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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당선 2주년 朴대통령 귀부터 열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선 승리 2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당선 1주년을 맞아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직자, 지도부와 오찬과 만찬을 잇따라 가졌다. 하지만 올해는 별도의 기념행사가 없었다. 청와대도 2주년과 관련된 논평 한 줄 내놓지 않았다. 이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정윤회 문건’ 파문 등으로 민심이 돌아선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날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7%로,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검찰 수사대로 정윤회 문건 파문이 경찰 출신 전직 청와대 행정관의 ‘소설’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문고리 3인방’이라는 비선세력이 실재하며 이들이 국정을 농단했다고 믿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집권 2년차에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일 것이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취임 당시 약속은 빈말이 됐다. 인사 대탕평을 다짐했지만 주요 보직을 영남, 그것도 대구·경북(TK) 출신이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56명 가운데 15명이 TK 출신이다. 5대 사정기관장인 검찰총장, 국세청장, 감사원장,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허언이 됐다. ‘관피아’가 사라진 자리를 ‘정피아’가 대신 꿰차고 있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당선에 큰 도움이 된 경제민주화나 ‘증세 없는 복지’ 등의 공약도 지켜지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졌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복지를 하겠다는 공약도 결국 공수표가 됐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독선과 불통의 ‘닫힌 리더십’은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석비서관들한테조차 대면보고보다는 서면보고를 받고,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은 너나없이 받아 적기만 하고,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각하’라는 철 지난 호칭을 연발하는 풍경을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여당 출신 국회의장까지 “박 대통령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겠는가. 수평적 의사결정이 사라지면 독단에 빠질 위험이 크다. “상실·불신·절망의 2년”이라는 야당의 냉혹한 평가를 정치 공세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집권 3년차를 맞아서도 박 대통령이 진정한 여론의 소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 홀로 국정운영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민심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때 이른 레임덕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의 대대적인 인적 개편과 함께 국정 분위기 쇄신에 나서야 한다.
  • 여성·아이도 무차별… 테러, 잔인하고 조직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테러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GTD)는 1970~2013년 40여년간 축적한 자료를 인용해 이 기간 ‘12월 17일’을 기준으로 이 날짜에 일어난 테러의 숫자를 정리해 17일 발표했다. GTD 홈페이지(www.start.umd.edu)에 따르면 1970년대 이 날짜에 일어난 테러는 하루 10건 미만으로 주춤하다 1978년 50건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는 냉전의 심화가 국지적인 테러를 확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매년 같은 날 10건 안팎을 기록하다 2012년 폭증했고 지난해 12월 17일에는 60건에 가까웠다. GTD는 테러의 양상을 분석해 공공시설 파괴나 납치에서 자살폭탄테러 등으로 방식이 잔인해지고, 대상도 어린이 등 민간인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1960~1970년대 포스트 식민주의 속에서 자생하던 테러 조직이 1980~1990년대 냉전의 확산으로 힘을 얻고, 이후 지역을 넘어 조직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경향은 148명의 사망자를 낳은 파키스탄탈레반(TTP)의 ‘학교 테러’에서 잘 드러난다. 2004년 9월 334명이 목숨을 잃은 러시아 북오세티야 초등학교의 인질극과 지난해 7월 42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고교 폭격 사건 등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의 잔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테러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더 잔인해지고 분권화됐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권력 공백이 생기고, 시리아 내전 등으로 지하디스트들의 숫자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탓이다. 보고서는 ‘알카이디즘’이 반미 감정을 기반으로 세계 각 지역의 이슬람 토착 세력과 결합해 오히려 새로운 테러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GTD는 2007년 100건 정도에 불과했던 알카에다 및 연계 조직들의 테러 횟수가 2013년에는 900건 이상으로 9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방점은 이슬람국가(IS)에 찍혔다. IS가 알카에다마저 포기한 인질 참수를 고집하며 잔악한 수법으로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전문가인 에브라힘 무사 미국 노트르담대 교수는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잔혹한 행위를 벌이는 것은 기독교·서구식 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이 자라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르는 것을 ‘성전’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이제 밥값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시면 뭐라 말씀하실지….” 성철(1912~1993) 스님을 평생 시봉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70) 스님은 어쩔 수 없는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제자)였다. 바람이 코끝을 에는 듯한 찬 날씨에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스님. 신도들이 연신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자 일일이 맞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 ‘한국 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앞 만남에선 좀 생뚱맞은 질문일까. 더군다나 총무원이 들어 있는 조계사는 성철 스님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최근 나온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개정증보판 소감을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온다.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롭지요. 큰스님이 설법한 지 반세기인 47년 만에 이렇게 대중에게 온전한 법 보시를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에 추대된 뒤 첫 동안거를 맞아 대중에게 백일간 불교 전반에 대해 강설한 법문이 백일법문이다. 불교의 핵심 내용을 경론과 조사어록 등을 인용해 알기 쉽게 풀어낸, 한국 불교의 퇴색하지 않는 대중 교과서다. 선(禪)과 교(敎)를 불교의 핵심인 중도사상으로 회통해 일갈한, 성철 스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법문이다. 그 법문을 일반 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책이 성철 스님 열반 한 해 전인 1992년 세상에 나온 ‘백일법문’(장경각)이다. 이번 개정 증보판은 첫 판에서 빠진 법문 내용 중 테이프 14개 분량을 보완한 것이다. 처음 나온 초판 ‘백일법문’ 책을 보곤 시큰둥했다는 성철 스님이 살아 있다면 이번 백일법문에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그때의 백일법문은 말할 것도 없고 22년 만의 개정 증보판 출간은 전적으로 상좌 원택 스님의 공이다. 억센 사투리 억양에 말까지 빨라 알아들을 수조차 없고, 녹음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그 법문을 일일이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을까. 2004년 원택 스님이 이끄는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낸 CD가 첫 판 백일법문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증보판을 내기로 작심했단다. 스님의 백일법문 내용을 전한 책이 빈약했다는 자책과 스승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다시 시작해 탄신 100주년인 재작년, 그리고 열반 20주기인 지난해에 개정판 출간을 맞추려 했지만 작업이 너무 어려워 늦어졌다. 찬바람을 피해 총총걸음으로 인근 백련불교문화재단 사무실로 옮겨 ‘개정판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법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저를 법정 스님에게 보낸 게 필생의 길이 되었군요.” 바로 성철 스님 법문집 ‘선문정로’(1981년)와 ‘본지풍광’(1982년)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은 묘한 관계였어요. 경쟁자이면서 서로가 가장 인정하는 도반이랄까. 원고 뭉치를 꺼내더니 법정 스님에게 가져가라고 했지요. 그래도 글은 법정이 최고라면서….” 자신의 글에 대한 윤문을 부탁했으니 성철이 법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법정 스님도 글자 하나, 토 하나, 받침 하나도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면서 최소한의 교정으로 성철 스님 글의 윤문을 마쳤어요. 그 스님에 그 스님이지요. 더군다나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해 비판을 가장 많이 했던 스님이었는데….” 원고 뭉치가 든 걸망을 메고 법정 스님을 찾아가 불일암과 유스호스텔을 돌며 윤문 작업을 한 끝에 ‘선문정로’ ‘본지풍광’을 냈고, ‘백일법문’도 그 바탕에서 시작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선종 소의어록 ‘고경’ 시리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원택 스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무렵 고향 친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은 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1년의 일이다. ‘성철 스님이라는 큰스님이 있으니 한번 만나 보자’는 친구의 권유에 그저 평생의 지남이라도 받아 볼 요량으로 방문했는데 그게 평생의 인연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쏙이지 말그래이.” 기대 속 첫 대면에 받은 지남치곤 허접했을까. 대실망이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지 말라’는 그 말이 가슴에 켕겼고 결국 자신의 몸이 화장당하는 꿈을 꾼 뒤 해인사를 찾아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가 됐다. ‘살아서 20년, 죽어서 20년.’ 스승 성철 스님을 시봉한 햇수를 담아 영원한 시자 원택 스님이 즐겨 하고 즐겨 듣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팍한(?) 스승을 모시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변함없이 성철 스님을 모셨고, ‘가야산 호랑이’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것도 원택이었음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경남 산청 출생지에 겁외사를 세었고, 그곳에 다시 기념관을 지어 얼마 전 회향식을 했다. 힘겹게 지은 사리탑이며 연꽃 봉오리 모양의 연화대에 법구를 모신 관을 넣고 불을 넣은 파격적인 다비식을 치른 일 말고도 스승을 향한 그의 정성과 시봉 일화는 숱하다. ‘성철 스님 상좌.’ 자신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이 말이 질리지 않을까. 그래도 큰 소식 한번 하겠다며 출가한 납자인데 성철 스님을 뺀 ‘스님 원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산 호랑이’ 스님에게 받은 화두 풀이는 잘됐을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다. 무거운 침묵 끝에 돌아온 말은 역시 스승을 향한 자책이었다. “속이지 말라 하셨는데 여전히 속이고 살지요. 죽을 때까지의 숙제겠지요. 법정 스님과 함께하라며 보냈던 그 일은 일찌감치 성철 스님이 제게 내준 길이었어요. 그 길 뜻을 더 일찍 알고 풀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원택 스님의 ‘백일법문’을 향한 집념은 그렇게 질겼나 보다. “큰스님은 제게 첫 대면에서부터 글을 보지 말라 하셨어요. 글 모르는 무식쟁이인 육조 스님(혜능)도 진리를 깨우쳤는데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뭐하러 글을 보느냐며 글을 보는 저를 항상 나무라셨지요.” 크게 맘을 먹고 ‘스님 법문을 책으로 내야 스님 뜻이 온 세상에 퍼질 것 아니냐’는 직언을 드렸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글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의 지론과는 딴판이었다. “백일법문은 불교의 핵심이 잘 설명된 책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삼척동자에게도 친숙할 법한 이 말처럼 성철 스님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거인이다. ‘왜 달을 안 보고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느냐’고 세상을 혼내던 쩌렁쩌렁한 목소리, 절집을 찾는 이에게 어김없이 삼천 배를 시키던 그 무서운 호령은 여전히 ‘먼저 나를 낮춰 내려놓으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매다. 그 거인의 외침은 왜 열반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이 여전할까. 기다렸다는 듯이 상좌가 돌려주는 한마디. “세상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지요. 스님이라고 왜 유혹과 회유가 없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지킨 것이 그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 ‘가야산 호랑이’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한 스님’이라는 세상 한편의 비판도 받았었다. 군사독재 시절 ‘보편의 정의’를 몸으로 보여줬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왜 다르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스님은 항상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셨지요. 남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중은 논두렁 베고 잠들다 죽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은 출가자의 속가 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을 찾지 않아 상좌가 문상을 대신 했다. 원택 스님도 그 스승을 따랐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성철 스님이 시좌를 시켜 ‘느그 아부지 돌아갔다’는 말만 전해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장례를 잘 못 치렀어요.(웃음)” ‘내 상좌는 죽어도 해인사 본말사 주지가 될 수 없다’는 성철 스님 유지도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절집 표현대로라면 ‘친인척 간 다툼과 알력’을 미리 막았다고나 할까. 상좌 36명 가운데 해인사 본말사 주지는 단 1명도 없다. 상좌들은 주로 선방을 지켰고 열 군데 사암 주지를 맡고 있을 뿐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 고심정사의 주지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던 해인사 백련암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자주 찾아 머무는 편이다. “형제간 다툼이나 알력도 피하고 폭넓게 퍼져 산 셈이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도망가지 말고 중노릇 잘해라.’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상좌가 안쓰러웠던지 성철 스님이 툭 던졌다는 말씀이다. ‘희한한 놈’ ‘곰새끼’라 부르면서도 ‘아무한테나 중 되란 소리 안 한다’던 스승의 말 한마디가 요즘 부쩍 가슴에 박힌단다.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이 임종 때 곁을 지킨 원택 상좌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 유언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제 자신만의 만행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원택이 없었으면 성철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상좌 원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찰나의 틈도 없이 손사래가 허공을 휘젓는다. “스님 뜻을 제대로 전하기나 한 건지 걱정인데….” 한국 불교계에 이름난 ‘절집 효자’, 원택이다. 옷깃을 여민 ‘절집 효자’가 인터뷰 말미에 얹은 마지막 말은 역시나 ‘스님 뜻을 완전하게 전하고 죽고 싶다’였다. 백련암 이름을 딴 백련불교문화재단은 그 희망의 텃밭이다. 30년쯤 전 ‘한국엔 왜 남방불교를 잘 아는 범어 전문가가 없느냐’는 스님의 질타에 ‘그럼 우리가 백련암에서 범어학자들을 키우자’고 원택 스님이 제안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그 재단을 토대로 스님의 정신을 올곧게 세우겠단다. 지난 11일부터 석달 일정으로 백일법문 강좌를 진행 중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열어 왔지만 47년 만의 개정판 출간으로 올해엔 더 신경이 쓰일까. “백일법문 개정판이 나왔다고 스님 뜻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항상 해 온 대로 하고 있습니다.” 타협 모르는 ‘괴각쟁이’ 수행자 성철 스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선불교 거두 성철의 그림자 원택 원택 스님은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거두인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 경남 해인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긴 성철 스님 삶의 산증인이다.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고향 친구와 함께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고 이듬해 출가했다. 일만 배를 올려 첫 대면한 성철 스님에게 들은 ‘쏙이지 말그래이’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떠나왔던 백련암을 다시 찾아 제자가 된 인연담이 유명하다. 당초 ‘성철 스님 뺨이라도 한 대 올리겠다’며 호기 있게 찾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에 머리를 깎았다. 성철 스님 생전 20년간 꼬박 시봉한 유일한 상좌다. 입적 후에도 ‘큰스님’ 뜻을 따라 20여년간 온몸을 바쳐 살고 있다. 성철 스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챙겼고 입적 후에는 유지 받들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사리탑과 새 형식의 다비장으로 스승을 기려 불교계를 놀라게 한 ‘소문난 효자’다. 늘 “마음을 다해 시봉한다 했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며 존경과 그리움을 감추지 않는다.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성철 스님 친딸이자 출가자인 불필 스님과 뜻을 모아 겁외사를 세웠고, 그곳에 기념관을 다시 지어 최근 개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고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1987년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해인사 백련암 감원, 부산 고심정사 주지를 겸한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성철 스님 입적 전해인 1992년 출간한 성철 스님 법문집 ‘백일법문’이 대업으로 평가되며 22년 만인 최근 그 개정증보판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 전쟁 같은 삶 님만 있다면…

    전쟁 같은 삶 님만 있다면…

    지난 15일 오전 9시쯤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뇌병변장애 1급인 김탄진(46)·장애경(45·여) 부부는 내복 차림으로 각자 활동보조인을 기다렸다. 그들이 오기 전에는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오전 9시 30분 탄진씨의 보조인 양현우(48)씨와 애경씨의 보조인 김모(45·여)씨가 도착했다. 탄진씨는 애경씨보다 몸이 불편하다. 혼자 화장실을 갈 수도, 젓가락질을 할 수도 없다. 그에 비해 애경씨는 말도 잘하고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양씨가 탄진씨를 씻기는 동안 애경씨의 화장은 김씨의 몫. 쉴 새 없이 몸을 떠는 장애가 있지만 김씨는 능숙하게 립스틱까지 발랐다. 아침을 먹고 치우니 어느새 낮 12시. 애경씨는 먼저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출발했고 탄진씨는 평소처럼 보치아(장애인 스포츠의 일종)를 하기 위해 노원구의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으로 향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30분이 걸려 도착한 복지관에선 이날부터 도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헛걸음을 한 그는 곧바로 종로구에 있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로 향했다. 복지관이 있는 1호선 녹천역에서 야학이 있는 4호선 혜화역까지는 지하철로 30분. 하지만 탄진씨에겐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갈아타면서 양씨는 연신 행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엘리베이터도 5번을 탔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탄진씨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더니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한 대목) 어때요, 꼭 오늘 날씨 같죠?”라며 활짝 웃었다. 오후 5시 노들야학 한소리반의 국어수업이 시작했다. 김나리(가명·여) 강사가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소리반의 ‘우등생’ 탄진씨는 소설 낭독이 끝나자 “김첨지는… 아내를… 좋아해요!”라고 목에 힘주어 말했다. 박수갈채가 나왔다. 잠시 뒤 저녁 시간. 탄진씨는 다른 반에서 공부하던 ‘반쪽’을 찾아갔다. 양씨가 능숙한 솜씨로 고개를 뒤로 젖힌 탄진씨의 입에 음식을 넣었다. 양씨는 “활동보조인 일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렵다”면서 “가끔 쓸데없는 고집만 피우지 않으면 힘들지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전 9시부터 꼬박 12시간을 함께하는 그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다. 수업이 끝나자 두 활동보조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 궂은 날씨 탓에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했지만 “대기인원 45명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 결국 눈길을 헤치며 버스를 타러 갔다. 100번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늘었지만 휠체어 두 대가 동시에 타기는 힘들었다. 장애인시설에서 처음 만난 둘은 가족의 반대를 딛고 2009년 결혼했다. 애경씨 부모는 몸도 더 불편하고 가족도 없는 탄진씨와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애경씨는 “평생 그의 손이 돼 주겠다”는 각오로 시설을 나왔다. 탄진씨는 그때부터 야학을 다녔다. 2012년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내년에 고려사이버대에 입학한다. 그의 꿈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장애인센터를 만들어 다른 장애인을 돕는 것. 궂은 겨울날 장애인 이동 인프라가 열악한 서울에서 몇 차례씩 전쟁을 치르듯 일상을 사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애경씨는 “시설을 나온 뒤 주어진 삶만을 강요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끈질기게 야학을 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씨줄날줄] 닌자거북이 박격포의 변신/정기홍 논설위원

    박격포 훈련은 보병의 훈련과 달리 특이한 게 많다. ‘조포 훈련’(포 조정 훈련)을 할 때 “전방에 차려포”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사수와 탄약수 간에 시간과의 싸움은 시작된다. 뒤이어지는 “겨냥대 똑바로 꽂아! 빨리 뛰어”라고 채근하는 고참의 쩌렁쩌렁한 고함은 훈련 내내 졸병의 얼굴에 땀깨나 흘리게 만든다. 졸병 탄약수는 겨냥대를 들고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고, 사수의 지시에 따라 발을 쉼 없이 움직여 겨냥대를 박고 포가 차려진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관측 초소(OP)에서 지휘하는 관측병의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1분30초 안에 초탄을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중률은 낮은 편이어서 사격을 할 때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멍텅구리’로 불리는 연습용 포탄은 잘못된 조준 등으로 인근 민가에 떨어져 피해를 주고, 훈련 중인 장병이 포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도 간혹 발생한다. 포탄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져 지근에서 탄착 지점을 어림하기가 꽤 어렵다. 관련한 일화도 있다. 어느 박격포 경연대회에서는 노련한 고참 관측병이 찍은 ‘좌표’를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이등병이 달리 찍어야 한다고 고집해 1등을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박격포가 ‘똥포’로 불리는 까닭이다. 행군할 때에는 탄약수의 포판(17㎏대)을 멘 모습이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해 ‘닌자거북이’로 불리기도 한다. 무게가 42㎏에 달하는 81㎜ 박격포는 이동할 때 포수와 탄약수 등이 포신과 포다리, 포판을 나눠 등에 지고 운반한다. 방위사업청이 ‘무거운 똥포’로 불리는 81㎜ 박격포 개량에 나선다. 2018년까지 무게를 줄이고 명중률을 높이려는 사업이다. 그동안 주로 하던 도수(徒手) 운반을 차량적재 방식으로 모두 바꾸고, 겨냥대와 겨냥틀을 이용하던 수동 방식을 각종 센서를 활용한 디지털 가늠자로 교체한다고 한다. 박격포는 견인포나 자주포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구조가 간단하고 운반도 보다 쉬워 보병의 진지전(陣地戰) 등에 주로 쓰여 왔다. 폭발 때의 파편이 일반 포탄보다 많이 발생해 참호 공격에 효과적이고, 다른 박격포와 달리 분당 최대 30발을 지속 사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전차를 공격하기 전에 박격포 포병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에 적합한 무기다. 81㎜ 박격포는 재래식 포임에도 그동안 무게를 줄이고 사거리를 늘리면서 지금껏 군 화기(火器)로 활용되며 제자리를 뺏기지 않고 있다. 81㎜ 박격포의 개량 사업이 완성되는 몇 년 후엔 구구절절한 박격포 훈련 애환들도 사라질 것이다. 군대 생활은 이래저래 추억만을 만들고,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천정부지 스타 몸값 중년 빠진 무대 때문”

    “천정부지 스타 몸값 중년 빠진 무대 때문”

    “제 대극장 뮤지컬 데뷔작입니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로 공연계에 한 획을 그은 송승환(57) PMC프로덕션 대표의 말이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뮤지컬 ‘라카지’에서 ‘에두아르 딩동’ 역으로 무대 위에 선다. 30년 넘게 뮤지컬에 매달린 그이지만 배우로는 두 번째, 대극장 작품으로는 첫 번째 출연이다. 지난 12일 첫 공연을 앞둔 그를 서울 종로구 대학로 PMC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소감을 물으니 “난 노래도, 춤도 잘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1994년 ‘사의 찬미’라는 소극장 뮤지컬에서 홍난파 역을 맡았어요. 윤석화, 송영창과 함께 단 3명이 무대에 올랐는데 저는 주로 피아노를 치고 노래는 두 분이 다 불렀죠.” 그런 그가 다시 뮤지컬 출연을 결심하게 된 데는 제작자로서의 속사정이 있었단다. “‘에두아르 딩동’은 중년 남성 배우가 맡아야 하는데, 중년 배우의 폭이 넓지 않아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딩동’은 혼자 부르는 넘버가 8마디밖에 없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열심히 연습하고 있죠. 하하.” 제작자가 직접 배우로 나선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제작자는 객석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느끼지만 배우는 무대 위에서 느끼죠. 7일에는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연습을 했는데 객석이 정말 넓고 높더군요.” 그는 “제작만 맡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점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막내 배우들, 말단 스태프들과도 함께 일하면서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스태프들의 수가 많아졌고 일이 세분화된 걸 실감했어요. 뮤지컬이 점점 산업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뮤지컬계의 대표 제작자인 만큼 국내 뮤지컬 시장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0여년간 급속도로 성장하던 뮤지컬 시장은 올해 크게 흔들렸다. 제작사가 파산하고 예정된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치솟는 스타 배우들의 개런티와 라이선스 로열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송 대표가 꼽은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 과잉’이었다. “관객 수에 비해 작품 수가 너무 많습니다. 관객이 20~30대 여성에 국한돼 있는데 한정된 관객층을 늘리려는 노력을 제작사들이 해야 합니다.” 그가 주문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몇몇 스타 배우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것도 “관객과 작품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40~50대 관객들을 위한 작품이 늘어나야 합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20~30대 관객을 겨냥하지 않고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작품들 중에 성공 사례가 나오면 시장이 좀 더 탄력성 있게 변하리라고 봅니다.” 뮤지컬계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또 한번의 도약에 나섰다. ‘난타’는 지난 3일 중국 상하이에서 장기 공연에 돌입했다. 23일에는 마카오에서 공연되고, 내년 3월에는 중국 광저우에 전용 극장이 문을 연다. 좁은 국내 시장에 대한 타개책으로 그는 중국과 일본, 특히 중국 시장을 제시했다. “중국은 뮤지컬이 막 태동하는 시기입니다. ‘난타’ 공연장에서 직접 보니 젊은 관객이 많이 늘었더군요. 최소 10년 정도는 중국 시장이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형제는 용감했다’ ‘달고나’ ‘젊음의 행진’ 등의 창작 뮤지컬을 고집하면서도 ‘리걸리 블론드’ ‘라카지’ 등의 라이선스 뮤지컬도 겸했던 그는 내년에 ‘난쟁이들’로 다시 창작뮤지컬을 시도한다. “그동안 창작뮤지컬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개발 기간이 2~3년 정도로 너무 짧다는 겁니다. 앞으로는 4~5년 정도 잡고 수정을 거듭하려고요.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이 늘고 있는데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게 필요합니다.” 내년 3월 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6만~13만원. 1666-8662.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울었다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팬클럽 주도로 열린 추모식

    故신해철 49재, 팬클럽 주도로 열린 추모식

    지난 10월 별세한 고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이날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사진=더팩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산업개발] 15년 만에 계열사 26개 성장… 해외 사업으로 재도약 몸부림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산업개발] 15년 만에 계열사 26개 성장… 해외 사업으로 재도약 몸부림

    정몽규(52)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부친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1974년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이자 그의 애칭이 된 포니(PONY)를 개발하고 1976년 수출에 나선 정 명예회장은 한국 자동차 신화의 주인공이다. 강원 통천에서 1928년 태어나 보성고,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 명예회장은 1967년 미국 포드사와의 합작을 이끌어 내며 현대자동차의 초대 사장에 취임한 뒤 32년 동안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써 나갔다. 그의 장남이자 외아들인 정 회장은 1996년 당시 34살의 세계 최연소 나이로 완성차업체(현대자동차)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자동차에 올인했던 부자는 1999년 현대차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큰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장자인 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현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자동차 기업을 넘겨 주기 위해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자동차에서 손을 떼라고 통보했다. 형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한마디 반박도 하지않고 아들 정몽규 회장과 함께 낯선 건설 분야인 현대산업개발로 넘어왔다. 1999년 4월 취임한 정 회장은 건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본사와 150곳의 현장을 일일이 발로 뛰며 실태 파악에 나섰다. 70% 이상인 주택사업을 50%선으로 낮추는 대신 토목, 플랜트, 사회간접자본(SOC) 등 신규 사업을 확대했다. 단순 시공 수준이 아닌 어려운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어 활로를 모색하며 현대산업개발을 건설업계 ‘톱5’ 반열에 올려놨다. 하지만 지난해 정 회장에게 두 번째 위기가 닥쳤다.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국내 주택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25년 만에 적자를 냈다. 시공 능력 순위는 2008년 5위에서 지난해 9위, 올해 13위로 결국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현대산업개발의 전신인 한국도시개발은 1980년대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시작으로 전국에 현대아파트를 주도적으로 건설했으며 민간부문 주택건설실적 1위 기업이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위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국내 주택·건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있음에도 사업 다각화를 통해 미래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짜지 못한 정 회장의 경영적 판단 착오가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마디로 정 회장이 주택·건설 사업에 대한 혜안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다른 건설사들은 국내 경기가 좋을 때에도 위기 상황에 대비해 해외 사업을 개척하고 수주하는 등 적극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었지만 현대산업개발은 국내 SOC 등을 위주로 내수 시장에 머무르며 해외사업에 나서지 않는 등 소극적 전략을 택했다. 업계에서는 임직원들이 정 회장의 고집을 꺾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적자 이유에 대해 장기간 착공되지 않아 분양가가 떨어지는 지역의 손실을 털어내고자 선제적으로 분양을 진행해 재무제표상 손실이 많이 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올해 실적 개선을 위한 준비 단계의 부실 털기라는 얘기다. 실제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잇단 부동산 활성화 정책으로 부동산 건설 경기가 살아나 올해 대구 월배, 울산 약사 등의 아파트가 초기에 매진되는 등 미분양 아파트가 상당수 해소됐다. 하지만 경기 수원아이파크시티처럼 무리하게 대규모 사업을 진행한 건들은 아직 미분양 상태여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정 회장이 올 들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23년 만에 해외사업을 재개하며 시장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추진된 볼리비아 ‘바네가스 교량 건설사업’과 인도 ‘RNA 메트로폴리스 아파트 신축 공사’를 통해 공사 대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등 해외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우량자산 재투자와 신규사업용지 매입 등을 통해 지난해 1479억원 규모의 연간 영업손실을 3분기 기준 149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바꿔 놓은 상태다. 현대산업개발의 고급 브랜드로 꼽히는 2004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는 정 회장의 첫 작품이다. 외환위기 여파 속에 최고급 아파트에 대한 반대와 우려를 뚫은 역발상이란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은 2001년 현대아파트 브랜드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며 현대그룹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그룹으로 발전시켰다. 1999년 취임 당시 2개에 불과하던 계열사는 현재 26개로 늘어났다. 이 중 주력 계열사는 10개 규모다. 건설 및 유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앤콘스와 아이서비스, 아이콘트롤스, 현대PCE 등과 더불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 회사인 현대EP, 유통 분야의 현대아이파크몰, 호텔을 운영하는 호텔아이파크, 종합음악회사인 영창뮤직, 자산운용회사인 HDC자산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며 독자적으로 그룹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취임 첫해인 1999년 2조 1115억원이던 그룹 전체 매출 규모도 지난해 말 기준 4조 2169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네티즌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네티즌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네티즌도 울었다”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눈물 흘리지 말아요” 하늘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눈물 흘리지 말아요” 하늘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눈물 흘리지 말아요” 하늘도 울었다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가족의 눈물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가족의 눈물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가족의 눈물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 안타까운 추도사

    故신해철 49재,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 안타까운 추도사

    지난 10월 별세한 고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사진=더팩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팬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팬도 울었다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하늘도 팬도 울었다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뜨거운 눈시울’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뜨거운 눈시울’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뜨거운 눈시울’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눈물 바다’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눈물 바다’

    故신해철 49재 故신해철 49재 “아빠 가지마세요” 작별의 시간 ‘눈물 바다’ 지난 10월 별세한 가수 신해철의 49재가 14일 오후 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팬클럽인 ‘철기군’ 주도로 열린 이번 ‘마왕 고(故) 신해철 팬과 함께 하는 49재 추모식’에는 아내 윤원희 씨와 두 자녀 등 유가족과 밴드 넥스트 멤버들, 팬클럽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넥스트 보컬 이현섭의 고인 약력 소개로 시작해 팬 대표의 추모사 낭독, 49재 예식, 헌화식, 추모곡 제창, 추모 풍선 날리기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팬 대표로 추도사를 맡은 홍옥기 씨는 “그와 나눌 이야기와 하고픈 일이 많은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픕니다. 그에게 받은 것들과 빚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어떻게도 갚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곳의 아픔과 무거움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가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의 수많은 음악과 격려의 말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동시간대를 살아가며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어진 49재 예식에선 추도식 내내 의연하게 버티던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예식실 앞에는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팬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예식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팬들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당 앞에 헌화하며 다시 한번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후 추모관 내 하늘중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민물 장어의 꿈’을 합창했다.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곡이다. 이 곡은 추모식 내내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도 울려 퍼졌다. 고인을 기리는 의미로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색깔인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팬들은 ‘신해철 영생목’에 미리 준비한 추모 메시지를 매다는 것으로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49재 절차가 모두 끝나자 윤원희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자녀들도 의젓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팬클럽은 사전 행사로 추모관 본관에 고인의 사진과 과거 어록을 담은 패널을 전시하기도 했다. 실내 납골당에 있는 고인의 유해는 내년 2월 밖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유가족과 팬클럽은 이장지에 고인의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편 고인의 데뷔일인 24일께 그가 생전 써둔 글을 모은 유고집 ‘마왕 신해철’이 발간되는 등 추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고인이 몸담았던 밴드 넥스트의 1~7기 멤버들이 함께하는 추모 콘서트도 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 속의 공신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역사 속의 공신들/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에게는 호양 공주라는 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양 공주가 아끼는 노비 한 명이 공주의 권세를 믿고 살인을 하고서는 공주의 저택에 숨어서 지냈다. 당시 낙양성의 치안을 담당했던 동선(董宣)이라는 관리가 이 노비를 처벌하기 위해서 공주의 대문 앞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공주가 외출할 때 따라 나오는 노비를 붙잡아서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끼는 노비가 죽음을 당하자 호양 공주는 오빠인 광무제에게 동선이라는 관리에게 벌을 주라고 주청했다. 이에 광무제가 동선을 불러 공주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동선은 자신은 사과하지 못하겠고 차라리 죽겠다며 버텼다. 이런 광경을 본 호양 공주는 “당초에 오빠가 황제가 아니었을 때에는 집에다 죄 지은 사람을 숨겨 주어도 관가에서 잡아가지 못했는데 오히려 황제가 되고 나니 오빠의 힘이 줄어든 것 같다”며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그러자 광무제는 웃으면서 “황제가 됐으니 일반 백성 때와 같이 행동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면서 고집쟁이 관리인 동선을 풀어 주고 오히려 상을 주었다고 한다. 오랜 중국의 역사 속에서도 후한의 광무제가 공신들을 가장 잘 관리한 군주로 뽑힌다고 한다. 광무제는 자신을 도와서 후한을 세운 공신들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명예를 주었지만 건국 이후 국정에서는 손을 떼도록 한 것으로 유명한 황제다. 하지만 공신은 아니지만 친인척이었던 호양 공주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신이나 친인척 문제에 대한 광무제의 고심은 역사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보다는 깊었던 것 같다. 광무제가 공명정대함만을 강조하는 황제였다면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노비를 감싸려는 호양 공주를 호되게 혼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광무제는 정직한 관리인 동선을 불러서 호양 공주에게 사과를 하라고 명령하는 일종의 연극을 벌인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황제로서는 자신의 친인척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결국은 정직한 관리를 풀어 줌으로써 친인척도 달래고 국정의 기강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광무제의 고사가 새삼 생각나는 것은 역시 최근 청와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어지러운 뉴스들 때문일 것이다. 광무제의 선조인 한고조 유방을 도와서 중국을 통일한 후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로 돌아간 장량과 같은 공신들만 있다면 황제 노릇하기가 정말로 쉽겠지만,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름 목숨을 걸고 싸워서 정권을 잡은 공신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보상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현실에서는 권한과 자리는 제한돼 있으니 만족할 만한 포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공신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도 흡족한 포상을 받지 못한 공신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공신이지만 평소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옹치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황제가 미워하는 옹치도 상을 받았으니 나도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신들이 믿고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렇듯 공신들의 관리가 어려운 것은 과거의 황제나 현재의 집권자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과거나 현재나 똑같은 사실은 공신들 간의 다툼이 일어나면 그 권력은 곧 멸망한다는 사실이다. 정권을 획득하기 전까지 열심히 노력해 준 공신들은 능력 있는 인물들이겠지만, 정권을 획득하는 능력과 정권을 유지하는 능력은 분명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공신들이 지나친 권력을 휘두른 경우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 많았다. 따라서 공신들은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어느 정도 물러서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일반 국민으로서는 한 정권이 물러나면 다른 정권이 들어오는 것이 섭리이지만, 내부의 문제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공신들과 관련된 문제를 마냥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왕정 시대와 달리 현대 국가의 최고 권력자는 국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공신들의 문제에 대한 답은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故 신해철 유고집, 신해철 수술 S병원→관광호텔로 ‘수술 이후 바뀌나?’

    故 신해철 유고집, 신해철 수술 S병원→관광호텔로 ‘수술 이후 바뀌나?’

    ‘故 신해철 유고집’ 지난 9일 출판사 문학동네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을 오는 24일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출간일은 고인이 지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한 날이다. 이 책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생전 틈틈이 써온 글을 모은 유고집으로 고인의 생전 이야기와 가족사, 음악인생, 세계관 등을 담았다. 한편 고(故) 신해철의 유고집 발간이 예정된 가운데 신해철의 장협착 수술을 진행했던 S병원의 행보가 화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병원 현 주소지인 송파구 가락동 36-1(중대로 191) 외 2필지를 매입한 A씨가 호텔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다만 S병원이 고 신해철 사망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매물로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3년 전부터 꾸준히 매물로 나왔었다가 이번에 시세보다 조금 낮게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故 신해철 유고집 소식에 네티즌들은 “故 신해철 유고집, S병원 최악이야”, “故 신해철 유고집, 발간일 뜻 깊네”, “故 신해철 유고집, 호텔은 뭐지”, “故 신해철 유고집..좋은 곳으로 가셨죠?”, “故 신해철 유고집..그럼 S병원 망한 건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故 신해철 유고집) 뉴스팀 chkim@seoul.co.kr
  • [시론] 성지화 갈등, 주어사의 경우/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시론] 성지화 갈등, 주어사의 경우/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조선 정조대인 1779년 한 무리의 선비들이 관헌의 눈을 피해 경기도 여주의 한 사찰에 모였다. 권철신의 지도로 정약전, 권상학, 이벽 등 남인 시파의 유생들이 서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때 그들이 배운 서학에는 천주교가 포함돼 있었다. 천주교 최초의 강학회를 연 사찰이 여주 주어사(走魚寺)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절에서 강학회를 열었을까. 정황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는 정부가 서학을 금하던 때였으니 외진 사찰이 안전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사찰의 조력을 받기 쉬웠다. 당시만 해도 유생들이 절에 들러 숙식을 하거나 스님들을 산행 길잡이로 세우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어사 측의 협조가 강압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모임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관아의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는 일을, 그것도 비주류 유생들을 위해 위험을 자초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강학회 장소를 잘못 알고 맞은편 천진암으로 찾아간 유생들을 승려들이 산길을 넘어 안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지역 불교계가 대체로 이 불온한(?) 모임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어사가 언제 왜 폐사됐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09년 여주시 발굴 조사 결과 사지에서 발견된 기와 도편 등이 17~18세기 것이었다고 하니 강학회 이후 오래지 않아 폐사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폐사 이유가 어쨌든 주어사가 갖는 의미는 오늘 새겨도 남다르다. 지배 이념인 유교가 변질되고, 당쟁으로 날밤을 지새울 때 권력의 눈을 피해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며 서학을 탐구하던 유림의 아웃사이더들. 그들을 위해 사회적 약자인 사찰과 승려들이 기꺼이 공간을 제공하고 밥을 지어 나르는 광경.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이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한 주어사를 둘러싸고 최근 불교계와 천주교계가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입장에서는 최초로 강학회를 연 이곳을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가꾸고 싶은 마음이 남다를 것이다. 불교계 입장에서도 아름다운 미담을 간직한 주어사지를 본래의 사찰로 복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불교계의 속내로 치자면 인근의 천진암 복원 과정에서 천주교 측에 의해 몇 곳의 사지가 멸실된 경험이 있어 정서적 반발도 깔려 있다. 두 종교가 주어사 복원을 놓고 점유권을 고집한다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200년 전 아름다운 역사 전통을 꽃피웠던 그곳이 종교 간 갈등의 장소가 된다면 이는 두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흐름을 우려하면서 종교평화적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지난달 말 열렸다. ‘붓다로 살자’라는 불교 모임이 주관했는데, 그 자리에는 한 가톨릭 언론사 대표도 나와 주어사지를 종교평화의 공간으로 복원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마침 주어사지는 현재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지이니 두 종교가 제 입장만을 고집할 처지도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시민의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주어사에 이르는 7.5㎞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오솔길이라 한다. 그 길도 시민들이 옛 선조들의 미담을 나누며 걸을 수 있도록 잘 보존되면 좋겠다. 지금 우리 종교계에 부족한 것은 사찰, 성당, 교회와 같은 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주어사와 같은 시대정신, 아름다운 전통의 부재가 더 문제다. 주어사 문제를 풀기 위해 불교와 가톨릭 두 종교가 빨리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최근 논란이 일기 시작한 서소문공원 성지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황사영 등 구한말 천주교인들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500여억원을 들여 순교기념관과 성당 등을 세우는 이 사업은 서소문이 갖는 역사적 상징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서소문 일대는 비단 천주교인들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조선 대표의 충신 성삼문, 개혁가 허균, 동학 지도자 최시형,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됐고, 일제강점기 서대문 감옥이 있던 곳이다. 무리한 사업 추진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의 실마리가 주어사 문제에서부터 풀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 故 신해철 유고집, 어떤 내용 담겼나?

    故 신해철 유고집, 어떤 내용 담겼나?

    ‘故 신해철 유고집’ 지난 9일 출판사 문학동네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을 오는 24일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출간일은 고인이 지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한 날이다. 이 책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생전 틈틈이 써온 글을 모은 유고집으로 고인의 생전 이야기와 가족사, 음악인생, 세계관 등을 담았다. 한편 고(故) 신해철의 유고집 발간이 예정된 가운데 신해철의 장협착 수술을 진행했던 S병원의 행보가 화제다.뉴스팀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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