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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적인 사랑의 원형 찾아가기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용감한 왕자들은 공주의 입술에 키스를 하기 위해 불을 뿜어대는 무서운 용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이 동화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거듭 읽은 어린 소녀들은 어떤 난관도 돌파하고 자신에게 돌진해올 낭만적인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성장한다. 왕자의 열정에 자신마저도 활활 타오를 각오와 준비를 하는 그런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서양에서도 17세기 후반에 창조돼 확산된 사회적 체계라는 점을 아시는지. ●봉건제 붕괴로 미모·순결 등 가치 강조 ‘열정으로서의 사랑’(정성훈 외 2인 옮김, 새물결 펴냄)은 21세기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남녀 간의 환상적인 사랑의 원형을 찾아 17~18세기로 여행을 떠난 니클라스 루만 독일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사랑에 관한 탐구이다. 사회학자답게 루만 교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소통도구,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형식은, 17세기부터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소설 등 문학을 통해 소개된 방식을 개개인들이 서로 익히고 비공식적으로 사회가 용인해 왔다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비밀스런 감정이라고 알아온 사람들로선 매우 어이없는 주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서술한 난해한 체계를 견디고 참으며 한장 한장 책을 정복해 나가다보면 ‘유레카’가 느껴질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봉건제가 붕괴되고 계층분화가 일어나는 등 사회가 복잡해지자, 혼인 체계도 바뀌어야 했다. 봉건제에서야 귀족 아버지가 딸과 아들의 결혼상대를 결정하고, 자신이 소속된 신분계층 사이에서만 결혼이 허락됐다. 중세의 결혼이란 사회적 연대이자 체제유지적 성격을 띤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더이상 봉건주의적 결혼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문학은 사랑으로서 사랑을 찾고, 사랑받는 자의 미덕을 강조하며 사랑하는 법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사랑받는 자의 미덕이란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등 희소한 가치다. 16세기 말에 나온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면 되겠다. 사랑이 영원한 것이고, 치유되지 않는 열병과 같은 열정에 시달려야 하며, 난관을 극복해 어렵게 얻어야 가치 있다는 식의 프레임이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자원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권력을 가진 신사와 숙녀가 드물었다. 문학은 18세기에 다시 한번 사랑의 모습을 탈바꿈시킨다. 사랑받거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미덕을 사소한 것으로 전환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774년 발표된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편지에서 로테는 ‘춤추지 않고 흑빵을 잘랐다.’고 썼다. 로테가 아름답거나 돈이 많고 젊다고 쓴 것이 아니라 흑빵을 잘랐는데 이것이 베르테르의 민감한 영혼을 충족시켰다고 쓴 것이다. 이런 경험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의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버릇을 눈여겨보면서 온 가슴이 찌르르하는 전율을 느꼈던 아주 특별한 경험들 말이다. 18세기 말에 접어들면 연애결혼과 부부 간의 사랑이 통일되는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8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소설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와 사랑이 일체를 이루면서 사회적으로 혼전 관계를 허용하는 단초가 마련된다. ●18세기 후반부터 섹슈얼리티 부각 저자는 이런 사랑의 코드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돼 현대에 이르는데 이것은 17세기 이후 활성화된 서적 인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17~18세기에는 유혹의 기술에 속하는 상투어나 제스처에 관한 책들도 현대의 처세술책만큼이나 많이 출판되고 인쇄된 모양이다. 자유연애라고 말해야 할 사랑은 17세기 사회제도로서의 결혼과 맞서기 위해 탄생해, 21세기 청춘남녀들에게도 열정에 몸을 맡기라고 권해 왔다. 아니 사회가 복잡해져 점차 비인격적으로 진화해 감에 따라 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권하는 사회로 변해, 사랑타령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2년에 출간된 루만 교수의 책은 앤서니 기든슨의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과 크리스티안 슐트의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라의 코드’ 등 현대인의 사랑과 관련한 서적에 주요하게 인용되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연예전략서가 아니므로, 쉽게 읽기 시작하면 큰코 다칠 수 있다. 3명이나 참여했는데도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2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日외무상 방미 추진…꼬인 실타래 풀까?

    │도쿄 박홍기특파원│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무상이 다음달 6일 미국 측에 방문 일정을 전달했다. 같은달 1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최대 현안인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둘러싼 이견을 미리 조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 국무부 측은 28일 NHK에 “장관 회담을 갖더라도 해결을 볼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회담이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힐러리 장관은 다음달 7일부터 외국 방문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미·일 간의 미묘한 알력이 표면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오카다 외무상의 이번 방미 추진은 지난달 23일 미국을 찾았던 까닭에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미·일 간의 현안이 꼬였다는 방증이다. 후텐마 비행장과 관련, 지난 20일 방일했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같은 현 나고시의 미군 슈와브기지 연안부에 대체 시설을 만들기로 한 종전의 미·일 합의를 전제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전에 결론 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이 27일 합의안에서 이전을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하토야마 총리는 즉각 부정했다. 오카다 외무상은 후텐마 비행장을 같은 현에 있는 미군 가데나비행장과의 통합안을 내놓았다. 또 오키나와현 지사는 현 밖으로의 이전을 주장했다. ‘4인 4색’의 현실이다. 물론 미국 측은 ‘유일하게 실현가능한 안’이라며 현행 합의안을 고집하고 있다. 오카다 외무상은 회담이 성사되면 “양국의 인식차를 보완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으로는 올해 안에 결론을 내겠다는 뜻도 전달, 이해를 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지원 문제도 논의할 계획이다. hkpark@seoul.co.kr
  • 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

    전주정신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저항과 풍류를 말하는 이도 있고, 선비정신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새기자고 하는가 하면 ‘택지리’의 ‘지리인성론’ 등에 기댄 기질론도 만만치 않다. 백제의 정신, 미륵·개벽사상, 선비정신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근거로 한 제안들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 종가의 살림살이만큼이나 다채롭다.정리가 쉽지 않다. 아니 정리가 능사도 아니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게 하는 이런 논의 자체가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것 같아 오히려 반갑다. 더 복잡하게 이끌어 보자는 유혹까지 느낀다.차마 버리지 못하는 종가의 복잡한 살림살이,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려는 정성과 진정성에서 전주정신의 한 단초를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을 전주가 대표하는 주요 문화코드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예를 들면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간편식이다. 그러나 ‘완전’을 추구하는 땅 전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조리과정에서는 간편성을 내세운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만 고집하는 등 조리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밥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사골국물로 짓는다. 나물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따로 조리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데에도 색상을 고려한다. 노란 청포묵과 오방색의 고명을 고집하고 중앙에 빨간 고추장을 떠 놓고 그 위를 계란 노른자로 장식하는 모습은 화룡점정의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차마 대충 하지 못하는 진정성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판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한과 신명을 고도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인류 최고의 소리음악 자체에 이미 삶의 질곡 속에서 접하게 되는 슬픔을 차마 분노나 절망으로 내몰 수 없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녹아 있다.그러나 전주에서는 이런 소리마저 함부로 자랑 삼지 못하게 하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대충’을 가로막고 있다. 오랜 공력의 삭힘과 익힘 과정을 겪어야 도달할 수 있는 ‘시김새’, 이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소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오묘하면서도 웅숭깊은 멋 혹은 여유인 ‘그늘’, 이런 판소리 미학의 핵심을 전주 사람처럼 철저하게 요구하는 이도 없는 것이다.전주 한옥마을이야말로 이런 ‘차마’의 진정성이 가장 밀도 있게 집적됐다. 전란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차마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방치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지켜낸 선비들의 기개가 서린 경기전. 차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못해 순교한 이들의 치명순정이 처연한 건축미학으로 거듭난 전동성당. 차마 편리함을 앞세워 아파트로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근기가 어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군.그곳에는 실용을 핑계로 차마 예술 공예를 버릴 수 없어 가난을 군자의 고궁(固窮)쯤으로 여기며 세월을 버텨온 장인들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느리게 무르익은 장과 젓갈의 개미를 차마 버릴 수 없어 화려하고 간편한 음식문화의 유혹을 어렵게 견디어온 또 다른 장인들도 이곳 한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익어 가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미완의 터다.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줍은 새색시 같아 진정 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를 결코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이런 차마 삼가는 정성의 마음이 전통문화의 뿌리요, 전주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가쟁명의 웅얼거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 [지방시대]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지방시대]비빔밥, 판소리,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정신/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전주정신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저항과 풍류를 말하는 이도 있고, 선비정신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새기자고 하는가 하면 ‘택지리’의 ‘지리인성론’ 등에 기댄 기질론도 만만치 않다. 백제의 정신, 미륵·개벽사상, 선비정신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근거로 한 제안들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 종가의 살림살이만큼이나 다채롭다. 정리가 쉽지 않다. 아니 정리가 능사도 아니다.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게 하는 이런 논의 자체가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해줄 것 같아 오히려 반갑다. 더 복잡하게 이끌어 보자는 유혹까지 느낀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종가의 복잡한 살림살이,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려는 정성과 진정성에서 전주정신의 한 단초를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을 전주가 대표하는 주요 문화코드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전주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간편식이다. 그러나 ‘완전’을 추구하는 땅 전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조리과정에서는 간편성을 내세운 ‘대충’이 통하지 않는다. 철분이 풍부한 전주콩나물만 고집하는 등 조리재료의 선택에서도 완전을 향한 정성은 확인된다. 밥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사골국물로 짓는다. 나물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따로 조리하며 그것을 배치하는 데에도 색상을 고려한다. 노란 청포묵과 오방색의 고명을 고집하고 중앙에 빨간 고추장을 떠 놓고 그 위를 계란 노른자로 장식하는 모습은 화룡점정의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것이다. 차마 대충 하지 못하는 진정성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판소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의 한과 신명을 고도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인류 최고의 소리음악 자체에 이미 삶의 질곡 속에서 접하게 되는 슬픔을 차마 분노나 절망으로 내몰 수 없다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녹아 있다. 그러나 전주에서는 이런 소리마저 함부로 자랑 삼지 못하게 하는 귀명창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대충’을 가로막고 있다. 오랜 공력의 삭힘과 익힘 과정을 겪어야 도달할 수 있는 ‘시김새’, 이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소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오묘하면서도 웅숭깊은 멋 혹은 여유인 ‘그늘’, 이런 판소리 미학의 핵심을 전주 사람처럼 철저하게 요구하는 이도 없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이야말로 이런 ‘차마’의 진정성이 가장 밀도 있게 집적됐다. 전란의 간난신고 속에서도 차마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방치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조선의 역사를 오롯이 지켜낸 선비들의 기개가 서린 경기전. 차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못해 순교한 이들의 치명순정이 처연한 건축미학으로 거듭난 전동성당. 차마 편리함을 앞세워 아파트로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근기가 어려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옥군. 그곳에는 실용을 핑계로 차마 예술 공예를 버릴 수 없어 가난을 군자의 고궁(固窮)쯤으로 여기며 세월을 버텨온 장인들의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느리게 무르익은 장과 젓갈의 개미를 차마 버릴 수 없어 화려하고 간편한 음식문화의 유혹을 어렵게 견디어온 또 다른 장인들도 이곳 한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익어 가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미완의 터다.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줍은 새색시 같아 진정 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를 결코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차마 삼가는 정성의 마음이 전통문화의 뿌리요, 전주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가쟁명의 웅얼거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이다.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 [프로야구] 순혈주의 벗은 호랑이, 왕조부활 포효

    1997년 아홉 번째 우승 이후 KIA는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타이거즈 왕조’의 공신들은 대부분 은퇴를 했고, 투타의 핵인 선동열(삼성 감독)과 이종범(39)은 일본에 진출했다. 2000년을 끝으로 ‘왕조’의 우두머리였던 김응용(삼성 사장) 감독마저 삼성으로 떠났다. 백지 상태에서 리빌딩을 시작할 때였다. 하지만 새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구단 수뇌부는 능력보다는 ‘타이거즈 출신’(범호남 출신)을 고집했다. 어느 팀보다 ‘순혈주의’가 강한 전통 때문. 아홉 번의 우승을 일군 ‘레전드’ 중 대전고 출신 한대화(한화 감독), 경북고 출신 서정환(전 KIA 감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다. 리빌딩 시기를 놓친 탓에 KIA의 2000년대 중반은 두 차례(2005·07년)나 꼴찌를 하는 등 더 비참했다. 24일 12년 만에 ‘V10(10회 우승)’의 대업을 이룬 KIA에는 예전 같으면 ‘외지인’으로 팀 분위기에 적응조차 쉽지 않았을 선수들이 다수를 이뤘다.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7차전 홈런 두 방으로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의 주연이 된 시리즈 최우수선수(MVP) 나지완(24)이다. 신일고-단국대 출신의 2년차 나지완은 지난해 입단과 동시에 4번타자감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신인선수로 개막전 4번에 기용됐을 정도. 하지만 부담을 떨쳐내지 못해 6홈런 30타점에 그쳤다. 비시즌 독기를 품고 황병일 타격코치와 비지땀을 쏟았다. 아킬레스건으로 꼽힌 변화구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고 스윙 메커니즘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올시즌 23홈런 73타점으로 부쩍 성장하더니 마침내 한국시리즈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9회 말 끝내기 홈런을 친 뒤 펑펑 눈물을 쏟은 나지완은 “1년 동안 노력한 것이 북받쳐 올라 울었다.”면서 “풀타임을 뛰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이종범 선배님처럼 베테랑이 돼서도 솔선수범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지완과 함께 7차전의 드라마를 쓴 서울고 출신 고졸루키 안치홍(19)도 빼놓을 수 없다. 올스타전 MVP로 남다른 끼를 인정받은 안치홍은 대선배 김종국 대신 2루수를 꿰찬 뒤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수비력과 클러치 능력을 가을잔치에서도 뽐냈다. 비록 6차전 패전투수가 됐지만 시즌 내내 에이스 역할을 해낸 분당 야탑고 출신 윤석민(23)과 LG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KIA에서 활짝 핀 중견수 이용규(24)도 덕수정보고를 졸업한 ‘타향 출신’이다. 20대 초중반의 비호남 출신 ‘젊은피’들은 이종범·최희섭·이현곤·김상훈(이상 광주일고), 양현종(동성고)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과 녹아들어 왕조를 재건했다. 80~90년대 타이거즈의 강점인 끈끈한 승부근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투박함을 털어버리고 한결 세련된 야구를 펼친 덕분이다. 신·구 및 호남·비호남 출신들이 클럽하우스의 리더인 이종범을 중심으로 팀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낸 셈. ‘V10’이란 ‘고기’를 맛본 젊은 호랑이들이 있기에 KIA의 미래는 더 밝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고 합리적이다? 당신이 믿어온 경제학은 가짜

    철수와 영희가 극장에 도착했다.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1장에 2만원인 표 2장을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도 있다. 극장에 가서 표를 사려던 만수와 순이는 극장 근처에서 표 2장 값의 지폐 4만원을 잃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이 연인들의 다음 행동을 추정해 보라. 표를 사서 영화를 볼까, 아니며 재수가 없다며 집으로 돌아갈까. 일단 철수네와 만수네가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오답.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이자 경제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피실험자들 중 지폐를 잃어버린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표를 사서 영화를 보겠다고 답변했지만, 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경우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답변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 표를 잃어버린 사람이나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 모두 4만원을 손해 봤지만 행동은 서로 달랐다. 왜 그럴까. 인간의 인지에는 돈을 잃어버리는 것이 표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돈의 낭비’이라는 구체적인 느낌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행동경제학이나 심리경제학에서 사람들의 경제행위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피트 런 지음, 전소영 옮김, 흐름출판 펴냄)은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인간은 경제생활을 할 때 이기적이고 독립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물질주의자’라는 전제가 이처럼 오류라는 것을 다양한 실례를 통해 보여 주는 책이다. 저자 피트 런은 BBC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아일랜드 더블린 경제사회연구소(ESRI)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다. 24살에 런던 대학에서 인지신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경제 문제도 인지와 신경과학의 차원에서 점검하고 있다. 그는 통화주의자나 신자유주의 등 주류경제학자들이 인간의 경제생활이 합리적이지 않은데,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자원의 배분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경제사회적인 오류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근로자들의 임금격차는 당연하고, 경쟁은 좋은 것이며, 규제는 최소화해야 하며, 노동시장은 유연해야 한다거나 세율과 인플레이션은 낮아야 한다는 등 최근 정권을 잡으려는 대다수 정치인들이 내놓은 정책은 잘못된 전제를 활용한 잘못된 정책이라고 전한다. 임금격차를 예로 들어보자. 주류경제학에서 A씨와 B씨의 임금격차는 A씨와 B씨의 생산력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승진과 출세에는 그 사람의 순수한 생산력의 차이뿐만 아니라 가족의 배경이나 운, 사회적 네트워크와 그에 대한 접근 능력 등 경제와 생산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여기저기 사례로 적시한다. 당신은 옷을 살 때 왜 전국의 옷가게 가격을 다 점검해 보고 가장 저렴한 옷을 구입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왜 ‘공정무역’이란 상표가 붙은 커피나 의류, 소비재들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입하는가. 사람들은 왜 질레트 면도기가 다른 수입면도기보다 더 비싼데도 굳이 질레트를 고집하는가.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은 미국 65%, 영국 60%, 프랑스 70%, 중남미 국가 85% 등등이다. 이쯤에서 주류 경제학의 여섯 가지 거짓말을 밝혀 보자.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세상은 예측가능하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광고해도 아무 소용없다 ▲조직은 합리적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다 등이다. 저자는 이 여섯 가지의 주류 경제학의 명제가 모두 ‘F(False)’라고 3장에서 8장까지 설명한다. 인간은 정의로운 일에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인해 발생한 2008년 세계경제 위기처럼 예측가능하지 않으며, 광고를 통해 구현된 시뮬라시옹(가상현실)에 홀려 기업들이 거액의 광고비 지출을 용인하는가 하면, 조직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게 돌아간다. 현재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 마음까지 잠식해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기존 경제학의 오류를 뼈저리게 깨닫고 기존 경제학의 쇄신과 혁명을 이끌어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 내자고.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가비엔제이 “브아걸처럼 시건방춤을? NO!” (인터뷰)

    가비엔제이 “브아걸처럼 시건방춤을? NO!” (인터뷰)

    “자꾸 저희에게 댄스를 시키고 싶어하세요. 상상이 안가는데…(웃음)” 2005년 데뷔 이래 ‘오직 발라드’만을 고수해온 가비엔제이(Gavy NJ). 이들은 팀의 최강점으로 ‘無 변화’를 꼽았다. 변화가 있다면 새 멤버 미스티(Misty)를 맞게 된 것. § 가비앤제이표 발라드로 컴백 새 타이틀 곡도 그렇다. 정규 4집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Side A)의 타이틀 곡 ‘핼쑥해졌대’를 일컬어 이들은 ‘가비엔제이표 발라드’라고 소개했다. “너무 변화가 없는게 아니냐고요? 게으르게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그게 장점인걸요. ‘가비엔제이 음악’이라고 했을 때, 정확하게 떠오르는 분명한 색이 있었으면 했어요. 변화 보다 중요한 고집이었죠.” (노시현) 이러한 고집은 ‘전략’으로 통했다. 데뷔 4년 차 ‘가비엔제이’는 대중들에게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부르는, 노래 잘하는 여성 보컬그룹’으로 또렷이 인식돼 있다. § 브아걸처럼 시건방춤을?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외압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발라드 가수도 하루 아침에 섹시 댄스를 추는 요즘, 한 가지 색만 고수한다는 것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시건방춤처럼 파격적인 변신을 해보자는 권유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사실 부럽기도 했죠. 하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저희만의 무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시현) § 변화 or 유지 ‘변화’냐 ‘유지’냐. 가비엔제이는 4-5년차 가수에게 통과의례처럼 다가오는 고질적 문제에 부딪치게 됐다. 이들은 오랜 시간 자신들이 ‘가비엔제이’란 이름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데서 부터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고심 끝 얻은 결론은 하나, 바로 ‘가장 가비엔제이 다울 때’ 빛날 수 있다는 것. “이번 4집은 ‘가장 가비엔제이스러운 음악’을 담아내려 노력한 앨범이에요. ‘어떻게 하면 우리다운 얘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까’ 고민 하다가 결국, 세 멤버 모두 한 곡씩 작사에 도전하기로 했죠. 제가 쓴 노랫말을 멤버들이 나눠 부르는 건 정말 설렌 경험이었어요.” (장희영) § ‘멤버 교체’ 딜레마의 극복 하지만 ‘멤버 교체’로 인한 변화는 새롭게 찾아온 딜레마였다. 가비엔제이는 데뷔 후 지켜온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 ‘변화의 폭’을 좁히는 방법을 택했다. 이에 4년간 곁에서 음악적, 인간적 동료로서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를 유지해왔던 미스티(Misty)를 영입했다. “미스티 언니는 회사에서 ‘BGH4’란 그룹의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부터 봐왔어요. 언니가 어떤 모자를 쓰고 왔었는지 까지도 기억하는 걸요?(웃음) 새 식구를 맞이하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됐고요.” (노시현) 전문 음악세션으로 활약해온 미스티는 그간 씨야, 다비치, 왁스, 먼데이키즈 등 수많은 가수들의 인기곡을 작사했으며 코러스 영역을 통해서도 가창력을 인정받아 왔다. “처음엔 ‘가비엔제이의 새 멤버’란 타이틀에 부담감이 적지 않았나 봐요. ‘잘해야지’하는 마음에 긴장감이 커지니까 그만큼 실력 발휘가 안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좀 더 편안하게 보여드리려고요. 가비엔제이로서 하나된 무대니까요.” (미스티) § 퍼포먼스 보다 ‘노래 올인!’ 마지막으로 ‘가비엔제이가 가야할 길’을 묻자 이들은 “노래에 올인하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세상엔 잘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있잖아요. 아직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누가 들어도 ‘역시 가비엔제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노래 잘하는 그룹이 되고 싶어요. 저희 그룹명, ‘노래(歌·가)의 여왕(妃·비)NJ’ 처럼요!” (장희영)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구 다섯바퀴 돈 슈퍼맨 금빛날개 희망으로 접다

    지구 다섯바퀴 돈 슈퍼맨 금빛날개 희망으로 접다

    다른 운동을 하려다 돈이 들어갈 것 같아 발을 들여놓은 마라톤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찍은 사진이라곤 한 장도 없는 집안에서 흔히 그렇듯, 더러는 학교를 빼먹고라도 농사를 거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도망 다니던 개구쟁이 막둥이였다. ‘국민 마라토너’보다는 ‘봉달이’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이봉주(39·삼성전자)가 21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남자 마라톤 42.195㎞ 풀코스에서 우승, 생애 마지막 레이스를 화려하게 마쳤다. 2시간15분25초. 자신이 2000년 일본 도쿄마라톤에서 작성한 한국기록(2시간7분20초)과는 멀다. 하지만 그는 ‘무한 도전’에 망설이지 않은 정신력을 유감없이 내보였다. 20년간 희망의 레이스를 펼쳐온 이봉주는 “내 생애 최고의 레이스였다. 끝까지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황영조도 완주 8차례 그쳐 충남 천안시 성거읍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천안농고 1년 때 육상에 첫발을 뗐다. 레슬링 선수였던 큰형을 따라 운동에 취미를 붙인 게 발단이었다. 이봉주가 달리기에 얼마나 매달렸는지는 고교를 세 군데나 옮겨다녔다는 데서 엿보인다.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떠안고 삽교고를 거쳐 광천고로 전학하는 고집을 부렸다. 불혹(不惑)에 열매 맺은 41번째 완주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라면 42.195㎞를 100m 평균 18~19초의 속도로 2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대부분 10~20회 완주 기록을 남기고 쓸쓸히 은퇴의 길을 선택한다. 동갑내기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도 완주는 여덟 차례에 그쳤다. 이봉주는 이날 완주로 지구의 둘레를 다섯 바퀴 넘게 달렸다. 거리는 22만여㎞. 하프마라톤(21.0975㎞)도 13차례 치렀다. 한 차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크로스컨트리, 오르막 훈련 등으로 4000~5000㎞씩 모두 54차례를 소화한 셈이다. 무엇보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교훈이 담겼다. 왼발 248㎜, 오른발 244㎜의 ‘짝발’에다 평발, 레이스 도중 쏟아지는 땀으로 눈을 찌르는 눈썹 때문에 쌍꺼풀 수술을 하다 잘못돼 ‘짝눈’으로 달려야만 했다. 1999년엔 코오롱 선수단 개편을 둘러싼 대립으로 팀을 떠나 자비를 털어 운동하는 떠돌이 신세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는 “키워준 팀을 버리고 잘되겠느냐는 따가운 눈총 탓에 실패하면 운동화를 벗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봉주 사진 더 보러가기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 편해” 그러나 2001년 부친이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슬픔을 딛고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1947년 서윤복(86) 이래 반세기 만에 금메달을 일궜다. 그 뒤로도 자신이 쌓은 장벽을 스스로 허물기 위해 줄곧 뛰었다. 은퇴한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을 마친 뒤 지도자의 길을 밟을 계획이다. 어머니 공옥희(74)씨가 지켜본 가운데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 그에게 뒤이을 후계자가 없는 어두운 현실이 드리웠다. 이봉주는 떠나는 선배를 끝내 꺾지 못한 후배들에 대해 “경기하면서 실망한 게 사실이다. 후배들이 달리면서 서로 눈치보는 경향이 있다. 더 과감하게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름대로 더 빨리 일어나 더 많이 뛰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뛰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사설] 준동하는 일 보수 과거사 직시하라

    한·일 과거사를 직시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과오를 바로잡겠다는 역사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일본 보수우익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1905년 시마네(島根)현이 독도를 자국영토에 편입한 날을 기념하는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를 내년엔 도쿄에서도 열 태세다. 지난 주말엔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부여에 강력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총리관저 바로 옆에서 열렸다. 하토야마 정권 출범 후 급물살을 타는 과거사 청산과 개선노력의 발목을 잡는 집단행동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사민당·국민신당과의 연립형태를 띤 하토야마 정권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획득해야 안정적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보수세력의 눈치도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정권 출범 한달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70∼80%대의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토야마 정권의 동아시아 중심 외교와 과거사 청산에 초점을 맞춘 역사인식에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다케시마의 날’ 도쿄행사며 재일동포 참정권 반대집회를 주도한 면면은 모두 자민당 출신 보수인사들이다.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 정권의 혁명적 역사인식과 행보는 일본 열도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현직 관료가 한·중·일 공통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정치적 열세 만회 차원의 근시안적 고집은 자멸을 불러올 게 뻔하다. 동아시아권을 휘감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일본 보수우익 세력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 고령백자 전승자 백영규씨 고령 최초 무형문화재 지정

    고령백자 전승자 백영규씨 고령 최초 무형문화재 지정

    조선 초·중기(15~16세기)에 제작됐던 고령백자 전승자가 경북도 무형문화재 백자장으로 지정됐다. 경북 고령군은 19일 운수면 신간리 ‘고령요’ 대표 백영규(72)씨가 경북도 무형 문화재 백자장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백씨의 이번 백자장 지정은 가야 토기로 유명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이자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는 고령 최초의 무형문화재 탄생이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자신의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고령백자를 빚고 있는 백씨는 올해로 56년째 백자의 옛 모습 재현과 전통 방식의 도예를 고집한 것을 인정받아 무형문화재가 됐다. 고령백자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순백 색깔의 백자에 비해 독특한 전통 유약 처리로 다소 검푸른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또 주병, 항아리 위주의 다른 백자와는 달리 사발, 대접 등 주로 밥상에서 쓸 수 있는 그릇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고령백자는 조선시대 때 우수성을 인정받아 임금에게 진상됐고, 김종직(金宗直)의 ‘이존록(彛尊錄)’에는 1445년 순찰사 김종서(1390∼1453년)가 경상도 고령에 들렀을 때 당시 현감이었던 김숙자(1389∼1456년)에게 ‘귀현(貴縣)의 사기는 매우 아름답다.’고 칭찬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백씨는 “고령백자는 물론 우리 전통 백자의 계승·발전을 위해 더욱 힘써 달라는 격려로 알고 앞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할 각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고령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전성기 맞은 힙합 가수들…가을 가요계 판도 바꿀까

    전성기 맞은 힙합 가수들…가을 가요계 판도 바꿀까

    가을 바람을 타고 힙합 음악이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최근 예능에서 맹활약한 래퍼들이 본업으로 돌아와 새 음반을 발표하고 대거 컴백하고 있다. 마치 국내 힙합뮤직이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하는 요즘이다. 힙합 전성시대는 다시 올까.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들이 가요계를 장악한 가운데, 그동안 힙합은 부진한 성적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만 봐도 록 음악이 각종 페스티벌의 인기와 더불어 인디음악의 부흥을 이끈 반면, 힙합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움직임을 보였고 래퍼들의 부재 또한 침체기의 한 이유였다. 하지만 부진을 뒤로 하고, 힙합 음악의 저력이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 드렁큰타이거, 에픽하이가 온·오프라인 차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데 이어 최근 활동을 재개한 리쌍이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는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힙합계의 유명 집단인 ‘무브먼트’ 식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우선 맏형 타이거JK는 2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8집 앨범을 발표, 힙합 열풍을 지휘하고 있다. 발매 일주일 만에 음반 판매차트 한터차트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사랑을 얻었고, 힙합 음반으로 1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잇따른 핑크빛 소식에 들떠 있는 에픽하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투컷의 군입대로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지만 지난 9월 발매한 정규 6집 ‘[e]’은 꽉 찬 사운드와 대중성있는 음악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미투데이, 유튜브 등 사이트를 이용한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세계적인 음원차트 아이튠즈 1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도 이뤘다. 최근 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한층 올라간 덕분일까. 멤버 길이 속한 힙합듀오 리쌍의 정규 6집은 2주 연속 각종 온·오프라인 차트를 휩쓸며 인기몰이중이다. 지난 6일 음반 발매 후 타이틀곡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는 물론, ‘내 몸은 너를 지웠다’, ‘우리 지금 만나’, ‘변해가네’ 등 한 앨범 속 여러 곡들이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상반기 걸그룹들의 인기에 힘입어 시크릿, 레이디컬렉션, W, 비스트, 엠블랙 등 후발주자들이 출격을 앞둔 지금, 힙합이 유독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힙합 가수들의 잇따른 예능 출연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타블로, 다이나믹듀오, 이하늘, 리쌍의 길 등이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노출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은 덕분이다. 특히 래퍼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해박한 어휘력과 언어능력에 엉뚱한 상상력이 더해져 프로그램의 맛을 살렸고, 폭넓은 피처링 작업으로 쌓은 인맥과 특유의 넉살도 진행에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반복적인 후크나 대중적인 멜로디 등 최근 트렌드가 아닌 힙합 고유의 음악적인 고집과 진지함도 빛을 발한 결과다. 디지털 싱글이나 미니앨범이 성행하는 요즘, 드렁큰타이거와 에픽하이는 2CD로 발매해 꽉 찬 음악이 담긴 ‘명품음반’을 선사했다. 이 같은 흐름은 쌀쌀해진 요즘 날씨와도 무관하지 않다. 힙합 하면 떠올리는 거친 비트와 강렬한 랩이 아닌 감성 멜로디와 서정적인 분위기가 힙합을 대중적인 음악 장르로 성장시키고 있다. 이는 ‘가을=발라드’ 공식의 또 다른 발견인 셈. 드렁큰타이거의 감미로운 러브송 ‘트루 로맨스’와 리쌍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인 것이다. 이밖에도 힙합 신진세력들의 기세도 거세다. 올해 상반기 이른바 ‘속사포 랩’으로 주목받은 래퍼 아웃사이더가 아이돌 그룹들 틈에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가운데 슈프림팀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중이다. 언더 힙합신에서 7~8년의 경력을 가진 이들은 다이나믹듀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데뷔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힙합 가수들은 잇따른 등장은 아이돌 그룹 홍수 속에서 침체된 힙합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언더와 오버 시장을 불문하고 많은 힙합 앨범이 발매를 앞두고 있어 힙합은 올 하반기 가요계의 핵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정글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허경영 “소녀시대ㆍ포미닛과 듀엣하고 싶어”

    허경영 “소녀시대ㆍ포미닛과 듀엣하고 싶어”

    가수로 데뷔한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무대에서 립싱크를 고집하는 이유를 전했다. 허 총재는 최근 케이블 음악채널 ‘MTV 24’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학 축제에 초대받아 강연을 하는 모습, 히트곡 ‘콜 미’를 부르며 공연을 하는 모습 등 하루 24시간 일과를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 그는 ‘왜 라이브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중력 춤에 집중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라이브는 힘들다.” 며 “립싱크임에도 반 박자 느리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나중에 함께 하고 싶은 듀엣 가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소녀시대와 포미닛”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홍대 V홀에서 신곡 발표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본격적인 ‘폴리테이너’ 활동을 시작했다. ’콜미’에 이은 신곡 ‘허본좌 허경영’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댄스 리듬에 허총재의 랩이 돋보이는 곡. 그는 조만간 음반을 발표하고 첫 무대를 공개할 계획이다. 허 총재의 24시간 행적을 담은 ‘MTV 24’는 15일 밤 11시에 방송된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與 “지지율 업고 3승”… 野 “후보 연합해 3승”

    與 “지지율 업고 3승”… 野 “후보 연합해 3승”

    10·28 재·보선 후보등록이 13~14일 이뤄지면서 선거전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5개 선거구 가운데 ‘3승’을 자신하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지난 10년간 전례가 없던 ‘재·보선 여당 승리’에 강한 기대감을 걸고 있다. 지난 4·26 재·보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몽준 대표가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국정 지지도와 당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마음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을 정도다. 재·보선을 앞둔 당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정 대표는 “지난 10년간 여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한 적이 없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를 넘어도 여당이 승리한 적이 별로 없다.”며 자만심을 경계했다. 전여옥 전략기획본부장은 “재·보선을 치르는 5곳을 훑어본 결과 선거현장에서 함께 돕고 발로 뛰는 것이 소기의 성과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비록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시간이 되는 분들은 함께 도와주고 발로 뛰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다소 다급해졌다. 정세균 대표가 이날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듭 제의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쥐를 잡는 데 고양이 색깔이 중요하지 않듯이 민주개혁진영의 승리를 위해 민주당만의 색깔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되 대의를 위해 연합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경기 안산 상록을 지역에서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 야3당의 요구를 감안한 것이다. 천정배 의원과 제종길·전해철 위원장 등 민주당 안산 지역 위원장들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민주개혁진영의 운명을 가늠할 중대한 선거”라며 안산상록을 지역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전날 강릉의 홍준일 후보와 무소속 송영철 후보의 단일화에 고무된 가운데, 수도권 2곳에서의 승리에 의미를 두며 온 힘을 쏟고 있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이봉주 고향에 마지막 봉사

    꼭 10년 전인 1999년 10월 중순. ‘봉달이’ 이봉주(39)는 충남 보령의 한 여관에서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서워진 12월엔 경남 고성으로 옮겼다. 역시 여관방 신세. 훈련에 한번 나서면 100여일씩 걸리는 터라 쓸쓸하기까지 했다. 그해 8월 6년째 몸담던 코오롱 마라톤팀 개편을 둘러싼 문제에 휩싸여 ‘무적(無籍) 선수’를 자처했던 이봉주는 2000년 2월 도쿄 국제대회에서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겨냥했지만 “키워준 팀을 버리고 잘 되겠느냐.”는 따가운 눈길은 짐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실패하면 운동화를 벗어야 했다.”고 말했다. 넉달 뒤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육상계의 결의를 모아 창단한 삼성전자 육상단에 둥지를 틀었다. 10월 시드니올림픽에 나섰지만 18㎞ 지점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하며 24위. 2시간17분57초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그는 우려 속에 이듬해 4월 보스턴마라톤에서 1947년 서윤복(86) 이래 반세기 만에 한국의 금메달을 일구며 의구심을 잠재웠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오는 21일 대전 전국체전에서 현역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다. 충남 천안 성거읍에서 태어난 이봉주는 “고향을 위해 한 게 별로 없어서 은퇴 경기를 충남 대표로 뛴다.”고 12일 밝혔다. 그는 20세이던 1990년 충북 전국체전에서 2위를 차지하며 풀코스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의 간판 마라토너로 자리매김한 뒤 다시 데뷔 무대로 돌아와 41번째 완주에 나서는 것. 16년째 동고동락하는 삼성전자 오인환(50) 감독은 “마스터스 대회에서 하프코스를 뛰며 일반인들과 영예를 함께 하는 길도 생각했지만 이봉주가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메달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자칫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지만 또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 인간 극한의 운동 마라톤에선 대부분 10~20회 완주 기록을 남기고 은퇴의 길을 간다. 더욱이 이봉주는 왼발 248㎜, 오른발 244㎜의 ‘짝발’에다 평발이다. 레이스 도중 눈을 찌르는 쌍꺼풀을 수술하다 잘못돼 ‘짝눈’이라는 핸디캡도 안았다. 지난 7월부터 강원 횡계와 충남 공주를 오가며 크로스컨트리, 오르막 훈련 등으로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는 은퇴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마지막 남은 체육학 석사학위 논문을 마칠 계획이다. 그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이론에다 경험을 엮어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전주35사단 임실 이전사업 제동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35사단을 임실군으로 옮기는 사업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원고인 주민들의 손을 들어줘 부대 이전이 상당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이에 따라 전주시가 육군 35사단 이전 부지에 만들려는 대규모 주거단지 조성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이번 소송의 쟁점은 국방부가 환경영향평가도 받지 않은 채 35사단 이전 실시계획을 승인처분한 게 법적으로 옳으냐는 부분이었다. 국방부는 2007년 4월 35사단 이전사업에 대한 실시계획을 승인해 줬으나 환경영향평가는 8개월 뒤에 받아 ‘환경 등 영향평가법’을 위반했다는 게 원고인 임실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국방부와 전주시는 국방사업법에 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국방사업일지라도 사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것이 입법취지에 맞다.”며 임실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이번 판결로 시와 국방부의 무사안일한 행정 처리도 도마에 오르게 됐다. 전주시 등은 2006년 강원도에 있는 한 군부대의 사격장 이전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패소한 사례가 있었지만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고집했다가 일을 그르쳤다.그러나 이번 판결이 잘못된 행정절차만을 다시 밟으라는 취지여서 영향과 파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행정절차를 다시 밟는 데만 최소 2~3개월이 걸려 그만큼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미 법원이 이 사업의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 6월22일 받아들이면서 공사가 3개월 이상 중단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지연 기간은 적어도 6개월 안팎에 이르게 된다. 특히 국방부가 항소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사업은 더 늦어지게 된다.전주시도 35사단의 터와 주변 지역을 친환경 복합 주거단지인 ‘에코타운’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이전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가 공사 중단으로 입게 될 손실액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지도 앞으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또 이번 판결로 전국 각지에서 추진되는 각종 군부대 이전 등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내용의 소송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군부대 이전 등의 국방사업에 대해서는 35사단과 같이 환경영향평가를 제때 받지 않는 사례가 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 사업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35사단 이전사업은 3371억원을 들여 송천동의 부대를 2011년까지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일대로 옮기는 것으로 현재 13.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나, 임실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역사에서 소리없이 사라진 비운의 13人

    존 밴버드(1815~1891년)를 안다면 당신은 지독한 독서가이거나 독특한 취향의 잡학 수집가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밴버드가 한창 활동하던 185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그를 모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초의 활동사진 격인 ‘움직이는 파노라마’를 고안한 그는 당대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도 주스 브랜드 ‘웰치스’는 목사 출신의 의사 토마스 브램웰 웰치(1825~1903년)가 콩코드 품종의 포도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1869년에 개발한 ‘무발효 와인’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미국 보스턴 인근 콩코드에서 포도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개량 품종을 처음 만들어낸 건 농부 이프리엄 불(1806~1895년)이었다. 그는 새 품종 개발에 평생을 헌신했지만 말년에 양로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묘비명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뿌렸고, 다른 이들이 거두었다.’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1775~1835년)는 18세기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유명했던 인물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학업에 충실하지 못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바보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 친구의 변호사 사무실에 하급 사무원으로 취직한 그는 골동품 수집가이자 셰익스피어 애호가인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일념으로 셰익스피어에 관한 문서와 작품을 모조리 위조했다. 사기행각은 결국 탄로났지만 원본 위조 문서의 일부는 대영박물관에까지 전시됐다. 역사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관대하나 실패한 자들에겐 인색하다. 미국 포틀랜드주립대 교수 폴 콜린스의 ‘밴버드의 어리석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은 뛰어난 열정과 탁월한 능력으로 한때 세상을 풍미했지만 때를 잘못 만나서, 고집이나 광기 때문에, 혹은 운이 지독히 없어서 역사에서 소리없이 사라진 13명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기꾼, 허풍장이, 바보라는 세상의 조롱 뒤에 숨겨진 그들의 창의력과 열의를 저자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따뜻함이 깃든 위트로 흥미롭게 되살려냈다. 1만 4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선군헌법’ 대비책 마련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은 ‘선군헌법’(先軍憲法)으로 불러야 하겠다. 개정헌법에서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했다. 선군사상은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모든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하여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세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새 헌법 채택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욱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파키스탄의 경우 2000개의 원심분리기로 연간 60㎏의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생산했다. 현재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이 200개의 원심분리기를 지난 5년간 지하에서 가동했다면 핵무기 하나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30㎏가량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과연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국민의 안보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미국 핵우산이라는 ‘약속어음’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도 철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방부 내부의 논란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창한 ‘고효율 다기능’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국방비의 적정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고 초당적으로 합의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최근 GDP의 2.7%라는 매우 낮은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분단상태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준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GDP의 4%를 국방비로 편성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갖고 있는 일본은 GDP 1%를 국방비로 쓰지만 그 총액은 우리 국방비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의 국방비는 GDP의 3.5%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비효율과 낭비의 낡은 관행’을 과감히 도려내고 철저한 국방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해 나가기 위해 ‘인권조항’을 신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군노선을 고집할 경우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탈북자의 숫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북핵 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그랜드바겐’ 구상에 북한 인권 문제를 제외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선군헌법’ 채택 이후 북핵 문제는 장기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북핵, 경제협력,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국제공조 하에 추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채택된 ‘유신헌법’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채택된 ‘선군헌법’은 ‘유신헌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남북관계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내부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북한의 새 헌법 채택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길섶에서] 우측통행/오일만 논설위원

    며칠 전부터 서울 지하철 역에서 우측보행을 하게 됐다. 1호선에서 4호선으로 바꿔 타는 동대문 환승역에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좌측보행을 귀가 따갑게 듣던 나로서는 몹시 어리둥절했다. 오른쪽 보행길에 화살표 모양의 ‘우측통행’ 표지를 붙여 놨지만 서로 어깨가 부딪치거나 행렬이 뒤엉키는 경우도 생겼다. 좌측으로 걷다가 다시 우측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처음 입어 본 옷이나 신발의 어색함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우측보행 시 속도가 1.7배나 빠르고 충돌 횟수도 24%나 줄어든다. 우측으로 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란다. 미국 등 대부분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우측통행을 채택하고 있어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좌측통행을 고집했던 것은 굳어진 보행습관 때문일 테고 고치자니 수반되는 불편함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2, 3일 지나면서 동대문 환승역의 우측통행은 자리가 잡혀 가는 분위기다. 우측길을 걸으면서 좌측통행처럼 잘못된 관행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지훈아, 여기 둔 종이 안 봤니? 친목회 돈 받고 적은 걸 놔뒀는데.” 엄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며 물었다. “아니요. 전 책을 읽고 있었던 걸요.” “그래? 그럼 누가 손을 댔지?” 엄마는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 두었는데…….” 엄마는 몇 번이나 응접테이블 위와 아래를 기웃거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 위에는 먼지 하나 앉아 있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조금 전에 요 위에다 종이를 놔뒀거든. 그런데 없잖아.” “난 백 번 말해도 안 봤어요.” “귀신이 곡을 하겠네. 그럼 어디로 갔지?” 엄마는 다시 테이블 주위를 살피셨다. “혹시, 네가 보고 시치미 떼는 거 아니냐? 봤으면 얼른 내 놔라.” 엄마는 미심쩍은 얼굴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만, 난 절대로 보지 않았어요.”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뻔했다. 그동안 엄마의 잔소리에 얼마나 시달렸는데 애꿎은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하다니. 나는 엄마의 물건에는 정말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잘못했다가는 엄마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시 그럼, 엄마가?” 엄마는 의심의 화살을 외할머니에게 겨누었다. “엄마! 왜 또 외할머니를 의심하세요?” 나는 혹시나 하면서도 외할머니 편을 들어드린다는 생각에 큰 소리쳤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찬찬하지 못해서 가끔씩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의심이 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의심하는 건 싫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지.” 엄마는 사라진 종이를 찾지 못해 다시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참 깔끔하다. 뭐든지 어질러진 꼴을 못 보신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물건은 찾기 쉬운데 두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외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온갖 물건이 방안 가득 널려 있다. 아니 이부자리만 빼고 약이랑 할머니 소지품,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난 건망증이 심해서 안 보이는데 두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와 외할머니는 자주 다투시지만 외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엄마는 청소귀신, 정리귀신이 씌운 모양이다. 가구들은 늘 반질거렸고, 물건이 하나라도 제자리에 없으면 난리를 피운다. “너무 깨끗하면 복이 달아난다. 대충대충 청소해라.” 외할머니가 이따금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다니러 왔다가 엄마의 깔끔을 떠는 모습에 혀를 차더니 좀처럼 놀러오지도 않는다. 먼지가 보이지 않는데도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냉큼 걸레질을 하니 할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신 적이 있다. “원 불편해서 다시 가겠냐?” 아빠가 할머니에게 놀러오라고 전화를 하면 할머니는 못마땅한 듯이 말씀하신다. “당신 왜 그래? 어머니가 편하게 지내다 가게 하지.” 아빠가 엄마에게 나무라면 엄마는 “내가 뭐 어머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녜요. 먼지가 앉아서 닦은 것뿐이지.”하고 변명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며 나는 슬그머니 기분이 좋았다.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야 해. 그래야 집안이 늘 깨끗하지, 손님이 와도 안 부끄럽고. 찾기도 쉽고. ” 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헤매다니 고소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청소나 정리뿐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정확하지 않으면 엄마는 마음을 놓지 않으신다. 시장에 갈 때에도 정확하게 살 물건을 써서 꼭 그것만 사가지고 온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싸게 나와도 엄마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먹고 싶은 과일이나 떡볶이, 어묵 같은 걸 맛볼 수가 없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살 때도 싸고 좋은 것을 산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녀 진을 다 빼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사다주신 걸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받아들인다. “신발이 잘 정리되어야 도둑이 안 들어. 도둑이 들어왔다가 아 이 집은 신발장을 보니 물건을 함부로 놔두지 않겠다 하고 가버리지.”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엄마의 잔소리 테이프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었으면 제자리에 꽂아야지.” 만일 책을 읽다가 방바닥이나 거실에 두었다가는 잔소리가 금세 날아와 귀에 꽂힌다. 그래서 나는 책에 손도 대지 않는다. 책정리를 안 했다고 꾸중을 듣느니 차라리 안 읽고 말지. 그러면 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꾸중을 하신다. “너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거 알아 몰라? 학생이 책도 안 읽고 무슨 공부를 한다는 거야?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 알지?”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그래도 살 맛 나는 건 외할머니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일을 대충대충 하시고, 아니 오히려 덤벙대신다. 빨래를 할 때도 대충대충 하시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한 빨래를 엄마가 다시 할 때도 있다. “엄마, 세탁기에 넣어서 빨면 되잖아요. 왜 만날 손으로 빤다면서 잘 문지르지도 않고 비눗물도 잘 헹구지 않는 거예요?” “왜 비싼 전기를 써서 빨래를 하니? 손으로 대충해도 되지. 멋을 낼 옷도 아닌데 좀 더러우면 어때?” 외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왜 그리 성화냐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여 엄마를 더욱 화나게 만들 때도 있다. 할머니는 잘 잊으신다. 시장에 갔다가 돈만 주고 물건을 안 가지고 올 때도 있고, 돋보기안경은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른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건망증 때문이라거나, 노망이 들었다거나,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것 같다고 하시면서 쩔쩔매실 때가 많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잊으신다. “엄마, 이 종이에 살 물건을 다 썼으니까 꼭 이 종이를 보면서 사야 해요.” 엄마가 바빠서 외할머니에게 시장가는 것을 부탁하면 외할머니는 그중에서 몇 개는 빠뜨리실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가 다시 시장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시장에 가는 핑계로 놀 수 있으니까 나는 횡재를 한 셈이다.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네.” 할머니가 실수를 하면 엄마는 외할머니가 못마땅해서 중얼거릴 때가 많다. 아무튼 잔소리와 청소와 정리하러 태어난 사람처럼 엄마는 극성이시다. 엄마가 종이를 찾으러 방으로 거실로 들락거릴 때, 외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 혹시 여기 둔 종이 못 봤어요?” “종이? 어질러졌기에 쓰레기봉투에 넣어 아까 버렸는데. 난 또 쓰레긴 줄 알았다.” “정말이에요?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외할머니를 쳐다보더니 급히 밖으로 나가셨다. “난 또 네가 종이를 아무렇게나 놔둔 줄 알고 엄마가 보기 전에 얼른 치우려고 했지.” 외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잘했어요, 할머니. 엄마도 당해 봐야 잔소리가 줄어들지요.”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매일매일 깔끔을 떠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난리치는 걸 보는 건 흐뭇하기까지 했으니까. 한참 후, 엄마는 종이를 들고 현관문을 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아무거나 버리지 마세요. 한참 찾았잖아요. 쓰레기차가 다녀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알았어. 다신 손대지 않으마.” “내 물건에 손대지 말고 엄마 방이나 깨끗하게 치우세요. 누가 오면 엄마 방문을 열어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니까요.” 엄마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난 네가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미안한지 변명처럼 이야기했다. “내가 언제요? 난 엄마 물건에 함부로 손댄 적이 없는데요.” 엄마도 변명처럼 대답했다. “내가 말해주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리를 한다면서 내가 쓰던 물건에 손대서 내가 찾느라 애먹고 있는 걸 넌 모르지? 너도 나이가 들면 다 나처럼 잊기 대장이 돼. 너라고 안 늙을 줄 아냐? 엉엉엉”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엄마도 참.” 엄마는 더 말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외할머니가 우는 걸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이나 서 있다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알았다. 내가 철딱서니 없이 울었구나. 철이 없게.” 외할머니가 눈물을 그쳤다. 나는 눈물을 흘리던 외할머니가 하나도 철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할머니는 또 실수를 하실 것이다. 그땐 내가 응원을 해 주어야지.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작가의 말 몇 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철이 들어 많이 후회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대화를 많이 하고 배려를 해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약력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남. 아동문예 신인상, 계몽아동문학상, 제주문학상 받음. ‘검둥이를 찾아서’ ‘내 친구 삼례’ ‘이여로 간 해녀’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까마귀오서방’ 등의 창작집이 있음. 현재 서귀포학생문화원장(http://iyudo.hihome.com)
  • 힙합과 대중 힙합 세대를 잇는다

    힙합과 대중 힙합 세대를 잇는다

    “힙합은 느낌, 힙합은 생활, 힙합은 나, 힙합은 우리” 최근 나온 프로젝트 앨범 ‘더 커넥션(Konexion) 2’에 눈길이 간다. 40명에 가까운 힙합 뮤지션들이 함께한 힙합의 진수성찬이다. 드렁큰 타이거,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바비 킴, 리쌍, 양동근, 은지원 등 오버그라운드는 물론 더 콰이엇, 데드 피, 딥 플로우, 팔로알토, 양갱 등 언더그라운드 고수들도 대거 참여했다. 무브먼트, 부다사운드, 소울컴퍼니, 지기 펠라즈 등 날고 기는 국내 힙합 크루(집단) 또는 레이블 뮤지션들이 자신의 소속을 뛰어넘어 힘을 모았다는 점도 이채롭다. 국내 힙합 0세대로 꼽히는 프로듀서 스모키 제이(43·본명 이정석)가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미교포인 그는 친구 이현우가 가수로 성공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1990년대 초반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1996년 ‘아야아야이!’라는 인상적인 곡을 들려준 힙합그룹 버트헤드에 몸담기도 했던 그는 양동근과 은지원을 비롯해 수많은 힙합 뮤지션의 앨범에서 프로듀서로 활약해왔다. ●힙합 뮤지션 40명 참여… 힙합의 진수성찬 최근 스모키 제이를 비롯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플레이어’에 참여한 부가킹즈의 래퍼 주비 트레인(31·본명 주현우), 실력파 래퍼 더블 케이(27·본명 손창일), 최연소 래퍼이자 프로듀서 도끼(19·이준경)를 만났다. 주비 트레인은 스모키 제이에 대해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때 제대로 된 힙합을 가지고 와 씨앗을 뿌렸다.”면서 “지금도 힙합을 고집하며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든든하고 멋진 선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스모키 제이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있기에 마흔이 넘어서도 힙합을 할 수 있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인 후배들이 고맙다. 일흔이 넘어서도 힙합을 하고 싶다.”고 웃었다. 2002년에 이어 커넥션 시리즈를 쌓아가고 있는 그는 “힙합과 대중을 연결하고, 힙합의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힙합의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연결하자는 의미”라면서 “참여 뮤지션 가운데 절반가량은 언더의 실력파들인데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에는 다른 장르의 실력파 뮤지션들과 힙합을 연결하고 싶다고 한다. 1990년대 초중반과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아직도 힙합에 대한 선입견은 존재한다. 힙합은 어렸을 때나 듣는 것, 반항적이고 삐딱한 것, 3류 음악, 우리 정서와 어울리지 않은 것 등등. 스모키 제이는 “청바지나 미니스커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렇지 않았느냐.”며 웃는다. 원래 록을 좋아해서 처음 힙합을 듣고는 그냥 던져버렸다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들었을 때 ‘내 음악’이라는 느낌이 왔다는 그는 이번 앨범에서 그러한 편견을 깨려고 했다. 국내 힙합의 역사가 길어진 만큼 고급스럽게, 나이에 따라 깊어진 내용과 블루스 등 다양한 음악을 힙합의 틀 안에 담으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주비 트레인이 “이제는 우리 대중가요에 힙합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피처링 문화도 정착시키는 등 대중음악 발전에 한몫 했다고 자부한다.”면서 “힙합은 미국에서 나왔지만 그냥 따라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우리의 것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한(恨)이라는 우리네 정서가 힙합과 잘 어울려서인지, 미국 힙합 뮤지션들도 한국의 실력을 인정해준다고 한다. 더블 케이는 “비트와 운율을 타는 랩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일상 대화에 가깝기 때문에 공감이 많고 매력적이다. 래퍼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여 보면 공감대가 넓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힙합 전성시대를 꿈꾸며… 2003~2004년 즈음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등장해 춘추전국시대를 이뤘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마다 힙합 클럽이 넘쳐날 정도로 힙합이 절정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다소 소강 상태. 하지만 “한때 팬들보다 래퍼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 어설프게 힙합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등 거품이 빠지고 실력자들만 남은 상태”라면서 “유행이 끝났다면 다시 유행을 만들면 된다.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힙합의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록 페스티벌이 있는 것처럼, 힙합 페스티벌을 꿈꾸는 이들이 음악 팬들과 힙합 동료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다양성을 존중해줬으면 해요.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할 권리는 없죠.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게 마음을 열어줬으면 합니다.”(더블 케이) “힙합이 그냥 쉽게 하는 것 같지만 좋은 음악, 좋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죠. 사실 힙합을 들으려면 소리가 뭉개지는 MP3보다는 CD로 듣는 게 좋아요. 이러한 노력을 염두에 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요.”(스모키 제이) “저를 포함해 힙합하는 친구들 모두 대한민국 힙합 대표라는 자존심을 갖고 그 자존심을 지켰으면 합니다.”(주비 트레인) “쉽게 보지 말고 확고한 생각과 열정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앞으로 힙합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어요.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까요.”(도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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