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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프랑스 영화 ‘제8요일’에서 다운증후군을 앓던 주인공 조르주는 마침내 날개를 달고 뛰어내려 ‘천사의 죽음’을 택한다. 그임죽음이 자신의 의지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정신박약의 일종인 다운증후군은 우리나라에도 흔한 질병이다. 실눈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지고, 코는 납작하며, 입이 작고 혀가 입 밖으로 비죽이 밀려나오는 특징을 보인다. 또 머리가 납작하고, 눈과 눈 사이가 멀며, 짧은 손가락은 안으로 자꾸 말린다. 경희의료원 성형외과 양원용(대한성형외과학회 차기회장) 교수는 지능장애 때문에 흔히 백치로도 불리는 이런 다운증후군의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평균 지능지수가 50 안팎으로, 침착성이 없고, 호기심이 강하며, 아무나 잘 따릅니다. 또 엉뚱한 흉내와 농담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선천성 심장판막증과 발육장애 등 매우 특이한 용모와 증상을 가진 질환입니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으나 일반적인 유병률은 신생아 600∼700명당 한 명꼴로 태어난다. 주로 고령(35세 이상)의 초산부에게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 서양에서는 이 병을 가진 아이의 눈꼬리가 몽골인과 닮았다고 해서 ‘몽고증’이라고도 부른다. 양 교수는 최근의 고령임신 경향으로 다운증후군 유병률이 높아질 것을 경계한다.“신생아 700명당 1명꼴로 태어나므로 정상인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산모가 고령일수록 이런 아기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며, 남성의 나이가 50을 넘어서 아이를 가질 경우에도 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젊은 임신부가 늘고 있어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원인은 염색체 이상이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정상인보다 1개가 많은 47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유전질환으로, 어머니가 관련 인자를 가진 경우에는 15%, 아버지가 가진 경우에는 4% 확률로 나타나며 특히 어머니의 21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는 100%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아이가 47개의 염색체를 가졌다면 그 다음 아기도 1%의 확률로 이 병을 갖게 되며, 염색체 수는 정상이나 위치가 바뀐 전위의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8%로 높아집니다.” 따라서 임신부는 적극적으로 태아 염색체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염색체 전위라면 부부가 지체없이 염색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모든 임신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진단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혈청검사, 초음파검사와 융모막검사로 임신 12주 이내에 얼마든지 진단이 가능합니다.” 양 교수는 다운증후군이 다른 선천성 기형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은데도 이들에 대한 교육 및 재활시설이 태부족한 현실을 개탄했다.“그뿐이 아닙니다. 사회적 인식과 이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이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과 클 수밖에 없지요.” 선천성 질환이어서 치료는 환자가 갖고 태어난 신체적 증상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안면 성형이나 혀 절제술 등이 그것이다. 제한적이지만 이런 치료를 통해 환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복귀와 정상적인 생활을 돕는다. 큰 혀를 항상 내밀고 생활하는 경우에는 혀의 일부를 절제함으로써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한다. 혀를 내민 환자는 대부분 공명장애 때문에 발음이 어눌하며, 편도선과 아데노이드 염증질환이 잦고, 심하게 코를 골기도 한다. 또 충치가 심하고 턱이 불균형성장을 하게 되는데,3∼4세 무렵에 혀 절제술을 시향하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안면 성형은 다양하게 이뤄진다. 발육 부진으로 코가 납작한 환자는 양 눈 사이가 더 멀어보이고 눈 안쪽에 주름이 잡히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코뿌리를 높여 해결한다. 또 눈썹이 안쪽으로 나 각막을 찌르거나 발육 부진으로 광대뼈가 평평한 경우, 목에 지나치게 많은 지방이 축적된 경우, 변형된 귀와 힘없이 처진 아랫입술도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물론 이전 특성을 가졌다고 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술 기술이 발전해 흉터 등의 부담이 없을뿐더러 환자의 용모나 인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 이상으로 큽니다. 그러나 지능이 너무 낮아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환자라면 수술을 받아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수술이 무의미할 정도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없지 않고요.” 수술 시기는 일반적으로 취학 전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혀 절제술은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인 3∼4세 무렵에 해주는 게 좋다.“적기에 수술을 하면 환자가 자신의 용모나 신체 기능에 자신을 가져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연령대를 지나친 환자의 수술 치료가 어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제든 환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수술치료가 가능하지요.” 아직 정책적 지원이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얼마 전 혀 절제술이 보험 대상이라는 판례가 나왔다. 이에 따라 혀 절제술 환자는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심장재단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수술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양 교수는 이런 당부로 말을 맺었다.“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다운증후군 아동들의 사회 적응력이 가장 높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운증후군 아동들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떳떳이 자립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따뜻해야 하고,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영화단신] 네티비티 스토리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낳으시고….’ 예수의 신비로운 탄생을 말해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후 자신의 자식이 아닌 아이를 가진 마리아의 결백을 믿었고, 그 결과 아기 예수는 축복 속에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이 정도는 성경에도 나와 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오는 21일 개봉하는 ‘네티비티 스토리-위대한 탄생’은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그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알맞은 영화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아기 예수를 세상에 내어 놓기까지 평범한 부부 요셉과 마리아가 겪었을 심리적·육체적 역경을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처녀가 부정한 방법으로 임신했다는 의심을 사는 마리아의 불안, 율법대로 그녀를 돌로 쳐죽이라는 압력을 받는 요셉의 고뇌,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삶의 터전을 떠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사연 등을 촘촘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영화는 위대한 탄생에 따르는 진통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가는 부부의 힘겨운 여정을 보여주는 데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고난의 행군을 끝내기까지 강물에 빠지고 사막의 모래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부르트고 갈라진 요셉의 발바닥은 마리아와 아기를 지켜낸 그의 헌신과 믿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우여곡절 끝에 베들레헴에 당도하지만 발 뻗고 누울 자리도 찾기 전에 마리아의 진통이 시작된다. 동굴 같은 마구간을 겨우 찾아 3000년 만에 3개의 별이 하나로 모인 그 순간 아기 예수가 태어난다.“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오셨도다.” 동방박사 3인을 비롯해 메시아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마리아를 연기한 케이샤 캐슬휴즈는 다른 마리아를 생각할 수 없도록 한다. 성서를 바탕으로 나사렛 마을을 고증해 내고 모로코와 사하라 사막까지 거치면서 역사적 현장을 완벽히 재현, 마치 성지순례를 떠나는 감동까지 전해준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9)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

    [프렌치 리포트] (9)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

    지난봄 제5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프랑스의 신문과 잡지는 미국의 여류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의 인터뷰 기사로 도배했고, 방송에서는 연일 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평가들로부터는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혹평을 들었지만 프랑스 사회에 앙투아네트 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앙투아네트가 7세 때 입었다는 옷을 본뜬 의상을 판매하는가 하면, 유명 제과점에서는 앙투아네트 초콜릿을 선보였다. 한 레스토랑에서는 앙투아네트가 즐겨 먹었던 요리들을 중심으로 특별 메뉴를 내놓았다. 최근 프랑스의 향수전문가 프란시스 커크지앙은 정밀한 고증을 통해 앙투아네트가 사용했던 향수를 재현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지 2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이 이처럼 앙투아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양왕’이 다스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왕녀로 14세에 프랑스 부르봉가의 루이 16세와 결혼, 베르사유에 입궁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화려한 궁중생활을 즐기다 프랑스혁명 세력에 의해 남편과 함께 처형됐다.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철이 없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요즘의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다. 프랑스의 장식예술 수준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그의 세련된 취향과 미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앙투아네트의 뛰어난 안목 없이는 궁전 구석구석을 그렇게 아름답게 꾸밀 수 없는 법”이라며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앙투아네트를 치켜세우는 배경에는 그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태양왕’ 루이 14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강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베르사유궁은 1682년부터 1789년 혁명 때까지 100여년간 왕권의 중심지이자 정치·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사냥터까지 갖춘 엄청난 규모의 숲과 아름다운 정원, 최고의 건축가가 지은 화려한 궁전은 “짐은 곧 국가”라고 한 루이 14세가 확립한 절대왕권의 상징이었다. 5세에 왕위에 오른 뒤 섭정을 포함해 무려 72년을 통치한 루이 14세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던 낭트칙령을 철회하는가 하면, 너무 많은 전쟁으로 재정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태양왕의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최강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재무대신 콜베르는 사법과 재정을 개혁하고 상업과 무역을 적극 장려했다. 군사대신 루부아가 있었기에 적들이 감히 넘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외진출도 확대됐다. 라살이 미국 대륙에 루이지애나를 건설한 것도 이 즈음이다. 프랑스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나폴레옹은 국민적 영웅” 융성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나폴레옹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르시카의 가난한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반왕당파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공로로 장군이 된다.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혁혁한 승리를 거둔 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공화정을 철폐하고 1804년 12월2일엔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갖고 나폴레옹 1세로 등극했다. 2004년은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200년이 되는 해였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대관식 200주년을 기념해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관식’ 그림과 관련한 각종 기록화를 전시하는 등 다양한 전시회와 토론회가 1년 내내 계속됐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영달을 위해 혁명정신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프랑스인들은 그가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에 더욱 감동한다. 나폴레옹이 민중혁명 세력을 누르고 프랑스의 영광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검열과 사찰에 의존하는 극도의 권위주의 체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신 프랑스의 행정체제를 개편해 중앙집권적인 현대 프랑스의 기틀을 다진 점을 높이 평가한다. 르피가로가 발행하는 피가로 매거진이 프랑스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나폴레옹이 ‘시대를 앞서가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았던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정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재자라고 평가한 사람은 39%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52∼1870년 재위)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구가했으며 서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에 식민지를 건설, 프랑스를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현재의 파리도 이때 완성됐다. ●그리워라 옛날이여! 대혁명을 통해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나라가 프랑스다. 권위주의라면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자유를 중시하는 그들이 절대왕정 시대와 권위주의 시대의 인물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프랑스인들이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향수)를 갖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같은 프랑스인들의 과거 지향성은 사회적·경제적 악재들이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의 파리 교외지역 소요사태와 올봄 학생들의 시위 등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고 경제는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건만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그리워할밖에.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마리 앙트와네트 향수 200년만에 판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로 대혁명 당시 참수된 마리 앙트와네트(1755∼1793)가 사용했던 향수가 판매된다. 정밀 고증을 통해 200여년 만에 부활한 앙트와네트의 향수가 수많은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는 12일 ‘M A 시야주드라렌(왕비의 여운)’이라는 이름의 앙트와네트 향수 25㎖가 350유로(약 42만원)에 판매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향수 전문가인 프란시스 커크지앙이 18세 전통방식으로 개발한 이 향수는 한정품으로 주문 제작되며 일반 상점에서는 살 수 없다. 이 향수는 장미와 아이리스, 자스민 등 100% 식물 원료가 사용됐고 왕비의 향수 제작자인 장 루이 파게옹의 제조비법이 발견되면서 복원됐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대조영’ 날개 달았다

    ‘대조영’ 날개 달았다

    “보다 사실적이고 풍성한 볼거리를 대조영이 보여드립니다.” 사극의 열풍을 타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KBS 1TV 대하드라마 ‘대조영’이 날개를 달았다. 다름이 아닌 지난달 29일 야외 오픈세트장인 설악씨네라마가 완성돼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당나라에서 유민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인 발해를 건국하는 것이 대조영의 하이라이트. 그래서 이번에 오픈한 대조영의 세트장인 속초 설악씨네라마가 더욱 기대된다. 당나라의 ‘황궁’ ‘취성루’ 등을 그대로 옮겨놓은 세트장에서 대조영이 큰 뜻을 품고 발해 건국을 실천에 옮기는 곳이다. 대조영의 김종선 PD는 “지금껏 당나라를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세트장이 완성돼 보다 사실적이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원도 속초시 및 고성군에 위치한 ‘대조영’ 야외 오픈세트장, 설악씨네라마는 6개월간의 공사기간과 70억원의 제작비용을 들여 건립했다. 민간기업인 한화국토개발의 지원으로 약 2만 7000여평의 부지에 고구려와 당나라 시대의 고건축물 120여동을 건립했다.18m 높이의 당나라 황궁, 중국 4대정원의 하나인 졸정원을 모델로 한 측천무후 후원, 당나라 전통주거지인 사합원, 실물크기의 광개토대왕비, 고구려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고구려 관아와 민가들, 그리고 멸망한 고구려의 부흥을 도모했던 고구려부흥 운동지 등 역사적 고증을 거친 사실적인 세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대조영’ 세트장은 단순히 드라마 촬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고구려 군사들의 무예시범과 성문파수병의 교대의식, 왕의 화려한 궁중행렬, 왕실의 궁중혼례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속초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올바른 리더가 조직의 성공을 일궈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인(CEO)의 자질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마을이나 지역의 발전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개인의 발전을 지역의 발전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한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의좋은 마을’ 이복현씨 예로부터 시골에서 양조장이나 정미소, 제재소를 갖고 있으면 ‘3대 부자’로 통했다. 그 자제들은 아쉬울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어 보였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상중리 ‘의좋은 마을’ 이복현(53)씨도 인근 광시중학교의 어엿한 교감 선생님이지만, 동네에서는 양조장집 둘째 아들로 더 잘 불린다. 이씨는 ‘있는 집안’의 거드름 피우는 아들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양조장집 둘째아들’ 별명은 ‘회장님’ 추수가 끝난 가을 밤, 형제가 서로의 빠듯한 살림을 걱정해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는 중간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일화는 1956∼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담으로 여겨졌던 이 이야기가 고려 말 실화라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대흥현 보존회’ 주도로 고증을 거쳐 밝혀졌다. 이씨는 보존회 회장이다. 그는 “형님이 일 때문에 타지로 이사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마을에 보존돼 있던 비석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마을의 역사 복원에 관심을 갖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흥현은 대흥면의 조선시대 명칭이다.1914년 대흥군이 예산군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군소재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때문에 면 단위 지역으로는 드물게 초·중·고교가 지금도 위치해 있다. 하지만 1964년 마을 앞에 예당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당저수지는 330만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농지가 물에 잠겨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씨는 “저수지가 들어선 이후 마을 규모가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 만큼 상전벽해를 실감한 곳”이라면서 “생산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을을 되살릴 길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 보존회는 매년 11월 ‘의좋은 형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마을 인근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나팔형 동기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다. 이씨는 현재 대흥동헌과 대흥향교 등을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창건된 대흥동헌은 2002년 지방문화재로 등록됐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존성 복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노력을 인정해 주셨는지, 지금은 주민 모두가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한 상황”이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하나 뿐인 아들이 ‘고향 지킴이’가 되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예산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문산·동곡마을’ 주형로씨 요즘같은 세상에 자식에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라고 권하는 부모가 있다면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문산·동곡마을 주형로(48)씨는 예외다. 아들 이름을 농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바람인 ‘하늬’로 할 만큼 농촌 사랑이 자식 사랑 못지 않다. 주씨는 “농촌이 발전하려면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 대를 이어 꿈을 일궈나가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촉망받던 배구선수에서 싹수있는 농사꾼으로 주씨는 풀무농고(현 풀무학교) 재학 당시인 1977년 문당리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오리농법을 시도했다. 지금은 문당리 일대 250만평의 농지에서 친환경 농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일반쌀 80㎏ 한가마당 16만원 정도지만, 이곳 쌀은 26만원선에 거래가 이뤄진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도 연간 2만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주씨는 모든 공을 스승인 홍순명 전 풀무농고 교장에게 넘긴다. 주씨는 “중학교 때까지 배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성장이 멈춰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 풀무농고에 진학했다.”면서 “6개국어가 가능했던 홍 전 교장 선생님이 농사와 관련된 각종 외국서적을 끊임없이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특히 주씨는 2000년에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을 세웠다. 문당리는 지금도 모든 일을 계획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계획 수립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업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홍성 환경농업마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정미소·황토방·농촌생활유물관 등을 공동 운영해 이윤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은 물론, 지역교육사업과 친환경농업 보급 등 비영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마을 공동기금만 15억원에 이른다. 주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을 단위 발전계획이 전무하다시피하고, 공동체운동이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활 나온 여대생, 문당리 총각에 빠지다 최근 10년간 문당리를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오히려 같은 기간 10여가구가 이주해 왔다. 농촌 총각들의 결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 총각들은 농활 나온 여대생들과 결혼한 커플만 지금까지 10여쌍에 이른다. 주씨는 현재 노령층과 젊은층이 공존할 수 있는 농촌형 주거공간인 ‘희망나눔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친환경농업과 자연순환을 통해 자립하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이루려면 지도자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지금은 3대가 살고 있지만, 대학생 아들이 돌아오면 4대가 함께 살 것”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홍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풀꽃이랑마을’ 외지출신 주민 3총사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나을 수 있다.’ 마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토박이만이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내기로 간주되는 이주민들이 변화를 몰고 오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고성리 풀꽃이랑마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풀꽃이랑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주민이래봐야 70가구 150명이 고작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안 밤’의 산지이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밤 이외에 소득기반도 신통한 게 없다. 국유림과 고성저수지 등에 대한 환경훼손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됐기 때문이다.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주민이 하나둘씩 늘어난 90년대 말부터다.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서명석(65)씨는 1999년 퇴직 후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최인규(63)씨와 화가인 임성복(64)씨 등도 2000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씨는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동네라, 모든 게 악조건으로 간주됐다.”면서 “하지만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장점을 살려보고자 힘을 모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우선 마을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마을 명칭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팜스테이와 산촌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주민 모두가 팜스테이 운영회원으로 가입할 만큼 원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최씨는 “시골에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가 없다는 의미”라면서 “악조건, 호조건을 논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55년동안 쓴 일기장 박물관 기증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한약방을 하는 박래욱(68)씨가 55년 동안 쓴 일기장 98권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1950년부터 2005년까지 기록한 박씨의 일기는 1997년 한국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1961년부터 2003년까지 금전출납부 10권,1971년부터 2001년까지 한약처방전 16권과 도민증, 국민병역신고증, 인감증명원 등 산업화에 따른 사회격변 속에서 쓰여진 갖가지 자료를 함께 기증했다. 193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일기를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그는 1971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하고 한약방을 열었다. 그의 일기에는 12살 소년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가 나온다.1950년 8월25일 금요일에는 “분주소에서 유격대라는 사람들이 왔다. 반동분자의(박씨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가산을 몰수하여 위대한 수령 동지의 사업에 써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가산을 몰수해 갔는데 그때는 식량만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옷과 살림살이 일체를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박씨의 일기에는 당시의 물가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1956년 당시 물가는 돼지고기 반근 100환, 목욕 50환, 이발비 60환, 영화관람료 30환, 필름 400환, 버스요금 10환, 신문대금 300환, 혈액검사 40환, 성냥 10환, 학생배지 60환 등이었다.400환짜리 필름값이 돼지고기 한 근의 두 배나 되는 등 공산품이 농·축산품보다 훨씬 비쌌음을 알 수 있다.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4일 “우리 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자료가 바로 20세기 것”이라면서 “박씨의 기증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공룡 탄생~전성기~멸종 디지털로 재현

    나이 5∼6살 남자 아이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마 ‘공룡’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공룡의 탄생부터 멸망까지를 자세하게 다룬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케이블·위성TV Q채널은 2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제작한 ‘공룡대탐험’ 4부작을 방영한다. 저녁 시간이라 아이들이 보기 힘들다면 녹화를 했다가 보여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무려 1억 6000만년 동안이나 지구상의 주인공으로 군림했던 공룡의 탄생에서 멸종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구상에 살았던 각종 동식물들의 생태계와 더불어 공룡이 지배하던 당시의 모습을 살아 있는 영상으로 전한다. 공룡 전문가의 정확한 고증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탄생한 공룡들의 모습이 다이내믹한 볼거리로 제공된다. 총 4부작으로 1부는 공룡이 지구상에 어떻게 탄생하였고, 어떻게 그들의 시대를 열었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생명과 공룡의 전성기’,2부는 바다와 하늘을 다스린 공룡들을 그린 ‘잔인한 바다’,3부는 지구가 겪은 환경의 변화에 처한 공룡의 이야기를 그린 ‘얼음 숲의 영혼’,4부는 엄청난 화산폭발과 갑작스러운 혜성 충돌을 겪은 ‘공룡 왕국의 최후’로 나뉘어 방송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특집 Travel] 가을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만추 서정

    [특집 Travel] 가을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만추 서정

    가을이 깊어갈수록 술 취한 새우와 전어 굽는 냄새로 서해안 일대가 고소하다. 영양 많은 굴밥과 알이 꽉 찬 꽃게 등 푸짐한 먹거리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서해안을 비롯해 산 능선 전체가 억새꽃으로 뒤덮이는 명성산 억새꽃 축제는 가을 풍경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이 무렵 황금비 날리는 수묵빛 추사 고택은 만추(晩秋)란 바로 이런 모습임을 절감케 하는 풍경이다. 아름답지만 그만큼 짧은, 눈부신 만추 풍경 세 곳을 추천한다. ★ 추천 1 : 술 취한 새우, 가을전어… 맛있게 익는다 서해안 일대가 맛있게 익어 가는 계절이다. 고소하기가 ‘깨가 서 말’이라는 가을 전어가 쏟아져 나오고, 펄펄 살아 뛰는 대하 꼬리에 힘이 넘친다. 알이 꽉 찬 서산 꽃게와 곰삭은 젓갈, 고소한 조선김 등 갖가지 향토 미각이 줄을 잇는다. 푸짐한 먹거리 외에도 이맘때 서해안 나들이는 어느 곳보다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안면도와 태안반도 일대며 천수만의 낙조,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무창포와 대천 앞바다가 한 걸음에 닿는다. 전어는 특히 가을 생선을 대표한다.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이때 지방 함량이 3배쯤 높아지면서 고소한 맛이 돌기 시작한다. 뼈째 숭덩숭덩 썰어먹는 전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하다. 오죽하면 ‘가을전어 대가리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전어는 너무 작으면 씹는 맛이 없고, 너무 크면 뼈가 억세서 회로 먹기에 거칠다. 또한 갓 잡은 펄펄 뛰는 신선한 전어일수록 그 맛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하지만 전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잡혀 육지로 올라오자마자 죽어버린다. 서해안 일대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전어는 적어도 신선도에 있어서는 으뜸인 셈이다. 대하는 매년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가 제철이다. 물이 차가워지면 더 이상 양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무렵 서해안 곳곳에는 일제히 대하 굽는 냄새로 가득하다. 조리방법도 가지가지. 강화도와 대부도, 제부도 등지에서는 청주를 살짝 뿌려 굽는’술 취한 대하구이’를 선보이는가 하면 홍성, 보령 일대에서는 왕소금을 뿌려 빨갛게 구워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펄펄 살아 뛰는’ 대하를 구워낼 때면 뜨거운 불판 위에서 튀어 오르는 새우를 막기 위해 뚜껑을 덮는다. 솥 안에 갇힌 새우가 뚜껑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콩 볶듯 요란하다. 이 일대 주변 포장마차 쪽으로 슬쩍 눈을 돌리면 구이법이 또 다르다. 화덕에 알루미늄 포일을 깐 뒤 여기에다 굵은 소금을 뿌려 그 위에다 대하를 구워 먹는다. 그 모습이 더욱 군침을 돌게 한다. 양식대하는 어린아이 팔뚝만한 크기도 있다. 11월 중순을 넘기면 산 새우를 만나기 어렵고 급속 냉동시킨 대하가 기다린다. 굴 단지가 있는 천북면으로 방향을 틀면 향긋하고 고소한 ‘굴밥’이 기다린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보령시 천북면 앞바다에서 채취되는 굴은 성장은 느리지만 맛과 영양 면에서는 탁월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광천읍의 그 유명한 토굴새우젓과 조선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광천은 한때 각종 고기잡이배들이 몰려드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 집산지였다. 그러나 60년대부터 대천항 등 해안과 가까운 항구에 물동량을 빼앗긴 뒤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다가 옛 폐광 속에서 100여 일간 발효, 숙성시킨 토굴새우젓을 개발해 그 명성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 추천하는 맛있는 새우젓은 약간 붉은 색을 띠어야 하며 껍질이 얇고 속살이 있는 것이라고. 멸치액젓은 붉은 포도주 빛깔과 투명성, 구수한 향을 두루 갖추어야 최상품이다. 황석어젓은 색깔이 노랗고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 맛있는 집| 천북면 하만리에 있는 가든단호박(041-641-3072)은 인근에서 소문난 굴밥집이다. 굴과 콩나물을 실하게 넣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오색채(신김치, 도라지, 시금치, 호박, 당근)에 참기름, 김가루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한 달래간장으로 비빈 굴밥은 향긋한 굴 향이 그대로 살아나는 별미다. 거기에 시원하고 담백한 바지락 국물을 곁들이면 금세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 가는 요령|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마음 내키는 곳 어느 곳에서든 빠져나가면 서해안 별미와 만날 수 있다.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지방도 622번을 타면 대하구이로 유명한 남당리에 이른다. 또 이곳에서 안면도로 방향을 잡기에도 좋다. 광천 인터체인지를 이용할 경우 광천 읍내 토굴젓갈 기행과 천북면 굴단지를 찾아가는 데 수월하다. 굴밥집 ‘가든단호박’은 광천 인터체인지에서 벗어나 광천 읍내와 반대쪽인 천북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천북지서 지나 3km 남짓 더 가면 오른쪽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 추천 2 : 황홀한 억새꽃 축제와 평강식물원 구름 위를 걷는 것일까, 은빛 융단을 밟고 있는 것일까?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에 걸쳐져 있는 명성산(922.6m)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6만여 평의 드넓은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은빛 억새밭은 황홀하고도 눈부시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곳은,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등산과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전국 5대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명성산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은빛 억새밭의 장관이 말문을 막는다. 특히 산 아래 산정호수의 잔잔한 물빛과 드넓게 펼쳐진 은빛 억새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바람이 불 때면 마치 산이 살아 움직이듯 넘실거리는 은빛 물결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매년 가을이면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축제는 오는 10월 12일(목)~15일(목)까지 4일간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에 명성산 등반대회를 비롯해 산정호수 상동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초청 공연과 풍물놀이, 난타 등 다양한 문화 공연들이 관광객들의 흥을 돕는다. 이곳에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가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동양 최대 생태식물원인 평강식물원이 바로 그곳. 꽃보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평강식물원의 가을은 가슴 저 밑바닥으로 번져오는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포천시 영북면 우물목 마을에 위치한 평강식물원은 18만 평의 공간에 4,5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7년 동안 준비한 정성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곳은 철저하게 식물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식물원이다. 식물들에게 그들의 고향을 찾아준 셈이다. 평강식물원은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도 고향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준다. 해발 300m의 고원 분지인 공간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12개의 테마 가든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며 멋을 간직하고 있다. 고지대 습한 땅에서 자라는 희귀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고층습지와 세계 각처의 진기한 습지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산습원이 있다.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뛰놀던 뒷동산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들꽃동산은 야생화들이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켜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위와 돌 틈을 뚫고 자라나는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암석원은 백두산, 한라산, 로키산맥, 히말라야, 알프스 지역에서 자생하는 희귀고산식물을 모두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연못을 조성해 물에서 피는 수생식물과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정원은 한동안 발걸음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문의 031-531-7751) * 맛있는 집| 억새꽃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포천 특산물과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웰빙 먹거리촌이 형성된다. 평소에도 산정호수 주변, 이동의 갈비촌, 파주골 순두부촌, 신북 오리촌 등등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일 만큼 소문난 별미가 줄을 잇는 곳이다. 평강식물원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 ‘엘름’에서는 식물원에서 재배한 채소를 사용해 약선 비빔밥과 산채육개장, 평강약계탕 등 몸에 좋은 약선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급요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요리들은 일류 호텔 출신 주방장이 직접 개발해 찾는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가는 요령| 동부간선도로가 가까운 경우 의정부 방향으로 진입하고, 장흥이 가깝다면 동두천 방향에서 진입하는 게 빠르다. 의정부에서 국도 43번을 타고 포천, 철원 방향으로 향하다가 성동 삼거리에서 직진해 운천 제1교차로→문암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한화콘도를 지나 산정호수 매표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정수식당이 보인다. 식당을 끼고 우회전해 조금 가면 평강식물원 주차장이다. 혹은 성동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거나 국도 47번을 타고 수입교차로에서 산정호수 방향으로 접어든다. 산정호수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으로는 명성산,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평강식물원이다. ★ 추천 3 : 묵향 가득한 추사 고택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우수수 비처럼 날린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위치한 추사 고택은 온통 가을 속에 서 있다. 수묵빛 고택과 어우러진 황홀한 가을빛은 잘 그린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황금비를 내리는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 토담 아래로 수북수북 쌓인 낙엽들, 뒤뜰 감나무엔 주홍빛 감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매달렸다. 만추란 바로 이런 모습임을 절감케 하는 풍경이다. 조선조 헌종 때의 문신이었던 김정희(1786~1856)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전개했던 선각자로 벼슬이 대사성,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다. 고증학 금석학에 밝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서법의 대가이다. 추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진이 건립한 것으로, 18세기 중엽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동안 추사의 후손이 거처했으나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되는 것을 충청남도에서 매수했다. 76년 1월 9일 지방문화재 제43호로 지정하고 그해 9월 유적정화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택은 모두 80.5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간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넛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넛방의 부엌,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입구(口)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넛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장은 다락으로 되었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간으로 그리 흔하지 않는 규모이다. 이런 입구(口)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특히 바깥 솟을대문을 지나 자리잡은 ‘ㄱ’자형 사랑채에는 추사 선생의 유품이 남아 있어 당대의 명필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었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세워져 있는데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했던 해시계이다. 옛 대갓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추사 고택 외에도 이곳에는 추사묘, 추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묘,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예산의 백송’과 추사가 수도했던 절 화암사가 근처에 있다. 화암사에는 추사의 친필 편액이 남아 있다. 추사의 묘는 고택 남쪽에 잘 가꿔져 있다. 근처에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2녀)의 묘와 열녀문도 있다. 화순옹주 열녀문인 홍문에서 북쪽으로 400m 가면 영의정을 지낸 고조부 김흥경의 무덤과 그 앞에 보물 제106호로 지정된 희귀종 백송이 서 있다. 백송은 중국 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곳의 백송은 추사 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 맛있는 집| 예산 읍내로 나가면 별미집이 기다리고 있다. 50여 년 동안 갈비를 구워온 유명한 소복갈비집(041-335-2401)이 바로 그곳. 여느 갈비집과 달리 큰 석쇠에 갈비를 통째로 얹어 구운 후 뜨겁게 달군 돌판에 담아 먹는 집이다. 50년 농익은 손맛이 색다른 갈비 맛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산 생굴을 국물과 조리한 굴탕을 자랑한다. * 가는 요령| ①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해미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국도 45번을 타고 예산읍으로 향한다. 예산읍에서 21번 국도(외곽도로)를 타고 구충방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32번 국도(합덕 방면)-고택주유소를 지나서 좌회전하면 추사 고택 주차장이다. ② 경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우회도로를 타고 온양 → 국도 21번을 타고 17km 가면 신례원역 앞 삼거리. 우회전해 국도 32번으로 옮겨 타고 두곡리 삼거리까지 가면 왼쪽으로 추사 고택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얼마쯤 들어가면 추사 고택 주차장이다. 글 사진 김혜숙 여행 칼럼니스트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충신 몇분의 위패 모셔져 있을까

    동작구는 ‘충절의 고장’이다. 충절의 고장으로 꼽히는 데에는 사육신공원이 큰 기여를 했다. 사육신공원은 한강대교와 노량진역 사이 노량진1동에 위치해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사육신묘 일대 4만 9000여㎢를 성역으로 가꿔 놓은 공원이다. 갖가지 꽃과 녹음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동작구의 명소다. 하지만 사육신공원의 의미를 잘 알고 찾는지 궁금하다. 사육신 공원에는 과연 충신 몇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을까. 학생들이나 주민에게 물어보면 쉽게 여섯 분이라고 답하며 충신들의 이름을 댄다. 결론은 여섯 분이 아니라 모두 일곱 분이다. 우리가 사육신으로 알고 있는 분은 조선 세조2년(1456년)에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다 순절한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선생 등 여섯 분이다. 일곱 번째는 김문기 선생인데, 당시 거사를 모의할 때 군중동원의 중임을 맡았다가 처형됐다. 사육신묘 조성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원래 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 선생만 모셨지만,1977년 서울시가 묘역을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김문기 선생의 묘가 추가됐다. 이 때 서울시는 문교부에 ‘김문기 선생의 사육신묘역봉안여부’를 고증, 확인을 요청했고, 문교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조사와 고증을 거쳐 사육신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상의 사육신과 남효온 선생이 쓴 육신전의 사육신 모두를 모시게 돼 일곱 충신의 묘가 봉안된 것이다. 사육신공원에서는 매년 10월9일 (사)사육신헌창회 주관으로 추모향제를 연다. 동시에 동작문화원 주관으로 사육신 추모문화제를 개최, 구민들에게 충효 고장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얼이 서린 사육신공원이 이제 구민 곁으로 좀 더 다가가게 된다. 공원의 3분의 1에 달했던 노량진배수지를 철거하고 내년 말까지 구민생활공간으로 조성한다. 사계절 초화원, 잔디스탠드 등의 편의시설과 녹지공간을 마련, 구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게 된다. 동작구 문화공보과 김상배 과장
  •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지금 구리에선] ‘고구려 프로젝트’ 재점화…中 동북공정 맞선다

    ‘고구려 프로젝트로 동북공정(東北工程) 파고를 넘는다.’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좁은 땅(33.3㎢), 주민 19만여명에 불과한 경기도 구리시가 동북아의 대제국이던 ‘고구려의 기상’을 테마로 대규모 역사복원과 개발계획을 동시에 추진중이어서 주목된다.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55호)인 관내 아차산 보루군(堡壘群) 정비·복원과 20만평에 이를 역사테마 유적공원인 ‘고구려 역사도시’ 조성계획이 그 핵심사업이다. 구리시의 ‘고구려 프로젝트’는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의 고대사를 삼키려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다는 명분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생산시설도, 가용할 땅도 거의 없는 구리시에 연간 수백억원의 재정수입을 가져올 실익도 기대하고 있다. ●토기등 1500여점의 유물 출토 구리시는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승인한 ‘아차산일대 보루군 종합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114억원을 들여 관내 아차산 1∼5보루와 시루봉·망우산1·용마산5보루 등 8개 보루의 정비와 복원사업을 편다. 아차산 일원엔 서울 관내에 용마산 6곳, 홍련봉 2곳, 망우산 3곳의 보루가 더 있다. 아차산은 지난 1994∼95년 역사문화유산 지표조사가 실시돼 구전으로 내려온 고구려 보루유적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다. 서울대박물관이 2000년까지 발굴작업을 벌여 보루의 성벽유적 등과 함께 총 1500여점에 이르는 철제·토기로 된 항아리·접시·무기·마구와 농기계·생활용품 등을 찾아냈다. 발굴 유물의 규모는 그때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적·유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시내 곳곳에 고구려 정취 지난 94∼95년 관선시장을 거쳐 98년 민선시장에 당선된 현 박영순 시장은 구리시를 ‘고구려 역사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일련의 캠페인과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2000년 밀레니엄 행사에 맞춰 시청 정문앞에 대형 북을 만들어 고구려 고각(鼓閣)을 세웠고, 시의 관문인 토평대교에 고구려 투구 모양의 대형 아치조형물을 설치했다. 교문2동 장자대로 변에는 광개토대왕 대형동상을 세웠고, 아파트 외벽을 중국 지린성(吉林省)과 평양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사업도 폈다. 시 청사엔 현재도 ‘고구려의 기상, 대한민국 구리시’란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아차산에서 숨진 온달장군을 추모하는 이벤트도 연례적으로 열었다. 지난 2000년 10월엔 한·중·일 학자를 초빙, 구리·고구려 국제학술회의도 열어 아차산 유물의 중요성을 검증받았다. 2002년 구리시는 아차산 기슭 아천동 151번지 일원 10만평에 고구려박물관이 포함된 유적공원을 세우기로 하고 관련 TF팀을 구성했다. 당시 용역결과에 따르면 사업비는 1500억원, 연간 관람료 수입 등으로 얻게 될 수입은 4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이 계획은 미국과 일본 투자전문회사로부터 투자의향서도 받았으나 박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후임 이무성 시장은 예산문제와 감사원의 ‘규모과다’ 지적 등을 이유로 고구려 유적공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아차산 일원 8200여평에 600억원을 들여 ‘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전국에 산재한 국립박물관의 지자체 이양 방침에 어긋난다는 이유 등으로 난색을 표했다. ●역사박물관 국민 모금운동 검토 박영순 시장이 재선출되자 다시 TF팀을 구성,‘국립 고구려박물관’을 ‘고구려 역사박물관’으로 바꾸고 박물관과 역사교육장 및 촬영세트장 등이 들어서는 20만평의 유적공원을 오는 2010년까지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유적공원엔 복원된 고구려 보루와 함께 광개토대왕비·장수왕릉·안학궁과 고분벽화 등 북한과 중국내의 대표적 고구려 유물·유적이 재현될 예정이다. 유스호스텔과 오락·유희시설, 저잣거리 등 고구려 생활체험촌도 조성된다. 공원이 들어설 곳은 서울과 인접하고, 서울외곽순환도로 및 중부고속도로의 토평IC와 연계돼 뛰어난 접근성을 갖췄다. 이용객은 2010년에 740여만명, 매출액은 23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사업비는 총 4000억원 규모로 일부 기반시설비를 제외하고 민자를 통해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1단계 사업이 될 고구려 역사박물관 건립사업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전례삼아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중파 TV방송이 앞다퉈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연속극을 방영중이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어이없어하는 국민적 정서가 팽배한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구리시는 유적공원을 중국과 북한에 주로 있는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재현될 유적유물은 중국이 광개토대왕비의 본래 비각(碑閣)을 철거하고 중국식 비각으로 대체한 사례에서 보듯, 왜곡된 부분은 고증을 통해 원형대로 살려낼 예정이다. ●그린벨트 규제완화가 관건 구리시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엔 현행법의 보완 등이 선결돼야 한다. 공원 예정부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탓에 박물관 시설은 가능하나, 재현 유적·유물의 설치가 곤란하다. 구리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에 그린벨트 관련규제 완화를 요청중이다. 박영순 시장은 “동북공정으로 ‘역사지키기’에 대한 국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고, 여·야가 준비중인 ‘고구려 사적 복원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이 조만간 마련되면 사업이 급속도로 탄력을 받는다.”고 기대했다. 구리시와 국회 고구려포럼은 지난 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영순 시장과 구리 출신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 서영수(단국대), 윤명철(동국대), 임효재(서울대)교수와 건교부 이재홍 기획관이 참가해 고구려 역사유적 공원조성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다.7∼9일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구려 역사복원을 위한 예술제도 열렸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박영순 구리시장 “동북공정으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마구 변형되는 와중에 원형모델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박영순 구리시장은 지난 94년 관선시장 때부터 서울의 특색없는 위성도시에 불과했던 구리시의 발전 테마를 내심 ‘고구려’로 정했다. 최근 4년 동안의 야인시절에 그가 쓴 에세이집 ‘가슴으로 부르는 구리사랑 노래’엔 고구려 관련 부분이 전문사학가 수준 못지않은 지식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기술돼 있다. “1500년 전 고구려의 모습을 재현하자는 것이 고구려 유적공원 사업의 핵심입니다. 유적공원이 조성되면 구리시는 중국의 지안(集安), 북한의 평양과 함께 3대 고구려 유적도시로 대내외에 확실히 자리매김할 겁니다.” 외교관 출신의 박 시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반도 통일 이후 만주를 둘러싼 영토분쟁 발생에 대비하려는 중국의 속셈 때문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고구려사를 우리 민족사로 인정받으려면 중국이나 평양에 가지 않고도 고구려 역사·문화를 체험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은 고구려 유적공원 조성을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출마,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유일한 단체장 당선자가 됐다. 박 시장은 장차 고구려 유적공원을 아차산과 장자못, 한강변 토평 꽃단지 등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의 구심점이 될 관광벨트로 묶는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이이화 서원대 교수 “아차산 출토 고구려 유물이 10년째 마땅한 장소가 없어 서울대박물관에 방치상태로 임시 보관중입니다.” 역사학자 이이화(서원대 석좌교수·69)씨는 12일 “국민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사학계의 고구려사 심층연구를 위해서도 자료관 형식의 현장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유적지를 공유하고 있는 서울 광진구도 유적공원 건립을 구상했던 것으로 아나, 지역적 여건으로 보아 구리시에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즈로 출판된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이자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이사장인 이씨는 25년째 아차산 가슭에 살며 아차산과 고구려의 관계를 현장에서 연구해 왔다. “한강변 아차산은 삼국시대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의 접경지로서, 고구려가 장수왕시대에 백제를 침공해 개로왕을 참수하고 한강 진출을 이룬 곳입니다.100년 가까이 이 지역을 지배했고 온달 장군이 전사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추가 발굴도 시행돼야 합니다.” 이 이사장은 “동북공정의 와중에 ‘고구려 역사지키기’는 범국민적 관심사이고, 책으로만 고구려를 배우기보다는 재현된 유적·유물을 통해서라도 실물을 접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차산 고구려 유적도 복원·보존하고 ‘역사교육의 장’이 되도록 그린벨트 관련규정 등 법률적 장애를 조속히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리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이건호의 뷰티풀 샷] 18세기 중세 연출하기

    [이건호의 뷰티풀 샷] 18세기 중세 연출하기

    # 사진 한 컷을 위한 노력 지난 10월 패션 잡지 보그의 화보 주제는 코트와 드레스였다.18세기 나폴레옹과 조세핀 황후의 이미지로 현대적인 옷을 표현하고자 했다. 최근 패션 사진을 보면 사진가들의 실력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사전의 세트 제작과 소품 준비에도 상당한 노력을 쏟는 것이 추세이다. 이는 독자들의 안목이 높아진 이유에도 기인한다. 하지만 화보 한 테마당 진행비를 보면 독자의 안목을 좇아가기는 역부족이다. 공중파 방송이나 영화처럼 거대 자본이 있는 곳이야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억원을 투자하는 일도 다반사지만 아직 동네 구멍가게 수준에 있는 잡지 화보 촬영에서 화려하고 정교한 세트를 제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촬영에서도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18세기 중세를 나타내려면 ‘말’뿐 아니라 다양한 소품과 화려한 액세서리가 필요했다. 우선 ‘말’은 나무와 스티로폼, 종이 진흙을 이용해서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미대 출신인 에디터의 어시스턴트가 이틀동안 밤샘한 결과 아주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또한 나머지도 스태프들의 손재주와 안목을 빌려 무사히 촬영 준비를 마쳤다. 위 사진에서는 모형 말에서 올 수 있는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말 부분의 조명을 어느 정도 가려서 어두운 영역으로 처리했다. 또한 자연광을 말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미치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메인조명으로 사용한 텅스텐 라이트에 비해 색온도 차이를 만들어 푸른 색감이 도는 하이라이트로 변화를 주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고증을 위한 화보가 아니므로 18세기의 기분만 느낄 수 있게 두 모델(남자인 나폴레옹 역할과 여자인 조세핀의 역할. 물론 두모델이 다 여자모델이다.)의 머리에 흰색 스프레이 파우더로 가발을 형상화하였고, 다소 과장된 메이크업으로 당시대의 특징을 재해석해서 형상화시켰다. 상당히 짧은 기간에 준비를 했음에도 돈보다는 몸(?)으로 때운 스태프들 덕분에 아주 흡족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한다. 사진작가
  • [토요영화]

    ●글래디에이터(채널CGV 오후6시40분)‘에일리언’,‘델마와 루이스’로 각인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시대극에 첫 도전한 영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에서 막시무스는 최고의 장군이다. 화려한 전적은 물론, 바른 인간 됨됨이마저 호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질투한 황태자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독살하고 막시무스의 가족을 죽인 뒤 막시무스를 노예로 팔아버린다. 제국 최고의 장군에서 노예로 떨어진 막시무스는 검투사로 활약하며 황제 자리에 오른 코모두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기회를 노리는데…. 전문적인 고증 문제를 떠나 꼭 한가지 지적할 대목은 있다. 실제 로마사의 의문점 가운데 하나는 그토록 현명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왜 표독스러운 아들 코모두스를 차기 황제로 지명했느냐이다. 영화는 여기에 황제 자리를 탐낸 코모두스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설정을 넣었다.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 정조 독살설’과 비슷한 얘기다.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원래 계획이 막시무스를 차기 황제로 삼아 황제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되돌아가려 했다는 설정은 ‘오버’다. 현명한 왕이라면 권력을 알아서 포기했을 것이라는 일종의 기대가 섞여 있는데,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젖은 현대 서구인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명상록’을 남긴 스토아 철학자 황제라고 너무 치켜세웠다. ‘LA컨피덴셜’에서 ‘욕망에까지 우직해져버린’ 육중한 형사 연기로 주목받았던 러셀 크로가 막시무스역을 맡아 정상급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벤허’ 이래 거의 눈에 띄지 않던, 고대 서양사를 무대로 한 대작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내년에 ‘글래디에이터2’가 나온다는 소식도 들린다.2000년작,154분. ●화이트 마사이(KBS2 밤 12시25분) ‘제2회 KBS프리미어페스티벌’에 소개됐던 작품 가운데 ‘늑대의 제국’,‘오르페브르36번가’에 이어 세번째로 안방을 찾는 독일 영화. 유럽 문명 속에서 자란 한 여자가 케냐 오지에서 우연히 만난 마사이족 남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화이트 마사이’는 마사이족에 편입된 바로 이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포인트는 ‘국경도 없다.’는 불같은 사랑이 문화의 차이까지 뛰어넘느냐이다. 힌트를 주자면, 유럽영화답게 삶을 예쁘게 분칠해대지 않는다. 실화에 바탕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2005년작,131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4)신실사구시(新實事求是)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4)신실사구시(新實事求是)

    동양사상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사실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말이 철학적 담론으로 성하게 된 것은 중국의 청대 말 고증학파가 등장하면서 문헌고증에 의거해서 확실한 진리를 구하려는 요구에서였다. 그런 고증학의 정신이 점차로 학문 일반의 이념으로 퍼지면서 현실생활의 이익에 이바지하지 않는 허학(虛學)을 배격하는 실학(實學)의 정신으로 실사구시의 의미가 정착되었다. 그래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나라의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학문인 실학(기술학과 경세학 등)을 하지 않고, 오로지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사장(詞章)에만 전념하는 학문을 경멸하였다. 다산 사상을 음미해 보면, 그는 단적으로 행사(行事=일함)의 철학으로 일관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현실을 혁파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주자학의 사변(思辨)을 멀리하고, 현실의 비리와 부조리를 근절하는 원시 유학사상인 공맹학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일함의 정신을 강조하는 그의 행사학은 두 가지의 각도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지성적으로 과학기술적 사고를 권장하는 실용적 지성론과 또 다른 하나는 시대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을 극복하려는 도덕적 의지론을 그의 행사학(行事學)이 각각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이 그의 철학에서 세련되게 접목되어 있지 못하다. 그런데 이 글은 다산의 사상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산의 행사학적 초점불일치가 실로 그간 인류의 실학사상의 이대조류를 대변하기에 언급된 것이다. 인류의 실학사상은 첫째로 경제기술적 지성의 강화로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어 가는 실용적 지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그와는 달리 사회도덕적 선의지의 칼날을 예리하게 해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어가려는 도덕적 의지를 뜻하기도 한다. 서양철학에서 실학정신으로서의 실용적 지성이나 도덕적 의지는 다 근대화의 여명기에 서양에서 일어난 계몽주의적 진보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마도 동양의 실학과 실사구시론도 서양 과학기술문명의 밀물 앞에서 주자학적 사변학에 대한 자각된 반작용이 아닌가 여겨진다. 같은 계몽주의의 자식이면서 실용주의는 세상의 경제기술적 어려움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solving) 도구적 지식으로서의 편리의 진리에 초점을 모았고, 도덕주의는 세상의 사회도덕적 불의를 영구히 해소하려는(resolving) 목적적 선의지인 정의의 진리에 그 이념을 두었다. 이것이 도구주의와 목적주의의 철학사상을 가르는 분기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실용주의가 경제기술적 편리의 측면에서 세상에 많은 이익을 주었으나, 또한 그 실용주의의 독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편리의 진리가 기능주의와 인간의 끝없는 상품화를 촉진시켜 소유를 위하여 존재를 마멸시키는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낳는다는 점이다. 기능주의는 인간을 문제해결의 기능으로만 평가하고, 실용주의는 소유의 증대를 가져오는 성공만을 진리로 간주한다. 소유적 성공의 신화가 인간을 가장 비싼 기능적 상품으로 만들어 준다. 성공적이지 않는 상품은 기능적 가치가 없다. 늙은이와 연약한 이의 상품가치는 점점 줄어든다. 늙지 않게 보이려고 모두 안간힘을 쏟는다. 기능가치가 없는 것은 폐품처리된 쓰레기와 같다. 죽음은 기능이 완전 정지된 가치상실에 불과하다. 죽음에 어떤 존재론적 의미도 없다. 편리의 진리는 동시에 인생에서 소유적 기능과 성공만을 전부인 양 보게 한다. 편리의 진리는 인생에서 고요와 허심의 의미를 지워버리게 한다. 거기에 문명의 병이 생긴다.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의지론으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는 정신적 실사구시는 실학적으로 성공했는가? 세계사에서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정의사회를 이룩하려는 운동이 1789년에 일어났다. 이른바 프랑스 대혁명이다. 자유와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사회정의의 이념은 많은 의식의 긍정적 변화를 수반해 온 게 사실이다. 인류사는 그 혁명 이후로 점진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서 큰 족적을 남긴 것은 틀림없다. 계급신분의 불평등 철폐, 성별에 의한 불평등의 폐지, 종교와 인종에 의한 불평등의 부정 등으로 인류가 후천적 억압과 불평등의 요소를 대폭 감소시키거나 제거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다. 그러나 자유의 선은 개인주의의 성역화와 함께 방종의 악을, 평등의 선은 사회적 공동체의 명분아래에 질투와 대등의식의 악을 필연적으로 초래했다. 나와 너는 사회생활에서 다르면서 서로 엮어지는 일체적 존재인데, 자유는 다르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개별의식의 성채를 쌓고, 평등은 서로 상관적인 상응성을 동등성으로 오해하여 나보다 나은 것을 참지 못하여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등의식으로 미끄러진다. 계몽주의 사상은 인류를 진보케 하는 자유-평등이 오로지 선의 진보일 것이라고 낙관했는데,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는 그런 일방적 낙관은 허상이고 반드시 좋은 가치에는 나쁜 반(反)가치가 필수적으로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자유와 평등에 의한 정의의 가치도 이기적 방종과 한풀이와 같은 대등의식의 반가치를 동반하는 이 사실(史實)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정 실사구시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하고 다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기술적 실용적 지성과 사회정의적 도덕적 의지가 실학이고 실사구시라는 생각을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적 분기점에 우리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동양사상에는 불교와 노장사상은 실학이 못되고, 현실도피적 허학으로 간주돼 왔다. 그래서 불교와 노장사상은 사회과학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불교와 노장사상이 진정한 실학이고, 새로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읽혀져야 한다. 불교와 노장사상은 우선 세상을 판단하고 제조하려는 지성과 의지의 철학이 아니다. 인류는 그간 지성과 의지로 세상을 편리하게만 만들 수 있다거나 세상을 정의롭게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다 계몽주의의 영향이다. 동양의 주자학도 이 점에서 계몽주의와 비슷하다. 그러나 불교와 노장사상은 세상이 일방적인 가치로 발전하지 않고, 늘 대대법(待對法)적인 상관적 관계로 얽혀지는 천짜기와 같다고 주장해 왔었다. 부처와 중생은 이중적이어서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실존하지 않고, 또 부처가 없다면 중생이 생기지도 않는다고 불교는 본다. 노장사상에서 선은 악에 대한 선이고, 악도 선에 대한 악이라서 선악이 항시 양가적으로 발생을 하지, 일방적으로 선의 승리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주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로서의 컴퓨터가 동시에 인성을 망가뜨리는 해기(害器)가 된다는 것과 같다. 편리와 정의는 다 지성의 소유론적 철학의 산물이다. 세상을 일시적 진리나 영구적 진리로 바꿔 보려는 의도를 소유론적 철학이 품어 왔었다. 세상에 진/선/미를 설치하고 위(僞)/악(惡)/추(醜)를 걷어 내겠다는 의도가 그 동안의 실학과 실사구시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안 된다. 문명의 이기가 동시에 문명의 해기가 되듯이, 선도 악과 별거하지 않는다. 이익과 선에 집착하면 그만큼 상실과 악도 거세게 덤벼든다. 불교의 아뢰야식(제8식)이 진망(眞妄)화합식으로서 여래종자와 중생종자가 동시에 있듯이(43회 글), 세상에는 늘 양가성이 공존한다는게 불교의 사실론이다. 이런 양가적 사실에 바탕해서 세상을 경영하는 것이 새 실학이고, 새 실사구시겠다. 서산대사(16세기)는 ‘선가귀감’에서 “중생심을 버리려 애쓰지 말고, 다만 스스로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정법을 구하는 것도 곧 삿(邪)됨”이라고 밝혔다. 진리를 구하려고 애쓰는 것도 또한 미망이라는 말과 같다. 진/선/미를 가려서 선택하면, 그와 동시에 세상에 위/악/추가 덩달아 함께 온다. 사람들은 전자를 좋아하고, 후자를 미워한다. 후자를 미워하는 것이 정의라고 착각한다. 미워한다고 후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좋아하는 마음은 미워하는 마음을 곧 닮는다. 정의의 이름으로 수백만이 살상당했다. 현대사의 소련과 중공에서, 독일과 캄보디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불교는 이중적 세상사를 다 환영(幻影)으로 보라고 일렀고, 장자는 그것을 망량(罔兩)이라고 명명했다. 장자의 주석가인 위진(魏晉)시대의 곽상(郭象)은 망량을 ‘그림자를 둘러 싼 엷은 막’이라고 주해했지만, 그 엷은 막(罔)이 둘로 쪼개졌다(兩)는 것은 세상사가 대대법적으로 상반된 차이의 관계로 이루어졌다. 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사를 환영이나 망량으로 본다는 것은 종래의 실학에 의하면 허탈하고 초연한 탈속적 심성으로 세상사를 대하는 은둔주의와 같다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세속을 위하여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필연적으로 잃게 되고, 선(善)을 생각하면 악(惡)이 불청객으로 따라오니, 재래의 실학적인 택일법의 철학은 결국 세상에 ‘이/해’(利/害)의 종자와 선악의 종자를 동시에 흩뿌리는 결과를 빚는다. 이것은 사실에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길이 아니다. 오히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혜능조사의 생각(43회 글)이 더 실학적이고 실사구시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사실적으로 선악이 동거하고 있으므로, 선의 생각이 강렬하면 반드시 악의 생각도 그만큼 치열하게 일어난다. 선악의 동거나 동봉의 사실은 선악을 동시적인 이중긍정으로 다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이중긍정은 바로 선악을 이원적인 실체로 보지 않고,‘환영’이나 갈라진 그림자로서의 ‘망량’으로 보는 사유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동일인물의 이중성으로 보는 것과 같다. 두 측면이 다 그림자이므로 환영의 이중긍정은 즉 이중성에 얽매이지 않기에 이중부정의 마음과 같다. 이중부정의 초탈한 마음이 새로운 실학과 실사구시의 참 뜻이겠다. 부처나 성인이 되기 위한 노력이 부처병이나 성인병을 자초한다. 중생의 번뇌를 버리려 애쓴다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듯, 무선무악한 본성에로 되돌아가는 공부가 바로 가장 세상을 복되게 하고 세상을 크게 이익되게 하는 실학이다. 우리가 경제기술적으로 잘 살되 탐욕의 노예가 안되고, 우리가 불평등하지 않되 차이를 대등의 질투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유로운 회통으로 한마음의 일체감을 형성하도록 가는 길이 신 실사구시의 길이겠다. 그러기 위하여 마음닦기의 국민운동이 가장 빠른 실사구시운동이 아닌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잃어버린 숭례문 성곽 100년 만에 되찾는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100년만에 잃어버린 성곽을 되찾는다. 서울 중구(구청장 정동일)는 숭례문 좌·우측에 연결돼 있던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성곽을 2008년까지 복원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성곽은 1907년 일제가 통행량이 늘자 도로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육축과 문루만 남긴 채 헐어버린 것으로 문화재 자문위원들의 고증과 설계를 거쳐 내년 하반기 복원 공사를 시작한다. 복원되는 부분은 현재 경사면 형태로 남은 좌우측 성곽으로 복원될 성벽의 길이는 향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면서 결정될 예정이다. 구는 또 숭례문 아래 지반을 파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숭례문의 높이는 현재보다 1.6m 정도 높아져 웅장하게 보이게 된다. 지난해 숭례문에 대한 1차 지반 조사 때 ‘문지도리석’(대문의 장부가 끼어 돌아가는 돌),‘지대석’(성문이나 성분 지반이 접하는 부위에 쓰는 기초석),‘박석’(넓고 얇게 바닥에 까는 돌) 등의 유구가 현재 지표보다 1.6m 아래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숭례문의 높이는 약 7.9m가 된다. 정 구청장은 “숭례문은 한양 도성의 정문이었는데도 현재는 성곽이 헐린 채 숭례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숭례문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복원이 끝나면 숭례문이 본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명승’ 문화재로 보존한다

    ‘명승’ 문화재로 보존한다

    서울신문이 지난 4월24일자부터 10월23일자까지 인기리에 연재한 ‘다시 걷는 옛길’ 영남대로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선정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사적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전국 각지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관리키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대동지지정리고 및 세종실록지리지, 증보문헌비고 등 옛 지도상에 나타난 옛길 가운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거나 전설·유래를 간직한 구간에 대한 자료를 추천 의뢰했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지자체를 통해 추천된 옛길을 데이터화한 뒤 내년 상반기 지적 및 천연기념물 관련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자료분석과 함께 실증·고증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또 해당지자체와 문헌·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대학교수 등 옛길 관련 전문가와 동호회, 향토사학가, 시민을 대상으로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10월쯤 지정 대상을 선정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연말쯤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옛길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복원과 보수·정비 등에 국비 지원이 가능해져 체계적으로 유지·관리될 전망이다. 또한 옛길이 새로운 관광자원인 명승지로 개발돼 관광활성화에 따른 지역홍보 및 세수증대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위수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과장은 “옛길은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얼과 문화, 유무형의 유적들이 산재된 민족문화유산”이라며 “때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신문의 옛길 재조명을 계기로 이를 국가문화재로 지정,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안정복,고려사를 공부하다/박종기 지음

    조선시대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순암 안정복. 그의 역사 연구와 서술 방식은 그야말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하다. 안정복의 필적이 고스란히 담긴 수택본(手澤本) ‘고려사’ 한 권만 봐도 그의 철저한 고증 태도와 작사(作史)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안정복은 자신의 저서 ‘동사강목’의 고려시대사 부분을 쓰기 위해 ‘고려사’를 공부하면서 보충할 만한 내용을 각종 묘지명과 족보, 서책 등에서 찾아 ‘고려사’의 여백에 빼곡히 적어 놓았다.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박종기 지음, 고즈윈 펴냄)는 그 손때 묻은 ‘고려사’를 단서로 250년 전 안정복이 간 역사연구의 길을 되짚어 본 역사 에세이다.20여년 전 ‘고려사’ 수택본을 우연히 손에 넣은 저자(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 ‘고려사 연구노트’를 통해 안정복의 고려사 연구 흔적을 발견하고 그 과정을 추적했다. 안정복이 공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책은 ‘고려사’ 50책 가운데 42책. 저자는 이를 면밀히 분석해 안정복이 고려왕조사에서 관심을 가진 부분이 무엇이며 그것이 ‘동사강목’ 서술에 어떻게 반영됐는가를 살핀다. 고려사에서 군주의 역사를 주로 기록한 ‘세가’와 신하의 역사를 적은 ‘열전’ 부분은 모두 안정복이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안정복이 고려왕조사에서 군주와 신하 등 주로 지배층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안정복이 보여준 역사연구 방법론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까. 유교 역사학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단재 신채호조차 안정복에 대해서만큼은 후한 점수를 줬다.“안정복은 평생을 오직 역사학 연구에 전념한 500년 이래 유일한 사학 전문가라 할 수 있다.…연구의 정밀함은 선생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 지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사실의 모순을 바로잡는 데 가장 공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조선상고사’총론 중에서) 저자는 안정복의 치열한 역사공부 흔적을 더듬으며 “오늘날 우리 역사학에는 해석 없는 고증에 치중한 무미건조함, 사실과 고증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이념이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1만1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고려명장 넋 기리고 풍물 즐기고

    고려명장 넋 기리고 풍물 즐기고

    관악구(구청장 김효겸)는 21일 낙성대공원에서 ‘제19회 낙성대 인헌제’를 개최한다. 인헌제는 고려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다. 강감찬은 990년 전 거란의 침입 때 나라를 구한 명장이다. 김 구청장과 지역주민 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전 10시 개막 기념식을 갖는다. 이어 강씨문중 후손들이 장군의 영정을 모신 낙성대 안국사에서 헌화분양, 참신례, 강신례, 초헌례 등 추모제를 진행한다. 고려시대 군사복식을 입은 강 장군과 병졸들이 낙성대 공원을 행진하며 재현행사를 펼친다. 이 행사는 강 장군을 정확히 알리고자 기획됐으며, 복식은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부대행사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줄타기 공연이 관객을 사로 잡는다. 예능보유자 김대균 선생이 3m 높이에서 외줄을 타다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묘기를 선보인다. 관악산 궁도장에선 고유의 전통놀이 국궁을 계승한 ‘궁도대회’가, 관악문화관 공연장에선 전국 시조경창대회가 열린다. 낙성대 광장에서는 오전 10시부터 그리기 마당행사, 페이스페인팅, 풍선불어주기 등 가족 참여 한마당이 이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주민자치센터 경연대회가 낙성대 공원 중앙무대에서 열려 회원들이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낸다. 김 구청장은 “강 장군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기 위해 마련된 인헌제에 많은 주민이 참여해 애향심을 함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주말의 도심 고궁… 단풍만 있을까

    높고 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가족 나들이를 재촉하는 가을이다. 이번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가을의 멋과 맛을 만끽할 수 있는 무료 행사들이 열린다.14일 운현궁(사적 257호)에서는 고종·명성후 가례 재현행사가 열리고 15일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시민 걷기대회가 열린다. 가족들과 함께 가을의 풍경속으로 떠나자.●고종·명성후의 가례(家禮) 서울시는 14일 오후 3시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고종과 명성후의 가례 재현 행사를 연다. 행사는 고종 3년(1866년) 3월21일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서 열렸던 고종(당시 15세)과 명성후 민씨(당시 16세)의 국혼례를 고증에 따라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행사는 왕비로 책봉된 예비 왕비가 책명을 받는 비수책 의식과 국왕이 예비 왕비의 거처인 별궁으로 직접 나가 왕비를 맞는 친영례 의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친영례 의식 때는 취타대 등 71명이 인사동에서 운현궁까지 임금의 가마를 들고 행진하는 어가행렬도 재현된다. 식후 공연으로 검기무, 향발무 등이 준비된다. 행사 당일은 무료 개장한다.766-9090.●단풍과 낙엽을 밟으며 서울시설공단은 능동 어린이대공원 무료 개방을 기념해 15일 어린이대공원에서 시민 걷기대회를 개최한다. 걷기대회는 단풍과 낙엽으로 유명한 대공원의 숨은 명소를 만날 수 있는 1시간 코스. 행사는 오전 8시 정문 앞 광장을 출발해 생태연못 옆길, 동물공연장, 구의문길, 야외학습장, 중앙로, 수영장 길을 거쳐 다시 정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3.8㎞ 구간에서 열린다. 행사에서는 흥겨운 공연을 비롯해 행운권 추첨을 통해 김치냉장고, 자전거, 선물세트 등 푸짐한 경품도 주어진다. 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행사 당일 출발시간에 맞춰 나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450-9362.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구술사는 새 역사 기록에 초점 모아야”

    “구술사는 새 역사 기록에 초점 모아야”

    ‘구술사(Oral History)’가 유행이다.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덩치 큰 기관들이 구술채록사업이라는 걸 하더니, 몇개 대학 연구소가 뭉친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은 아예 ‘무지렁이 촌 것들’의 증언만 따로 모아 아카이브(정보창고)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광복 60년을 맞아 KBS는 8·15 광복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TV구술사’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최근 충남대 연구팀은 부여 장정마을, 연기 솔올마을, 태안 개미목마을에 대한 구술사 연구성과를 ‘충남지역 마을지 총서’라는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처럼 새로운 방법론으로 최근 10여년동안 훌쩍 커진 구술사는 그 덩치만큼이나 단단한 골격도 갖추고 있을까.‘새로운 역사쓰기를 위한 구술사연구방법론’(아르케 펴냄)의 저자 윤택림 박사를 만났다. “구술사의 목표는 기존 역사의 보완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맞춰져야 합니다. 단순히 보통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두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 구술사는 지난 10여년간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필요하긴 한데 충분하진 못하지요.” ●진술자료 생산·유통에 대한 성찰 필요 윤 박사는 우리 구술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구술사 비판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어떤 한 사람의 진술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비판, 더 깊게는 구술사 역시 구술자와 연구자의 편견이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특히 일반사람의 말을 기록하기에 구술사는 ‘겸손한 역사’같지만, 실제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외려 연구자의 권력이 더 많이 개입한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학에서는 흔히 구술사 자료가 불안정하고 고증이 안됐다고 합니다. 구술사의 장점은 오히려 바로 그 지점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게 구술사입니다. 그냥 진술만 모아둘 게 아니라 그 자료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자기성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구술사 자료와 실제 문헌고증의 결과가 다르면,‘역시 구술사는 믿을 수 없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왜 사실과 다르게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사실’ 그 자체보다 ‘의미를 부여한 맥락’까지 파헤칠 수 있는 게 구술사라는 얘기다. 윤 박사는 실제 생활문화사에 도전하고 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한창 작업 중인 ‘부엌의 문화사’ 같은 것들이다.“예를 들자면 60∼70년대 입식부엌에 싱크대가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좌식식탁을 고수하는 풍경 같은 것이죠. 그에 따라 음식의 배열과 사람의 배열이 어떻게 바뀌는지, 또 그로 인해 가족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분석하는 겁니다.” 그러나 생각보단 쉽진 않다.“‘사건’은 잘 기억하지만 ‘일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거든요. 구술자료를 어떻게 분석해 개념화할지 고심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서점에서 ‘∼의 문화사’라는 꼬리표를 단 외국 책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도 곧 그런 책을 맛 볼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구술사 연구센터 세워 형식 표준화 절실 윤 박사가 바라는 바는 궁극적으로 구술사 연구집단이 안착할 수 있는 ‘구술사 연구센터’ 같은 것이 생기는 일이다.“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구술자료 형식의 표준화를 이뤄내고, 구술사 방법론을 쓰는 연구자들에게 이를 교육시킬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원래 사학을 전공했던 윤 박사가 어떻게 구술사에 빠져들었을까.“모든 사람을 역사의 주체로 불러내면서, 그들 모두에게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는거죠.”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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