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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충정공의 일기/권문용 한국고속철도공단 부이사장(굄돌)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에 충정공 민영환이 고종의 명에 따라 특명 전권대사로 유럽과 미국에 간적이 있다. 그가 처음으로 뉴욕에 발을 내디뎠을 때 받은 충격이란 실로 어마어마 했다.민영환은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메고 다니지 않는가.그런데 여기선 땅 밑으로 철마가 다니니 이 일을 어이할꼬,어이할꼬!』 이 가련한 충신이 할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다만 「하루빨리 주상전하께 알려야지」하고 애를 태웠을 뿐이었다.이 일기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불길하게 예고하고 있었다. 한 세기에 이르는 경제력과 기술의 격차는 결국 국토분단이라는 멍에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짐지워져 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의 경제력과 기술은 일본에 턱없이 못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 격차가 무려 20년에서 25년이 넘는다고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는 평가하고 있다.더욱이 앞으로 20 00년까지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지리라고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기술과 경제력을 다시 생각할 때다.비록 기술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퍽 다행한 일이 어제부터 내 옆방에서 시작되었다.즉 TGV의 최고 기술진들이 대거 몰려와 우리 기술진과 기술이전 협상을 시작했다. 사실 고속철도는 항공기 다음 세대의 첨단기술의 집합체이다.항공기가 이륙할 때의 속도인 시속 3백㎞로 가다가 자동으로 무성영화처럼 소리없이 부드럽게 멈추도록 하는 자동제어기술이 들어온다. 또 레이저 빔을 쏘아 철도 앞길에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이나 지장물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차를 멈추게 하는 자동감지기술도 들어오게 한다. 자동차나 항공기를 설계할 때 직접 응용이 가능한 공기역학적인 설계모델도 동시에 들어와야 한다.이러한 수많은 첨단기술들을 우리 기술진이 총동원되어 이번에 우리 것으로 만들 참이다. 그러면 이 분야에서는 일본기술을 앞지를 지도 모르겠다.앞으로 우리 손으로,또 우리기술로 만든 고속철마가 목포·부산·강릉 나아가 평양·신의주로 다니고,유라시아대륙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민충정공이 보신다면 후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편히 주무시게 될 것이다.
  • 올해 「분쉬의학상」수상/가톨릭의대 김동집교수(인터뷰)

    ◎“「40년 골수인생」에 더없이 보람”/지금까지 골수이식수술 180여건 시행/“혈액암 정복에 여생 바치겠다”집념 『성공적인 골수이식 수술을 위해서는 전문 의료진과 지원부서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따라서 이번 수상의 영광을 제가 26년동안 몸담아 온 가톨릭의대 골수이식팀에 모두 돌리겠습니다』 대한의학회(회장 이문호)가 제정한 「분쉬의학상」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돼22일 상을 받는 가톨릭의대 김동집교수(60·내과학교실). 김교수는 지난 40년간 골수이식술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로 국내 의학발전과 백혈병및 재생불량성빈혈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됐다.실제로 김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가톨릭 골수이식센터는 지난 79년 동물을 대상으로 골수이식을 시작,83년 3월 국내 최초로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환자에게 동종 골수이식을 성공한 이래 지금까지 1백50건의 동종골수이식과 30건의 자가골수이식을 시행하는 개가를 올렸다. 김교수팀의 이러한 성과는 불치의 병으로 불려오던 골수성 백혈병·악성 임파종·재생불량성빈혈등 악성 혈액질환도 완치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해 주었으며 지난해부터 동종골수 이식수술이 의료보험 급여대상에 포함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 「선샤인」에 나오는 주인공 처럼 손 한번 못써보고 죽어가는 백혈병환자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최근 면역 억제제와 항바이러스제의 발전으로 동종이식을 받은 환자의 무병생존율은 백혈병 52%,중증 재생불량성빈혈 68%에 이르고 있지요.다만 조직형이 같은 골수 확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환자와 골수제공자간의 조직적합항원(HLA) 일치 확률이 1만분의1정도로 극히 희박해서 그동안 주로 혈연간의 이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음을 지적한 그는 『조직형이 맞는 제3자로부터 골수를 기증받아 배분하는 골수은행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골수이식술이 혈액학과 관련분야 연구발전의 자극제및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40년 골수인생」에 더없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고 『골수이식 환자의 생존율 향상과 혈액암 정복에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분쉬의학상」은 19 01년 고종황제 전의로 내한해 당시 세계의술의 선도적 위치에 있던 독일의학을 한국에 전수,국내 서양의학 발전의 디딤돌을 마련한 독일인 리하르트 분쉬를 기리기 위해 91년에 제정됐다.
  • 서로 존중하는 관계/임대희(굄돌)

    멀고도 가까운 나라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우리에게는 중국이 미울수도 있으나,사이좋게 지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가까이는 6·25전쟁에서 중국의 참전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중국의 침략이 있었다.어떤 사람은 중국에서의 침략이 한주이 쳐들어 온 것은 수양제나 당태종·당고종때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쳐들어 온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그 이민족이 다시 오늘의 중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여하튼 중국이 우리에게는 미울 수도 있지만,미워만 할 수도 없는 나라임에 틀림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해류를 잘 타면 예전에는 절강성 녕파에서 뗏목으로도 한반도에 닿았다고 한다.얼마전에 복건성에서 월남난민이라고 칭하는 노동자들이 배를 이용하여 대거 일본으로 몰려든 적이 있었다.그 당시 일부가 제주도 남단에 표류하였으나 해양경찰대에서 돌려보낸 적이 있다.경우에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중국의 치안이 안정되기를 빌며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주변국에까지 폐를 끼치게 되지 않기를 인국민으로서 바라마지 않는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정서가 그들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던 우리로서는 통하는 면이 많다.유가적인 분위기가 도가적인 분위기와 혼합된 지금의 중국의 문화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특이한 모습은 앞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필요를 말하여 준다. 중국에서 우리가 떳떳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려면,우리 자신이 잘 살고 있어야 한다.우리가 중국에만 매달려 있게 되면 중국은 우리에게 배짱을 부릴 수 있게 된다.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에게 가까운 나라로 남아있기를 바랄수록 오히려 중국을 둘러싼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의 다른 나라에 신경을 써야 한다.우리가 중국과 교류하려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하는 그들의 논리를 이해하기는 해야겠지만,그들의 논리에 함몰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그대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해 두는 것이야말로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 오랜 사귐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즉,중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도 잘 살게 됨으로써 역설적이지만 우리와 중국과의 사귐이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게 되는 모습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보상금 산정방법등 난제 산적/정동 구러시아공관땅 처리 협상 내용

    ◎3천2백평 불하·3천여평 공원용지/「러」선 팔린땅 보상·나머지 소유권 요구 한·러시아간 주요 외교현안가운데 하나인 서울 정동소재 구러시아공관부지 반환문제는 우리 정부가 기존의 입장에서 후퇴,러시아쪽 주장을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27일 양국 실무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이 부지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한국정부가 이를 수용한데 대해 러시아에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키로 합의한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내세운 공식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양보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은 과거 러시아가 이 부지를 정식매입해 사용했는지 아니면 고종이 하사했거나 임차한 것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공관부지 매매에 관한 증빙서류가 없는 한 러시아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6천1백94.2평에 달하는 정동 15번지의 구러시아공관부지는 1880년부터 러시아제국이후 1946년 우리 정부수립과 함께 국교가 단절되기까지 구소련의 영사관이 설치돼 있던 곳이다. 이후 우리 정부는68년 국무회의의결을 거쳐 70년 이곳을 국유재산으로 수용했다.그러다 90년 9월 양국 수교직후 소련정부가 이곳에 대한 공관부지반환요구를 정식으로 제기,지금껏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견지해온 입장은 정당한 국내법에 의거,70년 국유화조치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소유권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이같은 입장의 근거는 1880년부터 러시아가 이곳을 공관부지로 이용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 러시아가 이땅을 정식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매입해서(소유권을 취득해서)사용했는지 분명한 증빙자료가 없고 ▲설사 소유권 근거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46년 국교단절이후 국내 다른 일반 외국부지와 함께 우리 정부법 관할로 편입됐기 때문에 러시아의 소유권이 소멸됐다는 것이었다. 반면 러시아는 당시 적법하게 매입한 외교부지이기 때문에 외교단절 기간이 있었다해도 한국이 국내법에 의해 이를 수용하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주장해왔다.이와함께 러시아측은 총부지 6천여평중 민간인에게 불하된 3천2백평은 사실상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적정금액을 배상하고 공원용지인 나머지 3천평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회복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편 김석규 주러시아대사는 27일 정동부지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90년 수교이후 양국이 공히 상대국에 외교공관부지를 확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상호호혜의 입장에서 5천평 정도씩 공관부지를 맞교환하고 구러시아 공관부지 보상금으로는 당시 시가로 환산,러시아측에 3백40만달러를 지급키로 했다』며 『공관부지 맞교환문제는 양국간 내부합의가 이루어져 현재 적당한 부지를 서로 물색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명철 외무부조약국 심의관은 『우리측이 보상금규모에 대해 국유화조치당시의 시가로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으나 러시아측이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이고 특히 이자계산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말해 앞으로의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결과적으로 부지반환과 관련,그동안 우리 정부가 견지해온 입장은 애당초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내세운 「협상용」이었음이 이번 실무회담을통해 밝혀진 셈이 됐다.KAL기 유족배상,경협차관상환문제,6·25,한인강제이주 등 우리측에 「청산하지 않은」빚이 아직 숱하게 많다는 점을 감안,앞으로 있을 대러시아 본격협상에서는 보다 종합적이고 국민정서를 고려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할것으로 보인다.
  • 검은 돈 세탁하면 하얀 돈 될까(박갑천칼럼)

    「검은돈」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세상이다.사정의 줄기가 실명제로 이어지면서 끊이지않고 나온다.「새빨간 거짓말」같이 말에 색깔이 있듯이 돈에도 색깔은 있는 모양이다.어쨌거나 검은돈이 있다면 흰돈도 있을것 아니겠는가.옳아.그래서 돈세탁한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겠지. 한다지만 돈의 모습에 감장·하양이 따로 있을리 없다.다만 그것을 갖게된 내력과 쓰게되는 행태에 따라 선악·미추·정사…등으로 비치면서 색깔은 갈린다 할것이다.말없는 돈이지만 까매진 모습에 울고 하얘진 모습에 웃는 것이나 아닐지. 황현의 「매천야록」에 이런 얘기가 쓰여있다.색깔검은 돈의 사례이다.­『초시를 매매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2백냥도 주고 3백냥도 주어 금액이 고르지 않았고 5백냥을 달라하면 사람들이 혀를 찼다.갑오(고종31년:18 94년)전의 액수는 1천여냥을 달라해도 아무렇지않게 생각했으며 회시는 많으면 1만냥을 썼으니…』.이렇게 색깔검은 돈이 세상까지 검게하는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광해군때 함경감사로 있던 심열은 은그릇을 만들어 자기이름을 새겨서 궁중으로 바쳤다는 것이었는데(하담파적록) 그 은색깔이 과연 하얄수 있었던 것일까. 「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승람:양천현조)등에는 이른바 형제투금전설이 실려 내려온다.고려 공민왕때 어떤 형제가 황금 두덩이를 주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배를 타고 양천강에 이르렀을때 아우가 황금덩이를 물에 던진다.이유인즉 이때까지는 형제의 우애가 두터웠는데 황금을 쥐자 형님을 싫어하는 마음이 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이말을 들은 형 또한 금덩이를 물에 던진다.민속학자 손진태에 의하면 이는 일본 등에도 있는 전설이라는 것이지만(한국민주설화의 연구)그 황금색깔은노란게 아니라 하얀것 아니었을까. 고려 명종때 산원동정 노극청이 외출한 사이 그부인이 도관낭중 현덕수에게 백금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이를안 노극청이 백금3근을 현덕수에게 돌려주려 한다.9근을 주고 산집인데 그후 집에다는 하나도 돈을 안들였다는것이 이유였다.두사람은 받으라거니 못받겠다거니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돈을 절에 시주해버린다(고려사·동국리상국집등).그 백금색깔이야말로 진실로 하얘ㅆ던 것이리라. 하얀마음의 하얀돈이 돌고도는 가운데 세상까지 하얗게 돼가야겠다.그럴수있게 우리모두의 마음이 그곳으로 모아져야 한다.
  •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박갑천칼럼)

    초대면의 남녀끼리 잠깐 문학으로 화제를 돌렸던듯하다.「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느냐는 한쪽의 물음에 대해 상대방이 한 대답인즉­『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미처 못읽었군요』.한자리 우스개치고는 너름새가 있다. 이 우스개의 틀을 그대로 좇아본다면 서화얘기 끝에 이렇게 말한다고 할수가 있겠다. 『예,추사에 대해선 좀 알고 있습니다만 완당은 미처…』 추사나 완당이나 실학자이자 서법의 대가인 김정희의 호가 아니던가.그의 호는 1백가지 가까이나 쓰였다 한다.몇가지 적어보면­ 예당·시암·노과·농장인·천축고선생·노완·금천(금천)·삼십육구초당·고계림인·동방유일사·해당화하희아손·나가산인·소봉래학인·매화구주·묵소거사·승설학인·단파거사·승련노인… 등등. 옛사람들에게는 이름이 많았다.이름의 가짓수부터 그렇다.정식이름이라고 할 항렬에 따르는 관명이 있기 전의 아명이 있고 자가 있으며 호·별호가 있고(그것도 여럿)벼슬이 높을 때는 시호까지 있다.고종황제의 관명은 희이지만 아명은 장수하라는 뜻에서 개똥이또는 명복이라고도 했다.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시호는 충무이다. 호가 여럿인 경우는 김정희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가령 양광의 생육신 김시습 만해도 동봉·매월당·청한자·벽산청은·췌세옹외에도 설잠이라는 법호까지 지니고 있었다.하기야 금강산같이 이름많은 산도 있다.봄은 꽃이 뒤덮여 「금강」이며 여름은 계곡마다 녹음이 깔려 봉래이고 가을은 단풍이 고와 풍악이며 겨울은 뼈만 앙상하기에 개골이 되는것 아니던가.그러고도 열반·지달같은 이름이 더 있다. 실명제라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실명이란 곧 관명.그 관명아닌 이름으로 은행거래한 사람들이 가짜이름 많은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추사선생이 오늘에 살아있다면 「김정희」란 이름으로만 은행거래를 했을 것인지 어쩐지.본디 「이름명명」자는 어두움과 관계가 있다.어두운저녁(석)에 제이름을 입(구)으로 알려 남을 불러세웠대서 생겨난 글자이니 말이다(설문).숱한 가명은 그 「어둠속의 입」이던가.그렇다 해도 악의없는 가명도 적지않을 것을.
  • 골재채취 허가 사기/김 대통령 인척 실형

    【인천】 인천지법 형사4단독 민중기판사는 18일 김영삼대통령의 고종사촌 매제로 사기혐의로 구속기소된 안경선씨(55·인천시 북구 부평1동)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치인지몽」/권문용 한국고속철도공단 부이사장(굄돌)

    1백여년전 개화기 때의 일이다.당시 고종황제는 경부철도를 놓기로 결심했다.그리고는 이 일을 백성에게 잘 알리기 위해 철도선무학사를 훈련시켜 철도에 대한 계몽을 시작했다. 이때 유생들과 선무학사가 나눈 대화를 들어보자. 유생:철도란 도대체 무슨 소용있는 것이오. 학사:새벽에 부산진을 떠나면 저녁무렵에 한성에 이르니 어찌 편리하지 않겠나이까. 유생:그렇다면 도인이 축지법을 쓴단 말이나 같으니 이 어찌 치인지몽이 아니리오. 학사: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치인지몽이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친 후 1904년에 서울역에서 경부선 준공식이 거행되었다.이때 미국의 앨런공사는 감격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서울서 부산가는데 말타고 12일 걸리는데 이제 하루에 가게 되었고 나아가서 이 길은 조선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앨런공사는 사람은 물론 정보와 화물의 흐름을 촉진시키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터전이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오늘,경부고속철도 건설을 놓고 최근까지도 신판 개화기 유생과 선무학사의 논쟁이 계속됐다. 유생:그 많은 돈을 들여서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오. 학사:부산진을 떠나 서울에 2시간만에 갈 수 있소.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속철도가 꽉 막혔던 고속도로와 철도를 확뚫리게 할 것이오.이로써 1년에 길거리에 버리는 2조4천억원의 엄청난 돈을 되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니 어찌 건설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소. 1백년전 보다 훨씬 세련된 설명이다.만약 앨런 공사가 오늘날 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이 길이 바로 21세기의 새벽을 열어 이 나라를 세계로,미래로 가게 하는 길이 될 것이오』 1백년후까지 계속된 치인지몽의 논쟁은 이제 끝내고 앞으로 우리들의 논의는 과거가 아닌 21세기의 미래설계에 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 한·일 합방 일 정부문서 공개/데라우치 초대총독 작성…본국에 보고

    ◎일군 7월하순부터 경성서 무장 대기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다사케(사내정의)가 1910년 8월29일 한일합병 전후의 상황을 일본 내각총리대신에게 보고한 공문서 내용이 국내에서 공개됐다. 서지학자 이종학씨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데라우치가 합병 3개월쯤 뒤인 11월21일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계태낭)에게 정식보고한 문서인「조선총독보고 한국병합시말」을 지난 2월 일본의 모정부기관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 따르면 데라우치는 합병에 따른 한국인의 저항을 우려,그해 6∼7월에 걸쳐 경성및 의병활동 지역에 일본군을 배치했으며 특히 경성과 용산에 주둔중이던 병력은 7월 하순부터 무장대기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군대에 대해서는 친위부장관겸 시종무장관 이병무를 통해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일본군에 예속시켜 준다고 설득했다. 데라우치는 이어 8월16일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인 이완용을 자신의 관저로 불러 『내각대신으로서 시국을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작위를 내릴 뿐더러 모두 중추원 고문으로 임명하겠다』고 회유했다. 이에 대해 이완용이 학부대신 이용식이 완강하게 반대한다고 보고하자 이용식을「수해위문」명목으로 일본에 보낼 것을 획책하기도 했다. 이밖에 ▲일본측이 당초 순종황제에게 태공이라는 칭호를 주고 나라이름도 사용치 못하게 하려다 반발에 부딪히자 이왕 칭호와 조선을 인정한 사실 ▲이완용이 합병에 반대하는 고종황제의 동태를 감시한 사실 ▲순종 설득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궁내부대신 민병석과 시종원경 윤덕영을 데라우치가 직접 만나 회유한 사실등이 담겨 있다. 「조선총독보고한국합병시말」은 일왕에게도 보고된 정식문서로서 72쪽 분량에 1만2천여자가 수록돼 있다. 서지학자 이씨는『이 문서는 일본측이 공개하지 않는 것을 몰래 사진촬영해 왔다』고 밝혔다.
  • 3층서 떨어진 세살바기/다친곳 한군데없이 무사(조약돌)

    ○…지난 3일 하오 6시30분쯤 서울 구로구 오류2동 156 현대빌라 3동 304호 김철씨(36·은행원)집 안방에서 놀던 김씨의 딸 예슬양(3)이 8m아래 풀밭으로 떨어졌으나 다친곳 한군데없이 무사해 화제. 이날 예슬양은 안방 침대옆 창문가에서 고종사촌언니 박모양(6)과 함께 놀던 중 붙잡고 있던 방충망이 찢어지면서 화단으로 떨어져 고대 구로병원으로 옮겼으나 『약간 놀랐을 뿐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귀가.
  • 미 시카고 세박 첫 출품작/1세기만에 대전 귀국전

    ◎의류·군사용품등 30점… 문예전시관서 우리나라가 세계박람회에 첫 출품한 전시품들이 꼭 1백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대전엑스포에서 다시 공개된다.엑스포조직위원회는 1893년(고종 30년) 미국 시카고박람회에 전시됐던 의류 및 군사·주거용품 30점을 최근 입수해 대회기간 박람회장 문예전시관에서 원형 그대로 선보인다. 1세기만에 빛을 보는 이 전시품들은 누비저고리·초혜(짚으로 만든 어린아이 신발)·대포·내갑(방탄조끼)·방석·채상(대나무상자) 등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30여점이다.특히 금속비늘이 내장된 내갑은 국내에서도 1점밖에 없을 만큼 매우 희귀한 것이며 초혜는 짚신과 달리 신발주위와 코를 칡으로 장식한 신발로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또 당시 브래지어인 가슴싸개,박쥐가 수놓아진 방석 등도 눈길을 끈다. 조직위가 이같이 특별전시회를 열게 된 데는 한 미국교포의 뜻하지 않은 제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지난 1월까지 시카고총영사관에서 공보관으로 일하던 공보처 박정호외보부장은 지난해 9월 이름을 밝히지 않는교포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시카고 자연사박물관의 창고안에는 수십여점의 한국문화품들이 보관돼 있다.전시관을 갖춰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박물관에 우리 전시관을 만들려던 박씨는 곧바로 박물관을 찾아갔다.박물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창고에 들어선 그는 선반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게다가 이 들이 1백년전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 한국이 출품한 물건들이라는 설명을 듣고 박씨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언론인 출신인 그는 순간 대전엑스포를 떠올렸다.「1893∼1993년」,「첫 출품∼처음 유치」.곧바로 그는 우리 조직위에 연락을 한뒤 소장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조직위의 김용문문화행사본부장은 민속자료전문연구가들과 함께 지난 2월 미국을 직접 방문,진품임을 확인했다.1백년이 지났는데도 대부분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품들이었다.김본부장은 이미 우리가 기증한 것인만큼 되돌려받을 수는 없으나 엑스포 동안만이라도 한국국민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박물관쪽에 전했다. 박물관측도 지난 5월 대전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1백년만의 외출을 허용하겠다고 흔쾌히 알려왔다.단 항온·항습 및 경보장치가 완벽히 돼 있을 것,반드시 보험에 가입할 것,12월3일까지 시카고의 박물관으로 되돌려줄 것을 조건으로 덧붙였다.
  • “구한말 정미7조약은 강제·날조”/일에 과거사 사죄 촉구

    【내외】 북한은 24일 구한말 일본과 체결했던 「정미7조약」체결 86주를 맞아 이를 일제에 의해 강제·날조된 허위문서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정부에 과거사에 대한 성실한 사죄·보상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방송 논평을 통해 「정미7조약」조인당시 고종의 거부로 끝내 비준을 받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이 조약은 『조약의 효력을 담보할 수 있는 초보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조약으로서 날조된 허위문서』라고 주장하면서 일제가 이를 근거로 조선의 내정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고종의 직인을 위조한 칙령까지 남발,『국제관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극악한 국제사기협잡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현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을사5조약」 「정미7조약」등에 대한 합법성 주장은 『파렵치성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조선인민은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불교 등 3대종파/엑스포 관람객에 총력선교

    ◎종교관에 법당·교회·성당… 비디오·통역기 설치/미술·연극·합창제 등 문화행사도 마련 민족역량의 총체적 표현으로 일컬어지는 대전엑스포가 개막 20여일을 남기고 마무리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선교황금시장」을 향한 종교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오는 8월7일부터 3개월간 개최되는 박람회 전기간 동안 전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외 인파는 모두 1백여개국에서 1천여만명.불교 기독교 카톨릭 3대종파는 전시장내에 마련된 종교관(3백평)에 각각 법당 교회 성당을 꾸며놓고 각종 종교행사및 관련 문화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을 상대로 한 선교활동을 펴게된다. 불교는 불교종단협의회(회장 서의현조계종 총무원장)가 주축이 되어 각 종단이 합동으로 행사를 준비하며 현지 작업은 대전사암연합회(회장 원행스님·자광사주지)가 맡고 있다.2백평 규모의 엑스포법당이 27일 상오10시 개관돼 매일 상오4시부터 하오10시까지 개방된다.법회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등 10여개종단이 5∼18일씩 나누어 매일 진행한다. 법당에는 또 모니터 4대를설치,사찰안내및 포교용비디오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으며 영어 일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된 한국불교안내책자도 비치해 배포한다.그밖에 불교미술전 불교연극 합창제등 문화행사도 입체적으로 펼친다. 기독교는 지난해말 「엑스포93 세계선교협의회」를 결성,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으며 예레미아선교회(회장 민영수목사)에서 현지 준비를 맡고 있다.이미 지난 6월25일 엑스포교회를 개관,일요일에는 상오6시 11시 하오3시 7시30분 네차례 집회를 연다.마지막 집회는 찬양율동·성극·무도시범등 기독교문화행사 위주로 진행한다.또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부흥집회를 열며 5개언어(영·일·중·노·스페인어)통역기를 비치,누구나 불편없이 설교를 들을수 있게 해놓았다. 한편 세계터미널선교회는 엑스포기간중 서울과 지방 각각78개교회 교인들로 엑스포전도여행단을 운영키로 했다.한팀이 40명으로 구성되는 이 전도여행단은 전시장에 설치되는 「창조과학관」을 연계시켜 내외국인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펼치게 된다. 카톨릭 한국천주교주교회의(사무총장 백남익신부)가 관장하여 꾸민 엑스포성당은 8월1일 개관된다.이 성당에서는 전시장내에 개관될 「바티칸관」의 문화행사와 연계,별도 행사는 갖지 않는다.미사시간은 매일 아침7시.토요일은 하오8시,일요일은 상오7시 10시(영어미사)두차례 미사를 드리고 미사후 30분간 고해성사시간을 갖는다. 한편 9월19일에는 대공연장에서 바티칸데이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한국순교성인 대축일미사가 열리며 식후행사로는 카톨릭 대합창단 연주회의 오케스트라공연이 펼쳐진다.「인류의 빛」이라는 주제로 꾸며지는 바티칸관은 바티칸과 외국의 유물및 예술품,교황청 과학원자료,국내소장 카톨릭유물 등을 전시,바티칸의 역사와 한국카톨릭의 역사를 교육하는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조계종/전국 사찰재산 전면공개/1천7백여곳 두달내 등록·실사

    ◎예산 수입·지출 내역도 공표/서 총무원장/“환골탈태 정신으로 개혁동참”/타종단­종교계에도 확산될듯 대한불교 조계종은 문민시대의 개혁작업에 동참하기 위해 전국 1천7백여 사찰의 재산을 2개월내 등록,실사를 통해 공개키로 했다.또 사찰의 연간 지출입등 예산내역도 공개키로해 앞으로 사찰의 재산운영을 주지가 전횡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14일 상오 서울 견지동 총무원 회의실에서 원로회의(의장 서암스님)를 개최하고 ▲조계종 전국사찰의 기본재산 등록 ▲각사찰의 연간 예산(수입·지출)공개 ▲종헌·종법 신설,개폐등 제도적 장치의 마련등을 의결했다. 이어서 이날 하오 열린 전국 25개 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는 이날 사찰재산공개등 원로회의의 결의내용을 추인했다. 이날 원로회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최근 종교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그 운용이 불합리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축재의 대상인양 오도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조계종은 불교도들의 깨끗한 마음으로 희사된 재산을 사회에 공개하고 종교본연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고 불교계 재산공개의 취지를 밝혔다. 이날 결의 내용은 조계종 전국사찰이 등록해야할 재산을 「임야·전답·대지등 부동산과 동산 일체」로 규정했으며 7월20일이후 전국사찰은 적시된 재산을 총무원에 등록하고 총무원은 등록된 재산에 대해 2개월이내 실사를 통해 파악,불교신문에 공개키로 했다. 동시에 전국사찰은 편성된 연간예산을 총무원에 신고,공개하고 총무원은 사찰예산이 사회사업·복지사업·교화사업등을 위해 편성,집행됐는가를 감독하고 실사키로 했다. 또한 제도적 장치로는 오는 8월중 중앙종회를 소집,재산공개를 불응하는 사찰의 주지나 사찰재산을 임의운용하는 주지에 대해서는 임기(4년)에 관계없이 파면할수 있는 강력한 종헌 종법을 제정키로 했다. 새 종헌은 사찰공익재산의 개인재산화등을 막을수 있으며 일부 주지들에 의해 자행돼오던 종단에 대한 의무금 납부거부,사찰기본재산의 임의처분,종단장 승인없이 임대등 공공재산상 손실을 가져오는 행위등을원천적으로 막도록 돼있다. 원로회의는 이날 이들 등록된 사찰재산의 실사를 맡을 5인위원회를 결성키로 하고 원로회의장 서암스님을 비롯 5명의 원로스님을 위원으로 선정했다.또 경내지가 아닐 경우 문화체육부장관의 승인없이 주지 마음대로 처분할수 있도록 돼있는 전통사찰보존법에 대한 개정도 정부측에 건의키로 했다. 원로회의는 또 범불교적으로 종합유선방송사업에 참여키로 결정하고 자본금 60억원의 「BBS유선텔레비전주식회사」를 설립,불교방송을 주축으로 프로그램공급업 참여를 추진키로 했다. 서의현총무원장은 재산공개 방침과 관련,『처음에는 거센 저항과 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처님의 기본정신이 재물을 공익을 위해 쓰도록 가르치고 있는 만큼 모든 불도가 환골탈퇴하는 마음가짐으로 동참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의 이같은 움직임은 태고종 등 불교내 타종단으로 확산은 물론 이미 교회재정의 공개 입장을 표명한 천주교와 부분적으로 교회경신운동 등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개신교측에도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켜종교계 전반에 자정운동이 확산된 것으로 전망된다.
  • 여야,대구·춘천 보선채비 박차

    ◎여 “또 질순없다”·야 재야지지 기대/춘천/엷어진 TK정제 향배가 변수로/대구 여야는 임시국회가 끝남에 따라 이제 얼마남지 않은 춘천과 대구동을 보선채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특히 TK의 총본산이라는 정치적 무게가 실린 대구동을은 새정부출범이후 치러지는 보선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어느쪽이 승리하는냐에 따라 정국의 풍향계가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민자당은 명주·양양 패배를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절치부심하고있다. 춘천은「지역기반우선」기준에 입각,유종수후보가 선택된만큼 한때 출마의지를 불태웠던 이상용·한석용전지사측의 협조만 잘 이뤄진다면 무난한 승리를 거둘 것으로 판단한다.그리고 이 두사람이 유후보의 당선을 위해 힘껏 돕겠다고 당지도부에 약속했다는 한 당직자의 귀띔까지 덧붙이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대구동을은 아직까지 지역정서가 썩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다른당의 출마예상자들중 이곳의 반민자당분위기를 결집할만한 능력을 갖춘 인사가 드물어 조심스럽게 승리를 점치고있다. 여기에다 무소속후보까지 합치면 출사표를 던질 인사들이 무려 10명에 달하는 것도 조직기반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민자당측에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그리고 이곳에서 대선·총선등 다섯번이나 선거를 치른 박준규전의장에 대한 동정표도 그가 TK제거차원에서 희생된게 아니라 순수하게 재산형성과정상의 부도덕성 때문이라는 점을 설득하면 어느정도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있다.그러나 대구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할때 전국적인 선거로 비화시킨다면 민자당측이 승리할 공산은 점점 엷어지는만큼 대구출신의원들이 선봉장이 돼 선거지원활동을 펴는 철저한 지역선거로 치른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민주당은 영남지역의 교두보 마련이 절실한 탓에 춘천보다는 대구동을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인상이다. 대구동을의 경우 TK의 이반심리를 잘 이용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월계수회와 새한국당대변인을 지낸 안택수씨를 공천한 이유도 안씨의 이같은 전력이 득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같다. 안씨는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인 박영조 대구대교수와 경합을 벌였으나 비슷한 연배의 고교및 대학동창 20여명이 회의를 열어 민주당을 노크하는 TK를 안씨로 단일화하기로 결정,공천을 따냈다. 춘천에 대해서는 지난 6·11 명주·양양 보선 승리로 강원지역의 민주당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그 여파가 태백산맥을 넘어 밀려오지 않겠느냐는 기대섞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또 손승덕씨 사망후 국민당기반이 와해돼 야당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민주당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점에 고무돼 있다. 후보로 내정된 유남선현위원장은 춘천고와 강원농대의 전신인 춘천농대 출신으로 고종사촌간인 정성헌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장과 최 열 공해추방운동연합의장의 사촌동생인 최 윤씨등 출마가 예상됐던 재야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 「저상일월」 책으로 나왔다

    ◎서울신문 연재 3년간 해제작업 박성수교수는 말한다/1834∼1950년 5대 걸쳐 쓴 한문기록/예천 박씨가문 일기… 연재후 보물지정/“근세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 「저상일월」이 마침내 두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저상일월」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대저동 큰맛질이라는 선비마을에 사는 박씨 집안이 18 34년부터 19 50년 초까지 5대에 걸쳐 4만2천7백5일을 하루도 빼놓지않고 쓴 대하일기.서울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19 90년1월4일부터 지난 1월21일 1백28회로 끝마칠 때까지 내내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사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방대한 분량의 이 일기를 번역하고 역사학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 완벽한 한국근대사회사로 복원해 낸 사람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박성수교수이다.그는 『연재된 3년동안 매주 원고마감일을 앞두고는 「저상일월병」을 앓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고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할 뿐』이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5대에 걸쳐 무려 1백17년동안 쓴 일기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거짓말이라 여겼습니다.동양이고 서양이고 그 어디에도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박교수는 「저상일월」이 담고 있는 내용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기간 쓴 일기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것이라면서 웃었다.사실 묻혀있던 「저상일월」은 서울신문의 발굴로 연재가 시작된뒤 보물 제10 0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기는 쓰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관심사에 따라 내용이 다양하게 마련이지요.또 쓰는 이가 어느 지방 어떤 신분의 사람이냐에 따라서도 일기에 대한 가치평가가 달라질수 밖에 없어요.「저상일월」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단순한 사가의 기록이 아니라 나라일을 적은 역사이기도 하다는 점이지요.그런 점에서 「저상일월」은 우리 일기문학의 금자탑이자 역사상 가장 나중에 나온 편년체 역사기술이라 할만합니다』 「저상일월」은 쓴 가계는 1대 미산 박득령에서 2대 나암 박주대,3대 문파 박면진,4대 동리 박희수,5대 매헌 박영래로 이어진다. 박교수는 이들의일기를 해제하는 작업을 통해 근대 1백년사에 있어서 우리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우리 민족의 값진 교훈으로 남겨두자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요즘 젊은이들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아요.나라가 망하고 양식까지 빼앗겨 만주로 쫓겨가던 시대의 고난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치 이 시대가 8·15 이후에 갑작스레 생겨난 것인양 착각하지요.이러한 역사적 건망증이 다음 세대의 앞날을 불안하게 합니다.아무리 귀중한 고생이라도 쉽게 잊어버릴 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박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는 불행했던 우리 근대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다른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는 두번의 큰 개혁정치가 있었습니다.대원군의 유신정치와 이용익의 광무개혁이 그것이지요.그러나 모두 실패했어요.이 두 개혁이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는지도 몰라요.이렇게 된 책임은 한두사람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대 국민 모두에게 고루 지워져야마땅합니다』 「저상일월」을 쓴 사람들은 바로 이런 역사를 관통해 살아갔고 일기에는 그 「고난시대」와 「개혁시대」의 사회상이 육성으로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종 6년인 18 69년1월 일기에는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하자 사림들이 통탄해 마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대원군은 결국 이 과격한 개혁정치로 실각하고 말았지요.그때가 18 73년 입니다.올해와 같은 계유년이지요.우연의 일치라고만 볼수는 없습니다.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난 대목은 두고두고 후대 위정자들에게 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개혁은 신중하게 하라」는 것이지요』 「저상일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기이다.현재도 대를 잇고 있는 박정로씨가 선대의 유업에 따라 7대째 일기를 계속 적고 있다.또 이 집안의 가계부인 「저상일용」도 남아있어 이 시기의 사회경제사 연구의 과제가 되고 있다.박교수의 할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 충남 강경 「황산옥」(맛을 찾아)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우여회」 일품/황복탕의 담백한 맛엔 감탄사 절로 충남 논산군 강경읍 황산리 81 「황산옥」. 금강을 끼고 도는 황산나루 앞쪽에 자리잡은 황산옥은 감칠맛나는 우여(웅어)회와 담백한 황복(노란색의 복어)으로 유명하다. 1백여년전인 조선조 고종때 문을 연이 음식점의 주인은 4대째 가업을 대물림 받은 모숙자씨(35). 35평가량의 허름한 음식점이지만 지역유지들과 식도락가,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전통어린 집이다. 황산옥을 전국에 알려놓은 음식은 잔가시가 많지만 고소한 맛을 내는 멸치과의 우여회. 3월말부터 보리가 패기전인 5월까지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우여회는 30㎝가량의 은백색의 우여를 손가락 두마디쯤의 크기로 잘라 직접 담근 고추장에미나리·마늘·오이·당근·부추 등을 썰어 버무린다(한접시 1만5천∼2만원). 우여회와 함께 황산옥에서 빼놓을수 없는 음식은 금강과 임진강에서만 잡히는 황복으로 만든 6∼7월의 복탕이다. 아가미를 손질하고 2시간정도 깨끗한 물에 담가 핏물이 완전히 빠진 복어를 1시간쯤끓인 뒤 주인 모씨가 고추장·된장·찹쌀가루·메주콩가루·들깨 등 갖은 양념을 섞어 식단에 올려 놓으면 먹는 이들이 담백한 맛에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한다(4만∼5만5천원). 황산옥의 음식맛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이 온갖 정성을 다해 직접 담그는 장맛. 모씨도 결혼한지 10년이 지나서야 3대 가주(가주)인 시어머니 한상례씨(57)로부터 장독대를 인계받았을 만큼 황산옥의 장맛은 일품이다. 상오 9시부터 하오 9시30분까지 영업하며 쉬는 날이 없다.(강경 0461­745­4836,1836)
  • 장의예식장(외언내언)

    동양쪽에서 치는 오복가운데는 고종명이 들어있다.자기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것을 뜻한다.이렇게 볼때 안회같이 일찍 죽는것은 오복에 들어갈 수가 없다.모든 요절이나 자살이 다 그렇다.그뿐아니라 편안하게까지 죽어야 하는데 객사를 편안한 죽음이라고 할수는 없다.기둥뿌리 빼먹으면서 몇달 몇해를 앓고앓다가 죽는 죽음을 편안한 죽음이라 할수도 없겠고.고종명은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그래서 오복에 끼인다 하겠다. 하지만 이건 옛얘기이다.죽어도 묻힐땅 걱정없던 시절의 말이라는 뜻이다.지금은 그 고종명이 좀더 확대해석되어야할 세상이다.유택란의 시대이니 화장을 않을 경우 어디엔가 제대로 묻혀야 고종명했다고 할수 있는것 아니겠는가.사실은 묻히기 전의 문제도 심각하다.설사 고종명을 했다해도 아파트단지에서 운명했을 경우 불편을 겪어야하는 주민들의 눈총으로 해서 시신은 결코 편안하게 눈감을수 없는 처지로 되고 만다.그걸 어찌 고종명이라 하겠는가. 그런 상황속의 사람들이 당상했을때 큰병원의 영안실을 찾게된다.하지만 그 영안실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것은 아니다.자기병원에서의 사망자도 감당해내기 어려운 형편이라지 않던가.이런 현실까지 감안할때 고종명하기란 점점더 어려워지는구나 싶다. 진작부터 장의예식장이 요청되어온 까닭은 이같은 사회현실에 연유한다.장의예식장을 결혼예식장같이 생각 못하란 법도 없다.다같이 이승을 사는 의식의마당이라 생각할때 말이다.큰병원의 영안실이 그것 아니던가.서울강남병원에서 운영해오는 장의예식장은 이제 자리가 잡혀간다고 한다.영안실 수용능력이 모자란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으나 병원내부 사망자 못잖게 외부사망자도 많이 이용해오고 있는것으로 알려진다. 이런게 더 생겨나야겠다.그러면서 보다 짜임새있고 믿음성있게 운영되어 나가야겠다.그래서 상을 당해 슬프고 당황하고 피로해있는 유족들의 정신적 부담을 덜어줄수 있게 돼야겠다.
  • 공존 모색하는 종교계(건널목)

    ○…단군성전을 둘러싼 민족종교와 개신교간의 갈등,군부대 훼불사건을 계기로한 불교와 개신교간의 갈등등 종교갈등이 증폭돼가고 있다.이 시점에서 지난 1일 한국종교협의회(회장 이재석)가 주최한 「종교간 갈등 극복을 위한 심포지엄」은 다종교사회인 한국 현실에서 종교간 상호이해 공존모색의 계기마련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날 첫번째 주제는 「개신교의 단군신앙 반대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이현희교수(성신여대)가 주제발표,우원상(대종교 전리)홍창화(천도교 교화관장)김성곤(원광대교수)김광명목사(개신교총회장)등 각종교대표들이 토론에 나섰다.또 두번째 주제는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목정배교수(동국대)가 발표하고 이규범(불교태고종 행정원장)이창근(국제성서신학연구소장)서정기(유교문화연구원장)이행래씨(한국이슬람교 이맘)등이 토론에 참석했다. ○…이교수는 발표에서 『단군이 우상이라는 인식은 일제의 강점하에서 침략자가 우리 역사를 단축·환멸·비애의 역사로 전락시키기위해 조작한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단군의 존재는 어떠한 기존종교나 사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대해 김광명목사는 『단군은 설화이자 상징으로 민족시조로 모실수는 있어도 신앙화는 불가능하며 또 정부의 단군성전건립 지원을 방관할 경우 일본의 신사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입장을 밝히고 『기독교가 극단적으로 단군신앙을 배격하는데는 우리 기독교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복음주의와 경건주의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목교수는 『종교가 교조적 패권주의나 유일적 제국주의로 빠져버리면 오히려 인류사의 불행으로 작용할수 있다』면서 『이세상은 독생적 세계만이 아닌 연생적 세계임을 자각,극단이 대립하는 종교가 되지 말고 대화와 화해로 언제나 상대방의 종교를 받드는 신뢰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개신교가 공존의 윤리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줄것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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