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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회없는 시인의 삶 살겠다”

    “후회없는 시인의 삶 살겠다”

    “30대 중반부터 어쭙잖은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뒤 조계종 종단개혁이며 교육개혁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이제 홀가분하게 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창작열을 후회없이 불태우겠습니다.” 조계종 교육원장으로는 처음으로 5년 임기를 다 채우고 오는 24일 퇴임하는 청화(65) 스님. 퇴임에 맞춰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월간문학 출판부)를 낸 스님은 16일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를 쓰며 살고 싶었지만 출가승의 어쩔 수 없는 소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제부터는 후회없는 시인의 삶을 살겠다고 거듭 밝혔다. 청화 스님은 격동기 조계종단 안팎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실천했던 젊은 스님들의 모임인 실천승가회의 중심 인물. 1994년 종단개혁에 깊숙이 관여했고 그 개혁의 정신을 무엇보다 조계종단 교육에 담아내야 한다는 뜻을 세워 조계종 최고 대의기관인 중앙종회에서 오래도록 활동했다. 2004년 교육원장 자리에 오른 것도 ‘개혁의 큰 뜻을 살려달라.’는 전 총무원장 법장 스님(2005년 입적)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것. ‘체질에 안 맞는다.’며 고사했지만 막무가내로 청하는 법장 스님의 뜻을 따라 결국 5년 임기를 모두 채우게 됐다고 한다. ●5년 임기 마치고 24일 퇴임 “전생의 업 때문에 시인이 됐다.”는 말마따나 따져보면 스님이 출가한 계기도 문학이다. 소년시절 우연히 춘원 이광수의 산문집을 읽고는 그 산문집에 자주 등장하는 절 집을 찾아가 발심을 했다고 한다. 문 틈으로 들여다본 법당의 금빛 조각(불상)과 댓돌위에 달랑 놓인, 누구 것인지도 모를 한 켤레의 흰 고무신에 왠지 모를 환희심을 가졌고 결국 머리를 깎았다. 시인이 되고 싶은, 조금은 모순된 생각에서 출가를 했지만 절집 살이는 시인의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불도 해야 하고 수행도 해야 하고 절집 살이가 그리 녹록한가요.” 결국 갖고 있던 문학 책이며 습작들을 모두 불태우고 스님의 길만 달리던 무렵 소요산 자재암에서 함께 습작했던 도반 스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승복에 감춰졌던 ‘시인’이 되살아났다.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채석장 풍경’ 당선으로 공식 등단한 시인이다.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등단 후 31년만에 처음 낸 시집. “등단 전 선방에서 수행을 열심히 했고 지금도 나름대로 화두 참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스님은 시를 쓰면서도 시집 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지인들이 시집을 내라는 제의를 했지만 퇴임 후로 미루다 최근 ‘퇴임에 맞춰 시집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문에 고집을 꺾었다. ●등단 후 31년만에 낸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표제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포함해 시집에 담긴 시들은 시인이 되고 싶어 출가했지만 개혁적인 실천운동가로 살았던 스님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의 감성과 출가 수행자의 냉철함 사이를 오가는 고민도 적지 않다. ‘몸을 따라가는 길에는 아침 연꽃이 멀어지고 노젓는 사공 마음에는 달빛 언덕이 가까운 법. 이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인생을 더 묻지 말라.’(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무슨 전쟁이 끝난 밤이냐 사선을 넘어온 듯한 목숨들이 살아 있다고, 아 살아 있다고 외치는 저 조용한 환호성을 보아라’(밤 불빛) “시가 너무 감성적으로 흐르면 썩거나 곪아버린다.”는 청화 스님. “시를 짓는 것조차도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물질과 몸 중심에 빠진 세태 속에서 인간의 존엄한 품위와 정신성을 살려낼 수 있는 방편이라면 언제까지든 시를 쓰겠다.”고 말한다. 글ㆍ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만원 한장으로 타보는 나무자전거

    만원 한장으로 타보는 나무자전거

    ‘만원의 행복’. 경제가 힘들다. 대중음악계도 힘들다. 라이브 공연을 즐기고자 하는 음악팬들의 주머니 사정도 힘들다. 해외 뮤지션 공연은 좌석에 따라 10만원을 훌쩍 넘기고 20만원 대로 치솟는 경우도 있다. 국내 뮤지션들의 공연은 소극장 공연이라고 해도 웬만해서 5만원 안팎이다. 만원 한장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있다면? 최근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깔린 ‘원 모어 타임’으로 사랑받고 있는 2인조 포크 밴드 나무자전거가 대학로 스타시티에서 오는 27일부터 열흘 동안 소극장 공연을 갖는다. 입장료는 1만원이다. 5만원짜리도 있다. 5만원짜리는 그동안 나무자전거가 내놓았던 정규앨범과 싱글 CD 5장이 함께 주어진다. 이 밴드는 지난 2006년에도 만원짜리 콘서트를 열어 ‘만원’ 사례를 기록한 바 있다. 나무자전거는 작은별 가족의 막내 강인봉(리드기타·보컬)과 여행스케치 출신의 김형섭(리드보컬·기타)으로 구성된 밴드다. 원래 세발 자전거로 뭉쳐 활동하다 풍경의 송봉주(하모니카)까지 합쳐 자전거 탄 풍경으로 밴드를 확대해 2001년 앨범을 내며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크게 히트시켰다. 나중에 송봉주가 나가며 나무자전거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강인봉이 작은별 가족 시절 불렀던 ‘나의 작은 꿈’, 김형섭의 여행스케치 시절 노래, 각자 솔로나 프로듀서 시절 노래, 그리고 세발자전거, 자전거 탄 풍경을 거쳐 오늘날 나무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음악이 세미 뮤지컬 형식으로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라이브와 어쿠스틱을 고집하는 밴드답게 업라이트 피아노와 통기타, 어쿠스틱 베이스, 타악기 등으로 전자음을 철저히 배제한 채 2시간 여 동안 편안한 휴식 시간을 제공한다. 어떻게 만원짜리 공연이 가능하게 됐을까. 나무자전거의 소속사 대표인 정승일씨는 “객석과 무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하나가 되자는 취지에 공감해 모든 스태프와 뮤지션들이 공동 제작 형식으로 참여한다.”면서 “같은 취지의 전국 순회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공연계의 장기적인 불황을 이겨 나갈 대안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열린세상] 오바마와 쿠바/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열린세상] 오바마와 쿠바/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오바마 행정부는 선거공약에서 약속한 대로 쿠바를 상대로 한 무역과 여행제한 조치를 풀었다. 이제 쿠바계 미국인은 3년에 한 번 방문할 수 있던 쿠바내 가족을 매년 만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3년에 한 번, 최장 14일, 하루 경비 50달러로 이들의 쿠바 여행을 묶어 두었다. 달러 소득이 카스트로 정부를 이롭게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달러를 풀어서 쿠바를 민주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일단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여행제한 조치를 풀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은 이 조치가 “보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쿠바의 민주적 변화를 촉진하고 국민의 생활을 개선시키려고 우리의 쿠바에 관한 정책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새 법은 여행 조건을 1년에 한 번, 체류기간은 원하는 만큼, 하루 경비는 170달러로 정했다. 가족 범위도 직계 존속으로 제한하던 것을 삼촌과 사촌까지 넓혔다. 또 의약품과 식량 수출에 관한 규제도 완화했다. 심지어 이론적으로는 쿠바계가 아닌 미국 시민도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여행경비 제한 때문에 실현되기 힘들 뿐이다. 케네디 행정부가 여행금지 조치를 취한 1962년 이래 가장 큰 폭의 대 쿠바 개방조치이다. 오바마가 당선된 이래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은 대미 관계 개선을 은근히 바랐다. 형님 피델과 달리 그는 경제개혁의 폭을 확대하고 대미 관계가 개선되길 희망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그의 노력을 지지했다. 쿠바는 다자안보기구인 ‘리오 그룹’에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미주 외교무대로 복귀했다. 올해에 이미 중남미 대통령 8명이 쿠바를 찾았다. 물밑 조율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조율사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올 4월에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개최되는 미주정상회담을 새로운 대화외교를 실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대 쿠바 개방조치로 중남미 국가들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 정책보고서는 쿠바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국교 수립을 선행하라고 권한다. 미국의 수교국 가운데 인권 미달 국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교 수립이 오히려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보고서 작성자들은 주장한다. 이제 공은 쿠바로 넘어갔다. 미국의 대 쿠바 정책 변화가 물 밑에서 진행되자 정작 초조해진 것은 쿠바의 집권층이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라울 카스트로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물갈이를 실행했다. 각료 12명을 교체한 것이다. 모두 라울 측근들로 대부분 군부에서 충원되었다. 그래서 ‘총참모부 내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정치적 혼란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합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피델의 심복으로 오랫동안 쿠바 정국의 핵심이던 부대통령 라헤, 총리 페레스 로케가 물러났다. 라헤는 근 20년간 카스트로를 보필했고, 페레스 로케는 카스트로의 개인비서에서 일약 외무부 장관으로 승진하여, 그의 복심으로 불렸다. 두 사람은 국내외에 신망이 높은 정치인으로 모두 차기 대권 후보자로 손꼽혔다. 그들에겐 그동안 쌓은 정치적 자산이 독이 되었다. 권력의 논리는 냉혹했다. 국민에게 인기가 있고, 외국에 지인이 많은 정치적 자산가였기에 라울은 이들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다. 피델은 이들이 ‘권력의 달콤함’에 빠졌다고 비판했고 동생 라울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사람은 “저지른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자술서를 낭독하고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제2인자가 불필요한 쿠바식 물갈이의 통과의례이다. 쿠바 정국은 오바마의 개방정책으로 앞으로 큰 격변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성형 외교안보연구원 객원 교수·중남미 전문가
  • 美 금융사기 메이도프 감옥행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 사기(폰지 사기)로 기소된 버나드 메이도프(70)가 결국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패닉상태다. 공범의 존재 여부와 돈의 행방 등 의혹들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어렵게 된 탓이다. ●메이도프, 감옥에 수감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메이도프는 12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자신의 죄를 시인, 결국 법원 근처의 맨해튼 교정센터에 수감됐다. 메이도프에 대한 최종 판결은 6월쯤에 내려진다. 검찰이 밝힌 메이도프의 범죄 혐의는 증권사기를 비롯해 투자자문사기, 돈세탁, 편지·전화 사기 등 총 11가지. 메이도프는 투자자들에게 최대 46%의 수익률을 약속,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지만 실제로는 신규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수익으로 위장해 기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의 폰지사기였다. 결국 투자자들의 상환요구로 사기는 들통났고 메이도프는 지난해 12월 체포됐다. 블룸버그 통신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체포당시 메이도프가 관리한 고객계좌는 4800여명이었으며 피해 규모도 500억달러(약 74조원)에 이른다. 미 정부는 메이도프의 재산을 모두 몰수할 방침이다. ●피해자들, “세금만이라도….” 피해자들은 좌절감에 빠졌다. 메이도프가 미 수사당국과 플리바게닝(유죄협상)을 포기한 것은 이번 사기의 최대 의혹인 ‘공범 여부’와 ‘돈의 행방’에 대해 스스로 입을 닫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은닉자산이 가족과 회사 동료에게 흘러갔다는 점을 검찰이 밝혀내 추징한다면 투자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특히 메이도프는 법정 심리에서 자신의 가족들은 합법적인 사업을 해왔다고 밝혀 피해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 공범 용의자로 추적하고 있는 인물은 그의 부인인 루스 메이도프와 동생 피터 메이도프, 동업자 프랭크 디파스칼리 등 5~7명이지만 메이도프가 단독 범행을 고집한다면 의혹은 풀리기 더욱 어렵다. 로이터통신은 “상당수의 자금이 비밀이 보장되는 유럽 은행에 숨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낸 세금이라도 돌려받길 원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메이도프의 거짓 이득에 속아 수백만달러의 소득세를 꼬박꼬박 납입한 탓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현행법상 납입 후 3년이 지난 세금은 결코 돌려받을 수 없는 까닭이다. 실제 피해자들은 1980년대부터 투자를 해온 경우가 많다. 한 피해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사기의 성격상 피해자들은 매우 적은 부분만 보상받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설] 민주노총 도덕성 회복에 명운 걸라

    민주노총이 1995년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제 열린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은 이를 “암덩이가 온몸으로 급속히 퍼져 곧 사망할 수준”이라고 비유했다. 이대로 가다간 발전은커녕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다. 민노총은 내부 파벌싸움과 강경투쟁 노선 고수로 산별 조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지도부는 리더십을 확립하지 못했고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다.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상생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인데도 강성 노선만을 고집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노총의 도덕성의 상실이다. 민노총은 올 들어 핵심 간부의 성폭력 파문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더구나 민노총 지도부는 가해자를 징계하기보다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 자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 출신인 고 권용목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가 쓴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는 민노총의 부패상과 도덕성 상실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도부가 공금 5억 2000만원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하고, 취업을 미끼로 뒷돈을 받고, 임단협을 미끼로 회사측으로부터 뒷돈을 받는 등 그야말로 부패·비리 백화점이다. 비민주적이고 권력화된 지도부, 현실을 외면한 강경투쟁과 자기합리화에 여념이 없는 민노총을 노조원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노총 조합원수는 2006년 75만명에서 지난해 65만명으로 줄었다. 최근에도 주력 노조들의 노선이탈이 줄을 이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민노총이 회생할 수 있는 처방은 단 한가지다. 도덕성 회복뿐이다. 국민과 노조원들의 신뢰를 잃은 민노총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강산에ㆍYBㆍ뜨거운감자, 릴레이 콘서트

    강산에ㆍYBㆍ뜨거운감자, 릴레이 콘서트

    가수 강산에 YB(윤도현 밴드) 뜨거운감자가 소극장에서 릴레이 록 콘서트를 갖는다. 관객과 호흡하는 라이브 무대를 고집하며 오랜 시간 공들여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어온 이 세 팀의 릴레이 콘서트는 4월 10일부터 5월 7일까지 약 한 달간 홍대 V-Hall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1990년대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데뷔한 후 2000년대 한국 록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강산에, YB(보컬 윤도현, 베이스 박태희, 드럼 김진원, 기타 허준), 뜨거운 감자(보컬 김C, 베이시스트 고범준)가 펼칠 이번‘한 달 간의 릴레이 콘서트’는 대중들에게 신선함과 상쾌함을 선사하며 음악적 갈증을 씻어주는 ‘봄비’ 같은 존재가 되기 충분하다. 진정한 록음악에 굶주려있던 팬들에게 잊지 못할 콘서트가 될 ‘강산에 YB 뜨거운감자 릴레이 콘서트’는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티켓 예매를 시작했다. (사진제공 = 쇼노트)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 시각] 어제를 잊어라, 그리고 잊지 말라/송한수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어제를 잊어라, 그리고 잊지 말라/송한수 체육부 차장

    “어~이 명보야, 밥 먹자~.” 축구선수 김남일(32)이 ‘영원한 캡틴’ 홍명보(40)에게 던진 한마디다. 7년 전 일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싹이 파랗게 돋는 춘삼월로 기억한다. 월드컵 하나만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그해 거스 히딩크(63) 감독은 서로 반말을 하라고 멤버들에게 으름장을 놨다. 기자는 또 2002년 월드컵 얘기냐는 핀잔을 꽤 듣는다. 하지만 응원 물결로 출렁인 현장 한복판에서 담은 추억을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듯하다. ‘명보야 밥 먹자.’는 얘기를 떠올린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개혁’과 맞닿는 얘기다. 히딩크는 팀 발목을 잡는 겉치레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대 철폐까지 지시했다. 1초가 급한 경기 중엔 물론이요 식사할 때도 그러라고 덧붙였다. 나이를 가리지 말고 자리를 섞어 식사하라고까지 했다. 선후배 위계질서에 지배를 받았던 선수들은 망설였다. ‘진짜 괜찮을까.’ 그런데 김남일은 이튿날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려 우스개를 던졌고 곧장 효과를 봤다. 작은 개혁은 대박으로 터졌다. ‘선배님’ 앞에서 입을 열기도 힘들었던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이 늘었다. 득점 기회를 맞고도 공을 달라는 말조차 아껴야 했던 ‘어제’에서 벗어나 ‘만들어가는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끝내 4강 기적을 일구며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작은 흠을 도려내, 그가 즐겨 불렀던 팝송 ‘나의 길(My way)’처럼, 축구의 길을 바꾼 교훈은 스포츠 전반에 밀려든 개혁 요구에 발을 맞추는 데 아직 유효하다. 히딩크는 팀을 살리려면, 으레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는 잘못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봤으며 결국 들어맞았다. 그는 온몸을 불태울 줄 아는 투지와 체력을 선수 선발의 지렛대로 삼았고 학연과 지연을 깼다. 누구누구를 왜 중용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주전은 없다.”고 외쳤다. 자신을 알아준다는 생각으로 신바람이 난 히딩크의 한국인 제자들은 ‘평등한 세상’에서 날개를 달았다는 꿈에 부풀어 죽도록 뛰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 ‘이기는 게임’이란 경기장 안에서만 찾을 게 아니다. 이는 팀뿐 아니라 선수나 여느 단체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실력이 빼어나도 혼자 스타 의식에 사로잡히면 경기를 그르치기 쉽다. 월드컵 때 빼어난 수비를 뽐내며 ‘진공청소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남일처럼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 넣어야 하는데 겉돌기 일쑤다. 거듭하면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워져 자칫 선수생명을 줄일 수도 있다. 최근 프로축구 K-리그 핫이슈로 불거진 이천수(28·전남)의 심판모독 사건도 혼신을 다해 뛰려는 마음가짐보다 다른 데 신경을 쓴 꼴이다. 욕심만 앞선 나머지 절차를 밟지 않고 해외진출을 꾀하다가 미아 신세가 된 경우도 적잖다. 팀에 백해무익한 건 당연하다. 많은 이들은 나무만 보다가 숲을 놓치는 잘못을 저지른다. 축구인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 작은 판만 고집하다 정작 축구판을 해치거나, 야구인들이 선거판에 휘둘려 정작 야구를 멍들게 하는 식의, 그런 길을 걷기 십상이다. 비단 스포츠만이 아니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전술 훈련은 거의 시키지 않은 채 한데 어울려 공을 차는 등 낯선 풍경과,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까지 연인 엘리자베스 피너스를 데리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더러는 눈총을 쐈다. 사령탑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던 점을 보면, 다른 문화 환경 탓인데 엉뚱한 방향으로 갈 뻔했다. 그는 개인기엔 기대하기 힘들고 조직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마당에, 끈끈한 한국인들의 특성을 장점으로 살렸다. 우리네 속담에 ‘가까운 제 눈썹 못 본다.’고 했다. 어제의 잘못을 되짚고 내일로 나아가야 옳다. 해묵은 히딩크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까닭이다. 송한수 체육부 차장 onekor@seoul.co.kr
  • 인간 문선명을 만나다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지난 1월 구순(九旬)을 맞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김영사)를 펴냈다. 3년간의 기획을 거쳐 2년여의 집필과 탈고, 수정 끝에 나온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전 등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를 관통하며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문 총재의 역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 총재는 자서전을 통해 “16세 되던 해 부활절(4월17일) 아침, 기도 중 홀연히 인류 구원에 대한 천명을 자각하고 일평생 공의의 노정을 걷기로 다짐했다.”고 밝히고 있다. 평양과 부산에서 뜻을 펴다 서울 청파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선교에 나선 게 1954년. 1957년 일본에서 해외선교를 시작해 197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세계 선교를 본격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 총재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치렀던 여섯 번의 투옥, 평화 전도사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뒷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광복 이후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평양에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이단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이단으로 몰려 문 총재를 따르는 학생과 교수들이 퇴학·퇴직당하던 이야기며 초기 미국 선교 시절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며 멸시하던 일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384쪽 1만 45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2009 녹색성장 비전] 석탄→석유 만드는 ‘청정 연금술’… 하루 15만배럴 콸콸

    [2009 녹색성장 비전] 석탄→석유 만드는 ‘청정 연금술’… 하루 15만배럴 콸콸

    │세쿤다(남아공) 박건형특파원│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 인류가 기술에 눈뜨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기술이 개발됐고, 그중 일부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부분의 기술개발은 ‘발전’에 치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외부적인 상황변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1950년대 이후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석유의 시대’를 마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가 그랬다. 당시 남아공을 지배하는 가장 큰 논리였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을 유일하게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던 남아공에 대해 전 세계는 금수조치를 취했다. 석유도 마찬가지였다. 살 길을 모색하던 남아공 정부는 나라 안에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는 석탄에서 석유를 만드는 기술(CTL)을 찾아냈다. 191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기술이었지만 필요가 없어 사장된 기술이었다. CTL은 1950년대 중반 상용화돼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적으로 철폐되기까지 40년 넘게 남아공 경제를 지탱해 왔고 지금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아공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130㎞가량 떨어진 ‘세쿤다’는 세계 최대이자 유일의 CTL·GTL(가스액화기술) 상용 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석탄 시대의 재개막 세쿤다는 이곳과 카타르에 CTL·GTL 공장을 갖고 있는 사솔(SASOL)을 위한 도시다. 도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광활한 옥수수밭 저편으로 거대한 냉각탑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여개의 냉각탑에서는 끊임없이 수증기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CTL과 GTL은 단순히 석유를 만들어 내는 공정이 아닙니다. 화학적으로 만들어 내는 만큼 별도의 정제 과정이 필요없는 질 좋은 석유가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공정으로 수많은 화학제품과 원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앤소니 스튜어트 투자팀장은 사솔의 상용화 기술이 ‘일석이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화학공정과 정유공정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얘기다. CTL·GTL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사솔 공장에는 방문자가 부쩍 늘었다. 특히 석탄 매장량이 많은 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튜어트 투자팀장은 “남아공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기술이었지만 지구온난화가 이슈화되면서 ‘청정석탄 기술’로 불리는 CTL·GTL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면서 “석유 시대의 개막 이후 잊혀졌던 석탄의 시대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솔이 남아공 경제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사솔은 2007년 기준으로 6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4조 5000억원을 수출한 남아공 최대의 기업이다. 사솔의 공장을 합쳐 하루에 생산되는 석유는 15만배럴 수준이다. 공장지역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허가받은 차량에 올라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연상시키는 통로로 들어섰다. 공장견학을 맡은 지미 보더 기술분석팀장은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모든 곳에 사각 없이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면서 “직원들 역시 자기가 맡은 부분 이외의 공장 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도록 철저한 유출방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솔은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기술 라이선스 방식만 고집한다. 유일하게 해외에 설립된 카타르 공장 역시 기술 부문은 사솔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도맡고 있다.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취재진을 포함한 어느 외부인도 공장 지역 내에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다. 일부 국가의 경우 막대한 금액을 제시하면서 기술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원천기술에 대한 사솔의 원칙은 확고하다. 한 번 주기 시작하면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얘기다. 스튜어트 팀장은 “한국 일부 기업과도 합작 투자 방식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석유관련 기술 통합된 공장 사솔 세쿤다 공장에서는 주변지역에서 생산되는 저급의 석탄을 잘게 부순 후 산소와 수증기를 넣어 기체 상태인 가스로 만든다. 이 가스를 석유로 만드는 간접액화 방식이 사솔 공정의 핵심이다. 사솔은 이 기술을 완성하면서 중간 단계인 가스를 석유로 만드는 ‘GTL’ 기술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무엇보다 이 공정을 통해 나온 부산물은 다른 석유화학기업들이 수많은 정유공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물질들이다. 이를 통해 양초, 페인트, 신발 소재, 니트로글리세린, 왁스 등 수많은 화학제품들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다. 정유기업과 석유화학기업을 완벽하게 합친 구조다. kitsch@seoul.co.kr ■ 국내 관련 기술 현황 GTL 플랜트 성공… CO2 포집기술 보완해야 지난해 12월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공동연구팀은 국내 최초의 GTL 플랜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MB 정부가 ‘녹색성장’의 비전을 제시한 이후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얻어낸 첫 번째 신기술이었다. CTL·GTL 기술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 미래형 에너지에 투자하다 보니 이미 개발된 기술을 재검토하고 연구하는 노력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국내에 상당량 남아 있는 석탄에 대한 연구는 한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사실상 국내 유일의 에너지원인 천연가스는 지역난방과 운송에너지로 그대로 사용됐다는 점에 만족해 왔다. 화학연-에너지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천연가스를 통해 디젤유 등 액체연료를 만들면 황과 매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채취되는 천연가스는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으로 이송이 불가능한 한계가스와 태워서 없애야 하는 동반가스가 전체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GTL 기술을 이용하면 한계가스를 가스전에서 액체상태 연료로 바꾼 뒤 필요한 곳으로 이송해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CTL·GTL 기술이 완벽한 녹색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석탄을 사용하는 만큼 공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등 온실가스가 문제다. 에너지연구원 관계자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CCS)과 결합한다면 신재생에너지와 핵융합 등 미래형 에너지가 완성될 때까지 연결자 역할을 하는 브리지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서 “여러 연구단이 협력하면서 운용기술까지 빠른 시간에 습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찻잔 속의 태풍’ 문화재관람료 청소년 5만명 알코올성 간질환 ‘슬럼독’ 감동은 딱 3분의 2 일본 WBC 꼼수 제 발등 찍었다? 160층 두바이타워에서 내려다보니
  • 첫 내한공연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 “깜짝 비주얼 보여 주겠다”

    첫 내한공연 엑스재팬 리더 요시키 “깜짝 비주얼 보여 주겠다”

    “10년 전의 우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행이나 변화의 흐름을 타지 않는다.” 1980~1990년대 아시아를 열광시켰던 비주얼 록밴드 엑스재팬이 오는 21~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사상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엑스재팬의 리더로 드럼과 키보드를 맡고 있는 요시키는 9일 국내 언론과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 우리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몇 차례 방문했기 때문에 한국 팬들의 환대를 기억한다. 빨리 한국 팬과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엑스재팬이 1997년 해산한 뒤 11년 만에 재결성한 계기에 대해 “2년 전 도시(보컬)와 만났다가 다시 한번 뭉치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음악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 자체가 주류이며, 유행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요시키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고, 일본에서 자라 일본 전통음악의 멜로디와 정서도 갖게 됐다.”면서 “일부러 어떤 장르나 파격적인 것을 고집하지 않아도 멜로디 흐름을 중요시하다 보면 모든 근원들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엑스재팬의 음악을 설명했다. 열정적으로 연주하다가 이따금 실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는 “무대 위에서는 어떠한 잡념 없이,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발산하고자 한다.”면서 “그렇기에 연주 끝에 쓰러질 때도 있다.”고 퍼포먼스설(說)을 부인했다. 그는 “오랜 시간 변함없이 사랑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 “토요일과 일요일 공연의 테마가 다르다. 깜짝 놀랄 만한 색다른 비주얼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국내 음반시장이 침체 상태이지만 엑스재팬의 라이브 DVD는 소니비엠지가 발매한 지 4일 만에 1000장, 베스트앨범은 2000장이 팔려나갔다. 재결성 첫 무대였던 지난해 일본 공연처럼 이번에도 1998년 자살한 히데(리드기타)가 홀로그램으로 무대에 모습을 보일지도 기대된다. 6만 6000~16만 5000원, (02)783-0114.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엑스재팬 요시키 “서태지에게 큰 관심”

    엑스재팬 요시키 “서태지에게 큰 관심”

    일본 밴드 엑스재팬(X-Japan)의 리더 요시키(44)가 서면 인터뷰로 먼저 국내 팬들을 만났다. 요시키가 드럼 및 피아노 세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엑스재팬은 21, 22일 이틀 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현재 LA에서 곡 작업이 한창인 요시키는 첫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밝히며 하루 빨리 한국 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한국 뮤지션 중에 서태지에 대한 관심을 표했으며 그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 다음은 요시키와의 일문일답 ] -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소감은? 무척 기대된다. 10년 전부터 한국에 엑스재팬을 좋아 하는 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개인적으로도 몇 번 방문을 했기 때문에 한국 팬의 따뜻한 환대를 기억한다. - 한국 및 한국 팬에게 받은 느낌은? 기억에 남는 한국 팬이 있다면? 내가 LA에 살 때 한국 친구가 몇 명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엑스재팬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해 줬을 때 사실 깜짝 놀랐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 수많은 팬들이 나와 반겨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렇게 많은 팬들이 나를 반겨 줄거라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매우 놀라고 감동했다. - 엑스재팬이 11년 만에 재결성했다. 재결성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토시와 2년 전에 (2008년 3월 도쿄 돔 공연 전 해)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한번 뭉치자 ‘라는 이야기가 꽤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그 후로 진행이 돼 월드투어를 위해 재결성이 공식화 됐다. - 이번 내한 공연에서 중점을 두고 봐야하는 부분이 있다면? 도쿄 돔 공연도 그랬고 홍콩도 그랬다. 토요일의 공연과 일요일의 공연이 테마가 다르다. 깜짝놀랄만큼 색다른 공연과 비주얼을 보여 드릴 것이다. - 한국 가수 중 서태지를 알고 있다고 했고 또 기회가 된다면 음악도 함께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태지를 포함해 다른 한국 가수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 그렇다. 서태지에 대해 큰 관심이 있고 지난 홍콩에서 있었던 인터뷰 중 ‘같이 작업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라고 대답했다. -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엑스재팬 음악의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나? 나는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공부했고 또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의 전통음악과 멜로디와 정서를 갖게 됐다. 일부러 어떤 장르를 고집하거나 하지 않아도 이 모든 근원들이 나의 음악, 엑스재팬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것이다. 일부러 파격적이거나 한 장르에 치우치는 음악이 아니라 멜로디의 흐름을 중요시 하므로 거기서 도출되는 음악이 엑스재팬의 음악인 것 같다. - 무대 위에서의 파워풀한 모습이나 무대 밖에서의 외모나 모두 실제 나이와 무관한 삶을 사는 모습이다. 비결이 있나. 기본적으로 몸 관리를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한다. 많은 양의 연습도 그 이유일 것이지만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모습 또한 중요하므로 항상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 새 앨범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나? 새 앨범은 뉴 베스트 앨범으로 계획 중이며 신곡도 1-2곡 들어 있는 음반이 될 예정이다. - 마지막으로 내한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팬들에 하고 싶은 말은? 오랜 시간 변함없이 엑스재팬을 사랑해준 한국 팬 여러분께 감사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고 3월21, 22일 한국공연 무대에서 멋진 무대로 인사하겠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퇴계 宗家 제사상에 멜론 올라

    관혼상제가 흔들리고 있다. ‘관습’이라 여기며 누구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잘 따르던 의례들도 원형이 하나둘씩 변해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가 변화 속도를 따르지 못해 생기는 ‘문화적 지체현상’ 때문에 관혼상제 문화에 심각한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관혼상제와 관련된 의식이 변화되고 있는 원인은 종교,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대 민속학과 임장혁 교수는 “관혼상제는 조선시대에만 해도 특정 계층에 한정돼 있는 고급 문화였다.”면서 “특정 계층의 문화에 대한 욕구가 이런 문화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 40~50년간 서양식 결혼·매장 문화가 많이 유입돼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서구 기독교의 영향으로 제사를 등한시하게 된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또 “오늘날 관혼상제는 문화가 아닌 소비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고 덧붙였다. 노인이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가 붕괴되고 경제력이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게 되면서 가정 안에서 노인의 발언권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노인이 주눅들지 않고 가족 구성원의 책임감을 북돋우는 동시에 관혼상제를 ‘만남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 교수는 “노인이 가족 구성원의 책임감을 이끌어 내야 관혼상제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다.”면서 “또 관혼상제를 먼 친척들과의 ‘만남의 장’으로 승화시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 본질적인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고 전통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외형적인 변화에 집착하지 말고 문화적인 가치를 계승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형보다 유교적 가치 자체에 치중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지난해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에서는 제사상에 ‘멜론’을 올리기도 했다. 성균관 방동민 기획부장은 “세계화 시대에 관혼상제의 변화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면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지나치게 외형적인 모습만 고집하는 것도 문화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 있는 마음자세로 정신적 가치를 계승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경기 침체로 생업에 찬바람이 부는 지금 관혼상제가 사회적 짐이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학교 급식·현장활동비 신용카드 결제 도입을”

    “학교 급식·현장활동비 신용카드 결제 도입을”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가 함께 하는 2월 의정모니터에는 초·중·고 입학식을 앞둔 계절적 요인 때문인지 학교관련 생활밀착형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학교 급식비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구축’, ‘초등학교내 전문 상담교사 필요’ 등의 의견과 함께 ‘구립 도서관 장애인 대출 활성화’, ‘횡단보도 장애인 신호등 관리 철저’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월 한 달 동안 의견 77건이 제시됐고, 세차례의 심사를 거쳐 14건을 우수의견으로 선정했다. ●초등학교에 상담 전문교사 필요 현재 보건소 진료비 2000원도 신용카드 결제가 이뤄지는 반면 각급 학교에 내는 급식비, 현장활동비 등은 꼭 현금만 받는다는 따끔한 지적이 나왔다. 신정이(36·강서구 화곡동)씨는 “경제한파로 어려운 시민들을 위한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현금’만을 고집하는 학교행정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급식비·현장활동비 등을 현금으로만 받고 있어 빠듯한 가계에 짐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씨는 또 “몇천만원을 빌려주는 것은 일반 서민에게 ‘그림의 떡’”이라면서 “서민의 피부에 와닿는 이런 작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달에 4만원 남짓한 금액이지만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면 어려운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재옥(39·양천구 신정동)씨는 초등학교에 전문 상담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사춘기가 빨라져 요즘은 ‘질풍노도 6학년’이란 유행어가 생겼다.”며 “이런 학생들을 위한 전문 상담교사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신호등 관리 철저 이씨는 “지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들은 다양한 학사일정과 수업준비에 바빠 새로운 상담교육 등을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어린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밝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장애인을 위한 행정의 허점을 콕콕 찌르는 비판도 잇따랐다. 박종철(39·성북구 상월곡동)씨는 “현재 횡단보도 장애인 편의시설들이 제대로 작동되는 곳이 드물다.”면서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 있는 장애인 신호등은 화단 안에 설치돼 무용지물이고, 월곡동 한국과학기술원 앞 장애인복지관 횡단보도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한 편의시설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시립·구립 도서관을 지적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최정희(35·구로구 개봉동)씨, “다세대 주택은 수도계량기가 하나라 누진요율 적용 때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가구 별로 수도계량기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한 김병욱(56·서대문구 북아현동)씨 등의 의견도 있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미디어발전국민委 가동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미디어 발전 국민위원회’가 가동된다.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 처리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로서다. 5일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여야가 절반씩 추천하는 20명이 오는 9일부터 100일간 대리전을 치르는 격이다. 6월 미디어 입법전의 서막이라 할 만하다. 상임위와 병행할지, 논의 과정을 공개할지, 논의 결과를 법안에 적극 반영할지 등을 놓고 여야는 이날 합의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딴소리를 냈다. 진통은 이어지고,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의견반영·문방위 병행 여부 논란 문방위 소속 3개 교섭단체 간사들은 이날 합의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위원회의 논의 결과는 상임위 입법 과정에 최대한 반영토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력’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국민위원회는 의결 기구가 아니라 자문 기구”라면서 “결과는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잘랐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위원회에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무시하고 추진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국민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 상임위를 병행할지에도 의견이 갈렸다. 나 의원은 “국민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문방위를 운영하면 미디어 관련법 논의를 위한 시간이 촉박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여야 합의대로 6월에 미디어 관련법을 표결 처리하려면 상임위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 의원은 “국민위원회의 결과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상임위를 연다면 2월의 싸움을 되풀이하게 된다.”면서 “국민위원회가 결론낼 때까지 정치권에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국민위원회 활동 결과가 나온 뒤 상임위가 이를 축약적으로 심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나라 10명·민주 8명·선진 2명 공동위원장 2명은 여야가 한 명씩 추천하기로 했지만, 회의 진행권을 누가 맡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홈페이지 등을 운영하면서 국민위원회 논의 과정을 공개하고 여론을 적극 청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비공개를 고집했다. 정치인 배제에는 의견을 모았다. 위원은 한나라당이 10명, 민주당이 8명,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 2명을 각각 추천하기로 했다. 주현진 홍성규기자 jhj@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자연을 빚는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金基哲·77) 선생. 전통적인 조선 백자의 맥을 현대적인 조형미로 이어 가고 있는 선생의 작품들이 자연을 닮은 것은 그의 삶이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흙을 좋아하고 꽃과 나무 가꾸기를 즐기는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뒷동산과 산기슭에 온갖 향기나는 식물들을 심어 놓고 계절따라 피고지는 꽃들을 들여다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는다.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를 짓고 거둬 들인 수확물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뿌듯해 한다.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그도 어느 덧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의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봄을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동숭동 샘터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곤지암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한 보원요(寶元窯)를 찾았다. 한창 물이 오른 매화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을 오르니 가득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인상적이다. 가마에 땔 소나무 장작이다. 바람 결에 실려 오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기분좋게 코끝을 스친다.대문도 없이 나무 등걸을 가로 세운 마당 입구를 지나 돌너와지붕을 얹은 돌집이 작업실 겸 생활공간이다. 마당 저편으로 산 언덕에 자연스럽게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가마가 눈에 들어 온다. 조선시대의 전통가마를 그대로 재현한 재래식 용가마다. 그는 편리한 가스나 전기가마 대신 재래식 가마에 우리의 소나무인 좋은 육송만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소나무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요즘이다. 그가 소나무 장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제대로 된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잘 만들어진 백자가 빛의 방향과 세기,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백자가 숨을 쉬기 때문이죠. 소나무 장작의 불기운과 그을음, 공기의 조화만이 그런 오묘한 효과를 지닌 살아 숨쉬는 도자기를 구워 낼 수 있습니다. 가스나 전기로 구워 낸 것은 도자기라고 할 수 없지요.” ●가스·전기가마 대신 소나무 땔감만 고집 소나무 장작은 단순히 도자기를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기운이 도자기 살 속까지 파고 들었다가 다시 내뿜기를 반복하는데 그 힘든 과정을 견딘 도자기만이 맑고 윤기있고 단단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백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청아해지는 것은 이런 조화에서다. 백자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자기로 꼽힌다. 특히 불때기가 까다롭다. 산소가 들어가면 도자기가 산화돼 누렇게 변색되는데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연기와 그을음을 적당히 만들고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때기는 도자기 빚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장작 가마는 전기나 가스가마에 비해 실패율도 높다. 대작의 경우 열개 중에서 두세개 건지면 성공이다. 그럼에도 백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백자는 도자기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청자도 좋지만 백의민족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기는 역시 백자입니다. ” 백자와 함께 보원요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로 꼽히는 옅은 적갈색 도자기도 소나무 장작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흙빛이 윤기있게 살아나는 독특한 작품들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는 자연유(自然釉) 방법을 사용한 것들이다. 초벌구이를 한 뒤 도자기 안쪽에만 유약을 바르고 바깥은 유약을 생략해 재벌구이를 한다. 135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이틀간 굽는데 이때 육송의 송진이 타면서 자연스럽게 유약 역할을 한다. 자연유의 푸근한 번짐과 이리저리 튀면서 만들어 내는 무늬 또한 볼수록 신비롭다. ●흙장난 하듯 해학 넘치는 연잎·청개구리 그저 흙과 자연이 좋아 평생 소박한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식물의 잎이나 꽃, 열매, 연잎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새, 물고기, 청개구리, 두꺼비, 사슴 같은 동물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천성이 촌놈이라 화초 가꾸고 농사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들판이나 계곡의 돌틈에 핀 이름모를 꽃들을 보면서 우주가 숨쉬고 있는 것을 느끼지요. 그런 모습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흙장난으로 하듯이 작품을 빚습니다.” 연잎 위에서 세월 모르고 앉아 있는 청개구리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다. 흙으로 빚은 조그마한 청개구리는 그의 작품에 포인트처럼 놓여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청개구리는 전래동화에서도 있듯이 우리 민족의 눈물나는 감성과 해학의 상징이에요. 해학의 미학이 있는 것이 최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물레를 쓰지 않고 모두 손으로 작품을 빚는다. 번잡스러운 기교가 없음에도 날아갈듯 자유스럽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특유의 분방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살아 숨쉬고 쓸수록 정이 피어 나는 유정의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물레 위에서 뽑아 내는 것은 무정의 정물에 불과합니다. 불균형 속에 균형이 있는 그런 자연의 형태를 물레 작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손으로 빚어야 불균형 속에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형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흙 고르기부터 굽기까지 전통방법 고수 그는 흙을 고르는 작업부터 고온에서 구워 내는 작업까지 철저하게 조선 백자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도자기를 빚은 뒤 정성껏 가마에 넣고 그 다음은 불의 몫으로 남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을 기원하는 옛 도공의 모습 그대로다. “고되고 비능률적이며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패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어 내는 도자기가 첨단 과학과 기계 문명으로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품은 나의 작품들이 쓰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 도공 김기철의 세계 시골서 만든 ‘장작불 도자기’ 교황청·대영박물관까지 퍼져 충북 괴산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나온 영문학도였던 그는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동경하며 서울의 변두리에 살면서 텃밭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낙으로 살던 그는 마흔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예가이자 농사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허리를 다쳐 쉬던 중 우연히 일민미술관을 지나다 나전칠기 중요인간문화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보게 됐어요.정성을 기울여 만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기막힌 것을 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나는 마흔 중반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난 것이 도자기였다. 도자를 배우던 아내의 친구가 심심풀이 삼아 흙이나 만지라고 가져다 준 청자 흙덩어리로 꽃병이랑 단지를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재주가 있다고 칭찬을 하던 터였다.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도자기에 매달리기로 뜻을 세웠다. 겨울방학에 무작정 가마가 있는 이천의 도요에 가서 사정 사정해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도공이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내친 김에 같이 재래식 용가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마터를 물색한 지 석달 만에 지금의 보원요 터를 찾아냈다. 도예가로서 그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은 1년 뒤 공간대상 도예상 수상(1979년)으로 입증됐다. 그해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도예 평론가이기도 했던 초정 김상옥 시인은 1979년 4월17일자 서울신문 전시평을 통해 “한때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던 백자가 김기철씨의 집념의 결과로 시대적인 전승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고 평했다. 눈코뜰새 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시골 구석에서 천수답처럼 살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가까이는 국립현대미술관부터 멀리는 로마 교황청과 대영박물관, 스웨덴 에벨링박물관까지. 법정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다실에서도 손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운 그의 다기는 아낌을 받는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수필집 ‘꽃은 흙에서 핀다’(1993년)와 ‘고향이 있는 풍경’(2006년)을 냈으며 엘리아수필집과 포 단편집도 번역했다.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사학위 논문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녹여든 것 같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다.시민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어졌다.어떤 정책과 이슈,쟁점 등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할 만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높아진 기대에 견줘 당내 정파싸움,민주노총의 권력 다툼과 부패 등을 보면서 당의 지지기반인 비정규직이 당에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당의 전망과 집권 가능성을 회의하게 됐지만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지도부의 무능이나 이기심,오류 때문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당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지구화 정보화 탈냉전이란 거대한 변화에 맞는 정당모델,정치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80년대식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당의 한계나 오류를 극복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의정정책실장 등을 맡으면서 당내 갈등을 피부로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2004년 제1 정책위원회 정책국장,2005년 3월부터 의정실장을 맡으면서 정파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의 갈등을 목격했다.갈등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당의 문제점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당시 당에선 대중정당 모델을 철저히 추종했고 원내정당화 모델을 철저히 반대했다.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죽했으면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가 될 수 없게 제도까지 만들었겠는가.중앙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려 했는데 현실은 국민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을 먼저 바라보았다.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자율권이 필요했는데 중앙당에선 통제하고 싶어했던 거다.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었다.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것은 이름도 모르는 정파 대표가 아니라 의원들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당의 헤게모니 자체가 점차적으로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넘어갔고 당의 구조도 조금씩 바뀌게 됐다.    ●민주노동당 10년의 공과를 정리하면.  정당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가 창당한 노동자계급정당,사회주의적 이념정당,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가능성을 2004년 원내진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또는 지구화,정보화,후기산업화,탈이념화 등의 달라진 시대상황은 과거 단일한 노동자 계급과 조직으로 뭉칠 수 있었던 정당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파편화되고,노동자의 이익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당도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 변화의 시대에 하나의 이념과 단일한 위계조직을 강조하는 운동권 모델을 고집함으로써 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들의 복잡한 이익에 반응하지 못했다.결국 대기업 소속과 정규직,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상층노동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서 다수의 비정규직과 약자들이 이탈하게 된 것은 그 한계라 할 수 있다.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것이 2005년 울산 북구 재선거 패배였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대착오적인 계급환원주의 노선과 사회주의적 계급정당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산업화시대에 유행했던 조직논리,이념논리,정당논리,이른바 대중정당모델에 집착했던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패배 이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 이유는.  많은 불만과 문제 제기들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당모델까지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이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모태로 출범한 한계라고 생각한다.민주노총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흔히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성역이 있다고 했는데 민주노총과 북한이란 성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당모델을 원내정당 모델로 바꿨으면 오늘날의 위기가 없었을까,이런 역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  원내정당화 모델을 생각한 것은 당의 헤게모니가 원내 의원 중심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맞물려서였다.울산 북구 패배 이후 당의 총체적 위기가 확인됐다.지지율이 18%에서 5% 이하로 바닥을 쳤다.울산은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대중정당 모델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패배의 원인이 비정규직의 외면과 이탈 속에서 당이 망가진 것이었다.그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을 인정받은 의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확인이 됐는데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민주노동당은 대단히 위계적인 조직이다.그 조직에 아직까지도 민주노총의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다.30%의 할당제가 관철되고 있다.국민적 차원에서 개방,분권적인 개혁,다양한 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략 등이 철저히 가로막힌다.  2007년 대선 후보를 경선해야 한다는 안팎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다.개방형 경선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하고도 폐쇄적인 당원 직선제로 지분이 큰 정파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자업자득이었다.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감지되나.  18대 총선 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하지만 미진한 것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당을 개방화,분권화,네트워크화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4월 재보선에서 국민경선 대신 민중경선 으로 후보를 선출하려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논문의 문제의식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정당으로 대중정당 모델이냐 원내정당 모델이냐는 학계 논쟁이 있었다.최장집 교수 등이 얘기한 대중정당 모델이 시대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다.원내진출 이후 당 생활을 해보니 한계가 많이 드러났다.사회 변화에 적응 못한 정당 모델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았다.  대중정당 모델의 쇠퇴는 당지도부의 리더십과 운영상의 오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배경 때문이었다.시대에 뒤처진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했을 때 이념과 정파의 편향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대중정당 모델을 포기하고 대안이 되는 모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의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엔 의원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의정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를 대중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이 대안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얘기들을 분당 이전부터 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응들은 어땠는지.  비정규직을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원인을 따질 때 그들은 사람의 문제,성품의 문제 이런 쪽으로 봤다.더 좋은 사람이 비정규직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정당모델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진보신당은 원내정당 모델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분당 이후 반작용으로 신규 당원이 입당하고 민주노총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이 출발했다는 점에서,노회찬과 심상정이란 두 전직 의원의 지지층이 흡수된 측면이 있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역 의원이 없어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정당모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후기 산업화 사회에선 대중이라 함은 비정규직,비노조원,화이트칼라처럼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는,유동성이 큰 사람들이다.비조직된 대중이 더 많다.위계적인 조직 구도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대중만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연성이 대중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동과 사회’ 지난해 12월호에 기고한 ‘노조원들은 시민적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선진 노동자들이 왜 다양성을 잃고 기득권층으로 고착됐는지.  개인과 조직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위계적인 조직에 속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다.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개성이나 끼를 발산할 수 있다.계급환원적인 생각,집단을 궁극선(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고착화된다.특정한 사안에 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땐 유리하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처음 창당 때는 진성당원제라는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념적으로 편향된 당내 정파 지도자들이 당을 포획해놓고 있었다.다수의 당원은 말을 사실상 제대로 못하고 기껏해야 투표하는 것이고 발언권이라든가 소통이 보장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페이퍼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참여민주주의란 이상이 당을 장악한 정파 엘리트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니까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원들이 당에 묶여 있으면 정파가 시키는 대로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소신있게 큰 이득을 위해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당내 정파구도가 약화되고 의원들에 권력이 넘어가면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이 검증된 의원들이 국민들과 소통할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꿈꾸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진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자.보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진보의 논리지만 진보만이 진리라는 역편향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성악(單聲樂)적인 구도가 있다.그러나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즉,진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라는 시각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 수준에서 존재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저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방식으로서의 진보, 다양성 속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서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용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어떤 점에서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된다고 본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지 않나.최장집 교수도 그런 점에서 지적당했다.촛불시위 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반응하지 못했던 정당들의 한계를 봤다.이게 핵심이다.시민들의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념과 계급 정파가 줄어들더라도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이 있어야 한다.소통 속에서 발견된 욕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 생산능력이 담보될 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원내정당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다.    ●두 당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대중정당 모델에선 당의 이념과 게급,정파,조직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약화될 것이다.당이 원내 의원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유권자,시민사회와의 연계 부분이 강조된다.당원 중심을 벗어나 일반 유권자,지지자들도 당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시민사회의 요구가 전달되고 이것들이 의회에서 토의를 통해 합의되고 정책 결정이 되고 국민에게 성과물로 다가온다.    ●명칭은 원내정당 모델이지만 정당은 조그맣고도 시민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은 엘리트가 강조되는 게 당연하다.다만 행위자가 정파냐 아니면 국민들의 이익이나 선호에 접근할 수 있는 원내 의원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만큼 물적 기반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어 불안정할 수있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있느냐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노총이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과거 지지기반으로 갈 수 있겠는가.간다면 상층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금 더 좁아진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연성이 큰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데 느슨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것은 정책능력과 소통능력 뿐이다.그때그때 이슈가 터지고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나올 때 생활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원내정당 모델이 대안이라고 본다.  원내정당 모델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하지만 대중정당 모델보다 낫다는 생각이다.원내정당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할 때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분산화하고 개방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진보신당의 지못미 당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새 이슈를 개발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진보정당 통합이나 반(反)MB 전선에 참여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점증할 것이란 지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진보진영내에서 힘이 약하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소수의 의견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있다.진보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진원씨가 걸어온 길  늦깎이 초보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춘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국민승리 21에 1998년 입당해 지난해 진보신당과 분당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10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단국대 사학과 88학번인 채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한 희로애락과 한계를 바탕으로 2005년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고 지난 1월에야 어렵사리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2004년 원내 진출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정치개혁의 대표 법안으로 손꼽히는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 도입’에 관여했던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창당 이후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정치관계법을 담당했으며 이후 의정정책실장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정책 지원을 담당했다.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인의 외조를 위해 중앙당을 사직한 뒤 평당원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3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안한 혁신안 ‘생활속의 진보’가 부결되자 탈당했다.현재 어느 당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전문연구자의 길을 걷는 한편 기회가 닿으면 의정활동이나 입법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월드이슈] 관타나모 수용소 연내 폐쇄 머나먼 길

    [월드이슈] 관타나모 수용소 연내 폐쇄 머나먼 길

    지난 1월22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후 이틀 뒤인 이날 쿠바 미 해군기지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서에 서명했다. 지난달 25일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이 이곳을 직접 방문, 폐쇄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번달 중순에는 유럽연합(EU) 자크 바로 사법담당 집행위원이 워싱턴을 방문, 석방 포로를 각 회원국이 수용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벌인다. 관타나모 폐쇄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조치로 오바마 대통령이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공약 중 하나다. 여기에 진척상황이 이쯤 되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는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2009년 말까지로 ‘못박은’ 수용소 폐쇄까지는 갈 길이 멀다. 홀더 장관은 관타나모 방문 다음날인 26일 “(관타나모 폐쇄는)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라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아 있는 245명의 수감자 개인 기록을 재검토하는 데만 주어진 1년을 대부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재 미 정부는 수감자 중 수십명은 재판 없는 석방자로 분류해 놓은 상태다. 이중에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 무슬림 수감자 17명도 포함돼 있다. 바꿔 말하면 대다수의 수감자들은 재판을 비롯한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EU 바그람 기지와 연계 시도 포로들에 대한 ‘법적지위’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들을 어디로 보내느냐가 핵심이다. 불법 수감된 것이 인정된 무슬림 수감자들이 여전히 관타나모에 갇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으로 돌려보낼 경우 인권탄압이 염려되면서도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이들을 미국 내에 석방하는 것도 불허했다. 미국 정부로서는 제3의 국가를 물색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포로 송환처로 유력한 곳은 유럽이다. 유럽은 일단 관타나모 폐쇄 결정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EU 내무장관들은 지난달 25일 관타나모 폐쇄와 관련, 미국을 돕기 위한 계획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하지만 27개 회원국마다 입장이 다르다.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는 포로를 자국에 받아들이는 것에 긍정적이지만 네덜란드와 체코, 스웨덴은 부정적이다. 특히 스위스는 최근 ‘비밀계좌’를 놓고 미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다수당이 관타나모 포로 수용을 반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와 함께 미 중앙정보국(CIA)의 해외 수감시설까지 폐쇄를 명령했다. 그 중 하나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인근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 내에 있는 수감시설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관타나모와 달리 바그람 감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EU 내부 문건에 따르면 EU는 바그람이 새로운 관타나모 수용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세워 놓은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과 EU 정상들은 다음날 5일 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한다. 영국의 경우 고든 브라운 총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해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은 수감자들이 기존 거주지로 돌아 가는 것은 찬성하고 있다. 최근 에티오피아 출신 영국 영주권자 비냠 모하메드(30)가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美-EU 정상회담 의제로 논의할 듯 부시 정권은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군사법정을 고집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조직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카타르 출신의 알리 알 마리를 연방법원에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알 마리는 2001년 9·11테러 발생 하루 전 미국에 입국했고 테러 발생 3개월 후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의 한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중 체포된 인물이다. 그는 기소 절차 없이 5년6개월 동안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군수용시설에 구금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알 마리의 재판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테러 용의자들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법정에 서게 될 기회를 줄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미디어법 ‘사회적 논의기구’ 놓고 아전인수

    ‘타협 뒤 동상이몽.’ 여야는 쟁점 법안에 대한 극적 타결을 이룬 지 하루 만인 3일, 전날 합의안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사실상 지난해 연말 국회와 2월 국회에 이어 3차 입법전이 시작된 셈이다. 당장 여야가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합의에서 규정한 ‘사회적 자문기구’ 구성에서 대척점이 형성됐다. 한나라당은 “자문기구는 자문에 그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실상의 해법 도출기구로 보고 있다. 그래서 여야는 기구에 대한 호칭부터 달리 한다. 한나라당은 ‘자문’기구라 하고, 민주당은 ‘논의’기구라 한다. 합의문은 “자문기구인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라고 돼있다.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이날 “합의문에 ‘자문기구’라고 적시된 만큼 자문만 하면 된다. 의결권은 당연히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사회적 논의기구에 힘이 실려야 하고, 국회는 그 결과를 권위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맞섰다. 정치인의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문만 하라.’는 뜻에서 정치인 배제를 고려하고 있지만, 비정치권 인사들로만 구성된 뒤 논의가 정부·여당의 계획과는 다른 쪽으로 흐를까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에는 야야 갈등도 숨어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동수 구성을 고집하고 있다. 다른 야당까지 들어오면 힘의 논리에서 밀릴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그러나 선진과 창조의 모임은 “빠질 수 없다.”며 나서고 있다. 기구가 출범하더라도 첩첩이 고비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독소조항을 제거할 것이며, 원안 고수는 수용하지도 않겠다. 대기업 참여는 불허하고, 신문·방송 겸영도 안 된다.”며 선제 공격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100일간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큰 기업이 내민 손, 작은 파트너를 춤추게 하다

    [나눔 바이러스 2009] 큰 기업이 내민 손, 작은 파트너를 춤추게 하다

    ■ 삼성전자의 기술 지원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이 탤런트 전지현씨가 선전하는 삼성전자 스타일폰 앞면에 들어가는 터치패드입니다.” 3일 오후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바로 옆에 자리한 아담한 전자부품 공장.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키패드와 터치스크린을 만드는 중견 기업 시노펙스다. 첨단 제품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중견기업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부품제조업체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던 회사는 아니다. 이 회사가 삼성전자와 처음 손을 잡은 것은 1980년대 말. 삼성전자에 오디오 스피커를 납품하면서 협력사가 됐다. 이후 10년 이상 스피커를 안정적으로 납품하면서 착실히 성장했다. 그러나 평탄한 경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산기지 중국 이전 바람을 타고 삼성전자가 2000년 오디오사업부를 중국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납품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1000억대 매출 중견기업 성장 도와 박내성 시노펙스 부회장은 “실의에 공장을 접을까도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어둠 속을 허우적거릴 때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키패드 생산을 제의해 일단 받아들이긴 했지만 막막했다. 사업 분야가 달라 자신이 서지 않았다. 여기서 사업을 접을까 고심할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기꺼이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 부회장은 “당시 키패드를 만드는 기술이 전혀 없어 삼성전자의 기술지원이 없었더라면 새 기회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키패드 양산에 들어갔고 2007년 삼성전자는 시노펙스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정전기를 이용한 정전용량방식의 터치스크린 개발을 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기술지도를 받아 6개월간 터치스크린을 만들어 수십차례 테스트를 거친 뒤 마침내 그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전용량방식의 터치스크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경영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김승한 시노펙스 경영지원 이사는 “삼성은 기술지원뿐만 아니라 생산장비 설치비용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또 “직원 기술교육 등 전문교육은 물론 회계·경영 등 일반교육과 경영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노펙스는 회사가 커지면서 전사자원관리(ERP), 물류시스템 구축 도움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바로 옆에 4410㎡에 지하1층 지상4층의 새 공장도 지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 부품 공장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반도체 공장처럼 조립장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직원은 방진복과 마스크로 무장하고 먼지와 정전기를 막아주는 특수신발을 신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 에어샤워까지 받은 뒤 들어간 작업장의 청정도는 1ft³내에 0.5㎛ 이상의 먼지가 1000개 이하인 ‘1000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납기단축·조달안정 윈윈” 제품 종류도 늘려 지금은 키패드·터치스크린·액정표시장치 모듈·필터 등을 만들고 있다. 안정적인 판로 확보로 회사도 급성장했다. 2005년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이후 500억원, 800억원을 거쳐 지난해에는 10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4년 동안 3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일방적인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을 국산화해 납기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물론 제품 경쟁력도 갖출 수 있었다.”면서 “‘24시간 내 원인 분석 및 48시간 내 문제해결’이라는 대응체계를 갖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핵심공정 부품은 자국 내에 유지해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경영이고 이것이 상생경영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효과”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SK텔레콤의 업무 지원 중소 콘텐츠업체에 비즈니스 센터 무료 개방 SK텔레콤의 서울 을지로 본사 3층에는 3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SK텔레콤 본사인 만큼 SK텔레콤 직원들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SK텔레콤의 직원이 아닌 휴대전화 게임 등 이동통신사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중소 콘텐츠회사 직원들이다. 이들은 SK텔레콤의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SK텔레콤을 찾은 것이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는 2005년 4월 SK텔레콤이 대·중기 상생협력을 위해 본사 3층에 231㎡(70평)규모로 만든 중소 협력사 전용 공간으로 사업제안 접수·기술관련 상담·과금 정산 등의 업무지원과 휴식 및 회의 공간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에 대한 인기도 높아 지난달에는 만들어진 지 4년여만에 이용자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협력사들의 테스트용 단말기 구입비용 및 통신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마련한 무료 단말기 테스트룸의 인기가 단연 높다. 네이트 비즈니스센터는 400여개 기종, 1000대의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용업체들의 70%는 소규모 벤처나 1인 개발자들이라서 자체적으로 다양한 휴대전화를 확보하기 힘들다. 모바일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 업체 ANB소프트 최동완 대표는 “모바일 게임은 단말기 종류마다 테스트가 꼭 필요하다.”며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의 테스트 룸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은 네이트 비즈니스 센터 운영에 연간 5억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중소 콘텐츠업체와의 상생을 통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 홍성철 SK텔레콤 NI사업부문장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경쟁력이 곧 SK텔레콤의 경쟁력”이라며 “중소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우남건설의 결제 지원 공사대금 현금으로… 협력사 어음 공포 탈출 3년 동안 협력업체 건설 공사대금을 100% 현금으로 주는 업체가 있어 화제다. 우남건설은 300개에 이르는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을 현금으로 주는 상생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의 현금 결제는 2007년 7월부터 시작됐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주택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어음결제의 유혹에 빠질 법하지만 여전히 현금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현금 결제를 실천하는 데는 이종국(43) 사장의 ‘고집’도 한몫했다. 이 사장은 1994년 공사현장의 ‘기사’로 입사해 13년 만에 대표이사가 된 ‘샐러리맨’의 신화다. 그 과정에서 하도급 관리, 자재관리, 분양소장, 입주 관리 등 안 거친 자리가 없다.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목격했다. 우남건설이 300여개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은 연간 1000억원 정도. 중견 업체로서는 엄청난 자금이다. 이 돈을 6개월만 굴린다고 해도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이자 수입도 꽤 된다. 하지만 이 사장은 “공사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되 절대 할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우남건설 현금 결제로 협력업체들은 어음 부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금결제 소문이 나면서 우남건설은 재무구조가 탄탄한 KT, 한국전력공사, LG전자 등 대기업과 협약하는 KB파트너십론을 2007년 체결할 수 있었다. 우남건설 하청업체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 여신규모나 이자율 등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009 논술 기출문제 분석했더니

    기출문제는 곧 최고의 예상문제다. 2010학년도 대입 논술을 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2009학년도 논술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일이다. 대성마이맥 정원석 논술본부장은 “2009학년도 정시 모집 논술고사는 대체로 기존 논술 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학별로 일부 변화를 꾀했다.”고 평가했다. 인문계열의 경우, 고려대와 연세대는 정형화해 온 논제 유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서울대는 문항수와 논술 양에서 변화가 있었다. 자연계열의 경우에는 수리와 과탐 영역에서 영역 내 전이를 꾀하는 고난이도 논제가 주를 이뤘다. 대체로 2008학년도 논술고사 경향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급적 직접적인 답안보다는 풀이 과정을 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서울대(인문계열)-장문형 논술 서울대는 그동안 정시 모집 논술고사에서 일정한 논제 유형이나 구성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매년 변화를 꾀해 왔다. 올해 논술고사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통합교과형 논술 출제 이후로 도입됐던 단문형 논술 대신 장문형 논술을 택했다. 총 7문항으로 800자 미만의 단문형 논술만을 요구했던 2008학년도 논술과는 달리, 800~1800자에 이르는 장문형 논술을 요구했다. 둘째, 인문계열 논술고사에서도 일부 수리 추리형 문항을 출제했던 계열 통합적 성격을 포기하고 언어·사탐 영역의 논술 문제만을 출제하였다는 점도 두드러진 변화다. 셋째, 교과서에서 제시문을 발췌하는 경향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3번 문항에서 무려 4개의 그림을 제시문에 포함시키는 등 시각적 자료를 대거 도입했다는 점도 파격이었다. 따라서 서울대 정시 논술에 대비하는 수험생들은 평소 교과 영역에 대한 학습을 충실히 하면서 틈틈이 다양한 문항 유형에 대한 실전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자연계열)-통합교과 문제 이번 서울대 자연계 논술은 4개 문항, 총 15개 논제였다. 제시문은 대체로 교과서에서 발췌했으며 평이한 수준이었다. 문항 1은 지구과학과 화학 및 물리의 통합 교과 문제였다. 물의 화학 결합의 특징과 증기 압력에 대한 내용을 기초로 물방울의 생성으로 인한 강수 현상에 관련된 지구과학의 교과 내용을 통합해서 출제했다. 마지막으로 인간 활동으로 인한 대기 오염이 기상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어 과학 지식을 활용해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으로 심화시켰다. 문항 2는 생물과 화학의 통합 교과 문제였다. 세포막의 구조와 인지질의 화학적인 구조를 설명하는 생물Ⅱ 교과서의 내용을 제시문으로 활용했다. 문항 3은 물리와 생물을 통합했으며 이 내용을 기초로 일상 생활의 태양광 전지에 대한 문제로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문제였다. 전자기파의 특징에 대한 과학 교과서의 내용, 광합성에 대한 생물Ⅱ의 내용, 태양광 전지와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 기준표를 제시문으로 활용했다. 문항 4는 수리문항으로 각각의 제시문을 읽고 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단계적인 문제 해결력을 평가했다. 제시문의 구성이 미분방정식, 도함수의 그래프, 수열, 카오스 이론으로 내용이 단계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고려대(인문계열)-창의적 평가 2009학년도 고려대의 정시 모집 논술은 ‘공감(共感)’이라는 포괄적 주제 하에, 시민적 의무와 지구적 정의간 우위,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간 연관성, 사랑의 본질 등 세부적 주제를 포섭하는 흐름이었다. 제시문은 사회과학(정치학), 인문학(철학), 동양문헌, 문학(시), 논리적 추론 분야 등 다양하게 나왔고 제시문들 사이 연관성을 높였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우선 요약형인 1번 논제는 2008학년도 이후로 정형화된 고려대 논술의 기본 논제 유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장문의 제시문을 효율적으로 독해하고 이를 자신의 표현으로 재구성하는 독해력·표현력에 따라 논술의 성패가 좌우됐다. 2번 논제 비교 분석형과 추리형은 가장 보편화된 논제 유형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해당 유형 대비 훈련이 돼 있는 수험생들이라면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3번 논제는 수시 논술 수리추리형 대신 논리추리 및 비판논증형의 결합 형태로 출제됐다. ‘예방접종을 받으면 장티푸스를 피할 수 있는 먼 나라의 아이를 돕지 않는 행위’라는 기본 논의 대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되, 제시문에서 제시된 ‘최소한의 도덕성’ 및 ‘합리성’을 기본 논의 관점으로 삼도록 요구한 논제 유형 역시 전형적인 인문 논술의 유형에 해당된다. ●연세대(인문계열)-다면사고형 논술 비교분석, 양자택일 및 비판적 논증, 도표해석 등의 논제 유형으로 구성됐다. 2008학년도 이후로 정형화된 논술 유형은 그대로 유지됐다. 연세대 논술은 고교 교과 과정에 포함된 고전 텍스트 중심으로 주어진 제시문에 근거해 답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 왔다. 이번에도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등에서 제시문을 발췌했다. 또 주제 면에서는 ‘창조’와 ‘파괴’라는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역사 해석과 현실 분석, 경제현실 변화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변화 등 다양한 영역을 관통하는 사고를 요구했다. 다각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고자 하는 연세대학교의 ‘다면사고형 논술’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리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도움말 대성마이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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