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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개항 100주년/21세기 국제항 웅비의 나래 편다

    ◎신산업도로·신외항·망운국제공항 건설/환태평양시대 주도 중추도시 탈바꿈 ‘목포의 옛 영화를 되찾자’ 목포시가 1일 개항 100주년을 맞았다.‘소외와 눈물’로 대변되던 목포가 제 2의 개항 선언과 함께 웅비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21세기 신 해양시대를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대불공단과 호남선을 잇는 서남권 신산업철도 기공식이 30일 열렸다.목포항 물동량 수송을 맡게 될 이 철도는 무안군 일로읍∼대불공단∼신외항간 17㎞이며 오는 2006년까지 2천67억원이 투입되는 대 역사다. ○‘소외와 눈물’로 대변 허사도 일원에서는 신외항이 건설되고 있다.2만∼3만t급 선박 2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부두와 4.9㎞에 달하는 안벽축조 공사가 진행중이다. 인근 무안에는 21세기 항공수요를 담당할 망운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인천∼군산∼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도로와 호남선 복선화 등 굵직굵직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도 한창이다. 목포는 189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인천 원산항이 개항된 이듬해 10월1일 고종 황제의 칙령 반포로 문을 열었다. 일본과 중국을 잇는 무역항로의 중심지이며 영산강을 통한 내륙 화물운송의 적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개항 이유였다. ○40년대엔 전국 3대항 그후 일제시대 목포항은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과 면화·소금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건설자재 등을 반입하면서 호남경제의 핵심 도시로 떠올랐다. 1930∼40년대만 전국 3대항 6대 도시로서 반세기동안 번영을 누렸다. 해방과 함께 쇄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60년대 부산∼대구∼서울을 잇는 동부권 개발에 치우친 정책 때문이었다. 정치·사회적 환경이 개발을 가로막았다는 시민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다.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이 이곳의 한을 대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목포는 이를 딛고 일어나 용트름을 시작했다. 서남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대불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중국 연운항과 직항로 개설도 임박해 있다.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할 중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개항 100주년을 기념한 목포,중국 연운항,일본 벳부 시장회의가 1일 열린다.통상·문화·환경·관광·청소년 등에 대한 공동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목포는 강제 개항이 아닌 진정한 주인으로서 제 2개항 선언과 함께 황해 경제권 시대의 거점 무역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 최초의 태극기는 고종작품/금주발매 뉴스피플 단독보도

    ◎중국지시 거부 독자구상… 제작 명령 지금까지 박영효가 만든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 최초의 태극기는 중국이 조선의 국기를 만들 것을 요구한 내용에 반발한 고종 황제가 직접 독자적으로 구상,만들 것을 지시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자매지인 ‘뉴스피플’ 취재팀이 단독입수한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 ‘시사신보’ 축쇄판 기사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고종의 태극기 제작과정을 처음 보여주는 자료여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청 총무과 송명호씨(46)가 도쿄중앙도서관에서 발굴해 ‘뉴스피플’(9일자,1일부터 발매)에 공개한 이날자 시사신보는 당시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들어간 수신사 일행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게재한 잡보란에 ‘조선국기’라는 설명이 붙은 태극기와 함께 국기의 제작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지난달 28일(1882년 9월28일) 하나부사 공사와 함께 도쿄에 도착한 한 조선인의 이야기에 의하면”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당시 중국측이 조선에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바탕에 용을 그려넣을 것을 지시했으나 고종이 이에 격분해 중국국기를 흉내내지 않을 것을 고집,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원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했다고 한다”라고 작성돼 있다.따라서 박영효는 1882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고종의 지시내용에 따라 일행과 숙의해 태극기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국대 김원모 교수는 “이번 기사는 고종이 태극기 제작과정에서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독자성을 유지한 사실을 보여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기록으로 태극기 연구에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기린형 연적’ 3억7천만원 낙찰/미 소더비 경매서

    ◎고려청자상감경병은 3억1천만원에/박수근 ‘곡식빻는 어머니’ 3억5천만원에 팔려 고려시대의 ‘청자기린형 연적’이 26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40만9천500달러(수수료 15% 포함,약 3억7천4백69만원)에 경매됐다.고려청자인 ‘청자상감 모란국화문장 경병’은 34만3천500달러(3억1천4백만원)에,19세기 작품인 ‘진사청화백자 수복문병’은 예상 경매가의 10배 이상인 28만8천500달러(2억6천4백만원)에 각각 팔렸다. 소더비가 한국 예술품 경매 20주년을 기념,실시한 이날 한국 예술품 경매는 인기가 높았으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오족용문대호’와 최고낙찰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됐던 고종황제의 50회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제작된 ‘고종황제 만오순지 경년송축전연도’ 8폭 병풍은 예상가격을 크게 밑돌아 유찰됐다. 18세기 작품인 ‘청화백자 오족용문대호’는 당초 예상 경매가격이 1백50만달러(13억7천2백만원)∼2백만달러(18억3천만원)였으나 이에 훨씬 못미치는 90만달러(8억2천3백만원)까지,그리고 경매 내정가격이 75만달러(6억8천6백만원)∼85만달러(7억7천7백만원)였던 고종의 생일 축하 병풍은 67만5천달러(6억1천7백만원)까지 응찰됐으나 소유주가 경매를 원치 않아 유찰됐다. 고종의 생일 축하 병풍은 45년부터 58년까지 한국에서 외교관 등으로 근무했던 미국인 고 마커스 셜바커씨가 소장해 오던 것으로 이날 처음 경매품으로 출품됐다. 고 박수근 화백의 1964년도 유화인 ‘곡식 빻는 어머니’(가로30.5㎝,세로 42.2㎝)는 경매 예상가 수준인 38만7천5백달러(3억5천4백56만원)에 팔렸다. 이날 경매에서는 도자기·회화 등 모두 164점이 출품돼 111점이 팔렸다.
  • 뿌리고 땀흘린 만큼 거둔다지만(박갑천 칼럼)

    올해같은 우순풍조의 해가 달리 또 있을까 싶다.때맞춰 내린비,여느해에 비기자면 수해도 없었던 편이다.거기에 따가운 햇볕은 얼마나 잘 내리쬐었던 것인가.곡식 살찌는 소리에 과일 단물괴는 소리가 들리는 양했다.한때 가슴죄게도 했지만 태풍까지 비켜가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황금 들녘에는 금빛물결이 일렁인다.환하게 웃는 농민은 여름내내 흘린 땀의 의미를 생각한다.그렇지.이 보람 이 기쁨을 위해 씨뿌리고 땀흘렸지.씨뿌리고 땀흘린만큼 거둔다는,한뉘를 두고 터득한 진리를 한번더 확인한다.그리고 하나더….그렇게 흘린 땀방울위에 다시 하늘의 웃음이 따라야 비로소 풍년의 기쁨을 맛볼수 있다는 것을 또한번 확인한다. 뿌리고 땀흘린만큼 거둔다는 것은 농사뿐아니라 세상만사에 통하는 이치.거기에 다시 하늘이 웃어 주느냐 않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까지도 통한다.내가 얼마나 땀흘려 학업을 닦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는 달라진다.얼마나 베풀었냐에 따라 그만큼 과보가 오고 얼마나 몹쓸짓 했냐에 따라 그만큼 죄업도 찾아든다.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게 인생사다.어찌하여 안연같이 어진 선비는 요절하고 도척같이 무작스런 악당은 고종명하는 건지 누가 안다고 할일 인가. 가령 고상안의 〈효빈잡기〉에 나오는 문홍도는 뿌린죄업만큼 죄를 받는 사례다.유성룡을 모함한 옰으로 입술에 종기가 나서 죽는다니 말이다.두아들까지 비명에 가는 것도 “종자를 없애려는 하늘뜻”이라고 그는 손톱저긴다.그러면 성현이 〈용재총화〉에서 한탄하는 그의 방조 독곡(성석린)의 경우는 어떤가.“평생을 인으로 살았으니 여경이 있어야 했다”.하건만 맏아들은 후손이 없고 둘째아들은 뱃속에서부터 장님인데 그 아들에 손자까지 뱃속장님이었다.이에대해 성용재는“천도란 헤아릴 수 없다”면서 한숨짓는다. 〈열자〉(천서편)에는 “천지도 전공없다”는 말이 나온다.완전 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그래서 뿌린만큼 거두게 하지 않는 걸까.아니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저울질인 것을 다만 사람이 모른다는 걸까.아무튼 과학문명 난만한 이 시대에도 씨뿌리고 땀흘려봤자 하늘이웃어주지 않으면 풍년을 기약할 수는 없다.이수확의 계절은 그대목도 생각해보게 한다.〈칼럼니스트〉
  • 동화약품 100돌/국내업체론 3번째

    ◎활명수·부채표 기네스북에 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업체인 동화약품이 25일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창업 1세기를 넘긴 국내 업체로는 두산그룹과 조흥은행에 이어 3번째다. 동화약품은 특히 최장수 의약품인 ‘활명수’와 가장 오래된 상표인 ‘부채표’를 보유,지난해 한국 기네스북에 등록되기도 했다. ‘활명수’는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지난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씨가 궁중비방에 서양의학을 혼합시켜 만든 국내 최초의 양약이며,같은 해에 그의 아들 민강씨가 설립한 ‘동화약방’이 동화약품의 모태가 됐다. 1937년 윤광렬 현 회장의 선친 윤창식씨가 회사를 인수했으며 복합헬민 등 390여종의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 조선 생원·진사시험 합격자 수록/CD롬 ‘사마방목’ 나왔다

    ◎4만명 본관·거주지·생년 등 신상정보 담아/전주이씨 2,719명 배출 ‘최고’… 평양 윤씨 2위 조선시대 명문가에는 어떤 가문이 들어가나? 궁금증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이영덕)이 서울시스템에 의뢰해 개발한 CD롬 ‘사마방목’(사마방목)에서 풀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조선 태조 원년(1392년)부터 과거가 폐지된 고종 31년(1894년)까지 치러진 230회의 생원 진사시험중 현재 남아있는 186회분,4만649명의 합격자명단이 실려 있다.CD롬에는 이름외에도 합격자의 자(자),생년,본관,거주지,부친의 관직과 이름,형제의 이름등 상세한 신상정보가 들어있다. ‘사마방목’에 따르면 조선시대 생원과 진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은 역시 전주 이씨(2천719명).2위는 파평 윤씨(934명),3위는 안동 권씨(909명)이다.이어 10위까지가 남양 홍씨,청주 한씨,밀양 박씨,안동 김씨,연안 이씨,청송 심씨,평산 신씨 순이다. 거주지별로는 서울이 1만 4천337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안동(738명),개성(559명),원주(535명),평양(529명)이었다.
  • (주)재미시스템개발‘개벽’/‘녹두장군’ 전봉준의‘동학 농민전쟁’

    ◎구한말 배경 고증통한 시대상/관군창고 점령→레벨 상승→잇단 사건의 출현 (주)재미시스템개발(02­362­8500)은 10월 1일부터 온라인 머드(MUD) 게임 ‘개벽’을 시범서비스한다. 그래픽이 지원되는 머드 게임으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 농민전쟁이 소재다. 여느 머드 게임처럼 특별한 시나리오는 없고,레벨 상승에 따라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나가게 된다. 채팅 위주로 진행됐던 기존의 머드게임과는 달리 RPG(롤 플레잉 게임)적 요소중 액션성을 강조한 점이 새롭다. 가장 큰 특징은 사용환경을 간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이동등 채팅을 제외한 모든 조작은 마우스 클릭만으로 가능하다. 머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나우누리나 유니텔에 접속한 뒤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자동으로 인스톨되어 쉽게 게임할 수 있다. 게임에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실존했던 민초들이 등장한다.고종이 즉위한 뒤 벌어지는 동학 탄압과 병자호란,갑오경장,청일전쟁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배경이다. 1871년 11월농민 이필제가 관군의 무기고를 습격해 체포된 뒤 처형당하면서 게임은 시작된다.결말부분은 1894년 고부군을 중심으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군영 창고를 탈취하는 것이다. 그래픽은 화려하지는 않지만,초가집,대궐,염전,서당,동굴 등을 통해 구한말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캐릭터는 8종류.농민,보부상,평민,양반,포졸 등이다.동학의 최고 지도자인 ‘접주’가 되는 것이 게이머의 1단계 목표다. 게이머는 주변의 다른 접속자와 함께 전략을 협의해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관군 창고를 점령하면 경험치가 상승하여 레벨이 상승하고 또다른 이벤트를 접하게 되는 식이다. 게이머는 주변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교류할 수 있으며 소문을 통해 정보를 생산할 수도 있다. 게임에는 다양한 아이템과 무기도 등장한다.무기중에는 죽창을 비롯해 동학농민전쟁때 실제 쓰였던 농기구도 나온다. 호스트 컴퓨터 1대당 최대 1천명이 접속해 동시에 게임을 즐길수 있다.현재 2대의 호스트 컴퓨터가 준비돼 있으며 앞으로 접속자가 늘어나면 더 확대할 계획이다.윈도95 전용.
  • 교통문화 ‘유감’/조남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굄돌)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각종 기구나 방법을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는 승용차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를 들수 있겠다.우리나라에는 1903년 고종이 처음으로 미국공관을 통하여 포드승용차를 들여온 것으로 되어 있다.이후 자동차의 보급은 급속도로 증가하여 이제는 우리 생활중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불가결한 생활수단이 되었다.이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이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교통체증과 교통사고,막대한 연료의 수요로 인한 자원고갈,배기가스에 의한 환경오염 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교통수단은 우리가 피할수 없는 문명의 이기,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용성을 최대화하여야 할 것이다.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질서있는 사회,수준 있는 교통문화를 이룩할 수 없을까? 우리는 너무 급한 것같다.지하철에서 사람이 미처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밖에 볼 수 없는 현상이다.이 점은 엘리베이터에서 조차 마찬가지이다. 대한항공으로 여행을 할때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다.하나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이다.비행기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출구로 나가는 승객들을 보게 된다.이것은 일등으로 내리어 빨리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성급한 생각때문인가?왜 좌석변화에 따라 순서대로 탑승시키지 않는지 모르겠다.외국항공사의 경우는 뒷좌석부터 차례로 탑승시키기 때문에 기다리는 줄도 휠씬 짧고 기내도 질서정연하다. 고속버스나 기차의 의자는 뒤로 눕힐수 있어 편안한 자세로 여행할 수 있다.그러나 내리면서 제자리로 원위치시키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우리는 조그만 일부터 신경을 쓰면 안전하고 신속하고 편리한 교통체계를 세울수 있다.우리는 쉽게 높은 교통문화 시민이 될 수 있다.
  • 김홍도의 과노도기도(한국인의 얼굴:115)

    ◎‘신선전’이야기 그림으로 묘사/나귀 거꾸로 탄 노선 포즈 절묘 단원 김홍도 작품에는 ‘군선도’에 등장한 세무리 신선들 가운데 한무리속의 우두머리만을 따로 떼어 그린 그림이 있다. ‘과노도기도’다.과노라는 이름의 신선이 나귀를 거꾸로 탄 그림이라는 뜻이다.당나귀를 탄 신선은 장과로다.‘신선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신선전’내용을 도상화한 이 그림을 일러 강세황은 ‘중국에서도 구할수 없는 그림’이라 극찬했다. 신선은 늙은이로 묘사되었다.머리칼이 이마에서 정수리 너머까지는 다 빠져서 한 가닥도 없는 터다.그런데 치포관을 썼다.썼다기보다는 몇가닥 남은 뒤통수 머리에 붙여 놓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그래도 희게 세어버린 구렛나루와 수염은 성성하고 흰 눈썹은 웃자랐다.신선다운 풍모다.얼굴은 불그레하여 동안의 혈색 못지않은 신선은 그 얼굴에 온화한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그리고 왼손에 든 책갈피에서 잠시 눈을 떼었다. 노선은 비록 당나귀를 거꾸로 탔을 망정 포즈는 그야말로 절묘하다.조금도거북하지 않은 자세로 얼굴을 칠분쯤 돌렸다.입을 다문채 웃음을 얼굴에 담느라 그러지 않아도 긴 턱이 더욱 길어졌다.군살이라고는 전혀 붙지 않은 신선 얼굴에는 섭생흔적이 역력했다.눈은 아직도 밝은 모양이다.그런저런 이유로 신선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수불석권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 장과로는 본래 늙은 신선이었다고 한다.그리고 학덕이 높아 당나라 태종과 고종이 그의 거처인 항주의 조산으로 사람을 보내 벼슬에 오를 것을 권유했다는 것이다.이를 번번히 거절했던 그는 측천무후가 억지로 불러내려 하자 칙사앞에서 자신이 죽어 썩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기괴한 전설도 가지고 있다.그러다 현종때 조정으로 나가 대접을 받다가 은퇴하여 조산으로 돌아온 뒤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 ‘속신선전’의 기록이다. 그림을 보면 왼쪽 윗 부분에 박쥐를 그렸다.이 역시 장과로와 관련한 이야기속의 동물이다.흰 박쥐는 세상이 생기면서 나온 태초의 동물이라고 한다.그런데 박쥐는 뒷날 신선 장과로로 변신했다는 것이다.조선후기 화단에서 명성을 한껏 날린 화가 김홍도는 그렇듯 ‘신선전’내용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다.‘과노도기도’에 이르면 ‘군선도’에 비해 그런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그림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것도 신선사상에 심취한 그의 정신세계에 연유할 것이다.〈황규호 기자〉
  • 최고태극기(외언내언)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의 원형은 1882년 박영효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임오군란의 뒷수습을 위한 수신사로 일본에 가는 배안에서 제작했다는 것이다. 수신사 일행은 일본에 도착한 후 숙소에 태극기를 내걸고 한 개를 본국에 보낸다.그 자초지종을 담은 기록이 박영효의 수기 ‘사화기략’이다.“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기는 흰바탕에 네모졌는데 세로는 가로의 5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중앙에 태극을 그려 청·홍색으로 칠하고 네모서리에 4괘를 그렸는데 이는 이전에 위로부터 명을 받은바 있다.국기를 새로 만드는 일은 이미 처분이 있으셨기에 지금 대·중·소 3본을 만들어 그중 소기 1본을 임금께 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영효의 태극기 제작 사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바 있지만 실물은 전하지 않았던 터에 그 태극기의 도안과 제작과정이 기사로 실린 당시의 일본신문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지지신보(시사신보)’ 1882년 10월2일자다. 이 신문에 실린 태극기 모습은 오늘의 태극기와 다르다.옥색바탕에 태극이좌우로 갈라져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형태다.4괘도 다르다.태극기의 원형을 둘러 싼 관계자들의 오랜 논란에 또 하나의 불씨가 될 듯 싶다. 제작경위에 대한 기사 내용도 흥미롭다.대체로 이미 알려진 사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태극기의 창안 및 사용이 자주적이고 계획적이었던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청국의 용기 사용 권유에 대해 고종이 분노하고 태극기 제작을 지시했음을 밝힌 것이 그것이다. 태극기가 한 개인에 의해 임시방편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일부의 잘못된 인식을 시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듯 싶다.‘사화기략’은 태극기 제작이 고종에 의해 구체적인 모양까지 지시되어 이루어 졌음을 시사하면서도 박영효가 타고 가던 배의 영국인 선장과 영국 영사의 도움말을 들은 것으로 기록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광복 52주년에 태극기 원형을 찾아 낸 이의 태극기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 도로원표(외언내언)

    출발점이 있으면 경과지가 있고 반드시 종점이 있다.어느 길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표시한 것이 도로원표다. 우리나라에서 도로원표가 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한반도의 ‘배꼽’지점인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 중앙에 이 원표가 세워져있었다.조선 ‘경국대전’에서 실제로 규정한 도로원표 자리는 바로 세종로 이순신동상이 선 자리다.그러나 도로확장공사가 시작되면서 차량통행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1930년대에 동북향인 광화문 교보빌딩옆으로 70m가량 밀려나갔고 지금까지 조선 고종황제 칭경비각안에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현재의 46개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는 이를 기준으로 거리산정을 한 것이다. 고속도로시대가 개막되면서 고속도로의 기점들이 서로 다르게 설정되자 이 원표는 더욱이나 기점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예를들어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은 한남대교 강남쪽의 마지막 교각이며 영동고속도로는 신갈,호남고속도로는 회덕,구마고속도로는 금호인터체인지이지만 이를 표기한 원표는 없다. 서울시는 비각안의도로원표를 철거해서 박물관에 보존하고 우리나라 도로의 출발점을 나타내는 직경 1.5m,높이 90㎝크기의 원통과 12지신상이 새겨진 상징물로 구성된 새 원표를 제작해 올해안으로 광화문 쌈지공원에 설치한다는 것이다.이번 새 원표에는 인천·대전·대구·부산·광주는 물론 평양·신의주·함흥·청진·해주등 국내 52개 도시의 방향과 거리는 물론 도쿄·북경·워싱턴·오타와·멕시코시티등 전세계 64개 도시의 위치도 표기된다.도로법에 따라 이 원표는 서울특별시를 비롯,각 시·군에 1개씩 설치하도록 되어있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신설도로에서도 도로원표가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세계공통인 ㎞로 거리를 표시하여 한눈에 전국도로망을 파악할 수 있게 할 모양이다. 원의 중심에서 몇개라도 반경을 그을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만들수 있고 많은 길을 만들수록 거리와 거리는 좁혀진다.뉴욕이나 도쿄,파리나 로마가 세계로 통하는 길이며 관문이듯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서울의 모든 길도 세계로 통하는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불교계 전·노씨 사면 탄원/279만명 서명 청와대 전달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 주요 종단은 18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조계사 현근주지,동화사 무공주지,신흥사 도후주지 등 불교계 관계자들은 이날 하오 청와대로 청불회 회장인 박세일 사회복지수석을 방문,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을 탄원하는 청원서와 함께 2백79만여명의 서명부를 전달했다. 박사회복지수석은 “종교계 지도자들의 뜻을 정확하게 김대통령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도후 스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대통령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통치력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명부에는 전 조계종 종정인 서암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개신교의 강원용 조향록 최훈 조용기 김장환 목사와 천주교의 김남수 주교 박홍 신부,그리고 대종교의 안호상 총전교 등 여러 종교계 지도자들이 포함돼 있다. 불교 주요 종단은 올초부터 각 종단 및 사찰 등지에서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탄원서에 서명을 받아왔다.
  • 경제적 의미/생산 40년만에 ‘G5성장’

    ◎고용인원 22만명… 지난해 104억불 수출/조세 총액중 차관련 세수가 15.1% 차지 우리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3백1만여대를 생산,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생산량 세계 5위였다.수출도 1백21만여대로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에 이어 역시 세계 5위에 올라있다.드럼통을 두드려 펴서 차체를 만든지 40여년만에 자동차산업은 국내 산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자동차를 빼놓고는 산업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그만큼 자동차의 경제적 비중이 커졌다.95년 기준으로 자동차산업의 부가가치는 13조원으로 전체 제조업의 8.2%,고용인원은 22만여명으로 총고용인구의 7.46%에 이른다.또 지난해 1백4억달러 어치를 수출,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2%나 되며 반도체에 이어 단일 품목으로는 2위.조세 총액중 자동차 관련 세수만도 15.1%나 된다. 국내에 자동차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03년.고종황제가 들여온 미제 4기통 캐딜락이 첫 시동을 건 차다.그러나 일제 치하가 끝날 때까지 자동차는 일부 고관대작의 전유물이었다.일제시대의 자동차산업도겨우 정비나 할 수준에 머물렀다.국내 자동차산업의 태동은 1955년 시발자동차를 생산하면서부터.미군의 지프 엔진에 철판을 두드려 차체를 조립한 자동차였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차였다. 62년 일본 닛산자동차의 부품을 들여와 ‘새나라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비록 조립이기는 하지만 대량생산이 시작됐다.63년에는 기아산업이 삼륜차를 생산했고 신진자동차가 새나라자동차회사를 인수해 일본 도요타와 제휴,‘코로나’승용차를 내놓았다.67년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이듬해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로 ‘코티나’를 시작으로 트럭,중형승용차를 생산했으며 70년에는 아세아자동차가 피아트와 손잡고 ‘피아트 124’를 출시했다.72년 정부는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 자동차업체 정비를 단행,현대 기아 신진(현 대우자동차) 아시아 하동환자동차(현 쌍용자동차)의 5사체제로 개편했다.이후 아시아를 제외한 4개사가 일제히 소형차 개발에 들어가 75년 현대가 최초의 국산모델인 ‘포니’를 개발함으로써 한국 자동차공업 중흥의 서막을 열었다. 망치로 철판을두드려 자동차를 만든지 40여년.국내 자동차기술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독자모델과 독자엔진 개발 기술을 갖추었음은 물론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무인운전차 등 첨단 기술개발에서도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 자동차 1,000만대시대/체증극심 ‘도로에 버린돈’ 작년 14조

    ◎자가용이 94.5%… 사고 2분에 1건/지난 10년간 11만2천여명 사망 자동차 1천만대 돌파는 세계에서 15번째이다.구한말 고종황제 시절인 1903년 4기통 캐딜락 1대를 들여온지 94년만이고,1985년 1백만대를 넘어선지 12년만이다. 14일 현재 지역별 차량 보유 현황은 서울이 2백20.5만대로 가장 많으며 제주가 13만대로 가장 적다.경기는 1백91.7만대,경남 90.9만대,부산 69.6만대,경북 62.6만대,대구 60만대,인천 52.9만대,전북 39만대,충남 38만대,전남 37만대,강원 34.2만대,충북 31.6만대,대전 31만대,광주 27만대이다. 차종별로는 승용차가 7백24.4만대로 전체의 72.5%를 차지하고 있고 화물차가 2백2.5만대(20.3%),승합차 69.1만대(6.9%),소방차 청소차 등 특수차가 3.5만대(0.3%) 등이다.용도별로는 자가용이 930여만대로 전체의 94.5%를 차지했다. 자동차는 이제 사치품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정착했지만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악영향도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건교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동차는 연평균 21.9% 증가했으나 도로는 4.9% 증가에 그쳐 자동차 1대당 평균 도로 길이는 86년 41m에서 96년엔 8.6m로 오히려 짧아졌다.도심의 통행속도도 8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96년 서울의 경우 도심은 시속 16.44㎞,도시외곽은 21㎞ 수준에 그쳤다. 교통체증에 따른 도로교통 혼잡비용은 96년에만 GNP의 3.6%인 14조7백억원에 이르렀고 매년 2조원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 증가로 교통사고는 평균 2분마다 1건씩 발생하고 있다.지난 10동안 교통사고로만 11만2천명이 사망하고 3백19만명 이상이 부상했다.
  • 우리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를 누빈다/‘명성황후’ 첫 수출

    ◎재미성악가 김원정·이태원씨 주인공 맡아/제작비 15억 투입… ‘캐츠’ ‘레미제라블’과 경쟁 외세의 침탈과 왕실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얼룩졌던 구한말 파란의 우리 역사가 광복절인 오는 8월15일을 기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재생된다. 극단 에이콤은 최근 뉴욕 주립극장인 링컨센터와 대관계약을 확정짓는 한편 배역선정을 둘러싸고 물의를 빚었던 주인공 명성황후역의 캐스팅도 확정,당초 계획대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The Last Empress’라는 이름으로 24일까지 10일동안 총 12회를 공연하는 것. 국산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입성 제1호가 될 ‘명성황후’는 정식 대관에 의한 흥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뮤지컬의 해외수출 첫 작품.홍보·마케팅·법적 자문 등 브로드웨이 공연에 따르는 모든 현지절차를 그대로 밟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 공연물의 해외진출에 중요한 방향타가 될 무거운 입장이기도 하다.브로드웨이에서 이 한국산 1호는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캐츠’ ‘레 미제라블’‘타이타닉’ 등과 한판승부를 벌이게 된다.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그린 이 뮤지컬은 원래 지난 95년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됐던 것이나 브로드웨이행을 위해 주요배역은 물론 내용구성과 무대장치 등을 새롭게 해 작품을 거의 탈바꿈하다시피 했다.제작비만도 무려 15억원을 투입하는 대작. 우선 극단측과 중견배우 윤석화씨간 갈등을 낳았던 주인공 명성황후역은 재미 성악가 김원정(33)·이태원(31)씨의 더블 캐스트로 낙착됐다.뮤지컬의 본고장 무대인 만큼 배우들의 성량이 성패의 관건이라는 판단에서 성악가를 주역으로 선정했다는게 극단측의 설명이다.줄리어드음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두 사람은 명성황후의 작품적 매력과 국내 뮤지컬의 역사적 뉴욕진출이라는 점에서 무료출연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밝혔다.특히 이태원은 어렵게 맡은 미국의 뮤지컬 ‘왕과 나’ 여주인공 티앵역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한국으로 와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이들 외에도 이재환(대원군) 유희성(고종) 김성기(미우라) 김민수(홍계훈) 등 대부분의 주역들이 새 인물로채워진다.또한 에이콤 단원 40여명 이외에 현지에서 조연배우·코러스 등 15명정도를 공개오디션으로 채용하며 오케스트라도 현지에서 라이브로 동원한다. 이방인들 상대라는 점에서 내용 역시 굿을 첨가하는 등 동양적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크게 수정했으며 무대는 대형 회전무대를 국내에서 제작,컨테이너 두개에 실어 현지로 운반한다. 극단측이 목표삼은 최소 동원관객은 1만5천명.대관료 등 기본경비 충당의 분기점이다.
  • 고미술품 2,836점 전시/공평아트센터 27일까지

    ◎전시품 일부 특별경매/「중국 근대회화전」도 열어/새달 1일까지 간송미술관 초여름 고미술과 중극 근대회화 대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가 나란히 열려 화제다. 한국고미술협회가 서울 공평아트센터 전관(733­9512)에서 열고 있는 「97한국고미술대전」(27일까지)과 간송미술관(762­0442)이 마련하고 있는 「중국근대회화전」(6월1일까지).고미술대전이 고미술협회 차원에서 열어온 고미술전중 최대규모라면 중국근대회화전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중국 근대 대가들만을 소개하는 보기드문 전시들이다. 고미술대전에는 도자기 1천25점,토기 367점,철물 69점,서화·전적 237점,목기 509점,민속품 629점 등 무려 2천836점이 출품돼 있다.지난해 일본에서 들여온 삼국시대 삼존불 형식의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해 고려시대 「청자음각모란절지문매병」,조선전기의 「백자철화운용문호」,고종황제의 49세떼 모습을 그린 「어진」,대원군의 「석란10곡병」 등이 모두 귀한 것들이다. 고미술대전의 특징은 전시품중 1백만원 이상 품목에 대해 감정보증서가 무료로 발급되며 전시 마지막 3일간 특별경매가 실시된다는 점.특별경매에서는 각 경매품에 대해 최저 입찰가가 기록된 채 전시되는데 입찰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경매품에 대해 입찰가를 기록한 접수증을 정해진 시한내에 접수처에 제출,이 접수된 입찰 경매가가운데 마지막날 최고 입찰자를 일괄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고미술협회측은 이번 경매방식과 관련,『입찰자들이 값을 부르는 기존 방식에 비해 경매물품의 이동이 적어 안전하고 입찰자들이 입찰 이전에 경매품의 가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입자의 비밀도 보장되는 만큼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귀중한 고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중국근대회화전」은 1800년대 이후 20세기초까지 우리 서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가 70여명을 엄선해 보여주는 자리.고증학과 금석학을 개척한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역관으로 중국을 13차례나 왕래한 이상적(1803∼1865),추사의 말년 제자인 김병선(1830∼1891)과 역시 추사의 제자이면서 상해로망명해 그곳 사람들과 사귀던 민영익(1860∼1914) 등 세사람이 각각 수집해 전해오다 간송미술관으로 옮겨진 중국 작가의 작품들중 당대에 완성된 것들만 추려 보여주는 자리다.
  • 천태종·태고종·진각종/불교종단 석탄일 봉축법어

    ◎천태종­부처님 가르침으로 불안·고통 구제/태고종­서로 이해하고 돕는 이타정신 발휘/진각종­민족 화합의 장 만들어 평화통일을 ▷천태종◁ 김도용 종정은 『오늘은 과학문명과 기계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물질의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왔다고 하나 인간상실과 인간소외는 날로 심해져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과 고뇌가 가득 차 있다』면서 『인간사회의 불안과 고통 등 사회적 병리의 근원적인 구제는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태고종◁ 정보성 종정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하루빨리 불식하고 서로 이해하고 돕는 이타의 지비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자비정신과 지혜의 구현은 우리 마음을 맑게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전제한 뒤 『우리 모두 이기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과 생각으로 동체대비심을 발휘해 청정불국토를 이루어가자』고 호소했다. ▷진각종◁ 각해 총인은 『지금은 북녘동포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어야할 때』라며 『작은 콩 한쪽이라도 나누는 이타행을 실천해 우리민족의 오랜 반목과 질시를 극복하고 화합의 장을 만들어 평화통일을 하루 속히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치의 계절」엔 문학작품 비수기?/시·소설 상반기에 출간 러시

    ◎윤후명·김형경·한승원씨 등 장·단편 선봬/성석재·도종환씨 등도 새달 시집내기로 올해는 소설 등 문학작품의 출간이 상반기안에 집중될 전망이다.이때문에 5∼6월중 주목할 만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나올 예정이다. 이왕이면 대통령선거 등 정치의 계절로 인해 불황이 더욱 깊어질 하반기를 피해 문제작을 내놓으려는 문학 출판사들의 움직임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중 선보일 것으로 주목되는 것은 고종석씨의 첫 단편소설집 「제망매」.기존 문예지들에 실렸던 것을 묶은 것으로 신변잡기류가 아닌 기존 관념들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하는 지식인 소설로서 저자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여류 소설가 김형경씨의 소설집 「고양이의,고양이에 의한,고양이를 위한」도 이달에 내놓을 기대작이다.젊은 세대를 겨냥한 신세대 작품으로서 대학생과 신세대를 소재로 한 전통적 기법의 작품이다. 신세대 작가군에 속하는 송경아씨의 장편소설 「아기찾기」와 결혼문제를 다룰 젊은 여류작가 김희정씨의 장편소설 「길위에서 중얼거리고」도 5월의 작품이다. 이와함께 진보적 필치의 문제작을 꾸준히 내놓은 이대환씨의 창작 단편소설집 「생선창자 속에 들어간 가시」는 고엽제 문제,문민정부에 대한 비판 등을 일상적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6월에는 무게있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진작가 윤후명씨가 창작 연작소설을 내놓는다.중국 돈황지역 등에의 여행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한승원씨도 장편소설 「해산가는 길」을 6월에 출간한다.최근 내놓은 다른 중견작가 2∼3명의 작품경향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성석재씨도 6월중에 작품을 출간할 에정인데 제목은 미정이다.이밖에 도종환 시인의 베스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도 곧 재출간되고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러브레터」도 5월중에 나온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한 문단관계자는 『경험적으로 보아 대통령선거 등 정치의 계절에는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판」 때문인지 소설 등 문학작품이 잘 팔리지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가뜩이나 불황인 출판계에서는 하반기에는 문학작품이 더욱 팔리지않을 것을 우려해 주목을 끌만한 소설은 되도록 6월안에 출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M출판사 편집국장은 『보통 한해 30∼50권정도를 펴내는 출판사의 경우는 상반기안에 화제작을 내려고 하지만 150권이상 내놓는 대형사의 경우는 하반기에도 꾸준히 순수문학책을 출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통에 묻힌 두시인 김택영·낙빈왕(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3)

    ◎한많은 일생 만년을 떠돌다 낭산에 흙이되어…/한말 망명시인 김택영­붓끝으로 토해낸 망국의 설움… 문집 「소호당집」 남겨/당대 「초당4걸」 낙빈왕­측천무후에 맞서다 투옥∼사면∼반란∼객사 파란의 삶 1만5천리를 도도하게 굽이치던 양자강이 황해 5백리를 앞두고는 강인지 바다인지 분간키 어렵게 넓어진다.바다같은 양자강 북쪽에 항구처럼 떠있는 부두가 있다.남통.상해에서 서북쪽으로 상숙을 거쳐 호포까지 거의 두시간.다시 호포에서 북안의 남통까지 페리로 양자강을 건너는데 꼭 한시간이 걸렸다. 옛날에는 아득한 모랫벌이었다.오대 후주때부터 마을을 이루고 행정의 구역을 이루었으니 고작 1천년의 역사를 가졌다.그 1천년의 역사도 소조하기 짝이 없다.서쪽으로는 양자강으로부터 밀려오는 모래,동쪽으로는 황하,바다는 바다로되 누우런 바다,하지만 5대양 6대주로 떠나는 무역선이 남통까지 부산하다. 남통은 양자강에서 떠내려온 모래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이룩된 삼각주.하지만 삼각주에는 이름도 사나운 낭오산이 있다.그것은 남통시에서 남쪽으로 8㎞지점,거기에 주봉인 해발 107m의 낭산,그 동쪽 한참 떨어진 곳에 나직한 군산,검산,그 서쪽 가까운 곳에 마안산,황이산,그것들은 황해를 향해 ㄴ자형으로 늘어서 있다. 낭산은 남통의 머리요 가슴이다.그 머리에는 북송 태평흥국(976∼983) 연간에 지은 광교사의 지운탑이 35m 5층의 훤칠한 키로 서서 장강과 황해를 멀리 조망하고 있다.그 가슴에는 비록 시대와 혈족은 다르지만 만년을 떠돌다가 한 많은 일생을 마친 네사람의 나그네가 묻혀 있다.그중에 두 사람의 시인이 있어 남통을 차마 근대방직공업의 집산지로만 기록하지 못하게 한다. 그 하나는 당나라때 「초당4걸」로 추앙받았던 낙빈왕(638?∼684?)이요,또 하나는 우리나라 한말 마지막 망명시인 창강 김택영(1850∼1927)이다.낙빈왕이 오직 그 무덤만을 남겼음에도 우리겨레 김창강은 그의 고택과 함께 유택이 남통시시청문화재당국의 보호하에 온전히 보존된 것이다. 낙빈왕은 절강의 의오사람.그는 왕발과 함께 신동으로 불리울만큼 총명한 시인이었지만 일찌기 아버지를 여윈뒤가난과 의협으로 떠돌다가 심지어 노름꾼을 따라다니기도 했다.한때 몇군데의 지방관을 지내면서 뜻을 얻지 못하다가 설상가상 당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의 섭정에 분개,상소를 올리다 투옥당했다. 가까스로 사면당한 낙빈왕은 절강 임해의 현령으로 잠시 봉직했지만 무측천이 국호를 「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등극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때마침 광택1년(684),당시 유주 사마로 유배당했던 이경업(?∼684)이 양주에서 반무동란을 일으키자 낙빈왕은 유명한 「이경업과 함께 무후와 싸울 것을 천하에 고함」(대이경업전격천하문)이란 격문을 쓰고 결연히 그 싸움에 투신했다. 이경업이 죽고 전열이 흐트러지자 빈왕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는 위의 격문에서 「한겹의 흙이 미처 마르지 않았거늘 육척의 어린 왕손은 어디 갔는가?」고.(일배지토미건,육척지고안재?). 그러니까 선제가 죽은지 이제 며칠인데 어느새 찬탈이 웬말이냐는 충직한 두마디에 무후조차 숙연하더라는 이야기다.가위 왕발의 「등왕각서」에 견줄만한 명문이었다.그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느니 장강에 몸을 던져 자진했다는 등 전설속에 충직의 말로는 참담한 채 객사,결국 아무 연때도 없는 남통에 묻혔고,그의 고향에는 따로 의관총을 만들었다. 창강 김택영은 한말 순국시인인 매천 황현(1855∼1910)과 한말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매천은 벼슬에 매달리지 않고 숨어서 애국시를 쓰다가 일제의 강점에 자결로 맞섰고,창강은 통정대부로 학부편찬을 지내다가 을사보호조약 그 직전,고국을 떠나 망명의 길에 올랐다. 1905년 9월 9일,56세의 창강은 먼저 상해로 상륙했다.망연한 이역에서 먼저 그가 흠모하던 청말의 시인 유월을 찾아 소주로 갔으나 생계를 잇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하는수 없이 옛날 면식이 있던 남통의 거부요 교육가·정치가였던 장건(1853∼1926)을 찾아 청원하자,방직과 조선으로 사업이 번창했던 장건은 창강의 시재를 아낀 나머지 우선 그를 남통의 한묵림 출판사에 편교로 초빙,생활을 보장해 주었다.또 그가 중국 최초로 건립한 남통박물원 부근인 서남영촌 29호에 세칸짜리 집을 마련해 주었다. 남통 22년동안,허가항에 이어 세번째 이사온 이 집을 「차수정」이라 했다.그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그늘을 빌려 시원하게 산다는 자조적인 말인데 창강의 타국살이를 암유키도 한다. 그는 여기서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붓과 머리로 조국의 문학에 공헌했고 그 스스로의 문학을 중국에 남겼다.그는 우선 「매천시집」을 비롯,신자하집」·「여한십가문초」·「역사집략」·「교정삼국사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시집이나 역사전적을 간행한 이외에 자신의 문집인 「소호당집」을 정리 출판했으니 나라잃은 한을 나라의 정신문화 정리간행으로 풀다가 그는 끝내 남통의 거류민증을 손에 든채 표박을 마쳤다.그는 경술국치때 그 비보를 듣고 친상을 당한 죄인인양 소복을 입고 망명문학의 절정으로 평가할 수 있는 「오호부」를 표효했는데 한국인으로 그의 목숨은 그때로 끝났던 것이다. 「오호라!하늘 아래 동서남북,땅 아닌 곳이 없는데,나는 왜 이 땅에 태었을까? 고왕금래,세월은 영원한데,나는 왜 이 때를 만났을까? 하늘을 불러 애타게 여쭈어도 하늘은 입을 다문채 말이없네. 오호라!하늘을 불러도 끝내 대답이 없거늘,나 옷깃 풀고 외치옵니다.(후략)」 마침 올해가 창강 70주기라서 남통시문화국과 남통박물관은 기념행사 준비에 한창이다.창강의 묘는 낭산 동남쪽에 남통시청문화재로 보호받고 있고 그 묘포는 「조선시인김창강지묘」로 적혀 있다.거기서 20∼30m 내려오면 낙빈왕의 무덤,한과 한의 시인이 위 아로 누워있다.
  • 김 대통령 고종사촌집 강도/이웃주민들 격투끝 붙잡아(조약돌)

    ○…김영삼 대통령의 고종사촌 동생집에 11일 새벽 강도가 들어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다 이웃 주민들에게 격투끝에 붙잡혔다. 경기도 부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상오 1시30분쯤 김대통령의 고종사촌 동생 이일웅씨(56·회사원)가 혼자 사는 부천시 소사구 한아름아파트 다동106호에 정호석씨(23·무직)가 베란다 창문을 통해 침입,이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현금 18만4천원과 0.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시가 35만원)1개를 빼앗았다. 정씨는 이씨의 손발을 양말로 묶고 승용차 열쇠를 빼앗은 뒤 아파트 앞에 세워진 이씨의 스텔라 승용차에 시동을 걸다 이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김모씨(39) 등 이웃 주민들에게 격투끝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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