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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계 조·태분쟁 재연되나

    ‘불교계의 조·태분쟁 재연되나?’ 최근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에 있는 사찰 봉서사에서 조계종과 태고종 승려들이 사찰 점유를 둘러싸고 충돌해 조(조계종)·태(태고종)분쟁이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봉서사는 조계종과 태고종 양 종단의 승려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두 살림을 해오던 기형적인 사찰이다. 태고종측은 지난 14일 밤 10시쯤 조계종 스님 30여명과 민간인 20여명이 봉서사에 무단 침입하여 대웅전 등 건물 일부를 파괴한 채 무단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계종측은 “봉서사는 엄연히 조계종단이 임명한 광복 스님이 주지로 있는 사찰로,태고종측 스님들이 지난 13일 먼저 무단침입해 사찰을 접수(점거)한 것을 광복 스님을 비롯한 신도들이 밀어내고 원상회복한 것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소유권과 사찰 운영을 각각 태고종과 조계종이 나눠 행사하고 있어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이번 분규가 다른 사찰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봉서사의 경우 본 사찰은 현 주지 광복 스님을 중심으로 한 조계종이 운영하고 있으며,봉서사와 길을 마주하고 있는 태고종 영산작법 교육관에는 태고종측 승려들이 거주하는 가운데 양측 사이에 사찰 소유·운영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현재 봉서사처럼 소유권과 운영권이 조계종과 태고종으로 나뉘어 있는 사찰은 전국에 걸쳐 60여곳.지난 1962년 현재의 통합종단(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분종한 태고종 스님들이 기존에 점유하고 있던 사찰을 종전대로 운영해 왔지만 그 소유권은 조계종에 있는 모순 때문에 문제를 빚고 있는 사찰들이다.그 대표적인 사찰이 전남 순천 선암사와 서울 신촌의 봉원사.선암사와 봉원사는 모두 법원에서 조계종의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나 현재 태고종이 운영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봉서사와 비슷한 성격의 사찰들에서는 언제든지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잠재한다.”면서 “그러나 양 종단이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한걸음씩 양보해 통합 재단이사회 등을 구성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러 박물관 한국문화재 600점 ‘햇빛’

    러 박물관 한국문화재 600점 ‘햇빛’

    긴박했던 구한말 한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희귀 자료들이 무더기로 세상에 드러났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학박물관 한국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거쳐 최근 발간한 도록 ‘러시아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구한 말 한국 조정과 러시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 600여점의 컬러도판에 해설을 붙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896년 아관파천을 성공리에 완수한 친러내각 조직의 주동이었던 베베르가 수집한 유물들.명성황후가 지장상자(紙裝箱子·얇은 나무로 짠 다음 주홍종이를 바르고 겉에 壽福康寧의 문자를 새긴 상자)에 담아 베베르에게 직접 하사한 청자완(靑姿琬)은 급변하는 당시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나라와 러시아와의 긴밀한 외교적 접촉을 그대로 보여준다.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 이재원이 고종의 명으로 1885년 9월7일자로 베베르에게 보낸 초청장도 왕실과 베베르와의 밀접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초청장에는 베베르와 러시아 함대 함장 및 사관을 편전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위패(韋貝)’라는 베베르의 한국이름과,당시 우리나라에서 불린 그의 직함 ‘大俄國欽差大臣韋大人’도 기록되어 있다.일등상궁이 한 러시아 부인에게 아이의 안부와 날씨를 물으며 “오늘 오실까 하였는데 빗기운이 있으니 내일이라도 날씨가 청명하면 오시라.”며 보낸 궁체 서한문도 흥미롭다. 표트르대제박물관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대제(1672∼1725)에 의해 세워진 세계적인 민족학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독립된 한국실을 갖추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15일 TV하이라이트]

    ●사랑을 할거야(MBC 오후 7시55분) 옥순은 뱃속의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자 슬퍼한다.보라는 시련 속에서 오히려 담담해지고 성숙해지려 애쓴다.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보라는 수영에게서 함께 유학을 가자는 제의를 받는다.옥순은 성훈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대신 보라와 하늘의 사랑을 이어주려 애쓴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강수량이 세계 최고이지만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의 체라푼지를 찾아간다.연간 강수량이 11m나 돼 우산이 생활 필수품인 이곳이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이유는 쏟아지는 비로 기름진 땅과 농토가 쓸려 내려가고 남아 있는 숲은 농지 개간을 위해 태워지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대전(EBS 오전 11시20분) 패자부활전 4라운드와 대망의 결승전이 펼쳐진다.홍익대와 금오공대 ‘산타마리아’의 패자부활전 경기.여기서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두 팀 모두 대단한 승부욕을 보인다.한편,준결승 경기에서는 결승전 티켓 두 장을 놓고 4팀의 쫓고 쫓기는 경기가 펼쳐진다. ●열전!가수왕(iTV 낮 12시55분) 꽃의 도시 고양시에서 함께한다.언제나 정겨운 가수 현숙,변함없이 구성진 목소리를 자랑하는 이용,‘자옥아’로 성인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박상철,남자는 속으로 운다며 거듭 강조하는 멋진 여자 전미경,‘꽃바람 여인’으로 인기몰이에 한창인 조승구 등이 출연한다. ●도전! 1000곡 결정(SBS 오전 8시50분) 심현섭 김학철 이은하 이매리 임종환 뚜띠 노을이 출연한다.분위기 메이커 심현섭이 펼치는 신명나는 유쾌한 무대,7년만에 돌아온 세미트로트 쌍둥이 듀오 뚜띠,코러스와 춤 그리고 노래 삼박자를 갖춘 노을,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김학철의 성대모사와 모창을 만날 수 있다. ●애정의 조건(KBS2 오후 7시50분) 정한이 아파트 명의변경을 거절하자 금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리를 뜬다.애리는 윤택이한테 성기 엄마 이야기를 하며 은파의 수상한 점을 말한다.밤새 고민한 정한은 다음날 아침,한걸네를 찾아 명의이전에 동의한다고 말한다.한걸은 금파와 정한을 불러 재결합에 앞선 충고를 한다. ●무인시대(KBS1 오후 10시10분) 갑작스럽게 최충헌이 쓰러지자,최우와 최향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더욱 치열해진다.최우는 고종에게 충성맹세를 하고,최향은 노석숭과 김약진을 끌어들이려 한다.고종에게 사직을 청하고,왕씨 성을 내놓은 최충헌은 최우에게 자신의 집에 출입을 하지 말라 명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2)8·15단상-사시미와 우치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2)8·15단상-사시미와 우치다

    ‘수사(壽司)’라는 간판을 내건 ‘사시미’집이 많다.‘횟집’보다 ‘수사’가 한결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일까.대개의 ‘수사’에서는 같은 ‘사시미’도 전반적으로 값이 비싸다.따지고 보면 ‘수사’란 ‘스시’로 읽으며,번역하면 초밥 정도에 해당된다.일식집의 대표격인 ‘수사’란 곳도 기실은 ‘초밥집’에 불과하다.어느 작은 ‘수사’에서는 ‘쓰키다시’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갓 잡은 ‘아나고’는 기본이고 ‘우나기’까지 올린다.수제품 ‘와사비’가 입맛을 당기는데 ‘와리바시’로 ‘기코만 간장’에 살살 풀어서 ‘스시’에 발라먹는 맛이 그만이다.어디 ‘간수메’에 비할 것인가.대하(大蝦)도 펄펄 뛰는 ‘오도리’가 한결 맛있다.겨울철에는 ‘스키야키’와 ‘오뎅’,‘덴푸라’가 유별나다.여름에는 ‘히야시’된 ‘아사히 맥주’에 시원한 ‘복지리’가 또한 별미 아닌가.전복은 ‘해녀’들이나 ‘머구리’가 직접 잡았다.이 집의 유명한 삼치는 ‘스기’로 만든 배에 ‘모타’를 ‘장착’한 ‘나가시배’를 끌고 나가서 ‘앤카’를 박고서 ‘잇폰스리’로 낚아 올린다.불법인 줄 알면서도 ‘삼마이’를 간혹 쓰는데,싹쓸이하는 ‘고데구리’에 비하면 훨씬 낫다. ●‘지리’가 우리말 아닌가요? 의도적으로 만들어본 문장들이다.바다에 사노라면 일본말을 자주 듣게 된다.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어민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말들이다.더러는 토착화해 ‘지리’나 ‘아나고’처럼 우리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국어학을 전공한 박사에게 묻자,“지리,글쎄요.우리말 아닌가요?”하고 되물어 올 정도이니,일반인들은 오죽하랴.위의 따옴표 부분을 우리말로 한번 풀어보자. △사시미(さしみ)=회 △쓰끼다시(つきだし)=가벼운 안주 △아나고(あなご)=붕장어 △우나기(うなぎ)=뱀장어 △스시(すし)=초밥 △오뎅(おでん)=어묵 △스키야키(すきやき)=전골 △덴푸라(でんぷら)=튀김 △와사비(わさび)=고추냉이 △간수메(かんづめ)=통조림 △오도리(おどり)=산 새우 △와리바시(わりばし)=나무젓가락 △복지리(鰒じる의 변형)=맑은 복어국 △스기(すぎ)=삼나무(杉) △삼마이(さんまい)=삼중망 △고데구리=소형기선저인망 △잇폰스리(一本釣,いっぽんすり)=외줄낚시 △머구리(もぐり)=잠수부 정도다. 번역에 걸맞은 대응어가 미처 개발되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삼마이(三重網)’는 ‘세겹그물’이 맞을 터인데,이미 삼마이그물이 토착화되어 세겹그물이 오히려 생뚱맞다.누구나 쓰는 해녀(海女)는 사실상 제주도 본토에서는 쓰지 않던 말이므로 토착어인 잠녀가 맞다.‘모타(モ-タ)’는 ‘motor(모터)’의 일본식 영어이며,덴푸라는 포루투갈어에서 왔다.어민들은 더러 ‘닻’이라는 우리말을 두고 ‘앤카 박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닻을 뜻하는 ‘anchor’의 일본식 영어 아닌가. 일반인들은 간혹 신문기사 등에서 생소한 그물 이름이 나오면 답답하다.예망(曳網),자망(刺網),건강망(建綱網),선망(旋網) 따위는 일본식 한자어다.흘림그물을 뜻하는 유망(流網)은 ‘나가시(ながし)’라고 불리며,‘흘리다.’는 뜻의 ‘나가스(ながす)’에서 비롯되었다.‘고데구리’나 ‘머구리’,낚시꾼들이 많이 쓰는 외줄낚시인 ‘잇폰스리’도 일본말이다.거개의 어로도구가 일본말이다.외관상 일본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선착장,간석지,적조,방파제 따위의 해양용어도 일본산이다. ●바다는 아직도 日식민상태 ‘회(膾)문화’가 말하듯 ‘해양강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근대적 해운· 수산·항만,심지어는 국방용어까지 들여다 쓰고 있으니,참담하게도 ‘식민의 바다’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언어식민지를 청산하자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종다원성 차원에서라도 토착용어를 써야 할 텐데,현실은 반대다.우리 스스로 근대를 ‘번역’하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려서 ‘번역’해온 식민지의 여독 때문이다. 일본어도 외국어인데 이웃나라 말이 섞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와사비’가 일본의 오랜 기호식품인 반면에 우리 조상들은 거의 먹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생경한 ‘고추냉이’보다는 ‘와사비’가 타당하다고 여기기도 한다.‘아사히맥주’나 ‘기코만 간장’도 상품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원문 그대로 써야 한다. 문제는 주체성이다.동서양 구분없이 근대 모국어의 탄생과 확대과정은 ‘번역’을 통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었다.그러나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을 거치지 못하면서 해양과학기술과 생태환경용어에 이르기까지 ‘번역과 근대’의 주체성을 살리지 못한 채 오로지 직수입에 몰두해 왔다.새로운 과학기술이 도입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어도 개발해야 하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게다가 오랫동안 써오던 토착말까지 잃어버려 ‘아나고 먹자.’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도 ‘붕장어 먹자.’고 하면 “뭐?”라고 되묻기 일쑤다. ●일제시대 조선어류 연구학자, 우치다 식민 잔재는 바다 관련 학계의 책임도 크다.마침 8·15를 앞두고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란 유리원판 사진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어느 젊은 연구자가 용기있게 쓴 ‘일제시기 조선산 어류연구와 우치다’란 글에서 놀라운 시사를 얻었다.‘제국의 바다,식민의 바다’라는 부제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인 우치다 게이타로(內田惠太郞)는 1896년생으로 도쿄제국대학 농림학부 수산과를 나와서 1927년 한반도에 들어온다.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 양식계 책임자로 15년을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바다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그런 그가 1942년,수많은 연구 업적을 고스란히 한국에 둔 채로 규슈(九州)제국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아 돌아간다.1964년 이와나미(岩坡) 문고본으로 출간된 ‘치어(稚魚)를 찾아서’에서 한국에서의 연구 활동을 포함한 자신의 어류생활사 연구 경험을 소상히 밝히기도 한 그는 사실 한국어류사 연구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같이 근무했던 나카노(中野進)와 우치다 자신,그밖의 여러 인물들이 많은 유리건판을 남긴다.그 유리건판들이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개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갔고,그 소장 자료에 근거해 이번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 ●‘수산학 거목’의 도용 씁쓸 총독부 수산시험장은 광복 후 중앙수산시험장(1949),국립수산진흥원(1963),국립수산과학원(2002)으로 이어진다.이렇게 기관은 맥을 이어왔는데,어찌해서 조선총독부가 연구하고,실험하고,수집한 그 중요한 수산자료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었을까.총독부야 밉지만 그들의 업적은 잘 보존·관리·활용했어야 하는데 총독부시절에는 잘 관리되던 것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다 이렇게 개인의 전유물로 주물러지게 되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남긴 ‘전리품’을 재활용하고,가공해 자신의 연구 성과로 둔갑시킨 정말 날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예전부터 학계에는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우리나라 ‘수산학의 거목’으로 평가되는 분의 저술이 사실은 일본인들이 남긴 연구 성과를 슬쩍 해서 가공한 것이라는 얘기다.이 ‘거목’의 광복 이후 저술에서 총독부시절의 연구 성과를 요약·재정리하거나 표절을 뛰어넘는 도용 흔적마저 발견되고 있으니,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그래서 서점에 나와 있는 물고기 관련 책자의 상당수가 이런 배경조차 모르고 이 ‘부정한 책’을 원전으로 인용하고 있지 않은가.이제는 그 ‘거목’의 저자가 우치다로 바뀌어야 마땅하다.전시회에 등장할 사진들을 미리 훑어보니 우치다의 어류연구가 고스란히 그 ‘거목’의 연구에 겹쳐지고 있다.식민잔재 청산은 바다에서도 미완의 숙제인 셈이다. 돌이켜보면,고종 26년(1889)에 체결된 한·일통상장정을 필두로 1908년 한·일어업협정,1909년의 한국어업법,1929년의 조선어업령 등을 통해 ‘제국의 바다’가 완성되어 갔다.일본인 어업이민을 부추겨서 일본인 어촌을 따로 건설하였으며,혹심한 약탈어업으로 일관한 게 바로 한일어업사다.1965년의 잘못된 한·일협정의 후과까지 남아 있는 데다가 ‘쌍끌이 사건’ 등에서 보았듯 우리의 어업권 대응도 시원찮다.일본의 끊임없는 독도영유권 주장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어업자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 아니겠는가. ●日 ‘해양제국 건설’은 타산지석 ‘제국의 바다,식민의 바다’는 현재진행형이며 또한 미래형이기도 하다.한국과는 독도로,중국과는 댜오위타이(釣魚島)로 싸우면서,독립국이었던 유구국(琉球國)을 내부 식민지 오키나와로 ‘점령’한 일본의 끝없고,강력한 바다지향을 지켜본다. 대륙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편입 음모가 노골화되고 있다면,해양에서는 ‘해양제국’의 온갖 팽창전략이 종횡으로 구사되고 있다.더욱이 UN 해양법협약이 발표되면서 일본의 바다는 한결 넓어졌다.남쪽 태평양으로 뱃길을 돌리는가 했더니,동해조차 일본해로 둔갑시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대시켜 가고 있다.바다에서 살아간다는 일이 단순히 개인사에 국한된 미시적 삶이 아니라,국제질서를 낳는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생활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어업권역이 줄어들면 어민들은 울상을 짓고,소비자는 비싼 값에 어류를 사먹거나,수입 고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으니 밥상머리에까지 성난 파도가 밀려옴을 어쩌랴. ‘사시미’와 ‘스시’를 먹으면서,8·15 광복절의 의미보다 ‘막바지 바다피서’를 얘기하고 있을지 모를 이 땅의 선남선녀들에게 ‘우리말 바다용어집’이라도 무상 제공하는 일은 이제 국가의 ‘의무’ 아니겠는가.‘지리’와 ‘아나고’를 우리말이라고 여기며 사는 이 시대의 숱한 ‘개인들’,지금 누가 그들만을 탓할 수 있으랴.
  • [기고] 잊지말자! 군대해산의 교훈/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1907년 8월1일 오전11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됐다.우리 국민은 8·15 광복은 경축해 왔으나 8·1 치욕의 그날은 잊고 있다.조선왕조 519년 27대를 유지해 온 우리 군대가 하루아침에 없어진 것이다.20세기 초 세계 열강이 ‘근대적·배타적 군사주권 국가’로 식민지를 넓혀나갈 때 우리 군대는 강제해산됐다.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1907년 7월19일 고종 황제께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를 받은 이완용·송병준 내각의 강요로 순종에게 양위 소칙을 발표했다.20여일이 지나 군대가 해산된 그날 서울 동대문밖 훈련원에 맨손 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집합시켜 놓고 갑자기 군부협판 한진창이 순종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하였다.놀란 병사들이 주위를 살펴 보니 이미 일본 헌병들이 중무장한 채 둘러싸 있었다.그 자리에서 계급장을 떼고 약간의 돈푼을 나눠준 뒤 해산시켰다.길거리로 나오면서 온백성과 함께 통곡하고 수치스러운 돈을 던져버렸다.이같은 내용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지낸 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의 저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처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들은 황실근위부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參領)은 격분하여 자결,순국하였다.“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 이것이 그분의 비통한 유언이었다.대대장의 자결로 격분한 병사들이 무기고를 열어 총을 들고 남대문 밖 일본군 주둔지를 공격했으나 기다렸다는 듯 일본군이 일제사격하여 78명이 전사했다.부대는 해산되어 국내외로 의병이 되어 흩어졌다.군대가 없어지니 주권이 무너지고,주권이 무너지니 국가가 망했다.나라가 망하니 그 민족 그 국가의 문화가 살아남지를 못한다. 2년후 창경궁은 동물원이 되었다.세종이 즉위하고 어전회의를 하던 문정전(文政殿)이 사자와 호랑이의 울이 되었다.군대가 없으니 이토의 마음대로였다.1909년 10월26일 그는 안중근 의병중장이 쏜 세발의 총탄을 맞고 하얼빈 역두에서 사살됐다.그러나 1910년엔 아무런 저항 없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당당한 군대를 갖고 있다.1945년 광복과 더불어 창건한 민주군대로서 6·25 이념전쟁의 주역으로 싸우면서 이 나라를 부흥시켰다.그리고 막강한 주권국가로서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과연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인가.19세기적 비운이 닥쳐올 것인가? 결코 아니다.우리는 피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이제는 군사력을 갖춘 주체적인 국가가 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군대의 존재양식과 군대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물론 우리 군대에도 공과가 엄연히 있다.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운동하던 세대가 군을 보는 시각은 심각하다.그렇다고 오늘의 군대를 주관적으로 통제하여 정치적으로 예속시키면 군은 하루아침에 무력화되고 만다.그래서 군대는 ‘객관적 통제’로,군령을 강화시켜,선진국다운 군대 기능을 고양시켜야 할 것이다.군대를 새삼 존중하고 사랑해야 군대해산의 교훈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간에 휴전상태에 있다.강력한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군사주권을 배경으로 아직도 ‘총부리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그는 서해안에서 도전과 선전,통신협정을 이용하여 한국군을 무력화하려고 한다.그 교신 한건으로 결국은 우리 국방장관이 교체되고 3성장군이 전역했다.그렇게 객관적 전투사항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니 그 눈치를 봐야 하는 군대에 무슨 전투력이 있을까? 군대의 사기는 죽기 마련이다.남북화해 시대에 국방비를 깎아 결식아동을 돕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낭만적인 발상도 경계해야 한다.강한 군대의 존재만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밀고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군대해산의 날을 돌이켜보고 강한 군대와 국방정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동희 前서울산업대 총장·예비역준장·명예논설위원
  • [산 오르記] 장성 백암산

    [산 오르記] 장성 백암산

    백암산(741.2m)은 호남정맥의 원줄기를 이룬다.서쪽으로는 입암산,충녕산,유달산 등을 거쳐 신안군까지 뻗치고,동으로는 불태산,지리산,백운산 등으로 이어진다.전남 장성과 전북 정읍을 가르며,내장산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세나 경관은 내장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사시사철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며,고찰 백양사가 둥지를 튼 명산이다. 더위를 식혀줄 비가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산행에 나섰다.백양사 입구 주차장에 이르자 휴일을 즐기려는 연인과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빗방울이 제법 굵어지자 일부는 우산을 펼쳐들고 운무가 자욱한 진입로 숲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사찰까지 300m쯤 이어진 포장도로가 금세 어두워진다.햇볕 쨍쨍한 날에도 가느다란 빛줄기조차 투과하지 못하는 곳이다. 길 양쪽엔 수백년 됨직한 갈참나무와 느티나무,애기단풍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활엽 관목림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지칠 줄 모르는 매미 울음이 하모니를 이룬다. 모처럼 한가로움을 즐기며 발길을 재촉했다.백양사 바로 아래쪽 쌍계(2개의 연못)오른편에 ‘비자나무숲 모니터링 지역’이란 팻말이 보인다.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된 이곳 비자나무 군락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아름드리 나무엔 도토리만한 비자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비자는 예부터 기생충인 촌충을 구제하는 데 쓰였다.이곳 비자나무숲은 고려 고종때 각진국사가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암산은 굴거리나무 숲(천연기념물 제91호),갈참나무,졸참나무,고로쇠나무,때죽나무,아기단풍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전국 숲 해설가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쌍계루(雙溪樓)를 지나 고불총림 백양사에 들어서자 전국의 불자와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백양사는 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로서 각진국사를 비롯해 만암 대종사,서옹 종정 등 이름난 스님들이 거쳐간 절이다.백제 무왕때 승려 여환이 창건해 백암사라 이름 지었다.그 후 고려 덕종때 중연선사가 중창하며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했으나 조선조때 환양선사가 중창하며 다시 백양사로 바꿨다. 환양선사가 학바위 아래 영천암에서 제자들에게 아미타경을 설법할 때 백양(白羊) 한마리가 내려와 경청한 뒤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고 하여 백양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천연림으로 이뤄진 등산로에 접어들자 빗줄기가 잦아든다.하늘을 쳐다 봤더니 보이질 않는다.관목수림이 비를 막아 우산 노릇을 했나보다. 직각에 가깝게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약사암이다.시간은 꽤 지났지만 고작 500m를 올라왔을 뿐이다.숨이 막히고 온몸이 땀에 젖는다.가파른 절벽아래 세워진 약사암이 위태로워 보인다. 약사암에서 한숨 돌리고 50여m쯤 올랐다.향내가 진동하는가 싶더니 목탁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절벽에 천연동굴이 아가리를 내밀고 있다.석굴암같은 동굴안엔 부처님 상이 본사를 굽어보고 서 있고,그 아래에서 한 스님이 독경에 열중이다.아래쪽엔 석간수가 흘러나와 약수터를 이루고 있다. 목제 계단과 자갈길을 따라 700m쯤 올라가니 백학봉이 나타난다.학바위라고도 하며 이 산의 이름이 이 흰색 바위에서 유래됐다.북동쪽으론 내장산이,서남쪽으론 입암산이 안개속에 희미한 자태를 드러낸다.등산로의 난코스는 여기서 끝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백양사∼영천굴∼약사암∼백학봉∼상왕봉∼운문암∼약수동계곡∼백양사이다.총 10㎞ 남짓한 거리로 5시간 정도면 종주가 가능하다.백학봉∼상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등산로는 평이한 편이다. 주변엔 떡갈나무,비자나무,조릿대밭이 널려 있다.최정상인 상왕봉 조금 아래쪽의 운문암엔 지난해 입적한 서옹 방장스님이 오랫동안 머물며 수행했던 곳.아무리 안개낀 날씨에도 문만 열면 산 아래 전경이 훤히 드러난다고 해 운문암(雲門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약수동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빗줄기가 거세지고,한치앞을 분간하기 힘들다.그래도 빗속의 등산은 더위를 식혀주어 또다른 맛이 난다. ●볼거리·먹을거리 백양사 인근 남창계곡과 몽계폭포가 여름 휴양지로는 그만이다.장성호와 영화촌 금곡마을,홍길동 생가터 등도 둘러 볼 수 있다.장성군청 문화관광과(061-390-7224).장성호 주변의 청암가든(061-393-8823)은 메기탕(1인분 6000원)가물치회 (1㎏ 2만5000원) 등을 즐길 수 있다.백양사 집단시설지구엔 산채정식과 도토리묵 집이 즐비하다.주변경관과 풍치가 빼어난 백양관광호텔(061-392-0651),가인마을 민박촌(061-392-7683).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1번 국도로 진입한 뒤 8㎞쯤 가다가 738번 지방도로를 타고 3㎞쯤 가면 백양사 입구에 이른다.광주에서는 버스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0여 차례 운행되며 50분쯤 소요된다.내장사 쪽에서는 추령 고개를 넘어 복흥3거리에서 백양사로 이어지는 국도를 타면 된다.단풍철만 제외하면 사찰 입구의 주차공간은 넉넉하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8월1일 TV 하이라이트]

    ●사랑을 할거야(MBC 오후 7시55분) 가출한 하늘과 보라는 희망을 갖자며 서로를 위로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윤 여사와 이 여사는 감정이 격해져 상대방의 손자손녀를 탓하며 싸움을 한다.하늘과 보라를 찾아낸 성훈은 하늘을 믿고 돌아선다.대신,성훈은 옥순에 대한 마음을 접을 결심으로 해외출장을 자청하는데….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매년 수백만 명이 지진과 홍수,태풍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엄청난 재산 피해가 속출한다.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은 주로 가난하고 외딴 지역이다.구호단체에서 도움을 주지만 어려움이 많다.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과 예방법을 살펴본다. ●삼색토크 여자(EBS 오후 8시40분) 레드 코너에서는 30년 전통의 국내 최대 요들송단체인 한국바젤요들클럽이 펼치는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블루 코너에서는 ‘찾아라! 내 몸에 맞는 휴(休)테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마지막 그린 코너에서는 시원한 숲의 영상과 함께 초록빛 여유를 즐겨본다. ●열전!가수왕(iTV 낮 12시55분) 안양시의 태권소년 등장.수줍은 미소를 가진 소년,그 미소 뒤에 숨겨진 태권도 실력과 안양시 주부들의 행복한 모습.남편과 자녀의 사랑속에 멋진 모습으로 무대를 빛내는 그녀들,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이들의 행복한 축제 속으로 찾아간다. ●결정!맛대맛(SBS 오전 10시50분) 족발 대 보쌈의 맛대결이 벌어진다.중식과의 환상적인 만남으로 빚어진 족발의 화려한 변신.보양식으로 인정받는 천하일품 족발의 감칠맛 나는 부드러운 고기 한 점,시원한 김치와 조화를 이루는 보쌈이 먹음직스럽게 선보인다.서수남 표인봉 이동우 안선영 등이 출연한다. ●도전!지구탐험대(KBS2 오전 8시30분) 스페인의 작은 도시 팜플로나에서 터프가이 탤런트 서범식이 거대한 소를 제압하는 투우사로 변신했다.거친 소를 제압하는 투우사가 될 수 있을까? 따이족 최대의 제례의식과 흥겨운 축제현장 속으로 찾아간다.탤런트 박승호의 뱀사냥기와 따이족 사람들의 문화도 공개된다. ●무인시대(KBS1 오후 10시10분) 자운선은 자신을 의심하는 최충헌에게 오히려 최우의 장인인 정숙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강종이 보위에 오른 지 2년이 못되어 죽자 이어 고종이 즉위한다.다섯 살에 안악현 유배지에서 십 수년을 지내다가 황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즉위 직후 최충헌을 부친의 예로 받들겠다고 선언한다.
  • 8월의 호국인물 고종석 일등병조

    전쟁기념관(관장 김석원)은 29일 6·25전쟁 때 큰 전공을 세우고 적이 던진 수류탄을 덮쳐 전우의 생명을 구한 고종석(1931∼1950) 해병대 일등병조(현재의 중사와 상사 사이에 해당)를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경기도 개풍 출신인 선생은 해병 2기생으로 6·25전쟁 당시 경남 진동리 지역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공격,진동리∼마산간 보급로를 타개하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북한군이 마산·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통영으로 진격하자,당시 고 삼등병조(현재의 하사에 해당)는 분대장으로 통영 장평리 해안의 상륙작전에 참가,이틀만에 통영을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역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적의 수류탄이 호에 떨어지자 “엎드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분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살신성인의 귀감이 된 고인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 특명에 의해 고인을 일등병조로 2계급 특진시켰다. 전쟁기념관은 다음달 12일 호국 추모실에서 유족과 해병대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중국 황제/앤 팔루던 지음

    고대 중국에서 황제는 ‘신’이나 다름없었다.천명을 받은 도덕적 통치자였으며 지상과 하늘을 중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황제는 마치 해와 달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로 사회에 녹아들었다.중국 역사상 전통시대의 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기운과 흐름이 있었지만,황제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는 없었다.장제스나 마오쩌둥,덩샤오핑 같은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시대의 통치자들조차 ‘황제형’ 권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국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앤 팔루던이 쓴 ‘중국 황제’(이동진·윤미경 옮김,갑인공방 펴냄)는 역대 황제들의 면면을 통해 살펴본 중국 제국 2000여년의 문명사다.중국의 황제제도는 기원 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가 즉위하면서 시작돼 1912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청조가 멸망할 때까지 2000여년 동안 지속됐다. 이 책은 그 기간 지존의 자리에 올랐던 중국 황제 157명의 내밀한 삶을 들춰낸다.황제를 중심에 놓고 중국의 역사를 통관하는 방식은 정사의 체제를 따른 것.그런 점에서 황제들의 연대기,즉 ‘황제 본기(本紀)’인 셈이다. ●황제 157명 통해 살펴본 중국 2000년史 중국에 황제가 157명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중국 황제의 수에 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분열의 시대’에 어느 왕조를 정통 왕조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또한 정통 역사서에선 단명한 황제는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누구를 황제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이 책은 중국의 정통 사서에서 황제로 인정받는 남북조 시대 북조 왕조인 북위,동위,서위,북제,북주,그리고 요와 금의 황제들은 다루지 않는다.반면 정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 왕조를 세운 왕망에 대해선 소상하게 밝힌다.전한 말의 정치가인 왕망은 뛰어난 인재들을 중용한 유능한 행정가로,부자와 지주의 특권을 견제하는 야심찬 개혁에 나섰다.모든 금을 경화로 교환하도록 했다.왕망이 죽었을 때 국고엔 당시 중세 유럽의 전체 공급량보다 많은 14만㎏의 금이 쌓여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부유층을 소외시킨 왕망은 끝까지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9년 동안 즉위한 왕망은 결국 평민 사병에게 죽음을 당했다. ●너무 뚱뚱해서 혼자 움직이지 못했던 만력제 중국 황제들의 삶은 그들의 거대한 권력만큼이나 다채롭고 신비스러웠다.책에 따르면 명나라 만력제는 너무 뚱뚱해 누군가의 도움 없인 일어서지도 못했다.양나라 무제는 틈만 나면 왕궁을 빠져나와 불교사원으로 달려간 은둔형 황제였으며,화가 황제인 북송의 휘종은 눈멀고 귀먹은 채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금욕적인 인물로 후궁에게서 낳은 아들이 없었던 수나라 문제,신분을 숨기고 매음굴을 찾아가 양성애를 즐겼던 청나라의 허수아비 황제 동치제,평민으로 태어나 가난을 딛고 천자에 오른 전한의 선제 등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스스로를 聖母라고 칭한 측천무후 여성으로서 중국의 권력지도를 좌우한 인물론 단연 당 태종과 고종의 후궁인 측천무후와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이자 동치제의 생모인 서태후가 꼽힌다.측천무후의 권력 장악 과정은 피로 얼룩졌다.고종의 황후 왕씨와 후궁 소씨의 사지를 절단한 뒤 몸통을 술통에 던져 죽게 했는가 하면,밀정을 둬 공포정치를 일삼았다.측천무후는 후궁이면서도 특이하게 자기 일족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측천무후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유가와는 달리 여성의 중요성을 인정한 불교를 적극 지원하고 활용했다.673년 룽먼 석굴에 자신의 모습을 본떠 거대한 미륵보살 석상을 세우게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측천무후는 스스로를 ‘성모(聖母)’라고 불렀다.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이 돼 국정을 농단한 서태후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대신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권력을 유지했다.쾌활한 성격의 서태후는 다른 만주족 여성들처럼 손톱을 길러 기분이 나쁘면 궁녀들의 얼굴을 할퀴었다고 한다. ●중국인들 자부심, 황제제도와 연관 저자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중국(中國·중심국가)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황제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유사 이래 중국인의 삶은 황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황제정치는 2000여년 만에 별다른 투쟁도 없이 붕괴됐다.제정(帝政)은 중국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제도 가운데 하나였지만,근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제정치의 이데올로기가 유연성을 잃게 된 것이다. 황제의 역사는 ‘위로부터의 역사’다.하지만 중국의 황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국 사회를 관통한 질서의 축이란 점에서 그를 통해 중국사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이 책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이번에 출간된 ‘중국 황제’는 본격 대중역사서를 표방한 갑인 크로니클 총서 중 첫권.출판사측은 앞으로 ‘로마 공화정’‘로마 황제’‘교황’ 등을 차례로 펴낼 예정이다.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북한, 조선 고종때 쓰던 옥새 공개

    북한이 TV를 통해 조선시대 왕이 사용했던 옥새(玉璽)를 처음으로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북한 중앙TV가 지난 19일 이례적으로 모습을 보여준 이 옥새는 조선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종(高宗)시대의 것.중앙TV는 금으로 제작한 거북 모양의 옥새를 공개하면서 “전시된 옥새는 조선시대 왕들이 사용하던 옥새 중 하나이며 한일합방 후 일본이 강탈해 간 것을 경상도 지역 한 서당의 훈장 아들이 다시 빼내 김일성 주석에게 바쳤다는 설이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중앙TV에 따르면 김 주석은 이 옥새를 조선역사박물관에 전시할 것을 지시하면서 “이 옥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전체 인민이다.나는 임금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다.나는 심부름꾼일 뿐이다.따라서 이 옥새는 전체 조선 인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역사박물관에 갔다 놓고 전체 인민의 소유로,인민의 재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학계는 고종시대 때 관인용으로 70여개 정도의 옥새가 사용됐으며 북한에서도 상당 수의 옥새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 왔다.이번 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존경하는 글귀(존호)를 새긴 어보 외에 각 행정부의 수장들이 사용하는 결재용 옥새를 구분해 사용했다.이 가운데 일본인들이 수탈해 간 옥새의 90% 이상이 결재용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왕조는 중국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주로 거북 모양의 국새를 사용했으나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부터는 이전의 옥새 형태를 완전히 바꿔 용의 모양으로 제작한 ‘대한국새’와 ‘황제지보’‘황제지새’ 등을 사용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28)

    유림 132 에는 ‘臨渴掘井(임할 림,목마를 갈,팔 굴,우물 정)’이라는 成語(성어)가 나온다. ‘臨’의 본래 뜻은 ‘높은 위치에서 몸을 구부려 아래쪽의 물건을 내려다보는’ 것으로,臥(와)와 品(품)이 합쳐진 글자이다.‘臣’의 본래 뜻은 ‘구부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며,‘臥’는 무엇에 기대 앉아 쉬는 상태를 나타낸다.‘品(품)’의 원래 뜻은 세 사람의 입,즉 ‘여러 사람’을 나타낸다. 臨자의 用例(용례)는 형편에 따라 적절한 수단을 강구한다는 臨機應變(임기응변),시기가 닥쳐온다는 ‘臨迫(임박)’,부모가 돌아가실 때 곁에서 지키는 ‘臨終(임종)’이 있다. ‘渴’은 ‘水’와 ‘曷(어찌 갈)’이 합쳐진 글자로 본래의 ‘물이 다 마르다.’라는 뜻에서 ‘목마르다.’는 의미와 ‘급하다.’는 뜻이 派生(파생)했고,‘渴求(갈구)’‘渴望(갈망)’‘枯渴(고갈)’ 등에 渴자가 쓰인다.‘掘(굴)’은 ‘才(手)’와 ‘屈(굴)’을 합쳐 ‘손에 기구를 잡고 땅을 판다.’는 뜻이 됐다.‘掘起(굴기)’‘發掘(발굴)’‘採掘(채굴)’ 등에서처럼. ‘井(정)’은 물을 긷기 위한 설비에 오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싸놓은 木柵(목책)에서 유래한 글자다.井자의 용례로는 살림살이의 수고로움을 뜻하는 ‘井臼之役(우물 정,절구 구,어조사 지,일 역)’‘井底之蛙(우물 정,밑 저,어조사 지,개구리 와)’‘市井(시정)’ 등이 있다. 臨渴掘井은 ‘晏子春秋(안자춘추)’의 齊(제)나라 景公(경공)과 망명객인 魯(노)나라 昭公(소공) 사이에 오간 이야기에서 유래했다.소공이 왕위에서 쫓겨난 것은 결국 충직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자,경공은 지난날의 過誤(지날 과,잘못 오)를 깊이 인식하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어진 君主(군주)로 거듭날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곁에 있던 재상 晏(안영)은 ‘위급함에 처해야 서둘러 무기를 만들고,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것과 같아서,아무리 재빨리 무기를 만들고 우물을 파더라도 이미 늦은 일일 뿐’이라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여기서 臨渴掘井은 ‘평소에 준비 없이 있다가 일을 당해 허둥지둥 서두름’을 이르게 됐다.渴而穿井(갈이천정),臨陣磨槍(임진마창),鬪而鑄兵(투이주병)도 이와 유사한 말이다. 반면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로 ‘有備無患(있을 유,갖출 비,없을 무,근심 환)’이 있다. ‘尙書’ 說命편에는 傅說(부열)이라는 어진 재상이 殷(은)나라의 高宗(고종)에게 ‘판단이 옳다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그 행동은 時宜(시의)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자신의 능함을 자랑하다가는 공을 잃고 마는 법.오직 모든 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하니,준비가 있으면 훗날의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進言(진언)하는 기록이 보인다. 또 ‘春秋左傳(춘추좌전)’에는 晉(진)이 鄭(정)을 服屬(복속)하자 정나라가 보내온 화친의 선물 중 절반을 魏絳(위강)에게 보낸다. 위강은 정나라 공략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다.위강은 ‘편안할 때는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으니,위태로움을 생각한다면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며,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왕의 선물을 거절한다.장마가 계속되고 있다.큰 災難(재난)을 당하고 나서 臨渴掘井의 수선을 피우기보다 有備無患의 자세로 꼼꼼히 살피는 注意力(주의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석제 반월정보산업고 교사(철학박사)˝
  • [아시안컵축구 2004] 본프레레, 사막을 넘어라

    ‘모래바람을 잠재운다.’ 44년 만에 아시안컵축구대회(17일∼8월7일) 정상탈환을 노리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중동의 ‘모래바람’ 돌파에 승부수를 띄웠다.조별리그부터 연이어 중동국가와 마주치게 된 데다 예선을 통과해도 어차피 중동을 넘어야 정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선 B조에 속한 한국이 1차적으로 넘어야 할 파트너는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어느 한 팀도 쉽게 볼 수 없다. 19일 격돌할 첫 상대 요르단은 이번이 첫 만남이다.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0위로 한국(20위)보다 낮지만 쿠웨이트(56위)나 UAE(71위)보단 높아 경계대상이다.이집트 출신 모하메드 알 고하리 감독이 사령탑에 앉은 뒤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체격이 좋고 세트플레이가 위협적이어서 한국 수비수들이 진땀을 흘릴 것으로 예상된다.지난해(3-2)와 올해(1-0) 2차례나 중동 맹주 이란을 꺾는 파란도 일으켰다.지난 6월에는 이라크를 3-1로 완파하면서 중동의 신흥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두 번째 상대인 UAE는 역대 전적 6승5무1패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소 여유가 있다.네덜란드 출신 아드 데 모스 감독이 최근 사령탑에 오른 뒤 변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맞대결은 2001년 2월 두바이 4개국축구대회였는데 당시 송종국 유상철 설기현 고종수의 연속골로 4-1로 대승했다.지난 3월 북한과 득점없이 비기는 등 객관적 전력상 한수 아래로 평가된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역시 쿠웨이트.역대 전적 5승3무8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담스럽다.특히 아시안컵에서는 유독 약했다.72년대회 조별리그에서 1-2,80년대회 결승에서 0-3,2000년대회 조별리그에서 0-1로 패했다.그러나 쿠웨이트는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올해는 카타르 바레인 중국 시리아 등 한수 아래로 평가된 상대와의 대결에서 연패하는 등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가장 위협적인 ‘복병’으로 꼽힐 만하다. 한국으로선 조별리그를 통과하더라도 8강전에서 또 한번 고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8강전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큰 팀이 바로 D조의 이란이기 때문.일본과 조 수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는 이란은 지난 96년 2-6 참패를 안긴 ‘한국킬러’로 확실한 대비책 마련이 요구된다.카타르와 UAE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중동축구에 정통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대표팀 감독은 “갈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게 목표”라면서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100년기업 100년상품] 장수 공기업들은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100년의 역사가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듯이 창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한국전력과 철도청,우정사업본부의 역사는 우리나라 전기와 철도,우편의 역사다. 1887년 3월 경복궁에서 고종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건청궁에 전등이 켜졌다.그로부터 11년 뒤인 1898년 1월 26일 한국전력의 모태가 되는 한성전기가 세워졌다.지금으로부터 106년전이다.미국인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3년뒤 서울 종로의 전차 정거장에도 전등이 훤하게 밝혀지면서 일반 백성들도 전기의 고마움을 실감하게 된다. 1905년 최초의 수력발전소(500㎾)가 평안북도 청천강 지류에 설립됐다.6·25전쟁 이전에는 60∼70%의 전력을 북한으로부터 공급 받았으나 60년대 경제개발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전력 개발에 착수한다.1961년 7월 한국전기가 설립되면서 현 한전의 모습을 갖춘다.현재 총 발전설비는 5380만㎾로 해방 직후 20만㎾와 비교하면 269배 성장했다.석탄(29.6%)과 원자력(29.2%),액화천연가스(25.3%) 등이 전기를 만드는 3대 에너지이다. 110년전인 1894년 7월 현 건설교통부에 해당하는 공무아문에 철도국이 설치됐다.5년뒤에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 33.2㎞를 연결하는 최초의 철도가 개통됐다.당시 독립신문은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 오르더라.”라면서 경인선 개통 소식을 알렸다.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모두 14개의 철도가 잇따라 들어서 짧은 기간에 국가 동맥이 이어졌다.그러나 이는 중국 침략을 겨냥한 군사용과 곡물 운송 등을 위한 수탈용이라는 일본의 숨은 목적이 강해 지금도 입맛이 개운치 않다.현재 총 선로는 창설 당시의 200배에 이르는 6682㎞로 늘었다.경부선 개통(1905년) 당시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30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고속철로 2시간 40분이면 달릴 수 있다. 근대 우편사업은 120년전인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의 창설로 시작됐다.최초의 우표는 그해 11월 18일 발행한 ‘문위우표(文位郵票)’5종이다.1900년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하면서 국제 우편도 취급하게 된다.1948년 체신부를 발족하고 61년엔 1개면에 1개씩의 우체국이 들어서 현재 전국 3710개로 늘었다.집 떠난 가족의 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이웃이었던 집배원은 최근에는 우편주문판매 수주 등으로 우정사업본부의 흑자 경영을 이끄는 세일즈맨으로 변신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 창작극 세계인이 함께 본다

    우리의 순수 창작물 2편이 해외 무대에 진출한다.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열리는 제40회 카르타고 국제페스티벌에 초청된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의 총체극 ‘우루왕’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연하는 에이콤 인터내셔널(대표 윤호진)의 뮤지컬 ‘명성황후’. 먼저 카르타고국제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우루왕’은 15일 카르타고시 야외 원형극장에서 공연한다.카르타고 국제페스티벌은 연극,오페라,무용 등 모든 장르를 아루르는 아랍 및 아프리카 지역 최대 공연예술축제이다.‘우루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우리 고대설화인 ‘바리데기’를 혼합한 작품으로,판소리·한국무용·국악관현악 등 우리 전통 공연 양식을 활용했다.김명곤 극장장이 대본과 연출을 맡고,국립극장 산하 4개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 42명이 출연한다.‘우루왕’은 2000년 경주문화엑스포에서 초연된 이후 지난해 터키 아스펜도스 야외 원형극장 공연 등 모두 5차례 해외공연에 초청됐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8월5일부터 9월1일까지 캐나다 토론토 허밍버드센터에서 공연한다.지난 95년 초연된 이래 뉴욕,LA,런던 등지에서 공연했지만 주로 해외교포 위문 성격에 그쳤던 것에 비해 이번엔 캐나다 굴지의 프로덕션인 머비시프로덕션의 2004·2005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른다.록그룹 ‘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위 윌 락 유’,브로드웨이 흥행작 ‘위키드’ 등이 ‘명성황후’와 함께 초청됐다.에이콤은 “다른 참가작과 패키지로 판매되는 티켓이 벌써 4만장이 팔려 60%의 예매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토론토 공연에는 이태원(명성황후) 김성기(미우라) 등 기존 출연진과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윤영석(고종) 등이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준 열사 순국 97주기 추념식

    고종황제의 밀사로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린 일성(一醒) 이 준 열사의 순국 97주기 추념식이 14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열사의 묘소에서 열린다. 이준열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연길) 주관으로 열리는 추념식에는 김영욱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김우전 광복회장을 비롯한 광복회원과 이북5도민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 국립극장 17~21일 ‘범패 페스티벌’

    속세에서 접하기 힘든 불교음악 범패(梵唄)와 불교무용 작법(作法)을 서울 도심 야외무대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마련된다.17∼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범패 페스티벌’은 국립극장이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무대는 각 지방의 사찰에서 전승되고 있는 5편의 범패와 작법을 선보이는 자리로,우리 전통예술의 한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공연이다.범패는 불교의식인 ‘재(齋)’를 올릴 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로,정가·판소리와 함께 3대 전통 성악으로 꼽힌다. 인도에서 발생해 9세기쯤 당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래 때문에 주로 산스크리트어나 한문으로 돼 있지만 전승 과정에서 우리말 가사와 곡조로 된 한국식 범패 ‘화청’‘축원’등도 불려졌다.민요 명창들이 불러 유명해진 ‘회심곡’이 한 예이다. 무대에 오를 범패와 작법은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산재’(17일),전라도의 ‘영산작법’(18일),영남의 ‘불모산 영산재’(19일),조계종 스님들이 펼치는 ‘범패와 작법’(20일),현대 언어로 만들어진 ‘현충재’(21일).범패는 난이도가 높아 범패를 제대로 전수받은 스님들만이 수행할 수 있다.현재 태고종 사찰인 서울 봉원사에 보존회가 결성돼 범패와 작법을 가장 잘 보존·전승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전라도식 범패와 경상도식 범패가 전승되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조계종 전통의식연구원,영산작법보존회,불모산 영산재보존회,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범패와 작법무보존회 등 주요 단체들과 동주 스님,이석정 스님,석봉스님,인묵 스님 등 예능 보유자들이 참여한다.영산재는 보통 사흘에 걸쳐 열리는 대규모 행사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각 범패의 주요 부분을 간추려 1시간30여분 길이로 축약해 선보일 예정. 예술감독을 맡은 최종민 국립극장예술진흥회장은 “불교를 빼놓고 한국문화를 모두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불상·불탑 감상 못지않게 불교음악과 불교무용을 직접 보고 듣는 것도 한국문화의 깊숙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국립극장은 이번 ‘범패 페스티벌’에 이어 내년에는 ‘굿 페스티벌’을 마련할 예정이다.1만 5000∼2만원.(02)2280-411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성냥·담배 생산 극장·자장면·축구’ 인천이 효시네

    ‘성냥·담배 생산 극장·자장면·축구’ 인천이 효시네

    ‘우리나라에서 축구경기가 처음 열리고 성냥·자장면·쫄면 등이 탄생된 곳은 어디일까.’ 인천시는 최근 ‘개항과 교류의 도시 인천의 뿌리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최초·최고 54개 항목을 발굴해 발표했다. 국민적 스포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축구는 인천에서 비롯됐다.고종 19년인 1882년 6월 영국 해군함 플라잉 피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 들어온 영국 군인들은 선상 생활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부두에서 공을 찼다.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연안 주민들은 흰색 저고리에 대님을 맨 채 영국 선원들이 두고간 공을 찼던 것.이것이 한국 근대축구의 효시다. 또 다소 저급하지만 1950∼1970년대 군대 및 시중에서 널리 유행했던 노래 ‘성냥공장 아가씨’의 유래도 인천이다.성냥공장은 1886년 인천에서 처음 생겼다.이후 1917년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 2000여평 규모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朝鮮燐寸)’이 설립됐다.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이 회사에서는 남녀 직공 500여명이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생산했다. 지금은 경북 의성에 있는 ‘성광성냥공장’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외식하면 떠오르는 자장면과 쫄면의 원조도 인천이다.우리나라 최초의 차이나타운인 중구 북성동에 1905년 생긴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에서 부두노동자 등 서민들을 위해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도록 개발한 음식이 바로 자장면이다. 쫄면은 1970년 중구 경동에 있던 ‘광신제면’ 창업주가 냉면을 만들다가 우연히 불거져 나온 굵은 국수가락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것이 청소년들이 즐기는 쫄면의 유래가 됐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땅의 기가 가장 센 곳은 인천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이다.마리산(摩利山),두악산(頭嶽山)으로도 불리는 마니산은 지기 탐지기의 분당 회전수가 65회로,기가 센 것으로 알려진 다른 지역 20∼30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마니산을 기준으로 한라산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이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현 애관극장),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최초로 담배를 생산한 동양연초회사,최초의 기독교 포교지 등이 인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아빠랑 견학하고 엄마랑 방학숙제

    여름방학이다.‘학원을 더 보낼까? 캠프를 보내볼까?’ 학부모들은 머리부터 아프다.휴가가 아니라도 어디 한 곳쯤은 가볼 만한 유익한 곳을 찾지만 오히려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 답답하기만 하다.서울신문이 서울시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에 초등학생과 부모가 함께 가볼 만한 10곳을 선정했다.하루 또는 이틀 동안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면서 학교 교과와 연계해 배울 수 있는 곳이다.자∼,어디부터 가볼까? ●덕수궁 일대 개화기 민족수난 현장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황제로 즉위하고 만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의 침략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덕수궁 주변에 외국 공사관을 많이 두었다고 한다. 정문으로 왕궁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대한문과 조선 최후의 궁궐 정전인 중화전,개화기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2층 건물인 석어당,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던 정관헌 등을 둘러보자. 고종이 덕수궁에 머물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 터와 고종 황제가 일본의 침략을 피해 피신해 있던 옛 러시아 공사관,성공회 성당 유적지 등 덕수궁 주변까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말 것.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 휴무.(02)771-9951. ●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www.museum.seoul.kr) 경희궁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일제강점기에 이 곳을 헐고 학교(옛 서울고)를 세우기도 했지만 최근 일부 건물을 복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수도 서울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옛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생활,문화,수도 발달과정 등이 소개된 3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아이와 함께 토론해 보자.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5시.올 여름방학 최대 이벤트 ‘앙코르와트 보물전’도 절대 놓치지 말자.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신비의 사원 앙코르와트의 보물 100점을 선보인다.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의 두상과 팔이 넷 달린 비슈누(Vishnu) 입상 등을 만날 수 있다.관람시간 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토·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5호선 광화문역 7·8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714-0313.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하나의 주제를 ‘콕’ 집어 공부하려면 서울 종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자.한반도 역사·문화를 선사∼조선시대까지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박물관이다.‘불교조각’‘금속공예’ 등 특정 주제를 정해서 탐구하는 것도 좋다.전통염료 식물원도 이색 볼거리.나무껍질이나 열매,꽃 등이 염료로 사용되는 감나무,회화나무,향나무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국보급 도자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아빠·엄마와 함께 박물관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23∼24일(금∼토),26∼29일(월∼목) 중 하루만 시간을 내면 고려자기,분청사기,조선백자 등에 대해 배우고 고무 찰흙으로 실습도 할 수 있다. 수업은 오전에만 진행되며 오후엔 자유롭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12일(월)부터 인터넷으로 접수받는다.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 휴무.3호선 경복궁역 4·5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2077-9222-8,9254. ●경복궁(gyeongbok.ocp.go.kr)·민속박물관 조선 최초의 가장 큰 궁궐로 궁궐의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궁 안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쓰이던 곳인지 알아보는 것이 포인트.왕이 조회를 하던 근정전을 비롯,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왕과 왕비의 침실인 강녕전과 교태전,한글이 만들어진 수정전,외국사신을 맞던 경회루,처음으로 전깃불을 밝히던 향원정,명성왕후가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건천궁 등이 있다.광화문 앞의 해치 조각상과 근정전 기단,품계석,한국식 정원인 아미산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미술품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매 주말 열리는 세종조 궁중조회와 화요일을 제외하고 열리는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등도 놓치지 말자.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02)3210-1645∼6. 경복궁 안 국립민속박물관은 보너스.초등학교 사회 교과에 나오는 민속 내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박물관도 꼭 둘러보자.(02)3704-3114,3130∼1.3호선 경복궁역,5호선 광화문역에서 걸어서 5분. ●몽골문화촌 색다른 문화 체험을 찾는다면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몽골 문화촌을 꼭 찾아가 보자. 몽골인의 전통 천막집 게르(Ger)와 마차형 게르,몽골에서 직접 가져온 의상,장신구,악기,생활용품 등을 통해 유목민의 삶을 느낄 수 있다.전통 찻집에서는 몽골 전통차인 수태차,인스니차를 즐길 수 있고,전통 식당에서는 당나귀 고기로 만든 전골,양고기찜,찐만두 등을 맛 볼 수 있다.몽골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 음식기행문을 써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면 몽골 조랑말을 타고 칭기즈칸의 기백을 느껴보자.어린이나 초보자도 쉽게 탈 수 있다. 승마장 800m를 한 바퀴 도는 데 5분,즉석사진까지 촬영해서 1만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서울 청량리역 앞에서 몽골문화촌 330-1번 좌석버스 40분 간격 운행.(031)592-0088. 김재천 이효연기자 patrick@seoul.co.kr ●아인스월드(www.aiinsworld.com) 세계 문화유산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경기도 부천시에 있다. 25개국의 유명 건축물과 세계 7대 불가사의,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총 109점의 건축물이 재현돼 있다.전설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아프리카,신앙이 문화를 이룬 중동,꺼지지 않는 열정의 대륙 남미,대자연의 여유로움 오세아니아,환상의 대륙 아틀란티스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세계일주 기행문을 만들어볼 수 있다.6학년 2학기 사회 교과 단원2와 직접 관련돼 있어 예습용으로는 그만이다. 방학 특별기획인 ‘희귀곤충전시 페스티벌’도 필수 코스.사슴벌레,장수풍뎅이 등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국내 각종 곤충들과 희귀 곤충 표본 1000여점이 전시된다. 24일(토)∼8월29일(일) 아인스월드 전시장에서 열린다.연중무휴.관람시간 오전 9시30분∼밤 10시.1호선 부천 송내역 북부출구로 나가 아인스월드행 90번 또는 5-2번 버스를 타고 가다 정문 하차.(032)320-6000. ●종묘(jongmyo.ocp.go.kr)와 창경궁(changgyeong.ocp.go.kr) 종묘는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내던 곳.독특한 건축물 배치 양식과 전통 제례예절·음악 등이 잘 보존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역대 임금들의 위패를 모셔둔 정전(正殿)과 영녕전,임금이 제사지내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던 어숙실,공신들의 위패를 모셔둔 공신당 등이 있다.어떤 행사를 치르는 곳인지 알아보자.임금의 이름에 ‘조’나 ‘종’이 붙는 차이,위패의 뜻도 배워보자.(02)765-0195. 창경궁은 조선왕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전인 명전전이 보존돼 있다.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창경궁은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지내던 곳이자 연산군이 쫓겨났던 곳,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숨졌던 곳이기도 하다.한때 일본에 의해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변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02)762-4868.표 하나로 두 곳을 둘러볼 수 있다.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종묘 안내를 원한다면 전화예약 필수. ●창덕궁(www.cdg.go.kr ) 빼어난 자연과 이에 어울리는 건축물들로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한국식 정원양식을 잘 갖춘 후원이 유명하다.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광해군이 복원한 것.광해군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돈화문과 영조와 연산군 즉위식이 있었던 인정문,임금의 회의실인 희정당,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승하한 대조전.세자가 공부하던 성정각.인조가 신하들과 시를 짓던 옥류천 등 볼거리가 많다.5칸 돈화문이 3칸만 쓰였던 이유와 당시 시간을 알려주던 방법 등을 알아보자. 개별 자유관람은 할 수 없으며,1시간20분 동안 직원 안내를 받아야 한다.매주 월 휴무.오전 9시15분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매시 15분·45분 입장.외국어로 듣고 싶다면 영·일·중어 안내를 선택해도 좋다.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762-0648,8262. ●강화도(www.ganghwa.incheon.kr) 마니산과 역사관 원시시대부터 개화기까지 수많은 역사유물이 남아있다.몽고 침입 당시 고려의 마지막 저항지였으며,개화기 신미양요,병인양요의 현장이다.팔만대장경이 제작된 곳도 여기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북방식 지석묘 고인돌을 둘러볼 수도 있다.6학년 1학기에 배운 사회 교과 내용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이다. 평소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찌든 가슴을 활짝 펴주고 싶다면 강화도 마니산 등반을 권한다.정상에서는 강화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에서 소원을 빌고 내려오면 3시간쯤 걸린다. 등산이 부담스러우면 강화역사관을 찾아도 좋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이 재현돼 있다. 그 제작과정이 알기 쉽게 소개돼 있으며,제작된 경판으로 직접 인쇄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서울∼강화읍 직행버스 또는 신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40분∼오후 9시3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032)933-2178. ●영릉·신륵사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합장릉임을 알려주는 혼유석과 봉분 둘레에 12간지가 새겨져 있는 석주,제사를 지내던 정자각도 살펴보자.해시계와 자격루,관천대,측우기,혼천의 등과 세종의 업적과 관련된 과학문화재들이 가장 많이 복원돼 있어 5학년 2학기 사회과 예습을 할 수 있다.세종의 업적 가운데 한 부분을 주제로 잡아 탐구기행문을 써보거나 세종 관련 자료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 화보집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륵사는 영릉을 돌보던 절로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깊은 곳이다.최근 신륵사 관광지가 조성돼 효종대왕릉과 목아 불교박물관,명성왕후 생가를 비롯해 고달사와 파사성 등 오래된 절과 유적지까지 둘러보려면 이틀은 잡는 것이 좋다.여주군청 홈페이지(www.yeoju.gyeonggi.kr) 참조.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40분 간격 여주행 버스 출발.(031)885-3123.
  • 아빠랑 견학하고 엄마랑 방학숙제

    여름방학이다.‘학원을 더 보낼까? 캠프를 보내볼까?’ 학부모들은 머리부터 아프다.휴가가 아니라도 어디 한 곳쯤은 가볼 만한 유익한 곳을 찾지만 오히려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 답답하기만 하다.서울신문이 서울시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에 초등학생과 부모가 함께 가볼 만한 10곳을 선정했다.하루 또는 이틀 동안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면서 학교 교과와 연계해 배울 수 있는 곳이다.자∼,어디부터 가볼까? ●덕수궁 일대 개화기 민족수난 현장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황제로 즉위하고 만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의 침략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덕수궁 주변에 외국 공사관을 많이 두었다고 한다. 정문으로 왕궁수문장 교대식이 열리는 대한문과 조선 최후의 궁궐 정전인 중화전,개화기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2층 건물인 석어당,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던 정관헌 등을 둘러보자. 고종이 덕수궁에 머물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 터와 고종 황제가 일본의 침략을 피해 피신해 있던 옛 러시아 공사관,성공회 성당 유적지 등 덕수궁 주변까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말 것.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 휴무.(02)771-9951. ●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www.museum.seoul.kr) 경희궁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일제강점기에 이 곳을 헐고 학교(옛 서울고)를 세우기도 했지만 최근 일부 건물을 복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수도 서울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옛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생활,문화,수도 발달과정 등이 소개된 3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아이와 함께 토론해 보자.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5시.올 여름방학 최대 이벤트 ‘앙코르와트 보물전’도 절대 놓치지 말자.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신비의 사원 앙코르와트의 보물 100점을 선보인다.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의 두상과 팔이 넷 달린 비슈누(Vishnu) 입상 등을 만날 수 있다.관람시간 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토·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5호선 광화문역 7·8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714-0313.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하나의 주제를 ‘콕’ 집어 공부하려면 서울 종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자.한반도 역사·문화를 선사∼조선시대까지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박물관이다.‘불교조각’‘금속공예’ 등 특정 주제를 정해서 탐구하는 것도 좋다.전통염료 식물원도 이색 볼거리.나무껍질이나 열매,꽃 등이 염료로 사용되는 감나무,회화나무,향나무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국보급 도자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아빠·엄마와 함께 박물관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23∼24일(금∼토),26∼29일(월∼목) 중 하루만 시간을 내면 고려자기,분청사기,조선백자 등에 대해 배우고 고무 찰흙으로 실습도 할 수 있다. 수업은 오전에만 진행되며 오후엔 자유롭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12일(월)부터 인터넷으로 접수받는다.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 휴무.3호선 경복궁역 4·5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2077-9222-8,9254. ●경복궁(gyeongbok.ocp.go.kr)·민속박물관 조선 최초의 가장 큰 궁궐로 궁궐의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궁 안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쓰이던 곳인지 알아보는 것이 포인트.왕이 조회를 하던 근정전을 비롯,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왕과 왕비의 침실인 강녕전과 교태전,한글이 만들어진 수정전,외국사신을 맞던 경회루,처음으로 전깃불을 밝히던 향원정,명성왕후가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건천궁 등이 있다.광화문 앞의 해치 조각상과 근정전 기단,품계석,한국식 정원인 아미산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미술품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매 주말 열리는 세종조 궁중조회와 화요일을 제외하고 열리는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등도 놓치지 말자.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02)3210-1645∼6. 경복궁 안 국립민속박물관은 보너스.초등학교 사회 교과에 나오는 민속 내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박물관도 꼭 둘러보자.(02)3704-3114,3130∼1.3호선 경복궁역,5호선 광화문역에서 걸어서 5분. ●몽골문화촌 색다른 문화 체험을 찾는다면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몽골 문화촌을 꼭 찾아가 보자. 몽골인의 전통 천막집 게르(Ger)와 마차형 게르,몽골에서 직접 가져온 의상,장신구,악기,생활용품 등을 통해 유목민의 삶을 느낄 수 있다.전통 찻집에서는 몽골 전통차인 수태차,인스니차를 즐길 수 있고,전통 식당에서는 당나귀 고기로 만든 전골,양고기찜,찐만두 등을 맛 볼 수 있다.몽골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 음식기행문을 써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면 몽골 조랑말을 타고 칭기즈칸의 기백을 느껴보자.어린이나 초보자도 쉽게 탈 수 있다. 승마장 800m를 한 바퀴 도는 데 5분,즉석사진까지 촬영해서 1만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서울 청량리역 앞에서 몽골문화촌 330-1번 좌석버스 40분 간격 운행.(031)592-0088. 김재천 이효연기자 patrick@seoul.co.kr ●아인스월드(www.aiinsworld.com) 세계 문화유산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경기도 부천시에 있다. 25개국의 유명 건축물과 세계 7대 불가사의,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총 109점의 건축물이 재현돼 있다.전설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아프리카,신앙이 문화를 이룬 중동,꺼지지 않는 열정의 대륙 남미,대자연의 여유로움 오세아니아,환상의 대륙 아틀란티스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세계일주 기행문을 만들어볼 수 있다.6학년 2학기 사회 교과 단원2와 직접 관련돼 있어 예습용으로는 그만이다. 방학 특별기획인 ‘희귀곤충전시 페스티벌’도 필수 코스.사슴벌레,장수풍뎅이 등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국내 각종 곤충들과 희귀 곤충 표본 1000여점이 전시된다. 24일(토)∼8월29일(일) 아인스월드 전시장에서 열린다.연중무휴.관람시간 오전 9시30분∼밤 10시.1호선 부천 송내역 북부출구로 나가 아인스월드행 90번 또는 5-2번 버스를 타고 가다 정문 하차.(032)320-6000. ●종묘(jongmyo.ocp.go.kr)와 창경궁(changgyeong.ocp.go.kr) 종묘는 역대 임금의 제사를 지내던 곳.독특한 건축물 배치 양식과 전통 제례예절·음악 등이 잘 보존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역대 임금들의 위패를 모셔둔 정전(正殿)과 영녕전,임금이 제사지내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던 어숙실,공신들의 위패를 모셔둔 공신당 등이 있다.어떤 행사를 치르는 곳인지 알아보자.임금의 이름에 ‘조’나 ‘종’이 붙는 차이,위패의 뜻도 배워보자.(02)765-0195. 창경궁은 조선왕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전인 명전전이 보존돼 있다.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창경궁은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지내던 곳이자 연산군이 쫓겨났던 곳,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숨졌던 곳이기도 하다.한때 일본에 의해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변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02)762-4868.표 하나로 두 곳을 둘러볼 수 있다.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종묘 안내를 원한다면 전화예약 필수. ●창덕궁(www.cdg.go.kr ) 빼어난 자연과 이에 어울리는 건축물들로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한국식 정원양식을 잘 갖춘 후원이 유명하다.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광해군이 복원한 것.광해군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돈화문과 영조와 연산군 즉위식이 있었던 인정문,임금의 회의실인 희정당,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승하한 대조전.세자가 공부하던 성정각.인조가 신하들과 시를 짓던 옥류천 등 볼거리가 많다.5칸 돈화문이 3칸만 쓰였던 이유와 당시 시간을 알려주던 방법 등을 알아보자. 개별 자유관람은 할 수 없으며,1시간20분 동안 직원 안내를 받아야 한다.매주 월 휴무.오전 9시15분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매시 15분·45분 입장.외국어로 듣고 싶다면 영·일·중어 안내를 선택해도 좋다.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02)762-0648,8262. ●강화도(www.ganghwa.incheon.kr) 마니산과 역사관 원시시대부터 개화기까지 수많은 역사유물이 남아있다.몽고 침입 당시 고려의 마지막 저항지였으며,개화기 신미양요,병인양요의 현장이다.팔만대장경이 제작된 곳도 여기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북방식 지석묘 고인돌을 둘러볼 수도 있다.6학년 1학기에 배운 사회 교과 내용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이다. 평소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찌든 가슴을 활짝 펴주고 싶다면 강화도 마니산 등반을 권한다.정상에서는 강화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에서 소원을 빌고 내려오면 3시간쯤 걸린다. 등산이 부담스러우면 강화역사관을 찾아도 좋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이 재현돼 있다. 그 제작과정이 알기 쉽게 소개돼 있으며,제작된 경판으로 직접 인쇄해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서울∼강화읍 직행버스 또는 신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40분∼오후 9시3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032)933-2178. ●영릉·신륵사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합장릉임을 알려주는 혼유석과 봉분 둘레에 12간지가 새겨져 있는 석주,제사를 지내던 정자각도 살펴보자.해시계와 자격루,관천대,측우기,혼천의 등과 세종의 업적과 관련된 과학문화재들이 가장 많이 복원돼 있어 5학년 2학기 사회과 예습을 할 수 있다.세종의 업적 가운데 한 부분을 주제로 잡아 탐구기행문을 써보거나 세종 관련 자료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 화보집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륵사는 영릉을 돌보던 절로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깊은 곳이다.최근 신륵사 관광지가 조성돼 효종대왕릉과 목아 불교박물관,명성왕후 생가를 비롯해 고달사와 파사성 등 오래된 절과 유적지까지 둘러보려면 이틀은 잡는 것이 좋다.여주군청 홈페이지(www.yeoju.gyeonggi.kr) 참조.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40분 간격 여주행 버스 출발.(031)885-3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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