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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대통령의 ‘진심’ 사용법/황수정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대통령의 ‘진심’ 사용법/황수정 문화부장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 벽에 글판이 새로 걸렸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풍경 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정호승 ‘풍경 달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다시 볼 수 없어 숨이 막히는 이에게 이 고요한 시구는 그대로 절창(絶唱)이다.  어제까지는 무심히만 들렸을 절집 처마의 풍경 소리. 그 소리가 오늘은 공연한 울림이 아니게 되는 것. 그리운 사람의 마음이 맹렬히 달려와서 나 여깄소, 기척을 내는 반가운 소리가 되는 것. 먹기 나름인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정확히는 그의 마음을 이야기해 본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크게 잃었다. 일거수 일투족에 구설이 붙어다녔다. 대통령이 국민들 마음을 잃어 곤두박질친 건 지지율만이 아니다. 팽목항에서 청와대까지, 도무지 닿지 않는 진심에 유가족과 국민들 마음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도 무능 정부의 속수무책이 전부가 아니다. 위정자들의 영혼 없는 언사, 진심 없는 몸짓들이 우리를 얼마나 절망시킬 수 있는지도 통감했다.  대통령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국민은 그와의 소통을 포기할 수 없다.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의 몇몇 지점들을 복기하는 건 그래서다. 혹자는 지나치게 후벼판다고 하겠지만 대통령의 마음 사용법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의 연속이었다. 세월호 사고 열흘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예정대로 방한했다. 하루에 수십구의 시신이 수습되는 절통함 속에도 큰 손님을 맞았던 대통령의 담대함은 헤아릴 일이다. 그러나 나라가 상(喪)중인데, 검정 수트를 챙겨 입은 남의 나라 대통령 앞에 하늘색 정장에 한 치 흔들림 없는 우리 대통령 가슴에는 예의 그 브로치가 곱게 달려 있었다. 장보기 의욕조차 없었던 필부(匹婦) ‘앵그리 맘’들이 불편한 시선을 쏟았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모르겠다. 충심을 담아 ‘디테일’을 간언하는 살뜰한 측근 하나 두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덩달아 목도됐다.  사고 한 달째 어렵게 이뤄진 유가족 면담에서도 국민들의 가슴 체증은 내려가지 못했다. 절박한 유가족의 질문에 답변은 겉돌았다. “수사본부에 왜 (사고책임자인) 해경이 들어가 있나”라는 호소에 초점을 맞춰 주지 못하는 대답(“걱정하지 않도록 각별히 챙기겠다”)이 지나가는 식이었다.  산통 끝에 나온 대국민 사과에도 국민들은 마음을 나눠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읽어내린 문어체 투성이의 사과문에는 진심을 교감하기 힘들었다. 마음의 빗장을 열 준비를 했던 국민들이 설득되지 못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만든 실무자에게 조선 최고의 문장가였던 연암 박지원 읽기를 감히 권한다. 연암은 “고상한 표현을 붙여 실질에서 멀어지게 하지 말고, 뜻을 드러내라”고 갈파했다. 그 뜻이란 진심이다.  대통령과 책임 장관, 정치인들에게 공감 능력의 부재를 연일 탓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유족과 국민)에 대한 예의, 근원적 슬픔을 공감하는 데 따로 능력이란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  세월호는 아직도 바다에 잠겨 있다. 나라님의 묘수가 여전히 간절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달라는 억지가 아니다. 유가족, 국민들의 삭막한 마음에 위로의 풍경(風磬) 하나 달아주는 일은 나라님의 진심(盡心)을 품은 진심(眞心) 하나면 된다. 어찌 헤매시는가.  sjh@seoul.co.kr
  • [낮에는 벌써 여름 … 도시위생 한단계 올리는 방법] 정화조 공기공급·수시 청소로 ‘향긋한 중구’

    “새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단지에서 악취가 나서 불쾌했어요. 시공사가 정화조에 공기공급 장치를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냄새가 나지 않더라고요.” 올 초 중구 신당동 재개발 아파트로 집을 옮긴 이모(42)씨 얘기다. 중구는 다음달부터 오는 12월까지 대형 건물, 아파트 등 59곳에 악취 제거를 위한 공기공급 장치를 설치한다고 27일 밝혔다. 정화조, 생활하수 등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없애 쾌적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먼저 황학동 중앙시장, 명동관광특구 등 취약 지역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다. 하수관 준설, 물청소, 빗물받이 청소 등을 통해 악취를 집중 관리한다. 실제 이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우 악취를 가진 무색 기체인 황화수소 농도가 허용치 5의 20배를 웃도는 106.8이나 됐다. 입주하자마자 주민 민원이 빗발쳤다. 구는 원인을 찾으려고 외부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서 악취를 측정했다. 아파트 정화조 오수가 주택가 하수관으로 합류하면서 황화수소 농도가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내용을 시공사에 전달해 지난달 정화조 6개에 공기공급 장치를 설치했다. 악취는 거의 0%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3월부터 이달까지 96개를 설치했다. 구는 도심 악취 제거에 애쓰고 있다.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지만 노후 지역이 많아 하수관 맨홀 등에서 나는 냄새가 골칫거리였다. 지난해부터 대형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할 경우 200인조 이상 펌핑형 부패식 정화조를 설치할 때 공기공급 장치를 달도록 했다. 정기적으로 정화조 청소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수시로 하수관로 물청소를 하고 민관 합동 악취 특별순찰반을 운영한다. 김찬곤 구청장 권한대행은 “냄새 없는 도시, 청정 중구를 만들기 위해 환경 시스템을 대폭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후보자 인터뷰] “북한산 자락, 4·19 묘역, 둘레길 합쳐 개발”

    [후보자 인터뷰] “북한산 자락, 4·19 묘역, 둘레길 합쳐 개발”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젊은 정치인이 왔으니 어떻게 할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미안한 말이지만 실망했습니다.” 김기성 새누리당 후보는 단호하게 말했다. “젊은 정치인이니까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서 정력적으로 활동을 벌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을 잘못했다는 게 지역의 평가이고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무엇을 못했을까. 구체적인 발전 전략이 없다고 설명했다. “뭐랄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부분에만 치중했다는 느낌입니다. 지난번 구청장 때보다 살림살이가 더 방만해졌다는 평도 나왔습니다.” 자신은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만 해도 건설 쪽에서 20여년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시의원을 거쳐 의장도 했습니다. 시정 전반을 보면서 어떻게 돈을 굴려야 할지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강북구의 이륙, 그걸 제가 해보이겠습니다.” 비책이 있을까. 강북구의 재정자립도는 20.4%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강한 개혁 드라이브가 필요합니다. 북한산 자락, 4·19 묘역, 둘레길 이걸 한데 합쳐 개발해야 합니다. 우이경전철과 우이령길도 뚫어 교통을 통하게 해야 사람이 오가고 돈이 거래됩니다. 수유·미아지구는 중심상업지구로 만들겠습니다.” 특히 우이동 광장과 삼양동 사거리를 눈여겨보고 있다. “지금은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묶여 있는데 그걸 해제하겠습니다. 해제해서 부도심 지역으로 도약시키겠습니다.” 또 하나 조심스럽게 꺼냈다. “인사와 관련해서도 약간의 잡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나빠서라기보다는 경험부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시의회 의장이었을 때 9급에서 시작해 5급으로 시작한, 가장 오래된 공무원을 비서실장으로 뒀습니다. 공무원 세계를 잘 아는, 흔히 말하는 ‘잔뼈가 굵은’ 사람을 데려다 쓴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구청장이 된다면 공무원 세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데려다 쓰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도록 애쓰겠습니다.” 지난 선거 뒤 어떻게 지냈을까. “솔직히 1년 반 정도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엔 툭툭 털고 고려대, 성신여대 등에 강의를 나갔습니다. 시의회 의장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거기에서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자아를 버리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걸 다시 절감했습니다. 강북구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많고 지역개발은 뒤처졌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머리를 풀어 나갈 줄 아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엷고 흐릿한 몽환 빛·공기·물에 투영된 현대 중국인의 삶

    엷고 흐릿한 몽환 빛·공기·물에 투영된 현대 중국인의 삶

    “노장사상이 근간을 이루죠. 흐릿하게 버무린 빛과 공기, 물의 몽환적 모습은 선인(仙人)들의 수행과 잇닿아 있어요.” 지난해 말 상하이 모간산루 예술특구(M50)에 갤러리를 내고 중국 미술시장 공략에 나선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중국 ‘신 수묵화’의 선구자인 톈리밍(58)을 옆에 두고서다. 그는 “(상업갤러리에서 여는 전시이지만) 이번에는 단 한 점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현대 수묵화의 경향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마치 빛바랜 오랜 사진처럼 엷고 흐릿한 형상, 안개 너머의 희미한 이상향을 그린 듯한 그림들은 답답함을 가져오기보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불러온다. 전시 제목도 ‘햇빛, 공기, 물’이다. 생명을 영위하게 하는 이 세 가지 요소는 햇살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박한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맑고 투명하게 전한다. 이 중 작가는 물에 방점을 찍었다.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니 차가운 현대 도시문명조차 중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시골처녀’, ‘도시’, ‘수영’, ‘화조’ 등 6개의 대표 연작 33점을 내놓은 톈리밍의 국내 첫 수묵화전은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이어진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저우스춘 등 대가들로부터 인물화를 배운 톈리밍은 1988년 ‘신 문인화’전에 참여하면서 ‘신 수묵화’의 선구자로 떠올랐다. 작품 ‘물 위의 햇빛’처럼 19세기 인상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빛의 느낌은 그림에 내재된 현대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톈리밍은 사람과 주변을 나누는 경계를 없애 전통 안료의 잔잔한 색상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인지난 중앙미술학원 인문학원장은 전시 서문에서 “그의 예술은 구상이며 동시에 사의적”이라면서 “빛과 색에 대한 예민함과 세심함이 마치 먹을 사용하듯 색을 사용하는 고대 몰골법(윤곽선 없는 표현)의 심오한 전통을 부활시켰다”고 말했다. 안후이성 허페이시 출신인 작가는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화폭으로 옮겼다. “현대 생활에서 받는 피로를 힐링하도록 그림을 이상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선녀 같은 두 소녀가 맑은 계곡에 비스듬히 누워 발을 담근 ‘산야’나 고요하고 움푹한 땅이 뭇 산들의 나무에 기대어 샘물을 빨아들이는 ‘샘’ 등이다. ‘도시인’, ‘도시의 소리’, ‘자동차 시대’ 등 갑갑한 도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마저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야말로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중앙미술학원, 국가화원, 예술연구원 등에서 30년 가까이 후학을 가르쳐 온 그는 “서양화나 전통화 모두 기본이 중요한 만큼 내 수업에선 ‘명작’을 베끼는 일부터 시킨다”면서 “어려서부터 (예술과의) 교감이나 시선이 중요한데 한국 유학생들은 이 점에서 재능이 있으며, 열심히 노력도 한다”고 말했다. 톈리밍의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중반 국내 미술시장에서 거품을 일으키다 쇠퇴했던 중국 작가들의 재등장을 뜻하는 신호탄일까. 지난해부터 펑정지에 등 중국 작가들의 국내 전시가 잇따르면서 이런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갤러리 측은 문화 교류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중국 수묵화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는 가운데 시장 창출보다는 소개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것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먹이 꿀꺽하기 직전… ‘사냥하는 박쥐’ 생생 포착

    먹이 꿀꺽하기 직전… ‘사냥하는 박쥐’ 생생 포착

    어둠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박쥐의 사냥모습을 포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미국의 한 야생동물 전문사진작가가 오랜 기다림 끝에 ‘1초 후’ 모습이 궁금해지는 박쥐의 사냥을 포착했다. 사진작가 마이클 더함은 미국 오리건주의 자연보호지정구역인 더슈츠국유림(Deschutes National Forest)에서 박쥐 2마리의 생동감 있는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박쥐 2마리는 당시 물가에서 빠르고 고요하게 이동하며 먹잇감을 찾아 헤맸고, 공중에서 나방 한 마리를 발견한 뒤 곧장 ‘행동’에 나섰다. 박쥐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빠르게 날아가는 나방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소리가 거의 없이 조용했고 마치 금방이라도 나방을 한입에 삼킬 듯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박쥐가 상공을 나는 동시에 물가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저 스치듯 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도의 민첩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더함은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이들 박쥐를 기다렸다 촬영했다. 컴컴한 밤에 야행성 박쥐의 일상을 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보기 드문 장면을 담는데 성공한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반적으로 박쥐는 완전히 어두운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습성을 가졌다. 게다가 비행속도도 매우 빨라 쉽지 않은 작업 이었다”면서 “하지만 쉽게 다가가기 어렵고 쉽게 목격하기도 어려운 박쥐를 볼 수 있어서 매우 놀라웠다”고 전했다. 한편 박쥐는 포유류 중 새처럼 날아다니는 유일한 동물로, 몸의 구조와 기능이 모두 날기에 편리하도록 발달돼 있다. 박쥐의 비행 속도는 조류 중 가장 빠르다는 칼새와 비견될 정도. 물건으로부터 반사되는 공기의 진동으로 장애물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날아다니는 곤충을 주로 먹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디카프리오와 함께 가는 우주여행 티켓, 10억원에 팔려

    디카프리오와 함께 가는 우주여행 티켓, 10억원에 팔려

    멋진 조각미남과 함께 아름다운 우주를 볼 수 있는 여행, 얼마면 될까? 최근 영국의 민간우주항공사인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이 월드스타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하는 우주여행상품을 내놓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라이어티, 스페이스닷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상품은 오는 2015년 버진 갤럭틱의 상용우주선인 스페이스십투(SpaceShipTwo)를 타고 우주를 관광하는 것으로, 가격은 무려 약 95만 4000달러에 달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하는 우주여행 티켓은 지난 22일 프랑스 칸 인근에서 열린 amfAR(미국 에이즈 연구 재단 시네마 어게인스트) 경매에 등장했고, 우리 돈으로 약10억원에 이미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행에는 조종사 2명을 제외하고 총 6명의 관광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디카프리오와 ‘동승자’를 제외한 티켓 역시 이미 고가에 판매된 상태다. 이들이 여행할 스페이스십투 비행선은 화이트나잇투(WhiteNightTwo)라는 모선에 의해 1만5000m 고도의 상공으로 이동된 뒤 우주 궤도에 떨어지게 된다. 이 비행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요한 우주의 모습을 무중력 상태에서 수 분간 관찰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우주여행상품을 구매한 스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애쉬튼 커쳐와 안젤리나 졸리가 이미 티켓을 예약했고, 최근 ‘악동’으로 소문난 저스틴 비버도 우주여행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지 오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저자와 차 한잔]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500년 이상 이어진 왕조의 왕릉 가운데 훼손 없이 원래의 모습이 보존돼 있는 건 세계적으로 조선 왕릉이 유일합니다. 두 곳만 빼곤 도굴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종호(66)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이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북카라반)조선왕릉 편과 전통 마을 ①편을 동시에 출간했다. 그는 조선 왕릉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신과 함께 묻힌 부장품이 모조품이었기에, 다시 말해 가짜였기에 도굴해봤자 돈이 안 됐던 거죠. 임진왜란 때 선릉이 파헤쳐 졌으나 진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후엔 도굴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는 모조 부장품의 종류와 내용은 ‘산릉도감의궤’란 책에 상세히 남아 있다고 전한다. “42기의 조선 왕릉 가운데 선릉과 정릉을 제외하곤 그 어떤 왕릉도 도굴되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과학적인 건축 기술도 한몫을 했습니다. 왕릉 석실의 벽과 천장은 두께가 76㎝나 되는 화강암을 통째로 사용했습니다. 또 석실 주변에는 일종의 시멘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물을 120㎝ 두께로 둘러쌌습니다. 또 다른 도굴 방지책들도 여럿 도입했습니다.” 저자는 “죽은 이에게 명당은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좋으며,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이면서 토양이 중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땅은 대개 산성입니다. 그런데 명당의 토양을 조사해 보니 중성이더라고요. 중성의 땅은 뼈를 보존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수천년간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단군 묘터의 토양도 중성입니다.” 그는 조선 왕릉이라는 유산이 훼손 없이 남아 있는 이유의 근본은 과학에 입각해 무덤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져 갈 게 없이 만들어서 도굴 의욕이 생기지 않게 하고 혹 그래도 있을지 모르는 도굴에 대비해 철저한 방지책을 마련한 것이 가장 과학적인 대비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전통 마을 ①편은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20여곳의 전통 마을 가운데 10곳을 답사한 기록으로, 저자는 그곳에서 마을의 문화가 형성된 배경뿐만 아니라 마을을 조성한 사람들의 과학적 속성까지 분석했다. “충남 아산군 송악면에 있는 외암마을은 풍수지리에 딱 들어맞는 천혜의 입지가 아니라 실상은 불리한 입지에 조성된 마을입니다. 위치상 겨울에 북서풍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백호 역할을 하는 소나무 숲을 인공적으로 조성해 방풍림 역할을 하게 했죠. 또 가옥은 왼쪽으로 향하게 했죠. 모두 강한 북서풍을 막기 위한 조치죠.”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크기를 감안할 때 풍수지리를 충족하는 입지가 많지 않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과학적인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그는 “우리나라 기후나 자연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초가집”이라면서 “초가집을 황토로 지으면 금상첨화”라고 말한다. “짚으로 만든 지붕은 가벼운데다 비와 눈을 잘 막고, 좋은 단열재이기도 합니다. 두꺼운 황토는 흙이 습도를 저절로 조절해주기 때문에 가습기가 필요 없습니다. 또 유익한 미생물도 많습니다.”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10여개의 특허를 20여개국에 출원했고, 9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앞으로 전통 마을 ②편을 포함해 공룡 편, 유네스코 세계유산 편, 국보 건축물 편 등으로 나눠 과학문화유산 답사기를 6~7권 더 낼 계획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거대한 우주에 ‘또 다른 나’가 있다면…

    거대한 우주에 ‘또 다른 나’가 있다면…

    남녀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여자가 “팔꿈치 핥아 봤어요?”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대화를 이어 가려고 말을 늘어놓지만 남자는 “사귀는 사람 있습니다”라고 응답하고는 끝. 암전. 불이 켜지고 또 묻는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중얼중얼 말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말한다. “여친이랑 진짜 힘들게 헤어졌거든요. 뭐 그렇다고요”라고는 끝. 또 암전. 다시 불이 켜지면 여자는 또다시 묻는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영국 극작가 닉 페인(30)의 연극 ‘별무리’(Constellations·연출 류주연)의 형식은 매우 독특하다. 만남의 시작, 첫 데이트, 외도, 이별, 재회, 죽음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남녀의 대화가 여러 번 반복된다. 대사와 감정에서 조금씩 변주한 것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과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아홉 가지의 상황과 그 속에 각각 서너 가지 가능성, 해서 48개 장면이 90분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지구인 듯 우주인 듯, 커다란 돌덩이 같은 단순한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또박또박 대사를 내뱉는 두 배우도 참 대단하다. “대본 복사가 잘못된 줄 알았다니까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주인영(36)은 대본을 받은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보통 드라마는 기승전결이 있잖아요. 이 작품은 그게 애매해요. 상황도 잘게 쪼개지니까, 어디서 힘을 줄지, 또 빼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는 연습을 이어 가면서 “나름의 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잡게 됐다”며 조리 있게 재잘거렸다. 조용히 주인영의 말을 듣던 최광일(44)은 “공연을 올리기 전에는 ‘과연 관객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 자잘한 시간 안에도 시작과 끝이 있고, 장면마다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조금씩 수월해졌다”고 돌이켰다. 최광일이 연기하는 롤란드는 양봉업자다. 주인영의 마리안은 천체물리학자이니 ‘벌무리’와 ‘별’의 만남이다. 큰 우주와 대비되는 작은 벌의 날갯짓이자, 벌과 같은 작은 만남은 수많은 별처럼 쏟아지고 그것들이 삶과 우주가 된다는 뜻도 있다. 그 연장선에서 꺼내 든 것은 우리 인생이 다중 우주 어딘가에서 또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평행우주론’이다. “재미있는 이론이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거잖아요. 근데 다른 우주에는 이런 나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도 이 불행한 놈이 있다니….” 농담도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최광일은 ‘별무리’에 “지금 이곳에 사는 내게는, 이전의 삶을 묻게 하는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를 담았다. ‘에쿠우스’, ‘클로저’ 등 여러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그는 지난 1년간 무대를 떠나 있었던 터라 ‘시작’이라는 말이 더 묵직하게 들린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호평받은 주인영도 출산과 육아로 2년 6개월 만에 무대에 돌아왔다.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면서 이 나라에는 정말 보육대책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며 한숨을 내쉬더니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사랑하고 싸우고 소모하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지치고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갖고 감정을 쓸 수 있다는 거요.” 두 배우의 열연으로 지금 이 우주의 삶을 이야기하는 ‘별무리’는 다음 달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만 5000~4만원. (02)580-1300.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생명의 그리움, 생명의 존귀함이 새삼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목이 ‘생명 그리고 동행’(6월 30일까지)이다. 얼마 전 ‘생명의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생명’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을 노래해 온 김병종(61) 화백(서울대 교수)이 만나 ‘생명과 동행’이라는 메시지를 버무리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시를 김 화백이 묵필로 썼고 ‘생명’을 주제로 한 대작만도 20여점을 내걸었다. 지난 14일 영인문학관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생명의 노래-숲에서’라는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길이만 따져도 족히 8m는 된다. 김 화백의 대표작이자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바보예수’도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이 전 장관의 시가 보인다.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로 시작된다. 또 ‘미친 금붕어’라는 시도 있다.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날치처럼 어항에서 튀어나와 일제히/(중략)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지느러미 세우고/하늘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화백이 화선지에 직필로 휘갈겨 쓰고 여백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시와 묵필이 어우러져 생명의 고귀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벽에 걸린 김 화백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뭔가 얘기하는 표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 전달을 하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눈빛으로 얘기합니다. 꽃에도 눈이 있어 옆에 있는 꽃을 바라보고 찾아오는 벌, 나비와도 눈빛을 마주치지요. 이 그림(카리스 소년)에서는 금붕어와 소년이 서로 바라보며 얘기합니다. 사람의 동행도 둘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윤상훈 미술평론가는 “그의 ‘생명의 노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며 때로는 잔잔하고 화사한 그의 생명 연작들은 수십년을 두고 다양한 울림과 변주를 이어 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가 ‘바보예수’였다면 1990년대에는 ‘생명의 노래’ 시리즈가 이어진다. 유토피아적인 전경 속에서 모든 대상을 화평하게 어울리도록 한다. 그러면서 ‘바보예수’와 ‘생명의 노래’의 두 주제를 같은 뿌리에 두고 작업해 왔다. 그는 “세계는 생명의 기미로 가득 차 있다. 생명의 정령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생명의 노래를 통해 비로소 인간 이외의 다른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화백은 지난 2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저예산 전시를 열었다. 개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된 개인 작가의 전관 전시에서 생명 연작을 펼쳐 보인 것이다. 관람객 3만 3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개막식 때 이 전 장관이 강연을 했는데 김 화백의 그림에 대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바다를 모른다. 오직 가끔씩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만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생명의 날치’라고 표현했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는 김 화백이 직접 작사한 것에 곡을 붙인 ‘사랑가’를 불렀다. 안 명창과는 같은 전북 남원 출신이다. 이 전 장관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제 아내가 이어령 선생의 딸과 대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였지요. 당시 아내가 이대문학상에 당선됐을 때 이 선생이 ‘문학사상사’ 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선생이 제 아내에게 ‘너는 결혼에 신경 쓰지 말고 평생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연의 첫 단추가 된 셈입니다.” 김 화백의 부인은 소설가 정미경씨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2년 오늘의 작가상과 2006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며 그동안 창작집을 7권이나 펴낸 중견 작가다. 김 화백은 부인보다 7년 앞서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과 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수상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김 화백은 13세 때 이 전 장관의 책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를 읽고 감명받은 인연도 있으며 부인이 이 전 장관의 부인인 강인숙 여사와 틈틈이 만나면서 오늘날까지 이 전 장관과 동행의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김 화백은 ‘문학사상’에 삽화를 그렸고 이 전 장관은 김 화백이 전시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강연을 해 줄 정도록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 화백은 1953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정문자 선생님에게서 ‘너는 화가가 돼라’는 말을 들은 후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환쟁이가 나오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 때문에 그림을 그려 상장을 받아도 집에 갖고 가지 못하고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보리밭에 날려 버리는 일이 숱하게 있었다. 그래도 늘 그림을 그렸다. 억눌림과 쫓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에다 그리고 허공에다 그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남원 시내 다방에서 ‘유혹’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분위기로 봐서 마을 어른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그럴수록 혹시 그림을 못 그리게 될까 봐 조바심이 커졌다. 그 무렵 책을 많이 읽은 것도 강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르트르, 카뮈, 레마르크, 모파상, 앙드레 지드 그리고 ‘금병매’와 ‘벽 속의 여자’까지 빌려 온 책을 방 안 여기저기 쌓아 놓고 죄다 읽었다. 그뿐만 아니다. 소설도 몇 편 썼다. 외국의 기성 문인들을 흉내 내 제법 난해한 시들을 쓰기도 했다. 또한 흰 종이만 보면 허기진 듯 그림을 그려 댔고 늦은 밤이면 시내로 나가 총천연색의 극장 벽보를 몰래 떼어다 벽에 붙여 놓고 며칠씩 들여다보곤 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 용산역에 내리게 됐다. 이어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숨은 재능이 제대로 빛을 보게 된다.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시와 소설로 서울대문학상을 휩쓸었다. 그 무렵 ‘대학입시’라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의 기자가 찾아와 서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했고 김 화백은 ‘바람일기’라는 소설을 썼다. 잡지사에서 기획한 ‘캠퍼스 소설’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두 번째 소설은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이 쓴 ‘바람의 초상’이다. 그 여학생이 지금의 부인이다. 김 화백은 ‘화첩기행’이라는 책으로 대중과 가깝다. 1998년 시작해 지금까지 5권을 냈다. 그는 이에 대해 “대체로 한달이면 보름쯤은 그림을 그리고 열흘쯤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화실과 서재를 왕래하다 보면 이 두 가지 일은 둘이 아닌 하나로 섞이고 만나게 된다. 문장은 수채화 같은 빛깔을 띠고 그림은 글 기운 비슷한 무엇을 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예컨대 서로 데면데면하게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뒤섞이고 풀리면서 제3의 그 어떤 모양과 빛깔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화첩기행’은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오늘날 동행의 느낌을 재현한 것도 미술과 문학이 함께 섞이는 일이라고 한다. 밥과 반찬이 뒤섞이는 작업이란다. 앞으로도 이 같은 동행이 계속 이뤄질 것임은 물론이다. “살다가 배터리가 방전돼 간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는 가방을 꾸리곤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때마다 충전이 조금 되지요. ‘화첩기행’을 위해 낯선 공간 속으로 들어가 기록하는 순간의 설렘과 흥분은 저를 새롭게 일어서게 했습니다. 여행은 그런 점에서 진실로 스승을 찾아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올해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요즘 들판의 잡초처럼 뒷심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림에 대한 사랑과 깊이가 더욱 느껴진다”면서 열정의 가속도가 생기는 만큼 계속 그림에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개인전만 8회를 열었는데 올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개인전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계가 주는 무표정하고 비정한 것이 아닌 문인화의 발묵, 발색 같은 여백의 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생명의 노래’에 대해 자신의 시 한 수를 읊는다. ‘산들아/아직도 청정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느냐/물들아/여전히 그 한 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있느냐/풀들아 숲들아/고요히 눕고 힘차게 일어서느냐/어린 생명부치들을/아직도 땅 위에 네 품을 거느리고 있느냐/아아 조선의 땅아, 바람아, 물들아, 애잔하게 스러져 가는 것들아/오늘 서툰 붓 한 자루에 실어/내 너희 안부를 묻노니.’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병종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성균관대에서 동양예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베를린에서 ‘바보예수’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프랑스 파리, 미국 시카고, 벨기에 브뤼셀, 일본 도쿄, 스위스 바젤 등지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문학 청년이던 시절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1년), 미술기자상(1989년), 한국미술작가상(1991년), 선 미술상(1995년),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2004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화첩기행’(전 5권), ‘중국회화연구’ 등이 있다.
  • “34년 전 광주로 시간 되돌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 인간 존엄 깨달았죠”

    “34년 전 광주로 시간 되돌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 인간 존엄 깨달았죠”

    한강(44)의 새 장편 ‘소년이 온다’는 읽어 내기가 힘겹다. 깊은 사유가 맺힌 그의 정교한 문장들을 타고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거듭 숨을 골라야 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갔다가 그 참혹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그랬다. 자료 조사와 취재, 집필을 하는 1년 반 동안 악몽을 꿨고 지하철에선 눈물을 쏟았다. 1980년 그해 여름을 미처 건너오지 못한 한 소년 ‘동호’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느 기사에서 한 프로파일러가 그러더군요. 살인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 때문에 길을 가다 문득 눈물이 쏟아지고 바다에 가면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요. 저도 3개월간 5·18 자료만 보다 보니 딱 그 상태였어요. 책상 앞에 앉는 게 벌을 받는 것 같고 작업실에서 나올 땐 누군가를 두고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 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중략)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평은 증언하는 자나 증언을 듣는 자에게나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이야기는 ‘너’로 지칭되는 ‘동호’의 조각들을 맞추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가 계엄군의 총에 스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도청 상무관에서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을 수습한다. 정대의 누나 정미는 실종되고 동호와 함께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고문 끝에 살아남아도 결국 자살하거나 허수아비처럼 영영 일상과의 끈을 잇지 못한다. 작가가 34년 전 광주로 시간을 되돌린 이유는 뭘까. 5·18이 있기 몇 개월 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한 그는 명절 때 ‘그 일’을 얘기하는 친척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늘 제 소설 속에는 내적 탐색과 투쟁이 있었어요. ‘왜 내가 인간을 이토록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지, 인간을 껴안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라는 질문에 계속 다가서다 보니 5·18과 마주하게 됐어요. 인간의 근원과 닿아 있는 광주를 일단 통과해야겠다 싶었죠.” 7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장마다 화자와 화자가 지칭하는 인물을 달리해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을 입체적이고 통감각적으로 되살린다. 열흘간의 사건 이후 5년, 10년, 20년, 33년 등 시간적 배경을 현재까지 연결해 광주 사태가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킨다. “5·18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선 사건 열흘간의 시간은 많이 형상화됐지만 이후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건 내가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하나도 해결된 것 없이 광주가 계속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용산 참사 때문이었어요. 그때 뭔가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공권력이 비어 있는 자리에서 자원봉사자, 유족 등 약자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광주와) 겹쳤고요.” 여고 3학년 때 5·18을 겪은 ‘은숙’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경찰에게 원고를 검열받다 뺨 일곱대를 맞는다. 피가 맺히는 통증보다 그를 더 먹먹하게 한 것은 먹선으로 지워진, 숯이 된 문장들이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을 찾았느냐고 묻자 작가는 시신에 흰 천을 덮어 주던 사람들의 손길을 얘기했다. “‘5월 광주’는 제가 보고 들었던 것보다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 더 참혹했어요. 도저히 길을 못 찾을 것 같던 때 폭력보다 그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보였어요. 밥을 나누고 시신을 하얀 천으로 덮어 주던 사람들…. 인간은 생명을 맨 앞에 두고 예의를 갖추고 존엄을 지키려는 존재라는 것, 그걸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닻 올린 중랑 세대공감합창단… 3대가 울릴 하모니

    닻 올린 중랑 세대공감합창단… 3대가 울릴 하모니

    “아이들 셋을 키우며 하루하루 바쁘게만 살았습니다. 지난 3월 우연히 합창단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참가하게 됐는데 정말 신 나요. 즐겁게 노래하니 저 스스로가 즐거워지고요, 배운 노래를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르니 가정이 즐겁죠. 무엇보다 노인과 아이들까지 참여한 합창단이라 말 그대로 세대 공감이 이뤄져서 즐겁습니다.” 중랑문화원이 공모한 세대공감합창단원에 뽑힌 조육영(37·여)씨는 19일 무척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합창단은 60세 이상을 필두로 장년층과 아이들까지 참여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반응은 좋았다. 아이들 손을 이끌고 부모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줄을 이었다. 자녀와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는 이들도 눈에 띈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습도 한창이다. 일단 올해까지는 기본적인 곡을 연습하기로 했다. 우선 화합하는 합창을 위해 음색을 찾고 목소리 톤을 맞춘다. 기본적인 발성 교육과 기초 노래 교육도 이어진다. 그다음 본격적인 합창 연습에 들어간다. ‘과수원 길’ ‘여름 냇가’ ‘캐논 변주곡’ 등 노래 부르는 사람은 쉽게 배워 부를 수 있고 듣는 사람은 척 들으면 알 수 있는 곡들로 정했다. 공연도 한다. 아직은 연습 단계인 만큼 좀 더 실력을 쌓고 완성도를 높인 뒤 10월부터 혜원여고 강당에서 열릴 합창단 발표회를 시작으로 지역 내 노인종합복지관 등의 복지시설을 방문해 완성도 높은 노래를 선보일 참이다. 문병권 구청장은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세대공감합창단을 통해 노래를 부르고 들으면서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 시각] 세월호 부모 적어도 18년은 보호해야/최용규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세월호 부모 적어도 18년은 보호해야/최용규 산업부장

    그 심정 어찌 말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라, 할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다 쏟아내라, 시간이 약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주변에서 별의별 얘기를 해도 털끝만큼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테지요. 많은 이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다독여보지만 어디 마음에 와 닿기야 하겠습니까. 팽목항에 있을 땐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고, 밤을 새워도 졸린 줄 몰랐을 겁니다. 어디 제 정신이었겠습니까. 넋 나간 초인과 같다고나 할까요. 흔히들 ‘탈진’‘탈진’합니다만 그 게 진짜 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좋은 것도 아닌데 적으면 적을수록 좋지요. 안 먹으면 죽는 줄 알지만 목구멍으로 절대 넘어가지 않는 게 탈진이라 합니다. 삼키려 하면 끌어내리지 않고 이내 쭉 밀어 올린다지요.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다지요. 노인네들 죽기 전 “이거 안 드시면 큰일 납니다”고 하지만 죽는 줄 알면서도 못 넘기는 것은 탈진이 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세월호 부모들도 지금 그런 상황일 겁니다.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지 모릅니다. 딴생각 나겠습니까. 온통 애 생각뿐이겠지요.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자기가 다 잘못한 것 같고, 그렇지만 정말 보고 싶고….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볼을 타고 눈물이 또 흐를지 모릅니다. 그러니 무슨 소릴 해도 귀에 안 들어오겠지요. 사실 이 일이 터졌을 때 ‘앞으로 애 부모들이 큰일 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자살(이미 자살을 시도한 희생자 부모 보도가 있었습니다만)하는 사람, 폐인되는 사람, 이혼하는 가정이 나올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한 걱정이었으면 했는데 이미 시작된 듯합니다. 이제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죽은 아이들 대부분이 열여덟 살, 고2입니다. 그러니 최소 18년간은 정부에서 세월호 부모를 돌봐 주셔야 합니다. 특별법이든 다른 뭐로든 꼭 그렇게 해 주셔야겠습니다. 트라우마는 죽을 때까지 갖고 갈 형벌이지만 절망에 빠진 세월호 부모는 적어도 18년 동안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약’이라고요. 그것은 죽은 아이를 대신할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일 겁니다. 빨리 애 하나 낳아서 잊는다는 건데 그게 쉬운 건가요. 서너 살 먹은 애가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18년 아니 19년을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을 겁니다. 낳을 수 있다 해도 혹시 애가…. 덜컥 내려앉는 마음에 낳을 자신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 더 해주셔야겠습니다. 그 집, 그 동네에서 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억과 추억 때문이겠지요. 이사하고 싶어도 형편상 그렇게 못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 변화를 원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렇게 해 주세요. 정부가 뒤늦게나마 남은 자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상처투성이 정부를 그나마 믿지 않겠습니까. 덧붙이겠습니다. 국가 개혁한다고요. 제도나 시스템 불비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십니까. ‘가치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선장이 되면 뭐가 좋은지만 가르쳤지 ‘좋은’ 선장이 되라고 가르치진 않았습니다. 이게 핵심 아닐까요. ykchoi@seoul.co.kr
  • “천사인 아이들 그리고 가족이야기… 누가 감동 안 받을까요”

    “천사인 아이들 그리고 가족이야기… 누가 감동 안 받을까요”

    2006년부터 시작해 매년 5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MBC ‘휴먼다큐 사랑’.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가족의 이야기에는 아무리 감성이 메마른 이라도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6일 다시 돌아온 ‘사랑’은 아동복지시설 삼혜원에서 생활하는 뇌병변 장애아의 이야기인 ‘꽃보다 듬직이’(이모현 PD)와 뇌종양을 앓고 있지만 누구보다 밝고 야무진 연지의 이야기인 ‘날아라 연지’(유해진 PD)가 잔잔한 감동으로 화제가 됐다. 이어 희귀 백혈병을 앓고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 수현이를 담은 ‘수현아, 컵짜이나’(19일, 이 PD)와 머리가 이어진 샴쌍둥이 호건 자매의 이야기인 ‘말괄량이 샴쌍둥이’(6월 2일, 유 PD)가 전파를 탄다.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MBC방송센터에서 막바지 편집작업에 바쁜 두 PD를 만났다. 듬직이와 연지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현 PD(왼쪽)듬직이는 신문에 작게 실린 기사를 우연히 보고 알게 됐어요.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는 얼굴이 정말 예뻤죠. 유해진 PD(오른쪽) 듬직이 이야기를 하실 때 눈에 애정이 그렁그렁 달려 있었잖아요. 연지는 다른 방송에 나온 걸 봤는데, “연지는 병원 가면 뭐해요?”라고 물어보니까 떨림 섞인 목소리로 “검사하고 치료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카메라가 낯선 일반인, 그것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촬영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이 듬직이는 삼혜원 선생님들이 전폭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수현이의 경우 처음에 부모님께서 완강히 거절하셨어요. 그래서 직접 찾아뵙고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드리고 그동안 방영된 ‘사랑’의 DVD도 드렸어요. 그렇게 승낙을 받았어요. 유 9년째 방송되다 보니 적잖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아세요. 아름다운 가족애를 그린다는 점 때문에 촬영을 설득하는 게 수월한 편이죠. 이 듬직이 촬영분을 편집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방송 앞부분에는 얼굴이 홀쭉했는데 막판에 가니 뽀얗게 살이 올라 예뻐졌더라고요. 촬영을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니 힘이 나고 예뻐지는 거였죠. 유 ‘날아라 연지’ 편이 방송되고 나서 연지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어머니를 알아보고 힘내라고 응원했대요. 유 우리는 가장 평범한 이웃들, 우리 사회의 기층을 형성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찾아요.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사회에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응당 관심받을 자격이 있어요. 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정한가요. 삼혜원의 아이들도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버림받았죠. 그런 아이들끼리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돌봐줘요. 그걸 보면 누가 감동을 안 받을까요? 제작진이 출연자들을 카메라에 담는 기간은 6개월. 지난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유 PD는 다섯 번째, 이 PD는 두 번째 ‘사랑’에 참여해 오고 있다. 이 출연진과 제작진은 부부 같은 관계예요. 처음엔 허니문을 보내다 점점 서로 힘들어지죠. 결국 미운정 고운정 들어 잘 마무리하고… 매번 ‘다시는 하나 봐라’ 하는데, 방송이 되고 나면 힘든 걸 싹 잊고 또 하게 돼요. 유 촬영할 때는 행복하지만 그 후에 힘든 시간도 많았죠. ‘풀빵엄마’도, 해나도요. 하지만 연지와 호건 자매는 앞으로도 잘 지낼 거라는 확신 때문에 촬영 내내 마음이 즐거웠어요. 이 아이들이 자꾸 놀아달라고 하는데 놀아주지도 못했어요. 삼혜원 아이들은 촬영팀 사람들을 보면 무릎 위에 앉고, 품에 안겼어요. 엄마, 아빠 하면서요. 결국 촬영을 다 마친 뒤 다시 1박 2일로 내려가서 실컷 놀아줬어요. 유 예쁜 사랑을 하는 사람들과 6개월 동안 함께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하지만, 그 매력을 거절할 수가 없어요(웃음).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커버스토리-세계는 지금 셀피 중독] 나는, 이래서 셀피를 찍는다

    [커버스토리-세계는 지금 셀피 중독] 나는, 이래서 셀피를 찍는다

    셀피를 찍는 사람들은 무엇을 즐기는 걸까. ‘동물 셀피’와 ‘매일 셀피’로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영국인 데이비드 퍼스던, 미국인 칼 바덴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며 ‘패션 셀피’로 유명해진 호주인 코트니 러브그루브의 얘기도 들었다. ‘얼짱 셀피’로 페이스북 팔로어만 1000명이 넘는 이금경씨는 한국인 대표다. 코로 스마트폰 누른 숫양 “세계 최초 ‘동물 셀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세계 최초 ‘동물 셀피’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영국 데번주의 다트무어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데이비드 퍼스던(61)은 자신이 키우는 양이 찍은 셀피 덕분에 온라인에서 유명해졌다. 그는 지난달 모유를 잘 먹지 못하는 양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 헛간 바닥에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태어난 지 고작 3주 된 숫양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빤히 쳐다볼 때만 해도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숫양은 코로 스마트폰을 눌렀고, 놀랍게도 사진이 찍혔다. 그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트위터를 즐기는 그는 ‘숫양이 제 스마트폰을 빌려가서 셀피를 찍었네요. 정말 영리하지 않나요’라고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데일리메일 등 언론에 그의 사연이 실렸다. 사실 그는 셀피를 즐겨 찍진 않는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이 셀피를 찍고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재밌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퍼스던은 “젊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놀이인 것 같다. 그렇지만 동물 셀피는 내 양에서 그쳤으면 좋겠다. 내가 키우는 양이지만 자랑스럽다”고 익살스럽게 답했다. 27년간 매일 셀피 사진작가 “앤디 워홀 초상화처럼 내 사진 남기고 싶었다” “셀피를 찍는 일이 끝나는 날이 아마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일 겁니다.” 유튜브나 온라인에서 칼 바덴(61)의 얼굴을 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는 미국 보스턴컬리지에서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가로 수많은 사진을 찍고 전시했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일명 ‘에브리데이’(Every Day) 프로젝트다. 앤디워홀이 죽은 다음 날인 1987년 2월 23일부터 27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셀피를 찍었다. 그는 “앤디 워홀이 팝아트 초상화를 남긴 것처럼, 사진가로서 내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바덴은 매일 하얀 배경에 똑같은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용했고, 일부러 표정도 똑같이 맞췄다. 코닥 테크니컬 고해상도 필름을 쓰다가 2007년 단종되면서 일포드 필름으로 교체한 것이 유일하게 바뀐 점라고 설명했다. 여행 갈 때는 장비를 갖고 다니면서 찍는 열정을 보였다. 그는 1995년부터 매년 혹은 2년마다 셀피를 전시했고, 최근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게재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온라인에서 그는 ‘셀피의 왕’으로 불린다. 그는 “처음 셀피를 찍을 땐 ‘셀피’라는 말이 있지도 않았다”면서 “셀피는 최근 유행하는 현상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결국은 내 얼굴을 남기고, 사진을 찍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韓서 패션모델 활동 호주인 “매일 선택한 옷 SNS 올려 팔로어들과 패션 공유” “내가 포스팅을 멈추면 팔로어들이 속상해하거나 짜증을 낼 거예요.” 한국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호주인 코트니 러브그루브(22)는 자신이 그날 선택한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SNS와 자신의 패션 블로그에 거의 매일 올린다. 전신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삼각대를 자주 이용한다. 그는 페이스북에는 656명, 인스타그램에는 522명, 중국 SNS인 웨이보에는 5120명, 아이스타일에는 1371명의 팔로어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러브그루브의 팔로어들은 그가 사진을 올리면 댓글 등을 통해 패션과 코디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그는 “팔로어들과의 대화가 셀피를 계속 찍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고 말했다. 러브그루브는 셀피를 찍으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셀피를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은 나를 응원해주고 이야기를 나눠주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망”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떤 카메라 각도가 자신의 얼굴과 몸에 가장 어울리는지 알게 됐고 사진 편집과 보정 기술도 얻게 됐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주는 데서 오는 자신감도 있다”면서 “SNS에 올린 셀피로 외모와 이름이 알려져 패션 업체의 일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팔로어 1188명 직장인 얼짱 ”하루에 1000장씩 찍기도…적극적 포즈·표정이 비결” “사진이 실제보다 한 1000배 정도는 예쁘게 나와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닐까요?” 직장인 이금경(25)씨는 페이스북에서 알려진 ‘얼짱’이다. 팔로어만 1188명이다. 이씨가 셀피를 올렸다 하면 ‘좋아요’ 100개 정도는 순식간에 달린다. 하지만 그가 셀피를 찍는 이유는 다소 소박하다. 그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저를 많이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SNS가 사진첩같이 사진을 저장해 두는 기능도 하니까요. 주변 지인들에게 ‘나 잘살고 있다’고 알려 주려는 이유도 있고요”라며 웃었다. 사진을 사랑하는 이씨는 사진 찍고 싶은 날엔 카메라 2대와 렌즈 3개를 갖고 밖에 나가 1000장씩 찍기도 한다. 셀피는 제일 잘 나온 것을 골라서 페이스북에 올린다. 엄선한 사진에 팔로어들의 반응이 뜨겁다 보니 곳곳에서 홍보 요청과 협찬 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SNS는 그냥 소통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협찬은 거의 거절해요. 하지만 여자이다 보니 의상협찬 등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라는 이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장 동료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홍보해 주기도 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며 “적극적인 포즈와 표정, 다양한 장소가 예쁜 셀카를 찍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빛·붓·땀… 예술이 태어나는 곳

    빛·붓·땀… 예술이 태어나는 곳

    아틀리에, 풍경/함혜리 지음/서해문집/352쪽/1만 8000원 ‘빛의 화가’ 방혜자가 프랑스 아죽스에 만든 아틀리에(왼쪽)는 “자연의 빛과 색을 최대한 선명하게 볼 수 있게 설계”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날마나 만나는 햇빛, 달빛, 별빛을 자양분 삼아” 거침없이 작품을 완성한다. 명징한 색채로 동화적 분위기를 만드는 노은님의 독일 미헬슈타트 작업실은 숲 속에 있다. 그 안에 놓인 노은님에게서 삶의 고민, 자신과 색채와의 싸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와 평화, 자유를 본다. 폐침목과 폐아스콘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 정현의 작업실(오른쪽)에는 ‘험악한’ 공구가 즐비하고, 작은 초상을 무한반복해 다른 초상을 만드는 김동유의 공간에는 세밀한 붓과 주사기가 수천개다. 화가의 아틀리에인가 싶다. ‘자연이 아틀리에’인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업실에선 여러 켤레의 운동화가 유독 눈길을 끈다. ‘아틀리에, 풍경’에는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가 14명의 내밀한 작업실이 담겨 있다. 저자(함혜리 서울신문 선임기자)는 “작가들이 무엇을 위해 땀과 열정을 쏟아붓는지, 무엇이 예술의 길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 먼 작업실들의 문을 두드렸다.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며 2년여 공들여 낸 책이다. 지난해 2월 별세한 뒤 다시는 볼 수 없어진 이두식 화백의 공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 있는 박은선의 작업실도 담았다. 갈피갈피에 작품세계와 함께 작가들과의 각별한 인연을 풀어낸 책은 저자의 말 그대로 “한 명 한 명이 소우주인 예술가들에게서 받은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세 번째 밟는 칸… 직감이 채운 칸

    세 번째 밟는 칸… 직감이 채운 칸

    데뷔 후 줄곧 흥미로운 작품 행보를 보여 왔던 배우 배두나(35).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와의 작업에 이어 할리우드로 진출해 워쇼스키 남매와도 만났다. 그가 이번에는 정주리 감독의 첫 장편영화, 그것도 저예산 영화에 노개런티 출연을 결정했다. 의외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배두나답다’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그가 참여한 ‘도희야’(22일 개봉)는 지난 14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7회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괴물’과 ‘공기인형’을 잇는 세 번째 칸 입성으로,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냈다. 프랑스 칸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얼떨떨하다”면서 웃었다. “‘괴물’이나 ‘공기인형’은 대단한 감독에게 내가 선택받아 운 좋게 칸에 진출했죠. 이 작품은 제 취향대로 선택한 거라 느낌이 남다르네요.” ‘도희야’는 숨 막히는 사회의 두 여성이 서로를 감싸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생활 문제로 시골 바닷가 마을로 좌천된 파출소장 영남(배두나)은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 도희(김새론)를 보호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다. 이들이 사는 곳은 가부장적 질서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으로 외로워하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영남은 도희를 만나면서 파국으로 빠져들지만, 그 둘만이 이해하는 치유와 희망도 경험한다. 배두나의 절제된 감정 표현이 탁월하다. 밤마다 혼자 술로 마음을 달래는 영남의 커다란 눈망울에서는 눈물마저 말라 버린 듯하다. 경찰 제복을 입고 경례를 할 때도, 단호한 말투로 용하에게 경고를 할 때도 툭 건드리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나약함이 언뜻 비친다. 그를 둘러싼 감정이 슬픔인지 체념인지, 도무지 속을 알 길이 없다. “영남은 100%의 감정을 느끼면 그것을 50%도 안 되게 표현해야 했어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고, 빗장을 풀면 무너져 버릴까봐 철저히 막아 놓은 인물이었죠. 하지만 영남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느 정도 힌트는 줬어요. 관객들이 ‘영남이 어떤 감정을 품고는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구나’까지 알아채도록 해야 했으니까요.” 배두나는 시나리오를 받고 5분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 “내 배우 인생에서 최단 기간에 내린 결정”이라며 웃었다. “도희라는 캐릭터에서 확신을 느꼈어요.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듯한 힘이 있었죠.” 그러면서 ‘도희야’에 대해 ‘위로와 구원의 영화’라고 정의했다. “도희는 강한 힘이 있는 인물이고, 영남은 도희로 인해 성장하죠. 외로운 이들이 만나 서로 위로하고 구원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90년대 하이틴 패션잡지 모델로 데뷔한 그는 스크린으로 진출한 뒤 ‘플란다스의 개’와 ‘복수는 나의 것’, ‘린다 린다 린다’, ‘클라우드 아틀라스’까지 한국과 일본, 미국을 넘나들며 영화계의 시선을 모았다. 봉준호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워쇼스키 남매가 자신의 뮤즈로 삼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물었다. “어떨 땐 까다롭고 어떨 땐 충동적”이라면서도 머뭇거림 없이 자신만의 지론을 펼쳤다. “주류와 비주류를 넘어 좋은 감독에게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감독의 소품이고요. 작품을 고를 때는 그 감독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장 많이 봐요. 누가 좋은 감독인지 어떻게 아느냐면, 그건 제 직감입니다.(웃음)”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후보자 인터뷰] “아이들 육체와 정신의 안전·건강 지킬 것”

    [후보자 인터뷰] “아이들 육체와 정신의 안전·건강 지킬 것”

    산 넘어 산이었다. 정치경험이 짧은 여성이, 그 어렵다는 구청장직 연임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더구나 상대는 권영규 전 서울시 부시장과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이었다. 행정이나 정치적인 면에서 강적들이었다. 해서 주변에선 의문부호를 붙였다. 그런데 해냈다. 권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냈고, 김 후보를 여론조사 결과 20%라는 압도적 차이로 꺾었다. 워낙 치열한 경선을 치른 탓에 벌써 다 이긴 기분이겠다는 인사에 박춘희 후보는 “당에서도 당선증을 제일 늦게 준 후보니까 꼭 이겨야 한다고 격려해줬다”며 “당연히 기분은 좋지만 마음 놓고 웃는 것은 6월 4일 지나서 하자”고 말했다. 박 후보는 지금이 송파 도약의 시기라는 점에서 연임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1기 업무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잠실을 관광특구로 지정한 거예요. 시즌 2가 온다면 서울에서 가장 큰 관광특구인 이 지역 발전 에너지를 송파 전체로 꼭 확산시키고 싶어요.” ‘책 읽는 송파’ 사업도 보람찬 추억이다. ‘지역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사업’이라는 주민들의 칭찬에 힘을 무척 얻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 조사를 해봐도 주민 만족도가 아주 높게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은 책 박물관, 책 페스티벌 같은 걸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면서도 제대로 된 내용을 갖춘 형태가 무엇일지 목하 고민 중입니다.” 올해 장지동에 문을 연 산모건강증진센터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박 후보가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 마무리 지은 사업이다. “이용하신 분의 만족도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다른 자치단체나 기관에서 다들 관심을 보이세요.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점을 인정받은 거라 아주 뿌듯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없을까. “아무래도 청소년 부문입니다. 일자리 창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전 사회적인 문제 제기는 많았고 그에 따른 대책도 부족하나마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청소년 부문은 부진해요.” 특히 자극을 받은 것은 구민들과 진행한 300인 대토론회 때였다고 되돌아봤다. 날것 그대로 주민 목소리를 듣자며 기획한 토론회였는데 처음에만 해도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이 많이 나올 줄 알았단다. 그런데 최종 의제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 문제였다. “키워드를 잡자면 결국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입니다. 육체적 안전과 건강, 정신적 안전과 건강. 이에 대한 해결책도 꼭 내놓겠습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귀족에게 애국심은 없다/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귀족에게 애국심은 없다/김정현 소설가

    대통령님, 여전히 관료와 군인을 믿으시나요? 예, 그 신뢰의 바탕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관료는 믿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으로 점철된 그 시절,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능력을 펼칠 무대는 한정됐습니다. 해외 진출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기업도 고만고만했으니, 개천의 용들이 승천을 꿈 꿀 무대로는 관료세계가 제격이었습니다. 또 그때는 해방과 전쟁을 겪은 뒤라서 저마다 애국심을 가슴에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리라는 생각은 사실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승천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뜻을 읽고 최선을 다해야 했지요. 군인은 어떻습니까. 역시 해방과 전쟁에 따른 애국심이 깊었습니다. 더하여 유학의 특혜를 누린 군인들은 행정 등 국가운영에 관한 여러 선진제도를 가장 먼저 배워 왔습니다. 지금은 구태가 돼 버린 ‘브리핑 차트’조차 군에서 제일 먼저 실행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니 선진제도를 정부와 사회에 전파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여러 곳에 중용돼야 했지요. 중용→충성→신뢰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형성된 겁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어떤가요? 관료도, 군인도, 이제는 선진은커녕 세상 흐름을 뒤좇기에도 벅찹니다. 더구나 창조라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겁니다. 공연히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온 조직의 한계 때문입니다. 60년 넘는 역사 속에 그들의 조직은 엄격한 위계체제로 고착됐습니다. 그 위계와 연공서열 속에서, 법의 이름으로 보호되는 인사체계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윗사람입니다. 속된 말로 튀면 눈엣가시가 되는 것이지요. 더구나 이제 대통령은 5년 뒤면 물러나는 세상입니다. 개중에는 감옥에 가기도 하고 비난받는 것도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5년 뒤를 생각하면 감히 조직을 거스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구조인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그래도 연잇는 여러 사고가 증명을 더해 이른바 ‘관피아’를 비롯한 그들 구조의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관피아’는 바꾸어 말하면 ‘귀족’입니다. 젊은 한 시절 몇몇 시험과목에만 집중해 과거의 문을 통과하면, 그로써 귀족의 세상으로 편입돼 그들만의 리그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간혹 바른 정신의 사람이 있어 편입을 거부하면 ‘왕따’의 밑바닥을 걸어 타의 본보기가 되고요. 우리 역사에서 귀족의 행태가 어떠했는지는 모두가 잘 아는 바입니다. 신라와 고려의 귀족, 사대부라는 이름의 조선 귀족. 긍정의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나라를 버릴지언정 자신들의 기득권은 끝내 놓지 않았습니다. 그 악습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창조도, 개혁도 공염불에 그칠 것입니다. 현대 귀족의 불씨는 ‘고시’(考試)제도입니다. 그것은 과거(科擧)의 연장선이기도 하지만 일제에 의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일생에서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을 누리기에는 이미 다른 세상입니다. 쉼 없이 새로운 세상을 공부해도 기껏 한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어려운 세상이 아닙니까. 또한 관료를 꿈꾸지 않아서 그렇지 더 뛰어난 인재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 열린 생각, 선진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체험한 인재가 정부의 중추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의 기본은 7급 정도의 직에서 출발해도 충분합니다. 승진제도만 제대로 실행된다면 줄타기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그야말로 ‘창조’의 결실을 낼 것입니다. 실제 우리 정부부처 중에는 7급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이 있고, 최소한 그들의 애국심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바 아닙니까. ‘고시’라는 제도로 형성되는 기수의 연줄에, 학연과 지연까지 더해지며 편이 갈라지는 폐해는 뿌리를 끊지 않고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연줄의 선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의 검증으로 장관과 대통령이 발탁하는 구조여야 애국심의 충성이 가능합니다. 고위직의 경력은 귀족의 자격이 아니라 보람 있는 애국의 추억으로 영원한 훈장이 돼야 합니다. 여북했으면 관료보다 순수 정치인이 낫다는 생각까지 들까요. 스스로도 괴이쩍었습니다.
  • 능청스러운 유머 익살과 과장 속 통렬한 풍자

    능청스러운 유머 익살과 과장 속 통렬한 풍자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그러더군요. 한 명의 작가는 기존 작품에 대한 절반의 존경과 절반의 회의가 있을 때 탄생한다고요. 기존 작품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아쉬움과 문제의식을 함께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회의주의자로 남느니 내가 한번 써보자고 한 거죠.” 첫 번째 소설집 ‘시티버스투어를 탈취하라’(창비)를 펴낸 최민석(37) 작가는 엄숙함과 진지함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문학계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문단의 ‘구라파’(성석제, 박민규, 천명관, 이기호) 작가들에 비견될 만큼 능청과 유머로 직조해내는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호쾌하게 질주한다. 안산의 가발공장으로 돈 벌러 온 키르기스스탄 전사의 후예가 사장의 악행에 반발, 동료 외국인 노동자들과 서울시티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돌진하는가 하면(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보초를 서던 북한군 장교 리혁수가 과음으로 졸다 남쪽으로 넘어져 엉겁결에 귀순하고 남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세하는(국가란 무엇인가) 식이다. 그가 등단한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 쓴 7편의 단편들은 유치하다, 허무맹랑하다고만 치부될 수 없다. 익살과 과장 속에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는 통렬한 사회 풍자와 결기 때문이다. 인물과 소재들은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외계인, 치매 노인 등 무거운 것들이다. 그는 이 무거운 글감들을 유쾌하게 주물거리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21세기형 해학과 풍자’를 만들어낸다. ‘B급’, ‘사이드’임을 자처하지만 작가 스스로는 순문학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부단히 검열(?)한다고. 그는 “신동엽이 섹드립(야한 농담)을 날릴 때 사람들이 불쾌해하지 않는 선과 인격적 모독이 아닌 경계를 잘 지키듯 소설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겉에 설탕을 발라놔도 안에 앙꼬는 있어야죠(웃음). 스스로 세운 원칙은 있어요. 문장의 품위는 잃지 말자. 최소한의 서사성은 확보하자. 하나의 주제는 품고 있자는 거죠.” 2010년 1월까지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다 같은 해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데뷔한 그는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관심사는 예술계 전방위로 뻗쳐 있다. 2009년 결성한 밴드 ‘시와 바람’의 보컬리스트이자 인터넷 문학 라디오 ‘문학의 소리’ DJ로도 활동 중이다. 만화와 영화로 서사를 익혀 왔고 지금도 일주일에 2~3편씩 영화를 섭렵한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이미지가 명징하다. 표제작 ‘시티투어버스’는 영화 판권으로 팔려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야구선수로 치면 단편은 투수가 한 이닝에 올라 중간계투를 던지는 것이라면, 장편은 선발로 올라가 내가 이 게임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그는 오는 8월에는 세 번째 장편 ‘풍의 역사’(민음사)를 발표한다. 1930년대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현한 1990년대 후반. 허풍이 심해 허풍으로 불리는 이풍과 허구로 불리는 아들 이구, 허언으로 불리는 손자 이언 등 3대가 한국전쟁, 베트남전, 10·26 사태 등 한국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개입하는 이야기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한 방이 살아 있는 너스레 한판이 또 펼쳐질지 주목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가무극으로 만나는 고구려 초기 신화 ‘바람의 나라’

    가무극으로 만나는 고구려 초기 신화 ‘바람의 나라’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주몽을 중심으로 한 건국, 호동을 위해 자명고를 찢은 낙랑의 비극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알려진 고구려 초기 이야기다. 1992년 첫선을 보인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로 호동의 아버지이자 고구려 3대 국왕인 대무신왕(무휼)의 치열한 삶과 방대한 권력 투쟁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1년 서울예술단이 뮤지컬로 만들어낸 뒤 게임, 소설, 드라마 등으로 변주되면서 대무신왕과 호동은 대중 속에 스며들었다. 서울예술단은 2006년 새로운 버전의 가무극을 내놓았다. 힘으로 ‘부도’(국가가 향할 이상향)를 찾아가는 무휼을 중심으로 펼친 이미지극 ‘바람의 나라 무휼’(이하 ‘무휼’)이다. 작품은 대사와 무대장치를 최소화했다.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 전쟁과 평화 등의 개념은 조명으로 구분하고 청룡, 주작, 봉황 등의 신수를 영상으로 풀어냈다. 역사를 모른 채 처음 맞닥뜨리면 참 불친절한 작품이다. 한데 배경지식을 가지고 보면 이 작품은 매우 매력적이다. 대사와 움직임, 조명, 영상 하나하나가 압축된 상징이자 하나의 시(詩)로 와 닿는다. 여백 가득한 무대를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워야 하니 배우들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다. 2006년부터 네 번째 무휼이 된 고영빈(41)과 처음 호동을 맡은 지오(27·엠블랙)는 이 무대를 어떻게 느낄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고영빈, 지오를 만나 한 무대에서 다르게 발산하는 에너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8년의 내공… 여백의 美 무휼 역 고영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여드리겠다 생각 그저 나를 믿고 버틸 뿐” 이지나 연출은 고영빈(41)을 두고 ‘이미지 캐스팅’이라고 했다. 만화방을 할 만큼 만화를 좋아했던 이 연출은 “‘바람의 나라’와 무휼을 사랑했고 원작에 대한 존경심이 커 동떨어진 캐스팅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줄곧 무휼을 해 온 고영빈에게 더한 극찬은 없을 것이다. 지난 8년 사이 그의 목소리는 더 중후해졌고 동작은 더 날렵해졌다.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더 커졌다. 그가 홀로 걸어 나올 때조차 에너지가 무대에 그들먹했다. 정작 그는 “많은 것을 비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소탈하게 풀어냈다. “8년 동안 작품을 하면서 연기하려고 힘 쓰거나 멋있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게 됐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버티는 법’을 배웠죠.” 그는 처음 무휼이 됐을 때 “아무것도 없는 무대를 혼자서 대사도, 노래도 없이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돌이켰다. 무휼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그 자신의 입이 아닌 다른 이들의 입으로 인물의 조각을 맞춘다. 대사를 쏟아내고 노래하면서 인물을 표현해 온 뮤지컬 배우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대 위에 서 있는 건 정말 어색한 경험”이었고 “이 무대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안겼다. 그에게 필요한 건 “나를 믿고 버티는 것”이었다. “관객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없앤다는 걸 느꼈어요. 나 자체로 충분히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 왔습니다.” ‘여백의 미’가 강조된 작품을 그는 미술관에 빗대 설명했다. “그림을 많이 아는 사람과 처음 본 사람이 각기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작품은 많이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매력이죠.” 작품의 매력이 여백이라면 그의 매력은 변신이다. 무휼로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한 그는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트랜스젠더 역할을 하고 새로운 창작 뮤지컬의 주연으로 나서면서 색다른 변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 겨우 세 번째… 꿈의 전환점 호동 역 ‘엠블랙’ 지오 “두려움·열정 동시에 느껴 부족한 내 실력 알게 돼 가사가 연기라는 걸 배워” 무휼(대무신왕)의 아들인 호동 역할을 두고 이지나 연출은 “남자 배우들은 꺼리는 배역”이라고 했다. 3세, 5세, 15세 소년을 연기해야 하니 멋있고 세련된 배우들에게 어디 쉬운 일일까. 깊은 고뇌를 품고 다소 어려운 대사도 내뱉는 아이라 아역을 쓰는 것도 어렵다. 그 역할을 이제 겨우 뮤지컬 2편을 해치운 지오(27·엠블랙)가 해냈다. 그것도 ‘꽤 잘’. 뮤지컬 무대에 오른 아이돌 가수에 대해 큰 기대를 안 한다면 더욱, ‘무휼’의 지오를 보면 눈이 번쩍 떠질 것이다. 그는 안정적인 소리와 깊이 있는 연기로 작품의 후반을 끌어간다. “호동은 어리고 순수하면서 생각이 묵직한 아이입니다. ‘부도’ 같은 단어의 개념은 어렵죠. 상대와 주고받는 대사가 별로 없어서 대사를 외우는 것도 쉽지 않고요. 혼자 연습하면 내용이 막 산으로 가더라고요.” 미소 띤 얼굴로 고충부터 털어놓더니 곧 “이 작업과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며 진지한 표정을 얹어 말했다. 그는 ‘광화문 연가’ 일본 공연(2012년)에서 처음 뮤지컬을 맛봤고 최근 막을 내린 ‘서편제’에서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는 동호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첫 작품이 “뭣 모르고 무대에 올랐던 순간”이라면 두 번째는 “무대의 두려움과 열정을 동시에 느낀 시간”이었다. 동호를 거쳐 호동이 되면서는 “내 소리가 형편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가수로서 자신의 소리를 ‘변형’과 ‘모방’으로 표현했다. 노래 부르는 ‘4분’ 동안 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고만 했다. 그런데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그는 다른 세계를 깨달아 가고 있다. “예전에는 가사를 읊어댔는데 이제는 가사의 뜻을 새기고, 그 자체가 연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나의 역할로 긴 극 속에 녹아드는 일은 정말 즐겁고 무척 소중한 시간입니다.” “가수로서 고민이 많을 때 만난 뮤지컬로 또 다른 열정과 미래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이 ‘배우’는 자신만의 ‘부도’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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