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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쇼핑 후기 1 구매자:거기 입금자 이름이 주옥선이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판매자:‘주옥선’이 아니고요. (주)옥션인데요. 회사 이름이에요. 감사합니다. ●가수들 이름 풀이하기 슈가:설탕 주얼리:보석 솔리드:고체 언타이틀:제목없음 이글파이브:독수리 오형제 앤드:그리고 빅마마:큰엄마 버블시스터즈:거품자매들 노이즈:소음 페이지:쪽수 체리필터:앵두거르개 틴틴파이브:십대십대 5 노브레인:무뇌 문차일드:달아이 블랙비트:검은 장단
  • 첫 솔로 앨범 ‘열꽃’ 낸 타블로

    첫 솔로 앨범 ‘열꽃’ 낸 타블로

    “제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려서 나흘을 앓다가 얼굴에 열꽃이 핀 적이 있었어요. 심각하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내(영화배우 강혜정)가 열꽃이 피면 감기가 거의 다 끝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아픔이 극에 달하고 열꽃이 피면 거의 끝나간다는 신호인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포기한다는 것을요.” ‘학력 위조 논란’의 지난한 터널을 지나 1년 6개월 만에 첫 솔로 앨범 ‘열꽃’을 낸 타블로(31·본명 이선웅). 그는 분명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차분한 말투, 성숙해진 눈빛. 이러한 변화는 그간의 심경을 담은 듯한 앨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으로 어떤 의도를 갖지 않고 만든 앨범입니다. 특별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단지 제 주변만 봐도 저보다 더 힘들고 아프고 쓸쓸한 사람들이 많은데, 제 음악이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가슴 아픈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순간이 오면 제 음악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6월 말부터 한두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타블로. 더 이상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절망과 안 하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반복하던 그를 잡아준 것은 아내였다. 강혜정은 남편과 자신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사장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고, 그 계기로 그는 YG에서 솔로 앨범을 내고 다시 음악을 하게 됐다. “이번 앨범은 정신적으로 보면 (아내) 혜정이와 같이 만든 것이기도 해요. 가사를 너무 길고 복잡하게 쓰곤 했는데, 그때마다 혜정이가 많이 정리해줬어요.” 그동안 주로 집에서 칩거했다는 그는 봇물 터지듯 쏟아진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내 불행의 반을 떼어가길 바래서 너의 반쪽이 된 건 아닌데’(‘밑바닥에서), ‘더 이상 듣지 않는 음악이 될까봐/텅 빈 극장에 영화처럼 버려질까 봐/두려워’(‘유통기한’) 등의 가사에서 저간의 심경이 전해져온다. 그가 작사, 작곡, 편곡까지 도맡은 앨범에는 이소라, 나얼, 빅뱅의 태양 등 동료 가수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유통기한’은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순간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그린 곡입니다. 제 가사가 힘이 있다기보다는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피처링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제가 드라마의 각본, 연출을 하고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역할로 출연한 셈이죠. 주로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워서 많은 분들과 작업한 부분도 있고요(웃음).” 앨범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 아이튠즈의 힙합 앨범차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데 대해서는 “예전에는 뭘 해도 반겨주는 팬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예측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경이롭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치유된 것일까. “치유가 완전히 그 일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면, 그건 아니에요. 저의 일부분은 영영 사라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게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이젠 미움도 분노도 없어지고, 결국엔 고마워하는 마음만 남아요. 이제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내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딸아이가 웃고 있는 것만 봐도 좋고, 이 아이를 계속 웃게 해줄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무려 48억원” 세상서 가장 비싼 사진은 ‘이것’

    “무려 48억원” 세상서 가장 비싼 사진은 ‘이것’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진이 탄생했다. 독일의 저명한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 달러(한화 약 48억 4000만원)을 기록,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라인강 2’(Rhein II)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거스키가 1999년 내놓은 2 x 3.5 m의 파노라마 컬러 사진이다. 고요한 라인강의 모습과 함께 하늘과 땅으로 구성돼 플라토닉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은 스스로가 사진의 모델이 돼 포스트 모더니즘적 작품세계를 펼쳤던 신디 셔먼의 1981년 작품보다 40만 달러(5억원) 가량 더 높게 팔렸다. 이 작품과 함께 공개됐던 사진 6점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등지에 전시돼 있으며,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거스키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라인강의 어떤 장소가 날 매료시켰고, 1년 6개월의 고민 끝에 사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우리가 한 건물이나 한 장소에 살고 있다고 이해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우주 속에서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한 행성에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만들고 싶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생명의 窓] 산에서 배워야할 마지막 한 가지/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생명의 窓] 산에서 배워야할 마지막 한 가지/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가을 밤 빗소리를 듣는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산사에서 듣는 빗소리는 선명하다. 작은 소리가 소리의 전부가 되는 것은 산사의 고요 때문이다. 이 순간 작은 소리와 큰 소리의 차이는 없다. 때로 작은 먼지 하나가 온 세계를 품는다는 의미를 이런 순간에 만나고는 한다. 작은 깨달음이다. 산은 이렇게 말 없이 깨달음의 순간을 조용하게 건네준다. 산에 들어와 산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산은 처음 출가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내게 말 없는 스승으로 존재한다. 계절이 가면 가는 대로 계절의 모습을 그려내는 산의 그 텅 빈 마음이 좋았다. 시간은 지나갔으나 시간의 자취가 남지 않는 것이 산의 모습이다. 산의 한결같은 모습은 시간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으면 산으로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상여소리를 울리며 산에 올라 주검을 묻는 것은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영원을 향한 인간의 아름다운 의식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말한다. 햇살 맑은 날, 그 햇살을 타고 눈발이 날리는 날, 어느 산사의 다비 장에서 한 줌 불꽃으로 사라지고 싶다고. 솔향기 가득한 그 불 냄새를 맡고 떠나면 다음 생애에도 다시 산을 찾아와 이렇게 살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솔향기 가득한 불길 위에 누워 아마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할 것이다. 다음 생애에도 이렇게 산에서 사는 수행자가 되거나 산을 지키는 나무가 되게 해달라고. 산에 사는 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산에서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죽거나 사고로 죽어도 그 죽음의 장소가 산이라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바람이 씻어주고 별들이 지켜보는 죽음이라면 그 죽음은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이 안타깝지만 박영석 대장의 죽음도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순결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생을 마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은 삶의 집착을 떠난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축복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직시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은 없다. 존재의 본질을 벗어나는 욕망도 없다. 죽음은 이미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비우라고 일러주기 때문이다. 비우지 않으면 탐욕과 분노와 두려움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탐욕의 부질없음과 두려움의 실체 없음을 깨달을 수가 있다. 산이 시간의 지배를 벗어난 것은 그 마음을 텅 비웠기 때문이다. 산은 스스로를 비워 수목을 자라게 하고, 물을 흐르게 하고, 저 태양과 별빛을 머물게 한다. 산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생사에 걸림 없는 자유는 이렇게 유위의 욕망을 떠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삶에 집착할 때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죽음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구분은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나의 은사 스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이웃 마을에 나들이 가듯이 “나, 내일 새벽에 갈라네.”하는 한 말씀을 남기셨을 뿐이다. 은사 스님에게 죽음은 한때의 나들이였다. 그 나들이 같은 죽음 앞에서 눈물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운다면 그것은 아직 죽음을 죽음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음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울었다. 눈물을 훔치며 어리석게 그렇게 은사 스님의 마지막 불꽃을 바라보았다. 은사 스님은 산이었다. 빗소리가 떨어져 사라진다.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가 남는다. 빗소리의 낙하는 고요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역시 자기를 비워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본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그 길이 슬픔인 이유는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산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 영원을 산다. 산에서 내가 배워야 할 한 가지는 비움이다. 비우고 비워 내가 없다면 너와 나라는 분별도 없고 삶과 죽음이라는 구분 역시 사라질 것이다. 존재가 온 우주로 구현되는 순간, 삶은 비로소 고요한 자유가 된다. 산 아래 살면서 나는 얼마나 나를 비우고 있는가. 빗소리가 낙하해 고요가 되는 시간이 스스로 깊어간다.
  • 끓어오르는 화 어떻게 다스리지?

    끝 없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는 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번뇌로 경계한다. 이른바 삼독(三毒)이다. 그중에서도 화와 성냄의 진은 나를 해치고 남을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는 해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그 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 낫한 스님의 ‘화해’(불광출판사 펴냄)는 진을 다스리는 방법을 천착한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고통의 씨앗인 화를 품고 있고 그 화는 비슷한 환경에 처할 때마다 폭발하게 된다. 그 화는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자손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만큼 내 안의 화를 다스리게 된다면 과거와 미래의 화까지 모두 다스릴 수 있고 그것이 나와 남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지름길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화의 치유법은 회피와 도망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평화를 얻는 수행의 권유이다.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의 씨앗을 ‘내 안에 다섯 살짜리 아이’로 보고 도닥거리며 어루만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를 온전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만큼 내 몸과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호흡에 충실하라고 스님은 권한다. 들숨 날숨을 통해 우리 몸과 몸 속의 작은 세포며 그 세포에 담긴 화의 근원까지 볼 수 있는 일상에서의 쉬운 수행이다. 부모미생(父母未生)의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가는가. 내 안의 ‘다섯 살짜리’ 아이는 바로 그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일 수 있다는 심리 처방. “불교는 하나지만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는 스님의 소신과 철학 그대로 책은 어렵지 않은 평이한 언어의 긴 묶음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마치 밖에서 구경하듯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화해의 방식. 그래서 단박에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수행 양식, 즉 한 번의 호흡과 한 번의 고요한 발걸음을 통해 평화를 건져내자는 메시지의 은은한 전달이 특이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세상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심리치료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스님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변화시키려면 그것과 싸워서도 안 되고 그것을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저 깨어 있음의 빛으로 고통을 씻어주라.” 1만 3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시력 잃어가는 남자… 말 잃은 여자 고요한 언어 세상서 잠깐의 ‘쉼’을

    시력 잃어가는 남자… 말 잃은 여자 고요한 언어 세상서 잠깐의 ‘쉼’을

    고대 그리스어인 희랍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은 어떤 이들일까. 한강(41)의 새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펴냄)에서는 “동기가 어떻든,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의 속력이 대체로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아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일 테지요). 오래전에 죽은 말, 구어(口語)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이라서일까요. 침묵과 수줍은 망설임, 덤덤하게 반응하는 웃음으로 강의실의 공기는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어갑니다.”라고 희랍어 강사가 설명한다. ●전작들처럼 사회 부적응자 그려 ‘희랍어 시간’의 주인공은 ‘나’와 ‘그녀’로 불리는 한 남자와 여자다. 남자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여자는 말을 잃었다. 남자는 희랍어를 가르치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희랍어를 배운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과 부녀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가녀린 외모에 차분한 말투와 달리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등의 전작에서 날것의 현실과 그 현실 속에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희랍어 시간’의 주인공들도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주인공 남자는 열다섯 살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떠난다. 독일에서 보낸 17년 동안 남자는 ‘화엄경 강의’를 읽고 또 읽는다. 마흔 살이면 유전적 이유로 아버지처럼 시력을 잃게 될 남자는 아직 볼 수 있긴 하다. 너무 늦은 10대의 나이에 독일에 간 남자는 인생과 언어와 문화가 두 동강 나는 경험을 한다. 남자는 독일에서 희랍어에 재능을 발휘한다. 수천년 전에 죽은 언어라는 사실과 함께 그 복잡한 문법체계가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처럼 느껴졌다고 남자는 고백한다. 남자는 모국어를 쓰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에 온다. 여자가 말을 잃은 이유는 분명치 않다. 소설에서는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었다.”고 설명한다. 여자는 반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수년 전에 이혼했고, 세 차례의 소송 끝에 결국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잃었다. 여자는 자명한 원인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라고 필담으로 부인한다. ●6~8월 인터넷 카페에 일일 연재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좀 더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는 남자가 계단에서 헛디뎌 안경이 깨지면서 찾아온다. 여자는 아이가 아플 때처럼 다친 남자를 돌본다. 남자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가면서. 지난 6~8월 인터넷 카페에 일 일 연재된 소설은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섬세하다. 실제로 소설의 여러 장은 시로 채워져 있다. 소설이 당선되기 전에 시가 먼저 인정받았던 작가의 이력이 드러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이자 말은 없고 글로만 남아 있는 희랍어,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말을 잃은 여자 등 소설의 주요 뼈대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이 표출하는 비장미가 어려 있다. 비장미는 언어 속에 담긴 언어를 찾아 글을 쓴 듯한 작가의 문장과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난다.”이다. 누구나 때때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듯한, 발이 없어 죽기 전에는 영원히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없는 ‘발 없는 새’와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소설 ‘희랍어 시간’은 발 없는 새에게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감정과, 고르고 또 고른 절제된 언어로 희랍어 강의 시간과 같은 고요한 언어의 세상에서 잠깐의 ‘쉼’을 안겨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노숙인A:발레가 뭐죠? 노숙인B: (질문같지 않다는 듯이)백조의 호수처럼 아름답게 춤추는 것. 노숙인A:(잠시 고민하다가)그랑 플리에(Grand Plie)는? 노숙인B:무릎과 발이 아웃턴. 노숙인A:그러면 그랑 주테(Grand Jete)는? 노숙인B: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것. 노숙인A:앙바(En Bas)는? 노숙인B:어깨를 내린 후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노숙인A:(더 질문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에이, 얼른 신발 신고 호두까기나 합시다. 차이콥스키가 작곡했다.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는다. 그 인형이 꿈 속에서 쥐의 대군을 퇴치하고 아름다운 왕자로 변한다. 그리고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서울발레단에 의해 초연됐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새달 29~31일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서 선보여 그 진행형 속에 노숙인들이 등장한다. 진짜? 그렇게 물어볼 사람들이 많겠다. 맞다. 노숙인들이 직접 출연하는 발레무대가 오는 12월 29~31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 펼쳐진다. 여기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노숙인도 출연한다. 파티에 참석하는 첫 장면이기에 어색함이 전혀 없다. 이들은 요즘 매주 일요일 과천에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 연습실에서 ‘호두까기 인형’ 춤을 추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웬만한 발레용어도 익숙해졌다. 기존의 단원들과 호흡도 척척 맞는다. ‘호두까기 인형’뿐만 아니다.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Soloist)에도 등장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듯 직접 출연은 물론이고 올해만 발레공연을 10여 차례 관람하면서 예술적 감각,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열심히 발레 교육을 받고 있다. 주로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파는 이른바 ‘빅판’ 10여명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길거리에서 잡지를 팔고 일요일에는 발레 연습실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는 동안 두 명은 연세대 병원 등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노숙인들을 지도하는 사람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52)이다. 그는 노숙인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하다가 영감을 얻어 지난 10월 ‘솔리스트’안무를 하게 됐다. 좋은 업을 쌓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는 복도 받았다. 지난 8일 서울발레시어터 연습실에서 제임스 전을 만났다. 김인희 단장과 먼저 인사를 했더니 옆에 있는 제임스 전을 향해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제임스 전은 부끄러운 듯 웃는다. 나이 50이 넘었지만 웃음이 천진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판’ 파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직접 길거리에 나서기도 한다. 이날도 제임스 전은 그러기에 앞서 잠시 시간을 냈다. 먼저 연말 공연, 그러니까 ‘호두까기 인형’ 버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호두까기 인형은 모던과 클래식이 있는데 이번 공연은 클래식 스타일입니다. 2007년에 안무했던 적이 있지요. 그때와 다른 것은 노숙인들이 무대에 올라선다는 것입니다.” 정식 발레단원이 아닌데 노숙인을 출연시킨다고 하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혹시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맨 앞부분, 그러니까 제1막 1장에 등장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죠.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로 들떠 있습니다. 한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바쁘게 걷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행복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파티장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노숙인들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파티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잖아요.” 발레 무대에 오르는 노숙인 김모씨는 관절이 좋지 않아 똑바로 서기가 쉽지 않다. 불편한 몸이지만 균형 감각을 찾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단다. 파티 장소에서 술에 취한 귀족역할을 맡았다. 조금은 휘청거리고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는 역할이라 별 무리가 없다. 김씨는 1년째 연세대 앞에서 잡지 ‘빅판’을 팔고 있다. 한때 번듯한 PC방 주인이었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처자식과 이별한 뒤 노숙인이 됐다. 또 다른 노숙인 구모씨는 종각역에서 ‘빅판’을 팔고 있지만 올 연말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에 출연했을 때 난생 처음 박수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제임스 전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친구처럼 대한다. 발레를 배우는 노숙인들은 30대에서 50대 남성들이다. 이들 중 열의를 갖고 고정적으로 발레를 배우러 오는 사람은 8명이다. 많을 땐 12명까지 오기도 했다. 제임스 전은 이들에게 오든 안 오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연말 공연을 위해 이들과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해 발레 10번 관람… 이들이 ‘1% 엘리트’” “(노숙인들은)나이도 있고 몸도 굳어 있어 유연성을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발레용어를 알 만큼 많이 익숙해 있지요. 세상 사는 이야기도 서로 거리낌없이 주고받을 정도로 처음보다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과 친해져 같이 잡지도 팔고 삶의 공감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제임스 전은 1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있을 때 노숙인들과 자주 만났다.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아주 돈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노숙인이 됐습니다. 그때 저도 생각이 난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도 없고, 저 또한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정불화나 알코올, 마약,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한순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노숙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국내 한 대기업의 홍보영상 ‘나눔’ 제작에 참여할 때였다. 아이템은 ‘노숙인과의 발레’였다. 현역 발레단원들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노숙인들은 발레연습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등 ‘발레리노’로 거듭나기 위한 자세로 변해갔다. “잡지 빅판을 통해 선발했지요. 그들은 발레 공연만 10번을 봤습니다. 우리 국민 중 1년에 발레 10번 보는 사람은 아마 1%도 안 될 겁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1% 선택된 엘리트입니다’라고 매주 일요일에 만나 3시간 동안 발레연습을 하고 나서 다과회를 합니다. 이때 책 팔린 얘기, 살아온 얘기 등을 진솔하게 나누지요.” 여기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은 웬만한 발레용어도 알지만 처음보다 몸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제임스 전은 말했다. 스텝이나 마임, 걸어가는 자세, 여자와 손잡고 회전하는 동작 등이 그러하다. 노숙인들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제임스 전은 이에 용기를 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지원사업’에 신청, 약간의 지원금을 따내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하게 되면서 탄력을 얻었다. 발레를 통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겠다는 의욕도 더욱 커졌다. “저도 발레를 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노숙인들도 몸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분들도 정말 신이 나서 열심히 따라하고 있고요. 발레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배우고 몸을 단련시키면서 잡지를 판매하기 위한 체력도 기르고 파트너와 협동심도 배우고 말입니다.” 같이 발레를 하면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때는 예술을 왜 하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고통을 이겨나가면서 그 과정을 얘기하는 진지한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예술단체란 좋은 작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이 예술이지요. 그러면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같이 호흡을 하고,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예술의 한 작업입니다. 기존의 우리 단원들도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같이 발레를 하면서 교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발레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잡지를 팔고 있는지 목록을 들여다본다. ‘아, 강남 신사동에 가야겠네.’ 편집위원 km@seoul.co.kr [제임스 전은…] 서울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다. 1977년 스티브 잡스의 모교인 홈스테디 고등학교를 나온 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댄스 아카데미(Menlo Park Dance Academy)에서 발레를 배운 그는 1982년 줄리어드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1984년 유럽의 20세기 센추리-오리스 베자르(20th Century Ballet-Maurice Bejart)에서 춤을 추었다. 플로리다 발레단의 잭슨빌과 함께 일했으며, 198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초대돼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그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했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과 함께 상임 안무가로 16년 동안 70여개가 넘는 작품을 안무했다. 주요작품은 ‘현존 I, II, II’, ‘사계’, ‘위험한 균형’, ‘창고’, ‘이너무브’, ‘백설공주’, ‘결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2를 위한 변주’, ‘호두까기 인형’, ‘작은 기다림’, ‘봄, 시냇물’, ‘슬픈 천사의 춤’ 등이 있다. 2001년 한국 최초로 ‘Line of Life’를 미국 네바다발레시어터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후 2002년에는 ‘이너무브’를 네바다발레시어터에 소개했으며 ‘12를 위한 변주’도 미국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8년 ‘현존 I, II, III’으로 무용예술사선정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백설공주’로 제11회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5년 ‘봄, 시냇물’로 ‘올해의 예술상’ 무용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 한국체육대학에서 생활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열린세상] 종편과 분열지향적 언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종편과 분열지향적 언론/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다음 달 초 개국을 앞두고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의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연합뉴스의 뉴스채널이 준비 작업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간에 쫓겨 일부 채널은 개국을 제때 못하거나 시범방송 정도를 하다가 내년 초에야 본 방송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도 들린다. 새 채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야 눈코 뜰 새 없겠지만, 밖에서 보면 폭풍전야처럼 너무나 고요해 이상한 느낌마저 든다. 종편은 우리 사회에 어떤 편익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혹여나 사회 분열의 폭발음이나 내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이 무겁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의 분열은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 정파적·이념적 분열은 고착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10·26 재·보궐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세대 간 분열과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분열의 현상과 갈등의 결과를 다들 우려만 할 뿐 어쩌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열을 걱정하고 뭔가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주체들이 사실은 분열을 만들어낸 원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회 분열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스스로 언론끼리 분열하고 그것이 사회 분열로 이어지게 만든 장본인은 아니었는지. 이래저래 분열의 상흔을 안고 있는 언론사들은 이제 성찰과 반성의 겨를도 없이 종편과 인터넷·소셜미디어 등 더욱 복잡다기한 분열의 언론환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물론, 사회 분열의 책임을 언론에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가 먼저 정파적·이념적 균열 과정을 거쳤고 거기에 정파적 언론들이 편승, 합세하여 보수·진보 언론이 갈라져 싸웠다. 이런 균열의 소용돌이 속에 시민사회도 동류가 되어 보수와 진보 시민단체들의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갔다.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의 분열 과정에서 분열을 제어할 통합의 정치 리더십은 제대로 출현하지 못했고, 사회 통합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이른바 정론 언론이 자리잡지 못했다. 시장지배적 신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영방송조차도 정권의 향배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편향의 길을 갔다. 편가르기에 익숙해져 버린 한국 사회에서 이제 중간, 중도, 중용의 통합 공간에 서는 것은 자칫 패자의 길로 가는 위험한 도박이 돼버렸다. 정치는 중간에서 양 극단의 정치세력을 포용하는 것보다는 보수든 진보든 극단에 서서 중간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 현실에서 먹히는 전략이 됐다. 언론은 언론대로 중도, 실용을 선택하는 것은 회색 또는 색깔없음으로 치부되어 시민들의 관심과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만큼 생존경쟁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언론들의 언어는 공격적이고 극단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언론 시장에서 분열의 언론만이 살아남고, 그래서 언론 공간은 분열의 언어들로 넘친다. 치열한 정치투쟁, 시장경쟁을 치러야 하는 언론이 사회 통합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분열의 언어로 살아남은 분열의 언론은 이제 종편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동안 분열됐던 신문들이 보다 개방적이랄 수 있는 방송 공간에서 이제는 통합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아니 분열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시대, 창의적인 생각, 신선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한 것 같다. 당장 종편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신문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훨씬 불투명하다. 지금 종편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바쁘면서도 불안한 눈빛에는 통합을 생각할 여유를 찾기 힘들다. 곧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담론 과잉 사회에 온갖 극단적이고 분열적인 주장들이 난무할 터인데, 우리 사회가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마침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스마트폰 방송 등에서 ‘다양한’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종편의 강력한 경쟁자이다. ‘나꼼수’ 방송처럼 극단적인 주장, 자유분방한 분열의 언어를 쏟아내는 데에는 이들이 종편보다 훨씬 자유롭고 영악하다. 자기주장에만 매몰되는 분열 언론의 시대, 어찌해야 할까. 사회의 중심을 잡아줄 정론 언론이 그립다.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9) 강릉 40대 여인 살인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9) 강릉 40대 여인 살인사건

    2003년 3월 22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의 한 연립주택. 4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에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문안에서 잠긴 집안은 연기와 화기로 가득했지만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소방관들은 20여 분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불이 시작된 곳을 찾으려고 방을 하나씩 뒤지던 신입 소방관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급히 선배를 불렀다. “여, 여기···. 칼 맞은 시체가 있어요.” 사건은 경찰로 이관됐다. 희생자는 집주인 A(여·당시 49세)씨. 시신은 침대방 한쪽 이불더미 밑에 숨겨져 있었다. 범인은 이불을 태워 시신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듯했다. 불에 탄 시신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마지막 저항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법의학에서 말하는 투사형 자세(Pugilistic Attitude)였다. 고온에 오랫동안 노출된 시신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열강직 현상이다. 보통 사람의 몸은 펴는 근육(신근)보다는 당기는 근육(굴근)이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열강직 현상도 당기는 근육에 많이 나타난다. 불에 탄 시신은 손목과 팔꿈치를 오므리는 권투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찔린 상처). 범인은 A씨의 등과 왼쪽 팔 등을 무려 35군데나 찔렀다. 매우 당황했거나 복수심에 불탄 자의 소행으로 보였다. 칼의 방향을 봐서 범인은 오른손잡이였다. 범인은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드레스 룸 등 4군데에 동시에 불을 놨다. 이상한 점은 화재 현장 여기저기서 화장품 향이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곧 밝혀졌다. 거실 바닥에 뚜껑이 열린 채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킨로션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발화 지점에서 발견된 에틸알코올과 같은 성분임이 드러났다. 영악하게도 범인은 에틸알코올이 들어간 화장품을 집안 곳곳에 뿌린 뒤 불을 붙인 것이다. 범행 현장에 불을 지르는 범인들은 화재와 함께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이 날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문이나 족적은 물론이고, 범행 시각이나 도주로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방화든 실화든 화재 현장에 완전 연소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알코올이나 휘발유 등 인화성 물질도 바닥이나 벽틈에 모두 연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화재 잔류물 역시 남기 마련이고 그 속에선 증거물이 고스란히 나온다. 오히려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불은 범인에게 방화범이라는 꼬리표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집주인을 알거나 집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에 불을 놓은 뒤 열쇠로 문을 잠그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고 봤다. 이런 추리 뒤에는 현관 외에는 나갈 다른 길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범행 장소가 연립주택의 맨 꼭대기 층이어서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옥상 지붕이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다. 귀금속을 챙기지 않은 것도 원한에 의한 범행을 의심케 했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수사는 겉돌았다. 의심할 만한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 방화 현장을 다시 뒤지던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관 안전핀이 눌러져 있다.”는 보고였다. 일반적으로 보조 잠금장치인 안전핀은 집 안에서만 누룰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밖에서 열쇠로 잠궈도 안전핀은 눌러지지 않는다. 아파트 현관의 안전핀이 눌린 상태라는 것은 즉, 범인이 현관이 아닌 제3의 통로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다. 뒤늦게 확인한 옥상에는 뜯겨진 방충망과 범인이 버린 장갑이 보였다. 면식범만을 쫒던 경찰은 수사 방향을 재설정해야 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수사는 A씨의 휴대전화를 찾으면서 활기를 띠었다. A씨의 휴대전화를 훔쳐간 범인은 대담하게도 범행 후 사흘 동안 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다가 인근 시외버스터미널에 버렸다. 휴대전화 사용명세서를 뽑아본 경찰은 황당했다. 전체 20여 통의 전화 중 대부분이 속칭 폰팅으로 불리는 음란성 유료전화를 거는 데 이용됐다. 마치 규칙이라도 정한 듯 폰팅은 짝수날에만 이어졌다. 범인은 그렇게 죽은 여인을 끝까지 이용했다. “사람을 죽인 날, 그것도 죽은 사람 전화로 폰팅하는 걸 보면 이거 완전 중독인데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루 10통씩 폰팅하던 놈이 홀수날엔 왜 한 건도 전화를 안 했을까…. 황 형사.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이나 공익근무요원 중에서 동종 전과자부터 뽑아봐.” 폰팅업계 특성상 경찰이 협조를 받아내기 쉽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건 한 통의 114 안내전화에 주목했다. 범인이 안내받은 곳은 강릉시 주문진에 있는 한 세탁소였다. 경찰은 한 20대 남자가 여관에서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한 것을 확인했다. 남자가 맡긴 무스탕 점퍼 소매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죽은 A씨의 피였다. 경찰은 잠복 끝에 K(21)씨를 검거했다. 예상대로 K씨는 격일로 근무하는 시청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그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카드 빚에 시달리던 K씨는 혼자 귀가하는 A씨를 보고 집을 털 생각을 했다. 처음엔 배달원을 가장해 집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속아 넘어가지 않자 옥상을 통해 집으로 침입했고, 범행이 발각되자 엉겁결에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형사들을 기막히게 한 것은 범행 후 그의 행적. 피 묻은 20만원을 들고 그가 간 곳은 PC방이었다. K씨는 말을 이었다. “형사 아저씨. 그날 저 죽는 줄 알았어요. 불은 놨지. 연기는 나지. 근데 현관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소년의 티를 갓 벗은 20대 초반의 살인자는 그래도 제 목숨 귀한지는 알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셧다운제 게임중독 구원투수 될까] (하)이복실 여가부 청소년정책실장 인터뷰

    [셧다운제 게임중독 구원투수 될까] (하)이복실 여가부 청소년정책실장 인터뷰

    “게임 셧다운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 또한 익히 들었습니다. 다만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산고(産苦)는 상상 이상이었다. 뭐 하나 손쉬운 것이 없었다. 이복실(50)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후련하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거듭됐던 논란을 의식한 듯 곧바로 “게임 셧다운제는 학교와 가정, 게임업계 등 사회 전체가 청소년의 게임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최소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논란과 우려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강제로 게임 접속을 차단하도록 한 게임 셧다운제 관련 시행령은 8일 오전 법 시행을 고작 열흘 남짓 앞두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지난 5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역시 4년에 걸친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란의 반복, 17대 국회에서의 자동폐기, 그리고 18대 국회 들어서 국회의원 8명의 팽팽한 찬반 발언을 거친 뒤에 간신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게임산업 진흥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제도를 놓고 벌이는 협의도 힘겹기만 했고, 외국의 한 게임업체는 아예 심야시간에는 한국의 네트워크 접속 자체를 차단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놓고 반발했다. 국내 게임업계도 당연히 반발했다. 시민사회 역시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이 실장 역시 게임 셧다운제 반발에 대한 피로감이 컸다. 계속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접하고, 현장 주변 등을 직접 조사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사실 부처 간 합의나 게임업체와의 협의, 사회적 반발 등 난관 앞에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부산의 사건을 보면서 미래세대인 청소년과 가정을 깡그리 파괴할 수도 있는 게임 중독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든 규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다시 추슬렀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 제도가 여전히 완벽하지 않기에 평가자문단을 꾸려 2년마다 셧다운제 적용 대상을 정하는 등 적절성을 평가할 것이며 게임업계 등과 함께 민·관합동 협의체를 꾸려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예정”이라면서 “게임산업 진흥과 셧다운제의 실효성이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게임 중독에 따른 사회적 손실 비용은 최소 1조 7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정보통신강국으로서 어느 나라보다 먼저, 더 아프게 겪고 있는 현상”이라면서 “산업으로서 발전시키는 것인 만큼 폐해를 최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도 절실하다.”고 관심을 당부했다. 물론 아직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문화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지난달 28일 게임 셧다운제를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행복추구권 및 교육권, 평등권이 침해 받았다며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내놓았다. 치열한 법리 논쟁이 예고된 상태다. 여가부 또한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게임업계는 단순히 이익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됐다고 자부합니다. 의미있는 변화죠. 학부모들 역시 가정에서 좀 더 세심하게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PC방 사장님들 또한 한 번 더 주의하실 것이고요. 제도의 실효성은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비로소 담보되는 것이지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살인자가 남긴 화장품 향기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살인자가 남긴 화장품 향기

     2003년 3월 22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의 한 연립주택. 4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에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문안에서 잠긴 집안은 연기와 화기로 가득했지만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소방관들은 20여 분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불이 시작된 곳을 찾으려고 방을 하나씩 뒤지던 신입 소방관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급히 선배를 불렀다. “여, 여기···. 칼 맞은 시체가 있어요.”  사건은 경찰로 이관됐다. 희생자는 집주인 A(여·당시 49세)씨. 시신은 침대방 한쪽 이불더미 밑에 숨겨져 있었다. 범인은 이불을 태워 시신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듯했다. 불에 탄 시신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마지막 저항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법의학에서 말하는 투사형 자세(Pugilistic Attitude)였다. 고온에 오랫동안 노출된 시신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열강직 현상이다. 보통 사람의 몸은 펴는 근육(신근·伸筋)보다는 당기는 근육(굴근·屈筋)이 더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열강직 현상도 당기는 근육에 많이 나타난다. 불에 탄 시신은 손목과 팔목을 오므리는 권투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에 수사는 산으로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찔린 상처). 범인은 A씨의 등과 왼쪽 팔 등을 무려 35군데나 찔렀다. 매우 당황했거나 복수심에 불탄 자의 소행으로 보였다. 칼의 방향을 봐서 범인은 오른손잡이였다. 범인은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드레스 룸 등 4군데에 동시에 불을 놨다. 이상한 점은 화재 현장 여기저기서 화장품 향이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원인은 곧 밝혀졌다. 거실 바닥에 뚜껑이 열린 채 어지럽게 널려 있는 스킨로션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발화 지점에서 발견된 에틸알코올(ethyl alcohol)과 같은 성분임이 드러났다. 영악하게도 범인은 에틸알코올이 들어간 화장품을 집안 곳곳에 뿌린 뒤 불을 붙인 것이다.  범행 현장에 불을 지르는 범인들은 화재와 함께 증거가 될만한 모든 것이 날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문이나 족적은 물론이고, 범행 시각이나 도주로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방화든 실화든 화재 현장에 완전 연소가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알코올이나 휘발류 등 인화성 물질도 바닥이나 벽틈에 모두 연소되지 않은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화재 잔류물 역시 남기 마련이고 그 속엔 증거물이 고스란히 나온다. 오히려 불을 붙이는 과정에서 불은 범인에게 방화범이라는 꼬리표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집주인을 알거나 집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에 불을 놓은 뒤 열쇠로 문을 잠그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고 봤다. 이런 추리 뒤에는 현관 외에는 나갈 다른 길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범행 장소가 연립주택의 맨 꼭대기 층이어서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옥상 지붕이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다. 귀금속을 챙기지 않은 것도 원한에 의한 범행을 의심케 했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수사는 겉돌았다. 의심할만한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상황. 방화 현장을 다시 뒤지던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관 안전핀이 눌려져 있다.”는 보고였다. 일반적으로 보조 시건장치인 안전핀은 집 안에서만 누룰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밖에서 열쇠로 잠궈도 안전핀은 눌러지지 않는다. 아파트 현관의 안전핀이 눌린 상태라는 것은 즉, 범인이 현관이 아닌 제3의 통로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다. 뒤늦게 확인한 옥상에는 뜯겨진 방충망과 범인이 버린 장갑이 보였다. 면식범만을 쫒던 경찰은 수사 방향을 재설정해야 했다.  ●폰팅에 중독된 20대 살인자  막막하기만 했던 수사는 A씨의 휴대전화를 찾으면서 활기를 띠었다. A씨의 휴대전화를 훔쳐간 범인은 대담하게도 범행 후 사흘 동안 이 휴대전화를 이용하다가 인근 시외버스터미널에 버렸다. 휴대전화 사용명세서를 뽑아본 경찰은 황당했다. 전체 20여 통의 전화 중 대부분이 속칭 폰팅으로 불리는 음란성 유료전화를 거는 데 이용됐다. 마치 규칙이라도 정한 듯 폰팅은 짝수날에만 이어졌다. 범인은 그렇게 죽은 여인을 끝까지 이용했다.  “사람을 죽인 날, 그것도 죽은 사람 전화로 폰팅하는 걸 보면 이거 완전 중독인데요.”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하루 10통씩 폰팅하던 놈이 홀수날엔 왜 한 건도 전화를 안했을까. 황 형사.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원이나 공익근무요원 중에서 동종 전과자부터 뽑아봐.”  폰팅업계 특성상 경찰이 협조를 받아내기 쉽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건 한 통의 114 안내전화에 주목했다. 범인이 안내받은 곳은 강릉시 주문진에 있는 한 세탁소였다. 경찰은 한 20대 남자가 여관에서 “세탁물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한 것을 확인했다. 남자가 맡긴 무스탕 점퍼 소매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죽은 A씨의 피였다. 경찰은 잠복 끝에 K(21)씨를 검거했다. 예상대로 K씨는 격일로 근무하는 시청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그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카드 빚에 시달리던 K씨는 혼자 귀가하는 A씨를 보고 집을 털 생각을 했다. 처음엔 배달원을 가장해 집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속아 넘어가지 않자 옥상을 통해 집으로 침입했고, 범행이 발각되자 엉겁결에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형사들을 기막히게 한 것은 범행 후의 행적. 피묻은 20만원을 들고 그가 간 곳은 PC방이었다.  K씨는 말을 이었다. “형사 아저씨. 그날 저 죽는 줄 알았어요. 불은 놨지. 연기는 나지. 근데 현관문이 안 열리더라고요.”  소년의 티를 갓 벗은 20대 초반의 살인자는 그래도 제 목숨 귀한 지는 알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시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사회 첫발 20대女 살해한 택시기사, 흙탕물이…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DNA는 남자라고 말하는데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 원더걸스 “이젠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원더걸스 “이젠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텔미’에서 ‘노바디’까지. 앳된 얼굴에 복고 컨셉트로 2007년 혜성같이 등장해 가요계에 아이돌 열풍을 몰고온 그룹 원더걸스. 그녀들이 1년 6개월여 만에 정규 2집 ‘원더월드’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 4일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원더걸스를 만났다. 7일 발매되는 새 앨범은 표지부터 강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타이틀곡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는 1960년대 솔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으로 데뷔 5년차 원더걸스의 원숙함이 묻어난다. “국내 걸그룹도 많아졌고, 오랜만의 컴백이라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가장 원더걸스다운 음악과 안무로 승부를 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노래 자체는 밝고 즐겁게, 안무에는 따라하기 쉬운 재미있는 동작을 넣었습니다. 웃기다 싶을 정도로 다리를 떤다든지…. ‘베이비’라는 대목에서 아기를 안은 듯한 동작이 대표적이죠.”(예은·22) “일부러 성숙해지려 했다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성숙미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을 주로 보여드렸다면 이번에는 ‘블랙 시크’라는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컨셉트로 정했습니다.”(소희·19) 2007년 전국에 ‘텔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빅뱅과 함께 아이돌 열풍을 몰고왔던 원더걸스. 그들은 최정상의 위치에서 미국에 진출해 가요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히트곡 ‘노바디’로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76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 2년간의 미국 진출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처음부터 미국 진출을 계획하고 현지화된 음악으로 승부했다기보다는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바디’로 활동을 이어간 측면이 컸어요. 미국 시장 공략은 원래 3년 정도 잡았고, 아직도 도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미국에서 내는 정규 앨범에는 저희의 색깔을 더 많이 담을 작정입니다.”(선예·22) “미국에서의 시간은 저희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어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나를 많이 잃어버린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가보니까 저희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섞이면서 다양한 문화도 배우고 음악적인 폭도 넓혔습니다. 처음엔 영어가 안 돼 힘들어 운 적도 많아요. 언어가 트이고 나니까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예은) 내년 1~2월쯤 미국에서 앨범을 낼 계획인 원더걸스는 독특한 홍보 전략을 세웠다. 자신들의 미국 도전기를 소재로 한 미국 TV 드라마 ‘원더걸스 앳 디 아폴로’에 직접 출연하는 것. ‘비 마이 베이비’는 이 드라마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기도 하다. “미국 시장에 도전하면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멤버 간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예요. 약간의 로맨스도 있고요. 한 시간 분량으로 미국의 10대들이 주된 공략 대상입니다. 멤버 모두 연기에 도전한 것은 처음이에요. 다섯 명이 함께해서 그런지 어색함은 덜했던 것 같아요.”(유빈·23) 비슷한 시기에 컴백한 걸그룹 소녀시대와의 정면 대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그룹과의 경쟁보다는 오랜만에 앨범을 선보이는 데 대한 부담이 더 컸어요. 가수는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직업이잖아요. 저희가 미국에 간 이후에 여러 걸그룹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가요계를 주도했다는 얘기에 기분 좋았어요.저희도 그 대열에 다시 합류하게 돼서 즐겁고 감사하고요.”(선예) 12곡의 신곡이 빼곡히 담긴 정규 앨범에는 선배 가수 신중현의 히트곡 ‘미인’을 원더걸스만의 색깔로 표현한 ‘미, 인’(Me, in)도 들어 있다. 지난해 2월 탈퇴한 선미 대신 새로 합류한 멤버 혜림(19)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다.”며 웃었다. 그래도 지나간 4년을 되짚는 대목에서 멤버들은 그간의 고생이 밀려왔던지 살짝살짝 눈물을 비쳤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 여동생이 아닌 세계적인 걸그룹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며 이내 눈물을 닦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멤버 모두 우리 나이로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엔 (소속사에서) 짧은 배꼽티도 못 입게 했거든요(웃음). 팬들과 함께 천천히 성장해가고 싶어요.”(멤버 모두)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마카오-백스테이지를 사랑한 사람들

    마카오-백스테이지를 사랑한 사람들

    요즘 마카오의 쇼 비즈니스계를 달구는 두 주인공은 태양의 서커스 <자이아>와 호평을 얻고 있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다. 베일을 ‘꽁꽁’ 두르고 있던 그들이 ‘화끈하게 보여 주겠다’는 초대에 며칠 상간으로 두 명의 기자가 마카오로 달려가야 했다. MACAU 백스테이지를 사랑한 사람들 요즘 마카오의 쇼 비즈니스계를 달구는 두 주인공은 태양의 서커스 <자이아>와 호평을 얻고 있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다. 베일을 ‘꽁꽁’ 두르고 있던 그들이 ‘화끈하게 보여 주겠다’는 초대에 며칠 상간으로 두 명의 기자가 마카오로 달려가야 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쇼 스테이지. 그 무결점의 판타지를 완성하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두 눈과 발로 확실히 보고 왔다. 전설이 된 서커스 Cirque du Soleil <ZAIA> 아시아 최초의 태양의 서커스 상설공연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자이아ZAIA>가 화려한 막을 올린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1000번이 넘는 공연을 했으니 변신을 할 때가 되긴 했다. 지난 9월 초 ‘전혀 다른 쇼’라고 불릴 만큼 달라진 <자이아>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흥분되는 일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태양의 서커스 www.cirquedusoleil.com 퀘벡의 거리에서 태어나다 한 무리의 거리 공연단이 있었다.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한 그들은 춤을 추고, 불을 뿜고, 죽마를 타는 등 놀라운 묘기를 보여주었다. 질 셍 크루아가 창립한 극단의 이름은 ‘벵 생 폴 마을의 죽마 타는 사람들’이었다. 이후 그들은 ‘하이힐 클럽’을 창단하고 ‘벵 생 폴 마을의 카니발’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온 거리 공연자들이 공연을 펼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문화 이벤트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개최되었고, 사람들은 하이힐 클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퀘벡 주를 대표할 서커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그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기 랄리베르테가 훗날 태양의 서커스의 가이드 겸 창립자가 된다. 1984년 캐나다 창립 45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기 랄리베르테는 직접 공연을 만들고 축제 조직 위원회측을 설득했다. 겨울이 혹독한 캐나다에서는 연중 공연을 펼칠 수 없었기에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이 극단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커스인 ‘태양의 서커스’의 시작이다. 그후 ‘태양의 서커스’가 보여준 성장의 속도는 놀랍다. 1984년에 불과 73명이었던 직원은 이제 1,300명의 아티스트를 포함해 5,000명으로 늘어났다. 2011년 현재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 공연은 상설공연과 투어쇼1)를 포함해 22개. 1984년부터 지금까지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줄잡아 1억명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1,5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이 세기의 서커스들을 만났다. 한국에서도 공연 투어마다의 매진은 물론이고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2)에서 주인공(성유리 役)이 태양의 서커스 공연기획자로 등장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상상하지 못할 상상을 위하여 ‘태양의 서커스’의 미션은 명료하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태양의 서커스가 내놓고 있는 모든 공연의 공통점은 ‘환상과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 시공간을 초월한 캐릭터,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들의 기예가 특수 효과와 조명 등의 최첨단 기술을 만나서 매번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태양의 서커스’는 1992년 이후부터 어떤 공적 자금이나 사적 기부금을 받지 않고 있다. 다만 최상의 공연을 꿈꾸며 세계 여러 곳에 있는 20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재능을 쏟아 붓고 있다. 또 이 밖에도 컨벤션, 외식 사업, 여성 피트니스 프로그램 주카리3) 등, 자신들의 창조적인 역량이 접목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현재 무려 7개의 태양의 서커스 쇼가 공연 중인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 호텔에 있는 ‘레볼루션 라운지’와 아리아 리조트 & 카지노의 ‘골드 라운지’는 외식 사업에 대한 태양의 서커스의 관심을 증명한다. 아시아 유일의 태양의 서커스, ZAIA 태양의 서커스가 아시아로 처음 눈길을 돌린 것은 1992년이었다. 일본 도쿄를 핵심 거점으로, 홍콩, 호주, 싱가포르, 한국 등 15개 아시아 도시를 순회하며 지금까지 5,500번 이상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8월28일, 라스베이거스 샌즈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베네시안 마카오 리조트 & 호텔에서 아시아 첫 상설 프로덕션인 <자이아> 극본·연출 질 마흐4)를 론칭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일본의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제드Zed>가 상설공연을 시작했다. 두 쇼 모두 올해 1,000번째 공연 기록을 갱신했다. 아직 한국에는 상설 공연이 없기도 하거니와 (지금까지 5개의 태양의 서커스 공연을 관람한 경험으로 단언컨대) 태양의 서커스는 공연마다 완전히 다른 콘셉트와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에 태양의 서커스 상설공연이 있는 국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일부러 쇼를 챙겨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지진과 쓰나미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 디즈니랜드측이 후원 중단을 결정해서 <제드>가 올해 12월까지만 공연될 예정이다. 이로써 <자이아>는 아시아 유일의 태양의 서커스 상설 쇼가 된다. 1 주인공 ‘자이아’는 우주 비행사가 되어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 싶어하는 어린 소녀다 2 4중 공중그네를 이용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정확한 호흡이다 3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아티스트들이 관객들을 맞이하며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로 웃음을 주었다 1)투어쇼는 빅 탑Big Top이라는 간이 무대를 설치해 올려진다. 한국에는 2007년 <퀴담Quidam>과 2008년 <알레그리아Alegria>, 올해 <바레카이Varekai>를 위해 올림픽 경기장에 빅 탑을 설치했었다. 2)태양을 삼켜라 2009년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여배우 성유리가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공연장에서 태양의 서커스팀과 직접 촬영을 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전까지 태양의 서커스가 드라마에 등장한 것은 <CSI 라스베이거스> 밖에 없었다고 한다. 3)주카리 핏 투 플라이Jukari Fit To Fly 태양의 서커스와 의류 브랜드 ‘리복’이 함께 개발한 여성용 피트니스 프로그램으로 서커스의 공중 그네를 응용한 플라이 셋Fly Set에 매달려 근력 운동을 하는 방식이다. 주카리는 이탈리어어로 ‘놀이’라는 뜻이다. 4)자이아ZAIA 그리스어로 ‘삶’이라는 의미이며,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주 비행사가 되어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 싶어하는 소녀, 자이아의 꿈을 따라 공연이 전개된다. 환상의 생명체가 모여 사는 우주와 별, 행성들의 세계를 본 소녀가 결국 인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special encounter 대니얼 라마르 태양의 서커스 CEO 언젠가 책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 그와의 만남은 깜짝 선물에 가까웠다. ZAIA 3주년 기념행사의 테이블에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가 쏟아내기 시작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식사 시간이 영원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어떻게 태양의 서커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저널리스트로 홍보대행사와 방송국 등에서 일했다. 오래 전에 창립자 기 랄리베르테를 만나 태양의 서커스의 홍보 컨설팅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기는 내게 대행료를 지불할 수 있는 형편도 못 됐다(웃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기가 내게 전화를 해서 CEO를 제안했을 때 나를 그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었다. <비틀즈 러브>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무려 3년을 끌었던 길고 지루한 협상이었다. 비틀즈 멤버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5년쯤 된 것 같은데, 어느날 기과 나는 무작정 런던으로 날아가서 조리 해리슨의 ‘콜’을 초초하게 기다리게 됐다. 그가 기분이 좋아야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대기하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서 마침내 공연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1) 그날 맥주를 엄청 마셨다. 어느날은 조리 해리슨과 그 아내 올리비아와 함께 식사를 했었는데, 그 아들이 와서 ‘아마도 당신이 두 사람과 함께 식사한 마지막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두 사람이 이혼을 하더라. 태양의 서커스 CEO로 나는 흥미로운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언젠가 이런 숨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잭슨도 생전에 ‘태양의 서커스’를 매우 좋아했다던데. 그는 ‘태양의 서커스’의 거의 모든 쇼를 보았을 정도로 열렬한 우리의 팬이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리가 쇼에 사용하는 화려한 의상과 분장이었다. <마이클 잭슨 더 이모털 월드 투어Michael Jackson The Immortal World Tour> 쇼를 5년 전부터 준비했는데 마이클 잭슨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이제 마이클 잭슨이 없어서 아쉽지만 쇼 무대에서 그의 모습을 담은 많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10월부터 월드 투어 쇼를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설 공연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1,500여 명의 연기자를 어떻게 선발하고 관리하나? 태양의 서커스에는 장애인 연기자도 있고, 72살의 고령 연기자도 있다. 몬트리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캐나다 회사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취업 비자 등의 문제가 하도 복잡해서 우리 회사만 전담하는 캐나다 외무부 직원이 있을 정도다. 연기자 선발은 연중 수시로 이뤄지고 있는데, 당장 투입할 쇼가 없더라도 ‘대기 연기자’로 계약을 맺고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현재 20여 명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각 쇼마다 출연하는 연기자를 고정했지만 지금은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내 생애 단 한번 사인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한국에서였다. 2008년 <블루오션 전략>2)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에 갔었다. ‘거리의 악사에서 최고의 블루오션으로’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내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 1)비틀즈 러브의 공연은 2006년에 시작됐고 초연에는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뿐 아니라 오노 요코, 올리비아 해리슨, 바바라 바크 등 비틀즈 멤버의 아내들과 줄리안 레논, 다니 해리슨 등 자녀들이 모두 참석했었다. 2)블루오션 전략 2005년 한국 출판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베스트셀러로 ‘레드 오션’에 대한 경쟁에서 벗어나 ‘블루 오션’을 공략하는 전략을 소개했다. 태양의 서커스가 전통적인 서커스를 현대적인 예술로 승화해 새로운 공연 형태를 개척한 사례로 소개됐었다. (김위찬 저 / 강혜구 역 / 교보문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ke up·prop·back stage·costume Behind Scene 서커스보다 신기한 <자이아>의 백스테이지 태양의 서커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75명의 아티스트가 전부가 아니다. 그 뒤에 110명의 기술자가 움직이고 있다. 못 박는 사람조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이 무대를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선을 무대 뒤로 옮겨서 객석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make up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 아름다운 용모로 시선을 사로잡은 메이크업 담당자 쉐넌 야후Shannon Yoho prop 소품을 담당하는 새론 커스터스Sharon Custers가 백드롭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우주인 소품 옆에 서 있다. 공연에는 3가지 다른 스타일의 자전거 25개가 사용된다. Do it Yourself 아티스트는 물론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들도 모두 스스로 메이크업을 한다. 처음 배울 때는 두 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45분 만에 변신을 끝내는 연기자도 있다. 땀에 쉽게 지워지지 않고 색이 잘 드러나도록 초벌 메이크업을 한 뒤 백색 파운데이션을 덧칠하고 그 위에 다시 한번 메이크업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년에 사용되는 백색 파운데이션이 1,000개가 넘는다. 연간 소모되는 인조 속눈썹이 500여 개, 파란색 반짝이는 2kg 정도다. <자이아> 무대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워렌 도노후Warren Donohoe Safety <자이아>의 백스테이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30~40여 명의 기술자가 필요하다. 난이도가 높은 연기가 많기 때문에 태양의 서커스에서는 모든 연기자를 위한 구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동작이 있고, 구조까지 15분 정도가 걸린다. 36개의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엘리베이터는 정해진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만 탑승할 수 있다. 공연 초반에 등장하는 ‘시티 스케이프’ 세트는 아티스트들이 뛰어다니기 때문에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모든 기준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규정을 준수한다. 핸드 투 핸드 곡예사의 의상은 제2의 피부와 같은데, 마치 얼음과 크리스털 같은 질감의 나뭇잎을 입고 있는 듯하다. 옷감에 그려진 패턴은 스크린 프린트 기법으로 인쇄한 것이다. Polar Bear 북극곰 안에는 2명의 아티스트가 들어가 머리, 입, 눈, 다리 등을 조종한다. 머리 안쪽에 작은 카메라가 있어서 스크린을 보면서 곰의 안무를 펼친다. 의상을 부풀리고 아티스트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2개의 송풍기도 돌아간다. back stage 간단해 보이는 소품 하나에도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어서 불빛의 색깔이나 위치가 자동으로 변하게 된다. 소품을 옮기는 손수레는 무선 조종으로 초당 1.8~3m씩 이동한다. Sphere 공연이 시작될 때 무대 한가운데에 놓이는 지름 7.6m의 거대한 구는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초당 1.8m이상의 속도로 무대와 객석의 천장을 회전하게 되는데 내부에 6개의 프로젝트가 설치되어 별자리 등의 영상을 아름답게 투영한다. 표면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The Theatre 둥근 지붕과 원근법으로 거대한 망원경을 연상시키는 <자이아>의 무대는 마치 마야족의 천문대처럼 생겼다. 천장의 높이는 24m, 자이아가 떠나는 우주로의 여정에 잘 어울리는 시간 초월의 공간이다. Star Drop 3,000개의 광섬유를 이용해 별이 가득한 마카오의 밤하늘을 재현한 ‘스타 드롭’은 높이와 폭이 모두 30m가 넘어서, 제작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백드롭이었다. 정확한 표현을 위해 실제 별자리를 사용했다. Sun 공연이 끝날 때쯤 등장하는 청동으로 도금한 태양은 지름이 6m가 넘고 무게는 414.58kg에 이른다. Artists <자이아>에는 75명의 아티스트와 3명의 풀타임 코치가 있다. 그중 중국인 아티스트는 총 13명으로 3명의 댄서와 10명의 곡예사가 있다. costume <자이아> 의상팀 슈퍼바이저 데보라 린든Deborah Linden <퀴담>에서 4년 반을 일했고, 2년 전부터 <자이아>에서 의상을 담당하고 있다. Washing 아티스트들은 2벌 이상의 의상을 보유하는데 공연이 끝나면 의상팀에서 매일 분리해서 손세탁을 한다. 기존의 옷감뿐 아니라 주변의 온갖 소재들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톡톡 터진다. 공연에는 가발, 모자, 신발 및 액세서리를 포함해서 1,500여 개 의상이 필요하다. Textile 의상에 주로 사용하는라이크라는 미국 ‘뒤퐁’사가 만든 스판덱스의 상표명으로 신축성, 내열성이 뛰어나고 세탁, 땀 등에도 쉽게 변형되지 않아 산업용, 군수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자이아>에서는 처음으로 무게가 가벼운 폴리에스테르 천도 사용되었는데, 다양한 색깔을 입히는 승화sublimation기술을 사용했다. Plaster cast 태양의 서커스 아티스트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몬트리올에 가서 얼굴 석고상을 뜨는 것이다. 정확한 신체 치수를 재는 것은 물론 얼굴 두상을 떠서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가발이나 머리장식을 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의상의 접히는 부분마다 안정장치를 연결하기 위한 고리들도 숨어 있다. Idea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의상 곳곳에 숨어 있다. 자이아 쇼의 휴먼Human 캐릭터들이 쓰는 모자는 펠트 천으로 된 바디에 빗살 모양의 장식이 머리 앞부분에 달려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장식이 ‘케이블타이’ 라고, 집에서도 흔히 쓰이는 전선 정리용 끈이다. Ticket 태양의 서커스 <자이아> @베네시안 마카오 리조트 베네시안 마카오 리조트는 이름 그대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테마로 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시설을 갖춘 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다. 모두 스위트로 구성된 3,000여 실의 객실은 기본이고, 3,000여 대의 슬롯머신과 750개의 게임 테이블을 갖춘 대규모 카지노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100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입점한 약 330여 개의 쇼핑몰과 30여 개의 레스토랑은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시안 리조트보다도 규모가 크다. 이 밖에도 운하 위를 유유히 저어나가는 50여 대의 곤돌라, 얼음조각전 ‘아이스월드’, 스파 등 각종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해서라도 꼭 챙겨 보아야 할 것은 역시 태양의 서커스 <자이아>다. 장소 베네시안 마카오 리조트 상설공연장 시간 90분 공연, 오후 8시(매주 수요일 공연 없음), 예매 사이트에서 정확한 스케줄을 확인해야 함. 문의 마카오 (853) 2882-8818, 홍콩 (852) 6333-6660 www.cirquedusoleil.com 관람료 성인 MOP$388~1,288(한화 약 6만~20만원), 아동 MOP$194~394(한화 약 3만~6만원) Letter from Macau 태양의 서커스 의상은 완벽해요! <자이아> 의상팀 유은경씨 이 글을 쓴 유은경씨는 5,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태양의 서커스에서 단 두 명뿐인 한국인 직원 중 하나다. 현재 의상을 관리하는 쇼진행 담당으로 공연이 시작되면 무전기를 차고 의상실에서 대기하며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불가능이라고 했던 꿈을 이루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있어서 배웠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TV에서 <퀴담>을 보았을 때 그 충격이란 말도 못하죠. <퀴담>이 2007년 첫 내한공연을 왔을 때 같이 일해 오던 감독님이 합류하게 되었고, 그것이 태양의 서커스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어요. 투어쇼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알 만한 공연 이력이 필요했어요. 지원에서도 10번도 넘게 떨어졌죠. 처음 한두 번이야 기대도 안했지만 다섯 번이 넘으니 안 되겠더라고요. 아예 태양의 서커스 홈피에서 자격요건을 프린트해서 벽에다 붙여놓고 하나씩 채워나가면서 4년을 준비했어요. 오로지 한 회사만을요. 그러다가 <퀴담> 공연부터 간간히 메일을 주고받던 의상팀 슈퍼바이저 데보라에게 <자이아>에 합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22개 쇼를 가진 태양의 서커스에 한국 국적을 가진 직원은 저와 라스베이거스 <오O> 쇼에서 일하는 홍연진씨뿐이랍니다. 3개월간 평가기간을 통과하고 마침해 아티스트 연습실에 태극기가 걸리게 된 날은 정말 뿌듯했어요. 끼가 넘치는 아티스트들과 산다는 것 연기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건 무척 재미있어요. 너무 유쾌하고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거든요. 물론 쉬는 날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는 연기자들을 보면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기도 하지만요. <자이아>에는 남녀가 호흡을 맞춰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서가 꽤 있어요. 에어리얼 뱀부Aerial Bamboo와 핸드 투 핸드Hand to Hand 배우들은 실제로도 부부에요. 같이 연습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대요. 그래서 스케이트 액트Skate act 배우들도 당연히 부부일 줄 알고 연애사를 물어봤다가 민망했던 적이 있었죠. 그리고 무대 매니저 중에 카미Kami라는 분은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불어를 구사하고, 요즘 러시아를 배워서 무려 5개 국어를 할 줄 알아요. 다음 장면 아티스트들을 대기시키는 콜을 그들의 언어로 하더라고요. 태양의 서커스 직원들은 대부분 2~3개국 언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저도 요즘엔 불어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있어요. 공중그네라고 말하는 트래피즈Trapeze 아티스트들도 재밌어요. 브라질에서 서커스를 하다가 온 친구들인데 알고 보니 형, 동생, 사촌동생, 삼촌 등으로 이루어졌어요. 보통 그렇게 가족이 함께한데요. 의상마다 이름표를 붙이는데 중간 혹은 끝자리 이름이 똑같아서 처음엔 뭐가 잘못된 줄 알았어요. 완전한 의미의 ‘맞춤 의상’을 제작하다 태양의 서커스 의상은 ‘디자인’이라는 의미에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원단의 컬러염색부터 패턴까지 각자 캐릭터에 꼭 맞게 배정되기 때문이죠. 쇼에는 고난이도의 신체 움직임이 필수라서 의상 제작에 있어서도 인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마요Maillot라고 불리는 무용수용 보디수트는 색깔이 스무 가지가 넘어요. 아티스트들의 피부톤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죠. <자이아>는 상설극장쇼라서 업무환경이 좋아요. 하지만 저의 다음번 목표는 투어쇼로 옮기는 것이고, 언젠가 한국에도 가고 싶어요. 그전에 여기에서 한국에서 접해 보지 못했던 염색법을 꼭 배우고 싶고, 태양의 서커스 의상들을 다루는 법도 더 배워야 해요. 저의 핵심 기술은 구두입니다. 패턴부터 제작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기술은 의상팀에서도 아직까지 저 혼자랍니다. 일하는 동안 우리팀 모두에게 구두를 하나씩 선물한다는 작은 목표를 세웠어요. 태양의 서커스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중요시해서 1년에 한번씩 모든 분야에 걸쳐 아이디어를 공모하는데 저는 올해 <자이아> 기념품 디자인을 응모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아이디어를 낸 투어링 쇼가 실제로 제작되면 좋겠어요. 너무 꿈같은 얘기라고요? 한국에서 제가 태양의 서커스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꿈같은 얘기라고 했었답니다. 제가 <자이아>를 떠나서 다른 투어쇼로 가더라도 한국에서 또 다른 분이 도전해서 오셨으면 해요. 그래서 여기 걸린 태극기가 내려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꿈의 도시에서 만난 꿈의 워터쇼 The House of Dancing Water 공연 1년 만에 마카오가 자랑하는 지상 최대의 수중 쇼로 자리잡은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1주년 기념행사로 그 어느 때보다 들뜨고 화려했던 공연 현장에 다녀왔다. 환상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로 마음을 빼앗은 수중 쇼는 마카오의 야경보다 아름다웠고, 백 스테이지와 프랑코 드라곤 예술 감독에게서 들은 공연의 숨겨진 면면은 새삼 쇼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글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사진제공 시티오브드림즈 www.cityofdreamsmacau.com 프랑코 드라곤 엔터테인먼트 그룹 www.dragone.mo 지상 최대의 워터 쇼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물과 역동적인 연기자들의 완벽한 연기가 스펙터클함을 더한다 세계 최대 규모 수중 쇼의 탄생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가 짧은 기간 안에 성공을 이룬 배경에는 시티 오브 드림즈의 수장인 로렌스 호Lawrence Ho 회장의 문화에 대한 열정이 있다. ‘마카오 카지노 황제’라고 불리는 스티브 호의 아들인 로렌스 호 회장은 세계적인 쇼를 만들기 위해 태양의 서커스 쇼 제작에 참여했던 예술 감독 프랑코 드라곤Franco Dragone1)을 만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와 몇 년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 바로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다. 약 20억 홍콩달러(약 3,0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해 만든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시티 오브 드림즈2) 내의 전용 극장 ‘댄싱 워터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로, 공연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벌써 70만명이 넘는 관중이 다녀가 리조트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상품이자 마카오에서 꼭 봐야 할 쇼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90분 이 한 편의 아름다운 수중 서사시는 신비로운 왕국을 통치하던 왕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아들을 왕좌에 올리려는 뱀의 여왕과 그에 대응하는 선한 힘인 공주, 그리고 운명처럼 왕국에 떠내려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낯선 이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수중과 지상, 공중을 넘나드는 기술적인 화려함과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듯 대범하고 다채로운 서커스와 무용, 묘기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되어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을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뱃사공이 유유히 노를 젓던 바다는 주인공이 뭍에 닿자 언제 그랬냐는 듯 육지로 변해 버린다. 지하에서 올라온 중국풍 정자에서 주인공과 공주가 찰나의 만남을 가지고 있노라면 방금까지 아름답게 춤추던 분수가 격노한 듯 흔들리며 사방에서 그들의 만남을 방해하는 적들이 날아오고 나무는 불타오른다. 그렇게 적들에 의해 우리 속에 갇혀 버린 공주가 수십 미터 상공으로 치솟아 오르고, 그녀를 쫓던 안타까운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올 때쯤에는 어느새 무대에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공중에 매달린 그네와 샹들리에에서 조심스레, 그러나 중력이나 두려움 따위는 벗어던진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보다 빛나는 하나의 작품이 되곤 했다. 아찔할 정도로 환상적인 90분이었다.3) 자칫 단순할 수 있는 선악구조 속에서도 배우의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 물의 흔들림 하나하나가 순간순간 진중하고 적절했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측이 자신들의 공연을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쇼show like no other on Earth’라고 말하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었다. ‘태양의 서커스’ 같은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 국내에 덜 알려졌던 때,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도시의 그 어떤 볼거리보다도 공연을 본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카지노 도시의 화려함을 무색케 했던 공연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첫 마카오 여행을 다녀온 후, 나도 그녀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카오의 화려한 야경도, 입에서 녹는 에그타르트도, 이국적인 세나도 광장도 인상적이었지만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만큼 내게 감동을 주진 못했다’고. 1 물에 떠내려온 낯선 이가 신비로운 세상에 도착하는 장면. 물과 연기, 조명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조정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2 공연의 히로인 프린세스. 흰색 의상과 우아한 발레가 수십개의 분수와 어우러져 그녀가 연기하는 ‘선’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3 깃털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백조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물가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들의 군무다 4 수중 씬 곳곳에는 다이버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다 1) 프랑코 드라곤이 참가한 태양의 서커스 작품으로는 <퀴담>, <미스테어>, <오>, <라 누바> 등이 있다. 2) 시티 오브 드림즈는 세계적인 명성의 크라운, 하드록,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더해 42만 평방피트 규모의 카지노, 20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바,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브랜드숍, 공연장이 리조트를 구성하고 있다. 3)공연 줄거리의 바탕은 전통적인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칠정’, 즉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과 삶의 모습을 물속에 녹아내려 했다는 깊은 성찰이 쇼 곳곳의 디테일에서 묻어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ke up·prop·back stage·costume Behind Scene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백스테이지 공연을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백스테이지 투어를 기다리며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배우들의 대담한 연기와 무한하게 변화되는 듯 보이던 무대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 무대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팀이 비밀스레 공개한, 어쩌면 공연보다 더 재미있을 생생한 무대 뒤 이야기. control booth 무대는 하나가 아니다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콘트롤 부스는 말 그대로 공연의 모든 부분과 상황들을 콘트롤하는 쇼의 브레인 같은 곳이다. 270도 원형구조의 객석, 공중, 무대, 수중 등등 모든 곳의 상황이 이곳에서 관찰되고 통제되어진다. 이곳에서는 무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하나로 보이는 중앙 무대는 사실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각 부분들은 지하 7m까지 내려갔다가 1분 안에 올라오고 몇 초 안에 물기가 마르는 것이 가능해, 바다였던 곳이 순식간에 육지가 된다. Performers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진정한 볼거리는 연기자들이다. 화려한 무대와 테크닉 속에서도 단연 빛나는 그들의 세심한 연기와 훈련된 몸짓 하나하나는 가히 예술이다. Prop 공연 초반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상어떼의 출현 씬 또한 보이지 않는 공로자들인 다이버들의 얼굴 없는 연기가 빛나는 장면이다. 다이버들도 카메라 및 통신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진다. costume 방수 소재로 제작된 400점의 의상들 공연에는 뮤지컬 <카르멘>, <토요일밤의 열기>, 우디 앨런 영화 등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았던 수지 벤징어Suzy Benzinger가 디자인한 400여 점의 의상이 사용되었고, 수중과 지상을 오가는 쇼를 위해 특수 방수 소재로 만들어진 신발과 의상들이 제작되었다. 의상에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1만5,000여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장식을 사용했다. Theatre 용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전용관 ‘댄싱 워터 극장’은 원형구조로 어디에 앉아도 쇼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39개의 크고 작은 분수와 올림픽 수영장 5개 사이즈의 무대 밑 수영장이 화려한 워터쇼를 완성한다. Monitoring 무대는 그것 외에도 장면마다 바뀌는 백그라운드 3D영상과 조명, 음악, 연기 등 다양한 기술적 요소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곳이다. 이 복잡한 과정들은 부스 안 7명 남짓한 기술자들의 손에 의해 각각 통제되고 있고, 책임자는 여러 개의 모니터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관찰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26m의 낙하, 초당 8m의 비행 Secret of Flying Artists 공주가 갇힌 케이지에 매달려 주인공과 적들이 올라가는 이 장면처럼 쇼의 많은 극적인 장면들이 공중에서 연출된다. 최고 26m 높이에서의 점프, 초당 8m의 비행. 눈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속도감이 아찔하다. property 물속에서도 볼 수 있는 야광 글루 깊은 수영장 밑에서 정확하게 위치를 알고 무대로 올라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궁금증은 후에 무대 바닥을 자세히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무대 바닥에는 작은 야광 글루가 붙어있어 어두운 물속에서도 따로 라이트를 쓰지 않고 그 위치를 알 수 있게 해놓았다. 소품은 물에 녹슬지 않는 소재를 사용하고, 안전 범위 내의 최소한의 전기만 사용하는 등의 수칙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People CEO 로렌스 호, 예술감독 프랑코 드라곤 그리고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연기자들과 스태프들. 공연은 약 130명의 제작 스태프 외에도 2년간의 오디션 후 뽑은 80여 명의 연기자로 구성된다. 25개 국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완벽한 쇼를 만들어내는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태프 제이Jay 지상 8층, 약 36m 위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공중에서 오고가는 배우들과 소품을 담당하고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은 백스테이지에는 바닥의 푸른 라이트나 움직이는 플랫폼 같은 장치들이 있어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동 루트나 뛰어내릴 장소를 정확히 알고 빠르게 이동하게 도와준다. 철저한 훈련을 거친 연기자들이라 위험한 상황은 일어난 적 없지만 만약을 위해 이 높은 곳에도 위급상황을 위한 구조시설이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다. 홍보담당자 플로렌스Florence 밝은 웃음을 지닌 그녀가 소개해 준 의상실에서 연기자들의 의상과 소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깃털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붙여가며 만든 백조들의 의상과 소품, 순수한 여주인공의 기품있는 화이트 드레스, 흥미로운 의상과 소품들 중에서도 특히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촘촘히 박힌 해골 소품은 탄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수중테크닉 스태프 제프Jeff 그는 다이버들이야말로 눈에 띄지 않지만 공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배우들과 함께 수영해 안전하게 수면으로 올려주는 일도 하고 잠겨 있던 소품을 적절한 타이밍에 올리는 일 등 공연의 중요한 장면들이 다이버들에 의해 연출된다. 수영장의 지름은 약 15m, 깊이는 8m 정도로 다이버들이 다닐 수 있게 수온은 항상 30도 정도로 유지된다. Ticket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시티 오브 드림즈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하우스’는 마카오 코타이 지역에 위치한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에 설치된 전용극장이다.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마카오에서도 최고급 종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로 손꼽히는 곳으로 마카오 여행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온갖 즐거움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시티 오브 드림즈가 단순한 카지노 리조트가 아닌 ‘종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로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소 마카오 시티 오브 드림즈 댄싱 워터 극장 시간 90분 공연, 오후 5시, 8시 (공연 없는 날이나 시간대가 있으므로 예매 사이트에서 정확한 스케줄을 확인해야 함) 문의 마카오 (853) 8868-6688 , 홍콩 (852) 8009-00783 www.thehouseofdancingwater.com 관람료 성인HKD480~880(한화 약 7만~13만원) 아동HKD340~620(약 5~9만원) VIP예약 HKD 1,380(약 20만원) *현지에서는 홍콩달러와 마카오달러가 1:1로 통용된다. special encounter 유연한 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프랑코 드라곤Franco Dragone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예술 감독 ‘프랑코 드라곤 엔터테인먼트 그룹Franco Dragone Entertainment Group’을 설립한 그는 ‘태양의 서커스’나 ‘퀴담’같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세계적인 쇼에 참여해 고유의 색깔과 분위기를 만들어 왔으며 그 공로로 국민 훈장과 비평가 공로상 등을 받았다. 예술 감독의 입장에서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를 소개한다면. 처음 이곳에 와서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물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쇼는 한마디로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우고, 살아온 삶의 합성체라 할 수 있다. 이 공연을 통해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물론 이 쇼의 볼거리는 스펙타클한 테크닉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의 감정과 몸짓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유니버설한 비언어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제작할 때 당신의 마음가짐은 어떤 것인가? 공연은 물론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받아야 하지만 이익을 쫓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우선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항상 쇼에 시를 넣는다는 마음으로 예술과 비즈니스 간의 밸런스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결국 사람들을 끌어오는 것은 그 부분일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공연처럼 ‘물이 되라’1)는 것이다. 차주전자에 들어가면 차주전자의 형태가 되고, 대접에 들어가면 대접의 형태가 되는 ‘유연하고 여유로운 물’ 말이다. 삶은 아름답고 젊음은 뭐든지 될 수 있는 물 같은 존재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세계적인 예술감독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느낌이 강하다. 공연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 꾸준히 가꾸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 안주하지 않고 라이브 쇼의 장점을 살려 연기나 스토리 라인 등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를 통해 그렇게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쓰나미가 할퀸 기억 ‘거리감’ 있게 담았다

    쓰나미가 할퀸 기억 ‘거리감’ 있게 담았다

    남들 다 안가려는 데 왜 갔냐고 물었다. 한참 고개를 갸웃하더니 “글쎄요…, 딱히 이유가 없는데…. 그냥 충동적이었어요. 제가 좀, 그래요.” 이런저런 작업한다고 설명하기 어려워 출입제한구역도 몰래 들어갔단다. 그런데 방사능 검사도 안 받았단다. 왜? “제가 좀, 그래요.” 같은 답이다. 씩 웃고 만다. 위험한 곳인데 가기 전에 뭐 좀 알아보고라도 갔냐 했더니 “일부러 안 알아봤어요. 신문, 방송도 안 봤어요. 그런 거 보기 시작하면 겁나서 가기 싫어질까봐요.”라고 웃는데, 그 표정 역시 ‘제가 원래 좀, 그래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동일본 지진 충격에 무감각한 세태 꼬집고자” 지난 3월 11일.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단다. 동일본 대지진 소식이었다. 바로 작업실이 있던 미국 뉴욕에서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도쿄에서 친구를 만나 생활용품 이것저것 가득 실은 자동차를 몰고서는 미야기현 게센누마(氣仙沼) 일대 도시 10여곳을, 한달반 동안 샅샅이 훑었다. 원전 문제 때문에 대피령이 내려졌던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바에도 하룻밤 머물렀다. 일우사진상 수상 기념으로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제네릭 랜드스케이프’(Generic Landscpes)를 여는 장태원(35)이다. 상상 이상이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참혹했다. “처음 하루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찍질 못할 정도였어요. 너무 이미지들이 강하고 충격이 커서 손 댈 엄두를 못 내겠더라고요.” 오가다 만난 사람이라곤 거의가 경찰이었다. 전기, 물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었다. 자고 쉴 곳이 있을 턱이 없다. 텐트를 치거나 차에서 버텼다. 그 현장에서 그가 건져올리고 싶었던 바는 ‘제네릭’이란 단어에 들어 있다. 일반적이란 뜻인데, 약간 부정적인 어감이다. 좀 툭 튀는 맛도 없고, 별 매력도 없는, 그냥 그저 그런 진부함 같은 느낌이다. 거대한 쓰나미와 충격적인 지진, 그리고 원전사태가 신문지상과 TV화면을 거듭 장식하면서 오히려 무감각해져 버린, 그래서 지금은 거의 관심권 밖으로 사라져 버린 세태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었던 게다. “한달 반 동안 사진 수천장을 찍은 뒤 뉴욕에 가서 작업했죠. 그런데 묘한 게, 겨우 비행기 12시간 거리인데 일단 멀어지고 나니 그게 아마득하니 먼 일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 충격은 온데간데없고 오늘 점심 뭐 먹지, 고민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죠. 이런 느낌이 뭘까, 고민됐고요.” 해서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재난 그 자체를 찍은 사진보다 한 걸음 더 걸어들어가면 사방 벽을 둘러쳐 전시된 42장의 플레이트(Plates) 연작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지진 때문에 무너진 일본의 목조 가옥을 일단 한 장 찍은 다음, 그 사진을 사진으로 찍어서 위에다 붙인다. 밑에 깔린 사진은 하얀 테두리 부분만 보이도록 배치했다. 이걸 다시 사진으로 찍어 그 위에 같은 방식으로 겹쳐 놓는다. ●물리적·시간적 거리 묘사한 ‘기억의 원근법’ 그래서 플레이트에는 1, 2, 3, 4… 일련번호가 쭉 붙어 있는데, 42번 플레이트에서 명백히 드러나던 목조가옥은 점차 자그마해지다가 1번 플레이트에 가서는 마침내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까만 점으로 응축돼 사라져 버린다. 미국과 일본간 물리적 거리, 그리고 시간적 거리가 사람 뇌에 그렇게 작용해버린 것이다. 기억의 원근법이다. 재밌는 건 이 42장의 사진 가운데 20장을 뽑아 한국과 일본 전국 곳곳에 뿌려놨다는 것. 해서 20장 부분은 사진을 뿌려놓은 곳의 주소나 지명 같은 것으로 대체됐다. 대신 20장을 뿌려놓은 곳은 영상설치작업으로 기록해 뒀다. 푸닥거리라고도 할 수 있고, 진정으로 느끼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건너편 전시실의 ‘희생자’(Victims) 연작도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얼굴 사진인데 모두 구부러지고 꺾여 있어 어느 나라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언뜻 알아보기 힘들다. 사진 뒤에 나무를 댄 다음 자동차 도료를 써서 만들었다. “뉴욕에서 만난 일본인들이에요. 그들이 느끼는 거리감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거지요.” 일본에 있는 일본 사람과 달리 공간적 거리감이 있는 일본인들은 어떨까 생각해본 것이다. 당신 정말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이다. 12월 28일까지. (02)753-650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물묘사 부드러운 ‘평면 PD’의 멋

    인물묘사 부드러운 ‘평면 PD’의 멋

    모험적일 수 있다. 작가 나이 겨우 스물다섯. 전시라곤 중국에서 한번 연 게 전부다. 그런데 믿는다고 했다. 장샤오강 등 중국 현대 화가들을 2000년 초부터 다뤄와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선구안이 있다고 평가받는 이동재 아트사이드 사장의 판단이다. “인물 묘사가 탁월하면서 또 부드러워요. 작품은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준비작업이 너무도 치밀했고요. 거기다 작업실에 한번 가봤더니 앞으로 작업할 드로잉을 보여주는데, 그걸 보니 아, 이 정도면 믿을 만하구나 싶더군요. 저도 이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쏟아내게 될지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장이 말하는 이는 12월 4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스트로베리 이슈’ 개인전을 여는 중국 작가 션팡정이다. 이 사장의 말대로 그의 작업 방식은 철저하다. 어떤 장면을 상상한 뒤 그걸 실제 세트장에서 철저하게 연출하고 각 단계별로 사진을 찍는다. 그림은 이를 보고 모사하는 방식이다. 스스로를 “평면 PD”라 부르는 이유다. 영상을 만들어 내는 PD가 아니라 평면작업을 하는 PD라는 얘기다. 그림은 보드랍고 유려하다. 세밀한 작업을 우선시하는 중국의 전통 채색인물화인 공필화적 기법이다.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동화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베껴서 그릴 줄 알았는 데다, 제가 좀 까불었거든요. 문학교사를 하셨던 할머니가 남자가 그러면 안 된다며 차분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그림 공부를 시켰지요.” 자신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반항해본 적은 없단다. 그는 한국에선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기법적인 면을 가르친다면, 한국에서는 표현하고 싶은 생각에 대한 논의가 많았어요. 덕분에 제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02)725-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8) 다발성 손상이 남긴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주검은 비록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비교적 큰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추락사고로 인한 메세레르 골절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다리 뼈와 아래·위 팔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다리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슬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칠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 트럭이나 소형 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 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쳤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 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쳐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당시 33세)씨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 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 준다며 라면을 사 갔어요. 아… 새댁이 나간 후 ‘쿵’ 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 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 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만한 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친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 뒤지기를 몇 시간. 한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 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 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 주민 B(43)씨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 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뒤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역시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쇄골모양으로 부러진 뼈…메세레르 골절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사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비록 주검은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작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아래위 팔 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Messerer´s fracture).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넓적다리 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스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 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힐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트럭이나 소형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 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혀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씨(당시 33세)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 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준다며 라면을 사갔어요. 아…새댁이 나간 후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낸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 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을 뒤지기를 몇시간. 저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년~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주민 B씨(43)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에 튄 흙탕물이 살인자를 뒤바뀌 놓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범퍼가 남긴 ‘메세레르 골절’
  •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장원급제지사 - 조선 최고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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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WHO&WHAT] 조선 최고의 과거 전문가를 만나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도 잠시 쉬어 간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친지들까지 신경이 곤두선다.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는 하루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왜 아들딸이 시험을 보는데, 그 엄마가 백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매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하는 입시철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도 여전히 한국에서 입시는 곧 교육의 목표이자 모든 것이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가와 수많은 경시대회, 각종 콩쿠르가 순수하게 학문이나 재능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십년간 교육정책의 수장이 되는 사람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과연 나아지는 게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도대체 언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조선시대는 좀 다르지 않았겠느냐는 기대를 안고, 자식을 위해 조선 최고의 시험 전문가를 찾아간 남산골 김씨 부인의 뒤를 따라가 봤다. 미리 밝혀 두지만 오늘은 역사의 결과물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김씨 부인은 그게 마냥 좋았다. 옆집 누구네 아들은 기생집에 드나든다고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공부에만 관심을 쏟는 아들이 대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만 읽는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스무 살이다. 책을 백날 읽어 봐야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자나 깨나 서책만 붙들고 있다. 장가를 보내려 해도 초시(初試)라도 붙은 양반과 그렇지 않은 양반은 자리부터 달라지는데 말이다.  김씨 부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기 위함이 아니냐. 이제 한번 과장(科場)에 나서 가문의 이름을 떨쳐야 할 때가 아니냐.” 아들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학문의 목적이 어찌 개인의 출사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까지 나라의 그릇이 될 정도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한숨이 늘어 가는 김씨 부인에게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앞집 박씨 부인이 좋은 수가 있다며 찾아왔다. 각종 서적의 필사본을 파는 아랫마을 책방 주인이 바뀌었는데,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장안 제일의 전문가란다. 10대에 초시에 붙었는데, 돈 버는 일이 좋아서 관직 대신 이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박씨 부인이 말한다. “지난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판서댁 자제도 한사코 과거가 이르다며 만류하다가 이 사람을 만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마음을 바꿔 과장에 나갔다니까요. 일단 한번 만나나 봐요. 상담하는 건 돈도 안 받는다던데. 그 댁 아들도 초시는 붙어야 한숨 돌릴 것 아니에요.”  그냥 만나 보기만 해도 된다는데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닌가. 다음 날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책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 입구에서 ‘이생’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안내를 받고 서가 사이에 앉자 잠시 후 책장 너머로 한 남성이 나타나 돌아앉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생 마주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제 처지가 밖으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낼 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어서요.  김씨 괜찮습니다. 저야 그냥 몇 가지 여쭤 보려고 찾아온 걸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인데 책만 읽고 과장에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과거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녀자인지라 과거의 힘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생 유학을 하다 보면 욕심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요. 수신제가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고요. 분명한 건 과거에 급제하면, 그것도 장원을 하면 본인과 가문의 격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요. (조선시대 전체의) 경쟁률로 따지면 744번 열린 문과시험에서 급제자는 1만 4620명 정도입니다. 많은 것 같지만 자격시험에 불과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죠. 정기 시험인 식년시는 500여년 동안 고작 163회에 불과하고 시험마다 전국 각지에서 2000~3000명씩 몰려들어요. 그중 장원급제자는 1명. 조선 전체를 통틀어도 연간 장원급제자는 1.4명에 불과하지요. 안정적으로 관직이 보장되는 대과 합격자까지 넓힌다고 해도 회당 고작 33명뿐입니다.  김씨 (한숨을 내쉬며) 걷기도 전부터 책을 읽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33명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군요. 순수하게 학문이 전부도 아니겠죠?  이생 흠. 명문세가는 대를 물리려면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 필수니까, 기를 쓰고 덤벼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선생을 모셔 영재교육도 받으니까 진사나 생원이 차린 서당에서 수학한 선비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부인할 수 없는 건 입신양명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김씨 그런데 선생께서 유명해지신 건 과거를 보는 요령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정말 선생께 배우면 과거에 급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요.  이생 허허. 물론 공부도 안 한 사람을 그냥 합격시켜 주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가 아니라 ‘거의’인 이유는 조금 있다가 설명드리죠. 확실한 것은 요령 없는 시험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와 동문수학한 사람들 중에는 시험관도 있고, 시험장을 감시하는 입문관도 있고, 답안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씨 답안을 고쳐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나라님께서 지켜보는 시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이생 그러니까 제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찾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길이니 비용이 들지요. 초시를 예로 들어 볼까요. 초시는 과장 사수(寫手), 거벽(巨壁), 선접꾼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거의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김씨 시험을 보러 가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생 요즘 어머니답지 않게 이쪽으로는 전혀 걸음도 안 하신 분이 분명하군요. 혹시 글씨가 예뻐야 모든 게 예뻐 보인다는 말 아시나요. 과장 사수는 악필들이 주로 쓰는데, 응시자를 대신해 글씨를 써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하죠. 그 다음이 거벽인데 이건 과거 문제를 풀어 주고, 시문도 지어 주는 사람이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책을 펼쳐 놓고 몰래 베끼는 게 더 나아요. 어차피 사람도 많은 데다 시험관들이 별로 감독도 안 하거든요. 선접꾼은 말 그대로 주먹을 사는 겁니다. 과장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하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잖아요. 과장에 몇 군데 나무 그늘 같은 명당이 있는데, 공부만 하던 선비들이 뛰기는 힘드니까 선접꾼을 사서 미리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이 유리하죠. 더 확실한 건 시험장 서리를 매수하는 건데 요새는 서체로 응시자를 알 수 없도록 서리들이 답안을 베껴서 그걸로 채점하거든요. 그때 서리가 답안을 고치면 되죠.  김씨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참 많이들 하나 보군요. 비용도 많이 들겠어요.  이생 투자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이 어디 있습니까. 진사나 생원만 돼도 호칭이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 보세요. 운이 좋아서 지방수령 자리라도 하나 받으면 집 한 채 값이 아깝겠어요.  김씨 그런 편법이나 부정행위 말고 진짜 요령도 있나요. 예를 들어 시권(試券·답안지)은 언제 내는 것이 좋다니 하는 것들요.  이생 상담받으러 오셔서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시는군요. 뭐 제 직감상 또 오실 것 같아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시권은 빨리 낼수록 유리합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를 푸는데, 먼저 푸는 사람이 잘한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채점도 하다 보면 지치거든요. 특히 사서삼경의 암기와 해석을 쓰는 생원시 같은 경우에는 일단 한번 작성하면 고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들 하잖습니까. 아. 가끔 이름을 빼먹는 사람도 있는데, 꼭 시권에 조상 이름과 자기 이름을 써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우스워 보이지만 매년 수십 명이 이것 때문에 떨어져요. 마지막으로 종이, 종이가 중요합니다. 시험지를 각자 사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사야 합니다. 시험관들 마음이라는 것이 좋은 종이를 보면 좋은 가문으로 생각하기 쉽거든요.  김씨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못하는 짓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과장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텐데요.  이생 과연 그럴까요. 아드님은 분명 이 길을 따라 과거를 보든가 아니면 이 같은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겁니다. 낭충지추. 이런 부정과 편법이 판치는 과장에서도 탁월한 인재는 분명히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절 믿으세요. 제가 조선 제일의 시험 전문가로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의 출세길, 장원급제(정구선·팬덤북스)  -조선 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글항아리)  -조선과거실록(지두환·동연)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푸른역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파란미디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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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Inside](6)아내 베란다서 밀어 살해해놓고 음료수 마신 ‘엽기 남편’

    [사건Inside](6)아내 베란다서 밀어 살해해놓고 음료수 마신 ‘엽기 남편’

    지난 5월 16일 새벽 6시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임대아파트. 경비원 오모씨가 아파트 화단에 쓰러져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8층에 사는 김모(70)씨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가 최근 치매를 앓았다는 가족과 이웃들의 증언에 따라 실족사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시신을 살펴볼수록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나타났다. 목 주변에는 손으로 목을 조른 듯한 액흔(扼痕)이 보였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치매에 걸렸다 해도 베란다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어제도 부부싸움 한다고 신고가 들어왔던 집인데요?”  김씨와 같이 살던 남편(74)은 거듭된 경찰의 추궁에 자신이 아내를 죽인 사실을 자백했다. 부부싸움을 하던 중 홧김에 아내의 목을 졸라 기절하게 한 뒤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숨진 김씨는 이웃집에서 들릴 정도로 “살려달라.”고 외친 것으로 드러났다.  주변에 따르면 평소 노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40년이 넘게 동고동락한 배우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비극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말 사이좋은 부부였는데”…갑자기 찾아온 파국의 시작  김씨 부부는 4년 전 자녀를 분가시키고 영구 임대 아파트로 이사와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왔다. 어려운 형편에도 노부부는 평소 외출할 때 손을 꼭 잡고 다닐 만큼 서로 끔찍이 아꼈다. 20여 년 전 남편이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해진 상황에서 김씨는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병시중을 해왔다. 오랜 투병으로 몸이 약해진 남편을 데리고 매일 같이 운동을 나갔다. 주위에서 “저렇게 살갑게 보살필 수 있을까.”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남편도 그런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2009년 갑작스럽게 김씨에게 치매가 찾아오면서 노부부의 사랑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김씨가 정신을 놓을 때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맹수열 기자의 <주간 사건 Inside> [사건 Inside](1) 믿었던 여친이 불륜을… 수상한 삼각관계가 만든 살인미수 [사건 Inside](2) 소개팅女와의 하룻밤이 지옥으로… 인천 ‘미성년자 꽃뱀 사건’ [사건 Inside](3) 생면부지 여중생에게 몹쓸 짓을… ‘전주 여중생 성추행 동영상 사건’ [사건 Inside](4)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울산 아파트 살인사건’의 전말 [사건 Inside](5) 어이없는 오해가 앗아간 가여운 생명… ‘구로 영아 폭행치사 사건’ [사건 Inside](6) 조강지처 베란다서 밀어 살해해 놓고… 태연히 음료수 마신 ‘엽기 남편’ [사건 Inside](7) 피해자 피의자 증인 모두 시신으로… ‘거창 40대 여성 실종사건’ [사건 Inside](8) “내 애인이 ‘꽃뱀’이라니”… 70대 재력가의 비극적 순정 “수십 년을 보살펴주던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바람 피우는 것을 실토해’라고 얘기할 때의 심정을 아세요? 자꾸 죽고 싶다면서 괴성을 지를 때 찢어지는 마음은 또 어떻고요.”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김씨의 치매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김씨는 자기가 정신을 놓은 사이 남편이 내연녀에게 몇 푼 없는 통장까지 다 내줬다는 망상에 빠졌다. 남편이 통장을 꺼내 보여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극정성 아내를 죽이고도 음료수를…충격적인 살해 행각  노부부의 다툼은 흔히 생각하는 부부싸움 수준을 넘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문제의 사건 당일에도 그렇게 두 부부는 언성을 높였다. 특히 남편이 술에 취한 것이 싸움을 더 크게 만들었다. 다행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경찰이 떠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다시 시작된 싸움에 김씨는 스스로 허리띠를 목에 감으며 “이렇게 사느니 죽어버리겠다.” 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남편이 직접 아내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베란다로 끌고 갔다. 정신을 차린 김씨가 “살려달라.”며 애걸했지만 남편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8층 밖으로 지극정성으로 자기를 보살폈던 평생의 반려자를 20여m 아래 바닥으로 내던졌다. 충격적인 것은 그가 아내를 살해하고도 태연하게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 잠들었다는 것이다.    ●20여년 병수발의 대가는 살인…  그는 경찰서를 찾은 딸에게도 자기가 아내를 죽였다고 범행 일체를 털어놨다. 경찰은 그의 범행을 확인하고 검찰에 송치한 뒤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남편은 법정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다. 아내가 평소 치매에 걸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고 자기는 사건 당일 결국 아내의 자살을 방조했을뿐이라는 것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는 지난 8월 17일 “치매에 걸린 배우자 때문에 오랜 기간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오던 피고인이 순간적으로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풍을 앓는 피고인을 20년 넘게 보살핀 아내를 치매가 걸린 지 2년 만에 살해한 것은 죄질이 좋지않다.”면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고령에 병을 앓는 것을 참작해 가장 낮은 형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즉시 항소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서울 고등법원도 원심과 같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노년의 사랑은 치매라는 예기치 않았던 변수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사실상 혼자서 생활할 수 없었던 남편을 위해 20년간 병시중을 했던 아내. 하지만 상황이 뒤바뀌고 나서 남편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년이었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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