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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대한매일신보와 ‘시일야방성대곡’/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한매일신보와 ‘시일야방성대곡’/서동철 논설위원

    ‘피고인은 ‘장인환 등이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방해하는 스티븐스를 저격했으니 그야말로 애국지사’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피고인이 항일을 주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피고인은 치외법권에 의지하여 신문지법의 규제를 벗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피고인이 양기탁과 함께 발행하는 신문을 이용하려 한다.’ 오류 논란이 빚어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국사 14번 문항에 제시된 판결문이다. ‘피고인’은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이다. 배설(裵說)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이었다. 이 신문이 일제의 침략 정책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이 발행인이어서 ‘신문지법’을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항일 논조를 주도한 사람은 주필 양기탁(1871~1938)이었다. 일제 통감부는 1908년 장인환 의사와 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 사살 사건을 다룬 보도를 문제 삼아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에게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영국 정부는 베델을 중국 상하이의 영국 조계지에서 재판에 회부한다. 미국인 더램 스티븐스는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내세운 인물이다. 그는 “이완용 같은 충신이 있고 이등박문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의 대행복”이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사건 상보를 1면 머리로 보도하고, ‘우리가 두 사람과 거사 현장에 같이 있지 못하였으나 어찌 그 애국 열성을 위로하지 아니할 일이오’라는 별도 논설도 실었다. 영국 법원은 베델에게 금고 3주일에 6개월 근신, 근신 기간 위법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의 보증금 2000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베델은 대한매일신보 창간에 앞서 1904년 6월 29일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라는 영문 시험판을 먼저 낸다. 하지만 한국인도 세계 정세 변화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과 같은 해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라는 2개 국어 신문이 나온다. 창간 당시 6개의 지면 가운데 2면이 한글판, 4면이 영문판이었다고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이 윤허할 수 없음을 밝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11월 21일자에서는 ‘조약은 이토가 대신들을 공갈·협박하여 강압적으로 체결했으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이유만으로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을 체포 구속하고 신문을 정간시킨 것을 언어도단’이라며 강력히 비난한다. 11월 27일에는 한 면은 영문, 한 면은 한문으로 을사늑약의 진상을 알리는 호외를 낸다. 머리에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영문과 한문으로 각각 번역해 실었다. 늑약의 부당성과 그 부당성을 설파한 역사적 논설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철 스님(1912~1993)의 법어(法語)다. 1981년 1월,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내린 이 말은 단번에 대중의 눈과 귀, 그리고 입까지 벌리게 하였다. 이후 성철 스님은 한국 선종을 대표하게 된다. 그가 젊은 시절 파계사(把溪寺)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통해 공부했던 일화는 아직도 납자승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구전되고 있다. 이러하니 현재도 그의 가르침은 늘 생생히 불교계에 선풍(禪風)을 고양시키고 있다. 바로 성철 스님이 1936년 동산(東山)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은 곳이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자리잡은 해인사(海印寺)였다. 이후 1993년 11월 4일 향년 82세(법랍 58세)를 일기로 입적할 때까지 해인사의 공부하는 큰 스님으로 머물렀다. 해인사는 순천의 송광사, 양산의 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공부하는 법보(팔만대장경)사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글이 있는 절’이라 하여, 해인사는 큰 시험을 앞둔 불자들에게는 방문 1순위의 불법(佛法) 높은 발원(發願) 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매년 11월만 되면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중생들의 간절한 1000배 합장, 무릎 꺾는 소리가 경내 곳곳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능을 앞둔 11월, 합천 해인사다. ● 팔만대장경의 불력으로 수능 성공을 기원하다 해인사는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후 918년에는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인사 역시 화마의 불길을 피해가지 못해 기록으로 남은 화재만 5차례가 넘는다. 따라서 창건 당시의 건축 원형은 알 수가 없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엽때 중건된 것들이다. 이 중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국보 52호 장경판전(藏經板殿)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숱한 화재 속에서도 불길이 닿지 않은 영험한 곳으로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하여 창의 아랫부분은 넓고, 윗부분은 좁게 만들어 습기가 경내에 머무르지 않도록 통풍을 유도하는 건물로 지어졌다. <사진4.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 입구. 위 사진 양 옆으로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흙바닥에는 숯, 소금, 횟가루, 모래를 넣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고, 장경판전 자체를 사찰 제일 위쪽에 배치하여 인적이나 화마의 위험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선조들의 건축술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전각의 방향이다. 특이하게도 남향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방향을 돌린 서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하루동안 모든 경판에 햇살이 한 번은 닿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역시 국보 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해인사 대표문화재다.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관람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을 좀 더 살펴보자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총 8만 1258판이며,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70㎝ 내외이며 두께는 2.6㎝, 내지 4㎝, 무게는 3~4kg이어서 전체 무게는 약 280톤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원래는 ‘고려대장경’이라고 불려야 할 팔만대장경 명칭의 유래는 장경 판수가 8만이 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팔만이라는 숫자는 불력(佛力)으로 다다를 수 있는 ‘큰’ 숫자를 대표하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이면서도 제작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경판이기도 하다.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으로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 원래는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 거대한 사찰 규모에 또 한 번 놀라, 발길 바쁜 관람객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많다. 우선 절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조선 초기 양식으로 사찰 제일 첫 관문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문을 상징한다.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건너가면 제 3문인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유독 해탈문 아래에 높이 33 계단이 있는 데 이는 도리천, 즉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삼라만상의 우주를 의미한다. 이 해탈문 아래 오른편에 가야산의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다. 바로 이 앞에 노란 소원지 한 가득 모여있는 나무가 있어 '수능성공’을 기원하는 글귀가 많다.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를 넘어가면 해인사 중심법당인 대적광전이 있다. 해인사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기 때문에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중심 법당이다. 바로 이 법당에서 수험생을 자녀로 둔 수많은 불자들이 그들의 염원을 위해 108배에서 3000배까지 합장발원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해인사에는 이외에도 이름난 전각들이 많다. 보경당, 청화당, 적묵당, 궁현당, 관음전, 경학원, 명부전, 응진전, 독성각, 선열당, 퇴설당, 극락전, 조사전, 대비로전 등 우리나라 3대 사찰 명성에 걸맞는 규모의 법당이 많아서 이를 다 둘러보려 해도 한 나절은 족히 걸린다. 11월 중순,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간절한 발원 염원이 종교를 넘어 모두 해인사 하늘 위 비로자나불에 닿기를 기원한다. <해인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경상남도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 보는 것도 좋다. 특히 해인사는 겨울 풍경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특히 나이드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함께. 3. 주소와 입장료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055)934-3000/ 입장료(개인기준)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동절기 오전 8시 반~오후 5시(하절기는 오후 6시까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야산 깊은 산속에 이렇듯 큰 절이 있다니. 해인사로 오르는 길 왼편에서 만나는 계곡의 아름다움, 늦가을 떨어지지 않은 은행나무 잎에서 불어오는 노란 흔들림.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해인사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절이다. 홍길동전에서 묘사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이유는 아마도 사찰 규모의 거대함때문이었으리라. 6. 꼭 봐야할 장소는? -장경판전, 대적광전, 구광루, 봉황문, 일주문 7. 먹거리 추천? -해인사 주변은 예로부터 관광지로 잘 발전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개는 단체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곳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들어갈 만한 식당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해인사 아랫마을에 소소한 식당들이 산채비빔밥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haeinsa.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합천영상테마파크 적극 추천함. 10. 총평 및 당부사항 -해인사 소리길을 걷는 관람객들이 많다. 해인사는 가야산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야산을 등산하듯 걸어 올라가다보면 제대로 된 해인사 나들이가 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3低1高시대 부동산 투자 전략’ 세미나 18~19일 진행

    ‘3低1高시대 부동산 투자 전략’ 세미나 18~19일 진행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과 (주)성운엠엔씨가 공동으로 2회에 걸쳐 ‘저성장, 저금리,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맞춤투자전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주최 측인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준엽 본부장은 15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4대 직면과제 저출산,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로 인한 대변혁의 시기에 가장 큰 위기의식을 느끼는 중장년층들의 대응전략을 부동산투자 측면에서 모색해보는 유익한 세미나가 되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수(15~64세)가 감소하고,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절벽을 앞둔 현실적 문제에서 나의 부동산 시장 대응 전략과 전문가의 판단을 비교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미나는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준엽 본부장의 부동산 시장 동향 보고에 이어,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인 고종완 박사의 ‘인구 대변혁기의 부동산 맞춤투자전략’이란 주제로 진행된다. 이번 세미나는 별도의 참가비 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선착순 100명 사전 신청자에 한해 좌석이 제공된다. 1차 세미나는 18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리며, 2차 세미나는 인천 남동구 구월남로에서 19일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英대사관에 막힌 덕수궁 돌담길 내년 8월 개방

    英대사관에 막힌 덕수궁 돌담길 내년 8월 개방

    근현대사의 공간이자 대표적 산책로이지만 60년 가까이 ‘금단의 거리’로 묶였던 덕수궁 돌담길 일부 구간이 빠르면 내년 8월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는 주한영국대사관과 협의해 대사관 후문부터 직원 숙소까지 100m 구간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내년 8월 개방을 목표로 내년 초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다. 개방하는 구간은 대사관이 점유 중인 덕수궁 돌담길 170m 구간 중 서울시가 소유권을 가진 100m 구간이다. 대사관 측은 1959년 점용허가를 받아 이곳을 써 왔다. 나머지 70m 구간은 영국이 매입해 소유권을 가진 구간으로 이번 개방 대상에서는 빠졌다. 시는 지난해 5월 대사관 측과 ‘덕수궁 돌담길 폐쇄 구간 개방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은 뒤 실무 논의를 해 왔다. 대사관 측은 협의 과정에서 덕수궁 돌담길이 한국인에게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보안 문제 탓에 개방을 꺼렸다. 이 때문에 돌담길 개방이 안전·보안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평가해 100m 구간을 개방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대사관 측이 ‘정문~직원 숙소까지 70m 구간에는 대사관 업무 빌딩이 들어서 있어 보안상 이유로 개방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새로 개방되는 돌담길 구간은 문화재청에서 복원을 추진 중인 ‘고종의 길’ 110m 구간과 이어진다. 또 시는 돌담길과 덕수궁 경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과거 회극문이 있던 자리인 덕수궁 담장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최순실 게이트, 역대 정권 비리와 ‘세 가지’가 다르다

    최순실 게이트, 역대 정권 비리와 ‘세 가지’가 다르다

    대통령 취임전부터 40년 실세韓 정치사서 전무후무한 ‘비선’ 인사 개입에 정책까지 주물러 “일시적 카드 땐 식물대통령 2선 후퇴론 불신 못 씻을 것”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운집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집회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은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비교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충격와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 본인이 연관돼 있다는 점, 대통령의 친인척이 아니라 직책·지위가 따로 없는 지인이 비리를 주도했다는 점, 특정 현안이 아니라 국정 전반을 농단했다는 점 등 세 가지가 충격의 크기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4일 “이전 대통령들의 측근 비리는 모두 친인척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이번에는 혈연이 아니라 제3자라는 점이 다르다”면서 “아무런 직위나 직책, 식견, 정치의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국정 전반을 휘둘렀다는 점을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외적 인물이 비선 실세로 지목되자 국민들이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1987년 민주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후 노태우 정부에서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씨가 ‘6공 황태자’로 불리며 비선 실세 역할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아들인 현철씨가 ‘소통령’으로 불렸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아들인 홍일·홍업·홍걸 삼 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영일대군’으로 불렸다. 혈연이라고 부정을 저지른 죄가 덜한 것은 아니지만 친인척도 아닌 ‘오랜 지인’이 가족보다 더 위세를 부린 점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연설문, 인사, 정책 등 국정 개입은 물론 재계, 문화계, 체육계, 의료계 등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더 큰 충격은 대통령 본인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로 가려지겠으나, 과거 친인척의 비리는 대통령 자신은 몰랐던 것으로 귀결된 반면이번 사건의 경우 의혹이 제기된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 연루 의혹이 제기돼 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그간 측근 비리는 측근을 도려내 1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자신이 원인으로 지목돼 있기 때문에 참모를 교체하거나 다른 방법을 마련해도 식물 대통령이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씨의 경우 정치적, 정책적인 결정뿐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인 부분까지 모든 것에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라며 “대통령 취임 전부터 40년 가까이 실세로 활약한 경우는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고 말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잘못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대통령이 국정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사적 인연을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실망과 분노를 야기한 것”이라며 “특히 정부청사가 집중돼 있는 세종시에서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3000명이나 모여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 비리와 또 다른 차이점은 비리 의혹이 전방위적이라는 점이다. 최씨 본인의 국정 개입은 물론 딸 정유라씨의 입학·학사 과정 특혜 의혹, 차은택씨와 김종덕 전 문화부 장관·김종 문화부 차관·손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 등이 주도한 문화계 비리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주도한 모금 과정의 의혹 등 여러 갈래의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상황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모(42)씨는 “통상 비리는 몰래 조금씩 해먹기 마련인데 요직에 최씨 측근을 앉히고, 재벌을 압박하고, 정책으로 세금을 몰아주고, 이제는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다”며 “능력도 없는 자들이 무식하게 국정을 흔들었다”고 분개했다. 전문가들은 유례없는 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인 만큼 여야 간 합의를 통한 미봉책은 정국 타개에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2선 후퇴로는 국민들의 불신과 우려를 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맑은 가을햇살 느끼며 옛 ‘경성 월스트리트’를 걷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맑은 가을햇살 느끼며 옛 ‘경성 월스트리트’를 걷다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5일 답사는 ‘인권을 생각하며 걷는 남산둘레길’을 주제로 이필용·손안나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중에서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들은 ‘위기의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관리주체가 없어서 보전이 어렵거나 적극적인 수리·보수가 필요할 경우 미래유산 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한다. 이 경우 소유자는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시민들과 유산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최근 문화지평이 답사하는 과정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성우이용원의 이남열 대표이발사는 건물이 노후해 수리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건물은 실제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고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줄줄 샌다고 한다. 또 다른 서울미래유산인 공씨책방의 경우 건물주가 퇴거를 요청하면서 미래유산으로서의 공유가치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들 모두 위기의 미래유산인 셈이지만 먼저 미래유산 보존위원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서울 남대문부터 광교까지 뻗은 남대문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한국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1번지였다. 13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경성 월스트리트를 가다’를 주제로 지난달 15일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이 해설사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두고 해설하는 한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서울미래유산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하늘이 맑은 데다 도심 한복판 평지를 걷는 편안한 코스라서 다른 때보다 많은 40명 가까운 인원이 답사에 참여했다. 이날 참석한 선현호 아시아나국제특허법률사무소 관리부장이 어린아이 주먹만 한 약식 30여개를 싸와 답사팀 간식으로 나눠주었다. 약식은 선씨의 부인이자 이바지 음식 전문가인 강기숙씨가 아침에 손수 만들어 보낸 것이라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옆 작은 공원에서 답사팀은 모였다. 2008년 2월 10일 설날 연휴에 방화로 완전히 불타 버린 숭례문은 2013년 5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돼 일반에 공개됐다. 화재 전에는 도로 위에 섬처럼 서 있어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공원화되면서 출입이 자유롭다. 문화재 관리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간직한 숭례문에서 이번 답사 여정이 시작됐다. 이 해설사는 “오늘 답사길은 시내 한복판이라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껴지는 곳”이라며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가로세로 동서남북형 도로와는 다르게 소공로처럼 대각선 도로와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소월로를 따라 남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남산육교 고가차도가 나온다. 1961년 말 만들어진 일반교량으로 오래된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남대문시장 안에는 은호식당이란 노포가 있다. 1932년 ‘은성옥’이란 상호로 문을 연 꼬리곰탕집이다. 한국전쟁 때는 부산 피란처에서도 임시로 문을 열었다가 휴전 후 지금 자리에 건물을 짓고 재개업했다. 현재 4대째인 정용식씨가 운영하고 있고 서소문, 여의도에 직영점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84년 동안 운영되면서 남창동 일대의 시대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장소라는 이유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남대문시장 전체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414년 정부 임대시전으로 남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게 시장의 시초다. 종로 시전과 동대문 이현과 함께 남대문 칠패는 조선 내내 주요한 시장의 기능을 했다. 1608년(선조 41년)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의 특산물 등을 매매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1911년 3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내부대신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남대문시장은 정식 근대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해설사가 남대문시장 초입의 선혜청 표지석 앞에서 답사팀을 멈춰 세웠다. 17세기 초 조선시대 대동법 실시에 따라 대동미(米)·대동포(布)·대동전(錢) 출납을 관장한 관청이 있던 자리다. 쬐끔 과장해서 월스트리트는 이미 17세기 조선조부터 시작된 셈이다.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을 쌀로 통일해서 바치게 한 납세제도다. 벼농사가 어려운 산간지방이나 쌀 납부가 어려운 경우에는 베·무명(대동포), 돈(대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었다. 선혜청의 의미는 대동법 실시 이후 등장한 공납 대납업자들이 산업자본가로 성장해 수공업과 상업발달을 촉진시켰다는 데 있다. 이렇듯 돈이 흘러가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운송활동도 증대하면서 교환경제가 발달하게 됐다. 서울역이 남대문시장 인근에 위치한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이유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남대문 2층 한옥 상가벽돌 쌓아 올린 한·양 절충식 건물 남대문 지하보도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정확한 준공 시기는 알 수 없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대문 4가 대로변에는 생소하게 한옥 기와를 이고 선 2층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남대문로 2층 한옥상가다. 올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2호로 등록됐다. 1910년대 만들어진 벽돌조 한양(韓洋) 절충식 건물로 전통적인 단층 목조 건축 양식에서 벗어난 벽돌조란 특징을 갖는다. 업무상 중국 출장이 잦은 김유림(40·넥스나인 대표)씨는 “중국 VIP 및 비즈니스 고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남대문 일대 관광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동안 흔하게 알려진 것만 설명하는 데 그쳤다”며 “이번 답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을 중국인들에게 보다 풍성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해설사는 답사팀을 북창동 먹자골목을 통과해 플라자호텔 쪽으로 이끌었다. 길 건너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다. 수문장 교대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립극장장을 지낸 허규씨가 병상에서 아이디어를 내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즉 역사에 이런 수문장 교대식은 없었다. 명동 나석주 열사 동상 나 열사가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곳 이 해설사는 “대한문 앞 도로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근대적 도시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환구단을 거쳐 소공로를 뚫어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개설했고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도로 역시 구체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로의 확장과 직선화가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의 부재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 해설사는 “도로가 넓어지면 교통은 편리해지지만 사람이나 차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교류가 어려워지게 된다”며 “이는 도로의 발달이 사람보다 자동차에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도로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편리하게 걸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교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야 사람 간 교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환구단 일대 호텔가일제강점기 경성 대표적 상업지역 눈을 조선호텔 쪽으로 돌리자 사적 157호 환구단이 나타났다. 2007년 수유리 그린파크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던 문이 환구단 정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이전 복원된 사연을 갖고 있다. 환구단 일대는 지금도 각종 호텔이 빼곡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을 찾는 외국인이 묵는 호텔이 많았다.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풍부한 경성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었던 셈이다. 백화점과 양판점이 들어서면서 막대한 시장 자금이 돌자 자연스레 금융시설도 들어섰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인 SC제일은행에는 조선저축은행, 한국은행 소공별관 자리는 조선상업은행, 롯데 애비뉴엘에는 조선신탁주식회사가 있었다. 그 바로 옆 롯데백화점은 식산은행, 길 건너편에는 제일은행, 외환은행 자리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다. 이 밖에도 시청 을지로별관에는 제국생명, 신한은행 광교빌딩은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동일은행 등이 있었다. 우리은행 종로지점은 조선상업은행 종로지점으로, ‘1924년 8월에 문을 열었다’는 동판이 벽에 부착돼 있다. 이렇게 금융회사가 밀집해 있었던 역사로 인해 ‘경성의 월스트리트’였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거리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부터 을지로입구역까지 남대문로 일대를 아우른다. 한편 소공로는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을 대각선으로 잇는 짧은 도로였지만 모던보이들이 즐겨 찾던 신식 양복점이 즐비했다. 소공로 중간쯤 있는 서울미래유산 해창양복점은 1945년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창업주 이용수씨가 소공동으로 이전 운영하다가 1958년 아들 이순신씨에게 가업을 넘겼다. 1995년 재단사로 일하던 한창남씨가 경영에 참여한 이후 2004년 완전히 인수했다. 지금은 일대가 부영그룹에 의해 개발되면서 조선호텔 건너편으로 이전했다. 소공로 해창양복점 거리모던보이들 즐겨 찾던 신식 양복점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으로 들어가는 하나은행 옆 골목 초입에는 나석주 열사의 동상이 있다. 이곳은 1926년 12월 나 열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 중 자결한 곳이다. 답사단은 광교 위에서 이번 답사를 정리했다. 고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참석한 이은순씨는 “오늘 답사를 하면서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이 알게 됐다”며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따뜻한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졌다”고 후기를 전했다. 이 해설사는 “이번 답사 지역은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150여년간의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들 기억 속에 내재해 있는 대표적인 곳”이라며 “일제 치하 경성 금융가, 도로 확장이 주는 사람들 사이 소통의 문제를 엮어서 진행해 봤다”고 끝맺음을 했다. 을지로입구에서 답사를 마무리한 팀 일부는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4가까지 걸었다. 그곳에 있는 서울미래유산인 춘천막국수집에 들러 막국수와 돼지고기 보쌈을 나눠 먹으며 훈훈하게 답사를 정리했다.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여승(女僧)되어 만난 첫 가을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여승(女僧)되어 만난 첫 가을은…

    "사바(娑婆·세상)는 고(苦)의 세계니까 뜻도 두지 말고, 마음도 두지 말고, 돌아도 보지 말아라." 비구니 스님들의 백흥암 수행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 속‘영운스님’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 글귀였다. 영화는 끝까지 담백 진중하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 임용 면접을 앞두고 돌연 출가한 ‘엄친딸’ 상욱 행자,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스님이 될 운명인 ‘동진 출가’의 업(業)을 안은 선우 스님. 3년 동안 하루 한 끼, 극도의 고행 수행인 무문관(無門關)을 향해 떠나는 지엄 스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불교를 접한 신세대 활기 발랄 민재 행자 등의 수행과 고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상의 고통을 맘으로 느끼게 해 준다. 2016년 10월 현재, 대한민국은 한 여염집 여인네의 천격(賤格)이 만든 사바세계 속 고통을 온 국민이 감내하는 중이다. 가을 나들이 한 번 선뜻 나서기가 맘 무거운 이때, 극락정토 대덕(大德) 여승이 되고픈 맑고 고운 언니들(?)의 절집에서 위로를 받는 것은 어떨까? 김천 청암사다. ● 장희빈에 쫓겨난 인현왕후의 한(恨)이 서린 곳 각설(却說), 객지 밥 좀 얻어먹고 다녔다는 여행 고수들에게 물어본다. 영남권에서 가을 절경 빼어난 곳 하나만 알려주셔요. 네?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청암사는 가 보셨나요? 정답은 이미 나왔다. 그러면서도 꼭 두 개의 사족을 귀에 달아준다. ‘비구니 스님들 계시는 곳입니다’와 '계곡길 운전 조심하십시오' 라고. 청암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佛靈山) 깊디 깊은 계곡 아래 터를 잡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절집이다. 바로 여승들의 거처이면서 비구니, 사미니를 배출하는 불교 강원(講院)의 맥을 잇는 율원(律院), 즉 승가대학으로 운영되는 절이다. 청암사를 방문하기 전 비구니, 사미니같은 기본 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비구(比丘)라는 말은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은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비구니(比丘尼)는 산스크리트어 ‘bhikkhuni’를 음차한 낱말로 비구와 동일한 절차를 밟은 여성을 뜻하는 표현이다. 한편 사미(沙彌)라는 표현은 ‘samanera’의 음역이다. 갓 출가한 승려, 견습승, 일정한 교육을 끝마치면 비구가 될 수행자를 의미하는 말이며 여자는 사미니(沙彌尼)라 부른다. 청암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한 절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거의 연혁이 내려오지 않은 심산구곡 작은 사찰이었다. 그러다 역사의 뒤안길에 얼굴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바로 조선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이 곳에 은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숙종 15년(1689년)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廢庶人)이 된 왕후가 3년간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부지하였던 곳이 청암사다. 이러한 인연으로 청암사는 이때부터 궁녀들의 은거처이자 여인들의 발원(發願) 장소로 명맥을 잇게 된다. 또한 청암사는 학풍 높은 불교 강원으로도 이름을 드날리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의 스승인 박한영 스님, 고봉 선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학승들의 강론처로 알려져 공부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온다. 이는 전국에 유명한 비구니 승가대학인 동학사(공주), 운문사(경북 청도), 봉녕사(수원)와 더불어 청암사 역시 손꼽히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 궁녀(宮女)들의 시주로 다시 일어나 청암사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던 절로도 유명하다. 조선 말기까지 늘 화재로 절이 중건이 되는 일은 반복되었고 1911년 9월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전부 불타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늘 화재로 사찰내 법당이나 온전한 요사채가 드물었다. 이런 청암사가 다시금 크게 중건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또 한 여인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청암사 곳곳 절벽과 바위에는 ‘崔松雪堂’(최송설당)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최송설당은 어린 시절 외가가 홍경래 난에 연루되어 힘든 삶을 살다 39세에 불교에 귀의 정진하였다. 이후 상궁이 되는 변신을 통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고 이후 귀비(貴妃)에 봉해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그녀는 1931년 전 재산을 정리하여 지금의 청암사를 재건하였고, 당시 주지였던 대운스님 또한 많은 궁녀들로부터 시주를 구해 두 차례에 걸쳐 청암사를 크게 중건할 수 있었다. 여인들과의 인연이 깊디깊은 곳은 분명하다. 청암사는 절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어서 어디를 보아도 가을 흥취를 넉넉히 느낄 수가 있다. 우선 절의 초입에 있는 맞배지붕의 일주문을 지나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을 넘어서면 청암사의 명물인 우비천(牛鼻泉)이 있다. ‘소의 콧등에서 나오는 샘’이라는 뜻의 우비천은 청암사의 지세가 소가 왼쪽으로 누운 와우형(臥牛形)이어서 나온 말이다. 예로부터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속설이 있어 청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이 되었다.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대웅전과 범종각, 진영각, 육화료 등의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중 육화료(六和寮)는 현재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이고 있다. 또한 언덕 위에는 과거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궁궐 건축 양식의 극락전(極樂殿)과 왕후의 복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광전(寶光殿)이 있다. 특히 보광전 내부에는 한국 사찰에서는 만나기 힘든 42개의 손을 지닌 관음상이 있어 참배객들의 불심을 자극한다. 청암사의 가을은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맑다. 그러하기에 비구니 스님들의 생활 도량으로서는 제격인 듯하다. 올 가을 청암사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불심으로 여승(女僧)이 된 우리네 언니들의 곧은 맘을 한껏 응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청암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가을 경치 아름다운 곳이 많다. 고창의 선운사나 인근의 직지사도 훌륭하지만, 불령산 계곡 아래 호젓한 가을 경치를 조용히 누릴 심사라면 이 곳을 추천한다. 주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연인들. 무흘계곡을 돌아 나가는 계곡길 드라이브와 함께. 없던 사랑도 만들어질 듯. 3. 가는 방법은? -깊은 산속이다.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청암사로 오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 11시, 오후 4시 20분이며 청암사에서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전 9시 15분, 오후 1시 25분, 6시 15분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번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을 나들이 한창인 주말인데도 관람객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 비구니 스님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는 점. 그리고 불령산 계곡의 깊디 깊은 가을 운무들. 청암산 들어오는 길에 비단처럼 펼쳐지는 무흘계곡.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한 번도 안 온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들은 매 가을마다 반드시 들리게 되어 있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우비천, 육화료, 극락전, 보광전, 부도탑 7. 먹거리 추천? -김천 지역이 의외로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유명한 곳은 방송에서도 소개되어 유명세가 전국적인, 삼거리식당이라고 불리는 파란 간판의 '장영선원조지례삼거리불고기식당'(054-435-0067), '지례흑돼지식육점식당'(054-435-0011), '호박해물칼국수'(054-430-6875) 등이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chungamsa.org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김천은 직지사로 유명하다. 청암사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무흘계곡도 추천. 10. 총평 및 당부사항 -김천 청암사는 비구니, 사미니, 행자 스님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집절이다. 따라서 조용히! 조용히!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월시 加대사 서울 중구 명예구민 됐다

    월시 加대사 서울 중구 명예구민 됐다

    “정동길은 서울 시민의 길이기도 하지만, 캐나다와 우호협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에릭 월시(오른쪽) 주한 캐나다 대사가 27일 서울 중구청장실에서 명예구민증을 품에 안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월시 대사는 서울의 대표 축제로 부상한 중구의 야간 문화재 답사여행 ‘정동야행’에 적극 동참,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를 보여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최창식(왼쪽) 중구청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그는 “서울 한복판의 12만 6000명 규모인 중구민 중 한 명으로 선택돼 영광이다”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중구 정동에 단독 건물을 가진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지난해 가을부터 정동야행 행사 때 대사관 터를 밤늦게까지 개방했다. 월시 대사는 1995년 외교통상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 터키·스위스·독일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주한 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주한 캐나다대사관저는 1973년 이후 정동길에 자리잡아 왔다”며 “캐나다는 고종 어의를 지냈던 올리버 에비슨 박사, 독립운동 기여 공로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프란시스 스코필드 박사 등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소개했다. 최 구청장은 “정동길은 캐나다는 비롯해 주요국 대사관이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외교의 중심지”라면서 “명예시민증 전달을 계기로 앞으로 양국 간 문화교류가 한층 두텁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acsl@seoul.co.kr
  •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 “중구 명예시민됐어요”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 대사 “중구 명예시민됐어요”

    “정동길은 서울 시민의 길이기도 하지만, 캐나다와 우호협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월시 대사는 서울의 대표 축제로 부상한 중구의 야간 문화재 답사여행 ‘정동야행’에 적극 동참,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를 보여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최창식(?왼쪽?) 중구청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그는 “서울 한복판의 12만 6000명 규모인 중구민 중 한 명으로 선택돼 영광이다”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중구 정동에 단독 건물을 가진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지난해 가을부터 정동야행 행사 때 대사관 터를 밤늦게까지 개방했다. 지난해 봄 시작된 정동야행은 매년 5·10월 두 차례 열리고, 28~29일 네 번째 행사가 덕수궁 등 정동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29일 오후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1층 정원과 로비, 지하 1층 도서관을 활짝 열고 시민들을 위한 포토존도 운영한다. 지난 5월에는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 발맞춰 주한 미국·영국 대사관도 관저를 개방한 바 있다. 월시 대사는 1995년 외교통상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 터키·스위스·독일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주한 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주한 캐나다대사관저는 1973년 이후 정동길에 자리잡아 왔다”며 “캐나다는 고종 어의를 지냈던 올리버 에비슨 박사, 독립운동 기여 공로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프란시스 스코필드 박사 등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소개했다. 최 구청장은 “정동길은 캐나다는 비롯해 주요국 대사관이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외교의 중심지”라면서 “명예시민증 전달을 계기로 앞으로 양국 간 문화교류가 한층 두텁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acsl@seoul.co.kr
  • 붉게 물든 정동길, 근현대 문화재와의 조우

    붉게 물든 정동길, 근현대 문화재와의 조우

    최창식 구청장·김영만 사장 답사… 내일부터 이틀간 야간 코스 선봬 “영국성공회성당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성당입니다. 천장에도 한옥 기둥 부분이 드러나 있고, 제단 성화는 아시아에선 최대 규모죠. 한양 도성 안에는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했던 관례에 따라 우리나라 성당 중 지하에 무덤이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가을빛이 내려앉은 단풍 든 정동길을 따라 걷자면 근현대 문화재들이 새록새록 말을 걸어온다. 서울 중구가 28~29일 정동 일대에서 개최하는 야간 문화재 답사 축제 ‘정동야행’(貞洞夜行) 코스를 26일 최창식 중구청장과 김영만 서울신문사 사장이 미리 둘러봤다. 조영희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부터 4·19 운동의 본거지가 됐던 서울시의회 본관 앞, 경운궁 양이재, 중명전, 정동 제일교회, 이화백주년기념관, 옛 러시아공사관까지다. 정동길은 조선왕조 500년 한양 도성 내 중심지이자 구한말 개화기에 외교의 현장으로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중명전은 고종이 1905년 을사늑약에 서명했던 치욕과 울분의 장소였다. 정동교회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가 인쇄됐던 곳으로 개화기 남녀가 한데 섞여 처음으로 예배를 보기도 했다. 김 사장은 정동길을 밟으며 “알려지지 않은 선대 사람들에 얽힌 스토리 위주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구청장은 “중구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문화재의 보고로 축복받은 지역”이라며 “문화재끼리 잇는 연계 문화상품 개발에 힘쓰겠다”고 답했다. 정동야행 주요 행사인 고궁 음악회는 28일과 29일 오후 7시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독도의 날’ 울린 조국찬가

    ‘독도의 날’ 울린 조국찬가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16회 독도의 날 기념식에서 독도합창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조국찬가’를 부르고 있다. 독도의 날은 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가을밤, 대한제국 숨결 따라 30개 역사 유적이 열린다

    가을밤, 대한제국 숨결 따라 30개 역사 유적이 열린다

    평소 보기 힘든 성가수녀원 포함 28~29일 밤 10시까지 개방최창식 구청장 직접 유튜브 설명 “깊어가는 가을밤, 서울 정동에서 낙엽과 구한말 대한제국의 숨결을 느껴 보세요.” 서울 중구는 야간 문화 답사 프로그램 ‘정동야행’(貞洞夜行) 축제를 오는 28~29일 정동 일대에서 연다고 19일 밝혔다. 대한제국 황궁이었던 덕수궁을 중심으로 옛 러시아 공사관, 정동제일교회, 성공회성당 등 30개 역사 유적과 문화시설이 밤 10시까지 개방되는 흔치않은 기회다. 지난해 시작된 정동야행은 요새 한창 붐이 이는 각종 문화 야행 프로그램의 효시 격으로 중구의 ‘히트 상품’이다. 최창식 중구청장이 직접 작명한 야심작이기도 하다. 기술고등고시 출신인 최 구청장은 서울시 행정2부시장 시절 숱한 재건축, 도시개발을 맡으며 중구에 숨은 역사 문화재들을 접했다. “그때마다 하나씩 문화재 지식을 얻어서 나름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중구청장으로 오니 지식이 너무 짧더라구요.” 최 구청장은 “서울 시민들 역시 중구의 다양한 문화재들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정동야행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매년 5·10월 두 차례 개최하는 정동야행은 지금까지 32만명이 다녀갔고 문화재청이 집계한 자치단체 야행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했다. 최근 최 구청장은 직접 문화재해설사로 나서 화제다. 5분여 길이의 유튜브 동영상 ‘중구청장이 직접 설명하는 정동 이야기’를 제작한 것. 올해 정동야행 주제인 ‘대한제국’에 맞춰 구한말 개화기 비사들을 소개하고, 정동야행을 즐길 팁도 살짝 공개했다.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 “1996년 설계도 원본이 발견돼 기존 일자(一)형에서 설계도 원형인 십자(十)형으로 증축됐습니다. 성가수녀원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과 한국 전통 건축법,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최대한 살린 건물이죠. 1년 중 정동야행 때만 개방되니 꼭 들러보세요. 축제 기간 열리는 영국식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는 정동야행의 백미입니다.” ●덕수궁 석조전·중명전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치욕의 장소인 동시에 영친왕, 이방자 여사가 살았던 곳입니다. 구한말 조선왕조와 백성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서려 있습니다. 석조전은 고종이 지었지만 이미 기울어가는 대한제국 말기여서 황제국 궁궐로 사용되지 못했고, 고종 본인도 생전 잠시 동안만 사용했던 안타까운 역사가 숨어 있어요.” ●정동길 “중구는 조선 한양 5촌 중 서촌과 남촌, 중촌이 모여 있고, 그중 정동은 중촌에 해당했지요. 옛 러시아 공사관부터 미국·영국·러시아 대사관이 모여 있는 근대 외교 중심지의 흔적을 정동길에서 느껴 보세요.” 무료 도보투어 프로그램은 정동야행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중구 스토리여행’으로 자동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개방시설 7곳의 스탬프를 찍어 오면 지역 음식점, 호텔에서 최대 65%까지 할인받을 수도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탈북자도 10년 지나면 상속 못 받아

    탈북자의 국내 상속 분쟁에서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민법상 상속회복청구 기간인 10년이 지났다면 상속을 받을 권리가 소멸한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탈북자 이모(47)씨가 고종사촌 등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회복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의 쟁점은 탈북자가 부모 등의 사망으로 상속권이 발생한 후 10년이 지나도 상속재산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현행 민법은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상속회복청구권이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도 차별 없이 상속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 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남북가족특례법)은 북한 주민이 상속회복 소송을 낼 수 있다고 정하면서도 기간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북한에 끌려가 실종 처리됐다. 1961년 이씨 할아버지가 숨지자 이씨의 고모와 삼촌이 재산을 상속받았다. 남한의 가족들은 이씨 아버지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의 아버지는 실제로는 북한에서 2006년에 숨졌다. 2007년 9월 탈북해 2009년 6월 한국에 들어온 이씨는 이 사실을 알고 2011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현행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한의 상속인은 사실상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가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2심은 북한 주민에게도 현행 민법상 제척기간(권리 소멸 기간)을 적용해야 한다며 각하 판결했다. 제척기간 특례를 인정할 경우 법률적 문제가 생겨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대다수가 민법상 상속회복청구 기간인 10년이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판단하면서도 향후 입법 과정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상속회복권청구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명성황후 시해 분노 싣고, 역대 대통령 태우고…시대를 달린 ‘열차’

    [명인·명물을 찾아서] 명성황후 시해 분노 싣고, 역대 대통령 태우고…시대를 달린 ‘열차’

    야외엔 첫 증기기관차 등 20대 실내엔 유물 등 6000여점 전시 30년 대통령 전용 ‘메기’ 실물로 모형 철도 파노라마실 최고 인기 1899년 9월 18일. 지축을 흔드는 기적 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증기기관 열차가 제물포~노량진 구간에서 역사적인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인천 우각동역터(현 도원동)에서 1897년 3월 22일 한국 최초의 경인철도 기공식이 열린 후 2년 6개월 만이었다. 이후 한국 철도는 시대별로 역할과 의미를 달리하며 1세기를 훌쩍 넘어 숨가쁘게 달려왔다. 대중교통과 화물수송 수단의 의미를 넘어 철도는 질곡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이자 서민들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추억이다. ●2만여㎡·입구엔 열차 숲… 학습놀이터 경부선 철도 의왕역에서 철길을 따라 세워진 그라피티로 장식된 담벼락을 따라 500여m를 가면 코레일 철도박물관에 도착한다. 면적은 2만 8082㎡에 이른다. 입구에 들어서면 수십량의 열차가 숲을 이루고 있어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어린이들에게는 교육과 체험의 학습장이자 놀이터이며, 어른들에게는 역사이자 아련한 추억의 장소다. 철도박물관은 서울 용산 철도고등학교에 있던 철도기념관이 1988년 경기 의왕으로 이전, 개관한 것이다. 수도권의 대표적 전문박물관으로 우리나라 115년의 철도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교육장이다. 철도박물관은 과거에 운행했던 증기기관차 등 20여대의 실물차량이 전시된 야외전시장과 철도의 역사와 문화, 철도 관련 유물 등 6000여점의 자료를 모아 놓은 실내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야외전시장을 대표하는 전시물은 대통령이 쓰던 열차다. 등록문화재 419호인 한국 최초의 대통령 전용객차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용했다. 내부에 봉황 문장이 새겨진 대통령 전용의자와 책상, 침실, 식당 등 각종 시설과 설비를 갖췄다. 대형 테이블과 6석의 금색 의자, 붉은 카펫, 천장의 고급 장식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회의실은 마치 호텔 같다. 화려한 의장이 돋보이는 전직 대통령 관련 유물로 역사적·사료적 가치가 크다. 대통령특별동차 ‘메기’는 1969년부터 2001년까지 30년간 운행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사용했다. 전면부가 메기 머리를 닮았다. 레일 간격이 표준보다 좁은 협궤에서 운행했던 협궤증기기관차 13호(등록문화재 418호)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협궤 열차는 수인선(수원~인천 송도)과 수여선(수원~여주)을 다니다 1987년 수인선이 없어지면서 운행을 중단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도입한 디젤전기기관차와 부산~신의주를 비롯해 전국 주요 철도를 운행했던 대표 열차 미카3 화물용 증기기관차도 볼 수 있다. 특히 파시형 증기기관차 23호(등록문화재 제417호)는 1942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을 들여와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파시5형 텐더식이다. 우리나라 지형 조건에 잘 맞고 국내산 석탄을 연료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디젤기관차 등장으로 1967년 달리는 것을 멈췄다. 증기기관차인 미카3형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차종으로 유일하게 남은 파시형 증기기관차다. ●美특공대원 태워 적진 뚫은 ‘미카3 129 실내전시장에 들어서면 경인선 우각동역터 기공식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모형 파시 증기기관차가 관람객을 맞는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상중이라 상복을 입은 참석자들을 볼 수 있다. 철도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한국 철도의 태동’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김재현 기관사가 연락이 끊긴 미 제24단장 윌리엄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미 특공대원 33명을 태우고 적진을 뚫고 들어갔던 미카3 129 증기기관차 모형과 유물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철수하다 모두 전사했다. 국내 최초의 증기기관차로 경인철도 개통식 때 사용됐던 모가형 증기기관차, 영국에서 제작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인 페니다렌 모형도 있다. ●전시부터 체험까지 115년 역사 오롯이 열차를 축소·제작해 운행하는 ‘모형철도 파노라마실’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증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 전동차 등 13개 열차 126량을 컴퓨터로 조작, 운행한다. 비둘기호와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초고속열차 KTX 등 철도동력차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차가 먼저일까, 기찻길이 먼저일까. ‘철길의 역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석탄 광산에서 짐을 나르기 위해 목재로 레일을 설치한 게 기찻길의 시초였다. 선로 보수 장비 ‘선로검사기록계’, 침목 밑을 다지는 기계 ‘4두 타이탬퍼’, 레일을 침목에 고정하는 각종 체결장치 등 레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기차표와 철도여행’실에 가면 1899년 철도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사용하던 기차표와 각종 기념 승차권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이 외에도 경인선 부설에 사용된 우리나라 최초의 레일인 ‘경인철도 레일’(등록문화재 제424호), 단선구간 기차 충돌 사고 방지를 위한 증표인 대한제국기 철도 통표(등록문화재 423호), 복선구간 기차의 안전운행을 위한 쌍신폐색기(등록문화재 제425호)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고종의 철도원 총재와 철도국장 임명장 원본, 경인선·경부선·경의선 설계도면, 스팀기관차·객차·화차의 명판 등도 관심을 끈다. 김진섭(47) 코레일 철도박물관장은 “코레일 직영 전환 후 전시관 개선을 우선 추진하는 등 관람객의 만족도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난해보다 약 20% 관람객이 늘었다”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115년 된 철도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준PO 3차전 시구 트와이스 미나 시타는 채영 ‘샤샤샤’

    준PO 3차전 시구 트와이스 미나 시타는 채영 ‘샤샤샤’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넥센 히어로즈-LG 트윈스의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 입장권도 모두 팔려 포스트시즌 11경기 연속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이날 시구는 트와이스 미나, 시타는 같은 그룹 채영이 맡아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양상문 LG 감독은 1,2번 타순으로 김용의(중견수)와 이천웅(좌익수)을 내보낸다. 나머지는 박용택(지명타자), 루이스 히메네스(3루수), 오지환(유격수), 채은성(우익수), 양석환(1루수), 유강남(포수), 손주인(2루수) 순으로 나간다. 투수는 데이비드 허프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서건창(2루수)과 고종욱(좌익수)을 테이블세터로 배치했다. 김하성(유격수)과 윤석민(1루수), 김민성(지명타자), 이택근(우익수), 김지수(3루수), 박동원(포수), 임병욱(중견수) 순으로 타석에 선다. 선발 투수는 신재영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대관정 빼놓은 ‘대한제국의 길’/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관정 빼놓은 ‘대한제국의 길’/서동철 논설위원

    서울시가 덕수궁을 중심으로 정동과 서울광장 일대 역사 자원을 연결하는 ‘대한제국의 길’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옛 러시아공사관과 영국대사관, 정동교회, 성공회 성당, 환구단을 거치는 2.6㎞ 길이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은 고종 황제가 1897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알린 120주년이니 뜻깊은 일이다. 앞서 서울시는 시청사와 성공회 성당, 서울광장과 환구단을 잇는 횡단보도를 차례로 개설했다. 빤히 바라보이지만 자동차 도로로 가로막혀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은 물론 심리적 거리마저 벌어졌던 양쪽의 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한제국의 출발을 알린 환구단과 황궁으로 쓰인 덕수궁 사이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길’ 계획도를 보면서 의아한 것이 있었다. 대한문과 서울광장, 환구단을 거쳐 서울시 청사 뒷길로 이어져 역사문화광장에서 마무리되는 ‘대한제국의 중심’ 코스가 그렇다. 아무리 살펴봐도 대한제국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곳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제국의 영빈관이었던 대관정(大觀亭)터가 그렇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환구단 바로 앞에 마련한 황실 귀빈의 숙소였다. 1899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친동생인 하인리히 친왕(親王)이 방한했을 때도 머물렀다. 하인리히 친왕이 덕수궁에서 고종 황제를 알현하자 황제는 답례로 황태자를 대동하고 대관정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경운궁, 즉 지금의 덕수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대관정에 아름다운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진주한 일본군 임시파견대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쓰는 무단으로 대관정을 점령해 사령부로 썼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이듬해 을사조약을 강제할 때는 특사로 찾아온 이토 히로부미가 머물며 시시각각 경운궁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받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소공로는 대한제국이 경운궁을 중심으로 개설한 방사형 도로의 한 축이다. 현대적 도시 계획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은 일제가 1913년 헐어 버렸고 부속시설인 황궁우만 남아 있다. 환구단 자리엔 일제가 철도호텔을 지었고 지금은 조선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역사성이 있는 소공로가 ‘대한제국의 길’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소공로를 포함해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대관정 유구는 부영그룹의 호텔 신축 계획에 따라 불행하게도 같은 자리이기는 하지만 건물 2층에 자리잡게 됐다. 전시관도 만든다지만 옹색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공로가 ‘대한제국의 길’의 일부가 되어 대관정 터에 탐방객이 몰려든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호텔 사업자도 대관정 유구 보존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프로야구] 돌아온 밴헤켄… 되돌린 승부

    [프로야구] 돌아온 밴헤켄… 되돌린 승부

    7과 3분의2이닝 5K·1실점 호투 임병욱 포스트시즌 ‘1호 홈런’ 내일 3차전 선발 신재영 vs 허프 앤디 밴헤켄(37)에 대한 염경엽 넥센 감독의 믿음은 굳건하다. 2012년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보여 준 밴헤켄의 꾸준함과 노련함을 신뢰하는 것이다. 14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LG와의 KBO 포스트시즌(PS)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 2차전에 앞서 염 감독은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페넌트레이스든 포스트시즌이든 역시 선발투수가 중요하다. 오늘 선발인 밴헤켄을 믿어야 한다”며 “밴헤켄에게는 경기 중 벤치에서 사인도 안 내린다. 그는 스스로 책임질 충분한 경험과 연륜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밴헤켄은 이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맹활약으로 염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넥센은 7과 3분의2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밴헤켄의 활약에 힘입어 2차전을 5-1로 잡았다. 1차전에서 완패를 당하며 수세에 몰렸던 넥센은 이로써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넥센이 고척돔에서 거둔 첫 PS 승리이기도 하다. 밴헤켄은 노련한 피칭으로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장기인 포크볼과 평균 시속 137㎞의 직구를 적절히 섞어 가며 전날 7점이나 뽑았던 LG 타선을 잠재웠다. 탈삼진은 5개를 잡아냈고 피안타는 3개에 불과했다. 총 투구 수는 102개로 이닝당 최다 18개를 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전날 11개의 안타를 뽑아내고도 결정적일 때마다 침묵하며 영봉패를 당했던 넥센 타선도 이날은 거푸 터져 밴헤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1회부터 김하성이 우중간 1타점 적시타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고 3회에는 임병욱이 솔로포를 뿜어냈다. 임병욱의 홈런은 치열한 투수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번 PS에서 나온 ‘1호포’이기도 하다. 넥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4회 말 1사 만루 찬스 때 타석에 들어선 서건창이 우익수 앞 적시타를 때려 2점을 추가했고 후속 고종욱도 1타점을 보태 승기를 가져왔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LG 선발 우규민은 3과 3분의1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 4실점으로 무너지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번 ‘가을야구’에서 LG 선발투수가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에 3점 이하 자책점) 달성에 실패한 것은 우규민이 처음이다. 또한 전날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완승을 이끌었던 김용의(4타수 무안타)와 박용택(3타수 무안타)은 각 3회와 4회 병살타를 치는 등 부진했다. 팀 안타 수도 4개에 그쳐 10개의 넥센에 크게 뒤졌다. 경기 후 밴헤켄은 “팀이 이겨 너무 기쁘다.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수비에서도 야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줬다”며 “(5차전에 나가게 되면)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준PO 3차전은 하루를 쉰 뒤 16일 잠실에서 열린다. 넥센과 LG는 승부처인 3차전 선발로 신재영과 허프를 낙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프로야구] 돌아온 밴헤켄…되돌린 승부

    [프로야구] 돌아온 밴헤켄…되돌린 승부

    앤디 밴헤켄(37)에 대한 염경엽 넥센 감독의 믿음은 굳건하다. 2012년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보여 준 밴헤켄의 꾸준함과 노련함을 신뢰하는 것이다. 14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LG와의 KBO 포스트시즌(PS)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 2차전에 앞서 염 감독은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페넌트레이스든 포스트시즌이든 역시 선발투수가 중요하다. 오늘 선발인 밴헤켄을 믿어야 한다”며 “밴헤켄에게는 경기 중 벤치에서 사인도 안 내린다. 그는 스스로 책임질 충분한 경험과 연륜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밴헤켄은 이날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맹활약으로 염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넥센은 7과 3분의2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밴헤켄의 활약에 힘입어 2차전을 5-1로 잡았다. 1차전에서 완패를 당하며 수세에 몰렸던 넥센은 이로써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넥센이 고척돔에서 거둔 첫 PS 승리이기도 하다. 밴헤켄은 노련한 피칭으로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장기인 포크볼과 평균 시속 137㎞의 직구를 적절히 섞어 가며 전날 7점이나 뽑았던 LG 타선을 잠재웠다. 탈삼진은 5개를 잡아냈고 피안타는 3개에 불과했다. 총 투구 수는 102개로 이닝당 최다 18개를 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전날 11개의 안타를 뽑아내고도 결정적일 때마다 침묵하며 영봉패를 당했던 넥센 타선도 이날은 거푸 터져 밴헤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1회부터 김하성이 우중간 1타점 적시타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고 3회에는 임병욱이 솔로포를 뿜어냈다. 임병욱의 홈런은 치열한 투수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번 PS에서 나온 ‘1호포’이기도 하다. 넥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4회 말 1사 만루 찬스 때 타석에 들어선 서건창이 우익수 앞 적시타를 때려 2점을 추가했고 후속 고종욱도 1타점을 보태 승기를 가져왔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LG 선발 우규민은 3과 3분의1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 4실점으로 무너지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번 ‘가을야구’에서 LG 선발투수가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에 3점 이하 자책점) 달성에 실패한 것은 우규민이 처음이다. 또한 전날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완승을 이끌었던 김용의(4타수 무안타)와 박용택(3타수 무안타)은 각 3회와 4회 병살타를 치는 등 부진했다. 팀 안타 수도 4개에 그쳐 10개의 넥센에 크게 뒤졌다. 경기 후 밴헤켄은 “팀이 이겨 너무 기쁘다.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수비에서도 야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줬다”며 “(5차전에 나가게 되면)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준PO 3차전은 하루를 쉰 뒤 16일 잠실에서 열린다. 넥센과 LG는 승부처인 3차전 선발로 신재영과 허프를 낙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넥센, 2차전서 LG에 5-1 승리…밴헤켄·임병욱 ‘승리의 주역’

    넥센, 2차전서 LG에 5-1 승리…밴헤켄·임병욱 ‘승리의 주역’

    넥센 히어로즈가 2차전에서 LG 트윈스를 누르고 준플레이오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넥센은 14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5전 3승제) 2차전 홈 경기에서 LG 트윈스를 5-1로 누르고 전날 패배(0-7)를 설욕했다. 1승 1패로 맞선 넥센과 LG는 하루를 쉰 뒤 16일과 17일 LG 홈 잠실구장에서 3·4차전을 치른다. 2차전 넥센 승리의 주역은 선발 앤디 밴헤켄과 임병욱이었다. 밴헤켄은 이날 7⅔이닝을 3피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며 ‘빅게임 피처’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MVP)도 밴헤켄 차지였다. 임병욱은 0-1로 앞선 3회말 우중월 솔로 아치를 그려 2016년 포스트시즌 첫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동시에 임병욱은 가을 무대 개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1차전에서 11안타를 치고도 무득점에 그쳐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무득점 패배 불명예 신기록(종전 8안타)을 세운 넥센은 2차전 첫 공격에서 무득점 사슬을 끊었다. 1회말 1사 후 고종욱이 우전 안타를 쳐 기회를 잡았다. 후속타자 김하성이 2루수 키를 넘어가는 안타를 만들었다. LG 2루수 손주인을 우익수 앞까지 달려가 이미 바운드된 공을 잡으려 했지만, 한 번 더듬었다. 일찌감치 2루를 향해 달린 김하성은 3루를 찍고도 질주를 멈추지 않고 홈을 밟았다. 1루타로 1루주자가 득점하는 기민한 주루로 넥센은 귀한 선취점을 얻었다. 추가점은 홈런으로 뽑았다. 1-0으로 앞선 3회말 선두타자로 등장한 넥센 임병욱은 LG 선발 우규민의 시속 139㎞ 직구를 걷어 올려 우중간 담을 넘어가는 솔로포를 터트렸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나온 홈런이다. 전날 처음으로 가을 무대에 올라 2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임병욱은 생애 첫 포스트시즌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기세가 오른 넥센은 4회말 3점을 보태 승기를 굳혔다. 김민성과 이택근의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든 넥센은 박동원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기회를 이어갔다. LG는 사이드암 우규민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좌완 윤지웅을 올려 넥센 좌타자를 상대하게 했다. 하지만 윤지웅은 임병욱과 풀 카운트(3볼-2스트라이크)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해 만루 위기를 자초했고 서건창에게 2타점 우전 적시타를 맞았다. 이어진 1사 1, 3루에서 넥센은 이중 도루를 시도하다 3루주자 임병욱이 횡사했다. 그러나 이때 3루에 도달한 서건창이 고종욱의 우전 안타로 득점하면서 5-0까지 달아났다. 밴헤켄에게 5점은 쉽게 막을 수 있는 점수였다. 벤헤켄은 3회초 1사 후 손주인에게 첫 안타를 맞았지만, 김용의를 유격수 앞 병살타로 요리했다. 4회 선두타자 정성훈을 자신의 실책으로 1루에 내보낸 뒤에도 박용택을 3루수 앞 병살타 처리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LG는 0-5로 뒤진 8회초 2사 2루에서 대타 서상우의 우익수 쪽 안타로 한 점을 만회했다. 하지만 서상우가 2루로 내달리다 횡사하면서 추격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날 LG는 4안타에 그친 탓에 완패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정동일대 ‘대한제국의 길’ 만든다

    서울 정동일대 ‘대한제국의 길’ 만든다

    옛 러 공사관·英대사관 등 거쳐 환구단~서울광장~덕수궁 연결 5개 코스 2.6㎞ 역사명소로 19세기 말 대한제국의 중심지였던 서울 정동 일대가 대한제국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탐방로와 역사문화 공간을 갖춘 명소로 재탄생한다. 정동 일대에는 덕수궁과 정동길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시기 들어선 각국 공사관과 근대식 교육기관 등 ‘역사 자원’이 많다. 하지만 시민들 관심 밖이라 역사 자원을 활용한 종합재생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12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동, 그리고 대한제국 13’ 계획을 발표했다. 10월 12일은 1897년 고종이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알린 날이기도 하다. 주요 계획은 정동 일대의 역사문화 자원을 연결해 5개 코스, 총 2.6㎞의 ‘대한제국의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길은 구 러시아 공사관, 영국대사관, 정동교회, 성공회 성당, 환구단 등을 거치며 배움과 나눔, 옛 덕수궁역, 외교타운, 신문화와 계몽, 대한제국의 중심 코스로 나뉜다. 특히 대한제국의 출발을 알린 곳이지만 접근성이 낮아 방치됐던 환구단과 서울광장을 잇는 횡단보도가 이날 개통되면서 환구단부터 덕수궁을 연결하는 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는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광무전망대’가 들어선다. 이 전망대는 기존 13층에 있던 것을 15층으로 이전한 것이다. 1층에서 바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도 신설하기로 했다. 또 서소문청사 주차장 출입구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던 ‘손탁호텔’풍의 카페를 만들어 문화공간을 조성한다. 시청 맞은편에 있는 옛 국세청 별관 부지(연면적 2899㎡)는 역사문화광장(지상), 서울도시건축박물관(지하) 등 역사문화 특화공간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늘은 그동안 잊혔던 대한제국 역사를 재조명해 정동의 활성화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날”이라면서 “오늘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권 회복을 향한 대한민국의 갈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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