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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백범과 대한민국 경찰/홍원식 국립 경찰보안연수원 외래교수

    [기고] 백범과 대한민국 경찰/홍원식 국립 경찰보안연수원 외래교수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산 역사인 백범 김구 주석은 서산대사가 지은 이 시를 친필 휘호로 써서 소중한 지인들에게 전하곤 하였다. 위기에 처한 국가 지도자로서, 짧고 간결하되 확고부동하게 함축된 공직관 또는 국가관을 이 시를 통해서 자각하고 전파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경찰의 날인 오늘(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경찰청장이었던 백범 선생의 경찰관(觀)을 본보기 삼아 살펴보고자 한다. 백범은 일본군 현역 장교를 명성황후 시해범으로 간주하고 맨손으로 처단하며 일약 전국적 명사가 되었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구사일생하여 안창호 선생 등과 교육계몽운동에 동참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게 된 백범은 학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호 선생을 위시한 임정요인들은 백범을 임시정부 초대 행정자치부장관에 기용하고자 뜻을 모았으나 백범의 완강한 고사로 허사가 되었다. 백범이 끝내 고사한 행정자치부장관직은 안창호 선생 몫. 대신 백범은 자신보다 두살이나 아래인 안창호 선생의 강권에 의해 초대 경찰청장(경무국장)직을 맡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찰행정은 각별한 신뢰 속에서 구축된 안창호-김구 라인으로 임시정부의 대들보 역할을 해야 했다. 눈 덮인 광야를 걷듯 공직수행을 하며 백범이 가슴에 새겼던 좌우명은 선공후사(先公後私)! 산후조리를 못해 사랑하는 조강지처가 죽어가는 순간과 조금만 타협하면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해방 후에는 물론, 안두희의 흉탄에 암살되는 최후의 순간까지 백범은 이 화두를 놓지 않았다. 국가 지도자로서 백범이 푯대로 삼았던 다른 하나는 ‘내가 곧 대한민국이다.’라는 국가관이었다. 국민은 자신이 처한 현안과 관련하여 마주하는 공직자를 통해서 국가의 실존을 확인하는 법이다. 개개 국민을 민원 현장에서 대하는 공직자들은 ‘내가 곧 대한민국이다.’라는 국가관을 가지고 민원인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백범의 확고한 공직관이었다. 그 덕분일까? 백범은 남북을 넘어 세계 한인 동포들의 가슴에 영원한 사표로 남아 있다.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지배적 다수의 경찰관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안겨주는 경찰관 비리 관련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국민의 존엄하고 행복한 삶과 재산 보호’라는 국가 기능을 그 어떤 공조직보다 맨 앞에서 수행하는 조직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경찰관들은 물론 번화가에서 교통 수신호를 보내고 있는 교통경찰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러한 만큼 경찰에 대한 불신 또는 신뢰는 곧 국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된다. 이 시점에서 경찰 조직 수뇌부가 김구 선생의 공직관에 대한 창조적 재조명 작업과 온-오프라인 교육을 병행함으로써 경찰 조직 내부의 자존감과 국민적 신뢰를 함께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이러한 가운데서 경찰에 대한 처우 증진과 양질의 인력 확보를 위한 경찰관 채용 제도의 개편이 뒤따른다면 더 좋을 것임은 물론이다.
  • 비운의 조선 궁중무희 ‘리진’ 실존인물? 허구인물?

    비운의 조선 궁중무희 ‘리진’ 실존인물? 허구인물?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가 만든 용어 ‘팩션’(Faction). 사실(Fact)과 허구(Fiction) 사이의 줄타기를 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아무래도 긴장은 있다. 역사학자들은 너무 나갔다고 혀를 끌끌 차고, 창작자들은 그 정도는 나가도 된다고 불만이다. 최근 끝난 MBC 사극 ‘동이’도 그랬다. 조선의 왕 숙종을 ‘깨방정’으로 그려내 신선하다는 평을 끌어냈지만, 반대편에서는 엄숙할 숙(肅)자를 쓸 정도로 근엄했던 군주 숙종을 칠칠하지 않게 그린 것을 모독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엔 리진이다. 리진은 구한말 한국 주재 외교관과 사랑에 빠졌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궁중 무희로 알려진 인물이다. 신경숙 등 유명작가의 소설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TV 다큐 프로그램 등으로도 소개되면서 실존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가공된 허구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21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에서 열리는 국학연구회에서 논문 ‘파리의 조선 무희 리진의 역사성’을 발표한다. 먼저 헷갈리는 이름부터.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소설가 김탁환은 2006년 소설 ‘리심’을, 베스트셀러 작가 신경숙은 2007년 소설 ‘리진’을 발표했다. KBS가 2007년 내놓은 다큐 프로그램 ‘한국사전’에도 리심이 등장한다. 여인의 이름이 각각 다른 것은 신경숙은 불어 표기 ‘Li-Tsin’을 그대로 읽어서이고, 김탁환은 Li-Tsin 뒤에 붙은 ‘Fleur d’ame’(flower of mind)라는 설명을 ‘梨心’(리심)이라 풀어 읽었기 때문이다. 두 소설가는 프랑스 파리 등 현지 취재를 거쳐 역사적 인물을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주 교수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두 소설에 따르면 한국 주재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궁중연회 도중 리진이라는 아름다운 무희를 발견한다. 플랑시는 고종 황제에게 애원한 끝에 이 무희를 하사받아 프랑스로 함께 건너간다. 얼마 되지 않아 플랑시는 다시 조선으로 발령받아 돌아오게 된다.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조선 양반 홍종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리진을 다시 궁중 무희로 일하게 한다. 프랑스의 자유문명을 이미 맛본 리진은 절망하며 괴로워하다 끝내 자살하고 만다. 두 작가를 비롯해 리진을 실존 인물로 보는 진영은 그 근거로 프랑스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댕이 쓴 ‘한국에서’(En Coree)를 든다. 플랑시와 비슷한 시기 한국에 근무했던 프랑댕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친구의 얘기’라며 이 책을 썼다. 후대 사람들은 이 친구로 실존 인물인 플랑시를 지목했고, 덩달아 리진도 실존 인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주 교수는 이 기록의 신빙성을 전면 부인한다. 우선 기록자인 프랑댕 자체가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는 그를 불신임했고, 심지어 한국땅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귀스타브 뮈텔 주교도 “역량 있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프랑스 정부가 외교관 신상을 파악해둔 기록에는 플랑시가 미혼으로 나온다. 주 교수는 “외교관이 춤추는 궁중무희에게 반해 여자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도 당시 시대상에 비춰 봤을 때 난센스”라고 주장한다. 남녀분별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에 남자, 그것도 외국인 외교관 앞에서 여자 무희가 춤 추는 일은 없었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여성은 오직 내명부 행사에서만 춤을 선보였다는 것. 주 교수는 “자국 이익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주재국 기생과 결혼한다면 이는 대형 외교 스캔들”이라면서 “뮈텔 주교는 당시 조선에 머물던 외교관들의 인품과 사생활 등을 낱낱이 기록해 뒀는데 그 어디에도 이런 센세이셔널한 스캔들 얘기는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공직 경력에 치명상을 입게 될 플랑시가 여자를 요청했다는 것도, 고종 황제가 이를 허락했다는 것도 상식 밖의 얘기”라고 덧붙였다. 리진을 궁중 무희로 되돌려 놓아 자살로 몰고 갔다는 사람이 홍종우라는 대목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 교수는 지적한다. 홍종우는 개화파 김옥균을 중국에서 암살한 인물이다. 리진이 활동했다는 시기에 홍종우는 프랑스 유학비용을 벌기 위해 일본에서 일하고, 수도원에서 불어를 배운 뒤 김옥균 암살을 위해 중국까지 따라간다. 이 긴박했던 때에 ‘품행이 방정치 못한 궁중 무희’를 응징할 여유가 홍종우에게 있었을까. 조선을 아둔한 미개인의 나라로 간주했던 프랑스인답게 프랑댕은 여자 하나쯤은 외국인에게 아무렇게나 내주는 나라로 조선을 그렸고, 이를 오늘날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게 주 교수의 결론이다. 한마디로 19세기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과 21세기 한국의 센세이셔널리즘 간의 잘못된 만남이 허구 인물 리진을 실존 인물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플러스] 운현궁서 조선 궁중음식전

    종로구(구청장 김영종) 16~17일 운니동 운현궁에서 ‘제4회 조선시대 궁중음식전’을 연다. 조선시대 궁중음식과 한국전통음식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종과 순종의 하루 상차림’을 비롯, 궁중의 연회식인 ‘1868년 진찬의궤 고종5년 신정왕후 회갑잔치상’ 등 궁중의 대표 사계절 음식과 사대부가의 혼례음식 등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보건위생과 731-1357.
  • 板 국악한마당

    板 국악한마당

    여기 음반쟁이 세 명이 있다. 서울 인사동과 청계천 음반가게, 장안평 골동품 상가에서 발품을 팔며 우리 소리가 담긴 음반을 ‘미친 듯’ 모으러 다녔다. 처음에는 취미였는데 어느덧 본업이 돼 버렸다. 이제 세상에 내보이기 부끄럽지 않다. 신개념 국악 공연 ‘반락(盤), 3인 3색 음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양정환(55), 정창관(58), 배연형(53). 1988년 4월19일 대학로였다. ‘옛 음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 번 모입시다.’ 호기 있게 외쳤건만 약속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달랑 3명이었다. 지금부터 22년 전이니 인생에서 한창 바쁠 나이인 30대였다. 그것도 다들 음반에는 문외한이었다. 파투(破鬪)는 시간문제였다. ●22년간 미친듯 사모은 SP·LP·CD 하지만 세 사람의 강단은 주위 예상을 뛰어넘었다. 파투는커녕 서로 도원결의를 다지며 ‘한국고음반연구회’를 만들었다. 일이 점점 커져갔다. 해마다 고음반 전시회를 열고, 자료집을 냈다. 내친 김에 학술지까지 창간했다. 지금은 음반 문헌 분야에서 나름대로 알아주는 학술단체로 꼽힌다. “나랏일 해보겠다고 몇 년을 법률 서적과 씨름도 했고 사진에도 빠져 봤다. 하지만 결국 귀착점은 음반이었다. 틈나면 인사동과 청계천을 휘젓고 다니며 음반을 모았던 취미가 본업이 됐다. 마치 신선놀음하듯.”(양정환 탑예술기획 대표) ●발품팔아 찾아낸 희귀본에 얽힌 사연 13일부터 격주 수요일 오후 8시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에서는 한마당 판이 세 차례 벌어진다. 세 사람이 직접 무대에 올라 제 스스로 깊어진 소리와의 인연을 털어놓는 자리다. 단순한 렉처 콘서트(해설이 있는 콘서트)도, 레코드 감상회도 아니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그러나 세 사람이 악착같이 찾아냈던 음반 한 장 한 장의 향연이다. 음반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은 희귀본만큼이나 소중하다. “‘판소리 한 번 들어볼까’하고 음반을 찾다가 국악 음반이 없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남의 음악(클래식)은 몇 천장이나 되는데 왜 우리 음반은 없을까. 그렇게 시작한 게 지구 상에서 국악 CD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돼 버렸다.”(정창관 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장) 첫 테이프는 LP가 끊는다. 양 대표가 주도하는 ‘옵바는 음반쟁이야’는 1960년대 만담가 고(故) 장소팔·고춘자의 ‘사랑의 잡화상’ 등 오래된 LP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로 꾸며진다. 27일은 정 위원장이 희귀 CD 위주로 ‘잽이 홀린 음반서생’ 무대를 선사한다. 고종이 원각사에서 전화선을 대고 들었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이동백 명창의 ‘새타령’ 등이 준비돼 있다. ●公有物은 세상과 나누는 게 이치 “세월이 흐르면 이 판때기들은 나를 떠날 게다. 음악은 소리나는 것인지라 숨겨놓고 들을 수 없으니 공유물(共有物)일 수밖에 없고, 음반은 대량으로 찍은 것이니 공유물(公有物)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만인의 것이니 만인과 향유함이 세상 이치 아니겠나.”(배연형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 배 교수가 준비한 ‘류성긔판 소리 왓소’의 출발점이다. LP 전(前) 세대인 SP는 ‘78회전 레코드’로 옛 축음기를 통해서 재생된다. 이 공연 날짜는 새달 10일이다. 관람료는 각각 5000원. 하지만 무료나 마찬가지다. 음반에 미친 세 쟁이들이 각각의 공연 특성에 맞춰 선곡, 세 종류의 음반을 직접 제작해 관객에게 나눠줄 요량이기 때문이다. 구하기 힘든 희귀 음원을 거저 소장할 기회다. “공연은 발품으로 명품을 찾는 격정에 찬 여행담이며, 잃어버린 소리의 역사를 복원해가는 노정기(程記)다.” ‘반락’을 연출한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의 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서울 북 페스티벌’ 오세요

    서울시는 28일 책을 주제로 한 ‘서울 북 페스티벌’을 다음달 8~10일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서울 북 페스티벌은 시민들의 방문 편의를 돕기 위해 행사 장소를 기존 경희궁에서 덕수궁으로 바꿨다. ‘북 돋움-한 권의 책, 꿈을 이루게 합니다’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 기간에는 동화 속 이야기를 점토로 재현하는 점토세상, 네팔 등 빈민국 어린이를 위해 책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책장, 헌책을 나누는 벼룩시장,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직업관전 등이 마련된다. 또 고종이 연회를 즐기던 정관헌에서는 유명 작가와 전문 직업인들의 삶과 직업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강연회가 열린다. 중국과 이란 등지의 유명 도서를 구경할 수 있는 ‘세계 문화전’ 등도 곁들여진다. 행사에 참석하려면 홈페이지(www.bookfestival.co.kr)에서 등록한 뒤 현장에서 무료 입장권을 받으면 된다. 홈페이지에 등록하지 않으면 1000원을 내고 덕수궁 입장권을 사야 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역사보다 ‘재미’를 탐했다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역사보다 ‘재미’를 탐했다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이하 적인걸)을 보기 전에 알아둘 역사적 상식 몇 가지. 적인걸은 당나라, 중국 최초 여황제 측천무후 통치기에 재상을 지난 실존 인물이다. 측천무후는 당 태종의 후궁에서 태종의 아들 고종의 황후가 됐고, 아들 황제들의 모후에서 여황제로 등극했다. ‘적인걸’은 당나라 고종 사후, 측천무후가 황제로 등극하기 직전인 690년을 배경으로 한다. 여자 황제의 등극에 반발하는 무리를 공포정치로 다스리던 측천무후(유가령 분)는 황제 즉위식에 맞춰 건축 중이던 120m의 거대 불상에서 신하들이 불에 타 죽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에 직면한다. 이에 측천무후는 8년 전 반역 혐의로 좌천시킨 천재수사관 적인걸(유덕화 분)를 불러들이고 측근 정아(이빙빙 분)와 범죄수사관청 대리사의 순검 배동래(등초 분) 함께 사건을 수사하도록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인걸’은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허구적 재미에 더 초점을 맞췄지만, 팩션(faction)에 가미된 액션과 추리, 부분적인 유머가 러닝타임 2시간을 꽉 채워 지루할 틈이 없다. 출연진과 제작진 역시 훌륭하다. ‘동양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서극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적인걸’에서는 월드스타 유덕화와 배우 양조위의 아내이자 배우인 유가령, 함께 중국 3대 천후로 꼽히는 이빙빙 등이 호흡을 맞췄다. 또 ‘연인’의 양가휘의 진중함과 떠오르는 스타 등초의 알비노(백색증) 캐릭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로맨틱했고,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당나라 시대의 재현 역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영화의 주 배경인 낙양의 왕궁과 거대한 불상, 번화한 거리, 비밀스러운 지하 귀도시가 시선을 끈다. 또한 고증을 통해 되살려낸 웅장한 황실 의복과 화려한 장식들은 즐거운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대부분의 캐릭터가 무술의 고수인 설정(무술감독이 무려 배우 홍금보이니 충분히 많은 무술장면을 넣을 수밖에)이 가끔씩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당나라 낙양의 조감도와 인체 자연발화에 사용된 CG는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완성도를 떨어뜨릴 만큼은 아니다. 10월 7일 국내 개봉 예정. 사진 =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소심’ 산다라박 "문자 답장 안온 멤버번호 삭제" 깜짝 고백▶ 우은미 ‘슈퍼스타K’에 보내는 ‘부탁해’로 가수 데뷔▶ 김가연, 악플러에 일침 "내가 역겨워? 님은 깨끗한 인생?"▶ 김소연 ‘강심장’서 노안 굴욕담 공개…"10대 때 이미 30대"▶ ’타이타닉’ 할머니 배우 글로리아 스튜어트, 100세로 별세
  • 옛 승려들의 장터 ‘승시’ 재현

    고려·조선시대 대형 사찰에서 승려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던 ‘승시’가 팔공산에서 재현된다. 27일 조계종 9교구 본사 동화사 등에 따르면 다음달 1~3일 팔공산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일대에서 승려들의 장터를 복원해 운영할 계획이다. 승시는 ‘승시마당’ ‘전통문화 체험마당’ ‘다도와 사찰음식마당’ ‘전시마당’ ‘전통공연마당’ ‘전래놀이마당’ 등 6개 부문으로 나눠 열린다. 또 태고종 봉원사 무형문화재 50호 스님들의 영산재 공연과 공산농악, 사찰학춤, 선무도 등의 화려한 공연무대도 이어진다. 아울러 행사기간 동안 12지신 등을 형상화한 대형 전통등을 밤마다 밝혀 색다른 볼거리도 제공한다. 동화사 관계자는 “불자와 일반인이 많이 와서 전통문화의 맥을 느끼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진주 중안초교 개교 115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경남 진주 중안초등학교가 24일 개교 115주년을 맞았다. 중안초교는 1895년 고종의 소학교령에 따라 ‘경상우도 소학교’로 출발했다. 그 뒤 진주공립소학교, 제일공립보통학교, 진주중안공립국민학교(1945년) 등으로 여러 차례 교명이 바뀌었다. 올해까지 110회에 걸쳐 2만 622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중안초교는 1909년에 여자부(여학급)가 설치돼 우리나라 최초의 남여공학 공립 초등학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는 서울 경운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로 중안초교보다 1년 빠르다. 진주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드럼통을 車로 바꾸는 한민족의 神技

    “전쟁통에 쏟아져 나온 군용 폐차를 불하받아 망치로 드럼통을 펴서 버스, 트럭, 합승택시를 만드는 ‘군용 폐차 재생시대’를 맞은 것이다. 부숴진 군용차 부속품들과 드럼통, 산소용접기, 망치들이 천막 속으로 들어간 후, 며칠 만에 자동차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본 미군들은 깜짝 놀라며 한국 사람들은 신기(神技)를 가졌다며 감탄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올라 선 한민족의 근성과 재주는 이렇게 싹이 텄다. 한국 자동차 110년간의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고종 캐딜락을 타다’(인물과사상사 펴냄)가 알려주는 사실이다. 연간 350만대의 자동차 생산,그 중 214만대를 수출, 국내 등록 자동차 대수 176만대. 명실상부 ‘자동차 대국’으로 올라선 우리나라의 시작은 소박했다. 글쓴이는 유명한 자동차 마니아. 30년간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한 뒤 18년째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를 운영해오고 있는 전영선씨다. 그가 50년간 쌓아온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풀어낸 책은 우리나라 자동차의 모든 것을 담은 역사서에 다름 아니다. 역사서라 했지만 딱딱하지 않다. 1899년 4월 서울 장안에 전차가 처음 등장한 이래 자동차가 근대화, 산업화의 역군이 되기까지, 자동차에 얽힌 다양한 일화와 인물들의 사연은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중간중간 삽입돼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사진들 또한 매력이 철철 넘친다. 첫 장에 나오는 전차 이야기부터 흥미를 유발한다. ‘쇠 당나귀’로 불리며 전차가 미움을 샀던 것은 비싼 차비도 한몫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전이던 시절 전차를 타려면 5전이 필요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집 자식들의 허세는 똑같은 듯. 부잣집 도령들은 하릴없이 하루종일 전차를 타고 노닥거려 울화를 치밀게 만들었다. 지금의 해외여행처럼 부모님을 위한 ‘효도 전차계’가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탄 사람은 고종. 형편이 안 된다며 본인은 만류했지만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40년간 권좌를 지켜낸 임금이 대견했는지 신하들의 강한 권유로 4인용 자동차가 수입됐다. 책 제목에는 캐딜락이라고 표현했지만 저자는 1920년 당시 포드나 캐딜락은 4인용 자동차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유럽에서 들여왔을 거라고 결론짓고 있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는 누구의 손에서 빚어졌을까. 바로 최무성 형제다. 재료는? 역시 드럼통이었다. 그뿐 아니다. 자동차 엔진을 처음 만든 김영삼, 드럼통을 펴서 만든 버스를 수출까지 한 하동환, 양키트럭을 개조해 국산 승용차 2호 ‘신성호’를 만든 김창원, 기아산업의 창업자 김철호, 현대자동차 왕국의 주춧돌을 놓은 정주영까지 자동차 신화를 쓴 개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가슴 뻐근한 자부심과 감동을 준다. 1만 5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한가위, 서울은 축제 한마당

    한가위, 서울은 축제 한마당

    “추석에 고향에 갈 수 없다면 서울서 맘껏 즐기세요.” 서울시가 한가위를 맞아 시내 곳곳에서 다채로운 예술공연과 전통문화 체험 무대를 마련한다고 12일 밝혔다. 예년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한마당 행사가 더 풍성하다. 우선 광장공연이 다채롭다. 22일 서울광장에서는 전통제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제식 퍼포먼스를 비롯해 육자배기·소고춤·부채춤 등 국악공연, 길놀이 판굿과 비보이 퍼포먼스, 소망을 단 보름달 띄우기 행사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청계광장에서도 이날 윷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진행되며 액운 흘려보내기 행사와 함께 타악 퍼포먼스, 인디밴드 등의 무대가 시민들의 흥을 돋운다. 궁(宮)에서는 체험행사가 줄 잇는다. 22일 서울역사박물관 광장과 경희궁 무대에서는 ‘정조, 태평성대를 꿈꾸다’란 주제로 풍성한 공연과 문화체험의 장이 마련된다. 정조 즉위식 패션쇼를 비롯해 액운쫓기, 탁본체험, 정조와 사진찍기 등 이색공연·체험 시간이 마련된다. 운현궁에서는 궁의 이미지에 걸맞은 궁중의상패션소(18일), 흥선대원군행차 및 전통민요공연(19일), 고종·명성황후가례재현(25일) 등이 펼쳐진다. 천연염색 공예품을 전시하는 ‘운현궁의 가을전’(10월3일까지)도 관람할 수 있다. 자치구에서도 추석 분위기를 띄우는 행사가 잇따라 관심을 끈다. 16일 동대문구청 앞 광장에서 14개 동 대표가 참가하는 제기차기·투호던지기·콩주머니던지기 등 ‘한가위 구민한마음 민속 큰잔치’가, 17일 중랑구에서 가을음악회(용마폭포공원)와 ‘한가위 금요음악회’(구청 강당)가 진행된다. 18일 도봉산 수변무대에서는 도봉위클리 콘서트, 22일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는 풍물소리사위·떡메치기·가훈써주기 행사로 구민과 만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25분) 입구에는 태극기와 함께 독일 국기가 나부끼고, ‘괴테 하우스’, ‘로젠 하우스’, ‘하이디 하우스’와 같은 이국적인 집 이름과 ‘독일로’라는 거리 이름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경남 남해에 자리한 ‘German Village’, 독일마을이다. 이국적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에서의 3일을 따라가 본다. ●병영체험, 진짜 사나이(KBS1 토요일 오전 10시30분) 오랫동안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 ‘사는 게 뭔지’의 이무송. 현재 KBS 해피FM ‘이무송, 임수민의 희망가요’ DJ로 화려한 입담을 과시하는 이무송의 원래 꿈은 항공기 조종사였다는데…. 가슴 속 하늘에 대한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가 육군항공학교 헬기조종사에 도전한다. ●TV쇼 진품명품(KBS1 일요일 오전 11시) 묵향이 그윽히 배어 있는 대련. 고종의 아버지이자 일반에겐 흥선대원군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석파 이하응의 글씨이다. 가늘고 굵은 획을 대비시켜 그만의 독특한 서풍을 만들어 낸 이하응. 의뢰품은 그가 노년에 쓴 글씨로 추정된다. 격조 높은 시서화 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이하응의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김수로(MBC 토요일 오후 9시45분) 수로는 정략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구간들은 수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려 한다. 수로는 구간들과의 대화 끝에 지금의 부족장으로 있지 말고 궁에 들어와 함께 국정을 이끌자고 제안하고, 구간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가야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위협을 느낀 차차웅은 탈해와 함께 가야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일요일이 좋다(SBS 일요일 오후 5시20분) 영화 ‘엽기적인 그녀’, ‘과속스캔들’ 등을 통해 국민훈남으로 등극한 만능배우 차태현과 드라마 ‘시티홀’, ‘아내가 결혼했다’ 등의 작품에 출연했던 여배우 윤세아가 경기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런닝맨’에 출연한다. 미술관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활용한 레이스 및 게임으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SBS스페셜(SBS 일요일 오후 11시10분) 아리랑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민요다. 뿐만 아니라 조지윈스턴, 잉거마리, 리사오노, 폴모리악단 등 유명 뮤지션들에게 칭송받으며 연주되고 있다. 이들이 낯선 한국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고, 연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랑의 가치를 재발견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돌아온 판관 포청천(OBS 토요일 오후 10시20분) 공손책은 완아를 향한 시옥의 마음을 듣게 된다. 완아 역시 시옥에게 호감이 있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공손책은 마음이 아프다. 전청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역관을 탈출해 정충의 모친을 찾아간다. 하지만 찻집에 들어서자마자 곽북에게 들키고 만다. 전조 덕에 무사히 탈출하는데….
  • 일기+문학? 일기문학!

    일기+문학? 일기문학!

    친구집에 놀러갔다. 친구는 뭘 사러 잠깐 밖에 나갔다. 책꽂이를 들여다 보니 일기장이 꽂혀 있다. 읽지 않을 재간이 없다. 슬쩍 훔쳐 읽고 난 뒤 얼른 다시 꽂아 놓았다. 친구가 방에 왔다. 이미 짧지 않은 시간 친하게 지낸 이였건만 내가 알고 지냈던 그 녀석이었는지 혼란스럽다. 친구가 새롭게 보인다. 일기가 품고 있는 매력이자 마력이다. 소설집 ‘악취미들’, ‘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등을 쓴 소설가 김도언(39)이 자신의 일기장을 과감히 공개했다. 그리고 이것을 ‘일기 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불안의 황홀’(멜론 펴냄)은 2004년 7월19일 월요일부터 2009년 12월27일 토요일까지, 즉 서른 세 살부터 서른 여덟 살까지의 시간 동안 때로는 매일,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불규칙하게 써온 일기를 묶었다. 3600장이 넘는 분량을 1000장 분량으로 줄였다고 한다. 첫 산문집이 일기 묶음이라니…. 독자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려는 것일까. 그는 개인의 자잘한 일상과 함께 그 공간에서 부유하듯 교직하는 욕망과 불안의 실체를 노출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로서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들은 문학에 대한 애착 혹은 순정함이다. 기존의 작품 세계를 상회하는 고통과 고민이 이미 내재돼 있음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기대감을 품게 한다. ‘나는 혐오하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쓴다. 거칠게 말하면 소설은 내게 ‘분노의 텍스트’이다.….’(2004년 11월12일 금요일) ‘소설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을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소설가는 삶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정당화하려고 소설을 쓴다.’(2006년 7월9일 일요일) 어쨌든 덕분에 마치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김도언을 알게 된다. 소설가이자 출판사 편집자로서 두 삶을 살고 있다는 것, 평소에도 술을 즐겨 마시건만 시를 읽을 때는 더더욱 꼭 술을 마신다는 것, 시인 신동옥과 같은 집 아래위층에 살고 있다는 것, 소설을 쓸 때면 한꺼번에 두 세 작품, 심지어 장·단편 가리지 않고 대여섯 작품까지 동시에 쓴다는 것, 혹은 그가 소설 쓰는 김승옥·김훈·고종석 등을 좋아하거나 존경하고, 원종국·한차현 등과 매우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 등도 함께 알 수 있다. 그의 일기를 모두 훔쳐봤다면 문단에 있는 이들에게는 ‘딜레탕트’(예술이나 학문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 생활인들에게는 ‘위장취업자’ 혐의를 받는다는 김도언의 자의식은 위악에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나칠 정도의 치열함과 견결함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가을, 궁전이야기에 젖는다

    가을, 궁전이야기에 젖는다

    궁궐의 가을은 이야기로 열린다. 문화재청은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덕수궁 일원에서 ‘2010 문화유산 스토리텔링 축제’를 연다.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박제품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통해 현대인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의 문화유산으로 돌려놓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덕수궁을 배경으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시와 공연, 체험행사 등 다채로운 형태로 펼쳐진다. 궁정연회 분위기를 살린 덕홍전 전시장에는 조명, 전화, 커피 등 근대 문물을 처음 받아들일 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조명이 소리가 너무 나 ‘덜덜불’로 불렸다거나 고종과 순종이 전화로 안부를 묻고, 고종이 풍전등화의 나날 속에 커피로 시름을 달랬다는 이야기 등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된다. 정관헌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외국공사가 황제를 알현하는 장면이 재현된다. 40여명의 배우들이 고증을 통해 제작한 복식을 입고 진행하는 이 행사는 관객들을 100년 전 시간으로 이끈다. 덕수궁 곳곳에서 갑자기 말을 건네는 이들을 만나도 놀랄 필요는 없다. 이들은 게릴라처럼 불쑥 나타나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릴라 스토리텔러’들이다. 이 밖에 중화전 앞 무대에선 배우 오정해의 사회로 무형문화유산들의 풍류 한마당이 펼쳐지고, 판소리·부채춤과 비보이의 합동 공연이 열린다. 고종황제와 마지막 광대 박춘재의 이야기를 담은 콘서트에는 뮤지컬 배우 박해미가 출연한다. 입장료 1000원. (02)771-995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종편 1차 공청회] 방통위 김준상 국장 “사업자 수 ‘0’개 될 수도 있어”

    [종편 1차 공청회] 방통위 김준상 국장 “사업자 수 ‘0’개 될 수도 있어”

    “절대평가를 하면 일정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공정한 심사를 거치면서 사업자수가 0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신문NTN 김수연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2일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종편·보도PP 기본계획안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김준상 방송정책국장은 사업자 선정방식에 대해 “‘절대평가=다수 사업자 선정’이라는 오해가 있다.”며 “절대평가를 하면 일정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공정한 심사를 거치면서 사업자수가 0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공청회 토론에 참여한 일부 패널들이 복수사업자 선정을 절대평가의 전제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주장을 쏟아낸데 따른 것이다. 방통위는 앞서 사업자 선정방식에 대해 심사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자 모두 선정하는 절대평가와 점수에 따라 고득점 사업자를 선정하는 비교평가 두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공청회장에 들어선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상임위원 자리가 패널석 앞에 마련된 것에 대해 역정을 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공청회 시작 전 자리하고 있던 이경자 부위원장과 송도균, 형태근 위원은 뒷자리로 옮겨 앉는 사태가 연출됐다. 이날 공청회장에는 ▲이희주 한국경제 기획조정실 실장 ▲고종원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팀장 ▲류호길 매일경제TV 종편추진본부 사무국장 ▲김차수 동아일보 방송사업본부장 ▲김수길 중앙일보 방송본부장 등 종편채널을 준비하고 있는 5개사 패널들이 참석했다. 보도전문 채널 준비하고 있는 6개사는 ▲김상혁 서울신문STV 공동대표 ▲김필수 헤럴드미디어 방송추진위 기획실장 ▲도영봉 머니투데이 경영기획실 실장 ▲정병일 CBS 매체정책부장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전략팀장 ▲정광섭 이토마토 산업부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예비사업자들은 이날 방통위의 기본계획안 내용 가운데 사업자 선정방식과 수에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사업자 선정방식에 대해 절대평가로 복수의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측과 비교평가로 사업자 수를 최소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는 시청자 선택권 확대 및 콘텐츠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복수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작지만 강한 콘텐츠를 가진 독립PP도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2개 채널이 있는 보도채널인 경우 비교평가로 최소 또는 1개의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교평가는 사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사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반면 절대평가로 다수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은 사업자 간 과당경쟁, 상업화 등을 불러일으켜 방송시장 발전을 저해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본계획안에서 제시한 최소납입금(종편PP는 3000억원, 보도PP는 400억원)에 대해서는 다수의 패널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이유에 대해서는 최소납입금액은 지난 20년전 SBS를 모델로 대입해 산정한 절대금액은 적절치 못하며 불합리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의견을 함께 했다. 절대금액을 충족시키는 방식이 아닌 각 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시설장비에 들어갈 최소액, 운영경비 등을 감안한 적정 자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패널들은 종편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정부가 정한 수준의 최소자본금이 필요하며 최소자본금 규모를 초과하는 예비 사업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준상 국장은 신청법인들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자본금 규모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기본계획안에 ‘적정수준의 납입자본금 규모는 신청법인의 사업 계획에 따라 다양한 수준으로 산출될 수 있어 최소납입자본금 규모를 제시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방통위는 오는 3일 학계와 연구기관, 시민단체 관계자를 중심으로 2차 공청회를 진행하고 이 달 중순 기본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김수연 기자 과천(경기) newsyouth@seoulntn.com
  • 방통위, ‘종편기본계획’ 공청회…사업자·학계·시민단체 등 패널확정

    방통위, ‘종편기본계획’ 공청회…사업자·학계·시민단체 등 패널확정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9월 2일, 3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대강당에서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승인 기본계획’ 공청회 개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1차 공청회가 있는 9월 2일 오후 2시30분부터 김현주 한국방송학회장의 사회로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의 주제를 발표한다.이번 패널 토론에는 종편 및 보도전문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승인 신청 준비 사업자 11명으로 김차수 동아일보 본부장, 도영봉 머니투데이 실장, 류호길 매일경제TV 국장, 김상혁 서울신문STV 대표가 참석한다.이어 정병일 CBS 부장, 이희용 연합뉴스 팀장, 정광섭 이토마토 보도국 부장, 고종원 조선일보 팀장, 김수길 중앙일보 본부장, 이희주 한국경제 실장, 김필수 헤럴드미디어 실장이 참석해 토론한다.2차 공청회는 3일 오후 3시부터 학계·연구기관·시민단체 및 관련 사업자 대표 9명이 토론자로 참석한다.참석자는 김대호 인하대 교수, 황승흡 국민대 교수, 김용규 한양대 교수, 초성운 KISDI 방송전파정책연구실장,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방송통신팀장,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성회용 SBS 정책팀장,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 이창수 판미디어홀딩스 대표 등이다.방통위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1차 공청회의 경우 소속 협회 또는 단체를 통해 토론 참석 신청을 받고 2차 공청회의 경우 관련 학회,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패널을 구성했다.”고 밝혔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경산 상엿집 문화재 지정

    경산 상엿집 문화재 지정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경북 경산의 상엿집과 관련 문서 11건 19점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266호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상엿집은 전통장례에 쓰는 상여와 그에 딸린 여러 도구를 넣어 두는 초막으로, 곳집이라고도 부른다.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상엿집은 상량문에 ‘임금이 즉위한 지 28년인 신묘년 2월25일에 상량함(上之 二十八年 辛卯 二月 十九日 巳時 立柱 二十五日 五時 上梁)’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 조선 고종 28년(1891)에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건물 내부는 상여를 보관하는 공간과 부속품 등을 두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흙벽과 평지 바닥으로 된 일반 상엿집과 달리 전체가 목재를 사용한 벽과 높은 마루로 지어져 있다는 점에서 건축학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무효!/ 이로부터 우정의 천년이 있다/ 앞이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이 있다/ 오늘 그 길의 첫걸음이 여기 있다.”(고은 시인)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29일. 비극적 한국근대사를 우정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고은 시인의 자작시 낭송이 울려 퍼졌다. 서울 충무로 세종호텔에 마련된 행사장이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한·일 지식인 20여명이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들은 앞서 고종의 옛 집무실에서부터 서울 남산의 옛 통감부 관저 터까지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의 현장을 ‘침묵’하며 행진했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국권 피탈의 치욕을 되새기자는 행사가 잇따랐다. 한국과 일본의 117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는 서울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앞 공원의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서 표석을 제막했다. 이곳은 100년 전 이완용 총리대신과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현장이다. 실행위는 이어 성균관대에서 ‘한·일시민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식민지 범죄를 적시하고 현안별 해결책과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광복회도 서울 탑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와 공동으로 ‘한·일강제병합 100년’ 행사를 열었다. 독립유공자유족회가 1995년부터 매년 경술국치일에 추모제를 개최해 왔지만 이처럼 대규모 한·일 강제병합 행사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고종 역사 전부 다시 쓰게 될 것”

    [경술국치 100년] “고종 역사 전부 다시 쓰게 될 것”

    “고종시대 역사를 전면 다시 쓰게 될 것입니다.” 100년 전 8월29일은 경술년에 나라가 수치를 당한, 즉 경술국치(庚戌國恥)일이다. 한·일 강제병합이 공포된 날이다. 이태진(67)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경술국치 100년을 이틀 앞둔 27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사과 담화 때 일본이 (한국 강제병합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정리해 공개하기로 약속했다.”면서 “(약속에 따라) 일본 외교사료관, 국립공문서보관소, 방위연구소에 있는 중요 문건들이 차츰 아시아역사자료센터로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처음엔 무척 속도가 더뎠으나 요즘 들어 부쩍 자료가 많이 올라오는 느낌이라는 이 교수는 “우리 측 자료는 이미 들여다볼 만큼 봤지만 일본 측 자료는 이제 공개가 시작된 데다 제국주의 모체여서 새로운 사실을 얻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고종 시대사에 대한 재해석이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유부단하게 앉아서 나라를 빼앗긴 고종 황제 이미지는 상당 부분 일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이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이 열등하다고 만들어낸 얘기들이 아직도 상식처럼 통용되는 실정”이라면서 “어차피 망한 왕조 아니냐는 머릿속 틀을 버리고 구체적인 사료에 근거해 역사를 판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일본인은 문서와 자료와 증거에 약하다.”며 “흥분하고 소리 지를 필요 없이 차분하게 문건과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왕과 순종의 서명 등이 달라 한·일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입증해낸 일본 측 조약 원본도 1992년부터 집요하게 추적해온 자료조사 덕분에 최근 일본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탈민족주의 바람 때문에 그의 주장이 국수주의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서는 “(탈민족주의자들은) 자꾸 미래를 보자고 하는데 발 밑에 종기를 달고 있는 채로 어떻게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한·일강제합병조약 체결 100주년인 올해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운 수많은 우국지사의 100주기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영양 일대는 어느 지역보다 많은 자정(自靖·자결)순국자를 배출했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단식으로 순사한 향산 이만도 선생과 그의 조카 이중언 선생, 또 향산의 제자로 동해 바다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도해(蹈海) 순국한 벽산 김도현 선생 등 세 분 의병장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 본다. 지금 안동은 향산과 이중언 선생을 기리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향산의 우국충정은 ‘락’이라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안동댐 민속촌의 동산서원에서 오는 10월까지 공연된다. 때 맞춰 한국고전번역원은 ‘향산집’ 7권 가운데 1권을 먼저 번역해 내놓았다. 이중언 선생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8월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됐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안동선비’라는 주제로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을 새달 30일까지 갖는다. 1842년에 태어난 향산은 퇴계 이황의 후손이다. 1866년 대과에 장원급제한 그는 ‘선비로 나라에 일신을 바친 자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부친의 당부를 실천에 옮겼다. 향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을 변호하다 파직됐고,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합병조약이 맺어지자 단식 24일 만에 순국했다. 퇴계종가와 묘소가 있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에 있던 향산의 종가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이르자 1975년 안동시 안막동으로 옮겨졌다.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허비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예안면 인계리 청구마을 앞에 자리잡았다. 유허비각 주변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향산공원이 조성됐다. 1949년 세워졌다는 유허비의 앞면 글씨는 백범 김구가 썼고 뒷면의 추도사는 위당 정인보가 지었다. 향산과 한 마을에서 1850년 태어난 이중언 선생은 1879년 대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등을 지냈으나 외세의 발호를 목격하고는 낙향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예안의진(義陣)의 전방장으로 함창의 태봉전투를 이끌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려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향산과 다르지 않은 궤적이다. 그는 향산의 부음을 들은 10월10일 선조의 사당에 참배하고 단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많은 친지와 제자가 중단할 것을 권유했지만 선생은 ‘모두 부질없는 소리’라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11월5일에는 순사가 찾아와 단식을 중단시키려 하자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칼로 베겠다.”며 물리친 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단식 27일 만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봉서를 하나 남겼는데 ‘나의 갈 길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던져 의로움을 택하는 것뿐이다. 동포들이여 오직 힘쓰고 또 힘쓰라.’는 ‘경고문’이었다. 향산의 흔적을 찾는 것도 그랬지만, 영양유생 벽산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작은 음식점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순국지사의 유적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산은 1852년 현재의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선 1580년 처음 지어진 벽산의 생가와 1958년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하여 그의 흔적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마을 뒷산의 검산성(劍山城)이다. 벽산이 사재를 털어 쌓은 것이다. 길이 200m 남짓에 불과하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뒷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하천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한다. 결코 간단치 않은 방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벽산은 실천적이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병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96년 청량산에서 모병하여 8개월 동안 항쟁했고, 1906년에는 고종의 비밀명령을 받아 활동했으나 이듬해 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구국활동은 무력항쟁에 그치지 않고 상소운동을 벌이거나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 만국공법론에 의거해 포고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등 외교론적 방법을 병행했다. 벽산은 병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상례가 모두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14년 영덕군 영해읍 대진 앞바다에서 순국한다. 동포들에게 충의로서 일제에 복수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왜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글 ‘우리동포에게(與國內同胞)’는 순사 전날인 11월6일 새벽 반송정에서 남긴 것이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겠다며 경주 감포 앞바다에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다는 신라 문무왕의 염원과 닮은꼴이다. 벽산이 순국한 대진 산수암(汕水巖)에는 1971년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고, 해마다 선생의 생일인 음력 7월14일 기념행사가 열린다. 산수암의 북쪽에는 대진해수욕장, 남쪽에는 대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도해단을 찾아간 지난 23일에는 벽산의 96주기를 기념하는 ‘도해단 전례’가 있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35~36도의 뙤약볕 속에서 대구와 안동, 영양 등지에서 승용차며 전세버스를 타고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선생의 우국정신을 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글 사진 안동·영양·영덕 서동철부국장 dcsuh@seoul.co.kr
  •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내일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100년 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잔인한 정복 쟁탈전에 휘말렸을 때 무기력했다. 인재도 없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자체 방어를 위한 군사력도 약했다. 재정은 거덜났다. 결국 미국, 일본, 영국의 식민지 나눠먹기 제물이 되었다. 강국들에 무참하게 농락당하다 나라를 잃고 말았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장기판’의 졸(卒) 신세였다. 1907년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헨리 코번은 우리의 처지를 강국 일본, 러시아, 중국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받는 장기판의 졸에 비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무력한 나라들을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조선인을 퇴화한, 몰락중인 인종으로 봤다고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라는 책이 소개했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굴욕의 결정판이었다. 고종은 미국·일본의 나눠먹기를 전혀 몰랐다. 미국을 형님 같은 나라로만 생각했다. 1905년 을사늑약 두 달 전까지 미국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일본과 비밀거래를 계속한 미국은 을사늑약을 묵인, 조장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된다. 국제외교는 비정했다. 일본은 어땠던가. 17세기 초부터 쇄국정책을 펴면서도 네덜란드에만은 나가사키의 작은 섬에서의 교역을 허용, 세계정세를 계속 파악한다. 외교전을 통해 19세기 말 근대화를 단행, 부국강병책으로 제국주의 열강 일원이 됐다. 비백인, 비기독교 국가로서는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인접국을 집어삼키며 욱일승천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엄한 대가를 치렀지만 경제외교력으로 부활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국가에 외교는 중차대하다. 외교력은 경제력, 국운을 좌우한다. 2008년 경제위기는 외교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 중심 외교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이라는 다극화 구조도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만 외교를 의지해서는 안 될 시대다. 국익에 따른 치열한 합종연횡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합종연횡의 시대, 외교무대에 천사는 없다.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변수라는 숙명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힘겨운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한다. 리비아, 이란 제재 문제 등 절박한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팍팍한 처지다. 오늘도 국제외교 현장에서 속내를 감춘 채 미소짓는 비정한 외교전을 수시로 체험하고 있다. 정복 쟁탈전은 없지만 외교전은 여전히 살벌하다. 우리는 100년 전 처참한 굴욕을 당했다. 그 굴욕을 씻기 위한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가. 많은 유학생과 상사원들이 세계로 나가 국제정세 흐름 파악은 빠르다. 하지만 자원확보 경쟁 등 경제외교를 포함한 총체적인 외교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외교전을 펼 촉수인 기업과 배후지원을 할 외교관의 협조 체제가 미약하다. 외교의 일관성, 정교함,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 장기전략에 따른 외교를 해야 한다. 21세기 원대한 외교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외교 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냉정하게, 기민하게 국제정세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지역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외교관 선발과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 외교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 전처럼 오늘날 외교현장에도 천사 같은 미소가 넘친다. 미소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 시절 미국은 대한제국을 속였다. 등에 비수도 꽂았다. 결국 일본도 속였다. 각국이 속고 속이는 외교전은 여전하다. 지금 외교 현장에서 미소 뒤에 숨겨진 비수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이 다시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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