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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이프 코리아] 한반도, 고조되는 지진우려

    [세이프 코리아] 한반도, 고조되는 지진우려

    2004년 5월29일 오후 7시14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순간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경북 울진 동쪽 바다 80㎞에서 지진이 일어나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진도 5.2로 한반도 지진관측 10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지진 무풍지대’로 알려져 있던 한반도에 최근 들어 지진 발생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우려 또한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지진도 지진이지만, 일본 서해안 지역의 대형 지진에 따라 동해안 지역까지 미칠 수 있는 지진해일에 대한 경각심도 증대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진 발생 급증 지진은 지구 내부의 암석판이 운동하거나 지구가 균형을 잡기 위해 일어나는 요동현상이다. 암석판은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을 비롯, 태평양판, 호주-인도판 등 10여개에 이른다. 지진은 판과 판 사이의 경계면에서 많이 발생한다. 일본에서 지진이 잦은 것은 태평양판과 필리핀판,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안쪽에 속해 있어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되곤 했다. 기상대가 첨단 장비로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모두 678차례, 연평균 24차례 발생했다.1905년 이후 진도 5.0 이상의 강한 지진은 모두 6차례 일어났다. 일본, 이란 등 지진이 빈번한 나라들보다는 적은 수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진의 빈도가 높아졌다.1980년대에 한해에 6∼26차례이던 지진은 1990년대 들어 15∼50차례로 대폭 늘었다. 일부가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유감지진은 규모 3.0 이상이다. 그러나 4.0이 넘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진동을 느끼면서 위기감을 갖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05년까지 규모 4.0 이상 지진은 모두 45차례, 연평균 2.5차례 발생했다. 소방방재청 재해경감팀 정길호 연구관은 “지진 측정 장비의 성능이 향상된 측면도 있지만 조선시대에 빈번했던 단층 운동이 최근 다시 활성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와 함께 유라시아판에 속한 일본 후쿠오카에 강진이 일어났다는 것도 우려를 높이는 요인이다.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의 경계면에 속한 동부와는 달리 후쿠오카 등 서남부 지역은 지진의 안전지대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진도 7.0의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서 한반도도 지진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백두산의 조짐도 심상치 않다.2004년 주변에서 진도 4.3,3.3의 지진이 거푸 일어나고, 백두산의 마그마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북한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한반도 주변에 불안정한 지각판 구조가 따로 존재한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지진보다 위협적인 지진해일 지진의 여파로 생기는 지진해일(쓰나미)은 지진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다. 지진에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가 수백㎞에 이르는 물살에 실려 광범위한 지역에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를 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안에서는 지진해일의 파고가 그리 높지 않은 것처럼 보여 일반 파도와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거대한 파도가 해안가를 덮치곤 한다.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해역을 강타한 ‘쓰나미 재앙’도 이런 이유로 피해가 컸다. 우리나라는 동해안이 지진해일의 사정권에 놓여 있다.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해일은 울릉도에는 50분, 동해안 전역에는 100분 뒤면 도달한다. 동해안의 어항과 해수욕장들이 10㎞ 정도의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다시피 한 상황에서 사람이나 배가 대피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내진성능을 규정한 법과 지진·지진해일 관측 및 예·경보시스템, 지진재해대응시스템 구축 등 지진방재종합대책을 담은 지진재해경감대책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정확한 지진과 지진해일 예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인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과 함께 지진 등으로 인한 피해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진동 계속땐 엘리베이터 사용 ‘금물’ 우리나라에서 직접적인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지진은 잦지 않다. 하지만 지진의 위협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만큼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요령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진은 전쟁과 비슷한 비상 상황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부상은 대부분 진동으로 떨어지는 물체 때문이다. 크고 무거운 물건은 높은 선반에 올려놓지 않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국내 건축물에 내진 설계 기준이 적용된 것은 1988년. 이전에 지은 집은 지진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균열 조짐이 있으면 바로 조치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진으로 진동이 계속될 때는 섣불리 건물 밖에 나가지 않아야 한다. 유리 파편이나 간판 등 떨어지는 물체에 다칠 수 있다.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린 뒤 대피하는 것이 좋다. 정전으로 멈출 수 있는 만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을 때 진동을 느끼면 곧바로 정지시킨다. 여진은 진동은 작지만 지진으로 약해진 건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건물을 점검하되, 붕괴 우려가 있는 만큼 최초 진단은 멀리서 한다. 지진으로 정전이 됐을 때는 가스가 누출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양초나 라이터를 사용하면 폭발할 수 있다. 가스가 누출되면 가스 밸브를 잠근 뒤 관계기관에 신속히 신고한다. 대형·고층 건물에서는 벽 사이의 공간 등 견고한 구조물 아래로 피난하는 것이 현명하다. 목조건물은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비교적 안전하다. 달리고 있는 자동차에서 지진을 만났다면 바로 멈춰 차 옆에 엎드리거나 앉아 있자. 대피장소로 고가도로 아래는 피하는 것이 좋다. 상판이 떨어지는 등 더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역사에 나타난 지진기록 우리나라의 지진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전해온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 때까지 지진이 일어난 기록은 모두 26건이다. 자연재해로는 가뭄에 이어 2위다. 대부분 “지진이 일어나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땅이 갈라진 지열(地裂)도 3차례나 있었다고 적었다. 같은 책의 고구려본기에는 19건, 백제본기에는 16건의 지진기록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도 지진이 많았다. 땅이 흔들린 지동(地動)이 2건, 땅이 꺼진 지함(地陷)이 1건, 탑이 흔들린 탑동(塔動)이 5건, 돌이 무너진 석퇴(石頹)가 3건 등 모두 47건에 이른다. 특히 혜공왕 15년인 779년에는 100여명이 사망했다. 고려시대엔 모두 152차례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고려사’ 등에 나와있다. 기록 내용도 “집과 담이 무너졌다.”는 등의 표현으로 전 시대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고려시대에는 지진의 원인을 정치적인 데서 찾으려고 했다. 명종 14년인 1184년에 개경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점을 쳤는데 ‘신하가 신하노릇을 안했다.’는 점괘가 나왔다. 명종 26년인 1196년에도 “나라의 모든 명령이 신하에게서 나오는 탓”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무신집권기로 지진의 원인을 무신의 정권 독점에서 찾으려고 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진 예방방식도 특이했다. 고종 15년 1228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자 왕이 삼청(三淸)에 기도하여 지진이 없기를 빌었고, 공민왕 6년 1327년엔 지진을 이유로 참형·교형을 받을 중죄인 이외에는 모두 용서해주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진기록이 훨씬 더 많다.1392년부터 1863년까지 모두 1500건의 지진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는 지진을 외적의 침입에 대한 경고로 인식하기도 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신도시 기반시설을 왜 세금으로…”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을 늘리면서도 분양가를 낮추고 용적률을 높인다는 이번 조치의 큰 틀은 긍정적이라고 환영했다.그러나 분양가를 몇 천만원 낮춘다고 집값이 내릴지 미지수인데다 국민세금으로 특정 신도시의 기반시설을 지어주는 것은 경제원리에 맞지도 않고 기존 신도시와의 형평성 논란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집값 급등현상은 불안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므로 공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분양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조치가 나와 심리적으로 집값 안정을 가져오고 시장이 진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팀장은 “집값은 결국 주변 시세를 따라가기 때문에 분양가를 좀 낮춘다고 집값이 안정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역효과에 대한 우려도 많다. 스피드뱅크 김광석 실장은 “쾌적한 주거환경에 대한 수요가 높은 만큼 용적률이 높은 답답한 아파트가 많아지면 용적률이 낮은 기존 아파트의 값이 더 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RE멤버스 고종완 소장은 다세대·다가구 규제완화와 관련,“투기를 부채질하지 않으면서도 공사기간이 짧아 6개월 뒤면 시장에서 효과를 볼 수 있어 전세와 월세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강남대체 입지 의문” 시장반응 ‘무덤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또 ‘신도시’카드를 내밀었다.‘8·31대책’‘3·30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동시에 수도권에 신도시 두세 곳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각종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지 않는데다 추석 이후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자 다급해진 정부가 대규모 물량 공급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무덤덤하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집값이 당장 잡힐지는 의문이다. 신도시 발표가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하는 부동산 전문가도 많다.●당장 효과는 미미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니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장관이 직접 나서서 집을 사거나 청약을 서두르지 말라고 가이드해주는 것은 우선 심리적인 안정효과로 당장의 집값을 잡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각종 부동산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가수요를 막는 동시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은 장기적인 집값 안정대책이다. 그러나 시장은 냉랭하다. 추가로 신도시 두세 개 조성한다고 당장 집값이 잡히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숱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잡히지 않았던 과거 주택정책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는 강남 중대형 아파트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신도시를 조성하더라도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입지를 골라 값싸게 공급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추가 신도시는 강남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강남 중대형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기해 있다.”면서 “이들은 판교 신도시 정도면 몰라도 그 이상의 수도권 밖으로 나가 집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실수요자 구입 추천 부동산 시장에선 신도시 추가 발표에 구애받지 말고 실수요자라면 집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정부가 발표한 추가 신도시가 입지로 볼 때 강남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2009년,2010년에 아파트를 분양해 입주 때까지 적어도 7∼8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당장 집값을 잡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 매물이 크게 증가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집주인들이 높은 양도세를 내느니 차라리 보유세를 감수하고라도 팔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매물이 달리면서 집값 상승세가 심각하다.”면서 “신도시 개발 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요자라면 지금 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 사장은 “공급확대 방침은 수요억제대책과 동시에 내놨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강남, 판교만 들썩이는 게 아니라 수도권 전체가 강하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연말쯤 아파트값 조정이 눈에 띌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은 “최근의 아파트값 상승세는 11월이 되면 진정되고 연말로 가면 조정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미 오른 값을 따라 매입하기보다는 조정 이후 구입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13) 서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13) 서울길

    한양 도성(都城)이 지척이다.‘너덜이’(판교)를 지난 영남대로는 서울시계인 ‘달래내 고개’(서초구 원지동)로 들어선다. 괴나리 봇짐을 메고 부산 동래를 출발해 1000리를 달려온 영남 선비들에게 이 고갯길은 청운의 꿈에 부풀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걸으면 여기에서 하루 정도면 도성에 이를 수 있다.‘용인로’(龍仁路)로 불렸던 이 길에서 옛길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사연을 간직한 옛 지명들만이 한양으로 가는 길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조선후기 지리학자인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경조오부도’(1861년 목판본·보물 850호)를 토대로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위원 나각순 박사의 자문을 받아 영남 선비들이 한양으로 들어왔던 옛길을 찾아 나섰다. ●한양을 지척에 둔 고갯길 달래내 고개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옆에 난 2차선 포장도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서 ‘삼남대로’로 불렸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차의 정체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지명이기도 하다. 이 길은 원지동과 양재동을 거쳐 사평리(沙平里·한남대교 인근)에 있는 사평나루나 상림(桑林·반포대교 인근)에 있는 잠원나루를 통해 한양에 이르는 길이다. 달래내 고개를 넘기 직전의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천림산 봉수지’(성남시 수정구 금토동)는 한양이 지척에 있음을 알린다.‘천천현(천림현) 봉수대’로 불리는 이 봉수대는 부산 다대포를 출발한 봉수가 서울 남산으로 이어지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봉수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연기가 피어 올랐을 것이다. 최근 발굴돼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으로 현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02년 9월 경기도 기념물 179호로 지정됐다. 청계산 옥녀봉 아래 원지동에서도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원지동은 조선시대 공용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는 ‘원’(阮)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지금도 이렇게 불린다. ●한양길 마지막 휴식처, 양재역 길은 강남대로를 따라 양재역으로 이어진다. 역(驛)은 말 그대로 역마를 갈아타는 곳으로 양재역은 한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한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인근 ‘말죽거리’는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도성에 들어가기 직전에 말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고 해서 붙여졌다. 양재역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때문에 심심치 않게 ‘벽서’(대자보)가 나붙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양재역 벽서사건은 명종 2년(1547년)에 일어났는데, 을사사화 직후인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빗대 “암탉이 궁궐에서 울어 나라가 어지럽다.’는 내용의 비방글이 나붙었다고 한다. 현재는 ‘양재역터’였음을 알리는 조그만 표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근 서초구청 뒷산(양재고등학고 자리)에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묘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다. 당시 봉화 정씨 집성 묘역은 강남사거리 태극당 인근에 있었지만 영동개발에 따라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으로 이장됐다. ●한강을 건너 도성으로 양재역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한 길은 강남대로를 따라 한남대교로 이어지는 길이고, 다른 길은 교대역을 거쳐 반포대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대동여지도에 ‘사평리’로 기록된 곳은 현재 한남대교 아래로 사평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강진 나루’에 내렸다고 한다. 현재 서초구에는 ‘사평로’(교보빌딩 사거리∼동작대교)라는 이름으로 근근이 명맥만 남아 내려오고 있다. 다른 길은 ‘상림’(桑林·뽕나무숲)이라 불리는 반포대교 아래로 여기에 잠원나루가 있어 한강을 건너 용산구 점말과 서빙고(西氷庫)로 이어졌다. 잠원나루는 지금 잠원변전소와 한신아파트 119동 샛길을 따라 이르는 곳에 위치했다고 한다. 현재 한남역 인근에 위치한 한강진(漢江津)에 내린 사람들은 단국대 앞에 있는 한남로를 따라 버티고개를 넘는다. 한강진은 나루터 겸 군사·방위초소 역할을 했으며, 좁은 의미에서 ‘한강’은 한강진을 일컬었다고 한다. ●힘겨웠던 한양 1000리 길 왕복 6차선 한남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버티고개(약수고개)는 옛날 궁궐을 지키던 순라군(巡邏軍) 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 외치며 도둑을 쫓았다. 이를 ‘번티’(番峙)라 하다가 변하여 버티고개가 됐다고 한다. 남산순환도로 아랫길에도 ‘큰 버티고개’가 있었다고 한다. 세조 때에는 타워호텔 앞 언덕 위에 남소문(南小門)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남소문으로 들어가 장충단길을 거쳐 도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가 일찍 죽는 등 궁중에 안 좋은 일이 잇따르자 예종 1년(1496년) 문이 철거됐다. 당시 음양가들이 “성곽의 동남쪽에 문을 내 지기가 상해 왕실의 피해가 생겼다.”며 철거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약수동 방향으로 돌아 장충체육관 앞을 지나 중구 광희동 광희문(光熙門)을 이용했다. 광희문은 태조 5년(1396년)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됐으며, 시신이 밖으로 나가는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렸다. 당시 도성에서 장례를 치른 뒤 동쪽으로는 광희문, 서쪽으로는 서소문을 통해 시신이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또한 서빙고나루나 점말나루에서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반포로를 따라 녹사평역을 거쳐 용산 미8군 기지 내를 거쳐 남대문에 이르렀다. 녹사평(綠莎坪)은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뜻의 조선시대 지명으로 고종 때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 잡초가 무성해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평민들은 남대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으며, 서남간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부산 동래를 출발한 힘겨웠던 한양 1000리 길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시 시사편찬위 나각순 박사 “도로의 명칭은 지명과 함께 옛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입니다.” 지난 25년간 서울시의 역사를 연구해 온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위원 나각순 박사는 ‘대동여지도’에 나온 옛길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서 지방으로 나가는 큰 대로는 모두 9개. 길은 영남대로로 이어지는 용인로를 비롯해 강화로, 인천간로, 시흥로, 과천로, 광주로, 양근로(가평로), 양주로, 고양로 등이다. 용인로는 영남·충북사람들이, 광주로는 강원·충북사람들이, 노량진·과천로는 충남·호남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영남대로는 주로 과거를 보러온 영남 과객(科客)들과 영남 지방으로 파견·부임하는 관리, 서울에서 지방관청의 사무를 처리하는 경저리(京邸吏) 등이 주로 이용하거나 영남지역 소규모 물품의 물자수송로와 군사이동로 등으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모로가도 서울만…또다른 영남대로 문경새재를 넘어 경기도 여주·이천을 거쳐 넘어온 사람들 중에는 ‘광주로’(廣州路)를 이용하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시 광지원 삼거리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해 송파대로를 따라 도성으로 들어가거나, 남한산성을 북쪽으로 돌아 천호대로를 따라 도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남한산성을 관통한 사람들은 송파대로를 따라 현재의 석촌호수에 이르러 배를 탔다.1971년 물막이 공사와 매립공사를 하기 전까지 한강의 본류였다. 현재의 한강은 샛강이었고, 잠실역에서 잠실대교까지는 여의도와 같은 하중도였다. 조선시대 행인들은 현재 서호에서 ‘서호나루’와 삼전도 나루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 뚝섬나루터로 들어갔다. 뚝섬나루에 내린 사람들은 뚝섬길을 따라 내려와 한양대 후문에 있는 조선시대 가장 긴 다리인 ‘살곶이 다리’를 건너 왕십리를 지나 광희문에 이르렀다. 남한산성 주변을 돌아 천호대로를 따라온 사람들은 광진교 아래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광나루에서 내렸다. 이어 광나루길을 따라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거쳐 한양대, 왕십리를 지나 도성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아파트값 또 꿈틀거린다

    아파트값 또 꿈틀거린다

    집값이 다시 큰 폭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오름폭이 커지고 주춤하던 거래도 되살아나고 있다. 추석 이후 이사철이 끝나고 북한 핵실험 강행 등으로 시장이 움츠러들 것이라던 예상을 비껴가고 있다.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불안심리가 실수요자에게까지 옮겨가는 분위기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 고공 행진 여전 서울 강남권 주요 재건축아파트는 추석 이후 보름 만에 최고 1억 9000만원 상승한 곳이 있다. 이사철 종료, 북핵 파동에도 강남 집값은 미동도 않고, 상승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주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0.62%로 전주(0.42%)에 비해 오름폭이 0.2%포인트 커졌다. 아파트값 상승세는 재건축 아파트가 주도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13평형,15평형은 2000만∼3000만원 올랐다. ‘3·30 대책’ 이전의 최고 시세를 갈아치웠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34평형은 추석 이전 10억 5000만원에서 12억 4000만원까지 올랐다. 강동구 고덕 시영 13평형은 추석 전 3억 1000만원에서 현재 4억 4000만원으로 올랐다. 거래량도 부쩍 늘었다. 서울 강남구 주택 거래 건수는 3월 876건에서 3·30 대책 여파로 8월에는 137건으로 줄었지만 9월에 다시 383건으로 늘었다. 강북지역 일반 아파트값도 강세를 띠고 있다. 매물도 달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삼호공인중개사 사무소 김정선 사장은 “팔자 물건이 쏙 들어가 거래가 안된다. 집주인들이 30평형대 아파트값을 2000만∼3000만원 올려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천구 목동 신도시 아파트도 추석 이전 싼 매물이 빠지면서 35평형 호가는 추석 전에 비해 5000만원 정도 올랐다. 수도권도 들썩거린다. 남양주시 도농동 부영E그린타운 2차 49평형은 지난 달 4억 9000만원에서 현재 3000만원 올라 5억 2000만원을 부른다. ●판교 낙첨자 향배 주목 전문가들은 집값 불안 원인을 ▲강남 중대형 아파트 공급 한계▲전셋값 불안으로 인한 가격 상승▲강북 개발 기대감▲판교 낙첨자 기존 주택 구입에서 찾고 있다. 투기 세력이 아닌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종완 RE멤버스 소장은 “투자 수요보다는 실수요자가 많다.”며 “강북을 중심으로 재정비촉진지구 등 호재가 계속되고 있어 강남·북의 집값이 모두 불안하다.”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책꽂이]

    ●일본론(다이지타오 지음, 박종현 옮김, 소화 펴냄) 일본의 봉건시대에 모든 토지는 번주에게 귀속됐고, 농민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었으며 성을 갖지 못하고 칼을 차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3000년전 중국의 제도와 흡사한 것으로, 천황·구교·번주·무사로 구성되는 통치계급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완전한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다. 중국 ‘천택보’ 기자를 지낸 저자는 이처럼 비교론적 관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을 살핀다.‘신권적 미신과 일본의 국체’‘존왕양이와 개국진취’‘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의 글이 실렸다.7200원. ●백색국가 건설사(박진빈 지음, 앨피 펴냄) 어느 시대건 화두는 개혁이다.19세기말∼20세기초 ‘젊은 제국’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급부상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혁신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미국의 개혁정책 속엔 향후 미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백색국가’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당시 주요 행사장 중 하나였던 ‘백색도시’에서 가져온 말. 미 제국이 지향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표상한다. 미국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다룬 역사교양서.1만 3800원.●멸망하는 국가(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펴냄) 일본 닛케이BP사의 웹사이트에 연재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미디어 소시오폴리틱스’ 중에서 의미있는 글들을 골라 묶었다.‘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저자는 “정치가에게 야스쿠니 문제는 단지 ‘마음의 문제’인가?”라며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외교를 강하게 비판한다.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호리에 다카후미의 라이브도어 사건, 천황 후계자를 둘러싼 여성 천황·모계 천황 용인 문제, 고이즈미의 아베 신조에 대한 총애의 역사 등을 다뤘다.1만 8000원.●삼라만상을 열치다(김풍기 지음, 푸르메 펴냄) 한시와 에세이의 접목을 시도한 책.24절기 자연의 운행을 담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 작품들을 골라 엮었다. 도연명, 구양수, 두보 등 중국의 시인들과 이달, 유방선, 이규보, 정약용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편 80여 편이 실렸다. 책의 제목은 조선시대 문인 김구의 ‘문에 붙일 입춘 글귀를 쓰다(題立春帖戶)’의 한 구절을 번역한 것이다.1만 1000원.●매천야록(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구한말 3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인 매천 황현이 1864년(고종1년)부터 1910년(순종4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 그는 임금이건 충신이건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비판해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 즉 매천의 붓 아래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낳았다.1910년 56세때 일제에 의해 끝내 나라가 강탈당하자 그는 자신이 국록을 먹은 적은 없지만 지식인으로서의 도덕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절명시 네 수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1만 4500원.
  • “증조부 얘기는 학계에서도 논란”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19일 자신이 조선말 전북 고부군수를 지낸 조병갑의 증손녀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증조부의 학정으로 동학혁명이 일어났다는 월간조선 보도에 반박했다. 월간조선은 최신호에서 국어대사전(이홍직 편저)을 인용하면서 “조병갑이 조선 고종 때 고부군수로서 저수지를 축조할 때 군민을 강제로 동원하고, 터무니없이 세금을 징수해 700여섬을 횡령·착복해 이런 학정에 대한 반발로 동학혁명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조 전 수석은 이날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조상에 대해 감출 것도 없고, 감춘 적도 없다.”면서 조병갑이 증조부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조 전 수석은 “이미 학계에서는 증조부에 관한 사실이 오류일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면서 “역사적 사건은 한 개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조 전 수석은 “(증조부는)고부에 부임하기 직전 김해부사를 지냈고 그곳에서 선정을 베풀어 마을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다.”면서 “최근까지도 부사의 선정이 전해져 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15년 전쯤 아버지를 불러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고 들었다.”고 소개했다.부사는 군수보다 높은 직위인데 왜 증조부가 군수로 좌천됐는지, 다른 곳에 발령받은 지 2개월 만에 민란이 있는 전라도에 급파됐는지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기자의 자세가 아닐까라고 조 전 수석은 반문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안동별궁 돌담 사라지나

    서울 안국동에 있는 조선 후기 궁궐 ‘안동별궁’(安洞別宮)의 돌담 보존작업이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외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18일 문화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 7월부터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화동길 탐방로’ 조성 공사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안동별궁 돌담이 훼손되고 있다. 서울시는 풍문여고 부근에서 탐방로 조성공사를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돌담 아래 쪽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예전부터 흙에 덮여 묻혀 있던 돌담 밑의 장대석(長臺石·하부에 가로로 놓는 돌)은 돌담에 맞닿게 새로 설치한 화강암에 갇힌 모양이 됐다. 북촌 가꾸기를 위한 공사가 오히려 소중한 문화재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셈이다. 1881년(고종 18년)에 지어져 왕실 만찬장으로 쓰이던 안동별궁은 지금은 내부 건물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풍문여고가 들어섰다. 풍문여고 담장 자리에 있던 돌담도 3개면은 모두 없어지고 학교 정문에서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한 쪽 면만 남아 학교 담장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노후로 붕괴 위험이 큰 상태다. 이처럼 돌담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화재청이나 서울시가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연합뉴스
  • 주말의 도심 고궁… 단풍만 있을까

    높고 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가족 나들이를 재촉하는 가을이다. 이번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가을의 멋과 맛을 만끽할 수 있는 무료 행사들이 열린다.14일 운현궁(사적 257호)에서는 고종·명성후 가례 재현행사가 열리고 15일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시민 걷기대회가 열린다. 가족들과 함께 가을의 풍경속으로 떠나자.●고종·명성후의 가례(家禮) 서울시는 14일 오후 3시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고종과 명성후의 가례 재현 행사를 연다. 행사는 고종 3년(1866년) 3월21일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서 열렸던 고종(당시 15세)과 명성후 민씨(당시 16세)의 국혼례를 고증에 따라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행사는 왕비로 책봉된 예비 왕비가 책명을 받는 비수책 의식과 국왕이 예비 왕비의 거처인 별궁으로 직접 나가 왕비를 맞는 친영례 의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친영례 의식 때는 취타대 등 71명이 인사동에서 운현궁까지 임금의 가마를 들고 행진하는 어가행렬도 재현된다. 식후 공연으로 검기무, 향발무 등이 준비된다. 행사 당일은 무료 개장한다.766-9090.●단풍과 낙엽을 밟으며 서울시설공단은 능동 어린이대공원 무료 개방을 기념해 15일 어린이대공원에서 시민 걷기대회를 개최한다. 걷기대회는 단풍과 낙엽으로 유명한 대공원의 숨은 명소를 만날 수 있는 1시간 코스. 행사는 오전 8시 정문 앞 광장을 출발해 생태연못 옆길, 동물공연장, 구의문길, 야외학습장, 중앙로, 수영장 길을 거쳐 다시 정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3.8㎞ 구간에서 열린다. 행사에서는 흥겨운 공연을 비롯해 행운권 추첨을 통해 김치냉장고, 자전거, 선물세트 등 푸짐한 경품도 주어진다. 참가를 원하는 시민은 행사 당일 출발시간에 맞춰 나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450-9362.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42) 太陽人(태양인)

    儒林(698)에는 ‘太陽人´(클 태/볕 양/사람 인)이 나온다. ‘太’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팔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大’와 동일한 것을 나타내는 두 개의 짧은 선을 합한 글자로 보아 ‘크고도 무척 크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이다. 나머지 하나는 ‘泰’(클 태)의 略字(약자)라는 설이다.用例(용례)에는 ‘無事太平(무사태평:아무런 탈없이 편안함. 어떤 일이든지 안일하게 생각하여 근심 걱정이 없음),太半(태반:반수 이상),太上(태상:가장 뛰어난 것)’ 등이 있다. ‘陽’은 ‘해가 중천에 떠 비추는 모습’을 나타낸 會意(회의)인 동시에 形聲(형성)에 속한다.用例에는 ‘斜陽(사양: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몰락해 감),陽攻(양공:적을 속이기 위하여 주된 공격 방향과는 다른 쪽에서 공격함),陽地(양지:볕이 바로 드는 곳)’ 등이 있다. ‘人’은 옆에서 본 사람을 나타낸 글자이다.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로는 땅바닥(一)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어른(大)의 모습을 그린 ‘立’(립), 팔다리를 벌리고 우뚝 선 사람의 상형인 ‘大’(대), 다소곳이 꿇어앉은 사람의 상형인 ‘女’(녀), 논밭에서 일하는 일꾼을 나타낸 ‘男’(남), 강보에 싸인 아기의 상형인 ‘子’(자) 등이 있다. 朝鮮(조선) 高宗(고종)때 사람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는 易(역)의 四象(사상:太陽·小陽·太陰·小陰)을 인체에 적용하여 같은 질병 症勢(증세)라도 氣質(기질)과 性格(성격)에 따라 치료를 달리 해야 한다는 四象醫學(사상의학) 이론을 제시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뛰어난 體質醫學(체질의학)으로 인간 중심의 病理醫學(병리의학)이며, 심신 균형적 治療醫學(치료의학)이요, 체질관리를 이용한 養生醫學(양생의학)의 특징을 갖는다. 太陽人은 肺大肝小(폐대간소:폐가 크고 간이 작음)하며 목덜미가 굵고 실하다. 하체가 약하여 엉덩이가 작고 다리가 위축되어 서 있는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다. 성격적으로는 사교적이고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한다. 저돌적이어서 반추할 줄 모르기 때문에 放縱(방종)에 빠지기 쉽다.少陽人은 脾大腎小(비대신소:지라가 크고 콩팥이 작음)하며 上體(상체)가 실하고 下體(하체)가 빈약하다.創意力(창의력)이 뛰어나며 마음이 강직하고 열성적이다. 봉사정신이 강하여 利害打算(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는다. 너무 직선적이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太陰人은 肝大肺小(간대폐소:간이 크고 폐가 작음)하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盛壯(성장)하다.氣骨(기골)이 壯大(장대)하며 뚱뚱한 사람이 많다.性格은 꾸준하고 침착하며 시작한 일, 맡은 일을 성취하는 데 장점이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하는 재간이 있다. 반면에 겁이 많아서 일을 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게으른 면이 있고 保守的(보수적)이기도 하다.少陰人은 腎大脾小(신대비소:콩팥이 크고 지라가 작음)하며 엉덩이 부위가 크고 가슴이 좁고 빈약하며 體軀(체구)가 작고 마른 편이다. 모든 일에 정확하고 예의바르며 原則(원칙)을 중시한다. 치밀하고 꼼꼼하며 가까운 사람끼리만 어울리고, 사무실이나 집에 들어앉아 일하기를 좋아한다.消化(소화) 기능이 약하며 몸이 냉하고 예민한 경우가 많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책꽂이]

    ●대동서(大同書)(강유위 지음, 이성애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중국의 이상사회론을 제시한 청대 최고의 정치사상서. 전제군주제의 청나라에서 근대국가인 중화민국으로 거듭나는 거대한 변혁기를 통과한 강유위의 사상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강유위는 1898년 청나라 덕종, 즉 광서제에 의해 변법자강책이 받아들여지자 국회를 열고 헌법을 만드는 등 일대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강유위의 개혁정책은 국민들과의 유대를 맺는 데 실패하고 서태후를 비롯한 보수세력에 밀려 백일천하로 끝났다.3만원.●거짓말에 관한 작은 역사(마리아 베테티니 지음, 장충섭 옮김, 가람기획 펴냄) 고대 그리스에서는 종종 거짓말을 칭송했다. 플라톤은 거짓말하는 기술을 가리켜 “영리한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정직하면서 순진한 사람보다 거짓말을 하면서 영리한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또 에라스무스는 진실성을 바보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 했고, 마키아벨리는 거짓말을 군주의 통치기술로 평가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사람들이 거짓말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1만원.●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한영우 지음, 열화당·효형출판 펴냄) 우리는 흔히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을 꼽지만 정작 국왕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장소는 동궐(東闕), 즉 창덕궁과 창경궁이다. 경복궁이 정궁이긴 했지만,‘왕자의 난’이 일어난 비극의 무대였기에 후대 왕들은 그곳을 기피했다. 북쪽의 백악산과 서쪽의 인왕산에 노출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은 깊은 숲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후원이 있어 왕족의 집으로 한층 사랑받았다. 역사의 빛과 어둠을 아울러 간직하고 있는 동궐 기행서.1만 8000원.●측천무후(도야마 군지 지음, 박정임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중국 유일의 여자 황제이자 당(唐)을 대신해 자신의 제국인 주(周)를 창건한 여성, 미소년들을 남자 후궁으로 거느린 믿기지 않는 정력의 소유자,1300년간 악녀로 낙인찍혔지만 근세 들어 여걸로 재평가되고 있는 인물. 이러한 측천무후는 사후에 당 고종의 황후로 취급됐을 뿐 주나라 황제였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가 번영의 제국을 건설한 ‘측천황제’임을 분명히 한다. 유교적인 남성 역사가들이 측천의 주나라를 역사에서 삭제했다고 주장.9900원.●심판대의 다윈:지적 설계 논쟁(필립 존슨 지음, 이승엽 등 옮김, 까치 펴냄)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복잡다단한 우주와 생명체를 진화론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어떤 지적 존재가 개입돼 있다는 이론. 보수적인 가톨릭에서도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진화론의 대안이론이라 할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자연선택과 대진화는 증거에 의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 형이상학적 논리라고 비판한다. 다윈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평서로 꼽히는 책.1만 5000원.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비둘기집’의 황손가수 이석(1)

    ‘비둘기집’. 그동안 결혼식 축가로 8000회가 넘게 불러 왔다는 이 아름다운 노래의 주인공, 가수 이석(65)씨는 현재 생존해 있는 ‘마지막 황손’이기도 하다.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열한 번째 아들로 41년 ‘사동궁’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이해석, 어릴 때 아명은 ‘영길’로 항상 상궁들에게 둘러싸여 ‘애기씨 마마’, 혹은 ‘사동궁 도령님’이라 불렸던 황손의 후예, 그러나 지금은 대중가요 가수로서의 이석씨를 만나본다. 이석씨에게 있어 황손이라는 신분이 거역할 수 없는 핏줄의 요소였다면, 노래는 이석씨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본래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던 그는 외국어대 스페인어과에 들어간다. 스페인에는 왕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왕실 여인에게 청혼하겠다는 꿈을 꾸었을 만큼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허나 일제강점기를 지나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시대로 상황이 계속 바뀌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해 황실 가족의 거처 역시 ‘사동궁’에서 ‘별궁’ ‘칠궁’으로 변했다. 후궁이었던 어머니 남양 홍씨 역시 황실의 몰락과 더불어 명륜동에서 성북동의 별장 ‘성낙원’으로 거처가 옮겨지면서 급기야 이석은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신분이 바뀌어져 있었다. 심지어 학비 때문에 학업을 도중하차해야 했을 만큼 생활은 어려워져갔고 때문에 선택한 길이 연예계다. 이미 경동고 3학년 때부터 종로의 음악감상실 ‘뉴 월드’에서 DJ를 보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가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62년, 당시 미8군 연예회사 ‘화양’의 오디션에 ‘더블A(A+)’로 통과한 뒤 본격적으로 미8군 무대에 서면서부터. 물론 이 당시까지만 해도 주위의 관계자들은 이 가수 지망생이 황손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한다. 스페인어 전공으로 영어까지 유창했던 그는 미8군 무대에서 가수로 그리고 MC로 활동하다가 TV의 쇼 프로그램 사회자로까지 나서자 그야말로 황실 가족들은 발칵 뒤집혔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황실이 망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느냐며 개탄해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도 자신만의 삶과 생계수단이 필요하다며 활동을 계속한다. 타고난 재능과 바리톤의 성량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64년, 드디어 첫 음반을 취입한다.‘낭만의 해변(Stranger on the Shore)’을 타이틀로 한 이 음반(베스트레코드사,BL 3001)은 당시 색소폰 연주자로 미8군 쇼 ‘에이트레인’의 단장이었던 강철구 작, 편곡집으로 ‘세상이 그대 눈처럼(Dark Eyes)’ 그리고 창작곡인 ‘그대 위한 노래’ ‘그대 눈동자’ 등이 담겨 있다. 비록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이 음반은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음반이다. 사동궁에서 지내던 창경초등학교 유년시절, 왕족은 절대 뛰어다니면 안 되는 법도 때문에 급한 연락이라도 취하려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그에게 달려왔을 정도로 높은 신분이었던 그가 한 시대를 지나면서 노래로 대중들 앞에 직접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늘 두 가지 갈등 속에서 살아왔어요.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등…” 자신은 늘 엇박자의 리듬처럼 살아왔다고 술회한다. 이 무렵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맞물려 황실의 몰락은 이미 현실이었다. 깊은 좌절의 나날 속에 그는 마침내 66년 군예대에 지원, 월남에 파병된다. 전투병으로서 군예대 위문공연단의 일원이었지만 공연 차 이동 중에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팔에 큰 부상을 당한다. 결국 이 부상으로 전역하지만 왕족의 체면 때문에 원호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69년 ‘상이군인’의 몸이 되어 귀국한 그는 다시 국내 무대에 복귀한다. 이 무렵 발표한 노래가 ‘두마음’을 비롯한 ‘비둘기 집’ 등. 특히 이 ‘비둘기 집’은 발표되자마자 당시 새마을합창단의 지정곡으로 선정되는 등 전국 방방곡곡 메아리치며 어느덧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한다.(계속) sachilo@empal.com
  • [metro] 서대문구 주민을 위한 산사음악회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11일 오후 6시30분 홍은동에 있는 불교 태고종 백련사(주지 이설산 스님)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산사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는 개그맨 김의환과 불교방송 ANN 장수연의 사회로 진행되며, 감로합창단이 구민과 함께 지역발전을 기원하는 영산재를 드린다. 불교음악 전문남녀혼성중창단 바라솔리스트앙상블과 주현미, 강태선, 임석범, 김종환, 이수나, 리미티드, 설운도 등 대중가수가 출연해 찬불가와 대중가요를 선보인다.302-0288,306-0288.
  • [metro] 주민을 위한 산사음악회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11일 오후 6시30분 홍은동에 있는 불교 태고종 백련사(주지 이설산 스님)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산사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는 개그맨 김의환과 불교방송 ANN 장수연의 사회로 진행되며, 감로합창단이 구민과 함께 지역발전을 기원하는 영산재를 드린다. 불교음악 전문남녀혼성중창단 바라솔리스트앙상블과 주현미, 강태선, 임석범, 김종환, 이수나, 리미티드, 설운도 등 대중가수가 출연해 찬불가와 대중가요를 선보인다.302-0288,306-0288.
  • 정책 ‘안개속’… 청약시장 다소 활기

    추석 이후 부동산 정책과 시장 흐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후분양제 확대 시행에 따른 논란이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 판교 2차 당첨자 발표 이후 청약통장 가입자들의 발길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집값·전셋값이 제자리를 잡을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워낙 변수가 많아 4분기(10∼12월) 부동산 시장을 내다보기 어렵지만 정책은 ‘안개속’, 청약시장은 다소 살아날 것으로 점친다.●주택정책 갈등 본격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확대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분양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원가공개 확대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용역을 맡기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원가공개 타당성 마련과 이론적 근거를 내세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건설업계의 반발 또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주택건설협회가 분양원가공개 반대 주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관련 단체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분양원가 공개와 후분양제를 둘러싼 정부와 업계간 갈등이 깊어질 태세다. 후분양가를 놓고는 당장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서울시와 이에 반대하는 건설교통부의 갈등도 깊어질 듯하다.정치권의 논쟁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시장의 관행을 뿌리째 흔드는 제도라서 찬반 주장이 조율되기는 쉽지 않다. 최종 정책결정까지는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청약시장 활기 예상 추석 이후 서울·수도권 아파트 분양은 판교 2차 아파트 당첨자 발표 이후 다소 활기를 띨 가능성이 크다. 판교 낙첨자들은 수도권의 대체 택지지구 아파트로 발길을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은평뉴타운 아파트 분양 일정이 1년가량 늦춰지면서 수도권 택지지구 아파트는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곳으로 용인 흥덕지구를 비롯해 인천 송도 신도시, 시흥능곡지구, 화성 동탄신도시, 인천 메트로시티 등의 청약열기는 달아오를 것 같다. 서울에선 중구 회현동, 종로구 숭인동, 동대문구 용두동 등 도심권 재개발 아파트에 수요자들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아파트 거래 활성화 예상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은 중대형 아파트 매물이 늘어날 것으로 점쳤다. 오는 12월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부과, 내년부터 실시되는 2주택자 양도세 50% 중과 등을 이유로 들었다. 매수세가 살아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강남 블루칩 아파트를 찾는 수요는 아직도 많고 호가 하락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석 이후 판교 신도시 아파트 당첨에서 떨어진 투자자들이 기존 아파트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흔들 정도의 거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을 선도하는 신고지역에서 6억원 초과 주택을 살 때에는 자금조달계획 및 실제 입주여부를 신고해야 하는 등 거래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문화마당] 달구경/황주리 화가

    어릴적 추석은 꿈에 부풀어 기다리던 즐거운 축제였다. 송편과 빈대떡과 과일들이 그림처럼 쌓여 있던 차례상 앞에서 어린 동생과 나는 그저 즐거웠다. 빛깔 고운 때때옷을 입고 친척집을 향하던 발걸음은 아무 걱정 없는 새들의 날개처럼 마냥 가벼웠다. 새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시가 떠오른다. 하지만 새가 되지 못하고 어른이 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어린 우리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어머니의 걱정이 무엇이었는지,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부채가 얼마나 되었는지 어린 우리는 알 턱이 없었다. 저녁이면 휘영청 달은 밝았고, 하루가 가는 것이 아쉬워 넓은 대청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달을 바라보던 그리운 한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로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지 오래다. 하도 그 옛집이 그리워 나는 아파트를 구경하러 여러 번 갔었다. 아무런 추억도 불러내지 못하는 고층 아파트의 전망은 북악산과 저 멀리 청와대까지 다 보여 아주 근사했다. 요즘도 꿈에 보이는 그리운 골목길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막다른 골목길 하늘 위에서 어린 나를 내려다보던 한가위 보름달을 어찌 잊으랴? 달구경을 가고싶다. 성북동이나 평창동 골짜기 쯤이면 아직도 옛날 맛을 내는 달 구경을 할 수 있을까? 대학 시절 어느 추석날 누군가와 달구경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이종 사촌오빠의 고종 사촌 형이던 그는 무척 얼굴이 잘 생긴 청년이었다. 그를 보면 가슴이 늘 설레던 나는 추석에 우리 집에 인사차 들른 그와 함께 달구경을 나섰다. 아마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있는 절두산 성지였을 것이다. 별들은 빛났고, 달님의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부신 대보름 밤이었다. 나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그 잘 생긴 청년은 나에게 좋아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오랜 나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몹쓸건 정말 이내 심사,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나는 그가 나랑 아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는 그 누구와도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자라지 못한다고, 정말 그가 그랬다. 생각처럼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을 했지만,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2년 전 어느 날 암에 걸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그의 사진은 늘 그렇듯 참 잘 생긴 청년이었다. 그 옛날 달구경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삶의 형이상학은 언제나 현실의 형이하학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세상의 많은 여자들은 그렇게 맑고 바르고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남자와 잘 살아내지 못하는지 모른다. 적당히 세속적인 세상의 남자들이 가정을 더 잘 꾸려가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직도 그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려다보는 달님은 세상이 점점 더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그렇게 세속에 물든 우리 탓이라고 꾸짖는다. 하지만 장을 보는 사람은 안다. 장바구니에 담긴 우리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치러지는 돈이 얼마나 가볍고 무가치한지를…. 장바구니 가득하던 추석의 기억은 어른이 되면서 서서히 그 의미가 사라져갔다. 남색 마고자를 입으신 우리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던 마당 넓은 한옥이 헐려 사라진 뒤였을까?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목소리를 잊어버려서일까? 내게 추석은 이제 별 의미없는 휴가의 한 부분일 뿐이다. 어디 내게만 그러랴? 사는 일이 넉넉한 사람들은 외국 여행을 떠나고, 이제나 저제나 가난한 사람들은 2006년 추석 대보름에도 배가 고픈, 이 불공평한 세상에 평화 있으라. 무정한 세월에 닳아, 그조차 마음이 변한 달님 하나가 무심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황주리 화가 ●알림 이달부터 필진이 바뀝니다. 새 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황주리(화가) ▲여건종(숙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황현산(문학평론가·고대 불문과 교수) ▲임영균(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 “몰락한 황실 일으켜 세울 구심점 된다면…”

    “여황(女皇)이라니요.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몰락한 황실을 일으켜 세우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대한제국 황족회’는 29일 낮 서울 힐튼호텔에서 의친왕(1877∼1955)의 둘째 딸 이해원(李海瑗·88) 옹주를 제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하는 대관식을 가졌다. 황족회는 29대 이구(李玖) 황위 계승자의 타계 등을 계기로 대한제국 황손 10여명을 중심으로 결성한 가족회다. 황족회는 “대한제국 황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침탈된 지 100년, 조국이 광복된 지 61년이 됐으나 영친왕(28대·1897∼1970)의 아들 이구 저하가 후사 없이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서 의문사로 타계, 왕가의 맥이 끊김에 따라 해원 옹주를 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해원 옹주는 여성으로서 대한제국 황실의 법통을 잇게 된다. 황위계승자는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보존 및 복원 사업권,31대 황위 계승 후계자 지명권 등을 갖게 된다. 이 옹주는 “아버지 의친왕 자녀 후손 중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대표로서 역할을 맡게 돼 영광이라면 영광이다. 뿔뿔이 흩어진 황실 가족을 다시 모아 황실을 재건하는 밀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친왕은 일제의 혼혈정책으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황족 이방자 여사와 결혼해야 했던 영친왕과는 달리 일본인과의 결혼을 거부한 채 국내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다 감금되기도 했다. 이 옹주는 “순종황제가 승하하신 후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이 황위를 승계했어야 하지만 아버지가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제가 반대해 고종황제의 셋째 아들인 영친왕이 황위를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옹주는 경기도 하남시의 네 평짜리 무허가 단칸 월세방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황위 승계식에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황실 친족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황족회는 옹주의 황위계승 사실을 외국 황실협회 등에 공문으로 정식 알리고 외국 황실들과의 교류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연합뉴스
  •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강명관 지음

    조선시대의 대표적 저작인 ‘삼강행실도’ 열녀편을 보면 열녀 110명 가운데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음으로 열녀가 된 사람이 80명에 이른다. 죽지 않은 열녀 30명은 왕비 같은 고귀한 신분.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강명관 지음, 길 펴냄)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열녀 대부분이 남편을 위해 죽음을 자처하거나 몸을 내던졌는데 아내를 위해 대신 죽은 남편 이야기는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의 지적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유교윤리에 대한 반성적 독해를 시도한다. 학문, 교육, 정치, 문화, 자연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생각들을 고전에 빗대어 풀어내는 저자는 조선조 유교윤리가 얼마나 생명을 경시하고 특히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소상히 살핀다. 저자(부산대 교수·한문학)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역사교양서. 고종이 자신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과거합격장을 팔아먹었다는 일화, 유배간 형 정약전의 건강을 염려하며 동생 정약용이 개고기 요리법을 손수 편지글로 보낸 일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실렸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경복궁 북문 ‘신무문’ 45년만에 개방

    경복궁 북문 ‘신무문’ 45년만에 개방

    경복궁 4대문 중 유일하게 비공개됐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이 45년만에 개방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29일 청와대 본관 정문과 마주하고 있는 경복궁 신무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어린이, 시민, 문화재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무문 개방행사를 갖고 이날 오후부터 이 문을 열었다. 이와 함께 신무문 동남측에 있는 고종의 서재인 집옥재와 협길당, 팔우정도 45년만에 개방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기분이 좋은 게 여러분들과 한 발 더 가까워진 느낌에서다.”라면서 “사람은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무문 개방으로 경복궁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입장해 신무문을 거쳐 청와대 앞길 의장행사를 관람한 뒤 북악산 숙정문까지 오르는 4시간 정도의 원코스 관람이 가능해졌다. 청와대와 가까운 경복궁 북쪽 권역 중 비공개로 남아 있는 건청궁과 태원전도 이르면 연내 공개될 예정이다. 신무문은 세종 15년(1433년) 창건된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2년(1865년) 중건됐다.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부대가 경복궁에 주둔하면서 폐쇄됐다. 박홍기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나라 공식국명은 대한민국이 아니다/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하고 만 참담한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 되기를 열망하던 민족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도둑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온 해방의 감격도 잠시뿐 미국과 소련이 펼친 냉전의 덫에 걸려 민족은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냉전이 깨진 지 오랜 오늘, 통일은 해방처럼 어느 날 눈앞에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둘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아니 지금도 왠지 ‘대한민국’이 풀뿌리 시민사회를 이룬 우리의 현재를 대표하는 국명으로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던 새 나라의 국호는 아니었다. 당시 ‘고려공화국으로 하자.’, 아니 ‘조선공화국이 좋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국명이 나쁘다고 독립이 잘 안 되는 게 아니니, 차차 국정이 정돈되고 나서 대다수의 결정에 의해 그때 법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해 잠정적으로 대한민국을 국호를 삼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지 두 달 뒤에 터진 거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 이후 나라를 앗긴 황제의 존재는 기억의 저편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웅변하듯, 그때 이미 우리는 왕정복고를 거부하고 공화국을 꿈꾸지 않았었나? 그렇기에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 대한 단절의식을 함축하는 반어적 국명이다. 역설적이게도 제헌국회에서 국명을 논의할 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보자.’며 ‘대한민국’을 최초로 제안했던 신승우 의원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소극(笑劇)을 연출한다. 대한제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종속국이 아니라 자주국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국호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기도를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일으켜 막은 후 이루어진 러·일 두 나라 사이의 세력 균형 위에 세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모습보다 크게 보이려 소 앞에서 억지로 배를 부풀리다 소에게 밟혀 죽는 이솝우화 속 개구리를 떠올려 보라. 인간이건 나라건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는 자화자찬은 듣는 이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법. 대한제국은 외세에 기대어 명맥을 이으려 한 왕조의 유약함을 상징한다. 개구리 배 부풀리기 식의 자대(自大)나 타력을 빌리려는 책략만으로는 덩치 큰 포식자들이 날뛰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돌아온 열강쟁패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덩치 큰 포식자들에 맞서 배 부풀리기를 하는 자대도 아니고, 강자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는 굴종도 아닐 것이다. 우리의 번영과 생존을 지켜줄 현명한 책략과 견실한 자강,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줄 자긍이 더없이 요청되는 오늘이기에, 허장성세의 대한제국을 연상케 하는 대한민국보다는 제헌국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던 고려공화국이란 국명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거란의 침공에 맞서 나라를 지킨 강감찬의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세치 혀만으로 침략군을 물러서게 한 서희의 협상력에 목마르기 때문이요, 세계제국 몽고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60년 항쟁을 벌여 나라를 지킨 고려인의 불굴의 의지가 그립기 때문이요, 밖을 향해 활짝 열린 국제무역항 벽란도와 남녀 간의 자유연애를 노래한 고려가요의 개방성이 한 마을이 된 지구에서 양성평등사회를 꿈꾸는 우리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요, 세계의 중심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문명이라고 뽐내는 중화(中華)에 맞서 높고 아름답다며 또 다른 문명의 빛임을 자긍한 고려(高麗)의 함의가 오롯이 다가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외적 공식명칭 Republic of Korea와 합치하는 고려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허동현 경희대 한국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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