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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 또 ‘따로 따로’

    정보통신계의 축제일인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따로 열린다. 20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두 기관은 22일 별도로 제54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을 연다. 정부 정보통신 업무의 정통성이 어느 부처에 있는지를 둘러싼 두 기관의 신경전이다. 방통위는 22일 오전 최시중 위원장 주재로 세종로 방통위 청사에서 기념식을 열어 정보통신의 날 정부포상자 9명 등에게 표창한다. 우본도 이날 오후 남궁민 본부장 주재로 종로구 서린동 본부에서 경영평가 우수청, 고객만족경영 우수관서, 우정 CS 대상을 표창하고 민간인 정부포상자 9명에게도 시상한다. 두 정부기관이 별개로 정보통신의 날 행사를 치르는 것은 지난해 우본이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방통위의 전신인 옛 정보통신부에서 지식경제부 산하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의 날은 체신의 날로 출발했다. 1956년에 1884년 12월4일 고종 임금이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을 연 날을 당시 체신의 날로 지정했고, 1972년에 고종이 우정총국을 개설하라는 칙령을 내린 4월22일로 옮겼다. 이후 1995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기념일도 정보통신의 날로 바꿨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웃과 고통 나누면 모두가 부처”

    “이웃과 고통 나누면 모두가 부처”

    새달 2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16일 봉축사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세간에 출생했다.”면서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우리 이웃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가 부처”라고 밝혔다. 지관 스님은 “번뇌의 중생계가 다하는 날은 기약할 수 없으며, 고통의 바다 아닌 곳 또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혜로운 마음과 자비로운 행동으로 고통받는 중생과 동행하는 일”이라고 고통 분담을 강조했다. 천태종 총무원장 정산 스님은 “부처님은 일체중생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일체중생을 행복하게 하고자,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고 평등함을 알리고자 오셨다.”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와 네가, 이 세상 모든 일체가 부처임을 알고, 모든 이를 차별과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살펴볼 때 내가 부처가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은 “불자들은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켜서 어둠을 깨치고 세상을 밝게 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고통받는 사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진흙 속에서 청결함을 잃지 않는 연꽃 같은 삶을 살고 항상 연등을 밝히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사]

    ■법무부 △순천교도소장 이용배△광주교도소 부소장 신문식 ■특허청 △전기전자심사국 전자심사과 고종욱△특허심판원 송무팀 장현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경영본부장 박재성△인증평가〃 장재구△검사역 박종헌△기획운영실장 문장수△녹색산업육성〃 배상용△친환경상품〃 문승식△녹색기술전략〃 김만영△녹색기술개발〃 최성수△친환경제품인증〃 김용국△국가환경기술정보센터장 이성달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 권영인△국가자전거교통연구〃 신희철 ■ KBS △대전방송총국장 이세강△도쿄지국장 남종혁△대구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이철민△춘천방송총국 〃 방성룡(이상 4월15일자)△이사회사무국장 김기춘△경영본부 주간(노사협력) 직무대리 신용훈△제주방송총국장 장성환(이상 4월20일자)△베이징지국장 강석훈(이상 7월1일자)△워싱턴〃 홍기섭△파리〃 이충형(이상 7월15일자) ■아인스그룹 <에이치이엠코리아> △대표이사 부회장 김원태<아인스엠앤엠>△대표이사 사장 최종삼△고문 정홍식
  • [문화플러스] ‘황제어새’ 특별전 7월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은 14일부터 7월5일까지 고종황제가 외교 친서 등에 사용한 ‘황제 어새(御璽)’ 특별전을 열고 시민들에게 고종의 비밀 어새를 공개한다. 한일합병을 전후해서 고종이 일본의 감시를 피해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독일 등 서방 국가들에 외교 친서를 보낼 때 비밀스럽게 제작, 사용한 어새 2종 중 하나다. (02)3701-7644.
  •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올해 77세의 노(老)작가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함경남도 원산생으로 젊은 시절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을 겪었고, 1974년에는 ‘문인 지식인 간첩단’으로 몰렸으며,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기도 했고, 1987년 6월에는 시위대 앞줄 어딘가에 있었다. 그렇게 분단과 독재의 질곡이 고스란히 그 한 몸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졌다. 그가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뒤 ‘문’,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수십 권의 작품을 쏟아낸 50여년 동안 분단과 통일, 평화와 전쟁의 문제 등 우리 민족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천착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다. 이호철이다. 199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된 그가 최근 내놓은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중앙북스 펴냄)은 역사의 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인생과 그 치열한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서사(敍事)가 없다. 소설가가 자의로 창조한 캐릭터도 없다. 차라리 장편소설을 표방한 ‘한반도 근현대사 교과서’에 가깝다. ●역사 인물 가상 대담 형식 취해 이호철은 “현 정부 들어 좌우 진영 간에 교과서의 근현대사 기술(記述)에 있어 왜곡 논쟁이 분분한데 이 소설이 어느 것보다 엄정한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고 ‘실험적 기법의 장편소설’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근현대사의 주요인물인 이승만, 송진우, 김구, 조만식, 최용건, 민영환, 이준 등을 불러내서 ‘별 너머 가상 대담’을 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함께 역사적 인물의 ‘텍스트 사이’에 대한 방대한 평생의 취재를 바닥에 깔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물론 작가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조만식, 최용건 등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담겼음은 물론이다. 이는 자신이 1992년에 쓴 소설 ‘개화와 척사’에서 이미 한번 실험한 기법이다. 물론 작가 자신이 밝히듯 슈테판 츠바이크가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를 쓰며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소설적 기법에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종 말부터 해방, 분단까지 우리네 현대사 통한의 순간, 치열했던 상황을 잔인하리만치 세밀하게 서술한다. ●“시선 치우치면 현재의 문제 푸는 방식도 왜곡” 이호철은 “진보건 보수건 근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때문에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비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우리가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는 금기(禁忌)가 없다. 애써 에두르지도 않는다. 조만식과 최용건의 입을 빌려 북한 주석 김일성,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갖고 있는 공과를 일일이 나열한다. 일종의 인물 재평가를 통한 ‘이호철식 역사 바로세우기’다. ●이승만·김일성 공과 가감없이 나열 김일성은-최근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실이긴 하지만- 항일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의 공적, 일본의 공작으로 내부분열이 일 때 모두를 껴안는 통 큰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국부, 또는 분단의 원흉으로 취급받던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만큼 20세기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를 명확하게 인식한 리얼리스트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조만식의 입을 빌려 ‘이승만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유일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더욱 열심히 소설을 써야겠어요. 날마다 요가하고, 등산하며 건강 챙겨야 할 이유죠. 조만간 단편소설 세 편이 나올 텐데 아흔 살까지는 쓸 겁니다.”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정력적인 집필은 물론 몇 사람이 모여 있건 독자를 만나는 독회 활동에 열의를 쏟는 것도, ‘거시기 산악회’와 요가로 건강을 챙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통일론, 남북평화의 중요성에 공감을 얻고자 하는 필생의 소명 때문이다. 좌우도, 노소도 모두 곰곰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지관 총무원장등 불교계 노前대통령 방문

    ‘호미든 관음성상(觀音聖像)’ 봉안 50주년 기념 법회가 제64회 식목일인 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근처 경남 김해시 진영읍의 봉화산 정토원에서 열렸다. 이날 법회에는 봉화산 정토원 선진규 원장을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불교신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생존권의 상징도구인 호미를 든 관음성상은 50년전 동국대 불교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31명의 불교학도가 “불교가 민중을 선도하고 일깨워 민족 생존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신심·사회·경제·사상개발이라는 ‘4대개발’을 내걸고 김해 봉화산 정상에 식목일인 1959년 4월5일 봉안했다. 당시 동국대에 다니며 이를 주도했던 선진규 원장은 기념사에서 “50년전 오늘 6·25민족상잔이 갓 지나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에 자유당 정부는 국민을 짓눌러 이를 보다 못한 불교학도들이 뭉쳐 관음성상을 봉안했다.”고 밝혔다. 한편 관음성상이 봉안되던 때 중학교 1학년으로 봉화산의 식목행사에 참석한 인연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날 법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선 원장은 “봉안 당시 나무를 심은 학생 가운데 한명이었던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방안에 있던 부처가 밖으로 나온 날, 나도 나무를 심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법회가 끝난 뒤 선 원장과 지관·운산 스님 등 큰스님들과 불교신도회 간부 등 20여명의 불교계 인사를 사저에서 접견하고 1시간여 동안 환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먼 곳까지 방문해 줘서 송구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큰스님들과 봉화산의 역사, 퇴임 이후 봉하마을의 변화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으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고 김경수 비서관은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전남 순천의 조계산(해발 884m)은 참 허술하다. 멀리서 내비친 넉넉하고 만만한 산세가 쉽게 보인다. 남녀노소가 오른다. 갖춰 입기보다는 이웃집 마실 가듯 헐렁한 옷이나 운동화 차림새도 그렇다. 등산로에는 노부부와 손자들까지 마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에 놀러나온 차림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순천시민이거나 인근 여수, 광양 등에서 왔다. ●해발 884m… 남녀노소 마실 가듯 순천시민들은 조계산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단다. 선희곤(47·자동차정비업·순천시 조례동)씨는 “조계산을 오를 때는 오이 한 개만 달랑 들고 가도 장군봉까지 쉽게 간다.”고 자신했다. 지팡이를 짚은 정채봉(75·순천시 연향동)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이렇게 산에 오르지.”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암사에서 10분 거리인 야외생태체험장에서 동창생 10여명과 사진을 찍던 정병국(76)씨는 “목요일마다 사범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조계산에 놀러 오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반면 관광버스 수십대에서 내린 형형색색 복장의 등반객들은 짙은 선글라스에 한결같이 쏙 빼입은 멋쟁이들이다. 외지인들이다. 하나 놀라는 쪽은 오히려 이들이다. 누군가 “야, 저런 신발로 산에 오르나봐.” 하며 신기해했다. 서울에서 온 전인동(60)씨는 “조계산에는 유달리 여성 등반객들이 많다.”고 환하게 웃었다. ●주요 탐방로 5개… 혼자 걷는 명상길 조계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의 길목으로 광주 무등산과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을 거쳐 나온 줄기다. 그리고 오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가지를 뻗는다. 주요 탐방로는 5개. 1000년 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게 쉽고 편한 길이다. 일명 스님 오솔길이어서 ‘명상로’로 통한다. 길에 들어서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주봉인 장군봉을 놓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2~3부 능선으로 이어진 이 길은 끊이지 않는 계곡물 소리, 굴참나무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발길 사이로 까끌거리는 소리,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어울린다. 길옆의 산수유처럼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는 영락없이 생강 냄새를 풍긴다. 요즘엔 귀한 선물이 더해졌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 언덕이 은하수처럼 환해졌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뿌리 사이로 보랏빛 얼레지 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봉긋봉긋 솟아났다. 한 중년 여성이 나팔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땅으로 숙여진 모습에 “시골처녀처럼 낯가림한다.”고 어쩔줄 몰라했다. ‘조계산 지킴이’인 양회명(55) 순천시청 공무원산악회장은 “조계산 등산의 묘미는 한여름에도 햇볕을 쐬지 않고 흙길을 밟는 명상로에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로에서 스친 탐방객들은 혼자이거나 두 명씩이 대부분이었다. 도중에 소설 ‘태백산맥’ 안내판이 나왔다. 빨치산들의 연락로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자랐다. 반면 주암면 접치재에서 출발하는 탐방로는 순천시민들이 찾아낸 길이다. 1000원 내는 시내버스가 경유해 접근성도 좋다. 두 사찰에서는 탐방객에게 입장료(2500원)나 주차료(1500원)를 받지만 접치재에는 매표소가 없다. 하나 산 좀 타는 이들은 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사에 이르는 종주산행을 즐긴다. 전문 산악인들은 선암굴목재~배바위~장군봉을 타기도 한다. ●선암사·송광사 천년 고찰 향기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속설은 빈말이 아니다. 조계산 자락의 순천이 인심 좋고 경치 좋고 물이 맑은 까닭이다. 진인호(70·향토사학자) 순천문화원 부원장은 “일제 강점기 때 순천에 지주들이 많아 그 자식들이 비단옷으로 치장해 ‘순천에서 옷 자랑하지 마라.’고 했다.”며 “1960년대 세일러복을 입은 순천 여고생들의 인물이 남달랐고 이후 미스코리아가 나오면서 옷 자랑이 미인 자랑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조계산은 동쪽 장군봉 밑에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 서쪽 연산봉 아래에 승보사찰인 송광사라는 가람을 품고 있다. 선암사 전각 스님은 “산 하나에 태고총림(선암사)과 조계총림(송광사)이 있는 곳은 조계산밖에 없다. 총림은 선원·강원·율원 3개 경전 교육기관을 모두 갖춰야 지정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스님은 “조계산은 1천년 역사에 바랜 문화재 수천점이 숨쉬는 역사·교육·문화의 도량”이라며 “산에 갔다만 와도 수양을 쌓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즘 선암사 경내 원통전 담 옆으로 600년 된 매화나무 20여그루가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꽃을 피워 볼 만하다. 송광사에는 한꺼번에 500개를 포갤 수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나무그릇)가 흥미롭다. 공교롭게 선암사 어디서나 휴대전화가 잘 터진다(소통). 하지만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참선).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봄 머금은 산사 비빔밥에 홀리고 18명 국사배출 十八公 전설 흐르고 조계산은 천년 고찰을 거느린 품새만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사찰 밑에는 식당 20여개, 숙박업소 8개가 성업 중이다. 도시 생활의 찌든 때를 산속의 맑은 공기로 씻어 버린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아래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특히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더욱 많은 등산객이 몰린다. 송광사 아래서 금광식당을 하는 김화영(43·여)씨는 “봄이 되면 손님이 많은데 요즘에는 수학여행 아이들이 몰려들어와 산채 비빔밥을 즐겨 찾는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식당 옆 조계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송광사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신라 때는 길상사, 고려 때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부터 송광사로 불렸다. 소나무가 무성해 당시 불렸던 ‘솔개이메(솔강이메)’에서 유래해 솔을 송(松), 갱이(광이)를 광(廣)으로 옮겨 송광산이라고 한 것으로 전한다. 전설에는 ‘송(松)’을 파자(破字)하면 ‘十八公’으로 송광사에서 18명의 국사가 나올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래서 고려와 조선조에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 2명의 국사가 더 배출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 송광사국사전(국보 56), 송광사경패(보물 175), 송광사영산전(보물 303) 등의 문화재 외에 곱향나무(천연기념물 88호)도 있다. ●가는 길 광주~송광사는 광주 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하루 5번. 광주~순천은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10~20분 간격. 순천~송광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111번 시내버스(061-753-5377). 순천~선암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수시 운행 1번 시내버스. ●묵는 곳 선암사와 송광사 입구에 모텔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문의는 매표소(선암사 061-754-6160, 송광사 755-5308)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5월 서울은 고궁에 빠진다

    서울시의 대표 축제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봄축제가 5월2일부터 9일 동안 열린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서울문화재단은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축제는 ‘궁(宮)’을 주제로 서울의 5대 궁궐(경복궁·경희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과 서울광장, 청계천 일대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축제기간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용이 승천해 하늘을 뒤덮은 모습을 형상화한 ‘오월의 궁’이 상징물로 세워진다. 오월의 궁은 광장에 궁궐의 전통 장막인 ‘용봉차일(龍鳳遮日)’을 드리워 축제의 왕인 시민을 모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오월의 궁에서는 축제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해 팔색무도회 등 주요 행사들이 펼쳐진다. 또 5대 궁궐에서는 궁궐별로 ‘세종대왕 이야기’, ‘고종, 근대를 꿈꾸다’, ‘궁궐의 일상’, ‘고궁뮤지컬 대장금’, ‘대한제국 모단음악회’ 등을 주제로 ‘600년 서울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행사가 마련된다.청계천에서는 ‘나눔 청계천’이라는 주제로 광복 이후 서울의 일상과 소망을 담아내는 ‘나의 살던 서울은’과 ‘꽃분홍 나눔 장터’, ‘여러분 콘서트’ 행사가 펼쳐진다.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맨주먹으로 전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 대국의 기적을 일궈 낸 우리의 저력을 상기하며 1000만 서울시민이 다시 한 번 일어서는 희망의 축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서울시는 최근 경제 위기 상황을 감안해 축제 비용을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이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하이서울페스티벌 개최 시기가 매년 5월 첫째 주로 정례화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인사]

    ■국토해양부 ◇전보 △서울지방항공청장 유영창△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장 손태락<과장급>△운영지원과장 박무익△도시정책〃 전병국◇3급 승진△국토해양부 변종현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상임위원 홍두표 ■한국토지공사 ◇상임이사 △부사장 겸 기획이사 양영모△경제협력사업이사 홍경표△경영지원이사 허련 ■한국산재의료원 ◇1급 전보 △본부 기획조정팀장 정종희<행정부원장>△인천중앙병원 오규진△창원병원 남궁유△대전중앙병원 김영진△안산중앙병원 문병호△순천병원 최덕순 ■아시아경제신문 <편집국>△산업부장(부국장대우) 김영무△증권부장 직무대행 이경탑 ■우리신용정보 △부사장 김희열△상임감사 이승서 ■동아프린테크 △고문 이동영△대표이사 사장 권혁순△오금동공장장 신종식△충정로〃 김영기△연구위원 김봉대 김성룡 ■동아프린컴 △고문 이동영△대표이사 사장 권혁순△이사 이찬규△안산공장장 이근수△연구위원 홍필구 ■현대오일뱅크 ◇부장 승진 △싱가포르현지법인 설재근△옥계저유소 정현모<영업본부>△소매팀 유필동△네트워크개발팀 김병희△제주사업부 김준호△충청직영본부 강원호<경영지원본부>△재정팀 김경원△관리팀 정래은<생산본부>△노사협력팀 고종완<증설사업본부>△사업관리팀 고영규△공정부문 최수관 ■대신증권 ◇승진 <이사대우 본부장>△리스크관리본부 오익근<이사대우 부서장>△감사실 김성태△전산운영부 양창현△파생상품영업부 배영훈<이사대우 지점장>△울산남지점 오상환△무등지점 박동현<부서장>△전산개발부 현준호△중부법인사업부 나동익△컨설팅클리닉 진수민<지점장>△제기동 박상준△하계동 육철한△청주 박병화△북인천 김병경△부산 박영진△복현 전해영△구미 서시교△군산 손진현△익산 장진우△신촌 박성희△강북 안연희△논현역 노미선△양재동 오진승△도곡역 임민수△염창동 이미순△김포 변상묵◇전근 <이사대우 부서장>△재무관리부 이문수△심사분석부 문남식△Wholesale파생영업부 김명기△Total서비스전략부 남해붕<이사대우 지점장>△남대문 하창룡△동대문 장철원△역삼동 고상범△대치동 김재기△선릉역이창화△영업부 장우철△제주 조우진△대림동 이준우△대구 이수환<부서장>△인재개발부 권용범△신탁부 안경환△채권부 정기동△파생상품운용부 이동훈△국제영업부 성유열△Global사업부 진승욱△Total서비스추진부 정재중△컨설팅Lab 조용현<지점장>△명동 이장희△상계동 이판수△홍제동 김원군△장안동 김상익△강남 이순남△명일동 이현식△올림픽 박선국△무역센터 김완수△강남역 양은희△광명 박진규△시흥동 박지환△사당 박현철△관악 김종오△주엽 임홍택△평촌 정지영△분당 신인식△수지 서신영△정자동 이상봉△동탄 김성태△울산 김봉규△포항 한응식△대구서 전우식△무거동 김정현△순천 박진환△화정동 정성길△나주 박흥철△상무 양홍석 ■대신투자신탁운용 ◇승진 △리스크관리본부장 정상헌 ■대신정보통신 ◇승진 <전무이사>△기획실 최현택<상무이사>△SI사업본부 오병진 ■메리츠증권 ◇부장 승진△불광지점 곽종열△유통단지지점 신해성△도곡지점 오석택△대구지점 조일림△인사총무팀 홍경표△결제업무팀 남준 ■금호생명 ◇본부장 △중부지역본부 이철△방카슈랑스마케팅본부 강상삼△AM수도본부 김면환△AM영남본부 김천수 ■플러스자산운용 ◇승진 △마케팅본부장 백운성△채권운용팀장 이사 이관홍◇채용△파생상품운용팀장 이사 신동우 ■보해양조 ◇임원 승진△기획조정실 업무 및 구조조정본부 업무담당(상무) 이연희△제1영업본부장(상무보) 윤행식△지원본부 총무부 업무담당(이사대우) 임종욱△생산본부 목포공장 업무담당(〃) 임경택△생산본부 장성공장 업무담당(〃) 최종운◇지점장(부장) 승진△대전지점 윤형석△동부지점 채남석△순천지점 김용기△특수지점 오흥교△대구지점 박석균
  • [이종원 선임기자 디카로 보는 한양] (2) 작명가 정도전과 유교

    [이종원 선임기자 디카로 보는 한양] (2) 작명가 정도전과 유교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첫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이름 한 자(字) 한 자에 고유의 뜻과 기운이 담겨 있어서 작명하는 순간부터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어 왔다. 때문에 선조들은 아이의 이름뿐만 아니라 웬만한 건물 하나 하나에도 공을 들여서 이름을 지어 불렀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 이성계는 최측근 정도전에게 수도의 건설과 지어질 건축물의 이름을 짓는 ‘주요 사업’을 명했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조선의 지도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가장 앞장 섰던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왕명을 수행해 갔다. 한양성의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유교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으로 제시한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소지문(昭智門·후에 肅靖門이라 함)이 그것이다. 이상배(47)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원은 “인(仁)을 일으키고, 의(義)를 두터이 하며, 예(禮)를 받들고, 지(智)를 환히 밝힌다는 유교의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고종 때 한양의 한가운데에 둔 종루(鐘樓)의 이름을 보신각(普信閣)으로 바꾸어 비로소 ‘인의예지신’ 오상이 모두 이름에 올랐다. 이 전임연구원은 “보신각 종이 울리는데 맞추어 4대문이 열리고 닫혔는데, 이는 믿음(信)이 인의예지를 주재한다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백성을 깨워 일하게 만드는 새벽 종소리. 그 믿음의 출발점은 바로 임금이다. 이 전임연구원은 “믿음이 서야 백성을 부릴 수 있다(信以後勞其民)는 논어(語)의 가르침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명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정도전. 그는 군주와 관료와 백성이 삼위일체가 되는 이상적인 유교국가를 꿈꾸었다. 개국 초기 유교는 도덕의 기본이고 조선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고,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조선의 유교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전임연구원은 “유교문화는 우리의 전통문화로서 일부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든 소중한 역사문화의 한 축”이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통치이념인 유교는 조선 왕조 500여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근간이념이었다. 조상들은 건축물의 이름 하나를 지을 때도 성리학적인 세계관을 부여하며 이념적 성취를 도모하려 했다. 선조들이 남겨준 소중한 유교 문화의 유산을 보고 느끼면서 급격한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유교적 인본주의의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jongwon@seoul.co.kr
  • 조선말 황실문화 한눈에… ‘운현궁’ 展 서울역사박물관서

    조선말 황실문화 한눈에… ‘운현궁’ 展 서울역사박물관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운현궁에 머물며 소용돌이치는 조선 말기의 한복판을 지냈다. 고종 역시 1863년 12살의 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운현궁에서 함께 살았다. 그렇게 격동의 시기, 조선 마지막 황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운현궁은 일제강점기에 다른 황실 재산과 함께 국유화됐다. 1948년 흥선대원군의 4대 후손 이청(73)씨에게 반환됐다가 1993년 서울시가 매입했다. 운현궁 측은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흥선대원군 초상(보물 1499-1호) 등 유물 6664건 6700여점을 1993년부터 2007년까지 9차례에 걸쳐 서울시에 기증했다. 이는 여지껏 서울역사박물관의 최대, 최고 수준 소장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4일부터 조선 후기 왕실문화의 정수와 서양 문물의 유입과정을 보여 주는 ‘운현궁을 거닐다’ 특별전을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는 6700여건의 기증 유물 중 150여건을 엄선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서울대학교 박물관 등에 소장된 유물 등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운현궁의 역사와 생활상,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흥선대원군의 면모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다. 5월31일까지 열린다. 특별전은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 등 운현궁에서 황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숨겨진 얘기, 그리고 운현궁 자체의 역사, 흥선대원군 등을 통해 보여지는 운현궁의 예술세계 등이 공개된다. 또한 현대 운현궁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사진과 영상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표 전시유물로는 흥선대원군 초상과 흥선대원군의 묵란도 병풍, 화접도, 운현궁에서 사용했던 화로와 황이, 흥선대원군장(章) 등의 인장류, 회중시계 등 흥원(興園·흥선대원군 무덤)출토 유물 등이다. 전시기간 중 서울역사박물관이나 운현궁 중 한 곳의 입장권을 갖고 있는 시민은 다른 한 곳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황정민 “탐정 캐릭터, 너무 매력적”

    황정민 “탐정 캐릭터, 너무 매력적”

    배우 황정민이 자신이 연기한 탐정은 근사한 상상력을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자랑했다. 황정민은 23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그림자 살인’ 언론시사회에서 “탐정을 해보고 싶었다.”며 “탐정이란 캐릭터는 근사한 상상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라고 밝혔다. 황정민은 이어 “어드벤처를 좋아하는데 2편을 만들 땐 보물을 찾게 해달라.”면서 “최근 고종 황제 옥쇄를 찾았다는 내용이 실린 신문을 봤는데 그런 얘기로 보물을 찾는 상상을 해봤다. 보물 찾는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황정민이 극중 맡은 역할은 조선시대 말 사설 탐정 홍진호 역. 의학도 광수와 여류발명가 순덕과 팀을 이뤄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황정민 류덕환 엄지원 등이 출연한 ‘그림자 살인’은 조선을 긴장시킨 미궁의 살인사건을 사설 탐정 홍진호(황정민)와 열혈 의학도 광수(류덕환), 여류발명가 순덕(엄지원)이 5개의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의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탐정추리극이다. 오는 4월2일 개봉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림자살인’ 감독 “흥행하면 속편도…”

    ‘그림자살인’ 감독 “흥행하면 속편도…”

    박대민 감독이 영화 ‘그림자 살인’의 속편 제작을 시사했다. 박대민 감독은 23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린 ‘그림자 살인’ 언론시사회에서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 시 잃어버린 편지 찾기를 의뢰하는 마지막 장면과 관련 “영화가 잘되면 2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탐정이 편지를 찾기 위해) 헤이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엄지원 역시 “2편에는 순덕이가 미국에서 돌아와 주인공이 된다고 해서 1편에 출연했다.”면서 “분량이 적지만 좋은 영화가 마음에 들었고 다른 주인공들의 탄탄한 거름이 될 수 있는 역할이기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극중 라스트신에 고종 황제가 등장해 탐정 홍진호와 그의 파트너 의사 광수에게 잃어버린 편지 찾기를 의뢰하는 장면은 실제 있었던 헤이그 특사(밀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대한제국 광무 11년(1907)에 고종이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려던 사건이다. 이상설, 이준 등이 파견돼 갔으나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준은 몸을 바쳐 조국이 처한 어려움을 알렸다. 황정민ㆍ류덕환ㆍ엄지원 주연 ‘그림자 살인’은 조선을 긴장시킨 미궁의 살인사건을 사설 탐정 홍진호(황정민)와 열혈 의학도 광수(류덕환), 여류발명가 순덕(엄지원)이 5개의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의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탐정추리극이다. 오는 4월2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종황제 ‘비밀 국새’ 찾았다

    고종황제 ‘비밀 국새’ 찾았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비밀 국새(國璽)’가 발견됐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립고궁박물관이 국외로 반출됐던 중요 문화재인 국새를 지난해 12월 재미동포로부터 구입했다.”면서 실물을 공개했다. 이 청장은 “이 국새는 고종 황제가 독일, 이탈리아 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에 쓴 것으로 그동안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유리원판 사진으로만 알려졌던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새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한 1897년 ‘대례의궤(大禮儀軌)’에 기록된 국새 13과(科:도장을 헤아리는 단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열강의 압박 속에서 비밀스럽게 제작한 뒤 고종이 몸에 지니고 다니며 대외적으로 비밀이 요구되는 외교문서에 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고종이 1906년 이 국새를 찍어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는 일본을 지칭하며 “이웃 강대국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면서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대례의궤’에 기록된 국새 가운데 3과를 소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례용 국새인 어보(御寶)는 종묘신실에서, 실무용 국새는 궁내부에서 보관하는 것이 관례다. 실제로 어보가 9.6×9.8×9.8㎝(높이, 가로, 세로)로 제법 크고 무게가 3.75㎏에 이르는 데 비해 이번에 공개된 국새는 높이 4.8㎝에 가로, 세로 각 5.3㎝로 크기가 작고 무게도 794g으로 가볍다.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이다. 정사각형 인장면에 ‘황제어새(皇帝御璽)’라고 돋을새김된 이 국새는 겉상자(寶?·보록)는 없어진 채로 속상자(寶筒·보통)만 남아 있다. 이 청장은 “이 국새를 갖고 있던 사람이 누구이고, 고궁박물관이 어떻게 입수할 수 있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면서 “이 국새는 앞으로 국보 지정 절차를 밟은 뒤 덕수궁 석조전이 복원되면 고종 관련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강병철기자 youngtan@seoul.co.kr
  • 은밀히 새긴 ‘황제어새’ 고종황제의 혼 오롯이

    은밀히 새긴 ‘황제어새’ 고종황제의 혼 오롯이

    ■ 되찾은 ‘대한제국 국새’ 의미 1897년 10월12일 조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국에 걸맞은 지위와 화려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2년 전 황비(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극을 겪었음에도 고종은 여전히 러시아와 일본, 중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경국(傾國)의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고종은 나라를 사실상 빼앗긴 1905년 을사조약을 전후해 열강의 황제·군주에게 적지않은 친서를 보냈는데 대부분 품에 지니고 있던 ‘황제어새(皇帝御璽)’를 찍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17일 공개한 국새가 바로 이 ‘황제어새’다. 따라서 고궁박물관이 이 국새를 되찾은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 국새를 하나 더 갖게 된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즉위 후 만든 13개에 포함 안돼 고종 13년(1876년) 11월4일 경복궁 교태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이곳에 보관하던 국새도 대부분 녹아버리거나 손상됐다. 이에 따라 고종은 소실된 옥새와 인장을 새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때의 상세한 제작 과정은 장서각이 소장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에 보인다.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비롯한 새로운 보인은 그해 12월27일까지 모두 11과(科·개)가 제작됐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는 각종 도장 또한 황제의 위상에 걸맞게 새로 만들어야 했다. 대한제국의 선포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大禮儀軌)’에는 이때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明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 등 13과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외교문서에 쓴 비밀국새는 2개? 하지만 황제어새는 이 기록에 들어 있지 않다. 국새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은밀히 추진해야 했던 고종의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황제어새는 보여주고 있다. 비밀로 남았던 황제어새는 이처럼 제작 관련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누가, 언제, 어떻게 해외로 반출했는지조차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고궁박물관이 고종의 친서에 사용한 국새를 판별한 결과 두 종류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을 박물관은 ‘제1유형 국새’(1903~1906년 사용)와 ‘제2유형 국새’(1905~1906년 사용)로 구별했다. 활자체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두 국새에는 모두 ‘황제어새’라는 문구를 새겼다. 이번에 발견된 국새는 ‘제1유형 국새’로 확인됐다. 두 과의 비밀 어새가 존재했던 셈이다. 고궁박물관은 이번에 공개한 비밀 국새가 만들어진 시기와 관련해서는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라는 고종실록의 기록(광무 5년 11월16일)으로 미루어 1901~190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위감정 절차와 환수의 의미 문화재청은 이번에 전각, 금속공예, 서체, 매듭 등 각 분야별로 10명에 이르는 평가위원을 따로따로 불러서 국새의 진위를 감정했다. 일반적으로 중요문화재라 하더라도 3명 정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국새의 재질 분석, 활자 비교, 국사편찬위의 유리원판 사진 비교 등의 과정을 거쳤다. 국새의 제작 관련 문헌이 없는 상황인 만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국새 구입의 실무를 추진한 정계옥 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10명의 위원 중 매듭을 감정한 분만 상중하에서 ‘하’ 판정을 내렸을 뿐 나머지 위원은 모두 틀림없는 진품으로 감정했다.”고 말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원수보(국방 관련용 국새), 제고지보(고급 관리 인사 때 쓰는 국새), 칙명지보(칙령을 내릴 때 쓰는 국새) 등 3과의 국새는 관련 제작 문헌(대례의궤)이 존재하지만 사용된 문서가 없는 데 반해 고종의 비밀 국새는 제작 관련 문헌은 없지만 사용된 문서가 존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 국새는 앞으로 국보 지정 절차를 밟은 뒤 덕수궁 석조전이 복원되면 고종 관련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라면서 “환수된 국새는 대한제국기의 정치, 사회, 왕실상 등 학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록삼 강병철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국제형사재판소장/이목희 논설위원

    네덜란드 헤이그는 1907년 일본의 국권 찬탈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곳이다. 고종은 밀사를 파견해 일본의 침략상을 호소하려 했다. 강대국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이준 열사는 분사(憤死)로 애국심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무단점령, 집단살해죄 등 반인륜 범죄를 국경을 넘어 제재하자는 국제사회의 논의는 조금씩 진전되어 왔다. 그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 모두 우리가 약자의 설움을 겪었던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다. ICJ는 국가간 분쟁을 다루며, 강제관할권이 미약하다. 그에 비하면 ICC는 독재자·학살자의 개인 책임을 묻는다는 면에서 위력적이다. ICC가 ICJ보다 50년이 훨씬 더 지난 2002년에야 설립된 배경이 되기도 한다. ICC는 최근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해 지구촌의 주목을 받았다. 다르푸르 내전에서 수십만명을 집단학살한 혐의였다. 하지만 국가의 장벽은 아직도 두텁다. 알 바시르 대통령은 다르푸르를 방문해 ICC 규탄집회를 갖는 등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교관과 봉사단체 회원의 추가추방을 위협하는 언행까지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상설 규범·절차로써 반인륜 범죄자를 처벌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지는 않다. 100여년이 걸렸지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처럼 전시성 국제모임이 유엔과 ICJ, ICC 등 상설기구로 발전해가고 있다. 새 국제법과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힘을 쓰려면 이들 국제기구에 한국인들의 진출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송상현 전 서울대 교수가 그제 ICC 소장에 선출됐다는 소식은 반갑다. 앞서 일본은 지난달 ICJ 소장을 배출했다. 마사코 왕세자비의 부친인 오와다 히사시 전 유엔주재 대사가 바로 그로서, ICJ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일본이 우리 땅 독도 문제를 ICJ로 가져가려는 속내를 가지게 된 요인 중 하나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으로 활약하다가 고인이 된 박춘호씨의 자리를 백진현 서울대 교수가 메워줘 위안이 되긴 한다. ICC건, ICJ건, ITLOS건 국제사회에서 일단 목소리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 예산 이씨 종가 150년 전통 간장 - 4개월 숙성 공장 간장

    [대한민국 극&극] 예산 이씨 종가 150년 전통 간장 - 4개월 숙성 공장 간장

    한국인과 간장은 2000년된 친구다. 두산 백과사전은 “대두류가 2000년 전에 한국에 전래됐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무렵부터 장을 담그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써놓았다. ‘삼국사기’에는 683년 왕비를 맞을 때 예물 품목에 간장과 된장이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간장은 한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다. 간장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같은 간장이라도 언제 만들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맛과 색이 천차만별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간장의 극과 극을 찾아봤다. 조선 시대 종갓집에서 150년 동안 전해내려온 간장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조선간장을 비교해 봤다. 양쪽은 각각 ‘전통’과 ‘과학’이라는 각자의 비기(祕技)를 내세웠다. ■ 예산 이씨 종가 150년 전통 간장 “150년 전 간장이 지금껏 전해진 것은 조상을 기리고 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충남 아산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종가 이득선(67)씨는 5대째 전통 간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예안 이씨 종가의 간장은 5대조 이원집 공에서부터 시작돼 이상달(4대조), 이정열(3대조), 이용승(2대조)에 이어 지금의 이씨에게 전수됐다. 예안 이씨가 외암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은 조선 명종 때다. 50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가와 돌담, 정원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70여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각 집들은 옛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 참판댁, 감찰댁, 참봉댁, 송화댁 등으로 불린다. 이씨 집은 ‘참판댁’으로 불린다. 조부 이정열 공이 조선 고종 때 이조참판을 역임해서다. ●200일 지극정성으로 빚어지는 간장 “간장은 정성입니다. 오랜 공을 들인 뒤에 나오는 간장이라야 제 맛을 내고, 100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 빛과 향기가 온전합니다.” 이씨의 ‘간장론’이다. 실제 예안 이씨 종가의 간장은 200여일의 지극정성으로 만들어진다. 간장 제조는 9월부터 시작된다. 우선 직접 재배한 콩으로 메주를 쑨 뒤 가을볕에 50~60일 말린다. 메주가 갈라질 때쯤 뜨거운 방으로 옮겨 줄줄이 널어놓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해로운 균은 죽고, 이로운 균만 살아남는다. 보통 20일 정도 소요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후 1주일가량 햇볕에 말린다. 방 안의 열기로 물러진 메주가 딱딱하게 굳어지면 솔(칫솔 등)에 물을 묻혀 깨끗이 닦고 2~3일 햇볕에 말린 뒤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장을 담그기 전에 또 한 번 메주를 물로 골고루 닦은 뒤 햇볕에 2~3일 말린다. 바짝 마르면 장독의 소금물에 넣는다. 50일 정도 지나면 독 안의 메주가 갈라지고, 소금물이 2cm 정도 준다. 이때 소금물을 가마솥에 붓고 40분~1시간 정도 끓이면 비로소 간장이 된다. 이씨는 “소금은 최소 3년 이상 묵혀둔 것을 사용해야 하고, 소금과 물의 비율은 계란을 띄웠을 때 3분의1 정도 위로 솟아오르게 맞춰야 일품 간장이 된다.”고 귀띔했다. 소금물에는 메주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첨가된다. 간장 색을 진하고 윤기 나게 하고, 균을 없애는 옻나무·숯, 머리를 맑게 하는 호두, 간장을 부드럽게 하고 고소한 향기가 나도록 하는 깨, 독 안에서 열기를 뿜어내 메주가 잘 우러나도록 하는 고추 등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간다. 간장은 담그는 시기에 따라 보통 정월장, 2월장, 3월장으로 나뉜다. 이씨는 “올핸 정월에 장을 담갔다. 3월말이나 4월초쯤 간장을 만든다. 매년 이렇게 만들어진 간장 중 1되씩 5대조부터 내려온 간장독에 부어 15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간장 숙성, 돌의 두께와 일조량 좌우 간장을 숙성시키는 데에도 독특한 비법이 있다. 바로 받침돌의 두께와 일조량이 그것이다. 장독은 동쪽에 30cm 이상 두께의 자연산 돌 위에 올려놓는다. 오전에 해가 뜬 뒤 오후 2시까지 장독은 햇볕에 데워진다. 동시에 받침돌도 볕을 받으면서 서서히 달궈진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 2시 이후에는 오전 동안 데워진 받침돌 열기가 이튿날 아침까지 지속되며 독을 따뜻하게 데운다. 이씨는 “겨울철에도 상온(가열 또는 냉각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기온, 보통 15도)을 유지하고, 온도 변화가 거의 없어 장이 잘 익고 맛이 좋다.”고 전했다. 예안 이씨 종가의 간장은 향후 이씨의 장남 준종(42)씨에게, 그 이후에는 준종씨의 첫째아들에게 전수된다. 이씨는 “간장은 종손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면서 젊은 날 일찍 작고한 형을 애달파했다. “전 종손이 아닙니다. 형님께서 아들 없이 딸만 놓고 일찍 돌아가셔서 제가 대신 맥을 잇고 있습니다. 형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 첫째아들이 형님의 양자로 입적한 만큼 제 사후에는 종손을 통해 대를 이어갈 겁니다.” 김승훈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4개월 숙성 공장 간장 겉으로는 여느 공장과 다를 바 없다. 굴뚝에선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쑥 솟아오른 철제 탱크는 끝간 데를 모르고 줄지어 서있다. 간장공장은 냄새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큼하니 콩 찌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간장이 익어가는 철제 탱크에선 짭쪼름하고 구수한 향취가 맴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샘표식품 간장공장은 국내 최대 규모로 연간 7만㎘의 간장을 만들어낸다. 집에서 해먹는다 해서 ‘집간장’이라고도 불리는 조선간장은 전체 생산량의 1%를 차지한다. ●과학적 장 담금으로 승부 공장장인 오경환 상무는 “간장은 과학”이라고 단언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간장은 집에서 만드는 간장과 달리 잡균을 제거하고 발효에 꼭 필요한 균만 넣는다. 그래야 맛도 선명하고 발효도 빨리 된다. 아스퍼질루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균, 일명 ‘황국균’을 배양하는 기술이 간장의 핵심이다. 황국균은 종균관리 연구소에서 1주일간 배양한 뒤 메주에 넣는다. 전체 메주 함량의 0.3%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좋은 메주를 좌우하는 필수 요소다. 또 공장 간장의 맛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균일하게 날 수 있는 것은 간장의 맛을 결정하는 단백질 함유량(T.N.)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탓이다. 콩에 든 단백질은 가수분해돼 간장 속에서 아미노산으로 바뀌는데, 이 아미노산이 간장 고유의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한국산업규격(KS)에 따르면 간장 안에 단백질이 1% 들어있으면 표준, 1.3%는 고급, 1.5%는 특급이다. 0.8% 이하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대개 집에서 만드는 간장은 0.5% 정도다. 이 공장에서는 원액의 양을 조절해 생산되는 모든 간장을 1.5%가량으로 맞춘다. “메주 외에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는 조선간장의 맛은 특히 이 단백질 함유량에서 승부가 난다.”고 오 상무는 설명했다. 공장에서 만드는 간장이라도 집에서 만드는 방법과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 이 공장에서는 양조간장·진간장·유기농간장·조선간장을 만드는데 소맥을 넣는지, 당분을 첨가하는지 아주 작은 차이만 있을 뿐 메주를 쒀 간장을 만드는 과정은 동일하다. 간장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잘 씻은 콩을 물에 담가 불린 후 고온·고압 조건에서 찌는 ‘침지/증자’ 과정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황국균을 띄워 메주를 쑤는 ‘제국’ 과정이 뒤따른다. 메주는 42시간 띄운다. 2박3일 걸린다고 해서 공장에서는 ‘3일 메주’라고 부른다. 완성된 메주는 소금물에 담겨 발효 탱크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조선간장은 숙성에 4개월 정도 걸린다. 일정하게 온도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1년 내내 28~30℃를 유지해야 한다. 탱크 안에서 소금물과 함께 숙성된 메주는 ‘제미’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짜서 간장을 만들어내는 공정을 ‘압착’이라고 한다. 여기서 간장과 메주 찌꺼기가 만들어지는데 찌꺼기는 동물 사료 등으로 이용된다. 다 만들어진 간장은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알코올(1.5% 첨가)을 넣고 살균 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포장된다. ●“종갓집 간장은 이미지에 불과” 한때 진간장 같은 산분해간장에서 유해물질인 클로로프로판디올(MCPD)이 검출되고, 또 맛을 위해 화학첨가물인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간장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 상무는 “식품에는 기준치가 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들어있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들어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면 난감하다.”면서 “일상적인 간장 섭취량으로는 인체에 무해한 정도다.”고 했다. 오 상무는 100년 묵은 종갓집 간장이 대량생산된 간장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집에서 만든 간장은 아무리 오래됐어도 영양학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이미지에 불과하죠. 다만 오래 보존됐다는 가치가 있고, 색깔은 좀 진하겠죠. 그래도 우리 간장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팔릴 수는 없으니 우열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라며 오 상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공장 간장의 장점은 일정 수준의 간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대중성’에 있는 셈이다. 간장 공장 사람들은 동맥경화 억제, 당뇨병 개선 등 많은 장점을 가진 간장이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었다. “4개월 숙성된 간장이라고 얕보지 마십시오. 과학으로 빚어낸 우리 고유의 맛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김승훈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국민·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 끊임없이 고민”

    “국민·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 끊임없이 고민”

    1955년 10월13일 대법원은 ‘축첩(蓄妾)’ 행위를 불법 무효로 규정했다. 1988년 12월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교환원의 정년을 낮춘 것이 ‘남녀차별금지규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나왔고, 2005년 7월에는 여성을 종중(가문)의 구성원으로 인정했다. 여성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데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판결들이다. ● 성전환자·부부강간 인정 판결 지난달 부산지법은 ‘성전환자(트랜스젠더)에 대한 강간죄 인정’과 ‘부부간 강간 인정’ 등 두 차례의 판결을 통해 여성과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판결의 주인공은 부산지법 민사항소 2부 고종주(60·사법시험 22회) 부장판사. 2002년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전환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도 그였다. 올해로 101주년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6일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국민과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정당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은 어느 판사나 갖고 있는 당연한 마음가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처럼 ‘획기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을 묻자 “때가 됐다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한다. 성전환자의 성별전환 인정을 포함한 세 사건 모두 어떤 요건을 선택해 어떤 시기에 인정하느냐의 문제였을 뿐이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그의 판결문은 인터넷상에서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지난해 2월 전군표 전 국세청장 사건을 맡았을 때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과 심리학 이론을 인용한 ‘인지부조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지난달 판결 내린 성전환자 강간사건의 경우, 피고인에게 ‘오늘을 기점으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고 신은 좋은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준 것이다.’라며 진심어린 훈계를 잊지 않았다. ● 화제의 판결문… 시집도 펴내 5년 전 시집 ‘우리 것이 아닌 사랑’을 발간하기도 한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감정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한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면서 “판결을 내릴 때도 항상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했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길섶에서]환절기 입맛/노주석 논설위원

    얼마전 단골 곱창집엘 갔더니 주인장이 고기를 싸먹으라면서 간장에 절인 명이 장아찌를 내왔다. 연전 울릉도에 갔을 때 먹었던 감동의 그 맛이었다. 생김새는 콩잎과 엇비슷하지만 크기는 갑절 정도로 넓적하다. 명이는 울릉도 특산 산마늘이다. 냄새 한 가지를 빼면 백 가지가 이롭다는 일해백리(一害百利)의 마늘, 그 중에서도 해발 700m 이상 고산에서 자생하는 으뜸 산마늘이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 만에 사람으로 변했다지 않는가. 울릉도 도동항 어느 식당에 가도 기본 찬으로 푸짐하게 내놓지만 서울에선 값이 만만치 않다.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다. 울릉도는 고려시대 공도(空島)정책으로 700여년간 사람이 살지 않았다. 조선 고종 때 뭍에서 100여명이 이주했다. 겨울에 먹거리가 바닥나 굶주렸는데, 눈 속을 뚫고 올라오는 싹을 먹고 연명했다. ‘목숨 명(命)’ 자를 써서 명이라 이름붙인 까닭이다. 알싸하면서 담백한 맛이 곱창구이의 느끼함을 가시게 한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 나른한 입맛을 자극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일제가 궁궐 이렇게 훼손” 설계도면 첫 공개

    “일제가 궁궐 이렇게 훼손” 설계도면 첫 공개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신축·개조 사업을 통해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등 우리 전통 양식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고 변형됐는지를 보여주는 설계도면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1906년부터 1936년까지 작성된 궁궐 관련 도면 122종과 고종 황제 홍릉 조성 등 의례 관련 19종, 가옥 33종 등 총 174종의 원본 도면을 실은 ‘근대건축도면집’을 26일 펴냈다. 이 도면들은 일제 통감부와 총독부의 지휘 아래 있던 궁내부와 이왕직에서 작성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도면에는 창덕궁 인정전 주변의 행각(行閣)을 복랑(複廊)에서 전각 형태로 고치고, 주위에 복도를 신설해 알현소로 조성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또 순종황 제의 침전이었던 대조전 일원이 1917년 화재로 소실되자 그 자리에 서양식 침전인 내전양관을 지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경궁 전체 평면도에는 창경궁을 동물원, 식물원, 박물원 등 세 영역으로 개조하는 안이 포함됐다. 한중연 윤진영 연구원은 “일제가 궁궐 신축·개조사업을 실시하면서 궁궐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한 채 편의에 따라 다른 용도로 변경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고종 황제의 홍릉 조성과정을 그린 도면과 순종 황제의 국장 자료 등이 포함된 의례 관련 도면은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황제릉 조성사업의 실체를 엿보게 한다. 또 가옥 관련 도면은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 말까지 한성부의 주거모습을 명확히 파악할 수있는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황제릉 조성사업에 관한 사료인 순종 유릉의 정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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