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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홍준 “野 지지하려면 이민 가라” 발언 논란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지난 22일 창원 지역 상공인들에게 “대선 때 야당을 지지하려면 이민 가시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안 의원은 당시 창원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국회의원 초청 상공인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고 25일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했다. 안 의원은 “요즘 아시죠. 민족해방(NL), 주사파, 종북세력…. 대선 잘못되면 대한민국 선진국(되는 것) 불가능하고 나라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 현안도 중요하지만 이번 대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말을 마친 뒤 그는 “동의하시면 박수 한 번 치라.”고 박수를 유도했다. 그러나 일부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지 않자 “뒤에 계신 분들 동의 안 하시는데 이민 가시라. 이민 가시라고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의 발언이 전해지자 민주통합당은 발끈했다. 김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증오의 정치를 퍼뜨리는 안 의원의 망언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마녀사냥하듯 야당 의원들을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언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새누리당 인사들과 지역 상공인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재밌게 하려고 농담 조로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백석문학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다

    백석문학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다

    “정거장에서 60리/60리 벌길은 멀기도 했다.//가을 바다는 파랗기도 하다!/ 이 파란 바다에서 올라온다-/민어, 농어, 병어, 덕재, 시왜, 칼치…가// 이 길외진 개포에서/나는 늙은 사공 하나를 만났다./이제는 지나간 세월//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어든 밤 거친 바다로/배를 저어 갔다는 늙은 전사를.!//멀리 붉은 노을 속에/두부모춰럼 떠 있는 그 신도라는 섬으로 가고 싶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시인 백석(그림·1912~1995?)이 1957년 9월 19일 북한의 문학전문 주간지 ‘문학신문에 발표한 시 ‘등고지’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이 시는 ‘앞바다에 기여든 원쑤를 치러’의 이념성이 강한 대목만 빼면 백석 시의 특징인 한국적 서정성과 정취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석이 북한에 머물면서 1950~60년대에 쓴 시 3편과 ‘문학신문 편집국 앞’ 등 산문 4편, ‘고요한 돈 1·2’ 등 번역소설 2편 등이 새로 발굴됐다. 이번에 발굴된 백석의 시와 산문, 번역소설은 1948년 분단 직전으로 한정됐던 백석 문학의 지평을 넓혀 주고, 북한에서의 문학 활동의 단초를 밝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는 중국 베이징국가도서관, 옌볜도서관, 북한의 조선국립중앙도서관, 레닌도서관,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실, 일본 도쿄에 있는 여러 도서관 등에서 꼼꼼히 찾은 것이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백석문학전집 1·2’(서정문학 펴냄)에 발굴 자료를 모두 담았다. 최 교수는 “백석 문학의 전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작품을 하나하나 원본과 대조해 정본화하는 작업까지 거쳤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에 나온 백석전집이 2012년 6월 20일 현재까지 유일한 정본”이라고 선언한 뒤 “출간기록은 있지만 발굴되지 않은 ‘테스’, ‘고요한 돈 3’, 행방이 묘연한 1960년대 시집 등을 계속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주 영남대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시는 ‘등고지’ 외에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조국의 바다여’ 등으로 분단 이후에도 이념적 색채가 없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백석의 색깔을 유지한 부문들이 확연하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1962년 4월 10일 발표한 ‘조국의 바다여’가 흥미로운데 당성이 강한 ‘붉은 작가’로 단련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부정적으로 써놓았다.”고 말했다. 백석답지 않게 이런 식이다. “…바다여 잠잠하지 말라, 잠자지 말라/세기의 죄악의 마귀인 미제,/간악과 잔인의 상징인 일제/박정희 군사 파쑈 불한당들을/그 거센 물결로 천 리 밖, 만 리 밖에 차던지라” 그러나 백석의 이런 노력에도, 그는 평양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백석은 1958년 당성이 약한 인민들을 지방 생산현장으로 보내는 ‘붉은 편지’를 받고,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로 내려가 양치기로 살면서 생애를 마쳤다. 이번에 발굴된 ‘문학신문 편집국 앞’(1959년 1월 18일)과 ‘관평의 양’(1959년 1월 14일), ‘가츠리섬을 그리워하실 형에게’(1961년 5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야 산문 문학 소묘’(1957년 3월 28일) 등에서는 백석이 ‘붉은 편지’를 받고 관평리로 내려가는 과정과 그곳의 삶이 드러난다. 특히 ‘문학신문 편집국 앞’에서 백석은 “이 속에서 어찌 제가 당이 기대하는 붉은 작가로 단련되지 않겠습니까. 맡겨진 일에 힘과 마음 다하여 훌륭한 조합원이 되여 앞으로 좋은 글을 쓸 것을 다시 한 번 맹세합니다. 1월 10일 삼수 관평에서”라고 쓰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숄로호프의 장편소설을 번역한 ‘고요한 돈 1·2’(1949~1950)도 흥밋거리다. 러시아의 혁명 전후를 다룬 이 번역소설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배낭에서 발견되곤 했단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세계문학의 반열에 들어 있는 작품을 매개로 한국어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고 있다.”면서 “번역문학이지만 토속어·토착어의 보고이자 아름다운 시적 창조물들을 감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자아냈다.”고 분석했다. 백석이 1957년 1월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해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이유도 관심사다. 김 교수는 “원래 백석은 외국문학분과위에 있다가 아동문학분과위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간다. 자유롭지 못한 북한 상황 탓에 아동문학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1956년 북한 공산당은 소설가 등 작가들에게 ‘장르를 불문하고 아동문학에 투신하라.’고 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발굴로 백석 문학의 총체성에 한걸음 다가갔다.”면서 “본래 백석문학이 어느 지점에서 균열했는지를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최 교수 등이 속한 한국비평문학회는 오는 30일 서울여대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도 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춤에 미쳐 살았던 세월 이젠 오래된 연인 졸업해요”

    “춤에 미쳐 살았던 세월 이젠 오래된 연인 졸업해요”

    3년 전 ‘오네긴’ 공연에서 일어난 일이다.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아름다운 파드되(2인무)에서 황혜민이 회전을 하다가 엄재용 의상에 레이스가 엉켰다. 당황한 듯했지만, 금세 실을 풀고 태연하게 춤을 췄다. 7년째 호흡을 맞춘 터라 이런 ‘사고’는 문제도 아니다. 공연 막바지, 연인을 보내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황혜민은 눈물과 에너지를 쏟아냈다. 쓰러질듯 아슬한 황혜민을 보듬으면서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엄재용에게서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묻어났다. 객석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둘이 정말 잘 어울려. 근데 언제 결혼한대?” 이미 무용계에서는 유명한 ‘스타 무용수 커플’이자 ‘오랜 연인’이라 관계자들뿐 아니라 발레 애호가들에게 이들의 결혼은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날을 잡았다’. 8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화촉을 밝힌다. “2년 전부터 ‘언제 결혼하느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어요. 어떤 선생님은 전화 드릴 때마다 호통을 치시는 거예요. 결혼 소식에 그만큼 많이 축하해 주시더라고요.” 19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황혜민(34)은 귀엽게 웃으면서 주변 반응을 전했다. 그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이 발레단에 입단한 2002년, 프랑스 초청공연에서 엄재용(33)과 파트너가 되고 연인으로 발전했으니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서로 춤에 미쳐 살았다.”는 엄재용은 “오래된 연인이 헤어질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만 보내는 게 아니라 동료이자 친구이자 엄마였던, 모든 것과 헤어지기 때문이라는 글귀를 읽었는데 매우 공감했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둘 다 내성적이라 큰 소리를 내면서 싸운 적도 없다고 했다. “큰 힘이 되면서, 일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는 게 오히려 고맙다.”는 황혜민은 “때로는 개그콘서트를 보고 흉내내는 모습이 유치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마다 칭찬 일색이다. 이들이 앞둔 공연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비극인 탓에 황혜민도 “하필, 결혼을 앞두고!”라면서 깔깔댔다. “그래도 많은 버전 중에서도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 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안무가 활기차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이어져서 관객들도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관전포인트를 묻자 황혜민은 주저없이 남성 솔리스트의 3인무를 꼽는다. 다른 버전에는 없지만, 셰익스피어 소설에서는 핵심 인물인 벤볼리오가 등장해 티볼트, 머큐시오와 역동적이면서 유쾌한 춤을 춘다. “기술적으로도 좋고, 2막에서 장난치면서 칼싸움하는 장면은 남성 무용수들이 실력과 끼를 발산하는 게 굉장히 멋있다.”고 설명했다. 엄재용이 “줄리엣이 이끌어가는 3막이 아름답다.”고 하자 황혜민은 “난 죽을 거 같다.”며 웃었다. 줄리엣이 신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약을 받아 비극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등장인물이 거의 없고 음악도 비장하게 가라앉아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줄리엣의 에너지와 연기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핵심은 역시 갈라공연에 많이 나오는 ‘발코니 파드되’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긴 키스 장면도 볼거리일 듯하다. 무려 16박자 동안 입을 맞대는 장면이다. 다른 무용수들이 “이젠 부부이니 거리낄 것이 없겠다.”면서 부러워한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가장 아름답고 ‘사실적’인 장면이 되지 않을까.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목장을 마당 삼아, 동물을 친구 삼아

    목장을 마당 삼아, 동물을 친구 삼아

    세계에서 가장 높게 자라는 나무 중 하나인 카리나무 숲이 드리운 고요한 행복이 있는 곳, 서호주 남서부. 그 속에 대자연의 품에 안긴 동화 같은 마을 펨버턴이 있다. 펨버턴의 무지개 목장은 야생 캥거루가 뛰어다니고 보이는 모든 곳이 최고의 놀이터가 되는 곳이다. 22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되는 EBS ‘세계의 아이들’에서는 자연과 함께 커 가는 무지개 목장의 꼬마 지킴이 남매의 유쾌한 이야기를 담아본다. 하늘과 닿아 있는 카리나무가 이룬 숲이 품고 있는 산골 마을 펨버턴의 무지개 목장에서 가족들과 동물 친구들은 행복한 일상을 공유한다. 462만 8000㎡(약 140만평)의 초원에는 야생 캥거루가 뛰놀고 개, 젖소, 새, 닭, 양 등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동물 천국이다.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말하는 9살 소녀 브리는 이 목장의 어엿한 꼬마 수의사다. 일 년에 두 번, 6개월마다 무지개 목장에서 꼭 치러야 하는 중요한 일은 바로 양의 건강을 위해 면역 접종을 하는 것이다. 재빠르면서도 절대 순하지 않은 양을 제대로 다루기란 쉽지 않다. 이번엔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났으니 바로 목장 지킴이 남매 브리와 잭슨이다. 이들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 솜씨를 발휘하겠다며 자신만만해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린 양의 펄떡임 한 번에 깜짝 놀란다. 과연 꼬마 목동들의 접종 대작전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 것인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사진은 진실이다. 진실은 감동이다. 감동은 사랑이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는 언제부터 나왔을까. 궁금하다. 잠시 어원을 들여다본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반대 면에 종이를 붙여 그림의 윤곽을 잡았다.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의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는 기능을 활용했다. 이 같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오늘날의 사진기, 즉 카메라의 어원이 됐다. 재미난 과거의 뉴스 하나. 1839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현재의 사진기가 처음 개발됐을 때 당시 유럽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하느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다게르는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아마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영혼을 빼앗는 걸로 여겼던 것 같다. ●‘대양을 향하여’ 30일까지 여수서 사진전 지난 19일 오후 카메라를 들고 오롯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배병우(62)씨. 소나무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바다에 풍덩 빠진 사람이다. 서해안, 남해안, 제주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로 사진 인생 40년, 궁금한 것은 만나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작업실로 갔다. 어라, 약속된 시간인데도 탁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업실에 있는 조교랑 주거니 받거니 잘도 한다. 약이 올랐다. 탁구 라켓을 잡고 같이 치자고 했다. 그런데 배씨는 왼손잡이.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왕년의 탁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에 열심히 덤벼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푸싱을 했다. 그런데 잘도 받아 낸다. 20분쯤 지났다. 땀이 눈을 자극했다. 항복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왜 그렇게 체력이 좋으세요.”라고 인사했다. 육십이 넘었는데 민첩하게 탁구를 잘도 친다. 돌아오는 답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탁구에는 급수가 있어요. A급은 프로 선수고 B급은 아마추어인데 내가 B급 정도는 되지.”라고 한다. 그러고는 슬쩍 웃는다. 흘리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물과 냉커피를 갖다준다. 얼른 물었다. “여수 바닷가 출신이지요.”라고. 배씨는 오는 30일까지 여수에서 ‘대양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는 소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바다를 먼저 시작했다. 1970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다를 그리워했다. 태생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배씨에게 다시 “탁구는 일주일에 몇 번 치세요.”라고 물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한테 강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유도를 했습니다. 탁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했고요.” 잠시 시간이 흐른다. 창밖에는 6월의 열정으로 가득 찬 나무들이 있다. 배씨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면서 말했다. “1999년이죠. 아내가 죽었을 때 탁구장 회원 등록을 했어요.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건강도 생각해야 했고요. 그때부터 했어요, 탁구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탁구를 칩니다. 한 시간 30분 정도씩…. 웬만한 상대를 만나도 자신 있습니다.” ●1년 중 3분의1씩 바다·소나무와 보내 배씨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 있단다. 건강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얘기를 여수 전시로 돌렸다. 지난달 경주 전시에 이어 여수엑스포에 맞춰 전시 중이다. 소나무 작가인데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 29살 때 제주를 처음 갔지요. 카메라 들고 말입니다. 그 바닷가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바다를 찍었습니다. 지금도 1년의 3분의1은 제주도(바다), 또 3분의1은 경주(소나무), 나머지는 서울에 있지요.” 다음 전시는 언제 하는지 물었다. 피식 웃으면서 답을 한다. 늘 하는 건데 새삼 묻느냐는 의미로 다가온다. “올 11월 4개국에서 동시에 전시를 합니다. 따로따로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동시에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 파리, 베를린, 안트베르펜(벨기에)에서 합니다. 주제는 바다로 3년 동안 찍은 제주바다를 전시합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았지만 바람과 바다를 접목시켜 정하려고 합니다.” 그는 생선장수의 아들이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어머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다를 보면서 수채화를 그렸고 나중에 미술대학을 갔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어머니 품을 담으려고 했다. 고향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울릉도도 가고 서해안과 남해안 섬에도 갔다. 제주 마라도에도 갔다. 그러던 33살 때 소나무를 찾았다. 소나무는 아버지였다. ●독일 등 유럽 귀족들에 내 작품 인기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손의 떨림, 시선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열 명이라고 합시다. 각자의 신체,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 감각, 숨결, 사상, 재능 따위가 다르겠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문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와 플러스알파, 뭐 이런 것도 있고요. 사진은 온갖 것을 찍을 수도 있지만 자연을 대할 때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집니다. 사람의 자질도 자연을 대할 때 각자 달라지겠지요.” 소나무로 다시 돌렸다. 전국 방방곡곡 소나무 숲을 전부 다녔을 터이니 말이다. “바다를 찍다가 우리나라의 상징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소나무를 찾게 됐다.”면서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제주도 자리돔이 울릉도에 와 있듯이 온도 변화로 활엽수가 침엽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갔던 숲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가야산 숲이 최고다.”라고 대답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씨 뒤에는 온갖 책들이 있다. 사진집, 미술 서적, 대부분 영어로 된 책이다. 문득 사진 예술가로 걸어 오면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었다.“에드워드 웨스턴이 멘토였어요. 만나지는 못했지만 집에 가서 남겨놓은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라면서 책꽂이에서 사진집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오두막에 살면서 사진관도 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작가’라는 설명이 나온다. “보세요, 누드도 얼마나 잘 찍었는지….” 배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까닭 중에 하나는 2005년 팝스타 엘턴 존이 2700만원을 주고 배씨의 사진을 구입한 일이다. 이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엘턴 존이 애틀랜타 별장에 사는데 거기에다 걸어놨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 스페인,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귀족들 별장에도 많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그는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알람브라 궁전만 찍었다. 그러면서 사귄 유럽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어디 유럽뿐일까. 2009년 호주에서 사진 발명 170년에 맞춰 선정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6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필름을 사용한다. 디지털이 영 안 맞는다고 했다. 린호프(4x5) 카메라를 주로 들고 다닌다. ●필름 없어질지 몰라 2년 쓸 것 구입해 놔 “내가 필름을 사용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겁니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2년치는 구입해 놨지요.”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진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의 기척 같은 것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기는 한데 인간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사람의 숨결이 감돌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술병, 술잔, 도자기, 달력 등등 모두가 배씨의 그림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거 저런 거 묻기가 부끄러워 술 친구들 많이 있느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사진도 그래요. 역사를 살피는 것, 자연을 살피는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갔어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움을 갈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조용한 기다림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잠시 후 시계를 본다.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고약한(?) 질문을 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있는지라는 말을 꺼냈다. “귀찮아요.”라고 했다. 에구 역시 잘못 물었나 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배병우 작가는 미대시절 사진 독학… “발 부르트도록 대상 찾아다녀” 1950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여수고를 나와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동대학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찾았다. 사진은 독학했다. 1984년부터 사진작가 배병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소나무 작업에 매달렸다. 자신이 태어난 바다와 산과 제주 오름 등 한국의 자연에 천착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독일 등 국외에서도 많은 전시를 열었다. 세계적인 팝 가수 엘턴 존이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세계 유수의 아트경매에서 1억원을 호가하며 낙찰되는 등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진 찍는 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손 대신 발이 부르트도록 대상물을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풍경을 넘어서’ ‘사진-오늘의 위상’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했으며, 일본 국립근대미술관 ‘90년대 한국미술’(1996), 토론토 파워 플래닛 ‘Fast Forward’(1997), 파리 OZ 갤러리 ‘배병우 개인전’(1998), 서울 박영덕갤러리 ‘배병우 개인전’(2000) 등의 전시 경력이 있다. 198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집으로 ‘종묘’(1998), ‘청산에 살어리랏다’(2005), ‘Sacred Woo’(2008), ‘창덕궁: 배병우 사진집’(2010),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2010) 등이 있다.
  • 원더걸스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순 없어 이젠 걸그룹의 레전드 돼야죠”

    원더걸스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순 없어 이젠 걸그룹의 레전드 돼야죠”

    “언제까지 국민 여동생일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걸그룹의 레전드(전설)가 돼야죠.” ‘텔미’, ‘소핫’, ‘노바디’ 등 그간의 복고풍 콘셉트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신나는 힙합을 들고 돌아온 원더걸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힙합 비트를 결합시킨 새 미니앨범 타이틀곡 ‘라이크 디스’로 가요계 각종 차트를 석권한 이들을 19일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올해로 데뷔 6년차인 원더걸스가 변신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뭐가 달라져야 색다르게 느껴질까 고민을 하다가 해 보지 않은 장르를 떠올리니 자유로운 느낌의 힙합과 연결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의 디렉팅을 멤버인 예은과 선예가 맡아서 더 자유롭게 녹음했던 것 같아요.”(소희) “짜인 군무와 딱 맞춘 칼안무를 하다가 본인의 색깔을 살린 자유로운 안무를 하려니 좀 어려웠어요. 각자의 느낌을 살려서 연습을 하다 보니까 또 군무처럼 좀 비슷해진 면도 있긴 해요.”(유빈) ●“처음 개다리춤 출 땐 민망했는데…” 곡 자체가 신나고 즐거운 콘셉트라 의상도 본인들이 각자 입고 싶은 옷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안무에는 경쾌함을 살린 개다리춤까지 들어갔다. 소희는 “처음 개다리춤을 출 때 민망했는데, 지금은 재밌다.”면서 웃었다. 특히 이번 앨범에 자작곡을 2곡 수록한 데 이어 JYP의 새 식구가 된 ‘K팝 스타’의 우승자 박지민을 위한 곡을 쓰고 있다고 밝힌 예은은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어서 박진영 PD가 준 노래를 몇 곡 거절했다.”면서 “‘라이크 디스’는 노래 자체가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신나고 몸을 들썩거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보통 박진영 PD가 컴백하기 전 리허설을 보고 장·단점에 대해 지적을 하는데, 이번에는 칭찬만 받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美 발표 정규1집 뮤직비디오 촬영 마쳐 한편 원더걸스는 최근 미국에서 발표할 정규 1집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는 등 미국 시장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가수가 음악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면 미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정규 앨범용으로 녹음해 둔 곡들이 좋아 빨리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덧 방송사 대기실에서 인사하는 후배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등 중견 아이돌 그룹으로 성장한 원더걸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성장한 것이 느껴집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대중음악으로 원더걸스의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많은 분이 느끼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선예)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자연 벗 삼은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 성황리 막 내려

    자연 벗 삼은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 성황리 막 내려

    지난 9, 10일 양일간 남이섬에서는 특별한 아웃도어 페스티벌이 열렸다.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 뮤직&캠핑 페스티벌’(이하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는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와 음악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는 전 세계에 열광적인 마니아를 보유한 뮤지션 제이슨 므라즈와 국내 공연계의 1인자인 이승환 등이 헤드라이너로 나섰고, 이밖에도 015B, 강산에, 뜨거운 감자, 버스커버스커, 칵스, 짙은, 소란, 크리스티나 페리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남이섬의 자연과 낭만이 넘치는 낮과 밤을 선사했다. 관객들의 가장 많은 기대와 호응을 모은 제이슨 므라즈는 ‘평화’라는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페스티벌 첫날 저녁,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그의 공연은 울창한 나무가 둘러싸인 잔디와 쏟아져 내릴 듯한 밤하늘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동화 속 세상을 방불케 했다. 둘째 날 헤드라이너로 등장한 이승환은 ‘천일동안’,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덩크슛’ 등 역대 히트곡을 열창, 에너지 넘치는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라이브의 황제’ 다운 면모를 뽐냈다. 특히 이번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에는 올해 가요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버스커버스커가 첫 페스티벌 출전식을 치러 인기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입증케 했다.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는 여타 록페스티벌 등과 달리 비교적 조용하고 얌전(?)한 특성을 띠고 있어 유독 가족 단위로 방문한 관객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남이섬에서 공연을 보다 가족·연인과 함께 인근 아침고요수목원이나 가평 등지를 여행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공연이 펼쳐진 남이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시로 배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과, 남이섬 전체가 아닌 일부만 개방한 탓에 공연장 외부를 산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점 등은 다소 감점 사유로 꼽혔다. 자연을 벗 삼은 뮤지션들의 공연으로 환상적인 이틀을 선사한 레인보우 아일랜드 2012는 관객 3만 명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건 Inside] (36) 산악회 내연女 “아이들까지 버렸다”는 말에…

    [사건 Inside] (36) 산악회 내연女 “아이들까지 버렸다”는 말에…

    “당신이랑은 더 만나기 싫어. 두 번 다시 전화하지마.” 남자는 분노했다. 이 여자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렸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끝내자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거야? 내가 왜 이혼까지 했는데.” 여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남자는 분을 참아내지 못했다. 손으로 여자의 목을 강하게 눌렀고, 그 상태로 한참을 기다렸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여자의 시신.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하던 남자는 낙동강변으로 차를 몰았다. 지난 7일 남자는 시신을 유기한 부산 강서구 생태공원의 갈대밭을 찾았다. 5월 28일 살인을 한 지 딱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범행 현장검증. 초점 없는 눈동자에 멍한 표정으로 범행을 재연한 강모(53)씨. 잔혹한 범행의 불씨는 ‘사랑’이었다. “나를 위해 아이도 버린다는 말에…” 잘못된 만남의 시작 부산 서구에 살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던 강씨가 살해된 A(41)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A씨가 건강도 챙기고 친구도 사귈겸 산악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강씨는 이 산악회의 회장이었다. 풍경 좋고 공기 맑은 곳을 함께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호감이 싹텄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밝게 생활하는 이혼녀 A씨에게 가정이 있던 강씨가 먼저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A씨도 자상한 강씨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산악회 가입 한 달 만에 뒤 A씨가 강씨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전(前) 남편이 우리 사이를 알게 됐어요. 새롭게 출발하라더군요. 아이들은 자기가 키울 테니.” 고민 끝에 전 남편이 하자는대로 했다고 A씨는 고백했다. A씨가 사망했으니 정확한 의도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강씨에게는 자기가 아이들을 포기한 만큼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달라는 말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두 사람의 관계는 산악회 회원들이 모두 알 정도로 티가 났다. 한 산악회 회원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몇몇 회원들이 강씨에게 바람을 피우면 안된다고 진지하게 충고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주위의 충고도 이미 불붙은 두 사람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강씨의 지인들은 그가 산악회뿐 아니라 다른 모임에도 보란듯이 애인 A씨를 데리고 다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은 오래지 않아 꼬리를 밟혔다. A씨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강씨가 실수로 전화기의 통화녹음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그 대화를 강씨의 아내가 듣게 됐다. 강씨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A씨와의 만남을 이어가자 아내는 결국 이혼을 요구했고 지난해 12월 강씨는 드디어 ‘합법적인 솔로’가 됐다. 사랑을 선택한 중년 남성, 애인을 살해한 뒤… 하지만 이때부터 연애전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원래는 잘 지냈어요.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고요. 그런데 막상 이혼을 하니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집에도 오지 말라고 하고, 이런저런 핑계도 많아지고….” 점점 자신을 멀리하는 애인의 태도에 강씨는 답답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A씨는 딱부러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지난달 28일 A씨가 오랜 만에 먼저 연락을 해왔다.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강씨는 들뜬 마음으로 데이트를 준비했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인근 횟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강씨의 차에 올라탄 A씨는 집에 가기 전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강씨는 한적한 곳에 차를 댔다. 그녀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다. “직장에서 세 살 어린 이혼남을 만나고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연락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강씨가 애걸했지만 싸늘하게 식은 A씨의 마음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가정까지 버리고 선택한 사랑이었건만 이제와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며 헤어지자니. 분노에 강씨는 눈이 멀었다. 인근 공원의 인적 드문 곳에 시신을 암매장했다. 건설일을 하던 터라 차 안에는 삽이 있었다. 다음날부터는 공사장에 일을 나갔다.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태연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A씨의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내면서 범행은 금세 들통났다. 두 사람의 관계가 워낙 잘 알려져 있었던 데다 실종 직전 휴대전화 통화기록에도 그의 이름이 빼곡했다. 경찰은 지난 4일 강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경찰에서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절규했다고 한다. 가정 대신 사랑을 선택했던 평범한 중년 남성. 잘못된 선택으로 삶의 모든 것을 상실한 그는 어두운 감옥의 차가운 벽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까.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김학선 일문일답…“아이돌 음악, 빌보드에 꿇리지 않아”

    김학선 일문일답…“아이돌 음악, 빌보드에 꿇리지 않아”

     →음악으로 글 쓰면 산 지 12년 된거죠? 고교까지 대전에서 다니시고?  -대학까지 대전에서 다녔어요.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어요.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닌데 전자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중도에 그만 두고 서울 올라와 어디를 들어가네마네 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날 바로 쌈넷 쪽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와라고 해요. 보러가서 내일부터 당장 나올수 있냐 해서 약간 그날 밤에 하루 동안 고민하고 이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된 거지요. 처음 쓰는 글이라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박준흠(46) 선배가 독특한 시각이 좋았다고 나중에 얘기하더라고요.  →먹고 사는 걱정은 없으신가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적게 벌고 적게 쓰자, 그리고 내 시간을 많이 갖자, 그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워낙 제가 생활력 같은 게 없어서. 그런 게 굉장히 답답하고, 제가 빨리빨리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그냥 저 혼자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고, 결혼 같은 거는 워낙 안해도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최저생계비는 버시나요?  -그게 달마다 달라서요. 많이 벌 때는 좀 벌죠, 심사위원 같은 거 하면 20, 30(만원)씩은 받거든요. 많이 버는 달은 축적을 해놓았다가 쓰고.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또 크게 어렵게 자라지는 않아서 현실인식 같은 게 없는것 같아요. 돈이 떨어져도,그냥 그런가 보다 넘어가고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한달에 음반 구입은 어느 정도?  -예전에는 진짜 많이 샀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고요 30? 20,30(만원) 정도 사는 것 같아요. 많이 받는것도 있고...보내 달라 그러면 보내주시는데 성격상 말을 잘 못해요. 미안하니까. 그래서 보내주시면 감사히 받고 있지요.  ♣H이 책은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나요?  -그쪽에서 먼저 제안했어요. 작년 7,8월? 아무튼 여름이었는데. 편집자께서 이런 걸 냈으면 좋겠는데 필자가 누가 좋을까? 보시다가 제 글을 보고 본인이 원하는 필자를 너무 쉽게 찾아 반가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쓰겠다고 했어요. 이런 책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제가 그때 따로 쓰고 싶었던 책이 있었거든요.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를 정리하는 책이 제 첫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편집자께서 그런 책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또 막상 생각을 해보니 그런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시는지, 출판사와 약간 핀트가 달랐던 거 같은데?  -원래 쓰려던 책과 공통분모가 있기는 한데. 출판사 쪽과 제가 중요시하는 게 달랐던 것 같아요. 편집자가 제목을 얘기하길래 너무 당황했어요. 처음에. 별로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도 제가 그러니까 마지막에 다른 거 생각을 해보자 했지만, 결국 광고팀이 주장하고 출판사 권한이란 게 어쩔 수 없는 대목이 있어서.그렇게 된 겁니다. 아이돌 부분도 원래 맨 마지막에 들어갈 내용인데 출판사 쪽에서 앞으로 빼자고 해서 들어줬고 그런 부분 빼면, 뮤지션이나 앨범 고르는 건 다 제 뜻대로 했고요. 제목이 미세하지 않아서 불만이지만, 그런 부분 빼면 제가 쓰고 싶은대로 다 썼어요. 마지막에 시간에 쫓겨서 아이돌 부분을 성실히 못 쓴게 마음에 걸리고 그래요.  →책을 보고는 ‘아이돌 음악, 저건 음악이 아니야, 잘 기획된 상품일 뿐이야.’라고 너무 쉽게 매도하지 않았나 이런 반성을 하게 됐어요.  -아이돌 음악이 훌륭하다는 데 제 주위의 글 쓰는 친구들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있는 건데요. 그렇지만 그 음악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립니다. 인피니트 멤버랑 비스트 멤버랑 바꿔놓아도 하나도 음악이 달라지는 건 없거든요.  때문에 아이돌 음악의 주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돈된 상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과 빌보드 차트에 오른 음악을 비교해도 하나도 꿇릴 게 없는 훌륭한 음악이거든요. 멜로디나 비트로나 뭐든지요.  YG 패밀리 쪽을 좋게 평가하는 편인데 최소한 그 친구들의 색깔과 음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아이돌 그룹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요. 태양은 최소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알고 그걸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따라서 제가 바라는 건 아이돌 그룹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렸으면 하는 겁니다.  →70,80년대 음악과 2010년대의 음악을 한 맥락으로 연결하려 하다보니 아이돌 음악을 너무 띄워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공통된 하나의 분석을 모아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 생각도 드는데요.  -한국음악상 심사회의 할 때도 예전에는 아이돌 음악은 언급도 안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빼면 반발이 심할 정도로 그들의 음악 수준은 손색이 없어요. 작년에 각종 웹진이나 연말 시상식 할때도 f(X) 음악은 다 상위권에 올랐어요. 그 음악의 주체가 SM이냐 f(X)냐의 문제지 그 음악 자체는 궤도에 올랐고 수준이 높아요. 그저 음악의 수준으로만 따지면 크게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제가 게을러서 원래 지난 연말에 내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늦어진 저의 게으름이 가장 큰 문제였죠. 처음 제의를 받았던 시점이 해외에서 K팝 열풍이 막 시작되던 상황이라 연말에 내자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해외판도 내보자는 얘기도 있었고요. 출판사 사장님도 너무 관심을 가지셔서 2주마다 한번씩 진행상황 보고하라고 할 정도였어요. 전 출판사와의 게약 기간을 3~4개월 정도 늦추는 건 일상화됐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감 독촉이 이어지고 편집자들도 압박을 받고 또 그게 제게 전달되고 하니 힘들었죠.  →이 책을 세대별로 다르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디션 부분에서도 나오지만 70년대를 살았거나 80년대 음악을 들은 사람들에겐 ‘맞아. 이런 분위기였지.’ 돌아보게 만들고 아이돌 음악에 빠진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이런 음악에 뿌리가 있었구나.’ 느끼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화두로 세대간의 장벽이 허물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취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중점을 둔게 요즘 어린 친구들이, 책 제목도 그래서 나중에 괜찮겠다 용인할 수 있었는데요. 책 제목에 ‘낚여서’ 읽더라도 어린 친구들이 ‘그때 그런 좋은 음악이 있었구나. 한번 들어보아야겠다.’ 생각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정말 훌륭한 음악가들이 있었음도 알려주고 싶었고요. 중장년층은 거의 음악을 놓고 계시잖아요.  예를 들어 ‘TOP밴드’ 프로그램 보면서 안타까웠던 게 30~40대들이 많이 찾는 포털 다음에 제 글 같은 거 올려놓으면 댓글이 달리는데 내용이 ‘왕년에 이런 음악을 좋아했지.’ 그러고 마시는 거거든요.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얼마든지 그런 음악들이 있는데 그런 거를 전혀 찾지 않고 노력조차 않고 ‘요즘 음악 들을 게 하나도 없어.’ 이러시니까.  제가 가장 타깃으로 삼았던 것은 어린 세대들에게 이런 좋은 음악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나이 있는 분들에게는 지금도 그네들이 좋아하던 음악처럼 좋은 음악이 계속 생산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거지요.  →K팝이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하시는지?  -글을 쓰느라 자료를 많이 찾았는데 해외 팬들 반응을 보면 다 비슷합니다. 음악을 잘 만들었고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연습생 문화가 낳은 군무라던가 퍼포먼스 그 정도 선에서밖에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 음악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대해선 헛갈리는 부분이 있고요.  →그럼 연습생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인가요?  -우리처럼 이런 곳이 없지요. 르몽드나 BBC 같은 데서 하도 ‘까니까’ 우리도 청소년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학습권이나 수면권 보장하려고 많이 고치고 있는데 외국은 아이돌 시장이 거의 없어요. 사라진 장르입니다. 뉴키즈온더블록 이후 없고, K팝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거나 하지도 않을 겁니다. 조금 부풀려서 얘기하는 경향도 있는데 틈새시장 같은 거, 말하자면 케이팝 시장은 틈새시장이라는 겁니다. 그걸 노려서 조그만 블록 같은 것을 형성하고 꾸준히 마니아를 양성하고 애호가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하겠지요. 그런 걸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요.  →아티스트 위주로만 책을 풀어나가니까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 세센맨, 프로듀서, 엔지니어 이런 부분들에 대해 계보학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분량 문제 때문에 그랬죠. 2년 전에 심성락씨가 앨범을 냈을 때, 아마 제가 제일 먼저 연락을 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니까. 어렸을 때부터 음반 보면 세션을 누가 했고 이런 것들을 살펴보곤 했거든요.  →이 책보다 얇고 질이 낮은 책들도 2만 5000원은 거뜬히 넘기는데 책값을 참 싸게 매겼는데.  -츌판사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기획된 것이었어요. 그네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싼 가격으로 책정했고요. 편집자도 이 책을 많이 파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 저도 딱히 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은 없고요.  →제 얘기는 노동에 대한 대가가 빈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보면 모자란 구석일 수도 있는데요. 제가 주장을 잘 못하는 편입니다. 사람 자체가 워낙 불만도 없고 얘기도 잘 못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많이 팔리면.  →많이 팔렸나요?  -잘 모르겠어요. 출판사가 기대한 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음악 관련 서적은 1쇄 2000부만 팔려도 잘 팔렸다고 하는데 출판사에서 3000부를 찍는 바람에 아직 2쇄를 찍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꾸준히는 나간다고 하더군요.  →책과 블로그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요?  -편집자께서 그렇게 주문하셔서 따랐습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게 했습니다.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같은 일을 하시는 분들의 반응은?  -앞에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좋게 얘기해주셨어요. 잘 읽힌다고들. 글을 쓰면서 쉽게 쓰자, 간결하게 쓰자, 외래어를 되도록 쓰지 말자고 하는 편입니다. 한겨례 신문에서 근무할 때 영향도 많이 받고 그런 훈련도 쌓았던 것 같습니다. 의외로 함께 음악에 대한 글 쓰는 친구나 선배 중에도 제가 걱정했던 제목이 괜찮다고 해주시고요.  →주변에서 책을 이렇게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분은 안 계신가요?  -딱히 없습니다.  →혹시 분량이라던가, 시간 문제로 빠뜨린 뮤지션은 없었나요?  -책을 끝나고 아차했던 게 김두수씨를 빼놓은 겁니다. 많이 알려진 바 없지만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음악사에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잖아요. 이런 분들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미디어에게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갤럭시 익스프레스라는 밴드가 지난해 반응이 좋아 올해도 미국 공연을 했는데요.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뉴욕 타임스는 메인 페이지로 다뤘어요.  그런데, 굉장히 좋은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르게 화제가 되지 않았어요. ‘나가수 시즌 2’에 나와 뜬 국카스텐 또한 좋은 밴드였고 지속적 활동을 하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이름 없었잖아요. 미디어가 이러한 부분에 조금만 더 신경써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음악산업이 너무 아이돌 시장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좋은 음악이 그렇게 많이 있는데 아쉬운 일입니다. 인디 밴드들이 해외 진출도 하는 마당에….  →뒤 커버에 보면 한대수 선생이 추천사 비슷한 것을 썼던데.  -몇번 인터뷰한 인연으로 부탁드린 건데 죄송스러웠지요. 워낙 몸이 안 좋으셨던 것 같아요. 양현석 씨에게도 써달라고 했는데 너무 바쁘다고 해서 안됐고요. 그런데 홍보 동영상 찍겠다고 하니까 YG 쪽에서 의외로 쉽게 허락해주시더라고요. 책 내용 배경으로 깔고.  →그럼 헤비메탈에 관한 책 말고는 어떤 계획이?  -워낙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라 그런 건 없어요. 아까 말씀드린 북노마드(문학동네 계열)에서 기획하고 있는 뮤지션 시리즈 일환으로 송골매 책이 올해 안에 나올 것 같고요. . 헤비메탈 관련 책은 워낙 게을러서 올해 안에는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내후년에 그 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불고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세살 때부터 스파이더맨 옷 입는 꿈”

    “불고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세살 때부터 스파이더맨 옷 입는 꿈”

    “제가 역대 스파이더맨 중 가장 잘생겼다고요?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불고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데 한국에 오게 되어 기쁩니다.”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할리우드 3D(3차원)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할리우드 배우 앤드루 가필드(왼쪽)는 한국 방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역동적인 발차기와 한국어로 인사를 한 그는 “스파이더맨은 워낙 역사 깊은 시리즈여서 한 시대에 국한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에 맡은 피터 파커의 경우 아버지를 찾는 고아 청년이 스파이더맨으로서 도시 전체를 책임지는 아버지가 되는 여정으로 이해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개봉하는 이번 작품은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시리즈로 아기자기한 스토리와 3D로 펼쳐지는 고공 액션이 특징이다. 연출을 맡은 마크 웹 감독은 “관객들이 액션 장면을 더 많이 즐기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와의 공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접근했으며, 캐릭터에 집중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여주인공 그웬 스테이시 역은 앤드루 가필드의 실제 연인이기도 한 에마 스톤(오른쪽)이 맡았다. 그녀는 “그웬은 자신을 구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캐릭터가 아니라 결국 피터를 도와서 큰 역할을 해내는 능동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피터의 여자 친구를 넘어 파트너와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몸에 딱 붙는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고 밝힌 앤드루 가필드는 “세살 때부터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는 것이 꿈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옷을 입는 목적 자체가 자신감을 가지고 능력을 펼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이 그 속에서 느끼는 자유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8일 국내에 개봉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황우여 “일부 지자체 이념·편향적 행정” 박원순 “근거없는 사실로 서울시 음해”

    황우여 “일부 지자체 이념·편향적 행정” 박원순 “근거없는 사실로 서울시 음해”

    새누리당 황우여(왼쪽) 대표와 박원순(오른쪽) 서울시장이 북한 인권 관련 단체 지원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황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최근 지자체 일부에서 이념적, 편향적 행정을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탈북 이주민들의 입국과 사회 적응, 재교육을 돕는 단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최근 서울시가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였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박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에 박 시장이 발끈했다. 앞서 이날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청하지도 않은 단체를 탈락시켰다는 억지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 근거 없는 사실로 저와 서울시를 음해하고 있다.”고 해당 보도를 반박했던 박 시장은 오후 황 대표의 발언 내용을 전해 듣고 곧바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은 “황우려 새누리당 대표 이념 행정 말라고요? 그동안 정부 여당이 정파와 이념으로 온 나라를 갈가리 찢어 놓고 이렇게 적반하장이니 맨 정신이신지요?”라고 맞받아쳤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다시 논평을 내고 “황 대표의 정당한 지적에 대해 막말 대응을 하고 황 대표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기까지 했다.”면서 “서울시장으로서 여당 대표의 이름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 예의”라고 항의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기고] 안전체험장의 햇살/전세중 서울소방재난본부 보라매안전체험관장

    [기고] 안전체험장의 햇살/전세중 서울소방재난본부 보라매안전체험관장

    어느 봄날 오후였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 광나루 안전체험관 앞 푸른 잔디밭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필자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 원장에게 다가가 날씨가 쌀쌀한데 지하 카페테리아를 이용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점심을 카페테리아에서 먹었어요. 식사 장소로 참 좋았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고 했다. 안산에서 체험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지난해에도 두 번 다녀갔는데 학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하였다. 영어나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안전체험을 경험하게 한다는 원장의 교육철학이 남다르게 생각되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허물어지고 만다. 안전체험은 우리 인생에서 기초를 쌓는 것이 아닐까.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원장은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일본 방재관이 한국보다 못하대요.” 의아하게 생각돼 어디에서 체험을 했는지 묻자 체험을 다녀온 선생님을 소개했다. 이 선생님은 “후쿠오카의 방재관 체험시설은 소방서 내에 있었는데 규모가 작고요, 여기보다 훨씬 못해요.”라고 말했다. 여행도 할 겸 안산시립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함께 일본의 체험시설을 다녀왔다고 했다. 20명이 다녀왔는데, 여행경비는 어린이집에서 반을 부담하고 개인이 나머지를 부담했단다. 일본 방재관이 우리나라 체험관보다 못하다는 말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지진으로 인해 안전에 관심이 많은 일본은 체험관을 우리나라보다 몇 십년 앞서 운영하고 있다. 모두 170여개의 방재관이 있는데 한국보다 시설이 못한 곳도 많지만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도 여러 곳 있다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녀와 동행한 다른 선생님들은 일본 방재관을 둘러보며 시설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했지만 정작 본인은 일본 방재관을 가기 전에 서울 광나루 안전체험관에서 이미 체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실망했다고 한다. 체험 내용도 일본 방재관보다 한국이 더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자연재해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어린이들이 방재에 관한 교육을 받아 안전의식이 투철하다. 안전교육의 역사는 짧지만 일본보다도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졌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실제로 지진을 겪어보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자유분방한 가운데서 체험을 한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편이다. 질서가 좀 없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재난의 무서움을 덜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학생들이 우리나라 체험관을 찾아와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실전처럼 체험을 한다. 지진을 자주 겪어서 그런지 체험에 임하는 태도가 질서정연하고 집중도가 높다. 얼마 전 일본학생들이 방문했을 때 눈여겨보았는데 지진체험 때 안내에 따라 책상 밑으로 피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그리고 사뭇 진지했다. 광나루 안전체험관의 주요 이용객은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보다 높은 안전의식을 가지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각종 재해에서 생명을 지켜낼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체험이 필요하다.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두 개의 ‘심장’

    ‘심장’의 의미는 중의적입니다. 신체 장기로서의 심장이 그 하나입니다. 이때의 심장은 태어나서 박동을 시작해 죽어서야 멈추는 생체적 노예기관으로서의 그것입니다. 심장을 노예기관이라고 말한 것은 엄청난 고역을 묵묵히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하게 계산해 분당 60∼70회에서 많게는 100회 이상 박동을 반복합니다. 요즘 평균 수명을 70세로 보고 계산하면 평생 적게는 22억 번에서 많게는 36억 번을 줄창 뛰어댄다는 뜻입니다. 무슨, 정교한 첨단 기계장치도 아니고, 고작 주먹만 한 근육덩어리일 뿐인 심장이 그렇게 뛰다가 삐끗 박자가 어긋나거나 고장이라도 나서 우뚝, 멈춰서면 그때가 바로 생과 사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됩니다. 다른 의미로는 열정·감성·사랑을 뜻합니다. 사랑을 의미하는 ‘♥’가 심장의 형태를 본뜬 것이라면 이해가 빠르겠지요. 흔히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라고 할 때의 그 가슴은 이성에 인간적 풍미를 더하는 심장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들 하지요. 영악하게 시류를 잘 타거나 지나치게 기계적이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사람을 두고 “머리는 좋은데 가슴이 영∼.”이라거나 “머리만 믿지 말고, 가슴 뛰는 소리도 좀 들으면서 살라.”고요. 세상 일이 마치 번갯불이 튀듯 머리만 잘 굴려서 되는 게 아니라 더러는 이해와 계산, 딱딱한 논리로 가득 찬 머리를 텅 비우고 모든 일을 가슴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하고 보니 ‘당신의 심장은 건강하냐.’는 제 안부인사에 혹 복선은 없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실 터이지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이 심장이든, 저 심장이든 둘은 다른 듯 같아서 한쪽이 건강하다면 다른 쪽도 덩달아 건강하겠지요. 그래도 한번 뿐인 세상, 머리만 굴리다가 하릴없이 스러지는 일은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생체 심장이야 목숨 하나일 뿐이지만 마음의 심장은 삶의 질이기도 하고, 명예이기도 하고, 생애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끔씩은 마음의 심장도 어루만져 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jeshim@seoul.co.kr
  • “나오래요 때리겠죠… 죽을 예정” 자살직전 고민 토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투신자살한 대구 고교 1년생 김모(15)군이 지난 2일 자살 직전에 가해 학생의 호출에 고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수성경찰서는 6일 숨진 김군의 휴대전화 카카오톡을 분석한 결과 김군이 대화 상대자에게 이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카카오톡 상대자가 “너 죽으려는 거 아니지.”라고 묻자 김군은 “오늘, 다 끝날 듯하네요. 제가 죽든, 도망가려고요.”라고 답했다. 또 상대자가 “꼭 싸워야겠냐.”고 묻자 김군은 “나오래요, 밤에, 학교로. 때리겠죠.”라고 응했다. 또다시 상대자가 “무슨 이유로.”라고 묻자 김군은 “깝쳤대요.”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대화는 김군이 자신의 집에서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4시 19분까지 인터넷 축구게임동호회 회원 5명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군은 대화를 끝낸 뒤 집에서 나와 인근 아파트 15층 옥상에 오후 4시 27분쯤 도착했고 7시 5분쯤 투신했다. 김군은 카카오톡에 “스스로 죽을 예정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라는 메시지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가해 학생 A군에 대한 경찰의 소환조사는 A군의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A군의 집을 찾아가 부모에게 조사받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A군의 부모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들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고 있다며 조사를 늦출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A군이 7일 모 대학병원에 예약해 둔 정신과 진료를 받은 후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김군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9시 유족과 김군의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됐다. 할머니 최모(74)씨는 “소중한 내 새끼 못 보낸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38)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오열하며 쓰러졌다. 김군의 시신은 축구 경기장이 있는 대구스타디움을 한 바퀴 돈 뒤 대구시립화장장인 명복공원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화장 절차를 거쳐 경북 영천 은해사의 수목장에 안치됐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흠결 없는 재판 위한 판결 서포터스”

    “흠결 없는 재판 위한 판결 서포터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죠.”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생소한 재판연구원(로클러크·law clerk)을 만나자마자 대뜸 질문이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재판연구원이 뭐냐’고 물으시길래 이렇게 설명드렸어요. ‘판사는 아닌데 법원에서 판사들이랑 같이 일한다’고요.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시는데 판사들이랑 같이 있다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이지욱 연구원) “판사가 아니라는 점만 강조해요. 어르신들이 오해하실까 봐.”(김연준 연구원) ‘판사는 아닌데 법원에 있는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한 지 두달째다. 서울고법 행정3부와 민사·가사24부 재판연구원 김연준(36)씨와 이지욱(28·여)씨를 만났다. 서로 재판연구원으로 호칭하지만 일반적으로 로클러크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사건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판결문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수준 높은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어 법조인으로 첫발을 떼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기록·판례 검토 보고서 작성이 주업무 로클러크는 ‘법조 일원화에 맞춰 재판을 보조하기 위해 도입된 연봉 4000만원가량의 전문계약직 나급(5급 상당)의 법원 공무원 신분’이라는 것이 사실상 알려진 전부다. 김 연구원과 이 연구원은 재판부마다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관련 판례와 문헌을 찾아 담당 판사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고 소개했다.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을 검토한 뒤 보고서를 쓰는 일이다. 김 연구원은 “오전 9시에 출근해서 기록을 받아 하루 종일 자료를 검토하고 다음 날도 검토하고 그다음 날에는 판례를 찾고 보고서를 작성한다.”면서 “1주일에 4건 정도를 처리하는데 처음보다 업무가 3~4배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일주일에 2번 있는 재판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검토하는 사건과 집중 검토 사건이 따로 있는데 기록을 볼 때와 재판에서 당사자 말을 직접 들을 때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보고서 작성이다. 김 연구원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좌절한다.”면서 “판사들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을 느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연구원도 “판사들이 빤히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결과물을 보고 속상할 때도 있다.”며 거들었다. ●광장시장에서 소주 회식하는 판사들 김 연구원과 이 연구원은 판사들이 ‘딱딱하고 고지식할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소탈하다.”고 했다. 사실 함께 일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평판사들도 대하기가 편하지 않다. 이 연구원은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떡볶이, 순대를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는 게 재판부 회식”이라면서 “판사들이 우아하고 품위 있게만 행동할 거라는 것은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요즘 사법부의 화두인 ‘소통’과 관련, “법정에서 판사가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사법부가 해야 할 1순위 소통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 “법원은 판결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자세가 필요한 듯싶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연구원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출신으로 한국전력기술㈜에서 원자력발전소 설계업무를 맡다 ‘기계가 아닌 사람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성균관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이 연구원은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출신으로 중앙대 로스쿨을 거쳐 ‘치열한 갈등을 중재하는 판사’가 되고 싶어 로클러크에 지원했다. 이들은 로스쿨 1기생을 대상으로 한 로클러크 전형에서 7대1의 경쟁률을 뚫었다. “로클러크만큼 법조인으로 일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법원이 흠결 없는 재판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김 연구원), “로클러크 제도가 자리 잡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요. 많이 미흡하다고 느끼지만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이 연구원)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깔깔깔]

    ●토끼와 사자 토끼와 사자가 함께 식당에 갔다. 토끼가 상추를 주문하자, 웨이터가 물었다. “같이 온 당신 친구는 무엇을 먹으려는지….” 그러자 토끼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먹을 거요.” 웨이터가 다시 물었다. “웬일인가, 이 친구 배고프지 않은 건가?” 그러자 토끼가 대답했다. “이봐요, 웨이터! 저 사자가 배고팠으면 내가 여기 앉아 있을 것 같냐고요!” ●난센스 퀴즈 ▶투수가 싫어하는 연예인은? 강타. ▶동그란 얼굴에 주름 가득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 레코드. ▶‘보노보노’에서 보노보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동굴아저씨. ▶개구리가 낙지를 먹어버리면 무엇이 될까? 개구락지.
  •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이건 정말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일 여성 미르야 말레츠키(35) 이야기다.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문화 전도사’. 처음부터 한국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땐 일본 만화와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을 동경해서다. 그런데 그가 홈스테이로 머물던 집의 주인 부부가 이혼을 해 두 달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듬해 함부르크대에 입학해 일본어를 전공으로,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부전공 선택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일본을 떠날 당시 한국이 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 뿐이다. 2000년 3월 우연히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나서야 알았다. 한국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있다는 것을.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태권도 정도였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고요. 1학기 일정이었는데 2년이나 머물게 됐습니다.”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접했던 한국 만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선명한 게 조운학의 학원 무협물 ‘니나 잘해’다. “가장 나이 많은 외국인 누나로 태권도 도장을 다녔는데 한국 남동생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만화 내용과 맞아떨어져 무척 재미있었어요.” 사서 보는 걸 즐겨 한국 만화를 수백권은 족히 모았다고 한다. 미르야는 한국 만화로 가득 채워진 독일 집 책장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줬다.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과에 편입해 다닐 때는 같은 과 교수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한국 만화책을 빌려 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통역으로 활동하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여기서 또다시 운명을 만나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잠시 들렀던 것. 일본 만화를 번역 출판하는 독일 출판사 부스를 찾아가 한국 만화도 재미있는데 혹시 출간할 계획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이듬해 3월 그가 번역한 한국 만화가 독일에서 처음 나왔다. 고야성의 ‘유리달 아래서’다. 지금까지 그녀가 독일어로 옮긴 한국 만화는 ‘프리스트’ 등을 포함해 줄잡아 200여권이다. 2005년을 즈음해 번역했던 이명진의 ‘라그나로크’와 이윤희·카라의 ‘마왕일기’는 독일에서 최고 인기 있는 일본 만화 ‘원피스’보다 더 잘 팔렸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특히 ‘마왕일기’는 한국보다 오히려 독일, 프랑스, 미국서 더 인기를 끌었죠.” 가장 번역하고 싶은 만화책으로는 박소희의 ‘궁’을 꼽았다. 독일 출판사에 추천했더니 현지 만화 시장에선 그림체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단다. “사실 외국에서는 중국, 일본을 많이 알면 알았지 한국에 대해선 잘 몰라요. ‘궁’ 같은 작품을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2006년 한국에 정착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아이온’ 등 한국 온라인 게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많이 한다. 미르야의 꿈은 한국에서 어서 빨리 노벨상 작가가 나오는 것이다. 번역가로서 한국 작품을 해외로 널리 알려 한국에서도 노벨상 작가가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노벨상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고 보면 한국에는 좋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외국에서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워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⑩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고(故) 장계량(張啓良)씨

    [기획]최고경영자=⑩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고(故) 장계량(張啓良)씨

    단돈 10원짜리도 함부로 쓰는 일이 없었다. 꼭 지갑에 넣었다 꺼내 쓰는 구두쇠 사장이었다. 창업 당시엔 5전짜리 콩국수를 먹고 전무가 된 뒤에도 일본에 출장을 나가면 1백「엔」짜리 메밀국수 외에는 입에 대지 않았다. 이렇게 모은 돈 1억 2백만원을 임종 직전 선뜻 사회에 되돌려 놓았다.『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어야 아이들만 버릴뿐』이라는 주장. 지난 5일 작고한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장계량(張啓良)씨는 참된 기업인이 어떤 것인가를 임종에서 보여 주었다. 북에 두고 온 아들 그리며···사원 가족·문중 자녀 위해  우리나라 기업인 중 자기 재산을 몽땅 사회에 되돌려 보낸「케이스」는 유한양행(柳韓洋行)의 유일한(柳r一韓)씨에 이어 이번 작고한 장(張) 사장이 두번째. 장(張)씨의 재산이 단신 월남, 맨손과 땀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라는 데 더 의의가 깊다.  간암(肝癌)으로 지난 해부터 연세(延世)대 의대 병원에 입원, 투병하던 장(張) 사장은 자신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 지난 해 12월 중순, 녹음기와 변호사를 불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겨 두었다.  『맨손으로 월남, 오늘의 한미(韓美)식품과 칠성(七星)음료를 이룩했으니 유한은 없다. 다만 통일이 되어 고향에 못 가본 것이 한일 뿐. 내 소유로 되어 있는 한미(韓美)식품의 주식 1억 2백만원 전액을 기금으로 인동(仁同)장학회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인동(仁同)장학회는 ①「펩시」에 3년 이상 근무한 전 종업원의 자녀 ②내 고향 평북(平北) 귀성(龜城) 군민의 자녀 ③인동(仁同) 장(張)씨 문중의 자녀들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수재들을 도와 주기 바란다. 단 명예직인 장학회 이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겨 두었다가 통일이 되거든 북(北)에 남겨 두고 온 내 아들에게 물려 주도록. 못난 아비의 마지막 선물이다』 50원짜리 구내식당 점심···사원들에겐 자상한 사장  이 유언에 따라 한미(韓美)식품 중역진은 곧 인동(仁同)장학회 준비위를 구성, 올해부터 이를 실시키로 했다. 지난 7일 경기도 벽제면에 묻힌 장(張) 사장의 묘소 옆에는 북(北)에 두고 온 장(張) 사장 부친의 묘비도 세워져 있는데 이는 통일이 되거든 이 묘비를 부친의 산소에 세워 달라는 장(張) 사장의 애절한 유언이 있었기 때문.  「펩시·콜라」판매로 지난 해 23억원을, 칠성(七星)「사이다」로 30억원을 벌어들인 칠성(七星)·한미(韓美)식품은 원래가 7명의 동업자들로 구성된 합명회사였다.  전 칠성(七星)음료 사장인 최금덕(崔今德)씨가 수원에서 자그마한「사이다」공장을 경영하다가 경영난에 몰리자 50년 봄 동업자를 구한 것이 칠성(七星)의 시초. 최금덕(崔今德)씨를 비롯 작고한 장(張) 사장, 주동익(周東益·작고)씨, 김명근(金命根)씨, 박운석(朴云錫)씨, 최창문(崔昌文·작고)씨, 그리고 우(禹)모씨(납북) 등 7명이 모였다. 대부분이 단신 월남한 실향민(失鄕民)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성이 모두 달랐다. 회사 이름은 동방(東邦)음료였지만「칠성(七星)」의 상표를 붙인 것은 칠성(七姓)이 모였대서 생긴 이름이었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공장을 차렸을 때만 해도 이 7명이 주주이자 사장이자 공장 직공이며 사환이었다. 모두들 작업복 바지에「잠바」를 입고「사이다」를 만들어 들고 나가 팔았다. 공장 앞 개성(開城) 아주머니가 경영하던 판잣집 콩국집에서 3끼 식사를 하고 어쩌다 잘 팔리면 호떡을 사다가 호떡「파티」를 벌이는 게 최고의 호사.  6·25 동란이 터진 이듬 해 박재화(朴在華·현 회장)씨 최희태(崔希泰·현 이사)씨 등이 새로운 동업자로 참가하고 그 뒤 다시 김영태(金永泰·지난 7일 장(張) 사장의 뒤를 이어 사장에 취임) 강내근(姜迺根·이사)씨 등이 끼어 들었지만 칠성(七星)을 키운 원「멤버」는 칠성(七星)의 창업자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칠성(七星)은 국내 청량음료 업계를 파고 들기 시작, 60년대에 와서는「톱·메이커」로 성장했다. 칠성(七星)의 성장으로「라이벌」이던 서울「사이다」가 도산 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인수, 주동익(周東益)씨와 박운석(朴云錫)씨, 김명근(金命根)씨 등이 분리,독립해 나갔다.  한동안 호경기를 누리던 칠성(七星)은 67년「코카·콜라」의 상륙과 함께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칠성(七星)은 국내 청량음료 업자들과 힘을 합쳐「코카」의 상륙을 막으려 애썼으나 실패, 이 때 장(張) 사장은『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도 외국 것을 들여다 싸우자』고 제의, 김인선(金寅善·현 영업 제2과장)씨를 통해「펩시」를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張) 사장은 거의「쇄국적」이랄 정도로 외국 자본의 한국 침투를 꺼리는 사람. 합작 투자를 거절하고 오직「펩시」원액만을 사들인다는 조건부로 한미(韓美)식품을 68년 창설했다.「펩시」측 미국인 중역을 맞을 땐 꼭 한복 차림이었고 요정엘 가도 자신이 장구치고 한국 춤을 추었다고. 69년 6월 영등포 공장이 준공되었을 땐 외국인 내빈이 많자 일부러 한복으로 갈아 입고 나오기도 한 외고집이었다고.  49년 혈혈단신 월남한 장(張) 사장이었던지라 자신에겐 마냥 인색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에겐 더 없이 잘 해주었다고. 명절 때면 꼭 떡과 고기를 가지고 공장에 나와 공장 종업원들과 수위들에게 나누어 준 인자한 사장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50원짜리 구내식당의 점심을 먹고 10원짜리도 꼭 지갑에 넣어두었다 쓰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김인선(金寅善)씨와 함께 68년 동남아 출장을 갔을 때도 꼭 1백「엔」짜리 메밀국수만 찾아 먹어 김(金)씨가『이러단 굶어죽겠다』며 사표 내겠다고 협박한「에피소드」까지 갖고 있다. “돈 남겨주면 사람 그르칠까봐 가족 안줘”  칠성(七星)과「펩시」의 연간 총 매상이 한해 55억원으로 오른 70년대에 사장직을 맡았으나 이 구두쇠 기질은 변함 없었다.  한때 매상 55억원의 기업체 사장이면서 융자를 얻으러 산은(産銀) 총재를 찾아갈 때도「잠바」차림이었다면 알조(죠). 차림이 너무 허술해 면담을 거절 당하자『나도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며 총재실 문을 밀치고 들어선 장(張) 사장이다.  직원들이 어쩌다 가불 신청을 한면 절대로 가불 안해주는 사장이었으면서도 유능한 충각 직원이 장가를 가면 선뜻 자기 돈에서 50만원을 내주기도 하고 사정이 딱한 직원에겐 자기 돈을 이자없이 꿔주기도 했다.  『자식이나 친척들에게 돈을 남겨 주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을 그르치게 한다』는 게 장(張) 사장의 평소 주장. 간암(肝癌)과 싸우면서 장(張) 사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영사업을 벌일 것을 계획했다가 끝내 못이루고 인동(仁同)장학회 설립을 유언으로 남겼다.  『내 평생 아무런 원도 없다. 다만 단신 월남해 북(北)에 두고 온 부모님께 효도 못하고 처자식들에게 몹쓸 아비된 것이 부끄러울 뿐이고 통일되는 걸 못보고 죽는 게 한이 될 뿐. 그러나 내 평생을 두고 키운 칠성(七星)·「펩시」의 가족들을 위해 인동(仁同)장학회를 세운다면 더 이상 큰 보람은 없다. 평소 구두쇠 사장이라고 나를 나무랐겠지만 여러분 자녀를 공부시키는데 내 재산을 돌려드리니 이젠 구두쇠 소리를 말아 주게』  지난 7일 칠성(七星)·「펩시」사장(社葬)으로 치러진 장(張) 사장의 유언이 녹음「테이프」서 흘러 나오자 장례식은 그대로 울음바다가 됐다. 참된 기업인의 깊은 뜻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  향년 55살의 아까운 나이 북(北)에 1남(男)1녀(女), 남(南)에 1남(1男)을 두고 갔다.<김창웅(金昌雄) 기자>   <편집자주>=「최고경영자」는 생존해 있는 경영자 중 각 부문별「톱·메이커」를 다루게 돼 있으나 이번 회만은 장(張) 사장의 갸륵한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고한 분을 골랐읍(습)니다. [선데이서울 73년 3월 18일 제6권 11호 통권 제23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스타보다 쓰임새 많은 배우 되고 싶어”

    “스타보다 쓰임새 많은 배우 되고 싶어”

    요즘 일명 ‘대세 배우’ 조정석이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목할 만한 후배 배우로 언급한 뮤지컬 배우가 있다. 지난해 뮤지컬 ‘스트릿라이프’로 대중에 존재감을 알린 뒤 ‘광화문 연가’에 출연해 호평을 받은 배우 정원영(27)이 바로 그 주인공.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신예 정원영은 오는 13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서 인종차별 논쟁의 중심에 선 흑인 ‘씨위드’로 변신한다. 연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지난 3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부친은 ‘품바’ 정승호·이모는 나문희 정원영을 이야기하면서 그보다 훨씬 앞서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의 아버지와 이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원영의 아버지는 연극 ‘품바’로 유명한 배우 정승호(56), 이모는 국민 배우 나문희(71)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영향인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리라 생각했어요. 특히 군대에 있을 때 국방일보에 나온 뮤지컬 ‘대장금’ 기사를 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더욱 크게 갖게 됐죠.”라고 말했다. 군 제대 이후 그는 뮤지컬 ‘대장금’의 오디션을 봤고, 운 좋게 앙상블 배우로 데뷔할 수 있었다. 이후 끼와 재능을 인정받아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연출가 이지나, 극작가 조광화 등으로부터 ‘성장 가능성이 큰 배우’, ‘친화력이 좋은 배우’로 평가받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LG아트센터에서 ‘광화문 연가’ 공연을 했습니다. 4년 전 같은 공연장에서 했던 뮤지컬 ‘뷰티플 게임’ 때와는 다른 대접을 받았어요. 4년 전엔 앙상블이라 분장실을 단체로 썼는데, 이번엔 제 개인 분장실을 썼죠. 공연 첫날 앙상블 분장실을 찾아 예전에 썼던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라며 웃었다. ●4년만에 개인분장실… 감회 새로워 ‘헤어스프레이’의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즈음 몇 개의 창작 뮤지컬 작품의 주연 배우로 러브콜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는 주조연급의 ‘씨위드’ 역을 단번에 선택했단다. 그 이유에 대해 “작년에 창작 뮤지컬을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라이선스 뮤지컬을 해보고 싶었죠. 또 특히 ‘씨위드’ 캐릭터가 매력적인 데다 20대 젊은 나이에 해야 빛날 수 있는 역할이라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라고 밝혔다. 그는 “20대에 성공하기보다 많은 쓰임을 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아버지는 늘 ‘배우는 상품이다. 출연료에 급급한 배우가 되기보다 다양하게 쓰임이 많은 배우가 되라.’고 가르쳤다. 또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모 나문희를 보며 ‘많은 곳에서 찾는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배우로서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정원영,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한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오는 13일부터 8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2만~9만원. (02)2230-660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전북지사님, 또 논두렁 축구하라고요?

    4년 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와 종교집회가 열렸다. 행사 뒤 푸르렀던 잔디는 흙바닥으로 흉물스럽게 변했고, 이듬해 겨우 살아난 줄 알았던 잔디는 그 다음 해 전부 말라 죽었다. 아예 ‘논두렁’으로 변해 K리그 경기는 물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면서도 적지 않은 불편을 겪었다. 세밀한 패스플레이가 불가능했고 볼 컨트롤과 트래핑도 쉽지 않았다. 선수단은 혹시 부상을 당할까 봐 경기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런데 그 교훈을 깨우치지 못했는지 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 달 8일 같은 경기장에서 ‘K팝스타와 함께하는 전북 방문의 해 기념공연’이 열린다. KBS가 공연 실황을 생중계해 세계 73개국으로 송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람 인원은 대략 3만명. 문제는 잔디. 대형 무대가 같은 달 2일을 전후해 설치될 예정인데 완전 철거되는 12일까지 열흘 남짓 잔디는 무대 밑에 짓눌려 있어야 한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고 초여름 ‘고온다습’에 취약한 잔디가 배겨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최측은 잔디보호대를 설치하고 특수포를 깐다고 하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라운드에 의자까지 놓을 예정이라 오가는 발길에 밟히고 음료나 간식 탓에 잔디가 타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 번 죽은 잔디를 살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똑똑히 배운 전북 구단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용 대형 송풍기를 설치했다. 잔디 관리를 위한 비상책이었다. 그런데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대체 공연장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면서 이런 살뜰한 관리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한때 이웃 대학교로 옮겨 개최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백지화됐다. 전북도나 전주시나 3만명을 수용할 공연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해를 구하고 있다. ‘디펜딩챔피언’ 전북은 지난 26일 수원과의 K리그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지만 능력 밖(?)의 일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전북 관계자는 “잔디를 재생, 보수하려면 FA컵 경기가 있는 20일까지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고 말했다. 16강 대진 추첨에서 홈 경기로 정해질 경우 개최권을 내놓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월드컵까지 치른 나라에서 창피하고 한심한 일이라고 혀를 차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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