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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스 레드 카펫에서 환대 받은 우고 차베스

    ’반미 반자본주의로 물든 베니스’  남미 대륙의 반미 선봉을 자처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1일(이하 현지시간) 막을 내리는 베니스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활보했다.또 최근 자본주의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발언한 ‘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감독도 출품작 ‘자본주의-사랑 이야기’를 들고 레드 카펫을 밟았다.  차베스 대통령은 7일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다큐멘터리 ‘국경의 남쪽’ 시사회에 참석차 스톤 감독과 어깨를 겯고 레드 카펫을 밟으면서 웬만한 영화계 인사 못지 않은 환대를 받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카지노 앞에 몰려들어 스페인어로 ‘환영 대통령’이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열광적으로 환호했다.차베스 대통령은 몰려든 사람들에게 꽃을 던졌으며 가슴에 손을 댄 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차베스는 “재탄생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스톤 감독은 이를 보러 와서 마침내 발견했다.”며 “카메라와 그 자신의 천재성으로 재탄생의 긍정적인 면을 포착해냈다.”고 말했다.  스톤 감독은 75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차베스 대통령을 비롯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콰도르,볼리비아,쿠바와 파라과이 정상들을 인터뷰했다.  스톤 감독은 차베스 대통령이 콜롬비아의 FARC 반군과의 인질 석방협상에 매달릴 즈음,베네수엘라를 처음 찾은 다음 지난 1월 다시 현지를 방문해 인터뷰했다.이어 4개국 정상을 차례로 찾아 인터뷰했고 쿠바와 에콰도르 정상과는 파라과이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영화를 완성했다.  그는 또 “어두운 면이라고요? 모든 면에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지요.그 친구가 좋은 일을 할 때 왜 어두운 면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최근 ‘캐러비언의 해적-희망의 축’을 집필한 파키스탄계 영국인 타리크 알리가 맡았고 스톤 감독은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경제학자 마크 바이스브롯의 조언을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깔깔깔]

    ●법정에서 법정을 나서면서 변호사가 어두운 표정의 의뢰인에게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당신은 무죄로 석방됐다고요. 평소처럼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어요. ” “알아요, 그렇지만 정말 곤란하게 됐어요. 내가 살던 아파트를 3년간 세놓기로 어제 계약을 해버렸거든요.” ●금실이 좋은 이유 아파트 10층에 사는 부부는 금실이 좋았지만, 9층에 사는 부부는 그렇지 못했다. 어느 날, 9층에 사는 남자가 10층에 사는 남자에게 물었다. “부부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이 뭐죠? 아주머니가 참 상냥하시던데요….” 그러자 10층 남자가 대답했다. “우리는 비교적 큰일에 대해서는 제가 결정을 내리고, 자질구레한 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내가 결정을 내리기로 약속했거든요.” “아~ 그래서요?” “결혼해서 지금까지 큰일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거죠!”
  • [와인 톡톡]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 인가?

    [와인 톡톡]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 인가?

    KBS 월화드라마 ‘2009 전설의 고향’이 마지막 2회를 남겨두고 있다. 올해 ‘전설의 고향’은 지난 8월 ‘혈귀’ 편을 시작으로 8회분을 방영했다. 매년 거듭되는 이 드라마는 어느새 한국형 호러물로 자리 잡았다. 1977년 시작된 지 32년만이다. 1989년 종영됐다 재개된 7년 후를 출발점으로 하면 13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 호러물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올해는 유독 심하다. 8편 대부분이 개연성과 선정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로부터 이토록 사랑받는 전통 공포물도 없다. 그렇다면 ‘전설의 고향’의 어떤 면이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일까? 또 서구형 호러물과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올해 ‘전설의 고향’의 마지막 방영분인 ‘가면귀’ 편(10회분)의 주인공을 맡은 연기자 지주연(26)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해 KBS 공채 탤런트가 됐다. 늘 남에 앞서 자신부터 납득시켜야 하는, 연예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이론가 유형의 그에게 물었다. 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인가? -촬영이 계속 진행 중인가요? “거의 끝났어요. 문경에서 계속 촬영했는데 벌에 쏘여서 퉁퉁 부었어요. 응급실도 가고요.” -위험한 부분은 대역이 하지 않나요? “보통 많이들 그렇게 하는데 저는 전부 제가 했어요. 물 속에 숨어있는 장면에서는 30kg짜리 쇠를 묶고 촬영하기도 했죠. 마님 살려주세요...라고 대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선 제가 힘들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독님이 겁 없다고 칭찬해주시는 바람에 힘이 나서 더 열심히 했죠. 부모님께서 문경까지 데려다 주시고 기다려주시고...제 주변분들이 고생 많이 했어요.” -주인공이면 귀신 역할일 텐데 어떤 귀신인가요? “이름이 가섭이예요. 20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사당패를 따라다니다 어름산이 돼요. 줄타는 사람있잖아요. 그러다 원님의 눈에 들어서 겁탈을 당해요. 첩으로 살면서 임신을 하는데 원님 부인한테 죽임을 당해서 복수하는 거죠. 진정한 예인이 되고 싶은데 신분이 천해서 양반들의 노리개가 돼야 했던 가섭이라는 여인이죠.” -벌써 주인공과 동화된 듯한 표정인데요? “평범한 대학생에서 연기자가 돼가는 저 자신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줬던 역할이었어요. 대학생때 연예인 데뷔 제안을 많이 받아서 한번은 기획사에 미팅을 간 적이 있어요. 조폭같이 생긴 사람이 절 보면서 ‘쟤 상품가치 죽이네’, 이러는 거예요. 무서운 표정으로요. 부모님 말씀이 맞구나, 싶었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그런데 왜 연기자가 됐어요?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KBS 공채 탤런트 시험 공고가 뜬거예요. 연기자도 기잔데 한번 넣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쳤는데 붙었어요. 최종 시험을 앞두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반대가 심하셨죠. 그런데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셨어요. 꿈이 가수셨거든요.(웃음)” (전설의 고향 10회차 주인공 지주연(오른쪽)과 극중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김지민(왼쪽). 두사람이 똑같이 닮아 촬영내내 스태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뭐가 전설의 고향 주인공과 닮았다는 거예요? “이런 대사가 있어요. 광대도 무시당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여인도 천것도 무시당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더 대우받고 환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부분에서 너무 감동받았어요. 공감도 했구요. 얼떨결에 연기자가 됐지만 지금은 이게 제 천직이라 여기게 됐거든요. 스스로의 꿈 앞에 비겁해지게 하는 여러 가지 제약이나 편견이 생길 때마다 이번 역할을 떠올리려고 해요.” -이번 촬영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오나 봐요? “촬영 자체도 그랬지만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어요. 찍으면서 한국형 호러물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이 되새겼고요.” -하긴, 2009년에 웬 전설의 고향이냐는 말도 많았잖아요. “서양 호러물들 보면 우연찮게 길 가다가 흡혈귀에게 물리고, 일본 귀신들은 무턱대고 눈 뒤집고 그러잖아요.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의 귀신들은 굉장히 정적으로 무서우면서도 항상 귀신이 된 유기적 사연들이 있어요. 제가 촬영한 편만해도 내가 왜 귀신이 됐는지를 보여주고 그 한을 푸는 과정을 묘사하거든요. 귀신에게도 이유가 있는 거죠. 게다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를 적절하게 녹였죠.” -아직도 ‘한’이라는 소재가 먹힌다는 얘긴가요? “네. 그래서 2009년에도 전설의 고향인거죠. 전설의 고향이 가진 핵심 경쟁력은 바로 한이에요. 이유 없는 귀신이 한명도 없죠. 다른 호러물과 달리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자기 분노를 다른 데다 표출하지 않죠. 어쩔 때는 복수하려고 나타났다가도 죽이지를 못해요. 정과 한이 미묘하게 섞이는 거죠. 한국 호러물은 끝에 가서 왠지 대동단결하는 면이 있어서 훈훈해요. 인간의 욕망과 갈등, 애증 같은 삶의 부분들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매력이 있어요.” *전설의 고향 주인공 지주연과 마신 와인 핑크(Yellow Glen, Pink) 호주의 돔페리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옐로우글렌. 잔 속에서 정교한 거품을 내는 부드러운 핑크색 발포성 화이트 와인이다. 신선한 레몬향과 함께 라임과 베리의 느낌이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다. 빈티지가 없는 넌빈티지 와인으로 시중에서 소매가 3만 5천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여유로운 브런치나 데이트용 식전주, 혹은 디저트주로 어울리며 해산물 요리와 과일, 초콜릿류에 곁들이기 좋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 와인협찬=금양인터네셔날, 장소협조=더 가브리엘(02-322-7167)@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포미닛, 부모님 앞서 눈물 펑펑… “자랑스런 딸 될래요” (인터뷰)

    포미닛, 부모님 앞서 눈물 펑펑… “자랑스런 딸 될래요” (인터뷰)

    데뷔 세 달만에 실제로 ‘핫 이슈’가 된 다섯 소녀들, 포미닛(4minute, 지현·가윤·지윤·현아·소현). 데뷔 전 포미닛은 원더걸스 전 멤버였던 현아의 유명세 덕에 ‘현아 그룹’으로 소개됐지만, 이제 그녀들을 그렇게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첫 타이틀곡 ‘핫 이슈’의 성공은 최근 발표한 두 번째 앨범 ‘포 뮤직’(For Muzik)에 강한 자신감을 부여했다. ’프로’가 되기 위해 또래의 소소한 기쁨을 포기한 다섯 소녀들. 문득 해맑은 미소 저편에 감춰져 있을 ‘18세’ 소녀로서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가수를 결심하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고. 잠시 생각에 잠긴 다섯 멤버들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부모님’이란 세 글자를 꺼냈다. ”데뷔 전, 약 6개월 동안 멤버들과 합숙을 했어요. 고된 연습의 나날이 시작됐죠. 힘들 때 마다 부모님이 너무 보고싶고 가족들이 그리웠지만, 꿈을 위해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데뷔 전 날, 다섯 명의 부모님들이 딸들을 보러 깜짝 찾아오신 거예요. 부모님을 모시고 치룬 첫 데뷔 무대, 잊을 수 없죠.” (지현)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몸아 부셔져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단다. 하지만 돌아온 건 부모님의 웃음이 아닌 ‘눈물’이었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어주실 줄 알았어요. 우리 딸, 잘한다며….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어요. 어머니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거예요. ‘얼마나 연습했으면 그렇게 춤이 딱딱 맞느냐. 잘 견뎌 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저희들 모두 펑펑 울고 말았죠.” (소현) 원더걸스의 원년 멤버로 연예계에 일찍 입문했던 현아는 두살 아래 동생인 소현을 지켜보며 아팠던 마음을 고백했다. ”소현이는 우리 중에도 막내잖아요. 중 3이면 한참 부모님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나이인데…. 저희보다도 얼마나 부모님이 그립고 또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더라고요. 막내지만 가장 막내 같지 않은 멤버에요. 대견스럽죠.” (현아) 6개월 만에 부모님과의 재회. 데뷔를 앞둔 의미있는 날이었던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아뇨, 저희가 자꾸 마음 약해지는 모습을 보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어요. ‘애들 연습해야 하니까, 우린 이쯤에서 자리를 피해주자’면서요. 그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워 보였어요. 다섯 명이서 창가에 매달려서 부모님이 멀어져, 아주 안보일 때까지 ‘엄마!’라고 부르며 울었어요.” (가윤) 다섯 소녀들은 또래 소녀보다 너무도 빠른, 또 아픈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날, 다짐했어요. 정말 멋진 가수가 될 거라고. 부모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딸이 되서, 데뷔 전 날 흘렸던 많은 눈물도 아깝지 않은… 그런 우리들이 되겠다고 말이죠.” (지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선 길. 언젠가 TV를 보다가 ‘어린 소녀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쫓기 위해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안쓰럽다’했던 한 혹자의 말이 스쳐지났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 이에 포미닛이 남긴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가수들은 가슴 속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란 다섯 소녀들의 말이 귓가에 남아 떠나지를 않는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큐브 , 서울신문NTN DB@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배꼽 빠지네”…결혼식서 웃음터진 신부 화제

    “배꼽 빠지네”…결혼식서 웃음터진 신부 화제

    이렇게 유쾌한 결혼서약이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래를 약속하는 엄숙한 의식인 결혼식에서 웃음보가 터진 신부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신랑 앤드류 앵스트롬과 신부 멜리사 워렌은 주례를 보는 목사 앞에서 서로를 향해 선 채 반지를 교환하고 결혼서약을 따라 읽었다. 주례는 신랑에게 따라 말하라며 “나 앤드류 앵스트롬은 아내 멜리사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합니다.”라고 선포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식장은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주례의 말을 따라하던 신랑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합법적인’의 ‘로우풀리’(Lawfully)를 먹는 ‘와플리’(Waffle-y)로 발음하는 바람에 식장은 일순간 웃음바다가 됐고, 신부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식을 계속 진행하려고 했으나, 신랑이 “평생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고 농담을 덧붙이자 결국 신부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신부는 몸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본격적으로 웃기 시작했고, 이에 주례와 사회자 그리고 하객들까지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신부의 격한 웃음은 몇 분간 이어졌으나 주례의 권고로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 서약을 마칠 수 있었다. 웃음 바이러스가 퍼진 식장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영국 데일리메일 온라인판 등 언론에 소개될 만큼 관심을 끌었다. 사진=동영상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나눔바이러스 2009] “노인들 말벗 될 때 가장 행복”

    [나눔바이러스 2009] “노인들 말벗 될 때 가장 행복”

    “봉사활동을 하기 전까지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봉사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3일 오전 경기도 군포시 당동 성민요양보호사교육원. 치매나 노환을 앓고 있는 노인 20여명이 요양하고 있는 이곳에 갑자기 한바탕 윷놀이가 펼쳐졌다. 어린 시절 향수가 되살아 났기 때문일까. 노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데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두 명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윷가락은 힘차게 허공을 날았고, 윷말은 분주히 말판을 달렸다. 농협 요양보호사 양성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김영숙(48·여)씨와 강명순(57·여)씨가 이날부터 실습을 나와 노인들의 윷놀이를 도왔기 때문. 김씨 등은 노인들의 머리에 붉은색과 녹색 띠를 둘러 편을 나눈 뒤, 윷놀이를 진행했다. 윷가락을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떠는 노인이 있으면 함께 던져 줬다. 윷말을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는 노인들에게는 전략을 귀띔하기도 했다. 농협이 요양보호사를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 각 시·도 지역본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중 추천을 받아, 이들에게 총 240시간의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은 이론 및 실기 160시간·실습 80시간으로 구성되며, 과정을 모두 이수한 사람에게는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이 발급된다. 지난해에만 890명의 요양보호사가 배출됐으며, 올해는 880명이 과정을 이수 중이다. 이들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운 노인 간병 기술을 활용해 보건소와 요양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김영숙씨는 평소 봉사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돕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지난해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간병 방법을 배우기 위해 요양보호사 양성과정에 입문한 뒤 삶이 바뀌었다. 실습에서 만난 노인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움을 표현할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고독감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는 것은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됐다. 김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대학교 사회복지과에 늦깎이로 입학할 계획이다. 뒤늦게 배운 봉사활동에 흠뻑 재미를 붙인 것이다. 강명순씨는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요양 교육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산더미처럼 밀린 집안일을 마치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한번도 요양 교육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남편과 딸도 이런 강씨의 모습을 보고 감동, 이제는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강씨는 “노인 간병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결코 오래 할 수 없다.”며 “진심에서 우러나 노인들을 돌봐야만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나윤권 “데뷔후 첫 여친…내가 가수인지도 몰라” (인터뷰②)

    나윤권 “데뷔후 첫 여친…내가 가수인지도 몰라” (인터뷰②)

    가수 나윤권(25)이 ‘순수남’ 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나윤권은 최근 서울신문NTN과의 인터뷰에서 “데뷔 후에야 첫 여자 친구를 사귀어 봤다.”고 연애 경험을 털어놨다. 2004년 스무살에 데뷔한 나윤권은 총 6장의 발라드 앨범을 발표, ‘동감’, ‘기대’, ‘약한 남자’, ‘안부(Feat.별), 드라마 ‘식객’, ‘남자 이야기’ OST, ‘미행’ 등을 선보이며 감미로운 보컬색와 소소한 감성표현으로 사랑받아 왔다. 경기도 작은 도시에서 카레이서를 꿈꾸며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청소년 가창 콘테스트’에서 1위를 수상하며 갑작스레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나윤권은 “남녀공학 고교에 이어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지만 이성에 눈을 뜬 것은 가수에 입문한 후”라고 고백했다. ”고등학교 때 한 반에 남녀 비율이 1:6정도 였지만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 와서는 음악에 빠져 지냈고요. 그러다 보니 데뷔 후에야 첫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됐었죠.” 상대가 연예인이었는지 묻자 그는 “일반인이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하지만 ‘가수’로 인한 인연은 아니었다. 당시 여자친구는 자신의 직업이 ‘가수’인 줄도 몰랐다고. ”어느 날, 거리에서 제 노래가 흘러 나오는데 ‘저 노래를 부른 사람이 나야’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제 노래만 알았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나윤권’이란 사실은 몰랐던 거죠. 하하. 머 흔히 있는 일이라…(웃음).” 섭섭하지 않았냐고 묻자 나윤권은 “되려 연애하면서 장점(?)이 많았다.”며 웃어 보였다.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걸어도 못알아 보시는 분들이 대다수 였어요. 오히려 편안해서 좋았죠. 앞으로도 좋은 곡으로 알려진, 저보다 노래가 더 사랑받는 가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편 나윤권은 내일과 모레(5일 오후 7시, 6일 6시) 이틀간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가을맞이 콘서트를 개최한다. 약 1년 4개월 만에 팬들과 만나게 되는 이날 공연은 가을 밤에 어울리는 로맨틱한 공연으로 구성될 전망이며 평소 친분을 자랑하는 테이와 별, 린, 에이트 등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 무대의 화려함을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포츠 라운지] U-20 월드컵대표팀 공격수 일본 니가타 조영철

    [스포츠 라운지] U-20 월드컵대표팀 공격수 일본 니가타 조영철

    “친한 (이)청용 형이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걸 보니 심장이 뛰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조영철(20·알비렉스 니가타)이 까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한국축구의 기대주’ 조영철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대표팀에 유일한 10대로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19대회에서는 괌을 상대로 혼자 무려 10골을 터뜨리며 28-0 승리의 선봉에 섰다. U-20대표팀 훈련이 한창이던 최근 경상도 억양의 어색한(?) 서울말을 쓰며 조곤조곤 푸른 꿈을 말하는 조영철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나는 황금세대” 조영철은 울산 학성고 졸업반이던 2007년 ‘제2의 박지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일본 땅에 첫 발을 디뎠다. 어린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는 외로운 타지생활이 고될 때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날 원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두려움도 컸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지난해까지 J2리그의 요코하마FC에서 뛰던 그는 올 시즌 니가타로 이적, 당당히 J리그에 입성했다. 가장 기다려지는 건 홈경기. 조영철은 “니가타의 홈 경기장에는 매번 4만명 가까운 팬들이 오는데 그 분위기랑 응원이 정말 좋아요.”라며 설레어 한다. 5월에는 이적 후 첫 골이자 J리그 데뷔골을 쏘아 올려 관심도 높아진 상태. 귀여운 외모 덕분인지 ‘욘초르’라고 부르며 쫓아 다니는 여자팬들도 꽤 많다. 그는 우리나라 축구유학 3기다. 고교 1학년이던 2005년 축구협회의 지원으로 조범석(FC서울)·설재문(고려대)과 함께 프랑스로 1년 간 유학을 떠났다. FC메츠 유소년 팀에서 푸른 눈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주전으로 뛰며 U-16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유연한 발놀림과 볼 센스에 주눅이 들었지만 오히려 오기가 발동했다. 조영철은 “한국에선 잘 한다고 딱 3명 뽑혀서 왔는데 일개 유소년팀 애들보다 못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라고 말했다. 1년 간의 유학은 축구인생에 기폭제가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층 농익은 기량을 선보인 조영철은 학성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 일본 진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UEFA 챔스리그 우승이 꿈” 요즘 조영철의 머릿속에는 오는 24일 개막하는 이집트 U-20월드컵 생각뿐이다. 독일·미국·카메룬과 같은 조에 속해 가시밭길이 예상되지만 그는 오히려 태연하다. “작년에 올림픽 갈 때도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인데 주눅들면 어쩌지?’하고 걱정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다 똑같은 사람이더라고요. J2리그에서도 J리그가 두려웠지만 잘하고 있고. 어디서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린 나이지만 똘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쐐기를 박는 한마디. “거기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 유럽에 갈 기회가 온다면 더 좋겠죠.” 대뜸 목표를 묻자 “벤치를 지켜도 좋으니 대표선수로 남아공월드컵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현재 A대표팀에서 조영철과 같은 포지션은 이근호와 박주영. 형들과 싸울 자신이 있냐고 하자 “형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잘하고 싶다는 뜻”이라며 빙긋 웃는다. 이내 “진짜 꿈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하는 거예요.”라고 귀띔한다. 여느 선수처럼 그도 축구에 실증을 느낀 적이 있을까. 조영철은 “축구가 정말 재밌어요. 수비수 피하는 것도 신나고 골 넣는 것도 짜릿하고….”라며 화색이 돈다. 어쩌면 마냥 즐거울 만도 하다. 중1 때 2002한·일월드컵을 보며 축구에 올인하기로 한 그에게 ‘한국 축구의 레전드’ 홍명보 감독 밑에서 파주NFC의 잔디를 밟으며 뛰는 것은 ‘로망’이었다. ‘한국의 카카’를 꿈꾸는 겁없는 스무살 조영철이 오늘도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조영철은 누구? ▲출생 1989년 5월31일 울산 ▲체격 183㎝, 70㎏ ▲가족 조재현(51)·변귀옥(47)씨의 1남 2녀 중 막내 ▲학력 내왕초-(울산)학성중-학성고-요코하마 FC-알비렉스 니가타 ▲좋아하는 선수 브라질의 카카(공을 쉽게 차는 모습과 공격적인 플레이를 닮고 싶다고) ▲별명 욘초르(일본인들의 ‘영철’ 발음인데 친구들도 별명처럼 부른다고) ▲취미 MP3에 넣을 노래 검색(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G-드래곤) ▲이상형 예쁘고 착하고 내조 잘하는 여자. 김사랑·한가인 ▲경력 베이징올림픽대표팀·아시아축구연맹(AFC) U-19아시아선수권대표팀(이상 2008년), 20세이하 대표팀(2009년)
  • 나윤권 “테이와 동성애? 그냥 웃지요” (인터뷰①)

    나윤권 “테이와 동성애? 그냥 웃지요” (인터뷰①)

    나윤권이 테이와 자신을 둘러싼 황당무계한 루머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두 사람이 ‘친구 이상’이라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말. 나윤권과 테이가 무려 6박 7일 동안, 단둘이서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이러한 오해는 “강남 일대에서 두 사람이 같이 영화를 보는 모습을 봤다.”, “커피숍에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는 팬들의 제보가 잇따르며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묻자 나윤권은 웃음을 먼저 터뜨렸다. 그리고는 “정말 (태국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짓궂게 말문을 열었다. ”성향이 비슷할 것 같은(?) 두 남자가 ‘단둘이’, 그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태국’을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시나 봐요. 하지만 테이 형과 저는 정말 상상 속의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절대! 네버요. 같은 침실을 썼지만 침대는 두 개였으니까요.(웃음)” 두 사람이 가까워진 계기는 테이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윤권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부터 였다. 나이는 테이가 83년 생으로 나윤권 보다 한 살 위지만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나윤권과 테이는 소위 말하는 ‘가요계 짬밥’이 같고 (2004년 데뷔), 음악적 성향이 같으며 (감성 발라드), 둘 다 ‘미남형 가수’는 아니지만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훈남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넓은 인맥보다 깊은 만남을 중시하는 대인관계 가치관 덕분이라고. ”테이 형은 더욱 그래요. 모두에게 똑같진 않지만, 정말 자신이 마음을 열어도 된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죠. 의외로 세심한 면도 많아요. 그래서 일까요? 둘이서 식당이나 커피숍에 가면 몇 시간 수다는 기본이죠.” 대중들 속 남성 연예인 둘의 데이트라…. 간혹 팬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까. 나윤권은 “그럴 땐, 얼굴이 덜 알려진 제가 얼른 매니저 행색을 한다.”며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을 드러냈다. ”솔직히 함께 있으면 테이 형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제가 있는데 ‘사인해 주세요’라며 테이 형한테만 종이를 내밀면 형이 난처해하시죠. 그럴 땐 제가 얼른 매니저로 변신(?)해요. ‘죄송합니다. 저희 테이씨, 지금 식사 중이어서 안됩니다’하고요. 그럼 형이 껄껄 웃으시죠.” 사실 나윤권은 ‘동감’, ‘기대’, ‘약한 남자’, ‘안부(Feat.별), ‘뒷모습’, ‘미행’ 등 숱한 히트곡의 소유자지만, ‘보여주는 음악’이 아닌 ‘들려주는 음악’을 추구했던 까닭에 대중들은 그의 노래는 알아도 나윤권의 얼굴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섭섭한 마음은 없을까. ”진심인데요, 정말 너무 편안하고 좋아요!(웃음) 예전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도 알아보는 분들이 별로 없었어요. 저는 노래하고 공연하는 가수가 되고 싶었지, 스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 식상한 표현 같지만 지금도 무대 위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나윤권은 내일과 모레(5일 오후 7시, 6일 6시) 이틀간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가을맞이 콘서트를 개최한다. ’절친’ 테이를 비롯해 별, 린, 에이트 등 평소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동료 가수들과의 조인트 무대 및 스페셜 순서도 준비돼 있어 더욱 풍성한 공연이 될 전망이다. ”약 1년여 만에 여는 세 번째 콘서트네요, 지난 두 번의 콘서트가 여러분께 제 음악을 보다 가까이서 들려드리고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면, 이번 콘서트의 의미는 달라요. 지난 5년간 제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주신 여러분들의 크신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공연을 선사하겠습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커먼그라운드 “방송마다 前대통령 서거…특별한 인연” (인터뷰)

    커먼그라운드 “방송마다 前대통령 서거…특별한 인연” (인터뷰)

    ”저희가 방송 출연만 하면 전직 대통령님 두 분이 서거 하셨어요. 슬펐습니다. 저희에겐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거든요.” (리더 김중우) 단순히 ‘액땜’이라고 한다면, 올해 ‘훵크(Funk) 밴드’ 부문 1위상을 받아야 하는 비운의 열두 남자,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믿거나 말거나’란 말이 어울릴 법한, 커먼그라운드와 故 전 대통령 간의 생사(生死)를 오간 아주 ‘특별한 인연’ 이야기가 펼쳐졌다. ◆ 盧 서거에 녹화, 金 서거에 방송 5년 전, 국내 최다 인원인 12명·최고의 연주 전문가들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커먼 그라운드가 방송가에 진출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커먼그라운드는 매 공연 마다 매진을 기록, 유명세를 더하며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SBS ‘김정은의 초콜릿’, KBS 1TV 배철수의 ‘콘서트 7080’ 등 굵직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으로 부터 섭외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녹화나 방송날이 되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잇달아 서거했던 것. 물론 서거 특집 프로그램이 긴급 편성됨에 따라 커먼그라운드가 출연한 방송은 미뤄졌다. ’엎친데 덮친격’이란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약 한 달간 미뤄진 방송분이 전파를 타는 시각에는 ‘팝 대통령’ 마이클 잭슨까지 사망하는 ‘독한 해프닝(?)’도 일어났다. ”처음엔 얼떨떨 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겸허히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자꾸 반복되다 보니 걱정도 되더라고요.”(키보드 박민우) TV가 아닌 라이브 공연 위주로 활동해왔던 까닭에 커먼 그라운드의 방송 출연 횟수는 많아야 한 달에 두세 번. 유독 이 기한이 두 번의 서거 날짜와 정확히 겹쳤다는 건 미스테리한 부분이었다. 실제로 지난 주(8월 30일) 방송됐던 ‘배철수의 음악 캠프’의 녹화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이었으며 이날 녹화분의 방송 날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설명되지 않는 우연의 연속. “혹시… 생전 前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느냐?”고 묻자, 더욱 놀라운 이야기의 제 2막이 열렸다. ◆ ”생전 대통령의 기립박수… 생애 최고의 기억” 전 대통령과의 기억을 묻자, 잠시 숙연해진 커먼그라운드. 그들은 16대 전 대통령인 노무현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보컬 조대연은 지난 2004년 어느 겨울 날,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서 공연을 펼치게 된 영광스런 그 날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내 대표 CEO들을 비롯해 대통령님, 그리고 각계 각층의 귀빈들을 모시고 공연했던 대형 무대였어요. 관중들의 특성상 공연 전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죠. 그 분위기를 바꿔주신 분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어요.” 당시 커먼그라운드는 조수미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조대연(보컬), 지의섭(보컬), 김중우(색소폰), 어용수(트롬본), 김성민(트럼펫), 서대광(트럼펫), 조재범(퍼커션), 조득연(드럼), 김도용(베이스), JANE(기타), 박민우(키보드), RBS(랩) 등 12인조로 구성된 국내 최대 브라스 밴드 커먼그라운드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이뤄내는 환상적인 하모니는 고위급 인사들의 까다로운 음악적 취향을 충족시키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공연 후 반응은 예상을 빗나갔다. 먼저 박수라도 크게 치면 품위가 떨어지지 않을까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그 침묵을 깬 이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환한 미소로 몸소 일어나 저희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 주셨어요. 대통령께서 일어나시자 관객석에 있던 모든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죠. 대통령의 기립박수… 그 때의 벅찬 마음과 감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어려운 자리여도 즐길 줄 아는 분, 저희 커먼그라운드에게 ‘노무현’이란 석 글자는 ‘따뜻함’이란 단어로 남아있습니다.” (보컬 조대연) 인터뷰 말미,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라는 말로 이별을 고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의 한 단락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이 말이 진리하면, 커먼그라운드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은 ‘사후’에도, 그리고 팀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오직 악기를 통한 생(生) 라이브 뮤직만을 고집하는 열두 남자의 음악적 외길을 밝혀주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브이컴퍼니, 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깔깔깔]

    ●황당한 대답 1.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믿음 좋은 알바생의 말 “주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2. 피자가 먹고 싶어 피자배달을 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불고기 피자 라지 한판 하고요, 콜라 라지 한판 주세요.” 3. 롯데리아에서 근무하던 알바가 맥도널드에 첫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맥도리아입니다.” ●칭찬 한 여자가 옷을 모두 벗은 상태로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 몸매가 형편없어 보여요. 온통 군살이고 주름까지. 내게 칭찬할 만한 점은 없나요?” 남편이 한번 쓱 보더니 말했다. “당연히 있지.” 여자가 기뻐서 뭐냐고 묻자 남편이 대답했다. “시력은 좋은 것 같은데.”
  • 태고의 자연 간직한 노르웨이

    태고의 자연 간직한 노르웨이

    │오스달·베르겐(노르웨이) 박록삼특파원│노르웨이다. 누구는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고, 또 누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을 더듬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노르웨이는 마치 진초록색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숲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길이 이어진다. 마치 물빠진 갯벌에 갯 생명이 꿈틀거린 흔적인 듯. 땅 위에 내려 곁에서 보니 온통 10m는 훌쩍 넘어서는 자작나무들이다. 중간중간 연둣빛 감도는 벌판은 소와 양을 키우는 목초지가 있다. 사람의 흔적이다. 길 따라 흔들리는 차안에서도, 물 따라가는 배 갑판 위에서도, 오슬로, 베르겐 같은 도시 거리를 설렁설렁 걷다가도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대로 그림 속 풍경이 된다. 그 풍경 속에 도난, 분실, 폭행 등 걱정이 없는, 자연을 닮은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게이랑에르·노르·송네·하당에르·뤼세 등 5대 피오르 외에도 노르웨이는 곳곳이 피오르다. 대서양과 접하고 있는 서쪽 해안선 곳곳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도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수도 오슬로까지 온통 피오르 천지다. 피오르는 빙하로 깎여 깊숙이 파인 만(灣)의 해안을 일컫는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노르웨이를 찾는 순간, 이미 피오르 지형 한복판에 들어선 셈이다. 그리고 태고의 자연이 빚어낸 웅장하면서도 오밀조밀한 역설의 미학 앞에 연방 감탄을 뱉어내게끔 된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 넋을 잃다 특히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200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인구 4만명이 모여사는 작고 조용한 섬 올레순은 공항을 끼고 있어 게이랑에르 피오르를 찾는 이들에게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올레순에서 1시간 30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있는 헬레슐트로 이동한 뒤 페리를 타고 게이랑에르까지 뱃길을 따라간다. 1시간 10분의 뱃길 이동은 순식간이다. 빙하와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폭포가 비단 실타래를 풀어 헤쳐 놓은 듯 곳곳에서 펼쳐진다. 또한 큰 갈고리로 긁어내린 듯 촘촘히 고랑 파인 협곡, 눈덮인 산 정상의 고요함은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부른다. 그리고 깎아지른 척박한 바위 틈에서도 끈질긴 생명을 부지하는 울창한 숲과, 그 숲의 생명력을 배운 듯 띄엄띄엄 외롭게 놓인 집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배 두 척이 비껴가면 건너편 배에 탄 사람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반면 204㎞ 길이로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송네 피오르는 거대한 규모를 앞세운다. 폭과 길이뿐 아니라 묵직하게 자리잡은 채 굵직하게 꿈틀거리는 산세는 게이랑에르 피오르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너무 웅장하기에 난간에 몸 내밀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하기보다는 간이 의자일망정 뱃전에 가져다 놓고 느긋하게 햇살을 쬐며 하늘과 바다, 양쪽 산등성이를 지긋이 즐기는 것이 낫다. 변덕 심한 노르웨이 날씨에서 햇살까지 비춰준다면 금상첨화다. 또한 송네 피오르를 이용하면 플람에서 보스까지 잇는 ‘플람스바나’ 열차를 탈 수 있다. 세 개의 협곡과 한 개의 강을 건너며 8개의 역을 잇는 이 열차는 노르웨이에 피오르와 빙하만이 아닌 아름다운 협곡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키스포센역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5분간 머물면서 93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물방울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계곡 사이를 울려퍼지는 노래에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폭포 허리 근처에서 님프(요정) 두 명이 춤을 추며 관광객을 유혹한다. 폭포의 웅장함과 노랫소리에 넋을 놓고 있다가는 자칫 이 장면을 놓치기 십상이다. ●빙하는 만년빙(萬年氷)이 아니다 감탄의 정점에는 빙하가 있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고도(古都) 베르겐에서 다섯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브릭스달 빙하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로 꼽힌다.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있는 산장에서 트롤카를 타고 빙하를 향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선다. 정상까지 2.5㎞ 거리이며 트롤카에서 내려서도 1㎞ 가까이 걸어야 거대한 빙하를 먼발치가 아닌, 코앞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일진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흙모래 바람이 얼굴을 마구 후려쳐 연방 따끔함을 느낀다. 빙하는 1950m 정상에서 시작돼 두 산봉우리 사이를 400m 정도 흐르다 얼어붙은 모습이다. 텁텁한 느낌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곳도 있지만 연한 파스텔톤의 푸른빛으로 신비한 색깔을 띠고 있다. 아래에는 빙하가 녹은 물이 거대한 호수를 이룬 뒤 퀄퀄 흘러넘쳐 몇 백m를 흐르는 강물을 이뤘다. 빙하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서로 잘난 체 건방떠는 게 얼마나 우스운 모양새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낸 빙하는 불과 10년 전의 모습과도 다르다. 현지 관광청 직원은 “지금은 빙하 아래가 래프팅을 할 정도로 널찍하게 만들어진 호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이곳이 모두 빙하 덩어리였다.”고 말했다. 지구 환경의 온갖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북유럽의 거대한 태고시절 빙하까지 서서히 녹이고 있는 것이다. 노르웨이까지 직항은 없다. 핀에어로 핀란드 헬싱키에 가는 것이 가장 짧은 거리다. 8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여기에서 다시 2시간 30분 정도 비행기를 더 탄 뒤 오슬로까지 이동한다. 노르웨이에서는 굳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그저 베르겐 또는 오슬로에 들른 뒤 피오르 또는 빙하, 역사·문화 등 목적을 분명히 한 뒤 두세 곳 정도만 보면 충분하다. 노르웨이 음식은 매우 짜다. 덕분에 밥 먹으면서, 또 밥 먹은 뒤 연방 물을 들이켜야 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엄청난 물가 수준이다. 가게에서 생수 한 병을 사먹으려면 25크로네(약 5000원)를 줘야 한다. 함부로 물 사먹기도 어려운 나라다.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데 50만원 정도 한다니, 머리 질끈 동여매고 다니는 금발의 노르웨이 여인네들의 자연미는 비싼 물가의 불가피한 산물인가 싶다. 아울러 시내 교통비 역시 10분 남짓 택시를 타면 4만~5만원 훌쩍 넘어서는 것은 기본이다. 자유여행을 왔다면 도시에서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인 오슬로패스, 베르겐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24시간, 48시간, 72시간 등으로 나뉘며 이 패스 하나로 버스나 지하철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고 박물관, 미술관 등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식당 할인도 포함되니 잘만 쓰면, 아무리 물가 비싼 노르웨이지만 짠돌이 여행이 가능하다. 또 오슬로에서는 만 하루 동안 자전거를 빌리는 데 1만 5000원 정도니 자전거로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이랑에르 피오르 입구에 있는 유니온호텔은 노르웨이에서도 손꼽히는 스파를 자랑한다. 송네 피오르를 따라 도착한 뒤 플람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인 라르달은 연어의 생태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주 작고 깨끗한 마을로 숙소는 린드스트룀호텔이 유일하다. 글 사진 youngtan@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신종플루 40대 여성 네번째 사망 비밀결혼 이영애 홀로 귀국 추억의 록밴드…그들이 온다 군대 안 가려고 6년간 국적세탁 이메일 대문자로만 작성했다고 해고? 포스코 “잘 놀아야 일도 잘해” 보이스피싱범 두번 잡은 은행원 동교동-상도동계 10일 대규모 회동
  • [2030] 직장인 여름 휴가 후유증 & 극복기

    [2030] 직장인 여름 휴가 후유증 & 극복기

    여름휴가가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온 직장인들의 눈꺼풀은 자꾸만 감기고 정신은 멍하다. 아직도 짜릿하고 달콤했던 휴가의 기억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2030 직장인들의 휴가 후유증과 극복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여름 입사한 은행원 정모(30)씨는 극심한 휴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시차적응이 안 된다거나 휴식을 끝낸 뒤 밀려드는 무기력증 혹은 우울증이 아니다. 김씨를 괴롭히는 건 좀 더 현실적인 문제다. 바로 바닥난 통장이다. 졸업 후 1년 넘게 취업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회사에 들어간 김씨는 올해 제대로 된 휴가를 처음으로 떠났던 터라 계획도 거창하게 세웠다. 가난한 백수생활 내내 자신을 지켜준 대학생 여자친구에게 ‘호화여행’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호주로 떠난 5박6일 간의 여행에서 김씨와 여자친구는 최고급 호텔에 머물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오랜만에 나온 해외인 만큼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한아름 준비했다. 문제는 뒷감당이었다. 휴가비용을 500만원 넘게 쓴 탓에 넉넉했던 김씨의 통장 잔고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다. 휴가는 끝났지만 9, 10월에 이어질 경조사가 걱정이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만 5명이 넘었고 두 달 전부터 선물타령을 시작한 쌍둥이 조카 녀석의 생일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지난 주말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연일 이어지는 격무에 주말만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돈 들어갈 일을 생각하면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 맞는 휴가라 너무 계획 없이 돈을 쓴 것 같다. 앞으로 3개월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김모(27)씨는 요즘 ‘이중고’를 겪고 있다. 휴가지였던 프랑스 파리의 모습이 하루에도 몇번씩 떠올라 업무에 집중이 안 될뿐더러 얼마 전 날아온 신용카드대금 청구서에 찍힌 액수만 생각하면 심란하다. ‘쇼핑 천국’인 파리에서 기분에 취해 이것저것 산 것이 화근이었다. 7월엔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파리 대부분 지역에서 빅 세일을 하는 탓에 이것저것 사다보니 쇼핑비만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 때문에 김씨는 요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김씨는 “지난달 큰 프로젝트를 끝내놓고 몸도 마음도 지쳐버려서 쉬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휴가를 내고 떠난 거였거든요. 휴가를 다녀오면 기분전환도 되니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달콤한 휴식의 추억 때문에 더 일하기가 싫어지네요.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카드 대금도 골칫거리고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힘든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김씨가 찾아낸 방법은 추억을 회상하며 인터넷 블로그에 여행사진을 올리는 것. 사진을 정리하면서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고 기분전환도 꾀하기 위함이다. 김씨는 “퇴근하자마자 블로그에 사진을 업데이트한다. 그러다 보면 그때의 분위기, 날씨,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져 우울한 기분이 풀린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공무원 박모(29)씨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휴가 후유증을 극복했다. 친구들과 주말을 이용해 짧은 휴가를 한번 더 다녀온 것. 박씨는 “얼마 전에 친구들끼리 저녁을 먹으면서 휴가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그럼 더 다녀오지 뭐.’라고 바람을 넣어서 지난 주말 2박3일 일정으로 강원 인제 내린천에 짧은 휴가를 한 번 더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즉흥적인 제안이라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지만 펜션 예약을 하고 나니 나머지는 힘들이지 않고 해결됐다고 한다. 대학 친구 4명과 함께 승용차 한 대를 몰고 가 고기를 구워먹고, 물놀이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정기휴가 때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됐다. “스트레스에 마냥 시달릴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는 게 더 나은 방법 같다.”며 박씨는 웃었다. 지난해 겨울, 은행에 입사해 올 여름 생애 첫 휴가를 다녀온 장모(30)씨의 휴가 후유증 극복 비법은 ‘내년 휴가 계획 세우기’다. 장씨는 이달 초 남도 일대 사찰 5개를 둘러봤다. 송광사, 화엄사, 내소사 등 명승지를 두루 훑어본 그는 알짜배기 휴가였다며 회사에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역시 휴가 후유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장씨가 내놓은 해결책은 ‘2010년 휴가계획 먼저 짜기’였다. “준비는 아무리 일찍 해도 늦지 않잖아요. 내년 휴가 땐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미리 계획을 짜놓는 거죠. 상상만 하고 있어도 마음이 흐뭇해져서 휴가가 끝났다는 우울함을 날려버릴 수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근사하게 만든 휴가계획서 파일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해두고 짬날 때마다 들여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일본 사찰 답사와 티베트 고지 트레킹을 생각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 탐방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장씨는 고즈넉한 사찰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시고, 땀 흘리며 길을 걷다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을 자신을 상상하면 일하는 것도 즐거워진다고 전했다. 회사원 하모(33)씨도 마찬가지다. 3주 전 태국 푸껫으로 다녀온 휴가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 우울하다는 하씨는 요즘 퇴근 후에 내년도 휴가 계획을 짜고 있다. 올해의 경험을 밑바탕 삼아 ‘청출어람’ 휴가를 계획 중이다. “동남아시아로 휴가를 떠난 건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다녀보니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필리핀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올해 휴가계획을 짜면서 모르는 게 참 많았는데, 이제 한 번 해봤으니 내년에는 호텔이나 비행기를 훨씬 좋은 조건으로 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 계획을 짜면서 여행사 사이트에 들락거리고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도 얻다 보면, 다시 한 번 여행을 가는 기분이 나서 설레요.”라며 벌써부터 들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3년차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지난달 말 뉴질랜드로 휴가를 다녀왔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시차는 3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3주 가까이 여독이 풀리지 않은 탓에 한낮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보름 뒤에 있을 계약을 앞두고 김씨의 부서는 최종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한창이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 좀처럼 집중하기 어렵다. “밤에 술을 마시고 일찍 잠들어보라.”는 동료들의 조언을 따라 저녁식사와 함께 와인 한 병을 혼자 마시고 잠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다음날 더한 피로가 찾아올 뿐이었다. 아침에는 집 근처 공원을 1시간 동안 달리고 사우나에서 땀도 빼 봤지만 이 또한 효과가 없었다. 결국 ‘약’의 힘을 빌리기로 한 박씨는 퇴근 뒤 매일같이 홈쇼핑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 비타민 제품만 나오면 구매 전화를 돌리기 바쁘다. 사흘 동안 비타민 구입비용에 쓴 돈만 30만원 정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혀를 끌끌 차지만 매일 피로에 지쳐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핀잔을 주지는 못한다. 박씨는 “이러다 약값이 휴가비용만큼 들겠어요.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년차 직장인 이모(29·여)씨는 올 여름 2년만에 꿀맛 같은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해 이맘때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했던 것. 때문에 올해 맘먹고 5일 정기휴가를 내고 앞뒤 주말까지 붙여 9일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낸 7월 마지막 주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무실로 복귀하니 예기치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불면증과 무기력증이다. 한국보다 9시간 느린 유럽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오니 시차 극복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특히 푹푹 찌는 서울 날씨 때문에 업무시간에도 몸이 축 늘어져 좀체 기운을 차릴 수 없었다. 일해야 할 낮에는 머리가 몽롱하고 밤이 될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열흘 넘게 프라하 야경이 눈앞에 어른거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만사가 심드렁해질 무렵 그는 일상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인터넷을 뒤적여 여행 전문블로거의 ‘시차적응 극복기’를 참고했다. 이씨는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가 반신욕을 하고 숙면에 좋다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틈틈이 휴가의 추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 폴더에 정리하면서 휴가일기를 썼어요. 소소한 여행 추억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마음 정리도 하기 위해서였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휴가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나자 화려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롯데 초강수’ 정수근 결국 퇴출 판피린걸·뽀삐도 성형 해운대 달맞이길이 왜 문텐로드? 장마저축·펀드 올해까지만 납입 강남 고급음식점 카드깡 성행
  • 고교생 10일째 행방 묘연 “친구만나고 오겠다” 연락 끊겨

    고교생 10일째 행방 묘연 “친구만나고 오겠다” 연락 끊겨

    부산 북부경찰서는 부산의 한 고교생이 10일째 행방이 묘연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부산의 한 공고에 다니는 이모(17)군이 지난 22일 오후 2시쯤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간 뒤 10일째 연락이 끊긴 것이다. 경찰은 북구 구포동 자신의 집을 나선 이군이 인근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장면과 지하철역을 지나가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 TV화면을 확인했다. 또 집을 나선 지 5시간 만인 22일 오후 7시쯤 부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산발 제주행 배를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군의 휴대전화는 24일 전남 완도에서 신호가 떴으며, 그 뒤로는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다. 경찰은 이군 가족 요청으로 인상착의와 특징을 담은 전단을 배포하는 등 공개수사에 나서는 한편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이군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이군의 실종은 지난 27일 이군의 누나(18)가 모 인터넷 게시판에 ‘남동생 실종사건’이란 제목으로 동생을 찾아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다음은 이군의 누나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  안녕하세요, 이런 일로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될줄은 정말로 몰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설마 우리집에 이런일이 생길까 싶었는데 실제로 일어나서 당황스럽기만 하네요...  혹시나 톡커분들께 말하면 찾을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다 읽어주시면 정말로 감사드리고요...ㅠㅠㅠㅠ  다 안읽으셔도 좋으니 제 동생 얼굴만이라도...꼭 봐주세요...  제동생 보시분은..꼭!! 연락 좀 주세요.......ㅠㅠㅠ 부탁드려요  저는 빠른 91이라, 학년상은 두터울 차이나지만; 나이는 1살차라  많이 친했기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ㅠㅠㅠㅠㅠ 부탁드려요ㅠㅠ  집에 찾아보니 동생이 그날 입고 나간 옷 차림 그대로의  사진이 있어서 첨부합니다ㅠㅠㅠㅠㅠ  동생의 이름은 이OO입니다. 부산시 북구 구포2동에 살고있고요.  그날 회색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고 흰색에 남색 나이키 무늬와  밑부분도 남색으로 되있는 운동화를 신고 나갔습니다.  (가방같은건 안들고간...아주 가벼운 차림이였습니다)  키는 178cm정도에 많이 마른체형에 컴을 많이한터라 거북목이되서 많이 구부정한 자세입니다. 얼굴은 위에 있는 사진 그대로에요..  얼굴에 여드름 좀 나있고요...나이는 현재 18살, 고2입니다.  많이 내성적인 성격에 말수가 적고, 목소리톤은 낮은 편입니다.  장애나 그런건 전혀 없고요, 게임하는 걸 좋아하는 애고...  방학내내 밖에 안나가고 게임하거나 책보는게 다인 애였어요.  말수는 적어도 가끔 저랑 대화도 잘하는 편이라서  얘기해봤는 데 딱히 협박당하거나 그런건 못느꼈고요..  현재 생활에 별 불만도 없었습니다.  누가 돈 많이 벌게해줄게라고 한다고 따라갈 그런 애도 전혀 아니고 가출을 할 애도 아니에요..친한 친구들하고도 같이 놀러가는 연락하고 나간것도 아니였고요 혼자서 일단은 나간 것밖에 모릅니다.   현재 형사분들이 노력해주셔서 영장이 발급되었고,동생이 쓰는 노트북을 보내서 사이버수사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있는 동생아이디도 다 작성해서 드린 상태고요...)  동생과 같이 놀았던 분이나 토요일에서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어디서 봤다 하시는 분은 꼭 연락주세요...  동생이 어떻게 됐을까봐 너무너무 걱정됩니다...  제발..제발...좀 도와주세요  동생을 찾고있습니다ㅠㅠㅠ 도와주세요ㅠㅠ
  • [딸자랑] 한일건설 청주(淸州)소장 박성규(朴聖圭)씨 맏딸 박순자(朴順子)양

    [딸자랑] 한일건설 청주(淸州)소장 박성규(朴聖圭)씨 맏딸 박순자(朴順子)양

    경희대 교정을 찾은 아버지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순자양(22·무용과 4년)은 인생을 고전무용 발전에 헌신하고픈 열의를 갖고 있다. 『「다이내믹」한 무용 동작과 넓게 펼치는 선(線)이 군계일학처럼 돋보이기 때문에 「솔리스트」로 적격이에요. 여성적인 섬세함과 「델리키트」한 요소만 보충하면 완벽하다고 볼 수 있어요』 김백봉(金白峰)교수(경희대 무용과 과장)가 애제자에 대해 들려주는 의견이다. 한일건설공사 청주소장인 박성규씨(49)와 장유순(張惟淳)여사(48)내외의 3남2녀중 맏딸. 『아프다가도 춤만 추고 나면 병이 나아버릴 만큼 고전무용에 몰두하는 것이 기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조금 힘겹다 싶지만 끝까지 뒷받침을 해줄 생각이고요』 아버지의 대견해 하는 얘기다. 좀체로 장학금 타기가 어려운 무용과에서 유일한 장학생이기도 한 순자양은 얼마전 서울 신당동에 개인무용 연구소를 차렸다. 무용연구소를 차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직접 제자 무용수들을 기르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을 제일로 꼽고 있다. 순자양이 특기를 보이는 춤은 부채춤, 탈춤 중의 왜장녀춤 등 움직임이 큰 춤들이지만 자신은 서정적인 여운이 있는 살풀이류(類)의 춤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말. 전공인 고전무용 외에도 대학 들어온 후엔 현대무용과 「발레」도 조금씩 익혔다. 고전무용 연습은 매일 하다시피 하는데 보통 때는 2시간반, 공연이나 행사를 앞두곤 5시간~8시간씩을 예사로 한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실기와 이론을 구체적으로 공부하려고 맘먹고 있다. 김백봉 교수의 생각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순자양은 고전 무용에 대한 일반의 인식부족을 몹시 불만스러워한다. 『용어 자체부터 고전무용이라고 하지 말고 한국무용이라고 통일해 불러야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들이 추고 있는 춤은 옛적에 추던 춤의 85% 가량을 현대「스테이지」에 맞도록 「어레인지」한 것이거든요』 궁중무는 왕과 몇몇 귀족만을 위해 좁은 장소에서 추던 춤. 또 마구잡이 동네놀이였던 농악이 제대로의 춤의 체계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이런 궁중무나 농악의 원형을 그대로 현대무대에 올려놨다간 관객들은 상대도 안해 줄 거라는 얘기다. 『우리 춤의 원형은 규모가 작고「템포」가 너무 느리죠. 물론 춤의 종류도 요즘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고요』 화관무나 부채춤같이 국악대전에서는 볼 수 없던 춤들을 요즘 무용인들이 개발해 내고 있다는 얘기다. 『많은 관객을 의식하지 않은 채 추던 옛 춤들을「스테이지」예술로 발전화시키는 작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욕심이에요』 69년과 70년 민속예술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순자양은 이번 「뮌헨·올림픽」때는 해외 가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유럽」순회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몇달씩 걸려야 하는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부득이 학교를 1년 휴학해야 하므로. <원(媛)> [선데이서울 72년 10월 29일호 제5권 44호 통권 제 212호]
  • [엄마와 읽는 동화] 생쥐와 해바라기 / 이동렬

    [엄마와 읽는 동화] 생쥐와 해바라기 / 이동렬

    생쥐네 집은 재원네 집 마당 끝에 있었습니다. 마당과 밭이 잇닿는 밭둑 굴속이 생쥐네 집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먹이가 많았기 때문에 생쥐네 창고는 언제나 먹이로 가득했습니다. 덕분에 생쥐들의 털빛도 늘 윤이 났습니다. “아빠, 이게 무슨 곡식이에요?” 호기심 많은 막내 생쥐가 콩알만 한 먹이를 물고 와 아빠 생쥐한테 물었습니다. “글쎄다! 이런 곡식 낟알은 나도 처음 보는데? 이건 생긴 모양이 콩도 아니고 그렇다고 팥도 아니고……. 무슨 곡식 모양이 꼭 수류탄같이 생겼을까?” 아빠 생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건 위험한 먹이일지도 모르니 그냥 창고에 놔둬라.”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이런 먹이가 달렸던 곡식은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요.” 막내 생쥐는 이상하게 생긴 먹이를 굴 속 창고 한 쪽에 놓았습니다. 놓고 돌아서면서도 궁금증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잠시 후 밖에 나갔던 아빠 생쥐는 조금 크고 넓적한 씨앗을 물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신바람이 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내가 호박씨를 구해왔다. 저 밭둑에 잘 익은 큰 호박이 썩었지 뭐냐. 그래서 내가 그 호박 속으로 들어가 씨를 먹어보니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어. 우리 다 같이 호박씨를 더 가지러 가자.” “나도 그 호박을 어제 봤어요. 가는 김에 그 옆에 있는 해바라기 씨도 따옵시다. 고소하기로는 해바라기 씨가 더 고소하지요.” “해바라기 대궁을 타고 올라가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맛은 어떻고요. 우리는 땅으로만 기어 다녀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재미를 전혀 모르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요.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해야 해요. 우리 대궁에 올라가 멀리 내다볼래요.” “그런 데 함부로 올라가면 안 돼. 실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들고양이나 너구리한테 걸리는 날에는 끝장이라구.” “그래도 저는 올라갈 거예요. 해바라기 대궁을 타고 꽃에 올라가 먼 세상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여요. 새로운 꿈도 생기고요. 온 세상이 다 제 것 같은걸요.” 막내 생쥐는 자꾸 고집을 부렸습니다. “꿈도 좋지만 여기 밭둑이 어때서 그러니? 배부르면 그만이지. 자자, 그만 하고 어서 호박씨나 가지러 가자.” 아빠 생쥐의 말에 온 식구들은 뒤를 따랐습니다. 막내 생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쥐네 식구들은 쉬지 않고 호박씨를 물어다 이리저리 파놓은 땅굴 창고마다 쌓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낟알도 많이 물어다 쌓았습니다. 깨알보다 더 작은 씨앗들은 젖은 호박씨에 묻어오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도 갔습니다. 드디어 봄이 되었습니다. “아빠, 우리가 창고에 쌓아 놓은 먹이에서 싹이 나와요.” “그래! 그럼 먹지 마라. 싹이 나지 않은 새로운 곡식이 얼마든지 널려 있는데 굳이 그걸 먹을 필요가 없지.” 생쥐네 창고 먹이에서 싹튼 새싹은 땅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커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밖으로 나가던 엄마 생쥐가 놀라서 들어오면서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지금은 위험하니 나가지 마라. 재원이 할머니가 이리로 오고 있어.” 그 말에 생쥐네 식구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죽은 듯이 엎드렸습니다. “참 이상하다! 아무도 여기다 화초 씨를 심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꽃모가 나오다니! 이건 분꽃, 이건 채송화, 이건 봉숭아, 그리고 이건 해바라기네! 어이구, 호박과 옥수수, 땅콩도 싹을 내밀었네! 이 씨앗들이 바람에 날려 왔나? 그렇지 않으면 누가 흘렸나? 나도 미처 만들 생각을 못했던 꽃밭이 생기다니…….” 재원이 할머니는 꽃모 사이에 난 풀을 일일이 뽑아주며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새 생쥐네는 정말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엎드린 채 할머니가 다른 곳으로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할머니는 꽃밭의 풀을 다 매고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보, 우리가 물어온 것들 중에 꽃씨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가 보구먼.” “애들아,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저 할머니가 꽃밭에 자주 올 거야. 그러면 너희들이 할머니의 눈에 띌 수도 있잖니?” “그것뿐이 아니야. 이곳에는 들고양이와 너구리들이 늘 찾아오는 곳이야.” 생쥐 부부는 아기 생쥐들한테 단단히 일렀습니다. “그래도 해바라기 꽃에는 올라가 보고 싶어요. 저는 거기서 먼 세상을 보면서 해바라기 꽃처럼 크고 아름다운 꿈을 키울 거예요.”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했지!” 아빠 생쥐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생쥐네 식구들은 그날부터 조심해서 먹이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햇살이 점점 따뜻해졌습니다. 낮의 길이도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러자 꽃모들의 키도 몰라보게 커갔습니다. 생쥐들은 거기서 어떤 꽃이 필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흥분한 재원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그새 분꽃이 폈네! 어머나, 맨드라미와 봉숭아꽃도 피었네! 야, 꽃 색깔이 곱기도 하다! 여긴 호박이 두 개나 맺혔네! 옥수수도 곧 달리겠고…….” “할머니, 어느 게 봉숭아고 어느 것이 맨드라미예요?” 쪼르르 달려 나온 재원이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여태 그런 것도 모르니? 이 닭 벼슬처럼 생긴 빨간 꽃이 맨드라미고, 빨간 꽃잎이 여럿 뭉쳐 핀 건 봉숭아지. 이 할미가 어려서는 봉숭아 꽃잎을 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였단다. 손톱에 물을 들이면 악귀와 병마를 물리친다고 했지. 그리고 이 분꽃 좀 봐라. 꼭 작은 나팔 같지? 이 나팔 모양의 꽃이 지면 까만색의 작은 수류탄 같은 열매가 열린단다.” “정말요?” “그럼. 그런데 귀신 곡할 노릇이다. 우리 식구 중에 누구도 꽃을 심은 사람은 없는데 이렇게 훌륭한 꽃밭이 됐으니. 히야, 저 키 큰 해바라기는 곧 꽃을 피우겠는걸!” 생쥐네 식구들은 굴속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입이 간지러웠습니다. 금세라도 달려나가 자기네가 심었다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아아, 해바라기 꽃요! 그 꽃이 해님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다는 꽃인가요?” “그렇지. 해바라기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린 날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해만 나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 해만 바라보고 있지. 한평생 해님을 사모하며 쳐다보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다구.” 해바라기에 대해서 자세히 안 것은 재원이뿐이 아닙니다. 굴속에서 엿듣고 있는 생쥐들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 나는 뭘 존경할까? 해바라기 꽃이 평생 사모하는 해님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사모할까. 아예 내가 하늘에 올라 생쥐별이 되면 어떨까.”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이뤄질 수도 없고.” “형, 위험한 일이라도 나는 해보고 싶어. 그 꿈을 향해 더 큰 생각을 하고 싶어.”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니?” 생쥐 형제는 티격태격 말씨름을 했습니다. 생쥐네 꽃밭은 여름 내내 풍성했습니다. 생쥐들이 오줌과 똥을 싸 거름이 됐는지 꽃모들은 아주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피어난 꽃들도 오래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바라기의 꽃잎이 마르고 얼굴에 박힌 씨앗이 여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까치 한 쌍이 날아왔습니다. 날아온 까치들은 해바라기 얼굴에서 잘 익은 씨앗만 콕콕 쫘서 빼내 까먹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아빠 생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해바라기를 가만 두지 못해! 그 해바라기는 우리가 씨를 물어다 여기 심어서 키웠단 말이야!” “생쥐야, 너도 이제 보니 아주 쓸 만한 녀석이구나. 우리를 위해 그렇게 좋은 일을 미리 한 것을 보니.” 까치는 하얀 뱃바닥과 어깻죽지를 흔들어대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면 너희를 잡아먹게 부엉이나 수리를 불러온다. 과일농사를 다 망쳐놓은 이 도둑까치들아!” “농작물 망치기로 치면 고라니나 멧돼지들이 더하지. 그래도 그 녀석들은 사람들한테 보호만 받으면서 살던데? 사람들이 너희 생쥐한테는 도둑이라 불러도 우리에겐 그렇게 부르지 않아.” “흰소리는! 그러니까 ‘까치 뱃바닥 같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지.” “입은 살아서 나불대기는.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먹고 남은 찌꺼기나 차지하시지. 저 잡아먹을 들고양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 주제에 뭐 우리를 어쩌고 어째!” 막내 생쥐는 들고양이란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 아래를 내려다보자마자 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야옹, 캭!” 살금살금 다가온 들고양이는 높이 점프하여 앞발로 막내 생쥐를 쳐냈습니다. 그리고는 생쥐와 같이 떨어지면서 생쥐를 한입에 물었습니다. “찍찍, 찌지직! 찍” 막내 생쥐는 고양이한테 꼬리를 잃고 정신없이 굴속으로 도망쳤습니다. “아니, 막내야! 어머머, 배와 등에 난 이 들고양이 이빨 자국 좀 봐! 흑흑…….” “막내야! 우리들이 뭐랬어? 엉엉엉…….” 생쥐네 식구들은 막내 생쥐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막내 생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감긴 눈을 뜰 줄 몰랐습니다. “나는 이제 살아나기는 틀렸어요! 그러니 내 혼이라도 해바라기를 타고 별나라로 가게 해바라기 뿌리 밑에 묻어 주세요!” “얘얘,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너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했잖아?” “미안해요! 하지만 내 영혼은 틀림없이 해바라기를 타고 별나라에 오를 거예요. 거기 가면 힘없는 생쥐들끼리만 모여서 행복하게 사는 곳이 있을 거예요! 자기 꿈을 맘 놓고 키우며 사는 행복한 마을이……!” 막내 생쥐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남은 생쥐들은 슬픔 속에서도 막내 생쥐의 유언대로 해바라기 뿌리 밑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들고양이와 너구리를 피해 해바라기 씨앗을 물어다 먹지 않고 굴속에 묻었습니다. 이듬해도 꽃을 피워 막내 생쥐의 영혼이 별나라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몇 년 후부터 생쥐 가족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밤마다 해바라기의 대궁을 타고 꽃에 올라가 하늘을 보며 막내 닮은 별을 찾곤 했습니다. 생쥐네 꽃밭에는 해가 갈수록 해바라기 수가 자꾸 늘어만 갔습니다. ●작가의 말 생활동화가 널리 읽히는 때라 일부러라도 순수 동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면서도 결국은 사람이야기인 것을. 그런데 맘만큼 잘 써지지 않았다. 꿈을 갖고 실천하려면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 그리고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현재의 환경이나 행복에 만족해서는 더 나은 생활, 더 넓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칠 수가 없다. 설사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도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도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약력 1950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출생해 성장했으며,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화책으로 ‘위대한 그림’, ‘새가 되어 날아간 할아버지’ 외 다수와 전공서적 ‘동화창작의 실제’, ‘아동 글쓰기 지도의 이해와 실제’, ‘그림동화 한 편 써 보자’ 등이 있다. 현재 장안대· 협성대·덕성여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다.
  • “애수의 춤 탱고… 우리 ‘恨’과 통하는게 있죠”

    “애수의 춤 탱고… 우리 ‘恨’과 통하는게 있죠”

    ‘탱고’라는 단어를 들으면 장미를 입에 문 무용수, 그리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멋진 춤을 춘 알 파치노 등이 연상된다. 어쩌면 개그맨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제는 여기에 이름 석자를 하나 더 추가해 보자.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이자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 탱고의 ‘대가(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공명규(50)이다. 그는 새달 서울 한전아트센터, 고양 아람누리 등에서 공연하는 ‘피버 탱고2:필링스(Feelings)’에서 기획자이자 무용수로 무대에 선다. 공연에 앞서 지난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서인지 ‘딱 무용수’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게 다 ‘카라두라(caradura)’예요. 우리말로 ‘얼굴에 철판 깔았다.’고 하는 거 있죠. 혼자 아르헨티나로 가서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 거기 사람들 상대하고 부딪히려면 그런 게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거죠.” ●태권도 사범하다가 ‘탱고’에 꽂혀 그는 1980년 혈혈단신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대통령 경호실,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때 탱고와 인연도 시작됐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남은 시간에 사교모임에 참가하면서 탱고와 골프를 배웠다. 프로골퍼로 데뷔해 아르헨티나 PGA 상금랭킹 6위까지 올라갔지만, 그가 진짜로 ‘꽂힌 건’ 탱고였다. “가르친 제자들이 성장할 기회를 열어 주려면 다른 길을 선택할 때가 오잖아요. 남이 한 것을 따라가는 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황무지를 개척해 보자 했죠. 탱고는 세계 각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몰려온 이민자들이 만든 춤이라 우리의 ‘한’과 통하는 점도 많았거든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어딜 가나 탱고 음악이 들리고, 아르헨티나인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그런데 이방인이 탱고를 좀 배워 보겠다니 고까울 수밖에. “학원에서 파트너 데리고 오지 않으면 안 받겠다고 해요. 학원비를 내 주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여성 파트너를 구했죠. 열심히 해서 무대에 설 기회까지 얻었는데 연락을 끊더라고요.”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내와 끈기’를 가르치던 태권도 사범이었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나무를 붙들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둥 잡고 혼자 연습했다. 노력 끝에 1996년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에서 프로 탱고 댄서 자격증을 따냈다. 이듬해 한국에 탱고를 소개하기 위해 귀국해 교습소를 냈고, 수천명의 제자를 키우며 탱고 붐을 일으켰다. 이 공로로 2003년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이 그를 탱고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2004년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45주년을 기념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르반테스 국립극장에서 ‘공명규의 아리랑 탱고’를 올리기도 했다. 2007년에 첫 내한공연을 열었다. 당시 좌석점유율 90%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96년 동양인 첫 프로 자격증 그의 목표는 이제 ‘탱고 전파’에서 조금 더 커져 ‘문화교류’로 옮겨갔다. “처음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일본의 가라테가 판을 치고 있더라고요. 일본의 자동차회사는 아르헨티나 최대 탱고대회의 주요 스폰서를 하고 있고요. 배타적인 아르헨티나도 자기네 문화를 아끼고 사랑해 주니까, 일본에 대해 친근하게 여겨요. 그게 일본 차 구매로 이어지죠. 이게 문화교류의 힘입니다.” 그는 “해외에서 일본, 일본인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고, 경외감에 가까울 정도인 것은 이렇게 일본이 적극적으로 문화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도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작지만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찾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녀가 빠른 음악에 맞춰 얽히고 설키면서 결국은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죠. 다른 사람과 격이 없이 어우러지면서 소통하고 동화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런 탱고의 매력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잔혹으로 美를 발가벗겼죠”

    “잔혹으로 美를 발가벗겼죠”

    “영화가 아니라 영화폭탄이다.” “망막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 영화가 영원히 안 끝날 줄 알았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평들이다. 언뜻 봐도 만만한 게 없다. 대체 어떤 영화기에? 먼저 선 보인 영화제들에선 도중에 나가거나 우는 관객이 속출했다. ‘감독이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것 아니냐.’는 억측도 나돌았다. 그렇게 심상찮은 입소문을 몰고온 논쟁작 ‘고갈’이 새달 3일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한다. “저도 사실 가슴이 벌렁벌렁거려요. 눈을 감고 벌벌 떨죠. 카메라 앵글 뒤에 무슨 장치가 숨었는지 다 아는데도, 폭풍우에 먼지로 날려가듯 영화 앞에선 기억들이 포맷돼 버려요.” 25일 만난 ‘고갈’의 김곡(31) 감독은 다 이해한다는 듯 넉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쌍둥이 형제 김선과 함께 영화창작집단 ‘곡사’에서 9년 동안 13편의 장단편을 연출했다. ‘고갈’은 김곡이 혼자 현장 연출한 첫 영화로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뉴욕 시러큐스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감독상 등을 거머쥐었다. ●신체 훼손·절단… 수간장면 뺀 뒤에야 청소년불가 등급 독립영화계에서, 또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건만 ‘고갈’ 개봉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기 훼손과 유두 절단, 인간과 짐승의 성교를 담은 수간 비디오 등이 등장하는 영화에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제한상영가를 판정했다가, 수간 장면(4컷)을 뺀 뒤에야 비로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겨주었다. 난관은 또 있었다. 상업성이 적다는 판단에선지 나서는 배급사가 없었다. 마침 활로 확대를 모색하던 서울독립영화제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말 그대로 ‘고갈’은 “인간의 바닥을 드러내는” 영화다. 한 남자가 길에서 데리고 온 여자에게 매춘을 시키고, 언어장애를 앓은 여자는 벗어나려는 듯 자꾸만 벌판으로 달려나간다. 불현듯 나타난 중국집 배달부는 여자에게 구원자가 될 듯하지만, 오히려 파국의 계기가 될 뿐이다. “흔히 ‘바닥을 쳐야 희망이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바닥을 쳐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세상에 출구가 없다고 말로는 많이 하지만 진짜 ‘출구 없음’을 영화사에서 보기 힘들죠. ‘희망이나 구원? 바닥을 치기 전엔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고갈’은 온몸으로 인간의 추락을 그린 ‘잔혹극’이다. 사막의 돌처럼 허허벌판에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선 군산. 이미지를 담으러 갔던 감독은 그곳에서 마치 우주신호를 받은 듯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내가 보는 세계 너머에서 메시지가 올 때가 있잖아요? 타점처럼 오던 우주신호가 그 벌판에 섰을 땐 덩어리로 오더라고요. 마치 김종필을 보다가 허경영을 봤을 때의 충격이랄까요?” ●황폐하고 지글거리는 화면… 허무하고 불길한 배경음 도망치는 여자를 연기한 배우 장리우, 그 여자를 쫓는 남자 역의 박지환은 모두 감독의 오랜 친구들이다.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신체의 내장근육, 불수의근을 자기 의지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과 같은 연기” “매순간 자잘한 변주들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연기”를 그들은 흡사 그 캐릭터로 태어나기라도 한 양 펄떡펄떡 살아숨쉬게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고갈’을 ‘고갈’답게 한 일등공신은 화면의 질감이다. 슈퍼 8㎜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35㎜로 블로업(확대), 그레인을 저밀도화해 황폐하고도 지글거리는 느낌을 안겨준다. 허무하고도 불길하게 극 전체를 감싸는 앰비언스(배경음)도 빼놓을 수 없다. 노이즈 뮤지션 홍철기가 만들어낸 소리다. “우리는 태어나서 앰비언스로부터 한번도 빠져나온 적이 없어요.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도 우리 몸 내부의 소리를 들으니까요. 이런 앰비언스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를 표현하려고 했어요.”라고 감독은 말했다. 어떤 이들은 신체 훼손을 들어 ‘고갈’을 김기덕 영화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김기덕 감독은 항상 천국과 지옥을 상정하지만, 저의 영화는 언제나 연옥만 있죠. 김기덕 영화의 여자들은 항상 창녀나 성녀지만, 여기서는 창녀도 아니고 성녀도 아니에요. 김기덕 감독은 미와 추, 성과 속 등을 연결하는 매개함수로 늘 관념이나 상징에 호소하지만, 저는 물질이나 신체를 접착제로 사용해요.” 현재 준비하는 작품은 김곡·김선 연출의 ‘방독피’다. ‘할리우드의 반골 감독’ 로버트 앨트먼에 대한 오마주 영화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그린단다. 언젠가 김기영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년) 리메이크를 찍는 것도 김 감독의 꿈이다. ●“세상이 거짓말 같을 때 보러 오세요” 마지막으로 ‘고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 “왜 이런 영화를 찍느냐?”는 물음을 던져봤다. 감독은 “계속 이런 영화만 만들 생각은 아니다.”면서도 찬찬히 대답했다. “모두들 천장을 얘기해요.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천장이 있으면 바닥이 있어요. 상승과 하강이 있는데, 우리는 주로 상승을 즐기죠.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이 있으면 잔혹을 통해 미를 발가벗겨볼 필요가 있는 거죠. 시선의 그늘, 그 정체의 형상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세상이 거짓말 같을 때 보러 오라고 권하고 싶네요.” 글 사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와인시음회 처음 가신다고요?…팁 6가지

    와인시음회 처음 가신다고요?…팁 6가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와인시음회. 최근 서울의 호텔과 와인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시음회가 열리고 있다. 수입사에서 개최한 이벤트에 무료로 참석하는 경우도 있고, 5만~1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시음회를 어떻게 즐길것인가, 이다. 친구나 가족들과 개인적인 모임에서 마실 때야 편한 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시음회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수십명이 모이기 때문에 에티켓에 신경이 많이 쓰이게 마련이다. 와인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면서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시음회가 열릴 예정이다. 와인 시음회에 처음 가는 와인 애호가를 위한 시음회 즐기기 팁 몇가지를 소개한다. 1. 눈치보지 말고 막 찍자. 26일 장충동 신라호텔 23층에서 열린 피터르만-안드레아 라송 시음회. 와인 메이커 디너나 유명 소믈리에 디너를 겸하는 시음회의 경우 메이커나 소믈리에, 혹은 마케팅 담당자가 시음에 앞서 인사말을 한다. 불어나 이탈리아어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역이 있으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내놓을 와인이 얼마나 괜찮은지를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지나치게 엄숙한 분위기만 아니라면 카메라 셔터를 마음껏 눌러도 된다. 이런 모임 자체가 홍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별도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그냥 찍어도 무방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을 찍는 것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2. 원샷은 NO, 천천히 음미하며 기록을 남기자. 시음회에 가면 여러가지 와인 용어가 적힌 종이 한장을 준다. 각 와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테이스팅 노트가 적혀 있다. 와인이 오면 천천히 마시고 그 느낌을 기록해 보자. 이런 테이스팅 노트를 하나둘 모아두면 나중에 그 와인을 기억해 내는데 유용하다. 와인 애호가에게 좋은 수집품이 되기도 한다. 맛과 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라도 한번에 다 마시지 말자. 잔을 돌려 향을 맡고, 조금씩 입속으로 흘려 넣으면 된다. 3. 후루룩 쩝쩝, 마시다 뱉는 걸 두려워 말기. 마실 때 입안으로 공기를 같이 들이마셔 혀로 굴려보자. 이 때 후루룩하는 소리가 나는 게 자연스럽다. 입속과 혀의 모든 부분에 와인이 닿도록 공기와 함께 들이 마신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이 과정을 거친 후 앞에 놓인 주전자나 볼에 와인을 뱉어도 된다. 시음할 와인의 종류가 많은 경우에도 끝까지 맨정신을 유지하려면 중간중간 뱉는 것이 좋다. 다음 와인을 마시는 데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면, 한 와인을 마신 후 깔끔한 빵이나 탄산수로 입을 헹구자. 4. 당당하게 “더 따라 달라”고 말하자. 어쩌다 자신의 글래스에 와인이 너무 적게 따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비싼 와인일텐데 더 달라고 하면 욕먹겠지?’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시음회는 와인을 홍보하는 자리다. 그 와인에 관심을 가져주는 애호가가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주최측에서 고마워한다. 마시다 모자란다 싶으면 당당하게 더 따르라고 얘기하자. 와인에 대한 평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어떤 평가를 내릴 지에 대해 눈치보지말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보자. 한 테이블에 여러명이 앉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화를 피하고 싶지 않다면 “제 입에는 이게 더 마시기 편한데요?”, “떫지만 깊은 맛이 마음에 들어요” 등의 평가를 자유롭게 교환하자. 와인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5. 디저트와인까지 끝까지 즐기기. 정식 와인시음회라면 샴페인으로 시작해서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그리고 마지막에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 서브된다. ‘레드와인만 와인이야’하는 생각으로 레드와인만 잔뜩 마셔서 취해버리기엔 너무나 훌륭한 디저트와인이 많다. 이것 저것 테이스팅 하느라 지친 혀를 달콤한 디저트 와인으로 마무리하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만약 디저트와인이 제공되지 않은 시음회에 갔을 경우, 시음회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삼삼오오 따로 나와 디저트 와인을 마시고 헤어지는 것도 괜찮다. 소테른 지방의 저렴한 와인이나 헝가리 토카이 와인, 혹은 모스카토 다스티를 차게 칠링해서 한잔 마셔보자. 머릿속에서 그날 시음한 와인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6. 네트워크를 위한 사교의 장으로 삼기. 와인 시음회에서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직장인들이 인맥을 쌓기위해 대학원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와인 시음회는 장담컨데 대학원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언론인은 물론이고 기업인, 의료계 종사자, 교수, 사업가와 학생, 예술인 등등. 와인은 만인의 입을 열게 한다. 와인을 앞에 두면 아무리 과묵한 사람도 수다스러워진다. 와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온갖 세상사가 다 와인의 안주가 된다. 와인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만난 자리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가 편하다. 용기를 내서 명함을 먼저 건네보자. 왠지 어색하다면 “오늘 와인 꽤 괜찮은데요?”라는 말로 말을 걸어도 좋다. 수입사나 와인메이커와도 꼭 명함을 교환하자. 이메일로 좋은 정보가 가끔 도착한다. 또한 해외에서 온 와인 업자들에게는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주소를 알려보자. 어색해하지 말고 시음회를 또 하나의 기회로 즐기면 된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교보다 깊이 있는 음악 꾸준히 할래요”

    “기교보다 깊이 있는 음악 꾸준히 할래요”

    국내에서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 중 요즘 가장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몇몇 지휘자는 협연하고 싶은 연주자로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 드라마틱한 표현을 잘 하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2·뮌헨 음대 전문연주자 박사과정)이다. ●“모차르트와는 인연이 남달라요” 2003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 2006년 하노버 콩쿠르 우승,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4위 등 자신의 이력을 화려하게 채워 가는 김수연이 최근 눈에 띄는 경력을 또 하나 추가했다. 유니버설뮤직과 3년 간 전속계약을 맺은 뒤 내놓은 첫 음반 ‘모차르티아나(Mozartiana·작은 사진)’에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DG)’의 레이블을 달았다. 음악가 선정이 까다로운 DG의 ‘노란 딱지’가 붙었다는 것은 그의 연주가 세계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한국 음악가로는 정명훈(지휘), 정경화·김영욱·강동석(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조수미(성악), 성민제(더블베이스)에 이어 여덟번째다. “모차르트와는 인연이 남달라요. 처음 연주한 협주곡도, 처음 나간 콩쿠르도 모두 모차르트죠. 모차르트 작품은 듣기에는 편안하고 어렵지 않지만, 연주자에게는 기교적으로 쉬운 음악은 아니에요.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모차르트 작품의 매력이랄까요.” 서울 신사동 유니버설뮤직 본사에서 24일 만난 그는 첫 음반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다. 음반에는 불가리아 피아니스트 에프게니 보자노프와 협연한 바이올린소나타 세 곡(K304, K378, K454)과 리처드 용재 오닐이 함께 한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변주곡,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오’ 등 다섯곡이 담겨 있다. “음반을 들으면서 음악의 순수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그는 “378번과 454번은 굉장히 밝은 느낌이고, 304번(특히 2악장)은 가슴이 저리고, 심지어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변주곡은 재미있다.”면서 조곤조곤 설명했다. 첫 앨범인 만큼 자신의 기량과 기교를 한껏 발휘하고픈 욕심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기교를 과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꾸준히 깊이 있고, 진지한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 두번째 음반은 바흐 녹음할 계획 두 번째 음반 작업에서는 바흐를 파고들 계획이다. 내년 봄에 ‘무반주 소나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새달 6일에는 LG아트센터에서 DG 데뷔 앨범 발매를 기념한 독주회를 갖는다. 보자노프와 브람스, 라벨,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 준다. “아직 제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더 다양한 색깔과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독주회에서 보여 드리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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