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종
    2026-03-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517
  • “대립, 갈등 해소하고 화합할 때”…불교 지도자, 을사년 새해 법어 발표

    “대립, 갈등 해소하고 화합할 때”…불교 지도자, 을사년 새해 법어 발표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앞두고 불교 최고 지도자들이 잇달아 새해 법어를 발표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 화합을 당부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성파 스님은 ‘보경호(寶鏡湖)에 영산(靈山)이 드리웠네!’라는 제목의 신년 법어를 통해 “자성청정심(모두 존재가 본래 가진 깨끗한 성품)으로 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니 예토(사바세상)는 정토(청정세계)가 되고, 온갖 재앙은 저절로 소멸하고 위기는 기회가 되며 모두가 한 몸임을 자각하게 됐다”며 “삼동 찬바람에도 새봄을 준비하는 보리싹처럼, 곳곳에서 찬란한 새봄을 준비하니 봄꽃 향기는 더욱 그윽하고 꽃잎은 더욱 선명할 것”이라고 했다. 모든 대중이 화합하고 정진해서 올겨울 찬바람을 견뎌야 새해에 맑고 선명한 봄꽃을 맞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태고종 종정인 운경 스님은 “‘고통을 마주하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니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혼란의 시기일수록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한 자성을 잃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며 “지혜로운 침묵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지키고,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적 화합에 이바지해야 할 것,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자비심으로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보듬어야 할 것” 등을 주문했다. 천태종 종정 도용스님은 “욕망이 향하는 바는 모두 꿈이요 환이며, 물거품이니 그림자를 잡으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 자루 촛불이 본래 없던 어둠을 몰아내듯 무명 번뇌 속에 한 조각 착한 마음이 마의 궁전을 적멸의 도량으로 빛낸다”고 했다.
  • 그날, 이들의 대한제국은 어땠을까

    그날, 이들의 대한제국은 어땠을까

    정치인·선교사·지식인·언론인·상인 당대 5인의 기록으로 역사 재구성“망국 초래” “근대화” 엇갈린 평가 속다양한 처지·지향·욕망 성찰의 기회 대한제국(1897~ 1910)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망국을 초래했다는 비판과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이처럼 논쟁이 가열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이다. 대한제국사 전문가인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대한제국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현실 인식을 토대로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수립에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 파견과 군대 해산, 의병 전쟁과 일제 강제 병합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의 맥을 차례로 짚어 나간다. 당대를 살았던 5인의 기록을 통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서구 문물을 앞장서서 수용했지만 친일파로 분류되는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를 포교하면서 대한제국의 권력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프랑스인 신부 귀스타브 뮈텔, 당대의 인물과 사건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역사책을 남긴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일반 백성의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상공인 지규식이 그 주인공이다. 책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인물은 윤치호다.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쓰인 ‘윤치호 일기’는 국내외 정세와 지방 사회 동향을 상세히 기록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치호는 이 일기에서 일제의 조선 통치 정책에 대한 복잡미묘한 견해와 조선의 역사·문화와 조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윤치호는 일제의 통치 정책이나 민족주의 진영의 움직임은 물론 고종 황제 독살설, 유길준의 을미사변 관련설 등 당시 풍문으로 전해졌던 사건의 뒷이야기도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이는 학자들과 대중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중요한 논쟁거리”라고 말했다. 귀스타브 뮈텔이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1890년부터 1933년까지 쓴 ‘뮈텔주교일기’에는 교회의 일반 행사뿐만 아니라 조선 정계 인물의 활동과 외국 열강의 움직임 등이 수시로 언급된다. 저자는 “삼국 간섭의 경우, 뮈텔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이 일기에는 고종이나 주요 관료들을 만난 이야기와 공식적인 정치 활동 뒤에 숨은 일화 등이 담겨 있어 근대 정치사와 외교사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교의 ‘대한계년사’와 황현의 ‘매천야록’은 ‘대한매일신보’ 등 당대 신문 자료와 기타 공식 기록을 활용해 서술한 역사서로서의 요건을 갖춘 야사다. 농촌형 유학자에 가까운 황현과 도시형 개화 지식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교는 서로 다른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보여 준다.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황현은 1910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하재일기’를 쓴 지규식은 자기(瓷器)를 왕실과 관부에 조달하는 평민 출신 공인(貢人)으로 41세인 1891년부터 1911년까지 매일 일기를 남겼다. 그 속에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의 고민과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책은 90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통시적 흐름으로 대한제국사의 주요 논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저자는 “대한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행위자의 다양한 처지와 지향, 욕망을 다층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경북 영주 만죽재, 해우당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경북 영주 만죽재, 해우당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국가유산청은 경북 영주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을 대표하는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과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만죽재 고택은 1666년 반남 박씨 집안의 박수(1641∼1729)가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지은 집으로, 360여 년간 집터와 가옥이 온전히 잘 보존됐다.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이어져 ‘ㅁ’ 자형을 이루는 뜰집 형태를 보인다. 만죽재 고택에는 현판을 비롯해 문방사우, 통나무 계단 등 옛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남아있다. 해우당 고택은 선성 김씨 집안에서 무섬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에 고택을 수리한 이후 해체하거나 수리한 적이 없어 150년 가까이 원형이 잘 보존돼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낙풍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친구로, 현재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친필로 알려져 있다. 해우당 고택 역시 ‘ㅁ’자 형태로 안방에서 태어나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빈소방 등으로 옮겨가는 생애주기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여러 고문헌과 서화, 글씨 등은 물론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 집 건물을 수호한다는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 갓 보관함 등도 남아 있다. 국가유산청은 “고택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통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며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민속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발굴·지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사라락 책장을 넘기며 바스락 가을을 배웅하다[박상준의 書行(서행)]

    사라락 책장을 넘기며 바스락 가을을 배웅하다[박상준의 書行(서행)]

    짧은 가을이 아쉬워 들른 책터열린 천창 너머 숲의 향기 취해겹겹의 지붕, 작은 언덕 떠올라커피 한잔과 함께 책 읽는 정취 도시의 소음 잊게 하는 월곡정북서울꿈의숲 탁 트인 전망도지난 주말, 서울 성북구 화랑로 오동숲속도서관에 있었다. 가을이 잰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위태하게 흔들리는 단풍을 보며 조금만 더 버티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설령 단풍이 우수수 떨어졌다 해도, 낙엽 위를 걸으며, 한 권의 책과 함께 당신의 가을이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그리 권하려 아껴 둔 늦가을의 책터다. ●숲과 가장 친밀한 도서관 11월 중순만 해도 20도를 넘나들었다. 가을이 ‘겨울 따위’ 하고 콧방귀를 뀌는 듯했다. 하순으로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기온이 뚝 하고 떨어진다. 그제야 가을이 끝나간다는 걸 실감한다. 이번 가을은 변변한 단풍놀이도 못 하고 지났다는 게 못내 아쉽던 차였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가을이 꽉 들어찼을 때 홀로 조용히 찾아야지 다짐했던, 숲속의 작고 아름다운 도서관이었다. 월곡청소년센터 쪽에서 들어서자 길의 마루에 오동숲속도서관 회랑이 보였다. 그 짧은 길 위에도 오동근린공원의 가을은 알록달록 한 폭의 그림처럼 번졌다. 그래서였을 거다. 도서관 몰래 샛길로 슬쩍, 월곡정을 향해 난 산책로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가을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나서 도서관에 들를 생각이었다. 계획은 산책로 초입에서 어그러지고 말았다. 데크는 산책로 쪽에서도 도서관 뒤편을 지나는데 회랑 아래 자리잡은 중년 부부가 도란도란했다. 그 단란함이 한 편의 시처럼 읽혔다. 곧 엄마가 아이를 따라 도서관 문밖으로 나왔고 또 연인이 숲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차례로 스쳐 가는 풍경 속 숲과 나무로 지은 도서관과 다정한 사람들. 그 모습에 이끌려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서울에는 여러 곳의 책 쉼터가 있다. 하지만 어느 곳도 오동숲도서관만큼 숲과 가깝지는 않다. 그런 까닭에 월곡산이나 오동근린공원을 산책하려다 들른 이들이 많다. 또는 숲에서 누린 여유를 책으로 잇대 머물다 가곤 한다. 책과 숲은 또 숲과 책은 시와 커피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특히 숲길과 연결되는 도서관 동쪽 창가 좌석은 항상 만석이다. 창밖 숲은 계절이 꽉꽉 들어차니 창가에서 숲을 품고 독서를 즐기는 건 분명 로맨틱한 일이다. 사람들은 망부석처럼 앉아 독서에 열중하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코앞의 숲으로 눈을 씻는다. 그 명당이 탐나기는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책과 더불어 계절이 지나는 모습을 힐끔대다 보면 당신도 나도 이 가을에 함께 있는 것이려니 하며 너그러워진다. 숲속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다. ●카페와 가장 가까운 서가 그렇다고 미련을 온전하게 떨쳐 내지는 못해서, 괜히 도서관 안을 서성대다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그리 큰 도서관은 아니다. 건물 바깥을 두른 회랑을 빼면 실내는 260㎡(약 80평) 정도다. 교외의 주택 규모다. 그럼에도 카페는 도서관 서가와 경계를 두지 않고 사서들의 데스크 옆에 자리한다. 커피를 들고 돌아서면 곧장 책들이다. 카페가 있는 도서관은 많지만 이처럼 책과 가까이에서 서가를 넘나들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숲만이 아니었다. 커피와도 이토록 가까운 도서관이라니.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는 책 읽을 만한 자리를 찾는다. 다행히 도서관은 동쪽 1인석 말고도 계절을 향해 열린 천창이 많다. 겹겹의 지붕을 겹친 천장은 지붕 선과 선 사이로 바깥 하늘이 보이고 자연이 드러나고 빛이 스민다.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유독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열린 천창 너머 풍경이 물결치는 까닭이기도 하다. 책장 형태 또한 흥미롭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과 기둥이 책장의 양쪽 가장자리를 이룬다. 책장과 기둥이 한 몸을 이루는 재밌는 구조다. 책의 집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형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 등을 수상한 건물이란다. 디자인은 장윤규 건축가(운생동건축사무소)의 솜씨다. 그는 인근 한내지혜의숲(도서관)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오동숲속도서관은 한내지혜의숲과 비교해 돌아봐도 좋다. 두 도서관은 겹겹의 지붕 구조가 닮았다. 한내지혜의숲이 공원 쪽을 향해 물결치듯 박공지붕을 얹었다면, 오동숲속도서관은 ‘ㅁ’자 안에서 나선을 그리듯 층층이 쌓아 올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오동공원의 자락길을 잇댄 작은 언덕을 떠올리게 한다. 숲의 일부처럼 녹아든다. 원래 그 터에는 목재 파쇄장이 있었다. 먼지와 소음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던 땅은 숲속에서 나무를 깨트리고 부수는 대신 이제 책 읽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목조 건축물이다. 쓸모를 다한 나무가 존재 없이 사라지는 땅에서 나무로 지은 집은 온전한 제 역할을 부여받아, 나무였다가 종이였다가 한 권의 책이 된 책 무리의 안식처가 돼 주고 있다.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특별상 또한 그 가치를 부연한다. ●가을 도서관 앞에서 공간을 흐르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공기처럼, 도서관의 프로그램이나 북 큐레이션 역시 과하지 않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이런 건 어때?’라고 말을 거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느슨하고 적당한 권유가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기고 사색에 잠기게 한다. 9월에는 ‘점토로 만드는 가을 음식’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10월에는 ‘오동숲속도서관의 밤 : 별, 달 그리고 음악’으로 야간 개방했다. 11월에는 ‘라이프스타일 레시피2 : 걷고 싶은 길을 만나다’라는 주제의 행사가 열렸다. 숨차지 않을 정도의 이벤트가 있고 참가 역시 도서관 회원만 특정하지 않는다. 입구 서가에는 박경리, 박완서, 조정래 작가의 전집이 도서관의 얼굴처럼 꽂혀 있는데, 주제 짓지 않는 어떤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움직여지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서가 앞에서도 새로운 책을 찾기보다 친숙한 책에 먼저 손이 간다. 이미 읽어 알고 있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책들 말이다. 예를 들면 쓸쓸한 가을에 떠오르는, 그러나 맑고 건강한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같은 책이다. 그림책을 넘기는 아이와 할머니 곁에서, 책 속의 2부 ‘삶이 진실에 베일 때’에 실린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을 읽는다. ‘소설에서 음악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이 문장을 몇 번 반복해서 읽는다. 늦은 가을이어서, 창밖으로 잎이 떨어지고 있어서, 그리고 이 작은 도서관 안에는 들어설 때부터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어서. 이런 감성들은 우리 삶에 균열을 만드는데 가끔은 그 틈새에서 숨통이 트이고 삶의 기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쓸쓸한 계절 앞에서 백기를 들고 허물어진들 어떠할까. 때때로 쓸쓸함이란 환희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을은 남겨지는 계절일 수 있어도 버려지는 계절은 아니지 않던가. ●너럭바위의 전망대 월곡정 도서관을 나와 동편 오동근린공원으로 간다. 오동근린공원은 자락길(1.5㎞)과 공원길(2.4㎞) 두 갈래의 길을 따른다. 자락길은 동쪽 월곡정(애기능터) 너머 월곡초등학교까지 연결된다. 공원길은 북서울꿈의숲 입구에서 출발해 오동공원관리사무소에 이른다. 두 길은 굳이 구분 둘 정도는 아니니 풍경이 이끄는 대로 따라 걸으면 된다. 자락길엔 데크가 깔려 있다. 숲 사이로 오밀조밀하게 이어져 버겁지도 않고 또 무료하지도 않다. 목적지 하나를 정하자면 자연스레 월곡정일 것이다. 도서관에서 월곡정까지는 치유의숲길을 거쳐 간다. 뒷짐 지고 걸어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짧은 구간이지만 도시의 소란함을 잊게 만든다. 이맘때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발끝에서 사각댈 때마다 가을이 한 줌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치유의숲길에서는 하루 한두 차례 산림치유프로그램(화~토)을 운영한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은 마감이 됐지만 오동공원 치유의숲길 사무실에서 현장 신청은 가능하다. 월곡정에 이르러서는 기대하지 않은 풍경에 놀란다. 눈앞에 펼쳐진 거침없는 도심의 경관도 그렇지만 거대한 너럭바위 또한 눈길을 끈다. 월곡정을 찾은 이들은 정자보다 너럭바위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쉬길 좋아한다. 추위가 심해지기 전까지는 큰대자로 누워 하늘바라기 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직접 누워 보면 그 맛을, 해방감을 안다. 서울의 다른 전망대와는 다른 월곡정만의 매력이고 낭만이다. 월곡정 일대는 애기능터로 불린다. 이때 애기는 열두 살에 세상을 떠난 고종의 큰아들 완화군을 말한다. 지금은 서삼릉으로 이장했지만 한때는 그의 능이 이곳에 있었다. ●작가 최만린의 단정한 이층집 북서울꿈의숲 또한 도서관에서 가깝다. 강북과 성북구 등 6개 구에 걸쳐 있는 공원은 과거 테마파크 드림랜드가 있던 자리다. 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고 너른 잔디밭과 월영지 연못, 창녕위궁재사, 상상톡톡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북서울꿈의숲 전망대도 빼놓을 수 없다. 가을 숲의 풍경은 오동근린공원과 북서울꿈의숲이 그리 다르지 않으나 전망대의 풍광은 차이가 난다. 북서울꿈의숲 전망대는 규모로 압도한다. 건물은 3층 높이로 꿈의숲아트센터를 지나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소박한 책쉼터를 거쳐 전망대에 다다르는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 서울 북동쪽의 전망이 활짝 열린다. 게다가 무료다. 가을을 배웅하기에 이만한 명당도 없다.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서쪽 5㎞ 거리에는 성북구립최만린미술관이 있다. 최만린은 우리나라 추상 조각의 거장이다. 미술관은 담장 바깥에서 볼 때는 골목의 여느 2층 주택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최만린이 1988년부터 30년 동안 생활하며 작업한 집이다. 작가의 ‘O’시리즈가 이 시기에 나왔다. 이를 성북구가 매입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구조 역시 옛집의 외관과 골격, 나무 계단과 천장 등을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 작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 문턱을 넘어선다. 현재는 ‘흰: 원형 The Original’이란 제목으로 그의 석고 원형조각을 전시 중이다. 석고 원형은 청동 주물을 만들고 폐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원형 석고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고 남긴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시는 지난 3월 시작해 이달 2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관객 반응이 좋아 오는 30일까지 연장됐다. 그의 석고 원형 조각만 모아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 여행수첩 ●오동숲속도서관 -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쉼 -누리집 www.sblib.seoul.kr/odlib
  • 맛있게 익어 가는 산청 곶감

    맛있게 익어 가는 산청 곶감

    21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한 농부가 곶감을 만들기 위해 고종시(떫은 감)를 말리고 있다. 산청 연합뉴스
  • ‘조선의 미슐랭 셰프’ 숙수의 손맛이 깨어난다

    ‘조선의 미슐랭 셰프’ 숙수의 손맛이 깨어난다

    조리 도구 등 유물 200여점 전시수라간·경로잔치 음식 준비 모습고종 생일 때 ‘9번의 안주상’ 재현음식 취향 MBTI 등 다양한 체험도 조선시대 궁중의 남성 요리사를 ‘숙수’(熟手)라고 했다. 까다로운 왕의 입맛을 맞춰야 했을 테니 실력이 출중했음에 틀림없다. 지금으로 치면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쯤 됐을 것이다. 왕을 즐겁게 했던 숙수의 손맛, 잠들었던 ‘조선 왕실의 맛’이 깨어난다.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은 궁중음식문화재단과 함께 20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전을 연다고 19일 밝혔다. 궁중음식에 관한 여러 기록물과 그림을 비롯해 궁궐에서 사용한 그릇, 조리 도구, 소반 등 2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조선시대 당시 왕에게 올렸던 궁중음식을 재현한 모형도 아울러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된다. 백성들이 정성껏 준비한 진상품을 임금에게 바친다.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싱싱하고 다채로운 식재료는 어떻게 임금의 밥상, ‘수라’에 오르는가. 1부에서는 이 과정을 소개한다. 조선의 임금은 하루 평균 5차례의 식사를 했다. 고종, 순종 시기 ‘12첩 반상’의 수라가 알려지면서 유명해졌으나 이전에는 밥과 국을 제외하고 7가지 정도의 반찬이 왕의 밥상에 올라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라를 짓던 ‘수라간’의 현판과 함께 당시 쓰이던 조리 도구, 식기 등을 통해 궁궐 부엌의 현장을 실감나게 연출한다. 선조 때 경로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의 모습을 담은 ‘선묘조제재경수연도’는 당시 숙수들이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재미있는 그림이다. 조선 왕실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도 눈에 띈다.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다양한 반찬의 종류와 식재료를 담은 ‘찬품’과 ‘어의가 쓴 음식에 관한 책’, ‘상궁이 기록한 음식 조리법’ 등이 대표적이다. 궁궐에서도 기쁜 날은 있었을 터. 잔치의 핵심은 먹을 것이었으니 2부에서는 조선시대 잔치 음식이 어떻게 준비됐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열린 잔치를 소개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1892년 궁중 잔치를 기록한 의궤’를 통해 당시 고종에게 올려진 다채로운 음식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날 고종은 아홉 차례의 술잔과 총 63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아홉 차례의 안주상(미수)을 받았는데 이를 재현한 모형도 만나 볼 수 있다. 이날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보라 학예연구사는 “숙수의 소임은 밥을 짓거나 두부를 만드는 등 세분돼 있었다”면서 “약과의 모양이 고르지 않다고 혼이 나기도 했고 고종이 먹을 홍합에 모래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유배를 가거나 곤장을 맞는 등 매우 고된 삶을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궁중음식을 소재로 한 미디어 아트와 내 입맛과 맞는 임금을 찾아가는 ‘나는 어떤 임금일까? 음식 취향 MBTI’, ‘궁중 잔치음식 만들기’ 등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 기간 전문가로부터 궁중음식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강연 및 가족 대상 체험 교육도 제공된다. 한편 고궁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8개월간의 재단장을 마친 2층 상설전시실도 20일 개관한다고 이날 아울러 밝혔다. 상설전시실은 각각 ‘국왕의 공간’(외전)과 ‘왕비의 공간’(내전)을 주제로 한 2개의 전시실로 나눠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관련 유물 450여점과 이에 대해 쉽게 풀어쓴 설명 및 영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 이계영 금호고속 총괄사장, 국토부 은탑산업훈장

    이계영 금호고속 총괄사장, 국토부 은탑산업훈장

    이계영(사진) 금호고속 총괄사장이 최근 ‘제38회 육운(육로 운수업계)의 날’ 기념식에서 국토교통부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육운의 날’은 1903년 고종 황제가 경복궁에서 국내 최초로 자동차를 시승한 날 (11월4일)을 기념해 1987년에 제정된 날로, 한국의 육상 운송업 발전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날이다. 이계영 사장은 여객 운송업계에 몸담아 오면서 버스 대중교통이 국민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 운송수단으로써 그 소명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육운 산업 발전에 헌신하고, 국내·외에서 한국 운수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특히, 이 사장은 전남도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과 전국버스연합회 부회장으로서 ‘무파업, 무노사분규’를 실현하며, 지역사회와 업계 발전에 기여해왔다. 이계영 사장은 “이번 영예로운 수상을 겸손한 자세로 더 매진하는 계기로 삼고, 그동안의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육상운송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경남대 통일미래최고위과정,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특강

    경남대 통일미래최고위과정,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특강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은 지난 7일 통일미래최고위과정 제14기 교육과정의 하나로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초청 특강을 열었다고 8일 밝혔다. 특강에는 통일미래최고위과정 제14기 원우 8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김 회장은 ‘적십자 남북교류사업과 한반도 인도주의 미래’를 주제로 ▲국제적십자운동 ▲대한적십자사 역사와 활동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사업 ▲이산가족 지원사업 ▲통일기반 조성사업 ▲북한 현실과 한반도 인도주의 미래를 설명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적십자사는 1905년 ‘곤궁한 백성을 구휼하라’는 고종 황제 칙령으로 설립된 이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위해 자금을 조달했다”며 “독립군을 치료하고자 간호원을 양성하는 등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심각한 재난과 감염병 유행 속에서도 항상 국민과 함께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산가족지원사업, 통일기반조성사업, 대북지원사업 등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사업도 소개했다. 김 회장은 “순탄한 과정을 통해 완숙한 통일을 이룩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며 모두가 행복한 한반도의 인도주의적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며 “인도주의는 통일로 향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점차 무너져가는 북한의 의료·교육 시스템을 지적하며 “대한적십자사 인도주의 사업이야말로 가장 낮은 단계의 남북 교류사업이자, 가장 먼저 시작할 수 있는 남북 교류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고려대학교 의학박사와 경희대학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병원협회 회장, 대한에이즈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효천의료재단 H+양지병원 이사장, 대한노인회 중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료봉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경남대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미래최고위과정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을 초청해 한반도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혜안을 제시하고자 개설했다. 14기는 12월까지 운영한다.
  • 걷다 보니 가을로 물들었고 멈춰서 보니 왕의 곁이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걷다 보니 가을로 물들었고 멈춰서 보니 왕의 곁이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조선 왕조 첫 궁궐 경복궁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가족적 분위기 가득한 창경궁대한제국 함께한 덕수궁서울 전경 품은 경희궁까지‘왕가의 산책’ 즐길 수 있어가을 궁궐은 고즈넉하다. 630년 역사를 간직한 궁궐과 곱게 핀 단풍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가을 빛을 만들어 낸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된 뒤 처음으로 창건된 경복궁(1395년)을 중심으로 ‘동궐’인 창덕궁(1405년)과 창경궁(1418년), ‘서궐’인 경희궁(1617년),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1593년) 등 조선 5대 궁궐에서는 운치 있는 가을을 즐길 수 있다. 5대 궁궐은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건축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역사와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가을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힐링하기 좋은 계절이다. 단풍이 물들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조선의 5대 궁궐의 가을 명소를 창건순으로 돌아봤다. ●고즈넉한 가을 담은 경복궁 조선 왕조의 첫 번째 궁궐인 경복궁으로 향했다. 정문인 광화문에 들어서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층 건물이 즐비한 복잡한 도시에서 한적한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북악산 아래 펼쳐진 고풍스러운 전각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관광객, 궁궐 전역에 퍼져 있는 화려한 단풍은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의 월대에 올라서자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궁궐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인기 포토존인 근정전 서쪽 회랑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내국인보다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아 보인다. 경복궁은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 기틀을 다지게 된 상징적인 궁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뒤 북악산 아래 지은 궁궐이다. 임금이 정사를 돌보며 생활하는 조선의 정궁(正宮)으로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 영원토록 큰 복을 누린다)의 염원을 담았다. 경복궁에는 근정전(국보 제223호)과 경회루(국보 제224호) 등 국보와 자경전(보물 제809호),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아미산의 굴뚝(보물 제811호),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812호), 풍기대(보물 제847호), 사정전(보물 제1759호), 수정전(보물 제1760호), 향원정(보물 제1761호) 등 8개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경복궁의 대표적인 명소인 경회루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근정전 서쪽에 있는 경회루는 임금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회루는 가로 128m, 세로 113m 크기의 사각형 인공 연못 안에 지어진 정면 7칸, 측면 5칸, 2층 건물이다. 경회루 너머로 가을빛으로 물든 인왕산과 북악산이 연못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낸다. 경복궁의 후원인 향원정은 가을 향기로 가득하다. 향원정은 임금과 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1885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연못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었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라는 의미이고, 이곳에 놓인 취향교는 ‘향기에 취한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주변에 가볼 만한 명소들도 많다. 동문인 건춘문은 삼청동길과 만나고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청와대로 갈 수 있다. 서문인 영추문은 서촌마을로 이어진다. ●원형 보존 잘된 창덕궁 경복궁 건춘문을 나와 동십자각에서 동쪽으로 15분(1㎞) 정도 걸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도착했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두 번째 궁궐이다. 조선시대 궁궐 중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조선의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돈화문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오래된 회화나무 8그루가 반긴다. 수령은 300~400년으로 추정되며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창덕궁의 중심인 인정전(국보 225호)은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선의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창덕궁은 1405년 조선의 세 번째 왕인 태종이 재난 등으로 경복궁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만들었다. 조선의 정궁은 경복궁이지만 조선의 많은 왕이 창덕궁에 더 많이 머물렀다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가진 궁궐로 전각에서 왕가의 품격이 느껴진다. 창덕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한국 전통 정원 양식을 잘 보존한 후원이다. 후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로 유명하며, 부용지와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조선 왕실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원에는 사전 예약을 통해 시간대별로 100명(인터넷 50명, 현장 50명)만 입장할 수 있다. 다른 곳보다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지만 예약이 쉽지 않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에서 6일 전부터 선착순으로 예약할 수 있다. 별도로 5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아픈 역사 품은 창경궁 창덕궁 동쪽에 맞닿아 있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는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함양문이 있다. 후원이나 창경궁으로 들어가려면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된다. 함양문에 들어서자 언덕 아래 창경궁에 잔잔한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궁궐 내부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주변 나무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창경궁에서는 가을철에 붉은 황금빛으로 물드는 단풍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 창경궁의 중심인 문정전 월대는 전경을 보기 좋은 곳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별궁으로 1418년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 이후 1482년 성종 때 대비전의 세 어른인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수리를 했다고 한다. 왕실 가족이 머물렀던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진 궁궐이다 보니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을 명소는 춘당지다. 경치가 아름답다 보니 유달리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많은 곳이다. 두 개의 크고 작은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뒤쪽에 있는 작은 연못이 조선 시대 만들어진 춘당지다. 앞쪽 연못은 임금이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내농포가 있던 곳이다. 창경궁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궁궐이다. 1909년 일제가 조선 왕실을 비하하기 위해 궁궐 안의 전각을 허물고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만들었다. 내농포에도 연못을 파서 유원지로 만들었다. 동궐과 종묘 사이를 갈라놓는 도로를 냈으며, 벚나무를 심어 밤벚꽃놀이라는 일본식 유희도 즐겼다고 한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위락시설로 이용되다가 1983년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복원을 하면서 궁궐 내에 있던 벚나무를 모두 베어 냈다. 2022년 율곡터널을 만들어 동궐과 종묘 사이 길을 90년 만에 다시 이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나와 율곡터널 위로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종묘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종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입장료는 1000원이며 율곡터널 끝에 동문 입구가 있다. ●근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덕수궁 종묘 앞에 있는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시청역에 내리면 덕수궁 대한문을 만날 수 있다. 덕수궁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정동전망대에 올랐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동 13층에 있는 전망대는 덕수궁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 평일에는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카페 다락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덕수궁은 다른 궁궐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물인 석조전이 있어 독특한 가을 분위기가 느껴진다. 궁궐 곳곳에는 한옥과 서양식 건축물이 어우러져 근대와 전통이 공존한다. 전망대를 내려와 덕수궁 대한문으로 향했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는 인화문이었다. 대한문은 동문이었지만 덕수궁 동쪽에 환구단이 건립되면서 실질적인 정문 역할을 하게 됐다. 덕수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넓지 않아 가볍게 가을 산책을 즐기기 좋다.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으나 1593년 임진왜란 후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선조가 머물며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1897년 고종이 이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이름을 덕수궁으로 변경했다. 석조전과 정관헌은 가을빛과 잘 어우러져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은 장소다. 붉은 단풍이 물든 석조전 앞 정원은 고풍스러운 유럽식 정원을 연상시킨다. 고종이 머물던 대한제국 시대의 근대적 풍경도 느껴진다. 석조전 옆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입장료 별도)이 있다. ●언덕 위에 지은 미완의 궁궐 경희궁 대한문을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길에 들어섰다. 가을빛으로 물든 정동길에서는 덕수궁 중명전, 정동제일교회, 정동극장 등을 볼 수 있다. 10여분을 걸어 경희궁에 도착했다. 경희궁의 공식 명칭은 ‘경희궁지’다. 현재도 발굴조사와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경희궁은 1617년 창건된 조선 후기 중요한 궁궐이었지만 일제에 의해 궁궐 전체가 사라질 정도로 파괴됐다. 지금도 흥화문과 숙정문, 숭정전, 태령전, 자정전, 자정문 등 일부만 복원됐다. 경희궁은 해방 후에도 서울중고등학교로 사용됐으며, 주변 토지들이 매각되면서 궁궐터도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경희궁은 궁능유적본부에서 관리하는 다른 4개 궁궐과는 달리 서울시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경희궁은 임진왜란 이후 지어진 궁궐로 피란 상황에서 왕실의 안전을 고려해 서울 서쪽 언덕에 지어졌다. 경희궁 뒤편에 있는 언덕 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궁궐과 어우러진 서울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경희궁 동쪽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으며 서쪽에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다. ■ 여행수첩 ▶입장료: 경복궁·창덕궁 3000원, 창경궁·덕수궁 1000원, 경희궁 무료. 모든 궁궐은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내국인(신분증 지참)은 무료이며 한복을 입어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운영시간: 5대 궁궐은 휴무일이 다르다. 휴무일은 경복궁은 화요일, 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은 월요일이다. 운영시간은 계절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11~2월은 오후 5시)다. ▶교통: 경복궁(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창덕궁(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창경궁(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덕수궁(지하철 1·2호선 시청역 2번 출구), 경희궁(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 ‘아쉬운 준우승’ 삼성, 이병규 2군 감독·장필준·김동엽 등과 결별…“선수단 역량 강화”

    ‘아쉬운 준우승’ 삼성, 이병규 2군 감독·장필준·김동엽 등과 결별…“선수단 역량 강화”

    9년 만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아쉽게 쓴잔을 마신 삼성 라이온즈가 올 시즌 후반기처럼 코치진과 선수단 개편을 통해 우승에 재도전한다. 이병규 퓨처스 리그(2군) 감독, 장필준, 김동엽 등이 팀을 떠나게 됐다. 삼성은 1일 재계약이 불발된 코치진과 선수단 명단을 발표했다. 이 감독을 비롯해 타치바나 요시이에 1군 타격코치, 이정식 퓨처스 배터리 코치, 강봉규 육성군 타격코치, 권오준 재활군 코치 등 지도자 5명과 결별했다. 박진만 감독과 이병규 수석코치 체제로 올 시즌 개막을 맞은 삼성은 지난 7월 5일 전반기를 승률 0.530(44승2무39패), 리그 4위로 마친 뒤에도 코치진 개편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 지난해 8위(승률 0.427)보다 높은 성적이었지만 김재윤, 임창민 등 불펜 보강으로 높아진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전반기를 KIA 타이거즈와의 시리즈 스윕패 포함 5연패로 마친 충격이 컸다. 이에 삼성은 정대현 2군 감독을 1군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에 앉히고, 이병규 코치를 퓨처스 감독으로 보내 자리를 맞바꿨다. 정민태 1군 투수코치도 2군으로 내렸다. 권오준 불펜 코치에겐 재활군을 맡겼다. 타격 부분에선 타치바나 코치를 3군에서 1군으로 승격시켰다. 또 채상병 퓨처스 배터리 코치와 강영식 퓨처스 투수코치를 1군, 이정식 배터리 코치를 2군으로 보냈다. 삼성은 이후 결국 정규시즌 최종 2위(승률 0.549)를 차지했다. 시즌이 끝나고 선수단에선 투수 김태우, 장필준, 홍정우, 김시현과 내야수 김동진, 외야수 이재호와 김동엽이 팀과 재계약하지 못했다. 2015년 삼성에 입단한 장필준은 345경기 17승29패 42세이브 47홀드 평균자책점 5.29의 성적을 남겼다. 2010년대 후반 마무리로 활약했으나 2020시즌부터 내리막을 탔다. 김동엽도 눈에 띄는 자원이다. 2009년 천안 북일고를 졸업한 뒤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와 계약한 김동엽은 2013년 방출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어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에 입단했다. 삼성에 합류한 건 2018년 12월이다. 당시 우타 거포에 갈증을 느꼈던 삼성은 김동엽을 받고 10년 동안 팀에서 헌신한 이지영을 넥센 히어로즈(키움의 전신)로 보낸 다음 넥센 고종욱이 SK로 이적하는 삼각 트레이드를 합의했다. 2020시즌 115경기 20홈런 타율 0.312로 활약한 김동엽은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올해는 8경기 출전에 그쳤다. 삼성 관계자는 이날 “이번 개편과 함께 팀을 정비하고 2025시즌 선수단 역량 강화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지방소멸 시대 ‘지역 주도 성장’ 새 패러다임 계기

    헌정사상 첫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으로 대구경북(TK)특별시가 출범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구시와 경북도는 TK 행정통합이 지방소멸 시대에 ‘지역 주도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31일 대구·경북에 따르면 한때 산업화의 중심이었던 대구는 30년 넘게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하위에 머물고, 경북 또한 22개 시군 중 17곳이 낙후도 1~2등급으로 나타나는 등 쇠락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행정통합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돌파하겠다는 게 대구시의 목표다. 대구시는 TK시가 출범하면 신공항을 통해 ‘하늘길’을 열고, 포항 등 동해안의 항만으로 ‘바닷길’도 확보할 수 있어 자생 조건이 충분하다고 봤다. 또한 신공항을 중심축으로 삼고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와 반도체,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신산업 관련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경주, 울진에 있는 원전에다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더해지면 풍부한 에너지도 갖춰 성장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대구정책연구원이 행정통합의 기대효과를 분석한 결과 특별법 통과로 특례사항까지 적용하면 2045년에는 GRDP가 1512조원, 일자리는 773만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인구는 1205만명, 사업체 수는 236만개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TK 통합은 지난 100여년간 이어져 온 기초·광역·국가의 3단계 행정체제를 개혁하는 신호탄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 고종 때부터 이어져 온 3단계 행정체제는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가까워졌음에도 유지되고 있다. TK 통합은 이를 지방·국가 2단계 체제로 간소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1일 “대구·경북 통합은 지난 100년 동안 이뤄 온 ‘팔도 체제’가 폐지되는 지방행정개혁의 일대 혁신”이라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구·경북 통합을 계기로 전라도와 충청, 부울경도 통합해야 대한민국 제2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다”고 했다.
  • “사둘 걸 그랬나”…‘투자경고종목’ 고려아연, 19% 급등 150만원 돌파

    “사둘 걸 그랬나”…‘투자경고종목’ 고려아연, 19% 급등 150만원 돌파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29일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 예고됐음에도 주가가 급등세를 지속해 15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 거래일 대비 18.60% 오른 154만 3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2.61% 강세로 시작한 주가는 장중 오름폭을 키운 끝에 역대 최고가로 장을 마쳤다. 고려아연은 최근 5거래일 연속 상승해 이 기간 주가가 무려 76.54% 폭등했다. 이로써 고려아연은 시가총액 31조 9452억원을 기록해 신한지주(28조 8826억원)와 POSCO홀딩스(28조 6293억원)를 제치고 유가증권시장 9위에 올랐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은 지분 차이가 약 3%포인트에 불과하며 어느 쪽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따라 양측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장내 매수와 우호 지분 확보 등을 통해 치열한 지분 경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도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 대책 논의를 위해 오는 30일 긴급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약 1.4%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의 지분차는 1.5%포인트 안팎으로 좁혀진다. 이날 한국거래소는 고려아연에 대해 투자경고 종목 지정을 예고하고 이틀 연속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거래소의 시장경보제도는 소수 계좌에 매매가 집중되거나 주가가 일정 기간 급등하는 등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대해 거래소가 투자위험을 고지하는 제도다. 투자주의→투자경고→투자위험 3단계로 구분된다. 투자경고 종목은 신용융자로 매수할 수 없으며 매수 시 위탁 증거금을 100% 내야 한다. 이후에도 추가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 투자위험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으며 투자위험 종목 지정 당일 1일간 거래가 정지된다.
  • YS·박철언 소환한 홍준표, 한동훈 향해 “정치 낭인 모아본들…”

    YS·박철언 소환한 홍준표, 한동훈 향해 “정치 낭인 모아본들…”

    홍준표 대구시장이 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정치 낭인들 모아 행세해 본들 그건 오래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과 융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물 위에 기름처럼 떠돌면 바로 퇴출된다. 그게 정치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른바 ‘6공의 황태자’라고 불린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 박철언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소환하며 한 대표를 지적했다. 홍 시장은 “6공 시절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특보는 ‘월계수회’를 이끌고 득세했던 순간이 있었다”며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급격히 몰락했고 월계수회도 사라지고 결국 정계 퇴출된 일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반면, 자력으로 큰 YS는 그 뒤 승승장구했다”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또 박 전 의원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의 아우라로 성장한 사람이 그걸 본인의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며 “권력의 뒷받침으로 큰 박철언 특보의 권력은 모래성에 불과했고, 그 옆에 모여든 불나방 같은 월계수회 사람들도 한순간에 흩어졌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지내며 정치적으로 성장한 한 대표를 박 전 의원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시장은 전날(28일)에도 한 대표와 당 지도부 내 친한계를 향해 “지금 지도부처럼 대통령의 권위를 짓밟고 굴복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무모한 관종 정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여당 지도부가 정책 추진을 할 때는 당내 의견을 수렴해 비공개로 대통령실과 조율하고 국민 앞에 발표한다”며 “자기만 돋보이는 정치를 하기 위해 여권 전체를 위기에 빠트리는 철부지 불장난에 불과하다. 되지도 않은 혼자만의 대권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오기 싸움으로 정국을 파탄으로 몰고 갔던 것”이라며 “나보다 당, 당보다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 비상시기인 만큼, 부디 자중하고 힘을 합쳐 정상적인 여당, 정상적인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 울릉, 오늘 ‘독도의 날’ 첫 공식 행사 연다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울릉군은 이날 도동소공원 특설무대에서 ‘2024 울릉군민의 날&독도의 날’ 기념행사를 치른다고 24일 밝혔다. 울릉군이 조례로 독도의 날을 제정한 후 맞는 첫 공식 행사다. 울릉군과 울릉군의회는 지난 5월 대한제국 영토 수호 정신을 계승하고자 독도를 부속 섬으로 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조례를 만들어 독도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민간단체에서는 2000년부터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연다. 강원 삼척관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사부독도기념관은 독도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이날 무료로 개방한다. 관람객에게 독도 관련 책자도 무료로 배부한다. 또 강원 영월군 호야지리박물관은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 영토 독도를 증명하는 한국·일본·서양의 지도 특별전’을 24~25일 개최한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칙령 41호에서 독도 관할권을 명백히 게재한 사실에 근거해 조례로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지정했다”며 “울릉주민과 함께 독도 수호 최선봉에 서고, 전 세계가 주목할 날로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해우당’ 국가민속문화유산 된다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해우당’ 국가민속문화유산 된다

    경북 영주 무섬마을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 만죽재와 해우당이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7일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과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 무섬마을은 조선 17세기 중반 이래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유서 깊은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만죽재 고택은 병자호란 이후인 1666년 반남 박씨 집안의 박수(1641~1729)가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지은 집으로, 360여년간 집터와 가옥이 온전히 전해져 왔다. 고택은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연결된 ‘ㅁ’ 자형 주택이다. 국가유산청은 “조선 중·후기 상류 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 질서의 표현 방법으로서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해우당 고택은 선성 김씨 집안에서 마을에 처음 정착한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에 수리한 이후 150년 가까이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우당 고택도 ‘ㅁ’ 자형 구조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해우당 현판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친구인 김낙풍을 위해 쓴 친필로 알려져 있다. 고택에서 오랜 세월 전해져 온 다양한 생활유물도 국가유산이 된다. 만죽재에는 전통 혼례 문서인 혼서지, 을미사변 후 영남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 기록을 필사한 항일격문집, 규방가사집 등이 남아 있다. 해우당 유물로는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 답안지, 집 건물을 수호한다는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 갓 보관함 등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됐다.
  • 황금빛 물결, 역사와 문화 넘실

    황금빛 물결, 역사와 문화 넘실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병자호란 겪고 군사시설 확충조선시대 대포 실물 남아 있어철종, 임금 되기 전 머문 ‘용흥궁’흥선대원군 친필 현판도 유명도시는 마술사다. 여러 모습을 가졌다. 테마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모습을 내어 준다. 인천 강화라면 역시 역사가 제격이다. 가을은 역사와 더불어 걷기 좋은 계절.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해질 무렵 인천 강화도를 다녀왔다. 이번 강화 여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가 켜켜이 새겨진 도심 골목 투어와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방어시설인 돈대(墩臺) 투어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엮어도 강화 역사의 절반 이상은 꿰고 돌아갈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 들녘이 무르익었다. 벼가 익어 가는 논배미마다 노랗게 물들었다. 반듯하게 구획 정리된 논배미를 보니 예쁜 조각보 같다. 핑크 뮬리, 댑싸리의 빛깔이 곱긴 해도 저 생명력 넘치는 노란 들녘에 비할 수 있을까 싶다. 강화도는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선사시대 호모사피엔스 할머니와 단군 할아버지의 흔적도 있고, 건달 같은 거구의 미국 병사와 싸운 조선 병사의 기개, 변방의 오랑캐에게 무릎 꿇은 수모도 함께 새겨 있다. 이런 내용들을 오롯이 살피려면 걷는 게 최고다. 강화 도심에 밀집한 유적지를 걸어 돌아보는 데 4~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들머리는 용흥궁(龍興宮)이다. ‘용이 일어난’ 곳. 용흥궁은 조선의 25대 왕 철종(재위 1849∼1863)의 잠저다. 잠저는 임금이 되기 전 살던 집을 뜻한다. ‘강화도령’ 이원범이 머물던 곳은 애초 초가집이었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당시 강화유수 정기세가 화들짝 놀라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 지었다. 용흥궁 현판은 흥선대원군 친필이라 전해진다. 용흥궁 뒤는 용흥궁공원이다. 옛 심도직물 공장 터에 조성했다. 공원 한쪽에 당시의 굴뚝이 흔적으로 남았다. 공원 언덕 위엔 성공회 강화성당이 날아갈 듯 앉아 있다. 겉모습은 한옥으로,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꾸몄다. 돌계단 위에 선 대문이나 종각, 성전 기둥에 걸린 한문 주련 등이 영락없는 산사의 모습이다. ●외적 막기 위한 군사기지 ‘돈대’ 북산 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고려궁 터가 나온다. 고려 고종이 1232년 몽골의 침략에 대비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뒤 지은 궁궐터다. 39년간 고려의 수도 구실을 하다가 몽골과의 강화조약 뒤 몽골의 요구로 허물어야 했다. 조선 인조 때에도 여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불탔고, 그 뒤 강화유수부 관아가 들어섰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침탈로 다시 불탔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근무하던 동헌과 이방청, 복원된 외규장각 등이 있다. 현재 영구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등은 바로 이곳 외규장각에 있던 고서들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것이다. 궁터 밖엔 이 모든 역사를 지켜봤을 늙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이 700년을 넘겼다는, 그야말로 ‘고려적’ 나무다. 강화산성 내성의 서문(첨화루)은 1977년 복원한 것이다. 동락천에 조성된 홍예문(석수문)을 넘어서면 연무당 옛터가 나온다. 옛 군사 훈련장 건물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터를 알리는 빗돌만 서 있다. 연무당은 1876년 조선과 일제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장소다. 일제의 강압으로 맺어진 이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인천, 원산 등 항구를 개항하게 된다. 방향을 돌려 강화 남문(안파루)을 향해 걷는다. 1711년 건립된 것을 1975년께 복원했다. 바깥쪽 편액에 적힌 ‘강도남문’은 강화도의 고려시대 도읍 이름이었던 강도(江都)에서 따온 것이다. 남문 옆에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남관제묘가 있다. 강화엔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 세 방향에 각각 관제묘가 있다. 남관제묘가 늘 문을 열고 있어 들여다보기 수월하다. 이제 돈대 투어에 나설 차례다. 강화도 안엔 소규모 군사 기지인 5진(鎭)·7보(堡)·54돈대의 유적이 있다. 돈대는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척후·방어시설이다.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보’가 비무장지대(DMZ) 내 GOP(General Out Post)라면 ‘돈대’는 GP(Guard Post)와 비슷하다. GOP는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일반 전방초소를 가리킨다. GP는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에 있는 최전방 초소다. 그러니까 과장 좀 보태 북한군의 콧김을 느낄 수 있는 GP처럼 적과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공간이 바로 돈대다. 그런데 왜 하필 강화도에 돈대를 이렇게 많이 세웠을까. 시계추를 잠시 조선 숙종 때로 되돌리자. 조선시대 강화도는 금성탕지(金城湯池)와 같은 곳이었다. 쇠로 만든 성(城)과 끓는 물을 채운 못이란 뜻으로, 매우 견고한 성을 일컫는 표현이다. 요즘처럼 뭍과 연결되지 않았던 강화도는 바다가 천연 해자 구실을 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런 강화도가 병자호란을 겪으며 함락되고 만다. 이후 왕과 백성들이 당한 모욕과 고초는 헤아릴 수 없이 컸다. 이런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19대 왕 숙종은 즉위하자마자 강화도에 축성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돈과 인력. 전후 재건과 대기근의 후유증이 남은 상황에서 대규모 성역(城役)을 벌이면 민생 파탄과 민심 이반을 부를 수 있었다. 숙종은 국방과 민생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그게 돈대였다. 지리적 여건도 작용했다. 강화는 곶(串)이 많다. 전망이 좋고 적 감시가 쉬운 지역은 대부분 곶이다. 곶은 지형적으로 협소해 큰 성곽을 쌓기 어렵다. 그 대안이 돈대였다. 둘레 100㎞도 안 되는 섬에 50개 이상의 돈대가 설치됐으니 평균 거리 2㎞가 채 못 되는 공간에 돈대가 빼곡하게 들어선 셈이다. ●신미양요 격전지 ‘광성보’ 조선시대 대포 실물이 전시된 갑곶돈대와 광성보, 손돌목돈대, 분오리돈대 등이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특히 신미양요(1871) 때 격전지였던 광성보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병사들을 기리는 신미순의총 등 의미 깊은 곳이 많다.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 이야기도 곱씹어 볼 만한 역사 소재다. 수자기는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탈해 간 대장 깃발이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 남은 수자기다. 가로, 세로 4m가 넘는 거대한 삼베로 제작됐다.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던 걸 2007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들여왔다가 지난 3월 중순에 환송연 등 아무 공식 행사 없이 반환했다. 그래서 더 아쉽다. 광성보 인근의 오두돈대는 혼자 사색하기 좋다. 여느 돈대와 달리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성벽이 특히 인상적이다. ■ 여행수첩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향토 음식은 젓국 갈비다. 고려시대 때부터 전승됐다는 음식이다. 돼지갈비에 두부, 감자 등을 넣고 끓인 탕이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게 독특하다. 짭조름한 첫맛 뒤에 칼칼하고 비릿한 맛이 따라오다, 시원해진다. 순무 김치, 밴댕이젓 등 반찬만으로도 공깃밥 ‘열 그릇’은 거뜬히 비운다. 일억조 식당이 알려졌다. 용흥궁 바로 앞에 있다. 보통 2인 이상 파는데, 말만 잘하면 1인분도 만들어 준다. 맞은편의 용흥궁 식당도 입소문 난 맛집이다.
  • “불교, 이젠 불상에서 불경 중심으로 바뀌어야”

    “불교, 이젠 불상에서 불경 중심으로 바뀌어야”

    사상 최초 한글 불경 1권으로 출간“수행 방식 변화 이끌 것으로 기대”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존해서 수행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경전을 중심으로 신행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제 불교도 불상에서 불경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처럼 단 한 권으로 이뤄진 불교 경전 ‘불경’(불광출판사)이 나왔다. 출간 작업을 시작한 지 16년 만이다. 한국 불교계 석학으로 꼽히는 이중표(72) 전 전남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출판간담회를 열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불경은 전 세계의 시대적 요구”라며 “이 책이 불교 수행 방식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불경’은 석가모니 붓다의 실제 가르침이 담긴 ‘니까야’ 등 초기 불교 경전의 핵심을 한 권으로 요약했다. 팔만대장경에서 보듯 불교 경전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었던 점에 비춰 보면 사실상 최초의 한글 불경이다. 책은 이른바 ‘벽돌’이다. 무려 1448쪽에 달한다. 성경처럼 얇은 종이에 글씨도 ‘깨알’이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될 정도다. 이 전 교수가 ‘불경’을 편역한 이유는 단순하다. 고등학생 시절 한 법회에 참석했다가 불교에 심취한 그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해 깨달음을 구하는 불교가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누구나 쉽게 붓다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불경을 편찬하겠다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다”고 회고했다. 젊은 시절 출가했다가 학문의 길을 택하며 환속했던 그는 ‘불경’ 출간을 계기로 다시 출가했다. 현재 태고종에 승적을 뒀고 법명은 ‘중각’이다.
  • “불상에서 불경 중심의 불교로”…한 권짜리 한글 불교 경전 ‘불경’ 발간

    “불상에서 불경 중심의 불교로”…한 권짜리 한글 불교 경전 ‘불경’ 발간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존해서 수행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경전을 중심으로 신행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제 불교도 불상에서 불경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처럼 단 한 권으로 이뤄진 불교 경전 ‘불경’(불광출판사)이 나왔다. 출간 작업을 시작한 지 16년 만이다. 그간 수많은 불교 경전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불교계에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이중표 전 전남대 교수(72)는 30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출판간담회를 열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불경은 전 세계의 시대적 요구”라며 “이 책이 불교 수행 방식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불경’은 석가모니 붓다의 실제 가르침으로 인정받는 ‘니까야’와 ‘아함경’ 등 초기 불교 경전의 핵심을 한 권으로 요약하고 정리했다. 율장, 4부 니까야, 숫따니빠따, 담마빠다 등이 담겼다. 팔만대장경에서 보듯, 불교 경전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은 불가능하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최초의 한글 불경이다. 대신 금강경, 반야심경 등 대승경전은 빠졌다. 이 전 교수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를 잘 번역하면 대승불교 사상까지 담아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초기 경전이 구어체로 돼 있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데 이를 생략해가면서 내용을 온전하게 담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이른바 ‘벽돌’이다. 무려 1448쪽에 달한다. 성경처럼 얇은 종이에 글씨마저 ‘깨알’이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될 정도다. 이 전 교수가 ‘불경’을 편역한 이유는 뜻밖에 단순하다. 고등학생 시절 한 법회에 참석했다가 불교에 심취한 그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해 깨달음을 구하는 불교가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누구나 쉽게 붓다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불경을 편찬하겠다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젊은 시절 출가했다가, 학문의 길을 택하며 환속했던 그는 ‘불경’ 출간을 계기로 다시 출가했다. 다만 연령 제한 등으로 인해 본래 몸담았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지난 1월 한국불교태고종으로 승적을 옮겼다. 법명은 ‘중각’이다.
  • ‘독도’ 표시했다고 日수출 막혔는데…이번엔 대놓고 ‘독도 사진’ 넣었다

    ‘독도’ 표시했다고 日수출 막혔는데…이번엔 대놓고 ‘독도 사진’ 넣었다

    독도가 표시된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포장으로 잘 알려진 ‘지도표 성경김’이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기념한 특별 에디션을 출시했다. 최근 독도사랑운동본부는 공식후원기업인 성경김에서 독도의 날을 앞두고 ‘독도의 날 리미티드 독도김 에디션’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독도사랑운동본부는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1900년 10월 25일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해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하고 27일 반포했다”며 “이에 10월 25일은 칙령 제정기념일을 기념하고 독도 수호의지 표명 및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천명하는 중요한 날”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1025 독도의 날’을 알리기 위해 독도사랑운동본부와 대한민국 1등김 지도표 성경김이 손잡고 ‘1025 독도 김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며 “수익금 일부는 독도에 다시 기부된다”고 덧붙였다. 독도 에디션은 다음 달 1일부터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한다. 한편 성경식품의 주력 상품인 ‘성경김’ 포장지에는 한반도와 울릉도, 독도, 제주도가 모두 포함된 지도가 그려져 있다. 성경김은 2021년 한창 김 열풍이 일었던 일본에 제품을 수출하지 못했다. 일본 수입사가 포장지에서 독도를 지워줄 것을 요청했지만 성경식품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임영청 대표는 지난 2021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지도라면 당연히 독도가 표기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지도를 브랜드로 내걸은 것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일본 수출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지도표에 대한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김용일 서울시의원, ‘제20회 백련사 산사음악회’ 참석

    김용일 서울시의원, ‘제20회 백련사 산사음악회’ 참석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김용일 서울시의원(국민의힘·서대문구 제4선거구)은 지난 23일, 해 질 무렵 천년고찰 서방정토 백련사 경내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20회 산사음악회’에 참석, 종교를 떠나 지역 주민 화합의 장에서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만끽하며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눴다고 밝혔다. 천년고찰 서방정토 백련사는 신라 경덕왕 6년(747년), 진표율사께서 창건하신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유서 깊은 정토기도 도량으로,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발원드리는 곳이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국민의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사음악회 1부는 백련사 교무 무애스님의 사회로 국민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영산재 시연과 산사음악회 봉행위원장 동허 주지스님의 인사말씀과 태고종 종무원장 상진스님의 축사,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공양미 전달식이 봉해졌다. 이어 2부는 개그맨 김정렬씨의 사회로 성악곡의 향연과 백련사 불음합창단의 음성공양에 이어 ‘장구의 신’ 박서진의 춘몽 등 5곡, 인기가수 진성의 안동역에서 등 5곡, 행사의 여왕 장윤정의 옆집 누나 등 4곡으로 깊어져 가는 가을의 향연을 깊게 느끼게 해 주었고, 깜짝 등장한 ‘국민MC’ 유재석 출연에 경내는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다. 김 의원은 산사음악회가 종료될 때까지 함께하며, 기획하고 준비하신 동허 주지스님과 출연자 등 관계자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한편, 주민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화합의 장 산사음악회가 앞으로 더욱 진화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 등 사업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