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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경 서울시의원, 복식고증 통한 서울시 전통문화행사 재연방안 논의

    이혜경 서울시의원, 복식고증 통한 서울시 전통문화행사 재연방안 논의

    우리 고유의 의복으로 뛰어난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한복. 그러나 한복은 활동하기 불편하고 특별한 날에 차려입는 옷이라는 인식 때문에 한복수요가 급감하면서 국내 한복 산업은 점차 쇠퇴일로에 있다. 여기에 민‧관 주도의 각종 전통문화행사에서 시대나 상황에 맞지 않는 한복까지 등장하면서 전통한복의 보존과 발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서울시는 정조대왕능행차(서울시)를 비롯해 고종·명성황후 가례재현(종로구), 관악 강감찬 축제(관악구), 한성백제문화제(송파구) 등 다양한 전통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적지않은 행사비, 시민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사에 대한 고증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아 자칫 시민들에게 역사적 오해와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행사 중 화려한 볼거리를 담당하는 복식은 시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만, 고증에 대한 자문은 커녕 전문성 없는 의상감독이 전통문화행사에 선임되거나 심지어 의상감독 조차 없는 경우도 있어 전통복식에 대한 시민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실례로 서울시의 정조대왕능행차 행사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붉은 의례복을 입었는데,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혜경궁 홍씨의 경우 왕비의 색인 붉은 계열의 복식을 갖출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타 전통문화행사에서는 조선시대 재현행사가 아님에도 조선시대의 복식을 갖추어 진행되는 등 역사적 고증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일부 전통문화행사가 지나치게 대행업체의 수익에만 의존하는 현행 사업방식과 함께 고증과 재현을 통한 전통문화의 가치 제고보다는 축제성 이벤트 개최에만 집중하는 성과주의적 접근이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우리 한복의 가치와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국내 한복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혜경 의원(자유한국당, 중구2)의 주최로 현재 ‘복식 고증을 통한 전통문화행사 재연방안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연구는 올 12월 초에 완료되며, 서경대학교 박은정 교수, 임성은 교수, 김국희 교수가 맡아 서울시 외에도 다양한 지역 축제 및 행사를 토대로 복식 고증에 대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10월 27일에 열린 중간보고회에서는 박현주 한복기술진흥원장, 장재환 서울문화재단 축제팀장, 류재숙 경희대학교 관광학교수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박현주 원장은 “한복 업계에 역사적 연구를 통해 고증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면서, “서울시부터 전통문화행사에 철저한 복식 고증을 실현해 시민들에게 올바른 전통을 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장재환 팀장은 “서울시의 전통문화행사가 상업구조에 휩쓸려 ‘전통문화’ 가치가 아닌 ‘행사’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자성하고 있다”면서 “향후에는 복식부터 세세한 예절까지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오류가 없도록 기초가 단단한 행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류재숙 교수는 “서울시 전통문화행사는 관광학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운을 띄우며, “최근 많은 외국인들이 일부러 이러한 행사를 찾아다니며 보고 있는데, 정확한 역사를 녹여내어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용역의 주최자인 이혜경 의원은 “최근 서울시내 고궁 주변과 전주 한옥마을 등의 길거리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복을 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복을 입는 문화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갑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복의 퓨전과 현대화가 한복 확산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전통을 지키는 측면에서는 부작용도 있는 만큼, 전통적이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한복을 지켜나가고 입는 문화도 함께 발전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한복의 중흥을 위해 관심과 소신을 지켜 이번 연구를 주최한 이혜경 의원은 “이 연구는 한복 산업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추진했던 것”이라고 밝히며, “오늘 참석해주신 전문가들의 고견을 잘 받아들여, 향후 서울시의회에서 조례 제·개정, 예산 편성 등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중간보고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한복 사랑은 정평이 나 있는 이혜경 의원은 2016년 4월 「서울시 한복착용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1인 발의하여 상정·통과한 바 있으며, 현재 이 조례는 서울시 문화본부에서 맡아 시행 중에 있다. 또한, 문화재청의 디지털 귀향전을 비롯하여 서울시 정조대왕능행차, 중구 정동야행 등 주요 행사마다 한복 착용을 하는 것은 물론,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 전시회에도 한복을 입고 참석해 해외 인사들에게 우리나라 고유의 멋을 알리는 등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북 주민 발걸음, 단종·정순왕후 넋 기리다

    성북 주민 발걸음, 단종·정순왕후 넋 기리다

    “고증에 더 신경써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25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보문동 주민센터에는 옛 복식을 차려입은 150여명의 주민이 모였다. 김영배 성북구청장도 보문동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날 보문동 주민들은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고 지역의 무사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기 위한 ‘2017 동망봉제례’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지난 1월 건립한 동망각 신축을 기념하기 위해 제례봉행 퍼레이드를 벌였다. 작은아버지(세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열일곱 나이에 유배지 영월에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왕 단종. 그의 비 정순왕후가 매일 조석으로 올라 영월이 있는 동쪽 하늘을 향해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동망봉이 보문동에 있다. 지역 역사를 문화로 승화하기 위해 천종수 동망봉제례보존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보문동 주민은 매년 가을 길일을 택해 제례를 지낸다. 천 위원장은 “서울의 흔치 않은 동제(洞祭)로 마을에서 행하던 기존의 산신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100여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퍼레이드에는 단종, 정순왕후, 구립취타대, 사물놀이패, 동망봉제례보존위원 등 지역 주민이 참여했다. 오전 11시 보문동 주민센터를 출발해 보문역, 동신초등학교, 동망각을 경유했다. 보도변 1차로와 보도의 교통이 통제됐다. 행렬이 동망각에 도착하자 한국무용가들이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는 살풀이 공연을 펼쳤다. 이어 제례가 봉행됐다. 앞서 지난 24일엔 지신밟기 행사가 진행됐다. 동망봉제례를 주관하는 보존위원회와 사물놀이패가 동네를 순회하며 제례의 시작을 알리고 분위기를 조성했다. 26일 오전 11시부터 동주민센터 앞에서는 지역 노인 700여명을 대상 경로행사가 펼쳐진다. 김 구청장은 “마을 역사와 문화가 공동체 활성화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친일’ 백선엽 대장 미화 웹툰”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친일’ 백선엽 대장 미화 웹툰”

    역사 관련 시민단체가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97)을 ‘전쟁의 영웅’으로 그린 웹툰을 게재한 것을 지적하고 나섰다.2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육사는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육사 학술정보원이 제작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의 웹툰 30회를 공식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제목을 딴 이 웹툰은 당시 백선엽 장군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백 장군을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국방일보에 연재되며 일반인에게도 공개된 웹툰은 “자료 제공과 고증을 통해 적극적으로 웹툰 제작을 지원해주신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실제 백 장군은 한국전쟁 개전 당시 제1사단장으로 활약후 1953년 휴전 당시 대장으로 승진했다. 백 장군은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합참모부 의장(현 합참의장)을 끝으로 1960년 예편했다. 그러나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때 항일인사 토벌에 나선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2년 반 동안 복무한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백 장군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명박 정부 때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5성 장군)로 백 장군을 추대하는 방안이 추진됐다가 한국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군 원로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따라서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백 장군의 ‘친일 행적’은 뺀 채 전쟁 영웅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한강 물길 바뀌면서 생겨난 ‘석촌호수’ 송파나루 기억·병자호란 아픔 품었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한강 물길 바뀌면서 생겨난 ‘석촌호수’ 송파나루 기억·병자호란 아픔 품었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유일하게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석촌호수는 예로부터 한성백제 시대 돌무덤이 있다고 해 ‘돌마리’의 한자 표기인 ‘석촌’으로 불려 왔다. 1971년 4월 잠실섬 서쪽 부리도의 북쪽 물길을 넓히고, 남쪽 물길을 폐쇄함으로써 섬을 육지화하는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이 시작됐고, 그때 폐쇄한 남쪽 물길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았다.한강의 본류였으나 이후 물길이 바뀌면서 생겨난 인공호수이자 서울에서 유일한 호수다. 매립공사로 생겨난 땅이 잠실동과 신천동이다. 호수의 면적은 21만 7850㎡(약 6만 5900평)이며 담수량은 636만t, 평균 수심은 4.5m다. 송파구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 송파대로가 호수를 가로지르면서 동호(東湖)와 서호(西湖)로 구분됐다. 전체 호수 둘레는 2.5㎞에 달한다. 동호 남쪽에 옛 송파나루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송파나루터는 서울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잇는 뱃길이었다. 정적인 분위기의 동호와는 다르게 서호 쪽에는 주말마다 송파산대놀이를 비롯한 민속무용·사물놀이·탈춤 등의 민속공연이 펼쳐지는 서울놀이마당과 롯데월드 야외놀이시설인 매직아일랜드와 수중분수대가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서호 옆에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세운 삼전도비가 있다.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기린 항복 문서가 새겨져 있다. 본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 글자, 오른쪽에는 만주 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적혀 있는 국내 유일의 비석이다. 17세기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치욕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 수난을 당했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강물에 수장됐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광복 직후 주민들이 다시 땅속에 묻었으나 1963년 홍수 때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1983년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로 이전됐다가 고증을 거쳐 2010년 비석이 서 있던 원래 위치인 송파구 잠실동 47번지에 자리잡았다. 2007년에는 한 문화재 테러리스트에 의해 붉은 래커로 훼손됐다가 복원됐다. 석촌호수는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정취를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생리대, 마스크에도 제조성분 표시 의무화된다

    생리대, 마스크에도 제조성분 표시 의무화된다

    약사법 개정안, 내년 10월부터 의약외품도 성분표시 필수 생리대나 마스크, 물티슈 같은 의약외품도 내년부터는 제조 성분을 모두 밝혀야 한다.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생리대, 마스크, 구강 청결용 물티슈 같은 의약외품들도 허가증이나 신고증에 기재된 모든 성분을 용기나 포장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중에 공포하고 1년 뒤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또 별도로 생리대를 제조하는 상위 5개사는 개정 약사법 시행 전에 자율적으로 홈페이지 등을 통해 모든 성분을 공개하기로 했다. 생리대나 마스크는 몸에 접촉하는 물품으로 표시되지 않은 성분으로 알레르기 같은 신체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모든 성분을 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특히 생리대의 유해성 문제를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5월 2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일회용 생리대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하고 유해물질 기준을 강화하며 월경용품 공교육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시장 점유율이 높은 생리대 제조사 5곳의 제품 113종을 모니터링한 결과 모든 제품 포장지에 성분의 일부부만 표시돼 있었다. 한편 식약처는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최근 업계와의 자율협약으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에 대한 자발적 검사와 결과 공개를 추진하고 수시로 수거 및 검사를 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덕일의 역사의 창] 동북공정은 진화 중

    [이덕일의 역사의 창] 동북공정은 진화 중

    한국 고대사는 현재진행형의 첨예한 현대사다. 2017년 4월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한 것은 이를 사실로 확인해 준 사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박은식, 초대 국무령 이상룡, 법무총장 이시영 등이 모두 한국 고대사에 관한 저술을 남긴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다. 일제강점기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영토전쟁이었던 한편 역사 해석을 둘러싸고 싸웠던 역사전쟁이었다. 그 역사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동북공정의 정식 명칭은 ‘동북 변경의 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주관으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수행한 대규모 역사 연구 프로젝트다. 동북공정은 만주(동북 3성)는 물론 북한 강역도 중국의 역사 강역이었다는 논리다. 동북공정 자체는 2007년에 끝났지만 중국의 국책 역사 프로젝트는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2004~2015)과 ‘국사 수정공정’(修訂工程?2010~2013)으로 계속됐고, 지금은 이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중화문명 전파공정’(2016~)이 진행 중이다. 이에 맞서야 할 우리의 역사 관련 국책기관들, 즉 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은 침묵하거나 거꾸로 이에 동조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으니 전 세계인들이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알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최근 중국에서 ‘동북 고대민족 역사 편년총서’(東北古代民族歷史編年叢書) 중의 일환으로 출간한 ‘백제역사편년’은 “그간 백제를 한국사의 범주로 인식했지만 백제 전기 역사는 중국사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백제사까지도 중국사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의 단초는 동북공정이 진행 중이던 2003년 6월 26일자 광명일보(光明日報)에 실린 ‘고구려는 중국 동북 지역에 있던 변방민족 정권이다’라는 논문에 이미 들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일반 공산당원을 상대하는 ‘인민일보’와 지식인 공산당원을 상대하는 ‘광명일보’를 발행하는데, 이 논문의 필자 볜중(邊衆)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지도부다. 볜중은 이 논문에서 “서기 668년 당나라는 마침내 고씨 고려를 통일함으로써 고씨 고려의 영토는 당나라 안동도호부에 의해 관할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고씨 고려란 고구려를 뜻하는데,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만든 것이다. 볜중이 당나라가 고구려를 ‘통일’했다고 쓴 것은 고구려가 나라가 아니라 당나라의 한 지방정권이란 뜻이다. 더 심각한 것은 왕건이 세운 고려에 대한 인식이다. 볜중은 “고려(왕건)는 고씨 고려의 후예가 아니다. … 중국학자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왕건은 서한(西漢) 시절 낙랑군에 있었던 한인(漢人)의 후예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한다”고 썼다. 현재 중국은 조선총독부의 견해에 따라 낙랑군의 위치를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왕건이 지금의 평양에 살던 한족(漢族)의 후예라면 고려는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가 되는 셈이다. 중국의 수많은 1차 사료는 낙랑군이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일대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책 역사기관들은 이런 사료들은 짐짓 못 본 체하면서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고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해방 후에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관이 역사학계를 장악한 결과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말한 “한국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 전체”(Not North Korea, Korea)였다고 전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한국 전체가 자국 것이었다고 망언했는데도 한국은 조용하다. 한 나라가 진정한 독립국가로 대접받으려면 자국의 정신, 곧 역사에 대한 주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국사를 통째로 빼앗기고도 조용한 이 나라가 주체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예관(?觀) 신규식(1879~1922) 선생은 “우리나라가 망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죽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나라를 둘러싼 정세가 점점 구한말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 나라, 이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며느리를 죽게 만든 악랄한 시어머니 인수대비···‘정치적 음모’로 만들어진 이미지”

    “며느리를 죽게 만든 악랄한 시어머니 인수대비···‘정치적 음모’로 만들어진 이미지”

    한가위 명절을 맞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좋은 관계뿐만 아니라 이혼까지 이르는 고부 갈등이 심심잖게 들린다. 이런 고부 갈등의 대명사로는 조선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1437~1504)가 꼽힌다. 인수대비는 조선시대 왕실의 여인들 가운데 며느리를 죽게 만들어 가장 악랄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역사적 오해에서 비롯된 ‘악평’ 내지는 ‘정치적 음모’라는 역사서가 나와 주목을 끈다.한희숙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낸 ‘인수대비’는 조선왕실 최고의 여성 지식인이었던 그녀의 야망과 애환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저자의 식견을 더한 역사서로, 소설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수대비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저술가로, 여성의 교육과 덕성 함양의 필요성을 역설한 책 ‘내훈’을 냈던 지식인이다. 한 교수가 낸 인수대비는 전문적인 학술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딱딱한 논문 형식을 탈피하면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역사적 ‘상식’을 바로잡아 줘 재미를 더한다. 300여쪽이지만 한번 잡으면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예컨대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 성종의 두번째 부인인 폐비 윤씨(함안 윤씨)가 사가에 위폐되었을 당시 “임금이 내시를 보내어 염탐하게 했더니, 인수대비가 그 내시를 시켜 ‘윤씨가 머리 빗고 낮 씻어 예쁘게 단장하고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뜻이 없다.’ 대답하게 했다. 임금은 그 참소를 믿고 죄를 더 주었던 것이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이는 김욱이 1638년에 쓴 ‘기묘록’을 이긍익이 ‘연려실기술’이 인용하면서 드라마나 소설에서 인수대비의 악독한 시어머니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윤씨 폐비 사건은 1477년 시작되어 1483년(성종 13년) 윤씨의 죽음으로 끝난다. 궁중의 내밀한 이야기를 당대의 대신들도 몰라 성종에게 해명을 요구했던 사안인데, 150년이 지난 시점에서 김욱은 고증없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여성 차별을 당연시하고, 여성의 정치개입을 금기시했던 17~18세기, 성종의 잘못보다는 인수대비의 잘못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양반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음모가 스며 있다는 것이다.인수대비는 이름이 여러 가지다. ‘금수저’ 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수양대군의 맏며리가 되어 왕가의 사람이 되었다. 시집살이 초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면서 인수대비는 정빈, 수빈, 인수왕비, 인수왕대비, 인수대비, 덕종비, 죽어서는 소혜왕후로 불렸다. 왕실에서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의 시절을 보내면서 권력의 피 비린내 나는 냉혹함을 경험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21살에 청상과부가 됐고, 세지빈 자리를 물러났다. 천신만고 끝에 어린 둘째 아들을 왕(성종)으로 만들면서 왕실에 복귀해 최고의 어른이 된다. 죽어서는 연산군에 의해 장례식이 대비가 아니라 ‘세자빈’으로 격하되기도 했다. 인수대비의 치열한 삶에서 저자가 주목한 부분은 한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책을 냈다는 점이다. 당시 글을 아는 여성이 적었고, 책을 낸다는 것은 하나의 프로젝트 같은 과업이었다. 3권 4책으로 된 내훈은 열녀, 소학, 명감 등의 고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다. 성종은 여성편력이 심해서 태종 다음으로 많은 부인(12명)을 두었다. 내명부의 질서를 위한 지침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훈에 대해 저자는 ‘칼과 풀’로 만든 책이며 인수대비가 직접 한 말은 없다고 소개했다.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요구되는 덕성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7거지악과 함께 내쫓을 수 없는 3불거 즉 시부모 3년상을 치른 아내, 천한 지위에서 결혼후 부귀해진 경우, 돌아갈 친정이 없는 경우라고 설명한다. ‘옥 같은 며느리를 얻고자’ 내훈을 쓴 2년 뒤 시기와 질투로 폐비 윤씨 사건이 발생한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한방+바이오 메카로 열리는 동대문… 그 시작은 ‘서민경제’

    [자치단체장 25시] 한방+바이오 메카로 열리는 동대문… 그 시작은 ‘서민경제’

    “서울 동대문구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서민 경제를 꽃피울 수 있는 개발 사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18일 서울 구청 사무실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대문구의 발전 철학을 이같이 요약했다. 민선 2기에 이어 5~6기 구청장을 지내며 서울한방진흥센터 준공부터 서울 부도심으로서의 청량리 역세권 재개발 추진까지 서민 경제 부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동대문구는 다음달 국내 최대 한약 유통 중심지인 제기동 서울약령시에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한다. 총 465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9604㎡ 규모로 건립한 센터는 지하 3층, 지상 3층 건물에 한의약박물관, 한방체험시설, 한방 뷰티숍 등 테마 시설을 갖춘 한방 복합문화체험시설이다. 지역경제의 한 축인 한방 산업을 부활시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 구청장이 제안해 이뤄졌다. 유 구청장은 “조선 보제원을 뿌리로 하는 동대문 서울약령시는 전국에서 유통되는 한약재의 약 70%가 거래되는 한방 메카”라며 “한방 산업이 다소 주춤해졌지만 센터 개관을 계기로 각종 한방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구성한다면 약령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동시장 인근에 터를 잡고 1970~1980년대 급성장한 서울약령시는 1995년 서울시로부터 정식 한약시장으로 승인받아 서울약령시 대축제를 하는 등 전국 최고의 약령시장으로 성장했다. 최근 대체 건강식품 발달 등으로 한의약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지만 서울한방진흥센터를 발판으로 약령시가 한의약 산업 제2의 르네상스를 열어 간다는 복안이다. 서울한방진흥센터는 관광객들이 침을 맞거나 인삼을 먹어 보는 것은 물론 족욕이나 목 찜질을 즐기고 한방요리도 배울 수 있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전통적인 한방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옥 양식으로 건립했고, 그동안 약령시 이용에 장애로 꼽혀 온 지역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200대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지하 주차장도 조성했다. 서울한방진흥센터 건립은 유 구청장의 동대문 발전 철학과 관련이 있다. 그는 “좋은 도시란 도시가 만들어 온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공동체가 살아 있고, 사람들이 연대하는 그런 도시”라면서 “동대문구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19개의 오래된 대형 전통시장이 자리하는 만큼 전통시장을 부흥시키는 것은 동대문 도시 개발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 구청장은 전통시장 상인들을 유통 재벌들로부터 지켜 낸 주인공으로 불린다. 당초 24시간 풀가동되던 대형마트 영업시간이 오전 10시에서 밤 12시까지로 제한되고, 월 2회 일요일은 의무적으로 문을 닫도록 전통시장 보호 규제가 만들어진 데는 유 구청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동대문구 유통기업 상생 발전 및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처음 내놨다. 롯데, 신세계,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이에 반발해 영업시간 제한 처분 취소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이 2015년 동대문구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운영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한방진흥센터 건립도 서민 경제를 살리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나온 작품이다. 유 구청장은 미래를 지향하는 개발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연내 착공하는 청량리4구역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동대문구의 위상이 크게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 청량리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청량리역 인근에 65층 규모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 백화점 등을 갖춘 42층 건물이 연내 착공하고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여층 규모의 주상복합 4개 동이 들어선다. 서울의 대표 부도심인 청량리는 집창촌 형성과 함께 주변 지역에 교통 거점이 속속 생겨나며 역할이 퇴색됐지만 청량리4구역 재개발 사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과거 전성기 시절을 넘어서는 위상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량리역과 가까운 전농11구역과 답십리18구역을 포함해 지역 내 50여곳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특히 동대문구 홍릉연구단지 내에 들어서는 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 격인 ‘서울바이오허브’ 조성 작업이 속도를 냄에 따라 젊은 일꾼들이 모이는 도시로 변신 중이다. 내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서울바이오허브는 병원·기업·연구소를 모아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주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려대병원, 경희대병원 등의 연구기관·병원뿐 아니라 100개 이상 벤처기업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이 홍릉 바이오 허브 입주를 검토 중이다. 이달 들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리모델링한 허브 본관 건물이 입주를 시작한 가운데 문화 벤처기업의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시연장도 오픈했다.유 구청장은 문화를 활용해 경제 가치를 만드는 ‘컬처노믹스’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연내 삼국시대 유적인 배봉산 보루성의 역사적 의미를 살린 테마공원을 완성하는 게 대표적이다. 보루(堡壘)란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낮은 봉우리에 쌓은 소형 석축산성으로, 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이다. 구는 지난해 9월 사도세자의 처음 무덤 터였던 배봉산 정상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다가 고구려 유적인 배봉산 보루성을 발굴해 지난 2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받고 이곳을 서울의 명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앞서 2015년 선농단 역사유적 정비 사업으로 선농단 역사문화공원과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개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풍년 기원 제사를 올리던 선농단을 고증자료를 통해 복원하면서 선농단 역사문화공원을 만들고 그 지하에 선농단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할 수 있는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건립했다. 구는 매해 4월 선농대제 행사를 벌이는 것은 물론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 농사와 관련된 이론교육 프로그램인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는 등 사람들을 동대문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유 구청장은 “민주화운동 정신을 삶의 근간으로 삼아 온 만큼 봉사의 마음으로 지역 발전에 힘써 왔다”며 “존경받는 동대문의 이웃으로 남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누구 부마항쟁 당시 동아대 시위 주도… 민주화 인사 출신 전남 나주 출신인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1979년 10·17 부마항쟁 당시 동아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수배령을 받고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듬해 발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검거돼 고문을 당한 민주화 인사 출신이다. 1985년 김영삼·김대중을 공동의장으로 출범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선전부장을 시작으로 동대문이 지역구인 민주당 최훈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동대문을 제2의 고향 삼아 민선 2기에 이어 5~6기 구청장을 맡고 있다.
  •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베토벤으로 맺어진 피아노의 대가들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베토벤으로 맺어진 피아노의 대가들

    자타 공인의 국가대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멋진 도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가 7일간 8회의 연주를 통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10년 만의 재시도였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악성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은 필생의 기록들을 연주자의 역량을 총동원해 풀어 낸 일흔 살 노대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작곡가가 토해 낸 온갖 종류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표들을 한 땀 한 땀 짚어 가는 연주를 들으면서 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 작업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피아니스트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흔히 ‘신약성서’에 비유되며, 피아노를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작품 대부분을 공부한다. 그런 면에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의 공로는 크게 기억돼야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슈나벨은 베토벤의 소나타들이 크게 인기가 없던 20세기 초부터 많은 연구와 실험이 동반된 탁월한 해석의 베토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고, 1927년 작곡가 서거 100주년을 비롯해 그 후 여러 차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무대를 가졌다. 아울러 1935년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베토벤의 소나타 32곡의 녹음도 발표했는데 이는 전곡 녹음의 첫 기록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자세한 주석과 설명이 들어 있는 베토벤 소나타 편집 악보를 만들어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후대에 알리기도 한 슈나벨은 지금까지도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베토벤의 소나타가 ‘신약성서’라면 ‘구약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모음곡집이다. 전 48곡으로 구성돼 있는 이 작품은 작곡 당시였던 바로크 후기에 막 시작된 조율 방법인 ‘평균율’의 실질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연습곡집이다. 대위법의 대가였던 바흐가 만든 다성음악(둘 이상의 선율이 동시에 나타나는 음악)의 표준이 되는 이 곡집을 최초로 녹음한 사람은 슈나벨의 동료였던 스위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1886~1960)였다. 1936년 발표된 평균율 모음곡집 앨범은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바흐의 작품을 연구한 피셔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소중한 증거다. 그의 해석은 다양한 음색 변화와 적절한 템포 설정을 통해 작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생동감 있는 연주로 대변된다. 피셔는 베토벤의 연주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슈나벨의 스타일이 꼼꼼한 고증과 자신의 주관이 섞인 고집스러운 것이었다면 피셔의 그것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로맨틱한 풍모가 두드러졌다고 하겠다. 피셔의 제자로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고스란히 계승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1931~)이다. 1948년 데뷔한 브렌델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있었던 피셔와의 마스터클래스가 자신의 음악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지만 브렌델은 꾸준한 음반 제작으로 천천히 명성을 얻은 연주자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앨범은 무려 세 차례나 완성해 20세기 후반 가장 권위 있는 베토벤 해석의 기준이 됐다. 브렌델의 스타일은 철저히 악보와 그것을 만든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연주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즉흥적인 악상을 내보이거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 건실한 자세를 유지한다. 40대에 들어서 자신의 입지를 알린 대기만성형의 연주자 브렌델은 베토벤 외에도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에 깊은 애정을 보이며 작곡가의 알려지지 않았던 레퍼토리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혜안을 지녔던 피아노의 대가들이 유독 베토벤에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서른두 곡의 걸작들에 평생에 거쳐 쌓아 온 예술 혼이 차곡차곡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베토벤과 함께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여행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행보임이 분명하다.
  • ‘병원선’ 간호사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 논란 “의상 교체하겠다”

    ‘병원선’ 간호사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 논란 “의상 교체하겠다”

    ‘병원선’이 간호사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지난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극본 윤선주, 연출 박재범)은 극 중 간호사들의 외모와 행동을 현실과 다르게 표현해 비하했다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선’에 등장하는 간호사들은 비현실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해 논란을 키웠다. 병원선에 막 부임한 신참 간호사 유아림(권민아)은 몸에 붙는 상의와 짧은 스커트 복장을 하고 있다. 실제 간호사들은 대부분 바지를 입고 있다. ‘병원선’에 등장하는 간호사의 복장은 한 눈에 봐도 업무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라는 점이 지적을 받고 있다. 또 극 중에서 간호사들을 무능한 존재로 표현한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간호사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거나 환자의 개인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위급상황에서 환자를 회피하는 모습 등이 그려졌다. 이를 두고 현실의 간호사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간호사가 의사 앞에서 쩔쩔 매거나 환자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등 협력이 아닌 상하관계를 강조한 장면도 간호사들을 불편케 했다.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간호사와 간호사의 가족 등이 드라마를 비판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글이 쏟아졌다. 이들은 ‘간호사는 의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발 간호사 이미지를 깎지 말아주세요’ ‘간호사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건가요’ ‘병원에서 하루 정도 있어 보고 써주세요’ 라고 호소했다. 이에 4일 ‘병원선’ 측은 7일 목요일 방송되는 7회부터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해 간호사 복장을 치마에서 바지로 바꾸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증을 더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병원선’은 인프라가 부족한 섬에서 배를 타고 의료 활동을 펼치는 의사들이 섬마을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소통하며 ‘진짜’ 의사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하지원, 강민혁, 이서원, 김인식, 권민아, 이한위, 김광규, 정경순 등이 출연한다.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윤내현(78) 단국대 명예교수. 그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였다. 그가 한국 고대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말 하버드대 옌칭(燕京)연구소에서 충격적 사실을 목도한 뒤부터다. 서고에 쌓여 있는 중국 사서 내용이 당시 남한에서 사실(史實)로 통용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진실에 대한 갈구 때문에 한국 고대사로 영역을 넓혔고 이후 40년간 ‘기자조선고’를 시작으로 ‘고조선 연구’ 등 방대한 저술을 내놓았다.우리 역사학계에 윤 교수처럼 광범위한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인용한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완벽한 중국어 덕분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조선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흐르고 있는 난하(鸞河) 유역임을 밝혀냈다. 그 통치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이 중국의 요동과 만주 지역을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제국임을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한 이병도 박사와 그의 제자들, 이른바 ‘주류 사학계’로부터 거센 공격에 직면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추종자로 매도당했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이 쓴 ‘고조선사’를 일부 인용한 것을 이유로 종북학자로 몰려 정보기관의 조사도 받아야 했다. 학자적 양심마저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시대,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최근 ‘고조선 연구’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한국사에서 단군조선만큼 시련을 겪은 부분은 없다’고 술회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고대사의 핵심 쟁점인 한사군(漢四郡) 위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가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남한 사학계에 통용되던 평양 일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난하 동쪽이었다. 이는 단채 신채호나 위당 정인보, 성호 이익 등이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 사학계에서 참으로 ‘위험한 주장’으로 통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 사학계의 태두는 이병도·신석호 박사다.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인물들로 후에 학술원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사학계에 막강한 인맥을 만들었다.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의 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신화로 폄하했고 공간 축소를 위해 한사군의 위치를 이용했다.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낙랑군의 군치(郡治)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박사 등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낙랑군 수성현 위치와 관련해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28자의 말을 남겼다. 그 역시 정확한 사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낙랑군 유물과 관련해 점제현 신사비 등 다수가 일제 날조설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완용의 조카로 알려진 이병도 박사는 타계 3년 전인 1986년 조선일보에 기고문을 보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이며 고대사는 복원돼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식민사관에 기여한 학자로서 말년의 ‘양심선언’이었지만 이미 사학계의 중추 세력이 된 제자들은 그를 ‘노망’으로 몰았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역사의 검증’을 이야기했다가 사학계로부터 호된 비판을 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우리 사학계가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일제가 주장해 온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반박하는 등의 공로 등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곡된 실증사학이 날조해 낸 타율성과 정체성이란 식민사관의 핵심 프레임 자체를 깨지 못했다. 해방 후 70여년이 지났어도 왜곡의 유산을 청산 못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그 폐해는 너무도 크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다.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윤내현 교수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당당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작업,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oilman@seoul.co.kr
  • “가야사 복원 조사·연구작업 균형잡을 것”

    “가야사 복원 조사·연구작업 균형잡을 것”

    행정 미숙 성찰… 어보 전수조사 “반구대 암각화 보존 숙고해야”“문화재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 주는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한번 손상되면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철학으로 조사와 연구를 내실화하고 행정의 책임성, 전문성을 높이겠습니다.” 김종진(61) 신임 문화재청장이 31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취임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증서 분실과 덕종어보 제작 시기 수정 논란으로 문화재 보존·관리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었다. 이에 대해 김 청장은 “이런 논란들은 문화재를 더욱 세심하게 연구, 보존, 관리하라는 질책으로 알고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며 “인증서는 자체 조사를 통해 담당 과에서 보관하던 것을 문화재청 기록관으로 옮겨 보관하도록 관리 체계를 바꿨고, 어보는 2019년까지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사 복원의 조사·연구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가야 유적의 조사 연구 및 보존·관리를 위해 문화재청 차장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조만간 자문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김 청장은 “언론에 나오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반응은 과한 측면이 있고, 가야사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 같다”고 우려하며 “유적의 보수와 복원은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해야 하는 만큼 우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내년 상반기까지 문헌과 자료를 목록화해 가치를 평가할 예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심의 등 쉽게 결론 나지 않는 현안도 산적해 있다. 김 청장은 “반구대 암각화는 물 부족을 호소하는 울산시와 물을 관리하는 부처,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청이 모두 연관돼 정부 갈등 관리 과제로 포함돼 있는 만큼 논의가 성숙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사업 허가 결정을 내린 오색케이블카에 대해서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을 문화재·경제·법률 분야 전문가들과 면밀히 검토해 결과가 나오면 문화재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최종 판단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임명된 김 청장은 전주고를 졸업하고 1975년 김제시의 지방직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문화재청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1년 7급 공채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일한 이후 2014년까지 문화재청 차장을 지내는 등 줄곧 문화재 업무를 맡아 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금천구, 지역 음식적 위생등급 평가

    금천구, 지역 음식적 위생등급 평가

    서울 금천구에서 지역 음식점의 위생상태 등급을 평가해 전면 공개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른바 ‘음식점 위생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이다.소비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을 선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동시에 지역 음식점 전체의 위생수준 향상을 도모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위생등급제 지정을 희망하는 업소는 ‘매우우수’, ‘우수’, ‘좋음’ 3단계로 나눠진 위생등급 중 하나를 지정해 신청하면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에서 음식점 현장을 방문해 평가항목과 기준에 따라 등급을 부여한다. 평가항목은 기본·일반·공통 분야로 평균 70여개다. 등급 지정 신청은 구 홈페이지(www.geumcheon.go.kr)에서 서식을 내려받은 후 작성해 위생등급 자율평가 결과서, 영업신고증과 함께 구청 위생과로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www.foodsafetykorea.go.kr)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위생등급 평가결과는 신청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나온다. 등급 유효기간은 지정된 날로부터 2년이다. 위생등급 지정 업소는 2년간 출입·검사 면제, 위생등급 표지판 제공, 음식점 위생시설 개선에 필요한 융자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음식점 위생등급제 지정 신청에 많은 업주들이 참여해 우리 구 음식점 위생수준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런웨이 조선] 가장 기쁜 날도 가장 슬픈 날도 함께한 ‘인생 예복’

    [런웨이 조선] 가장 기쁜 날도 가장 슬픈 날도 함께한 ‘인생 예복’

    시속(時俗)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현대인은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렇다면 선현들은 궁금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들은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 해결하거나 스스로 옛것을 고증하면서 그 연원을 찾았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시속은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그럼에도 예를 실천하고 지켜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사람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하나로 합쳐지는 대동(大同)의 풍속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늘 패션이 있었다.조선의 유학자 박만선(朴萬善)은 혼인할 때와 죽어 무덤에 들어갈 때 어떤 복장을 해야 할지 좀처럼 기준이 서지 않았다. 그즈음 시속의 여인들은 두 경우 모두 ‘원삼’(圓衫)을 입곤 했는데 이것이 과연 예에 합당한지, 또 허리띠는 어떻게 생긴 것을 해야 예법에 맞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바로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예학자인 송시열에게 글을 보냈다. 이에 송시열은 “명백하게 혼사와 상사에는 옷을 구분하여 입어야 한다. 혼사에는 염의(?衣)를 입고, 상사에는 심의(深衣)를 입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으며, “허리띠도 각각의 옷에 맞는 것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학자로서 당연한 답변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학자 심의에 붉은 띠 두른 혼례복 그렇다면 송시열이 말한 혼사에 입는 ‘염의’와 상사에 입는다는 ‘심의’는 어떤 옷일까. 이 두 옷의 기원은 모두 심의에서 출발한다. 심의는 유학자에게 최고의 예복(禮服)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따로 마름질하여 허리에서 연결한 포(袍)다. 특히 심의는 깃, 소매 끝, 옷자락의 가장자리에 검은색의 선을 둘러 꾸민다. 혼사에 입는 염의는 여기에 붉은색 선을 둘러 혼례복으로서의 의미를 더한다. 두 옷이 똑같은 형태로 선의 색깔만 다를 뿐이다. 예복에서의 허리띠는 단순히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실용적인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띠를 묶지 않게 되면 옷이 풀어지고 가슴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창피(猖披)다. 그러니 당시 예학자들에게 있어 띠는 예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심의에 두르는 허리띠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흰색의 허리띠에는 심의에서와 같이 가장자리에 검은색의 선을 두른다. 허리띠 전체에 검은색의 선을 두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허리 부분은 빼고 허리띠를 묶는 부분과 묶고 난 후 아래로 늘어뜨려진 부분에만 선을 두른다. 옷을 꾸몄을 뿐 아니라 입었을 때 흑백의 조화가 유학자의 모습을 보다 경건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 준다. 염의는 혼례복이다. 경건함보다는 밝고 화려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심의에 두른 검은색 대신 붉은색을 두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같은 옷에서 출발했지만 의미에 따라 장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예복으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땅으로 시집가는 날’ 상례복으로도 그런데 문제는 원삼이다. 김장생(1548~1631)의 ‘사계전서’에는 “부인의 상(喪)에 대수(大袖)를 입는다”고 하면서 대수는 원삼이라고 했다. 또 그의 아들 김집도 ‘신독재유고’에서 “수의로 원삼에 대대(大帶)를 사용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했다. 그러니 송시열 이전부터도 이미 혼례복인 원삼을 상사에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원삼이 어떤 옷이기에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에도 입고 가장 슬픈 날에도 입게 된 것일까.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원삼은 외재 이단하(1625~1689)의 부인이 입었던 옷이다. 원삼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옷깃을 맞대어 둥글게 만들었으며, 좌우 깃이 포개지지 않고 앞 중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대금(對襟)이다. 또한 앞이 뒤보다 짧으며, 앞길과 뒷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터져 있다. 소매 끝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색의 색동을 달고 마지막에 흰색의 한삼을 달았다. 특히 어깨와 소매, 앞·뒷길의 끝부분에 금박을 하고, 가슴과 등에 흉배를 붙여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더욱이 긴 허리띠는 뒷자락과 함께 늘어져 뒷모습까지 품위를 드러낸다. 크고 긴 소매와 길게 늘어진 옷자락과 허리띠. 화려한 금박 등의 장식은 의식을 보다 성대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조선 후기 이재가 쓴 ‘사례편람’에는 “원삼은 큰 옷으로 색깔 있는 견(絹)이나 명주로 만들며, 이른바 가례(嘉禮)의 대수(大袖)”라고 했던 것처럼 화려한 원삼은 여전히 상복으로 기능했다.분명 혼례복이 있고, 상례복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혼례복을 상례에 입혔을까. 이는 죽음을 ‘땅으로 시집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든, 땅으로 시집을 가든 혼사와 관계된 일이니 혼례 때 입었던 원삼을 수의로 입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시대가 바뀌며 옷의 형태가 바뀌고 명칭이 달라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옷이 갖고 있는 의미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생각으로 재탄생하는 복식이야말로 예를 지켜 나가는 새로운 방법일 것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100년만에 발굴되는 아라가야시대 왕 무덤에서 어떤 유물 나올지 관심

    경남 함안군 말이산 일원에 조성돼 있는 아라가야시대 고분군 가운데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는 최고 유력자 무덤으로 추정되는 13호분에 대한 발굴이 추진돼 관심이 쏠린다. 8일 함안군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말이산 1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및 정비사업을 최근 확정했다. 군은 말이산 13호분이 봉분 정상부를 중심으로 침하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원인 규명과 정비 계획을 세워 문화재청에 긴급 정비를 요청해 문화재청이 우선 사업비 1억원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군은 13호 고분 발굴조사를 위한 자문위원회를 열고 발굴·조사 및 복원 방향과 세부방법 등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13호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 가운데 4호분 다음으로 두번째 큰 무덤이다. 말이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무덤 직경이 39.7m, 높이 9.7m에 이른다. 13호분은 1918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사업 대상에 포함돼 무분별하게 발굴이 됐다. 당시 발굴작업과 관련해 사진 3장과 간단한 도면 2장만 남아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이 없어 고분 절반쯤이 발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1970년대 봉분만 복원됐다. 역사학계에서는 일제 시대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출토된 유물은 일본 등으로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군과 학계는 대형 고분인 13호분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아라가야시대 역사 연구·고증에 중요한 사료가 될 중요한 유물이 나올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다. 자문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말이산13호분 발굴·조사는 가야의 역사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말이산13호분 발굴은 현재 추진 중인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철저한 조사기록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 잘 보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군은 조만간 발굴조사 기관을 선정해 늦어도 내년 초부터 발굴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발굴·정비·복원에는 2년여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군 관계자는 “2018년은 말이산13호분 조사 100년이 되는 해로 일제강점기에 유린당한 13호분을 가야사 연구복원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100년 만에 정식으로 다시 발굴 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군은 13호분 발굴작업을 통해 아라가야 관련 새 유물이 발견되면 가야사 연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발 70m 야산인 함안 말이산 일원에는 아라가야시대 왕들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봉분 1000여기가 2㎞에 걸쳐 모여 있다. 37기는 봉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무덤 호수를 붙여 관리하고 있으며 100여기는 봉분 흔적이 남아 있다. 199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의 말 갑옷이 발굴되는 등 한반도 철기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함안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기고] 오장환의 책 사랑/이근배 시인

    [기고] 오장환의 책 사랑/이근배 시인

    종이책의 위기를 사람들은 말한다. 문 앞에까지 와 있는 4차 산업사회를 앞두고 날로 팽창하는 인터넷과 전자출판이 인쇄 출판을 크게 위축시킬 거라는 것이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만년필로 글을 쓰고 고서(古書) 경매장을 기웃거리며 항일기, 해방공간에 나온 시집, 소설, 잡지들에 눈독 들이는 나로서는 종이책의 생명력을 깎아내리는 데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마침 이 여름 9월 3일까지 한글박물관에서는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이야기’라는 제목을 내걸고 기획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더위를 식히려 산으로 바다로 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들 손잡고 가서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가도 깨우치고 김천택이라는 소리꾼이 1728년에 처음으로 엮어냈다는 먼 옛날부터 이 나라의 큰 시인들이 짓고 노래한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 진본도 만나볼 일이다. 한글박물관이 어렵사리 찾아내서 소장하게 된 이 ‘청구영언’ 진본은 항일기에 시집 ‘성벽’ ‘헌사’ 등을 펴냈고, ‘남만서고’(南蠻書庫)라는 출판사도 꾸렸던 오장환(吳章煥 1918-?) 시인이 발굴하여 아끼던 책이다. 청구영언은 아예 판본은 없고 필사본만 전해 오는데 최남선의 ‘육당본’(六堂本) 이병기(李秉岐)의 ‘가람본’ 이희승의 ‘일석본’(一石本) 등 여러 책이 있으나 학자들의 고증으로 ‘오장환본’이 저자인 ‘김천택 소장본’으로 추정, 이 책을 ‘진본’으로 이름하고 전쟁 두 해 전인 1948년 5월 조선진서간행회에서 500부 한정판을 찍어 내기도 하였다. 오장환이 북으로 가면서 남겨두고 간 책이 고서 전문가이신 통문관 이겸로(李謙魯·1909-2006) 선생의 손에 잡혔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서야 육당, 가람 같은 고가 연구가도 아닌 오장환이 왜 진본 ‘청구영언’을 애장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1991년 서정주의 ‘화사집(花蛇集) 50년제’가 열릴 때 한 출판사가 나서서 특제본 100권 중 35권을 명월관 기생이 치마폭에 붉은 실로 ‘花蛇集’ 석 자를 수놓아 표지 뒷등을 쌌다는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물론 김광균 시인 등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았어도 나오지 않았었다. 그 전설 같은 책이 몇 해 전 나타나서 내가 잡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그렇게 호사를 부려서 서정주의 ‘화사집’을 출판해준 이가 남만서고 주인 오장환이었다. 도대체 그는 자신의 시집도 아닌 등단으로는 3년 후배인 신인의 시집을 꾸미는 데 온갖 치장을 하였을까. 그의 수필 ‘애서취미’(愛書趣味)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조선에도 한정판구락부 같은 것을 만들어 춘향전이라든가 용비어천가 같은 고전 혹은 현대 작가들의 소설집이나 시집 같은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1939·문장 3월호) 도쿄 유학 시절 서양에서 가죽 제본 등 호화 장정책이 만들어지고 희귀본이 높은 값에 팔리는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그 꿈을 키워 ‘화사집’, 진본 ‘청구영언’ 등 한정판 출판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고향 충북 보은에 ‘오장환문학관’이 문을 열고 한글박물관에는 그토록 아끼던 ‘청구영언’이 날개를 펼치니 오장환의 책 사랑 아주 오래 남겠구나.
  • 압도한 무대 아쉬운 뒷심

    압도한 무대 아쉬운 뒷심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역사상 가장 강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위대한 영웅. 가난한 자도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앞장섰지만 결국 권력에 눈이 먼 세속적인 인간. 평생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한 순정의 남자. 이렇듯 다양한 얼굴을 지닌 남자의 삶이란 얼마나 극적이었을지. 지금까지 역사의 아이콘으로 사람들 입에 불려나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무대 위에 올랐다.뮤지컬 ‘나폴레옹’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8세기 유럽에서 툴롱 전투, 이집트 원정, 마렝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스스로 프랑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인생을 그린다. 900여편의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집필한 작가 앤드루 새비스턴과 미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작곡가 티머시 윌리엄스가 힘을 모은 작품이다. 1994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영국 웨스트엔드, 독일에서 공연되었으며 아시아 최초로 국내 무대에 올랐다. 제작비 60억원이 투입된 대작답게 화려한 배우진을 비롯해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제작한 무대와 의상,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 앙상블들의 칼군무 등이 버무려져 3시간 내내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극은 나폴레옹의 조력가였던 정치가 탈레랑의 시선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펼친 전략가와 혁명이 낳은 폭군이라는 논쟁적인 평가를 받는 한 남자의 복잡다단한 면을 고르게 풀어낸다. 1막에서는 코르시카 작은 섬의 하급 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신분 차별과 열등감을 딛고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시민 혁명의 정신을 유럽에 전파하고자 고군분투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또 ‘영원한 연인’으로 불린 조세핀과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 모습과 탈레랑의 도움을 받아 황제에 오르는 장면까지 숨가쁘게 진행된다. 특히 1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관식 장면에서는 나폴레옹을 찬미하는 작품을 여러 점 남긴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그림을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작품이다 보니 대사를 통한 배경 설명이 제법 많은 편이지만 탈레랑의 보좌관인 푸셰와 가라우 등 조연들의 재치 있는 입담과 맛깔나는 감초 연기가 작품에 쉴 틈을 마련한다. 2막에서는 잇따른 승리에 도취한 나폴레옹이 러시아, 영국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 뒤 점차 몰락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1막에 비해 극 전개가 어수선해 결론까지 나아가는 데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그 탓에 나폴레옹이 섬에 유배됐을 당시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로 조세핀을 그리워할 때의 처절함이나 유배지를 탈출해 전장의 선봉에 선 그가 병사들을 독려하는 모습에서의 강인한 의지가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를 장악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이 작품의 결을 살린다. 나폴레옹은 2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복귀한 임태경을 비롯해 한지상, 마이클 리가 연기한다. 서로 다른 매력 덕분에 3인 3색의 나폴레옹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임태경은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안정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조세핀을 맡은 뮤지컬 디바 정선아와 탈레랑을 맡은 정상윤의 시원한 가창력 역시 돋보였다. 10월 22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4만원. 1577-3363.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임진왜란 1592’ 한국방송대상..‘김과장’ 남궁민·방탄소년단 등 수상

    ‘임진왜란 1592’ 한국방송대상..‘김과장’ 남궁민·방탄소년단 등 수상

    ‘한국의 에미상(Emmy Award)’이라고 불리는 한국방송대상의 올해 최고 영예는 KBS의 ‘임진왜란 1592’ 5부작에 돌아갔다. 한국방송대상을 주최하는 한국방송협회는 31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24인의 심사위원단(예심 15명, 본심 9명)이 엄정히 선정한 대상작과 작품상 23개 부문 24편, 개인상 21인을 발표했다. ‘임진왜란 1592’ 5부작은 국내에서는 본격화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르인 ‘팩츄얼드라마(factual drama)’ 형식을 과감히 도입해 동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국제 전쟁인 임진왜란을 철저한 고증과 흡인력 높은 스토리텔링, 스펙터클한 영상미로 재조명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단은 전통적 다큐멘터리 방식을 벗어난 참신한 시도로 장르적 다양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확보했고, 동시에 높은 작품 완성도를 달성한 점을 대상 선정의 이유로 꼽았다. ‘임진왜란 1592’는 한국방송대상 선정 이전에도 ‘뉴욕 Film&TV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금상 및 촬영상, ‘휴스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외 작품상 수상작으로는 △시사보도TV부문 SBS ‘그것이 알고싶다-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의 진실’ △다큐멘터리TV부문 MBC ‘휴먼다큐 사랑-나의 이름은 신성혁’ 2부작 △문화예술부문 KBS ‘환생’ 2부작 △생활정보TV부문 EBS ‘명의-병이 되는 잠,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중단편드라마부문 KBS수목미니시리즈 ‘김과장’ △예능버라이어티부문 MBC ‘무한도전-역사X힙합 프로젝트 위대한 유산’ △연예오락TV부문 SBS ‘미운 우리 새끼’ △연예오락R부문 TBS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 △지역다큐멘터리TV부문 TBC ‘풍정라디오’, 포항MBC ‘독도DNA’ △지역다큐멘터리R부문 KNN ‘배리어프리 오페라’ 6부작 등 총 24편이 선정됐다. 개인상 수상자로는 △공로상 ‘배우 故 김영애’, ‘운군일 PD’ △지역방송진흥상 박원달(TBC) △기술진흥상 정화섭(KBS) △영상그래픽상 정현규(MBC) △아나운서상 이상희(OBS) △진행자상 한동준(CBS) △작가상 ‘그것이 알고싶다’ 작가진(SBS) △연기자상 남궁민(KBS ‘김과장’ 출연) △코미디언상 이수지(KBS ‘개그콘서트’ 출연) △가수상 방탄소년단 등 21인이 선정됐다. 제44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은 ‘방송의 날’에 맞춰, 오는 9월 4일 월요일 KBS홀에서 개최되고 KBS1TV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논란의 바다 위 ‘군함도’

    논란의 바다 위 ‘군함도’

    영화 ‘군함도’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지난 26일 개봉 이후 배우들의 명연기에 호평이 쏟아지지만 동시에 역사 왜곡, 평점 테러, 스크린 독과점 등 각종 논란도 이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영화를 보고 나온 김모(38)씨는 “영화가 조선인 강제 징용의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총질만 해대는 전쟁영화였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대로 최모(37)씨는 “우리 조상이 겪었던 비극적 현실을 잘 묘사한 것 같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이렇게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는 영화의 장르에 대한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흥행성을 강조한 ‘대중영화’로 보면 역사적 의미가 조금은 덜해도 충분히 후한 평가를 내릴 만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폭로한다는 데 방점을 찍어 보면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역사에 해박한 관람객일수록 영화 ‘군함도’에 혹평을 내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평가의 연장선에서 ‘네이버 영화 평점’ 조작설도 불거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군함도’의 네티즌 평점은 개봉 전 8점대를 기록하다 개봉 후 4점대로 뚝 떨어졌다. 일부 극우 성향의 네티즌들이 조직적으로 평점을 조작하고 있다는 풍문도 돈다. 인터넷에서 악평을 내놓는 이들 상당수는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상업성 영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한국과 일본 간 ‘역사 왜곡’ 논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일본 측이 “단순한 창작물에 불과하다. 허구이고 왜곡된 역사”라며 극렬하게 반발하고, 우리 외교부가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반박하는 형국이다. 결국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까지 나서 이날 입장문을 냈다. 그는 “일본이 저의 발언 중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했다’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창작물’이라는 워딩만 왜곡해 편의대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안타깝고 분노가 치민다”고 밝혔다. 류 감독은 또 영화가 일본의 만행 고발이 아닌 ‘탈출 영화’라는 비판에 대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대탈출’이라는 콘셉트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흥행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개봉 첫날 사상 최대인 2027개의 스크린을 독점한 데 따른 ‘만들어진’ 흥행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서너 개의 대기업이 영화 제작과 배급, 극장을 장악해 특정 영화를 흥행 순위 1위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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