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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라운지]스포츠 봉사단체 ‘함사모’ 회장 배구스타 장윤창

    [스포츠 라운지]스포츠 봉사단체 ‘함사모’ 회장 배구스타 장윤창

    “우리가 정성들여 만든 자장면을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정말 맛있게 드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 1999년 초 배구스타 장윤창(48·현 경기대 교수)과 마라토너 황영조,탁구여왕 현정화 등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서울 강남구 세곡동 비닐하우스촌을 찾았다.장애아동들이 모여 사는 곳에 봉사활동을 나간 것.어림잡아 200여명 되는,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장윤창 일행을 맞았다.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자장면~!”을 외쳤다.장윤창은 200그릇을 주문했다.“배달시간이 오래 걸려 불어터진 자장면을 너무 맛있게 먹는 장애 아동의 모습에 순간 뭉클해졌죠.” 그 다음날 장윤창 일행은 자장면 뽑는 기계까지 구입해 아예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학 시절 한국에서 봉사활동 결심해 왕년의 배구스타 장윤창은 현재 스포츠스타 봉사단체 ‘함께하는사람들’(이하 함사모)의 회장이다.함사모는 98년 말 12명의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 ‘국민에게서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뜻으로 결성됐다.재활원,양로원,고아원,소년원 등에 매달 한 번씩 10년째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스타들이 손수 만드는 함사모의 ‘자장면 봉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장윤창은 무척 바쁜 연말을 보낸다.지난달 15일 홍은·홍제동 일대 홀로노인 300여명을 홍은종합복지관으로 초대,직접 만든 자장면을 대접했다.장윤창과 심권호(레슬링),황영조(마라톤),임오경(여자핸드볼) 등이 1000그릇을 손수 만들었다.이들은 홀로노인을 위해 연탄 1만장도 직접 날랐다.이틀 뒤인 17일 ‘소년소녀가장돕기’ 일일호프도 열었다.물론 수익금은 모두 그들을 돕는 데 사용됐다. 오는 14일에는 강동구 거여동의 한 재활원에서 장애인들에게 올해 마지막 자장면 봉사가 예정돼 있다.식사 후 잠실에서 프로농구를 관람하기로 했다. 그는 선수생활과 코치를 겸하던 고려증권팀의 쇠락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발로 뛰어 설립한 봉사단체가 함사모다.“선수 생활 동안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다가 유학시절 성공한 사람들이 사회에 봉사활동과 기부를 더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죠.” 장윤창은 황영조·현정화·서향순(양궁) 등에게 뜻을 밝혔고,이들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방법을 몰랐다.”며 흔쾌히 동참했다. ●황영조 · 현정화 등 왕년의 스타들 참여 그는 봉사활동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한번은 소년원에 갔는데 몸에 문신을 새긴 아이들이 있었죠.딱딱하게 대하던 아이들이 저와 황영조,현정화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친해지는 시간도 가졌다.교도관들은 “아이들이 이렇게 순화되는 모습은 처음 봤다.”면서 고마워했단다.장윤창은 아이들에게서 ‘한순간의 실수로 소년원에 왔지만 앞으로 나가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내용의 편지도 받았다. 그가 함사모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확고했다.“봉사활동에 절대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내 생활에 충실하면서 남 돕는 일에 앞장서다 보니 10년째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실천하는 봉사로 받은 사랑을 돌려주자.’는 게 함사모의 목표입니다.” 고교 2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1978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배구 최초 4강의 주역,전설의 명문팀 고려증권 창단멤버,국내 최초로 스파이크서브를 시도한 왕년의 스타.함사모 회장 장윤창의 화려했던 이력이다.그러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봉사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지금의 모습이 더 멋져 보이는 것은 왜일까. 글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보컬 트레이너 일반인 속으로 가다

    보컬 트레이너 일반인 속으로 가다

    “자,소리를 목 안에 두지 말고 코까지 올려서 쭉 뽑아내세요! 어깨 힘 빼시고…,라~라~라~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 9층의 연습실.평일 늦은 저녁 이 손바닥만 한 공간은 피아노 건반 소리와 더불어 세 명의 여성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하다.“하품할 때처럼 입을 다 열어요.가던 사람을 붙잡을 때처럼 “야!”하고 소리를 내질러요.” ●대학 실용 음악과 증가로 트레이너 초빙 시간·비용 감소 가수 지망생이나 뮤지컬 배우의 연습 현장이 아니다.직장에 다니는 양인화(31),이유미(29)씨는 석달 전부터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연예계 데뷔를 앞두고 있는 것도,음치 탈출이라는 절박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이들은 업무가 끝나기가 무섭게 회사 근처에서 산 샌드위치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걸음을 재촉해 연습실로 향한다.최근 직장을 옮긴 양씨가 계속된 야근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 거의 한 달만에 모였다.어렵사리 익혀놨던 호흡,발성법이 잘 될리 없다. “오늘 첫 수업이라고 봐야겠죠?” 보컬 트레이너 신수란씨가 딱 자른다.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현재 앨범 준비 중에 있다는 신씨는 이들 외에 직장 남성 한 명을 더 가르치고 있다.예전에는 입시생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들어 연습실의 문을 두드리는 일반인들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어머니들이 즐겨 찾는 지역 문화센터의 ‘가요교실’이 아니라 ‘독선생’을 초빙해 보다 전문적이고 진지하게 노래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컬 트레이너나 보컬 코치는 이제 프로 가수들에게만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목청껏 노래 부르는 것을 넘어 제대로 감정을 잡고 리듬에 취하고 싶은 욕구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것.노래란 타고난 재능이 우선시되는 영역이지만 개그우먼 김미화 등 가수가 아닌 연예인이나 사회 명사들이 훈련을 받은 뒤 무대에서 멋지게 재즈를 뽑아내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대학의 실용음악과가 증가하면서 개인 보컬 트레이너를 초빙하는 시간과 비용이 예전보다 적게 드는 것도 일반인들이 손쉽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양씨와 이씨도 마찬가지.뜻이 맞은 두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보컬 트레이너를 만났고 일주일에 한번,1시간 반 정도 훈련을 받는다. 처음 배운 노래는 앤의 ‘혼자하는 사랑’,두번째는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오늘 수업 내용은 리사의 ‘사랑하긴 했었나요’다.가창력 풍부한 여가수의 노래답게 높낮이의 변화가 심하다.“여기 쉼표 있죠? 버릴 줄도 알아야죠.붙임줄 있는 부분에서는 부드럽게 흘리세요.” 반주를 넣으랴,주문하랴 신씨가 바쁘다.배에 힘주랴,힘있게 소리내랴 두 사람도 식은 땀이 난다. ●일반인들 삶의 활력… 배우려는 사람들 늘어나 “노래를 잘 부르는 데는 몇가지 요령이 있어요.둘째,넷째 박자에서 강세를 주는 거죠.‘사~랑~하~는~’을 부를 때 ’랑’과 ‘는’은 살짝 힘주어 뱉는 거예요.또 발음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어요.자음보다 모음에 힘을 주는 것.‘사랑’에서 ‘ㅅ’보다 ‘ㅏ’에 강세를 두는 느낌으로 노래하는 거죠.무엇보다 복식 호흡은 기본이고요.” 감정을 잡아 노래하려면 갈길이 멀지만 악보를 보고 리듬을 살리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하니 제법 노래가 된다.양씨는 “배운 것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부르니까 다르긴 하다.”며 최근 회식 자리에서 “잘 한다.”는 동료들의 칭찬에 “뮤지컬 ‘맘마미아’에 나온 노래 대부분을 부른 적도 있다.”며 웃었다.이유미씨도 “노래 부를 때 예전보다 많이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이 특별한 노래 과외는 삶의 활력이다.“연습이 부족하니 진도가 빠르지 않아 속상하지만 언젠가 ‘플라이미투더문’이나 ‘러브’를 편하고 멋지게 부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요.” 9시가 넘어 수업이 끝났다.의자에 앉아서 노래만 했는데 운동장 열바퀴를 돈 것처럼 녹초가 됐다.이날 뱃심이 부족해 소리가 힘있게 안 나오는 양씨에겐 윗몸 일으키기,혀에 쓸데 없는 힘이 들어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씨에겐 볼펜 물고 말하기 과제가 주어졌다. 글 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그분이 오신다’ 하연주의 이유있는 반란 (인터뷰)

    ‘그분이 오신다’ 하연주의 이유있는 반란 (인터뷰)

    “전 행운아인 것 같아요. 19살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21살이 된 올해 CF 두 편을 시작으로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죠. ‘그분이 오신다’는 제게 기회이자 행운이에요. 행운을 주신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 게요.” MBC ‘그분이 오신다’에서 171cm의 훤칠한 키에 눈에 띄는 외모로 주목 받고 있는 신예 하연주. 87년생의 어린 나이에 무려 14살 차이가 나는 그룹 DJ.DOC의 멤버 정재용의 쌍둥이 누나로 출연하며 당찬 캐릭터의 재숙 역으로 주목 받고 있는 그는 이제 데뷔한 신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정재용과의 연기 호흡이 힘들 법도 하지만 하연주는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정재용 뿐 아니라 윤소정, 이문식, 강성진, 서영희, 정재용, 전진 등의 출연진들에 기가 죽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또 하나의 가족을 얻은 기분이다. 요즘에는 (정)재용 오빠가 밥까지 사준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여유까지 보인다. 수 많은 스타를 발굴해 낸 유명 이동통신과 한 체인 음식점의 CF를 통해 연기의 맛을 본 하연주는 300:1의 경쟁률을 뚫고 ‘그분이 오신다’의 재숙 역에 합격하는 행운을 안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올 해 초 CF를 찍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 시트콤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돼 올해가 제게 너무 특별해요. 갑자기 얻은 행운에 불안감도 있긴 하지만, 제게 기회를 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하지만 이런 걱정도 무색할 만큼 하연주는 자신의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신인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첫 촬영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그는 그 날의 기억을 마치 설렘을 간직한 소녀처럼 이야기 한다. “놀이동산에 다녀 온 후 잠자리에 누었을 때의 기분이었어요. 마치 계속 촬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옆에서 ‘재숙아’라고 부르는 것 만 같더니 결국 꿈에서도 촬영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가 이런 설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토록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이번 도전이 더욱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건 3년이란 연습기간 후에 온 행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있어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요. 만약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제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인 배우 하연주의 반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앞으로 “‘그분이 오신다’를 통해 매 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시청자들이 ‘재숙’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많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는 각오를 전한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종증권 게이트] 노씨 “모르겠다… 모르겠다…”

    [세종증권 게이트] 노씨 “모르겠다… 모르겠다…”

     1일 검찰의 강도높은 조사를 12시간이 넘게 받고 오후 11시쯤 귀가한 노건평씨는 다소 초췌한 모습에 긴장한 기색이었다. 깃이 달린 세로 줄무늬 티셔츠에 짙은 쥐색 바지와 검은 코트를 입은 채 대검 본관 현관으로 나온 건평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심경 한 말씀 해달라. -착잡할 따름이죠.돈 받은 사실 없다고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혐의를 부인했다고 했는데. -예,사실이 없으니까요. 김해 오락실에 지분 있었나. -그건 모르는 이야기이고요.이상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서운하지는 않나. -제가 혐의가 없기는 하지만 저로 인해 자꾸 말썽이 일어나니까 동생에게도 미안하죠.돈 받은 사실 일체 없습니다. 7일 동안 행방이 묘연하고 자해 소동 소문도 있었는데. -모르겠습니다. 지금 봉하마을로 가나. -모르겠습니다. 검찰에 또 나오나. -모르겠습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여성&남성] 송년회 ‘진상 남녀’… 이런 사람들 꼭 있다

    [여성&남성] 송년회 ‘진상 남녀’… 이런 사람들 꼭 있다

    바야흐로 송년회 시즌이 도래했다.지난 한 해 동안 힘들었던 서로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그래도 새해에는 더 잘살자.’고 다짐하는 자리.흥청망청 마시고 즐길 에너지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찾는 것은 어떨까.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지인들에게 연하장이라도 한 장 보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오랜만에 친구·동료들과 송년회를 빙자해 모인 술자리에서 얼굴도 마음도 따뜻해 질 때쯤이면 늘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다름아닌 ‘진상남녀’.여&남들의 ‘진상의 기억’을 참고해 이제부터 우리에게 닥쳐 올 송년회 릴레이에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 ‘진상’들을 제압 할 방도를 고민해보자.  지난 2004년 졸업 후 한번도 대학모임에 나타난 적 없었던 학원강사 김모(27·여)씨가 갑자기 송년회에 나타나자 동기들의 반응은 엇갈렸다.“졸업하고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떻게 지내니.”라고 반가운 척은 했지만 불안이 친구들을 엄습했다.친구들의 예감은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바뀌었다.김씨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한 움큼 꺼내 친구들에게 내밀었다.봉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청첩장.  졸업 후 4년이 흘러 여자 동기들 중에는 결혼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긴 했다.하지만 어디서 뭐하는지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출현해 청첩장을 들이미는 김씨의 뻔뻔함에 동기들은 혀를 내둘렀다.대학 다닐 때도 농활이나 교수님이 시킨 일이라도 있으면 집안에 일이 생겼다며 번번이 빠지고,선배가 내는 술자리나 밥 먹는 자리에는 절대 빠지지 않았던 김씨의 행동을 이미 잘 알고 있던 터라 동기들은 더 어이가 없었다.김씨의 ‘만행‘을 지켜보던 한 친구는 “자기만 알고 얄밉게 행동하던 애가 나중엔 취직도 잘하고 결혼도 잘 한다더니 정말 어이가 없다.”며 혀를 찼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오모(30·여)씨는 최근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2년 전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알았던 친구 이모(28·여)씨가 갑자기 연락을 해온 것.오씨와 이씨는 지난해 귀국한 뒤 연락이 끊겼었다.이씨는 호주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송년회를 하기로 했다며 오씨에게도 꼭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오씨는 오랜만에 옛 동료들을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송년회에 나갔다.하지만 옛 동료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기 전에 모임을 주선한 이씨는 속내를 드러냈다.연말에 결혼하는 이씨가 송년회를 핑계삼아 옛 동료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이씨는 동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면서 “진실한 사랑을 만나게 됐다.꼭 결혼식에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벤처회사에 다니는 김모(30)씨는 대학 동기와의 송년회에 유모(30)씨가 올까 두렵다.학창시절 김씨에게 시험때마다 노트를 빌리고,과제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유씨가 대기업에 들어가더니 송년회 때마다 자기자랑을 늘어놓느라 정신없기 때문이다.김씨는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졸업 후 미국유학을 준비하다가 2년을 낭비했다.졸업한 상태로 특별히 쌓아둔 경력도 없으니 취업이 어려웠고 결국 벤처회사에 들어가게 됐다.반면 항상 김씨에게 신세를 졌던 유씨는 마지막 학기 갖가지 자격증을 준비하더니 한 번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 후부터 송년회는 유씨의 자랑무대가 됐다.회사에서 많은 급여를 받는 한편 집안 배경도 좋아 부유하게 살고 있는 유씨.2년 전에는 외제차를 샀다고 자랑을 하더니 작년에는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까지 갖게 되었다며 크게 웃었다.그럴 때마다 김씨는 부러움도 잠시,자신의 신세가 처량해 보여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올해는 어떤 자랑을 할 지….차라리 그 친구가 송년회 소식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잘나가는 그, 입 아픈줄 모르고 ‘자랑 삼매경´  고교-대학 동문 송년회에 간 임모(23·여)씨는 ‘저럴거면 모임에 왜 나왔나.’ 싶은 선배를 만났다.1년에 한 번 하는 큰 OB모임 겸 송별회 자리라 30명이 넘는 선후배들이 호프집에 모였다.술집 가득 모인 사람들은 돌아가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안녕하세요.상큼한 08학번입니다.”부터 “OO병원 인턴입니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술을 마시자 어김없이 큰 박수가 쏟아졌다.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뿔테안경을 쓴 남자선배 한 명이 일어났다.“나는 지난 6월 ROTC 장교로 전역했다.군 복무 내내 강원도 최전방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고 군생활에 관해 할 말이 많으니까 군대 안 간 녀석들은 다 내 옆으로 와서 한 잔씩 주길 바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그는 “난 여기 있는 선배들처럼 잘나지도 못했고,너네들처럼 좋은 대학 왔다고 마냥 장밋빛 미래만 생각하지도 않아.너네 졸업하면 다 잘될 것 같냐.그러다 큰 코 다친다.”고 말을 이어가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그 선배는 전역 후 여러 회사에 입사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탈락하고,하반기에도 하루 몇 개씩 입사 원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어려워진 경기에 대규모 채용도 줄고,웬만한 기업입사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선배는 동문회의 ‘불청객’이 돼 밤새 후배들을 괴롭혔다.진상의 끝은 이랬다.그 선배는 ‘진짜 딱 한 잔만 더 마시자.내가 낼게.’라며 임씨를 비롯한 4명의 후배를 해장국 집으로 끌고 갔다.감자탕을 먹는 동안 선배의 무용담은 계속됐다.취한 선배의 군대 얘기는 끝이 없었고,모두가 꾸벅꾸벅 졸 때쯤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구모(29·여)씨는 송년회에 나갔다가 오히려 기분만 버리고 왔다.요즘 여교사가 1등 신붓감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자신은 특별히 직업적 혜택을 본 일도 없었고 지금의 인기를 이용해 거만하게 군다는 주위의 시선도 불편해왔던 터였다.하지만 지난 주 나간 송년회 모임은 그야말로 ‘자랑잔치’의 결정판이었다.  모임에 나온 동료 여교사들은 학교 이야긴 쏙 빼놓고 최근에 만난 남자이야기들로 수다를 이어갔다.“변호사 OO는 돈은 많은데,키가 작더라.”,“XX는 의사인데 출신학교가 좀 떨어지더라.”로 시작해 자기들이 받은 반지와 선물들을 자랑하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그 가운데 구씨를 가장 황당하게 만든 사람은 대학 때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 김모(29·여)씨였다.김씨는 학교 다닐 때부터 캠퍼스 커플로 지내던 남자친구와 8년을 사귀었다.그런데 남자친구가 취직에 실패하고 2년째 백수신세이다 보니 이미 사회생활로 돈도 벌고 나름의 신분상승을 한 김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었다.  대학동기들이라 예전 사귀던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잘 알던 터에 모임에 나온 김씨가 새남자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명품가방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송년회가 ‘망(亡)년회´로 변해  학습지 교사 이모(26·여)씨는 이번 대학 송년회 모임에 나가지 않을 계획이다.지난해의 끔찍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대학 때 캠퍼스커플이었던 이씨는 졸업 직후 학창시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헤어진 후에도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친구로 지냈던 그들은 지난해 송년회부터 절교 상태다.전남자친구가 ‘진상’을 부렸기 때문이다.  커플모임이었던 지난 송년회에 이씨는 당시 사귀던 새남자친구를 데리고 갔다.혼자 온 전남자친구는 처음부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이씨의 험담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과거에 우리가 사귀었다.’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이씨는 “헤어진 지 1년이 넘었고 서로 잘 지내왔던터라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면서 “당시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서먹해져 곧 헤어졌다.”고 말했다.“올해는 커플모임은 아니라지만 전남자친구가 나오는 한 대학 송년회는 절대 나가지 않을 거예요.”  올해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한 이모(25·여)씨는 회사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다.지난 9월 입사해 어깨 너머로 선배들이 하는 일을 배우고 열심히 따라하느라 하루가 짧기만 하다.그런 이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술자리’를 지키는 일.이씨는 맥주 한 잔만 먹어도 심하게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대학시절에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직장생활인지라 술자리에 빠질 수 없는 이씨였지만 강권하지는 않는 회사 분위기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는 지난 주 금요일 조금 이른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1차 삼겹살 파티에선 소주가 빠지지 않았다.20명 남짓되는 사원들 모두 모여 ‘건배’,‘원샷’를 외쳤고 이씨도 소주를 살짝 입에 댔다.어김없이 발그레진 얼굴로 분위기를 맞췄다.이어지는 2차 호프집.이씨를 제외하고 모두 ‘나사가 풀린’ 상태였다.발그레한 얼굴이 화근이었을까.2차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술자리 내내 ‘흑기사’를 자청했던 최모(32·남)대리가 ‘보디가드’로 나섰다.집이 같은 방향이라 거절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택시를 같이 탔다.“제가 최 대리님을 데려다 주는건지,최 대리님이 절 데려다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전 그때쯤 되니까 술이 깨서 정신이 말똥말똥한데,최 대리님은 택시에 타자마자 코를 골면서 잠에 빠져들었죠.몸도 못 가누고. 정말 환장할 뻔 했어요.택시기사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으니.”  이씨의 집 근처에 도착해서 최대리를 깨웠지만 인사불성이었다.‘그냥 내릴까.’ 고민했던 이씨는 결국 택시를 돌려 최대리를 데려다주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원생 신모(27·여)씨는 송년회 철이면 떠 오르는 뼈아픈 추억이 있다.술만 마시면 이성을 잃은 채 펑펑 울고,온갖 욕설을 퍼붓는 고약한 술버릇 때문.동기들도 그녀에게만은 술을 권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21일,신씨는 학회 세미나를 마치고 과 동기들과 송년회 겸 뒤풀이를 했다.아무도 신씨의 술버릇을 모를 때였다.신씨가 치사량인 소주 5잔을 넘기자 주사가 시작됐다.“오빠 어쩌면 나한테 그럴 수 있어?날 무시하는거지?”로 시작해 “동기끼리 이럴 수 있니?나 섭섭한거 정말 많았어.”라며 울기 시작한 그녀는 목청이 터져라 떠들어 댔다.한 순간 송년회는 망(亡)년회로 변했다.그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때렸다.  동기 한 명이 신씨를 부축하다 그녀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휴대폰을 열어 신씨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30분만에 달려온 그녀의 남자친구는 신씨를 보자 한 순간에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래도 애인이라고 그녀를 부축해 데려가려 했다.하지만 신씨는 남자친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사불성. 남자친구는 그 날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 김민희 이재연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너흰 회식하니? 우린 기부한다! ☞[여성&남성] 골드미스·싱글남의 ‘행복과 슬픔’ ☞[여성 & 남성]불황 속 알뜰커플의 데이트 지혜 ☞[여성&남성] 노처녀·노총각은 왜 결혼을 못할까
  • 「미스·조흥은행」정혜영(鄭惠榮)양-5분데이트(172)

    「미스·조흥은행」정혜영(鄭惠榮)양-5분데이트(172)

    몹시도 수줍음을 타는 정혜영양(22). 포근하고도 청초한 느낌을 담뿍 안겨주는 이번 주 표지 아가씨다. 상명여고를 졸업하고 69년 말에 조흥은행에 입행. 지금은 종로지점 별단계에서 보증수표 떼는 일을 보고 있다. 3남매지만 언니가 출가했고 오빠가 군복무중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정양과 홀어머니 김효수여사만의 살림이라는 귀띔. 우석대학교 설립자인 고 김종익씨의 외손녀딸이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됐다. -퇴근 후에는 주로 무얼 하나요? 『어머니가 서예하고 묵화를 즐기셔서 저도 따라하게 됐어요. 차분하게 몰두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돼요』 -여자 은행원들이 주로 갖고 있는 취미는? 『대개는 고등학교 졸업자들인데「피아노」나 꽃꽂이,「아프강」등을 많이 취미로 갖고들 있어요. 또 은행측에서 매주 한번식 꽃꽂이와 「아프강」강습을 베풀어 주기도 하고요』 -휴일은 어떻게 지냅니까? 『산에 잘 가요. 지난 12월초 찾아갔던 치악산의 눈풍경이 참 볼만했어요』 -밥 잘 지읍니까? 『밥은 웬만큼 짓는데 반찬에는 자신없어요』 어릴 적 여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정양은 연애와 결혼이 따로 떼어지지 말고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얌전한 결혼관을 가졌다. 『단지 조건이 있어요. 어머니가 반대하시지 않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媛(원)> [선데이서울 72년 2월 20일호 제5권 8호 통권 제 176호]
  • ‘히트맨’ 방시혁 “‘스타 작곡가’를 꿈꾼다면…” (인터뷰)

    ‘히트맨’ 방시혁 “‘스타 작곡가’를 꿈꾼다면…” (인터뷰)

    ‘신들린 감(感)’을 자랑하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방시혁은 일명 ‘히트맨(HIT MAN)’으로 통한다. 비, 박진영, 김건모, 원더걸스, 임창정, GOD, 보아, 에픽하이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의 앨범 다수가 그의 감(感)에서 탄생됐다. 10곡도 넘는 1위곡 보유자며 빌보드 가수에게 러브콜을 받는다. 광고계에선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린다. 샐러드송, 달라송, 뉴웨이즈 올웨이즈 등 그가 손을 댄 CM송들은 하나같이 광고 음악계를 진두지휘해왔다. 이 시대 가요계 최고의 ‘흥행 수표’ 방시혁을 만났다. ‘쑥맥 서울대생’에서 ‘잘 나가는 작곡가’로, 자신 안에 잠재된 ‘음악적 창조성’을 발견하기까지…. ‘200%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인기 작곡가이자 NO.1 프로듀서인 이 남자의 성공법은 무엇일까. ○ 박진영과의 인연 “시류를 잘 만난 작곡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95년 제 6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작곡가의 길’에 들어섰다. 중학교 밴드 시절 기타를 배운 것이 전부다. 작곡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었다. 스승도, 정보를 얻을만한 창구도 없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가슴을 꽉 매운 ‘음악 열정’ 하나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물론 ‘재능과 열정’이 넘쳐나도 ‘운(Luck)’이 따르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진영을 만난 방시혁은 운이 좋았다. 그는 스스로를 “시류(時流) 를 잘 만난 작곡가”라고 일컬었다. 시기는 거슬러 올라가 97년. 방시혁의 데모 음반을 들은 박진영의 마음이 흔들렸다. “파트너가 되지 않겠냐.”는 제의에 2000년 함께 JYP를 창립했다. 이후 방시혁은 박진영 3집을 시작으로 비, 별, 노을, 박지윤 등 소속 가수에게 수많은 인기곡을 안기며 명실공히 ‘JYP 수석작곡가’로 우뚝 서게 됐다. “90년대 말 대중문화가 열리던 시점에 박진영이란 든든한 후원자를 만났으니 ‘기가 막힌 시류’를 탄 셈이죠. 지금도 무명 제작자를 만났으면 묻혔을 꺼란 생각에 감사해요. 그렇다고 막연한 기회를 바라는 것은 금물이에요. 기회는 노력하는 이에게 오는 행운이죠.” ○ “곡 쓸 땐 신내림”… 내 안의 그녀를 끌어내라.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이수영·백찬 ‘무슨 사랑이 그래요’, 비의 ‘I do’, 박진영 ‘Kiss me’, 임정희 ‘Music is my life’, 박지윤의 ‘난 사랑에 빠졌죠’ 등 모두 한 순간의 영감으로 써내린 곡이다. “옆에서 보면 ‘신들린 사람’ 같대요.(웃음)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갑자기 음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이죠. 행여 그 음상을 잃어버릴까 악보에 옮기는 순간까지 수백번씩 읊조리곤 해요. 가사와 멜로디를 한꺼번에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대개 단 몇 분도 안걸려요. 전율이 오는 순간이죠.” 특히 그가 작사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남자 작곡가’라 믿기 힘들 정도다. 벌거벗은 여심(女心)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섬세하고 날카로운 필체는 ‘혹 연애왕은 아닐까’하는 의구심 마저 불러 일으킨다. 방시혁은 “다만 내 안에 여자가 살고 있을 뿐”이라며 놀라운 발언을 던졌다. “곡을 쓸 때, 내 안에 숨어있던 여자가 나와요. 남자가 못느끼는 감정을 읽어내는 거죠. 여자들은 사랑을 할 때 남자들보다 센서티브(민감)하잖아요. 곡을 쓰는 순간 만큼은 완전히 그 당사자가 되는거죠. 그래야 풍부한 글귀가 나올 수 있고요.” 그렇다고 ‘영감’만으로 쉽게 작업하는 작사가로 보면 안된다. ‘완벽주의자’인 방시혁은 곡을 완성한 후 주변 여성들에게 일일히 모니터 받는 꼼꼼함을 잊지않고 있었다. 물론 반응은 매한가지. “오빠, 소름 끼칠 정도로 딱! 여자마음이야.” ○ 감(感)을 얻고 싶거든 ‘순간 집중력’을 높여라. 음악적인 ‘감’은 타고나는 것일까. 100% 선천적이 아니라면, 소위 후천적으로 ‘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시혁은 명쾌한 답변을 안겼다. 바로 ‘순간 집중력’을 높이라는 것. ’감’과 ‘집중력’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 최고의 히트곡이 탄생하죠. 중요한 건 ‘순간 집중력’을 높이는 거예요. 거짓말처럼 집중력이 쫙 올라가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에 함몰되는 기적같은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놓치면 안되죠.” 하지만 유명 작곡가라고 해서 주기적으로 히트곡을 양산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곡가의 숙명이자 딜레마인 이 점에 대해 방시혁은 “나 역시 늘 슬럼프를 달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단 몇 개월만 히트곡이 없어도 주변인에게 ‘감 잃은게 아니냐’는 얘기가 들려요.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닌데…혼자 끙끙 앓고 괴로워했죠. 사실상 ‘슬럼프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감을 좋게 할 수 있을까’하고 매일 같이 고민하던 방시혁은 ‘새로운 경험’을 접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되도록 많은 예술계 인물들을 만나 대화를 가졌어요. 밤에는 유행하는 클럽을 찾아 시세를 파악했고요. 대중들이 원하는 트렌드를 앞서 짚으려 노력했죠.” 그가 택한 방법은 정통했다. 방시혁은 댄스 장르 아이돌 그룹이 점령한 현 가요계에 돌파구를 뚫었다. 발라드 음악의 갈증나 있지만 댄스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그러나 늘어지고 지루한 느낌의 발라드에 실증난 대중들에게 귀에 착 감기는 음악을 제시한 것. 비트감과 리듬감을 살리되, 애절한 가사가 특징인 일명 ‘방시혁표 네오 발라드’는 이미 가요계에서 선전하고 있다. 단 몇 초 만에 써내려간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단박에 1위를 차지, 그의 진보적인 프로듀싱력을 입증해 보였다. ○ ‘미친 열정’있는 ‘당신’만 도전하라. 작곡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라고 딱 자르는 방시혁의 대답에 당혹스러웠다. 그는 ‘작곡가’란 직업이 낭만적으로 미화되어 비춰지는 것을 우려했다. “음악 외 어떠한 인생의 대안도 없다고 판단되야 합니다. 진심으로 다른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정말로 안하면 못살 것 같은 ‘미친 열정’을 가진 분만 도전하세요.”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설픈 용기로 작곡가의 길에 들어서고 중도하차해 ‘원치않는 삶 2장’을 연 이들을 숱하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재능, 운, 지구력의 3박자가 맞아야 해요. 이 모든 것을 부르는 것은 ‘노력과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데모 테잎 하나를 만들 때도 쏟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투영했어요. 건반을 칠 땐 다리 사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기타를 칠 땐 안고 잠들 정도로 했고요….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곡가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200%’라는 숫자가 불쑥 튀어 나왔다. “이 이상, 어떻게 더 좋겠습니까!”라며 환하게 웃는 이 남자,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즐기는 이를 누가 이길 것인가…. 스타 작곡가를 꿈꾼다면 방시혁 처럼. 바로 ‘그’ 안에 답이 있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커피만 파냐고요? 음악CD도 팝니다

    커피만 파냐고요? 음악CD도 팝니다

     커피숍,생활용품 매장 등 음악과는 무관한 매장들이 음악 CD를 팔기 시작했다.매장의 분위기나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 매장의 상품뿐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도 함께 팔겠다는 마케팅 전략이다.음원서비스 전문업체에 음악 선택권을 일임했던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간 형태다.  SPC그룹은 최근 커피매장인 파스쿠찌와 식음료 카페인 파리크라상 키친 40여곳에서 ‘SPC Music series vol1.’을 팔기 시작했다.그룹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어울리는 음악을 담은 것으로 매장에서 CD를 직접 틀기도 한다. 제작,기획단계서부터 유럽의 음반레이블인 MOS(Ministry of sound)와 함께 작업했다.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빠른 템포의 하우스 뮤직을 주로 담았다는 게 SPC의 설명이다.  SPC 그룹 관계자는 “판매량이 집계할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CD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 고객들은 꾸준하다.”면서 “당장 매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토종 브랜드인 탐앤탐스 커피도 매장에 CD(사진 오른쪽)를 내놓고 있다.매장에서 트는 음악은 아니지만 브랜드가 추구하는 편안하고 커피의 부드러움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골라 편집 앨범을 만들었다.  종합 생활용품 매장인 코즈니는 이러한 음악 마케팅 기법을 일찌감치 펼친 경우.매장에서 틀었던 음악 가운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음악만 골라 ‘코즈니’(왼쪽)라는 이름으로 3장의 음반을 냈다.판매량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그럼에도 매년 앨범을 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음반이 매장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살려주는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코즈니의 신희연 MD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살려주는 데 음악은 좋은 도구”라면서 “소비자들도 ‘세련된 곳에서 나오는 음악은 세련됐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코리아도 내년 상반기 매장에서 트는 음악을 CD로 제작해 판매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살 날이 2주 남은 소년이 결심한 일은

     미국의 11세 소년이 살 날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시작한 선행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켜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고 ABC뉴스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워싱턴주 보델에서 살다 지난 21일 세상을 떠난 브렌든 포스터로 그는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던 2주 동안 여느 시한부 환자도 선뜻 생각하지 못하고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던 선행을 베풀었다.      지난해 12월 백혈병을 진단받고 어머니로부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포스터는 홈리스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나눠주는 일을 한 뒤 세상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그는 “병원을 다녀오다 문득 홈리스들을 보면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그들에게 뭔가를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보통 이맘때 여느 아이들이 커다란 장난감이나 멋진 성탄휴가를 꿈꾸는데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고도 이 소년은 자기 것을 내주어야 겠다고 결심한 것.  그는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였다.홈리스에게 음식을 주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으니 딱한 일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애틀 주민들이 이 어린 천사에 감화돼 음식들을 나르겠다고 달려왔다.ABC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15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홈리스들에게 전달할 샌드위치 200개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들의 선행에 감복한 이들이 로스앤젤레스와 플로리다주 펜사콜라,또 오하이오주의 한 학교에서도 홈리스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홈리스 구호단체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홈리스는 “이 작은 소년이 보여준 것과 같은 용기있는 행동을 본 적 이 없다.”며 “내 인생에 이런 일을 본 적도 없다.할 말을 잃게 한다”고 감동했다.  한때 친구들과 달리기 경주를 하면 앞지르기도 했던 포스터는 침대에서만 지내며 눈을 뜨기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 아이는 “지금은 주는 시즌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웬디는 “항상 남들의 좋은 면을 바라보고 돕고 싶어하는 아이였다.”고 돌아봤다.아들은 눈을 감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꿈을 좇으세요.어느 것도 어머니를 멈추게 해선 안되요.”라고 말했다.  어머니한테 살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뒤 이 아이가 했던 말을 돌아보면 어쩜 이럴까 싶은 구석이 있다.처음에 울음을 터뜨렸던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단다.“천국에 올라가면 하느님께 여쭤볼래요.내가 앞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어서 절 빨리 데려왔냐고요.”  그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란 바로 남을 돕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고 웬디는 돌아봤다.  로스앤젤레스의 구호소에선 포스터의 뜻을 좇아 2500끼의 식사가 홈리스들에게 나눠지고 있다.자원봉사자들이 전달하는 빵과 커피 등에는 ‘사랑해 브렌든’이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는 갔지만 뜻은 남아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30]내겐 너무 특별한 계모임…종류도 애환도 가지가지

    [20&30]내겐 너무 특별한 계모임…종류도 애환도 가지가지

    돈도 불리고 친목도 쌓는 계모임이 불황기 각박한 인심을 파고들었다.주식,펀드 수익률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남녀를 불문하고 계를 통한 돈불리기가 유행이다.재테크,맛집 탐방,공동구매에서 해외여행까지 계를 하는 이유도 가지가지.하지만 곗돈을 먼저 타려고 눈치작전을 펴는 건 여전한 풍경이다.계주가 돈을 들고 튀거나 곗돈을 펀드에 넣었다가 수익률이 급락해 인간관계가 헝클어지는 경우도 많다.요즘 젊은 남녀들의 계모임을 들여다봤다. ●‘취미계’ 기쁨 두 배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김모(27)씨는 졸업논문 때문에 눈코뜰새 없지만 취미생활인 발레는 절대 빼먹지 않는다.일주일에 두 번 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압구정동까지 꼬박꼬박 출석한다.어렸을 때부터 발레 한 번 배워보는 게 소원이었던 김씨는 1년 전 학원에 등록하며 ‘로망’을 풀었다. 성인발레 전문인 학원에는 김씨같은 여성들이 많았다.깡마른 몸매를 선녀날개같은 발레복으로 감싸고 날렵하게 점프하는 발레공연에 빠져 김씨는 ‘발레계’를 조직했다.괜찮은 콘서트홀에서 발레공연을 보려면 20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학생신분에 20만원이면 버겁죠.한 달에 5만원씩 넣으면 주요 공연은 다 관람할 수 있어요.”발레리나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은 9월 티켓 오픈 때 인터넷 예매로 사수했다.  학원 강사 박모(26)씨는 다음달이면 명품 C브랜드의 ‘2.55백(55년 2월 출시)’을 손에 넣을 꿈에 부풀어 있다.박씨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 동기들과 ‘명품계’를 조직했다.명품가방을 구매하기 위해서다.박씨는 대학생 때부터 밥값,차값을 몇달씩 살뜰히 모아 가방 한 점을 장만했던 가방마니아.시즌마다 나오는 ‘신상’을 살 수 있다면 몇 정류장을 걸어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뜻맞는 친구들을 물색해 만든 가방계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임이었다.  박씨 일행이 첫 번째 대상으로 택한 가방은 300만원이 훌쩍 넘었다.전세계에서 3초에 한개씩 팔려나간다는 L브랜드의 ‘스피디백’같은 흔한 백은 질렸다.“가격이 비쌌지만 곗돈으로는 과감히 지를 수 있겠더라고요.”누가 가장 먼저 가방을 갖느냐를 두고 친구들끼리 신경전도 일었다.“저는 6명 중에 네 번째예요.다음엔 제가 좋아하는 다른 브랜드로 구매할 거예요.”  중학교 체육교사 최모(27)씨는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본 한을 뒤늦게 풀고 있다.최씨는 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마다 스키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2005년 졸업 직후 스물 넷 어린 나이에 교사로 임용됐다.  쉼표없이 달려온 최씨 인생에서 ‘여행계’는 숨통 한 자락과 같았다.여행계 멤버는 같은 학교에 발령받은 새내기 교사 권모(29)·이모(27)씨였다.셋은 ‘SES’란 별명까지 얻으면서 학교에서 겪는 고단함부터 남자친구,집안얘기로 끈끈하게 뭉쳤다.3총사의 동료애는 맏언니격인 영어교사 권씨의 주도로 여행계로 거듭났다.일본,유럽,동남아 배낭여행으로 다져진 권씨의 주도로 2006년 3월부터 매달 20만원씩 부었다.여섯달 만인 2006년 8월,각자 120만원씩 쥐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최씨는 “한 번에 120만원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한 번 가는 일본’이란 생각으로 끼니때마다 맛집을 찾아다녔어요.덕분에 모처럼 호사를 누렸죠.”라고 했다.그녀는 “차곡차곡 모은 덕분에 큰 부담없이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흡족해했다.  최씨는 또 다음 시즌 여행 계획에 한껏 들떠 있다.“안 가봤을 땐 잘 몰랐는데 한 번 다녀오니까 또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돈을 모으면서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요.”  혼자 돈을 모으면 의지가 약해질 법한데 여럿이 모으니 여행계획도 함께 짜는 가외의 장점도 있었다.두번째부턴 방학 때마다 한 사람에게 360만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바꿨다.최씨는 이 돈으로 2007년 1월 겨울방학 때 호주로 나홀로 여행을 갔다.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물론,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도 관람했다.  하지만 2년 6개월여간 꾸려온 계는 내년 1월 끝날 예정이다. 맏언니인 권씨가 이번 달 결혼하기 때문이다.최씨는 부부·애인 동반으로 강원도 여행을 다녀온 뒤 계를 청산하려고 한다.“여행계획 세우면서 깔깔거릴 수 있었는데 끝내려니 아쉽네요.” ●쌓이는 곗돈만큼 돈독해지는 우정  회사원 이모(26)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친구들과 맛난 것 먹으며 수다떨기다.대학교 4학년 때 미드(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보면서 브런치의 세계에 눈떴다.이씨는 친구 네 명과 당장 ‘브런치계’를 시작했다.‘계’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소박한 계였다.매주 금요일마다 3시간을 할애해 서울 시내 맛집을 찾아다녔다.“비싸고 우아한 식사를 한 건 아니었어요.학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얄팍하잖아요.하지만 50년 된 김치찌개집에도 가봤고 장충동 족발집,용두동 주꾸미 거리,청진동 해장국 등 유명한 밥집을 두루 다녔죠.”  졸업 후 취직한 다음부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매월 마지막 일요일로 정해졌다.주메뉴도 드라마에 나오는 브런치로 바뀌었다.“업무에 치이다 보면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만나 맛있는 것 먹으며 회사 얘기를 하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요.”이씨는 “자주 찾는 삼청동은 이제 번잡해 조용한 우리들만의 아지트를 찾고 있다.”고 했다.  공기업 직원 이모(31)씨는 “잘 키운 계모임,열 친구 안 부럽다.”고 말한다.그는 지난해 1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도 7명과 함께 ‘결혼계’를 시작했다.매월 3만원씩 모아 웨딩마치를 울리는 계원에게 현금 100만원씩 주는 계다. 지난달 결혼한 이씨는 계원들이 해준 특별 이벤트가 아직도 생생하다.계원들은 교회에서 결혼한 이씨에게 어린이 합창단을 섭외해 축가를 선사했다.곗돈을 보태 신혼여행으로 프랑스를 찍고 왔다.이씨는 파리 에펠탑 전망대에서 계원들에게 사진엽서를 보냈다.신혼집 첫 집들이 손님은 당연히 계원들이었다.회사 동료들이 서운해 했지만 양해를 구했다.이씨는 “언젠가 모두 결혼하게 되면 계는 끝나겠지만 그 땐 또다른 계를 만들어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며 만족해했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이모(27)씨는 1년 전 적금을 해약하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갈 요량으로 남자친구,친구 커플과 함께 매달 5만원씩 적금에 넣는 계를 시작했다.통장에 꼬박꼬박 불어나는 숫자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남자친구가 1년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 있는 동안엔 그의 몫까지 두 배로 적금했다.2년 뒤 목돈을 손에 쥔 이씨,남자친구와 여름휴가 날짜를 맞출 생각에 부풀었다. 하지만 바로 그 즈음 이씨는 남자친구와 결별했다.헤어지고 나니 둘 앞에 남은 건 적금통장뿐.이씨는 적금을 해약하고 남자친구와 친구 커플이 냈던 돈을 돌려보냈다.남자친구 몫까지 대신 냈던 자신에겐 200만원 넘게 돌아왔다.“열심히 모았던 돈을 찾는 보람을 느껴야 할 순간,말할 수 없이 씁쓸했습니다.”  주부 강모(32)씨는 매월 곗날이 되면 기분이 나빠진다.다름아닌 자신의 운 때문이다.2년 전 친구 6명과 모여 친목계를 시작하면서 재미를 더하려고 뽑기식으로 했다.곗날 돈받을 사람을 제비뽑기로 정해 이번 달에 받았으면 다음 달엔 제외하는 방식이었다.그런데 강씨는 번번이 뽑기에서 기회를 놓쳤다.강씨는 2년간 2번이나 꼴찌로 곗돈을 탔다.“평소에는 경품 응모하면 작은 거라도 꼭 당첨되는데 하필 곗돈 순번은 꼭 밀리더라고요.다른 계처럼 순번대로 타면 목돈쓸 때 미리 준비할 수 있을 텐데요.”그녀는 이제 와서 방식을 바꾸자고 하기도 난감하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28)씨도 계라면 손사래를 친다.종종 계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아도 “잘못하면 친구만 잃는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최씨에겐 10여년 전 계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당시 고3이었던 최씨는 친구 6명과 휴대전화를 사기 위한 계를 만들었다.수능이 끝나면 곗돈으로 다함께 구입하기로 했다.단짝친구인 계주에게 매일 1000원씩 냈고 1년 가까이 모인 돈은 어느새 200만원에 달했다.그런데 수능 뒤 계주는 곗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담임 선생님은 친구가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그는 전화 연락 한 통 없었고 집으로 찾아가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최씨는 몇 년 전 그 친구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친구는 “당시 곗돈을 여자친구와 놀다 마음대로 써버렸다.”면서 “면목이 없다.”고 사과했다.최씨는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커서 그 이후로 계모임엔 절대로 가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곗돈 펀드로 날리자 우정도 날아가 곗돈을 펀드에 넣다가 우애가 틀어진 경우도 있다.회사원 고모(32)씨는 요즈음 출근하기가 고역이다.지난해 초 입사동기 4명이 모여 ‘펀드계’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20만원씩 갹출해 차이나펀드에 ‘몰빵’했다.올해 초까지만 해도 증권사에선 ‘조정기를 거친 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최근 주가폭락으로 돈을 뺄 시점을 놓쳐버렸다.가입한 펀드 수익률은 -60%까지 내려갔다.아내에게도 비밀로 하고 용돈,차량지원비를 아껴서 모은 피같은 돈이었다.이달 초 술자리에서 격해진 나머지 고씨는 동기들과 주먹다짐까지 했다.급기야 술집 주인이 지구대 경찰을 불렀다.고씨는 “다 함께 돈을 잃었는데 나한테 따지다니 억울하다.회사에서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분개했다.  대구에서 액세서리 상점을 하는 최모(32)씨는 최근 1년간 부은 곗돈을 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지난해 말 주변 상인들과 함께 계를 들 때만 해도 가족들에게 ‘계를 왜 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너도나도 주식,펀드로 대박이 터지던 시기였던 탓이다.하지만 올해 들어 세계경기가 급속히 악화되고 주가,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자 상황이 역전됐다.이자까지 받으려고 곗돈 타는 순서를 맨 뒤로 미룬 최씨는 은근히 들떴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강남의 다복회 계주가 돈을 떼먹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마음이 급해졌다.“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계원들한테 전화도 돌리고 괜히 옆가게만 오락가락했죠.”좌불안석 열흘이 지나 결국 곗돈을 손에 쥔 최씨는 비로소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다.최씨는 “역시 쉽게 돈 버는 일은 없더라.”며 그간 마음 졸였던 소회를 드러냈다. 이재연 김민희 장형우기자 osca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강남 귀족계 다복회 피해액 최소 386억원  ☞곗돈 미지급=배임,무능력 계주=사기 ☞상계동판 ‘돈을 갖고 튀어라’… 150여명 100억 챙겨 잠적 ☞[20 & 30] 나의 취업 도전기 ☞[20 & 30]당신의 직장내 라이벌은 누구?   
  • 데뷔 10년 백지영 “발라드에선 햇병아리” (인터뷰)

    데뷔 10년 백지영 “발라드에선 햇병아리” (인터뷰)

    데뷔 10년차 백지영(31). 화장기 하나 없는 맑은 얼굴로 작은 농담에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아직 소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덧 한국 가요계에서 가장 롱런한 여가수 중 한 명이 된 백지영과 마주 앉았다. ”굴곡 많았던 10년이였죠. 특별한 감회라기 보다 동시대 가수들이 많이 없어진게 아쉬워요. 방송국에서 아이돌 가수들을 만날 때면 얘들이 저한테 90˚로 배꼽인사를 하더라고요. 마치 TV 속 옛날 가수를 만난 것처럼…. 에잇, 짜증나요! 하하(웃음)” 1999년 데뷔 이래 ‘부담’, ‘대시(Dash)’ 등을 히트시키며 ‘댄싱퀸’에 오른 그녀는 2000년 한차례 마음 속 풍파를 겪은 후 ‘아픔을 변신의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2006년 진솔한 가사를 담은 발라드 곡 ‘사랑 안해’, ‘사랑 하나면 돼’로 성공적으로 재기한 백지영. 그녀는 섹시 가수에서 발라드 가수로 완벽히 변신한, 한국 가요계 내 흔치 않은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월 성대 낭종 수술을 마친 백지영이 7집 ‘센서빌리티(Sensibility)’로 돌아왔다. 앨범명 ‘센서빌리티’는 음색적 변화로 한층 섬세해진 그녀의 음악 뿐만 아니라 ‘사람 백지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기도 했다. ◇ 성대 수술, 아픔을 변신의 기회로 - 컴백 소감은? 기대 반, 설레임 반이였어요. 새로운 목소리로 무대에 선 백지영을 어떻게 바라봐 주실까 걱정도 앞섰고요. 성대 수술 당시 가장 힘들었던 건 ‘음색이 변할까’가 아닌 ‘목소리를 잃어 무대에 서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였거든요. 지금 매 순간이 꿈만 같네요. - (1년 2개월 공백) 보다 충분한 휴식기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사실 못 쉬었어요. 성대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녹음에 들어갔고 아직 재활 치료 중이에요. 의사 및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겪을 아픔이면 단련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 (성대 수술 후) 목소리엔 어떤 변화가 있나? 무게감이 줄은 대신 음역대가 넓어져 감정 전달이 섬세해졌어요. 허스키한 음색이 줄어서 예전처럼 애절하고 처량한 느낌은 덜 할 것 같아요. 반면 호소력은 좋아졌어요. 병든 성대를 혹사하며 노래하던 때보다 한결 여과된 듯 편안하게 들리실 거예요. - 기존 창법도 바뀌었나? 아니요. 사실 의사는 성대를 많이 쓰는 제 창법을 계속 고수하면 재발 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주변에서도 가성 창법을 권유했고요. 하지만 30년 동안 부르던 창법을 바꾼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게다가 ‘백지영 본연의 음악색’ 마저 잃기는 싫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창법을 바꾸지 않아도 음색이 변했으니 자연스런 변화를 안게 된 셈이죠. 한편으론 고마운 변화죠.(웃음) ◇ 발라드 & 댄스, 2色 동시 활동 - 유독 ‘직설적인 제목’의 곡들이 많다. ‘사랑 안해’, ‘사랑 하나면 돼’에 이어 이번 앨범 곡 ‘총 맞은 것처럼’, ‘입술을 주고’까지…좀 그렇죠?(웃음) 사실 전 직설적인 제목을 안좋아해요. 특히 ‘총맞은 것처럼’은 헤어진 충격을 다소 자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됐어요. 반면 강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도 있고요. - ‘사랑 안해’와 ‘사랑 하나면 돼’는 연결선상의 느낌이 든다. 의도된 것인가? 맞아요. ‘사랑 안해’는 제게는 기존 댄스 가수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 준 소중한 곡이에요. 그래서 ‘발라드 가수’로서의 변신을 굳히기 위해 ‘사랑 안해-2탄’ 같은 느낌 곡을 만들었어요. 이번에도 주변에서 ‘비슷한 곡으로 가자’는 의견이 강력했어요. ‘대박 혹은 쪽박’을 쫓지 말고 ‘중박’이라도 내자는 의도였죠. 하지만 저는 싫다고 단언했어요. 스스로 지금은 ‘안정’이 아닌 ‘변화’를 추구할 시기란 걸 알고있기 때문이죠. 거짓말처럼 새 목소리를 얻게 됐는데 식상한 노래로 인사드릴 순 없잖아요. 도전해야죠.(웃음) - 타이틀 곡 ‘총 맞은 것 처럼’의 선정 이유는? 사실 앨범 완성될 때쯤 가장 마지막에 받은 곡이에요. 뒤늦게 애착을 가진 곡이 타이틀 곡이 됐죠. 방시혁씨 곡으로 처음 듣는 순간 다른 말이 필요 없었어요. 딱 ‘이거다.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뇌리에 박혔죠. 특히 후렴구 ‘구멍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라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멎는 듯 했어요. 이별의 아픔을 이만큼 진실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곡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망설임이 없었어요. - 쇼케이스에서 선보였던 댄스곡 ‘입술을 주고’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사실 이번 앨범엔 ‘2색 활동’의 욕심을 내볼까 해요. 기존 ‘부담’이나 ‘대시’를 좋아하셨던 팬분들을 위해 라틴 계열의 댄스곡 ‘입술을 주고’ 활동을 병행할 계획이에요. 지난 10년간, 댄스가수에서 발라드 가수로 차츰차츰 변모해 오면서 이제야 비로소 ‘백지영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보여드릴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 데뷔 10년, 7집이 갖는 의미는? 우여곡절 많던 10년 끝 7집은 제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변화’를 뜻합니다. 단지 롱런하는 여가수로 남고 싶은 열망은 없어요. 다만 10년 후, 그 누가 제 음악을 들어도 단번에 ‘백지영이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롱런하는 노래’로 기억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발라드 장르에선 이제 막 첫발을 딛은 ‘햇병아리’ 단계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 돼 ‘변함없는’ 가수가 될게요. 따뜻한 사랑으로 지켜봐 주세요!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휘청대는 실물경제] ‘환차손 직격탄’ 맞은 용산전자상가

    [휘청대는 실물경제] ‘환차손 직격탄’ 맞은 용산전자상가

    ‘죄송합니다.내부 사정으로 당분간 AS가 되지 않습니다.’ 23일 오전 서울 원효로2가 용산전자상가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수입하는 A사 앞.일주일째 굳게 닫혀진 셔터 앞엔 손으로 급히 적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회사는 일주일 전 사실상 사업을 접었지만 업계에선 믿기지 않는다는 분위기다.매출도 동종 업계 상위권에 들고,평판도 워낙 좋은 업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몇 년간 매출 상위를 지켜온 회사가 무너졌다면 버틸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이제 올 때까지 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高환율에 가격 급등 매출 폭락 환율 폭등과 경기 침체 여파로 용산 전자상가가 도산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특히 환차손의 직격탄은 수입업체부터 도·소매업체까지 누구 하나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오후 용산 전자랜드 3층 컴퓨터 상가.주말이면 흥정하는 소리가 가득했었지만,복도는 창고 안처럼 고요했다.상인들은 “손님이라곤 씨가 말랐다.”고 하소연한다. “저 복도 끝까지 사람하나 있나 보세요.하루 종일 한 대 팔았습니다.”컴퓨터 장사만 20년 넘게 했다는 이원영(40)씨는 오랜 경력만큼 거래 업체도 많아 인근의 부러움을 샀다.하지만 그는 다가오는 월세 날이 두려울 정도다.“3층에 집세 못 내는 가게들이 반 이상입니다. 10월부터 급등한 환율 탓에 IMF 때의 3분의 1도 못 파는 곳이 허다해요.”  과장일까.실제 환율 폭등은 컴퓨터 업계를 강타했다.국내 컴퓨터는 램을 제외한 대부분이 외국산 부품을 조립해 만든다.CPU는 미국,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 타이완에서,케이스와 단자 배선류 등은 중국에서 각각 수입한다.지난 9월 만해도 최고 사양인 CPU(인텔 퀴드코어 9400기준)는 32만원 정도면 살 수 있었지만 이제 10만원이 올라 42만원을 줘야 한다.그래픽카드,메인보드,케이스까지 환율만큼 안 오른 게 없다.2~3일 만에 개당 부품 가격이 무려 5만원 이상 뛰기도 했다.두 달 전 50만원 하던 조립PC가 지금은 70만원이나 하니 장사꾼들이 봐도 손님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옆 가게 조모(29)씨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한 대도 못 팔았다고 했다.실제 이날 둘러본 인근 20여 곳의 조립PC점에서 주말 동안 2대 이상을 팔았다고 답한 곳은 채 반이 넘지 않았다. 조씨는 “주말에 못 팔면 한 주 장사는 사실 끝”이라면서 “내년 봄까지 못 버티는 곳이 많을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상가의 소매상과 수입업체간 채권·채무 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다 보니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파산 사태는 이미 코 앞인 듯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등 일본 전자 제품 판매가 많은 전자랜드 2층 상황은 황폐할 정도다.원·엔 환율이 100엔당 사상 최고치인 1600원을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 ‘메이드인 재팬’을 고집할 소비자는 사라졌다. ●직원 줄이고 셔터 내리고  엔화가 두 달 사이 100엔당 1100원 선에서 1600원대 턱밑까지 폭등하면서 디지털 카메라 가격은 평균 25% 정도 올랐다.지난 9월15일 대당 30만 9505원하던 캐논 ‘익서스 860IS’는 23일 현재 40만 4685원(인터넷 쇼핑몰 다나와 기준)으로 30.7%나 뛰었다.가게를 접거나 직원 수를 줄이는 구조 조정 바람도 거세다.김모(46) 사장은 “3명이던 직원을 2명으로 줄였다.문을 닫아도 가게가 안 나가다 보니 주변 가게 수는 계속 줄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고(高) 영향으로 용산에서 정품 판매가 늘어나는 기현상도 일어난다.과거 상인들 사이 효자 노릇을 했던 무자료 상품 중간 상인(일명 나카마)’들이 취급하는 상품이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엔화 환율이 연일 뛰는 상황에서 뒤늦게 수입되는 무자료 상품들은 오히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상 이모(43)씨는 “과거 무자료 방식으로 들어온 상품이 60% 이상을 차지했다면 최근엔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엔고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더 팔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겨울 생각나는 ‘연탄시인’ 안도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겨울 생각나는 ‘연탄시인’ 안도현

    삼라만상이 침묵하고 쉬는 요즘이다. 잠시 추억의 창고 속으로 유영을 해본다. 어릴 적, 철부지 꼬마였다. 추운 겨울날, 내리는 눈이 마냥 좋아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그렇게 떠들며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어둠이 등을 떠밀었을 때야 겨우 집에 들어갔다. 몸은 어느새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연탄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지다. 그들에게 추위란 뼛속까지 에기에 연탄 한 장이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불쑥 화두 하나 던져보자. 인생은 연탄이라고. 왜? 답을 구하려고 한 시인을 만난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눈을 비비게 한다.‘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것이라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장도 되지 못하였지,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또 있다.‘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 느낌이 묵직하다! ‘연탄시인’으로 유명한 안도현(48)씨.‘연탄 한장’과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시구다. 낮은 목소리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구석진 진실을 조근조근 얘기해주기에 가슴 ‘찐하게’ 다가온다. 그는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낙동강’과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당선됐으니 올해로 문단 데뷔 27년을 맞는 셈. 문학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그가 요즘 동시세계에 푹 빠져 있다.1996년 ‘연어’ 이후 ‘어린 왕자’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를 꾸준히 써왔고 얼마 전부터는 동시의 ‘맑음터치’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맨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순서), 쾅쾅쾅쾅 뛰어가면, 그렇지, 일곱살짜리일 거야, 콩콩콩콩 뛰어가면, 그렇지, 네살짜리일 거야(위층아기) 등의 동시가 담긴 ‘나무잎사귀 뒤쪽마을’을 펴낸 데 이어 최근 ‘문학동네’에서 동시시리즈 발간 편집위원이 돼 동시 부흥에 앞장서고 있는 것. 전주에 살면서 행사 참석차 잠시 서울 온 그와 지난 주 만났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신지요. “강연이 많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좋은데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용어 반복의 괴로움도 있고 한 달에 절반정도는 그렇게 살고 있지요.” ▶동시쪽으로 방향을 바꾸셨나요. “대학(우석대)에서 시와 동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몇년 전부터 동시를 공부했고요. 같은 문학판 속에서도 아동문학이 약간 소외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아동문학가들이)열심히 글을 쓰는데 선뜻 책을 내려는 출판사는 별로 없고,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동시를 쓰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동시시리즈 편집위원인데 앞으로 어떤 결과가 이어지나요. “이번 주에 세 사람의 동시집이 출간되고,. 또 내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동시집이 나오게 됩니다. 기성 문학가들에게도 동시 쓰는 기회를 부여하고, 아동문학의 영역을 넓히는 역할이지요.” ▶시와 동시, 문학계에서는 구분을 짓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습니다. “장르란 세월이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식사할 때 깍두기나 겉절이도 먹고 싶은 것처럼 다 같은 김치가 아니겠습니까. 굳이 시다 동시다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시가 ‘연탄한장’과 ‘너에게 묻는다’인데 이 시를 쓸 당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다가 해직됐던 1990년대 초반에 쓴 시입니다. 그때도 겨울이었습니다. 제가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가을과 관련된 시를 써보라고 했지요. 다들 단풍, 귀뚜라미, 낙엽을 소재로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쓸쓸한 가을이면 연탄을 소재로 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했어요. 그 생각이 나서 ‘연탄한장’을 썼습니다. 또 궁핍한 내 자신에게 질문과 채찍을 던지기 위해 ‘너에게 묻는다’를 쓰게 됐지요. 성찰의 기회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두 시는 ‘안도현’ 하면 떠오르는 대표성이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출판계에서)선점하게 돼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사람들이 조금 더 연탄과 친해졌다면 고마운 일이고요. 겨울날 한번쯤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까. “많지요. 제가 13살 때 경북 안동에서 대구로 4촌형을 따라 이사해 자취방 생활을 했습니다. 연탄불에 고구마 구워먹고 라면 끓여 먹고 했지요. 물 데워 세수하고…, 결혼 이후까지 연탄생활을 했습니다.4촌형과 자취할 땐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을 뻔했던 적도 있지요. 또 빙판에 연탄재 뿌려 어린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이웃집 아저씨를 보면서 참 고마운 분이라는 추억도 있습니다.” ▶경북에서 태어나 호남으로 갔습니다. 까닭이 있었나요. “당시 원광대에서는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경우 4년 장학생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선생 등도 원광대 출신이지요. 이런 이유들이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1996년인가요, 교사직을 버리고 전업작가로 돌아섰습니다. 그때 밥 걱정이 안 되던가요. “당시 쓴 동화집 ‘연어’가 저를 부추겼습니다. 글만 써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또 해직됐다가 복직했더니 (학교에)변한 것이 별로 없어 곤혹스럽게 한 부분도 있습니다. 뭔가 하나를 포기하자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교직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또 마흔 넘으면 안정기조를 택하기 때문에 결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원래는 화가가 꿈이었지요. “중학교까지는 그랬습니다. 수채화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탐독한 책이라곤 만화가게에서 본 무협지와 몇 권의 소설뿐이었습니다. 고교 입학을 앞두고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가지런히 꽂힌 삼중당 문고를 접하면서 독서에 빠졌지요. 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인이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첫시집이 ‘서울로 간 전봉준’입니다. 왜 하필이면 전봉준인가요.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서 새우깡 먹으면서 소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거의 죽도록 맞았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었지요. 그때만 해도 골방에서 낭만문학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나 할까요. 시와 역사의 관계를 생각했고 마침 사귀던 지금의 아내가 국사학과를 다녔습니다. 한국근현대사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그 책 뒤편에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 사진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지요. 실패한 전봉준과 광주의 좌절이 오버랩됐습니다.” ▶동화집 ‘연어’는 100쇄가 넘었습니다. “13년째 매년 5만부 이상 팔리는 효자입니다. 국내를 떠나 타이완과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도 번역출간됐지요.” ▶시 쓰는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에겐 삶의 자극입니다. 독자들한테는 따뜻한 라면국물이라고나 할까요. 쇠고기 국물이 아닌…, 또 문학하는 일은 연애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삶을 집중시킬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기 때문이지요.”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선 술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소주 100잔 마신 다음에 한 편의 시를 쓰고, 두번째는 연애를 많이 해야 돼요. 그래야 사물에 대한 감정이 생기거든요. 세번째는 시집 열권 정도 읽고 나서 시 한편을 써야 합니다. 시 쓰는 일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세상 보는 눈입니다.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감싸는 정신의 힘이지요.”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빈둥거리며 사는 것입니다. 느림과 게으름의 시간을 갖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나겠지요.” 그러면서 강연 등 외부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내년 초 발간될 ‘연어’ 속편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서 동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인다. 다음 주에는 북한에 가서 장수군에서 제공한 사과나무를 심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평양에 다섯번 정도 다녀왔다는 그는 내년까지 10㏊ 면적에 1만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존경하는 사람으로는 ‘적막강산’의 백석(1912~1995) 시인을 꼽았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안도현은 누구 1961년 경북 예천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경북대 사범대 부속중학교와 대구 대건고를 졸업했다.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됐다. 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1985년 2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989년 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1994년 3월 전라북도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됐으나 2년 뒤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돌아섰다. 현재는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있다.1996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2000년 원광문학상,2002년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모닥불’(1989),‘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그리운 여우’(1997),‘바닷가 우체국’(1999),‘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등의 시집과 ‘연어’(1996),‘짜장면’ 등 어른을 위한 동화집,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동시집 ‘나무잎사귀 뒤쪽마을’(2007년) 등이 있다.
  • 진이한, 쉽게 지는 별 아닌 배우를 꿈꾼다

    진이한, 쉽게 지는 별 아닌 배우를 꿈꾼다

    MBC 주말연속극 ‘내인생의 황금기’에서 주인공 이기 역에 출연 중인 배우 진이한(본명 김현중).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 때문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대 졸업 후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극 중 ‘이기’는 실제 진이한과 닮아 있었다. # “쉽게 지는 별이 되긴 싫었다” 다수의 CF와 ‘루나틱’, ‘체인지’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쌓은 배우 진이한은 대학 졸업 후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는 ‘내인생의 황금기’의 ‘이기’와 닮았다.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진이한은 대학로를 다니며 오디션을 봤고, 2001년 뮤지컬 ‘UFO’를 통해 연기자로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윤정희, 서지혜, 이윤미, 이윤지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낸 KBS 2TV ‘토요일은 즐거워-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에 출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일순간에 사라지는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쏟아지는 러브콜을 모두 거절하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시청자 앞에 섰다. “‘장미의 전쟁’은 분명 좋은 기회였어요. 그런데 그 때 만약 그 일을 계기로 일을 시작했다면 배우가 아닌 연예인이 됐을 거에요. 그렇기에 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연기였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느꼈기에 좀 더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 그리고 그때는 만약 이렇게 스타가 된다면 금방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 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죠.” 이후 그는 여려 펀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고 현재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연이어 캐스팅 되며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윤계상, 아라 등이 출연한 MBC ‘누구세요’를 통해 얼굴을 알렸으며, 얼마전에는 소유진, 이영훈 등과 영화 ‘탈주’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현재는 MBC 주말 드라마 ‘내인생의 황금기’를 통해 시청자들과 매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간의 세월 동안 제 스로도 많이 성숙해졌을 뿐 아니라 배우로써 필요한 감정들도 많이 배웠어요. 물론 좋은 조건들을 뒤로 하고 돌아 섰을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 # “드라마 연기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작년 처음 드라마 ‘한성별곡’에 출연할 때만 해도 뮤지컬 식의 연기를 한다고 감독님께 많이 혼났어요.(웃음) 저도 모르게 뮤지컬 특유의 연기가 몸에 익었었나 봐요.” 그러나 그는 ‘한성별곡’ 출연 이후 무대 위가 아닌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느껴보지 않은 이는 절대 뮤지컬의 매력을 알 수 없죠. 배우와 관객이 서로 교감하고 호흡할 수 있는 데 뮤지컬만큼 좋은 것이 없어요. 지금은 전 뮤지컬에서 잠시 물러나 있지만, 앞으로 뮤지컬이 대중화 되길 바래요.” 그리고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또 다른 연기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영화 ‘탈주’와 드라마 ‘내인생의 황금기’를 동시에 촬영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열정과 노력은 그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해줬다. “실제 군에 있을 때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조교였어요. 그런데 영화 ‘탈주’에서는 탈영병이 되어 산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는 진지한 캐릭터를 맡았죠. 밤에는 산을 뛰어 다니고 낮에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며 뛰어다니니 초반에는 캐릭터를 잡는 데 어려움도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는데 영화 촬영이 끝나더라고요.(웃음)” 현재 주말드라마 ‘내인생의 황금기’ 촬영에 푹 빠져 있는 진이한은 문소리, 이소현 등의 주인공들의 투병생활과 이혼 등 자칫 어두울 수 있는 극 중 상황에서 다소 코믹한 캐릭터로 등장 매력을 선사 하고 있다. “극 중 캐릭터가 너무 코믹스러워져 이번 작품이 끝나면 시트콤 섭외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되요.(웃음) 그래도 그 동안 절 차갑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기’로 인해 절 친근하게 생각해 주시는 이들이 많아 다행이에요.”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배우 진이한.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것이고, 또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깔깔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점 1. 계단을 두 단씩 오른다. 2. 자판기에서 커피가 다 나오기도 전에 컵을 잡고 기다린다. 3. 길가다 깡통 따위가 보이면 발로 찬다. 4. 남자가 참석한 술자리에선 항상 군대 얘기가 나온다. 5. 전철에서 내리면 뛰어간다 . 6. 택시를 타고 갈 때 창밖은 보지 않고 미터기만 보고 있다. 7. 자판기에서 거스름 돈 뺄 때 레버를 2번 이상 돌리거나 누른다.●철부지 딸 딸:“아빠, 나 결혼할래요.” 아빠:“너 그 사람을 사랑하니?” 딸:“죄송하지만 아빠, 그건 제 일이에요.” 아빠:“그럼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하니?” 딸:“그건 그 사람 일이고요.” 아빠:“그러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너희는 학생이라서 돈도 없고, 집도 없잖아.” 딸:“그거야 아빠 일이죠.”
  • [주말탐방] 건설 현장 3인의 여전사

    [주말탐방] 건설 현장 3인의 여전사

     금녀의 벽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성에게 건설분야는 여전히 문턱이 높은 곳입니다.거친 말투와 험한 현장,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한계가 매일매일 생기는 그런 곳입니다.최근 건설 현장에서 여성들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건축에 관심 깊은 여학생들이 늘고 있고요.하지만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은 극히 드뭅니다.한 대학 토목공학과 여학생 비율을 보면 최근 10년간 100명 가운데 여학생이 10명을 넘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실제로 현장에서 뛸 준비가 된 여성은 적다는 뜻이죠.건설회사도 비슷합니다.여성 신입사원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행정,공무를 맡는 것이 대부분이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타워크레인 기사 지남순,한국수자원공사 김형숙 과장,GS건설 백소영 과장은 그래서 더욱 진귀한 존재입니다.여성 특유의 강인함과 섬세함으로 건설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그녀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타워크레인 기사 지남순씨   상공 130m 한평(3.3㎡)남짓한 공간.이곳이 제가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입니다.타워크레인 기사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죠?아파트 같은 높은 건물을 지을 때 각종 건축 자재를 옮기는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일을 합니다.현재 은평뉴타운 금호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요.이 현장에는 고공 타워크레인 10대가 있는데 기사들 가운데 경력 16년의 저 지남순(49)이 최고참 베테랑이랍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나만의 일을 갖고 싶었고,마침 타워크레인 기사를 보고 “멋지다.”라고 생각한 것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타워크레인 꼭대기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마치 제가 어미새가 된 느낌입니다.철근 같은 건축자재를 건설 현장으로 날라다 주는 게 마치 어미새가 새끼새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는 것 같거든요.어쩌면 이 분야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것도 어미새의 마음으로 행여나 다치지는 않을지 조심조심 꼼꼼하게 일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국에 1500명 정도 되는 타워크레인 기사 가운데 여자가 300명쯤 됩니다.전문기술이어서 보수나 대우에 있어서 남자들과 비교해 전혀 차별을 받지 않습니다.현장에서도 여자들이 집중도가 높고 섬세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입니다.하루종일 타워크레인에 있으면서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은 딱 한번 점심 시간뿐입니다.가끔 타워크레인으로 먹을 것을 배달 받기도 합니다.그러다가 갑자기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고요.꾹 참든가 아니면 작은 용기 같은 곳에 알아서 해결해야죠.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도 직업병이 있습니다.매일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팔다리가 자주 아프죠.또 늘 긴장한 상태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거나 어깨가 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공에 하루종일 떠있다 보면 가끔 외로워질 때도 있습니다.오로지 지상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는 무전기뿐이죠.마땅한 대화 상대도 없이 하루종일 혼자 지내야 하는 제게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입니다.요즘에는 DMB TV를 보는 분들도 있지만 TV에 정신이 팔렸다가 여차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점도 있습니다.타워크레인에 오르면 멋진 경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지금 일하고 있는 은평 뉴타운지구에서는 북한산의 절경을 맘껏 감상할 수 있지요.한강변 오피스텔을 지을 때는 한강 다리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하는 행운도 누렸죠.여러분도 타워크레인 기사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수자원공사 토목공사 감독 김형숙씨  한강 바닥을 가로질러 수돗물이 공급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서울 성산대교 아래 한강 바닥에서 땅속으로 43m,길이 1.3km,직경 3.8m에 이르는 거대한 수도관(터널)이 묻혀 있습니다.  지난 5월 준공된 이 하저(河低)터널은 공사 기간만 3년이 걸렸습니다.국내 수로공사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공사였습니다.첨단 무진동·무발파 터널굴착(TBM) 공법을 사용했는데 혹시라도 바위를 만나거나 하면 공사를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터널을 뚫어야 했습니다.그래서 사전에 지질조사를 완벽하게 끝냈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사를 성공시켰습니다.이 공사로 내년부터 고양·파주 등 수도권 서북부 주민들에게 깨끗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죠.이 공사의 총 감독을 맡았던 주인공이 김형숙(34) 과장입니다.한국수자원 공사에서 첫 여성 현장 과장을 맡음과 동시에 한강 하저터널을 뚫으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처음엔 현장 근로자들이 “여자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옛날부터 터널공사 현장과 배에는 부정탄다고 해서 여자를 들이지도 않았는데 여자 감독이라니요.  하지만 꼼꼼하게 공정을 챙기는 제 모습을 보고 근로자들도 조금씩 달라지더군요.체력면에서도 결코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단 한번도 회사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았고,다음날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죠.여기에 남자들에게는 부족한 센스와 눈치까지 무장하고 나니 결국 아무도 저를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더군요.  3년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수로터널 관통식 날 너무 감격스러워서 근로자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습니다.시공 회사도 “여자 감독인데 대단하다.덕분에 공사를 무사히 마쳤다.”고 하더군요.1997년 신입 사원 때 근로자들의 반대로 터널 공사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를 떠올리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 정수장 건설 현장을 감독하고 있습니다.내년 8월 정수장이 준공되면 이 지역 주민들에게 하루 35만t의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대학(93학번) 토목공학과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고,입사할 때도 홍일점이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토목·건축학과에 여학생이 많이 늘었고,건설현장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여사원이 많습니다.하지만 아직은 여성들이 건설 현장에 나오는 것을 남다른 눈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남자 못지않다는 평가 대신 “남자 열 명 몫을 한다,남자 열 트럭 갖다줘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곧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GS건설 건축 시공기술과장 백소영씨  아침 6시30분.아직은 바깥이 어둑어둑한 이 시간.저는 13년째 매일 아침 공사현장으로 출근합니다.요즘 갑작스러운 추위에 공사장에 부는 ‘돌바람’은 한결 더 매서워졌습니다.  제 이름은 백소영(39).현재 GS건설 영등포 경방 K프로젝트 건설현장의 기술시공 과장입니다.현장의 건축기술과 관련한 책임자라고 할 수 있죠.제가 책임지고 감독하는 인원이 작업 인부까지 포함하면 400명 정도 됩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안전벨트,안전모,각반(바지자락이 걸리지 않게 모아주는 밴드),안전화(신발) 등을 착용하고 나면 이제 일할 준비 끝.  6시 50분,공사현장의 직원들과 안전 체조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이 공사장에는 하루 1500명이 투입되는데 한꺼번에 체조를 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장관이지요.  이어 현장을 돌면서 점검을 합니다.설계대로 제대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지,레미콘은 잘 뿌려지고 굳고 있는지,위험하게 방치돼 있는 장비는 없는지 건물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닙니다.  과장으로 진급하기 전 기사라는 직책일 때는 인부들을 대신해서 레미콘을 붓거나 방수턱에 흙 손질을 직접 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그때 별명이 ‘백기사’였죠.  예전엔 여자 기사라고 해서 얕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차마 여자라서 때리지는 못하고 멱살을 잡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겁을 주거나,손가락으로 얼굴을 꾹꾹 찌르면서 모멸감을 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이제 모두 옛날 이야기지만요.  지금은 인부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더라도 소주 한잔 하면서 풀거나,“삐쳤어요?”라면서 제가 먼저 말을 걸기도 합니다.이렇게 사람들끼리 부딪치는게 현장만의 매력이죠. 제 말투가 군인 같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예,그렇습니다.”“~합니까.” 같은 말들은 현장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저절로 몸에 밴 습관인데 말이죠.  90년 입사 당시 여자 동기가 저를 포함해 2명이었는데 지금은 저만 남았습니다.일이 좋아서 살다 보니 아직 결혼도 안 했습니다.하지만 제 손으로 지은 아셈 컨벤션센터(서울 삼성동)나 LG텔레콤 사옥(서울 가리봉동) 등을 떠올리면 결혼보다 아직은 현장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퇴근은 오후 10시를 넘깁니다.하지만 저는 작업복이 참 좋습니다.이 옷만 입으면 가슴이 쫙 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내일 아침은 더 어둡고 춥겠지만 전 6시30분 어김없이 현장으로 출근할 겁니다.지난 13년동안 그래왔듯이.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추신수 “타점 찬스 너무 좋다”

    추신수 “타점 찬스 너무 좋다”

    켄 그리피 주니어의 타격 자세를 흉내 내며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꿈꾸던 만 18세 청년이 있었다. 8년의 시간이 흘렀고 청년은 그리피를 버렸다. 로드리게스도 아니다. 대신 청년은 어른이 됐다. 추신수(2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 2008년 14홈런 66타점 타율 0.309. 아메리칸리그 9월 MVP. 메이저리그란 세계에 맛을 들인 그를 지난 15일 일산에서 만났다. (주 = YTN 라디오 ‘송재우의 스포츠 퍼레이드’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 인터뷰 전 - 아들(무빈)이 판박이던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딱 반반 닮았다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 - 참 장난꾸러기 같이 보여요. 자제가 힘듭니다. 제가 힘으로도 못 당해요. 다행히 고집은 안 부립니다. - 저번 입국 때 아내 때문에 난리 났었다고. 아 그런 거 아닙니다. 평범하죠. 그런데 인터뷰 쉬운 질문 할 거죠? (웃음) ◆ 인터뷰 [1부] 추신수가 말하는 2008년 - 추신수 선수 반갑습니다. 본인이 시즌 정리를 한 번 해주세요. 후반기 성적이 잘 나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올해는 팔꿈치 수술을 해서 적응기라 생각하고 몸 건강히 마치는 게 목표였는데…. 기분 좋았습니다. - 시즌 중 좌완 투수에게 고전할 때 구단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경기 끝나고 피칭 머신을 좌완 모드로 설정한 후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고. 그 경기에서 삼진 3개 당했습니다. (9월 18일 미네소타 트윈스전) 마지막 두 번 모두 좌완 투수에게 삼진을 먹었죠. 내 자신이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경기 바로 후는 좀 과장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와서 많이 치긴 했습니다. 정확한 수는 잘 모르겠지만 2시간 이상 때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치른 경기가 처음으로 홈런 2개 기록한 날이에요. (2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 좌완 투수한테 3점 홈런 뽑았습니다. (케이시 포섬) 그러니까 덕아웃에서 동료들이 이제 매일 피칭 머신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 안 된다고 그랬죠. (웃음) - 올해를 수술 적응기라고 생각했다면 내년 시즌은 어떨 것 같아요? 구단 트레이너. 코치. 감독 전부 수술을 하니 완벽한 상태가 되기까지 2년을 보고 있더라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내년에 100%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사실 수술 후 재활 기간이 일반적인 선수보다 2∼3개월 정도 짧았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했죠. 내년 시즌에도 다른 사람들이 안 된다고 지적할 때 된다는 걸 또 한 번 증명하고 싶어요. 수술 이전보다 더 나은 몸 상태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 기대를 밑돌은 구단 성적이 기회가 됐습니다. 잘 살렸다고 보나요? 저는 충분히 할 건 다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재승격 지시가 왔을 때 감독이나 단장이 삼진을 하루에 4개 먹든 5개 먹든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어요. 일단은 팔꿈치가 정상화되도록.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올 시즌을 끝내면서 저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풀 타임으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죠. 요즘 트레이드 소문이 들리고 상대 선수도 언급되는데 제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환경은 어디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도루 같은 경우 시도 자체가 적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항상 뛰고는 싶습니다. 그러나 ‘그린 라이트’라고 하죠. 마음대로 도루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없었습니다. 우리 구단은 그래디 사이즈모어만이 그린 라이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인을 받고 뛰어야 하는데…. 상황이 안 맞았습니다. 내년 시즌에는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좀 더 도루 능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감독과 의견 조율을 했습니다. 물론 아직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발전해야 하지만 도루는 특히 감안을 많이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2008년 도루 4개. 도루 실패 3개) - 무엇보다 올 시즌 가장 고무적인 점이라면 장타력 향상이었습니다. 과거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정확도 위주의 스윙을 했어요. 언제나 속구를 노렸지만 변화구가 오면 맞히는 스타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삼진을 당하더라도 제 스윙을 하니까 좋은 타구와 장타가 자주 나오더라고요. - 구단 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혹은 조언을 잘 해주는 선수가 있나요? 클리블랜드란 구단이 선수들 간의 의사 소통이 원활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든 갓 올라온 신인급 선수든 대화를 많이 하고 농담도 하면서 잘 어울리죠. 한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지나치지 않고 동료들이 도와줍니다. 제게는 타자 쪽에서 사이즈모어. 투수는 클리프 리가 그런 존재예요. 리는 좌완 투수로서 좌타자를 상대하는 순간의 패턴들을. 사이즈모어는 같은 좌타자로서 느꼈던 경험들을 알려 주죠. 후반기 성적 안에는 이들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 중심 타선에서 2008년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중심 타선 어떤가요? 메이저리그에서 3∼5번을 맡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담이 되죠. 하지만 올해 사고 자체가 정말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2번 타순을 선호했지만 지금은 주자 있는 상황이 너무 좋습니다. 저도 모르는 근성이랄까 그런 게 나오고 만루라면 ‘앞 타자야 점수 내지 마라. 내가 낸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습니다. (웃음)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늘의 눈] 심은경 주한 美대사님께/김미경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심은경 주한 美대사님께/김미경 정치부 기자

    여성 첫 주한 미국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님이 한국에 오신 지 2개월이 다 됐네요.‘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더 친근한 대사님이 지난 50여일간 보여준 한국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벌써 한국에 오래 계셨던 것처럼 편안함도 느껴지고요. 그래서일까요? 대사님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을 잘 아는 만큼 한·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겠죠. 특히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 관계의 앞날에 대해 여러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대사님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사님이 오신 뒤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이 늦게나마 미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17일부터 국민들이 비자 없이 90일 내 미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지요. 비자 신청을 위해 새벽부터 주한 미대사관을 찾아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사라지겠네요. 정부는 2011년 방미 한국인 관광객 수가 120만명이나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는 지난해(80만명)보다 50% 늘어난 규모라고 하네요. 그만큼 인적 교류도 늘겠지만 ‘일방통행’이 돼서는 안 되겠지요.VWP와 함께 한·미 정상간 합의한 대학생 연수·취업프로그램(WEST)도 내년부터 잘 운영되도록 대사님이 많이 신경 써 주세요. 그동안 비자 신청시 미대사관 직원들의 ‘고자세’와 ‘불친절함’이 회자되곤 했는데 이젠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래도 자녀 유학 때문에 미국에 가는 ‘기러기 부모’들은 비자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해요. 또 VWP 허가사이트에서 거부돼 비자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대사관 직원들을 독려해 주세요. 미대사관은 한국인들에게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먼저 심어줄 수 있는 곳이니까요. 미대사관의 영사 업무가 줄어들면 직원들도 한·미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더욱 합리적으로 일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김미경 정치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유니폼 내려입어 골키퍼 시야 가리는 엽기 전술

    전반 39분,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1부리그) 카타니아의 공격수 쥐세페 마스카라(카타니아)가 페널티지역 앞 왼쪽에서 프리킥을 차려는 순간이었다.팀동료 지안비토 플라스마티가 상대 수비수들과 자리를 다투던 도중 이상한 행동을 했다.팬티가 다 드러나도록 유니폼 하의를 잡아당겨 무릎까지 덮은 것.이런 행동 때문에 골키퍼 시야가 가린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공은 그물 안으로 빨려들어가 카타니아는 2-1로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 17일(한국시간) 정규리그 12라운드로 토리노에서 열린 원정경기 도중 일어난 일이다.리그 7위에 올라 있는 카타니아 코칭스태프는 이를 새로운 전술이라고 두둔하기까지 했다.  카타니아는 마스카라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2로 이겼다.프리킥에서의 괴이쩍은 패션 전술이 승리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 수문장인 월터 젱가 감독이 훈련 시간에 선수들에게 알려줘 성공한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피에트로 로 모나코 구단 사무총장은 국영 RAI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젱가 감독이 훈련 도중 항상 연습시킨 전술”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심판운영진 출신인 파울로 카사린은 “스포츠맨십에 어긋날 뿐만아니라 나쁜 취향”이라고 마뜩찮아 한 뒤 “심판들이 더이상 그냥 보고 넘겨선 안되는 트릭”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도 로 모나코는 “트릭이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네요.반칙 여부는 심판에게 맡기면 될테고 그렇지 않다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라고 되묻고는 “좋은 취향이란 것도 상대적”이라고 넘겼다고 통신은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30] ‘직장인들의 樂’ 점심 시간

    [20&30] ‘직장인들의 樂’ 점심 시간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직장인들에겐 점심시간이 있다.복잡한 업무를 제쳐놓고 누리는 잠깐의 여유는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낮 12시가 가까워질수록 직장인들의 손놀림은 바빠진다. 온라인 메신저로 친한 동료들과 약속을 잡기도 하고,인터넷에서 회사 근처 맛집을 검색하기도 한다. 불황으로 인한 얄팍한 주머니사정,점심 메뉴를 놓고 동료들과 벌이는 실랑이,점심시간에 못다이룬 로맨스까지…2030 직장인들의 점심메뉴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경기 불황의 파고는 직장인의 점심 메뉴에 가장 먼저 들이닥쳤다.허리띠를 졸라맨 직장인들은 밥값부터 줄이기 시작했다.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김모(37)씨도 예외는 아니다.그는 매일 점심마다 부원들의 밥값을 대신 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회사의 긴축경영으로 법인카드 사용도 금지됐는데,선배가 밥값을 내야 하는 관행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지갑을 여는 것이다.팀원 5명의 밥값을 내느라 한 달에 50만원이 날아갔다.머리를 쥐어뜯던 김씨는 ‘도시락’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점심 때가 되면 김씨는 도시락을 싸왔다며 식사 대열에서 쏙 빠졌다. ●신입사원 환영회때도 ‘더치페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맞벌이를 하는 김씨의 부인 정모(35)씨가 “힘들어서 못 싸겠다.”며 손을 놓아버렸다.다시 빈 손으로 회사에 출근하게 된 김씨는 점심을 먹으러 우르르 몰려가는 팀원들을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김씨는 “아무리 선배라지만 한 사람이 밥값을 전부 내는 건 요즘 같은 불황에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소규모 벤처회사에 다니는 황모(22)씨는 몇 달 전 처음 입사한 날의 점심시간을 잊지 못한다.사장이 점심시간에 신입사원 환영회를 하자며 회식을 제안했고,황씨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오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드디어 점심시간.몇 명 안 되는 회사 사람들을 이끌고 사장은 어디론가 갔다.사장이 들어간 곳은 회사 근처의 한 가정식 백반집.성대한 환영회를 기대했던 황씨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그래도 곧 마음을 바로잡으며 메뉴보다는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모였다는 데 의의를 찾자고 생각했다.  식사시간은 화기애애했다.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사장 이하 전 직원이 지갑을 꺼내 더치페이를 하고 있는 것.황씨도 5000원을 보태야 했다.“더치페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그래도 신입사원이 들어온 첫 날인데,저한테까지 밥값을 내라고 하니까 서운하더라고요.” 이제는 더치페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는데도,첫 날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고 황씨는 전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박모(30)씨는 “그래도 밥값은 못 줄인다.”는 생활 신조를 갖고 있다.월급의 50% 이상을 밥값으로 지출하는 그의 카드명세서에는 서울 시내 유명한 밥집과 커피 전문점의 이름이 줄줄이 찍혀 있다.점심시간에 남들보다 일찍 회사를 빠져나와 삼청동,이태원 등지의 점찍어둔 맛집에 가는 게 오전의 주요 일과다. 박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에 뭐 먹나,점심을 먹고 나면 내일 점심엔 뭐 먹나 생각하는 게 나만의 작은 행복”이라면서 “이런 행복을 포기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고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오히려 그의 식비 지출을 증가시켰다.그동안 밥값으로 쓰느라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 돈이 한 푼도 없는 탓이다.잃은 돈이 없기에 그는 더 자유롭다고 말했다.“지난해 펀드가 잘 나갈 땐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그런데 주위 동료들이 구내식당 밥 먹으면서 아등바등 모아놓은 돈이 다 날아간 지금,맛있는 밥 행복하게 먹으면서 한 푼도 안 날린 제가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시락을 놓고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최모(33)씨는 도시락 웰빙족이다.그의 신념은 ‘무엇을 먹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아침엔 직접 짠 100% 유기농 오렌지주스와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를 먹고,저녁엔 유기농 과일과 생식을 먹는다.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최근 직장생활을 시작한 최씨의 고민은 점심이었다.동료들과 밖에서 먹는 점심은 너무 맵거나 짜서 위장에 자극적인 데다,원산지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무턱대고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와 중국발 멜라민 파동 등을 지켜보며 고심을 거듭하던 최씨는 급기야 도시락족이 될 것을 선언했다.동료들은 죄다 외식을 하니 왕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최씨는 “그래도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니 만족스러워요.혼자 밥 먹는 외로움쯤은 참아내야죠.”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초등학교 교사인 이모(27)씨와 김모(27)씨는 친구 사이다.같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로 배치받게 됐다.게다가 옆반 담임을 맡고 있어 인연이 깊은 둘에게는 딱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었다.이씨는 미혼이고,김씨는 기혼이라는 것.  학교에 급식시설이 없어 두 사람은 매일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점심을 함께 먹었다.하루 이틀 지나자 기혼자인 김씨는 이씨에게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혼자 사는 이씨의 도시락엔 항상 태국식 볶음밥,유부초밥 등 매일 다양한 메뉴들이 넘쳐났다. 반면 김씨의 도시락은 김치에 계란,멸치볶음이 고작이었다.결혼은 했지만 부부 교사로 맞벌이를 하는 탓에 아내가 도시락을 싸줄 겨를이 없었던 것.반면 요리를 좋아하는 이씨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직접 준비했다.미혼인데도 자신보다 훨씬 화려한 이씨의 도시락을 보고 김씨는 생전 처음으로 결혼한 것을 후회할 뻔했다고도 했다.“결혼했다고 해서 점심시간의 행복까지 보장받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맛집 전문가 된 사연은…  지난 7월 유명 보험회사에 입사한 유모(27)씨는 지점의 막내다.점심회식이 있을 때 식당에 예약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팀원 몇몇이 갈 때도 있고,보험영업사원들까지 합류해 30명이 넘게 갈 때도 있는데,동행자의 특색에 딱 알맞은 식당을 선택하는 게 그의 가장 큰 임무다.유씨는 “처음 입사해선 나이 따라,성별 따라 너무 다른 취향을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눈치가 빨라졌다.”며 흐뭇해했다.  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인 영업사원들과 회식을 할 땐 조용한 한정식집에 간다.주 메뉴는 샤부샤부나 수제비 등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아주머니들은 식사를 하고 나서도 오래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빙 시간이 긴 음식을 좋아한다.거기에 차나 과일까지 후식으로 나오면 100점 만점이다.부장이나 주임 등 상사들과 갈 때는 양이 많고 든든한 음식이 좋다.유씨가 자주 고르는 곳은 근처의 삼계탕집.함께 일하는 경리 임모(28)씨와 갈 때는 파스타나 샐러드바에 주로 간다.유씨는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다 보니 저절로 맛집전문가가 돼버렸다.”면서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친한 사람들끼리 먹는 점심이 제일 좋다.”고 했다.  맛집 전문가가 되는 것은 승진의 지름길이기도 하다.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모(28)씨는 동료들도 인정하는 맛집 전문가다.TV에 나오는 맛집은 이미 섭렵했고,남들이 모르는 맛집을 수십 군데 알고 있을 정도로 정통한 김씨다. 그는 회사에서 상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데,이유인즉 점심시간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상사들에게 맞춤형 맛집을 기가 막히게 안내하기 때문이다.김씨의 이런 재능은 지난달 사장에게까지 알려지게 됐다.중국에서 중요한 바이어가 왔을 때 김씨는 접대 장소로 자신이 알고 있는 비장의 한정식집을 제공했고,바이어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라며 매우 흡족해했다.사장은 “김대리 덕분에 계약을 따냈다.”며 크게 칭찬했다.김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업무에도 연결이 되니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며 호쾌하게 웃었다. ●보신탕에 날아간 로맨스  사내연애를 하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단둘이 오붓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그런데 이모(33)씨에게 그 점심시간은 씻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 있다.이씨는 얼마 전 신입사원 최모(26)씨의 ‘사수(멘토)’가 됐다.입사 초기에 일에 치여 고생한 경험을 한 이씨는 최씨를 최대한 배려해줬다.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주고,일도 나눠 하는 등 회사에 적응하는 걸 도와주려다 보니 자주 어울리게 됐다.자주 어울리다 보니 호감이 갔다.점심시간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파스타 가게 등 20대 여성인 최씨의 입맛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날,꽤 친해진 최씨에게 이씨는 먹고 싶은 걸 말해보라고 했다.그러자 최씨는 서슴없이 “대리님,저 보신탕 사주세요.”라고 말했다.이씨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여자가 개를 먹어서 놀란 게 아니라,평소에 우아하게 칼질하고 파스타를 돌돌 말아 오물오물 씹던 그녀의 고고한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보신탕 집에서 이씨는 삼계탕을 먹었다.집에서 키우는 개 ‘향숙이’를 생각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맞은편에서 들깨와 식초를 맛깔나게 섞어 고기를 찍어 먹는 최씨의 모습을 보며 이씨는 가슴이 내려앉았다.게다가 “사람들이 안 먹어서 그렇지,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거든요.우리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여기에 와요.”라고 말하는 최씨의 해사한 얼굴을 보며 이씨는 남몰래 키워온 호감을 미련없이 접었다.  김민희 이재연 장형우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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