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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기로 조부 살해/20대에 사형 구형

    【대전】 대전지검 고조흥검사는 17일 대전지법 형사합의부(재판장 김봉진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존속살인 사건의 신민철피고인(31ㆍ서울시 양천구 808의25)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존속살인죄 등을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고검사는 논고를 통해 『평소 할아버지에 대해 다소 서운한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한뒤 고종사촌 동생까지 강제 추행한 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만행』이라며 『더욱이 피고인은 범행후 반성은 커녕 잡힌 것을 분하게 생각하는 등으로 사회의 영원한 격리가 필요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신피고인은 지난 9월2일 하오9시30분쯤 대전시 동구 신흥동 고모부 집에 내려와 있던 할아버지 신일만씨(79)에게 경북 울진군 평해면 소재 임야 3만6천㎡를 사업 자금으로 쓰겠다며 넘겨줄 것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흉기로 할아버지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했다.
  • “미스터리 표석”… 금석학자 임창순씨가 규명

    ◎청와대 경내 「천하…」 암각은 남송의 오거 글씨/중국명승 금산사 「제일강산」 현관과 동일 추정/풍화정도 미뤄 1백50년전 탁본해와 새긴 듯 청와대 경내에 새로 신축된 대통령관저 부근에서 지난 2월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천하제일 복지」라는 암각(본보 2월23일자 보도)의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다. 발견 당시 이 암각(암벽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은 지금부터 3백∼4백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었을 뿐 그 정확한 연대나 글씨를 쓴 「연릉 오거」에 대한 의문이 규명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암각을 자세히 살펴보았던 우리나라 금석학의 대가 청명 임창순 옹은 최근 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1백50년 정도밖에 안되었고 오거는 지금부터 8백년 전인 12세기 중국 남송시대의 명필이라고 밝혔다. 임 옹은 『비록 암각이 경사면에 지면과 수직으로 있어 정면으로 노출된 것보다는 풍화가 덜 된다 하더라도 화강암에 음각한 획의 풍화 정도가 깨끗하다고 할 만큼 매우 낮다』고 말하고 『화강암의 석질이 본래 비바람에 약한 점을 고려할 때 1850년 전후 연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암각의 제작연대를 1백50년 전 이상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려우며 우리의 고려후기와 같은 시대사람인 남송의 오거가 6백50년 뒤에 조선에 와서 글을 썼을 리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 조선조 말기인 1850년 전후 누군가 중국에 가서 오거의 글씨를 탁본해와 이 자리에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오거가 쓴 글씨 가운데 「천하제일 복지」라고 쓴 것은 없지만 「천하제일 강산」이라고 쓴 대형횡액은 지금 중국 남경부근 명승지 진강 어귀에 있는 금산사에 남아 있다. 지난 25일 준공된 대통령관저 별채 뒤편으로 30여m 떨어진 비탈진 언덕에 있는 「천하제일 복지」 암각의 크기는 가로 2m50㎝,세로 1m20㎝이고 글씨 한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50㎝,획의 굵기는 9㎝이며 글씨체는 해서와 행서의 중간서체이다. 「천하제일」이라는 네 글자는 금산사의 이 글씨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기자가 중국에 갔을 때 상해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했던 상해∼남경 일대 전문관광 가이드 왕대쇄 씨(54ㆍ상해시 해구국제여행사 관광통역사)는 『금산사에는 여러번 가보았는 데 「천하제일 강산」이라고 쓴 글씨는 매우 유명하다. 글자 한자가 승용차 문짝만하고 획의 굵기는 손바닥만 하다. 글씨크기 등에 비추어 한국에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은 글씨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왕씨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복」자와 「지」자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점에 대해 임창순 옹은 『오거가 남겨 놓은 서첩이나 비문글씨 등에서 두 글자를 찾아내 집자(필요한 글자를 모아 사용하는 것)하여 글씨를 새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경우 과연 같은 크기의 오거 글씨를 착기가 쉽지 않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복」자와 「지」자가 오거의 글씨가 아니라면 바위에 글을 새길 당시 조선의 서예가가 두 글자만 오거의 서체로 모사해 끼워넣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쓴 왼편 아래 낙관자리에는 작은 글씨로 「연릉 오거」라고 씌어있는데 연릉은 오거의 아호가 아니라 오거의 본관이 중국의 연릉 오씨이기 때문이며 옛 중국에서는 흔히 자신의 출신본관을 이름 앞에 썼다는 것이다. 상해박물관이 지난 88년 처음 펴낸 중국서적대관 제6권 오거편에 보면 그의 호는 운학이며 생졸년은 미상이나 남송의 소흥(고종)에서 경원(영종)간에 살았던 사람으로 돼 있다. 오거의 글씨는 「험하고 가파르고 갑자기 꺾어지는」 형세를 보이면서도 「글씨의 맺음이 정교하고 원숙해 보는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평가되고 있다. 「1백50년전」 추정의 오차를 20∼30년으로 본다면 1860년대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착수하여 완공을 한 시기와 일치한다. 대원군은 당시 피폐한 재정사정에 비추어 경복궁 중건이라는 대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징조작을 했다. 그중 하나는 경회루 주춧돌 아래에 「왕궁조영 국조무궁」이라는 글자를 새긴 옥반을 묻어두었다가 우연히 발견해낸 것처럼 하여 경복궁 중건이 선인들의 뜻이라는 식으로 합리화시키려 하기도 했다. 지금의 청와대 주변 터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이었고 암각의새겨진 시기가 경복궁 중건시기와 엇비슷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천하제일 복지」를 새긴 것은 대원군의 작풍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봄직하다. 지난 25일 준공식이 있던 날 다과회석상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신축공사를 하기 전에는 이 주변이 바위와 계곡으로 돼 있어 과연 집터가 나오겠느냐고 생각했는데 다 짓고 보니 집터가 훌륭하다』면서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발견될 때만 해도 집터로서 정말 모양이 갖춰지겠느냐고 의아해 했다』고 술회했다.
  • 북한선수 고모 상봉/조총련계 재일동포 김종성군

    남북통일축구 2차경기에 출전한 북한의 김종성선수(26)가 23일 저녁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의 16층 북한측 전용식당에서 서울에 사는 고모 김태선씨(70)와 고종사촌 3명을 만났다. 조총련계 재일동포로서 지난해 북한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김선수는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여동생결혼식때 고모 김씨를 처음 만난 이래 1년만에 다시 서울땅에서 재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지난 8월 일본에서 평양으로 가 북한대표팀에 합류,북경아시안게임과 남북축구 1차경기에 참가한 김선수는 서울에 오기전에 평양에서 일본에 있는 부친 김중배씨(53)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의 고모를 만날 수 있게 연락해 달라』고 부탁해 결국 고모를 만나게 됐다. 김선수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조총련계 학교를 다녀 우리말이 능숙하며 지금까지 평양을 10여차례 다녔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5)

    ◎전문가 대담/“행동철학이 제시된 새생활운동 펴라”/“방법론 없는 즉흥 발상”호응 못얻어/도시민의 공동체의식 형성이 과제/고립된 삶이 「범죄온상」구실… 합의정신이 바탕된 질서모델 계발을 범죄와 무질서,과소비 등을 추방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을 선언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새질서 새생활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확산돼 질서있고 건전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운동의 방향과 방법 등을 두 교수의 대담으로 들어본다. ○통제가 무너진 사회 ▲김대환교수=이번 노태우 대통령이 선포한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은 새마을운동과 비견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72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만해도 일부의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잘살아보자는 국민적 합의 아래 실천적 운동으로 발전해 큰 반향을 얻었지만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그때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운동이 제기되었는지의 문제부터 풀어가기로 합시다. ▲송복교수=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 농촌인구와도시인구는 반반이었지만 90년대에는 2,3차산업 인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구조에 대한 새로운 진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사회는 지난 10년동안 해마다 9백만명씩 모두 9천만명이 주거를 옮겨 인구의 9.7%만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등 국민의 대부분이 타향살이를 하는 부동사회(Floating society)가 됐습니다.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평균 3년에도 못미치다 보니 이웃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 사회통제 메커니즘이 와해돼 공중에 떠다니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김교수=그동안 정치ㆍ사회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제적인 축적이 이루어져 개인의 생활이 풍요해 졌으나 양적 팽창에 상응하는 질적 변화가 이어지지 못한데 따른 정신적 빈곤이 사회악의 증가와 사회질서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실성과 정직성이라는 농업사회의 생활방식이 공업사회로 바뀌면서 붕괴,내부적인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송교수=직업구조의 개편속도도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지난 74년에는 1천5백개의 직업이 있었으나 86년에는 1만2천6백개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한 직업에 5년이하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44%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10년 이상 종사하는 사람은 25% 정도로 지역공동체 뿐만 아니라 직업공동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김교수=경제구조의 왜곡도 심각합니다. 제조업의 기반위에 3차산업이 형성돼야 하는데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제조업이 성행,직업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지금은 서비스업이 지나치게 팽창했습니다. ▲송교수=그렇습니다. 경제구조면으로 보면 87년을 정점으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제조업 비율이 전성기에 45%,지금도 36∼37%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37%를 고비로 현재는 31∼32%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이 꽃을 피운 바탕위에 서비스업이 발전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하기 쉽고 돈을 벌기가 쉽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번창하는 경제구조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고소득 납세자의 3위에서 5위까지가 부동산업자이고 1백위안에 든부동산업자의 수가 지난해 보다 3배나 늘어났습니다. ○경제구조 왜곡도 심화 ▲김교수=미국사회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고학력자들이 일하려 들지 않고 컴퓨터ㆍ사무관리 등 고학력인력이 필요한 직종은 수요에 한계가 있어 원하는 일터는 없고 원하지 않는 일터는 많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의식의 세계는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는 허황된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교수=90년대 우리의 사회인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로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0년대에는 제조업에 고용의 기회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기피하는 실정입니다. 15∼24세의 젊은이가 제조업에 취업한 숫자는 지난 87년 37만명이었던 것이 88년에는 34만명으로 지난해에는 20만명대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는 세계에서 34∼35위의 수준이나 사고와 요구는 2만달러 이상입니다. 의시기의 허황됨이 큰 문제입니다. 이제 이 운동의 성공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김교수=현재의 상황과 조건,운동의 주체,방법 등을 놓고 볼 때 일단 상당히 전개가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있으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해야만 합니다. 이번의 경우 어찌보면 즉흥주의와 편의주의의 인상이 짙습니다. 정부안에서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진지하게 토론하고 검토해 정보를 모아 운동의 성격과 방향이 도출되어야 하나 이번의 경우 총론만 나오고 각론이 나오지 않은 성급함이 보이고 있습니다. ▲송교수=국민들도 운동전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전쟁선언」이라는 표현부터 조금은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정부 각 부처 행정관료들의 특성상 성과위주ㆍ전시위주로 경쟁 비슷하게 해나가는 가운데 국민들은 『어디 해볼테면 해봐라』하는 방관적 심정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이념이 필요합니다. 새마을운동의 저변에는 토착적인 농민들의 민족주의 이념이라는 철학이 밑바닥에 흘렀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운동을 전개하려 하면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설득력도 호소력도 잃게 됩니다. ○자발적인 지도자 필요 ▲송교수=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90년대의 새질서운동을 비교해 보면 운동의 주체가 되는 사람도 크게 변했지만 운동을 이끄는 사람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새마을운동의 이론을 제공하고새마을운동의 시작과 전개,체계화에 깊이 관계하신 김교수께서 지금과 비교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교수=3공화국시절 새마을운동은 시대적 요청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가 일부 지식인의 빈축을 사가며 참여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학자나 지식인이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에서 운동의 시발에서부터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것은 지식인의 이론제공의 결과가 아닌 「운동의 리더」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김준씨 같은 농촌운동의 상징적 리더가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뒷받침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또 자발적인 소단위의 리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새마을지도자들은 「지식인은 할 일이 못된다」「정부에 빌붙는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이었습니다. 결국 운동의 성패는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위에 자발적인 지도자의 유무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교수=새질서운동의 이념으로 2가지를 내세우고 싶습니다. 첫째는 공동체를 재건해 도시의 이웃공동체와 직장이나 직업공동체를 확립해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회는 국가의 힘으로 유지되고 가장 현명한 사회는 공동체의 건설로 저절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함께 살면서 심층적,직접적,전체적 인간관계,익명적이 아닌 거명적 인간관계를 형성해 공동체에 낯선사람,이방인이 없는 사회가 돼 서로가 서로를 의식치 못한 가운데 감시,견제하는 사회가 되면 도덕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방인들 끼리 모여 있는 사회가 범죄의 온상이 됩니다. 공동체가 재건되면 질서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김교수=그러나 우리사회는 지금 너무 많이 파괴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송교수=두번째 이념은 우리사회 특유의 질서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좋은 질서모델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준거로 해서 행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효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 모델입니다. 효의 근본은 공경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자신을 수련했고 그 결과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사회의 발전이 되고 주위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이 곧 사회통합을 이루어나갔던 것입니다. 공동체는 협동성과 정의에 기반을 두어 대립보다는 합의에 중점이 두어진 것입니다. 조선이 5백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밖에 합가치성에 기반을 둔 선비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엘리트의 모든 행위가 이 때문에 공익적이었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관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구국운동이 있었습니다. ▲송교수=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가족주의가 족벌주의,이기주의,기득권주의로 모델이 거꾸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또 공동체는 개인적인 정에 좌우되는 대립주의로 흘렀습니다. 선비주의는 목적달성에 수단방법을 안가리는,합가치성에서 합목적성으로 타락하는 등 역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교수=중종시대의 정치 사회적 내우외환과 선조때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광조와 율곡,퇴계 등에 의해 시작된 향약운동은 고종 말년까지 지속됐습니다. 이 운동은 향촌중심의 민간운동으로 북한이 천리마운동을 시작할 때 그 이념을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새마을 운동도 향약에 기초를 둔 이념이 있었습니다. ○국민운동으로 승화를 ▲송교수=새질서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복원되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사회에 두지 자기가정에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부모상이 깨지고 쩔쩔매는 약한 아버지와 과잉서비스 과보호의 어머니가 있을 뿐입니다. 현재 강력범죄의 50% 이상이 10대가 저지르고 있습니다. ▲김교수=요즈음을 개인주의시대라고 하지만 과거의 규범인 수신제가도 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자기 중심의 도덕ㆍ윤리였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회」가 아닌 「무정부사회」라고까지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의 전통을 복원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송교수=공동체건설을 위해서는 지금 24%에 이르는 지역간 이동성을 10% 선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동성이 줄어들면 마을마다 유수한 지식인들에 의해 우리마을의 질서는 우리가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운동은 정권적인 차원을 떠나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운동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부터 다시 점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원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노력이 10년ㆍ20년 이어질 때 조금씩 조금씩 지금보다 좋은,인간적인 사회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의 목표를 오판해 정치적효과와 행정적업적을 겨냥하면 실패합니다. 국민전체가 참여하지 않는 부분적인 운동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으며 종합적ㆍ전체적인 운동으로 이어져 지도력이 발휘되면 국민들이 적극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재계원로 이원순옹 1백회 생일

    ◎초창기 한국경제계 이끈 “영원한 경제인”/지금도 신문경제기사 빼놓지 않고 읽어 경제계 원로인 해사 이원순옹이 8일 만으로 1백회 생일을 맞았다. 조선조 고종 27년(1890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임정요인 ㆍKOC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세기동안 다채로운 경력을 겪은 원로이지만 재계에서는 그를 「영원한 경제인」으로 부른다. 경영일선에서는 비록 물러났지만 이옹은 현재에도 한국해광개발㈜의 사장 및 전경련 고문ㆍ한미경제협회 고문등을 맡고 있다. 항일운동을 하다 해방후 대한증권을 설립하면서 경제계에 투신했던 이옹은 초창기 한국경제계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대한상의ㆍ전경련등 경제단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옹은 자신의 장수비결로 『육체의 건강보다 마음의 건강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도만을 걷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사도를 걸으면 일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건강을 해쳐 결국 장수할 수 없다』는 지론이다. 이옹은 이밖에 될 수 있는대로 걷고,서서 일하며,쓸데 없이 앉거나 눕지 않는다는 생활수칙이 육체건강을 유지하게 만든 듯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옹은 지난해까지도 전경련 회장단 간친회에 자주 참석했고 전경련에서 마련한 축수연에서 후배 경제인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옹은 자신보다 13년연하인 김용완 경방명예회장(87)이 거동에 불편해 하는 것을 보면 『젊은 사람이 기력이 부족하다』고 놀리는가 하면 70대 중반인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75)에게도 『못보던 새에 많이 컸다』는등 농담을 즐겼다는 것. 이런 그가 올해는 전경련측이 준비한 생일축하연을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그러나 이옹의 건강이 그리 악화된 것은 아니라는게 주위의 말이다. 최근에는 북경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밤늦도록 시청했으며 신문도 재계기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고.
  • 한ㆍ소수교… 구러시아공관 “눈길”

    ◎87년 정동공원들어서… 3층탑만 현존/정부,소연고권 주장에 “대한민국의무 승계 불가” 한소간에 역사적인 국교수립이 이뤄지자 서울 중구 정동 15일대 옛 러시아공사공관건물과 부지의 소유권문제가 세인들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소련측이 노일전쟁에서 패한 1904년(86년전)까지 자신들의 공관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부지의 연고권을 본격적으로 주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소련영사처는 우리 외무부당국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비록 비공식적이긴 해도 『옛 러시아공관부지를 돌려받을 수 없겠느냐』며 수차례 의사타진을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이에대해 국내법상 재산권보유시효인 20년이 지나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나 앞으로 소련측이 계속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한소의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60년 당시 민법개정과 함께 모든 토지를 신고토록 공시했으나 소련측이 신고하지 않아 이미 법적 반환시효가 지나 반환문제를 공식제기하더라도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련측은 수교과정에서 지난78년 체결된 국가상속에 관한 빈협약에 따라 한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빈협약은 선임국(러시아)에 속한 재산은 자연승계국(소련)에 상속토록 규정돼있어 소련측에서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원칙 등을 내세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외무부측은 ▲이미 국내법상 처리절차가 끝났으며 ▲6천여평의 부지가 여러사람의 소유로 돼있고 ▲우리나라는 당시의 권리의무를 승계하지 않고 새롭게 수립된 국가라는 점 등을 들어 반환의 불가능함을 확고히 하고 있다. 문제의 옛러시아공관부지는 총 6천1백94평으로 현재 땅값만도 5백억원(평당 7백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 부지는 지난70년대에 법적절차에 따라 문화방송(MBC) 사옥으로 1천6백95평,아카데미하우스로 1천3백71평이 각각 매각됐으며 나머지 3천1백28평은 서울시에 소유권이 넘겨져 87년말 정동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우리민족에게 오욕의 역사를 안겨준 이곳은고종 27년(1890) 르네상스양식의 벽돌건물로 러시아사람 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건평 65.2평의 2층짜리 공관과 3층짜리 탑이 들어서있으나 6ㆍ25때 대부분 파괴되고 현존하는 것은 73년 복원된 탑뿐이다. 이 공관은 현재 사적 253호로 지정돼 있다.
  • 사회주의 계열 임정요원 포함 독립유공 613명 서훈

    ◎윤동주ㆍ최동오ㆍ장일환ㆍ정일형씨 등 대상/광복 45돌 맞아 국가보훈처는 광복 45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그동안 거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지 못했던 윤동주ㆍ최동오ㆍ장일환ㆍ정일형씨 등 저명인사를 포함한 총 6백13명을 서훈키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에게는 오는 15일 충남 천원군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포상하게 된다. 이상연보훈처장은 『이번 서훈대상자들은 거증자료를 새로 발굴했거나 중국ㆍ소련 등 공산권국가에서 입수한 새로운 자료를 심사해 결정했다』고 밝히고 『그동안 독립운동의 공적은 있으나 사회주의ㆍ공산주의 활동으로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제외됐던 유공자들도 대거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또 『국가보훈처는 제6공화국 헌법전문의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는 헌법정신에 따라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선열들의 공적을 지난 89년부터 인정하게 됐다』고 밝히고 『뒤늦게나마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ㆍ희생한 독립유공자들을 예우하게 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국가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고 국민적 자긍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6ㆍ25이후 북한으로 납북되어 사망한 최동오씨와 장일환씨는 북한에서도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훈장수여자는 다음과 같다. ◇건국훈장독립장=△고 최동오(임정국무위원) △고 윤동주(시인) ◇건국훈장애국장=△고 정일형 △정찬진(85ㆍ독립운동가) △이병훈(77ㆍ〃) ◇건국훈장애족장=△오윤진(81ㆍ독립운동가) △김국환(73ㆍ〃) △고종근(67ㆍ〃) △박상유(67ㆍ〃) △정현규(66ㆍ〃) △최을규(62ㆍ〃) △최해수(65ㆍ〃)
  • 승용차ㆍ열차 충돌/주지등 4명 숨져

    【대구=최암기자】 21일 하오3시10분쯤 대구시 동구 안심3동 제3종 사복건널목(동대구 기점 12.5㎞)에서 동대구기관차 사무소소속 동대구발 강릉행 402호 통일호열차(기관사 박명수ㆍ37)와 대구1 다6870호 스텔라승용차(운전자 이한수ㆍ40ㆍ신흥사주지)가 충돌,승용차운전자 이씨와 함께 타고 있던 김병찬(30ㆍ대구시 동구 안심3동 298) 김희분(50ㆍ대구시 동구 사복동 89의3) 박계순씨(43ㆍ대구시 동구 사복동 258) 등 4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는 승용차가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건널목을 지나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열차와 충돌해 일어났다. 승용차 운전자 이씨는 대구시 동구 사복동 49 대한불교태고종 신흥사주지로 이날 신도들과 함께 불공에 쓸 재물을 사오다 사고를 당했다.
  • 외언내언

    설사 백살을 넘겨 살았다 해도 조간한 유족은 슬픈 법이다. 더구나 고인이 국가사회에 업적을 남긴 경우라면 그 애달픔이 유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발자취를 아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 ◆해위 윤보선 전대통령의 영면도 그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슬픔을 안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부음에 전해 듣는 국민들은 이렇게도 생각한다.­『복 많은 노인이 돌아가셨구나』. 93세라면 천수를 누렸다고 표현못할 것이 없다. 생애를 살펴봐도 그렇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외국의 명문학교를 두루 거쳤으며 장관ㆍ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대통령까지 지내지 않았는가. ◆복많은 사람이라 해서 생애 모두가 순풍에 돛단 항로일 수만은 없다. 그것이 인생길이다. 해위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특히 5ㆍ16혁명 이후의 역정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복많은 노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직 국가 원수로서의 고종명에도 까닭이 있다. 우리의 불행한 헌정사가 한분은 하와이 땅에서 객사하게 했고 한분은 총탄에 맞아 쓰러지게 하지 않았는가. 살아있는한분은 칩거중이지만 다른 한분은 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있다. ◆반가의 가풍을 이어받은 위에 영국수학까지 했음으로 해서 신사도가 몸에 밴 평생이었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5공 이후의 처신에 대해 더러 석연찮게 여기는 견해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의 한평생이 객관적으로 한결같이 1백점이 될 수는 없는 법. 어찌 됐든 우리의 해방후사는 그를 빼놓고 적을 수가 없다. 그만큼 그는 한 시대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거성임에 틀림이 없다. ◆정치의 산실이었던 안국동 8번지도 이제 정치사속으로 접혀들어간다. 「정신적 대통령」의 타계와 함께. 두손 모아 명복을 빈다.
  • 여,방송·군조직법안 일방처리/국회상위/남북교류법·소득세법안도 의결

    ◎수정안 상정,표결로 통과/방송법/평민,“절차에 하자있다” 무효 주장 쟁점법안의 처리강행에 들어간 민자당은 11일 국회관련 상임위에서 국군조직법 개정안,방송법 등 방송관련 2개 법안,남북교류협력법(대안) 등을 표결 또는 민자당 단독으로 처리,법사위에 회부했다.〈관련기사3면〉 민자당은 또 재무위에서 정부가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평민당의 불참속에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등 민생관련 법안도 부분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들 쟁점법안들이 처리된 국방·문공·외무·통일위에서는 민자·평민당간에 격렬한 몸싸움과 고성등이 오가는 소란이 벌어졌다. 국회 예결위는 이날 강영훈국무총리를 비롯한 관계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추경예산안에 대한 정책질의를 벌였다. 민자당은 이날 문공위에서 방송안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정부의 방송간여를 제한하는 방송법 개정안 수정안을 상정,이를 표결로 통과시켰다. 수정안은 정부안에 비해 방송위의 방송프로그램 중단·중지권과 광고방송중지권·방송국 재허가 제한조치요청권 등을 삭제하고종교방송등 특수방송의 편성비율 명시조항을 삭제했다. 또 KBS의 연간광고방송 계획을 공보처장관에게 보고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KBS 부동산취득 처분시 공보처장관에 대한 사전보고 조항을 사후보고로 대체했다. 외무통일위는 이날 남북교류 문제에 관해 정부안과 민자당안·평민당안을 종합한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을 대안으로 통과시키는 한편 정부가 제출한 남북 협력기금법·민족통일연구원법도 의결,법사위에 회부했다.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은 남북간의 왕래·교역·협력사업과 통신·역무의 제공 등에 관해서는 이 법을 적용토록 하고 정부내 남북교류 협력업무를 통일원으로 일원화시키고 있다. 한편 평민당은 문공위에서의 방송관련법 처리와 관련,표결결과에 대한 위원장의 언급없이 통과가 선포됐다고 지적,무효를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날 문공위에서는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민자당의원과 이를 실력 저지하려는 평민당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벌여 평민당측 간사인 조홍규의원이 민자당 신하철의원과 경위들에 의해 끌려 나가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문교체육위는 이날 김원기위원장(평민)과 여야간사 합의에 따라 교육공무원법 개정안,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 법안,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3개 쟁점법안을 이번 회기내 처리하지 않고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키로 잠정 결정하고 전체회의를 열지 않았다. 또 내무위는 자동차 전용도로 및 고속도로에서의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다음과 같다. ▲남북교류 협력법 ▲남북협력 기금법 ▲민족통일연구원법(이상 외무통일위) ▲국군조직법(국방위) ▲방송법 ▲한국방송공사법 ▲한국방송광고공사법(이상 문공위) ▲한국마사회법 ▲수산업법 ▲농업재해대책법(이상 농림수산위) ▲소득세법(재무위) ▲도로교통법 ▲광고물 관리법(이상 내무위) ▲환경정책 기본법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대기환경 보전법 ▲환경오염 피해분쟁조정법 ▲수질환경 보전법 ▲소음진동 규제법(이상 보사위)
  • KBS이사회 권한축소… 경영에만 참여/방송관계법 개정안 골자

    ◎대기업의 방송법인 주식ㆍ지분소유 금지/광고공사 공익자금 적정사용 여부 검사/방송위선 시청자의 불만도 심의ㆍ처리 정부는 민방허용ㆍKBS분리등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구조의 개편에 따른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8일 국무회의에서 방송법ㆍ한국방송공사(KBS)법ㆍ한국방송광고공사법 등 방송관련 3개 법안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특히 방송공사법 개정안의 경우 정부의 경영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조항과 KBS사장의 인사권강화,KBS이사회권한 약화등이 포함돼 있어 국회심의과정에서 논란의 소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3개 법안의 개정안골자는 다음과 같다. ▷방송법개정안◁ ▲방송국의 경영과 관련,누구든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소유하는 주식 또는 지분을 포함해서 동일 방송법인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30%를 초과,소유할 수 없게 했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방송법인에 출자한 경우(KBSㆍ교육방송ㆍ교통방송)와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법인이 방송법인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하는 경우(방송문화진흥회)그리고종교설교를 목적으로 허가를 받아 설립된 방송법인에 출연하는 경우는 예외로 했다. 또 대통령이 정하는 대기업ㆍ그 계열기업 및 그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는 방송법인 발행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게 했으며 이를 위반하여 소유한 자는 그 초과분 또는 소유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했다. ▲방송위원회의 위원은 현재 12인에서 9인으로 조정,방송내용에만 간여토록해 방송내용 향상을 위한 조사연구 및 연수에 관한 사항,시청자불만처리에 관한 사항 등을 새로 심의의결할 수 있게 했다. 또 심의규정을 위반한 방송국에 대해서는 보도프로그램을 제외하고 해당 프로그램의 중단 또는 1년이내의 범위내에서 방송정지를 내릴 수 있으며 1년이내에 3회이상 시정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해당 방송국에 대해 1개월내의 광고방송정지를 명하거나 방송국 재허가 제한조치를 공보처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방송편성에 있어서 특히 특수방송과 관련,허가받은 방송의 목적에 따라 그 기준을 대통령으로 정하게 했다. 또 외국프로그램과 국내제작프로그램의 편성비율범위를 정하며 허가받은 방송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에게 대여,방송할 수 없게 했다. ▲이와 함께 부칙으로 개정법 당시 방송법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현행 주식이나 지분을 인정해 줬다. 따라서 MBC본사의 일부 지방계열사의 주식소유나 일부 대기업의 MBC지방계열사 주식소유는 개정규정에 적용을 받지 않게 했다. ▷방송공사법개정안◁ ▲KBS이사회는 방송내용에는 간여하지 않고 경영에만 간여토록 했다. 따라서 이사회가 지금까지는 최고의 의결기관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앞으로 공사경영에 관해서만 최고 의결기관으로 축소된다 ▲사장의 인사권이 강화됨으로써 부사장과 본부장의 임면동의권은 삭제됐으며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하고 보고 평가서를 작성,다음해 3월31일까지 공보처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또 공사경영과 관련하여 공보처장관의 요청이 있을 때는 이를 신중 검토토록 했다. ▲KBS업무에 있어서는 현행 교육방송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특수방송의 실시조항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특수방송의 실시및 지원으로 확대시켰다. KBS의 부사장은 현재 1인에서 2인으로,본부장은 7인이내에서 10인이내로 조정하고 사장이 임면토록 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재원조항을 명문화했으며 연간광고 방송계획을 수립,매회계연도 개시전에 공보처장관에게 보고토록 했다. ▷방송광고공사법개정안◁ ▲설치목적과 관련,방송광고수입의 일부를 재원으로 하여 기존의 문화생활과 방송문화발전 외에도 방송광고진흥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을 고유사업으로 추가시켰다. 이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업무조항에서 방송광고의 진흥에 관계되는 조사ㆍ연구 및 관련단체에의 지원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켰다. ▲방송진흥사업 및 문화예술진흥사업을 위한 자금을 조성,방송위원회ㆍ언론중재위원회등 언론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과 공보처장관의 허가를 받거나 공보처장관에게 등록한 언론기관단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단체의 운영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신설되는 공익자금관리위원회는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추천하는 3인,문예진흥원장이 추천하는 3인,공보처장관이추천하는 3인 등 9인으로 구성,공익자금의 지원대상 및 지원금액 등 기본운용계획을 심의 의결하여 공보처장관의 승인을 얻어 확정토록 했다. ▲특히 공익자금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아 공익자금의 지원기관별ㆍ사업별로 지원금사용의 적정성 여부를 검사한다는 조항을 명문화시켰다. 방송광고공사는 매년 공익자금의 사용내용 및 실적을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공익자금관리위원회에 보고토록 했으며 위원회는 이를 공표토록 했다.
  • 한ㆍ소 경제인 바쁘게 오간다/정상회담 계기로 잦은 「발걸음」

    ◎경제단체ㆍ지방상공인들도 “진출”타진/소 2개사 서울지사 허가 신청,10여개사 “준비”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내 경제인들의 소련행과 소련기업들의 국내 진출움직임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경제인들의 소련행은 그룹회장이나 사장등 그룹 또는 개별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직접 나서는 것으로부터 경제단체 또는 업종별 단체를 중심으로한 단체방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소련연방상의 서울사무소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소련주간행사」의 상품전시회개막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비자발급을 시작,이제까지 일본등 제3국에서 비자를 발급받던 불편이 해소됨으로써 경제인들의 소련행 발걸음이 한결 잦아지고 있다. ○…소련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정주영명예그룹회장은 이달중순께 이명박현대건설회장,주강수현대종합상사전무 등 건설과 종합상사,종합목재 등의 관계자 5∼6명과 함께 다시 소련을 방문할 예정. 이들은 방소기간중 최근 가스전개발유망지로 각광 받고 있는 극동지역의 야쿠츠크지역을 둘러보는 한편 소련측 관계자들과 만나 스베틀라야삼림개발,슬라뱐스크 및 나홋카수리조선소,블라디보스토크의 개인용 컴퓨터공장,하바로프스크의 비누공장 등 현재 추진중인 사업들을 최종 마무리지을 계획. 삼성그룹은 신현확삼성물산회장이 소련국가경제원 초청으로 9일부터 17일까지 소련을 방문,소련과학아카데미의 마르초크원장을 비롯해 소련극동연구소의 티타렌코소장,말케비치소연방상의의장 등 정ㆍ재계인사들과 두루 만날 예정. 국무총리를 역임한 신회장은 삼성이 최근 소련에 투자하기로 한 전전자교환기사업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대한 새로운 사업개척임무도 띠고 있을 것이란게 업계의 관측. 쌍용그룹은 현재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정영우 ㈜쌍용상품본부장이 오는 20일쯤 귀국하는대로 현지조사를 분석한뒤 김기호 ㈜쌍용사장이 다시 소련을 방문,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진전시킬 계획. 두산그룹은 고종진동양맥주사장이 성우경부사장과 함께 오는 9일까지 소련을 방문,소련의 주류유통업계를 둘러보고 있으며 박승일 두산산업사장도 소련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현재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방문하고 있다. ○…이에 앞서 남덕우무역협회회장을 단장으로 김인호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을 정부측 대표로 24명의 관ㆍ재계인사들로 구성된 대소경제사절단이 지난 2일 모스크바로 출국,오는 16일까지 모스크바ㆍ레닌그라드ㆍ하바로프스크ㆍ나홋카 등지의 국영기업 및 국가기관ㆍ단체ㆍ조합 등을 둘러볼 예정. 이 사절단의 일원인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은 공식일정이 끝나는대로 대소자동차수출 문제를,김항덕유공사장은 유전개발참여 및 원유ㆍ석유제품 수입가능성을 각각 타진할 것이라고. 경제단체 가운데 정춘국 대구상의감사를 비롯한 상공인 15명과 황대현 대구시지역국장 등 모두 17명의 대구지역 경제사절단이 오는 23일부터 7월1일까지 소련 카자흐공화국을 방문해 교역ㆍ기술협력 합작공장 설립문제를 협의할 예정. 또 마산상의에 소속된 부산ㆍ마산지역의 중소업체대표 25명도 7일부터 22일까지 방소길에 오른다. 이밖에 섬유ㆍ철강ㆍ플라스틱ㆍ해운ㆍ석유화학 업계도 제각기 소련방문단을 구성했고 기계공업진흥회도 곽정현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소련ㆍ동구권 방문단을 파견한다. ○…한편 국내종합무역상사인 삼성물산ㆍ럭키금성상사 등 5개사에 이어 쌍용ㆍ효성ㆍ코오롱상사가 이달중 소연방상의로부터 모스크바지사설립허가를 받아 지사를 개설할 예정인데 이어 소련업체들도 서울지사설치를 서둘고 있다. 지난 1월 우리측에 지사설치의향을 타진해 왔던 소련의 3개 FTO(국영무역공단)가운데 라이센스트르그(기술특허관리공단),스탄코임포트(공작기계수출입공단) 등 2개사가 최근 한은에 지사설치허가 신청서를 제출했고 테크노임펙스(기술ㆍ기계류수출입공단)도 곧 지사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3일 폐막된 소련상품전에서 많은 수출계약실적을 올린 니즈네캄스크네프스테킴(화학제품관리공단),달린토르그(장신구수출입공단),보노엑스포트(모피ㆍ자기류수출입공단),라스노임포트(비철금속수출입공단) 등 10여개사가 무공등에 지사설치를 문의했다. 이밖에 목재ㆍ펄프ㆍ선철ㆍ비철ㆍ금속ㆍ화학원자재관련 소련업체들이 주모스크바 무공무역관이나 주한소련상의에 잇따라 대한진출문제를 타진하는등 소련기업들이 서울로 몰려오고 있다. 소련기업들은 그동안 국내업체들과 총대리점계약 또는 업무제휴방식으로 간접상사활동을 했을뿐 지사설치를 한곳은 하나도 없었는데 외국상사 인ㆍ허가권을 쥐고 있는 재무부ㆍ한은이 한소정상이 완전수교 원칙에 합의한 만큼 소련상사들의 서울지사설치를 조만간 허용할 방침이어서 한소간 경제인들의 나들이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페어몬트호텔의 정상대좌/이경형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3일(미국시간)의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한소간의 앞날을 말해주듯 우리나라 초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맑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은 노태우대통령이 도착한 이날을 「노태우대통령의 날」로 선포했고 한소 정상회담을 위해 이날 밤 이곳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날」은 4일로 하기로 했다. 시가지 곳곳엔 대형태극기가 드리워져 있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릴 페어몬트호텔 주변에는 대형 중계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다. 세계3대 미항으로 일컬어지는 샌프란시스코만을 굽어보는 유서깊은 페어몬트호텔이 위치한 나브힐일대의 호텔에는 한소 양국의 보도진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 언론인 3천여명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이곳은 8개월여만에 「냉전종식을 위한 대지각 변동」이 기대되는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한소양국은 정상회담 장소를 두고 소련측은 소련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저로 하자고주장한 반면 우리측은 소련의 외교특권이 미치지 않는 중립적인 제3의 장소로 하자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이 호텔로 낙착됐다. 노대통령의 숙소가 이 호텔인 데 비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숙소가 소련총영사관저임을 감안할때 한소 양국정상의 첫 대좌가 우리측의 주장대로 수용된 것은 그런대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1백년전인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가서 정사를본 아관파천의 쓰라린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첫 정상의 만남이 「미국내의 소련땅」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을 한소관계의 대등한 출발의 신호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얄타체제의 최후 유산인 한반도분단이 해소되지 않고는 비록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에서 자유와 개방의 물결이 넘친다 해도 사가들은 진정한 냉전구조의 청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북방정책」과 「글라스노스트」의 만남으로 이 지구 최초의 분단국의 아픔이 가셔지기를 기대해 본다.
  • 한ㆍ소 정상회담 어떻게 추진되나

    ◎「태백산계획」 마무리… 부산한 청와대/한국,“동등관계” 주장… 장소싸고 진통/회담 결과는 따로 「언론발표」 갖기로 역사적인 4일의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과 6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3일 미국으로 떠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미계획(암호명 태백산계획)을 준비해온 청와대는 출국 하루전인 2일 대부분의 작업을 일단 마무리. 그러나 청와대당국은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에 따른 배경설명은 하면서도 회담의 시간ㆍ장소ㆍ의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로 일관. ○…한소간에 막바지까지 절충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문제는 회담장소. 회담장소는 소련측이 샌프란시스코의 소련총영사관을 주장한 반면 우리측은 페어몬트호텔로 주장. 한소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양국간 실무협상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도착한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이정빈외무부제1차관보와 고르바초프의 외교고문인 아나톨리 도브리닌 전주미대사와 사이에서 진행되었다고. 소련측은 보안,경호상의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관저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측은 양국이 출발부터 대등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소련의 외교특권(총영사관이긴해도 대사관과 같이 치외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외교관행)이 미치는 총영사관은 곤란하며 제3의 중립적인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고 완강히 반대. 제3의 장소로는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경제인을 상대로 연설을 하게되고 또 1948년 유엔창립총회가 열린 유서깊은 페어몬트호텔내의 특별회의실이 적절하다는 게 우리의 주장. 이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스탠퍼드대학도 한때 거론되었다고. 소련실무팀은 한국의 이같은 완강한 태도때문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접 결정을 내리도록 건의했다는 것. 한국측은 특히 총영사관에서의 회담이 자칫 구한말 고종의 아관파천의 기억을 국민들에게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 ○…회담시간은 4일 하오 4∼6시사이(현지시간)가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알려진 당일일정 가운데 비어있는 시간대는 정확히 하오 4시15분부터 5시30분까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상오에는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 조찬을 하고 한소 정상회담직전에는 미경제인 2백명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데 2천여명의 방청신청이 있어 페어몬트호텔내의 폐쇄 TV를 활용하게 된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당초 5일 귀국도중 캄차카반도에기착,대아시아정책과 관련,중요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면서 한소 정상회담의 시간도 가변적인 요소가 많다고 전망.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시간도 하오 7∼7시30분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것도 유동적이라는 것. 회담후 양국정상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대신 개별적인 언론발표문(Press Release)을 통해 회담결과를 발표하기로 이미 합의돼 있다고.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은 6일 상오 10시 백악관에서 약 45분간 진행될 계획이라고.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결정되기 이전에 이미 이날 그리스수상ㆍ유엔사무총장ㆍ콜롬비아대통령 등과의 회담일정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조찬회담이 고려됐다가다른 일정을 밀치고 다시 상오회담으로 낙착되었다고. 한편 청와대 당국자는 국내언론이 「한소 양국정상의 연내 교환방문 가능성」 「대소 대규모경협차관 검토」 등을 보도하고 있는 데 대해 『정상회담에서 상호초청의사는 표할 수 있지만 시기문제 등은 수교이후에 양국 외교경로를 통해 얘기할 성격일 뿐만 아니라 아직은 그같은 추측을 할 단계가 아니다』 『소련측에서 소련내 소비제품의 공급을 원활히 하는데 한국측이 기여해주었으면 하는 타진이외에 일체 차관공여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
  • 외언내언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곳이 운형궁. 운현궁 북쪽의 고개이름이 운관현(줄여서 운현ㆍ관현이라고도 했음)이었기 때문에 붙은 궁호이다. ◆이 운현궁이 어떤 곳인가. 우리의 근세사가 이곳에 응집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이곳에 산 홍선대원군이 야망을 숨긴 채 게걸거리며 양광했다. 집권하여서는 파란만장의 역사를 만들어 나갔고. 나중에 고종이 되어 만고풍상을 다 겪는 개똥이(아명) 이재황이 태어난 곳 또한 이터가 아니던가. 우리가 물려받은 터전 그 어디라 해서 역사가 어리지 않은 곳이 있다고 하랴. 그러나 이 운현궁만큼 역사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곳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무술년 이월 초이틀이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이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홍선대원군 이하응이 운명한 날이다. 이 소설에서 신유년 정월 초하룻날의 운현궁을 잠시 들여다 보자. 『재황아,좀 가까이 온!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아버지 앞에까지 다가갔다. 자기의 앞에 다가 앉은 아들의 손을 아버지는 잡았다. …큰 손이다. 팔도를 잡을 손이다. 3백주를 흔들 손이다. 삼천리를덮을 손이다……』. 고종 황제의 아버지는 준수하게 생긴 이 둘째 아들에게 그렇게 자신의 야망을 탁했다. 그곳이 운현궁. ◆이젠 어디가 운현궁 터인지조차 모르게끔 되어버린 종로구 운니동 98번지. 그 운현궁의 소유주인 홍선대원군의 5세손 이청씨가 서울시에 그 곳을 사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에서는 덕성여대쪽에 이미 팔려 버린 곳까지를 함께 사들여서 관광 유적지를 만들 것으로 알려진다. 구한말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 있는 각종 건물이 개보수되고 정원도 재현된다는 것. 참으로 잘된 일이며 잘하는 일이다. ◆운현궁은 왕족이 쓰던 건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란 점에서도 복원의 뜻이 깊다. 그 곳을 둘러보게 될 수 있는 날 우리는 괴걸(김동인의 표현) 대원군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뜻」을 오늘의 시점에서 헤아려 보게도 되는 것이리라.
  • 민자당사 대학생 난입/어제 상오

    ◎17개대 21명… 10분만에 전원연행 7일 상오9시5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민자당중앙당사에 전국 17개대학 학생 21명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화염병을 던지고 들어가 3층 부대변인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10분만에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전대협」산하 「애국결사대」소속이라고 밝힌 학생들은 이날 노태우대통령의 시국관련 특별담화가 시작된직후 정문옆 가건물 초소에 있던 경비경찰들에게 화염병 20여개를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당사로 몰려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14명은 1층 현관과 복도등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학생들 가운데 고종훈군(21ㆍ서울대 동양사학과 3년)등 7명은 3층으로 올라가 부대변인실의 대형유리창 2장을 깨고 창문밖으로 유인물 1백여장을 뿌리며 『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은 이어 대형 캐비닛과 책상등으로 부대변인실입구에 바리케이드를 만든뒤 민자당의 홍보 플래카드1개를 방안에서 불태우고 10여분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정주양(21ㆍ부산대 영어교육과 4년)등 학생4명과 전경5명이다쳤다.
  • 전국 사찰서 봉축법요식/어제 부처님오신날

    불기2534년 「부처님오신날」봉축대법요식이 2일 상오10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서 베풀어졌다. 33차례의 범종이 울리는 가운데 시작된 이날 법요식에는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을 비롯,박완일전국신도회장,삼부요인,주한외교사절등 국내외 인사와 불자 1만여명이 나와 무명의 사파빛이 가득하길 기원했다. 한편 불교태고종은 서울 성북동 태고사에서,불교천태종은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봉축법요식을 갖고 대자대비의 불타의 원력이 시방세계에 충만하길 축원했다.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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