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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男들보다 웃기는 걸~

    ‘남자가 없어도 재미있는 개그’ 개그계의 여성 파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는 여성들만이 이끌어가는 코너가 생길 정도로, 개그우먼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특히 지상파 3사가 경쟁적으로 ‘여성 온리’코너를 만들어 신인 개그우먼들을 띄우고 있다. 개그우먼들이 나와 섬세하고 기발한 소재로 잔잔한 웃음을 선사한 코너는 지난해 강유미·안영미가 출연한 KBS ‘개그콘서트’의 ‘GoGo 예술속으로’가 원조이다. 이어 엉뚱한 마담 정경미·신고은의 ‘문화살롱’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폭탄이 되기를 자청한 세 여자(신봉선·박나래·권진영)의 필살기 ‘폭탄스’가 뒤를 잇고 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최고 장수 코너인 ‘퀸카 만들기 대작전’은 기존 개그우먼의 양념·보조 역할과, 주도적으로 달라진 역할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여성 개그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퀸카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예쁜 개그우먼들(백보람·이경분)과, 그들을 가르치며 리드하는 못생긴 ‘자칭 퀸카’ 김현정·정주리가 함께 나와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는다.웃찾사의 새 코너 ‘해봤어’도 신인 개그우먼 3명(이은형·고은영·홍윤화)이 출연, 난처한 상황을 동요를 통해 풀어감으로써 여성들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독특하게 망가지는 표정과 말투가 동요와 접목돼 웃음을 자아낸다.MBC ‘개그夜’는 간판 개그우먼 이경아·김세아를 내세운 ‘라이벌 뉴스’가 입담 대결로 인기를 끌자 최근 가을 개편을 통해 이들의 개인기를 더욱 강화한 ‘미인본색’을 선보였다. 특히 이들은 창을 이용한 노래 개그와, 사회적인 이슈를 꼬집는 풍자개그까지 선보여 소재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다. MBC 개그夜의 노창곡 PD는 “1980∼90년대 이성미·이경애·박미선 등이 맹활약했듯이 2000년대에 들어 개그우먼들이 또다시 약진하고 있다.”면서 “개그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능력 위주의 개그우먼들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인터뷰] 하늘빛 새 영혼으로 영원을 그리는 화가 - 박항률

    [인터뷰] 하늘빛 새 영혼으로 영원을 그리는 화가 - 박항률

    박항률 화백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어른을 위한 동화 모닥불을 읽으면서 소녀를 실어 나르는 뗏목의 슬프고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여 흘러내린 눈물 방울 사이로 그의 그림은 아련하게 푸른빛을 띄며 내게 다가왔다. 어디선가 겨울 강가에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보시면 소녀를 기다리는 내 기다림이 타오르는 것이라 생각해 주세요.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단발머리 소녀는 뗏목의 이 애절한 마음을 알고 있을까? 이렇게 나는 모닥불을 통해 박항률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바람 때문이었을까? 지난 4월 성북동 길상사에서 우연히 화가 부부를 만났고 청담동에 있는 그의 화실로 초대를 받았다. 고은별 |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요함 속에 어떤 애수(哀愁)가 느껴져 옵니다. 그림은 작가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 아련한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박항률 | 1994년부터 명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가 경험한 죽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시골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사촌 여동생을 만났는데 저보다 한 살 어린 박금란이라는 이름의 소녀입니다.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사촌 여동생이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제가 객지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서울로 올라올 때 동생도 같이 와서 무학여고를 다녔는데 곱사병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촌 여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습니다. 고은별 | 작품 속의 주인공이 바로 그 소녀일 수도 있겠네요. 박항률 | 어떤 그림에서는 나오지요. 두 번째는 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에요. 대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제게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고은별 | 명상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시는데…. 박항률 |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데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리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습니다. 도화녀와 비형랑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신라 진지왕이 길을 걸어가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름다운 도화녀을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왕이 도화녀를 유혹하지만 도화녀는 유부녀였기 때문에 왕의 청을 거절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던 진지왕은 도화녀에게 남편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를 그리워하다 왕이 먼저 죽게 되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 진지왕의 혼이 도화녀를 찾아와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며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로 도화녀가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 아기가 바로 비형랑입니다. 비형랑은 귀신을 잘 다룹니다. 고은별 | 진지왕이 도화녀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죽은 후에도 혼령이 되어 찾아왔을까요. 박항률 | 역사학자의 말에 의하면 비형랑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생사관이 담겨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회였다는 이야기지요. 만주에 가면 씨족수(氏族樹)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신단수(神壇樹) 개념이지요.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같은 큰 나무들이 있는데 발해에 가보니까 거기에도 있었어요. 그 마을의 나이 든 사람이 죽으면 새가 되어 씨족수 나무 위에 앉았다가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의 영혼 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고은별 | 정호승 시인의 시집과 동화책 항아리에 그림이 실리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박항률 | 91년 《비공간의 삶》이라는 첫 시집(詩集)을 낼 때, 펜화를 그려 넣었는데 그 시집을 보고 정호승 시인이 찾아 왔습니다.(화가는 세 권의 시집을 책장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고은별 | 그림을 그리면서 시도 쓰시고…. 박항률 | 시라고 할 수도 없지요. 고은별 | <네잎 클로버>라는 시가 있네요. 오랜 시간 고이고이 간직해 왔던 책갈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잊혀진 내 마음의 갈피 속에 앳된 가시내의 소맷자락 사이로 드러난 살빛 같은 살며시 입술을 대고 멈추고 싶은 네잎 클로버 박항률 | 그림 그리는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애초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화가가 되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성향이나 자기가 그릴 것을 이미 내면에 갖고 있는데 이것을 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도 너의 본성을 찾아라. 개성을 찾아라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릴 것을 자기 안에 갖고 있는 것이지요. 고은별 | 전업작가였다가 교수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박항률 | 작업실에서 자유롭게 있다가 학교에 나가니까 연구실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적응이 잘 안 되었지요. 이제는 좀 괜찮아졌습니다. 제자들이 많이 생겨서 나름대로 큰 보람을 느끼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대학에 오는데 저는 화가가 되는 것은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그려야 하고 매일 그려야 합니다. 붓을 하루도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현대 미술관 관장님이셨던 임영방 선생님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인데 네덜란드 작가 반. 리에는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했답니다. 창작이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의지와 힘이다. 지금까지도 그 뜻을 제 마음에 간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은별 | 처음부터 이렇게 고요한 그림을 그리셨나요? 박항률 | 40대 초반에 그림을 바꾸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표현적인 그림들이 많아 원색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조용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전시회를 할 때 길가던 사람이 무심코 들어와서 제 그림을 보고 그냥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은별 | 학창 시절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셨습니까? 박항률 |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를 좋아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보면 슬픔이 깊숙이 깔려 있습니다. 눈 안에 슬픔이 꽉 차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도 청색시대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청색을 좋아하고 청색으로 그림을 그리면 편안합니다. 고은별 | 서양화인데 소재나 주제가 동양적인, 우리의 정서가 담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박항률 | 서양화다 동양화다라고 나누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물감의 재질에 따라 구분이 되어야지요. 한국사람들이 그린 그림이니까 그냥 한국화라고 할 수 있지요. 고은별 | 그림 속 여인의 시선이 아래를 보거나 바깥쪽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동양적 겸손함이라고 할까 다소곳하고 공손한 태도가 느껴집니다. 박항률 | 인도에 갔을 때 어느 미술 평론가가 제 그림이 분명 어디를 보고 있는데 전부 바깥을 보고 있다고 하면서 인도 화가들의 그림은 그 인물이 그림 안쪽을 보는데 제 그림은 왜 전부 바깥쪽을 보고 있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바깥을 바라보면 그림이 더 커 보이고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을 했지요. 고은별 | 꽃과 새와 나무와…. 박항률 | 새를 많이 그렸고 그중에서도 머리 위의 새를 많이 그렸습니다.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다. 여행 자체를 좋아합니다. 92년에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 앞 광장에서 비둘기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사람 머리 위에 앉더라고요. 그 순간 저게 그림이다, 하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머리 위의 새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제 그림과 새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된 셈이지요. 94년에 몽골에 가서 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만주의 에웬키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영혼 상자를 만들어 나무를 깎아서 만든 새를 넣어 줍니다. 이 새의 영혼이 아기에게 들어간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 민족하고 새는 연관되는 것이 많습니다. 신라 금관에 비취가 걸려 있는데 이것을 새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무 위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의 왕관(王冠)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거슬러 올라가면 스키타이 민족까지 연관됩니다. 무덤에서 같은 형태의 왕관이 출토되었어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인면조(人面鳥)도 그렸는데 고구려 벽화에 딱 한군데 나옵니다. 불가(佛家)의 가릉빈가(迦陵頻伽 - 극락정토에 살고 있다는 새. 미녀의 얼굴 모습에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함.)는 부처님 곁에서 항상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다는 천상의 새입니다. 고은별 | 지금 행복하시지요? 박항률 | 한편으로는 행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은 취미로 그릴 때가 제일 좋습니다. 그림을 직업으로 그리다보면 싫어도 그려야 할 때가 있어요. 사실은 아마추어 화가들이 제일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네”라고 대답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화가 박항률은 마지막까지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소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지금 어디로 날아가려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파르르 날아 올라 새 생명으로 태어난 아기의 영혼 속으로 사르르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글 고은별 자유기고가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얼굴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얼굴

    장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두개다. 하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집값이 떨어진다며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이러한 사례를 전국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 문화체험·난방용 기름 무료 제공 그늘진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행사가 쌀쌀한 날씨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19일 전남 장성·강진·장흥군에 따르면 장성군은 지난 17일 생활이 어렵고 나들이가 힘든 장애인 100여명을 초청해 문화체험을 다녀왔다. 혼자서는 외출마저 어려운 이들은 경남 남해대교, 사천대교, 와룡산 백천사, 담양 죽물 박물관 등 단풍으로 물든 멋진 가을 세상을 둘러봤다. 여행에 나섰던 고은주(44·여·삼서면)씨는 “비장애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닐 수 있는 문화체험이지만 장애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용기를 내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농아인협회 강진군지부는 며칠전 홀로 사는 노인과 농아인 등 20여명에게 난방용 보일러 기름 1드럼(180ℓ)을 넣어 주고 군민회관으로 노인 700여명을 초청해 따뜻한 떡국을 대접했다. 여기에는 강진군청 공무원 동아리인 ‘수화사랑’ 회원인 오남희(37·여)씨 등 5명이 도우미로 참여했다. 또한 장흥군 종합사회복지관도 최근 사회복지관에서 관내 여성단체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사랑의 음식 나눔전을 갖고 수익금을 모았다. 회원들이 직접 조리한 떡국과 해물파전 판매전에는 군민 등 1000여명이 뜻을 같이했다. 수익금은 무의탁 노인 70여명에 대한 급식비와 난방비로, 심장판막증을 앓는 어린이의 수술비로 쓰인다.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15명의 노인들이 만든 한지공예와 뜨개질 작품의 판매금 110만원도 후원금으로 보태졌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집값 하락 우려 복지관 건립 반대 분당신시가지내 일부 지역 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이유로 장애인시설 건립을 반대해 시와 마찰을 빚고 있다. 성남시는 19일 분당구 야탑3동 1868평에 30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3층 연면적 5035평 규모의 ‘분당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2008년 4월 착공해 2010년 4월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시설에는 직업교육, 재활치료, 체육·편의시설 등이 마련되며 성남지역 장애인들이 이용한다. 시는 최근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복지관 건립예정부지 옆에 이미 가나안복지회관(장애인 작업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성은학교(장애인 학교)와 별도의 장애인 생활시설까지 있어 복지관마저 들어오면 장애인시설이 집단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는 장애인 시설은 같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주민들의 걱정은 집값 하락이 주요 원인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같은 이유로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들은 복지관보다는 일반체육시설을 건립해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중재안을 내놓고 있다. 시는 그러나 이미 1992년 분당지구단위계획에 의해 장애인시설 용지로 지정된 땅이기 때문에 타당성 조사용역 결과가 나오면 주민들을 다시 설득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장애인 시설 집단화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우려를 이해는 하지만 장애인 인구가 매년 크게 늘고 있어 복지관 건립을 늦출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얼굴

    장애인을 바라보는 두 얼굴

    그늘진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행사가 쌀쌀한 날씨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19일 전남 장성·강진·장흥군에 따르면 장성군은 지난 17일 생활이 어렵고 나들이가 힘든 장애인 100여명을 초청해 문화체험을 다녀왔다. 혼자서는 외출마저 어려운 이들은 경남 남해대교, 사천대교, 와룡산 백천사, 담양 죽물 박물관 등 단풍으로 물든 멋진 가을 세상을 둘러봤다. 여행에 나섰던 고은주(44·여·삼서면)씨는 “비장애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닐 수 있는 문화체험이지만 장애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용기를 내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농아인협회 강진군지부는 며칠전 홀로 사는 노인과 농아인 등 20여명에게 난방용 보일러 기름 1드럼(180ℓ)을 넣어 주고 군민회관으로 노인 700여명을 초청해 따뜻한 떡국을 대접했다. 여기에는 강진군청 공무원 동아리인 ‘수화사랑’ 회원인 오남희(37·여)씨 등 5명이 도우미로 참여했다. 장흥군 종합사회복지관도 최근 사회복지관에서 관내 여성단체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사랑의 음식 나눔전을 갖고 수익금을 모았다. 회원들이 직접 조리한 떡국과 해물파전 판매전에는 군민 등 1000여명이 뜻을 같이했다. 수익금은 무의탁 노인 70여명에 대한 급식비와 난방비로, 심장판막증을 앓는 어린이 수술비로 쓰인다.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15명의 노인들이 만든 한지공예와 뜨개질 작품의 판매금 110만원도 후원금으로 보태졌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장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두개다. 하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집값이 떨어진다며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 이다. 이러한 사례를 전국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 [종교건축 이야기] (16)‘천불천탑’의 야외 법당 화순 운주사

    [종교건축 이야기] (16)‘천불천탑’의 야외 법당 화순 운주사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인 운주사(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0·사적 312호)는 말 그대로 ‘신비의 땅’이다. 무등산 자락인 영귀산 아래 대초리·용강리 일대 길 옆이며 산자락에 수많은 불상과 불탑이 늘어서 있어 ‘천불천탑’사찰로 불리는 명소. 창건 시기나 가람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아 숱한 설화들이 전해지며 지금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횡행하고 있다. 번듯한 전각은커녕 사찰에선 반드시 갖춰야 할 천왕문·사천왕상조차 없는 파격의 절집. 전통의 양식에선 한참 비켜 선 채 불탑·불상의 야외전시장쯤으로 비쳐지지만 사찰 곳곳에 서린 민중의 소박한 염원이며 도공들의 애틋한 정성 때문에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사찰의 이름대로라면 ‘구름이 머물다 가는 절’. 먼 옛날부터 運舟,運柱,雲柱,雲住 등 다양하게 불려왔지만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전남대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雲住寺’라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확인되면서 ‘구름이 머물다 가는 절’이란 ‘雲住寺’가 일반화됐다. 여러 이름만큼 누가 어떤 이유로 세웠는지에 얽힌 이야기도 가지가지다. 인근 마을에 중국설화에 전하는 선녀 마고할미의 이름을 딴 폭포와 손가락자국, 지팡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고할머니 전설’, 신라 고승 운주화상이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창건했다는 이야기, 미래불 미륵의 혁명사상을 믿는 천민과 노비들이 모여 세웠다는 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선국사 창건설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한반도를 배의 형국으로 보고 동쪽엔 산이 많지만 서쪽엔 산이 없어 나라의 운세가 일본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의 명치 부분인 운주사를 조성해 균형을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한낱 ‘설’일 뿐 역사적 근거가 없다. 중종25년(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홍언필 편찬) ‘능성현조’의 “사찰 좌우 산등성이에 천불천탑과 석조 불감이 있는 운주사가 있다.”는 기록과 전남대박물관이 발굴한 암막새 기와와 ‘옴마니반메훔-밀교사원’이라 새겨진 수막새기와 등에 ‘운주사´란 이름이 등장한다. 이것 말고도 ‘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 사찰지 ‘범우고’,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에도 이름이 들어있지만 모두 “천불천탑이 있다.”“폐사되었다.”는 정도의 단순한 내용이 고작이다. 학계에선 불상과 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대체로 11세기에 창건,12세기에 천불천탑이 조성됐고 13세기에 백제탑 등 다른 석탑이 추가 제작됐으며 정유재란 때 폐사된 것으로 본다.1942년까지 사찰 안팎에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있었으나 지금 남아있는 것은 석불 70기와 석탑 12기가 전부. 하지만 최근까지도 곳곳에서 불상과 불탑의 조각과 흔적들이 발굴되고 있는 만큼 실제로 천불천탑이 있었을 것이란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평지와 야산 측면의 암벽 위아래에 무리지어 서있는 석불들은 대부분 큰 돌의 앞면만 조각한 평판상인데 기법이 아주 치졸하다. 정통적인 양식에선 한참 동떨어진 채 한결같이 못생겼다. 불상의 이목구비 생김새나 비례, 조형미가 엉성해 부처의 위엄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할머니 부처, 아빠엄마 부처, 아들딸 부처, 아기부처처럼 친숙한 우리 이웃들의 애환과, 구원을 바라는 민중의 표정을 사실적으로 다듬어내려 애쓴 석공들의 토속적인 심성엔 깊은 정이 절로 느껴진다. 고은 시인은 그래서인지 “지지리도 못나 말 한마디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56억 7000만년 후에 올 후천개벽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린 운주 천탑”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는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통한의 땅”으로 그려진다. 다른 고찰들에서 보이는 번듯한 전각도 찾아볼 수 없다. 도선국사가 사찰을 지을 당시 공사를 총지휘했다고 전해지는 공사바위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웅전이며 지장전, 산신각, 일주문은 모두 1990년대 이후 만들어진 것. 허술한 가람과는 달리 사찰 중심의 석조불감(보물 797호)과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 일주문 안쪽의 구층석탑(보물 796호)은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다. 이 가운데 석조불감은 판석으로 만든 감실 안에 두 개의 불상을 꽉 차게 봉안한 게 인상적이다. 불상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은 형식인데 사찰 한가운데 본존을 모신 것으로 보아 바로 이곳이 야외법당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석조불감 바로 북편의 원형다층석탑도 이색적이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을 모두 원반형으로 꾸민 이 석탑은 6층이 남아있지만 전통적으로 홀수 탑을 세웠던 것으로 미루어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층석탑은 운주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탑. 큰 자연석 기단 위에 9층을 올렸는데 탑신의 각 면에 새긴 마름모꼴이나 그 안의 꽃문양은 이곳에서만 보여지는 특이한 것이다. kimus@seoul.co.kr ■ 무게 250t 자연석에 새긴 세계유일의 석조 ‘부부와불’ 운주사의 석불·석탑들을 만드는 데 썼던 응회암 채석장이 있는 서쪽 야산 정상엔 세계 유일의 거대한 돌(石) 와불이 있다. 신도들이 탑돌이하듯 이 와불 주위를 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운주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적이다. 부처님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형태의 일반적인 열반상과는 달리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길이 12.7m, 무게 150t 추정)과 선 모습의 석가모니불 입상(길이 10.26m, 무게 100t 추정)이 자연석에 나란히 조각된 형태. 두 불상이 나란히 누웠다 해서 ‘부부와불’로 통한다. 도선국사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천불 천탑을 하루 낮밤에 세운 뒤 맨 마지막에 두 부처를 세우려 했으나 공사 말미에 일을 싫어한 동자승이 일부러 “꼬끼오” 닭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와불로 남게 됐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와불 바로 아래엔 그 동자승이 벌을 받아 시위불(머슴미륵)로 변했다는 석불입상이 서있어 전설에 흥미를 더한다. 와불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말이 떠돌았으며 일제강점기에 이 속설을 믿은 일본인들이 불상을 훼손했다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석불의 북쪽 다리 부분이 남향의 머리 부분에 비해 5도가량 경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상·입상 다리 부분과 좌상·입상 사이에 떼어내려 했던 흔적처럼 보이는 틈도 있다. 결국 산 꼭대기에 있던 암반에 불상을 조각하긴 했지만 떼어내지 못한 ‘미완성 불상’으로 보여진다. 전문가들은 “일으켜 세울 수 없는 돌부처를 암반에 조각했을 리 없고,250t은 충분히 됨 직한 거대한 석불들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작정으로 암반에 조각했는 지를 고려할 때 설계 잘못으로 인한 공사중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 [인터뷰] 김병규 동화작가

    [인터뷰] 김병규 동화작가

    글 고은별 자유기고가 김병규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그 다음 날, 나는 밝고 경쾌한 기분으로 약속 장소인 송현 클럽으로 갔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여 근처 꽃집에서 작고 예쁜 꽃이 서너 송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화분을 하나 샀다. 어제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왠지 꽃이 피어 있는 예쁜 화분을 하나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망이 좋은 송현클럽에서 밖을 내다보니 가까이에 경복궁이, 멀리 청와대가 보이고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바람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푸드득 까치가 날아가고…. 늘 아래에서 내 머리 위를 날아가는 까치를 올려다보았는데 오늘은 내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치의 날개짓이 사뭇 달라 보였다.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멀리서 파르르 움직이며 이리저리 나불나불 날아 다녔다. 자세히 바라보니 나비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십오분 넘게 기다렸을까 작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전화를 받았을 때의 첫 느낌 그대로 그의 얼굴 표정은 투명하게 맑고 밝았다. 고은별 | 제가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할 때 선생님처럼 흔쾌하고 기쁘게 승낙하시면서 오늘이요 내일이요. 그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전해주신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김병규 | 전화를 받을 때는 좀 밝게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밝게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지요. 특히, 아는 사람이 전화를 했을 때 제 목소리가 밝으면 받는 사람도 기쁠 수 있으니까요. 고은별 | 어느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고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열려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5년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이후 《소년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하셨는데 지금은 기자라는 느낌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주는 동화를 쓰는 작가시잖아요. 한 사람이 어떻게 서로 다른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병규 |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은 어린이와 관계가 있지요. 어린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어린이 신문 기자였고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으니까요. 고은별 | 동화를 쓰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병규 | 좋은 동화를 쓰려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지요. 고은별 | 그럼 선생님도 인생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셨나요? 김병규 | 많이 만났지요. 저는 사람 복, 인복(人福)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요. 고은별 | 선생님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신지요. 김병규 | 전(前) 색동회 회장이었던 김수남 선생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돌아가신 지 9년이 되었네요. 직장 상사였는데 회사 밖에서는 형님 같은 분이었어요. 그분이 누굴 만날 때면 저를 늘 데리고 다니셨어요. 옆자리에 저를 앉혀 놓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느끼면서 깨닫도록 해주신 분이셨지요. 저도 그분처럼 후배들을 아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채봉 선생도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친하게 되었지요. 고은별 |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김병규 | 무엇인가를 자세히 바라보고 관찰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 꿈과 작은 꿈을 같이 꾸면서 살아가면 좋을 것 같고요. 어떤 경우에는 작은 꿈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요. 내 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아주 뛰어난 작가가 되는 것은 타고난 어떤 것이 있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서 쓰다 보면 자기 속에 있는 재능을 스스로 계발하고 자기도 모르고 있던 숨어 있는 재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70년대 초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할 때 어린이들과 생활하다 보니까 어떤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저것을 동화로 한번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글이 써지면 신춘문예에 보냈습니다.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알아보고 당선된 사람의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다시 새롭게 공부를 했습니다. 처음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고 꼭 십 년 만인 78년에 <춤추는 눈사람>으로 당선이 됐습니다. 그 10년 동안 떨어지면서 공부하고 떨어지면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동화를 썼습니다. 독학으로 공부한 셈이지요. 고은별 | 끈기와 의지요, 부단히 노력한 결과네요 김병규 | 동화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저는 한 편의 동화를 끝내면 큰 기쁨을 느낍니다. 나이 들수록 더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세상에 고통과 힘든 일이 많지만 즐겁고 희망적인 것도 많거든요. 희망이라는 것이 꼭 편하게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땀을 흘리는 그 순간에 가족을 생각하며 내가 이 일을 해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행복을 느끼는 것이거든요. 이런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을 동화에서 전해줄 수 있다면 좋은 동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거나 사물을 볼 때 큰 것을 작게 볼 수 있고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꽃 속에 있는 어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크게 드러내어 볼 수 있어야 하고 생활 속의 고통이나 흉이나 흠이 있을 때 아아, 그것은 내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적게 줄여 줄 수도 있잖아요. 동화작가는 사회 속에서 생활 속에서 생각 속에서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찾아서 드러내 보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고은별 |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 어떤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요. 김병규 | 몇 년 전에 전라도 광주 백양사에 갔는데 석다정이라는 스님이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저보고 처사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동화를 씁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음, 그렇지 표정이 좀 밝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고은별 | 《소년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하셨지요? 김병규 | 78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는데 김수남 편집국장님이 제 동화를 좋게 보셨는지 저에게 일을 같이 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는데 당신은 지금 한 학급에 50명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데 《소년한국일보》에서 십만 명이 넘는 학급을 데리고 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저를 설득하셨고 그분의 권고대로 서울로 올라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은별 | 동화작가 김병규는 눈물이라는 자양분으로 꽃이라는 희망을 피어내어 사랑이라는 향기를 퍼트려온 참다운 동화작가다. 표현한 글을 읽었습니다. 김병규 | 제가 쓴 동화 중에 울 줄 아는 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늘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꽃도 울고 또 울 줄 알아야 진짜 꽃이라는 내용의 동화입니다. 그래서 눈물이나 희망,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셨나 봅니다. 저에게는 과찬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고은별 | 우리나라 동화의 초기 작품들과 현대 동화 작가들의 작품이 상당히 다르지요? 김병규 | 초기는 방정환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일제시대였지요. 동화 속에 문학작품과는 동떨어지게 의도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 활동한 작가 강소천, 마해송 같은 분들은 민족의 비극 자체를 이야기하기 보다 반공적인 내용의 글을 많이 썼습니다. 시대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 60~70년 대까지는 동화작가들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80년 대에 들어와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젊고 개성있는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문학과 동심이 같이 어우러지는 동화, 문학성이 있는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동화가 많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고은별 | 동화에서 문학성을 이야기한다면…. 김병규 |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수기 비슷한 쪽으로 가면 그것은 사실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거든요. 문학으로 승화가 되어야만 작품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문학은 허구잖아요. 현실에서 소재를 따오더라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쳐야 문학작품이 됩니다. 그래야 진실이 주는 감동으로 바뀝니다. 진실이 주는 감동일 때 공감의 폭이 넓어지지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 동화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세계화라고 해서 우리만의 정서, 우리 고유의 것을 배제한 것이 세계화된 작품이라고 착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살아 있으면서 세계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은별 |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서정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김병규 | 자연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요.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말로나 어떤 영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연과 사람 속에서 살아온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아야 합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어야 바람직하지요. 행복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저는 89점짜리 행복, 그 만큼의 삶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은 90점, 100점을 살려고 하고 최소한 90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왜 제가 1점을 빼고 80점대로 내렸냐하면 그래야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넉넉해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딱 90을 채우기 위해 1% 때문에 아닥바닥하고 89점도 다 된 것인데 90점이 안 됐다고 못 이루는 것이라 생각해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기 보다는 80점대로 내려놓고 80점대 중에는 최대로 노력을 기울여 89점이 되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은별 | 아아, 그것이 선생님께서 행복하게 살고 계신 비결이군요. 김병규 | 앞으로도 계속 좋은 동화를 쓰고 싶습니다. 동화를 쓸 수 없는 나이가 되면 고향에 가서 자연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월간 <삶과꿈> 2006.10 구독문의:02-319-3791
  • 학사꿈 이룬 윤정희(尹靜姬)

    학사꿈 이룬 윤정희(尹靜姬)

    문학사(文學士) 윤정희(尹靜姬). 2월 27일 우석대학교(友石大學校) 문리과 대학(文理科大學) 사학과(史學科)를 졸업한 스타 윤정희양 (본명 손미자(孫美子))은 꽃다발과 졸업장을 안은채 어머니 朴「헤레나」 여사의 품에 안겨들었다. 『저의 두번째 소망이 이뤄졌어요』 떨리듯 감회서린 목소리가 尹양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까만 「가운」에 학사모를 쓴 윤정희(尹靜姬)양 모습은 이 날 따라 유달리 예뻐 보였다. 수많은 졸업생 속에서 유달리 환하게 돋보이는 얼굴. 화장기가 거의 없는대로 청초하고 맑은 자태가 과연 「스타」 다 싶다. 이런 차림은 尹양이 몇번인가 「스크린」 속의 꿈이 현실로 옮겨진 실증일까? 영화속에서 미리 해둔 예행연습 때문인지 윤양의 차림새나 동작은 조금도 어색치 않아서 좋았다. 뿐만 아니다. 윤양은 같은 과의 졸업생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스타」라는 선입관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이것은 이름만 걸어놓고 졸업장이나 받으러 가는 다른 배우학생들의 경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겹치기 출연에 바쁜 윤정희(尹靜姬)가 어느 틈에 학교생활에 익숙할 겨를이 있었던가? 그녀는 말했다. 『촬영도중에라도 필요한 강의는 꼭 들었어요. 시험도 빼지 않고 다 치뤘고. 학점은 다 땄지만 성적은 시원치 않다나요』 「노트」 필기는 주로 「클라스·메이트」朴모양과 金모양의 협조를 받았다는 얘기. 전남여고(全南女高)를 나온 윤정희(尹靜姬)는 68년 우석대(友石大)3학년에 편입학했다. 여고를 나온 뒤 조선대학교(朝鮮大學校) 영문과(英文科)에 입학했지만 가정사정으로 중퇴(中退). 그때만 해도 『까만「가운」에 학사모를 쓰는게 가장 정실한 소망이었어요』 이 「가장 절실한 소망」이 두번째의 소망으로 후퇴한 것은 3년전 그녀가 「스타돔」 에의 발돋움을 시작하면서다. 윤양은 66년 합동(合同)영화사가 실시한 신인배우 현상모집에서 유일의 당선자로 뽑혔고 「데뷔」작 『청춘극장(靑春劇場)』은 67년 신정 「프로」에서 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 뒤 전속사와의 의견대립으로 윤양은 5,6개월간 작품을 못 잡고 당황하던 때가 있었다. 그보다 앞서 나온 문희(文姬), 남정임(南貞姙), 고은아(高銀兒) 세 신인 「스타」의 인기가 날로 충천하고 있을 무렵. 어떻게 보면 윤정희(尹靜姬)가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없을 것 같은 형편이었다. 「스타」가 될 것이냐, 못될 것이냐, 이런 고민을 뚫고 불과 2년만에 윤정희(尹靜姬)는 정상의 「스타」가 됐다. 「톱·스타」가 된다는 가장 큰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제2단계의 소망인 학사모를 마침내 쓰게 된 것. 차곡차곡 뜻을 이뤄 나가는 알토란 같은 아가씨다. 얼마전 각 신문은 윤정희(尹靜姬)혼자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대학원(大學院)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학교 당국자는 윤정희(尹靜姬)의 입학이 「보아줘서」가 아니고 당당한 실력대결이었다고 보장했다. 『특히 영어성적이 퍽 좋았다』는 것. 전남여고(全南女高)의 우등생이었다는 그녀는 『여고때의 기초가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의 졸업식에는 윤정희(尹靜姬)의 다섯 동생, 3男2女가 모두 모여 윤정희(尹靜姬) 6남매(男妹)의 우애를 자랑했다. 큰 동생 미애(美愛)양은 올해 숙대(淑大) 음악과를 졸업했고 21세짜리 남동생은 경기고(京機高)를 나와 서울大에 입학했다. 세째 동생(19)은 중앙고교(中央高校)에, 네째 동생(13)은 배문중(培文中)에, 그리고 막내동생(7)은 경희(慶熙)국민학교에 입학. 이들의 학비만도 月10여만원. 어머니 박여사가 이를 위해 통닭집 「姬의집」 을 경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맏딸인 윤정희(尹靜姬)양의 수입이 원천을 이룬다. 윤양의 세번째 소망은 『동생들이 모두 훌륭하게 되는 것』이라고. [선데이서울 70년 3월 8일호 제3권 10호 통권 제 75호]
  • 야만시대의 기록/박원순 지음

    시인 고은은 “고문을 당해보면 인간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고문이 일상화된 시대를 경험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쓴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 펴냄)은 우리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고문을 통사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고문에 대한 사회학적 의미 등을 설명한 1권, 일제강점기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고문의 사례를 다룬 2권, 전두환 정권에서 현재까지의 고문을 다룬 3권으로 이뤄졌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의 고문의 형태와 양상은 전적으로 일제에 의해 개발되고 전승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일제 고등계 출신 형사와 헌병들이 그대로 새 정부의 경찰과 군이 돼 사찰기관을 장악했다는 관점이다.1948년 일제의 고문형사로 악명을 날린 노덕술과 관련된 ‘수도청 고문치사사건’,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각권 2만 5000∼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국문학 유럽서 뿌리 내린다

    한국문학이 유럽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 유럽 각지에 소개돼 평단의 호평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지만 최근 들어 평론가의 관심은 물론 일반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며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프랑스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승우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다. 지난 8월말 프랑스 줄마출판사에서 출간한 ‘식물들의 사생활’은 한국소설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한달 만에 초판 2500부가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2000년 ‘생의 이면’을 통해 이미 프랑스 문단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이승우의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일간지 ‘르 피가로’와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등 언론매체에서 앞다퉈 기사를 다뤘고, 이어 프랑스 최대 서점체인망인 프낙의 ‘가장 주목받는 신간 외국소설 10권’과 또다른 대형서점 버진의 ‘가을 신간 권장도서목록 30권’에 선정됐다. 번역을 지원한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은 “프랑스에서는 바캉스 시즌이 끝난 가을에 신간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데 올 가을 680여종의 신간 중에 이승우의 소설이 주목받았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줄마출판사측도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이승우 특유의 지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세계가 프랑스 독자들의 성향과 잘 맞았다는 분석이다.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독자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이승우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진정한 세계화에 장밋빛 기대를 걸게 하는 사례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스웨덴 최대 일간지 ‘다켄스 니헤테르’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문화면에 대서특필하며 큰 관심을 드러냈다.‘한국전쟁의 그늘 아래’라는 제목으로 실린 서평은 “한국전쟁과 1950년대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다룬 작품임에도 모든 전쟁에 내재된 무감각한 증오 및 문화적 억압 그리고 전쟁 속에서 성숙해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외에 번역·출간된 한국문학 작품은 세계 45개국, 총 1220여종. 작가별로는 고은 시인의 작품집이 8개국에서 16종이 소개됐고, 황석영 7개국 23종, 이문열 12개국 31종, 이청준 10개국 28종 등이다. 곽효환 팀장은 “한국문학이 세계 각국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이중 재판을 찍는 경우는 10권에 1권 정도”라며 “작가 선호도가 나라별로 다른 만큼 명확한 타깃마케팅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문화교류 차원을 넘어 세계 문학시장에서 우리 문학의 상품가치를 높이기위한 지원책도 적극 모색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프랑스 파리, 스웨덴 스톡홀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등지에서 문학행사와 출판지원 조인식, 해외독후감 대회 시상식 등을 가졌다. 소설가 김훈, 은희경, 윤흥길, 황석영, 김인숙, 시인 김선우, 평론가 신수정 등이 참여했다. 번역원은 특히 내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해외독후감대회를 확대할 방침이다. 윤부한 팀장은 “전세계 12곳의 한국문화원을 통해 독후감대회를 열어 현지 평론가와 독자 모두에게 우리 문학을 좀더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새영화] ‘잔혹한 출근’

    주식투자로 가진 돈을 몽땅 다 털린 실직 가장. 이 모든 사실을 가족들에게 감쪽같이 속여온 남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 급기야 여고생을 유괴한다. 유괴범 딱지를 붙인 것보다 기가 막힌 건 오히려 그 다음이다. 여고생의 몸값을 받아내기도 전에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딸이 유괴된다. 새달 2일 개봉하는 ‘잔혹한 출근’(제작 게이트픽쳐스)의 이야기 얼개는 이의를 달지 못하게 기발하다. 유괴범이 자신의 딸을 유괴당해 벌이는 해프닝이라면 드라마 전복의 묘미만도 기준치 이상은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충무로가 인정한 애드리브 스타 김수로가 주연했다면 기대치는 더 솟을 수밖에. 그러나 영화는 기대감의 수위를 ‘대략난감’으로 꺾어내린다. 유괴 소재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영화는 김수로에게 끊임없이 코미디를 요구하는 반면, 정작 그는 희극배우의 전력을 털어버리려 안간힘을 쓰는 듯한 불균형이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배우와 영화의 목적의식이 엇박자를 타는 어정쩡한 코믹 서스펜스물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채 이자에 허덕이는 동변상련으로 가까워진 두 남자 동철(김수로)과 만호(이선균)가 어린 여자아이를 유괴했으나 아이의 부모가 협박전화를 받지 않는 바람에 첫 작전은 실패한다. 다시 여고생(고은아)을 납치했지만, 난데없이 동철의 딸이 유괴당해 일이 엉뚱하게 꼬여간다. 이중유괴라는 희소성 높은 소재를 내세운 영화는 스릴러물 치고는 비교적 단순한 인물구도를 택했다. 경찰에 쫓기는 두 남자, 이들을 뒤쫓는 사채업자(김병옥), 뒤늦게 진한 부성애를 드러내는 유괴된 여고생의 부자 아빠(오광록)가 그들. 실업문제가 빚은 사회적 부조리를 에둘러 고발하려는 여유는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다. 하지만 ‘김수로 표 코미디’에 연연하는 전반부와 유괴범과 경찰, 사채업자의 쫓고 쫓기는 과정에 집중한 후반부는 따로국밥이다. 코미디와 스릴러가 유기적으로 고리를 엮지 못하는 요령부득의 한계를 빤히 드러낸다. 기자시사회 무대인사에서 김수로는 “내가 추구한 코미디”라고 자신있게 영화를 소개했다. 주특기인 애드리브를 최대한 차분히 구사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긴 했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다는 코미디의 정체는 영화 속에서 끝내 오리무중이다. 김태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고은 올 ‘시카다상’ 수상자로

    고은 시인이 동아시아 시인들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시카다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해리 마틴슨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4년 제정된 이 상의 이름은 마틴슨의 시집 제목인 ‘시카다’(`매미´란 뜻)를 본떠 지어졌다. 수상자는 상금 2만크로나(약 300만원)와 스웨덴 예술가가 만든 도자 공예품을 부상으로 받는다. 시상식은 11월 말 주한스웨덴 대사관에서 열린다.
  • 터키 파묵 ‘노벨 문학상’

    ‘내 이름은 빨강’‘눈’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54)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력 후보로 꼽혔던 고은 시인은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2일 “(파묵이)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화간 충돌과 얽힘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부터 유력후보로 거론돼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예측불허였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파묵의 수상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사건 때문이다. 당시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영국 일간지에 매우 이례적인 보도가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한 명의 유력후보를 두고 심각한 의견대립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언급된 작가가 바로 오르한 파묵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파묵은 고배를 마신 지 1년 만에 노벨문학상을 되찾아온 것이다. 파묵은 1952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명문 로버트 칼리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스탄불 대학에서 건축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물세살때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그만뒀다. 1982년 첫번째 소설 ‘제브뎃씨와 그의 아들들’로 터키의 대표적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으로 마다라르 소설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하얀성’‘흑서’‘새로운 인생’‘눈’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하얀 성’부터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동양에 샛별이 떠올랐다.’고 극찬했다.‘내이름은 빨강’은 전세계 32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유수 문학상을 휩쓸었다. 타임지는 올해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현실 문제에도 적극 참여 문학적 성과와 더불어 정치사회적인 발언도 고려하는 노벨문학상의 성향은 올해 수상자인 파묵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파묵 역시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해 스위스 신문과의 회견에서 터키가 90년 전에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한 것과 지난 20년간 분리독립 운동을 벌여온 쿠르드인 3만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에 대해 비판했다가 국가모독죄 혐의로 기소됐다.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해 그의 수상여부를 두고 의견대립을 벌인 이유도 터키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서라는 지적이 높다. 파묵의 혐의는 올초 이스탄불의 시슬리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파묵은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매혹적인 서사구조 안에 풀어놓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견지하고 있다.‘내 이름은 빨강’이나 ‘눈’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 충돌이라는 터키의 당면 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파묵은 지난해 5월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 “이모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며 남다른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파묵은 “나는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적이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이나 종교, 문화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라는 신념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노벨문학상 상금은 1000만 스웨덴 크로네(미화 140만달러)이며, 시상식은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르한 파묵 ▲ 1952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 1982년 첫 소설 ‘제브뎃과 아들들’로 오르한 케말소설상 수상 ▲ 1984년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 수상. 프랑스 ‘유럽 발견상’수상 ▲ 1985년 ‘하얀 성’발표. ▲ 1985∼88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 1994년 ‘새로운 인생’ 발표 ▲ 1998년 ‘내 이름은 빨강’ 발표.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아일랜드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수상 ▲ 2002년 ‘눈’ 발표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불현듯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언어가 없는 인간세상을 말이다. 우선 ‘사랑한다’고 못하겠지. 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엉뚱한 싸움판도 벌어지겠지. 이래저래 오해와 진실이 마구 뒤엉켜 결국은 멸망?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자들에 따르면 6000여개는 족히 넘는다. 또 2주에 걸쳐 하나씩 소멸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생태계 또는 작은 부족의 멸종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의 상처와 영혼을 켜켜이 담으며 살아온 우리 언어. 남북 분단 60여년, 겨레의 언어 역시 그 세월만큼 간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쪽에서 사용하는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으로,‘도넛’을 ‘가락지빵’으로,‘반딧불이’를 ‘에디벌레’로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또 계산기 하면 남쪽에서는 전자계산기를 연상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국수’ 등으로 사용하며, 전문·학술용어의 경우 그 차이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만약 남북 의사가 같이 수술대에 있다면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함경도의 방언까지 몽땅 비교한다면?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1970년대초였다.7·4 공동 성명과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6·25이후 남북 당국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남측 요원이 회담장에서 서비스를 하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접대부로 불러주세요.”라고 당황케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언어차이를 처음으로 실감케 한 사례였다. ●겨레말은 남한 표준어·북한 문화어·방언 합친 말 1989년 3월이었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언어의 이질감을 얘기하면서 ‘통일대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했다. 이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4년 12월 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만나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 지난해 2월 편찬위 1차정기회의(금강산)를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가졌고 오는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 즉 ‘겨레말큰사전’을 펴내기로 했다.‘겨레말’은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남북의 방언을 합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측과 북측은 각각 방언조사 등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73) 시인을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편찬사업회 사무실. 지난달 말 제7차 편찬위 평양회의에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그는 “현재 ‘ㄱ’과 ‘ㄴ’ 부분을 끝냈다면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ㄱ’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말이 6만 9000여개에 달했단다. 남쪽은 10여군데에 대한 방언조사를 끝냈고 북측도 다섯군데를 조사해 서로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우리말은 세계 10위권 유지하는 민족어 남과 북에서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50만 9000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 어휘)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10만개를 새로 추가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된 호복이(전북지방, 흠씬 익도록 삶거나 끓이는 모양), 큰아베(경북, 할아버지), 쪼시락허다(전남, 하찮다) 등이 될 수 있다. “언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멸 또는 변질되지요. 우리 근대사 이후 겨레 언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연해주, 중앙아시아, 만주 일대는 물론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가지고 간 언어도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얼마전 사할린 징용자 위령제에 다녀왔다.”면서 30년대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약 15만명이 이주했는데 현재는 3만명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순수 언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과 북 각 지역의 방언과 향토어 속에 우리 말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된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우리 겨레말을 집대성하는 일이며, 우리 후손들이 만나야 할 ‘대사전’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때문에 2012년 이후에도 계속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은 학자나 교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에서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문자입니다.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프랑스어보다 많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갑니다. 러시아어도 푸슈킨 이후 주목을 받았고 독일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우리말도 근대문학 이후 표현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의 양반들은 주로 한문 중심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에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활발한 신문학 운동은 모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대국어들이 횡행하는 오늘날에 우리말이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된 것도 대단한 민족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이런 우리글이 다음 세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인터넷상에 계속 퍼지는 언어와 영어 등의 영향으로 우리 언어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 큰사전을 통해 방향타를 잡고 또 자국어 보존을 위한 정책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말이란 한 시대가 지나면 사라진다.6·25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고대시와 지금이 다르듯이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이 나중에 고어로 남게 되고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소멸된다고 했다. ●남북, 문화행위로써 우선 동질성 회복해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당시 세종대왕은 몽골과 여진 지역에도 학자를 파견했다. 또 티베트어 연구는 물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하는 승려도 참여시키는 등 세계적 언어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 가면 당시 사신이 다녀갔다는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는 얘기를 몽골학자한테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세종은 여진과 말갈족들을 끌어들이는 등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함경도 지방에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단다. “아마 당시 한글창제 작업은 중국 몰래 했겠지요. 한자(漢字)와 다른 문자를 따로 만든다는 것은 천자(天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표도 조심스럽게, 즉 보다 쉽게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는 식으로 중국을 달랬지요. 또 비로소 한자 지배의 구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민중문자와 민족언어를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겨레말 편찬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고 이사장. 세상에 놀러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남북은 정치·군사적 문제만이 아닌 먼저 문화행위로써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며들다 보면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겨레말에 의탁하여 살아온 지난 역정을 바쳐 ‘이젠 죽을 수 있다. 이제 죽어도 된다.’라는 몇년 뒤의 궁극적 감회를 예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km@seoul.co.kr ■ 고은이 걸어온 길 ▲1933년 군산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고 중퇴 ▲52년 입산,10년간 승려생활(법명 일초) ▲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 발표로 등단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 ▲62년 환속, 재야 운동가로 활동 ▲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출간. 제1회 한국문학상 ▲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 연재 ▲89년 제3회 만해문학상 ▲90년 민족문학작가회장 ▲99년 미 하버드대 연구교수. 버클리대 초빙교수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05년∼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 김창숙(金昌淑)양- 5분 데이트(68)

    김창숙(金昌淑)양- 5분 데이트(68)

    『4년전 고향인 경남 거창(居昌)에서 여고를 나온 뒤 죽 놀고 있다가 첫 취직한지 반년쯤 됐으니까 아주 초년생이지요』 「허스키」한 음성으로 사투리가 뚜렷한 말씨. 그 음악적인 느낌이 표준말에만 익숙한 사람의 귀에는 이국적(異國的)으로조차 들릴 것 같은 말씨다. 하얗게 피부색이 바래버리기 마련인 직장여성의 티가 얼굴에없다. 키가 166cm나 되는 대형(大型)미인이지만 이 초년생 아가씨는 충주비료 본사(本社)사원들간의 귀염동이. 무경험(無經驗)을 조금도 부끄러워 않고 무슨일이든 물어가면서 배운다. 6남매중 다섯째. 『6남매에 홀어머니신데 모두들 고향에 있고 전 서울 언니집에 있어요. 엄마가 담가서 보내주시는 청국장을 제일 좋아하고 잘 먹죠』 달리기와 농구에 소질이 있어서 여고때는 선수생활도 조금 했단다. 『요즘은「라디오」를 들으면서 수놓는게 취미예요.「스포츠」중계도 듣지만 주로 음악을 들어요. 경음악을 많이 듣죠』 영화배우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고은아. 『뜸직하고 맘씨 착하고 그런데도 곱게 생겼잖아요. 여성의 이상형일 거예요』 신랑은 키 큰 사람이라야 하겠단다. 『제가 키가 크니까 첫째 조건이 키예요. 제가 올려다 봐야지 내려다 봐서야 되겠어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8일호 제3권 6호 통권 제 71호]
  • [女談餘談] 가을 편지/이순녀 문화부 기자

    여름이 끝났나 했더니 요 며칠 늦 더위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선들 바람은 어느새 우리 곁에 바싹 다가선 가을을 느끼게 한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고, 발 아래 낙엽이 시나브로 쌓일 즈음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시작하는 ‘가을 편지’다.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흥얼거리다 보면 정말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가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였더라. 컴퓨터 앞에서 휘리릭 쓰는 이메일 말고 정말 편지다운 편지를 써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메일을 비롯해 메신저, 문자메시지가 일상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편지는 거의 사라진 듯하다. 기자 역시 컴퓨터에 익숙해진 후로 우표 붙여서 보내는 아날로그 편지는 고사하고, 이메일도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 말고 사색이 담기거나 정감어린 편지를 써본 적이 별로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놓고 괜히 각박해진 세상을 탓한다. 그래서일까.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들이 편지 쓰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새삼 반갑게 들린다. 서영은 김훈 이문재 하성란 등 소설가와 시인 28명으로 구성된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이 22일 밤 서울 홍익대 앞 한 음식점에서 발족식을 가졌다. 얼마 전 김다은 추계예대 교수가 펴낸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사신을 공개한 인연으로 모인 이들은 앞으로 편지 쓰기를 문화운동 차원으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란다. 연애편지에 이어 우정편지를 묶은 책도 조만간 내기로 했다. 작가들 사이에 불기 시작한 편지 쓰기 바람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처럼 주변 사람들을 두루 포섭해 편지 쓰는 즐거움과 받는 기쁨에 대한 잊혀진 기억들을 되살려주면 좋겠다. 이 가을, 단 한 통의 편지라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 써보는 건 어떨까.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대가 되어’내 편지를 받아줄 누구에게든 말이다. 이순녀 문화부 기자 coral@seoul.co.kr
  • 국민銀 ‘아시아 최고 은행’ 선정

    국민은행이 홍콩에서 발행되는 파이낸스 아시아(Finance Asia)지로부터 ‘아시아 최고은행(Best Bank in Asia)’으로 선정됐다고 15일 밝혔다. 파이낸스 아시아는 “신용카드 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국민은행의 역할과 빠르고 강한 시장 점유력을 고려해 아시아 최고 은행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스 아시아는 ROA(총자산수익률), 영업수익 및 자산규모, 수수료 수익률 등을 토대로 수상자를 선정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시인 고은의 시에 김민기씨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다. 선율을 모르는 채 그냥 읽어도 가을의 리듬이 완연히 느껴지는, 이 노래의 주인공 최양숙씨. 최양숙(崔良淑)은 본명이다.‘양(良)’자는 ‘좋다, 뛰어나다, 또는 아름답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숙(淑)’자는 ‘맑고 깊다, 혹은 정숙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주로 부른’ 가수였다. “그저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데 그 것도 쉽지 않아. 이름 석자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병원 같은 데서 이름이라도 불려질라치면 누가 보는 것 같아 아직도 불편해. 그저 잊혀져 조용히 늙고 싶은데 말이지.”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음악도로 국내 최초의 샹송가수라 일컬어지며 ‘황혼의 엘레지’ ‘모래 위의 발자국’ ‘초연’ ‘호반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꽃피우는 아이’ ‘세노야’ 등을 발표했던 최양숙은 샹송에 관한 한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창력이 뛰어났고 분위기 또한 매력적이었다. 37년 원산에서 태어난 최양숙은 경음악평론가이자 DJ로 활동하던 최경식씨의 동생. 원산 명석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1·4 후퇴 때 피란 내려와 부산에서 임시로 문을 열었던 무학여중에 들어간 뒤 환도 후 지금의 서울예고에 진학한다. 당시 노래 실력이 뛰어나 서울대 음대 주최 전국콩쿠르서 ‘시인’을 불러 대상을 차지한 뒤 60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한 최양숙은 2학년 때 중앙방송국(현 KBS) 합창단원으로 입단해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가 솔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이 무렵, 지휘자 이남수의 인솔로 해병대 의장대원들과 함께 한국예술사절단의 일원으로 해외 공연을 떠나던 해군함정 LST 안에서였다. 여흥시간 중 게임에 져 벌칙을 받아야 했던 그녀가 부른 노래는 샹송 ‘고엽’, 이어 앙코르 요청에 의해 부른 노래가 ‘자니 기타’였다. 망망대해 선상에서 반주 없이 부른 이 노래로 함께 동행했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당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았음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다음 해, 그녀는 솔로로 마이크 앞에 서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대학 3학년 때였다. 무대에 나서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음악부장이 찾아와 지금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녹음 중인데 그 주제가를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처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그냥 연습 삼아 불러보자는 말에 악보를 받아 쥐고 마이크 앞에 섰다. 당시 최양숙은 이 노래가 실제로 녹음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첫 방송되는 드라마에 자신의 노래가 주제가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 드라마 제목이 ‘어느 하늘 아래서(한운사 극본)’이다. 이 주제가는 후에 한명숙씨에 의해 ‘눈이 나리는데’라는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이 드라마는 당시 HLKA 라디오 연속극에 이어 이후 64년도 말부터 동양 TV(D-TV, 채널 7)에서 최초의 TV 일일드라마로 리바이벌, 제작되기도 했다. 이 때 드라마 제목은 ‘눈이 나리는데(황운진 연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노래가 연속극 주제가로 방송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학장실에 불려간다. 그리고 당시 학장이었던 작곡가 현제명씨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추궁을 당한다. 특히 노래 중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라는 후렴구의 고음 부분에서 최양숙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계속) sachilo@empal.com
  • [만난다] SBS드라마 ‘사랑과 야망’ 막내딸 선희역 이유리

    [만난다] SBS드라마 ‘사랑과 야망’ 막내딸 선희역 이유리

    “10개월 전에는 20살이었는데 지금은 37살이고요, 앞으로 60대까지 ‘선희’로 열심히 살아갈 거예요.” 시청률 30%에 육박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주말드라마 ‘사랑과 야망’(감독 곽영범·극본 김수현)에서 막내딸 ‘박선희’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배우 이유리(24)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실제 나이보다 10여살이나 많은,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며느리 역할을 연기하면서 실제로도 그렇게 변한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사랑과 야망’ 촬영이 한창인 SBS 탄현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녀는 “제가 진짜로 나이 들고 촌스러워 보이나요.”라고 물으며 환하게 웃었다. “실제 경험하지 못한 결혼과 육아, 시집살이, 남편의 바람(?) 등을 겪으면서 처음 하는 연기라 힘들 때가 많아요. 김수현 선생님의 대본이 워낙 엄격해서,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한때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다행히 같이 출연하는 이경실 선배님이나 극중 시어머니, 남편 등이 많이 가르쳐 주셔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특히 ‘여보’‘우리 그이’ 등 호칭도 어색하고, 나이를 먹는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김수현 작가가 총애하는 배우’라는 평에 대해서는 “과분하다.”면서 “여전히 많이 혼나고 선생님 앞에서 대본연습할 때마다 떨린다.”며 수줍어했다. 그녀가 연기하는 선희는 1960년부터 90년대까지 그려지는 방앗간 집안의 3남매 중 인정 많은 막내딸로, 소아마비를 앓다가 수술을 받은 뒤 큰오빠 친구와 결혼하고, 미용실을 차려 운영하는 외유내강형 여성이다. 이슬처럼 맑고 이해심도 많아 슬픔을 속으로 삭일 줄 아는 지혜도 있다. 따뜻한 남자 홍조(전노민 분)와 결혼한 뒤 그를 믿고 의지하지만 그가 미자(한고은 분)에 마음이 있음을 알고 아파한다. “남편의 마음이 흔들리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어요. 의심하고 울기도 하지만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가정을 지켜나가게 돼요. 무조건 착하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자존심도 강한 캐릭터입니다.” 그동안 발랄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이미지 변신도 힘들었지만 분장만 하면 어느새 선희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선희를 닮아가면서 미리 인생공부를 하는 느낌이에요. 극중 50∼60대가 되면 엄마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 홍조 역의 전노민과 호흡이 잘 맞아 ‘잉꼬부부’ 연기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했다.“서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제가 까마득한 후배인데도 ‘색시야∼’라며 따뜻하게 챙겨주셔서 너무 좋아요. 전 선배님의 부인이신 김보연 선배님도 촬영장을 찾아 ‘서로 잘 어울린다.’며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셔서 감사하죠.”또 극중 ‘호랑이’ 시어머니(박준금 분)와는 평소에는 엄마와 딸처럼 지낸다며 자랑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드라마도 오케스트라처럼 한명이라도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김수현 선생님의 말씀대로 캐릭터 모두가 살아있고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각각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줄 거예요.” “연기자로서 이제 시작이고, 쫓아가기 바쁘다.”면서도 “이번 작품을 하고 나면 조금 컸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욕을 보였다. 앞으로 연극 모노드라마나 영화도 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연말까지는 선희로 살아갈 예정이다.“선희와 점점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선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SBS 제공
  • 문화유산들 개발에 밀려 ‘신음’

    문화유산들 개발에 밀려 ‘신음’

    전국 곳곳에서 개발·확장 등으로 인해 소중한 문화유산이 멍들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녹색회는 천연기념물 제467호인 제주도 수산동굴이 풍력발전단지 공사로 붕괴되기 시작했다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13일 밝혔다. 녹색회는 “제주 난산리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됨으로써 공사지점에서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수산동굴의 붕괴 위험이 심각한 수준이며, 동굴 천장 위 도로를 지나다니는 건설중장비로 인해 천장의 붕괴가 우려된다.”면서 “공사업체인 ㈜유니슨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입지를 재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풍력발전단지는 동굴 붕괴뿐아니라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을 추진 중인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의 경관을 해친다.”면서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관광사업을 망치는 공사를 관계당국은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산동굴은 세계에서 20번째로 긴 동굴로, 형태가 희귀하고 석영광물이 많아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녹색회는 공사 취소를 촉구하는 장기집회를 갖는 한편, 환경단체·관련학회 등과 연대해 항의집회를 열 예정이다. 미군기지 이전이 예정된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빈집 철거가 이뤄지면서 이곳의 마을 역사관과 예술품들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문화연대·민족문학작가회의·민족미술인협회·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15개 문화단체가 결성한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대추리 예술품 파괴 문화예술인·단체 대책회의’가 주장했다. 대책회의 한유진 상근활동가는 “대추리·도두리에는 마을의 역사가 담긴 2층짜리 역사관이 있고,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이종구·최병수·고은·도종환 등 예술가 200∼300여명의 작품 100여점이 산재한다.”면서 “마을의 생존권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주택 강제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리영희 선생 전집 나왔다

    리영희 선생 전집 나왔다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리영희(77) 선생의 50년 저작활동을 결산하는 ‘리영희 저작집’(한길사 펴냄)이 출간됐다.‘전환시대의 논리’(1974년)에서부터 ‘우상과 이성’(77년),‘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84년),‘自由人, 자유인’(90년)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94년)를 거쳐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2005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권이다.‘8억인과의 대화’,‘10억인의 나라’,‘중국백서’ 등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독자적인 저술이 아니라 번역 등으로 이뤄진 책은 제외됐다.2000년 병으로 쓰러져 구술로 쓰여진 ‘대화’ 이후 나왔던 단편적인 글들이나, 미발표 원고들은 마지막 12권 ‘21세기 아침의 사색’으로 묶였으니 완전한 전집이다. 57년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뒤 합동통신사 공채시험에 합격한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세계적인 냉전에 가려진 진실을 찾기 위해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료를 찾아 기사를 써낸 기자다. 그렇기에 1972년 한양대에 자리잡으면서 인식의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저서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리 선생은 일련의 저작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들로 냉전에 편승한 반공·숭미사상을 지적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다. 이 때문에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여러차례 해직·구속을 반복했고 ‘의식화의 원흉’으로도 꼽혔지만, 반대쪽에서는 ‘시대의 양심’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한국언론재단은 18일 프레스센터에서 리영희 선생을 위한 출간기념회도 연다. 시인 고은이 전집 발간 기념으로 쓴 글에서처럼 그는 ‘우리 모두의 기념’이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처럼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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