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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사늑약 치욕 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을사늑약 치욕 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이 을사늑약이 체결된 치욕의 공간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지키고 근대국가로 도약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문화재청과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중명전에서 공동 개최하는 특별전 ‘중명전, 고난을 넘어 미래로’를 통해서다. ●헤이그특사 파견 결정한 역사의 현장 중명전은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건립됐다. 당시 명칭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됐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대화재가 발생해 고종이 이곳을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중명전으로 불리게 됐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파견을 결정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근대국가 도약 꿈꿨던 공간 이번 전시는 단순한 유물 진열 방식에서 벗어나 첨단 장비를 활용해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게 특징이다. 전시는 4개 부문으로 꾸며진다. ‘도입부’에선 일제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 현장을 영상과 음성으로 연출해 보여준다. ‘고종황제의 고뇌, 그리고 헤이그’에선 일제 침탈에 맞서 자주 의지를 보여 주고자 했던 대한제국 선포 모습 등을 삽화와 그래픽으로 소개한다. 이어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에선 관객 움직임에 반응해 가상현실을 연출하는 ‘키네틱 영상 시스템’을 활용해 관람객이 3·1 만세 운동 현장에 함께 참여하는 듯한 장면을 선보이고 독립운동 관련 유물 등도 영상으로 소개한다. ‘종결부’에선 광복 이후 모습과 남북 분단의 시련 등을 ‘렌티큘러 기법’(화면을 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보여준다. ●첨단장비 활용 3·1운동 현장에 온 듯 문화재청은 “항일독립 운동과 관련된 등록문화재와 유품 등을 활용한 참여형·체험형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독립을 위한 선인들의 헌신과 노고를 되돌아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펼쳐 나가기 위해 그 뜻과 정신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를 숙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길섶에서] 종이통장의 추억/신융아 기자

    종이통장은 1897년 고종 3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은행인 한성은행이 설립되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종이통장을 없애자는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2007년 신한은행은 부자 고객을 위한 ‘고급’ 세로형 통장을 내놓기도 했다. 종이통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서랍 깊숙이 숨겨 둔 통장을 열어 봤다. 이미 스마트폰뱅킹과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는지라 통장이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종이통장은 분명 필요보다는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통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섭섭하다. 초등학교 때 용돈을 모아 처음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가졌을 때의 그 성취감을 앞으로 자라나는 친구들은 맛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통장은 미미하게나마 금융에 대한 이해와 저축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줬다. 이는 은행 예금을 착실히 하는 우리나라와 일본만 유독 종이통장을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8년에는 전자여권이 도입되면서 나라마다 특색 있는 스탬프와 비자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 편리함과 효용성이 자꾸만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추억을 밀어내는 듯해서 못내 아쉽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변화 택한 신화 ‘명성황후’ 역사는 계속된다

    변화 택한 신화 ‘명성황후’ 역사는 계속된다

    “나 혼자 고루하게 늙지만 않았으면 괜찮을 거야.”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난 윤호진(67)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의 얼굴에는 긴장과 호기가 교차했다. 윤 대표의 역작이자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인 ‘명성황후’가 초연 20주년을 맞아 4년 만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1995년 초연 당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고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올랐던 명작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울림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이 같은 시선을 잘 안다는 듯 “절반 이상 바뀌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이날 베일을 벗은 ‘명성황후’는 리바이벌까지는 아니지만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 흔적이 역력했다. 가림막을 활용한 무대 세트와 조명 등이 전부였던 아날로그 무대에는 디지털 영상이 가세했다. 명성황후가 고종과 혼인하는 ‘왕비 오시는 날’에서는 색색깔의 나비들이 날갯짓을 하고, 궁궐의 우거진 숲에는 초록빛 나뭇잎이 흩날렸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드리워지던 영상은 때로는 휘몰아치는 파도(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요구), 불타는 궁궐(임오군란) 등 역동적인 광경도 만들어냈다. 2층 구조의 무대도 도입해 진화한 무대기술을 자랑했다. 2막에서 명성황후가 외국 대사들과 파티를 즐길 때 무대 바닥이 솟아오르고, 그 아래에서는 일본 공사 미우라가 황후의 시해를 모의한다. 은은한 푸른색 조명에 휘감겨 유유히 거니는 2층의 명성황후와 붉은색 조명 아래에 비장한 얼굴로 결의하는 1층의 미우라는 강렬한 색감의 대비를 통해 곧 휘몰아칠 비극을 예고한다. 경직됐던 캐릭터는 인간미를 입었다. 호위무사 홍계훈은 황후를 연모해 몸을 바친 남자 주인공으로 ‘격상’됐다. 임오군란을 피해 황후가 홍계훈의 도움으로 피신할 때, 이전 공연에서는 손을 잡고 가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황후가 홍계훈의 등에 업힌다. “몸과 몸이 맞닿는, 지극히 인간적인 순간을 만든 것”(윤호진 대표)이다.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던 고종은 황후를 사랑하며 조선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중한 군주로 변모했다. 여기에 홍계훈의 애절한 아리아와 황후, 홍계훈, 고종의 삼중창이 새롭게 추가돼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명성황후’가 20년의 시간을 거뜬히 뛰어넘기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사진 이중 회전무대를 활용한 장면 전환은 2015년에도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이를 받쳐줄 스토리의 흐름에는 빈틈이 보였다. 가요풍 넘버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오페라풍의 넘버는 다소 이질적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20여명의 남자 앙상블들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펼치는 ‘무과시험’, 방울 소리와 사물놀이 소리가 결합한 ‘수태굿’, 궁중 연회에서 펼쳐지는 여자 앙상블들의 ‘화관무’ 등은 한국 전통 춤과 무예가 서구 라이선스 뮤지컬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 보였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오페라극장에서 객석들은 전석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역사 깊은 뮤지컬들이 수정과 진화를 거쳐 새롭게 공연되고 있다”면서 “‘명성황후’ 역시 20주년을 맞아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변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9월 1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만~13만원. (02)2250-5940.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고국으로 돌아온 고승 불화

    고국으로 돌아온 고승 불화

    미국 경매에 나왔던 도난 불화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東岳堂在仁大禪師眞影)이 국내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대한불교조계종과 함께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환수식을 열고 불화를 공개했다.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비단 채색, 97㎝×65㎝)은 18세기 활동했던 승려 ‘동악당재인대선사’(생몰년 미상)를 그린 초상화로, 전남 순천 선암사 진영각에 보관돼 있다 국외로 유출됐다. 1999년 조계종이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 실린 해당 불화의 화기(畵記·제작 경위 등 불화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것)에 ‘건륭3년 계해2월○일’(乾隆三年癸亥二月○日)이라고 기재돼 있어 1738년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건륭은 1735년 즉위한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연호다. 문화재청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승의 초상화”라며 “언제 어떻게 해외로 유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미국인 A씨가 B경매소에 이 불화를 출품한 사실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파악한 후 도난 문화재임을 확인했다. 즉각 이 사실을 조계종에 알렸고 조계종과 선암사는 불화 환수에 적극 나섰다. 문화재청은 같은 달 B경매소에 도난 문화재임을 통보하고 경매중지를 요청했고 경매소는 이를 수용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출품자 A씨와 2개월간 협상을 통해 반환에 합의했고, 불화는 지난달 말 고국의 품에 안겼다. 문화재청은 “경매에 나온 불화가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를 통해 도난당한 것임을 확인했다”며 “소장자가 조건 없이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해 기증 형태로 돌려받게 됐다”고 전했다. 문화재청과 조계종은 지난해 10월 ‘불교 문화재 도난예방 및 회수를 위한 협약’을 맺었으며, 이번 불화 환수는 업무협약 체결 이후 거둔 최초의 성과다. 심주완 조계종 총무원 문화재팀장은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은 의겸이라는 화승(畵僧)의 수제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프로야구] 아~ 아파도 넘고 싶다 4연승 고개

    [프로야구] 아~ 아파도 넘고 싶다 4연승 고개

    한화의 4연승이 멀기만 하다. 한화는 8일 대전에서 열린 KBO리그 두산과의 경기에서 4-9로 완패, 연승 행진을 또 ‘3’에서 멈췄다. 3연승만 6차례 기록한 한화는 올 시즌 유일하게 4연승이 없는 팀. 꼴찌 kt도 5연승 경험이 있는 걸 감안하면 의외의 기록이며, 5위 한화가 좀처럼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다. 한화는 에이스 탈보트를 내세웠으나 3이닝 5실점으로 무너져 어려운 경기를 펼쳤고, 타선도 7안타에 그치는 등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 두산은 2연패에서 탈출하며 공동 2위에서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선두 삼성과의 승차를 2.5경기로 좁혔다. 잠실에서는 LG가 오지환의 연장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롯데를 1-0으로 물리쳤다. 오지환은 0-0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1사 만루에서 이명우의 초구를 우중간 깊숙한 곳에 꽂아넣으며 경기를 끝냈다. 개인 통산 5번째 끝내기 안타. 11회 선두 타자 정성훈의 안타로 물꼬를 튼 LG는 다음 히메네스가 유격수 땅볼로 병살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심판 합의 판정 결과 히메네스는 세이프로 기사회생했고, 이진영의 우전 안타와 채은성의 고의사구가 이어져 만루 찬스를 잡았다. 이날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롯데 선발 송승준은 8이닝 3안타 무실점의 눈부신 피칭을 했고, LG 선발 루카스도 7과3분의2이닝 동안 삼진 12개를 낚으며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뒤이어 등판한 불펜들도 호투해 전광판에는 ‘0’만 줄지어 새겨졌다. 넥센은 목동에서 연장 12회 혈투 끝에 KIA에 4-3 승리를 거뒀다. 3-3이던 12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넥센은 김하성의 볼넷과 유한준의 안타로 무사 1·2루 찬스를 잡았고, 고종욱이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다. 고종욱은 1루에서 아웃됐으나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KIA 내야수 최용규가 포구 순간 어깨 통증을 느끼며 공을 떨어뜨리는 순간, 2루 주자 김하성이 홈까지 파고들었다. KIA는 9일 선발로 예상됐던 스틴슨을 12회 깜짝 투입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했다. 스틴슨은 앞서 12회 초 타석에 들어서는 진기한 장면도 연출했다. 마산 NC-kt전과 대구 삼성-SK전은 비로 취소됐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씨줄날줄] 의정부 터 원형회복/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의정부는 조선시대 국정최고기구라고 할 수 있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정승이 오늘날 정부 각 부처에 해당하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六曹)를 지휘했다. 의정부는 대부분의 역사책이 정종 2년(1400) 성립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 원년(1392)에 그 존재를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 보이기 시작하고 태조 3년(1394)에 이르면 ‘의정부’라고 직접 적기도 했으니 까닭을 모르겠다. 의정부는 국정최고기구였지만 언제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경국대전’은 의정부가 6조 판서로부터 소관 업무를 보고받아 국정을 처리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왕권 강화를 노린 태종이 벌써 의정부를 제치고 판서들이 직접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세종·세조·중종처럼 왕권이 비교적 강해지면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들고 나와 의정부의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곤 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비변사에 권한 대부분을 넘겨준 의정부는 고종이 즉위한 1864년 옛 기능을 상당 부분 회복하기도 한다. 의정부는 대한제국이 출범한 1907년 내각이 신설되면서 폐지됐다. 의정부 청사는 국정최고기구답게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바로 앞에 지어졌다. 지금은 공원과 녹지 그리고 관광버스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자리다. 조선시대에는 의정부 뒤편, 지금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너머로 6조 청사가 줄지어 있었다. 일제는 의정부 청사를 헐어낸 자리에 1910년 붉은색 벽돌건물을 지어 경기도청으로 썼다. 경기도청이 1967년 수원으로 이전한 다음에는 오늘날의 경찰청이라고 할 수 있는 내무부 치안국이 물려받아 청사로 썼다. 조선 왕조의 ‘정치행정타운’ 건설 계획은 놀라운 데가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북악산 남쪽에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앉힌 것이다. 서쪽으로 백운동천, 동쪽으로는 중학천이 각각 남쪽으로 흐르다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중간에 해당한다. 백운동천과 중학천을 정치행정타운 방어를 위한 일종의 자연 해자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두 개의 하천은 모두 콘크리트로 덮여버렸고 육조거리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옛 사람들의 지혜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서울시가 의정부 터의 원형 회복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당장 7월부터 육조대로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한 종합 학술 조사에 들어간다. 내년 6월부터 전면 발굴을 벌이고 그 결과에 따라 2019년까지 진정성 있는 역사공원으로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육조대로 일대의 역사적인 변화상을 보여 주는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복원이나 복구가 아닌 ‘원형 회복’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눈길을 끈다.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글자 그대로 원형을 회복한 의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6] 커피는 정말 몸에 좋을까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6] 커피는 정말 몸에 좋을까

     가히 ‘커피공화국’ 다운 소비량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이 세계 30위권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연간 국민 한 사람 당 마시는 커피도 적게는 240잔에서 많게는 480잔 정도로 통계가 나오더군요.  이처럼 통계에 편차가 있는 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게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 각각 조사해 발표한 것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통계로 잡고 보니 더 대단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저의 경우, 아침 출근 전에 집에서 한 잔, 점심 후 또 한 잔 하는 게 루틴한 ‘커피타임’이고, 혹시 사람들을 만나거나, 돌연 커피가 생각나 돌발적으로 또 한 잔씩 마시는 정도이니 이를 연단위로 환산하면 800∼900잔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시는 커피가 얼마나 우리의 생활 깊숙히 들어왔는지를 이해하려면 밥을 먹는 횟수와 견줘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출근할 때나 공휴일에도 아침에는 거의 밥을 먹지 않고 요거트와 샐러드 등 다른 음식으로 대체합니다. 그러니 1일 2식이 기본이어서 연간 700여 식, 조찬 모임 등이 있을 때 먹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50∼80식 정도라고 치면 커피를 마시는 횟수와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셈을 하고 보니 ‘커피, 참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국가별 연간 커피 소비량에서도 우리나라는 11만 2000톤으로 일본과 러시아를 앞질렀고, 프랑스나 이태리와 견줘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미국과 브라질이 70만톤 내외를 소비하지만, 단순한 소비량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인구가 3억을 넘으니 말이지요.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잠시 의탁하던 고종 황제가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의 권유로 ‘가배’라 불리던 커피를 처음 마셨다니, 그로부터 100여년 만에 지배적인 커피공화국으로 변모해 온 나라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의 마성에 빠진 것이지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아랍,유럽,그리고 세계로  알고 보면 커피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습니다. 6세기를 전후해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처음 식용했다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볶은 원두를 분쇄해 액상 커피를 추출해 마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원두를 씹는 수준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런 커피가 아랍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답니다. 아랍에서 처음 커피를 기호식품으로 활용한 부류는 신비주의적 이슬람 종파인 수피교도들이었는데, 이들은 밤을 세워 기도를 하면서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우려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커피 세계화의 기반이 이 때 마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겠지만, 당시의 아랍은 세계 교역의 중심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잘 아는 실크로드 역시 중국 등 아시아와 아랍, 유럽을 잇는 교역통로였지요.  유럽의 귀족사회는 향락적이었습니다. 항상,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중세의 유럽 귀족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해 거의 모두가 향락적인 삶을 살았고, 그러기를 갈망했습니다. 확실히 당시의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세계의 모든 물산이 유럽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래도 특정 물산이 부족해 성에 차지 않자 땅으로, 바다로 나서 새로운 교역로를 확장하고, 세계 곳곳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멜표류기의 그 하멜이 바로 우리에게 남겨진 ‘세계적 유럽’의 한 증거이지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권위와 이해가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십자군 전쟁도 해를 거듭할수록 문명의 교류와 교역의 특성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커피가 그 증거입니다. 유럽의 십자군과, 십자군의 보급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거상들이 아랍에서 찾아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커피였습니다.  당시 르네상스라는 거센 변혁기를 맞은 유럽사회는 왕과 귀족이 지배적 지위를 독점했던 이전의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바로 자본과 자본가가 르네상스 변혁의 중심에 선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돈이 되는 것들을 찾아내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습니다. 동양의 향신료가 돈이 되자 그들은 군함과 상선을 보내 모든 향신료를 가차없이 약탈, 유럽 귀족의 기호욕을 충족시켜주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커피의 유럽 전파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해야겠지요. 실제로,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 부호들은 커피의 맛과 향기, 그리고 각성효과에 홀딱 반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세계 교역이 커피의 부흥을 이끈 셈이지요.    누구나 커피에 관한 추억은 있다  필자도 커피에 관한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동네 장정 하나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대하고 귀향을 했지요. 김추자의 노랫말에도 있듯이 그가 제대해 돌아오던 날, 온 마을이 잔칫집 분위기였고, 새까맣게 탄 얼굴로 집에 들어선 그에게서 제가 얻은 선물이 바로 C-레이션 깡통에 든 봉지커피였습니다.  누룽지 끓인 숭늉만 마시던 촌놈이 커피를 알 턱이 없었지요. 동무들 앞에서 자랑 삼아 봉지를 뜯고 까만 커피가루를 조금 입에 털어 넣었는데, 그 순간의 황당함이라니요. 마치 테라마이신 가루처럼 된통 쓰기만 한 맛에 전율하다 못해 얼른 그걸 다시 뱉아내고는 입까지 헹궜으니까요. 그러고는 봉지 주둥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나중에야 그걸 물에 타서 마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적당히 설탕을 넣어서요. 그걸 알고 봉지를 열어보니 몇날을 주머니에 넣어둔 탓에 진득하게 엉겨붙어 물에 풀어 녹이기도 어려웠던, 그런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원두커피를 마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법 격조 있는 커피점이나 돈 좀 드는 음악감상실 정도라야 사이폰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흔한 다방에서는 죄다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냈지요. ‘설탕 하나 프림 둘’은 ‘파 송송 계란 톡’처럼 인스탄트 커피의 일상화를 웅변하는 레시피이자 구호였으니까요.  대학 새내기 시절, 미팅이랍시고 학교 앞 ‘다방’에 짝지어 앉은 선남선녀들이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키득거리며 마시던 커피 맛이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그 무렵,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 커피문화에 빠지는 시기였고, 그러니 그 찬란한 청춘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커피와 연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사 잘 되는 집 이유가 있듯이  이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커피가 없어서는 안될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커피가 소비되는 것은 많은 커피 애호가들이 커피를 통해 뭔가를 얻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상식적인데,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 한 취업포털이 실시한 커피 관련 설문 중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눈길을 끕니다. 직장인들에게 ‘커피를 왜 마시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25.7%가 ‘습관’을 들었더군요. 또 18.3%는 ‘기분 전환을 위해’, 16.9%는 ‘잠을 깨기 위해’, 12.9%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라는 응답을 내놨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커피를 마시는 이유로 ‘건강’을 꼽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커피의 선호 이유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건강에 좋으니까’와 같이 구체적 이득에 해당하는 항목을 들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커피가 보편적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넘어 커피가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오늘날의 ‘커피 트렌드’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기호라도 커피를 이렇게 많이 소비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지요.  실제로 국내외에서 이뤄진 많은 연구에서는 커피의 긍적적인 효능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커피가 잠을 쫓아준다’는 단편적인 효능은 이제 상식이고, 보다 실체적으로 ‘커피 건강학’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이지요. 마치 ‘장사가 잘 되는 집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듯이’ 커피가 폭발적으로 소비되는 배경에도 그럴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건강에 대한 이로움에서 찾자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지요.    커피가 건강에 좋은 점 세 가지  물론, 저도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지만, 이제부터 말하는 ‘커피 건강론’이 저의 체험 결과는 아니고, 학계에서 정리된 커피 관련 연구 중에서 신빙성이 있는 부분을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커피를 통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성분은 카페인입니다. 이 카페인 성분은 졸음을 쫓아 정신이 또렷해지게 하는 각성 효과를 가졌는데, “난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페인에 민감한 탓입니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피곤한 신경을 쉬게 하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왜 원두에는 카페인 성분이 많이 들어있을까요? 커피 뿐만이 아니라 홍차, 녹차, 보이차 등 대부분의 차에 다 들어 있는 카페인은 식물의 자기방어 기제에 활용되는 물질입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식물이 수많은 포식자나 곰팡이, 세균 등으로부터 씨앗을 지키기 위해 카페인을 다량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카페인을 섭취한 거미는 거미줄을 엉성하게 치기 때문에 모기를 거의 잡지 못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해충들이 커피 열매를 탐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겠지요. 편백나무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가 사실은 해충을 물리치기 위해 내뿜는 자기방어 물질인 것과 흡사한 원리지요. 이처럼 커피가 대표적인 기호식품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먼저, 커피와 만성질환의 상관성을 살펴보지요. 일본 국립암센터가 실시한 대규모 코호트 조사 결과, 하루에 커피를 3∼4잔 정도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 위험이 최고 40%까지 낮았으며, 연구 결과를 따로 다룬 메타분석에서도 하루에 6잔을 마시면 33%까지 당뇨병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더군요.  이런 연구 결과는 커피가 가진 지방 분해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에 따르면, 커피가 지방을 효과적으로 분해하도록 도와 인체의 활동에너지를 보강하는데, 이 때문에 필요한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인체의 에너지 대사량을 10% 정도 높일 수 있답니다. 커피가 당뇨 발병을 억제하고,고혈압 예방 및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는 가설은 이같은 논거에 따른 것입니다. 또다른 사람들은 커피의 이뇨작용을 들어 콩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더군요.  또다른 이점은 커피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입니다. 사실, 인체의 산화는 정도의 문제일 뿐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끌여들여 대사작용을 하는 한 말입니다. 이 인체 산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는 호흡을 통해 빨아들인 산소가 쓰이고 남은 것인데, 누군들 숨을 안 쉴 수 없으니 그로 인한 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건강염려증을 가진 분들은 혹여 숨쉬기조차 꺼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안정된 상태의 호흡으로는 생성되는 활성산소가 많지 않아 그런 정도는 감당하도록 인체가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자주 하는 경우라면 여기에 대응하는 항산화물질의 보완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지요. 요즘에는 항산화 기능을 강화한 영양보충제도 많이 나와있지만, 바람직하기로는 자연스러운 섭생으로 섭취하는 게 가장 좋을텐데, 여기에 도움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커피라는 말입니다.  학계에서는 세포의 변이에 작용해 암을 유발하는 많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산화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고, 노화의 주범이 활성산소라는 논거는 너무도 많아 기정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왕벌의 먹이로 알려진 로얄젤리도 프로폴리스라는 강력한 항염·항산화물질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커피가 암을 예방한다는 믿음의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커피 다이어트도 실질적인 효능 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는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커피의 에너지 소비 촉진은 장운동과도 연관이 있어 배변을 촉진하는데, 이런 효능이 다이어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오로지 좋기만 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커피를 ‘만병에 좋다’거나, 특정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이나 치료 목적으로 활용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아무리 커피라도 효능이라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반드시 따르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효능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이탈리아 의사 시니발디는 “커피는 신경쇠약과 위장장애를 유발하고, 사지가 떨리는 경련과 중풍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지요. 카페인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인체에 해로운데, 커피에는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으니까요. 사실, 카페인의 과다 문제는 모든 의학자들이 동의하는 문제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는 커피 정도라면 카페인이 따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도 의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격언은 커피 기호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아예 텀블러에 커피를 담거나 커피잔을 들고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점심시간에 커피하우스에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은 이제 익숙한 도시 풍경입니다. 이런 문화를 두고 “5000원짜리 점심 먹고 5500원짜리 커피 마시는 세태’라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고, 또 지금의 커피 문화가 ‘소비를 부추기는 상술이 만든 폐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문화는 다양한 시각으로 조감되는 현상입니다. 그런 냉소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으며, 이런 추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지금의 세상에서 커피를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접근이라는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이 글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적당하게 마시는 양질의 원두커피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특정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이나 치료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양질의 커피는 어떤 커피이며, 적당한 양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가”라고.  필자가 말한 양질의 커피란,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커피콩을 억지로 먹여서 얻는 비싼 루왁커피 따위가 아니라, 풍부한 햇볕을 받고 자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서, 곰팡이가 슬거나 쥐나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잘 관리했다가 내려 마시는 모든 커피를 말합니다. 단, 요새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광고해대는 인스탄트 커피는 제가 말한 양질의 커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적당량’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에 따라 커피를 잘 받는 경우도 있고,아예 한 잔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걸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냥 마셔서 속이 불편하지 않은 정도, 밤에 잠드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 문득 당겨서 기분 좋게 마시는 정도가 바로 개개인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적당량 아니겠습니까. 꼭 커피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스스로 좋으면 그게 최고입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탐관오리’ 조병갑 선정비 그대로 둔다

    탐관오리 선정비(善政碑)를 철거하지 않고 비 옆에 그의 행적을 기록한 안내판이 설치됐다. 경남 함양군은 26일 함양역사인물공원 안에 있는 조선 말 함양군수를 지낸 조병갑 선정비를 그대로 두는 대신 그의 잘못된 행적을 설명한 안내판을 지난 25일 비 옆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함양농민회 등이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던 지난해 4월 탐관오리 대표 인물로 꼽히는 조병갑 선정비가 함양을 빛낸 역사적인 인물들을 모셔 놓은 공원에 있는 게 맞지 않다며 철거운동에 나섰다. 1887년 7월 건립된 이 선정비에는 ‘조선 말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하게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 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고종 24년(1887년)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한자로 적혀 있다. 함양군은 의회와 농민회, 시민연대, 노동자연대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갖는 등 논의한 끝에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며 교훈으로 삼기 위해 비를 철거하지 않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함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사료 모을수록 태극기 가치 오르죠”

    “사료 모을수록 태극기 가치 오르죠”

    “미국에서 자국의 국기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일본, 중국의 수집가들은 많습니다. 반면 태극기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이는 거의 없죠. (경매 시장에서)상대적으로 홀대받고 그 자료의 가치도 박하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사는 재미교포 이병근(48)씨의 하루는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등의 온라인 경매사이트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05년부터 시작하던 태극기 관련 유물 수집 취미는 2009년부터 본격화해 이제는 ‘준연구자’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모은 관련 자료는 모두 800여점이다. 1900년대 초 고종이 황제에서 물러난 뒤 제작한 엽서, 1946년 해방 후 만들어진 최초의 달력 속에 있는 태극기 든 어린이 등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희귀자료 10여점도 포함돼 있다. 이씨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자료는 대한제국에서 한국전쟁까지 한국과 관련 있던 이들의 후손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경매사이트에 올라온다”면서 “지난해부터 부쩍 줄어들어 이제는 사소한 태극기 자료도 잘 올라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경매사이트를 더욱 이 잡듯 샅샅이 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입 비용이 만만치 않았겠다는 질문에 “집 한 채 값은 족히 들어갔을 것 같은데, 만약 처음에 돈 생각을 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본사에서 22년째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199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세 딸을 낳아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시작하게 된 배경이었다. 최초의 태극기로 알려진 ‘박영효의 태극기’ 이전인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만든 ‘이응준의 태극기’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하나의 계기다. 그리고 이제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씨는 “청소년들에게 산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전시회 등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역사로 만나는 우리 태극기’(서울셀렉션 펴냄)를 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코디언북 형태로 들고 다니기 편하게 만들었다. 자주독립의 가슴 벅참과 망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태극기의 발자취를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씨의 첫 번째 작업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창비 대표, 비난 여론에 사과… “표절 혐의 제기할 법하다”

    창비 대표, 비난 여론에 사과… “표절 혐의 제기할 법하다”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작품 일부를 표절했다는 논란과 관련, 소설가 신경숙(52)씨와 문제의 작품을 발행한 출판사 창비의 해명이 더 큰 반발을 낳고 있다.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와 거대 출판사의 의기투합이 역풍을 초래한 것. 문단 안팎에선 출판계 내에 표절 여부를 규명하는 전문 집단이 없는 데다 표절을 판명하는 공식적인 기준조차 없는 게 진위 공방의 진흙탕 싸움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절 여부에 대한 수사권을 지닌 문화체육관광부도 당사자의 고소가 있으면 조사할 수 있지만 표절 여부를 가리는 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신씨는 지난 17일 표절 논란이 불거진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라는 작품을 알지 못한다며 표절 의혹을 일축했다. 창비는 한발 더 나아가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하기까지 했다. 이에 18일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들 입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20년 넘게 창비를 구독해 왔다. 나에게 창비는 의리였다. 신경숙 이전에 창비가 흔들린다. 창비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는가”라고 비꼬았다. 고종석 작가는 “이게 다 신경숙씨가 창비에 벌어준 돈 탓이다. 창비는 한때 거룩했던 제 이름을 돈 몇 푼과 맞바꿨다. 이제 간판 내릴 때 됐다”고 힐난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문장 표절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고개 숙인 다음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부분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첫 단추를 잘못 채워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창비 내에서도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창비직원A’(@unknownmembera)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회사의 기괴한 입장 표명이 바로 한국문학에 대한 갑질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했고 ‘창비직원Z’(unknownmemberz)는 “한 동료가 ‘창비가 아니라 창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회사가 하루빨리 입장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바란다”고 성토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창비는 이날 오후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의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지난 17일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 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 사과드린다.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다”며 표절 부인을 사실상 철회했다. 문단 안팎에선 “표절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표절 여부를 가릴 기준이나 기관이 없어 이번 논란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신씨의 작품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등도 그간 수차례 표절 의혹이 제기됐지만 매번 유야무야됐다. 문학평론가 정문순(46)씨도 지난 16일 신씨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45)씨보다 15년 앞선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신씨의 단편 ‘전설’은 명백히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대로 묻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사자가 고소하면 저작권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이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감정하겠지만 표절로 고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출판계 내부의 자정 작용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계 자율심의기구인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사재기나 도서정가제만 심의할 뿐 표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대한제국 덕혜옹주 옷 일본서 돌아온다

    대한제국 덕혜옹주 옷 일본서 돌아온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1912~1989)의 복식 7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이들 복식을 소장 중인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사장 겸 박물관장 오오누마 스나오)과 오는 24일 오전 10시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유품 기증식을 갖고 기증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다고 10일 밝혔다. 기증받을 복식 7점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이다. 아동용 당의(唐衣·조선시대 여자들이 입었던 예복)와 치마, 아동용 저고리와 바지, 아동용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저고리와 치마 등이다. 문화재청은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평했다. 복식 7점은 국내에 돌아오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한다. 이들 유품은 일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가 1956년 영친왕 부부에게서 기증받은 것으로, 1979년 복식박물관 개관 이후 박물관이 소장해 왔다. 문화재청은 “박물관이 역사적 가치가 큰 소장품을 외부에 기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양국의 문화적 우호 협력 증대를 소망하는 오오누마 이사장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왕이 거닐던 古宮 달밤 동물 통해 표현한 王心”

    “왕이 거닐던 古宮 달밤 동물 통해 표현한 王心”

    “궁은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지닌 곳입니다. 수백년 전 달빛 아래 그곳을 거닐었던 왕들의 자취를 밟으며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고뇌와 감정들을 상상했어요. 동물을 통해 그들을 표현해 봤습니다.” 옛 궁, 달, 왕과 동물…. 강렬한 색채와 활달한 붓질로 동양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온 화가 사석원(56)이 12일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옛 궁궐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양한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한 신작 40여점을 선보인다. 2012년 폭포를 소재로 한 ‘산중미인’(山中美人)전 이후 3년 3개월 만에 선보이는 전시회의 제목은 ‘고궁보월’(古宮步月), 제목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다’이다. “하늘의 달은 오랜 세월 모든 것을 지켜봤을 겁니다. 곳곳에 설치된 고화질 폐쇄회로(CC)TV처럼 말이죠. 궁을 비추는 달처럼 궁 안 풍경을 은근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싶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서울 토박이로 자란 까닭에 창경원과 경복궁, 덕수궁을 구경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면서 “지금도 눈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 창덕궁이고, 장맛비가 내리고 난 뒤 고궁의 아취(雅趣)를 느끼고 싶을 때는 향원정을 찾곤 한다”고 말했다. 빌딩 숲을 조금만 벗어나면 닿을 수 있는 고궁, 이제는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그곳에서 화가는 아주 오래전 그 고즈넉한 공간의 주인이었던 왕들의 심정을 헤아렸다고 했다. ●부엉이·사자 등으로 각 왕실의 이야기 담아 이번에도 그의 그림에서 동물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올빼미가 가득하게 그려진 재킷을 입고 나왔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올빼미와 부엉이를 비롯해 호랑이, 사자, 토끼, 사슴, 공작 등 다양한 동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이전에 보였던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그런 동물은 아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무언가 감춰진 것이 있는 것처럼 신비롭기도 하고 엄숙하다. 그 눈빛에서는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그는 “옛 궁궐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각자 왕실의 인물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에 얽힌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전과 달리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서 “특히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와 선왕의 포부를 본떠 근대화를 꿈꾸었던 고종에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정자에 홍매화 가지에 앉은 두 마리 부엉이를 그린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에서는 정조의 즉위와 함께 찾아올 조선의 부흥을 예고한다. ‘창덕궁 규장각 수사슴’은 정조, ‘1895년 향원정 호랑이’는 고종을 각각 상징한다. ●동물들의 눈 통해 보는 번영·좌절·슬픔 사석원의 그림에서 색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유는 튜브의 물감을 미리 섞지 않고 바닥에 뉘어 놓은 캔버스 위에 직접 물감을 짜고 혼합한 결과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물감의 마티에르가 전보다 훨씬 두꺼워졌고 색은 더욱 화려해졌다. 그는 “달빛이 주는 따뜻함, 왕실의 위엄과 번영, 좌절과 슬픔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더욱 두껍게 발랐다”고 설명했다. 가장 마지막에 그렸다는 흰색 물감으로만 이뤄진 매화그림 두 점은 마티에르의 역동적이며 표현주의적인 느낌이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는 흑백의 톤으로 그려진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눈 쌓인 궁을 배경으로 사슴이 등장하는 동양화적인 느낌의 작품들이다. 두꺼운 마티에르에서 벗어나 스산한 붓질과 고즈넉한 색채로 그려진 궁궐의 풍경은 왕실의 위엄뿐 아니라 쇠락하는 왕조의 운명, 한 나라의 군주이면서 한 인간으로서 갖는 외로움 등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곡절 많은 역사 속에 밴 고요와 슬픔의 아름다움, 적조미(寂照美)라는 단어가 제격이겠다. 동양화에서 출발했고, 동양화가로 불리기를 원한다는 그는 유화물감을 사용하지만 붓은 동양화붓을 사용한다. 그는 “한번 쓰고 나면 붓이 딱딱해져서 버려야 하지만 동양화 붓을 사용하는 게 익숙하고 동양화 붓이어야 획에 입체감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현장 행정] 성북 골목길에 서린 시간을 읽다

    [현장 행정] 성북 골목길에 서린 시간을 읽다

    “동네가 곧 박물관인 성북동이 더욱 촘촘한 박물관 특화 거리로 업그레이드된다.” 4일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2018년까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되는 ‘성북동 역사문화지구’ 사업을 1차로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돌박물관이 개장하고 내년에 선잠단지 부근에 실크박물관이 문을 열며 간송미술관의 상설전시장이 2018년에 완공하게 된다”면서 “이로써 박물관 클러스터와 조선생활사 거리가 조성되면서 첫 단계가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래 성북동은 그 자체로 박물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우선 간송미술관, 한국가구박물관, 구립미술관, 누브티스넥타이박물관, 보석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특별전을 열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통해 5~6점이 새로이 국보 신청을 앞두고 있다. 김 구청장은 “새로운 문화재들이 발견되고 조명받는 것을 볼 때 역사문화지구 조성이 필요한 의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특히 성북동의 박물관들은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민간 자생적으로 조성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지난 3일에는 성북동 가게들의 모임이 발족했다. 구는 최근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마을버스 성북02번 노선을 한성대입구역~선잠단지~성북성당~길상사까지 연장 운행하도록 했다. 또 시인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길상사와 한용운이 10여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심우장이 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성락원은 한국식 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성북동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삼청각부터 정법사를 지나 북악스카이웨이까지 4.54㎞ 구간은 자연 속 산책로다. 북촌의 박인환 집터에서 구립미술관, 상허 이태준 고택을 지나 길상사까지 4.99㎞를 걸으면 옛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다. 성북동 쉼터에서 와룡공원, 숙정문, 삼청각을 지나는 2.29㎞의 한양도성길도 있다. 최근 영화배우 김남길씨는 ‘길을 읽어 주는 남자, 성북편’을 녹음해 인터넷 등에 공개했는데 골목길에 큰 비중을 둘 정도로 성북동의 골목길 탐방은 유명하다. 김 구청장은 “성북동의 갤러리, 박물관 등은 공공기관에 못지않은 공공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민간이 주도할 때 높은 문화적 가치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북동이 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美대사관저 개축 40년 만에 일반에 공개

    美대사관저 개축 40년 만에 일반에 공개

    “미국대사관저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놀랐어요.” 서울 중구 정동길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저에 지난 주말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미국대사관이 정동길 일대에서 열린 중구의 축제 ‘정동야행’에 맞춰 지난 29일과 30일 이틀간 대사관저를 공개했다. 미대사관저가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29일에는 1850명, 30일에는 3995명이 미대사관저를 찾으면서 이틀간 약 6000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미대사관저는 서울의 외국대사관저 중에서 한국의 전통 가옥 모습을 지닌 유일한 공관이다.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 중에서도 최초로 주재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라 지었다는 평가다. 1883년 고종의 명으로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조선이 서양인에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기도 하다. 또 미국 정부가 해외에 소유한 공관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한옥 양식을 접목해 지어진 미 대사관저는 1975년 개축됐다. 관저는 개축을 지시한 당시 미국 대사 필립 하비브의 이름을 따 ‘하비브 하우스’로 불린다. 그가 미 국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옥을 고집한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상량식 때는 시루떡 등으로 고사를 지내 화제가 됐다고 한다. 개방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주인장’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애완견 그릭스비를 데리고 시민들을 맞았다. 리퍼드 대사는 시민들에게 “반가워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시민들은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리퍼트 대사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민들은 공사관 내부를 구경하거나 마당에 설치된, 활짝 웃는 모습의 오바마 대통령 부부 모형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서동철△광고국 광고제작팀장 김태곤△경영기획실 인사부 차장 이석△기획부 차장 이태성 ■보건복지부 ◇국장급△대변인 류근혁△건강정책국장 김상희◇과장급△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실 파견 김기남△대통령비서실 전출 양윤석△복지급여조사담당관 신준호△복지정책과장 김혜진△사회보장조정과장 김충환△사회서비스정책과장 은성호△국민연금정책과장 정호원△국민연금재정과장 최홍석△원격의료추진단 원격의료사업·해외지원팀장 김유석<질병관리본부>△예방접종관리과장 홍정익△공중보건위기대응과장 이수연△생물자원은행과장 박옥△국립김해검역소장 최혜련 ■환경부 ◇3급 승진△기후대기정책과 김법정△유역총량과 서흥원◇4급 승진△감사담당관실 송세경△기획재정담당관실 고종희△창조행정담당관실 황인목△해외협력담당관실 조규원△생활환경과 조성준△물환경정책과 조순△자연정책과 정호경△생물다양성과 윤은정△국토환경정책과 오사옥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장 여태수△인사관리처장 이재훈△터미널운영처장 김창규△교통운영처장 류진형△공항시설처장 김동철△건설관리처장 배영민△토목처장 유재선△건축1처장 김영규△건축2처장 신주영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생물자원관장 안영희△담수생물연구본부장 이욱재 ■KBS 미디어 ◇콘텐츠기획본부△엔터테인먼트부장 김우민△KBS방송아카데미부장 정동섭◇뉴미디어기획본부△인터넷기획부장 김근웅△뉴미디어기획개발부장 이제엽 ■조선일보 △편집국 기획 및 행정담당 에디터(부국장) 정권현△미래기획부장 윤영신△경제부장 강경희△사회정책부장 박종세△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조형래△경영기획실 기획팀장 호경업△비상계획관 홍현선 ■메트로신문사 ◇승진△전무이사(편집국장 겸임) 강세준△뉴미디어국장 김하성
  • 경복궁 내 최초 전기 발전소 터 확인

    경복궁 내 최초 전기 발전소 터 확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흥복전(興福殿) 권역 내 영훈당(永薰堂) 터 일대를 지난해부터 발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발전소이자 전기 발상지인 ‘전기등소’(電氣燈所) 터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영훈당은 고종 연간에 경복궁 흥복전과 향원지 사이에 건립돼 내각 회의와 경연, 외국 공사 접견 등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중건을 위해 경복궁 내 여러 전각을 헐어낼 때 함께 철거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향원지 북쪽과 건청궁 남쪽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전기등소의 위치가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 북쪽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는 석탄 원료를 보관한 탄고(炭庫)와 발전소 터 등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던 전기등소 흔적들이 나왔다. 아크등에 사용한 탄소봉, 연대(1870년)가 새겨진 유리 절연체 등 전기 관련 유물도 출토됐다. 연구소는 “백열 전구가 아닌 아크등이 사용된 흔적이 확인됨에 따라 우리나라 전기 발전사 연구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선 왕실은 미국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온 보빙사(報聘使) 건의에 따라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미국인 전등기사 매케이를 초빙해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등소를 완공했다. 발전 규모는 16촉광(1촉광은 양초 1개의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설비로 알려져 있다. 최초 점등일은 1887년 1~3월쯤으로 추정되며, 건청궁 내 장안당과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향원정 주변의 등을 밝혔다. 영훈당 터에서는 영훈당 본채와 함께 부속 행각지 등 건물 터 6개 동이 확인됐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옛 안동별궁 터 ‘풍문여고’ 70년 만에 공예문화박물관으로

    풍문여고가 70여년 만에 공예문화박물관으로 변신한다. 풍문여고는 1882년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가례가 이뤄진 옛 안동별궁 터가 있던 자리다. 서울시는 17일 학교법인 풍문학원으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부지 1만 3839㎡를 감정평가 결과인 1030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매매계약은 이달 중에 체결될 것”이라면서 “땅값은 3년에 걸쳐 나눠서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풍문여고 터는 1881년 고종이 안국방의 소안동에 지은 별궁인 안동별궁이 있던 곳이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에는 궁녀들의 거처로 사용됐다. 이후 1937년 민영휘씨의 증손자 민덕기씨에게 팔렸다. 민덕기씨는 1944년 재단법인 풍문학원을 인가받고, 1945년 풍문여고를 설립했다. 풍문학원은 1965년에는 운동장 부지 확보와 건물 신축을 위해 안동별궁 정화당과 경연당, 현광루를 해체했다. 시는 2017년 풍문여고가 강남구 자곡동 내곡지구로 이전하면,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8년 하반기까지 서울공예문화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풍문여고는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가까워 하나의 문화벨트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북촌에는 110여개, 인사동 인근에는 50여개 공방이 있다. 공예문화박물관에는 현대공예작품이 주로 전시될 예정이다. 시는 전시공간 외에 연구공간이나 작업공간도 설치해 이 공간을 공예문화와 산업의 허브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일제 잔재 ‘국세청 별관’ 철거…서울시 역사문화광장 만든다

    일제 잔재 ‘국세청 별관’ 철거…서울시 역사문화광장 만든다

    서울 덕수궁 옆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광장이 들어선다. 서울시는 이 공간의 지하를 개발해 장기적으로 광화문광장과 연결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의 ‘세종대로 일대 역사문화 특화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고 11일 밝혔다. 국세청 별관은 193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체신청 청사로 지은 건물이다. 본래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였던 귀비 엄씨의 사당 덕안궁터가 있던 자리다. 시는 국세청 별관 중 기둥이나 벽면 일부는 기념물로 남긴 채 이 터의 역사적 가치를 살린 역사문화광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또 1978년 증축됐던 신관 지하실은 근대역사 아카이브공간으로 리모델링된다. 시는 설계공모를 통해 올 상반기에 국세청 별관 지하공간에 대한 구상을 정리하고 광복 70주년인 8월에는 임시광장이 조성되게 할 예정이다. 이제원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일단 광장 조성과 지하실 리모델링이 끝나면 논의를 거쳐 현재 복도식으로 돼 있는 덕수궁 지하보도와 1호선 시청역을 연결해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이번 사업이 덕수궁과 성공회성당, 서울시의회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 공간은 멀게는 조선시대와 일제, 가깝게는 4·19와 2002년 월드컵 등과 관련돼 광장과 지하공간의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현재 죽어 있는 공간인 덕수궁 지하보도도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와 지하공간 개발은 서울시의 지하도시 개발과도 연결된다. 시는 현재 종각과 광화문을 연결하는 지하보도 조성을 진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교통 안전성에 대한 평가 등이 진행돼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광화문 지하광장과 시청의 지하공간을 연결할 필요성은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이번 사업으로 시민청을 중심으로 한 지하공간이 좀 더 확장된다고 볼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태영그룹] 서울고·서울 법대… 정치·경제·법조·학계 망라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태영그룹] 서울고·서울 법대… 정치·경제·법조·학계 망라

    윤세영 회장은 유독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맺은 인연에 애정이 깊다. 그의 자서전에서 “서울고와 서울대 법과대학 때 만난 친구들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월등히 나았고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인맥은 화려하다. 정치·경제·학계·법조계까지 각계각층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인사가 즐비하다. 우선 1956년 입학한 서울대 법과대학 동기 중 장관급을 지낸 이들만 12명에 달한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씨, 법무부 장관을 거쳐 노태우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정해창 좋은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고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 안우만 전 법무부 장관, 최상엽 전 법무부 장관, 송언종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특히 정해창 변호사와는 골프를 자주 즐기는 60년 지기 친구다. 정 변호사는 골프광인 윤 회장이 홀인원하는 모습을 두 차례나 목격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이들 중 강신옥, 김의재, 이재창, 이상하, 고 이석용, 고 허남훈씨와도 동기 동창이다. 일반인들에겐 ‘도투락’이란 이름으로 익숙한 봉명기업의 창업자 고 이동녕 전 의원의 보좌관 역할을 8년간 해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계에도 누구보다 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이때 알게 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는 40년 지기다. 윤 회장이 다섯 살 위지만 젊은 시절 나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친해져 말을 놓게 됐다. 경제계에선 고종진 전 두산그룹 사장, 대우조선 대표이사를 지낸 홍인기 한국증권연구원 고문, 송영수 전 한진중공업 부회장, 이태원 전 ㈜한진 사장, 정우모 태영인더스트리 상근고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세종대 총장을 지낸 양승규, 제일은행장 출신인 신관식씨도 막역한 사이다. 윤 회장은 고향인 강원도를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8년 윤 회장이 강원도민회장을 하던 시절 만난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도 친분이 깊다. 김 전 지사는 지인들에게 “강원엑스포를 준비하던 당시 발 넓은 윤 회장 덕에 도민회 회원 숫자를 150만명에서 300만명까지 늘릴 수 있을 정도였다”면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도 윤 회장은 내 멘토였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임을 위한 행진곡/문소영 논설위원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공개된 노래극 ‘넋풀이’의 삽입곡이다. 이 노래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점거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에 헌정됐다.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쓰고 소설가 황석영씨가 가사를 썼는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쓴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빌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반복)”라는 가사가 평이하다. 그 때문에 100년쯤 뒤 이 노래를 ‘386세대의 반정부 투쟁가였다’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1894~95년 동학 농민혁명을 주동한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이 공주 우금치에서 조선의 관군과 일본군의 합동작전으로 거의 전멸하자 그 패배를 슬퍼한 백성이 널리 불렸다는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평이함에서 닮았다. 고종에게 반부패 개혁과 외세 배격을 요청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 동학 농민들을 애도할 만한 과격함이 없다. ‘새야 새야’보다 100여년 전인 1792년 프랑스 공병장교 루제 드 릴이 쓴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의 호전성과 선동성이 비교될 정도다. 가사 1절에는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고, 전투 대열을 구성하라/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라/불순분자들의 피로 길고랑을 물들여라”는 구절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또 논란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기념식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관행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2009년 국가보훈처가 공식 행사에서 이 노래를 빼고 공식 기념곡을 공모하겠다거나, 2010년에는 기념식 식순에서 이 노래를 빼고 그 자리에 경기도 민요 ‘방아타령’을 넣어 물의를 빚었다. 올해도 공식 기념곡 지정 등을 요구했지만 무산되자 5·18 유족회와 광주시민단체 등이 기념식에 불참하기로 해 반쪽짜리 관변 행사처럼 쪼그라들 것 같다. 노래 한 곡에 목숨 걸 일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하던 노래를 유가족들이 원하는데 목숨 걸고 못 부르게 할 이유도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민과 젊은이들의 노래다. 그러니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도시, 광주의 시민에게 이번 5·18에는 꼭 돌려주길 바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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