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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미어12] 집중하세요, 다 함께 타타타

    [프리미어12] 집중하세요, 다 함께 타타타

    “집중력이 관건이다.” 야구 국가대항전인 ‘2015 프리미어12’ 초대 챔피언을 꿈꾸는 한국이지만 지난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숙적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0-5로 완패했다. 1패를 떠안은 한국은 9일 무거운 발걸음으로 예선전이 펼쳐지는 대만으로 이동해 흐트러진 심신을 추슬렀다. 한국은 11일 중미의 강호 도미니카공화국과의 2차전을 시작으로 12일 베네수엘라, 14일 멕시코, 15일 미국과 8강 진출을 위한 총력전에 나선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대회 전 “현실적으로 1차 목표는 예선 통과다. 최소 3승을 거둬야 예선을 통과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막전 패배로 한국의 8강행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예선에서 격돌할 상대가 야구 강국인 데다 단기전이어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본과의 1차전 경기 결과 한국은 장단점이 뒤바뀐 모양새다. 당초 한국은 타격에서는 최강 면모를 구축했지만 마운드 쪽에서는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양현종, 윤석민(이상 KIA)과 오승환(한신)이 부상으로, 삼성의 임창용, 안지만, 윤성환은 해외 원정 도박 의혹으로 제외돼 약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김현수(두산)-이대호(소프트뱅크)-박병호(넥센)를 중심 축으로 한 막강 타선을 앞세워 우승까지 기대됐다. 그러나 선발 김광현(SK·2와3분의2이닝 2실점)이 일찍 강판됐음에도 조상우-차우찬-정우람-조무근이 나름 강타선을 상대로 버텼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방망이는 무거웠다. 특히 두 차례 결정적인 찬스에서 불발된 후속타는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대 선발 오타니 쇼헤이의 구위에 눌려 고전하던 한국은 0-2이던 5회 박병호의 2루타와 손아섭의 볼넷으로 무사 1, 2루의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허경민이 보내기번트 실패 후 삼진을 당했고 강민호와 대타 나성범마저 거푸 삼진으로 돌아서 땅을 쳤다. 0-5로 뒤진 9회에는 이대호, 박병호, 손아섭의 연속 3안타로 무사 만루의 절대 찬스를 맞았으나 역시 황재균, 양의지, 김상수가 맥없이 물러나 뼈아팠다. 이에 견줘 일본은 사카모토 하야토가 홈런 등 3타수 2안타 2타점, 하라타 료스케가 4타수 2안타 2타점 등 고비마다 집중력을 발휘해 대조를 보였다. 김현수는 4타수 1안타 3삼진, 이대호는 4타수 1안타 2삼진, 박병호는 행운의 2루타 등 4타수 2안타 1삼진에 그쳤다. 그나마 타격감이 점차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국은 중심 타선의 부활이 절실하다. 하지만 타순 조정 등을 통해 무너진 집중력을 살리는 묘안이 더욱 시급히 요구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거짓말에 꼬인 카슨… 측근마저 떠난 부시

    거짓말에 꼬인 카슨… 측근마저 떠난 부시

    내년 11월 8일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대선 경선 후보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지지율 1위 자리를 넘보는 벤 카슨 후보는 과거 이력에 대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으며,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젭 부시 후보는 핵심 선거자금 모금책이 떠나면서 경선 완주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카슨 “비공식 제안받아… 언론이 마녀사냥”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6일(현지시간) 카슨 후보가 자서전 ‘타고난 재능’(Gifted Hands)에서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조건으로 입학을 제안받았다고 밝힌 대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카슨 후보는 1990년 펴낸 자서전에서 고교 재학 중이던 1969년 당시 윌리엄 웨스트모어 육군참모총장을 소개받아 만찬을 함께 했고, 그 자리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육사에 입학할 것을 제안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폴리티코는 웨스트포인트 측에 진위 여부를 문의한 결과 테레사 브리커호프 대변인으로부터 “카슨이 응시했거나 입학을 제안받았다는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카슨 후보 측은 “거짓말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카슨 후보 측은 “당시 군 사령관들로부터 구두로 비공식 제안을 받은 것”이라며 전액 장학금도 “학생군사훈련단(ROTC)의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해 군 사령관들이 돈을 받지 않고도 육사를 다닐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카슨 후보 캠프는 “카슨이 웨스트포인트에 응시했거나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언론의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카슨 후보의 청소년기 행적에 대한 진위 논란도 벌어졌다. 그는 청소년기 폭력 성향이 심했던 ‘문제아’였으나 기독교 신앙을 통해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특히 지난달 말 방송에 나와 “14세 때 급우를 칼로 찌르려 했고 벽돌과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CNN은 카슨 후보의 친구와 교우, 이웃주민 등 9명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누구도 카슨 후보가 분노를 표출하거나 폭력적 성향을 보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카슨 후보는 “전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4%대 지지율’ 부시, 경선 완주마저 불투명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하는 등 고전하고 있는 부시 후보는 핵심 선거자금 모금 책임자인 브라이언 밸러드가 자신의 캠프를 떠나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밸러드가 부시 후보와 결별한 이유는 부시 후보가 지지율 만회를 위해 한때 ‘정치적 제자’였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밸러드는 “부시의 선거 캠페인이 루비오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변질됐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대중이 고전에 쉽게 다가가도록 징검다리 놓고 싶어”

    “대중이 고전에 쉽게 다가가도록 징검다리 놓고 싶어”

    일본에는 100년을 넘긴 출판사만 100개가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 역시 100년 가까운 출판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이 1922년 만든 동명사는 국내 최고(最古) 출판사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학 교재 출간 등으로 방향이 바뀌며 대중적 접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뭇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해방 직후 만들어져 창업 70주년을 맞는 현암사의 역사성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서교동 현암사에서 만난 조미현(45) 대표는 오는 12일 개막하는 창업 70주년 기념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조 대표는 “그동안 발간한 2500종의 책 중 20여종 빼고 다 보관하고 있어서 이를 일일이 확인하며 일부만 추려내는 데 애를 먹었다”면서 “우리 스스로 걸어온 길을 확인할 뿐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출판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책 속 삽화로 들어갔던 원 그림들이 많이 보관돼 있어 이번 70주년 행사 이후 주제별 기획 전시를 진행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1959년 펴낸 대한민국 ‘법전’은 현암사의 대표 출간물이다. 초판은 내놓자마자 품절됐고, 웃돈이 얹어져 암거래되기까지 했다. ‘법전’은 지금까지 57차례에 걸쳐 매년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모든 국민들이 쉽게 법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창업자 조상원(1913~2000) 회장의 우직하리만치 굳은 의지의 결과물이 3대에 걸쳐 이어졌다. 일상화됐기에 소중함이 덜 느껴지지만, ‘법전’으로 인해 법은 그나마 ‘주먹보다 좀 덜 멀게’ 느껴졌다. 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해 성경을 민중의 품에 안긴 마르틴 루터에 비견할 만한 성과였다. 조 대표는 “평생에 걸쳐 매일 동트기 전부터 깨어나 등(燈) 켜놓고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법전 교정·교열을 보시던 할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었다. 조 대표는 2009년부터 대표를 맡으며 할아버지, 아버지 조근태(1942~2010) 회장에 이어 3대째 현암사를 잇고 있다. 조 대표는 “막 드러내 놓을 만한 베스트셀러가 많지는 않다”며 짐짓 손사래를 쳤지만 현암사는 최초의 법률 전문지 ‘법전월보’를 만들었고, 국내 처음으로 ‘난중일기’ 한글 완역본을 펴냈다. 또한 ‘법구경’, ‘채근담’, ‘장자’ 등 동양 고전은 현암사의 창을 통해 소개돼 오늘날 인문학 대중화의 첫 씨앗이 뿌려졌고,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들의 손때를 묻혀 가며 세월을 함께 건너왔다. 가깝게는 350만부가 팔린 공전의 베스트셀러 ‘장길산’,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등이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이념적 성향의 책보다는 중심을 잡고 균형 감각의 지성적 기조를 유지해 왔다”면서 “1대, 2대에 걸쳐 이뤄 낸 현암사의 작지만 소중한 업적을 지켜 내는 것만도 버거운 일인 것 같다”고 ‘수성(守城)’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이내 “현암사 책이 좀 어렵고 무겁다는 평들을 바깥에서 하시는데 앞으로는 대중과의 접점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전 원서를 바로 읽을 수는 없지만, 그 정수와 흥미를 맛보기처럼 느낄 수 있는 징검다리 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앞으로 100년, 200년 계속 책을 만들면서도 ‘꼰대짓’하지 않는 출판사가 되기 위해 40세 안팎의 감각과 지성, 그리고 객관적이면서도 성숙한 시선을 가진 책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DNA는 당연히 할아버지, 아버지 것의 내리물림이다. 넉넉하지 않은 회사 살림 탓에 매달 보름이면 직원들 월급 걱정에 경리과 직원과 머리를 맞대는 것도, 구멍난 양말을 모아 뒀다가 주말마다 기워서 신는 것도 모두 그런 가풍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신의와 성실, 근면검소의 미덕을 배웠다. “회사의 외형을 더 키울 생각은 없어요. 현재 23명 직원이 함께 일하는데 앞으로도 30명 이상을 넘길 생각도 없고 그저 내실 있게 좋은 책을 만들어서 직원들 월급 더 많이 주고, 출판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뿐이죠.”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뭐라해도… ‘연기깡패’

    뭐라해도… ‘연기깡패’

    애초 영화 ‘내부자들(19일 개봉)’의 시나리오에서는 안상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가 시작한다. 난데없이 ‘토요 명화’ 배경 음악이 흐르면 그가 “영화를 좋아하냐”며 말을 꺼낸다. “저는 제 코가 좋아요. 냄새도 맡고 숨도 쉬고…” 누아르의 고전 ‘차이나타운’에서 코가 부러진 잭 니컬슨이 내뱉는 능글맞은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흉내 내더니 느닷없이 오른팔에 달린 의수를 뺀다. “나도 내 손이 좋아요. 밥도 먹고 똥도 닦고…” 안상구가 왜 복수하려는지 영화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는 것. 영화 마니아면서 유머러스한 캐릭터까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400분짜리 첫 편집본이 130분으로 압축되며 날아가 버렸다. 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45)이 편집된 장면을 몸짓까지 보태 가며 설명하고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는 역시 스타이기 이전에 배우였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에서 잘나가는 정치 깡패였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복수를 꿈꾸는 안상구 역할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도전한 사투리는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 느물거린다. 원래 안상구는 무식하고 잔인한 캐릭터였다. 워낙 사건이 빡빡하게 이어지다 보니 관객이 쉬어가는 지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우민호 감독과 새로 아이디어를 보태며 캐릭터를 재창조했다. 내부가 실루엣으로 살짝 비치는 화장실 안을 종종걸음 치는 장면이 그의 아이디어 중 하나. ‘케이프 피어’에서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치렁치렁하게 넘긴 올백 머리는 감독 아이디어였다고.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이병헌에게 ‘인생의 작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병헌은 개봉판에 담기지 못한 자신의 연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첫 편집본이 무척 길지만 내부적으로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영화가 잘되면) 디렉터스컷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농담도 했죠. 개봉판은 시간순으로 사건이 흘러가지만 원래 시나리오는 왔다 갔다 해요. 조금 더 입체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배우 입장을 떠나 관객 입장에서 보면 결과물은 무척 만족스럽다. 그는 불꽃 연기 대결을 벌였던 조승우 이야기를 꺼내며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어제 (조)승우가 맥주를 잔뜩 사 갖고 집으로 찾아왔어요. 맥주를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했는데, 승우가 자신이 작업한 작품을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재미있더라고 말하더라구요. 의외였죠.”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이병헌이 보기엔 ‘내부자들’은 현실에 쫙 들러 붙어 있는 작품이다. 이 정도로 사회성 짙은 작품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너무 적나라해 관객 입장에선 불편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 “가만히 보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영화가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많았어요.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그래서 씁쓸한 측면이 있어요. 이러한 유행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홀가분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내부자들’ 촬영 당시 그는 영화 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자신이 잃어버릴 것에 대한 걱정보다 함께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미안함이 컸다고 했다. 사건 여파로 개봉 시기가 늦춰졌던 ‘협녀-칼의 기억’도 마찬가지. 힘든 시기가 지나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병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끝났다고 보지 않아요 힘든 시기가. 앞으로 제가 계속 잘해야 하는 부분이죠.” 내년에는 알 파치노 등과 함께한 ‘미스컨덕트’, 서부 영화의 고전을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정식으로 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국내 작품 1~2개와 미국 쪽 작품 1개를 촬영할 것 같다고 했다. 그것도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연기가 될 것 같다고. 인터뷰 말미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라는 책임감, 만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고 털어놓은 이병헌. 그러한 마음과 창의적인 연기를 위한 자유로움을 조화롭게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힘든 숙제가 그에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직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게 꿈이라는 출판사 대표

    직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게 꿈이라는 출판사 대표

     일본에는 100년을 넘긴 출판사만 100개가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 역시 100년 가까운 출판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이 1922년 만든 동명사는 국내 최고(最古) 출판사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학 교재 출간 등으로 방향이 바뀌며 대중적 접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뭇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해방 직후 만들어져 창업 70주년을 맞는 현암사의 역사성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서교동 현암사에서 만난 조미현(45) 대표는 오는 12일 개막하는 창업 70주년 기념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조 대표는 “그동안 발간한 2500종의 책 중 20여종 빼고 다 보관하고 있어서 이를 일일이 확인하며 일부만 추려내는 데 애를 먹었다”면서 “우리 스스로 걸어온 길을 확인할 뿐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출판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책 속 삽화로 들어갔던 원 그림들이 많이 보관돼 있어 이번 70주년 행사 이후 주제별 기획 전시를 진행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1959년 펴낸 대한민국 ‘법전’은 현암사의 대표 출간물이다. 초판은 내놓자마자 품절됐고, 웃돈이 얹어져 암거래되기까지 했다. ‘법전’은 지금까지 57차례에 걸쳐 매년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모든 국민들이 쉽게 법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창업자 조상원(1913~2000) 회장의 우직하리만치 굳은 의지의 결과물이 3대에 걸쳐 이어졌다. 일상화됐기에 소중함이 덜 느껴지지만, ‘법전’으로 인해 법은 그나마 ‘주먹보다 좀 덜 멀게’ 느껴졌다. 라틴어를 독일어로 번역해 성경을 민중의 품에 안긴 마르틴 루터에 비견할 만한 성과였다.  조 대표는 “평생에 걸쳐 매일 동트기 전부터 깨어나 등(燈) 켜놓고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법전 교정·교열을 보시던 할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었다. 조 대표는 2009년부터 대표를 맡으며 할아버지, 아버지 조근태(1942~2010) 회장에 이어 3대째 현암사를 잇고 있다.  조 대표는 “막 드러내 놓을 만한 베스트셀러가 많지는 않았다”며 짐짓 손사래를 쳤지만 현암사는 최초의 법률 전문지 ‘법전월보’를 만들었고, 국내 처음으로 ‘난중일기’ 한글 완역본을 펴냈다. 또한 ‘법구경’, ‘채근담’, ‘장자’ 등 동양 고전은 현암사의 창을 통해 소개돼 오늘날 인문학 대중화의 첫 씨앗이 뿌려졌고,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들의 손때를 묻혀 가며 세월을 함께 건너왔다. 가깝게는 350만부가 팔린 공전의 베스트셀러 ‘장길산’,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등이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이념적 성향의 책보다는 중심을 잡고 균형 감각의 지성적 기조를 유지해 왔다”면서 “1대, 2대에 걸쳐 이뤄 낸 현암사의 작지만 소중한 업적을 지켜 내는 것만도 버거운 일인 것 같다”고 ‘수성(守城)’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이내 “현암사 책이 좀 어렵고 무겁다는 평들을 바깥에서 하시는데 앞으로는 대중과의 접점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고전 원서를 바로 읽을 수는 없지만, 그 정수와 흥미를 맛보기처럼 느낄 수 있는 징검다리 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앞으로 100년, 200년 계속 책을 만들면서도 ‘꼰대짓’하지 않는 출판사가 되기 위해 40세 안팎의 감각과 지성, 그리고 객관적이면서도 성숙한 시선을 가진 책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DNA는 당연히 할아버지, 아버지 것의 내리물림이다. 넉넉하지 않은 회사 살림 탓에 매달 보름이면 직원들 월급 걱정에 경리과 직원과 머리를 맞대는 것도, 구멍난 양말을 모아 뒀다가 주말마다 기워서 신는 것도 모두 그런 가풍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신의와 성실, 근면검소의 미덕을 배웠다.  “회사의 외형을 더 키울 생각은 없어요. 현재 23명 직원이 함께 일하는데 앞으로도 30명 이상을 넘길 생각도 없고 그저 내실 있게 좋은 책을 만들어서 직원들 월급 더 많이 주고, 출판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뿐이죠.”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로배구] 현대 ‘삼성 공포증’ 극복

    [프로배구] 현대 ‘삼성 공포증’ 극복

    현대캐피탈(이하 현대)이 삼성화재(이하 삼성) 공포증을 극복했다.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현대는 4일 안방인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삼성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현대는 지난달 20일 대전에서도 삼성을 3-0으로 꺾은 바 있다. 현대는 지난 시즌 맞수 삼성전에서 유독 약했다. 총 6차례 겨뤄 1승5패를 거뒀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달랐다.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두 경기 모두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승이었다. 현대는 1라운드 주전 세터로 활약했던 노재욱 없이 싸우고도 이겼다. 노재욱은 허리 통증으로 결장했다. 이승원이 노재욱 대신 공을 배급했다. 노재욱의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현대의 팀 공격 성공률은 62.82%에 달했다. 삼성은 51.04%에 불과했다. 현대는 용병 오레올(23득점, 공격성공률 80.76%)과 토종 에이스 문성민(19득점, 공격성공률 56.66%)을 활용해 삼성을 공략했다. 반면 삼성은 팀 공격의 54.17%를 책임진 외국인 공격수 그로저(29득점, 공격성공률 51.92%)의 공격이 막히면서 고전했다. 맞수답게 첫 세트부터 격렬하게 싸웠다. 그로저가 후위 공격을 꽂아 세트를 듀스로 끌고 갔다. 오레올이 퀵오픈과 오픈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켜 세트를 끝냈다. 2세트에서도 접전이 이어졌다. 팽팽했던 균형은 17-17에서부터 무너졌다. 오레올의 퀵오픈으로 앞선 현대는 이어 그로저의 공격 범실로 2점 차로 달아났다. 공방 끝에 24-23에서 문성민이 백어택으로 세트를 매조지했다. 승기를 잡은 현대는 4점 차로 여유 있게 3세트를 가져갔다. 한편 여자부 IBK기업은행은 화성체육관에서 인삼공사를 3-0으로 완파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87년 만에 찾은 미키마우스 원형 ‘오즈월드’

    87년 만에 찾은 미키마우스 원형 ‘오즈월드’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미키마우스의 원형은 쥐가 아닌 토끼였다?’ 전설적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1901~1966)가 1928년 만든 애니메이션 ‘썰매 종’이 87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디즈니의 초기 애니메이션 작품인 썰매 종의 필름이 최근 영국영화협회(BFI)의 수장고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작품의 필름들은 상영 이후 모두 분실된 상태였다. 6분 분량의 필름에는 눈 덮인 원더랜드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다양한 동물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오즈월드’란 이름의 개구쟁이 토끼다. 미키마우스의 원형으로 알려진 이 캐릭터는 1927년 디즈니와 애니메이터인 어브 아이웍스가 만들었다. 디즈니사가 처음 만든 상업적 캐릭터로, 이번에 초기 모습을 확인하게 됐다. 당시 경영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디즈니 스튜디오는 오즈월드 시리즈가 흥행하면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1929년 배급사인 유니버설로 판권을 넘기면서 오즈월드의 외형은 벅스 버니 등과 비슷하게 바뀌었다. 디즈니사가 유니버설로부터 오즈월드의 오리지널 판권을 되찾은 것은 불과 9년 전인 2006년의 일이다. BFI는 올해 초 한 영화연구가가 동명의 애니메이션 관람을 요청하면서 처음으로 작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1981년 한 필름연구소가 기증했으나 당시에는 가치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BFI는 다음달 12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첫 시사회를 열 예정이다. 앤드루 밀스타인 디즈니 최고경영자는 “애니메이션 역사에 획을 그은 필름의 원형을 되찾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올해의 합격자] 국가직 9급 철도경찰직 김태훈씨

    [올해의 합격자] 국가직 9급 철도경찰직 김태훈씨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시험이 모두 끝난 지금은 수험 생활에 대한 피로감과 불합격으로 인한 무력감, 불안감이 엄습하는 시기다. 하지만 최근 인사혁신처가 내년도 국가직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일정을 공개한 만큼 수험생은 이제부터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내년 시험에 대비해 학습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서울신문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을 위해 올해 국가직·지방직 등 공무원시험 및 각종 자격증 시험 합격자 수기를 게재한다. 올해 국가직 9급 철도경찰직에 합격한 이태훈(28)씨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2년 3개월이라는 수험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는 저 자신이었어요. 나이가 많은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26세에 시작한 수험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직을 하기 시작했죠.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도 시험에 합격했고, 저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합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누구 하나 ‘넌 왜 아직 합격을 못하냐’고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속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무력감과 제 능력에 대한 불신, 합격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오면서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더군요. 머릿속이 오로지 그런 생각들로만 가득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드디어 이 지옥 같은 터널을 벗어나는구나’라는 해방감이 가장 컸어요. 무력감을 떨쳐 낸 건 절박함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수험 생활 중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교재, 학원비 등 수험 생활에 들어가는 돈은 시간에 비례해 늘어만 갔죠. 하루라도 빨리 합격해야 했어요. 수험 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단순화’예요. 하루 일과도, 이동 시간도, 공부법도 단순했어요. 오전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조금의 휴식 시간 이후 다시 공부하고, 저녁을 먹은 이후 휴식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저녁 시간에 다시 공부했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날에는 하루 일과가 모두 공부였어요. 그리고 이동 경로도 ‘집→도서관→식당→도서관→식당→집’으로 이어졌어요. 학원, 집, 도서관 외에는 다른 장소로 웬만하면 이동하지 않았어요.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고 한자리에서 집중하기 위해서였어요. 물론 저와 사정이 다른 수험생도 많을 테니 무조건 이 방법이 좋다고 말할 순 없겠죠. 과목별 공부법도 ‘단순하게 접근하자’는 생각만 했어요. 국어는 ‘이해→반복 숙달→암기’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해요. 각종 어문 규정들, 표준어나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 로마자표기법, 고전문법, 한자 어휘나 고유어 등 외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예요. 영어는 가늘고 길게 공부해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문법 강의 등으로 튼튼하게 이론을 쌓아야 하지만 그 후에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밖엔 없었어요. 모의고사를 풀고 오답노트를 정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죠. 한국사는 두꺼운 공무원시험용 교재를 바탕으로 기초를 쌓은 뒤 필기노트로 시대순 정리를 해 보는 게 필수적이에요. 철도경찰직은 필수과목 외에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해야 해요. 형법은 기초 이론을 쌓은 뒤에는 판례가 중요하고, 형사소송법은 범죄 인지부터 현행범 체포, 공소 제기, 형의 확정 및 집행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례는 눈으로 익히고, 조문은 암기하고, 흐름을 이해하니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필기시험 합격 이후 면접시험도 만만치 않았어요. 게다가 철도경찰직은 다른 직렬과 달리 면접시험 이전에 체력시험을 치러야 했어요. 그래서 면접시험 관련 자료와 강의를 통해 실전에 대비하면서 체력시험도 함께 준비하다 보니 압박감이 심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수험 생활 동안 느낀 건 ‘양을 줄여 나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였죠.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 시간이 짧은 강의나 얇은 기본서가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짧은 시간 안에 합격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부해야 할 분량은 늘어나게 되고, 체력적·정신적인 한계가 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 들더라도 처음부터 두껍고 내용이 풍부한 기본서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엔 방대한 학습량에 힘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을 줄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아직도 제가 이렇게 합격 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시험을 준비하면서 참 무식하다고 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긴 터널을 지나 합격을 하게 되면 평생 다시 올 수 없는 여유를 만끽하게 됩니다. 합격 이후부터 임용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기죠. 한동안 멀리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봉사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지금 당장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면서 남은 수험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리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오늘의 눈]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진짜 이유/유용하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진짜 이유/유용하 사회부 기자

    요즘 대학에서 영어 원어 강의는 흔한 풍경이 됐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당시 전공 필수였던 무기화학을 처음으로 원어 강의로 듣게 됐다. 한국인 교수님이 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대충 알아듣기는 했지만 수업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부분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어가 짧은 제자들 때문에 교수님은 결국 한 달 만에 영어 강의를 포기하셨다. 지난달 초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일본은 21번째, 중국은 본토 첫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없었다. 매년 그랬듯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역시나’란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왜 우리나라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못하나’란 질문은 필부들의 술자리 안줏거리가 됐다. 정부는 지난달 말 ‘파격적’이라며 기초과학 육성책을 내놨다.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등장했던 기존 대책들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노벨상 강국에서는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과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들이 연구되면서 노벨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핵심 요소는 ‘언어’다. 과학이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일반인의 말과 과학의 용어가 최대한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과학책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문장으로 과학을 설명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본은 1869년 메이지 유신 초부터 외국 선진 학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구 전통을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때 주목한 것이 ‘언어’였다. 국가 차원에서 각종 학문 용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서양 서적들의 번역 사업을 추진했다. 우리가 지금 당연히 쓰는 ‘과학’이란 단어도 당시 서양의 ‘natural science’를 일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고전이나 학술적 성과의 대중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일본 첫 문고본 ‘이와나미 신서’나 대중 과학서 시리즈인 ‘현대과학 신서’, ‘블루백스’ 등은 번역 사업의 성과라 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정부의 노력 덕분에 일본인들은 외국에서 출간된 최신 서적과 연구 성과를 거의 시차 없이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 중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지방대 출신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학술 번역 문화는 척박하고, 전문용어를 ‘국산화’하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외국어를 못 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상생활은 한국어로, 학문 연구는 외국어로 해야 하는 연구자들의 이중생활이 계속된다면 ‘21대0’이라는 일본과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지 모른다. 과학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보여 주기식 반짝 지원보다는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노력이다. edmondy@seoul.co.kr
  • [현장 블로그] 가공육 괜찮다는 식약처… 그래도 불안한 엄마들

    “햄을 삶아 상추에 싸 먹으라는 소리인가.” 지난 2일 가공육 발암성 논란과 관련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브리핑을 듣고 충북 청주시 오송청사를 나서며 한 기자가 말했습니다. 1시간 남짓 질의응답이 오갔는데도 식약처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였습니다. 정부의 알다가도 모를 ‘화법’에 익숙한 기자들도 답답한데, 당장 내일 아이의 도시락 반찬으로 햄을 싸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부모들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이날 식약처의 브리핑은 ‘엠바고’(보도시점 유예)까지 걸린 사안이었습니다. 대단한 내용이라도 포함됐을까 싶어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밥 먹으면 배부르다’만큼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고기 섭취량이 적어 안전하며, 타지 않게 굽거나 아예 삶아서 채소와 함께 먹으면 발암물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죠. 교과서에서 배운 매우 고전적인 해법입니다. 기자들의 관심은 햄·소시지 등 가공육에 쏠렸습니다. 가공육과 적색육(붉은 고기)을 발암물질로 분류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적대로 가공육에 들어가는 아질산나트륨이 문제라면 식약처가 저감화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손문기 식약처 차장은 “현재 최소한의 용도로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하고 있어 특별히 규제를 더 강화하지 않았고 5년마다 정기적으로 기준 규격을 재평가하고 있으니 평상시처럼 열심히 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공육도 안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딱히 대책은 없는데, 안전하니 일단 믿고 지금처럼 계속 먹으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아질산나트륨 섭취량이 WHO가 제시한 하루 허용량의 11.5%에 불과하다고 해서 정말 안전할까요. 아질산나트륨의 안전성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고, 한국인 암 발생과 가공육의 관계는 아직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브리핑에 참석한 이상아 강원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발암물질을 저감화하는 방향으로 가공육 관련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죠. 내용 없는 브리핑을 마치고서 식약처 직원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기를 안전하게 먹는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샤부샤부 먹으러 가시죠.”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다시 태어난 ‘동양의 햄릿’

    다시 태어난 ‘동양의 햄릿’

    ‘복수란 무엇인가.’ 서사예술의 화두 중 하나다. 복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 가을마당 네 번째 작품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조씨고아’는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 역사적 사건을 중국 원나라 때 작가 기군상이 연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18세기 유럽에 소개돼 ‘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중국에선 천카이거 감독이 2010년 ‘천하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고, 2013년엔 CCTV에서 41부작 드라마로 방영돼 드라마 부문 대상과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극은 조씨 가문 300여명이 살육되는 멸문지화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권력 쟁취를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도안고와 그에 맞서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놓는 ‘한궐’, ‘공손저구’ 등 의인들의 살신성인이 비장미를 더한다. 정영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고아 ‘정발’을 20년간 키우며 복수의 칼을 간다. 고전 재해석의 귀재, 고선웅이 연출을 맡았다. 4년 전 희곡 ‘조씨고아’를 읽고 원작의 연극성과 묵직한 주제에 반해 무대에 올릴 결심을 했다. 그는 “중국 원나라의 잡극(雜劇·가극 형태의 희곡)이 제가 생각하는 연극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며 “잡극의 특성을 살려 최소한의 무대로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극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이 생기기 전 중국 사회에서 용인됐던 복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복수란 무엇인지, 그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장두이, 임홍식, 하성광 등 중견에서 노장까지 실력파 배우들이 복수의 대서사시를 이끌어 간다. 4~22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1644-2003.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아하! 우주] 화성판 ‘삼시세끼’…진짜 가능할까?

    [아하! 우주] 화성판 ‘삼시세끼’…진짜 가능할까?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살기 위해 화성에서 농사를 짓게 된다. 척박한 화성의 토양이지만, 지성이라면 감천이라고 영화에서는 감자 재배 자체는 가능했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가능할까? 여기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콜로라도 주립 대학의 토양 미생물학자인 마리 스톰버거는 화성의 흙에 배설물을 섞는 방법으로는 지구의 토양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배설물 속의 미생물이 화성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화성이 흙은 사실 지구의 토양과는 다르다. 화성에 있는 것은 고운 모래 같은 입자로 여기에는 유기물이나 수분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필수 영양소와 미생물 역시 아예 없거나 부족하다. 따라서 영화에서와 같은 방법을 써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성에서 식물재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NASA는 물론 여러 연구 기관에서 화성에서 식물을 재배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정착하는 데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1 단계: 지구 궤도에서 식물 재배 이미 지구 주변의 가까운 우주 공간에서의 식물재배는 성공한 상태이다. 가장 최근에 성공 사례는 바로 국제 유인 우주정거장(ISS)에 보낸 베지(Veggie)가 그것으로 적 로메인 상추를 재배해서 시식까지 했다. 최소한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식물 재배는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해로운 자외선을 비롯한 방사선 때문에 햇빛으로 재배하는 대신 인공광 식물 재배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키우는 건 문제없다. 그러면 화성에서도 문제없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은 게 ISS에서도 우리는 지구 자기장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과 우주의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방사선은 지구의 자기장과 두꺼운 대기에 의해 상당 부분 차단된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식물 재배가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긴 이르다. 2 단계: 달에서 식물 재배 화성에서 식물 재배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화성으로 식물재배 모듈을 발사해서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결과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만에 하나라도 화성에 지구 미생물이 퍼질 위험성도 있다. 더 안전한 대안은 화성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달 식물 착륙선(Lunar Plant Lander)은 작은 착륙선 안에 인공광 식물 재배 시스템을 탑재해 5일에서 10일 정도 먼저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현재까지 개발 중인 이 착륙선이 현실화된다면 미래 달 기지에서 식물 재배가 가능한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달의 낮은 중력과 강한 방사선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을 선별하는 작업도 같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생물을 작은 우주선에 탑재해 달 궤도보다 더 먼 지역까지 날려보내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3 단계: 화성에서 미생물 키우기 NASA는 화성에서 바로 식용 작물을 키우는 작업보다 훨씬 쉽고 저렴한 대안을 검토 중이다. NASA의 2015년 혁신 진보 구상(NASA Innovative Advanced Concepts)에 따르면 NASA는 화성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인 시아노박테리아를 테스트하는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다. 미생물 가운데는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화성의 추운 기후와 낮은 중력, 그리고 높은 방사선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은 지구에도 존재한다. NASA의 계획은 미래 화성 탐사선에 이런 미생물을 보내는 것이다. 작은 밀폐 용기에 화성의 흙을 넣고 이들이 살아남는 과정을 보면 지구 미생물이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박테리아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대신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 수 있으므로 미래 화성 유인 탐사에서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 미생물 모듈 방식은 바로 식물 재배 모듈을 보내는 것보다 매우 저렴하며 기술적으로도 간단하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지구 미생물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화성 생태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으므로 실행 여부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4 단계: 화성에서 식물 키우기 화성에서도 지구 생명체가 견딜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대형 모듈을 보낼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이 확보되면 궁극적으로는 식물 재배 모듈을 화성에 보내는 것이 NASA의 장기적 계획이다. 이 모듈은 인공광으로 식물을 재배할 수 있으며 외부와는 잘 격리되어 강한 방사선과 낮은 기온에서 식물을 보호할 수 있다. 물론 수경 재배 방식이기 때문에 화성의 흙에서도 식물이 잘 자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 가지 추가하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마스 원 계획에서도 화성 식물 재배 테스트가 제안된 적이 있다. 시드(seed)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이들의 첫 화성 착륙선에 있는 2kg에 불과한 작은 모듈 속에서 식물 재배를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술력과 자금이 부족한 상태라서 2018년으로 계획했던 이 테스트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다만 이 수준까지 발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모듈을 화성에 보내는 시기는 아마도 화성의 유인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미래일 것이다. 5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인류의 후손은 화성 재배 감자로 만든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인류의 화성 탐사를 다룬 고전 영화를 볼지도 모른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푼돈이 몰리면 백악관이 열린다

    푼돈이 몰리면 백악관이 열린다

    열기를 더해 가는 미국 대선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정치 기부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날벼락 같은 주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재산이 100억 달러(약 11조 6000억원)가 넘는 자산가인 그에겐 올 3분기에 모은 390만 달러(약 44억원)는 ‘껌값’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관심 끌기 발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다른 모든 대통령선거 출마자들도 돌려줘야 한다”는 말로 타 후보들을 긴장시켰다. 선거 기간이 길고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 선거 자금은 당락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선 자금 모금액 상한이 없어지고 두 번째 치러지는 2016년 대선전은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선거 자금, 특히 정치 기부금은 ‘표현의 자유’의 연장선이라고 2011년 연방대법원이 판단했다. 이후 기부금 상한선이 폐지됐다. 곧이어 치러진 2012년 대선은 ‘전(錢)의 전쟁’ 양상이었다. 당선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금액은 경쟁자인 밋 롬니 후보를 압도했다. 거액 기부금은 물론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금 측면에서도 오바마의 실적이 탁월했다. 내년 대선 역시 ‘천문학적인 돈 선거’의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모금함에 동전이 딸랑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당선의 문이 열리는’ 식의 뻔한 관측은 줄고 있다. 3분기 들어 거액 기부금과 소액 기부금이 향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초반 후보의 외곽조직 형태인 슈퍼팩으로 향하는 고액 모금액끼리 경쟁하는 ‘군비경쟁’은 3분기에 주춤했다. 대신 ‘총알’인 소액 모금이 쏠린 후보들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대선이 1년가량 남은 가운데 주요 후보별 모금 현황을 살펴봤다. 대선 레이스 초반 슈퍼팩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후보는 공화당의 젭 부시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다. 그리고 3분기까지 누적 모금액을 봐도 이들은 여전히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부시의 모금액은 1억 3330만 달러(약 1525억원)에 육박했다. 2위는 클린턴으로 9770만 달러(약 1118억원)다. 엄청난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주춤한 이들의 3분기 모금은 실적을 ‘약간’ 개선하는 데 그쳤다. 3분기 동안 1300만 달러(약 148억원)의 후원금을 추가 모집한 부시의 모습은 출마 공식 선언 뒤 2주 만에 1100만 달러(약 125억원)를 모았던 사례와 대비된다. 심지어 의사 출신인 공화당 후보 벤 카슨은 3분기에 2100만 달러(약 239억원)를 모아 부시를 눌렀다. 지지율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의 흐름을 쫓고 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지지율은 공화당 후보 중 4~5위권에 머물렀다. 4~5위권이면 ‘컷오프’될지 모를 정도로 열악한 순위다. 더욱이 부시보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들은 카슨을 비롯해 트럼프와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등이다. 트럼프와 피오리나를 필두로 ‘거친 입담’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부각되며 다소 얌전한 이미지를 가진 부시의 존재감은 점점 약화되는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 헤지펀드 제왕인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월가의 지지를 받아 온 클린턴의 실적도 3분기에 다소 고전하는 모습이다. 클린턴은 3분기에 2800만 달러(약 319억원)를 모금, 부시보다는 나은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함께 경쟁 중인 무소속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의 모금액은 2600만 달러(약 296억원)로 클린턴을 턱밑까지 추월했다. 슈퍼팩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샌더스와 비교되며 클린턴에겐 ‘월가와 친한’ 이미지가 덧칠되고 있다. 클린턴은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금융위기가 다시 터지면 어떻게 조치하겠느냐’는 질문에 “은행이 잘못했다면 망하게 하겠다”며 선명성 부각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의 주변엔 금융권의 돈이 거미줄처럼 어우러져 있다. 역으로 3분기 모금 실적에서 일어난 ‘소액 혁명’이 미국의 선거 풍토를 바꿀 것이란 장밋빛 낙관마저 나오고 있다.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가난하게 선거를 치르거나 자신의 돈으로 선거를 치를 것 같았던 카슨, 샌더스, 트럼프는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를 모아 꽤 넉넉한 선거를 치를 입지를 다졌다. 이들에게 향하는 기부금은 후보에게 ‘진정성’을 부여했고 소액 기부의 꼬리를 물게 하는 ‘드라마’를 구축해 냈다. 이들이 기업이 아니라 유권자 개인을 향하고 있다는 ‘진정성’은 전체 모금액 중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에서 명확하게 구분된다. 샌더스의 경우 77%, 트럼프는 70%, 카슨은 63%를 소액 기부로 충당했다. 이 비율은 부시 5%, 클린턴 17%로 뚝 떨어진다. ‘드라마’는 이들에게 향한 소액 기부가 열기에 따라 조성됐다는 점에 기인한다. 카슨이 3분기에 조달한 2100만 달러는 전 분기 대비 곱절 수준의 실적이다. USA투데이는 샌더스가 클린턴에 비해 적은 노력을 들여 더 큰 성과를 이뤄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이 9월 마지막 한 주간 캘리포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뉴욕 등 3개 주를 횡단하며 1000~2700달러 기부금을 내는 후원자 파티에서 모금을 독려한 반면 샌더스는 선거 캠페인을 시작한 4월 이후 총 7곳의 후원자 파티에 참석했을 뿐이다. 연설에서 후보들은 좀 더 대중적인 정책을 직설적으로 설파하고,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열광시켜 더 많은 소액 기부를 이끌어 내는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다. 더욱이 온라인 결제 기술이 발달하며 대중 반응의 즉각성은 한층 두드러졌다. 예를 들면 카슨은 지난 9월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활약을 펼치고 24시간 만에 100만 달러 모금을 이뤄 냈다. 샌더스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샌더스가 3분기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우리 선거 캠페인의 규모와 힘이 작다는 메시지를 줘선 안 된다”고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하루 사이에 200만 달러가 더 걷혔다. 한껏 으쓱해진 샌더스는 다음날 계좌를 보여 주며 자신의 선거 캠페인을 “정치 혁명”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 뒤엔 정보기술(IT) 혁명과 모금 혁명 등 수많은 기술적 혁명이 숨어 있는 셈이다. 슈퍼팩에만 의존한 릭 페리와 스콧 워커의 몰락은 소액 기부의 ‘혁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페리와 워커는 수천만 달러를 가지고 있는 슈퍼팩의 지지를 받았으나 정작 선거본부의 자금은 동이 나 사무실조차 운영하기 어려워지자 경선을 포기했다. 슈퍼팩은 무제한으로 자금을 모금할 수 있으나 (우리로 치면 불법인) 외곽조직 운영에만 자금을 쓸 수 있을 뿐 후보자의 선거본부와 예산을 공유하거나 선거운동을 같이할 수는 없다는 특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3분기 소액 기부 열풍이 ‘선거 혁명’이 될지 낙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소액 기부에 의존하는 선거 캠페인을 운영하는 게 자칫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캠페인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슨이 “무슬림은 미국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을 때 그는 약 100만 달러의 소액 기부금 세례를 받았다. 안정적인 선거 자금원이 있는 클린턴과 부시는 중도파를 잃을 만한 극단적인 발언을 삼가며 정책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그럼에도 소수의 부유한 가문이 선거 자금의 대부분을 기부하는 상황에서 소액 기부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는 주장은 유효하다. 소액 기부 운동을 벌이는 스테파니 모나혼은 “기업과 고액 기부자의 자금을 받지 못하는 후보와 고액의 선거 자금을 기부하지 못하는 일반 시민은 선거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소액 기부가 활성화된다면 후보는 일반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문화유랑기]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문화유랑기]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김소월의 시 ‘부모’...아이가 던진 '존재론적 물음' 우리네 시인들 중에 소월만큼 그 시를 노랫말로 많이 징발당한 시인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을 7·5조의 정형률과 토속어에 담아 절절하게 노래한 것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소월은 '한국인의 심상을 최고의 격조로 수용한' 시인, '우리 시대 최고의 높이에 도달한'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후대의 평자들에게서 받았다. 가곡과 가요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그의 시 중에 '부모'라는 작품이 있다. 1968년 세상에 선보인 이래 어버이날이 있는 오월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 노래는 이제 가요로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큼 명곡이 되었다. 우선 이 시를 먼저 한번 감상하고 지나가기로 하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김소월 시 '부모' 전문 (노랫말에는 원문 맨 끝의 '알아보랴'가 알아보리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운율상의 문제로 수정한 것으로 보이며, 뜻에는 별 차가 없는 듯하다.) 나 역시 이 시를 노래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노랫말을 듣는 순간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소월의 시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 시의 해석에 있어서는 제목 '부모'가 시사하듯이 '효심'에 초점을 맞춰 풀이한 것이 대세인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풀이이다.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라는 함축적인 말에서 부모를 알기 위해 내가 부모가 되어 그 마음을 헤아려 보기 전까지는 부모가 나를 어떻게 입히고 키우셨겠는가라는 것을 짐작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김소월 전작 시집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정음사)에서> 또는 1920년대라는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시대를 사는 한 천재시인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운명론을 아프게 토로한 시'라는 시각으로 해석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 듯하다. 물론 그런 해석들을 할 만한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먼저 소월이 첫 연에 제시한 저 '공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 저 공간은 천지사방이 칠흑의 어둠으로 싸여 있는, 호롱불 하나가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며 만들어내고 있는 한줌의 원초적인 공간이다. 그것도 낙엽지는 소리만 우수수 들려올 뿐인 겨울밤의 시공간이다. 이 같은 원초적인 시공간 안에 두 모자는 마주 앉아 있고, 아이는 엄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는 스스로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쩌다가 생겨나서 이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걸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아니었을까? 자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아이가 최초로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존재론적인 질문- 아, 내가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것일까? 그것은 17세기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한 저 원초적인 질문, '이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란 물음과도 닿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다음에 한 말,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한 것은 그 물음에 지금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한 말이리라. 그래서인지 아이는 어머님에게 그런 물음을 던지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부모'가 되어서 알아보려 한다는 다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소월은 자신의 어느 시 뒤에 쓴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시작(詩作)의 가치 여하는 적어도 그 시작에 나타난 음영(陰影)의 여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영의 가치 여하를 식별하기는, 곧 시작을 비평하기는 지난(至難)의 일인 줄로 생각합니다." 위 시 '부모'의 음영은 짧은 두 연이 지닌 단순한 진술 속에 숨어 있는 웅숭 깊은 존재론적 의미가 아닐까? '효심'이라든가, 옛 이야기 같은 것을 굳이 음영이라 할 수 있을까? 기나긴 겨울밤에 어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하는 존재론적 자의식에 눈을 뜬 그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시인이 되었다. 그저 그런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 대시인이 된 것이다. 위의 시에 구사된 시어들 속에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정말 평이하기 짝이 없는 낱말들로 소월은 이처럼 웅숭 깊은 음영의 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월을 천재시인이라 하는 연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작가 김동인은 “소월의 시는 시골 과부라도 넉넉히 이해할 것이었다” 라는 찬사와 함께 “조선말 구사의 귀재-그것이 우리의 시인 소월이었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의 이런 해석이 시인의 마음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를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고, 그런 음영을 깔아놓은 시인 역시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영이 풍부한 시일수록 명시가 된다는 점에서, 소월의 '부모'는 걸작이라는 이름에 값한다고 할 것이다. 소월의 저물녘은 참으로 스산했다. 스물 안팍의 5,6년 동안 불꽃처럼 맹렬히 시를 쏟아냈던 소월은 고향 곽산으로 돌아간 후 조부의 광산업을 돕다가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해,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했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심한 가난과 실의 속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시골 장터에서 산 아편을 먹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1934년, 그의 가슴에 '부모'의 시상이 처음으로 심어졌던 계절인 12월 24일이었다. 향년 33세. 4남 2녀를 둔 그의 자손 가운데 손녀와 증손녀가 남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손녀는 성악가 김상은으로, 몇해 전 그의 증조 외할아버지의 시로 된 노래를 모아 음반을 내기도 했다. 내로라 하는 수많은 가수들이 부른 소월의 명작 '부모'-. 그런 기분으로 다시 한번 감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동영상 www.youtube.com/embed/XhSHtm2KGGE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김소월의 시 ‘부모’에 대한 한 생각-자의식 눈뜬 아이가 최초로 던진 ‘존재론적 물음’

    김소월의 시 ‘부모’에 대한 한 생각-자의식 눈뜬 아이가 최초로 던진 ‘존재론적 물음’

    -자의식에 눈뜬 아이가 최초로 던진 '존재론적 물음' 우리네 시인들 중에 소월만큼 그 시를 노랫말로 많이 징발당한 시인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한을 7·5조의 정형률과 토속어에 담아 절절하게 노래한 것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소월은 '한국인의 심상을 최고의 격조로 수용한' 시인, '우리 시대 최고의 높이에 도달한'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후대의 평자들에게서 받았다. 가곡과 가요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그의 시 중에 '부모'라는 작품이 있다. 1968년 세상에 선보인 이래 어버이날이 있는 오월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 노래는 이제 가요로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큼 명곡이 되었다. 우선 이 시를 먼저 한번 감상하고 지나가기로 하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김소월 시 '부모' 전문 (노랫말에는 원문 맨 끝의 '알아보랴'가 알아보리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운율상의 문제로 수정한 것으로 보이며, 뜻에는 별 차가 없는 듯하다.) 나 역시 이 시를 노래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노랫말을 듣는 순간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소월의 시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 시의 해석에 있어서는 제목 '부모'가 시사하듯이 '효심'에 초점을 맞춰 풀이한 것이 대세인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풀이이다.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라는 함축적인 말에서 부모를 알기 위해 내가 부모가 되어 그 마음을 헤아려 보기 전까지는 부모가 나를 어떻게 입히고 키우셨겠는가라는 것을 짐작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김소월 전작 시집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정음사)에서> 또는 1920년대라는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시대를 사는 한 천재시인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운명론을 아프게 토로한 시'라는 시각으로 해석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 듯하다. 물론 그런 해석들을 할 만한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먼저 소월이 첫 연에 제시한 저 '공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 저 공간은 천지사방이 칠흑의 어둠으로 싸여 있는, 호롱불 하나가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며 만들어내고 있는 한줌의 원초적인 공간이다. 그것도 낙엽지는 소리만 우수수 들려올 뿐인 겨울밤의 시공간이다. 이 같은 원초적인 시공간 안에 두 모자는 마주 앉아 있고, 아이는 엄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는 스스로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쩌다가 생겨나서 이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걸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아니었을까? 자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아이가 최초로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존재론적인 질문- 아, 내가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것일까? 그것은 17세기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한 저 원초적인 질문, '이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란 물음과도 닿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다음에 한 말,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한 것은 그 물음에 지금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한 말이리라. 그래서인지 아이는 어머님에게 그런 물음을 던지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부모'가 되어서 알아보려 한다는 다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소월은 자신의 어느 시 뒤에 쓴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시작(詩作)의 가치 여하는 적어도 그 시작에 나타난 음영(陰影)의 여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영의 가치 여하를 식별하기는, 곧 시작을 비평하기는 지난(至難)의 일인 줄로 생각합니다." 위 시 '부모'의 음영은 짧은 두 연이 지닌 단순한 진술 속에 숨어 있는 웅숭 깊은 존재론적 의미가 아닐까? '효심'이라든가, 옛 이야기 같은 것을 굳이 음영이라 할 수 있을까? 기나긴 겨울밤에 어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하는 존재론적 자의식에 눈을 뜬 그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시인이 되었다. 그저 그런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 대시인이 된 것이다. 위의 시에 구사된 시어들 속에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정말 평이하기 짝이 없는 낱말들로 소월은 이처럼 웅숭 깊은 음영의 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월을 천재시인이라 하는 연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작가 김동인은 “소월의 시는 시골 과부라도 넉넉히 이해할 것이었다” 라는 찬사와 함께 “조선말 구사의 귀재-그것이 우리의 시인 소월이었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의 이런 해석이 시인의 마음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를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고, 그런 음영을 깔아놓은 시인 역시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영이 풍부한 시일수록 명시가 된다는 점에서, 소월의 '부모'는 걸작이라는 이름에 값한다고 할 것이다. 소월의 저물녘은 참으로 스산했다. 스물 안팍의 5,6년 동안 불꽃처럼 맹렬히 시를 쏟아냈던 소월은 고향 곽산으로 돌아간 후 조부의 광산업을 돕다가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해,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했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심한 가난과 실의 속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시골 장터에서 산 아편을 먹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1934년, 그의 가슴에 '부모'의 시상이 처음으로 심어졌던 계절인 12월 24일이었다. 향년 33세. 4남 2녀를 둔 그의 자손 가운데 손녀와 증손녀가 남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손녀는 성악가 김상은으로, 몇해 전 그의 증조 외할아버지의 시로 된 노래를 모아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사설] 사상 첫 매출 감소 제조업 되살릴 방안 급하다

    한국 경제를 견인해 온 제조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효자 품목인 철강·조선·석유·화학제품 등이 대내외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중국에 추월당하는 처지에 놓였고, 그나마 버텨 오던 자동차와 스마트폰마저 중국과 일본의 위협에 놓여 있다.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이 196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사상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이를 극명하게 방증한다. 올 들어 8개월 내리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내수마저 부진한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도 걱정이 태산이다. 한은이 그제 발표한 ‘2014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매출액은 전년보다 1.6% 줄었다. 아무리 저성장 구조라고 하지만 매출액 자체의 감소는 충격이다. 여기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4.2%에서 전년(5.3%)보다 1.1% 포인트나 하락했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악화된 것으로 제조업 강국의 초라한 현주소다. 제조업이 이렇게 약화된 데는 중국 경제의 둔화, 일본의 지속적인 엔저 유도, 미국과 유럽의 양적 완화 등 대외 악재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체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안주한 탓이 더 크다. 말뿐이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아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철강·조선 등 사양 산업의 구조조정 등에 미적대는 바람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을 8만여개나 대거 양산했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도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주력업종을 갖고 있는 대기업은 적극적인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과 일본을 따라잡는 노력을 해야 함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사내 유보금 710조원(30대 그룹)을 쌓아놓고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래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소홀한 측면이 있었던 건 부인키 어렵다. 제조업의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다. 가뜩이나 잠재성장력이 떨어지는 마당에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이 활력을 잃으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는 경기가 살아나면 나아질 수 있지만 경쟁력에 밀리면 끝장이다. 철저한 산업구조 재편, 기업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개혁 혁파, 노동 개혁을 통한 시장의 유연화, 품질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 유도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된 경제 및 산업 활성화 관련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기업인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제조업 부활에 사활을 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예사롭지 않다.
  • ‘몽유병’ 19세 소녀, 자면서 걷고 버스타고 14km 이동

    ‘몽유병’ 19세 소녀, 자면서 걷고 버스타고 14km 이동

    심각한 몽유병에 걸린 여성이 잠결에 무려 14km를 이동한 믿기힘든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CBS등 현지언론은 콜로라도주 제퍼슨 카운티에 사는 테일러 감멜(19)이 잠결에 도보와 버스를 타고 14km 떨어진 삼촌집을 찾아갔다고 보도했다. 다소 믿기힘든 이 사건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아침 6시 한 통의 신고전화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 테일러의 아버지는 방문을 열어둔 채 사라진 딸을 발견하고 주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휴대전화와 지갑 등을 모두 놓고 잠옷복장으로 사라진 후였다. 이에 깜짝놀란 아버지는 곧바로 실종신고를 했고 강력사건을 의심한 경찰은 경찰견을 동원해 테일러의 흔적을 쫓기 시작해 약 5km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냄새가 끊긴 사실을 확인했다. 곧 테일러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경찰은 곧 지역언론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실종사건을 전파했고, 신고가 접수된 지 3시간 후인 오전 9시 그녀가 집으로 왔다는 삼촌의 전화가 오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지언론은 "다행히 테일러는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으며 삼촌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잠이 깼다고 진술했다" 면서 "몽유병 환자로는 아마도 최장거리 이동기록일 것"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몽유병에 얽힌 사건사고는 의외로 많다. 지난 2013년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사는 몽유병에 걸린 한 남자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다리에 총을 쏴 화제가 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노르웨이의 4살 소녀 티아 헬레나 로버트슨(4) 역시 집에 불이 난 꿈을 꾼 뒤 꿈에서 깨지 않은 채 5㎞ 가까이 걸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3월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더럼 법원에서 열린 재판은 몽유병 사건의 결정판이다. 당시 자식 살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법정에 선 피고 조셉 미첼(50)은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를 평결받았다. 이유는 사건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도 잘 이루지 못해 몽유병을 얻은 미첼이 자신도 모르게 자식을 살해했으며 사건 자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배심원단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씨줄날줄] 정화 & 장보고/구본영 논설고문

    정화(鄭和)는 장구한 중국사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의 하나다. 명나라 영락제의 환관 출신 제독인 그는 7차례나 대양 원정(1405∼1433년)에 나섰다. 색목인, 즉 중동계 혈통인 그가 이끈 대선단은 많을 때는 240여척의 배에 승선 인원이 3만명에 육박했다. 선단 중의 일부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전해진다. 다만 ‘정화함대’가 동남아~인도~동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연 건 과장 없는 사실(史實)이다. 이를 통해 명은 시쳇말로 ‘자원무역’의 헤게모니를 쥐었다. 하긴 정화보다 앞서 통일신라엔 장보고가 있었다. 장보고 역시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하면서 갖게 된 제해권을 토대로 동북아시아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지 않았던가. 두 인물이 진취적 자세라는 키워드를 공유한 만큼 그들의 몰락 이후 대제국 명이나 신라가 모두 쇠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국가의 부침이 ‘먼바다로 진출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로 갈리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비일비재했다. 정화함대 해체 이후 중국의 600여년은 굴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미국 해군대학에서 전쟁사를 강의한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그럼 점에 주목했다. 지금은 고전이 된, 1889년 출간한 명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서다. 머핸은 해외 해군기지와 파나마 운하 건설, 하와이 합병 등을 제안해 ‘팍스 아메리카나’의 초석을 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해양굴기(海洋?起)가 본격화하는가. 마오쩌둥 시대까지 대륙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하던 중국이었다. “중국의 영토는 둥사군도, 시사군도, 난사군도를 비롯해 인근의 모든 도서를 포함한다”는 법령을 공포한 덩샤오핑 시대만 해도 은밀히 해양력을 키우는 듯했다. 시진핑 주석의 5세대 지도부는 대놓고 남중국해 제해권을 선포하려는 기세다. 필리핀·베트남 등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난사군도의 암초에 인공섬 건설을 강행하면서다. ‘섬을 점령하면 주변 바다는 그 나라 차지가 된다’는 머핸 식 전략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비등점을 향하는 느낌이다. 미국의 이지스구축함 래슨호가 중국 인공섬 주변 12해리 내로 진입하면서다. 중국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필리핀 등 주변국의 편에 서서 미국이 ‘자유항행권’을 명분으로 벌이는 무력시위다. 여기엔 우리도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난사군도 경유 수송로로 해운 물동량의 30%, 원유 수송량의 90%를 실어 나르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미·중 충돌 국면에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가 넓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엔 “남중국해 분쟁이 국제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청와대 관계자)는 어정쩡한 자세가 불가피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장보고와 같은 혜안을 갖고 우리의 해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튤립 죽인 ‘범죄견’ 체포합니다...‘개 머그샷’ 공개

    튤립 죽인 ‘범죄견’ 체포합니다...‘개 머그샷’ 공개

    “이 개를 체포합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남서단의 덤프리스갤러웨이주(州)경찰이 페이스북에 올린 ‘범견’의 머그샷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현지 일간지인 데일리메일이 27일 보도했다. 덤프리스갤러웨이 경찰서가 올린 사진은 언뜻 보면 그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배경이 심상치 않다. 바로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의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을 촬영할 때 주로 사용되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개의 이름은 더들리(Dudley). 덤프리스갤러웨이 경찰은 더들리를 ‘지명수배’ 한다고 발표한 뒤 ‘체포’했고, 범인이 체포된 뒤 촬영되는 머그샷을 찍어 공개했다. 생후 5개월의 더들리가 현상수배 및 체포된 이유는 한 남성의 신고 때문이다. 한 남성은 마당에 둔 정원용 호스와 정성스럽게 키워오던 꽃인 튤립을 ‘죽인’ 범인으로 더들리를 지목하며 신고전화를 걸었다. 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은 래브라도 종(種)의 더들리 모습을 담은 CCTV를 확보했으며, 이후 추적을 통해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해당 사실을 SNS에 올렸고 “여러 목격담과 CCTV 등을 토대로 ‘범인’을 검거했으며, 아마도 경찰서에서 관할하는 개 전용 센터인 ‘빅 도그 하우스’(Big Dog house)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포스팅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은 개를 석방해달라는 ‘탄원’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SNS 글에는 ‘더들리의 석방’을 뜻하는 해시태그 ‘#freedudley’가 포함돼 있었다. 대부분은 개를 지명수배하고 머그샷까지 올린 경찰의 게시물을 패러디 한 것이었다. 이에 최초로 더들리를 신고한 남성인 클레어 무이르는 “경찰에 개를 신고한 것은 내 죽은 튤립들을 위한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더들리에게 주인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더들리는 예고대로 경찰서에서 관리하는 전용 보호센터에 ‘수감’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몽유병’ 19세 소녀, 잠결에 도보와 버스타고 14km 이동

    ‘몽유병’ 19세 소녀, 잠결에 도보와 버스타고 14km 이동

    심각한 몽유병에 걸린 여성이 잠결에 무려 14km를 이동한 믿기힘든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CBS등 현지언론은 콜로라도주 제퍼슨 카운티에 사는 테일러 감멜(19)이 잠결에 도보와 버스를 타고 14km 떨어진 삼촌집을 찾아갔다고 보도했다. 다소 믿기힘든 이 사건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아침 6시 한 통의 신고전화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 테일러의 아버지는 방문을 열어둔 채 사라진 딸을 발견하고 주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휴대전화와 지갑 등을 모두 놓고 잠옷복장으로 사라진 후였다. 이에 깜짝놀란 아버지는 곧바로 실종신고를 했고 강력사건을 의심한 경찰은 경찰견을 동원해 테일러의 흔적을 쫓기 시작해 약 5km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냄새가 끊긴 사실을 확인했다. 곧 테일러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경찰은 곧 지역언론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실종사건을 전파했고, 신고가 접수된 지 3시간 후인 오전 9시 그녀가 집으로 왔다는 삼촌의 전화가 오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지언론은 "다행히 테일러는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으며 삼촌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잠이 깼다고 진술했다" 면서 "몽유병 환자로는 아마도 최장거리 이동기록일 것"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몽유병에 얽힌 사건사고는 의외로 많다. 지난 2013년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사는 몽유병에 걸린 한 남자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다리에 총을 쏴 화제가 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노르웨이의 4살 소녀 티아 헬레나 로버트슨(4) 역시 집에 불이 난 꿈을 꾼 뒤 꿈에서 깨지 않은 채 5㎞ 가까이 걸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3월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더럼 법원에서 열린 재판은 몽유병 사건의 결정판이다. 당시 자식 살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법정에 선 피고 조셉 미첼(50)은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를 평결받았다. 이유는 사건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도 잘 이루지 못해 몽유병을 얻은 미첼이 자신도 모르게 자식을 살해했으며 사건 자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배심원단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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