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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다리엔 어떤 타이츠가 어울릴까

    내 다리엔 어떤 타이츠가 어울릴까

    찬바람이 불면서 타이츠가 새롭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한층 다양해진 무늬와 색상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긴 바지를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일같아 보인다. 발랄한 미니스커트나 쇼트팬츠, 세련된 펜슬스커트에 타이츠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싶지만 다리가 고민스럽다. 스타킹보다 두툼한 타이츠는 특히 다리 모양을 잘 파악해 선택해야 한다. 두께가 있기 때문에 잘못 신으면 오히려 안 입으니만 못하다. 무늬에 따라 다리를 굵게도 가늘게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축소효과’를 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키가 작은 여성은 줄무늬가 두드러지는 제품을 택한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다리가 길어 보인다. 이번 시즌 핫 아이템인 부티를 신을 때 타이츠의 색상과 부티의 색상을 통일하거나 약간의 차이를 두어 ‘톤온톤’으로 조화시키면 단절되는 느낌 없이 더 길어 보인다. 굵은 다리는 무늬의 간격이 넓거나 가로선이 들어간 타이츠는 꼭 참아야 할 제품. 작은 무늬가 세로줄로 배열된 것을 고른다. 문양의 크기가 작을수록,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로로 이어질수록 날씬해 보이기 때문. 사선무늬가 들어간 타이츠도 날씬해 보인다. O자형의 휜 다리는 고민이 많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줄무늬가 좁게 들어가거나 세로선으로 이어지는 제품이다. 휜 다리선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선무늬 타이츠가 약점을 가장 잘 보완해 주며 꽃무늬, 원형 무늬 등도 무난하다. 발목이 굵은 여성이라면 무늬가 들어간 제품은 가급적 쳐다보지도 말자. 발목을 중심으로 문양이 배치되어 있거나 포인트 장식이 있는 타이츠는 금물. 무늬가 없는 무지의 기본 타이츠 중에서도 어두운 색상을 선택해 발목을 포함한 다리 부분에 시선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 좋다. 다리 전체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지도록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목 부분을 강조하는 부티도 잠시 잊고 발목이 깊이 드러나는 하이힐을 고집해야 한다. 타이츠와 구두의 색상을 톤온톤으로 매치하면 다리부터 발까지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발목 부분이 두드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비비안 디자인실의 우연실 실장은 “밝은 색보다 어두운 색이, 큰 무늬보다 작은 무늬가 축소효과를 준다.”며 “밝은 색이나 큰 무늬가 들어간 타이츠를 신을 때는 스커트와 구두의 색상에 통일성을 두어 시선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날씬하게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독해~!”…개콘 ‘독한놈들’과의 독한 인터뷰

    “독해~!”…개콘 ‘독한놈들’과의 독한 인터뷰

    매주 관객들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거침없는 독설을 멈추지 않는, KBS 2TV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독한놈들’의 세 주인공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놈(곽한구, 최효종)은 독한 척했고 한 놈(정범균)은 순둥이였다. ’독한놈들’은 다시말해 ‘겁을 상실한’ 놈들이다. 왕비호와 더불어 ‘독설개그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지만 되려 미움을 받는 쪽은 이쪽이다. 왕비호야 연예인에게 일침을 가하며 속시원한 박수라도 받지, 이들은 겁도 없이 ‘일반인’, 즉 관객을 향해 총대를 겨눴다가 얄미운 눈총과 씁쓸한 웃음을 이끌어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한놈들’의 개그가 주목받고 있는 진짜 이유는 ‘독설개그 = 공감개그’라는 공식을 철저히 지켜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독한놈들’이 지칭하는 특정 일반인, 이를테면 ‘어쩡정하게 생긴 여자들’, ‘TV를 보고 있는 어린이들’ 등에 ‘혹시 내가 속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졸이며 그들의 독설이 ‘뻥’ 터질 때마다 인정하기 싫은 웃음을 떠뜨린다. ’독한놈들’ 때문에 속 쓰리던 그대, 여기 ‘독한 세놈’에게 거침없는 질문을 퍼붓는 유쾌상쾌 ‘독한 인터뷰’가 있다. [ 독한 놈들 vs 독한 인터뷰 ] 이하 곽한구는 곽, 최효종은 최, 정범균은 정. ▶ 독한놈들 잘들어! 너네들 다른 개그맨들이 독설 개그하면서 뜨니까, 니들은 일반인에게 더 독하게 하면 더 웃길 것 같았지? 번지수 잘못 짚었어. 니들이 왕비호보다 더 비호감되고 있는 거 알기나 해? 곽 - 어. 우리도 알아. 우리도 처음엔 이렇게 시청자들이 발끈할 지 몰랐어. 왕비호는 동방신기 욕하면 동방신기 팬한테만 욕먹던데, 우리는 왜 다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시청자들 우리가 ‘어정쩡하게 생긴 여자들’ 이라고 하면 ‘어정쩡’이란 기준에 ‘나는 아닐꺼야’하면서도 내심 찔려서 기분 나빠하던데, 다 알아. 얼굴 빨개지고 있는거. 우리는 ‘예리한 놈들’이야. “독해~” ▶ 너희들 개그가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고 ‘동심(童心)을 깰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거 알아? 최 - 확대 해석! ‘옳지 않아~’. 곽한구가 여성들의 외모지상주의를 점화하고 내가(최효종) 어린이들의 동심을 앗아간다고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그를 개그의 선상에서 보지 않는 시선이지.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려는게 아니야. 단지 건달 이미지를 가진 곽한구가 꼬집으면 낼 수 있는 웃음코드고, 어린 시절을 지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대를 이끌어 내려는 것뿐이지. 나와 한구는 고정 대상이 있는 듯 하지만 정범균이를 봐봐. 얘는 특정 계층이 없어.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다루려는 시도의 일환이지. 직장 상사나 선생님 등 그 대상은 무궁무진해. 왕비호처럼 유명세에 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좀더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거지. ▶ ’독한놈들’이 욕먹는 이유가 정당하다는 거야? 정 - 아니, 우리 모두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야. 예를 들면 왕비호가 독설을 가하는 연예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유명하다고 생각하던 ‘누구’이기 때문에 통쾌하기까지 하지. 물론 팬들을 제외하곤 말이야. 하지만 만일 그 개그의 대상이 특정인이 아닌 ‘나’를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지나치게 예민해져. ‘나는 아닐꺼야’하는 고집으로 듣다가도 왠지 내 얘긴 것 같은 공감대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우리 개그의 묘미인데 말이지. ▶ 곽한구, 자꾸 여자들 외모 거론하는데 ‘네 외모’로 그럴 자격있어? 곽 - 아니. 없어.(웃음) 나 역시 잘생겨서 외모 얘기 하겠니. 사실 ‘외모’를 꼬집는 건 오랜 개그 소재 중 하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한놈들’의 외모 지적 개그가 유독 악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직격으로 던지는 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는 오랫동안 건달, 범인 역을 전담해 왔어. ‘이번 개그에서 역시 건달 콘셉트를 따왔고. ‘건달 셋’이라는 일종의 개그 설정에 따른 대상 설정이 불가피했다고도 볼 수 있지. ▶ 말 잘나왔다. 셋 중에 넌 개그맨한지 제일 오래 됐잖아. 왜 이리 안 떴던 건데? 곽 - 아아, 왜 이래~.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범죄의 재구성’등 수작은 좀 있잖아.(웃음) 사실 나는 코너에서 ‘주연’이 된 적은 별로 없었어. 하지만 내 이미지는 확실히 굳힐 수 있었자고 생각해.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곽한구’라고 하면 ‘누구지?’라고 얘기하지만 ‘왜 있잖아, 건달, 범인역 자주 하는 애’라고 하면 ‘아하!’ 하거든. 임하룡 선배님도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 개그맨으로서 정말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 구축’이라고. 어느 날, 날 부르시더니 “한구야. 넌 잘하고 있는거야. 심형래 봐라. ‘심형래하면 바보, 바보하면 심형래’ 개그맨으로 살아가면서 대중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난 지금에 만족해. 열심히 해 나갈꺼야. 적어도 건달, 범인 역은 가장 잘하는 개그맨이 될 수 있도록. ▶ ’독한놈들’은 어떻게 만난 멤버야? 최- 사실 곽한구 형이 나와 범균이보다 2년 먼저 ‘개콘’에 입성했지. 우리 셋의 인연은 4-5년 전 대학로 개그공연단 연습생 시절부터 시작됐어. 당시 개그맨의 꿈을 꾸며 형, 동생으로 고생을 함께 하던 세 사람이 2007년에 들어서야 정말로 개콘에서 만나 개그호흡을 맞추게 된거야. 사실 ‘독한놈들’이란 개그는 나(최효종)와 한구 형에게 어울리는 캐릭터야. 우리의 일상 대화는 정말 ‘독하거든’. 친근해서 어떤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아. 크게 웃고 메모하면서 개그에 활용하지. 그런데 범균이는 달라. ‘독한놈’이 아니라 ‘순한놈’이지. ▶ 넌 ‘순한놈’인데 어쩌다 ‘독한놈들’에 껴있니? 정 - 나도 어색해 죽겠어. 전에 효종이와 ‘지역광고’ 코너를 할 때는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꽤 들었거든. 그런데 순해 물러터졌다고 하는 내가 ‘독한 놈’ 연기를 하려니 자꾸 말이 짧아지는 거지. 이를테면 독설 연기가 어렵다보니까 “꺼져, 시끄러!’등의 강한 말투로 마무리 하는 거지. 독한 척 하기도 힘들어. 최 - 당장 지금은 한구 형이나 내가 독한놈들에 어울린다고 생각될 지 모르겠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범균이는 최고의 개그맨이 될꺼야. 개그맨 특유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면 역할을 소화해내는 데 제약이 따르거든. 그런데 범균이는 무난하면서 개그 연기를 맛깔스럽게 해. 게다가 내가 이제껏 만나 본 가장 ‘착한 놈’이야. 선배님들이 그러시더라고. ‘못되고 능력있는 사람’은 2등 밖에 못하지만 ‘심성이 착하고 재능있는 사람’은 언젠간 반드시 1등을 한다고. 유재석, 박수홍 선배님등이 선례하고 할 수 있지. 동료로서 바라보건대 범균이는 향후 10년 안에 손가락 안에 드는 개그맨이 될꺼야. 내기해도 좋다구! ▶ 니들이 진정 ‘독한’ 놈들 이라고 생각해? 곽 - 아니, ‘독하다’는 의미가 무얼까? 4달 전, 우리가 처음 이 코너를 들고 나왔을 때 관객들은 우리의 독설개그 의미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독해~”를 외쳐 주셨지만, 지금은 달라. 그냥 우리가 거침없이 독설 개그를 던져도 웃음을 빵 터뜨리면서 하나의 유행어처럼 “독해~!”를 외쳐주시지. 우리의 독설 개그가 일반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성이나 비하를 띄고 있다고 과대 포장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개그는 개그일뿐. 우리는 ‘유쾌한 놈들’이 되고 싶으니까!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음식은 ‘사람’이고 그릇은 곧 ‘옷’이다. 하여, 곱게 단장된 밥상 위의 음식은 당연히 ‘스타’처럼 멋있게 보일 터. 그렇다면 우리의 것으로 세계적 ‘슈퍼스타’를 만들어봄직 아니한가. 바로 영원불멸의 진정한 ‘한류’말이다. 조선시대의 명품 도자기 맥을 잇는 조태권(60) 광주요(廣州窯) 대표. 그는 20년째 우리 음식문화의 ‘슈퍼스타’ 발굴에 고집하고 있다. 최고의 도자기는 물론이요 이에 걸맞은 음식과 술은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 2년 전이다. 중동 두바이 왕자와 일행들이 한국에 왔다. 이들은 조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식당을 찾아 저녁메뉴로 홍계탕을 주문했다. 홍삼과 닭, 버섯, 전복 등의 재료가 들어간 이 홍계탕은 한 그릇에 30여만원에 달하는 고가로 외국인을 겨냥, 최고품으로 개발된 것. 이들은 이날의 맛을 잊지 못했던지 다음날 숙소인 호텔에서 다섯 그릇을 주문했다. 지난해였다. 이들은 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식당에 들르지 못했다. 돌아가던 날 “타고온 자가용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홍계탕 13그릇을 배달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식당에서는 기꺼이 응했고 공항에서 540만원을 결제했다. 이후 두바이 부호들이 한국에 올 때면 홍계탕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소문이 났던지 2007년 ‘뉴스위크지’와 ‘뉴욕타임스지’에 한국의 홍계탕을 파격적으로 소개했을 정도로 홍계탕은 세계적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홍계탕 외에 전복갈비찜, 랍스터떡볶이, 랍스터잡채 등도 세계화를 위해 조 대표가 직접 개발해낸 스타급 메뉴로 한국을 찾는 고급 바이어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그가 3년 전 개발해낸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도 세계적 인기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07국제주류박람회(IWSC)에 ‘화요’를 출품, 동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5월 벨기에에서 열린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에서 우리의 전통주로는 처음으로 ‘화요’가 금상을 차지했다. 출시 3년 만에 수상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내에서도 일식과 한정식당, 골프장 등에서 양주 대신 ‘화요’를 찾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릇-음식-술’을 들고 외국에 자주 다니면서 한국의 고품격 음식문화를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매년 ‘아름다운 우리 식탁전’을 개최하면서 우리 식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코리아푸드엑스포 2008’이 한창 열리던 지난주, 때마침 한승수 국무총리가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하던 날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광주요 서울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강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낸다면서 한 30여분 동안 다른 질문을 할 틈도 없이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간다. “이제는 식생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변해야 합니다. 생계형 음식도 중요하지만 세계를 지배할 한국적 명품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미래성장의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IT산업인가요? 그건 다른 나라도 다 하는 겁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식문화입니다. 또 그걸 하루빨리 국가적 브랜드화해야 합니다. 일본은 최근 국가적으로 다시 ‘기모노’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 국가경쟁력의 상품은 문화상품인 것이지요. 요새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반짝했다 사라지는 감성적인 것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대부분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일본의 스시, 프랑스의 코냑, 미국 나파밸리의 포도, 스코틀랜드의 밸런타인 등도 마찬가지이지요. 다행히 이제야 우리도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가졌지만 음식과 술의 가치를 높이면 포장이 달라지고, 이럴 때 우리나라를 찾는 손님들은 진한 감동을 안고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전통 음식문화가 단절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저 잘 살아보자는 꿈밖에 없었습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술장사로 터부시했고 그러다보니 돈있는 사람들은 투자를 안 했지요. 우리나라는 지금도 대부분 생계유지를 위해 음식장사를 합니다. 옆집, 앞집 식당과 경쟁을 하게 되다 보니 강한 조미료를 쓰고 가격은 내려야 하지요. 우리나라는 인구 67명당 식당이 한개씩 있고 1년에 10만개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치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 음식발전이 더디지요. 식구들과 외식하려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가치가 높아야 찾게 되거든요. 이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들이 이에 뛰어들어야 하고 국책사업으로 지정돼야 합니다.” 그는 한식을 말할 때 이제는 ‘전통’이란 말을 빼자고 했다. 우리의 요리방법에 외국인들이 먹기 좋게,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코스요리 만들어 세계화로 나가면 그게 바로 우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뿌리가 ‘코리아’라고 불리면 된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20년 후 세계 자동차 시장은 1320여조원,IT산업은 2700여조원이지만 외식시장은 5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음식이란 한번 각인되면 아주 오래갑니다. 다른 산업처럼 리스크가 거의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음식이 세계화하려면 꼭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우리 재료로 세계의 눈높이에 맞춰 ‘퀄리티업’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경남 남해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을 해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하게 지냈다. 경기중 2학년때 5·16이 나자 아버지가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바람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다.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고등학교를 다닌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주리대학을 다닐 때 그는 학비는 스스로 벌어야만 했다. 선배의 도움으로 프랑스 식당에서 ‘버스보이’를 했다. 버스보이(busboy)는 웨이터의 심부름꾼으로 웨이터가 월급을 받으면 그중 15%가량 받는 것이었다. 냅킨접기, 접시닦기 등의 일이었지만 정직과 신뢰를 인정받아 곧 웨이터로 승격했다. 이후 방학 때는 웨이터로, 개강때는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메릴랜드 오션시티’의 한 스테이크집에서 3개월 동안 일해 5000달러를 벌어 부모가 계시는 일본에 들렀다. 당시 부친은 맥이 끊긴 조선 도자기 부흥을 위해 경기 이천에 광주요를 창업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1974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우에 취직했다. 입사 후 얼마 안 돼 아프리카와 유럽 지사장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어 김우중 대우회장의 특명을 받아 방위산업 영업을 맡기도 했다. 퇴사한 뒤에는 직접 무기거래사업을 벌였다. 이때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어울리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었다. 그러던 1988년 부친이 타계하자 모든 것을 그만두고 광주요 운영에 매진했다. 이후 도공들과 함께 선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질 좋은 도자기가 어떤 것이지 새삼 깨달았다. 결국 산화와 환원을 번갈아 시도하는 ‘중성기법’으로 붉은색, 푸른색을 함께 띠는 상감기법의 도자기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그가 우리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부르짖게 된 계기는 도자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 도자기 강국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가 균형있게 발달된 선진국이라는 걸 실감했고 그릇과 음식, 술 등이 등급별로 만들어져 어울리는 ‘명품’을 보게 됐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10년 후에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1병당 1000달러짜리 술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면서 우리 것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조태권은 누구 ▲1948년 경남 남해 출생 ▲1966년 일본 도쿄 미국인 고등학교(ASIJ) 졸업 ▲1973년 미국 미주리대학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3~1974년 일본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 ▲1974~1982년 (주)대우 섬유부· 철강부 특수물자부 근무. 그리스지사장 역임 ▲1988년 (주)광주요 대표 ▲1996년 재단법인 광주요 도자문화연구소 설립 ▲1998~2004년 아름다운 우리식탁전개최 ▲2003년 한식전문 ‘가온’ 1호점 개점 ▲2005년 증류식 소주 ‘화요’ 출시 ▲2006년 중국 베이징에 ‘가온’ 개점, 한식요리 전문 ‘낙낙’과 ‘녹녹’오픈 ▲2007년 런던 개최 국제주류박람회 ‘화요’ 동상 수상 ▲2008년 벨기에 개최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 ‘화요’ 금상 수상 ▲2008년 현재 (주)광주요·화요 대표
  • 알카에다, 금융위기에도 꿋꿋

    알 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테러조직들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끄떡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석유와 마약 판매자금을 두둑히 비축해 왔기 때문이다. 또 테러조직은 은행에 가지 않는다. 손에서 손으로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하왈라스’(hawalas) 방식을 고집해 왔다. 그래서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도 태연하다는 것이다. 고유가도 하나의 원인이다. 미국 재무부 테러분석 담당관 매튜 레비트는 16일(현지시간) “중동지역 산유국들은 사상 유례없는 고유가로 ‘돈 풍년’을 만끽하고 있다.”면서 “오일머니가 늘어나면 테러단체는 합법적, 불법적 활동 자금에도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수확량이 20배 이상 증가한 것도 테러조직이 지갑을 두둑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소녀시대 티파니가 하이힐을 고집하는 이유

    소녀시대 티파니가 하이힐을 고집하는 이유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의 남다른 하이힐에 대한 사연이 공개됐다. 티파니는 최근 방송된 케이블 채널 M.net ‘팩토리걸’(연출 권영찬) 2회에서 패션 매거진 인턴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하이힐을 고집해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에서 뒤로 처지는 등, 다른 멤버들에게 구박을 받고 있다. 그런 티파니를 향해 다른 멤버들이 일제히 “그러게 왜 오늘 같은 날 ‘하이힐’을 신고 나와 고생하냐?”고 다그치자 티파니는 “절대 하이힐은 포기할 수 없다.”고 각별한 사랑을 밝혔다. 이런 티파니의 하이힐 사랑은 다른 멤버들과의 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다른 소녀시대 멤버들을 향해 “너네는 키크잖아..”라고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결국 티파니는 패션 에디터터 화보를 찍던 날 선배 에디터에게 “업무 특성상, 일을 할 때는 하이힐을 신으면 많이 불편하기 때문에 편한 신발을 신을 것”을 권유 받았다. 사진=방송화면 캡쳐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주서 쓸 수 있는 ‘접는 반도체’ 개발

    우주서 쓸 수 있는 ‘접는 반도체’ 개발

    온도가 급변하는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접는 반도체’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적은 전력으로 구동이 가능해 접는 전자신문이나 전자종이, 웨어러블(입는) 컴퓨터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포스텍 화학과 이문호 교수와 김오현·함석규 박사팀은 ‘우주복 섬유’로 알려진 폴리이미드(polyimide) 고분자를 활용해 고성능 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 소자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고 13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신소재 분야 국제학술지인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터리얼스’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진이 개발한 반도체 제조 기술은 영하 269도~영상 400도의 온도 영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용 가능한 폴리이미드 고분자를 이용해 우주공간 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폴리이미드 고분자는 기계적 강도가 우수하고 합성시간이 짧아 반도체 제작 단가와 제조시간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 간단한 공정으로 원하는 두께의 반도체 활성층을 얻을 수 있어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폴리이미드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 경우 온도 변화에 따른 성능 변화가 없고 2V 이하의 전력으로도 구동이 가능하며 가볍고 쉽게 구부릴 수 있다. 이 교수는 “고집적화도 가능해 노트북 컴퓨터는 물론 접는 전자신문이나 전자책, 전자종이, 접는 컴퓨터, 옷에 입는 컴퓨터 등 미래형 제품 제작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여성&남성] 노처녀·노총각은 왜 결혼을 못할까

    [여성&남성] 노처녀·노총각은 왜 결혼을 못할까

    명문대 출신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과 억대연봉, 훤칠한 키와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따지다 결혼적령기를 놓쳐 노총각·노처녀로 살아가는 그들. 결혼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너무 까다롭다 못해 독특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조건만 따지다 세월가는 줄 모르고 있는 노총각·노처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커플매니저들에게 들어봤다. ■ 男 ●“노처녀·노총각임을 인정 안 하는 게 문제죠”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커플매니저 오지윤(46)씨는 “노총각·노처녀들은 자신들이 노총각·노처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예요.”라며 말을 꺼냈다. 결혼적령기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그게 심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은 문제라는 것이다. 오 매니저가 실례로 소개한 변호사 고모(38)씨는 명문대 졸업에 미국유학까지 다녀왔고 유명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A클래스 회원´이다. 하지만 고씨는 나이 마흔에 가깝도록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이 세워놓은 까다로운 조건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씨는 집안, 직업, 외모 외에도 ‘천주교도, 수도권 출신´ 등 요구하는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해외에서의 방탕한 경험을 우려해 ‘해외 유학 경험이 없을 것´ 같은 특수한 조항도 요구하고 있어 중매 성사가 더욱 어렵다. “이런 분들은 스스로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결혼이 조금 늦어진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위기감이 없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느긋한 게 문제죠.”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이라는 노총각들은 무조건 퇴짜 명문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정부부처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모(39)씨. 완벽한 조건을 갖춘 강씨지만 아직까지 짝을 만나지 못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커플매니저 고재수(46·여)씨는 강씨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정의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여동생 세 명이 늘 떠받들어주는 것에 익숙해진 게 강씨의 문제였다. 신경이 예민한 강씨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은 항상 조용했고, 강씨가 먹고 싶다고 말한 반찬은 반드시 그날 저녁상에 올라왔다. 강씨는 고 매니저에게 “여성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5년전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한 강씨는 고 매니저에게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을 당당히 요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을 잘 내조할 수 있는 팔방미인을 원했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여성을 만났지만, 어떤 여성도 강씨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나는 집안의 기둥이다. 결혼 후에도 아내가 기둥을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남성에게 끌릴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가지 조건만 고집하다보면 좋은 사람도 놓칠 수밖에 결혼정보업체 웨디안의 커플매니저 부유경(33·여)씨는 이름난 ‘커플 제조기´다. 내세우는 조건이 까다롭던 고객들도 부씨의 코칭을 받고 난 뒤에는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씨에게도 좀처럼 조언이 통하지 않던 회원이 회사원 최모(41)씨였다. 유명제약회사에 다니는 최씨는 수십억원대의 자산가이자 177㎝의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까지 갖춘 ‘훈남´이다.“마음만 통하면 어떤 여성이라도 좋다.”던 최씨였지만, 유독 ‘170㎝´가 넘는 키를 고집했다. 부 매니저는 우여곡절 끝에 프로필에 키가 172㎝라고 밝힌 이모(32·여)씨를 찾아 만남을 주선했다. 그런데 최씨는 첫 만남에서 이씨가 자신의 키를 “168㎝”라고 했다며 거절했다. 알고보니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이씨가 키를 4㎝ 낮춰 말했던 것. 부 매니저는 최씨의 고집을 꺾어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키가 170㎝가 넘어야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낀다는데 어쩌겠어요. 알고 보니 다른 업체 커플매니저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조건을 내세우기로 유명한 분이시더라고요.” ■ 女 ●성공한 여성의 고정관념과 결벽증이 장애물 결혼정보업체 비애나래의 커플매니저 이경(44·여)씨는 가끔 답답한 고객들 때문에 한숨 지을 때가 많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수많은 엘리트 여성들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나 가끔 난감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씨의 고객 중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김모(39·여)씨는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뛰어난 영어실력과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외국계 회사에서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김씨는 남자를 경쟁대상으로 보는 고정관념과 결벽증을 갖고 있었다. 직장에서 수많은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만큼 결혼할 남성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 직장에서 ‘남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성공하리라.´는 목표에만 매달렸던 김씨는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자 초초해졌다. 그러나 김씨는 40∼44세의 남성에 소득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조건만은 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불혹이 넘도록 여자 경험이 없는 ‘숫총각´만 소개해달라며, 결혼정보회사가 이를 검증해서 엄선해 달라고 ‘특별주문´까지 하는 등 난감한 요구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른 조건은 그렇다쳐도 ‘숫총각´ 부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여자가 35세 이상 나이를 먹으면 결혼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 경우 가장 적합한 상대는 나이든 재혼 남성인데 현실적으로 혼기를 놓친 많은 성공한 직장여성이나 전문직 여성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느낌·조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 결혼정보업체 큐피앙의 커플매니저 이연정(40·여)씨는 노처녀가 결혼 못하는 이유는 느낌과 조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고객 중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다니는 유모(30·여)씨는 인형같이 생긴 얼굴과 168㎝의 늘씬한 키로 주변에 항상 남자가 많았다. 같은 직장 연하의 미국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로 국제결혼에 실패했다. 유씨는 변호사, 의사, 검사등 ‘사´자 라인은 일단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결혼시기를 놓친 유씨는 “상대가 감성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니 마음이 닫혀 결혼생각까지는 안 든다.”며 상대 남성과의 지속적인 만남에 모두 실패했다. 조건은 조건대로, 느낌은 느낌대로 따지는 유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성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자들은 조건에 굉장히 민감하죠. 그렇다고 느낌을 배제하지도 않아요. 연애할 땐 나쁜 남자를 선호해도 결혼할 땐 자상한 남자를 원하거든요. 특히나 ‘골드 미스´들은 명예와 부를 갖추고 있으니 더 그렇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다가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지면 그냥 혼자 살고 만다는 경우가 적지 않죠.” ●“옛사랑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 여성분들은 정말 안타까워요”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커플매니저 전선애(37·여)씨는 옛사랑의 상처가 때로는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며 한모(34·여)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한씨는 대학교에 입학해 처음 만난 남자친구와 7년 동안 연애를 해왔지만 결국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말았다. 그녀가 차인 이유는 단지 남자친구에게 너무 잘해줬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 차일까 두려워 남자를 쉽게 못 만나는 우유부단한 여성이 되고 만 한씨는 어쩌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남성이 있으면 “이 남자 플레이보이 아닐까요? 나를 쉽게 버릴 것 같아서 불안해요.”라고 호소하면서도 하루라도 전화가 안 오면 “벌써 사랑이 식은 것 아닐까요?”라면서 상담을 요청한다.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 상대의 감정에 너무 좌지우지되다 보니 짝을 여태 못 만난 거죠. 안 됐지만 한씨는 앞으로도 결혼하기는 힘들어보여요.” 김정은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백제 부흥운동 16년째 연구 고고학박사 최병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백제 부흥운동 16년째 연구 고고학박사 최병식

    너무나 슬픈 운명이다. 통곡과 한(恨)도 많다. 비록 현장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삶과 죽음이 어떠했는지 13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있는 숨결로 다가온다. 한 남자가 ‘백제의 마지막’을 끌어안은 까닭이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 백제는 660년에 멸망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주장이다.3년 뒤인 663년이라는 것. 어째서? 백과사전에서 ‘주류성’이란 단어를 일단 찾아본다. ‘660년 7월18일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당(唐)의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이후 백제사람들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흑치상지(黑齒常之)와 복신(福信)이 웅거한 임존성(任存城)과 도침(道琛)이 이끄는 주류성(周留城)을 중심으로 부흥운동 세력이 통합됐다. 그리하여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크게 이겼으며, 이러한 기세로 부흥군은 200여성을 회복했다.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에 전념하고 일본에 있던 왕자 풍(豊)이 돌아와(662년 5월)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부흥운동 세력의 지휘부 내에 분란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풍이 복신을 죽이는 데에 이른다. 더욱이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倭)가 보낸 병사 2만 7000명이 백강(白江)에서 궤멸되고 풍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백제의 부흥운동은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류성과 관련, 다음과 같이 기록한 문헌도 있다. 백제 멸망 후 복신과 승려 도침 등이 부흥운동을 펼친 근거지로, 신라 문무왕 1년(661년)에 나당연합군을 물리치고 전세가 유리했으나 부흥군 지휘자 사이의 반목으로 663년 9월 성이 함락돼 백제 부흥운동은 끝이 나고 말았다. 이 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충남의 한산과 홍성·연기, 전북 부안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이 백강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해 농사지을 수 없는 곳이다. 싸움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굶주리기 쉽다.’고 적혀 있어 위치 추정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백제 멸망은 660년 아닌 663년으로 고쳐야” 이와 관련, 흥미로운 ‘삼천굴의 전설’도 있다. 당시 나당연합군은 백제 부흥군들이 숨은 굴을 찾아냈다.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청솔가지를 잔뜩 쌓아 놓고 무조건 불을 질러 쳐들어 갔다. 굴 속 깊숙이 숨었던 3000병사들이 모두 죽었다. 그들의 피가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그 골짜기는 지금도 ‘혈적곡’ 또는 ‘피숫골’로 불린다. 충남 연기 운주산에 올라보면 이같은 슬픈 역사의 현장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 주류성 일대에서 나당연합군과 백제·일본 등 동북아 4개국이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였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전쟁 드라마를 쓴다면 흥행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백제 부흥의 근거지 주류성은 운주산 일대에” 지난 11일 운주산 고산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제15회 백제고산대제를 개최하면서 백제 의자왕과 부흥군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삼천범종’ 타종식을 가진 것. 지역 주민은 물론 여러 고고학자들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사람은 최병식(57) 고고학박사. 비운의 주류성과 삼천굴을 찾기 위해 16년째 미치도록 한우물을 파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날 무역업을 냅다 팽개치고 ‘백제 부흥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논문도 ‘백제부흥’이었다. 국내에서 이런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그와 서울역사박물관의 김영관씨 등 단 2명이다. 최 박사의 명함에는 계간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도서출판 주류성 대표, 운주문화연구원장 등이 적혀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백제의 언어와 문학’‘백제산성의 이해’‘백제토기 탐구’ 등 백제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다. 최 박사가 직접 저술한 ‘최근 발굴한 백제 유적’도 눈에 들어온다. 지난 16년 동안 오로지 주류성을 만나기 위해 백제문고 33권을 완간했고, 관련 고고학 서적만 100여종을 발간했으니 간단치 않은 고집이다. ▶왜 주류성에 천착합니까. “여러 문헌에 보면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이후 3년여 부흥운동이 주류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 부분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습니다. 백제멸망은 660년이 아닌 663년 9월이라고 기록해야 합니다. 반드시 주류성을 찾아 역사를 다시 써야지요.1971년 무령왕릉을 발견했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주류성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6년 전, 그러니까 1992년 봄이지요. 우연히 운주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석비(石碑)를 보게 됐지요. 거기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지만 그 정확한 역사를 알 길이 없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지요. 며칠 뒤 서울로 돌아와 미국을 가게 됐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던 사업을 접고 주류성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면서 이쪽으로 계속 연구를 하게 됐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나중에 고고학 박사가 됐습니다. “사실 백제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계백장군과 의자왕 정도만 알았지요. 하지만 그때 운주산에 오르면서 전생의 업보 같은 걸 느꼈습니다. 어떤 운명처럼 1994년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상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백제에 관한 깊은 애정과 지식을 쌓게 됐습니다. 역사는 이긴 자의 몫이기 때문에 의자왕이나 삼천궁녀 등에 대해 잘못 기술한 것이 많습니다. 의자왕은 당나라에 잡혀 가기 전에 3년 동안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금괴 등을 몰래 숨겨놓는 등 방탕하지도 않고 백성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부흥운동도 의자왕에 대한 안타까움과 존경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성이 운주산 일대에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운주산에는 당시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산성이 있습니다. 또 아직 발견은 못했지만 3000병사가 몰살당한 삼천굴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일본서기’에도 이같은 기록이 일부 나오고 신채호 선생도 운주산 주변이 주류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운주산성에는 삼천굴, 여기에서 공주쪽으로 3㎞ 정도 떨어진 비암사에 주류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673년 백제의 후손들이 만든 불비상(佛碑像)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요.” ▶삼천굴 발굴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나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운주산엘 갑니다. 운주문화연구원이 거기에 있거든요. 그동안 연기군청과 함께 12군데를 시추했는데 아직 결정적인 근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불러 지표면 조사와 연구를 한 결과 동굴이 있을 법한 석회질 등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추정하기엔 삼천굴은 쌍굴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는 1997년에는 운주산 고산사 어귀에 ‘백제국 의자대왕위혼비’를 세웠다. 해마다 음력 9월8일 ‘고산제’를 열어 의자왕과 3000병사들의 넋을 달랜다. 백제학회 회원으로 1년에 한번씩 관련 세미나와 학술강연회를 갖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살아 있을 때 반드시 주류성과 삼천굴을 찾는 것”이라는 대답이 지체없이 돌아온다. 돈 되는 일도 아니고, 학술단체에서도 못하는 사라진 역사의 흔적을 외롭게 한 개인이 찾는다는 점에서 문득 경외심이 느껴졌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최병식은 누구 ▲1951년 충북 음성 출생 ▲69년 경동고 졸업 ▲76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92년 운주산성 일대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인 주류성 및 삼천굴 발굴작업 시작, 주류성 출판사 설립 ▲97년 운주산에 백제 부흥군을 위한 절 고산사 세움 ▲99년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고고학 석사 ▲03년 대한문화재신문 발행 ▲06년 상명대 대학원 사학과 고고학(백제부흥) 박사학위 취득,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창간 ▲08년 현재 백제사문고 33권 완간. 출판사 주류성 대표,‘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운주문화연구원 원장
  • 나무자전거 “통기타 음악은 일상의 안식처”

    나무자전거 “통기타 음악은 일상의 안식처”

    긴 머리를 휘날리는 전지현의 카메라 CF에 흘러나온 ‘너에게 난, 나에게 넌’과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로 시작되는 ‘개그 콘서트’의 ‘마빡이 송’을 부른 가수.‘나무자전거’라는 이름은 낯설지라도 이들의 목소리만큼은 그 어떤 유명가수들보다 친숙할 것이다. 포크 듀오 ‘나무자전거’의 멤버인 강인봉(사진 왼쪽·42)과 김형섭(오른쪽·40)의 음악 인생을 합치면 50년. 반세기 동안 통기타를 메고 전자악기를 쓰지 않는 ‘환경친화’ 그룹으로 요즘 부쩍 더 각광받고 있다. ●컴퓨터로 꽉 짜여진 음악은 왠지 답답 “어쿠스틱 음악은 순박하고 빈틈이 있어서 좋아요. 컴퓨터로 만들어 꽉 짜여진 음악은 왠지 답답하고 몸서리쳐지잖아요. 저희 음악이 대세는 아니지만,‘일상의 쉼표´처럼 꼭 필요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김형섭) 대학 졸업 후 국내 유명 광고회사에 입사했지만, 가족 그룹 ‘작은별 가족’을 함께했던 기억을 잊지 못해 다시 음악계로 뛰어든 강인봉.‘별이 진다네´로 유명한 아카펠라그룹 ‘여행스케치’출신 김형섭. 둘은 이제 가족과 같다.10년 전 듀오 ‘세발 자전거’로 출발했던 이들은 2001년 멤버 하나를 더 영입해 ‘자전거 탄 풍경’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나무 자전거’로 다시 둘이 의기투합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어릴 적엔 세발 자전거가 가장 큰 선물이잖아요. 어린 친구들의 동심처럼 맑은 음악으로 대중에게 큰 선물을 드리자는 생각에서 그룹 이름에 자전거를 쓰기 시작했죠.‘나무 자전거’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책을 감명 깊게 읽고 붙이게 됐어요. 이제 저희에게 음악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과 같아요.”(강인봉) 3년 만에 정규 2집 앨범을 발매한 이들은 이번엔 꽤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서영은이 피처링한 타이틀곡 ‘내가 사랑해’는 요즘 유행하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가미했고, 그룹 ‘시인과 촌장’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사랑일기’는 경쾌한 레게리듬으로 변화를 줬다.“저희 음악의 고집을 꺾었다기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포용했다고 봐주세요. 인간미를 잃지 않는 범위에서 음악적 외연을 확장하고 싶었죠. 통기타 음악은 무조건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연주와 반주가 동시에 가능하고 무궁무진한 화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타는 정말 매력적인 악기거든요.”(김형섭) ●상업성 판치는 가요계… 음악의 근본 잃지 말아야 하지만 고 천상병 시인의 유작시에 곡을 붙인 ‘나의 가난은’이나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한 ‘내가 갖고 싶은 건’과 ‘결혼하자’, 드럼 리듬을 배제한 ‘당신이 그 사람인가 봐요’ 등에선 이들 특유의 어쿠스틱 포크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천상병 시인 추모음악회에 출연했다가 ‘나의 가난은’이라는 시를 처음 만났어요. 고인의 자전적 시인 만큼 읽을수록 시가 주는 무게감이 각별했어요. 아등바등 움켜쥐기보단 마음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지요.”(강인봉) 기획상품 같은 음악들이 판치는 요즘 가요계에서 이들은 시류에 역행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텅빈 강의실에서 자연 공명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그 어떤 마이크를 썼을 때보다 풍성하죠. 상업성도 좋고 작품성도 좋지만, 음악의 근본을 잃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노래는 몇십년이 지나도 감동을 주기 마련이거든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촛불 재판 올스톱 될듯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가 법원의 위헌법률제청 결정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1962년 제정된 집시법 관련 조항이 헌재 결정을 계기로 변화될지 주목된다. 위헌 심판을 제청한 박재영(40·사시37회) 판사는 9일 서울신문 기자를 만나 “(정치적 계산 없이)단순하게 야간 옥외집회 금지가 헌법 위반인지 검토했고, 위헌적 조항이라고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위헌 신청이 들어온 뒤 다른 판사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구했다.”면서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벌금형 기소 집회 참가자들 재판 요청 잇따라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위 조직팀장의 선고가 연기된 데 이어 같은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다른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재판도 무기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법 단독재판부의 한 판사는 “위헌 결정이 내려졌을 때 피고인이 재심 등 불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도록 선고를 늦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된 촛불집회 참가자들도 잇따라 정식재판을 요청하며 헌재 결정 때까지 사법처리를 늦출 태세다. 검찰에 따르면 촛불집회와 관련해 1600여명이 입건됐고 이 가운데 40여명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불구속 입건자 1400여명은 사안에 따라 50만∼400만원의 벌금형으로 사법처리될 예정이다. ●14년 전에는 ‘합헌’결정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14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 헌재 전원재판부는 “일률적인 금지가 아니라 부득이한 경우 일정 조건을 붙여 허용하는 단서 규정이 있다.”며 3년 만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전원재판부는 “학문·예술·체육·종교 등의 집회엔 금지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야간이라도 옥내집회는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변정수 재판관은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제한요건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며 홀로 위헌 의견을 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헌재의 판단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씨 변론을 맡은 김남근 변호사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던 60년대 법률 규정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법 운영”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야간 집회에서 옥외집회를 금지한 것은 어둠 탓에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조명이 충분한 곳에서의 옥외집회까지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근 숭실대 법과대 교수도 “원칙적으로 야간 옥외집회를 허용하되, 한계 조건을 상세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이 제청한 위헌 심판 사건의 경우 개인이 제기한 헌법소원보다 헌재에서 위헌으로 결정될 확률이 높다. 법률전문가인 판사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재 창립 이후 지난달까지 판사가 제기한 440건의 위헌 심판 사건 가운데 185건(42.0%)이 위헌으로 결정됐다. 개인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은 1507건이 결정돼 15.2%인 229건이 위헌으로 인용됐다. 정은주 오이석기자 ejung@seoul.co.kr
  • [올 노벨 문학상 르 클레지오] 낮은곳 지향한 진정한 휴머니스트

    2001년 대산문화재단과 프랑스 대사관 초청 작가 교류에서 르 클레지오 강연의 통역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를 가까이서 보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멕시코, 그리고 미국의 뉴 멕시코에 거주하고 있던 그는 한국을 통해 아시아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이후 여러차례 한국을 여행했으며, 제2차 대산문화포럼에 다시 초청돼 한국의 작가·비평가들과의 교류를 공고히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장기 체류를 희망하면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 초빙교수직을 맡게 됐다. 세계 저명한 작가가 달랑 트렁크 하나를 들고 1년 이상 강의를 하러 다시 한국에 왔다. 수업 준비를 철저히 했을 뿐 아니라 학생들보다 항상 일찍 강의실에 도착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학생들, 또는 선생님들과 교내 식당에서 우동, 만두 등을 먹으면서 격의 없는 토론의 시간도 가졌다. 미국 부시 정부 강경파에 대한 비판, 프랑스의 사회문제·환경문제, 자본주의의 횡포 등 정치·사회 문제에서 한국의 생활·문화·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역 입문·토론·프랑스문학 등의 강의를 하던 그는 교과서의 진부한 지식이 아닌 생생한 정보, 세계에 대한 이해, 문화(문학·미술·음악 등), 인간에 대한 관심, 동물에 대한 애정 등에 대해 강의하고 발표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서 연락을 취했을 때 유유히 전철을 타고 학교 국제기숙사로 돌아오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는데 르 클레지오 작가도 파이마라고 하는 검은 래브라도종 암캐를 길렀다. 주변부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피지배자와 가난한 자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 작가에게 소중한 상이 돌아간 것에 진심으로 기쁨을 느낀다. 특히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완벽한 이중언어자이지만 꼭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고집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손쉽게 독자를 얻고, 시장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는 프랑스어 글쓰기를 고집했다. 또 작가에게는 국적이 없으며, 본인의 모국어는 프랑스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설픈 영어 교육의 광풍에 시달리는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고 본다.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로 계시기 때문에 조만간 한국에 오셔서 특강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날이 정말 기대된다. 이대와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셨기 때문에 이번 문학상은 왠지 한국작가의 상처럼 가까이 느껴져 더욱 기쁘다.
  • 美 외교 심장부에 北 ‘환희의 노래’ 울리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6일 낮(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는 ‘환희의 노래’라는 북한 곡이 경쾌하고 격정적인 피아노 선율을 타고 울려퍼졌다. 탈북자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34)씨가 미국 외교의 심장부에서 북한 곡을 연주하는 ‘사건’을 만든 것. 탈북 예술인이 국무부에서 처음 연주한 자체가 주는 상징성만으로도 이날 행사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청중 100여명 기립박수로 화답김씨가 연주한 ‘환희의 노래’는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가고 난 후 한반도에 넘쳐흘렀던 해방의 감격을 오선지에 담은 노래. 그는 “북한에서는 이 노래를 누구나 좋아한다.”면서 “여러분이 북한 사람들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곡을 골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곡의 연주가 끝났을 때 가쁜 숨을 몰아쉴 정도로 힘차고 박력있게 건반을 두드렸고, 청중들은 낯선 북한 노래를 호기심 있게 들었다. 김씨는 또 “북한에서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의 한(恨)과 남북통일의 밝은 미래라는 개인적 염원을 담았다.”며 자신이 편곡한 ‘아리랑’을 선사했다. 앙코르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임시 공연장이 된 국무부의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 모인 청중 100여명은 기립박수로 그의 공연에 화답했다. 그는 “피아노를 배울 때 미국 국무부에서 연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무엇을 고집하고 한 길을 가다 보면 끝이 온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아직 끝이 없는 것 같다. 다음에는 우주에서 연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소감을 밝혔다.●“음악의 힘을 인권문제로 연결” 김씨는 “인권 문제는 데모나 캠페인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면서 “음악의 힘은 참으로 거대하며, 이를 인권문제에 연결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연주회는 국무부의 민주·국제문제 담당 폴라 도브리안스키 차관과 인권·노동담당 데이비드 크라머 차관보의 주선으로 마련됐다. 국무부 관계자는 “김씨의 이번 공연은 미국과 북한 주민과의 연대감에 대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김씨의 문화 예술적 자유를 향한 불굴의 신념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평양 음악무용대학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1999년부터 평양 국립교향악단의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2001년 탈북했다. 그는 2003년 남한에 입국했다.kmkim@seoul.co.kr
  • 평생 외길 ‘장갑작가’ 예술혼과 땀의 진수

    평생 외길 ‘장갑작가’ 예술혼과 땀의 진수

    30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동안 단 한 번도 한눈 팔지 않고 붙들어온 일이 있다면, 그건 숙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견작가 정경연(53·홍대 섬유예술학과 교수)에게 장갑작업이 그렇다. 지난 30년 동안 하얀 면장갑을 손에서 내려본 적이 없었다.‘장갑작가’란 별명이 이름보다 더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가 서초동 세오갤러리에서 미술인생 30주년을 기념한 전시를 열고 있다. “거창하게 몇 주년이라는 데 의미를 둘 생각은 없어요. 그저 초발심으로 다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거지요.” 처음 미술학도로 발을 디뎠던 그날의 초심을 되찾는 것,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이 전시의 취지라고 작가는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30년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표작들로 채워졌다. 섬유, 회화, 조각, 비디오 설치 등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어온 그의 고집이 한자리에서 읽힌다. 그런데, 하고많은 오브제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면장갑이었을까.“대학교 2학년 때 유학을 떠났었는데, 그때 이역만리의 딸이 작업하다 손 다칠까봐 걱정이 되신 어머니가 면장갑 한다발을 소포로 보내셨어요.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그걸 어머니 선물로 만들 작품재료로 썼죠. 나중에 지도교수가 신선하다며 전시회 출품을 권유한 거였어요.” 작가가 면장갑 오브제를 빌려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평등’이다.“힘겹게 새벽을 밝히는 청소부였든, 노숙자였든, 교황이었든 장갑을 낀 손은 밖에서 보면 다 똑같지 않냐?”고 반문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장갑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건 1981년. 응용미술쯤으로 치부돼온 섬유작업을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 작품에 들어가는 장갑재료의 수는 적게는 수십 수백장, 많게는 1t 트럭 2대 분량이 들어갔다. 경기 의왕의 300여평 되는 작업실 가득히 재료를 쌓아놓고 “돈 안되는 미술작업을 하고 있다.”고 작가는 활짝 웃었다. 기실 섬유예술은 미술에 있어선 3D업종이나 마찬가지.1년에 한두 작품밖에 못할 때도 있을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만 아니다. 미세 섬유가루, 진드기, 화학약품 등 유해한 작업환경도 견뎌내야 한다. 작가는 장갑을 소재로 삼아 꾸준히 여러 작업방식을 시도해왔다. 예컨대 장갑을 평면 가득 붙여놓은 듯한 1994년 ‘무제’는 본을 떠 종이로 만든 작품. 백남준을 기려 만든 설치작품 ‘하모니’ 시리즈에는 비디오아트를 접목시켰다. 이번 전시회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블랙홀’ 시리즈다. 수레바퀴 모양의 작품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존재는 원초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다.30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 작가의 의식이 ‘입체’와 ‘평면’을 어떻게 재구성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다.30일까지.(02)583-5612.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07일 TV 하이라이트]

    ●스페이스 공감(EBS 밤 12시10분) ‘홀로 아리랑’‘터’‘개똥벌레’등 한반도의 자연과 민족의 삶,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노래로 담아온 포크음악 작곡가 겸 가수 한돌이 독도를 주제로 무대에 섰다. 한돌이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독도를 11차례 다녀오면서 느꼈던 힘들지만 재미있고 아름다웠던 이야기와 그의 독도사랑을 들어본다. ●난 네게 반했어(KBS2 오전 9시) 민선이 일을 그만두고 도진과 결혼해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하자 항구는 민선을 말리고, 다급해진 미경은 우진에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민선을 잡아달라고 한다. 한편 덕배네와 민서, 우정까지 가세한 지원 길들이기 작전이 효과를 발휘한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신 지원은 우진이 준 편지를 꺼내드는데….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결혼 4년차, 시어머니의 배려로 이제 막 분가한 게렐마 부부. 아기 키우랴, 살림하랴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한국어 공부만큼은 열심이다. 하지만 고향 몽골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짓기 일쑤다. 남편 철원씨는 그런 게렐마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다. 행복한 게렐마 가족의 오늘을 함께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30분) 2008년 상반기 최고의 악동들이 컴백한다. 지난 3월, 내 맘대로 안되면 막무가내 고집을 피웠던 혜진이와 우진이. 아무 생각 없이 밖에만 나가면 뛰어다니기에 바쁜 혜진이. 아빠가 싫다며 온몸으로 아빠를 거부했던 우진.6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이 변했다. 확 달라진 우진이와 혜진이를 만나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인디언들이 사용해 오던 많은 천연 보디제품이 이젠 지역주민들의 전통으로, 나아가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웰빙제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브루나무에서 ‘브루 브랑코’라 불리는 송진을 채집한다.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향료로도 쓰인다. 또 목욕 할 때, 빨래 할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춘자네 경사났네(MBC 오후 8시15분) 춘자는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않는 주리를 나무란다. 한편 영애는 만석과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을 분홍을 대동해 함께 만난다. 결국 한바탕 싸우고 온 영애를 위로해 주던 분홍은 점심시간이 끝나 가게로 복귀하고, 영애는 분홍의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낀다.
  • 北 ‘核고집’에 기로선 6자회담

    북한이 지난 1∼3일 평양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북·미 회동에서 군부 관계자까지 참석,‘남북 동시 핵사찰’을 거듭 주장하며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90년대 초 이전 ‘과거핵’ 규명에 필요한 핵시설의 검증과 시료(샘플) 채취에 대한 미국측의 요구를 다시 거부하면서 주요 핵시설에 대한 ‘참관’ 수준의 방문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5일 6자회담에 정통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 체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한 것은 북측이 미국측이 제시한 검증 의정서에 합의하려면 남북 동시 사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 이견을 빚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협상에는 군부측 인사인 이찬복(상장)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표도 참석했다. 북한은 지난 7월 베이징 6자 수석대표회의에서도 한·미 등의 핵 검증체제 수립 요구에 남북 동시 사찰로 응수하다가 결국 언론 발표문에 검증 대상으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서’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하는 데 성공했다. 북측은 또 지난 8월26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남조선과 그 주변에 미국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검증이 우리의 의무이행에 대한 검증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모든 핵시설·핵물질에 대한 접근과 시료 채취는 ‘강제사찰’인 만큼 민감시설을 관리하는 북한 군부가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이번 회동에서 군부가 직접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북측이 남북 동시 사찰을 요구하며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미 등 다른 참가국들의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그동안 군축회담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수 차례 요구해 왔다. 하지만 미국측은 군축회담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아니라 불가능하며 평화협정은 비핵화가 이뤄진 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북측 제안을 수용할지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힐 차관보가 지난 5월 북·미 싱가포르 회동에 이어 지난 7월 6자 수석대표회의, 최근 평양 북·미 회동까지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북측에 많은 제안을 했으나 결국 미국내 강경파와 협상파의 갈등만 야기해 6자회담이 북한에 끌려다니게 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향후 6자회담의 성패는 이달 중 이뤄질 북·미간 재접촉 및 6자 수석대표간 회동, 외무장관 등 고위급 협의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신승훈 “한국대표 발라드 1人 되고싶었다”

    신승훈 “한국대표 발라드 1人 되고싶었다”

    2년만에 컴백한 신승훈이 지난 18년간 발라드 가수를 고집했었던 이유를 밝혔다. 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재즈바에서 새 음반 쇼케이스를 가진 신승훈은 7일 발매 예정인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의 수록곡을 공개했다. 새 앨범 발매 소감을 전하던 신승훈은 그간의 음악 활동에 대해 짧게 회고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단 한명의 발라드 가수가 되고 싶었던 포부를 털어놨다. 신승훈은 “지난 10집 까지 발라드를 고수했던 이유는 일명 ‘신승훈표 발라드’라고 불리는 기존의 나만의 발라드 색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이는 지난 18년 동안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승훈은 그간 발라드 음악에 있어서만은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가 기억되기를 바랬던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사실 나는 발라드계에 있어 ‘주관식 가수’가 되고 싶었다.”며 “만일 ‘국내 대표적인 발라드 가수는?’이라는 질문이 있다면 1,2,3번의 한 보기 안에 등장하는 가수가 아닌, 대중들이 오직 주관식 답으로도 ‘신승훈’이라는 답이 나올 수 있길 바랬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 대해 신승훈은 이러한 음악적 흐름에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신승훈은 “10집 앨범을 기점으로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며 “지금껏 신승훈표 발라드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브릿팝과 뉴에이즈, 팝락등 다양한 음악색의 접목을 시도했다. 데뷔 19년차 가장 큰 음악적 변화가 느껴지는 앨범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신승훈은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점진적인 변화였다.”며 고개를 저었다. 신승훈은 “그간 발라드에 가장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우연히’등의 곡을 통해 맘보와 락 등 변화를 꾀해 왔었다.”며 “하지만 대중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처럼 발라드 곡 위주의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이번 앨범으로 앞으로 제가 선보이고 싶은 음악 색의 방향을 제시해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신승훈은 프로젝트 앨범 ‘3 웨이브즈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Of Unexpected Twist)’을 통해 총 3장의 미니앨범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7일 발매되는 첫 번째 앨범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에는 타이틀 곡 ‘라디오를 켜봐요’를 비롯해 총 6곡이 수록돼 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키메라 “국적을 바꾼다는 건 상상도 안해 봤어요”

    키메라 “국적을 바꾼다는 건 상상도 안해 봤어요”

    ‘파페라, 한국인이 처음 선보였다?’ 1980년대 중후반 한 한국인이 이른바 ‘파페라’라는 장르로 유럽무대에 선풍을 일으켰다. 화려한 한복차림과 고전 문양을 본딴 눈화장으로 객석을 압도했던 키메라(본명 김홍희·54)다. 그의 데뷔 앨범 ‘로스트 오페라’(1984)는 전 세계적으로 1500만장이 팔릴 정도로 화제가 됐다. 당시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그에게 ‘한국에서 온 파페라 여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그는 음악과 멀어졌다. 그해 9월 다섯살난 딸 멜로디가 열흘간 납치됐기 때문이다. 레바논 부호인 남편의 돈과 그의 유명세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때의 충격과 자책은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앗아갔다. 그랬던 그가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22년 만에 처음 고국을 찾았다. 재외동포재단이 마련한 ‘2008코리안 페스티벌’(8일까지)에 그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키메라를 지난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모자에서부터 스카프, 옷까지 모두 흰색으로 차려입은 그는 이제 중년 여인이 다 됐다. ●“딸이 저의 닫혔던 문 열었죠” “딸 멜로디가 그러더군요.‘엄마, 이젠 노래하세요’. 엄마 목소리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노래하면 엄마 스스로 행복할 것 같다고요. 저의 닫혀 있던 문을 열어준 거죠.” 지난해 6집 발표와 함께 웹사이트를 열고 올 2월 국내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팬들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로스트 오페라’를 재편곡한 7집 ‘로스트 오페라 파운드’도 곧 낼 예정이다. 그는 30년이 넘는 외국생활 동안 한국국적을 고집했다.“프랑스와 스페인에서 국적을 주겠다고 했지만 국적을 바꾼다는 건 상상도 안 해 봤어요. 이중국적을 갖는 것도 왠지 고국을 배반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88올림픽 당시 공연제의를 받았지만 무산돼 크게 실망한 적도 있다. 키메라의 파페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음반발매는 24년 전 파리에서 음악학교를 수석졸업하고 딸을 출산한 그에게 남편이 준 선물이었다. 당시 이지 리스닝 음악의 거장인 프랑크 푸르셀과 영국의 팝전문가 스티브 롤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의 앨범에 참여했다. 쟁쟁한 제작자에, 팝도 오페라도 아닌 정체불명의 음악은 금세 화제를 모았다. “저희끼리도 몇달을 서로 승강이하다 클래식은 청취층이 좁으니 모던한 분위기로 팝과 섞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때만 해도 클래식은 클래식, 팝은 팝이었죠. 그러니 오페라를 대중음악으로 만들어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다니…처음에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파페라가 널리 퍼지고 오페라가수와 팝가수가 서로 넘나들죠. 제가 다리를 놔준 셈인가요?” ●국회·용인 호수공원서 공연 이번 축제에서 키메라는 4일(국회의사당 잔디마당)과 5일(용인 호수공원) 이틀간 공연한다. 활동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오페라 ‘마적’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오스트리아 카운터 테너 아담 노페즈와 듀엣으로 부른다.“과격한 화장에, 클래식의 틀을 깼다는 비판을 들어가며 활동했었죠.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큰 용기와 욕심이 생겨요.” 글 사진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나를 움직인 한 마디] 네가 봤어?

    [나를 움직인 한 마디] 네가 봤어?

    ”네가 봤어?” 이 한마디는 어린 시절 나를 적어도 다섯 살은 겉늙게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고 무조건 내 말이 옳았던지라 친구들은 웬만해선 나에게 우기려고 들지 않았다. 내 말이 백번 옳아서가 아니라 기어코 내가 이겨야만 논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친구만은 달랐다. 공부를 잘했던 성대일이란 친구는 나와 말싸움을 벌였다 하면 끝까지 그럴싸한 근거를 대며 날 압박해오곤 했다. 그렇게 서로 우기기 논쟁을 벌이던 어느 날, 친구가 대뜸 나에게 “지구가 둥그냐”라고 물었다. “바보야, 지구는 둥글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논쟁은 계속됐다. “네가 봤어.” “야, 그걸 꼭 봐야 아냐. 달 착륙 사진에도 나오잖아. 그 사진이 조작된 거라면 어쩔 건데.” 순간 나는 주춤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그걸 뭘 보고 말고 하나.’ 그러나 열두 살의 우리에겐 어떤 사실을 가지고 우기기 전쟁에 임할 때 ‘직접’ ‘본’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내게 그 말을 했던 친구도 지구가 네모나 마름모꼴이라고 우긴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내가 미워서 그랬을 터다. 어쨌든 그날 우기기는 내가 졌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게 너무도 분명했으니. 친구가 내게 던진 “네가 봤어?” 이 한마디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혹 잘못된 것은 아닐까?’ 되짚어 보며 내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반대하는 것도 다르게 생각해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말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요즘에도 내 머릿속에 강력하게 살아남아 생활 곳곳에 적용되고 있다. 유언비어를 터뜨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도 이 말을 생각한다. “네가 봤어?” 또 사랑하는 아들딸이 안타깝게도 나를 쏙 빼닮아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기기 선배로서,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네가 봤어?” 배칠수_ 1999년 수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한 후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라디오 디제이로, 종횡무진 방송가를 누비고 있는 방송인입니다.
  • 가을바람 춤바람 신바람

    가을바람 춤바람 신바람

    제29회 서울무용제가 13일 오후 6시30분 신라호텔에서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월2일까지 20여일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진행된다.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서울무용제는 한국의 창작무용을 한자리에서 비교감상할 수 있는 경연행사이자 춤 축제. 현대무용부터 발레까지 모든 장르의 무용이 소개되며 특히 각 단체(개인)가 한해 동안 쌓아온 기량을 과시하는 신작들이 대거 출품되는, 국내 최대의 무용 행사이다. 올해 무용제에 참가하는 단체(개인 포함)는 사전행사와 본 행사를 포함해 총 60여개. 이 가운데 본선에 오른 20개 단체가 자유참가·경연대상·경연안무상 부문을 놓고 겨룬다. 우선 14·15일 오후 7시30분 무용제의 막을 여는 ‘OLD & NEW Ⅱ’는 20∼60대에 걸친 신ㆍ구세대 스타급 무용수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공연. 제97호 살풀이춤 전수교육 보조자인 김명자의 ‘살품이춤’부터 최데레사 충남대 교수의 ‘라 벨라(La Bella)’, 국립발레단 이원철ㆍ김리회의 ‘고집쟁이 딸’, 신세대 안무가 차진엽의 ‘飛 나비’ 등을 볼 수 있다. 17·19일 있을 자유참가작부문 공연에서는 내년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 진출권을 노리는 6개작품이 선보인다.SKJ 댄스컴퍼니의 ‘강강’, 주목댄스시어터의 ‘불편한 진실’, 황규자 컨템포러리 발레시어터 ‘Ywan’의 ‘경판 24 장본’, 상명 한오름 무용단의 ‘처용판타지’,LDP 무용단의 ‘더 스트레인저스’, 류화진 무용단의 ‘물의집’ 등이 그 작품들이다. 무용제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21∼31일의 경연대상부문 공연. 김혜림 안무의 ‘고리와 꼬리’, 김성한 안무의 ‘러브 어페어’, 김충한 안무의 ‘무고의 옥’을 비롯해 8개 팀이 대상과 연기상을 두고 경연을 벌인다. 젊은 안무가들의 소규모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경연안무상 공연은 15∼19일 영댄스프로젝트 등 6개 팀이 참가해 소극장에서 진행된다. 한편 13일 개막식은 국립발레단, 국립무용단, 테너 손기동, 소프라노 김은정, 뮤지컬 배우 김선경 등의 축하공연으로 진행될 예정. 이 자리에서는 무용예술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이에게 ‘아름다운 마음상’을 주는 시상식도 있다. 마지막날인 11월2일 있을 시상식은 KBS 1TV를 통해 녹화 중계되며 무용제 기간 중 아르코극장에서는 최고상을 받은 안무자들의 사진들이 전시된다.(02)744-8066.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소말리아, 해적에 무력사용 승인

    지난달 26일 러시아산 탱크 33대를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이 해적에 납치된 사건과 관련, 당사국인 소말리아 정부가 외국 군대의 무력사용을 승인했다고 1일 AP통신이 보도했다. 모하메드 자마 알리 소말리아 외무부 국장은 1일 “외국 군대가 사전에 소말리아 정부와 협의하는 조건으로 무력 사용을 승인한다.”면서 “국제사회가 해적들과 교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이 선박의 피랍 직후 소말리아 해역에 초계함과 구축함 등 해군 병력을 급파했다. 선박 소유주와 협상 중인 해적들은 러시아인 등 21명과 무기를 풀어주는 대가로 2000만달러(241억 4000만원)를 내놓으라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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