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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갑의 시사 궁금증 풀이 1] 국립대 총장 간선제

    [박현갑의 시사 궁금증 풀이 1] 국립대 총장 간선제

    지난 17일 국립대 교수인 부산대 고현철(54) 교수가 투신자살했습니다. 사생활 등 개인적 문제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대학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살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국립대 교수가 공적인 문제로 자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공적 문제라고 한 것은 대학총장 선출방식에 대한 고 교수의 문제제기 이후 대학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기때문입니다. 대학정책을 관장하는 교육부도 비상이 걸렸고요. 이번 투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대학총장 선출방식을 둘러싼 문제점, 정부 입장, 개선방안 등을 정리해봅니다. 앞으로도 종이신문에 지면사정상 간략하게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시사 이슈 중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시사 궁금증 풀이’라는 타이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많은 애독 부탁드립니다.꾸벅.   ● 국립대학 총장, 어떻게 정하나? 국립대 총장은 처음에는 임명제 방식으로 뽑았습니다. 정부가 예산을 대는 만큼 교육부 장관이 임용제청하고 대통령이 재가하는 방식이었죠. 이 방식은 1988년 전남대를 시작으로 직선제로 바뀝니다. 90년대 초반 사회민주화 열기가 임명제를 직선제로 바꾸는데 한 몫했습니다.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대학총장은 직선이든 간선이든 대학 자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 법 제24조제4항에 따르면 대학총장 후보는 “대학의장임용추천위원회”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선정할 수 있습니다. 합의된 방식과 절차가 다름아닌 직선제입니다. 그러다 직선제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면서 2010년 이후 간선제로 바뀌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의 중심에 선 부산대도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총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김기섭 총장은 총장으로 뽑힐 당시 후임 총장을 직선제로 뽑겠다고 한 약속했는데 이를 어기고 간선제로 돌아서면서 직선제를 추진하려던 교수회와의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고 교수가 자살까지 하게되었습니다. ●직선제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정부가 2012년 1월 대학총장 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해서 밝힌 국립대학 선진화 2단계 방안에 따르면 총장직선제는 도입 초기에는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 신장에 기여하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운영되는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 분위기를 훼손하고 선거과정에서 나온 각종 공약에 의한 등록금 인상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것이 교육부 설명입니다. 국내 유명 대학 학장 선거에 나왔다가 한 표 차이로 낙마했다는 한 교수는 “표 분석을 해 보니 누가 나를 찍지않았는지 알겠더라”면서 “선거 직후 나를 찍지않은 것으로 파악한 그 교수를 연구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 직선제 폐해의 단면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육부는 간선제 도입을 추진했는데 대학의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하면서 이 전략은 대학 사회에 먹혀 들었습니다. 모든 국립대학이 간선제로 돌아셨죠. 예를 들어 교육부는 지방대 특성화사업(CK사업)과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ACE사업)에 직선제 폐지여부를 평가항목에 넣었는데 배점이 각각 2.5점과 3점입니다. 0.5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사업에서 상당한 비중인 셈이죠. 대학등록금 말고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국립대로서는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해 간선제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요인이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학들이 정부의 재정지원 연계사업때문에 간선제로 한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없다. 부산대나 경북대는 한 해 예산이 1조원이 다 되어 간다. 7000억원이다. 기성회 예산자체가 1000억원”이라고 반박합니다. ●간선제로 뽑힌 대학총장 후보들은 다 임명되었나? 아닙니다. 현재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는 모두 대학총장이 공석인 상태입니다. 간선제로 총장 후보자를 정해 임용제청을 요청했으나 아직 임용제청이 이뤄지지않고 있습니다. 경북대는 지난해 11월에, 방통대와 공주는 각각 같은해 8월과 5월에 임용제청을 교육부에 요청했습니다. 교육부는 이 3개 대학에 대해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용제청 거부사유를 밝히지 않으면서 총장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후보들은 소송으로 교육부 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교육부는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왜 임용제청 거부사유를 밝히지 않나? 교육부가 임용체정 거부사유를 밝힌 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09년 6월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제주대 총장 임용후보자 재추천 요청이라는 공문에서 “1순위 후보자가 국가공무원법 64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5조 및 26조의 규정에 의한 공무원의 겸직허가 및 영리행위 금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발견되어 총장임용후보자를 재추천하도록 의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법 제64조는 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에 대한 조항으로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관련, “선거법 위반 등 명명백백한 사유는 임용제청 거부사유를 공개한 적이 있으나 나머지 개인신상에 대한 사유는 밝혀 온 전례가 없다.”고 말합니다. 후보자 개인신상에 대한 문제를 공개할 경우,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만 거부사유를 통보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듣는 등 총장 공백 사태를 줄일 수 있는 인사검증 방안이 있는 만큼 정부측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임용제청을 계속 거부하는 이유는? 정부로서는 임용제청된 후보들이 정부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직선제로 뽑든, 간선제로 정하든 총장후보자가 대학 구조개혁이나 교직원 연봉제 도입, 쉬운 대학입시 정책 등 정부가 추진하려는 대학정책의 방향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다른 국립대는 물론 사립대 등 대학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우려할 수 있죠. 부산대나 경북대 등은 학생수와 교직원을 합해 3만명이 넘는 대규모 대학입니다. 이런 대학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는 총장을 앉히기는 정부로서는 부담스럽죠. 현재 우리 대학 사회는 산업논리가 중시되는 취업중심, 경쟁중심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문사철 위기론’이 불거진 것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 논리가 대학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죠. 이런 상황에서 문사철 계열의 교수 지지 등을 업은 사람이 직선제 총장 후보로 나올 경우, 정부 정책과는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죠. 정부로서는 이런 상황을 넋놓고 바라볼 수는 없죠. 이런 점에서 한국체육대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체육대도 경북대 등과 마찬가지로 간선제를 통해 총장후보자를 복수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3월 첫 제청부터 4차례에 걸쳐 뚜렷한 이유없이 임용제청을 거부당했죠. 그러다 학교에서 지난 2월 친박계 정치인 출신을 총장후보로 새롭게 임용제청을 요청하자 바로 총장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죠. ●부산대 사태가 대학총장 직선제 부활로 이어질까? 지켜볼 일입니다. 부산대 교수사회는 직선제 부활을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부산대는 당초 내년 1월 새 총장을 뽑을 예정이었으나 김기섭 총장이 이번에 사퇴하면서 당장 간선제 일정에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고 교수의 투신자살로 간선제 추진은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교육부는 간선제 고수입장이고요. 양측간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죠.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부산대 보직교수들은 직선제에 긍정적이지 않다.”며 직선제 부활이 부산대 교수사회 전체 목소리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대학총장 선출방식 보완할 필요성은 없나? 보완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북대 등 3개 국립대의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용제청 거부 사태가 계속되면서 대학 사회가 흔들리고 있는 점은 누구나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대학총장 간선제 유지가 직선제 부활보다 장점이 많다면 간선제를 유지하되,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한 정책은 폐지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봅니다. 직선제, 간선제 등 다양한 총장선출방식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직선제 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은 수사 등 사법처리로 해결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야 정부가 말하는 재정지원 연계사업과 관계없다는 것이 설득력이 생깁니다. 또 간선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최대 50명까지 구성할 수 있는 총장후보자 선정위원회 구성시 외부인사 몫을 더 확대하는 등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교육부가 임용제청을 받으면 반드시 일정한 시일내에 가부를 알려주도록 강제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에대해 별도 언급이 없다보니 논란이 있습니다. 박현갑 기자 eagleduo@seoul.co.kr
  • “ICT감성·디자인 만나 폰브렐라 탄생”

    “ICT감성·디자인 만나 폰브렐라 탄생”

    KT가 최근 독일 디자인 공모전 ‘레드닷 어워드’에서 ‘우산’으로 1등 상을 받았다. 통신 회사가 웬 우산일까. 언뜻 평범해 보이는 우산의 수상 비결을 물었다. “우산과 휴대전화를 접목했더니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했죠. 무엇보다 이 같은 ‘생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봐요.” 18일 서울 광화문 KT 신사옥에서 만난 박혜정 KT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 센터장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도 안전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출발점”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산에는 ‘폰브렐라’(Phonebrella·phone+umbrella)라는 이름이 붙었다. KT는 고객 감사용으로 매해 1~2개의 한정판 아이디어 제품들을 만드는데 폰브렐라도 그중 하나다. 2만개 한정 생산된 폰브렐라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KT는 우산 때문에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기존 우산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우산의 손잡이를 팔뚝에 끼울 수 있는 형태를 고안했다. 폰브렐라는 팔뚝에 손잡이를 끼우면 어깨로 우산대를 지탱할 수 있어 양손으로 휴대전화를 쓸 수 있어 편리하다. 실제 제품화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다양한 사용자의 손목 굵기와 크기에 적합하도록 인체공학적 치수를 도입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세련된 형태, 경량화 등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폰브렐라가 탄생했다. 박 센터장은 “모바일 라이프 속에 연관된 불편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는 KT의 철학을 폰브렐라에 담았다”면서 “디자인은 ‘외관’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혁신해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폰브렐라를 제작한 IMC센터는 마케팅부터 브랜드 전략, 광고까지 KT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경쟁사와 비교해 적은 돈으로 매번 화제를 낳는 KT의 광고 아이디어도 이곳에서 나온다. 내친김에 그에게 KT의 하반기 광고 전략도 물었다. “유머코드가 지고 테크니컬한 코드가 뜨고 있어요. 빠른 통신 속도가 강조되는 만큼 여유를 부각시킬 겁니다. 왜냐고요? 빨라지는 통신 속도가 우리 생활을 더 여유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DMZ 접경지 철원 동송 예술가들이 접수하다

    DMZ 접경지 철원 동송 예술가들이 접수하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東松)은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약 10㎞, 민간인통제선에서 약 5㎞ 거리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역이다. 주민들과 외출나온 전방 군인들의 평범한 일상이 존재하는 공간은 얼핏 보기엔 긴장 상황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곳곳에 냉전 이데올로기의 잔재가 살아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힘이 얽혀 ‘느슨한 긴장감’이 있는 동송을 예술가들이 접수했다. DMZ와 그 접경지역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리얼 디엠지프로젝트’는 네 번째를 맞는 올해 ‘동송세월’(同送歲月)이라는 제목으로 현장 예술축제를 열고 있다. 동송은 1914년 동송면이라는 호칭이 생긴 이후 1945년 해방과 함께 북한의 영토에 속했다가 1953년 한국전쟁 정전 후 다시 남한에 수복되어 오늘까지 이어진다. 미술가, 건축가, 시인, 문화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참여작가 49명은 동송의 장소적 정체성을 활용한 회화, 사진, 조각, 설치, 글쓰기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작업들을 시내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금학로에 있는 커피숍 앞에 작은 꽃밭이 있다. 천일홍, 채송화, 메리골드 등 일년생 화초들은 전방 군인들의 군화에 묻은 흙에서 찾아낸 씨앗을 키운 식물치료 작가 김이박의 작품 ‘이사하는 정원-DMZ’다. 작가는 “동송에서 군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 노래방 등의 발판에서 두 달 넘게 흙을 채집해 씨앗을 찾고 서울의 작업실에서 키워 이곳에서 전시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민통선 안팎을 식물들이 군화에 묻어서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강현아는 이평로 86 텃밭을 활용해 ‘동송 DMZ 생태관광’ 코너를 만들었다. 인간의 손이 타지 않는 DMZ 안에 기이한 생태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작업으로 담벼락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동식물의 드로잉을 붙여 놓고 망원경으로 감상하도록 했다. 대인지뢰 사고에 대비한 ‘발목보호 검독수리’, 혹독한 추위를 견디려는 ‘방한털 산양노루’, 야간 매복 훈련에 참여하는 ‘소등반딧불이’, 변종 물고기인 ‘탄피 물고기’, 철책을 따라 다니는 ‘삼팔따라쥐’, 감시초소에 서식하다 보니 고개가 북을 향하게 된 ‘북향 금강초롱꽃’ 등은 모두 비무장생이다. 철원 감리교회에서는 조영주의 영상물 ‘DMG-비무장 여신들’을 볼 수 있다. 철원 안보관광 해설사로 일하는 7명의 여성들이 흰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DMZ 내 군사시설에서 공습경보 사이렌과 새소리에 맞춰 고요하게 춤을 춘다. 도시에서는 존재감을 잃어버린 공중전화가 동송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이재호 작가는 길거리의 공중전화를 비닐포장재로 덮은 ‘위장-공중전화’를 선보였다. 철원경찰서 관전치안센터 앞에도 작품이 있다. 시멘트를 백두산 모양으로 쌓아 놓고 백두산 천지의 사진을 재촬영한 이미지를 병치시킨 권용주의 ‘우리 정상에서 만나요’다. 통신기기점 쇼윈도에는 DMZ와 관련된 웹상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강신대 작가의 ‘#DMZ’가 선보인다. 철원 동송의 첫인상과도 같은 동송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유목연이 ‘통일국수’를 말아 주고 건축가 김동세와 설치미술가 정소영이 일시적인 사적 공안 ‘터미널: 가깝고도 먼’을 설치했다. 동송농협지하에서는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레르크가 PC방에서 전투게임을 하는 병사들의 모습과 소이산의 참호, 스위스의 지하 벙커를 이용한 영상 작품 ‘헤드쿼터’, 최진욱의 노동당사 회화작품, 최대진이 안보관광지에서 본 시설들을 찰흙으로 만들어 재구성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심정을 다독이려는 작가들의 마음도 엿보인다. 진희웅은 제분소 벽면에 네온으로 ‘정말 다 괜찮을 거야’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조혜진은 손뜨개로 만든 화환을 희망포토스튜디오에 설치해 놓고 군인들과 가족들이 활용하도록 했다. 금학로의 성심약국에서는 군인들의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정원연 작가가 약초와 천연꿀로 만든 ‘군심환’을 구할 수 있다. 전쟁을 책으로 배운 세대인 작가들이 한반도의 분단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독특하고 흥미롭다. 주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지역에서 50년째 군장비와 패치를 판매해 온 류선규(72)씨는 “일반인들이 멀고 위험하게 느끼는 전방을 예술적인 시각에서 보고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기획자 김선정 예술감독은 “지난해까지 민통선 안쪽에서 행사를 가졌지만 올해는 프로젝트가 지역사회에 좀더 친밀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참여자들이 지역민들의 일상공간으로 들어갔다. 개별작업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와의 소통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붉은 색 전시 입간판을 세우고 전시설명문을 붙여 놓았지만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고 워낙 작품이 많아서 운동화끈을 단단히 조이고 나서야 한다. 동송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이어지고 29일부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재구성해 선보인다. (02)739-7098. 글 사진 철원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신작 ‘침묵의 시선’ 메인 예고편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신작 ‘침묵의 시선’ 메인 예고편

    영화 ‘액트 오브 킬링’으로 전 세계 70개 이상의 영화상을 휩쓴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신작 ‘침묵의 시선’으로 다시 국내 관객을 찾는다.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비밀리에 벌어진 100만 명 규모의 대학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에서, 실제 학살의 가해자들이 직접 살인을 재연해낸 충격의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학살의 가해자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당시 상황을 재현한다는 독특한 구성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화제가 됐다. ‘액트 오브 킬링’이 대학살의 가해자가 직접 살인을 재연한 것과 달리 ‘침묵의 시선’은 희생자의 시점으로 돌아가 주인공이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구성됐다. 대학살로 형을 잃은 ‘아디’가 형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을 차례로 만나며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그리는 ‘인도네시아 학살 사건’ 시리즈의 연작이다. 최근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는 아름다우면서도 고요한 이미지와 달리 가슴 깊은 곳을 자극하는 강렬하고 서늘한 긴장감은 이야기를 지켜보게 될 예비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디의 “어머니,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한동네에 사시는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비롯해 대학살의 가해자가 던지는 “지금이 군부 독재 시절이었다면 자네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몰라”, “과거의 일을 자꾸 문제 삼으면, 또 그렇게 될 거요”와 같은 뻔뻔한 대사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어우러져 기묘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액트 오브 킬링’에 이어 ‘침묵의 시선’으로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민 낯을 고발하고자 했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액트 오브 킬링’이 과거 어떤 학살이 자행되었는지를 밝혀내는 역할을 했다면, ‘침묵의 시선’은 학살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학살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전권과 세력을 거머쥐는 환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이 침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 역사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걷어내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9월 3일 국내 개봉된다. 사진 영상=엣나인필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백문이불여일행] 현아야,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백문이불여일행] 현아야,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구호동물입양센터 ‘케어’를 가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구호동물입양센터 ‘케어’로 향했다. 버려진 강아지들을 마주한다는 것, 설렘보단 두려움이 컸다. 봉사활동 하는 법은 검색하면 되지만 상처받은 강아지의 눈을 보고 느껴질 미안함과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꼭 한번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가끔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자책감을 덜곤 했다. 그렇게 미뤄왔던 일을 실천하기로 한 날. 캔 사료와 육포를 손에 들고 약속된 시간인 오전 10시30분에 맞춰 센터에 도착했다. ‘케어’는 퇴계로와 답십리를 비롯해 경기도 포천·김포 등에서 유기동물 총 200여 마리를 보호하고 있는 동물단체다. 사람으로부터 학대를 당해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 후 입양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동물은 퇴계로와 답십리 센터에서 보호하고, 정상인 경우는 김포나 포천 보호소로 보내진다. 100%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노란색 외벽의 ‘케어’ 문을 여니 강아지들이 소리 내어 짖는다.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까닭에 봉사자들이 찾아와 산책하는 이 시간을 기다린다. 사람에게 학대받아 몸과 마음이 다쳤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의 반려견이 되어 함께 하길 원한다. “현아야, 괜찮아”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하얗고 눈이 예쁜 말티즈 현아(5살·암컷)와 짝이 되어 산책을 시작했다. “이 친구는 걸을 때 최대한 다른 강아지를 피해서 다녀주세요.” 관계자는 구조 당시 현아가 목줄에 꽉 묶인 채 혼자 방치돼 있던 까닭에 다른 강아지에게 유난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13년째 반려견과 함께 하고 있기에 산책 정도야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현아가 다른 강아지를 보고 흥분하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는지 현아도 불안해하며 센터 쪽으로 몸을 계속 돌렸다. “현아야, 괜찮아” 계속해 말을 걸고 틈나는 대로 쓰다듬어주었다. 날씨가 더우니 중간 중간 주는 물을 아기처럼 잘 먹는다. 장충단공원에 도착해 현아를 무릎에 앉히고 땀을 닦으려는데 갑자기 다른 강아지를 본 현아가 뛰어내렸다. 목줄을 놓치면 안 되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강아지를 데려 온 가족 중 한명이 급하게 현아의 줄을 잡고 내게 건네주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줄을 손목에 꼭 둘러 감고 길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30분이 넘어가니 더운 날씨 때문에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현아를 비롯해 이곳 강아지들은 밖에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 1번 이 시간뿐이에요. 힘들더라도 1시간을 꼭 채워서 걸어주세요.” 당부한 것을 되새기며 걷던 길을 다시 걷고, 샛길로도 걸어본다. 현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안정되는지 이곳저곳 신나서 걸어 다니기 바쁘다. 땀은 흐르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좋아하는 현아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예쁜 현아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산책 중간 중간 사진도 남겼다. 1시간을 조금 넘겨 다시 센터로 돌아갈 시간. 마침 같은 시간 산책봉사를 마치고 나온 이인선(26)씨가 이 모습을 보고 “현아. 너 또 들어가기 싫구나”라며 웃는다. “여기 네 번째 봉사인데 현아가 산책을 유독 좋아해서 다시 들어가기 싫어하더라고요.” 누구든 동물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하지만 여전히 한 해 8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버려진다. 휴가철엔 더욱 심각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유기된 동물만 8274마리다. 월 평균보다 20~30% 많은 수치다. 동물을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과 ‘내가 버리면 누군가 대신 키워 주겠지. 어떻게든 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잘못된 결과를 낳고 있다. 사회적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버려진 동물은 4만 6951마리. 한 해 유기동물 입양과 안락사 등으로 드는 비용만 104억 원이다. 동물학대사건의 빈도와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SNS 속 몽실몽실하고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한번쯤 ‘나도 키워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입양해서는 안 된다. 10~15년의 시간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한다. 동물을 키우는 일은 정말 행복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미래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나와 함께 사는 가족도 이에 동의하는지 생각해야한다. 이와 함께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지, 어리고 귀여울 때만이 아닌 늙고 병들었을 때 드는 비용도 감당할 수 있는 지도 고려해야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개와 고양이 평균수명인 15년 동안 드는 비용은 2013년 기준 반려견은 2111만8000원, 반려묘는 1996만3000원이 든다. 반려동물 입양대금을 비롯해 사료비, 동물병원 진료비, 미용서비스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미안해, 살아줘서 고마워” 전채은 케어 공동대표는 “강아지들도 생명체입니다.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똑같이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은 사람들이 제공했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의 책임이 크죠. 동물을 사랑해서 돕는 게 아니라 책임이 있기 때문에 돕는 겁니다. 동물을 사랑하건, 싫어하건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죠”라고 말한다. “그들도 맞으면 아픕니다. 그들도 버림받으면 상처 받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입니다. 미안하고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실제로 이 곳에서 현아와 함께한 시간은 오랜 시간 반려견과 함께하며 받은 행복을 돌려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시 오고 싶은 곳이고, 꾸준히 들릴 생각이다. 현아와의 시간 속에서 몰랐던 행복 하나를 찾은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망설였다면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버림받은 동물들과의 교감이 가장 큰 봉사입니다. 산책하고 청소하고 놀아주는 것, 이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커버스토리] 아저씨들 커밍아웃하다 “장난감은 내 인생 동반자”

    [커버스토리] 아저씨들 커밍아웃하다 “장난감은 내 인생 동반자”

    키덜트로 유명하다고 해서 만난 두 명의 아저씨는 정작 자신은 키덜트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둘 다 키덜트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어른이면서 아직도 애들 장난감이나 만지작거리느냐는 불편한 시선이 담긴 단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골프나 주식 대신 로봇과 인형을 취미로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남보다 꿈을 잊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김혁(51)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은 1991년이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던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영국 런던을 찾았다. 자유 시간을 내어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된 포토벨로 로드에 간 김 대표는 작은 골동품 가게에서 운명과 마주했다. “반지하 상가 한 모퉁이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어요. 족히 100년은 돼 보이는 테디베어와 녹슨 양철 로봇,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목제 퍼즐을 발견하고야 말았죠. 엄청난 충격과 감동이었어요. 세월의 냄새가, 낡은 장난감이 사람의 혼을 이렇게 온전히 뺏을 수도 있구나….” 2시간 동안 먼지 뒤집어쓴 장난감을 만져 보고 히죽거리는 동양인을 눈여겨본 주인 노인장이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노인은 전쟁고아들이 장난감을 통해 잠깐이나마 영혼을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다. “노인장이 그러더군요. 한 사람의 인생을 100년으로 봤을 때 그의 인성이 형성되는 초기 10년, 15년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물이 무엇이겠느냐고요. 장난감이라는 거죠. 깨달음의 순간이었어요. 아, 내 길이 이거구나. 나는 인생의 한 단면을 채집하는 장난감 수집가였구나.” 김 대표는 어릴 적 동네 문방구에서 산 조립로봇, 딱지 등 장난감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 까까머리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 살던 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장난감 수집은 계속됐다. 1985년 갑자기 입대하면서 수집이 중단됐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장난감 늘어놓는 걸 늘 못마땅해하셨어요. 군대 간 사이 다 버린 줄 알았는데 휴가 나와 보니 고향집 마루 밑에 처박아 둔 장난감과 서울 하숙집 방에 있던 장난감까지 가지런히 라면박스에 정리돼 있더라고요. 아들이 애지중지 모은 걸 차마 버리실 수 없었던 거죠.” 그게 출발이었다. 김 대표가 모은 장난감은 4만점에 이른다. 그중 절반은 부산 동물원 삼정더파크의 월드토이뮤지엄에 전시되고 있다. 나머지 2만점은 경기 안양시 평촌의 집 근처 창고를 빌려 보관 중이다. 100㎡(30평) 크기 창고 2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김포 처갓집에 일부를 보냈다. 김 대표는 수집한 장난감의 현재 가치를 30억원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팔 생각이 없어 환금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래된 골동 장난감(앤티크 토이)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가 비교적 최근 ‘꽂힌’ 장난감은 베어브릭이다. 7㎝ 크기의 플라스틱 곰인형으로 볼록 나온 배가 특징인 베어브릭은 스타워즈, 샤넬, 마블코믹스 등과 협업해 다양한 버전으로 생산되고 있다. “베어브릭은 태생부터 성인을 위한 장난감이었어요. 상자 겉에 ‘낫 포 칠드런’이라고 쓰여 있어요. 애들 장난감이 아니라는 거죠. 베어브릭은 아트토이, 즉 예술품입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처럼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미술품을 지향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처음부터 30판까지 빠짐없이 모았어요. 하나에 6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애들도 있죠.” 소장품으로 장난감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문화적 커밍아웃을 언급했다. “동성애자가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성인이라고 장난감 좋아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지금 그렇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그런 세상이 오겠죠. 음지의 장난감이 빛을 보는 그런 날요.”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현장 행정] 화가에게 던진 질문들… 꿈의 밑그림이 되다

    [현장 행정] 화가에게 던진 질문들… 꿈의 밑그림이 되다

    “이 작품은 어떤 소재로 만든 건가요?” “볼펜으로 그린 작품이라고요? 볼펜으로 그리다보면 잉크똥이 나오는데, 그건 어떻게 하셨어요?” “작품이 상당히 우울해 보이는데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 13일 도봉구 해등로 김수영문학관 4층에서 예비 작가들의 작품 설명회가 열렸다.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은 덕성여자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혁신교육 프로그램 ‘동네방네 미술관-끼 찾고 꿈 찾는 큐레이팅’에 참여하고 있는 중학생들이다. 도봉구는 올 초 서울시와 시교육청의 혁신교육지구사업에 응모해 선정되면서 15억여원의 교육지원금을 받게 됐다. 여섯 번의 강좌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미술관 탐방과, 큐레이터(학예사) 직업 체험, 작가 연구, 미술관 오픈 등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구 관계자는 “방학 때 진행되는 대부분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이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것보다 엄마들이 원하는 직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큐레이팅 프로그램의 경우 미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직접 신청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수업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다. 학생들은 예비 작가들에게 작품을 구상하게 된 배경부터, 어떻게 작업을 진행했고, 소재는 어떻게 선택했는지, 만드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를 꼼꼼하게 물었다. 예비 작가로 참석한 백지연(24)씨는 “학생들의 시선이라서 그런지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질문이 많았다”면서 “우리는 학생시절에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중학생 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노곡중학교 1학년 정세영(14)군은 “평소 미술관에 자주 가지만 작가로부터 이렇게 깊이 있고 자세하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며 웃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Q갤러리 시민큐레이터’들이 구가 운영하는 평생학습 과정을 수료한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평생학습 과정을 통해 공부한 것을 다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이런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 지역공동체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수료한 학생들도 앞으로 지역의 작은 전시회나 문화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이동진 구청장은 “더이상 도봉의 교육환경이 낙후됐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할 것”이라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해외여행 | 서정으로 빚어낸 땅 Norway노르웨이①아르누보의 꽃이 피다 Alesund올레순

    해외여행 | 서정으로 빚어낸 땅 Norway노르웨이①아르누보의 꽃이 피다 Alesund올레순

    새였다면 좋았을 텐데. 우렁찬 산의 높이와 고요한 물의 깊이 그리고 피오르를 감싸던 바람의 너비 사이에서 유영하고 싶었다. 예술을 품은 도시도 마찬가지. 노르웨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은 평화. 그리고 그것만으로 완벽한 세상. ●아르누보의 꽃이 피다 Alesund올레순 불길이 지나간 자리, 동화가 되었다 책 한 권 펼쳐 들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랜딩 사인에 눈을 떴다. 오슬로에서 2시간, 달콤한 잠 한숨 거리에 올레순이 있다. 손바닥만한 공항을 나와 3개의 해저 터널을 지나면 도심에 도착한다. 공항이 도심에서 1시간 거리에 자리한 비그라Vigra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유명한 오슬로나 베르겐을 제쳐 두고 올레순이라니. 이름조차 낯선 이곳에 ‘왜’ 왔는가. 남서부 해안가에 자리한 올레순은 인구 4만여 명의 작은 소도시다. 이를 증명하듯, 도시 한가운데에 들어서도 한적하기만 하다. 빽빽한 것은 건물이요, 드문 것은 사람이다. 여행의 재미 중 8할은 사람이 주는 것이라지만 올레순은 아니다. 도심 곳곳 발길 가는 어느 곳에서건 고개를 들어 건물의 벽과 문, 창문과 지붕을 볼 것. 감탄사는 미리 준비해 두시라. 올레순은 ‘아르누보Art Nouveau’의 옷을 입은 도시다. ‘새로운 예술’이란 아르누보는 1900년대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한 건축양식인데 사실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자연의 것에서 모티브를 얻기도 하고, 일본 판화 양식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는 등 발상과 표현을 자유롭게 한, 그야말로 ‘새로운’ 모든 양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애매모호할지라도 걱정하지 말길. 올레순에 들어서는 순간, 무엇이 아르누보인지 당신의 눈이 먼저 깨달을 것이다. 건물을 휘감은 넝쿨 장식, 아치형 창틀, 둥글거나 뾰족한 지붕 등은 섬세한 감성을 가진 누군가가 꼼꼼히 손본 삽화 속 동화마을 같다. 올레순을 관통하는 브로순뎃Brosundet 바닷가의 여유로운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올레순의 낭만적인 풍경은 비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1904년 마을 서쪽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바닷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온 도시를 불태우고 말았다. 나무 건물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속수무책으로 화마에 휩싸였고, 단 한 채만을 남기고 850여 채의 건물들이 모두 잿더미가 됐다. 이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젊은 건축가들이 찾아와 마을을 다시 살리는 데 손을 더했다. 마을은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로 3년 만에 재건됐다. 벽돌 건물이 대부분인 것도 그때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마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미라클 하우스’는 지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란만장한 올레순의 역사는 아르누보 센터에서 영상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역사를 알고 나면 걸어 다니며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시련이 올레순에 깊이를 더해 준 셈이다. 물론 이런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시의 허가가 없이는 함부로 새로 짓거나 디자인을 변경할 수 없고, 색을 새로 칠할 수도 없다. 덕분에 건물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뀌더라도 외형만큼은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건물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아르누보를 만날 수 있으니 올레순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걷기’다. 그리고 악슬라Aksla 전망대에 올라 전체를 조망하는 기쁨도 놓칠 수 없다. 마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악슬라 전망대는 418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차를 타고 산을 빙글 돌아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전망대에 서면 마을은 미니어처가 된다. 건축양식 덕분인지 더욱 아기자기하다. 색색깔의 건물, 멀리 보이는 섬을 오래 기억하려면 가만히 서서 여유롭게 바라볼 일이다. 볕이 좋은 날이면 이곳 주민들도 악슬라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노르웨이 바다 생태를 한눈에 아틀란틱 씨 파크Atlanterhavsparken 물개가 바다와 연결된 야외 연못에서 고개를 쏙 빼어 들고 사육사에게 먹이를 달라고 다리로 수면을 팡팡 친다. 아틀란틱 씨 파크는 노르웨이 바다에 살고 있는 어종을 관찰할 수 있는 해양 테마파크다. 물개와 펭귄이 살고 있는 야외 연못, 자연광을 이용한 내부 수족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앞 바다의 물을 그대로 수족관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를 낚거나 멍게나 불가사리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일 때 더욱 즐겁다. 9~5월 | 월~토요일 11:00~16:00, 일요일 11:00~18:00, 6~8월 | 토요일 10:00~16:00, 월~금요일 및 일요일 10:00~18:00 170크로네, 3~15세 아동 75크로네, 3세 이하 무료 Atlanterhavsparken, Tueneset, N-6006 Alesund +47 70 10 70 60 www.atlanterhavsparken.no 글·사진 차민경 기자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Samoa 사모아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유죄

    해외여행 | Samoa 사모아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유죄

    땅 위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 이곳은 ‘낙원’의 기원이다. 세계 각지의 많은 곳을 ‘낙원’ 이라고 부를 때, 어쩌면 그 안에는 ‘사모아와 비슷하다’는 함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모아에 다녀왔다. ‘그곳이 얼마나 좋으냐면’이라고 글을 쓰는 일은 기분 좋은 꿈에서 깨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달고도 아름답다. 사모아는 미지의 세계다. 잘 모른다. 낯설다.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면서 여기만큼 이국적인 정취를 느낀 곳도 없었다. 이국적이고 낯설지만 오롯이 동화되고 싶은 마음은 열렬했다. ‘대체 이 알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은 뭐지?’ 싶었다. ‘남태평양 어디쯤에 사모아라는 나라가 있다더라’는 정보만 알고 있던 나는 사모아를 그리워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관계로 치자면, 밀당의 고수에게 낚여 넋이 나간 꼴이다. 사모아의 사바이섬과 우폴루섬을 돌아본 일주일은 다른 차원의 시간 혹은 비현실 같았다. 일정을 마친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와 동행한 가장 친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SAMOA 무엇이 매력이냐 물으신다면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자연경관과 이를 배경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관광지에 대한 설명은 일단 뒤로 미루자.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모아의 매력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곳곳에서 발견된다. 수도 아피아를 제외한 우폴루Upolu섬의 곳곳과 사바이Savaii섬 전체를 둘러보는 것은 목가적인 풍경을 정성껏 스케치하고 예쁘게 채색한, 내용까지 감동적인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사모아는 전 국민의 취미가 정원 가꾸기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모든 집의 마당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너른 마당 위에선 개와 고양이, 닭이 아이들과 함께 뛰논다. 더불어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 여덟 마리와 일렬로 행진하거나 소와 말이 풀을 뜯는 모습도 일상의 풍경이다. 땅 위의 모든 동물과 식물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이다. 엄마는 꽃을 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나뭇잎을 쓸어 모은다. 집 앞에는 먼저 떠난 가족의 무덤을 둔다. 무덤 위에는 꽃을 놓거나 그 위에서 빨래를 말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묻힌 무덤의 비석 위로 손자들이 올라타고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며 까르르 신이 났다. 사모아에서는 죽음이 이별이 아닌 것만 같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아름다운 집들이 모인 마을은 대부분 집성촌이다. 옆집은 고모네, 뒷집은 삼촌네, 안집은 할머니네 대략 이런 식이다. 마을 곳곳에는 사모아 전통가옥 양식인 팔레fale가 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완공되는 신기한 건물이다. 지붕이 있는 거대한 평상이라고 상상하면 얼추 비슷할 것 같다. 팔레 안에는 침대도 두고, 식탁도 둔다. 비 오는 날에는 이 집 저 집의 빨래를 한데 모아 널기도 한다. 오며 가며 뻥 뚫린 기둥 사이로 안부를 전하고 옹기종기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식사 때가 되면 마을 곳곳에선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나는 곳은 어김없이 시끌벅적하다. 사모아 전통 조리법인 ‘우무(땅을 파고 나무와 코코넛 껍질로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돌을 달군다. 달군 돌 위에 해산물, 고기, 타로, 빵 등의 식재료를 올리고 바나나 잎을 덮어 훈제하는 조리방법)’로 만들어낸 요리들의 맛있는 냄새와, 대가족인 모인 식사시간의 즐거운 소리들이 공기 중 가득하다. 일요일이면 가장 좋은 옷을 챙겨 입고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간다.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사모아 국민의 반은 기독교도, 20%는 가톨릭신자다. 신앙도 깊다. 국가의 주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언제나 기도로 시작할 정도다. 낯선 동양인과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은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다시 만난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건 자존감 높은 사람들 특유의 쿨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달뜨고 설레는 여정 동안 사모아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바쁜 도시 생활자인 내가 놓치고 사는 중요한 게 무엇일까. 이곳은 삶을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스스로 움켜쥔 많은 세속적 가치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되는 구도의 땅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아름다운 화산섬, SAVAII 사바이섬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우폴루섬 서쪽에 위치한 물리파누아Mulifanua 항구에서 뱃길로 한 시간을 달리면 사바이의 살레렐로가 항구Salelologa Wharf에 닿는다. 사모아 전체 인구의 25%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화산섬인 사바이는 폴리네시안 섬들 중 타히티, 하와이에 이어 크기가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우폴루섬에 비해 조금 더 목가적이다. 섬 중앙에는 열대 우림이 빼곡한 산이 있고 산자락과 해안선이 맞닿는 지점에 사람들이 터전을 이루고 살아간다. 해안을 따라 난 왕복 2차선의 해안도로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길이며 섬을 관통하는 길은 없다. 사모아관광청의 훈남 앨비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태평양의 바람을 가르며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사바이섬에서 가장 매력적인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알로파아가 블로우홀Alofa’aga Blowholes이다. 사바이 남동쪽의 타가Taga 마을에 들어서자 파도 소리가 거세진다. 파도가 세게 몰아치는 이 마을의 해안 곳곳에는 바위 구멍이 있는데 이를 통해 바닷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분수공을 통해 솟아오르는 물기둥의 높이는 엄청나다. 웬만하면 10m 이상이고 아주 높을 때는 50m까지도 치솟는다. 믿거나 말거나 100m가 넘는 높이로 솟아오른 적도 있단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귀를 자극하는 소리다. 파도가 모여 구멍으로 솟아나기 전의 거대한 울림. ‘부욱부욱’ 하는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 보는 자연의 소리인데다가 물기둥이 얼마나 클지 귀띔하는 듯해 긴장과 설렘이 배가된다. 타가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선보인다. 바로 분수공 아래로 코코넛 던지기다. 어린 시절부터 쭉 봐 왔던 광경이라 마을의 어른들은 어느 구멍에서 가장 거센 분수가 솟구칠지 직감적으로 안다. 선택한 분수공에 코코넛을 던지면 어김없이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며 코코넛이 산산조각 나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관광객은 이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을 어른들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얼굴을 하고 깔깔 웃으며 또 다른 코코넛을 가지러 달려간다. 알로파아가 블로우홀에서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푸 아아우Afu Aau’ 폭포다. 발음이 어려운 사모아의 지역 이름 중 유일하게 단번에 외운 이름이기도 하다. 소 주변의 수심은 얕은 편이라 수영을 못해도 물놀이는 즐길 수 있지만 소 중심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져 자칫하면 ‘아푸 아아우’ 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광이 마치 우리나라의 비둘기낭이나 삼부연 폭포를 연상케 한다. 열대 우림에 둘러싸인 바다 근처의 이 폭포는 사바이섬을 찾는 사람들의 피크닉 장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음식물 반입은 가능하지만 주류 반입은 불가능하다. 사바이섬은 화산섬이다. 1905년부터 1911년까지 섬 북서쪽의 마타바누Matavanu산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고 융기했는데 이런 지질학적 특성을 온전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라바필즈다. 제주 곶자왈의 열대우림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섬의 북서쪽, 살레아울라Saleaula 마을에 위치한 이곳은 1900년대 세워진 교회와 화산폭발 몇해 전 만들어진 무덤이 유명하다. 교회는 마그마로 덮여 폐허가 되었는데 그 자체로 경이로운 모습이다. 무덤은 성지로 여겨진다. 화산이 폭발한 후 용암이 무덤 주변을 피해 흘렀기 때문이라고. 신성한 기운 때문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산활동 이전의 식물군이 그대로 남아 있는 풍경은 신비롭다. 작열하는 남태평양의 땡볕을 현무암이 고스란히 받아 머금고 있는 만큼 라바필즈의 열기는 대단하다. 선크림과 모자는 꼭 챙겨 가는 게 좋겠다. 라바필즈에서의 뜨거움은 인근 사토아라파이Satoalepai 마을에서 시원하게 식힐 수 있다. 이곳에는 거북이와 함께 교감하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풀이 있다. 스무 마리의 거북이를 맛있는 망고로 유인한 후 물에 들어가 함께 물살을 가르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꼭 들를 것. 참고로 가장 나이가 많은 거북이는 무려 75살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AMOA 일상을 엿보다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바로 재래시장 둘러보기다. 우폴루섬 북쪽의 수도 아피아Apia에는 두 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먼저 사바랄로 플리마켓Savalalo Flea Market은 특산품과 수공예로 만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파는 사모아의 쇼핑 메카다. 라바라바Lavalava라고 불리는 사모아 전통 살롱과 꽃핀, 액세서리,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가방이나 모자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사모아 스타일의 기념품을 구입해야 한다면 꼭 들러야 할 곳! 더불어 이곳은 메인 버스 정류장과 연결돼 있어 빈티지한 매력이 돋보이는 사모아 버스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열대 과일을 마음껏 먹어 보고 싶다면 거대한 팔레 안에 수십 개의 상점이 모여 있는 푸갈레이 마켓Fugalei Market으로 가면 된다. 바나나, 코코넛 등의 신선한 과일과 각종 야채, 꽃을 파는 청과 전문시장이지만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곳곳에 있다. 사모아 전통 음료 재료인 코코사모아는 100% 카카오 덩어리로 조리법은 간단하다. 따뜻한 물에 으깬 코코아 열매와 설탕을 듬뿍 넣고 호로록호로록 마신다. 기존의 가공품보다 훨씬 깊고 그윽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시장 인근의 사모아 컬처럴 빌리지Samoa Cultural Village도 추천한다. 사모아 전통공예와 문화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웰컴 드링크를 선사하는 아바 세리머니, 전통 조리법인 우무, 타투의 기원인 사모안 타타우, 시아포라고 불리는 타파 프린팅과 사모아 전통 목공예, 바나나 잎으로 머리 띠와 바구니 등을 엮는 위빙 체험 등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사모안 시바Samoan Siva라고 불리는 전통 춤 공연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힘껏 손뼉을 치며 절도 있는 동작을 이어 나가는 춤인데, 빠르게 이어지는 안무 하나하나를 따라가느라 눈 돌릴 틈이 없다. 따라 하고 싶다면 홀로 있을 때 조용히 할 것! 자칫 개그 프로그램의 마빡이처럼 보일 수 있다. 낙원의 풍경, UPOLU 사모아의 본섬인 우폴루는 1953년 제작된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Return to Paradise>의 배경이 된 곳이다. 더불어 <지킬 앤 하이드Jekyll and Hyde>와 <보물섬>을 집필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깊고 고요한 열대우림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을 번갈아 마주하다 보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온전한 안식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우폴루섬 남쪽 해안의 로토팡아Lotofaga 마을의 토수아 트렌치 앞에 서면 그 마음은 극에 달한다. ‘물이 있는 구멍’이라는 뜻의 토수아 오션 트렌치는 바닷물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해구다. 사모아 최고의 자연경관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발 디딘 지점에서 30m 아래로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깃든 거대하고 고요한 해구의 풍경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있는 힘껏 사다리를 잡고 내려가 나무 데크에서 점프!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라는 혼잣말을 자주 하는데,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심과 유속이 달라지지만, 수영에 능하지 않아도 걱정은 없다. 데크에 연결된 밧줄을 잡고 동동 떠서 아늑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만끽할 수 있으니. 사모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우폴루섬 중북부 바일리마Vailima 지역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뮤지엄이다. 병약하게 태어나 평생 동안 요양과 여행을 반복하며 안식처를 찾던 그가 아내와 정착해 살던 지역 이름과 동명의 집 ‘바일리마’를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했다. 스티븐슨은 이곳에 1888년 정착해 눈을 감은 1894년까지 5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사모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뮤지엄 안쪽으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 한 시간을 오르면 산 정상에 그의 무덤이 있다. ▶travel info SAMOA 사모아는 열대우림기후의 화산 군도로 연중 덥고 습한 편이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 여행은 건기인 5월부터 3월까지가 적합하다. 동쪽으로 미국령인 아메리칸사모아가 있다. 언어는 사모아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로 한국보다 5시간 빠르다. 화폐는 탈라tala. 1탈라는 한화로 약 450원이다. Airline 한국에서 사모아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웃 섬나라인 피지의 난디공항까지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한 후 피지 에어웨이즈를 타고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까지 가는 것이다. 난디에서 아피아까지는 1시간 40분 거리다. Food 전통 조리방법인 우무umu로 만든 구이 요리들과 오카okq가 유명하다. 오카는 참치회를 코코넛 크림, 라임즙, 향신료, 각종 야채와 버무린 후 약간의 숙성과정을 거친 요리로 신선한 생선 러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맥주도 맛있는데 유명한 현지 맥주로는 라거인 바일리마vailima와 타울라taula가 있다. hotel 코코넛비치클럽Coconut Beach Club 하와이의 유명한 세프였던 미카Mika가 리조트가 있는 해변에 반해 이곳에 바를 연 것이 리조트의 시작이다. 자연친화적이지만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은 아름다운 리조트다. 사모아에서 유일하게 수상 방갈로를 보유하고 있다. 세프가 문을 연 리조트다 보니 음식 맛있기로 꽤 유명하다. 최근 CNN은 코코넛비치클럽의 레스토랑을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www.cbcsamoa.com 스티븐슨@마나세 리조트Stevenson Manase Resort 고급 휴양지를 꿈꾸고 떠났다면 다소 불편할 스탠더드 등급이다. 객실 상태, 레스토랑의 퀄리티 등이 많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사바이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소유한 리조트이기 때문이다. 사모아의 ‘팔레’ 형태로 만들어진 방도 있어 숙박이 가능하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근의 마을 투어와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www.stevensonsatmanase.com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취재협조 사모아관광청 한국사무소 www.samoatrav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터키,누군가는 내 뼈 위에서 파티를 즐기리라③History & Heritage

    해외여행 | 터키,누군가는 내 뼈 위에서 파티를 즐기리라③History & Heritage

    ●History & Heritage 관념이 구체화 되는 순간 터키를 여행하면서 오늘날의 국경과 지도적 공간 개념을 허물지 않는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진다. 또한 유럽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없다면 여행 내내 수도 없이 등장하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과 아고라,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과 신전들, 기독교 성화 위를 덮은 코란의 문구들이 계통 없이 뒤죽박죽된다. 로마를 보려면 터키를 먼저 가라 아나톨리아 반도는 초기 그리스 문명이 시작되고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되기까지 오랫동안 그리스인들이 주인이었던 땅이었다. 그리스 유물을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서로마가 제국의 이름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에는 로마의 속주였던 땅이었으니 로마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집단거주지, ‘차탈회육’ 이 발견된 곳이고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든 히타이트 문명BC 2000년경이 태동한 곳이니 선사시대의 유적을 확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을 보려면 터키를 먼저 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km 떨어진 곳의 아스펜도스에는 원형극장이 있다. BC5세기에 이미 은화를 만들어 쓸 정도로 번성했던 이 지중해 도시는 이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의 시대를 바람처럼 거치면서 풍화되었다. 지금은 작은 마을로 남았지만 과거의 영화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곳이 바로 원형극장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연극이 발달했다. 그들은 청명한 지중해 기후를 즐기며 야외극장에서 축제를 했고 토론을 했고 비극과 희극의 경연대회를 했다. 호전적인 로마인들은 극장을 검투사 경기장의 용도로 더 많이 활용했다. 그리스는 언덕과 경사면을 깎아 극장을 만들었고 로마는 평지에 아치를 받쳐 극장을 완성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성당을 질리게 본다는데 터키 지중해 여행에서는 원형 경기장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경기장이 저마다의 다름으로 다가오는 탓에 성당처럼 질릴 겨를은 없다. 건축물의 형태가 다르고, 훼손의 정도가 다르며, 공명의 상태가 다르고, 주변의 산세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미 기원전에 ‘보고’ ‘보여지는’ 쌍방향의 문화를 즐겼다는 것이, 여전히 기원전 하면 돌도끼를 든 원시인을 생각하는 내 머리에는 질투 섞인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은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161~180년 재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최대 2만명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극장이다. 보존 상태도 완벽하지만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객석 어디서든 잘 들리는 공명감이 미스터리한 건축 기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죽음의 모습에서 삶을 읽다. 안탈리아 좌측, 아나톨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이 ‘리키아Lycia’다. 그리스어가 아닌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할 정도로 독창적 문명을 키워 온 땅이다. 리키아의 중심도시 미라Myra의 고대 유적지는 뎀레Demre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도 원형극장이 있는데 고대 유적지의 초입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절벽 위의 무덤들이다. 고대의 리키아인들은 죽은 자를 땅에 묻지 않고 수직 절벽에 굴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그 안에 석관을 안치하는 매장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시신을 땅에 묻으면 썩을 것이니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를 믿었던 그들은 영혼의 집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위가 높으면 더 높은 절벽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부활도 빨라질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키아의 무덤에서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리키아 사람들의 순망함을 보면서도, 정작 그들을 묻었던 사람들의 도시는 무덤 아래 땅 밑에 묻혀 버린 그 기묘한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미라에서 좀 더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면 마을 전체가 아예 바다 속에 잠겨 버린 곳도 있다. 케코바Kekova라는 곳이다. 2세기경 지진으로 수몰됐다고 하는데 해안가에는 목욕탕과 집터, 나지막한 돌산에는 당시의 건축물과 석관묘의 흔적이 남아 있고 수심 5~6m의 코발트빛 바다 아래로 수중 도시가 희미하게 들여다보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Chatting 수다거리 미라Myra의 바닷가 마을, 뎀레Demre가 유명한 것은 바로 산타클로스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루돌프 사슴을 타고 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그 동화 속 할아버지의 실제 인물인 성 니콜라우스270년~346년경가 주교로 있던 곳이다. 산타클로스와 성 니콜라우스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가 먼저겠지만, 그리스 정교회나 가톨릭, 기독교에서는 대표적인 성인으로서 성 니콜라우스를 숭배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에게 힘이 돼 준 그의 생전의 업적이 약자와 뱃사람과 여행자의 보호 성인으로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주교로 있던 미라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폐허처럼 남아 있다. 3세기부터 있었던 교회의 자리에 6세기, 현재 모습의 교회가 지어졌고 이후 증축되었으나 이슬람의 점령과 자연 재해 속에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파손됐다.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터키의 무관심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성지는 방치되었다. 중앙 홀과 두 개의 회랑이 있는 바실리카 형식의 교회는 입구 바닥에 모자이크 장식이 있고, 현관 벽에 파손된 프레스코 성화가 있다. 니콜라우스 성인에 대한 공경심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이곳을 둘러볼 이유가 있을까 싶게 우중충한 모습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사실은 죽은 성인을 신화로 포장해서 유통시키는 자본의 힘이다. 성 니콜라우스 생전의 수많은 선행은 2차 대전 후 관광산업 부활의 기치를 내건 핀란드에 의해 산타클로스로 재탄생했고 여기서 굴뚝, 선물, 어린이, 순록과 같은 장치물들이 등장한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색, 하얀 색의 옷 역시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결국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낸 이미지 속에서 산타클로스를 소비했다는 것인데, 생기 하나 없는 성 니콜라우스 교회를 나오면 그 주변의 기념품 가게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자본의 위력을 실감한다. 아무리 터키의 이슬람을 세속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십자가를 기념품으로 진열해 놓고 성가를 틀어놓는 그 태연함에 웃음마저 나온다. 여하튼 미라를 갈 때, 산타클로스의 기원 또는 원형을 찾아 간다는 말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뭔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산타의 기원을 찾으려면 코카콜라 공장을 가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라는 성 니콜라우스의 봉사와 희생 그리고 선행의 행적을 기리는 장소로서 더 빛날 것이다. 터키에서 듣는 하루 다섯 번의 ‘아잔’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윙하고 울린다. 하루 다섯 차례일몰 직후, 밤, 새벽, 낮, 오후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방송이고 이를 ‘아잔’이라고 한다. ‘아잔’은 ‘알라는 위대하다’로 시작해서 ‘알라 외에 신은 없다’ 로 끝난다. 터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비록 터키가 이슬람 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한 민주국가이자 탈 종교국가이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세속 이슬람주의라고 하더라도 모스크에 모여 기도하는 의식은 철저히 지킨다. 이슬람을 생활이 아닌 뉴스 정도로 접하는 우리에게, 터키와 같은 이슬람 국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이슬람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는 터키를 여행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이비 이슬람교’가 좋았다. 여자들에게 부르카또는 히잡 쓰기를 강요하지 않고, 자기 종교만을 위한 폭력을 성전 ‘자하드’라고 억지 부르지 않는 탈 근본주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평화와 평등이라는 이슬람 사상의 중심을 지켜 나가고 있었고, 무함마드 자체가 아닌 그가 추구한 삶을 살기 원하며, 하느님알라 말씀에 복종하고 기독교의 복음과 선지자 예수까지 믿음의 범주로 수용하는 포용성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장미로 유명한 데니즐리의 구네아겐트 작은 마을에서 ‘아잔’의 울림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적함, 길거리 햇볕 좋은 곳이나 가게 앞에 나와 앉아 한담을 나누는 많은 노인들의 졸음 같은 평화의 한가운데서 ‘아잔’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거침 없는 기도 소리가 내 고막에 금을 쩍쩍 가게 하고 신경을 긁기 시작했을 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누릴 고요함의 권리는 왜 무시하는 것인지 반감이 생겼던 것이다. 나중에 이 생각을 터키 사람에게 말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아잔을 듣다 보면 그 소리에 너무나 익숙해진다.” ●Sentiment 그리고 감상 한 조각 감동은 셔터를 누르게 하고 감상은 볼펜을 찾게 한다. 엽서든, 수첩이든 혹은 빈 종이든, 무어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욕망을 늘 나는 특별한 여행지에서 경험한다. 그 특별한 장소란 좀 더 쇠락하고, 밀려 있고, 버려지거나 남겨진 곳들이다. 내 뼈 위에서도 파티를 터키의 지중해 여행에서 일행과 떨어져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던 곳은 두 군데였다. ‘사갈라소스Sagalassos’는 고원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해발고도 1,450~1,700m 지점에 유적지로 남아 있는 이 도시는 그 잔해만으로도 과거에 얼마나 영화로웠는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게 한다. BC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당한 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BC25년, 로마령이 되면서 절정의 시기를 갖게 된다. 518년의 지진과 이후의 아랍 공격 등으로 폐허가 된 사갈라소스는 1706년 탐험가 파울 루카스에 의해 발견된 이후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아크다으산 바로 아래에 아고라, 공회당, 도서관, 대형 분수, 공중목욕탕 들이 도시 형태로 흩어져 있지만 특별한 감상은 원형경기장에서 맞이한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의 고대 극장 무대는 무너졌지만, 9,000석 규모의 객석들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있으면 원형경기장의 풍경이, 그리고 그 함성이 단번에 두루마리 펴지듯 죽 펼쳐진다. 파묵칼레 옆 ‘히에라폴리스’에서는 어떤 이에게 긴 편지를 썼다. 혼자 품고 있기에는 이 감상이 너무 벅찼다. BC190년경 페르가몬 왕국 때 세워진 이 폐허의 도시는 공간적으로 넓고 여백은 충분하다. 원형 경기장을 오르는 언덕에 유채꽃은 만발하고 그 길에서 자유와 해방감과 상상력은 무르익는다. 아스펜도스처럼 보존 상태가 좋으면서도 경치는 압도적으로 더 좋다. 1,200개의 무덤이 있는 헬레니즘 시대의 공동묘지도 히에라폴리스에서 볼 수 있다. 죽은 도시를 바라보며 아래쪽의 관광객들은 수영과 온천을 즐긴다. 고대와 현대, 죽음과 삶, 지止와 동動의 대칭들이 천연덕스럽게 공존하는 곳, 히에라폴리스에서 시간과 공간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어느 해, 내 뼈 위에서 누군가는 파티를 즐길 것이다. ▶travel info Turkey AIRLINE 터키 가는 길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비행기로 12시간이 걸리며 터키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운행중이다. 이스탄불에서 안탈리아까지는 국내선으로 1시간 20분이 걸린다. 터키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은 220V로 한국과 같으며 화폐는 터키리라TL. 1리라는 한화로 약 400원 정도. Hotel Regnum Carya Golf & Spa Resort 안탈리아 벨렉에 위치한 이 호텔은 골퍼들에게 특화된 리조트 호텔이다. 멋진 바다와 해변, 워터 파크와 넓은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도 고급스럽다, 거대한 열대 나뭇잎으로 포인트를 준 리셉션에서의 웰컴 샴페인과 와인, 그리고 디저트 등이 이 호텔의 첫인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객실 미니바를 포함해 레스토랑, 바 등에서의 모든 알코올, 음료 등은 무료다. 레스토랑의 메뉴도 매머드급이다. 저녁 8시, 풀장에서의 불꽃 페스티벌도 환상적이다. Kadriye Bolgesi, Uckum Tepesi Mevki, Belek 7500, Turkey fOOD 입이 호강하는 터키 음식 지중해 음식이 대개 그러하듯 터키 음식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눈보다 입을 즐겁게 하며, 덧입힘보다는 날것과 원재료의 향과 맛을 중요하게 여긴다. 잘게 썬 고기 조각을 구워 먹는 전통요리 케밥은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로 만든다. 케밥의 종류는 수십가지가 넘는데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 시시 케밥과 도네르 케밥이 잘 알려져 있다. 케밥은 요구르트로 만든 시원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아이란과 함께 먹기도 하며 터키식 볶음밥인 필라프와 함께 먹기도 한다. 또한 올리브를 빼놓을 수 없다. 오이, 양파, 올리브 등을 크게 썰어서 올리브유를 넣고 만드는 샐러드는 언제나 편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넓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토마토, 마늘, 고추, 쑥갓, 쇠고기와 양고기, 후추와 각종 향신료, 치즈 등을 올린 다음 큰 화덕 속에 넣고 익혀낸 후 한 입 크기로 잘라 내오는 피데도 참 맛있다.홍차 맛 터키 차이 터키 사람들은 차도 많이 마신다. 하루에 보통 열 잔 이상의 차를 마시는데 우롱차를 더 발효한 것이 터키의 차이chai다. 엷은 홍차 맛이 난다. 차이를 파는 차이하네Chaihane나 차이에비Chaievi는 문화와 정보의 사교장이며, “와서 차 하잔 하시오구엘 차이 Guel Chai”는 그들의 관용어다. 실제 물건을 사는 가게에서도 주인은 차를 시켜 손님에게 권하기도 하는데,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면서 가격을 흥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래저래 터키 사람과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덩달아 착해진다. 죽음만큼 강렬한 커피 커피도 터키인의 기호품이다. 터키에서는 커피를 ‘카흐베Kahve’라고 부른다. 커피 가루를 넣어서 끓여내기 때문에 잔에 가루가 남는다. 그러니까 터키 커피는 2/3 정도만 마신 후 남겨야 한다.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음식과 차의 향기를 개운하게 씻어 주는 마무리로 생각한다. 또한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행위로 여긴다. 터키 속담에, ‘한 잔의 커피에는 40년의 추억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 앞의 사람의 40년 역사를 존중하거나, 또는 40년 동안 나에게 커피를 대접한 사람을 존경하고 기억한다는 중의적 의미이다. restaurant 케바치 카디르Kebapcı Kadir 1851년부터 164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케밥집이다. 장미의 도시 으스파르타 시청 뒤에 있다. 할리우드 배우 등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찾는 탓에 가게 벽에는 유명인들의 사진, 각종 상장 등이 빼곡하다. 염소와 양을 꼬치에 끼운 뒤 대형 화덕에 아침 7시부터 굽기 시작하는데, 당연히 기름이 쪽 빠지면서 고기가 아주 쫄깃해지고 담백해진다. 가격은 1인분에 15~30리라 수준. Ulu Cami Yanı ,Valilik Arkası Kebapcılar Arastası No:8 +90 246 218 24 60 에디터 트래비 글 윤용인 사진 Bar & Dining 김은주, 윤용인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02-336-303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시민 재능 기부로 바뀔 새 서울 BI 기대하세요”

    “시민 재능 기부로 바뀔 새 서울 BI 기대하세요”

    “시민들로부터 재능 기부를 받아 서울의 도시 브랜드를 만든다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말이죠. 우리 시민의 힘으로 바뀔 서울의 새로운 얼굴을 기대해 주세요.” 서울을 대표하게 될 새로운 도시 브랜드가 오는 10월 28일 ‘시민의 날’을 맞아 선포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으로 있던 2002년 채택돼 13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하이 서울’(Hi Seoul)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디자이너 서준원(37·여)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서씨는 서울시의 새 브랜드 정체성(BI) 개발 프로젝트 ‘모두의 서울’ 창작단장을 맡고 있다. 창작단은 지난 4월 재능 기부에 나선 시민 96명으로 꾸려졌다. “네일숍 사장님부터 도시공학자, 성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시민들이 서울의 브랜드를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쳤습니다.” 서 단장은 12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의 역사,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할 지원자를 구한다는 소식에 제일 처음 합류하게 됐다” 고 말했다. 10년간의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그는 ‘우리의 것’ ‘옛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서 단장은 지난해 서울 종로구 계동의 역사를 담은 지도 제작과 사진 전시회를 여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호평받았다. 이번에는 도시 브랜드의 영역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지난달 중순 본격적인 시민 아이디어 공모가 시작됐다. 3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지만 전체 윤곽을 그리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다음달 1일까지 아이디어 1만 2000개를 받는 것이 ‘모두의 서울’ 창작단의 목표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아이디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요.”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판타지 멜로영화 ‘뷰티 인사이드’로 돌아온 한효주…팔색조 그녀 21色 연애

    판타지 멜로영화 ‘뷰티 인사이드’로 돌아온 한효주…팔색조 그녀 21色 연애

    요즘 스크린 속 그녀의 미모에 물이 올랐다. 전작에서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뮤즈였던 그녀는 이번에는 매일매일 얼굴이 변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신비로운 판타지 멜로에 도전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20일 개봉)로 돌아온 한효주(28) 이야기다. 본인이 봐도 실물보다 스크린에 더 예쁘게 나온다는 그는 “CF 감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여배우의 예쁜 모습만 담기를 원해서 좀 부담스러웠다. 딴짓 안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다 보니 저절로 바른 생활이 되더라”면서 활짝 웃었다. 뷰티 인사이드는 매일 자고 일어나면 겉모습이 변하는 남자 우진과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 이수(한효주)를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2013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인텔&도시바 합작 소셜 필름 ‘더 뷰티 인사이드’를 원작으로 한 영화답게 독특한 설정과 CF 같은 감각적인 영상이 눈길을 끈다. “저도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설정이 황당하기도 하고 나라면 그런 힘든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살면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외모 때문에 놓친다면 아까울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연민도 생길 것 같고요.” 영화에는 21명의 우진이 등장한다.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심지어 외국인까지 모습도 다양하다. 박서준, 이진욱, 유연석, 조달환, 김희원 등 남자 배우들뿐만 아니라 박신혜, 고아성, 천우희 등 여자 배우들이 우진 역을 연기했다. 심지어 일본 여배우 우에노 주리도 출연한다. 한효주는 연하남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훈남 배우를 두루 만나는 ‘호사’를 누렸지만 정작 영화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 것은 여배우들과 연기를 할 때였다고 했다. “매일 다른 배우들을 만나 낯설고 어색했는데 그 감정을 그대로 살려서 연기했어요. 그런데 눈에 익을 만하면 사라지니까 연기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처음엔 남녀노소로 변하는 우진이 과연 한 사람으로 보일까 의심이 많았는데 여배우들과 찍으면서 모두 우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우에노 주리와 연기를 할 때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일본어 대사를 넣기도 했어요. 그래야 좀더 현실감이 들 것 같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예쁘다는 소리 한번 못 들어봤다는 충북 충주 출신의 소녀는 우연한 기회에 모델 선발대회에 나갔고 2004년 MBC 시트콤 ‘뉴 논스톱5’로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동이’에서는 단아하고 참한 매력을, 영화 ‘감시자들’과 ‘반창꼬’에서는 털털하고 당돌한 매력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에는 연기에 자연스러움과 깊이감까지 묻어난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대 여배우 기근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이지만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악플에 시달리면서 힘든 시간도 보냈다. “물론 배우이기에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연기 외적으로 겪어야 하는 힘든 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에요. 하지만 터널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있겠죠. 뷰티 인사이드는 힘든 시기를 연기로 이기게 해 준 영화예요. 많은 우진에게 사랑받으면서 위로와 위안을 느꼈어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한국무용을 하면서 땀을 흠뻑 흘리면 몸이 개운해진다는 그다. 갈수록 연기가 좋아져서 겁이 난다는 이 배우의 30대는 어떤 모습일까. “연애할 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처럼 혹시 내가 일을 못 하게 되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몸을 사릴까도 고민했죠. 하지만 저는 연기할 때 가장 멋져 보이고 하면 할수록 만족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서른이 되면 다양한 역할을 해 볼 수 있겠죠. 전문직도 탐이 나고 선한 얼굴로 악역을 하면 더 실감나지 않을까요? 전 조금씩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웃음).”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연예 포스토리] (9) ‘엄친아’의 원조 차인표

    [연예 포스토리] (9) ‘엄친아’의 원조 차인표

    요즘에는 얼굴이 예쁘고 잘생겼으면서 학벌까지 좋은, 또는 집안까지 좋은 ‘엄친딸’, ‘엄친아’ 연예인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포스토리 9회에서 다루는 차인표가 어쩌면 ‘엄친아’ 배우의 원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의 과거를 들여다봅니다. ●180cm의 큰 키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엄친아’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차인표는 뉴욕의 한 해운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1993년 MBC 공채 탤런트 22기로 데뷔합니다. 180cm의 큰 키에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남성적인 체격은 많은 여성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스트레스성 장염, 원인이 과도한 인기? 차인표는 데뷔 직후 단숨에 스타덤에 오릅니다.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주연을 꿰찬 차인표는 팬들로부터 하루에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부 중·고교생은 차인표의 얼굴을 보겠다고 밤늦게까지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고 하네요. 이로 인해 차인표는 스트레스성 대장염에 걸려 하루 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차인표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안겨준 극한(?) 알바 차인표는 90년대에 흔치 않은 미국 유학파 탤런트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지금 봐도 흔치 않아 보입니다. 그는 유학시절 초기 영어 실력이 부족해 잔디 깎기나 페인트칠 같은 단순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력이 차인표를 강인하게 만든 걸까요. 당시 방송 관계자들은 차인표와 라이벌이었던 장동건, 최수종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생겼지만 유약한 이미지인 장동건, 최수종과 달리 차인표는 강인한 이미지를 가져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차인표와 연정훈의 공통점 2005년 배우 연정훈이 한가인과 결혼을 할 때 많은 남성분들이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몇몇은 ‘입대 전에 결혼이라니!’하고 분개도 했을 거고요. 이로부터 10여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94년 차인표는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애라와 열애 중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듬해 입대한 그는 군 복무 중 신애라와 결혼식을 올려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습니다.   ●“솔직히 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차인표는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인 MBC ‘아들의 여자’에서 검사 역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차인표는 자신의 연기력을 냉철하게 비판했는데요. “솔직히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군 입대를 앞두고 출연하는 마지막 드라마라는 점에서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보다는 작품 속 비중에만 몰두하는 몇몇 젊은 연예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발언인 것 같습니다.   ●음반 발매 경험 있는 차인표 “제 노래방 점수는요….” ‘소간지’ 소지섭이 힙합 앨범을 냈을 때 ‘아… 이것만은’이라며 탄식을 내뱉은 분이 있으실 겁니다. 차인표 역시 부족한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발매했는데요. 군 입대 직전 그는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며 음반 발매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가 덧붙인 말에 눈길이 갑니다. “제 노래방 점수는 85점 정도에요. ‘가요 톱 10’에 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인기는 있었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 했다” 별 탈 없이 24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친 차인표는 1996년 12월 제대했습니다. 그는 제대하며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 군 복무를 마쳐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다”면서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고생했는데 주변의 이목이 쏠려 부담스럽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인기는 있었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 했다. 2년이나 기다려준 팬들에게 좋은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앞머리 잘라 노란색으로 염색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제대 후 드라마 복귀작에서 차인표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좋은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변신을 서슴지 않는데요. 1997년 MBC ‘영웅 반란’에서 건달 역을 맡은 차인표는 앞머리를 자른 뒤 그 끝을 노란색으로 염색했습니다. 주로 깔끔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왔던 차인표는 “촌스러우면서도 터프하고, 그러면서도 귀엽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머리 모양은 미용실 주인, 연출자,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결정했다. 어깨에 힘 빼고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하니 신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없어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 돌입, 이유는? 차인표의 연기 변신이 성공적이었던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차인표의 대표작으로 ‘왕초’를 떠올리실 겁니다. 이 작품에서 차인표는 휘하의 거지떼를 먹여 살리는 상남자 ‘거지왕 김춘삼’ 역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에 대해 그는 ‘천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차인표는 ‘없어 보이기 위해’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고 한달만에 5kg을 감량했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의 삶 차인표의 삶을 쭉 보고 있으면 ‘성공했으면서도 참 겸손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부모를 꼭 빼닮아서 일까요.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아들 차정민 군은 과거 오디션 프로로그램 ‘슈퍼스타K’에 출연해 탈락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 시청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정민 군은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이 좋아서 내가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아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의 삶, 많은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꿈꾸는 삶이 아닐까요.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상선약수/주병철 논설위원

    물이 인간에게 귀중하고 고마운 존재로 인식된 것은 기원전부터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땅, 물, 공기, 불”이라고 했다. 사람이 물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건 제쳐 두더라도 몸의 60~70%가 물인데 무슨 말을 또 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 예찬론’에 인색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순자의 유좌 편에는 ‘물의 덕성’을 일깨우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가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가 큰 강물을 보면 반드시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자가 이내 대답했다. “모든 생물과 함께 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은 덕(德)과 같은 것이다. 그 흐름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모나거나 굽은 것에는 반드시 그 이치를 따르는 것, 그것은 의(義)와 같다. …구덩이에 물을 받아도 반드시 평평한 것은 법(法)과 같다. 수만 번 굽혀도 반드시 동쪽으로 가는 것, 이건 의지(意志)와 같다. 그래서 군자는 큰 강물을 보면 반드시 관찰하는 것이다”. 논어(語) 옹야 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는 유배지인 전남 해남에 은거할 무렵 지었다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물이 가장 으뜸가는 벗”이라고 했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구나…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물 예찬 시인도 적지 않다. 도종환은 ‘멀리 가는 물’에서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라며 물의 아름다운 본성을 노래한다. 임의진의 ‘마중물’, 김영랑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등도 물의 고마움과 변함없음을 전한다 . 사실 우리에게 물은 자연의 혜택과 이치를 넘어 문화 그 자체다. 물은 선비다운 기품, 유유자적한 관조, 청아한 지조 등 유교사상과 맞닿아 있고,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 정화력으로 여겨지며 민속신앙으로까지 뿌리내려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엊그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상선약수’(上善若水) 휘호를 선물했다고 한다. 노자 도덕경의 구절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다. ‘물은 세상의 만물을 다 이롭게 하는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그 누구와도 다투거나 경쟁하는 법이 없으며 모든 이가 싫어하는 자리로 흘러간다’는 구절이 이어진다. 복잡한 국제 정치와 국내 상황을 물의 이치처럼 슬기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는 뜻일 게다. 상선약수의 지혜를 정작 본받고 새겨들어야 할 대상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아닌가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파란띠’ 전문검사 76명 활약… 승복률 높였다

    ‘파란띠’ 전문검사 76명 활약… 승복률 높였다

    수사는 생물이고, 범죄는 진화한다. 검사들이 즐겨 쓰는 이 말 속에는 날로 조직화·지능화하는 범죄에 대한 그들의 고충이 담겨 있다. 마음만 먹으면 중학생도 인터넷 속 정보를 통해 사제 폭발물을 만들고, 공무원 사칭을 넘어 실제와 똑같은 가짜 기관 홈페이지를 만들어 금융 정보를 빼낼 수 있는 시대다. 똑똑해지는 범죄에 맞서 저마다 ‘주 무기’를 갈고닦아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는 검사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대구지검으로 인사 발령이 나서 업무 파악하고 미제(未濟) 사건이 뭐가 있나 검토하는데 한숨이 턱 나오더라고요. 항공기 사고로 인명피해가 났는데 이착륙을 지시한 관제사까지 처벌할 수 있느냐를 놓고 너무 고민이 되는 겁니다. 이게 국내에서는 참고할 사례가 없고, 해외 판례는 우리와 법 체계가 달라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고 발생 3년이 지나도록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 거죠. 사건 기록을 보는데 한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친구 아마 지금도 창원에 있을 겁니다.” 대검찰청의 고위 관계자에게 검사의 수사 전문화를 위한 노력을 묻자 과거 경험담이 돌아왔다. 그가 자신 있게 추천한 ‘특화’된 검사는 경남 창원지검에 근무 중인 이종익(43·사법연수원 35기) 검사다. 이 검사는 전국 각 검찰청에서 수사 좀 한다 하는 검사들 가운데에서도 항공기 사고 분야에서는 1인자로 꼽힌다. 이 검사는 법대 출신 일색의 검찰 조직에서 찾아보기 드문 공대 출신이다. 또 통상 대학 재학 중 또는 졸업 후 사법시험을 통해 임관한 동료 검사들과 달리 민간 기업에 근무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 검찰복을 입었다. ●‘링스헬기 부품 납품 비리 사건’ 등서 빛 발해 이 검사는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 대형 항공사에서 3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그의 이력은 2009년 검사 임관 당시 검찰 내에서 화제였다. 이 검사의 전문성은 초임지인 부산지검 ‘링스헬기 부품 납품 비리’ 사건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부산지검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항공기 정비 지식 등으로 무장한 정비업체 측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피고인들은 변론 과정에서 “링스헬기 등 군 장비를 일부 고장 난 부품으로 고쳤다고 하더라도 군의 성능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법원도 어느 정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검사의 눈에는 곳곳에서 피고인들 주장의 허점이 보였다. 그는 “모든 부품에는 피로수명이 있으며 항공기 정비는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게 아니라 고장 나기 전에 고치는 것”이라며 피고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그 결과 피고인 6명 전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 검사는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3년 검찰이 처음 도입한 ‘공인전문검사’ 제도 인증을 받았다. 인증 이후 3년간 수사에 결론을 내지 못했던 ‘2011년 울진 항공기 충돌 사고’를 맡아 해결했다. 그는 검찰 내 ‘항공기 사고 수사 매뉴얼’, ‘대형 안전사고 태스크포스(TF) 연구자료집’ 발간 등 전문성을 살린 업무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이 검사처럼 저마다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공인전문검사 인증을 받은 검사는 올 상반기까지 모두 76명이다. 범죄 양상의 다양화·전문화에 따른 대응 방안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지 1년 만에 나타난 성과다. ●2013년 첫 도입… 검찰 “모든 검사의 전문화가 목표” 검찰은 2013년 11월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해 올 상반기까지 ▲조세 ▲공정거래 ▲성범죄 ▲해양범죄 ▲증권·금융·보험 ▲인권 ▲선거 등 모두 176개 전문 분야 가운데 55개 분야에서 전문검사를 배출했다. 첫 인증 때 21명을 배출했고 1년이 지나는 사이 수가 2배 이상 늘었다. 공인전문검사 제도는 아직은 시행 초기 단계지만 이 제도를 통해 장기적으로 수사의 큰 흐름과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는 게 검찰의 목표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 자리가 아닌 사건을 통한 검사 전문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런 제도를 마련하게 됐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검사의 전문화가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른바 ‘승진 코스’로 선호되는 특수부·공안부·강력부 등 특정 부서 쏠림 현상을 막고 검사가 특정 자리(부서)에 연연하지 않고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또 개별 검사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쌓는다면 그만큼 범죄 대응 효과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고검장급을 위원장으로 하고 변호사와 부장급 검사 4명, 부부장급 검사 1명, 평검사 2명 등을 위원으로 하는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연 2회에 걸쳐 전문검사 인증을 하고 있다. 전문검사는 다시 구체적인 실적이나 전문지식 등에 따라 ‘검은띠’(1급)와 ‘파란띠’(2급)로 나뉘는데, 지금은 모두 파란띠에 해당한다. 최초 인증 때 2급을 준 뒤 해당 분야 지식이나 실무경험이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재심사를 통해 1급으로 인증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땐 유학 중인 검사 호출 지난해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때에도 전문검사가 투입됐다. 검찰은 당시 캐나다 유학 중이었던 유경필(44·33기) 검사를 급히 불러 이 대규모 해양 참사를 맡겼다. 유 검사는 선박사고·해양범죄 전문이다. 목포 해양대 석사 출신으로 한국해양대 해상보험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앞서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해군 고속정·어선 충돌 사고 등 다양한 해양 사건·사고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 캐나다에서 광주지검 목포지청으로 합류한 유 검사는 세월호의 복원력 실험을 위해 선박 무게, 선적량, 탑승 인원 등 증거자료를 수집해 한국해양연구원에 넘겼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다. 기업 비리나 증권범죄 수사에 핵심인 회계분석 전문검사도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에서 근무 중인 박성훈(43·31기) 검사는 사법시험에 앞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중 사법시험 공부를 병행했고 검사로 임관된 이후 각종 수사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중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프라임저축은행 비리 사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굿모닝시티 윤창열 회장 비리 사건 등의 회계분석은 모두 박 검사의 손을 거쳤다. 공인전문검사 인증 이후에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 합류해 증권시장의 구조적·고질적 비리를 척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식의약품 관련 사건 전담 검찰청인 서울서부지검에는 숙명여대 약학대학원 독성학 과정에 이어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류동호(45·31기) 검사가 있다. 식품안전 분야 공인전문 인증을 받은 류 검사는 식품의약안전처 초대 파견검사로, 친환경 농산물 허위인증 사건, 크라운제가 식중독 웨하스 사건, 동서식품 불량 시리얼 제조 사건 등 식품안전 분야 관련 사건을 도맡아 해결했다. ●무죄율 절반으로 낮아져… 검사 전문화 성공적 안착 사건별로 전문검사 투입 효과는 재판 결과에서 드러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문검사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문검사 처리 사건의 무죄율은 1.1%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2.0%)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불기소처분 등에 불복한 항고율도 같은 기간 검찰 전체로는 14.0%였지만 전문검사는 5.5%에 불과했다. 검찰은 검사 전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판단, 검찰 수사관의 전문화도 빠르게 추진할 방침이다. 대검 관계자는 “일부 엘리트가 아닌 모든 구성원의 전문화가 검찰의 기조”라면서 “전문성 및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해 검찰 수사관의 전문화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노동개혁은 일자리다] 돌아온 김대환 “노사정 대타협 이룰 것”

    [노동개혁은 일자리다] 돌아온 김대환 “노사정 대타협 이룰 것”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 무산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던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4개월 만인 7일 복귀하면서 “공(功)은 우리에게 돌리고, 책임은 나에게 돌리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문구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며 대타협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어제 대통령께서 전화를 걸어 노사정위원장의 소임을 끝까지 수행해 달라고 당부와 요청을 한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최선의 방법은 노사정 대타협”이라면서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두 가지 쟁점(취업규칙 변경, 해고 요건 완화)은 장외에서 논의되기 힘든 문제”라며 노사정 대화의 장에서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4월까지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대화가 재개되면)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노사정 대화 재개 시 논의 의제에 대해서는 “지난 4월까지의 논의 내용을 토대로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를 이어 갈 생각”이라며 “대타협 시한은 노사정 대화 재개 이후 노사정 합의로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복귀로 노사정위는 중단됐던 노동시장 이중구조개선특위를 조만간 재가동하고 노사정 대표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대화 재개를 위한 물밑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다음주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노사정 대표자를 따로 만나 협상 재개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김동만 위원장과 김대환 위원장이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만남까지 거부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사용자에 의한 자유로운 해고와 근로조건 침해 등이 가능한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철회 없이 대화 복귀는 없다는 기존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두 사안의 철회에 걸맞은 대안을 내놓아 한국노총이 대화 테이블에 앉게 될지 주목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정위가 조속한 시일 내에 가동될 수 있도록 노동계도 최대한 빨리 복귀해 현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8년 만에 내한’ 스콜피언스 “팬들과 50년… 스틸 러빙 유”

    ‘8년 만에 내한’ 스콜피언스 “팬들과 50년… 스틸 러빙 유”

    “50년 동안 팬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특별한 기회죠.”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록그룹 스콜피언스가 7~9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8년 만에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스콜피언스는 올해 초 5년 만에 새 정규앨범 ‘리턴 투 포에버’를 발매했으며 유럽, 중국 등을 경유한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6일 열린 기자회견에는 루돌프 솅커(기타), 마티아스 잡스(기타), 클라우스 마이네(보컬), 파월 마시워다(베이스), 제임스 코택(드럼) 등 멤버 다섯 명이 모두 참가했다. 몇몇 멤버는 환갑을 넘겼지만 검은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한국에는 우리의 고정 팬들이 많고, 2007년 방한했을 때 크게 환영해 줘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한국에 다시 오게 돼 자랑스럽고 스콜피언스의 명곡들을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게 돼 기쁩니다.” 1965년 기타리스트 루돌프 솅커를 중심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결성된 스콜피언스는 록 발라드 ‘홀리데이’, ‘스틸 러빙 유’, ‘윈드 오브 체인지’ 등의 히트곡으로 전 세계에서 1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는“50주년을 넘긴 밴드는 롤링스톤스나 비치보이스 등에 불과하다”며 “스콜피언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50년이 지나도 우정이나 팀워크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스콜피언스는 2010년에 2~3년간 월드투어를 진행한 뒤 해산한다고 밝혔으나 이를 번복하고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을 하며 느끼는 희열을 놓을 수 없었어요. 아직 팀 안에 창의력과 에너지가 살아 있고요. 그래서 끝내기엔 아직 이르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최지숙 기자의 돈되는 행정정보] 홍보는 돈 많은 기업들만? 꿈 많은 소상공인엔 무료!

    가게 홍보를 해야 되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분들 많으시죠. 홍보물 디자인부터 제작·부착까지, 처음 하기에는 과정상 어려움도 많은데요. 비용 때문에 또는 방법을 몰라 홍보를 못하는 영세상인과 공익 단체를 돕고자 서울시가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시는 오는 9월 1일까지 ‘희망광고’ 소재를 모집합니다. 영세한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과 장애인 기업, 여성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비영리법인·단체가 그 대상입니다. 선정되는 기업 및 단체는 전문 광고회사인 ‘이노션월드와이드’로부터 홍보물의 디자인 시안을 재능 기부받고요. 시로부터는 인쇄물 및 영상물 제작을 지원받게 됩니다. 이렇게 제작된 홍보물은 시가 곳곳에 보유하고 있는 약 6900면의 홍보매체에 실리는데요. 전 과정이 무료로 진행됩니다.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 2·3호선을 위주로 출입문 상단, 승강장 안전문, 전동차 내 모니터 등에 우리 가게 광고가 게재되니 홍보 효과도 클 것으로 보입니다. 공모 소재에는 제한이 있는데요. 성공적 창업 스토리로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만한 내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봉사, 기부활동 등 공익성이 있는 사연이면 됩니다. 희망광고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시민 공익활동 지원을 위해 2012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현재까지 총 9차례에 걸쳐 160개 단체를 선정했고요. 업체당 5000만원 정도의 예산 지원 효과가 있다는 게 시의 분석입니다. 시민들은 재능 기부를 받아 홍보물을 무료로 제작할 수 있으니 좋고, 시 차원에서는 나눔·기부 문화를 조성한다는 목적이 있죠. 소재 공모에 제출된 내용은 ‘시민 공익광고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됩니다. 9월 중순쯤 최종 15개 단체를 선정하고요. 뽑히면 오는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약 3개월간 무료 광고가 가능합니다. 응모 절차 등 자세한 내용은 ‘내 손안의 서울’ 홈페이지(mediahub.seoul.go.kr)의 공모전 코너를 확인하세요. truth173@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11]=항생제의 두 얼굴(1)

     만약에 항생제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지금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배적인 위상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인하다 해도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으면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소리를 내지도 않는 유령같은 침략자들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바로 세균(germ)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콜레라가 한번 창궐하면 전국에서 한꺼번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멸종’을 떠올릴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멀쩡하던 사람이 픽픽 자빠져 나가는데, 대책은 없으니 엉뚱하게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도성 한양에는 괴질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에 내몰려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아들이 늙은 부모를 잡아먹고 연명을 했다’는 기록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전하거니와 이를 어찌 전쟁의 참화에 비기겠습니까.   ●세균이 왜 무섭나고요?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신동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영조 연간인 1730년에 수도 한양 일대에 역병이 퍼져 무려 1만 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여만 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스무 명 중 한 명은 숨진 셈이지요. 이 역병은 홍역으로 추정되는데, 홍역이야 바이러스가 원인이니 그렇다 치고, 일반적인 세균에 의한 대표적 질병인 콜레라는 어땠을까요.  역시 신동원 박사의 저서인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에 따르면, 콜레라(세균 모양은 사진 참조)가 처음 조선에서 유행한 것은 1821∼1822년으로, 사서에는 ‘신사년 괴질’로 기록돼 있습니다. 1821년(순조 21년) 8월 13일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설사와 구토를 한 후 비틀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열흘 안에 1000여 명이 죽었는데, 병에 걸린 10명 중 한둘을 빼고는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괴질의 특징은 ‘심한 설사와 탈수로 인한 쇼크’였답니다. 또 “전염되는 속도가 불이 번지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는 그 전파 속도를 “바람처럼 일어나 조수처럼 퍼져 항우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보다 더 빨랐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이 콜레라 유행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콜레라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유행을 했는데, 1858년 유행 때는 50여만 명이 죽었고, 1886년, 1895년에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다산 정양용은 이 신사년 괴질에 관한 기록을 ‘목민심서’에 남겼는데 “도광 원년 신사년 가을에 이 병이 유행했다. 10일 이내에 평양에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요, 서울 성중의 오부에서 죽은 자가 13만 명이었다. 증상은 혹 교장사(攪腸沙) 같기도 하고 전근곽란 같기도 한데, 치료법을 알 수 없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다’는 기록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콜레라가 어찌 그 때에서야 처음 나타났을까만,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괴질 정도로만 기록된 것도 있어 정확한 병명은 추정할 뿐인 사료도 있고, 잃어버린 자료도 무척 많으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죽었길래…  우리나라에서 콜레라는 1660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위력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국가 인구통계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79차례의 역병 기록이 전하는데, 이 중에서 한번에 10만명 이상 죽어나간 경우도 여섯 차례나 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05, 청년사)에 따르면, 어떤 해에는 전국에서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7∼8%나 되는 규모였습니다. 요즘 인구로 치자면 350만∼400만명쯤 되는 수치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병으로 나자빠지니 인구 동향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지요. 1807년 조신 인구는 756만 146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후 역병이 집중적으로 돌아 28년 뒤인 1835년에는 661만 5407명으로 잡힙니다. 약 100만명 정도가 줄었는데, 이 기간에 큰 전화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역병과 이에 따른 기근이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정도의 인구 감소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보다 큰 규모이지요. 조선왕조실록은 “구할 방도가 없다”는 기막힌 기록으로 그 때의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미군 병영에서 시작된 독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요. 이 바이러스가 제 1차 세계대전 참전병들이 귀환할 때 옮겨져 이후 한 달만에 미군 2만 4000명을 포함해 미국에서만 50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에서만 15만명이 죽는 등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최대 5000만명이 죽었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이 중 14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유행한 바이러스가 요즘 자주 듣는 ‘H1N1’형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항생제의 발견이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세균이 있는 곳에 항생제가 있다  아무튼, 파스퇴르가 세균의 실체를 알아내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다진 이후 인류는 귀신이나 마귀의 장난이라고 여겼던 이전의 무지몽매한 전염병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파스퇴르가 이룬 과학적 업적이 우리나라로 전파돼 괴질이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특정 질병의 예방책으로 활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파스퇴르가 예방용 접종을 위해 세균으로 만든 약을 뜻하며, 예방접종을 ‘vaccination’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그 전에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해 인류를 천연두의 공포에서 구했지만, 임팩트가 파스퇴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후 수많은 세균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냈고, 인류는 이런 세균들을 제압할 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처방되고 사용된다는 항생제입니다. 어떻게 해서 ‘생명체에 맞선다’는 뜻의 항생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의 항생제를 만들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이후 ‘항생제의 역사’가 곧 ‘문명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질병 치료에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인명 살상 뿐 아니라 각종 세균을 전파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이후, 항생제는 그 위력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합니다. 세균이 세포분열을 할 때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균작용을 하는 페니실린류에서 시작해 세팔로스포린류,병원균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도록 만들어진 아미노글리코사이드류와 테트라사이클린류, 세균의 DNA에 작용하는 약제로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퀴놀론류 등 병원성 세균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항생제가 속속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항생제들은 매독을 비롯해 디프테리아, 결핵,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왔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성균의 출현입니다.  [다음 주에 게재될 ‘항생제의 반란-2’에서 계속됩니다.]  jeshim@seoul.co.kr
  • 그것이알고싶다 세모자, 배후로 지목된 무속인 “죄 있다면 여기 못 왔죠” 억울함 호소

    그것이알고싶다 세모자, 배후로 지목된 무속인 “죄 있다면 여기 못 왔죠” 억울함 호소

    그것이알고싶다 세모자, 배후로 지목된 무속인 “죄 있다면 여기 못 왔죠” 억울함 호소 ‘그것이알고싶다 세모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세 모자 성폭행’ 사건의 배후에 감춰져 있던 진실을 파헤치고 세모자를 구하기에 나섰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는 8월1일 방송에서 ‘세모자 성폭행 폭로 사건’과 관련한 두 번째 이야기를 공개한다. 앞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지난 25일 방송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을 밀착 취재하며 세 모자가 주장하고 있는 ‘성폭행 사건’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제작진은 이들 세 모자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무속인 김씨가 실제로 세 모자를 조종하는지 여부를 추적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무속인 김 씨를 만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제작진은 무속인 김 씨가 살던 동네 경비원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도 이곳에 살지 않는다”라고 말하라며 무속인 김씨가 미리 언질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5일 무속인 김씨는 1편 방송 당일에 나타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내가 진짜 죄가 조금이라도 있고요, 사기라도 조금이라도 쳤으면 내가 여기 못 왔어요. 진짜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억울하다는 무속인 김 씨의 호소와는 달리 그녀와 관련된 의혹은 곳곳에서 제기됐다. 제작진은 과거 김 씨와 지냈던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김 씨와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세 모자가 무속인 김 씨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취재 내내 왜 두 아이들마저 거짓 폭로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졌다. 세 모자, 이들은 과연 거짓 폭로를 멈추고 평범한 가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1일) 토요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세모자 사건’의 배후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공개된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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