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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시대 흐름에 맞는 ‘우리말 표기법’/임형주 팝페라 테너

    [문화마당] 시대 흐름에 맞는 ‘우리말 표기법’/임형주 팝페라 테너

    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팝페라 테너’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음악장르가 ‘팝페라’라는 것이다. 클래식과 오페라를 좀 더 대중에게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팝적인 감각을 섞어서 부르고 표현하는 크로스오버 음악장르 중 하나다. 팝과 오페라의 합성어이기에 ‘팝페라’라고 부르고, 표기한다. 그런데 소수 매체들이 간혹 ‘파페라’로 표기하는 바람에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표준 외래어·외국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국내 최초의 ‘팝페라 테너’로 데뷔하고 ‘애국가 소년’으로 알려진 지난 2003년부터 줄곧 ‘팝페라’로 불렸기에, ‘파페라’가 돼 버리면 정체성의 혼란까지 느껴진다. 마치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들은 드라마 주인공 같은 당혹감이랄까. 얼마 전 일이다. 저녁식사 중 친구가 엉뚱하게 물었다. “콘텐츠가 맞을까, 컨텐츠가 맞을까.” 자신있게 “콘텐츠”라고 답했는데, 친구는 “둘 다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발음대로라면 ‘컨텐츠’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콘텐츠’가 맞다고 했는데, 친구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다른 외래어·외국어 표기가 덩달아 궁금해지면서 그날 저녁식사는 한글 표기법에 대한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다. ‘케이크’와 ‘케잌’, ‘슈퍼마켓’과 ‘수퍼마켓’, ‘액세서리’와 ‘악세사리’, ‘보디케어’와 ‘바디케어’ 등은 앞은 맞고 뒤는 틀린 표기였다. 수도 없는 외래어·외국어가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도 놀랐지만, 표기법을 대체로 혼동하고 있다는 놀라움이 더욱 컸다. 결국은 우리말인데 우리가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니 말이다. 물론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각자 자기의 발음대로 사용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와 시대 흐름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어문규정이 혼동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어문규정에서 ‘전통’은 중요하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국어학자들이 원칙을 만들고 보존해온 것은 그게 한국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타협하고 변화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외래어·외국어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 본질적 태생과 의미 자체에 옹고집을 세운 ‘전통’을 부여하고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요, 난센스다. 짜장면이 자장면이 됐다가 25년 만인 2011년 다시 짜장면도 표준어로 허용한 것이 한 예이다. 우리말 ‘한글’이 세계 언어 중 얼마나 실용적인 언어인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금씩 개정은 있었지만, 여전히 ‘정통성’을 지키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래어·외국어까지 이미 오래전에 확립된 표기법과 형식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종종 펼쳐진다. 외래어·외국어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온 말이지, 본래 우리말이 아니다. 외래어·외국어 표기에 필요한 ‘정통성’은 시대 흐름에 맞춰 대다수의 사람이 편하게 발음할 수 있도록 수정보완하고 개정해줄 수 있는 ‘유연한 정통성’, ‘진보적 정통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처럼 외래어·외국어를 많이 쓰는 세상이라면, 말과 글이 달라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런 게 새 시대에 적용할 세종대왕의 뜻이라면 억지일까.
  • 충남도 “올 서해안 살리기 598억 투입”

    충남도가 6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침체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서해안 살리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고 발생 5년여가 지난 지난달 16일 국내 사정재판이 끝났지만 배상금이 턱없이 낮은 가운데 나온 대책이다. 안희정 지사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598억원을 들여 유류피해 배·보상 지원, 휴양 관광지 위상회복, 수산업 기반 구축 및 어민 편익 제공 등 20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도는 먼저 서해안유류사고지원본부에 민사재판 지원창구를 설치한다. 대전지법 서산지원이 4조 2271억원의 17%인 7341억원만 배상을 인정한 사정재판에 대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불복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피해 주민들의 법적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IOPC는 자체 사정한 배상금 1824억원을 고집하고 있다. 도는 지원창구에 전담요원을 배치해 사고 전후 관광객과 어획량, 방제지역 등 각종 행정자료를 제공한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경제 브리핑] 금감원, SC銀 고배당 추진 ‘제동’

    금융감독원은 4일 한국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이 추진하는 2000억원 수준의 고배당이 과도하다며 적정 수준으로 낮출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SC은행은 지난해 배당으로 9월 중간배당(1000억원)에 이어 조만간 2000억원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배당을 계속 고집할 경우 리처드 힐 행장이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르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향토기업 특선] (5)대구·경북 황토벽돌 제조업체 ㈜ 삼한C1을 가다

    [향토기업 특선] (5)대구·경북 황토벽돌 제조업체 ㈜ 삼한C1을 가다

    ㈜삼한C1은 황토를 원료로 웰빙벽돌을 생산하는 대구·경북의 향토기업이다. 본사는 대구에, 공장은 황토가 좋기로 소문난 예천에 있다. 비록 지방의 중소업체이지만 국내는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강소(强小) 기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황토벽돌(건축용 및 바닥용) 생산 저력을 지녔다. 삼한C1의 제품은 전국 주요 건축물과 거리 조성 공사 때 빼놓지 않고 시공됐고, 일본과 타이완, 러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벽돌의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 등 선진 외국 바이어들의 공장 견학 및 구입 문의까지 줄을 잇고 있다. 삼한C1은 1978년 창립된 이래 35년 만에 국내외 벽돌기업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이 같은 성공 비결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끈임 없는 재투자, 신기술 개발을 통한 품질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삼한C1의 자체 품질 규격은 KS규격보다 무려 5배나 엄격하다. 건축용 제품의 경우 190㎜ 길이에 ±1㎜ 오차만을 허용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차없이 폐기 처분한다. KS규격은 ±5㎜ 오차까지 허용하고 있다. 압축강도에서도 KS기준이 250㎏f/㎠ 이지만 삼한C1은 350㎏f/㎠ 이상으로 세계 최고의 내구성을 자랑한다. 국제기준(미국 ASTM) 300㎏f/㎠보다도 높다. 바닥용 벽돌의 강도는 무려 700㎏f/㎠ 이상을 자랑한다. 그래서 삼한C1 벽돌로 시공하면 최소 200년 동안은 끄떡없다. 여기에는 벽돌 한 장이라도 장인의 혼이 살아 있는 질 높은 품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삼화(69) 회장의 외고집 경영 철학이 녹아 있다. 삼한C1은 연간 350여 종류, 1억장 이상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불량률은 ‘제로(0)’다. 제토-성형-건조-소성-포장·출하 등 전통적인 ‘3D 업종’이었던 벽돌 제조공정에 2003년 국내 동종 업계 최초로 최첨단 컴퓨터 자동화 통합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한 성과다. 이 시스템은 벽돌의 품질을 좌우하는 사이즈, 강도·내구성, 표면, 색상 등 규격 균일화뿐만 아니라 잡티나 사소한 뒤틀림도 빠짐없이 잡아 낸다. 또 고객 수요에 맞춰 핑크, 초코, 오렌지, 실버, 블랙 등 다채로운 색상의 벽돌을 생산해 공간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공장 책임자인 변종택(51) 상무이사는 “황토를 원료로 1200도 이상의 고열을 가해 만든 제품이 불량률 제로에 가까운 공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삼한밖에 없다”면서 “외국 바이어들도 삼한의 놀라운 기술력과 제품에 대해 고개를 절로 끄떡인다”고 소개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삼한C1의 탄탄한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삼한C1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만 특허 15건, 실용신안 17건, 디자인 40건 등 모두 72건에 달한다. 국내 벽돌 업계 최초로 1997년 ISO9001(국제표준화기구) 인증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품질보증 Q마크, 중소기업 우수GQ마크, JIS(일본공업규격) 등도 획득했다. 특히 2011년엔 조달청으로부터 ‘자가품질 보증업체’ 제1호로 당당히 선정됐다. 자가품질보증제는 업체 스스로 생산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조달청이 심사해 최고 3년까지 납품 검사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최근엔 삼한C1 제품이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건축자재 추천 품목으로 선정됐다. 2000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전국 1호로 선정되는 등 지금까지 수상 경력도 40여차례나 된다. 1998년부터 자체 기술연구소를 두고 있는 삼한C1은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매년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돌리고 있다. 가장 자연적인 재료인 ‘황토’를 이용해 첨단 과학과 시스템으로 빚은 삼한C1의 제품은 국내 곳곳에서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덕수궁 돌담길, 서울 대학로, 청계천, 일산 킨텍스전시장, 대구 월드컵경기장, 부산 APEC광장, 해운대 달맞이공원, 인천국제송도신도시, 울산종합운동장 등의 건축 및 바닥재 시공에 삼한 C1의 제품이 납품됐다. 자연스러운 컬러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건축용 벽돌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계명대, 목원대 등 학교를 중심으로 많이 시공됐다. 이밖에 제주순례성당 등 종교시설을 비롯해 단독주택, 고급빌라, 아파트 등 주거시설에도 삼한C1 제품이 사용됐다. 삼한C1의 최근 5년간 매출액은 2008년 219억원, 2009년 257억원, 2010년 232억원, 2011년 224억원, 2012년 236억원 등이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제주 민·관 복합 관광미항 논란 이젠 끝내야

    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에 대해 정부와 제주도가 그제 합동으로 실시한 시뮬레이션에서 15만t급 크루즈선 두 척이 동시에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뮬레이션에는 정부와 제주도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따로 추천한 전문가·연구원·도선사 등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정마을 일부 주민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 전국대책회’는 기지의 설계 오류와 졸속검증을 주장하며 또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도 “(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사전에 기획한 꼼수”라며 공사를 막겠다고 한다. 국가안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책사업이 반대세력의 생트집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니 갑갑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를 매듭지으면 또 다른 구실을 들이대며 공사를 가로막으면 언제쯤 완공하겠는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참여정부 때인 6년 전에 확정됐다.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벌써 다 짓고도 남았다. 숱한 논란 끝에 대법원이 지난해 해군기지 사업에 대해 적법 판결을 내렸고, 이제 정부와 제주도 공동검증단이 시뮬레이션까지 다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구실을 달아 반대를 고집하면 대체 어쩌자는 건가. 당초 해군기지는 강정마을 다수 주민들의 찬성으로 입지가 선정됐다. 그러나 2011년부터 일부 시민단체들이 개입하면서 정치·이념적인 사안으로 변질된 게 온갖 갈등을 빚으면서 공사를 지연시킨 주요인이었다.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국회의원들도 국익 차원에서 냉정해져야 한다. 국정을 넓은 시야로 보고 다루어야 할 의원들마저 반대세력에 동조해 이미 30%나 진척된 국책사업을 지체시키면 어느 정권인들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여야 합의 등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당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굳이 현장에 의원들이 우르르 찾아가 공사 중단을 공공연히 주장하면 갈등만 더 키울 뿐이다. 이제는 소모적 논란을 끝내고 군항과 관광미항을 만드는 데 정파와 이념을 넘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부도 국회의 협조를 얻어 예산을 차질없이 집행해야 한다. 제주도와 협의해 지역 발전을 더 고민하고, 반대 주민을 다독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 [깔깔깔]

    ●고집 센 며느리 갓 시집온 고집 센 며느리가 생선을 굽고 있었다. 한쪽만 계속 태우는 걸 보다 못한 시아버지. “얘야, 뒤집어 굽지 않고 한쪽만 그렇게 태우느냐?” “아버님, 걍 냅두세요. 제깟 놈이 뜨거우면 돌아눕겠죠.” ●사냥개와 토끼 사냥개가 산토끼를 잡아 물고 와 바닥에 내려놓더니 얼굴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산토끼가 지쳐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봐요! 제발 나를 물거나 키스를 하거나 한 가지만 하시오. 그래야 내가 당신의 먹이인지, 친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러자 사냥개가 하는 말. “이보게, 내가 배가 고프면 먹이가 되는 것이고, 배가 부르면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
  • [이동흡 청문보고서 채택 무산] 새누리, 단 10분 野 설득하고 협상 끝… ‘이동흡 카드’ 버렸다

    [이동흡 청문보고서 채택 무산] 새누리, 단 10분 野 설득하고 협상 끝… ‘이동흡 카드’ 버렸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청문보고서) 채택 무산은 예견된 일이었다. 24일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청문특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민주통합당은 “이동흡 청문보고서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판단하는 여론이 부상했다. 특히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전날 오전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유용’ 논란에 대해 “콩나물 사는 데 쓰면 안 되지”라고 비판하면서 당내 ‘비토론’이 확산됐다. ‘적격’으로 당론을 정하지 않은 이상 설령 인사청문특위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고 하더라도 본회의 무기명 표결에서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면 국회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표결 자체가 여당으로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복불복’인 셈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당내 반대 기류와 야당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30여개의 비리 의혹이 제기된 이 후보자의 임명 수순을 밟는 대신 당과 새 정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후보자를 버리는 쪽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청문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이지 않은 것 자체가 사실상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인사청문특위 여야 간사가 청문보고서 채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따로 만난 자리에서도 새누리당은 야당 설득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위 간사인 새누리당 권선동, 민주당 최재천 의원이 마주 앉아 청문보고서 채택을 놓고 협상을 벌인 시간은 단 10여분에 불과했다. 최 의원은 “10여분 동안 서로 입장 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고 했고, 권 의원은 합의 결렬 소식을 전하며 “야당의 뜻이 워낙 확고해 설사 청문보고서 제출 기한인 내일(25일) 추가 협의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밝혔다. 여야 모두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셈이다. 국회는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지난 13년간 모두 71건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가운데,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4건을 제외한 67건은 예외없이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권 의원은 “민주당이 부적격 의견만을 고집해 합의가 결렬된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고,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때문에 채택을 못 했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는 이런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유일한 방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 관계자는 “직권상정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 또한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게추는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6500만원 영화 찍다가 110억원짜리 찍어도 예산은 부족하더라

    6500만원 영화 찍다가 110억원짜리 찍어도 예산은 부족하더라

    2000년, 류승완(당시 27)이 연출과 각본, 주연, 무술지도를 맡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충무로를 발칵 뒤집었다. 한국 액션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남다른 이력이 알려지면서 또 화제를 낳았다. 여섯 살 때 청룽 영화에 푹 빠진 영화광으로 고교 졸업 후 독립영화협의회 워크숍을 다녔고, 조감독은커녕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 등 3편에서 연출부를 한 게 전부.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내공을 쌓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액션, 한 우물을 팠고,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2010년에는 검찰과 경찰, 언론의 구린내 나는 구석을 마음껏 씹은 ‘부당거래’로 액션에만 능한 감독이 아님을 입증했다. 류 감독이 차기작으로 음모에 휘말린 남북 첩보원의 이야기 ‘베를린’(작은 사진들·31일 개봉)을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류 감독이 각본·연출을 하고, 한석규·하정우·류승범·전지현이 나오는 건 기대치를 끌어올린 대목. 반면 제작비 45억원(‘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다뤄본 게 최대치인 류 감독이 11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독일과 라트비아에서 찍는 데다, 국내에선 생소한 첩보 액션물이란 점은 위험 요인이었다. 언론 시사 다음 날인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전날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어젯밤에는 A4 용지 뭉텅이가 내게 날아오는 꿈을 꿨다. 촬영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다른 버전의 악몽을 꾼다. 경험은 안 해 봤지만,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이런 거구나 싶다. 규모가 큰데다 해외 로케이션은 길바닥에 돈을 버리기가 쉬운 일이라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밌는 건 6500만원짜리(‘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100억원짜리를 찍을 때나 예산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처음부터 베를린이란 장소를 고집한 건 아니다. 프레데릭 포사이드, 존 르카레, 로버트 러들럼의 작품 등 스파이 소설광이던 그는 제3국에서 벌어지는 첩보원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부당거래’로 베를린영화제에 갔다가 미 대사관 앞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을 본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누군가 미 대사관을 향해 달려가고, 다른 이들이 저지하는 그림을 찍으면 괜찮겠더라. 베를린 서쪽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보고 나서 이미지들이 구체화됐다.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미국 CIA 요원들과 접촉하고 망명한 곳, 송두율 교수와 윤이상 선생의 도시,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층들이 겹쳐졌다.”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호연, 할리우드 뺨치는 맨몸·총격 액션과 차량 추격 장면까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다만, 몇몇 액션 장면과 결말이 ‘본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 류 감독은 조곤조곤 반박했다. “첩보액션 장르인 데다 ‘본 슈프리머시’에 나왔던 웨스턴호텔이 나오기도 하니까 말들이 있는 건 알고 있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비교되는 게 영광이면서도 ‘또 지적질이구나. 죽갔네~’란 생각도 든다. 하하하. 비슷하게 보일까 봐 일부러 핸드헬드(들고 찍기)도 자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 액션 동선은 평소 즐겨 쓰던 방식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복층구조 액션이랄지, 좁은 공간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 삼아 싸우는 것 등이 그렇다. 마지막 밀밭 총격전을 ‘본 아이덴티티’와 닮았다고 하는데, 리 마빈과 진 해크먼이 나온 ‘프라임 컷’(1972)의 영향이 크다. 워낙 좋아하는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은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껏 남녀관계를, 여배우를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이혜영과 전도연은 여장부였다. 영화 속 갈등은 남자들의 배신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베를린’에선 북한 인민영웅 표종성(하정우)과 아내 련정희(전지현)의 관계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는 “표종성은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불쌍한 남자다. 련정희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강인함과 여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캐릭터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멜로를 찍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지현과는 현장에서 일부러 대화를 하지 않았다. 외롭게 뒀다. 고독하고 우울하게 찍히길 바랐다. 찍을수록 확신이 생겼다. 전지현 스스로 음색을 찾고, 어떻게 상대를 응시해야 할지 방법을 찾더라. 관객들은 ‘베를린’에서 배우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거다. 나도 전지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손을 치켜들었다. 다만 속편을 암시한 듯한 결말에 대해서는 아쉬워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한 번도 속편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데 원래의 결말이 100억원짜리 대작치고는 어둡다는 지적이 (투자자들에게) 있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뜯어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 막상 결말을 바꿔놓고 모니터링을 해보니 반응은 좋더라.” 입봉 13년. 그동안 세 아이의 아빠인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아내 강혜정 PD가 대표로 있는 외유내강은 탄탄한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출연 당시 나이트클럽 DJ였던 동생 류승범은 톱배우가 됐다. 궁금했다. 그때보다 행복한지. “6500만원짜리를 찍을 때보다 100억원대 영화를 찍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전에는 영화만 만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어제 시사에서 영화를 보면서 ‘저기서 몇 프레임을 더 걷어낼걸’ ‘사운드가 조금 이상한데’ 이런 생각들로 괴로웠다. 승범이나 아내와는 평소에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지금 진짜 행복한 걸까? 이 일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야 하는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朴, 與 지도부와 첫 회동서 “우리는 공동운명체”

    朴, 與 지도부와 첫 회동서 “우리는 공동운명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3일 새누리당 지도부에 “우리는 공동운명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총·대선 공약 등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시내 한 식당에서 가진 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당부했다고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회동은 박 당선인이 대선 승리 이후 여의도 정치권과 가진 첫 만남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작품인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각료 인선안이 조만간 국회로 넘어가는 만큼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서 원만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은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처리해야 하고 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도 있을 텐데 앞으로도 수고가 많을 것이다. 잘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우리는 공동운명체로 내가 대선 때 국민행복시대를 열어 가자고 주장했지만 정부조직법 등은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같이 한 것 아니냐”면서 “개편안은 제가 청와대 경험과 국회 상임위, 국회의원 활동을 바탕으로 총·대선 과정에서 실천 의지를 가지고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총·대선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꼭 처리해야 하며 당 지도부에서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이번 임시국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회가 될 것이며 저는 늘 국회 의견을 존중하며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는 당에서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단, 상임위원장단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박 당선인 측에선 진영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과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팀장, 조윤선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오후에 열린 의총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택시법’을 이명박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로 되돌려 보낸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사실상 수용의 뜻을 밝혔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택시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현명한 대안이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한 뒤 재의결 등 국회 처리 절차에 대한 뱡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관련해 “민주통합당은 국정조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평일 낮, 말라카 거리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로 활기에 차 있다. 우리가 경주에 가서 역사를 배우듯,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라카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 물론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는 수백년 전의 역사유적도 그저 오래된 놀이터일 뿐이지만 말이다. 말라카 강변에 펼쳐진 책 한 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한다. 지도상에서 이 도시는 말레이반도 왼편에서 인도양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함선과 포탄을 앞세운 14세기 정복자들도 말라카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나야만 더 깊숙한 동쪽에 닿을 수 있었다. 말라카는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의 땅이었고 동양과 서양, 거대하고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과거 수백년간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무역항이었다. 무역량으로 따지면 수에즈 운하에 비견됐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너무 낮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여행객들도 간척개발이 한창인 해변보다 오래된 가옥이 늘어선 말라카 강변의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말라카강 리버크루즈는 40여 분 동안 9km에 이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 한적한 노천 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보이고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펼쳐진다. 먹음직스런 열대 과일과 음식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 중국, 아랍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까지, 움직이는 배 안에서 보면 그 자체가 한 권의 그림책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가옥촌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녁에는 불을 밝힌 노천 카페에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차례 소나기 후, 불어난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도 여기선 한없이 매력적이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반딧불이나 월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도 볼 수 있다. 강변의 카페와 연결되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와 히런 스트리트Heeren Street는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존커 스트리트에는 골동품점과 작은 미술관, 특색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매주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존커 워크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 히런 스트리트다. 저렴한 호텔과 예쁜 네덜란드풍 건물이 많다. 네덜란드어로 ‘존커’는 하인을, ‘히런’은 주인을 뜻한다. 존커 거리는 히런 거리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 보는 말라카 해협의 모습.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2 존커 워크 스트리트는 골동품점, 기념품점,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거리다 3 말라카 리버크루즈 는 9km에 이르는 말라카 강줄기를 따라간다. 노천카페와 전통가옥, 벽화가 말라카의 분위기를 전한다 4 비오는 늦은 밤, 조명을 밝힌 말라카 강은 한없이 매력적이다 5 재즈가 흘러나오는 존커 워크 스트리트의 라이브 카 ▶travie info 말라카 리버크루즈Melaka River Cruise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오후 1시/어른 기준 30RM),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 오전 9시~밤 11시30분/어른 기준 30RM)도 판매한다.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메나라 타밍 사리Menara Taming Sari 전망대 80m 높이까지 올라가는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는 말라카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60도 회전식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다. 푸른 말라카강과 붉은 지붕 가옥, 세인트 폴 언덕의 옛 유적지들로 대표되는 육지 모습과 달리 바닷가는 부산하게 변화 중이다. 연륙도에는 마리나 리조트가 들어섰고, 갯벌에는 간척공사가 한창이다. 낮은 곳에선 볼 수 없던 말라카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밤 10시 입장료 어른 기준 RM20 홈페이지 www.menaratamingsari.com 1 15세기 말라카 왕궁의 모습. 바닥이 지면에서 1~2m 떨어져 있고, 나무로만 지어진 점이 전통적인 말레이시아 건축 구조를 보여 준다 2 도시 이름의 어원이 된 말라카 나무 3 네덜란드 통치 시기 공관으로 쓰였던 스태이더스 빌딩은 현재 말라카 민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4, 5 포르투갈의 흔적은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성당. 벽채만 남은 모습에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6 말라카는 한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동서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교역량은 수에즈 운하와 비견됐을 정도다 7 말라카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인력거 ‘트라이쇼’. 화려한 꽃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는 언덕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파라메시바라Paramesvara왕자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 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 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 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 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듯 보이는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멀리서도 붉은 벽이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는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travie info 트라이쇼Trishaw 스태이더스 앞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력거 ‘트라이쇼’가 줄지어 서 있다. 평범한 인력거가 아니다. 오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지붕이며 좌석을 각종 꽃과 인형, 깃발로 치장하고 있다. 잘나가는 트라이쇼는 광고판까지 달고 성업 중이다. 트라이쇼를 타고 말라카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트라이쇼┃이용요금 시간당 40RM(30분 25RM), 어른 2인까지 탑승 가능 에이파모사┃입장료 무료 말라카왕궁┃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입장료 어른 기준 2RM 스태이더스┃개장시간 오전 9시~ 오후 3시30분(금~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입장료 어른 기준 5R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나라가 사는 법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레이시아에서 진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나라에선 한국인의 영어가 유독 잘 통한다. 우리나라 콩글리시 버금가는 게 바로 말레이시아의 ‘맹글리쉬’.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가지 언어로 이뤄지는 완벽한 의사소통보다 다양한 언어로 이뤄지는 유연한 의사소통이 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여러가지를 포용한다. 가장 전통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를 가장 매력적인 역사로 소개한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본떴고, 쇼핑몰을 활보하는 여자들은 검정색 대신 온갖 화려한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차도르를 둘렀다. 이곳에서 이슬람 전통은 속박의 족쇄가 아니라,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이나 광장 이름에서 독립을 뜻하는 ‘메르데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매년 8월31일 독립기념일에 성대한 축제를 치를 정도로 독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곳곳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 유적들이 버젓이 관광상품화 돼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부러 이런 곳들을 찾기도 한다. 식민 역사에 대해 예민한 우리로서는 이런 모습이 양면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양면적이지 않은지 묻자 나이 지긋한 관광가이드 노마가 적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용서에 관대한 편이예요. 아마 종교의 영향도 크겠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식민시대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어요. 역사 그대로의 과거에 얽매어 있기보다 새롭게 보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거지요.” 오랫동안 하나의 영토를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포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국민이다. 그리고 그런 관용적인 태도 속에는 다양한 삶의 어떤 형태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강인함이 있다. “나는 10년 동안 트라이쇼 운전을 해왔어요. 운전 기술로 치면 말라카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말라카 최고의 직업이 바로 트라이쇼 운전사라는 거. 난 매일 ‘이녀석’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 가죠. 난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적도 부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일 12시간씩 인력거 운전을 하는 만MAN 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말라카에서 트라이쇼를 타며 만씨와 함께한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말라카의 신선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고, 비온 뒤 씻은 듯 갠 하늘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자전거 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룩한 그의 배와 넉넉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화려하게 뽐낸 ‘이녀석’의 아늑한 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전거와 만씨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베크만BECHMAN’. 그것은 어느새 만씨 자신이 돼 버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도선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MALAY FOOD & SWEET DESERT MALAY FOOD 말라카의 음식 계보는 복잡 다단하다.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의 조리법이 말레이시아 특유의 향신료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탄생했다. 달콤한 ‘자연주의’ 디저트도 말라카에선 꼭 맛봐야 한다. 단맛을 내는 데 코코넛 우유와 팜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설탕 ‘굴라Gula’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공적이지 않고 몸에 좋다. 입 안에 감도는 두 가지 맛 ‘뇨냐푸드NONYA FOOD’ 중국인과 말레이인이 결혼해서 낳은 2세를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한다. 뇨냐음식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아마 혼혈 가정 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주로 중국 조미료에 코코넛 우유, 말레이 향료를 함께 넣어 조리한다. 태생이 가정식 요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먹더라도 휴대용 찬합에 담겨 나온다. 튀김요리인 바이띠Baidee, 중국식 야채볶음인 찹차이Chap Chye, 커리잎을 넣어 구운 치킨IncheKabin 등이 대표적이다. 뇨냐 음식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말라카와 페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라카식은 코코넛 우유를 많이 사용해 달달한 반면, 페낭식은 태국의 영향으로 매운 고추가 사용되는 점이 다르다. 뇨냐 식당은 존커 스트리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맛보는 원조 ‘아쌈페다스ASAM PEDAS’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쌈페다스의 고향이다. 아쌈은 타마린드 열매즙을, 페다스는 ‘매운’을 뜻한다. 파인애플, 스타프루트 등 열대과일, 아쌈, 토마토, 절인 갓으로 만든 소스에 생선과 채소를 넣고 조리하는데, 겉보기엔 생선찌개에 가깝다. 맛은 전혀 비리지 않고 깔끔해 카레처럼 국물을 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 아쌈페다스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루마말라카KafeRumah Melaka를 추천한다. 다양한 말레이, 말라카 전통 음식으로 유명하며, 20년 된 캄풍의 풍취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제외(영업시간 이후는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keferumahmelaka.com SWEET DESERT 코코넛밀크의 감미로운 맛 ‘사고Sago’ 바바 뇨냐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는 간식이다. 사고팜 나무에서 나오는 전분을 하루동안 물에 담그면 젤리처럼 되는데, 이걸 동그랗게 뭉쳐서 은단만한 알갱이로 만들고, 코코넛 우유에 넣어 먹는다. 여기에 과일과 팜나무 설탕인 ‘굴라Gula’를 넣으면 매우 고소하고 달콤하다. 굴라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방법으로 팜나무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식 팥빙수 ‘첸돌Cendol’ 첸돌은 말라카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얼음에 팥을 올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팥빙수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시럽 대신 굴라를 사용한 자연식이라는 것. 특히 향료의 하나인 판단잎 즙으로 만든 녹색 젤리를 짧게 채썰어서 넣는 게 특징이다. 이 젤리는 해독 성분이 있어 몸에도 좋다. 독특한 향을 지닌 두리안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첸돌에 두리안을 토핑해서 먹기도 한다. 존커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산슈공San Shu Gong’의 첸돌이 유명하다. ▶travie info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은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은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평창 스페셜올림픽] 나는 뇌의 9할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를 위해 할 일 많지요

    [평창 스페셜올림픽] 나는 뇌의 9할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를 위해 할 일 많지요

    플로어하키 최경재 가끔 위독해져도 스틱 못 놔 플로어하키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최경재(19·고양 홀트학교 1학년)군은 생후 8개월이 안 돼 걸음마를 떼고 형의 책을 넘겨볼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생후 23개월 무렵 큰 시련이 닥쳤다. 문에 손가락이 끼는 대수롭지 않은 사고를 당했는데, 뇌 조직에 세균이 침입하는 파상풍에 걸리고 만 것. 몸이 마비되고 의식불명 상태로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은 최군은 두 달 만에 어렵사리 의식을 회복했으나 중증 뇌성마비 진단과 함께 4~5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 사고로 뇌의 절반을 잃었고, 시신경과 청각신경이 손상돼 보고 듣는 것에 제약이 있다. 또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지혈이 잘 안 되는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 그러나 최군은 운명을 거부하듯 무럭무럭 자랐고, 약한 몸을 붙들어 매며 운동을 했다. 축구와 농구를 하다 지금은 플로어하키 스틱을 잡고 국가대표가 됐다. 그를 지도하는 이화원(42) 홀트학교 교사는 “플로어하키는 지적장애인에게 가장 좋은 스포츠 중 하나”라며 “최경재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 장애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대견해했다. 그는 가끔 위독할 정도로 갑자기 뇌 기능이 떨어진다. 코피라도 나면 잘 멈추지 않아 주위 사람을 긴장시킨다. 때문에 어머니 김영숙씨는 아들이 운동할 때면 늘 경기장 한쪽을 지킨다. 김씨는 아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들이 보여주는 모든 것은 현대 의학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어요. 플로어하키를 하면서 웃음을 되찾았어요. 친구들과 운동하며 체육관에서 너무나 밝게 웃는 걸 보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위험이 눈앞에 있어도 아들이 얼마나 플로어하키를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최군은 “수비를 더 열심히 하면 최강의 에이스가 될 수 있다”며 “목표는 승리”라고 각오를 다졌다. 개회식에서 애국가 선창할 박모세 뇌의 이상 메워준 절대음감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애국가를 선창하는 박모세(22·삼육재활학교 3학년)씨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어나기 전부터 뇌수가 흐르지 않아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낙태를 권유받던 어머니 조영애씨는 “주어진 생명을 어떻게 버리느냐”며 고집스럽게 그를 낳았다. 예상대로 아기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태어났을 당시 박씨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뇌의 90%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으며, 이후 뇌에 호스를 넣어 뇌수를 흐르게 하는 등 네 차례나 더 수술대에 올랐다. 지금도 박씨의 몸에는 목을 거쳐 배까지 호스가 이어져 있다. 겨우 생명을 유지했지만 두 발이 비틀어져 교정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지금도 앞을 못 보고 제대로 걷는 게 힘들다. 박씨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경기 용인의 한 교회를 다니던 그는 어느 때부터 찬송을 듣고 희미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 말문이 열리며 어눌하나마 노래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음악을 들려주었고 마침내 아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고 듣는 것은 물론 말하지도 못했던 그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은 절대음감을 타고났기 때문. 특수학교에 다니며 장애인합창단에서 활동한 그의 노래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11살 때인 2002년에는 추천을 받아 장애인농구대회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지난해 2월 스페셜올림픽 프레대회에서 애국가를 선창해 관중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박씨는 오는 29일 평창 용평돔에서 열리는 대회 개회식에서 다시 한번 애국가를 불러 4000여 관중에게 감동을 선사할 계획이다. 박씨의 좌우명은 ‘나보다 불편한 친구는 어떻게든 도와줘야 한다는 것’. 어머니 조씨는 “모든 장애를 이기고 세계 지적장애인의 축제에서 애국가를 부를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크로스컨트리 최아람 매일 20㎞ 달려 왕따 극복 크로스컨트리의 간판 최아람(14·태백미래학교 중학부)양은 초등학교 시절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기초수급생활자인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묵묵히 견뎌냈다. 아픈 엄마와 뇌성마비인 언니, 동생을 혼자 돌보며 친구들의 비웃음을 애써 참아냈다. 수업 시간이면 화장실에 숨어 있기 일쑤였다. 바빴던 부모들은 아람이 지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2007년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아람은 웃음을 잃었다. 2011년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아버지는 딸이 지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뒤늦게 태백미래학교로 전학을 보냈다. 최양은 이곳에서 박영철 코치를 만나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박 코치는 근력과 균형 감각이 좋은 최양을 크로스컨트리의 세계로 인도했다. 152㎝의 작은 키를 극복하고 심폐력을 키우기 위해 최양은 매일 20㎞를 달리는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10분만 달려도 숨이 차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여름에도 매일 학교 근처의 스키장을 찾아 2시간씩 열심히 훈련했다. 마음의 병이 깊었지만 정겹게 다가오는 새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며 의지할 곳을 찾았다. 최양은 크로스컨트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2011년 제8회 전국장애인 동계체전에서 우승하고, 지난해 2월 스페셜올림픽 프레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꽃을 피웠다. ‘왕따’에서 국가대표가 됐고, 성인을 포함해 종목 최강자로 우뚝 섰다. 최양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 동생 최영미(12)양과 함께 이번 대회에 나선다. 최영미양은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 여자 초등부 높이뛰기와 포환던지기에서 2관왕을 차지한 하계 스포츠 스타. 언니를 보며 동계올림픽에 대한 꿈을 키웠고 스피드와 민첩성이 돋보이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트에 매력을 느꼈다. ‘달려라 하니 자매’의 언니는 평창의 설원, 동생은 강릉의 빙상을 누비게 된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임화정 잃어버린 동생 찾으러 질주 “저, 옛날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하는 임화정(30) 씨는 지난 18일 경기 의정부의 숙소에서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연이 전해지면 잃어버린 남동생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에 천천히 입술을 뗐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임씨는 열여섯 살 때인 1999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생 임종국(26)씨와 함께 부산의 한 사회복지법인에 맡겨졌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홀로 남매를 키우느라 벅차했다. 동생은 1년 만에 복지법인에서 도망쳤고, 임씨도 동생을 찾기 위해 시설을 나왔다. 열흘가량 사방을 헤맨 끝에 한 PC방에서 동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날이 마침 동생 생일이라 놀이공원에서 잠깐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동생은 화장실에 가겠다며 사라졌고, 그 뒤로 동생을 만나지 못했다. 2006년 부산 혜원학교에 진학한 임씨는 체육교사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승리욕과 남다른 운동능력 덕에 빠른 실력 향상을 보였고, 장애인 전국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훈련하다 정차 중인 택시와 충돌해 이빨 다섯 개가 부러지고 얼굴 10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이클을 워낙 좋아했다. 임씨는 2010년에 쇼트트랙에 입문했다. “스케이트도 자전거처럼 빨리 달리잖아요. 그래서 매력을 느꼈죠.” 훈련 한 달 만에 동계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재능을 뽐냈다. 그리고 2년 만에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대표로 발탁됐다. 그녀의 꿈은 단 하나. 생이별한 남동생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김종국인데, 단지 동생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팬이 됐다고 했다. “어렸을 적 누나가 구박 많이 해서 미안해. 누나는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힘내자.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자.”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겨울이 유난히 더디게 가는 듯하다. 어릴 적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길고 심했다.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가 아침이면 꽁꽁 얼어붙었고, 세수한 후 방문 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러붙었다. 부엌에서 지핀 불기는 겨우 아랫목에만 온기가 미칠 뿐이었다. 그래서 안방에는 늘 화롯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빨간 숯을 담아 묻어 둔 화로는 그 시절 최고의 난방 기구였다. 또 고구마나 밤을 굽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 땅에서 숯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600여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신라는 숯불로 밥을 지었고, 석굴암의 습도를 숯으로 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장을 담글 때는 숯을 넣어 옹기 안의 독소와 냄새를 제거한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악귀와 잔병을 물리치기 위해 금줄에 숯덩이를 매다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나 다름없던 숯은 석유, 가스 등의 연료에 자리를 내주면서 쓰임새가 크게 줄었다. 그러다 숯의 효능이 새롭게 드러나고,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 즉, 이른바 ‘웰빙’ 붐 속에 숯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숯이 뜨고 있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초입에 들어서자 먼발치 굴뚝에서 흰 연기가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피어올랐다. 전통 방식대로 숯을 굽는 가마에서 뿜어내는 연기다. 강원참숯 고문 서석구(75)씨는 50년 가까이 전통 참숯을 고집하고 있다. 내화벽돌을 쓰지 않고 천연석과 나무로만 제작된 숯가마에 참나무만을 넣고 숯을 굽는 것이다. 숯을 굽는 과정은 가마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가마에 채워지는 참나무는 10t가량이다. “아궁이에 종잣불을 넣어 가마가 정확히 280도가 될 때까지 불을 땝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봐도 숯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서씨의 말이다. 다른 한쪽 가마에서는 인부들이 긴 철봉으로 참숯을 꺼내고 있었다. 시뻘건 장작불에 1주일 동안 가마가 달궈지면 최고 1300도에 이른다. 열기에 숨이 턱 멎을 정도다.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가마 밑을 열고 산소를 넣으면서 달궈진 숯을 꺼낸 후 흔히 마사토(磨沙土)로 불리는 화강토로 덮어 식히면 비로소 질 좋은 백탄(白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숯을 거둬낸 가마 안에는 은은한 스모크 향이 감돌았다. 12시간 정도 열을 식힌 뒤 하루 동안 일반인들에게 찜질방으로 개방되고 있다. 숯이 구워지며 내뿜은 많은 원적외선이 고스란히 남아 손님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원적외선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피로 회복, 신경통, 근육통을 완화시켜 주는 효능을 지녔다. 서씨는 “‘숯쟁이’라고 얕보고 무시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전통 참숯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장장인 외아들 정원(43)씨는 백탄에 매료되어 대를 이어 20년째 전통 숯을 굽고 있다. 정원씨는 “불을 대면 순식간에 타올랐다 꺼지는 중국산 숯들과 달리 참숯은 한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며 백탄을 예찬했다. “전통 숯가마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정원씨는 참숯 굽는 방식을 보존·유지하기 위한 문화 체험장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숯 철학’이 실현될 때까지 가마에 참나무를 채우고 불을 넣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서씨와 정원씨는 시원스레 웃었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朴의 수첩 속엔 해법 있을까?

    朴의 수첩 속엔 해법 있을까?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생과 새 정부 조각 인선에 집중하며 조용한 행보를 거듭하던 박근혜 당선인이 첫 정치력 시험대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총체적 부실과 비리 의혹이 연일 정국을 강타하는 가운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 부처 간 갈등 양상을 띠는 정부 조직 개편안, 재원 마련에 따른 대선 공약의 출구전략 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가 새 정부의 방향타로 떠오른 것이다. 박 당선인의 선택이 새 정부 출범의 첫 단추이자 향후 5년간 국정 운영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대 기로로 여겨지는 까닭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4대강 사업은 당장 박 당선인에게 최대 딜레마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은 총제적 부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고, 야권에서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마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는 터라 박 당선인도 쉽게 ‘바통 터치’를 해 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은 야권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여권이 공동으로 진행한 국책사업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해법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기엔 이미 22조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박 당선인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이 헌재소장 후보자 인선 문제도 박 당선인의 정치력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위장 전입, 증여세 탈루, 저작권법 위반, 판공비 유용 등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야권의 지명 철회 요구에 직면한 상황이다. 오는 21~22일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결정타를 맞을 경우 박 당선인도 이 후보자에 대한 인선 강행을 고집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함량 미달이거나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은 배제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그의 결단에 관심이 쏠린다. 박 당선인의 첫 작품인 정부 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통상과 과학, 식품 분야의 분리 등을 놓고 당장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 조짐이 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충분한 동의를 구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직원들 ‘멘붕’인데 장관은 연일 현장시찰 ‘시끌’

    직원들 ‘멘붕’인데 장관은 연일 현장시찰 ‘시끌’

    “왜 저러나.” 최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무리하게 현장시찰을 고집해 조직 안팎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터져 나온다. 현직 장관들은 40여일 남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교체가 유력해 그동안 벌여놓은 일을 정리하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게 보통이다. 때문에 이런 서 장관의 남다른 행보에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총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17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서 장관은 지난 4일엔 충북 청원의 딸기작목반과 보은의 한우유전자원센터를, 11일에는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과 구미 원예생산단지를 방문했다. 16일엔 경기 광주의 새싹재배농가를 찾았다. 특별한 사안이 없는 일상적 현장방문이다. 다음 달 1일에는 기자단과 농정현장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선임부처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국무회의·물가관계장관회의 등 정해진 일정만 수행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것과 대조된다. ‘끈 떨어진’ 장관의 현장 방문을 해당 지방자치단체들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지만 껄끄럽다는 반응이다. 올해 장관이 방문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장관이 오면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며 “평소 같으면 반겼겠지만 곧 그만둘 장관이 특별한 사안도 없는데 왜 찾아왔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서 장관 측은 “임기 말에 흔들림 없이 현장을 찾는 것은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일 아니냐”고 항변했다. 농식품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계획안에 따라 수산 기능은 해양수산부에, 식품 기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내주며 조직이 반토막날 처지다. 한 공무원은 “직원들은 ‘멘붕’(정신적 혼돈 상태)인데 장관만 혼자 한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부처 간 힘겨루기에서 우리 부가 완패했는데 장관은 뭐했나”면서 “분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림축산부는 축산이 농업에 속한다는 기본 상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명칭”이라면서 “윗분들이 당선인 측에 기본 설명만 잘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순창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도 “3월 이후 행보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며 “지금 장관들은 이번 정부를 돌아보고 문제점·대안 등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장관에게 정확하게 조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프로야구 10구단 결정 ‘엇갈린 명암’] 전북 ‘초상집’

    전북도가 범도민적으로 추진한 대형 사업들이 잇따라 실패, ‘책임론’이 비등하면서 지역 정치권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14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가 최근 5년간 추진했던 각종 숙원 사업들이 벽에 부딪히는 사례가 잇따라 도민들이 깊은 상실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도가 1년 넘게 매달려 온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는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다. 전북·부영은 200억원의 야구발전기금과 돔구장 건설을 내세운 수원·KT의 물량 공세에 밀렸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전북도가 10구단 유치에 나선 것은 2011년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통합 본사의 전북혁신도시 유치 무산에 따른 도민들의 패배감을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였다는 분석이어서 ‘김완주 지사의 책임론’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LH 유치는 경남과의 경쟁 과정에서 도내 전역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지사가 삭발을 단행하는 초강수를 뒀으나 ‘분산배치’만 고집한 전략적 실패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LH 본사 유치 무산 이후 도가 정부에 요구했던 5개항의 사업도 새만금특별법 개정 외에는 감감무소식이다. 도가 엄청난 성과로 홍보하는 ‘새만금특별법 개정’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별회계 설치’가 현실화되지 못해 ‘용을 그리긴 했으나 눈이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유치 역시 정치권의 시각차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새만금지구에 대규모 외자를 유치했다고 치적을 내세웠던 양해각서들도 잇따라 무산됐다. 2009년 7월 고군산군도에 국제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며 미국 페더럴사와 교환한 9000억원 규모의 양해각서와 같은 해 12월 새만금에 명품리조트를 건립하겠다고 미국 옴니홀딩스와 맺은 3조 5000억원 규모 양해각서는 모두 없었던 일이 됐다. 삼성그룹이 새만금지구 11.5㎢에 2021년부터 20년간 7조 5000억원을 투입해 ‘그린에너지 종합산단’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던 양해각서도 2011년 국정감사에서 ‘대국민 사기극’이란 지적을 받았다. 이 밖에도 도는 연구·개발(R&D) 특구 유치, 국립산림박물관 유치 등 각종 정부 사업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너무 많아 지역 정치권이 전주·완주 통합과 맞물려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기업 자율이냐 당 통제냐 도전 받는 중국 언론 검열

    기업 자율이냐 당 통제냐 도전 받는 중국 언론 검열

    언론 검열이 초래한 중국 개혁 성향 주간지인 남방주말(南方周末)의 파업 문제를 계기로 중국의 언론 환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을 당이 언론에 자급자족식 경영(시장화)을 독려하면서도 전통적인 당의 언론 통제를 고집하면서 빚어진 권·언 충돌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 언론이 점차 시장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이 같은 마찰은 반복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장화 매체에는 이미 서방식의 ‘독립언론’ 사고가 깊이 침투해 있고 시장화 성향도 강해지는 반면 당에서는 언론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확고해 앞으로도 양자 간 충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모든 언론을 사회주의 사업을 위한 선전도구로 당이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총서기 취임 직후 “중국 언론은 당의 나팔수(喉舌·목구멍과 혀)다”(1989년 11월 전국언론연구회의)라고 언론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듯 중국에서 언론 통제는 확고부동하다. 언론사마다 당에 소속된 특정 기관으로부터 관리되고 있으며, 당 위원회에서 파견된 검열관들로부터 사전·사후 검열을 받고 있다. 당국은 그러나 언론의 경영에 있어서는 시장화 경영을 선호한다. 모든 언론을 정부3가 먹여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언론사 체질 개선을 목표로 사업 단위를 독립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기개제(轉企改制) 개혁을 단행하고, 정부의 보조를 받는 당보(黨報) 등 기관지 이외의 다른 매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급자족식 경영을 강제하고 있다. 전기개제 개혁 이후 2009년 한 해만 188개 신문사가 정리됐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남방주말의 경우 광둥(廣東)성 기관지인 남방일보를 모회사로 하는 남방일보신문사그룹의 자회사다. 인터넷이 언론의 역할 변화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지원을 받는 남방일보와 달리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돈을 벌고 그 수익의 일부를 모회사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신문 제작까지 간섭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방주말을 비판하는 사설 게재를 거부해 항명 파동을 일으켰던 베이징 지역의 신경보(新京報)를 비롯한 시장화 신문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허난(河南)방송을 모회사로 둔 동방금보(東方今報)는 지난 10일자 1면에서 남방주말 신문 사진을 게재한 뒤 “우리는 남방주말과 함께 언론의 책임을 수호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간접적으로 당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 통제도 강화되고 있어 매체의 시장화 성향이 언론자유를 앞당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초 기관지인 남방일보와 광명일보가 공동 출자했던 신경보의 경우 2011년 관리 주체가 돌연 베이징시로 변경됐다. 베이징 지역 발행 신문을 남쪽 당보가 관리하다 보니 느슨해진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남방주말 파업 타결됐지만… 신경보로 불똥

    남방주말 파업 타결됐지만… 신경보로 불똥

    당국의 검열에 반발한 기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중국의 개혁 성향 주간지 남방주말 사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베이징(北京)에서 발행되는 신경보(新京報) 기자들이 남방주말 기자들의 검열 반대 요구를 비난한 당국의 사설 게재 요구에 항명했다 부당 압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언론 자유 촉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공산당 선전 당국은 지난 8일자 신문에 남방주말 기자들의 언론 검열 반대 행태를 비난한 관영 환구시보의 사설을 주요 언론사들 모두 공동 게재하도록 했으나 신경보가 이를 거부해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해외에 서버를 둔 명경신문망이 9일 보도했다. 베이징시 당 선전부 렁옌(言) 부부장이 신경보를 방문해 관련 사설을 게재하라고 지시했으나 신경보는 내부 투표를 거쳐 사설을 싣지 않기로 했고, 다이쯔겅(戴自更) 사장은 항의 표시로 사직 의사까지 밝혔다. 신경보는 결국 8일자 신문에 사설을 게재하지 않았으며, 베이징시는 일단 이를 묵인했다. 그러나 류치바오(劉奇?) 당 중앙선전부 부장이 신경보도 사설을 게재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언론·선전 부문 최고사령탑인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도 이에 동감을 표시하면서 렁옌 부부장이 직접 신경보에 대한 통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신경보는 하루 늦게 사설을 게재했고, 베이징 둥청(東城)구 신경보 본사 주변에는 공안(경찰)들이 대거 배치됐다. 신경보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다이 사장은 경질되지 않았으며, 신경보는 정상 운영되고 있다”며 사태 추가 확산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신경보 사가(社歌) 동영상을 올리는 방식으로 신경보의 항명 행위를 응원했으며, 일부 누리꾼들은 웨이보의 대문 사진을 신경보 로고로 바꾸기도 했다. 앞서 홍콩 명보는 남방주말 본사가 있는 광둥(廣東)성 후춘화(胡春華) 서기의 중재로 남방주말 파업 사태가 사실상 타결됐다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기자들은 파업 철회 조건으로 ‘검열 폐지’를 요구했으며 광둥성 공산당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극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후 서기는 회사 측에 관련자 문책 면제 등도 약속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그러나 광저우(廣州) 남방주말 본사 인근에는 파업 기자들을 지지하는 시위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6·4 톈안먼 사건’, ‘공산당 일당 독재 종식’ 등 당국이 금지하는 구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공안이 제재하지 않아 남방주말 본사 주변이 ‘정치 해방구’가 됐다고 명보가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서울광장] ‘상시 접속’ 그리고 사립문/정기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상시 접속’ 그리고 사립문/정기홍 논설위원

    미국 동북부에서 문명사회를 거부하며 농경생활을 하는 아미시(Amish)족의 청년들은 19살이 되면 ‘럼스프린가’(Rumspringa)라는 의례를 치른다. 이들은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을 경험한 뒤 세례를 받고 공동체 생활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공동체를 선택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 아미시족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못 쓴다. 유선전화는 이용하지만, 들판 헛간에 설치해 두고 공동으로 사용한다. 집안에 전화를 두면 수다를 떨거나 남의 흉을 본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 같은 삶을 고집하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가족, 이웃과 접촉을 많이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첨단 기기에 몰입해 자신마저 잃어가는 요즘, 미국사회에서 이들의 생활상이 주목을 받으며 연구가 한창이다. 지금은 농익은 ‘스마트 세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20억 세계인의 여가 시간을 합치면 무려 1조 시간에 달한다. 이 시간의 1%만 창조적으로 활용하면 한 해에 100개 이상의 위키피디아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대중’의 탄생을 적시한 ‘많아지면 달라진다’를 쓴 클레이 셔키의 주장이다. 이처럼 우리는 스마트한 세상에 깊숙이 들어섰고, 첨단 기기를 이용하며 하루를 보낸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결되고,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 유비쿼터스적인 검색 기능은 즉석에서 궁금증을 풀어주고, 구름처럼 떠다니는 ‘빅 데이터’(big data)는 어디서든 연결만 하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스마트한 세상은 ‘마하 속도’로 달음박질을 치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쉽게 다루는 인간인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란 말이 오르내리더니, 듣기에도 생소한 ‘호모스마트쿠스’(지능인)란 신인류도 어느새 등장했다. 화장실 좌변기에서도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경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모든 사물이 지능을 가져 사람과 교감하는 통신시대도 열린다니, 통신기술의 발달이 경이로울 뿐이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상시 접속시대에 더 이상 은둔의 장소가 없어졌다는 우려로 야단이지만 말이다. 한국사회도 스마트한 세상의 ‘빛과 그림자’에서 비켜서 있지 않다. 더 요란스럽고 앞장서 있다. 스마트폰 도입 3년 만에 3000만대가 작동 중인 ‘올웨이즈 온’(Always On·상시 접속) 상황을 우리는 접하고 있다. 우리의 농경사회에는 애당초 스마트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디지털 유전자(DNA)가 내재돼 있었다. 농촌마을에서 옹기종기 살면서 이웃집 사립문을 내 집같이 드나들었고, 토담 너머로는 보리쌀 한 톨이라도 주고받으면서 지내왔다. 이것은 소소하지만 소담스러운 ‘소통’이었다. 이와 반대로 마을 간에는 산과 계곡으로 가로막힌 지형적 특성으로 교류가 단절돼 있었다. 산 너머 동네 사람이 궁금하고 그리웠을 것이다. 이웃 마을로 마실을 가는 것은 교류하고픈 ‘욕구의 표출’이었다. 우리 민족의 이 같은 양면성은 스마트 기기에 보다 빨리 접목하게 만들었고, 소통으로 이어진 동인(動因)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을 처리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허접스럽든, 요긴하든 너무 많은 디지털 물건을 접하고 있으며, 이에 치이고 끌려가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디지털 소비시대의 그늘이다. 인터넷 검색창이 모든 지적 욕구를 해결하는 세상이니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도 설 땅을 잃었다. 스마트폰의 터치 기능이 숫자를 잊게 하는 ‘무뇌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졌다. 무엇보다 책에서 얻은 지식보다 활용 방법을 조합하는 ‘짜깁기’가 요구되는 시대라니, 우울한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무한한 권력이 된 스마트 기기의 이면에 우리가 더 멍청해진 게 아닌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스마트 기기의 속도전에서 한 발 물러선, 사람 중심의 스마트한 정책을 준비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져야 할 시기가 됐다. hong@seoul.co.kr
  • [미주통신] 32년간 가르친 트랜스젠더 선생님 결국…

    32년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남자 교사가 결국 자신이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고를 당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7일(현지시각) 뉴욕포스트가 보도했다. 미국 뉴욕시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한 마크 크롤리코스키는 평소 학부모들로부터 여성스러운 긴 머리와 귀걸이는 물론 화려한 손톱 치장으로 많은 불평과 의심을 받아왔다. 그는 결국 2년 전에 학교 교장에게 사실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여성스러운 치장 등을 고치고 선생님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으나, 학교 측은 “자신에게 고집불통이며 게이보다 못하다.”라고 평가하는 등 사퇴 압력을 가해 왔었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또한 학교 측이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그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해고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면서 주장을 반박했다. 공교롭게도 이 교사가 가르친 과목은 ‘인간의 성과 사랑’이라는 성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마이 리틀 히어로’서 따뜻한 감동 전하는 세 배우를 만나다

    ‘마이 리틀 히어로’서 따뜻한 감동 전하는 세 배우를 만나다

    피부색이 다른 천재 소년과 삼류 음악감독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소년 영광(지대한)과 그 아이로 인해 이기적이고 속물근성이 가득했던 유일한(김래원)의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감동을 안겨준다. 김래원(32)의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실제로 다문화 가정의 소년인 지대한(왼쪽·12), 황용연(오른쪽·13)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해피 바이러스 전하는 배우 될래요” 편견 맞서 꿈 이루는 소년役 지대한, 축구 국가대표 꿈꾸는 소년役 황용연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천진한 미소를 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영광 역을 맡은 지대한과 영광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친구 성준 역의 황용연이다. 스리랑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대한은 몇 개월에 걸친 전국 오디션 끝에 발탁됐다. 800여명의 아이들을 만난 감독은 처음 지대한을 봤을 때의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영광 역에 전격 발탁했다. 지대한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소감에 대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에 출연했다. 엄마가 영화 주인공이 됐다니까 잘하라고 하면서 무척 좋아하셨다. 영화는 재미있는데 (스크린에) 내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다”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극중 영광은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소년으로 뛰어난 춤 실력까지 선보인다. 지대한은 영광 역에 낙점된 뒤 1년여 동안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았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 난이도 높은 동작도 무리 없이 성공했다. “노래할 때 호흡이나 소리 크기 연습을 많이 하고 춤출 때는 턴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힘든 점도 많았는데 (김)래원 형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도 해주고 함께 게임도 하면서 긴장을 많이 풀어줬어요.” ‘과속스캔들’ 같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는 지대한은 “연기하는 것도 재밌었고 연예인 형들이랑 만나는 것도 좋았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광수형이 관객 100만명이 넘으면 학교에 오겠다고 했는데 친구들이 정말이냐고 자꾸 물어본다”면서 웃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용연은 KBS 다큐 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출연해 관심을 받았다. 장래 희망이 영화배우인 황용연은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는 인물을 맡아 밝고 코믹한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냥 배우가 멋있어서 되고 싶었어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여진구와 한가인을 좋아해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요. 사실 카메라만 있으면 어색해져요. 없으면 잘되는데…(웃음). 아직 부족하지만 꿈의 계단에 올라왔다는 것이 기뻐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누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황용연은 처음 영화 관계자들이 찾아와 출연을 제의했을 때 거절했다. 혹시 자기 때문에 영화를 망칠까 봐 걱정돼서다. 하지만 어려운 눈물 연기도 곧잘 해내며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피부색이 달라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끔 영어 수업 시간에 틀어주는 비디오 테이프에 흑인이 나오면 애들이 놀리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 주셨다”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에도 씩씩하게 답하던 황용연은 부모님 이야기를 하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희끼리 밥도 해먹고 청소도 하는데 그 점이 좀 힘들어요. 특히 생일 때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나요. 하지만 목사님이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 빛내주며 나도 힐링” 음악감독으로 스크린 복귀한 김래원 처음에 김래원이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한다고 했을 때 다소 의아했다. 멜로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그가 여배우가 아닌 소년과 호흡을 맞추는 휴먼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20대 후반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아이가 편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용감한 아버지를 보고 지금까지 본 어떤 남자보다 멋있고 강인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아이에게 포커스가 많이 맞춰지는 부분도 있지만 영광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일한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심플해 너무 마음에 들었죠.” 군 제대 직후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출연했던 그는 “남자 주인공의 순애보라고 알고 출연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고 내가 연기적인 면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아 이번 영화에서 그 목마름을 채웠다”면서 “내가 어색하더라도 영광의 감정이 더 돋보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제대로 살아야 나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7년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한 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등을 통해 청춘 스타로 인기를 누린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첫발을 내딛는 대한이의 좋은 연기 선생이 되어줬다. “저도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어떤 눌림 같은 것이 있었는데 대한이도 연기가 설정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간 배웠던 것을 깨끗이 밀어내고 대한이가 최대한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했죠.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대사를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해 줬어요” 그는 실제로 피아노와 지휘를 배우며 음악감독 일한 역을 준비했다. 맨해튼 음악학교 출신임을 내세운 허세 가득한 일한은 대형 작품을 망치고 아동 뮤지컬을 전전하며 재기를 꿈꾸는 인물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광을 맡아 오디션에 나서게 된다. 그도 일한처럼 성공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10대 때 오디션에 무수히 떨어지며 더 열심히 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죠. 20대 때는 정말 독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고집도 무척 셌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저만의 것을 담으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적어도 1년에 한편은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다문화 가정을 다룬 이번 영화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다문화 가정이 이해를 받아야 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일한은 처음에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아이들과 연기를 하면서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정말 밝고 귀여웠거든요. 다만 영화가 개봉되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다가 또 그것 때문에 외롭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이 주변 사람의 사랑을 감사하게 받고 혹시 어려움이 닥쳐도 잘 이겨내는 친구들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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