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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재·협상대비 ‘투트랙 전략’ 필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가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전면 차단하고 제재 일변도의 대북강경정책을 펴면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 제3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비핵화 협상 국면에 대비하는 ‘투트랙’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 관리의 ‘주요 행위자’인 한국마저 대북강경정책을 편다면 북한의 질주에 제동을 걸 조정자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대화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의 추가 조치가 이어질 경우 한반도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3일 “지금까지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킨 적이 없었고, 미국도 다시 담판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한국만 제재를 고집하면 소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미가 제네바 합의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소외당한 한국은 경수로 비용만 떠안아야 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은 지나간 과거사”라고 자신했지만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통미봉남’의 트라우마가 재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제재가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면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이방인’이 되면 위기상황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한반도 위기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당사자이면서도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북핵 협상 국면에서는 대부분 제한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차 북핵 위기 이후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한반도 긴장을 더 이상 고조시키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도록 하는 효과를 거둬온 것은 사실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추후 대화를 위해서도 비공개 대화채널 유지는 물론, 인도적 차원의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는 별개로 가져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백자 달항아리 맥 잇는 도예가 양구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백자 달항아리 맥 잇는 도예가 양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일년 중 가장 큰 달은 언제일까. 정월 대보름에 뜨는 달이다. 그렇다면 달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자. 몸체는 풍만하고 굽은 입술의 지름과 다소 작은 모양을 하고 있다. 몸통 중간 부분에는 성형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듯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후 붙인 이음자국이 있다. 여기에 투명한 우윳빛 유약(釉藥)이 발라지면서 휘영청 둥근 달이 된다. 두둥실 하늘로 솟구친다. 어찌 할 거나. 그냥 쳐다만 볼 거나 아니면 달려가 손을 뻗을 거나. 그래서 불러본다. ‘달항아리’라고 말이다. 둥그스름한 모양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조선백자이다. 바라만 보아도 보름달과 같이 풍요롭고 두 팔 벌려 품으면 계수나무 은하수까지 가슴에 안은 듯한 느낌이다. 백자 달항아리는 서양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보기에도 가장 한국적 정서가 풍기는 도자기이다. 둥근 몸체와 흰 때깔 등에서 오묘함이 절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화가 김환기(1913~74)는 유별나게 달항아리를 좋아했다. 골동품상을 기웃거릴 때마다 달항아리를 하나씩 들고 나올 정도였다. 그러면서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라고 읊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하여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라고 했다. 그만큼 달항아리를 가슴에 꼭꼭 품고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이다. 달항아리를 얘기할 때 흔히 백자대호(白姿大壺)라고 한다. 이유는 높이가 40㎝ 이상 큰 항아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몸체를 위 아래 따로 만들어 붙여 완전한 원형이 아닌 부정형의 둥그스름한 달덩이 모양을 하고 있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 숙종때인 17세기 후반에서 영·정조 시대인 18세기의 것으로 짧은 기간 그 모습을 드러낸 ‘백자대호’를 말한다. 유백이 가지는 따뜻한 촉감과 비대칭의 조형은 언어를 초월한 그윽함이 있고 한국인의 순수한 미감을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달항아리의 맥을 잇는 도예가는 흔치 않다. 양구(46)씨는 달빛을 머금은 순백의 항아리를 온몸으로 품은 지 28년째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지난 7일 오전 경기 이천에 있는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백토를 꺼내 탁탁 두드리더니 물레를 돌리기 시작한다. 대충하는 듯이 보였지만 금세 모양을 갖춰나간다. 달항아리를 만들어나가는 손놀림과 눈빛이 간단치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달항아리는 보름달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빌고 팔월 한가위 풍년에 감사했던 그런 보름달이지요. 원래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를 각각 따로 만들어서 이어 붙입니다. 그래서 굽다보면 조금 틀어지기 때문에 둥그렇다가 아닌 둥그스러한 모양이 나오지요.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지는 달항아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화해와 상생이 작업의 화두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올 한 해도 달항아리처럼 다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고 배려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낸다. 물레작업을 하던 그와 마주 앉았다. 달항아리의 특징에 대해 먼저 물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달항아리는 둥그스러한 모양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잣대로 규정짓지 못하지요. 유한이 아니고 무한이며 무궁무진과 깊은 한국적 미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식이 없고 솔직하며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 표현과 자연스러운 미가 특징이지요.” 달항아리는 옛 조상의 소박하고 실용적인 그릇인 동시에 달과 같이 너그러움의 관용을 베푸는 미학의 결정체라고 거듭 강조한다. 달항아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17세기 중엽 관요로 시작됐으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 고유의 것이 사라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현재 달항아리에 전념하는 작가는 7~8명정도로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아무런 장식도 없이 오직 둔중한 구체 하나만을 하얗게 보여주는 달항아리가 최근 들어 서서히 그 가치를 다시 인정받고 있다고 부연한다. 그런 까닭은 담백하면서도 고요하고, 과묵하면서도 넉넉함이 넘치는 그 자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달항아리 하나만을 고집해왔다. 자극과 수다스러움이 난무하는 시각적 무질서의 환경에서 절제된 미의식을 추구해왔고 ‘고도의 문명에 의해 상처받은 정신적 치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달항아리라는 내면의 성찰을 찾으면서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사각 사각’ 고운 살결 보이려고 물레 위에서 춤추는 항아리를 좋아했다. 그 춤사위는 민요가 되고, 블루스가 되고, 때로는 세상을 울리고 웃기는 소리꾼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노동이 있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모양이 밉든 곱든 ‘달항아리 탄생’이라는 기대와 설렘으로 흙을 만졌다. “달항아리의 격식을 따진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의 행위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잘생긴 놈, 못생긴 놈, 길쭉한 놈, 넓적한 놈, 많은 관찰 끝에 나온 손놀림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돌돌돌, 물레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흥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달항아리라고 부르지요.” 전남 무안 출신인 그가 달항아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다. 지인의 권유로 여주로 건너간 그는 전승 도자의 요장에서 물레대장 등을 거쳤다. 이 무렵 평생 스승으로 여긴 도예가 정형선씨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달항아리에 빠졌다. 전국의 박물관과 도요지 탐방 등을 통해 흙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조선의 달항아리가 소박하고 따뜻한, 그리고 가식 없는 한국인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여러 문헌을 섭렵하면서 끈덕진 실험정신을 이어나갔다. 진정한 달항아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줄 수 없을까 하고 늘 고민했다. “조선의 백자를 공부하는 사람이 달항아리와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넉넉하고 풍성한 달항아리를 보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 하거든요. 흙과 유약, 불을 공부하면서 조선 백자의 자연스러운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어떨 때는 과연 조선의 백자가, 달항아리가 이 시대에 되살아날 수 있을지 한참 염려하기도 했지요.” 달항아리의 맛은 여러 요소가 통합될 때 나온다는 그는 20대 후반에는 역량이 부족해 형태만이라도 맛을 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만들다가 부수고, 수없이 그런 행위를 반복했다고 술회한다. 좋은 백토를 구하기 위해 소문을 들을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무기재료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단절된 감성과 때깔을 되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몇십t의 백토를 사들였다가 쓰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달항아리의 형태를 만들 때는 입술의 추임새와 몸체의 당당함, 굽의 비례가 조화로울 때 가능해지는데 물레기능이 일류라고 자부하는 양씨 자신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맛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 백자의 때깔을 살리려는 것은 모든 도예인의 소망입니다. 도자기 공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도 당연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헌을 찾고 도요지를 답사하면서 도자사학에 심취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달항아리 연구에 정열을 쏟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흙 주변에 흩어지는 보석 같은 파편들이었다. 이들을 보면서 다시 흙을 만지고 달항아리를 만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꾸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흙을 찾으러 다닐 때의 고달픔과 뙤약볕 아래에서의 곡괭이질도 달항아리가 주는 감동 앞에서는 모두 인내할 수 있었다. 그 영혼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두근거린다는 말이 있지요. 어느 날 조선 백자에서 그 두근거림을 봤습니다. 앞으로도 단지 달항아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따뜻한 피와 넉넉함의 온기가 흐르는 달항아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럴수록 연애하는 것처럼 마음은 더욱 두근거리겠지요”(웃음) 달항아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라고 하면서 작업장에 흩어진 달항아리에 푹 파묻혀 환하게 웃는다. 그 모습이 보름달처럼 다가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도예가 양구는 1968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후 여주 도자 요장에서 물레대장 등을 거치면서 조선백자 달항아리에 입문했다. 1997년 이천에 전시장 ‘보인행’을 설립했고 2003년 서울 삼청동에 개인 전시장 ‘보인행’을 오픈했다. 2000년 ‘일묘(一妙) 양구 청자전’(인사이트센터, 인사동)을 시작으로 ‘한국의 도자기’(2005, 부산 롯데호텔), ‘한국의 명품전, 달항아리’(2005, 보인행, 삼청동), ‘한국·프랑스 작가 교류전’(2005, 세계 도자센터, 이천) 등을 거쳐 2006년 양구 도작(陶作) 20주년을 맞아 ‘청자와 백자전’(가나아트스페이스, 인사동), ‘고객 초대전’(보인행, 삼청동), ‘창작가마 초대전’(세계도자센터, 이천), ‘청자전’(보인행, 삼청동), ‘백두산과 달항아리’(서울갤러리, 프레스센터) 등의 전시를 열었다. 이 밖에 ‘양구 달항아리전’(2007), ‘양구 달항아리전-달이 휘영청’(2011), ‘양구의 달항아리전’(2012) 등이 있다.
  • [부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씨

    [부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씨

    부산의 시장통과 달동네 샛길을 누비며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의 존재를 사진으로 증명했던, 한국의 대표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씨가 12일 오전 8시 4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85세. 1928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지독한 가난에도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 1955년 도쿄중앙미술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집어든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보고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는 철저한 스트레이트 사진만 고집했다. 조명이나 삼각대도 쓰지 않을 정도니 트리밍이나 포토샵 따윈 있을 수도 없다. 오직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 찍어, 있는 그대로 인화해낸 사진만 고집했다. 사람의 역할은 오직 셔터 누르는 것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다 보니 그의 작품에는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서민들의 실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때문에 2008년 국가기록원에 필름 10만점 등 모두 13만여점의 자료를 기증했고 이 자료들은 민간기증 국가기록물 1호로 지정됐다. 유족은 부인 박정남씨와 3남 1녀. 빈소는 부산 남구 용호동 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 30분. (051)933-7485.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도서2000권 역사박물관 기증

    도서2000권 역사박물관 기증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도서 2000여권을 기증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2일 최 장관이 대학교수, 고려대 박물관장, 국립박물관장, 문화재청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수집한 도서를 비롯해 자신이 집필한 논문, 에세이 등 도서 2013권을 기증한다고 밝혔다. 기증할 도서 가운데 고려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엮어서 2002년에 발간한 ‘남창 손진태 선생 유고집’(전 3권, 고려대학교박물관), 직접 중국에서 찾아 2004년에 역주해 선보인 아연출판사의 ‘단재 신채호의 천고(天鼓)’ 등이 눈에 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3일 오후 4시 박물관에서 최 장관의 도서 기증식을 가질 계획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충남도 “올 서해안 살리기 598억 투입”

    충남도가 6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침체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서해안 살리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고 발생 5년여가 지난 지난달 16일 국내 사정재판이 끝났지만 배상금이 턱없이 낮은 가운데 나온 대책이다. 안희정 지사는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598억원을 들여 유류피해 배·보상 지원, 휴양 관광지 위상회복, 수산업 기반 구축 및 어민 편익 제공 등 20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도는 먼저 서해안유류사고지원본부에 민사재판 지원창구를 설치한다. 대전지법 서산지원이 4조 2271억원의 17%인 7341억원만 배상을 인정한 사정재판에 대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불복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피해 주민들의 법적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IOPC는 자체 사정한 배상금 1824억원을 고집하고 있다. 도는 지원창구에 전담요원을 배치해 사고 전후 관광객과 어획량, 방제지역 등 각종 행정자료를 제공한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문화마당] 시대 흐름에 맞는 ‘우리말 표기법’/임형주 팝페라 테너

    [문화마당] 시대 흐름에 맞는 ‘우리말 표기법’/임형주 팝페라 테너

    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팝페라 테너’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음악장르가 ‘팝페라’라는 것이다. 클래식과 오페라를 좀 더 대중에게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팝적인 감각을 섞어서 부르고 표현하는 크로스오버 음악장르 중 하나다. 팝과 오페라의 합성어이기에 ‘팝페라’라고 부르고, 표기한다. 그런데 소수 매체들이 간혹 ‘파페라’로 표기하는 바람에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표준 외래어·외국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국내 최초의 ‘팝페라 테너’로 데뷔하고 ‘애국가 소년’으로 알려진 지난 2003년부터 줄곧 ‘팝페라’로 불렸기에, ‘파페라’가 돼 버리면 정체성의 혼란까지 느껴진다. 마치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들은 드라마 주인공 같은 당혹감이랄까. 얼마 전 일이다. 저녁식사 중 친구가 엉뚱하게 물었다. “콘텐츠가 맞을까, 컨텐츠가 맞을까.” 자신있게 “콘텐츠”라고 답했는데, 친구는 “둘 다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발음대로라면 ‘컨텐츠’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콘텐츠’가 맞다고 했는데, 친구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다른 외래어·외국어 표기가 덩달아 궁금해지면서 그날 저녁식사는 한글 표기법에 대한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다. ‘케이크’와 ‘케잌’, ‘슈퍼마켓’과 ‘수퍼마켓’, ‘액세서리’와 ‘악세사리’, ‘보디케어’와 ‘바디케어’ 등은 앞은 맞고 뒤는 틀린 표기였다. 수도 없는 외래어·외국어가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도 놀랐지만, 표기법을 대체로 혼동하고 있다는 놀라움이 더욱 컸다. 결국은 우리말인데 우리가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니 말이다. 물론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각자 자기의 발음대로 사용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와 시대 흐름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어문규정이 혼동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어문규정에서 ‘전통’은 중요하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국어학자들이 원칙을 만들고 보존해온 것은 그게 한국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타협하고 변화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외래어·외국어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 본질적 태생과 의미 자체에 옹고집을 세운 ‘전통’을 부여하고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요, 난센스다. 짜장면이 자장면이 됐다가 25년 만인 2011년 다시 짜장면도 표준어로 허용한 것이 한 예이다. 우리말 ‘한글’이 세계 언어 중 얼마나 실용적인 언어인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금씩 개정은 있었지만, 여전히 ‘정통성’을 지키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래어·외국어까지 이미 오래전에 확립된 표기법과 형식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종종 펼쳐진다. 외래어·외국어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온 말이지, 본래 우리말이 아니다. 외래어·외국어 표기에 필요한 ‘정통성’은 시대 흐름에 맞춰 대다수의 사람이 편하게 발음할 수 있도록 수정보완하고 개정해줄 수 있는 ‘유연한 정통성’, ‘진보적 정통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처럼 외래어·외국어를 많이 쓰는 세상이라면, 말과 글이 달라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런 게 새 시대에 적용할 세종대왕의 뜻이라면 억지일까.
  • [경제 브리핑] 금감원, SC銀 고배당 추진 ‘제동’

    금융감독원은 4일 한국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이 추진하는 2000억원 수준의 고배당이 과도하다며 적정 수준으로 낮출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SC은행은 지난해 배당으로 9월 중간배당(1000억원)에 이어 조만간 2000억원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배당을 계속 고집할 경우 리처드 힐 행장이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르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향토기업 특선] (5)대구·경북 황토벽돌 제조업체 ㈜ 삼한C1을 가다

    [향토기업 특선] (5)대구·경북 황토벽돌 제조업체 ㈜ 삼한C1을 가다

    ㈜삼한C1은 황토를 원료로 웰빙벽돌을 생산하는 대구·경북의 향토기업이다. 본사는 대구에, 공장은 황토가 좋기로 소문난 예천에 있다. 비록 지방의 중소업체이지만 국내는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강소(强小) 기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황토벽돌(건축용 및 바닥용) 생산 저력을 지녔다. 삼한C1의 제품은 전국 주요 건축물과 거리 조성 공사 때 빼놓지 않고 시공됐고, 일본과 타이완, 러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벽돌의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 등 선진 외국 바이어들의 공장 견학 및 구입 문의까지 줄을 잇고 있다. 삼한C1은 1978년 창립된 이래 35년 만에 국내외 벽돌기업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이 같은 성공 비결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끈임 없는 재투자, 신기술 개발을 통한 품질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삼한C1의 자체 품질 규격은 KS규격보다 무려 5배나 엄격하다. 건축용 제품의 경우 190㎜ 길이에 ±1㎜ 오차만을 허용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차없이 폐기 처분한다. KS규격은 ±5㎜ 오차까지 허용하고 있다. 압축강도에서도 KS기준이 250㎏f/㎠ 이지만 삼한C1은 350㎏f/㎠ 이상으로 세계 최고의 내구성을 자랑한다. 국제기준(미국 ASTM) 300㎏f/㎠보다도 높다. 바닥용 벽돌의 강도는 무려 700㎏f/㎠ 이상을 자랑한다. 그래서 삼한C1 벽돌로 시공하면 최소 200년 동안은 끄떡없다. 여기에는 벽돌 한 장이라도 장인의 혼이 살아 있는 질 높은 품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삼화(69) 회장의 외고집 경영 철학이 녹아 있다. 삼한C1은 연간 350여 종류, 1억장 이상의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불량률은 ‘제로(0)’다. 제토-성형-건조-소성-포장·출하 등 전통적인 ‘3D 업종’이었던 벽돌 제조공정에 2003년 국내 동종 업계 최초로 최첨단 컴퓨터 자동화 통합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한 성과다. 이 시스템은 벽돌의 품질을 좌우하는 사이즈, 강도·내구성, 표면, 색상 등 규격 균일화뿐만 아니라 잡티나 사소한 뒤틀림도 빠짐없이 잡아 낸다. 또 고객 수요에 맞춰 핑크, 초코, 오렌지, 실버, 블랙 등 다채로운 색상의 벽돌을 생산해 공간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공장 책임자인 변종택(51) 상무이사는 “황토를 원료로 1200도 이상의 고열을 가해 만든 제품이 불량률 제로에 가까운 공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삼한밖에 없다”면서 “외국 바이어들도 삼한의 놀라운 기술력과 제품에 대해 고개를 절로 끄떡인다”고 소개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삼한C1의 탄탄한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삼한C1이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만 특허 15건, 실용신안 17건, 디자인 40건 등 모두 72건에 달한다. 국내 벽돌 업계 최초로 1997년 ISO9001(국제표준화기구) 인증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품질보증 Q마크, 중소기업 우수GQ마크, JIS(일본공업규격) 등도 획득했다. 특히 2011년엔 조달청으로부터 ‘자가품질 보증업체’ 제1호로 당당히 선정됐다. 자가품질보증제는 업체 스스로 생산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조달청이 심사해 최고 3년까지 납품 검사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최근엔 삼한C1 제품이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건축자재 추천 품목으로 선정됐다. 2000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신지식인 전국 1호로 선정되는 등 지금까지 수상 경력도 40여차례나 된다. 1998년부터 자체 기술연구소를 두고 있는 삼한C1은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매년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돌리고 있다. 가장 자연적인 재료인 ‘황토’를 이용해 첨단 과학과 시스템으로 빚은 삼한C1의 제품은 국내 곳곳에서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덕수궁 돌담길, 서울 대학로, 청계천, 일산 킨텍스전시장, 대구 월드컵경기장, 부산 APEC광장, 해운대 달맞이공원, 인천국제송도신도시, 울산종합운동장 등의 건축 및 바닥재 시공에 삼한 C1의 제품이 납품됐다. 자연스러운 컬러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건축용 벽돌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계명대, 목원대 등 학교를 중심으로 많이 시공됐다. 이밖에 제주순례성당 등 종교시설을 비롯해 단독주택, 고급빌라, 아파트 등 주거시설에도 삼한C1 제품이 사용됐다. 삼한C1의 최근 5년간 매출액은 2008년 219억원, 2009년 257억원, 2010년 232억원, 2011년 224억원, 2012년 236억원 등이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제주 민·관 복합 관광미항 논란 이젠 끝내야

    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에 대해 정부와 제주도가 그제 합동으로 실시한 시뮬레이션에서 15만t급 크루즈선 두 척이 동시에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뮬레이션에는 정부와 제주도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따로 추천한 전문가·연구원·도선사 등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정마을 일부 주민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 전국대책회’는 기지의 설계 오류와 졸속검증을 주장하며 또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도 “(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사전에 기획한 꼼수”라며 공사를 막겠다고 한다. 국가안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책사업이 반대세력의 생트집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니 갑갑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를 매듭지으면 또 다른 구실을 들이대며 공사를 가로막으면 언제쯤 완공하겠는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참여정부 때인 6년 전에 확정됐다.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벌써 다 짓고도 남았다. 숱한 논란 끝에 대법원이 지난해 해군기지 사업에 대해 적법 판결을 내렸고, 이제 정부와 제주도 공동검증단이 시뮬레이션까지 다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구실을 달아 반대를 고집하면 대체 어쩌자는 건가. 당초 해군기지는 강정마을 다수 주민들의 찬성으로 입지가 선정됐다. 그러나 2011년부터 일부 시민단체들이 개입하면서 정치·이념적인 사안으로 변질된 게 온갖 갈등을 빚으면서 공사를 지연시킨 주요인이었다.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국회의원들도 국익 차원에서 냉정해져야 한다. 국정을 넓은 시야로 보고 다루어야 할 의원들마저 반대세력에 동조해 이미 30%나 진척된 국책사업을 지체시키면 어느 정권인들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여야 합의 등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당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굳이 현장에 의원들이 우르르 찾아가 공사 중단을 공공연히 주장하면 갈등만 더 키울 뿐이다. 이제는 소모적 논란을 끝내고 군항과 관광미항을 만드는 데 정파와 이념을 넘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부도 국회의 협조를 얻어 예산을 차질없이 집행해야 한다. 제주도와 협의해 지역 발전을 더 고민하고, 반대 주민을 다독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 [깔깔깔]

    ●고집 센 며느리 갓 시집온 고집 센 며느리가 생선을 굽고 있었다. 한쪽만 계속 태우는 걸 보다 못한 시아버지. “얘야, 뒤집어 굽지 않고 한쪽만 그렇게 태우느냐?” “아버님, 걍 냅두세요. 제깟 놈이 뜨거우면 돌아눕겠죠.” ●사냥개와 토끼 사냥개가 산토끼를 잡아 물고 와 바닥에 내려놓더니 얼굴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산토끼가 지쳐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봐요! 제발 나를 물거나 키스를 하거나 한 가지만 하시오. 그래야 내가 당신의 먹이인지, 친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러자 사냥개가 하는 말. “이보게, 내가 배가 고프면 먹이가 되는 것이고, 배가 부르면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
  • [이동흡 청문보고서 채택 무산] 새누리, 단 10분 野 설득하고 협상 끝… ‘이동흡 카드’ 버렸다

    [이동흡 청문보고서 채택 무산] 새누리, 단 10분 野 설득하고 협상 끝… ‘이동흡 카드’ 버렸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청문보고서) 채택 무산은 예견된 일이었다. 24일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청문특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민주통합당은 “이동흡 청문보고서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판단하는 여론이 부상했다. 특히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전날 오전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유용’ 논란에 대해 “콩나물 사는 데 쓰면 안 되지”라고 비판하면서 당내 ‘비토론’이 확산됐다. ‘적격’으로 당론을 정하지 않은 이상 설령 인사청문특위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고 하더라도 본회의 무기명 표결에서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면 국회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표결 자체가 여당으로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복불복’인 셈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당내 반대 기류와 야당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30여개의 비리 의혹이 제기된 이 후보자의 임명 수순을 밟는 대신 당과 새 정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후보자를 버리는 쪽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청문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이지 않은 것 자체가 사실상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인사청문특위 여야 간사가 청문보고서 채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따로 만난 자리에서도 새누리당은 야당 설득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위 간사인 새누리당 권선동, 민주당 최재천 의원이 마주 앉아 청문보고서 채택을 놓고 협상을 벌인 시간은 단 10여분에 불과했다. 최 의원은 “10여분 동안 서로 입장 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고 했고, 권 의원은 합의 결렬 소식을 전하며 “야당의 뜻이 워낙 확고해 설사 청문보고서 제출 기한인 내일(25일) 추가 협의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밝혔다. 여야 모두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셈이다. 국회는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지난 13년간 모두 71건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가운데,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4건을 제외한 67건은 예외없이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권 의원은 “민주당이 부적격 의견만을 고집해 합의가 결렬된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고,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때문에 채택을 못 했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는 이런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유일한 방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 관계자는 “직권상정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 또한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게추는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6500만원 영화 찍다가 110억원짜리 찍어도 예산은 부족하더라

    6500만원 영화 찍다가 110억원짜리 찍어도 예산은 부족하더라

    2000년, 류승완(당시 27)이 연출과 각본, 주연, 무술지도를 맡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충무로를 발칵 뒤집었다. 한국 액션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남다른 이력이 알려지면서 또 화제를 낳았다. 여섯 살 때 청룽 영화에 푹 빠진 영화광으로 고교 졸업 후 독립영화협의회 워크숍을 다녔고, 조감독은커녕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 등 3편에서 연출부를 한 게 전부.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내공을 쌓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액션, 한 우물을 팠고,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2010년에는 검찰과 경찰, 언론의 구린내 나는 구석을 마음껏 씹은 ‘부당거래’로 액션에만 능한 감독이 아님을 입증했다. 류 감독이 차기작으로 음모에 휘말린 남북 첩보원의 이야기 ‘베를린’(작은 사진들·31일 개봉)을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류 감독이 각본·연출을 하고, 한석규·하정우·류승범·전지현이 나오는 건 기대치를 끌어올린 대목. 반면 제작비 45억원(‘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다뤄본 게 최대치인 류 감독이 11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독일과 라트비아에서 찍는 데다, 국내에선 생소한 첩보 액션물이란 점은 위험 요인이었다. 언론 시사 다음 날인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전날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어젯밤에는 A4 용지 뭉텅이가 내게 날아오는 꿈을 꿨다. 촬영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다른 버전의 악몽을 꾼다. 경험은 안 해 봤지만,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가 이런 거구나 싶다. 규모가 큰데다 해외 로케이션은 길바닥에 돈을 버리기가 쉬운 일이라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밌는 건 6500만원짜리(‘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100억원짜리를 찍을 때나 예산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처음부터 베를린이란 장소를 고집한 건 아니다. 프레데릭 포사이드, 존 르카레, 로버트 러들럼의 작품 등 스파이 소설광이던 그는 제3국에서 벌어지는 첩보원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부당거래’로 베를린영화제에 갔다가 미 대사관 앞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을 본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떠올랐다. “누군가 미 대사관을 향해 달려가고, 다른 이들이 저지하는 그림을 찍으면 괜찮겠더라. 베를린 서쪽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보고 나서 이미지들이 구체화됐다.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미국 CIA 요원들과 접촉하고 망명한 곳, 송두율 교수와 윤이상 선생의 도시,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층들이 겹쳐졌다.”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호연, 할리우드 뺨치는 맨몸·총격 액션과 차량 추격 장면까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다만, 몇몇 액션 장면과 결말이 ‘본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 류 감독은 조곤조곤 반박했다. “첩보액션 장르인 데다 ‘본 슈프리머시’에 나왔던 웨스턴호텔이 나오기도 하니까 말들이 있는 건 알고 있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비교되는 게 영광이면서도 ‘또 지적질이구나. 죽갔네~’란 생각도 든다. 하하하. 비슷하게 보일까 봐 일부러 핸드헬드(들고 찍기)도 자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 액션 동선은 평소 즐겨 쓰던 방식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복층구조 액션이랄지, 좁은 공간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 삼아 싸우는 것 등이 그렇다. 마지막 밀밭 총격전을 ‘본 아이덴티티’와 닮았다고 하는데, 리 마빈과 진 해크먼이 나온 ‘프라임 컷’(1972)의 영향이 크다. 워낙 좋아하는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은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껏 남녀관계를, 여배우를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이혜영과 전도연은 여장부였다. 영화 속 갈등은 남자들의 배신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베를린’에선 북한 인민영웅 표종성(하정우)과 아내 련정희(전지현)의 관계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는 “표종성은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불쌍한 남자다. 련정희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강인함과 여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캐릭터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멜로를 찍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지현과는 현장에서 일부러 대화를 하지 않았다. 외롭게 뒀다. 고독하고 우울하게 찍히길 바랐다. 찍을수록 확신이 생겼다. 전지현 스스로 음색을 찾고, 어떻게 상대를 응시해야 할지 방법을 찾더라. 관객들은 ‘베를린’에서 배우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거다. 나도 전지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손을 치켜들었다. 다만 속편을 암시한 듯한 결말에 대해서는 아쉬워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한 번도 속편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데 원래의 결말이 100억원짜리 대작치고는 어둡다는 지적이 (투자자들에게) 있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뜯어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 막상 결말을 바꿔놓고 모니터링을 해보니 반응은 좋더라.” 입봉 13년. 그동안 세 아이의 아빠인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아내 강혜정 PD가 대표로 있는 외유내강은 탄탄한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출연 당시 나이트클럽 DJ였던 동생 류승범은 톱배우가 됐다. 궁금했다. 그때보다 행복한지. “6500만원짜리를 찍을 때보다 100억원대 영화를 찍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전에는 영화만 만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어제 시사에서 영화를 보면서 ‘저기서 몇 프레임을 더 걷어낼걸’ ‘사운드가 조금 이상한데’ 이런 생각들로 괴로웠다. 승범이나 아내와는 평소에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지금 진짜 행복한 걸까? 이 일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야 하는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평일 낮, 말라카 거리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로 활기에 차 있다. 우리가 경주에 가서 역사를 배우듯,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라카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 물론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는 수백년 전의 역사유적도 그저 오래된 놀이터일 뿐이지만 말이다. 말라카 강변에 펼쳐진 책 한 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한다. 지도상에서 이 도시는 말레이반도 왼편에서 인도양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함선과 포탄을 앞세운 14세기 정복자들도 말라카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나야만 더 깊숙한 동쪽에 닿을 수 있었다. 말라카는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의 땅이었고 동양과 서양, 거대하고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과거 수백년간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무역항이었다. 무역량으로 따지면 수에즈 운하에 비견됐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너무 낮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여행객들도 간척개발이 한창인 해변보다 오래된 가옥이 늘어선 말라카 강변의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말라카강 리버크루즈는 40여 분 동안 9km에 이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 한적한 노천 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보이고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펼쳐진다. 먹음직스런 열대 과일과 음식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 중국, 아랍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까지, 움직이는 배 안에서 보면 그 자체가 한 권의 그림책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가옥촌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녁에는 불을 밝힌 노천 카페에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차례 소나기 후, 불어난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도 여기선 한없이 매력적이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반딧불이나 월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도 볼 수 있다. 강변의 카페와 연결되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와 히런 스트리트Heeren Street는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존커 스트리트에는 골동품점과 작은 미술관, 특색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매주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존커 워크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 히런 스트리트다. 저렴한 호텔과 예쁜 네덜란드풍 건물이 많다. 네덜란드어로 ‘존커’는 하인을, ‘히런’은 주인을 뜻한다. 존커 거리는 히런 거리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 보는 말라카 해협의 모습.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2 존커 워크 스트리트는 골동품점, 기념품점,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거리다 3 말라카 리버크루즈 는 9km에 이르는 말라카 강줄기를 따라간다. 노천카페와 전통가옥, 벽화가 말라카의 분위기를 전한다 4 비오는 늦은 밤, 조명을 밝힌 말라카 강은 한없이 매력적이다 5 재즈가 흘러나오는 존커 워크 스트리트의 라이브 카 ▶travie info 말라카 리버크루즈Melaka River Cruise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오후 1시/어른 기준 30RM),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 오전 9시~밤 11시30분/어른 기준 30RM)도 판매한다.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메나라 타밍 사리Menara Taming Sari 전망대 80m 높이까지 올라가는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는 말라카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60도 회전식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다. 푸른 말라카강과 붉은 지붕 가옥, 세인트 폴 언덕의 옛 유적지들로 대표되는 육지 모습과 달리 바닷가는 부산하게 변화 중이다. 연륙도에는 마리나 리조트가 들어섰고, 갯벌에는 간척공사가 한창이다. 낮은 곳에선 볼 수 없던 말라카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밤 10시 입장료 어른 기준 RM20 홈페이지 www.menaratamingsari.com 1 15세기 말라카 왕궁의 모습. 바닥이 지면에서 1~2m 떨어져 있고, 나무로만 지어진 점이 전통적인 말레이시아 건축 구조를 보여 준다 2 도시 이름의 어원이 된 말라카 나무 3 네덜란드 통치 시기 공관으로 쓰였던 스태이더스 빌딩은 현재 말라카 민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4, 5 포르투갈의 흔적은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성당. 벽채만 남은 모습에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6 말라카는 한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동서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교역량은 수에즈 운하와 비견됐을 정도다 7 말라카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인력거 ‘트라이쇼’. 화려한 꽃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는 언덕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파라메시바라Paramesvara왕자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 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 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 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 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듯 보이는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멀리서도 붉은 벽이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는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travie info 트라이쇼Trishaw 스태이더스 앞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력거 ‘트라이쇼’가 줄지어 서 있다. 평범한 인력거가 아니다. 오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지붕이며 좌석을 각종 꽃과 인형, 깃발로 치장하고 있다. 잘나가는 트라이쇼는 광고판까지 달고 성업 중이다. 트라이쇼를 타고 말라카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트라이쇼┃이용요금 시간당 40RM(30분 25RM), 어른 2인까지 탑승 가능 에이파모사┃입장료 무료 말라카왕궁┃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입장료 어른 기준 2RM 스태이더스┃개장시간 오전 9시~ 오후 3시30분(금~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입장료 어른 기준 5R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나라가 사는 법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레이시아에서 진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나라에선 한국인의 영어가 유독 잘 통한다. 우리나라 콩글리시 버금가는 게 바로 말레이시아의 ‘맹글리쉬’.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가지 언어로 이뤄지는 완벽한 의사소통보다 다양한 언어로 이뤄지는 유연한 의사소통이 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여러가지를 포용한다. 가장 전통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를 가장 매력적인 역사로 소개한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본떴고, 쇼핑몰을 활보하는 여자들은 검정색 대신 온갖 화려한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차도르를 둘렀다. 이곳에서 이슬람 전통은 속박의 족쇄가 아니라,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이나 광장 이름에서 독립을 뜻하는 ‘메르데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매년 8월31일 독립기념일에 성대한 축제를 치를 정도로 독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곳곳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 유적들이 버젓이 관광상품화 돼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부러 이런 곳들을 찾기도 한다. 식민 역사에 대해 예민한 우리로서는 이런 모습이 양면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양면적이지 않은지 묻자 나이 지긋한 관광가이드 노마가 적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용서에 관대한 편이예요. 아마 종교의 영향도 크겠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식민시대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어요. 역사 그대로의 과거에 얽매어 있기보다 새롭게 보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거지요.” 오랫동안 하나의 영토를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포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국민이다. 그리고 그런 관용적인 태도 속에는 다양한 삶의 어떤 형태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강인함이 있다. “나는 10년 동안 트라이쇼 운전을 해왔어요. 운전 기술로 치면 말라카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말라카 최고의 직업이 바로 트라이쇼 운전사라는 거. 난 매일 ‘이녀석’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 가죠. 난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적도 부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일 12시간씩 인력거 운전을 하는 만MAN 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말라카에서 트라이쇼를 타며 만씨와 함께한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말라카의 신선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고, 비온 뒤 씻은 듯 갠 하늘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자전거 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룩한 그의 배와 넉넉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화려하게 뽐낸 ‘이녀석’의 아늑한 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전거와 만씨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베크만BECHMAN’. 그것은 어느새 만씨 자신이 돼 버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도선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MALAY FOOD & SWEET DESERT MALAY FOOD 말라카의 음식 계보는 복잡 다단하다.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의 조리법이 말레이시아 특유의 향신료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탄생했다. 달콤한 ‘자연주의’ 디저트도 말라카에선 꼭 맛봐야 한다. 단맛을 내는 데 코코넛 우유와 팜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설탕 ‘굴라Gula’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공적이지 않고 몸에 좋다. 입 안에 감도는 두 가지 맛 ‘뇨냐푸드NONYA FOOD’ 중국인과 말레이인이 결혼해서 낳은 2세를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한다. 뇨냐음식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아마 혼혈 가정 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주로 중국 조미료에 코코넛 우유, 말레이 향료를 함께 넣어 조리한다. 태생이 가정식 요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먹더라도 휴대용 찬합에 담겨 나온다. 튀김요리인 바이띠Baidee, 중국식 야채볶음인 찹차이Chap Chye, 커리잎을 넣어 구운 치킨IncheKabin 등이 대표적이다. 뇨냐 음식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말라카와 페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라카식은 코코넛 우유를 많이 사용해 달달한 반면, 페낭식은 태국의 영향으로 매운 고추가 사용되는 점이 다르다. 뇨냐 식당은 존커 스트리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맛보는 원조 ‘아쌈페다스ASAM PEDAS’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쌈페다스의 고향이다. 아쌈은 타마린드 열매즙을, 페다스는 ‘매운’을 뜻한다. 파인애플, 스타프루트 등 열대과일, 아쌈, 토마토, 절인 갓으로 만든 소스에 생선과 채소를 넣고 조리하는데, 겉보기엔 생선찌개에 가깝다. 맛은 전혀 비리지 않고 깔끔해 카레처럼 국물을 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 아쌈페다스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루마말라카KafeRumah Melaka를 추천한다. 다양한 말레이, 말라카 전통 음식으로 유명하며, 20년 된 캄풍의 풍취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제외(영업시간 이후는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keferumahmelaka.com SWEET DESERT 코코넛밀크의 감미로운 맛 ‘사고Sago’ 바바 뇨냐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는 간식이다. 사고팜 나무에서 나오는 전분을 하루동안 물에 담그면 젤리처럼 되는데, 이걸 동그랗게 뭉쳐서 은단만한 알갱이로 만들고, 코코넛 우유에 넣어 먹는다. 여기에 과일과 팜나무 설탕인 ‘굴라Gula’를 넣으면 매우 고소하고 달콤하다. 굴라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방법으로 팜나무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식 팥빙수 ‘첸돌Cendol’ 첸돌은 말라카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얼음에 팥을 올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팥빙수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시럽 대신 굴라를 사용한 자연식이라는 것. 특히 향료의 하나인 판단잎 즙으로 만든 녹색 젤리를 짧게 채썰어서 넣는 게 특징이다. 이 젤리는 해독 성분이 있어 몸에도 좋다. 독특한 향을 지닌 두리안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첸돌에 두리안을 토핑해서 먹기도 한다. 존커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산슈공San Shu Gong’의 첸돌이 유명하다. ▶travie info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은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은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朴, 與 지도부와 첫 회동서 “우리는 공동운명체”

    朴, 與 지도부와 첫 회동서 “우리는 공동운명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3일 새누리당 지도부에 “우리는 공동운명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총·대선 공약 등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시내 한 식당에서 가진 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당부했다고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회동은 박 당선인이 대선 승리 이후 여의도 정치권과 가진 첫 만남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작품인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각료 인선안이 조만간 국회로 넘어가는 만큼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서 원만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은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처리해야 하고 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도 있을 텐데 앞으로도 수고가 많을 것이다. 잘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우리는 공동운명체로 내가 대선 때 국민행복시대를 열어 가자고 주장했지만 정부조직법 등은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같이 한 것 아니냐”면서 “개편안은 제가 청와대 경험과 국회 상임위, 국회의원 활동을 바탕으로 총·대선 과정에서 실천 의지를 가지고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총·대선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꼭 처리해야 하며 당 지도부에서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당선인은 “이번 임시국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회가 될 것이며 저는 늘 국회 의견을 존중하며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는 당에서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단, 상임위원장단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박 당선인 측에선 진영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과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팀장, 조윤선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오후에 열린 의총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택시법’을 이명박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로 되돌려 보낸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사실상 수용의 뜻을 밝혔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택시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현명한 대안이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한 뒤 재의결 등 국회 처리 절차에 대한 뱡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관련해 “민주통합당은 국정조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평창 스페셜올림픽] 나는 뇌의 9할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를 위해 할 일 많지요

    [평창 스페셜올림픽] 나는 뇌의 9할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를 위해 할 일 많지요

    플로어하키 최경재 가끔 위독해져도 스틱 못 놔 플로어하키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최경재(19·고양 홀트학교 1학년)군은 생후 8개월이 안 돼 걸음마를 떼고 형의 책을 넘겨볼 정도로 자랐다. 그러나 생후 23개월 무렵 큰 시련이 닥쳤다. 문에 손가락이 끼는 대수롭지 않은 사고를 당했는데, 뇌 조직에 세균이 침입하는 파상풍에 걸리고 만 것. 몸이 마비되고 의식불명 상태로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은 최군은 두 달 만에 어렵사리 의식을 회복했으나 중증 뇌성마비 진단과 함께 4~5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 사고로 뇌의 절반을 잃었고, 시신경과 청각신경이 손상돼 보고 듣는 것에 제약이 있다. 또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지혈이 잘 안 되는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 그러나 최군은 운명을 거부하듯 무럭무럭 자랐고, 약한 몸을 붙들어 매며 운동을 했다. 축구와 농구를 하다 지금은 플로어하키 스틱을 잡고 국가대표가 됐다. 그를 지도하는 이화원(42) 홀트학교 교사는 “플로어하키는 지적장애인에게 가장 좋은 스포츠 중 하나”라며 “최경재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 장애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대견해했다. 그는 가끔 위독할 정도로 갑자기 뇌 기능이 떨어진다. 코피라도 나면 잘 멈추지 않아 주위 사람을 긴장시킨다. 때문에 어머니 김영숙씨는 아들이 운동할 때면 늘 경기장 한쪽을 지킨다. 김씨는 아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들이 보여주는 모든 것은 현대 의학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어요. 플로어하키를 하면서 웃음을 되찾았어요. 친구들과 운동하며 체육관에서 너무나 밝게 웃는 걸 보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위험이 눈앞에 있어도 아들이 얼마나 플로어하키를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말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최군은 “수비를 더 열심히 하면 최강의 에이스가 될 수 있다”며 “목표는 승리”라고 각오를 다졌다. 개회식에서 애국가 선창할 박모세 뇌의 이상 메워준 절대음감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애국가를 선창하는 박모세(22·삼육재활학교 3학년)씨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어나기 전부터 뇌수가 흐르지 않아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낙태를 권유받던 어머니 조영애씨는 “주어진 생명을 어떻게 버리느냐”며 고집스럽게 그를 낳았다. 예상대로 아기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태어났을 당시 박씨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뇌의 90%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으며, 이후 뇌에 호스를 넣어 뇌수를 흐르게 하는 등 네 차례나 더 수술대에 올랐다. 지금도 박씨의 몸에는 목을 거쳐 배까지 호스가 이어져 있다. 겨우 생명을 유지했지만 두 발이 비틀어져 교정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지금도 앞을 못 보고 제대로 걷는 게 힘들다. 박씨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경기 용인의 한 교회를 다니던 그는 어느 때부터 찬송을 듣고 희미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 말문이 열리며 어눌하나마 노래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음악을 들려주었고 마침내 아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고 듣는 것은 물론 말하지도 못했던 그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은 절대음감을 타고났기 때문. 특수학교에 다니며 장애인합창단에서 활동한 그의 노래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11살 때인 2002년에는 추천을 받아 장애인농구대회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지난해 2월 스페셜올림픽 프레대회에서 애국가를 선창해 관중의 힘찬 박수를 받았다. 박씨는 오는 29일 평창 용평돔에서 열리는 대회 개회식에서 다시 한번 애국가를 불러 4000여 관중에게 감동을 선사할 계획이다. 박씨의 좌우명은 ‘나보다 불편한 친구는 어떻게든 도와줘야 한다는 것’. 어머니 조씨는 “모든 장애를 이기고 세계 지적장애인의 축제에서 애국가를 부를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크로스컨트리 최아람 매일 20㎞ 달려 왕따 극복 크로스컨트리의 간판 최아람(14·태백미래학교 중학부)양은 초등학교 시절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기초수급생활자인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묵묵히 견뎌냈다. 아픈 엄마와 뇌성마비인 언니, 동생을 혼자 돌보며 친구들의 비웃음을 애써 참아냈다. 수업 시간이면 화장실에 숨어 있기 일쑤였다. 바빴던 부모들은 아람이 지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2007년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아람은 웃음을 잃었다. 2011년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아버지는 딸이 지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뒤늦게 태백미래학교로 전학을 보냈다. 최양은 이곳에서 박영철 코치를 만나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박 코치는 근력과 균형 감각이 좋은 최양을 크로스컨트리의 세계로 인도했다. 152㎝의 작은 키를 극복하고 심폐력을 키우기 위해 최양은 매일 20㎞를 달리는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10분만 달려도 숨이 차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여름에도 매일 학교 근처의 스키장을 찾아 2시간씩 열심히 훈련했다. 마음의 병이 깊었지만 정겹게 다가오는 새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며 의지할 곳을 찾았다. 최양은 크로스컨트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2011년 제8회 전국장애인 동계체전에서 우승하고, 지난해 2월 스페셜올림픽 프레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꽃을 피웠다. ‘왕따’에서 국가대표가 됐고, 성인을 포함해 종목 최강자로 우뚝 섰다. 최양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 동생 최영미(12)양과 함께 이번 대회에 나선다. 최영미양은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 여자 초등부 높이뛰기와 포환던지기에서 2관왕을 차지한 하계 스포츠 스타. 언니를 보며 동계올림픽에 대한 꿈을 키웠고 스피드와 민첩성이 돋보이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트에 매력을 느꼈다. ‘달려라 하니 자매’의 언니는 평창의 설원, 동생은 강릉의 빙상을 누비게 된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임화정 잃어버린 동생 찾으러 질주 “저, 옛날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하는 임화정(30) 씨는 지난 18일 경기 의정부의 숙소에서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연이 전해지면 잃어버린 남동생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에 천천히 입술을 뗐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임씨는 열여섯 살 때인 1999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생 임종국(26)씨와 함께 부산의 한 사회복지법인에 맡겨졌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홀로 남매를 키우느라 벅차했다. 동생은 1년 만에 복지법인에서 도망쳤고, 임씨도 동생을 찾기 위해 시설을 나왔다. 열흘가량 사방을 헤맨 끝에 한 PC방에서 동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날이 마침 동생 생일이라 놀이공원에서 잠깐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동생은 화장실에 가겠다며 사라졌고, 그 뒤로 동생을 만나지 못했다. 2006년 부산 혜원학교에 진학한 임씨는 체육교사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승리욕과 남다른 운동능력 덕에 빠른 실력 향상을 보였고, 장애인 전국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훈련하다 정차 중인 택시와 충돌해 이빨 다섯 개가 부러지고 얼굴 10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이클을 워낙 좋아했다. 임씨는 2010년에 쇼트트랙에 입문했다. “스케이트도 자전거처럼 빨리 달리잖아요. 그래서 매력을 느꼈죠.” 훈련 한 달 만에 동계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재능을 뽐냈다. 그리고 2년 만에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대표로 발탁됐다. 그녀의 꿈은 단 하나. 생이별한 남동생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김종국인데, 단지 동생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팬이 됐다고 했다. “어렸을 적 누나가 구박 많이 해서 미안해. 누나는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힘내자.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자.”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겨울이 유난히 더디게 가는 듯하다. 어릴 적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길고 심했다.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가 아침이면 꽁꽁 얼어붙었고, 세수한 후 방문 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러붙었다. 부엌에서 지핀 불기는 겨우 아랫목에만 온기가 미칠 뿐이었다. 그래서 안방에는 늘 화롯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빨간 숯을 담아 묻어 둔 화로는 그 시절 최고의 난방 기구였다. 또 고구마나 밤을 굽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 땅에서 숯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600여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신라는 숯불로 밥을 지었고, 석굴암의 습도를 숯으로 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장을 담글 때는 숯을 넣어 옹기 안의 독소와 냄새를 제거한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악귀와 잔병을 물리치기 위해 금줄에 숯덩이를 매다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나 다름없던 숯은 석유, 가스 등의 연료에 자리를 내주면서 쓰임새가 크게 줄었다. 그러다 숯의 효능이 새롭게 드러나고,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 즉, 이른바 ‘웰빙’ 붐 속에 숯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숯이 뜨고 있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초입에 들어서자 먼발치 굴뚝에서 흰 연기가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피어올랐다. 전통 방식대로 숯을 굽는 가마에서 뿜어내는 연기다. 강원참숯 고문 서석구(75)씨는 50년 가까이 전통 참숯을 고집하고 있다. 내화벽돌을 쓰지 않고 천연석과 나무로만 제작된 숯가마에 참나무만을 넣고 숯을 굽는 것이다. 숯을 굽는 과정은 가마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가마에 채워지는 참나무는 10t가량이다. “아궁이에 종잣불을 넣어 가마가 정확히 280도가 될 때까지 불을 땝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봐도 숯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서씨의 말이다. 다른 한쪽 가마에서는 인부들이 긴 철봉으로 참숯을 꺼내고 있었다. 시뻘건 장작불에 1주일 동안 가마가 달궈지면 최고 1300도에 이른다. 열기에 숨이 턱 멎을 정도다.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가마 밑을 열고 산소를 넣으면서 달궈진 숯을 꺼낸 후 흔히 마사토(磨沙土)로 불리는 화강토로 덮어 식히면 비로소 질 좋은 백탄(白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숯을 거둬낸 가마 안에는 은은한 스모크 향이 감돌았다. 12시간 정도 열을 식힌 뒤 하루 동안 일반인들에게 찜질방으로 개방되고 있다. 숯이 구워지며 내뿜은 많은 원적외선이 고스란히 남아 손님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원적외선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피로 회복, 신경통, 근육통을 완화시켜 주는 효능을 지녔다. 서씨는 “‘숯쟁이’라고 얕보고 무시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전통 참숯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장장인 외아들 정원(43)씨는 백탄에 매료되어 대를 이어 20년째 전통 숯을 굽고 있다. 정원씨는 “불을 대면 순식간에 타올랐다 꺼지는 중국산 숯들과 달리 참숯은 한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며 백탄을 예찬했다. “전통 숯가마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정원씨는 참숯 굽는 방식을 보존·유지하기 위한 문화 체험장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숯 철학’이 실현될 때까지 가마에 참나무를 채우고 불을 넣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서씨와 정원씨는 시원스레 웃었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朴의 수첩 속엔 해법 있을까?

    朴의 수첩 속엔 해법 있을까?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생과 새 정부 조각 인선에 집중하며 조용한 행보를 거듭하던 박근혜 당선인이 첫 정치력 시험대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의 총체적 부실과 비리 의혹이 연일 정국을 강타하는 가운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 부처 간 갈등 양상을 띠는 정부 조직 개편안, 재원 마련에 따른 대선 공약의 출구전략 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가 새 정부의 방향타로 떠오른 것이다. 박 당선인의 선택이 새 정부 출범의 첫 단추이자 향후 5년간 국정 운영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대 기로로 여겨지는 까닭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4대강 사업은 당장 박 당선인에게 최대 딜레마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은 총제적 부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고, 야권에서는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마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는 터라 박 당선인도 쉽게 ‘바통 터치’를 해 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은 야권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여권이 공동으로 진행한 국책사업이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해법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기엔 이미 22조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박 당선인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이 헌재소장 후보자 인선 문제도 박 당선인의 정치력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위장 전입, 증여세 탈루, 저작권법 위반, 판공비 유용 등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야권의 지명 철회 요구에 직면한 상황이다. 오는 21~22일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결정타를 맞을 경우 박 당선인도 이 후보자에 대한 인선 강행을 고집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함량 미달이거나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은 배제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그의 결단에 관심이 쏠린다. 박 당선인의 첫 작품인 정부 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통상과 과학, 식품 분야의 분리 등을 놓고 당장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 조짐이 있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충분한 동의를 구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직원들 ‘멘붕’인데 장관은 연일 현장시찰 ‘시끌’

    직원들 ‘멘붕’인데 장관은 연일 현장시찰 ‘시끌’

    “왜 저러나.” 최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무리하게 현장시찰을 고집해 조직 안팎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터져 나온다. 현직 장관들은 40여일 남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교체가 유력해 그동안 벌여놓은 일을 정리하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게 보통이다. 때문에 이런 서 장관의 남다른 행보에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총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17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서 장관은 지난 4일엔 충북 청원의 딸기작목반과 보은의 한우유전자원센터를, 11일에는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과 구미 원예생산단지를 방문했다. 16일엔 경기 광주의 새싹재배농가를 찾았다. 특별한 사안이 없는 일상적 현장방문이다. 다음 달 1일에는 기자단과 농정현장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선임부처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국무회의·물가관계장관회의 등 정해진 일정만 수행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것과 대조된다. ‘끈 떨어진’ 장관의 현장 방문을 해당 지방자치단체들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지만 껄끄럽다는 반응이다. 올해 장관이 방문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장관이 오면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며 “평소 같으면 반겼겠지만 곧 그만둘 장관이 특별한 사안도 없는데 왜 찾아왔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서 장관 측은 “임기 말에 흔들림 없이 현장을 찾는 것은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일 아니냐”고 항변했다. 농식품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계획안에 따라 수산 기능은 해양수산부에, 식품 기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내주며 조직이 반토막날 처지다. 한 공무원은 “직원들은 ‘멘붕’(정신적 혼돈 상태)인데 장관만 혼자 한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부처 간 힘겨루기에서 우리 부가 완패했는데 장관은 뭐했나”면서 “분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림축산부는 축산이 농업에 속한다는 기본 상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명칭”이라면서 “윗분들이 당선인 측에 기본 설명만 잘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순창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도 “3월 이후 행보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며 “지금 장관들은 이번 정부를 돌아보고 문제점·대안 등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장관에게 정확하게 조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프로야구 10구단 결정 ‘엇갈린 명암’] 전북 ‘초상집’

    전북도가 범도민적으로 추진한 대형 사업들이 잇따라 실패, ‘책임론’이 비등하면서 지역 정치권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14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가 최근 5년간 추진했던 각종 숙원 사업들이 벽에 부딪히는 사례가 잇따라 도민들이 깊은 상실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도가 1년 넘게 매달려 온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는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다. 전북·부영은 200억원의 야구발전기금과 돔구장 건설을 내세운 수원·KT의 물량 공세에 밀렸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전북도가 10구단 유치에 나선 것은 2011년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통합 본사의 전북혁신도시 유치 무산에 따른 도민들의 패배감을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였다는 분석이어서 ‘김완주 지사의 책임론’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LH 유치는 경남과의 경쟁 과정에서 도내 전역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지사가 삭발을 단행하는 초강수를 뒀으나 ‘분산배치’만 고집한 전략적 실패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LH 본사 유치 무산 이후 도가 정부에 요구했던 5개항의 사업도 새만금특별법 개정 외에는 감감무소식이다. 도가 엄청난 성과로 홍보하는 ‘새만금특별법 개정’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특별회계 설치’가 현실화되지 못해 ‘용을 그리긴 했으나 눈이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유치 역시 정치권의 시각차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새만금지구에 대규모 외자를 유치했다고 치적을 내세웠던 양해각서들도 잇따라 무산됐다. 2009년 7월 고군산군도에 국제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며 미국 페더럴사와 교환한 9000억원 규모의 양해각서와 같은 해 12월 새만금에 명품리조트를 건립하겠다고 미국 옴니홀딩스와 맺은 3조 5000억원 규모 양해각서는 모두 없었던 일이 됐다. 삼성그룹이 새만금지구 11.5㎢에 2021년부터 20년간 7조 5000억원을 투입해 ‘그린에너지 종합산단’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던 양해각서도 2011년 국정감사에서 ‘대국민 사기극’이란 지적을 받았다. 이 밖에도 도는 연구·개발(R&D) 특구 유치, 국립산림박물관 유치 등 각종 정부 사업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너무 많아 지역 정치권이 전주·완주 통합과 맞물려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기업 자율이냐 당 통제냐 도전 받는 중국 언론 검열

    기업 자율이냐 당 통제냐 도전 받는 중국 언론 검열

    언론 검열이 초래한 중국 개혁 성향 주간지인 남방주말(南方周末)의 파업 문제를 계기로 중국의 언론 환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을 당이 언론에 자급자족식 경영(시장화)을 독려하면서도 전통적인 당의 언론 통제를 고집하면서 빚어진 권·언 충돌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 언론이 점차 시장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이 같은 마찰은 반복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장화 매체에는 이미 서방식의 ‘독립언론’ 사고가 깊이 침투해 있고 시장화 성향도 강해지는 반면 당에서는 언론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확고해 앞으로도 양자 간 충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모든 언론을 사회주의 사업을 위한 선전도구로 당이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총서기 취임 직후 “중국 언론은 당의 나팔수(喉舌·목구멍과 혀)다”(1989년 11월 전국언론연구회의)라고 언론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듯 중국에서 언론 통제는 확고부동하다. 언론사마다 당에 소속된 특정 기관으로부터 관리되고 있으며, 당 위원회에서 파견된 검열관들로부터 사전·사후 검열을 받고 있다. 당국은 그러나 언론의 경영에 있어서는 시장화 경영을 선호한다. 모든 언론을 정부3가 먹여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언론사 체질 개선을 목표로 사업 단위를 독립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기개제(轉企改制) 개혁을 단행하고, 정부의 보조를 받는 당보(黨報) 등 기관지 이외의 다른 매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급자족식 경영을 강제하고 있다. 전기개제 개혁 이후 2009년 한 해만 188개 신문사가 정리됐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남방주말의 경우 광둥(廣東)성 기관지인 남방일보를 모회사로 하는 남방일보신문사그룹의 자회사다. 인터넷이 언론의 역할 변화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지원을 받는 남방일보와 달리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돈을 벌고 그 수익의 일부를 모회사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신문 제작까지 간섭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방주말을 비판하는 사설 게재를 거부해 항명 파동을 일으켰던 베이징 지역의 신경보(新京報)를 비롯한 시장화 신문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허난(河南)방송을 모회사로 둔 동방금보(東方今報)는 지난 10일자 1면에서 남방주말 신문 사진을 게재한 뒤 “우리는 남방주말과 함께 언론의 책임을 수호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간접적으로 당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 통제도 강화되고 있어 매체의 시장화 성향이 언론자유를 앞당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초 기관지인 남방일보와 광명일보가 공동 출자했던 신경보의 경우 2011년 관리 주체가 돌연 베이징시로 변경됐다. 베이징 지역 발행 신문을 남쪽 당보가 관리하다 보니 느슨해진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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