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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 50주년… 이상연 전 안기부장 ‘정보기관 숙명’ 논하다

    국정원 50주년… 이상연 전 안기부장 ‘정보기관 숙명’ 논하다

    이상연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국가정보원 전신)은 1987년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을 맡아 KAL기 폭파 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이 수사는 인권침해가 없었고 국제공조를 통해 완벽하게 이뤄진 수사로 평가받는다. 이 전 안기부장은 국정원 설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발전 역사 마디마디에 국정원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정보기관만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현안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전 안기부장과의 일문일답. →국정원의 지난 50년간의 공과(功過)를 평가한다면. -1948년 정부가 수립됐을 때도 북한에서는 이미 지하조직과 빨치산(파르티잔)이 준동하고 있었다. 6·25 전쟁 후에도 공산세력을 척결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은 남한보다 우세했다. 공이라면 국가정보체계를 확립하고 정보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또 경제적으로 산업화, 글로벌화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대한민국 발전 역사에서 국정원 숨결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반면 정보기관이라는 게 어느 나라든 무한적으로 충성심과 사명감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제도적인 장치가 매우 빈약했다. 정보기관 50년 역사에서 초기에 이런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적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절차상의 에러가 많았다. 공도 있으면 물론 과도 있지만 과만 과장해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것을 오늘 기준으로 비판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비판받는다. 그러나 미국 FBI 후버 전 국장이 말했듯이 우리는 자랑도, 불평도, 변명도 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KAL기 폭파 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KAL기 폭파 사건은 한마디로 현대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건이다. 지금도 북한이 테러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8년간 공작을 목적으로 테러범을 키운 사례는 김현희밖에 없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언론에 발표할 때까지 전 과정을 관여했다. 이 사건은 국제 공조 수사였고 완벽한 수사였다. 인권 문제로 지적받은 적도 없다. 김현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수사를 할 경우 자결할망정 얘기를 안 했을 것이다. 일주일 만에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머리가 무척 좋은 사람이다. 여전히 조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방문했을 때 “KAL기 사건은 아랫사람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진실은 하나다. 조작설은 의혹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최근 베이징 비밀 접촉을 공개했는데, 이 사건은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상식 이하다. 회담에 나서는 성숙된 자세가 아니다. 이런 형태는 앞으로의 회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무대응으로 대응하고 대꾸할 가치가 없는 사안이다. 북한내 대남라인의 군부와 여러 라인의 갈등이 엿보이기도 한다. →국정원이 지향해야 할 선진국형 국가정보기관이 되려면. -국정원은 고도로 전문화돼야 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CIA는 특수부대 같은 능력을 갖추고, 특수부대는 CIA 같은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처럼 지금보다 더 전문화돼야 한다. 또 국정원은 사회의 화두로 뜨면 안 된다. 중요 현안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기보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세가 정보기관의 숙명이다. 신분 보장도 중요한 이슈다. 정보요원은 어느 정보건 어느 시대건 국가 미래를 위해서 희생과 애국심을 강요당하지만 무조건 강요하기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치 현안에 휘말리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양지회 회장을 지냈는데 국정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출세나 공명심이 있는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소명의식과 무명의 헌신을 하겠다는 정의감이 필요하다. 튼튼한 안보와 국가 발전을 정보맨의 자긍심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국정원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언론에 대해서는 추측기사 때문에 고통을 받는 곳이 정보기관이다.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한 팩트리딩을 해주기를 바란다. 정보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판단과 사용의 문제이고 정책의 문제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국정원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격려와 성원도 해주어야 한다. 정리 오이석·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이상연 前 안기부장은 ▲75세 ▲1963~1981년 국군보안사령부 ▲1981년 서울특별시 부시장 ▲1985년 대구직할시장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1988년 국가보훈처장 ▲1990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1991년 내무부 장관 ▲1992년 3~10월 국가안전기획부장 ▲2004년 11월~2010년 12월 사단법인 양지회장 ▲2010년 1~12월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영화프리뷰- ‘플라워즈’

    -영화프리뷰- ‘플라워즈’

    일과 사랑, 결혼과 출산. 시대와 환경은 변해도 여성들의 고민은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영화 ‘플라워즈’는 3대에 걸친 6명의 여주인공을 통해 여성들이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전환점을 돋보기처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100년의 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뒤쫓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기 다른 여섯 여자의 인생이 시공을 초월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얽혀 있어 지루하지 않고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는 1930년대 벚꽃이 휘날리는 봄을 배경으로 흑백영화 속 린(아오이 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린은 집에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하자 결혼식 당일 예복을 차려입은 채 집을 뛰쳐나간다. 시간이 흐른 뒤 1960~70년대. 린이 낳은 세 명의 딸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을 인생의 최고 가치에 두고 내조에 전념하던 가오루(다케우치 유코)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미도리(다나카 레나)는 갑작스러운 연인의 프러포즈를 받고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남편·딸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셋째 딸 사토(나카마 유키에)는 둘째를 출산할 경우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2000년대. 사토가 목숨과 맞바꾼 두 딸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페이지 터너(악보 넘겨주는 사람)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는 가나(스즈키 교카)와 엄마의 삶을 대신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게이(히로스에 료코)는 요즘 현대 여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묘미는 결혼, 이별, 자아, 출산, 미래, 엄마 등 6개의 소재를 통해 ‘여자의 일생’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데뷔작 ‘태양의 노래’에서 흥행에 성공한 고이즈미 노리히로 감독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본 영화 특유의 여백과 감수성을 살렸다. 시공간의 시점을 달리하며 6명의 인생과 사랑을 자연스러운 교차 편집을 통해 묘사한 영화적 기술도 뛰어나다. 20대에서 40대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6명의 여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의 장점. 다만 운명에 순응하고 수동적으로 그려진 여성상이 다소 진부하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오는 19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 3대 세습에 이견이 있는 세력들의 다툼으로 매우 시끄럽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수명이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설명하면서 걸음걸이를 직접 흉내내기도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국가정보원 산하의 외교·안보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으로 이 분야의 최신 정보가 총집결하는 곳이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도곡동 연구소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사과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북한 체제 구조상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군사실무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으로 풀 수는 없다. 사전에 물밑 작업이 조율되어야 한다.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사과를 할까? -사회주의자들도 한번은 사과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두 가지 전례가 있다. 우선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7·4남북공동성명이다. 또 하나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선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과오를 한번은 인정하지만 두번은 하지 않는다. 북한도 전례를 볼 때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고백을 할 수 있다.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김정은 후계 세습은 예정대로 이뤄지고 있나.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에 올랐던 것처럼 내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4차 대표자 회의나 7차 당대회를 열어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천명할 것이다. 3대 세습의 포인트는 워싱턴에서의 책봉, 공인이다. →워싱턴에서의 책봉은 무엇을 말하나? -국제정치적 측면으로는 우선 평화협정을 얻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제재를 풀 수 있고 경제적인 자금회전이나 무기수출 등을 할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봤듯이 미국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 공격은 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다. 또 북핵문제의 카운터파트는 미국이다. 핵을 10개 개발했다면 절반은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절반은 핵보유국으로서 자위권 확보에 이용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식량지원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서바이벌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은 순조롭게 진행될까? -28살 젊은이가 세습하는 데 대해 물 위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이견을 가진 세력들이 만만치 않다. 세습 반대라기보다는 김정은 체제 때의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는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시끄러운데, 사망하면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크다. 내년 4월까지 소프트랜딩을 시키기 위해서는 대내적 관심을 대외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연평도 포격은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은 방중은 언제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나. -4월 15일 이후 6월 사이엔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내년 4월 15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단독 방중으로 젊지만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북한 붕괴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한다. 중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절반은 만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관계능력, 사물 판단 능력이 나오게 된다. 좀 더 파격적이라면 상하이를 방문해 개혁·개방 이미지를 부각시킬 것이다. 물질적 지원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한데 매년 받는 식량 15만~20만t, 연료(코크스 등) 15만t보다 좀 더 받아낼 수 있다. 새 지도자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있다. →김정일의 현재 건강은 어떤가? -3주 전에 평양에 근무 중인 유럽국가 대사와 저녁을 했다. “얼마나 오래 살 것 같느냐. 나는 5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3년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했다. 그와 악수도 하고 3m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는데 걸음걸이가 앞으로 채 10㎝도 걷지 못한다고 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아질 가능성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주치의 100명이 관리는 하고 있지만 결국뇌졸중은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김정일은 3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3대 세습이 안정적으로 이뤄질지 최근 중동사태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늘었을 것이다. 둘째 정권 창설 63주년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는 경제난, 셋째 핵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협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다. 3대 스트레스가 잘 해결되면 수명이 길어질 테고, 잘 안 되면 짧아질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대재앙 후 일본을 말한다] “낡은 원전 가동중단하고 대체에너지 찾아야”

    [대재앙 후 일본을 말한다] “낡은 원전 가동중단하고 대체에너지 찾아야”

    후쿠시마 미즈호 일본 사민당 당수는 29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원전 신규 건설은 물론 지진 예상 지역의 기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자연에너지의 촉진 등 안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당수는 “한국인들의 재해 지역 구조와 모금 등의 지원 활동에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간 나오토 정권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 대응의 문제점은 뭔가.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위험도를 레벨 4라고 했다가 결국은 레벨 6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사태를 너무 과소평가한 부분이 당초부터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판단이 피난 명령 등에 있어서 혼란을 일으켰다고 본다. 도쿄전력과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정보를 빨리, 적확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원전 사태는 인재(人災)인가, 천재(天災)인가. -나는 하마오카 원전(시즈오카 현)을 비롯해 여러 원전의 비상용 전기시설의 경우 대지진이 발생하면 가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하마오카 원전 재판(원전 주변 주민들이 1, 4호기의 운전 중지를 요구한 소송)에서도 그 문제를 쟁점으로 다퉜다. 일본의 원전 정책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지금 원전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아이들 세대가 나중에 큰 짐을 지게 된다. →원전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혼란스러운데. -그렇다. 긴급 시 신속 방사능 영향 계측 네트워크(SPEEDI) 정보를 빨리 공개하라고 했다. 몇 번 국회에서 이를 촉구했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야 그 데이터가 나왔다. 바닷물 주입도 빨리 했어야 한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의 경우 냉각탑은 살아 있었는데 후쿠시마 원전은 사고 다음 날 전기시설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기에 방사능을 방출해야 한다는 사실도 12일 아침이 되어서야 알았다. 모든 걸 빨리 움직였다면 지금 같은 사태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원전 정책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민당의 정책은 탈(脫)원전이다. 새 원전을 짓지 말자, 낡은 원전은 가동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대체에너지로 자연에너지를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폐쇄해야 한다. 하마오카 원전(시즈오카 현 중심으로 한 도카이 대지진이 발생하면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원전)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원전의 해외 수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정치권에서 부흥법안을 논의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원전 사태로 인한 농작물 피해만 해도 엄청난 것 아닌가. 부흥에는 몇십조엔이 들 것으로 본다. 몇십조엔이라고 해도 1년에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지진이나 쓰나미로 토지가 유실되거나 마을이 통째로 피해를 봤기 때문에 마을 재건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간 부흥도 함께 해야 한다. →간 나오토 총리가 아직도 대연립에 미련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잘못된 것이다. 자민당 정치를 부정해서 탄생한 게 민주당 정권이다. 정권 교체를 했는데도 예전과 같은 일을 하겠다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금 총리라면 달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고이즈미의 결단력,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그의 신자유주의, 격차를 확대하는 정책, 방향성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고이즈미가 지금 총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간 총리에게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결단력을 갖고 30㎞ 이내 주민을 모두 피난시켜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을 폐쇄하고 하마오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다. 원전 정책을 전환하고 예산도 과감하게 재편성해야 한다. 국민에게 ‘우리 모두 힘내자’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힘들다. →대재앙을 일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9·11 테러처럼 3·11 대지진은 일본을 변하게 하지 않을까 점쳐본다. 지금까지는 전력 같은 물자를 마음껏 쓰고 모든 게 풍족한 생활을 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모두가 참고 힘을 합쳐 나아가자는 분위기가 됐다. 좋은 의미에서 활기를 되찾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치권이 나서서 이 모든 걸 조직하고 진행해 모두가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이 1면에 일본어로 위로문을 냈다. 한국인들의 모금, 구조 활동도 활발하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있는 데 대해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후쿠시마 미즈호 1955년 미야자키 출생. 도쿄대 법학과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내 소송에서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등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8년 사민당 비례대표로 참의원에 처음 당선한 후 3선. 2003년 총선 때 사민당 참패의 책임을 지고 도이 다카코 당수가 물러난 뒤 지금까지 당수를 맡고 있다. 2009년 민주당의 압승에 따른 정권 교체 때 국민신당과 함께 연립정권에 참여해 특명담당상을 지냈다.
  •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도쿄 프리즘] 때늦은 현장방문 간 총리… 흔들리는 日 리더십

    2003년 야당 시절의 민주당 대표였던 간 나오토 총리를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다. 당시만 해도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굳건했다. 정권교체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코 여당을 꿈꾸지 못할 만년 야당의 당 대표, 솔직히 그에게 품고 있던 이미지였다. 돌파하고 싸우며,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서는 YS, DJ로 대표되는 한국의 야당 당수 같은 투쟁력이 결핍된 모습. 인터뷰 내내 든 인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세월이 흘러 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패전 이후 일본 최대의 위기다. 국난 극복의 과제가 던져졌다.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생명도 걸렸다. 그런데 신속하고 정교하고 일사불란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서방 언론들은 리더십의 실종이라며 야유를 보내고 있다. 뭘 하는지 궁금했던 간 총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지진 발생 열하루 만인 21일 재해지역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20 km 인근 지역을 시찰한다고 한다. 2003년의 정치 파트너 고이즈미가 지금 총리였다면 대재앙 발생 직후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우리는 국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외쳤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본다. 잃어버린 20년, 오랜 경기침체 속에 일본은 생기를 잃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 가야마 리카는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일본을 ‘우울증에 걸린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대재앙이다.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1945년 패전 후 19년 만에 경제부흥을 이루고 도쿄올림픽을 치른 저력의 열도, 일본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점쳐보고 있다.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퍼즐을 풀 실마리가 있다. 민영방송인 후지TV가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본은 부흥할 수 있을까’라는 설문에 일본인의 94.6%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놀랍다. 끔찍한 재앙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의 희망에 총리는 어떻게 화답했던가. 국민 앞에 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총리. 원전을 둘러싼 일본 국민과 전세계의 공포와 불안에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총리. 열하루 만에 현장에 가는 총리다.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일본이라 총리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하지만 절체절명의 시대, 리더십은 국민을 희망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길잡이다. 오죽하면 대지진 전 24%대였던 지지율이 20일 현재 35%까지 올라갔을까. 일본은 총리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하면 수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인정사정없이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그런 그가 대지진 후 지지율이 올랐다. 국난 극복 과정에 총리를 바꾸는 혼란보다는 밉지만 맡겨보자는 뜻일 것이다. 1995년의 고베 대지진 때 오자토 사다토시 방재대신이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직접 지휘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 재해규모가 훨씬 큰 데도 현장에 내려가 책임을 다하는 각료는 한명도 없다. 용인(用人)이 잘못이라는 지적이 들린다.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에 변리사 자격을 지닌 간 총리는 늘 ‘기술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원전과 시버트(방사선량 단위)에만 신경 쓴다는 비아냥도 있다. 우울증에 걸린 일본이 대재앙을 계기로 침체를 딛고 활기를 되찾을지는 일본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으는 데 달렸다. 하지만 그 힘과 지혜를 모으는 구심점은 역시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점을 역사는 말한다. 재해지역 시찰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 궁금하다. marry04@seoul.co.kr
  • [사설] 日 국가신용등급 하락 남의 일만은 아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 ’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S&P는 “일본의 국가채무가 세계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간 나오토 총리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재무성이 올해 말 국가 누적채무가 997조 7098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자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경고한 셈이다. 국가신용등급 ‘AA ’는 중국·타이완과 같은 수준이며, 최근 재정위기가 표면화된 스페인(AA)보다 낮다. 선진 경제대국을 자임해온 일본으로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국가부채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과정을 거치면서 내수를 살리기 위해 공공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 결과 재정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여기에 장기 불황으로 세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 지출 증가와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이 맞물리면서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고이즈미 내각 이래 세출 구조조정 등 재정 개혁과 증세를 추진했으나 유권자의 반발을 의식해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물론 일본은 국채의 95% 이상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나 개인이 보유하고 있고 가계 자산이 국가 부채를 충당하고도 남는 데다, 매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외환보유액만 1조 달러에 달해 당장 채무불이행과 같은 부도사태를 맞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올 들어 뜨겁게 달아오르는 ‘복지 정쟁’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무심히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의 위안거리였던 국가 부채도 새 기준을 적용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34% 수준에서 44.9%로 껑충 뛰게 된다. 고령화 진전 속도와 복지비 지출 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개방형 소규모 경제’인 우리는 대외변수에 극히 취약하다. 따라서 정부는 야당의 복지 공세에 함몰될 게 아니라 재정이 뒷받침되는 복지, 즉 지속가능한 복지의 청사진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은 과잉 유동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일본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 [씨줄날줄]석우지려/박홍기 논설위원

    지난 2006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직후 미국이 아닌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및 과거사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매체들은 “아베 총리가 양국을 가로막고 있는 얼음벽을 깼다.”고 평가했다. 얼음을 깨는 여행, 즉 ‘파빙지려(破氷之旅)’라는 얘기다. 중·일 관계는 이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7년 4월 11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일은 ‘융빙지려(融氷之旅)’로 불렸다. 깬 얼음을 녹이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양국 간에는 전략적 호혜관계가 한층 강화됐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오는 법이다. 같은 해 12월 27일 아베 총리의 후임으로 등장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중국을 찾았다. 대표적인 친중파인 후쿠다 총리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으로부터 파격적인 환대를 받았다. 당시 나온 말이 봄을 맞는 여행, ‘영춘지려(迎春之旅)’다. 2008년 5월 7일 후 주석이 국가주석으로서는 10년 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했다. 후쿠다 총리가 “봄이 가능한 한 길게 계속됐으면 한다.”고 환영하자 후 주석은 “이번 방문은 ‘난춘지려(暖春之旅)’라고 말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꽃이 활짝 핀 ‘따뜻한 봄날의 여행’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곧잘 외교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동원, 자국의 의중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왔다. 고사성어가 아닌 신조어를 통해서다. 중국 경제지 21세기경제보도는 오는 18~21일 예정된 후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을 빗대 ‘석우지려(釋憂之旅)’라고 썼다. 미국의 우려, 중국에 대한 의심을 풀어 줄 여행이라는 의미다. 물론 새로 만들어 냈다. ‘G2’로 떠오른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견제는 여느 때보다 강하다. 중화패권주의 부상에 따른 중국 위협론이 제기되고 있다. 군사력 증강뿐 아니라 남중국해 등으로의 적극적인 해상 진출,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 등 미국을 신경 쓰게 하는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후 주석은 방미 때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야심이 없는 데다 아직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고, 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의 외교노선을 견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몸 낮추기인 셈이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저서 ‘악마의 사전’에서 “외교란 국가를 위해 거짓말하는 재주와 임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은밀히 어둠 속에서 기른 중국의 힘이 언제까지 감춰질지 자못 궁금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中 무력시위 대응… 3각 동맹 급물살

    中 무력시위 대응… 3각 동맹 급물살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12일 오후 중국 방문을 마치고 일본에 도착했다. 게이츠 장관은 13일 오전 간 나오토 총리,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을 만난 데 이어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과 미·일 국방장관회담을 갖는다. ●게이츠, 올 美·中 군사회담 제안 게이츠 장관은 중국을 떠나기 앞서 미국과 중국이 핵과 미사일방어(MD), 사이버 전쟁, 우주 공간의 군사적 사용 등 광범위한 문제를 다룰 새로운 형식의 포괄적인 군사회담을 올 상반기 안에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중국의 전략 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부대 사령부도 방문했다. 오후 일본에 도착한 게이츠 장관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자신의 방중 기간 중국 정부가 보인 ‘무력 시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게이츠 장관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연일 최첨단 무기체계를 언론에 공개했다. 인민 해방군의 첫 스텔스 전투기인 ‘젠(殲)20’과 대륙 간 장거리 폭격기로도 활용될 수 있는 우주 무인기의 시험 운항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중국이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첨단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미 국방장관에게 보여준 셈이다. 이런 중국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게이츠 장관은 일본과 한국 방문을 통해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을 구축하려는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무엇보다 11일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SCA)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기로 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향후 한·미·일 간 군사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日·北 직접 대화’ 발언 파장 일본 내에서도 게이츠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3국 간의 안보협력을 3국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만의 군사협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한국과의 군사 협력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가 순탄한 이명박 정부 때 양국 간 군사협력 관계를 위한 확실한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일·북 직접 대화’라는 돌발카드를 꺼내 든 마에하라 외무상의 11일 기자회견이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마에하라 외무상은 회견에서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당시 평화선언을 확인하면서 직접 대화를 확실하게 진전시키고 싶다.”며 “6자회담에 관계없이 백지상태에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 정부 일각에선 납치문제 등 현안에 대한 진전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 대화 제안은 자칫 북한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나아가 일본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긴밀한 외교 협력을 구축해야 할 한국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중의원 해산설 간 총리號 위기

    日중의원 해산설 간 총리號 위기

    일본 간 나오토 내각이 최대 위기에 몰렸다. 중국,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에서 무능한 외교력을 보여 내각의 지지율이 ‘위험 수위’인 20%대로 추락하고, 각료들의 잦은 실언과 야당의 반발로 정국 운영이 혼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 실시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민주당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이 18일 “민주당 정권의 상황이 어렵다. 중의원이 해산될지도 모른다.”라고 언급했다. 간 내각의 폐부를 찌르는 발언이다. 실제로 하토야마 전 총리도 지난 6월 내각 지지율이 21%로 떨어진 뒤 보름 만에 사퇴했다. 내각 책임제인 일본 정치는 ‘여론조사로 정치가 좌우된다’고 할 만큼 지지율에 민감하다. 주요 중앙 언론 6개 사가 매달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일본 정가에서는 내각 지지율 35% 이하는 황신호, 30% 이하는 적신호로 총리가 옷 벗을 채비를 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간 내각의 각료들도 잇딴 설화(舌禍)로 궁지에 몰리는 등 아소·하토야마 내각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국회 경시 발언을 한 야나기다 미노루 법무상에 대해 야당이 오는 22일 참의원 문책 결의안과 중의원 불신임 결의안을 낼 방침이다. 야나기다 법무상은 지난 14일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법무상은 (국회에서)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답변을 삼가겠다’고 하고, 이걸로 안 되면 ‘법과 증거를 토대로 적절하게 처리하겠다’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간 총리가 이런저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 판을 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의원 조기 해산설도 새 판 짜기 수단의 하나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 민영화법안이 중의원에서 부결되자 들고 나왔던 카드다. 고이즈미 총리는 새 선거를 통해 전체 480석 가운데 305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뒀다. 특히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내년 3월에 2011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중의원을 해산해야 할 것이라는 ‘3월 위기설’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307석을 싹쓸이한 상태에서 선거를 다시 치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우세하다. 선거 전망도 밝지 않다. 때문에 대표 선거를 통해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이나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간사장에게 총리직을 물려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럴 경우 당내 최대 계파를 거느린 오자와 전 간사장과 힘겨운 승부를 다시 해야 한다. 더욱이 측근들끼리 총리직을 주고받다가 여론이 악화된 자민당 말기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간 총리에게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4대 세습의원 北 3대 세습 비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동생이자 세습 정치가인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유수의 정치 명문가인 하토야마 가문의 4대 세습 의원인 구니오 의원은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세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북한처럼 그런 절차도 없이 세습하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라며 “더구나 소선거구를 이어받는 것과 국가 권력을 계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 아니냐”며 북한의 세습을 비판했다. 구니오 의원의 증조부는 귀족원(현 참의원) 의원을 지냈고, 조부인 하토야마 이 이치로는 자민당을 만들고 총리까지 역임했다. 부친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외상이다. 구니오 의원은 “최근의 (일본) 총리는 대부분 세습 정치가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빼고는 모두 나약하지 않았느냐.”며 “나도 그렇지만 세습 정치가는 나약하고 참을성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1976년 신자유클럽 추천으로 처음 당선된 뒤 자민당, 개혁모임, 자유개혁연합, 신진당, 민주당을 전전했다. 최근에도 자민당을 탈당해 무소속 의원으로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反日·反中 시위 동시에… 센카쿠 화해국면 ‘찬물’

    反日·反中 시위 동시에… 센카쿠 화해국면 ‘찬물’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주말 양국에서 동시에 발생한 대규모 반일(反日), 반중(反中) 시위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차츰 회복되던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서는 시위대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함께 일본 기업을 습격하는 등 반일시위가 과격한 양상으로 전개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상대방을 비난하는 대규모 거리시위가 벌어진 것은 토요일인 지난 16일. 중국에서는 쓰촨성 청두(成都),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저장성 항저우(杭州), 허난성 정저우(鄭州) 등 대도시에서 수천~수만명의 시위대가 도심에서 ‘댜오위다오를 반환하라’, ‘일본 상품을 쓰지 말자’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반일시위를 벌였다. 청두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일본계 백화점 화탕(華堂·일본명 이토 요카토)에 침입해 피해를 입히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도쿄 시내 미나토구의 아오야마 공원에서 3000여명이 참가한 반중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 가운데 1500여명은 중국대사관을 포위한 채 센카쿠열도 영유권 주장에 항의했다. 중국의 시위는 일본 우익세력 시위계획에 자극받은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이번 시위 사태를 계기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던 양국 간 갈등이 다시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신속한 진화 움직임 등을 감안하면 쉽게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외교부의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은 폭력행위까지 벌어진 이번 반일시위와 관련, “일본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일부 군중의 의분을 이해하지만 이런 애국적인 열정은 법에 의해 이성적으로 전달돼야 한다.”며 시위 자제를 촉구했다. 일본 언론들은 양국 관계의 회복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시위는 2005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발해 발생했던 반일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관계회복으로 나아가던 중·일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17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도 “양국이 센카쿠 충돌로 악화됐던 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고, 중국 공산당의 중요한 회의인 5중전회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 발생한 이례적인 시위 때문에 중국의 대일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내다봤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北 정책 불확실성 여전… 남북관계 탐색전 가열될 듯

    북한 정권이 28일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을 공식화한 것은 북한 내부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세습 공식화가 남북관계와 북·미, 북·중, 북·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본다. ■ 남-북 : 권력누수 차단하기 강경입장 낼 수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로 남북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양상이다. 김정은은 물론, 측근으로 알려진 이른바 후계 구축의 핵심 엘리트들의 성향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을뿐더러, 세습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도 탐색전을 계속 하는 등 안갯속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난해 9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지난 3월 천안함 폭침사건 등 대남 공세를 진두지휘했다는 설이 있는 만큼 대남 정책에 대해서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보다 더욱 공격적이고 보수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측근들에 의한 섭정체제나 당·군이 가세한 지도체제 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내부 분란이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더욱 공세적인 대남·대외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의 남북관계는 남측이 주도할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지난 6월 내각총리로 임명된 최영림 등이 자립·주체 노선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제라인이기 때문에 후계 구축 과정에서 선군정치라는 정치 메커니즘과 함께 경제는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며 “남북관계도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 측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북-미 : 北 비핵화 이행 봐가며 속도조절 예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부자의 권력 승계에도 불구하고 당장 북·미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옆에서 후계수업을 받는 과정에서는 특히 현재의 대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겸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 한국 연구실장은 “김정은의 성격이 알려진 것과 같다면 김정일이 펴온 정책과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이 후계승계를 공식화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선군정치와 핵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천명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마커스 놀란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노동당의 중요한 행사에서 김정은이 당이 아닌 군부의 주요 지위에 오른 사실을 발표한 것은 놀랍다.”면서 “이는 현재 북한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최근의 유화 제스처를 이어가며 북·미 관계 개선을 희망할 수는 있지만 북·미 관계는 남북관계 및 6자회담 재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안들의 진전 없이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향후 권력승계 작업이 순탄하게 이뤄질지 군부의 반응과 내부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무엇보다도 남북관계 진전 여부와 북한의 비핵화 이행 진정성을 봐가면서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북-일 : 체제 변화로 교착상태 풀리나 기대감 일본 정부는 28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인 정은을 군의 대장으로 임명한 데 대해 정식으로 후계자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향후 북·일 관계에 미칠 향배에 대해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상은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으로 임명됐다는 보도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동향을 제대로 판별해 가고 싶다.”며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 대해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납치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관계가 북한체제의 변화로 인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말 방북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일본과의 대화에 전향적으로 나설 뜻을 피력했던 것으로 밝혀진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양국 간 대화의 통로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아직까지 원칙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일관계가 물꼬를 트기만 하면 급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2년 9월과 2004년 5월 두 차례 방북을 통해 납치문제를 김정일 위원장과 논의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간 나오토 총리가 중국과의 관계 등 외교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일 정상회담 카드를 반전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북-중 : 대를 이은 우의… 경제 교류 활발할 듯 북한의 후계세습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중국 관계에는 근본적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 들어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 양국 간 우호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등 권력승계 연착륙에 공을 들였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지난달 중국 방문 때 3남 정은을 중국 최고지도부에 소개하면서 ‘대를 이은 우의 유지’에 대한 중국 측의 확약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28일 “중국 최고지도부는 북한의 안정이 자국의 핵심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내정 간섭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드러내진 않겠지만 후계 체제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보이지 않게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경제교류가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피폐해진 경제상황을 복구하는 게 ‘후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새로운 경제개발구 등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선물’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베이징의 또 다른 소식통은 “올 두 차례 방중 때 김 위원장이 시찰한 산업시설 등은 모두 중국 측이 안배한 것”이라면서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의 경험을 북한에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日민주당 경선 D-1… 막판까지 대혼전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할 민주당 대표 경선을 하루 앞두고 간 나오토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대결이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1일 우편 투표가 끝난 지방의원이나 당원·서포터(지지자) 표 경쟁에서는 간 총리가 크게 앞섰다는 점에서는 모든 언론의 보도가 일치하지만 국회의원 지지양상은 매체마다 엇갈렸다. 민주당 중의원·참의원 411명의 표심은 1인 2표를 행사, 전체 1222점 가운데 67.5%를 차지함에 따라 승부의 최대 변수다. 12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간 총리는 국회의원 411명 중 186명의 지지를 확보해 195명의 표를 끌어모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에게 다소 뒤져 있다. 다만 당원·서포터와 지방의원 지지도에서 차이를 벌려 전체적인 판세에서는 앞서가고 있다. 아사히신문 역시 국회의원 표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이 193명, 간 총리가 183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방의원이나 당원·서포터 표에선 간 총리가 50% 정도의 지지표를 모았다. 반면 오자와 전 간사장은 30%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간 총리가 승리할 경우 지난해 8월 출범한 이래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집권 2기를 맞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을 이끌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은 사실상 정권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일본 정치의 이합집산을 주도해온 오자와 전 간사장이 당을 뛰쳐나가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오자와 전 간사장이 승리하면 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자의 배후에서만 활동하던 오자와 전 간사장이 전면에 나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출범 이후 난맥상을 보이던 미·일 관계, 재정문제, 아동수당 등에 대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공산이 크다. 나아가 2007년부터 9월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후쿠다 야스오→아소 다로→하토야마 전총리로 교체되는 악몽도 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국과의 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민주당 첫 과거사 담은 총리담화 의미·한계

    간 나오토 총리가 10일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최초로 역사인식을 표명한 총리담화를 발표한다. 간 총리가 민주당 일부와 보수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리담화를 발표하는 것은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 양보하는 대신 향후 한일관계를 강화하고 북한의 납치, 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과 일본 간에도 위기감이 조성됨에 따라 일본 정부내에서는 한국과 제휴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다. 이를 위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총리의 입장 표명과 양국 간 현안인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는 게 ‘절대조건’이라는 공감대가 정부내에 형성돼 있었다. ●무라야마 담화와 큰 차이 없어 하지만 식민지 지배의 근거가 된 한국병합조약이 조선(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된 것이어서 원천 무효라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아 한국측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대세다. 이번 간 총리의 담화가 지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20 01년 10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담화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담화에는 궁내청에 소장된 163권의 조선왕실의궤 반환의사를 ‘인도’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됐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을 통해 문화재 반환이 일단 완료됐다는 점을 고려해 ‘반환’이 아니라 ‘인도’라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하는 11월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다른 문화재 반환엔 입장 안 밝혀 하지만 다른 문화재 반환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향후 양국 간 분쟁의 소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측으로서도 이번 간 총리의 담화내용은 갈등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반환에 응하지 않았던 ‘조선왕실의궤’를 넘겨줌으로써 앞으로 다른 문화재 반환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청산하고 서로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하는 기존의 일본 정부 입장이 흔들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공산이 크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조선왕실의궤 돌려준다

    일본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고, 궁내청이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 등을 한국에 인도하겠다는 내용의 총리 담화를 10일 발표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이날 내각 회의의 결정을 거쳐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고, 한반도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담화에서 사용되기 시작해 일본 정부가 반복해서 사용해온 것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2005년 8월15일 전후 60년 담화에서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간 총리는 또 사할린 잔류 한국인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의사와 궁내청이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 등 문화재를 한국에 인도하겠다는 뜻을 표명한다. 이 밖에 지금까지 진행해온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유골 반환 작업에도 계속 협력하겠다는 의사도 포함한다. 간 총리는 이번 담화로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분출된 한일 간 역사 인식에 대한 논란을 일단락 짓고, 핵·미사일·납치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한일간 공동 대응을 강화한다는 뜻도 밝힐 예정이다. 향후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21세기에서는 양국 관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로 지칭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의 근거가 된 한국병합조약이 조선(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된 것이어서 원천 무효라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발표 시기도 광복 65주년인 15일, 병합조약 체결일과 공표일인 22일과 29일 등을 피해 최대한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민주당의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죄 외교를 그만두라.”는 반대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어 각의 결정이 필요없는 담화 형태로 발표되거나 담화 발표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서울광장] 광화문 복원과 日帝의 조선왕궁 말살기/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화문 복원과 日帝의 조선왕궁 말살기/노주석 논설위원

    돌아오는 광복절날 제대로 된 광화문을 보게 될 모양이다.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 본래 모습 그대로 태어난다니 말이다. 광화문은 조선왕궁 수난사와 궤를 같이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지었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훼손되고 뒤틀렸다. 일제는 민족정기와 조선왕실의 권위를 훼절시키고자 궁궐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일제의 조선왕궁 말살정책은 용의주도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5궁 가운데 경복궁은 해체되다시피 했고, 창덕궁은 피폐해졌으며,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둔갑했다. 경희궁은 학교가 됐고,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어 퇴위한 고종과 순종의 거처로 쓰였다. 훼손되기 전 경복궁 전경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다. 1915년쯤 촬영된 경복궁은 높은 담 뒤로 전각이 빽빽하게 들어선 웅장한 궁궐이었다. 우리가 아는 쪼그라든 경복궁이 아니었다. 1867년 중건 당시 경복궁 전각은 모두 7226칸이었고, 궁성 밖 후원에 489칸의 전각이 따로 있었다. 모두 7715칸으로 규모 면에서 9999칸을 자랑하는 중국 자금성에 못지않았다. 창덕궁의 4500칸을 합치면 오히려 더 컸다. 일본 교토의 천황궁은 넓이에서 경복궁의 4분의1에 불과한 작은 궁에 불과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1910년 5월1일 자에 ‘경복궁 없어지네’라는 제목의 가슴 아픈 기사가 실려 있다. ‘경복궁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을씨년스러운 곳으로 변한 것은 모두 알지만 얼마 전 왕실사무를 관장하는 궁내부에서 경복궁 안에 공원을 짓고자 전각 4000여 칸을 경매에 부쳤다. 10여명이 한 칸당 15~27환씩에 샀다. 이 중 3분의1을 사간 일본인은 척식회사 총재의 첩자로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경복궁 안에서 박람회를 열고, 총독부를 근정전 앞에 짓기 이전부터 왕궁의 전각들이 일본인의 손에 헐값에 부지기수로 넘겨졌음을 알 수 있다. 바다 건너 일본에 팔려간 전각은 개인 미술관이나 정자, 정원의 일부가 됐다. 심지어 상점이나 기생집 문으로 사용됐다. 경복궁의 파괴는 식민통치의 업적을 자랑하는 박람회 개최 과정에서 가속화됐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5년 조선가금공진회, 1926년과 1929년 조선박람회,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등 모두 6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자행됐다. 경복궁의 유서 깊은 전각들은 유흥장소와 오락장으로 변했다. 행사 때마다 일본 총독이 근정전 임금의 용상에 앉아 상장을 주고, 훈시를 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이제야 자리를 찾은 광화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광화문 제자리 찾기는 일제가 허문 조선 척추의 복구이다. 20년 걸려 광화문-흥례문-금천교-근정문-근정전-사정문-사정전-강녕전-교태전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등뼈를 겨우 맞췄다. 1990년에 시작된 복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착수 당시 남아 있는 전각은 36개 동에 불과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89개 동을 지어 125개 동을 갖췄다. 중건 당시 500여개 동의 25% 수준이다. 조선법궁의 격을 떨어뜨리는 흉물스러운 민속박물관과 고궁박물관, 주차장의 철거는 별개의 문제이다. 경복궁과 나머지 궁궐을 완전 복원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광복절 즈음 사과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사토, 종전 50주년의 무라야마, 종전 60주년의 고이즈미 총리에 이은 네 번째 공식 사과가 될 전망이다. 내용을 놓고 일본열도가 떠들썩하다. 1995년 무라야마는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한다.”고 해 놓고 2개월도 못 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는 정당했다.”라고 말을 바꿨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껌 한 통 살 수 없는 돈 99엔을 보상했다. 외교적 레토릭은 신물이 난다. 조선왕궁 말살 같은 정신적·문화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셈인가. joo@seoul.co.kr
  • 日 눈과 귀가 김현희에 꽂혔다

    日 눈과 귀가 김현희에 꽂혔다

    20일 일본 언론은 온통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48)씨에게 쏠렸다.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김씨는 이날 새벽 4시 일본 정부가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곧바로 차량에 탑승,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별장으로 향했다. NHK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언론은 헬기와 차량 등을 동원해 공항에서 가루이자와 별장까지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등 과열 취재 양상까지 보였다. 김씨가 머무는 별장은 약 7200㎡의 넓이로, 신록이 우거져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별장 입구에서 거주동까지 도보로 7~8분 정도 걸린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민주당 대표로 있던 2002년부터 오자와 이치로 당시 자유당 당수와 자주 회담을 가져 합당을 결정하는 등 반자민당 정국을 좌지우지한 장소로 유명하다. 김씨는 오후 별장을 방문한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북한명 이은혜)의 오빠 이시즈카 시게오와 장남 고이치로를 만났다. 김씨가 가루이자와 별장으로 향한 것도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다구치의 아들 고이치로에게 밥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나카이 히로시 납치문제담당상이 설명했다. 보안이 유지되는 곳을 찾다 보니 민주당 납치문제대책본부장을 역임한 하토야마 전 총리의 별장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23일까지 이 별장과 도쿄의 모처 등에 머물면서 일본 납북 피해자를 상징하는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된 메구미 관련 새 정보에 촉각 일본 정부와 언론은 김씨의 이번 방문을 통해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메구미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77년 11월15일 하교 도중 니가타시 자택 부근에서 실종된 뒤 일본 납북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녀가 1993년 딸(김혜경)을 낳은 직후에 숨졌다고 설명했지만, 일본은 북한의 설명을 믿을 수 없다며 줄곧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일본측은 특히 김씨가 지난해 5월 “요코다 메구미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 말을 들어 메구미의 생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NHK와 인터뷰에서 김씨가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를 만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직접 얘기하고 싶다.”고 한 발언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3월에도 부산에서 다구치 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다구치가 1986년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북한 주장과 달리 “1987년에도 다구치가 숨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북한과 일체의 교섭을 단절한 상황에서 납북자에 대해 간접적인 정보나마 얻을 수 있는 통로로 김씨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김씨의 일본 방문을 추진했다. 북한은 지난 2008년 6월 ‘재조사’를 약속했지만 9월 후쿠다 내각 퇴진으로 인해 ‘재조사 보류’를 밝혔다. ●민주당 정부의 퍼포먼스라는 시각도 일본에서 납북자 문제는 우익뿐만 아니라 국민 상당수의 공감을 얻는 사안이다. 지난해 9월 집권한 민주당 정권도 이를 의식해 나카이 공안위원장에게 납치문제담당상을 겸임하게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납치자 정보에 대해 별로 알려질 것이 없다며 김씨의 이번 초청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도쿄대 교수는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김씨가 1990년 사형판결이 확정되고, ‘하치타니 마유미’라는 이름의 위조여권을 사용한 용의자로 입국난민법상 명백한 입국거부대상인데도 정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각종 특혜를 베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납치문제를 홍보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농후하며 이번 정부의 조치가 향후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사설] 日, 한일병합 100년 사죄 진정성 담아야

    일본 정부 대변인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에 이어 오카다 가쓰야 외상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에 사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오카다 외상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정부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무라야마 당시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한 바 있으며, 고이즈미 총리도 종전 60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한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이같은 기본 자세는 긍정적이다. 센고쿠 관방장관이나 오카다 외상의 발언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가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를 통해 한국에 사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문안 정리 작업에 들어갔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센고쿠 관방장관은 그제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총리 담화의 발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더 나아가 아직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뭔가 견해를 밝힌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내 머릿속에는 들어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미 문안 검토 작업이 상당부분 이루어졌음을 시사해주는 발언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말만 요란할 뿐 진정한 사과를 담은 담화문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신경 쓰인다. 일본 민주당은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담화문에 보수화된 일본 국민들이나 여당 내 경쟁파벌들을 자극할 만한 내용을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내각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하면서 여론에 민감한 민주당이 진정한 사과를 할 용단을 내릴지 의심스럽다는 시각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사과 담화가 나와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1995년 무라야마 당시 총리는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후회한다.”는 담화를 발표했지만, 이후 침략을 부인하는 일본 각계의 망언은 계속됐다. 우리는 간 총리 내각이 무라야마 전 총리의 담화를 뛰어넘는 진정성 담은 담화를 발표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래야 한·일 양국은 과거 100년의 상처를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의 100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한·일 100년 대기획] 기로에 선 일본의 미래-야마구치 지로 일본정치학회 이사장

    [한·일 100년 대기획] 기로에 선 일본의 미래-야마구치 지로 일본정치학회 이사장

    1980년대 ‘일본의 시대’를 거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거의 20년 동안 거품경제의 그늘에 갇혀 있다. 그동안 몰라보게 커진 중국 세력에 밀려 정치와 경제 대국의 지위마저 빼앗길 위기에 몰린 일본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8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자민당의 독주시대가 끝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경제도 거품이 걷히고 플러스 성장의 여명이 비치고 있지만 임금삭감과 소비침체 현상이 여전하다. 중산층이 무너져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기도 하다. 세기적인 전환기에 놓여 있는 일본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일본 정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 교수를 통해 일본의 정치와 경제, 사회의 미래를 조망해 본다. 야마구치 교수는 민주당의 정책자문단으로 민주당의 주요 정책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인터뷰는 2일 도쿄 신바시의 도쿄다이치 호텔에서 이뤄졌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 선거가 일본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간 나오토 총리가 취임한 뒤 민주당 정책이 크게 바뀌었다. 야당 때는 민주당이 내세운 공약이 많이 불완전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지난 9개월간 예산 편성 때 무엇이 불충분했는지 알게 됐다. 여당이 된 뒤 정책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 단행한 세제개혁을 높이 평가한다. 이런 달라진 모습은 일본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간 총리가 소비세 10% 인상을 발표한 뒤 내각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선거를 치르면서 소비세 인상에 대한 논쟁을 많이 벌일 것이고, 야당으로부터 공격도 수없이 받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은 간 총리가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각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보다 국민을 위해 각오한 것이다. 선거에서 악재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자세다. →민주당은 화려한 매니페스토(정책공약)를 제시했다. 하지만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 아동수당 지급을 위한 재원 부족 등의 문제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예상보다 빨리 물러나게 됐다. 민주당이 너무 이상에 치우친 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은 아닌가. -매니페스토가 이상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개인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책목표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 정권을 잡아 시행착오로 겪은 것이다. 간 총리의 태도는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야마구치 교수는 민주당의 ‘생활제일’ 슬로건을 제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 생활제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나. -정치가 뜬 구름 잡기 식이 아닌 현실적인 생활제일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야당 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세제개혁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조세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 이것을 리드할 사람이 많지 않다. 재무성도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결국 지출에 대한 의료나 연금, 간호 등 사회보장에 대한 정책을 펴나가야 하는데 간 총리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볼 것이다. →일본이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가 ‘신냉전시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동북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자민당과 다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한·미·일의 공조가 현실적이다. →향후 미·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하토야마 정권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못해 물러난 것이 아닌가. -장기적인 테마다. 안보문제는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20년 정도 걸려야 해결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의 문제는 당장 바꾸기는 힘들고 안될 것이다. 민주당은 외교 면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이 점이 자민당과 다르다. 일·미 변화는 당분간 어렵고 민주당은 야당이었기 때문에 외교 문제에 대한 충분한 노하우도, 인재도 없어 하토야마 정권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가 핵심이다. -가까운 시일내 개헌은 있을 수 없다. 국민투표법이 시행됐지만 헌법을 바꾸려면 중의원, 참의원 의석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보수 신당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부분의 의원들이 이 부분에 관심이 없다. 경제, 사회 등 국내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에 대한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 일본이 거품경제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회복의 기운이 있었다. 거품경제가 사라지는 시기로 기대를 모았다. 수출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결국 국내총생산(GDP)이 하락하고, 노동법 완화 등을 통한 기업들의 이익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고 GDP를 올려야 하고, 경제성장에 매진하는 게 꼭 필요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고이즈미 정권 때 GDP는 올라갔지만 임금을 줄이고, 지방자치금을 삭감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도요타 리콜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도요타 사태는 단순히 자동차 업체의 부품 결함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모노쓰쿠리’(제조) 정신이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기술부문을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내 현장에서 숙련된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고품질을 유지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본다. 대학교도 종신고용보다 비상근 교수들이 많아졌다. 이런 고용 문제가 도요타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억 총중류’(總中流)가 깨지고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 빈곤층)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분배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법이 완화됐지만 일본 노동자의 3분의1이 정사원이 아니다. 충분한 임금을 주어야 하는데 민간기업이 반대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다. 노동자가 주 40시간 일하고 최저 임금을 받을 경우 생활보호 대상자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주택·의료·고용·노후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주택을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어 13~14만엔의 최저 임금을 받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려면 너무 힘들다. 일본에선 교육비가 너무 비싸다. 특히 젊은 부부의 경우 자녀를 보육원에 맡겨야 하는데 보육원 시설이 너무 열악하고 숫자도 너무 적다.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당장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20~30년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만 하면 안정권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을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한다. 그런데 해당 재원을 노인층으로부터 끌어내야 하는 탓에 상당히 어렵다. 60~70대들은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서 일을 한 사람들로 연금과 퇴직금을 비교적 풍부하게(평균 매달 20~30만엔 수령) 받고 있다. 상속세를 크게 늘리고, 금융자산에도 과세를 해서 그러한 재원으로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발표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총리의 담화 등이 가능하다고 본다. 간 총리는 외교에 대해 잘 몰라 이 분야에 대해서는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에게 많이 의지한다. 센고쿠 장관은 동아시아 교류에 진력해 왔기 때문에 무엇이든 준비할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 입장에서는 기대를 해도 좋다고 본다. →차기 100년을 향해 일본이 한국에 할 수 있는 일은. -일본 지도자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한 다음에 21세기를 위한 동아시아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중학교 1학년부터는 주 1시간만이라도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양국이 더 가깝게 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지방 참정권은 우파의 반대가 너무 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해결하기엔 엄청난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월드이슈] 안영학 등 3만명… “국적으로 우릴 규정짓지 마세요”

    [월드이슈] 안영학 등 3만명… “국적으로 우릴 규정짓지 마세요”

    지난달 16일 북한과 브라질이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맞붙었을 때 북한 대표팀의 정대세 선수가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정대세 못지 않게 눈부신 활약을 한 안영학 선수도 국내 K리그에서 활약해 우리에게 낯이 익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북한 팀에서 뛰었지만 국적은 달랐다. 안영학은 조선적(朝鮮籍), 정대세는 한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들의 남다른 인생역정을 통해 60만 재일동포들의 국적문제를 되짚어 본다. K리그 수원과 부산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안영학의 국적은 한국도 북한도 아니다. 법적으로 ‘조선적’인 안영학은 엄밀히 말해 무국적자다. 정대세도 아버지는 한국 국적이지만 어머니는 ‘조선적’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그때까지 내국인으로 간주하던 식민지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북에서 각기 다른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인 1947년 일본은 외국인 등록령을 발효하면서 한반도 출신자로 일본에 남아있던 60여만명을 일률적으로 ‘조선’으로 표시했다. 한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기까지 20년 가까이 재일동포는 ‘조선’이라는 가상국가의 소속원일 수밖에 없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재일동포들은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한국을 택하는 것이 분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이거나, 남북 어디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선적’으로 남게 됐다. ‘조선적’은 외국여행에 제한을 받고 외국에 나가서도 이들을 도와줄 대사관이 없는 등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안영학은 일본에서 출국할 때는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증을 취득한다. 북한대표팀으로 외국에 나갈 때는 북한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명서’를 갖고 간다. 한국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갈 때도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행 증명서’를 소지한다. 외국 공항에서 “왜 여권을 3개나 갖고 있느냐.”는 이유로 붙잡힌 적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K리그에서 뛸 당시 ‘북한과 재외동포는 국내선수로 취급한다.’는 대한축구협회 규약 덕분에 ‘외국인’ 용병 취급을 받진 않았다. 조선적 동포들은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없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20여만명에 이르던 조선적은 최근 3만명 이하로 급감했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공식 인정한 뒤 조선적을 포기하고 대거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정대세와 안영학이 재일동포 3세인 것에서 보듯 재일동포 사회는 3세와 4세가 중심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고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례도 느는 등 존립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 한편에선 일본어로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말인 ‘자이니치(在日)’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삼는 재일동포들도 나타난다. 재일동포 3세로 스포츠전문 기고가인 신무광씨가 재일동포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에서 안영학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북이요, 남이요, 일본 등 나를 그 어디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굳이 한다면 나는 ‘자이니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대세도 “내 모국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 속에 있는 ‘재일’이라는 또 다른 나라”라면서 “골을 통해 ‘재일’의 존재를 널리 알리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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