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전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급락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교실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투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 연대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486
  • [열린세상] 日 ‘런치메이트 증후군’과 내셔널리즘/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日 ‘런치메이트 증후군’과 내셔널리즘/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지난해 도쿄대·와세다대 등 일부 대학 화장실에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지 말라.’는 쪽지가 붙은 일이 종종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대학 교수가 학생을 대상으로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사실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예’라고 대답했다. 일본 사회에 하나의 충격을 던진 사건이다. 일본의 도하 신문 방송에 보도된 내용이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이유는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 ‘외톨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대답이다. 혼자 점심 먹는 걸 공포로 여기는 심리를 정신과 의사인 마치자와 시즈오는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론은 “친구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게 화장실 식사 현상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키이스 페라지의 저서 ‘혼자 밥 먹지 마라’라는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성공적인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원한다면 혼자 식사하는 버릇을 절대 피해야 한다는 조언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하필이면 왜 화장실일까라는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화장실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전통적인 변소를 ‘가와야’(厠)라고 했다. 또 변소를 ‘가와야노가미’(厠の神), 신이 머무르는 장소 로 여겼다. 임신부가 변소를 깨끗이 해야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나 ‘셋징(雪隱·변소) 마이리(參り)’도 그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징 마이리는 아이가 태어난 지 3일과 7일째 되는 날 아이를 안고 변소에 가는 풍습이다. 때문에 일본인에게 화장실에서 하는 식사는 결코 불결한 행위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식사는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하나의 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 양식, 즉 혼네(本音·속)와 다테마에(建前·겉)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일본인의 혼네라면, ‘홀로 식사하는 상황’은 다테마에가 아닐까. 일본인의 행동 기준은 ‘내’가 아니라 ‘남’인 경우가 많다. 이미 고전이 된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이를 ‘수치’의 문화라고 규정했다. 베네딕트는 “신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서양 사람(죄의 문화)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애쓴다.”고 말했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일본학자 센켄은 일본인 자신을 더욱 가혹하게 평가했다. “남 앞에서는 수치를 의식하지만 남이 보지 않으면 무슨 짓도 가능하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빈약한 역사의식으로 이어졌다.”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내재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은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의 일본 정부가 이웃나라에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센켄의 자기반성과 거리가 먼 듯하다. 남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허용 기준치의 100배가 넘는 방사능 오염 물을 바다에 방출했다. 인접국인 우리 나라엔 한마디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웃 국가들이 일본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며 구호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경제대국 일본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웃 나라들의 온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례로 태국이 쌀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재고가 300만t이나 있다.”며 거절했다. 더욱이 난국 속에서도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수를 대폭 늘려 검정을 통과시켰다. 일부 교과서는 외무성 홈페이지를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했다. 동아시아 공생공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자임했던 민주당이 태평양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상황에서 결정한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일본 정부의 인식이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화장실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언론이 화장실 식사에 대해 ‘성공하기 위해선 홀로 식사하는 버릇을 피하라.’고 했던 충고는 정작 일본 정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일본식 내셔널리즘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 말이다.
  • 창세기 히브리어 원전 역주서 발간

    구약성경 첫 권, 창세기를 성경 히브리어 원전인 ‘마소라 사본’의 원뜻과 소리를 충실히 살려 번역한 역주서가 나왔다. 방석종 전 감리교신학대(구약학) 교수가 3년간 매달려 세상에 낸 ‘창세기 역주’(전통문화연구회 펴냄)다. 기독교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 차원에서 마소라 사본을 토대로 창세기 역주서를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성경이 완역된 지 올해로 100년째. 기독교계는 예배용 공용 성경 개역 개정(1997년)·천주교 성경(2005년)을 비롯해 공동 번역(1978년)·표준 새 번역(1993년) 등 공용 번역을 통해 원문과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옛 번역을 답습한 부분이 많아 여전히 신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목회자들도 적지 않은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번 ‘창세기 역주’의 가장 큰 특징은 원문의 뜻과 음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이다. 인명·지명 등 고유명사를 원음주의에 따라 표기해 이삭·이사악은 이츠하크로, 벧엘·베텔은 베트엘로 쓰는 식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 부분에 히브리어의 문법적 설명 외에도 각종 자료를 붙여 뜻을 상세하게 밝혔다. 자세한 소제목을 달아 제목만으로도 단락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띈다. 책의 탄생 경위도 예사롭지 않다. 평생 구약학 연구에 매달려 온 방 교수가 지도하던 은평감리교회의 교육과정 ‘모세오경 연구 과정’이 출발점이다. 작은 독회 모임에서 번역을 계획해 이 교회 목사, 장로, 권사를 비롯한 신학·국어·교정 전문가 100여명이 3년에 걸친 독회와 감수, 윤문, 교정 작업을 했다. 역주서의 시작과 끝이 모두 은평감리교회의 작품인 셈이다. 이 모임은 앞으로 모세오경을 모두 간행할 예정이다. 주로 동양 고전 번역 출판에 치중해 왔던 전통문화연구회가 책 출판을 맡은 것도 흥미롭다.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은 “이 땅에서 종교 간 갈등의 수위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며 “서양 고전의 정수인 기독교 경전을 번역하는 일은 동서 고전을 통한 종교 간 이해와 평화 차원에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출판 배경을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프로농구] 동부 “빅4 동시투입” KCC “전태풍 승부수”

    말 그대로 혈전이다. 엎치락뒤치락 예측이 힘들다. 2010~11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KCC가 동부에 3승 2패로 단 한발 앞서 있다. 수치상으론 KCC가 유리하다. 그러나 5차전 내용을 보면 워낙 박빙이다. 어느 팀이 우승해도 이상할 게 없다. 혈전을 거치면서 두팀 다 전력누수가 심각하다. 몸이 정상인 선수들이 별로 없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전략·전술도 다 동원했다. 이제 마지막 2경기. 두팀에 남은 승부수는 무엇일까. 동부는 변형전술에 능한 팀이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포메이션은 돌고 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웬만한 변형전술은 나올 만큼 나왔다. 동부 강동희 감독이 마지막 승부수로 숨겨 둔 건 빅4 동시 투입이다. 센터 4명을 한꺼번에 기용하겠다는 얘기다. 극단적인 만큼 위험성도 크다. 동부는 김주성-로드벤슨-윤호영의 트리플 포스트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센터 하나를 더 투입한다. 센터요원인 김봉수(197㎝)나 권철현(196㎝)이 후보다. 이러면 KCC와의 매치업에서 미스매치를 유발할 수 있다. 하승진이 버틴 KCC 골밑을 뚫기 위한 고육책이다. 확실히 득점력에선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팀 전체가 지나치게 느려진다. 골밑에서 동선이 중복될 가능성도 크다. 그걸 조율할 방법도 마땅찮다. 득점력을 높이려다 오히려 공격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KCC 허재 감독도 “크게 신경 안 쓴다. 동부 생각대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KCC 골밑은 나쁘지 않다. 동부 트리플타워는 내구력이 떨어진다. 하승진은 그 사이를 잘 헤집고 있다. 추승균 대신 투입한 신명호도 슛 감각이 좋다. 수비력도 발군이다. 전체적으로 내·외곽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하나 불안요소는 전태풍이다. 챔프전 내내 고전하고 있다. 3~5차전까지 총 12점밖에 못 넣었다. 5차전에선 3점슛 6개가 모두 빗나갔다. 팀의 흐름을 깨뜨리고 있다. 전태풍이 움직이면 득점력을 살려주기 위해 스크린 하나가 따라붙는다. 팀 전체 포메이션이 미묘하게 엉킨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전태풍의 득점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6차전 변수는 다시 전태풍이다. 허 감독은 “이제는 터질 때가 됐다. 스스로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KCC의 마지막 승부수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가장 행복했던 기억 얘기하고 싶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 얘기하고 싶었다”

    “이게 9번째 장편만화인데 모두 영화 계약을 했죠. 그런데 ‘그대를 사랑합니다’ 빼고는 모두 다 망했어요. 껄껄.” 만화가 강풀(37·본명 강도영)이 커다란 덩치와 우락부락한 얼굴이 무색하게, 또한 웹툰 만화계 최고 스타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짓 껄껄거리지만 수줍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작품은 그려내는 족족, 좀 더 정확히는 인터넷 연재를 시작하는 족족 영화·연극계 등에서 눈독 들이며 채갔다. ‘아파트’가 그랬고, ‘바보’ ‘순정만화’ ‘타이밍’ 등이 그랬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흥행에 제대로 성공한 것은 이순재·윤소정·송재호·김수미 주연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강풀 징크스’란 말까지 생겨났다. 강풀은 앞서 “(‘그대사’도) 개봉 둘째 주에 퐁당(교차 상영)에 들어가기에 끝났구나 싶었는데 입소문 등에 힘입어 순항하는 걸 보고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었다.”면서 “진정성은 통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대사’는 관객 150만명을 돌파하며 지금도 상영되고 있다. 그가 ‘순정만화 시즌 4’를 표방하며 최근까지 인터넷에 연재해 온 ‘당신의 모든 순간’(이하 ‘당모순’, 재미주의 펴냄)을 책으로 묶어 내놓고 25일 서울 대학로 갤러리 이앙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당모순’ 역시 이미 제작사 청어람을 통해 영화화 계약이 끝났다. 강풀은 자신이 내놓는 작품마다 영화, 연극, 드라마 등으로 앞다퉈 변주되는 이유에 대해 “재미있으니까”라고 능청을 떨다가 금세 “영화산업이 검증된 콘텐츠를 찾기 때문이기도 하고 네티즌에게 홀리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겠느냐.”라면서 ‘겸손 모드’로 전환했다. 그의 작품에는 줄기차게 착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고전적인 권선징악식 선악 구도 또한 없다. 심지어 악인조차 그 근본은 선하고, 그렇게 변질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품고 있다. “저도 사실은 한때 그것 때문에 많이 고민한 적 있었어요. 별로 착하지도 않은 제가 착한 사람들 얘기만 하고 있으니…. 아마도 성선설을 믿는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사람들이 나와 얽혀 살며 풀어내는 이야기가 좋아요. 앞으로도 이런 것만 그릴 것 같아요.” 신작 ‘당모순’에는 무시무시한 좀비가 등장하고 잔혹스러운 장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좀비들도 전형적인 좀비가 아니다. 뇌리에 박혀 있는 ‘마지막 순간, 마지막 행복의 기억’으로 돌아가지 못해 괴로워하는 존재들이다. 강풀은 “보통 좀비 영화를 보면 사랑하는 이나 부모 자식이라도 좀비로 변하면 죽여 버리잖아요?”라고 반문한 뒤 “죽어가는 순간 떠오르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 가장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번 작품은 ‘호러물’이 아니라 ‘순정만화 시리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만화가가 되기는 쉬워졌지만, 만화가로 살아남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간담회 끄트머리에 “또래에 비해 돈을 많이 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강풀은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수입이 좋으니 너희들도 만화가 하라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다.”며 여전히 열악한 웹툰 만화가의 처지를 토로했다. ‘착한 만화’를 즐겨 그리는 만화가지만 만화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착하지 못하다는 ‘수줍은 항변’처럼 들려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영화프리뷰] ‘워터 포 엘리펀트’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아이비리그 명문대 수의학과 졸업을 앞둔 제이컵(로버트 패틴슨)은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뀐다. 모든 것을 잃고 충격을 받은 그는 정처 없이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다 벤지니 서커스단의 기차를 타게 된다. 서커스단에서 수의사로 일하게 된 그는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제이컵은 서커스단 최고의 스타이자 단장의 아름다운 아내 말레나(리즈 위더스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제이컵과 말레나는 서커스단의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코끼리를 함께 돌보고 훈련시키면서 호감을 느끼지만, 서커스단의 폭군으로 군림하는 단장 어거스트(크리스토프 왈츠)가 이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한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대공황 당시 최대 호황을 누렸던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주인공들의 애정 관계에 얽힌 스토리가 더 중심을 이루는 영화다. 블록버스터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뛰어난 시각 효과에 서사적인 스토리를 결합시켜 호평을 받았던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이번에도 서커스라는 화려한 쇼에 서사적인 로맨스를 덧입히려고 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강렬하거나 웅장한 느낌은 덜하다. 백발노인이 된 제이컵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고전적인 시대 배경만큼이나 주인공들의 삼각 관계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광폭한 남편의 학대를 피해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제이컵과 말레나의 감정선이 섬세하고 애절하게 표현되지 않아 감정 이입이 어렵고 오히려 동물에게 호된 매질을 서슴지 않는 어거스트의 잔인함에만 시선이 쏠리는 불균형을 낳았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전 세계 소녀팬들을 사로잡은 로버트 패틴슨은 성숙한 캐릭터에 도전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격정적인 로맨스를 표현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단, 동물을 좋아하거나 1930년대 미국 서커스단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초대형 천막 안에서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부리는 묘기에 눈길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량이나 스케일이 작아 영화 ‘시카고’나 ‘물랭루즈’처럼 화려하고 관능적인 볼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미국에서 280만부를 판매한 세라 그루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15세 관람가. 5월 4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6) ‘붉은 책’ 카를 구스타프 융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6) ‘붉은 책’ 카를 구스타프 융

    “이봐요 의사 양반, 어서 저기, 태양을 좀 봐요. 태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요? 당신도 나처럼 머리를 움직여요. 이렇게. 보이나요? 태양의 남근(pallus)이. 그게 바람의 근원이랍니다. 이렇게 머리를 움직이면 태양의 남근도 움직이고, 그럼 바람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정신병 환자 에밀 슈비처는 정신없이 바쁜 젊은 의사를 붙잡고 자신의 환상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의사는 어느새 이야기에 매혹되어 함께 태양을 바라보았다. ●무의식, 인간 안의 자연 4년 뒤, 그 젊은 의사 융은 이 황당한 환상을 독일 역사학자의 고대 미트라교 연구서에서 만난다. 이게 도대체 뭔 일?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슈비처가 미트라교를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은 슈비처가 환상을 이야기한 지 4년 뒤에 출판된 것이 아니던가. 시간을 가로질러 반복되는 이야기들. 융은 이것이 인간 정신의 공통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16년, 중년이 된 융은 ‘무의식의 구조’에서 이런 구조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모든 종(種)은 자신의 생명을 실현시킬 적합한 방식을 찾아 진화했다. 신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이듯, 정신 역시 그렇다. 생명의 힘을 실현한 역사의 표현으로서의 정신. 경험에 앞서, 경험을 산출하는 조건. 삶의 지혜를 담은 온갖 민담과 신화, 종교적 이야기의 생산 공장. 정신은 인간 속의 자연이었고, 삶을 위한 창조적 힘을 담고 있었다. 이것이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이다. 이런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의지에 앞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을 불쾌하게 느낀다. 하지만 불쾌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융은 말한다. 양배추가 똥거름에서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똥거름 냄새가 좀 불쾌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융에게 무의식은 그런 똥거름, 선악의 저편에 있는 자연이었다. 성적인 것만으로 환원되기에는 너무도 풍부한 자연! ●프로이트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집단 무의식의 발견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융은 익살과 민담을 들려주던 가난한 농부들과 책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버지의 서재를 오가며 자랐다. 융은 학문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타협점으로 바젤 의과대학을 선택한다. 1900년 공부를 마친 융은 취리히 주 정신의학 대학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다. 융은 그곳에서 정신의 병이 무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았다. 치유의 단서는 무의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단서에 이를 것인가. 이때 그에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계시처럼 찾아왔다. 융은 거기서 두 개의 길을 발견한다. 하나는 무의식에 이르는 길로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로서 자신을 인도해줄 ‘프로이트’라는 길. 1906년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담아 융은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시 학계에서 찬밥신세였던 프로이트는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젊은 의사의 지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어진 7년간의 우정. 그 우정은 1913년, 완전한 자유를 가져가라는 프로이트의 편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융의 답장으로 막을 내린다. 프로이트가 말한 ‘완전한 자유’란 사상적 자유를 말한다. 융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성격을 오로지 성(性)으로 환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융이 일하고 있는 병원은 국립병원으로, 당시 그곳은 에밀 슈비처처럼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다. 그런 환자들의 병은 성에 의한 도덕적 갈등보다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 때문에 발생했다. 더욱이 어릴 때 듣던 농부들의 이야기는 어떠했는가. 그 이야기들은 성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사용된 성적 은유는 말 그대로 은유일 뿐, 삶의 다양한 힘들을 표현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융은 이런 생각을 담아 1912년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을 출간한다. 그렇게 융은 프로이트를 떠나 자신의 길로 들어선다. 프로이트와의 이별 전까지, 융의 삶은 프로이트에게 경도되어 있었다. 이런 삶을 무의식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정신의 자가 조정 체계로서 무의식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 밀려왔다. 이렇게 시작된 무의식의 반란은 프로이트와의 결별 후 더욱 심해졌다. 길을 잃은 의식으로 기괴한 꿈과 환상들이 마구 밀려왔다. 내 안에 있는 낯선 것들, 그 타자들.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심각한 환자 신세가 될 판이었다. 이제 그에게 선택은 하나.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는 것! 치유의 첫 단계는 내 안의 타자들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무의식이 표현하는 타자들은 그 자체로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자연일 뿐, 병은 오히려 의식이 그것을 대면하지 않고 도망가는 데서 왔다. 융은 그 타자들을 긍정하고 무의식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일종의 받아쓰기 작업이었다. 중구난방으로 펼쳐졌던 환상들이 언어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럴수록 융은 점점 안정되어갔다. 이렇게 여섯 번째 노트를 완성할 즈음, 융은 받아쓰기를 멈췄다. 거기에는 오직 타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자신이 그간 프로이트의 이름만으로 살아왔듯, 그곳에도 자신의 목소리는 없었다. 융은 타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받아쓰기에서 번역하기로! 현실 속의 삶,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내야 할 삶. 그 삶의 문법으로 타자들의 이야기를 융합하기. 융은 새로운 노트에 그 융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융은 1913년부터 4년간 이런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의 노트를 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융은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자 그 병원을 책임진 의사였다.” 융에게 글쓰기는 치유였다. 이것은 훗날 그의 치유 방법 중 한 가지로 이용된다. 융은 환자들에게 자신의 꿈과 병을 스스로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요구했다. 환자들은 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글쓰기를 통해 자신 안의 자연을 만나고 통합하는 법을 배웠다.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시오! 이제 제법 희끗한 머리를 가진 의사 융. 그를 만나고 나온 환자. 투덜거린다.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진단도 안 내리고, 딱히 처방도 안하고, 그렇다고 안쓰럽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상담을 마친 환자들은 뚱하고 불친절한 융에 대해 한번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시 융을 찾았다. 그들은 느꼈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하사할 때 얻을 수 없던 것을. 그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이 능동적으로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융의 진료실은 여느 진료실과 달랐다. 그곳에는 반쯤 누운 상태에서 의사의 이야기를 편안히 받아들이도록 고안된 환자용 의자도, 그 뒤에서 환자를 은밀히 관찰하는 의사용 의자도 없었다. 대신 의사와 환자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뿐. 그 의자에 앉아 융은 그저 물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융은 의사로서 말하는 대신 환자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병의 문제부터 치유 단서까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병의 심판자로서, 치유의 구원자로서 의사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융은 알았다. 융의 성격이 원래 좀 퉁명스러웠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융은 굳이 직업적 친절함으로 그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의사에게 쉽게 의존하는 환자의 성향을 막고, 환자를 독립적인 대화상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의사와 환자는 병이 던져준 수수께끼를 함께 푸는 놀이의 참가자였다. 거기서 길을 만드는 것은 환자의 몫이었고 의사는 조력자일 뿐이다. 오늘날 너무도 병원에 의존해 사는 현대인을 보면 융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아도 유효한 치료란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다시금 새롭게 획득되어야 하는 법이지요.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벌써 기다려진다, 6월 발레 향연

    벌써 기다려진다, 6월 발레 향연

    한국 발레의 대표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6월 12일부터 열리는 ‘제1회 대한민국 발레축제’(Ballet Festival Korea)에서다. 국립발레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발레 종합선물세트다. 공연은 크게 기성 작품을 선보이는 1부 리그와 실험적 창작 작품을 선보이는 2부 리그로 구성됐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무대로 열리는 1부 리그에서는 기성 발레단의 대표작들이 오른다. 12일 개막일에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14일에는 서울발레시어터의 ‘라이프 이즈’, 16일에는 광주시립무용단의 ‘명성황후’가 무대에 오른다. 18일 마지막 날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이 장식한다. 고전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만난 ‘백조의 호수’와 비극 발레의 대명사로 큰 호응을 얻어냈던 ‘지젤’은 정통 고전발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라이프 이즈’는 4개의 발레를 모은 것으로 바하의 무반주첼로곡 등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감각의 창작 발레를, ‘명성황후’는 국악 관현악 반주를 도입해 전통과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단체별 색깔과 개성도 나름대로 살린 셈이다. 18일부터 27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2부리그는 창작발레 활성화를 내걸었다. 창작에는 안무가가 핵심. 따라서 19개 작품 가운데 공모를 통과한 8개 작품에 무대를 제공한다. 클래식 발레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선보이는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워크Ⅰ’, 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움직임으로 다시 풀어낸 백영태 강원대 교수의 ‘플로잉’, 청년실업자인 27살 여자를 백조에 비유해 재밌게 풀어낸 김경영의 ‘구로동/백조’ 등 신작이 줄줄이 무대에 오른다. 또 축제인 만큼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25일 오후 1시 예술의전당 국립예술자료원에서 ‘발레스타와 팬들 간 만남의 시간’을 연다. 발레의 멋스러움과 우아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공연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오페라극장과 자유소극장 로비에서는 ‘발레축제 사진전’도 진행한다. 발레에 관련된 영화를 야외에서 상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관객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창작발레 공연 뒤에는 안무가와의 대화 시간을 따로 마련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오페라극장 공연은 5000~8만원. 자유소극장 공연은 전석 2만원. 1부리그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오페라패스는 40%, 2부리그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자유패스는 20% 할인해 준다. 단체별로 묶은 할인 패키지도 있다. (02)587-618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MLB] ‘170㎞ 魔球’ 신시내티 채프먼 광속구 세계 신기록

    [MLB] ‘170㎞ 魔球’ 신시내티 채프먼 광속구 세계 신기록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강속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투수 손에서 떠난 150㎞ 강속구는 0.4초면 포수 미트에 도착한다. 타자 눈엔 그저 번쩍임일 뿐이다. 이론적으론 타격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반응시간보다 빠르다. 아무리 변화구가 발달하고 야구가 변해도 강속구는 투수가 장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투수들이 강속구를 원하는 이유다. 바야흐로 강속구가 대세다. 투수들의 구속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기교파 투수들의 시대는 가고 파이어볼러들의 시대가 왔다. 미국 메이저리그부터 그렇다. 대표 주자는 신시내티의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이제 23세. 쿠바 출생이다. 지난 19일 신시내티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전에서 106마일(약 170.6㎞)을 던졌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드디어 인간이 170㎞대를 넘어섰다. 투수들이 힘으로 타자를 찍어 누르려 한다. 야구는 더 스피드하고 긴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채프먼은 이날 다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했다. 두 번째 타자인 앤드루 매커첸을 맞아 106마일 광속구를 뿌렸다. 매커첸은 전혀 타이밍을 못 맞췄다. 일반적인 타격 메커니즘을 벗어난 속도였다. 미리 판단하고 더 빠르게 방망이를 돌렸지만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5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구장 전광판엔 106마일이 찍혔다. 중계방송과 신시내티 스피드건엔 103마일이 떴다. 정확한 구속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경기장 전광판의 구속을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전 기록은 역시 채프먼이 지난해 9월 샌디에이고전에서 던진 105.1마일(169㎞)이었다. 1년이 채 안돼 기록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광속구 전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조엘 주마야(168㎞), 우발도 히메네스(160㎞), 저스틴 벌랜더(159㎞)가 구속을 올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타격 기술이 발달할수록 결국 관건은 힘 대결이다. 타자를 이겨내려면 더 빠른 직구를 장착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구도 힘을 쓸 수 있다. 현재 비공식 한국 최고 구속은 지난달 13일 LG 레다메스 리즈가 던진 160㎞다. 일본에선 2008년 요미우리 마크 크룬이 162㎞를 찍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국내 최대 화폐경매 실시

    국내 최대 화폐경매 실시

    화폐전문업체인 ㈜화동양행은 21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화폐 경매를 실시한다. 제19회를 맞는 이번 경매행사는 국내외 고대 화폐 등 모두 880종이 출품된다. 특히 중국 고전을 40년간 수집해 온 이건일(68)씨의 컬렉션을 통해 원시화폐, 포전, 도전 등 3000년 역사의 중국 화폐가 연대기별로 출품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5) ‘북학의’ 박제가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5) ‘북학의’ 박제가

    박제가(그림·1750~1805)는 ‘서얼’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서얼은 신분상의 제약과 차별 때문에 실력을 갖추어도 기량과 경륜을 펼치기 어려웠다. “우리를 믿지 않고 소인이라 하니, 무한한 마음속 계책 누구에게 말해 볼까?”라는 고민은 박제가에겐 숙명적인 것이었다. 박제가는 양반이면서 양반이 아닌, 경계인으로서 그 ‘존재성’에 대해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박제가는 사회적 차별에 굴하지 않았다. “고독하고 고매한 사람만을 골라서 남달리 친하게 사귀고, 권세 많고 부유한 사람은 일부러 더 멀리하며”(정유각집 ‘소전’편) 차라리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패기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시대와 불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당대의 사람들이 지당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인습에 저항했다.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눈꺼풀’을 떼어내고 천하를 응시하여 ‘심지를 열고 이목을 넓히라.’고 외쳤다. ●이덕무 “답습한 시는 가짜 시다” 박제가는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나누는 우정의 향연 속에서 학문을 배우고 시와 글씨와 그림을 연마했다. 박제가에게 친구는 ‘기운을 나누지 않은 동기요, 한 집에 살지 않는 부부’였다. ‘나와는 둘이면서 하나인’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유득공, 이서구, 서상수, 유금, 백동수와 같은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런 친구들이 있어 박제가는 세상의 시와는 다른 시를 거침없이 쓸 수 있었다. “세대마다 시가 있고 사람마다 시가 있는 법이어서 시는 서로 답습할 수 없다네. 답습한 것은 가짜 시라네.”라고 채찍질한 이덕무와 같은 친구가 그의 곁에 있었다. 1700수가 넘는 시 작품엔 박제가와 이 멘토들의 우정의 숨결이 함께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제가는 고군분투했다. 틀에 박히고 고루하고 진부한 시와 문장을 혐오하며 나만의 글쓰기를 찾아 나섰다. 당시 선비들은 두보의 시를 최고로 여겨 배웠고, 다음은 당나라 시, 그 다음은 송나라·금나라·원나라·명나라 시를 배웠다. 박제가가 보기에 전범에 매달리는 글쓰기는 남이 한 말의 찌꺼기나 줍는 행태에 불과했다. 자기 시대의 현장을, 자기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시요 문장이었다. 역설적으로 나만의 글쓰기를 개척하는 것이 진정 고인의 글쓰기에 다가가는 길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모두 시다. 사계절의 변화와 온갖 만물의 웅성거리는 소리, 그 몸짓과 빛깔, 그리고 음절은 그들 나름대로 존재하고 있다.”(‘형암선생시집서’·炯菴先生詩集序) 지금-여기 살아 있는 만물 각각의 미묘한 움직임과 그 지극한 경지를 포착하는 것. 이것이 시의 출발이다. 사물에 대한 미세하고도 예리한 관찰은 시인에게는 절대적인 지상과제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대의 문장을 순정한 문체로 되돌리겠다는 정조의 강력한 의지에 부응하여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자송문’(自訟文)에 어울리지 않게 반성은 하지 않고 항변에 열을 올렸다. “소금이 짜지 않고, 매실이 시지 않고, 겨자가 맵지 않고, 찻잎이 쓰지 않음을 책망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런데 만약 소금, 매실, 겨자, 찻잎을 책망하여 너희들은 왜 기장이나 좁쌀과 같지 않으냐고 한다든지, 국과 포를 꾸짖어 너희는 왜 제사상 앞에 가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들이 뒤집어 쓴 죄는 실정을 모르는 것입니다.”(‘비옥희음송인’·比屋希音頌引)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맛의 문장! 이것은 박제가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글쓰기의 보루였다. 이는 당대의 복고, 혹은 의고문에 저항하는 방식이었으며, 더 나아가 만물의 보편 원리나 질서를 따르는 당대 성리학의 이념을 무용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동일하게 만드는, 오직 하나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그 시대 ‘권력’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청나라 선진 문물 도입이 부국강병의 길 박제가는 29세 때인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종사관 자격으로 중국에 가게 된다. 곳곳에서 맞닥뜨린 청나라의 문명은 실로 눈이 부실만큼 풍요롭고 세련되고 화려했다. 청나라는 더 이상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균·이조원·반정균·옹방강·나빙·이정원 등 청나라의 학술부흥운동을 주도한,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일개 조선의 선비와 흉금을 터놓고 학문을 논하자, 그들의 자유로움과 벽 없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제가는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전환한다. 가난한 조선, 비문명국 조선의 갈 길은 북벌이 아니라 북학이라고. 진정한 오랑캐가 누구인지 먼저 분간하고 우리 안에 있는 진짜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 청나라를 힘써 배워야 한다고. 박제가는 ‘가난’을 싫어했다. 권력에 아부하기 싫어 ‘차라리’ 가난하게 산 것이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장인 이관원이 검소하게 살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꾸했다. “침향목과 단목으로 저를 조각하고 색실로 저를 수놓아 열 겹으로 싸서 간직하여 길이 후세에 전해 사람마다 보게 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소쿠리 밥에 표주박 물을 마시며 해진 솜옷을 입고 살면서도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는 듯 지내는 것이 어찌 본마음이겠습니까?” 박제가에게 ‘안빈낙도’는 자신을 속이는 말이었다. 명분에 매이지 않고 욕망에 솔직했던 박제가.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그는 확신했다. 조선의 빈곤 타파와 갑갑한 습속의 개혁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만 가능함을. 이 때문에 연행을 다녀온 직후 ‘북학의’를 저술한다. 이 책에는 청나라의 수레, 기와, 벽돌, 수차, 화폐, 종이, 의복, 문화예술 등을 적극적으로 배워 조선을 부강한 문명국으로 이끌고 싶다는 박제가의 패기가 넘쳐난다. “꽃에서 자란 벌레는 그 날개나 더듬이조차도 향기가 나지만 똥구덩이에서 자란 벌레는 구물거리며 더러운 것이 많은 법이다. 사물도 본래가 이러하거니와 사람이야 당연히 그러하다. 빛나고 화려한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은 먼지 구덕의 누추한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들과는 반드시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나라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북학의’) 가난하고, 학문은 고루하고, 견문은 좁고, 문화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조선. 박제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조선이 풍요롭고 세련된 문명 세계가 되기를, 조선 백성의 더듬이와 날개에서 문화의 향기가 넘쳐나기를. 박제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도 향기 나는 사회다. 재화의 유통이 활발하고, 사치가 가능하며, 문화적 수준도 상당한 사회. 박제가는 문화예술과 사치품에 관해 논할 때 도덕주의적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사치스러움은 재화와 물품을 마르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순간 조선의 선비 박제가는 소박하고 질박한 생활을 표상했던 유학적 가치와 완전히 결별한다. 박제가는 더 나아간다. 조선이 빠르게 청나라에 맞서는 문명국이 되려면 언문이 일치되는 중국어(북경어)를 사용하잔다. 영어공용론에 맞먹는 상상력이다. 중국어를 제2의 국어로 사용하자는 제안은 실로 급진적이다. 그에게는 조선 땅이 너무 좁았으며 조선의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문명세계를 향한 박제가의 욕망은 중국어공용론으로 거리낌 없이 내달린다. 이런 정황상 북벌을 절대 이념으로 수호했던 당대 선비들이 이 열혈 북학자에게 당괴(唐魁) 혹은 당벽(唐癖)이라는 비방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너무 조숙한 세계주의자… ‘나’를 둘러싼 사회와 세계는 늘 살아 움직이고 변화한다.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여 변화를 보지 못하고 인습적 규범에 갇혀 있다면 그건 진흙 소상을 모방하는 일과 같을 것이다. 박제가는 그 단단한 습속의 벽과 온몸으로 맞서 싸웠다. 비겁하지 않게 직설과 독설로 맞섰다. 그러나 박제가는 지나치게 조숙한 문명주의자요, 세계주의자였다. 북학파 중에 가장 급진적이었고 가장 앞서 나아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문명세계를 향해 돌진했다. 어쩌면 조선의 ‘현재’와 ‘새로운’ 문명 사이를 조율할 수 있는 천리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비호해주던 정조의 죽음 직후 박제가는 대비 김씨와 노론의 영수 심환지를 비방하는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한다. 그는 외롭게 고투했다. 그가 희망한 바, “1000년 뒤에도 1000만명의 사람들과 다른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사설] 소록도를 품에 안은 조용필의 아름다운 공연

    조용필이 또 한번 위대한 탄생의 장을 열었다. 엊그제 펼쳐진 가왕(歌王)의 소록도 공연은 우리 대중가요사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했다. 300여명의 한센인과 함께 울고 웃은 공연은 한마음 한몸의 대동(大同) 축제였다. 날로 파편화돼 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소외의 문제는 이미 고전적인 것에 속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웅변하는 땅이 바로 소록도다. 그렇기에 이번 자선공연이 주는 메시지는 더욱 각별한 데가 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나눔을 실천했으며, 소통의 전범을 보여줬다. 지난해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소록도 공연에서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그는 실천에 옮겼다. 공약(空約)으로 상징되는 정치권의 약속 파기로 우리는 얼마나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국민가수로서의 조용필은 상아탑에서의 연구도 활발하다. 그의 음악세계를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학자도 있다. 주목할 것은 그가 공인으로서 자신의 유산을 나누고 베푸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재능 기부다. 그 선두에 그가 있다. 고객의 만족을 넘어 감동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경영의 대세다. 그런 관점에서라도 우리 사회의 재능 기부가 ‘감동 기부’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번 공연은 그것이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가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불통의 질병을 앓고 있다. ‘조용필식’ 소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스스로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싸안았다.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대스타가 약속을 지키다니….” 조용필은 그들의 환호에 답해 내년에도 소록도를 다시 찾겠다고 했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희망을 보게 하는 소중한 다짐이다.
  • 다산·추사·초의 통해 본 다도의 진수

    차와 관련해 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을 뜻하는 항다반(恒茶飯)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평범한 항다반은 종교적 의미에선 심오한 경지에 닿아 있다. 다도(茶道)와 선도(禪道)는 같은 맛이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정신을 닦는다면 도(道)를 수행하는 선(禪)과 다를 바 없다니 범상치 않은 함의다. 최근 불교의 다도와 다례를 넘는 일반의 차 문화가 붐을 이룬다. 값비싼 다기를 차린 겉치레의 의식도 난무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런 정신 빠진 허울만의 차 문화 범람을 기본지식의 부재 탓으로 돌린다. 한마디로 무식의 소치라는 말이다. 그런 항간의 지적을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책이 나왔다.‘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정민 지음, 김영사 펴냄). 다산, 추사, 초의 등 17∼18세기 조선사회를 풍미했던 선지식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한국 차 문화 바로보기를 외친 역저다. 저자는 2006년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전하는 ‘동다기’의 지은이를 뒤집어 차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 철석같이 다산의 저서로 알려졌던 동다기의 저자가 진도로 귀양간 이덕리의 것이었음을 사료를 들춰 밝혀낸 인문학자다. 책은 ‘동다기의 오류’말고도 잘못된 한국 차 문화의 실수를 냉정하게 꼬집는다. 다산의 말로 회자되는 ‘차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는 ‘음다흥국론’의 허구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대표적 차 고전이라는 ‘동다송’의 분절독법 오류 지적도 돋보인다. 각 구절 밑에 해당 전거를 각주로 달아놓은 것을 단락표시로 착각한 탓에 불과 40여구에 불과한 한 편의 시를 수십 토막으로 잘라 읽는 무지의 소통은 지금도 여전하다. 신라, 고려시대에 흥성했던 차 문화는 조선시대 멸절의 수준까지 내몰렸던 역사를 갖는다. 저자는 다산, 추사, 초의등 한국 차문화 중흥조 세 사람에 머문 안목을 겸허히 여긴다. 그러나 일일이 발로 뛰어 뒤져낸 서신이며 시문들을 분석해 새로 쓴 752쪽 분량의 차 문화사는 결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3만5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참된 감동은 세대를 넘는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참된 감동은 세대를 넘는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너무 큰 사랑은 꼭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깨닫나 봐요.’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가수가 아직 젊은 날에 생명을 다하며 남긴 편지의 한 토막이다. 그의 이름은 최여주, 상대방 남자는 한상훈. 그러나 이는 지난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작품 속 상황이다. 강현우라는 또 다른 남자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사랑과 이별을 테마로 1, 2부에 걸쳐 무려 31개의 노래를 소화한 무대였다. 주크박스라는 장르는 어느 특정한 뮤지션이나 특정한 시대를 담은 노래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제에 중점을 두고 드라마타이즈한 뮤지컬을 말한다. 이 무대의 실제 주인공은 ‘옛사랑’이나 ‘이별이야기’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고 2년 전에 4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이다.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스토리라인에는 당연히 픽션이 부가될 수밖에 없었겠으나 주제를 따라 흐르는 음악은 맨얼굴 그대로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자기도 행복한 거 아닌가.’라는 대사가 말하듯이 일생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 한번의 고백도 없이 내밀하고 슬픈 사랑을 가꾼 남자의 노래이다. 1980년대 정치적 폭압의 시대, 메마른 가슴에 감수성의 선율을 선사한 이영훈 작곡의 노래는 주로 가수 이문세가 불렀다. 그렇다면 그 노래에 익숙한 세대는 40대 이후 50대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연일 객석을 메운 관객의 다수는 40대 이전 30대가 훨씬 더 많았다. 이 작곡가의 노래가 새로운 세대에 연접되도록 리메이크된 게 많기도 했으나 이 추억의 노래들로 꾸며진 무대 상황은 참된 감동에 세대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했다. 이 뮤지컬이 진실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상 일정한 패턴의 노래에 무대가 묶여 있는 형국이므로 매우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있는 서사적 전개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1부에서는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 운동권 삽화가 효율적으로 도입되었으나, 2부는 거기서 더 발전한 도약이 없었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이 역동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은 그간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큼 좋았다. 또 하나 이 뮤지컬이 철저하게 이영훈 작곡가에게 바쳐졌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출연자들은 검은 예복 차림으로 무대 위의 노쇠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했다. 경사진 플로어 장치 양 옆으로 등장한 두 대의 피아노와 간략한 무대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고, 도시적 미감의 변화하는 세트를 영상으로 커버한 연출은 효율적으로 주제의식을 부양했다. 그러나 한 무대 위에서 두 시점이 수시로 교차하다 보니 지나치게 방백 효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단처도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는 기실 감동이 증발해 버린 세태에 침식되어 있다. 드물게 아름다운 일을 만나도 사람들은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고 각박한 잣대를 거두지 않는다. ‘광화문 연가’와 같은 초연의 창작 뮤지컬이 예매사이트 1위를 달리는 것은, 그리고 노소가 함께 그 통속적인 연가에 크게 반응한 것은, 우리 가슴 속에 잠복해 있는 선량한 감동을 어떤 통로와 방식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시사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내용의 진실성, 그리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형식의 효율성이다. 이 작품 이후에 우리가 전설적 그룹 아바의 노래로 구성된 ‘맘마미아’와 같은 세계적 대작을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프랑스 근대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G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학’에서 새 세대가 옛 세대를 깨우고 옛 세대는 새 세대 속에 다시 살아난다고 적었다. 1980년대의 격렬하면서도 쓸쓸한 삶을 살았던 세대가 21세기의 젊은 세대 가운데서 과거의 자화상과 오늘의 공감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무대의 공로이다. 예술에 있어 시공간의 분계를 넘어 세월의 풍화를 이기며 고유한 가치를 갖는 작품을 고전이라 부른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이제 한국에서도 시(時)의 고금과 양(洋)의 동서를 넘어서는 창작 뮤지컬이 나왔으면 한다.
  • [일본통신] 이승엽 ‘마수걸이 홈런포’의 의미

    [일본통신] 이승엽 ‘마수걸이 홈런포’의 의미

    이승엽(35)의 홈런이 터지는 순간 오릭스 벤치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덕아웃 앞에 서 있던 테라하라 하야토와 사카구치 토모타카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얼싸안고 승리예감에 들떠 있었다. 이승엽이 올 시즌 두번째 경기 만에 마수걸이 3점홈런을 터뜨리며 ‘승짱’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날 개막전에서 3타수 무안타(3삼진)에 이어 이날 경기에서도 3타수 무안타를 기록중이던 이승엽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방을 쏘아올리며 부담감에서 벗어났다. 이날 경기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1-0 한점차로 앞서가던 오릭스는 8회말 공격 1사 만루에서 키타가와의 좌전적시타와 곧이어 터진 이승엽의 우월 3점홈런으로 4점의 추가점을 획득, 결국 소프트뱅크에 5-0 완승을 거뒀다. 양리그 통틀어 최고수준의 타선을 자랑하는 소프트뱅크였기에 이승엽의 한방이 쐐기를 박은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승엽에게 마수걸이 홈런포를 허용한 투수는 이날 소프트뱅크의 3번째 투수로 올라온 요시카와 테루아키(29). 요시카와는 볼카운트 2-2에서 위닝샷을 인코스로 선택했다. 평소 이승엽의 약점으로 알려진 코스다. 하지만 이승엽은 마치 기다렸다는듯 요시카와가 던진 인코스 포심패스트볼(144km)을 그대로 걷어 올려 교세라돔 3층 관중석에 떨어지는 초대형 홈런(비거리 135m)으로 연결했다. 이승엽의 홈런이 지닌 의미는 크다. 오릭지로 둥지를 옮긴 후 처음으로 터뜨린 홈런이지만 개막전 이후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은 주로 2군에서 뛰었다. 낮경기와 밤경기에서 오는 차이점 즉, 1군 현장에 대한 감각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것인지 예측할수 없었던 것. 결국 이승엽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개막전부터 현실이 됐고, 이른 시간안에 안타가 터지지 않으면 초반고전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슬러거의 가치는 한방에 있다는걸 이승엽 스스로 증명해냈다. 올 시즌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는 것에 더해 벤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점도 큰 성과다. 오릭스는 찬스에서 한방을 터뜨릴만한 장거리포가 적은 팀이다. ‘3할-30홈런’이 가능한 거포 알렉스 카브레라(소프트뱅크)의 이적은 팀 타순의 변화와 더불어 주포 T-오카다에게 많은 부담이 됐던게 사실이다. 또한 선수구성 자체가 기동력이 떨어지기에 타이트한 상황에서 작전야구를 펼치기도 어려운 팀이다. 그만큼 이승엽의 어깨가 무거웠던 것이다. 시기적절한 상황에서 터진 이승엽의 한방은 선수 본인이나 팀으로서도 앞으로 있을 경기에서의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날 오릭스는 이승엽의 마수걸이 홈런포 외에 또하나의 수확물을 획득했다. 올 시즌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트레이드 돼 온 테라하라 하야토(28)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날 선발 등판한 테라하라는 막강한 소프트뱅크 타선을 맞아 완봉승(5피안타,4삼진)을 올리며 오카다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테라하라는 고시엔이 낳은 강속구 투수계보에서 절대로 빼놓을수 없는 투수다. 소프트뱅크에 입단했지만 이후 타무라 히토시(현 소프트뱅크)와 트레이드 돼 요코하마로 이적, 오프시즌에 야마모토 쇼고와 맞트레이드 돼 오릭스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오릭스로 이적해온 테라하라는 시범경기와 연습경기를 통해 올 시즌 활약을 예고한 바 있다. 한때는 키사누키 히로시, 박찬호와 함께 개막전 선발 투수 후보군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공 자체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이다. 역시 뚜껑을 열어보니 스프링캠프때부터 이어오던 구위가 변함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며 첫 등판을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테라하라가 지금처럼만 던져 준다면 카네코 치히로의 부상 이탈 공백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듯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러시아 간다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6)가 러시아로 떠난다. 귀화는 아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2014소치동계올림픽 출전을 타진한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12일 “공부도 하고 바람도 쐴 겸 1년 일정으로 러시아로 떠나기로 했다. 대표선발전(16~17일)을 마치고 이달 말쯤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현수는 모스크바 실업팀에서 돈을 받으며 대표팀의 훈련파트너로 뛴다. 대학원 공부도 병행할 계획이다. 2006토리노올림픽 3관왕·2003~07세계선수권 5연패 등 굵직한 성적을 거뒀던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 이후 고전해 왔다. 부상 여파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았고, 지난해에는 몸담았던 성남시청 빙상팀마저 해체되며 소속팀 없이 ‘백수’로 떠돌았다. 안현수는 최근 국내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을 선언했다. 지난 10일 있었던 국가대표선발 1차 자격대회(타임레이스)에서도 4위를 차지, 장밋빛 전망을 밝혔다. 하지만 안현수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하더라도 러시아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안씨는 “소속팀이 해체된데다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탓에 현수가 떠나고 싶어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하면서 2014소치올림픽에 다시 도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만큼 러시아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안씨는 “러시아는 이중국적이 허용된다. 영주권을 획득하면 세계선수권·유럽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지만, 올림픽은 러시아 시민권을 따야 한다. 현수는 아직 한국대표에 대한 의지가 큰 만큼 1년간 훈련하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주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 2차대회(목동아이스링크)가 안현수의 고별전이 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 러시아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장권옥 코치는 “나도 모르는 얘기다. 소문은 들었지만 러시아연맹에서 통보받은 것은 없다. 현수가 온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10조 자산가’ 역외탈세 4101억 추징

    ‘10조 자산가’ 역외탈세 4101억 추징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이 올 1분기에 4741억원의 역외 탈세를 추징했다. 단일 사업장으로 역외탈세 사상 최대규모인 41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하는 성과도 거뒀다. 국세청은 11일 올 1분기 비거주자와 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한 기업과 사주 등 41건을 적발해 모두 474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올해 목표였던 1조원의 절반가량을 벌써 거둬들인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해외투자 및 해외관계사 등을 통한 자금유출·은닉이라는 고전적 수법 이외에도 비거주자·외국법인으로 위장하는 등의 첨단 수법이 다수 적발돼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국세청은 비거주자와 외국법인으로 위장한 사례는 대한민국 과세권을 원천적으로 벗어나려는 ‘대담하고 악의적인 탈세’라고 규정했다. ●160척 가진 ‘선박왕’ 알고보니 ‘탈세왕’ 국세청도 혀를 내두른 A사의 경우 지난 5년간 9600억원의 소득을 탈루, 이번에 4101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이 회사는 비거주 외국법인으로 위장해 세계 어느 국가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조세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할 정도로 철저했다. 선박 160척을 갖고 국제 선박임대업 및 국제 해운업을 운영해 온 A회장은 한마디로 ‘유령인간’으로 행세해 왔다. 10조원의 자산가로 알려진 그는 국내 호텔이나 부동산, 사업체 등을 소유한 것은 물론 스위스, 케이맨아일랜드, 홍콩 등의 해외계좌에도 수천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거주지를 은폐하고 경영활동 흔적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주택의 임대차계약서는 친인척 명의로 허위 작성했다. 나아가 아파트, 상가, 주식 등 국내 자산은 모조리 해외 페이퍼 컴퍼니로 명의를 이전했다. 경영활동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나 구두지시 등을 통해 은밀히 이뤄졌다. 일체의 공개 활동을 피했고, 세무컨설팅도 해외 회계법인을 이용했다. A회장은 현재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매입원가 부풀려 법인세 탈루 A회장의 사례는 일부 부유층들이 탈세를 위해 파렴치한 역외탈세 수법을 동원한 것을 확인한 것이다. 김문수 국세청 차장은 “이번 사례는 전세계에서의 무납부를 핵심적 경쟁우위 수단으로 삼아 사업을 확장한 것으로 조세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공정한 경쟁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역외탈세가 갈수록 지능화·전문화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기계장치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사지도 않은 기계장치를 수입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 매입원가를 부풀려 법인세를 탈루했다. 합성수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국내법인이 거둬야 할 이익을 홍콩법인으로 빼돌렸다. D씨는 직접투자신고 없이 해외법인을 설립한 후 이 법인 주식을 팔아 매각차익을 내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매각자금으로 다른 해외주식을 사들이고 자녀에게 증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국세청은 오는 6월에 처음 있을 해외 금융계좌 신고와 관련,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관련법에 규정된 비밀보장 의무를 지키겠지만, 신고기한 이후 적발되는 미신고자에 대해서는 탈루세금 추징은 물론 검찰 고발 등 엄중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영남 기호학파 ‘巨儒’ 이우섭선생 유고 문집 봉정

    영남 기호학파 ‘巨儒’ 이우섭선생 유고 문집 봉정

    영남 기호학파 ‘거유’(巨儒)였던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1931~2007) 선생의 유고 문집 봉정 고유제 및 발간 기념식이 10일 경남 김해시 장유면 월봉서원에서 열렸다. 행사는 전국의 유림과 성균관, 문생, 친척,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재선생문집간행위원회 주최로 열려 이 선생이 평생 선비 정신을 잃지 않고 쓴 ‘화재속집’(華齋續集·전 17권)을 제사상에 봉정했다. 이 선생은 생전인 2000년 5월 초고로 화재문집(華齋文集·전 27권)을 냈다. 이번에 낸 유고집을 포함하면 총 44권이 간행됐다. 근대 문집으로는 유례가 드문 기록을 남긴 셈이다. 문집은 김해와 남도 향토에 대한 애정, 퇴폐해 가는 인륜 기강 확립에 대한 제언, 당대 귀감이 되는 인물 탐색, 불굴의 선비정신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유학자로서의 기풍을 지킨 일대기 등을 담고 있다. 성백효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발간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유학의 전통을 지키신 한학자 이 선생은 가셨지만 그 정신과 사상은 이 유집에 고이 간직돼 있음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으로 이어지는 영남 기호학맥의 후예인 화재 선생은 평생 고향에서 월봉서원을 지키며 한학을 가르쳤다. 유족과 월봉서원, 유림 등은 화재 선생의 이런 업적과 정신을 기려 화재 선생의 장례를 학문과 덕망이 높은 유학자가 타계했을 때 행하는 유림장 형태의 유월장(踰月葬·장례기간 16일)으로 거행하고 3년상을 치러 2009년 탈상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일본통신] ‘대혼전 예고’ 퍼시픽리그 6개팀 프리뷰

    [일본통신] ‘대혼전 예고’ 퍼시픽리그 6개팀 프리뷰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인해 미뤄졌던 일본프로야구가 기지개를 편다. 4월 12일 퍼시픽리그와 센트럴리그는 동시에 개막전을 펼친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3번의 선발 로테이션이 가능했을 시점이지만, 이렇게 시즌이 시작된것만 해도 다행스런 일이다. 야구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중에 하나다. 대지진 속에서도 야구가 개막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려온 ‘골수팬’들이 느낄 감회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팀간 전력편차가 거의 없는, 덧붙여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유턴한 일본토종 선수들이 많기에 야구에 대한 목마름이 더 크다. 2011년 일본프로야구 프리뷰 가이드 첫번째 시간은 한국인 선수 4명이 뛰게 될 퍼시픽리그다. 올 시즌을 앞둔 현재, 누구도 퍼시픽리그 우승팀을 장담할 수 없는 반대로 꼴찌팀 역시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혼전이 예고된 퍼시픽리그 6개팀에 대한 프리뷰를 언급해 볼까 한다. ◆ 2강 3중 1약 또는 3강 1중 2약 최근 몇년동안의 퍼시픽리그를 보면 우승 트로피를 연속해서 들어올린 팀이 없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08년)-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2009년)-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0년). 그렇다면 올 시즌 리그 우승은 어느 팀이 차지할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강팀과 약팀, 그리고 못미더운 전력임에도 기대를 버릴수 없는 팀이 존재한다.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팀인 소프트뱅크와 승률 2리 차이로 다잡았던 우승을 내준 세이부는 올해도 확실한 2강 팀이다. 반대로 지난해 5위에 그쳤던 오릭스는 박찬호(38)와 이승엽(35)를 비롯, 많은 외국인 선수를 보강 했음에도 최약체로 분류된다. A 클래스(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3팀) 한자리를 놓고 니혼햄과 지바 롯데 그리고 라쿠텐이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① 우승을 다툴 소프트뱅크 호크스-세이부 라이온스 소프트뱅크와 세이부는 주전선수들이 부상없이 시즌을 준비했다는 점, 그리고 투타 모두에서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는게 강팀으로 분류된 이유다. 소프트뱅크는 오프시즌에서 국가대표 외야수 출신인 우치카와 세이치를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데려왔다. 3할 보증수표인 우치카와의 가세는 팀 타선의 노쇠화를 감안할 때 안성맞춤의 선수보강이다. 여기에다 3할-30홈런이 가능한 외국인 타자 알렉스 카브레라를 오릭스에서 데려왔다. 이렇게 되면 일본최고의 세이블 세터인 카와사키 무네노리-혼다 유이치에 더해 우치카와-카브레라-코쿠보-타무라-오티즈로 이어지는 가공할만한 타선이 완성된다. 투수는 일본최고의 ‘원투펀치’인 와다 츠요시(2010년 17승)-스기우치 토시야(2010년 16승)와 데니스 홀튼, 그리고 올해부터 선발로 전환하는 2009년 리그 신인왕 출신의 세츠 타다시까지 가세하며 선발진을 보강했다. 일본 최고의 필승불펜 투수인 파르켄보그 그리고 2년연속 세이브 부문 2위에 오른 마무리 마하라 타카히로가 건재하다. 세이부 역시 지금의 전력으로만 놓고 보면 소프트뱅크와 더불어 최고 수준이다. 국가대표 출신의 리드오프 카타오카 야스유키와 쿠리야마 타쿠미의 테이블 세터진, ‘3할-20홈런’ 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나카무라 타케야-호세 페르난데스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은 공포감이 들 정도다. 지난해 세이부는 2년연속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던 나카무라가 부상에서 이탈해 있었음에도 시즌 내내 1위를 유지했다. 막판 뒷문이 뚫리며 아깝게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팀의 주포가 없는 상태에서도 대단한 전력을 유지했던 것. 하지만 올 시즌엔 나카무라가 개막전부터 출격한다. 검증된 외국인 타자이자 정교함이 뛰어난 페르난데스와 나카지마의 호위속에 그가 터뜨릴 홈런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세이부의 강점은 역시 강력한 투수력에 있다. 2009년 사와무라 에이지 상에 빛나는 에이스 와쿠이 히데아키가 건재하고 가늘픈 몸매지만 완투능력이 뛰어난 키시 타카유키 그리고 좌완 팜볼러 호아시 카즈유키의 ‘선발 3인방’은 양리그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부상으로 다소 기대에 못미쳤던 키시가 정상적으로 출격할시 이 선수들이 등판하는 3연전에서 만나게 될 팀들은 고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밖에 지난해 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한 마무리 투수 브라이언 시코스키, 3년만에 ‘끝판대장’의 위력을 보여줄 알렉스 그레이먼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투타밸런스로만 놓고 볼때 세이부는 약점이 거의 없는 전력이다. ② 물고 물리는 대혼전, 니혼햄-라쿠텐-지바 롯데 니혼햄은 일본최고의 선발 투수인 다르빗슈 유(4년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와 좌완 타케다 마사루(2010년 14승) 그리고 2009년 세이브왕을 차지했던 타케다 히사시가 있다. 이 선수들은 올 시즌 팀의 핵심 전력이다. 투수력이 좀 더 좋아지려면 2006년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던 ‘일본판 꽃’ 야기 토모야의 분전, 그리고 이토카즈 케이사쿠 역시 제몫을 해줘야 한다. 또한 전 일본 아줌마팬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신인 사이토 유키가 어느정도의 활약을 할지도 관심대상이다. 니혼햄은 3할 타율을 기대할수 있는 선수들은 많지만 한방을 갖춘 거포형 타자가 없는 팀이다. 타나카 켄스케, 이나바 아츠노리, 코야노 에이치는 분명 정교한 타자들이 틀림없다. 결국 시범경기에서 연일 대포를 쏘아올렸던 차세대 홈런타자 나카타 쇼가 얼만큼 해줄지가 3위 다툼에 있어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꼴찌를 기록했던 라쿠텐의 올 시즌은 다를듯 보인다. 감독으로서 자질이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던 마티 브라운은 1년만에 쫓겨났고 올 시즌엔 호시노 센이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라쿠텐의 가장 큰 약점은 뭐니뭐니 해도 중심타선에 있었다. 한때 리드오프 역할을 했던 츠치야 텟페이가 3번타순을 맡았던 것도 지난해 라쿠텐 타선의 빈약함을 엿볼수 있는 대목.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메이저리거 이와무라 아키노리,마쓰이 카즈오를 영입하는데 성공했고 덕분에 츠치야는 3번타순에서 마음놓고 자신의 야구를 할수가 있게 됐다. 랜디 루이즈와 야마사키 타케시로 채워졌던 중심타선이 확 달라진 것이다. 또한 지난해 경험을 통해 일취월장한 히지리사와 료와 우치무라 켄스케로 배치될 테이블 세터진 역시 라쿠텐이 자랑하는 새로운 무기다. 야구센스와 똑딱이 타자로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두선수의 발은 팀 득점력에 있어 대단한 영향을 미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쿠마 히사시-타나카 마사히로-나가이 사토시로 이어지는 강력한 3선발, 그리고 ‘마운틴 쓰리’의 코야마 신이치로,아오야마 코지,카타야마 히로시의 필승불펜진, 덧붙여 김병현의 가세는 철벽 허리를 자랑한다. 마무리 후보감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외국인 투수 로무로 산체스 역시 호시노가 믿는 구석중 하나다. 지난해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의 올 시즌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듯 싶다. 무엇보다 마무리를 맡았던 코바야시 히로유키가 한신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뒷문이 부실해진게 크다. 물론 코바야시 대체요원으로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에서 활약한바 있는 카를로스 로사를 데려오긴 했다. 하지만 로사 역시 박찬호와 같은 보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게 걱정이다. 150km를 넘는 포심패스트볼과 변화구 제구력 역시 수준급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또다른 환경의 일본에서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올해 지바 롯데는 2선발 투수인 와타나베 순스케의 부활여부가 팀 전력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후반기에 무너지며 팀을 어렵게 만들었던 와타나베의 반등없이는 팀 역시 어려울수 밖에 없다. 덧붙여 미래의 에이스를 꿈꾸고 있는 유망주들인 카라카와 유키와 오미네 유타 역시 언제까지나 유망주에만 머물수 없단는걸 깨달아야 한다. 이들이 터지면 선발 전력이 뒤쳐지는 지바 롯데 역시 안정적인 팀 운영이 가능해진다. 지바 롯데 타선은 비록 슬러거형의 진정한 홈런타자는 없지만, 김태균을 비롯해 이구치 타다히토, 오무라 사부로, 오마츠 쇼이츠, 이마에 토시아키로 이어지는 두자리수 홈런과 3할 타율을 기대할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비록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말자 부상으로 아웃된 니시오카 츠요시(미네소타)의 빈자리가 아쉽긴 하지만 그 역할은 2년차 오기노 타카시로 채우면 된다. 오기노는 올해부터 1번은 물론 니시오카 포지션이었던 유격수까지 맡게 돼 팀 전력의 핵심선수로 부상하고 있다. 만약 카라카와 유키와 오미네 유타가 터진다면, 덧붙여 새롭게 마무리 역할을 할 외국인 투수 로사가 제몫을 한다면 결코 호락호락할 지바 롯데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지바 롯데의 올 시즌은 힘들다. 6개팀들중 가장 예측하기가 어려운 팀이 바로 지바 롯데다. ③ 꼴찌 후보 오릭스, 에이스가 복귀할때까지 버텨줘야 박찬호와 이승엽의 가세로 국내 팬들의 절대적 관심구단으로 떠오른 오릭스의 올 시즌은 출발부터가 불안하다. 스프링캠프에서 지난해 리그 다승왕(17승)을 차지한 에이스 카네코 치히로가 부상을 입고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카네코가 없는 오릭스 마운드는 한마디로 치명적이다.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화 이글스가 류현진이 없는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카네코를 대신해 개막전 선발로 등판하는 키사누키 히로시를 타팀과 비교한다면 4선발 투수감 밖에 되지 않는다. 키사누키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승리가 보장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최근 몇년간 그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비록 키사누키가 지난해 10승을 거두긴 했지만 승보다 패가 많았던(12패) 투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코하마에서 데려온 강속구 투수 테라하라 하야토가 시범경기와 연습경기를 통해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 투수 알프레도 피가로 역시 햄스트링 부상에서 벗어나 기대 이상의 피칭내용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박찬호가 얼만큼 보크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투수로서 경험치만 놓고 보면 카네코가 돌아오기 전까지 박찬호가 해야할 일이 많다. 팀의 공격력만큼은 뒤떨어지지 않은 팀이기에 박찬호가 본연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목표로 하고 있는 10승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듯 싶다. 오릭스 타선의 키는 역시 이승엽이 쥐고 있다. 이승엽의 오릭스 이적은 확실하게 검증된 알렉스 카브레라의 소프트뱅크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보강이다. 즉, 올해 이승엽이 카브레라만큼의 활약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릭스에는 3년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블러브를 수상한 리드오프 사카구치 토모타카가 있다. 2번타순이 다소 유동적이지만 이렇게 되면 코토 미츠타카-T-오카다-아롬 발디리스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된다. 타팀과 비교하면 확실히 중심타선의 파괴력은 뒤쳐진다. 물론 지난해 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T-오카다의 한방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3번과 5번 타자들은 확실히 비교우위에서 쳐진다는 뜻이다. 이승엽은 6번타순에 배치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오릭스의 상위타선에 좌타자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일본프로야구의 시즌 일정은 매우 유동적이다. 리그 일정표가 나오긴 했지만 늦춰진 개막일 때문에 향후 올스타전과 포스트시즌이 예정처럼 치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인 선수 4명이 뛰는 리그인만큼 국내 야구팬들의 이목이 쏠려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승엽과 김병현의 맞대결, 김태균과 박찬호의 맞대결은 상상만 해도 짜릿해지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릴레이 제언] “관광객 1000만달성”/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

    [릴레이 제언] “관광객 1000만달성”/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

    한국방문의 해 2년차인 올해 한국 관광은 외래관광객 1000만명 달성이란 미증유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편으론 동일본 대지진이란 돌발변수를 만나 다소 고전도 예상됩니다. 한국 관광산업이 중대 전환기를 맞은 지금, 관광대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지향점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관계와 학계, 여행업계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2012년 5월 여수세계박람회의 개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박람회가 열리는 여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남해안은 직선거리로는 300㎞밖에 되지 않지만 해안선의 길이가 8000여㎞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2000여개의 섬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또한 세계해전사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 유적지와 동북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장보고 유적지 등 역사·문화자원의 보고이며, 먹거리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남해안은 교통이 불편하고 숙박시설 등 관광기반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관광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래관광객은 약 880만명으로 2009년에 비해 약 100만명이나 증가했으며, ‘2010-2012 한국방문의 해’의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외래관광객 1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이 꾸준히 발전해 오고 있지만,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서울, 경주, 부산 중심으로 지역 편중이 심하다는 점이다.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는 여수 등 전남 지역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교통·숙박·쇼핑·음식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여 관광객들이 찾지 않고 여행사들도 상품개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또 수요가 없으니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관광이 내실 있게 성장하려면 지역적 편중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12여수세계박람회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최대의 국제적인 행사로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해안 관광산업 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기차와 자동차로 5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곧 남해안 지역의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돼 서울에서 3시간대, 부산에서 2시간대에 여수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여수와 인근지역에 호텔과 콘도 등 고급 숙박시설 5300여실이 건설될 예정이며, 8만t 규모의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크루즈 터미널도 들어서게 된다. 남해안은 풍부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전통문화예술의 향취, 빼어난 해안 등 자연환경과 인정이 어우러져 특색 있는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때문에 관광 인프라만 개선된다면 내국인 관광 활성화와 외래관광객 유치 증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남해안 여행지로서의 장점을 이 기회를 통해 잘 알릴 필요가 있다. 여수박람회가 3개월간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남해안 지역의 관광 발전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전기로 작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정부, 업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 [부고] ‘용의 눈물’ ‘여인천하’… 사극의 대부

    ‘여인천하’, ‘용의 눈물’ 등 선 굵은 사극을 연출해 ‘사극의 대부’라 불리는 김재형(한국공연예술종합학교 학장) PD가 10일 오전 7시 45분 별세했다. 75세. 큰 지병 없이 대학 출강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 오다 위 천공 수술 뒤 고령으로 회복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음성 출신인 고인은 1961년 KBS에 입사, 1964년 TV사극의 효시로 꼽히는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별당아씨’, ‘사모곡’, ‘한명회’, ‘왕도’ 등을 잇따라 연출했다. 1996년 KBS ‘용의 눈물’, 2001년 SBS ‘여인천하’는 시청률 40~50%대를 넘나들며 사극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이 때문에 한민족문화예술대상(영상예술), 한국연극영화예술상(TV연출상), KBS연기대상, 서울시 문화상(언론부문), 한국TV프로듀서상(공로상), 한국방송대상 TV프로듀서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대상, 한국방송대상 대상, 문화훈장 보관장 등 수상이력도 화려하다. 고인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다른 PD들이 다 기피하는 사극 연출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현대극은 스토리만 있지 정신이 없다. 재미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극에 미친 듯 매달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고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연예계 비리 사건에 이름이 거론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2003년 SBS ‘왕의 여자’가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데 이어 그 다음에 도전한 2006년 SBS ‘왕과 나’ 역시 건강 문제 때문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왕과 나’는 고인의 248번째이자 마지막 드라마 연출작이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2녀. 큰 아들 창만씨는 영화감독, 두만씨는 CF 감독이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9시. (02)3010-226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