이 200대1이 넘을 정도로 청년층 실업난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지금 국민들이 왜 ‘경제, 또 경제’를 말하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외교·안보면에서는 자주를 외치면서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 역할’ ‘협력적 자주국방’을 역설했지만, 왠지 공허해 보인다. 미국과의 동맹에만 매달리지 말고 때로는 분명하게 ‘노(NO)’라고 말해보자는 자주가 반미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17일 경주의 한·미정상회담은 군사·외교를 포괄하는 미래의 양국 동맹 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까지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헝클어진 한·미관계를 오랜만에 재정리하기는 했다. 대북정책은 대체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이어받으면서 북한을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정책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보안법 개폐,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및 강정구 교수 사건을 겪으며, 참여 정부의 정체성까지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 친북, 용공 정권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투영되는지 반성해야 한다. 냉전 수구 보수 세력만 탓할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강조해온 민주화, 투명성, 인권, 시민사회의 역할 증대 등은 상당히 진전되었다. 또 보수 기득권 세력의 뚜렷한 퇴장으로 생긴 공간을 진보 신진 세력이 메우고, 많은 비제도권 인사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한 것은 한국사회의 지배 구조를 일정 수준 선순환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 과정에서 알맹이 없는 개혁 구호, 코드 인사를 위한 협소한 인재 풀 가동, 측근들의 이권 개입으로 인한 도덕성 실추, 직업화한 시민단체 활동의 식상함이 드러남으로써 참여 정부의 초심은 많이 퇴색되었다. 내년 초 현실 정치를 뛰어넘는 ‘국가 미래 과제에 대한 구상’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노 대통령이 기껏 합당 같은 낮은 수준의 정치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대통령의 초심 강조가 단순히 민주당과 통합을 추진하는 열린우리당내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참여정부의 국정 전반을 초심으로 돌아가 총점검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일부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가 인용해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해방공간 4개 일간지 영인본(影印本) 작업을 마무리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정보의 민주화’로 그 의미를 평가했다. 영인본은 말 그대로 문헌 자료를 사진(影)으로 찍어 인쇄(印)해둔 책(本)을 말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종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이다. 정 명예교수는 서울·경향신문 조선·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에서 1945년 8·15광복에서 1950년 6·25전쟁 때까지 발행한 신문을 모아 영인본을 냈다. 서울 반포 연구실에서 만나 이번 작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영인본을 만든 가장 큰 뜻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1차자료’로 활용하자는 데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1930∼4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주로 문화사나 생활사쪽에서 이뤄지는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당시 발행된 ‘잡지’에 기대고 있다. 신문도 소중한 기초 연구자료로 쓰일 수 없을까. 쓰일 수 있다. 다만 잡지와 신문의 차이도 봐야 한다. 신변잡기적 소재를 다루는 잡지와 달리 신문은 아무래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잡지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역사를 공부했다는 저 역시도 이번 기회에 해방공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요즘 대표적인 ‘수구언론’쯤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는 사실이나,38선을 경계로 수시로 일어났던 남북간 무장충돌도 때로는 100여명의 사상자가 생길 정도로 큰 규모였다는 점 등이다. 여순사건도 마찬가지다.“당시 현지에 기자를 보낸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현장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불고 있는 과거청산 논의는 다소 못마땅하다. 장지연의 경우 단편적인 글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이다.“고종의 손자는 일본군 중좌로 히로시마 원폭에 죽습니다. 일본 국방상이 애도하고 대좌로 추서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친일입니까?” ‘누가 이랬다더라’식의 한건주의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과 구체적 행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물론 과거사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업에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 작업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영국만 해도 인덱스(index·색인)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인덱서(indexer)를 전문가로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정 명예교수는 국가의 관심부족을 아쉬워했다.“국가가 할 일은 평가 자체가 아니라,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충실히 보존·관리하는 겁니다. 평가는 전문 연구자들간 토론과 합의에 맡겨야지요.” 그래서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을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보내는 것에 더해 150쪽 분량의 별도 요약집도 낸다.8·15광복이나 6·25전쟁, 김구 선생 암살사건, 북한의 위장평화공세 등과 같은 주요 사건들에 대한 기사만 따로 뽑을 예정이다. 정치적 사건만 다루면 딱딱해질 것을 우려해 서울신문에 처음 선보인 연재만화 ‘블론디’(지금은 한국일보 연재),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처음 발표된 경향신문 지면 등도 함께 넣을 생각이다.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출판기념회 때 내기 위해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영인본을 만들면서 정 명예교수가 가장 신경쓴 대목은 영인본을 펴보는 게 당시의 신문을 펴본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는 점. 이 때문에 없어진 면은 영인본에 백지 그대로 넣었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대판(지금의 신문크기) 신문은 영인본 첫 페이지에 축소판을 넣고 다음 페이지에 대판 크기의 신문 한 면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두면에 걸친 제목과 레이아웃을 고스란히 살리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글·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길섶에서] 고자나무/심재억 문화부 차장

    사람들은 그 은행나무를 ‘고자나무’라고 빈정댔다. 나이가 ‘틀림없이 삼백살은 넘었고, 어쩌면 오백살도 됐을 것’이라는 그 나무는 교동리 향교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여름에는 너른 그늘을 드리워 쉼터를 만들어 줬고, 가을엔 온통 샛노란 단풍이 눈길을 모았다. 풍채도 위풍당당한 거목이었다. 이런 나무를 ‘고자나무’라고 부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은행나무는 수컷이었다. 주변에 암나무가 없으니 풍채는 당당했지만 과실이 열리지 않았다. 이 가을에 그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거느린 식솔 없는 ‘홀’의 궁상이 뚝뚝 묻어나는 듯했다. 예전, 고집 센 향교의 교수(敎授) 한 분이 그랬단다.“여기가 어디라고 은행나문들 암컷을 심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들 말게.” 가끔 그 길을 지나다 보면 아직도 홀로 선 이 나무가 무척 추레하게 여겨졌다. 가을에는 그런 생각이 더했다. 맨땅에 노란 단풍을 떨궈 샛노란 자리를 깔고는 빈 가지로 돌아가는 모습이 허허롭기 짝이 없었다. 소싯적, 그 은행나무에 대한 아버지의 품평은 이랬다.“봐라. 저 장골(壯骨)나무도 짝 없으니 영락없는 말뚝 아니냐.”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영어 안쓰는 한국 먼저 인사하는 외국

    “왜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영어를 안 하죠?”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는 한국·미국·중국·홍콩 등 8개국 대학생 기자단 70여명의 ‘APEC 미래의 목소리 2005’라는 릴레이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각국 CEO와 정부관료 등을 상대로 기성언론이 좀체 못하는 당돌한 질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들로부터 국내외 CEO간 차이점에 대해 들어봤다. 홍콩 폴리테크닉대(과학기술대)에 다니는 애니(23·여)는 한국 CEO들에 대해 “유머감각이 있고 CEO와 직원들 사이에 친밀감이 커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왜 한국 CEO들은 영어를 안 쓰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통역에만 의존하는 한국 CEO들을 두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 몇마디 못 하더라도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영어로 인사말 하는 정도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홍콩의 기업들은 어느 환경에서든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꼬집었다. 같은 대학 학생회장인 토머스(22)는 “홍콩의 기업들은 민주적이고 다른 나라에 대해 굉장히 열려있는 데 비해 한국의 기업조직은 가부장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오히려 CEO가 가정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외국 CEO들의 정중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높게 평가했다. 동서대 영어과 3학년인 하헌종(24)씨는 “우리나라 CEO에게는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허리 굽혀 악수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 만난 외국 CEO들은 내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 먼저 명함을 건네더라.”면서 “CEO가 학생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것을 보고 권위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평등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상적인 인터뷰 대상으로 도덕경영으로 유명한 의료생활용품 회사 존슨앤존슨의 크레이그 크래머 부사장을 들고,“도덕성을 위해 수억달러가 들더라도 문제있는 약품을 수거하는 과감성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특히 강렬했다.”고 평했다. 고려대 국제학부에 재학 중인 은종실(22·여)씨도 “택배업체 UPS의 스티븐 오쿤 부사장은 사회 진출을 앞둔 우리에게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좋은 보수를 받겠다고 고집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지적했다.”면서 “본인의 과거사를 자세하게 이야기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고 말했다.부산 특별취재단
  • 두 중진의 세상·문학 이야기

    문단의 두 중진 소설가가 나란히 산문집을 냈다. 같은 고향(전남 장흥), 같은 연배(66)의 이청준과 한승원. 이청준은 2000년 이후에 쓴 산문들을 가려 엮은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모습’(문이당)을, 한승원은 그동안 쓴 수필들을 모으고 새로 덧붙인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황금나침반)를 출간했다. 꼬박 40년을 문학에 매달려온 두 작가가 세상살이에 대한 회고와 문학에 대한 감회를 진솔하게 풀어낸 글들이다. ‘머물고 간 자리’는 작가의 주변 인물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 문학의 본질을 통찰한 글들이 두드러진다. 장애가 있는 누이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두루마기의 기억’이란 글에서 작가는 ‘이웃의 배려는 대개 일상의 불편을 어느 만큼 줄여 줄 수 있을 뿐, 우리 삶의 결핍은 스스로 채우는 부분이 더욱 값지고 소중한 품격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문학 역시도 그 삶의 결핍을 제대로 끌어안고 모양새있게 채워나가려는(혹은 지우고 가꿔 나가려는)것이 큰 몫의 하나일 터’(28쪽)라고 말한다. 임권택 감독과 영화 ‘축제’를 촬영하는 동안 어머니의 치상(治喪)과정을 한번 더 치르며 비로소 마음으로부터 어머니를 떠나보내드렸던 경험에서는 ‘소설은 우리를 모방해 베끼는 일이라지만, 그런 뜻에서 소설을 쓰는 일은 작가가 지난날의 제 삶을 소설로 한번 더 살아내는 일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47쪽)는 성찰을 이끌어낸다. 새벽 어둠 속 아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눈길을 따라 밟으며 마을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소설 ‘눈길’의 실제 모델인 어머니에 대한 회고, 평소 친분있는 스님에게 돈봉투를 받고 깨달은 삶의 의미, 밤 산길의 독행자처럼 각자의 산길을 외롭게 지나온 동료 문우들에 대한 애정 등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넉넉한 시선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세상을’은 고향인 장흥 바닷가에 ‘해산토굴’이란 글집을 짓고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가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지혜와 통찰을 담은 인생론이다.‘여느 시집이나 소설집들과 달리 모든 표현의 기교나 장치들을 다 벗어던져버린 알몸 그 자체’라고 작가 스스로 책머리에 밝혔듯 산문집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문인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밥 따로, 국 따로, 반찬 따로’인 독특한 식습관의 유래, 까칠까칠한 내의가 거추장스러워 속옷을 뒤집어 입는 버릇, 생애 한번 뿐인 결혼식을 하객 여덟명만 불러 조촐하게 치르겠다고 고집을 부린 사연 등은 ‘세상과 삶의 경계에 선’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이 세상을 다녀가는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언제가는 그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마저 사라진다. 그 그림자와 이미지만 남아 구름처럼 흘러간다. 견고한 사각형에 갇혀 살 일이 아니고 오각형으로서 자유자재의 구멍을 뚫어놓고 살 일이다.’(249쪽)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은빛 송어/김남극 엮음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1907∼1942)이 일본어로 쓴 작품들을 발굴해 엮은 ‘은빛 송어’(김남극 엮음, 송태욱 옮김, 해토 펴냄)가 나왔다. 단편 ‘은은한 빛’,‘엉겅퀴의 장’ 등 몇 편의 작품이 이미 번역돼 ‘이효석 전집’에 실린 적은 있지만 이처럼 일본어 작품만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은 처음.‘이효석 문학관’건립 실무작업을 했던 시인 김남극이 일본 와세다대 연구원 호테이 도시히로의 도움으로 입수한 소설 5편과 수필 9편을 실었다. 이효석은 이광수, 최남선 등과 더불어 친일 혐의를 받아온 작가. 그러나 지난 8월말 발표된 ‘친일인명사전’의 1차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문학평론가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의 강압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집필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절필하느냐 였다.”면서 “일본어로 글을 썼지만 이전에 전혀 내비치지 않았던 민족의식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구려 시대의 칼을 수집하는 주인공이 이를 얻으려는 일본인 박물관장의 온갖 유혹에도 끝내 칼을 지킨다는 내용의 단편 ‘은은한 빛’이 대표적인 예.‘우리의 장점이란 원래 우리한테 있는 거네. 남들이 가르쳐 주어야 겨우 알게 된다면 그런 건 없어도 좋아. 치즈와 된장, 자넨 어느 게 구미에 맞던가?’(‘은은한 빛’중,66쪽). 이밖에 이역에서 고향의 가을풍경을 편지글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그리워하는 ‘가을’, 양장 드레스만을 고집하던 미호코가 한복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어렸을 때 색동옷을 입었다고 회상하는 내용의 ‘봄옷’ 등이 실렸다. 수필에는 작가로서의 가치관, 사회비판의식, 자연예찬 등 작가의 내면이 좀더 솔직하게 드러난다.89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1세기 최고 디바’ 와 늦가을 데이트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창회를 갖는다. 그는 1994년 노거장 솔티의 지휘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로 출연, 루마니아의 시골 출신 무명가수에서 일약 세계 성악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한 인물.솔티가 리허설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사실.●마리아 칼라스에 버금가는 사랑받아 그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음성, 넓은 음폭도 소화해 데뷔 이후 10년 넘게 최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파워풀한 표현력, 우아한 무대 매너,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제2의 마리아 칼라스’라는 얘기를 듣지만 정작 그는 그 말조차 싫어한다.“어떤 소프라노부터도 절대로 영감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자신만의 개성을 고집하기 때문.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결혼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기간 듀엣 공연을 갖고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알라냐와는 1992년 코벤트 가든에서 ‘라보엠’을 공연할 당시 남녀 주인공 로돌포와 미미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1996년 이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던 중 1막과 2막 사이 무대 뒤에서 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주례로 ‘깜짝 결혼’을 했다.●오페라 아리아로 솔로무대 꾸며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귀에 익은 유명 오페라 아리아로 짰다. 헨델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중에서 ‘어느 개인 날’과 ‘잔니 스키키’중에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비제의 카르멘 중에서 ‘하바네라’ 등을 부를 예정. 그는 최근 푸치니 아리아집을 음반으로 출반하기도 했다. 소프라노 음성을 사랑했던 푸치니의 곡들은 원숙한 여인들을 다루고 있어 게오르규의 목소리에는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이번 공연에서 같은 루마니아 출신인 이온 마린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반주를 맡았다. “노래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그는 동유럽 출신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마스터할 정도로 음악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다.(02)518-7343.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부산 ‘戀街’/남포동] 보이소 자갈치·국제시장·PIFF광장

    [부산 ‘戀街’/남포동] 보이소 자갈치·국제시장·PIFF광장

    “아지매, 깎아주이소∼.” “아이고, 좀 고만하소. 자요!” 서울 아낙의 애교섞인 사투리 한마디에 못 이긴 척 물건을 건네 준다. 훈훈한 ‘부산 아지매’ 인심을 느껴보고 싶다면 남포동으로 가자. 아지매들의 손맛이 살아있는 자갈치 시장,‘없는 게 없는’ 국제 시장에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가 가득하다. 영화인들의 감각이 돋보이는 PIFF광장, 부산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두산 공원도 있다. 구석구석 다 구경하려면 하루가 부족하다. ●부산 하면 자갈치 시장 부산의 명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자갈치 시장. 연근해에서 잡은 각종 물고기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어시장이다. 지하철 1호선 자갈치 시장역에 내린다. 개찰구에서 나와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비릿한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10번 출구로 나가면 부산시수협∼남포동 건어물시장∼영도대교까지 어시장이 1㎞가량 길게 늘어서있다. 판매대에 놓인 은빛 고기들이 비늘을 반짝이며 팔딱거린다. 어항 속 오징어와 낙지는 연신 물을 헤치며 꿈틀거린다. 싱싱한 생선회와 해산물을 마음껏 골라, 먹고 싶은 만큼 산 다음, 어시장 2층이나 3층에 있는 횟집으로 가져가면 요리를 해서 내준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안가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면 영도다리쪽 건어물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좋다. 오징어·김·마른 안주 등을 싼 값에 마련할 수 있다. ●PIFF광장에서 ‘리어카 골목’까지 자갈치 시장에서 해안가 반대쪽으로 큰 길을 한번만 건너면 광복동과 남포동이 나온다. 남포동의 첫 관문은 부산국제영화제(PIFF)광장. 남포 CGV·대영 시네마타운 등 5개의 극장이 나란히 몰려 있다. 영화제 기간이 아니라도 곳곳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와 스타들의 손도장을 직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PIFF광장에서 뻗어있는 골목을 따라 가면 각양각색의 동네가 나온다.‘없는 게 없는’ 시장으로 통하는 국제시장에는 옷, 신발, 책방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구경거리가 나온다. 일명 ‘리어카 골목’으로 불리는 먹을거리 골목에서는 군침 도는 노점 음식들이 군침을 돌게 한다. 오징어에 야채를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오징어무침, 굵직하게 썰어 놓은 순대, 쫀득쫀득한 족발을 1500∼2500원 정도면 맛볼 수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기에 제격이다. 좀 더 거하게 먹고 싶다면 시장 구석구석에 수십년 동안 자리잡고 있는 맛집으로 가자. 밀면, 고갈비 등 부산의 소문난 ‘맛’을 느낄 수 있다. ●부산의 맛, 이거야 이거 PIFF광장 부산극장 맞은편을 보면 검은색 바탕의 ‘18번 완당집’ 간판이 보인다.‘55년 전통’을 자랑하는 만두집이다. 중국식 만두국, 일본식 국수 등을 전문으로 한다.(051)245-0135. KFC를 지나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 쪽으로 큰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골목 사이로 ‘원산면옥’이 보인다.40여년동안 3대에 걸쳐 냉면만 고집해 온 냉면 전문집이다. 평양식 비빔냉면, 물냉면이 주메뉴로 6000원. 겨울에는 만두, 쇠고기 전골 등도 판다. 오전 11시쯤 문을 열어 오후 9시30분까지 영업한다.(051)245-2310. 원산면옥 바로 왼편 ‘할매 가야밀면’에서는 부산 밀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우리 밀로 만든 면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육수는 냉면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뒷맛이 개운하다. 값도 저렴한 편. 밀면 3500∼4000원, 비빔면 4000∼4500원. 사리 추가시 1000원이다.(051)246-3314. 한편 연산로타리에서 수영 방향으로 50m 정도 올라가다 왼편에 있는 참나무숯불갈비(051-861-6392)도 부산의 맛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주메뉴는 갈빗살. 웬만한 등심보다 훨씬 낫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에서 매일 가져오는 고기는 적당히 육질이 느껴지면서도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참나무숯을 사용해 고기에 참나무향이 배어나온다. 즉석에서 김을 구워 고기와 함께 싼 뒤 쌈장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다. 꽃등심 1만 8000원, 갈비살 1만 5000원. 부산에서 빵을 가장 맛있게 만든다는 빵가게 ‘B&C’, 낚지 볶음과 수중전골(6000원)을 파는 ‘개미집’, 깔끔한 인테리어와 쌈밥 정식(5500원)으로 유명한 ‘자반고등어’도 유명하다. ●전망 끝내주는 용두산 공원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면 서울의 남산에 견줄만한 부산의 명산 ‘용두산’에 올라보자. 남포동 시장 바로 옆에 우뚝 솟아 있어 시내가 한눈에 다보인다. 동주여상 뒷골목을 따라 용두산 산책로에 들어서면 울창한 나무 터널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시가 새겨진 바위도 길을 따라 놓여 있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산을 오르다 보면 용두산 공원 광장이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부산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다. 낮에 봐도 좋지만 밤에 오르면 야경이 눈부시다. 부산 서재희 고금석기자 s123@seoul.co.kr ■ 밀면이 뭐지? ‘회남의 귤을 회북에 옮겨 심으니 탱자가 됐다.’란 뜻의 고사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처럼 이북 지역의 냉면이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의 음식이 된 것이 바로 밀면이다.50년대 중반 한국전쟁으로 부산지역으로 피란을 내려온 함흥 지역 사람들이 하나둘씩 냉면집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산항이 가까워 미군이 보급하던 밀가루를 쉽게 접했던 부산 사람들 입맛에는 메밀·전분 등으로 만든 질긴 냉면이 부담스러웠다. 때문에 자연스레 밀·전분 등으로 면발을 만드는 밀면이 자리잡았다. 서울로 치면 ‘평양식’은 밀면,‘함흥식’은 비빔밀면에 해당한다. 육수에 감초 등 한약재를 써서 입맛에 은은한 한약향이 남는 점과 ‘평양식’인 밀면에 양념장을 넉넉히 풀어 먹는 점도 이북식과는 다르다.
  • 한국 물류허브 ‘빨간불’

    한국 물류허브 ‘빨간불’

    중국이 이달 말 상하이 신항(新港)인 양산항 1단계 터미널을 개항하면서 세계 항만사에 새 페이지를 연다. 반면 한국은 부산항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다 내년 1월 조기개장하는 ‘부산신항’조차 물량 확보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어서 ‘동북아 물류 허브’ 구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양산항은 중국 정부가 ‘아시아 허브’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항구다. 상하이에서 바다쪽으로 30㎞ 떨어진 대·소양산도에 50개 선석(배가 접안하는 자리) 규모로 오는 2020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 때가 되면 연간 3000만TEU(1TEU는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하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달 말에는 우선 1단계로 5개 선석의 소양산도 컨테이너 터미널이 하역을 시작한다. 중국이 이달 말 상하이 신항(新港)인 양산항 1단계 터미널을 개항하면서 세계 항만사에 새 페이지를 연다. 반면 한국은 부산항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다 내년 1월 조기개장하는 ‘부산신항’조차 물량 확보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어서 ‘동북아 물류 허브’ 구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양산항은 중국 정부가 ‘아시아 허브’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항구다. 상하이에서 바다쪽으로 30㎞ 떨어진 대·소양산도에 50개 선석(배가 접안하는 자리) 규모로 오는 2020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 때가 되면 연간 3000만TEU(1TEU는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하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달 말에는 우선 1단계로 5개 선석의 소양산도 컨테이너 터미널이 하역을 시작한다. ●수심 16m… 1만TEU급 정박가능 10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중국 양산항 개장의 영향과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양산항의 터미널 수심은 16m로 세계 최대 규모인 1만TEU급 선박도 정박할 수 있다. 또 양산항의 운영주체인 상하이국제항무집단(SIPG)은 양산항 환적 화물에 대해 환적 비용을 최대 70%까지 깎아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준비하고 있다. 보고서는 양산항이 환적 비용을 50%만 할인해도 주요 원양항로에서 국내 항만의 가격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연간 30%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상하이항의 발전 추세를 고려하면 양산항 개항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반면 1100만TEU를 처리하는 부산항의 연간 성장률은 10% 미만이다. 물동량 처리 기준으로 세계 1위는 홍콩항이고, 싱가포르항, 상하이항, 선전항, 부산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세계 3위였던 부산항은 2003년부터 상하이와 선전항에 3,4위를 내준 뒤 줄곧 뒷걸음질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쯤 상하이항이 1위에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양산항을 통해 인접국가의 환적 화물을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동북아지역의 환적 화물이 양산항으로 집중될 경우 전체 물동량 중 환적 화물 처리 비율이 40%가 넘는 부산항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부산항의 환적화물의 55%가 중국화물이다. 한국해양개발원 정봉민 해운물류센터장은 “상하이항의 컨네이너 물동량은 부산항보다 26.8%나 많고 올해는 50%가량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양산항 완공이 가시화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항 경쟁력 저하속 신항도 차질 특히 최근 동북아 물류중심 항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정부의 ‘양항정책(투포트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감사원은 “부산항과 광양항을 따로 개발, 운영한 결과 두 항만이 물동량 이전을 서로 견제한데다 물동량 예측까지 잘못해 국제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 진해에 건설중인 ‘부산신항’은 아직 이름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부산시는 부산신항을 선호하고 있지만 경상남도가 ‘부산·진해신항’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신항이 개장 2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나 사전 물동량 확보가 제대로 안돼 개장 이후 상당기간 항만시설의 유휴화까지 우려된다. 해양수산개발원은 중국 양산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항만도 환적 전용 터미널 시설을 확충, 선사들에 좀더 저렴하고 편리한 환적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는 주요 전략 항만을 관세법상 외국에 준하는 ‘자유항’으로 지정, 비관세 영역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주디스 밀러 NYT 퇴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리크게이트’와 관련해 취재원 보호를 고집, 한때 영웅 대접을 받았던 뉴욕타임스 주디스 밀러(57) 기자가 결국 28년간 일했던 신문사를 떠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밀러 기자는 CIA 요원의 신분을 ‘흘린’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을 공개하길 거부해 85일간 옥살이를 했었으나 리비 전 실장과의 유착 관계가 도마에 오르면서 자사 편집진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데스크시각] 거꾸로 가는 전교조/ 손성진 사회부 부장급

    전교조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참 아이로니컬하다. 교원평가제는 분명 개혁적 방안인데 개혁적 교사단체라고 자부하는 전교조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뜻밖이다. 교원평가제 반대파에 맞서 싸우는 게 우리가 예상한 전교조의 모습이었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조합원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익을 지키려다 이율배반에 빠진 게 현재의 전교조다. 개혁을 부르짖다 스스로 개혁의 도마에 오르자 수구적 태도로 돌변한 꼴이다. 전교조는 거꾸로 가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 세력의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전교조는 교원평가를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보는데, 지나친 비약이다. 개인 평가와 경쟁이 곧바로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교원평가제를 구조조정의 수단이라고 치자.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구조조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들은 근로자를 해고하는 아픔을 감수한 끝에 살아남지 않았나. 전교조의 주장대로 지금은 교육의 위기 상황이다. 학급당 학생수가 50명을 넘고 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교육은 계속 팽창하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잠을 잔다.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이끌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매로 다스리고 싶어도 체벌금지 규정이 가로막는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정작 전교조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비뚤어진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을 몰아내기보다는 경쟁을 통해서 교육의 위기를 돌파해보자는 뜻으로 보여진다. 기업체는 물론이고 일반 공직사회에서도 경쟁과 평가의 개념은 도입된 지 오래다.5급 사무관이 팀장이 되어서 윗직급을 부리고 있다.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서 그에 맞는 인사를 하는 것은 많은 조직에서 일반화됐다. 다면평가와 평가의 수치화, 성과급·연봉제를 반대하는 것은 계속 ‘온실 속의 철밥통’으로 남겠다는 옹고집과 다름없다. 툭하면 연가투쟁을 하려는 것도 교사의 본분에 어긋난다. 교사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요구된다. 거리로 뛰쳐나온 교사들의 모습은 볼썽사납다. 교실에서 배움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거리의 선생님들을 곱게 볼 리 없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그로해서 한꺼번에 무너진다. 교원평가제는 이념과 상관없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만큼은, 보혁 논쟁을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이른바 ‘보수꼴통’이 전교조를 공격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념적 편가르기와 다름없다. 욕하는 보수보다 침묵하는 진보가 더 밉다. 전교조 교사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낸 성과들에 학부모들은 한편으로 박수를 보냈다. 촌지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고 폭력 학생들의 선도에도 애를 썼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학벌주의 타파와 같은 주장에는 많은 사람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이런 노력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점점 외면받고 있다.2003년 3월 9만 416명까지 증가한 조합원은 2년만에 8만 4400명으로 줄었다. 가입률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한 생각으로 전교조 초기부터 참여했던 교사들의 이탈도 눈에 띈다. 전교조가 외면당하는 것은 점점 강해지는 이념성 탓이다. 이념의 전장(戰場)은 정치권만으로 충분하다. 국민 대다수는 이념 논쟁을 지겨워한다. 학교가 이념의 마당이 되는 것을 부모들은 원치 않는다. 학교는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념은 강요할 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교사들의 몫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은 교육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나쁘다고만 가르치는 것은 일방적인 주입이다. 미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르쳐서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이끌어 줘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더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도록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 첫째다. 십년전과 똑같은 교안을 들고 가르치는 무사안일주의를 깨뜨려야 한다. 평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www.eduhope.net. 전교조의 홈페이지 주소다. 교육(education)에 희망(hope)을 주자는 뜻일 게다.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해야겠다. 손성진 사회부 부장급 sonsj@seoul.co.kr
  • 회의주의 늪에서 니체 구하기

    포스트모던 바람을 타고 요즘은 ‘존재’보다 ‘사건’이라는 단어가 인기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게 우리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언어습관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be동사다.‘He was dead.’의 참된 번역은 ‘그는 죽었다.’가 아니라 ‘그는 죽은 상태로 존재한다.’다. 항상 존재를 전제한 뒤 그 존재가 이런 상태에 있다고 설명하는 세계관이 바로 be동사다. 사건의 철학자들은 이 be동사의 세계관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 이렇게 보면 존재가 있고 그게 불거지면 사건이 되는 게 아니라, 사건 자체가 존재가 될 뿐 아니라 존재는 사라지고 사건만 남는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수증기처럼 흘러다니는 사건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낼 것이냐, 아니면 비록 촉촉한 물기만 남더라도 손을 오므려 쥐어야 하느냐. 슬로베니아 학술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알렌카 주판치치는 그래도 오므려 쥐어보자고 제안하는 쪽이다. 그래서 니체를 재해석한 ‘정오의 그림자’(도서출판 b 펴냄)를 내놨다. 알려졌다시피 니체는 독특한 문체와 문제의식으로 근대를 넘어선 철학자로 평가받으며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주판치치는 니체를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해석되고 이해된 니체가 아니라, 니체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주판치치는 니체의 중기 사상인 ‘정오’,‘한낮’의 비유를 파고든다.‘한낮’이라면 모든 그림자가 사라지는 때라는 이미지를 그리지만, 니체는 그림자가 가장 짧은 때, 즉 사물이 그림자를 다른 곳에 드리우지 않고 스스로 그림자 자체가 되는 때라 한다. 이 비유를 끌어와 주판치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그리고 있는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져든 니체가 아니라,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긍정과 생성을 품고 있고 드러내보였던 철학자로서 니체를 제시한다. 주판치치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슬라보예 지제크와 함께 ‘슬로베니아학파’로 불리는 철학자다. 때마침 니체와 관련된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다.‘책세상’에서 니체 전집 21권을 완간한 것. 특히 이 가운데 유고집 14권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니체 정본으로 공인된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사의 니체비평전집을 원본으로 삼아,3년 동안 번역 표준안을 마련하는 등 세심한 준비작업 끝에 번역한 것이다.1998년부터 시작된 작업이니 완간에만 7년이 걸린 셈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만추와 함께 온 요요마의 ‘바흐 산책’

    만추와 함께 온 요요마의 ‘바흐 산책’

    첼리스트 요요마(사진 왼쪽)의 인기는 음악회가 열리기 일찍 전부터 입증되고 있다. 오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요요마 독주회 티켓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클래식 음악가임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요요마 지난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공연티겟 가운데 R석(14만원),S석(12만원)은 이미 두달 전에 매진됐고, 현재 A(10만원),B(7만원),C(4만원)석도 다 팔렸다. 간혹 취소된 공연티켓만이 간간이 거래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공연기획사에는 티켓구입 문의가 쇄도한다. 기업체 등에서 걸려오는 전화에는 “회장님이 꼭 보고 싶어하는데, 표를 못 구하면 회사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담겼다.1995년 첫 내한한 이후 2002년부터 매년 한국을 찾고 있지만 그의 인기는 시들 줄 모르고 오히려 상한가를 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도전을 즐겨 그의 인기비결은 뭘까. 요요마의 음악세계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클래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펼친다. 30대에 들어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아이작 스턴,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액스 등 잘나가는 젊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며 실내악 연주에 에너지를 쏟았다. 우리나라에서 ‘액스-김­마 트리오’의 멤버로도 그는 유명하다. 이어 재즈 보컬리스트 바비 맥퍼린,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 브라질의 보사노바등과 협연하며 크로스오버 음악에도 도전하고, 영화 ‘와호장룡’음반에도 참여하며 영역을 넓혀 왔다. 지난 99년부터 동서양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실크로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누구보다도 앞서 일반 대중과의 교감에 다가서는 점이 매력. 음악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에다 따스한 인간미와 겸손함이 갖춰진 인간적 매력도 요요마의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준다. ●무반주첼로 조곡으로 승부 ‘바흐로부터의 영감’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중 3번,5번,6번을 선보인다. 항상 조연에 머물던 첼로를 독주악기로서의 주연자리를 만들어준 곡이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대부분의 거장들은 ‘첼로의 성서’라 불리는 이 곡을 어느 정도 음악적으로 무르익었을 때 연주하지만 요요마는 한창 젊은 나이인 26세때 녹음했다. 어떤 면에서 첼로 무반주 조곡은 다른 악기없이 진행되는 첼로의 ‘나홀로 연주’가 주는 무미건조함과 심오함이 다소 부담스러운 곡이다. 하지만 이번에 요요마는 다른 어떤 곡도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무반주 첼로 조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02)543-1601.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열리는 퇴직연금 시대] (4) 주식시장 파급 효과

    퇴직연금은 내년 주식시장에 최대 2조원의 신규 자금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열풍을 일으킨 적립식펀드에 이어 증시활황의 제2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선 퇴직연금이 1980년대 경제 호황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2 주가상승의 동력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퇴직금의 외부적립 규모 22조원 가운데 내년에는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5조원이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으로 전환될 것으로 분석됐다.DC형은 퇴직금 수령액이 투자손익에 따라 다르다. 이 가운데 2조원이 주식투자 자금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채권투자, 대출자금 등으로 운용될 DC형의 나머지 연금과 확정급여형(DB) 연금의 일부도 간접적으로 증시에 흘러들면 신규 유입액은 3조원이나 될 수 있다. 퇴직연금 전환 규모는 내년 5조원에서 2010년에는 9조 7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투자 유입액은 3조 9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퇴직연금의 법적 주식투자 한도인 40%를 적용했을 경우다.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의 운용에 대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면 주식투자 비중이 10∼20%로 떨어지면서 신규 유입액은 내년에는 5000억원,2010년에는 1조 9000억원에 그칠 수도 있다. ●미국 경제호황에 한 몫 퇴직연금은 퇴직금에 대한 개념을 단순한 ‘저축금’에서 ‘투자자산’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주식투자 자산의 규모가 불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적립식펀드는 올해 8조원 가까운 신규 자금을 증시에 끌어들였다. 덕분에 코스피지수(옛 종합주가지수)는 세계 최고인 36.3%나 급등했다. 증시 자금은 주식매입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주식 가치를 높이고, 이는 추가 자금을 불러들여 주가상승의 힘이 된다. 미국에선 DC형 퇴직연금인 ‘401K’가 다우존스 지수를 20년도 안돼 10배 이상 상승시킨 주역으로 통한다. 다우지수는 1982년 1000선에 불과했으나 그즈음 활발하게 채택된 401K의 주식투자 덕분에 지난 99년 지수가 1만선을 돌파했다. 이 시기에 미국 경제도 호황기를 맞는다.401K의 자산은 지난 84년 1000억달러에서 현재 2조달러로 커졌다. 미국 퇴직연금은 80년대 이전까지 거의 DB형이었으나 근로자들의 직장 이동이 잦아지면서 퇴직금 수익에 관심이 쏠렸고,DC형 가입자는 늘었다. 지금은 401K 자산의 67%가 증시에 유입되고 있다. ●국내 기관이 증시 주도 최근 국내 증시는 주식형 펀드자금과 연기금을 앞세운 기관투자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기관이 사면 지수가 오르고 팔면 떨어진다. 외국인의 투자동향과 관계없이 움직인다. 이같은 기조는 퇴직연금의 가세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퇴직연금도 주식형 펀드에 버금가는 수익률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보험·은행·증권 등 금융기관의 퇴직연금 유치 홍보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내년에 당장 근로자들이 퇴직자금을 주식투자에 쏟아붓는 일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퇴직자금은 주식형펀드처럼 수익추구가 중요한 여유 자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이성주 자산전략부장은 “자동차·조선 등 근속연수가 길고 이직률이 낮은 대기업 근로자들은 안정적인 DB형을 선호하고 정보기술(IT)분야 등에서만 DC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아울러 기업주 입장에선 무리한 임금인상과 이에 따른 퇴직자금 적립 부담을 피하기 위해 DC형을 고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런 사람 테러범 의심

    이런 사람 테러범 의심

    “테러범은 모자·마스크·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특이하게 배가 많이 나온 20∼40대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경찰청이 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가며 소개한 ‘테러범 특징과 식별요령’ 일부다. 테러범은 마스크나 수염 등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모자나 선글라스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지나치게 허리나 아랫배가 불룩한 사람은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 복대로 폭탄을 옷 안에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밖에 ▲일행이 아니면서도 복장과 행동을 맞추려고 애쓰는 젊은 남녀 ▲계절에 안 맞는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도 요주의 대상이다. 지하철 테러범은 승차권 발급이나 개찰구 출입 때 직원의 눈을 피하고 갑자기 행선지를 변경하거나 선로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고 줄자 등으로 길이를 측정하려는 특징이 있다. 쓰레기통이나 화장실 등에 가방이나 봉지를 실수인 척 내려놓고 급히 떠나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신용카드나 수표 대신 현금을 고집하고 국적이나 숙소를 물으면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테러범들의 특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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