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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규 기자의 스포츠 잡스] 신태용의 ‘베스트 11’은

    [최병규 기자의 스포츠 잡스] 신태용의 ‘베스트 11’은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가 최대 관건부상병동 포백라인은 ‘오리무중’대한민국 월드컵 출전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을 일궈낼 ‘베스트 11’은 누구일까. 한 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48)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FIFA 랭킹 61위인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에서 랭킹 1위인 ‘전차군단’ 독일을 비롯해 ‘북중미 최강’ 멕시코(랭킹 15위), 유럽의 강호 스웨덴(23위)까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힘겨운 상대와 16강 진출을 놓고 싸워야 한다. 한국은 독일과 역대전적에서 1승2패로 밀려있고, 스웨덴과는 2무2패로 이긴 적이 없다. 그나마 멕시코와는 4승2무6패로 어느 정도 대등한 모양새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은 F조에서 최약체다. 이는 도박사들이 먼저 인정하고 나섰다. 영국 베팅업체인 윌리엄힐은 대회 조별리그 F조 경기를 전망하면서 한국과 스웨덴의 1차전 경기에 대해 한국의 배당률을 12/5(2.4배)로 책정했다. 반면 스웨덴은 11/10(1.1배)이었다. 분자가 분모보다 작을수록 적중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한국이 이긴다는 것에 1만원을 걸었다면 원금을 합쳐 3만 4000원을 받을 수 있다. 스웨덴의 승리에 베팅했다면 원금 포함 2만 1000원을 받는다. 한국과 멕시코의 2차전에 걸린 한국의 배당률은 27/10(약 2.7배)였고, 한국-독일의 3차전에는 한국의 승리에 무려 11/1(11배)의 배당률이 책정됐다. 한국이 독일을 꺾는다는 데 1만원을 걸면 원금 포함 12만원의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인느 사실상 한국이 이길 확률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신태용호는 ‘볼은 둥글다’는 축구의 격언처럼 ‘러시아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상대 팀 전력 분석을 통한 최적 전술을 마련하는 게 필수이고, 상대팀별 최강의 ‘베스트 11’을 빨리 꾸리는 것이 첩경이다.신 감독은 14일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최종엔트리를 결정한다. 부상자들의 상황을 지켜보는 차원에서 23명의 엔트리 이외에 ‘+알파’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신 감독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무릎), 김민재(전북·정강이뼈 골절), 김진수(전북·무릎), 염기훈(수원·갈비뼈 골절) 등 핵심급 선수들이 잇달아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게 걱정거리다. 신태용호 ‘전술’의 핵심은 최전방에서 투톱 스트라이커를 맡을 수도 있고, 좌우 측면에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손흥민(토트넘)의 결정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짜는 것이다. 손흥민은 득점뿐만 아니라 도움 능력도 갖췄다.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 29개(18골·11도움)를 달성했다. 그래서 4-4-2를 주요 전술로 즐겨쓰는 신 감독에게 손흥민과 투톱 호흡을 맞출 파트너를 누구로 낙점할 지가 최대의 관심거리다. 현재로는 오스트리아 무대에서 뛰는 ‘황소’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유력하다. 결정력은 물론 저돌적인 돌파가 특징인 황희찬은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역할에 능해 손흥민과 최적 투톱 조합이 예상된다. 손흥민과 황희찬의 백업 스트라이커 자원으로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전북)과 베테랑 이근호(강원)가 버티고 있다.다만 왼쪽 날개는 걱정이다. 왼쪽 공격수 염기훈이 갈비뼈 부상으로 전치 4주를 받은 상황에서 이렇다 할 왼쪽 자원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대표팀의 2선 공격자원은 프랑스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권창훈(디종)을 비롯해 이재성(전북), 구자철, 이창민(제주) 등이 있다. 왼쪽 날개가 원활치 않으면 손흥민이 투톱 대신 왼쪽 날개로 이동하고, 황희찬이 김신욱 또는 이근호와 투톱 스트라이커를 맡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최근 소속팀에서 투톱 스트라이커까지 맡은 권창훈의 전격적인 투입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재성이 오른쪽 날개를 맡을 수 있다. 오른쪽 날개 백업 요원으로는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도 거론된다.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스완지시티)은 붙박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이 서는 ‘더블 볼란테’의 기성용 파트너로는 정우영(빗셀 고베)과 이창민이 있다. 가장 고민거리는 포백라인이다. 신태용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데다 부상이 엎치고 덮쳤기 때문이다. 왼쪽 풀백 김진수와 중앙 수비수 김민재의 복귀 시기가 변수다. 김진수의 대안으로는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한 박주호(울산)가 거론되는 가운데 김민우, 홍철(이상 상주)도 경쟁구도를 펼치고 있다. 오른쪽 풀백은 이용(울산), 최철순(전북), 고요한(서울)이 경쟁하고, 골키퍼는 김승규(빗셀 고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조현우(대구) 체제가 굳어졌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겨도 집에선 바둑 얘기 안 해… 이젠 살림도 9단”

    “이겨도 집에선 바둑 얘기 안 해… 이젠 살림도 9단”

    “운이 좋았죠. 올해 첫 대회인 JTBC 챌린지 매치에서 우승한 게 좋은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나이로 이립(而立·30)이다 보니 이젠 한판 한판이 소중하더라고요.”올해 ‘제2 전성기’를 열고 있는 김지석(29) 9단은 10일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있고 가장의 책임도 느낀다”며 승승장구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엔 5년 만에 국가 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우승을 일궜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마음에) 아직 전성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세계 바둑계는 10대 후반과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 성적을 내고 있다. 김 9단도 어느새 상위 10%에 드는 선배 기사다. 체력과 관련해서는 “유도와 배드민턴으로 몸 관리를 하는데 최근엔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바둑은 다른 종목처럼 몸을 쓰는 게 아니어서 건강 관리를 잘하면 (나이 들어서도)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슬럼프를 거치며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2015년 LG배 결승에서 박정환(25) 9단에게 진 뒤 침체된 모습이었다. “당시엔 많이 초조했던 것 같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여겨서인지 빨리 회복해 잘하려고 했던 게 악순환을 거듭했다.” 2016년엔 심리 상담도 받았다.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을 자주 걸고, 대국 상대에게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인의 내조도 살짝 귀띔했다. “큰 대회든 , 작은 대회든, 우승하든, 아쉽게 졌든 집에선 바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수고했다’는 게 전부다. 결과에 일희일비하면 (제가)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서 그런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가장 껄끄럽게 느껴지는 상대를 묻자 그는 박 9단과 판팅위(22·중국) 9단을 꼽았다. 박 9단에 대해서는 “(나보다) 잘 둔다. 가끔 실수도 한다는데 저하고 둘 때는 평소보다 훨씬 잘 둔다”고 웃었다. 김 9단은 최근 속기 대회인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박 9단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해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판 9단에 대해서도 “잘 무너지지 않는 스타일이다. 침착하게 기다리는 스타일인데, (그래서) 결국엔 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털어놨다. 상대 전적 1승5패다. 자신의 바둑 스타일을 놓고는 좀 이색적인 의견을 내놨다. 그는 “주변에선 공격적이라고 하는데 공격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상황이어서 그랬다. 물론 밋밋한 집 바둑보다 돌들이 얽혀 있는 게 편하긴 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목표로는 “춘란배나 삼성화재배, LG배 등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사활과 수읽기 관련 책 ‘시크릿’을 펴냈다. “(제가 만든) 사활 문제들을 엮었는데 바둑 팬들에겐 어려울 수 있다. 연구생이나 프로를 지향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고 웃었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AI) ‘엘프 오픈고’ 대결을 둘러싸고는 “이기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두면 어렵다. 그래도 얻는 게 많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예능 달인 유재석도 허우적…가상현실 매력 빠져보세요”

    “예능 달인 유재석도 허우적…가상현실 매력 빠져보세요”

    “예능 달인인 유재석씨조차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더라고요. 멤버들도, 시청자들도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만 지켜보면 점점 몰입하는 시간이 빨라질 거라고 믿어요.”세계 최대 규모의 동영상 플랫폼이자 콘텐츠 제작사인 넷플릭스의 국내 첫 오리지널(자체 제작) 예능 ‘범인은 바로 너!’의 조효진(오른쪽·42)·김주형(왼쪽·41) PD를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났다. 지난 4일 전 세계 190개국에 1~2회가 동시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 내며 온라인을 달궜다. 조 PD는 “시청률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반응을 본다는 게 우리도 굉장히 신기하다”면서 “새로운 도전인데도 반응이 많아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 10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을 비롯해 이광수, 김종민, 안재욱, 박민영, 엑소 세훈, 구구단 세정 등 7명이 탐정단으로 변신해 매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런닝맨’, ‘무한도전’ 등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 추리극을 결합한 게 특징이다. 이번 제작은 ‘런닝맨’ 등을 통해 한국식 버라이어티 예능에 관심을 두고 있던 넷플릭스가 먼저 제작진에게 연락해 성사됐다. 넷플릭스는 조 PD가 전달한 ‘덤 앤드 더머 디텍티브’ 기획안을 보고 사흘도 안 돼 제작을 결정했다. 조 PD는 “‘범인은 바로 너!’는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90년대 유행하던 ‘대항해시대’라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멤버들을 가상현실에 투입된 플레이어로 생각하고 추리 게임극을 진행하는 아이디어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방송된 가면무도회장의 예고 살인(1회)와 같이 가상 상황을 경험하는 멤버들의 실제 반응을 통해 리얼 버라이티를 구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가 잘 드러나지 않고 연기가 어색하다는 지적부터 추리극인데도 추리가 빈약하다는 평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PD는 “추리라는 소재에 집중하느냐,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포맷에 집중하느냐를 놓고 고민을 했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예능에서 많이 쓰는 자막도 당초 넣었다가 가상현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뺐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스타일의 예능은 100% 사전 제작이라는 점, 시청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양한 도전이 기대된다. 하지만 TV만 틀면 볼 수 있는 방송 예능과 달리 시청자가 넷플릭스에 가입해 유료 구매를 통해 프로그램에 접근하는 만큼 제작 부담감이 큰 게 사실이다. “이제는 폭넓은 인기를 얻으려고 하기보다 시청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입할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다양한 장르물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실험도 계속될 겁니다.” 두 PD가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전망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한석준 아내 임신 “마흔넷에 예비아빠..오상진 예언 적중”[전문]

    한석준 아내 임신 “마흔넷에 예비아빠..오상진 예언 적중”[전문]

    방송인 한석준이 아빠가 된다.한석준은 10일 자신의 SNS에 “절친한 동생이 배냇저고리를 선물해줬다. 아내와 둘이 그 옷을 보며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 옷을 입고 내 품에 안겨있을 아이를 상상했다”며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너무너무 즐거웠다. 결혼을 준비하는 일도 엄청 신나서 할 수 있었다. 3개월째는 입덧이 아주아주 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 하루하루 너무나 새롭고 감사하다. 올해 나이가 마흔 넷이다. 작년에 ‘어쩌면 이번 생엔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이 슬펐다. 그런데 늦가을 초겨울이면 아이가 태어난다. 내 아이가 보고 싶다”면서 예비아빠가 된 심경을 밝혔다. 이어 “언젠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오상진이 한 말이 예언이 됐다. 전현무보다 먼저 결혼하고 애도 먼저 생길 것 같다고. 예언자 상진아, 이번 주 로또 번호는 뭐니?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한석준은 지난 4월 6일 12살 연하의 사진작가와 1년 여간 교제 끝에 결혼했다. 2003년 KBS 29 공채 아나운서로 데뷔한 그는 2015년 프리랜서로 전향해 활동 중이다. <이하 예비아빠 한석준이 남긴 글 전문> 안녕하세요 한석준입니다. 얼마전 절친한 동생이 배냇저고리를 선물해줬습니다. 아내와 둘이 그 옷을 보며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옷을 입고 내 품에 안겨있을 아이를 상상했죠. 놀라셨죠? 그동안은 너무 초기라 가급적 말을 안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어떤 기자님께 전화가 왔어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중이라, ‘지금 통화 어렵습니다. 매니저와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말씀 드렸어요. (혹시라도 제 말이 기분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왠지 퉁명스럽게 얘기한거 같아서요. 병원이어서 조용히 말하다보니...) 그러고나서 회사와 이야기 하신 후 기사를 쓰셨더라고요. 좋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제 아내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일도 엄청 신나서 할 수 있었고요. 3개월째는 입덧이 아주아주 심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됐습니다. 하루하루 너무나 새롭고 감사합니다. 제 처갓집도 엄청 좋아하십니다. 저희 부모님도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올해 제 나이가 마흔 넷입니다. 작년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생엔 난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이 슬펐었습니다. 늦가을 초겨울이면 아이가 태어납니다. 다들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거다’라고 하시지만, 내 아이가 너무너무 보고싶습니다. 어서 빨리 그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나혼자산다’에서 상진이가 한 말이 예언이 됐어요. 제가 현무보다 먼저 결혼하고 애도 먼저 생길 것 같다고. 예언자 상진아, 이번주 로또 번호는 뭐니?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슬퍼지기 일보 직전

    퇴근 시간 삼십여 분을 앞두고 그 어르신은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는 어르신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인 듯 했다. 맨 발에 앞코가 막힌 낡은 고무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들어왔는데,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어르신의 발뒤꿈치는 거칠었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했다. “아가씨야, 동에 가믄 그 무슨 카드인가 맹글어 준다카든데, 나도 그거 하나 맹글어 도.”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를 그 무엇을 받으러 동 주민센터에 들르는 어르신이 하루에 대여섯 명은 되었다. 동 주민센터에서 만들어 주는 카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복지카드, 다자녀 카드, 문화누리카드, 바우처 카드 등등. 어찌나 많은지 나도 다 몰랐다.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주민들이 오면 우선, 나이와 동태를 살핀 후 핵심 단어를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질문을 유도했다. 가령, “자녀가 몇 명입니까?” 라던가, “어디가 불편하세요?” 등등. “어떻게 오셨습니까?” 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로 시작하는,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딱한 사연을 처음부터 들어줘야 했다. 자기연민이 가득한 이야기의 첫 운을 떼지 못하도록 요령껏 질문해야만 그들이 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중간에 끊으면 대단히 언짢아했다. 그건 누구라도 그럴 일이었다. 그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않으면 심지어 불친절 공무원으로 신고 당하기 일쑤라,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당사자들로서는 결코 ‘그렇고 그런’ 사연이 될 수 없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루에 두어 번, 한 달에 열 번쯤, 일 년에 백 번쯤 듣다보면 나로서는 그 이야기들이 죄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26년째 근무하고 있으니. “옆집 할매가 동에 가믄 뭐를 해 준다 카든데, 나도 신청하믄 된다 케서 왔다. 카드(card)라던가?” 어르신은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목소리가 자신의 발뒤꿈치 같았다. “내가 시집 올 때만 해도 목소리가 안 이랬는데 느그 시아버지하고 살면서 이래 됐다이� � 시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고생을 하면 발뒤꿈치처럼 보이는 곳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울대, 말하자면 목소리까지도 쩍쩍 갈라진다는 건 사실 같기도 했다. 나를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거의 비슷했으니까. “카드를 만들어 놓으면 그쪽으로 매달 7만원이 들어 온다 카든데...” 문화누리카드(국민기초수급자에게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급해주는 1년에 7만원이 충전되어 있는 카드)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 1년에 7만원이 충전되는 카드예요. 올 11월까지는 다 쓰셔야 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이고 7만원이나? 고맙습니데이, 돈 준다 카는데 얼마든지 기다려야지. 이모, 이모는 얼굴도 뽀얗고 참 예쁘데이.“ “할머니, 한 달에 7만원이 아니고 1년에 7만원입니더.” “알긋소. 아이고 고마버래이.” 할머니의 표정이 금방 화색이 돌며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졌다. 나는 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할머니의 인적사항을 PC에 입력했다. “근데, 보소. 내가 이모라 카고 예쁘다 ?는데 와 대답이 없능교. 나는 이런데 오믄 절대로 싫은 소리 하거나 고함 안 지른데이... 그래서 아가씨아가씨 안하고 이모이모 한다이가. 근데 와 대답이 없소?” 나는 순간 ‘아가씨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할머니에게 “아가씨”란 성매매여성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아예...할머니 고맙습니다.” 했다. 80세가 넘은 분이 나에게 이모라 부르는 것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아 웃음이 났다. 나는 웃음을 참고 발급한 카드를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할머니, 이 카드는 시내 버스나 지하철 말고예, 고속버스나 기차 탈 때 쓰면 됩니더. 비행기도 되고예.” “뭐라꼬?” “기차 타거나 고속버스 탈 때 사용하시면 된다고예” “기차라?나? 나는 영세민이라서 기차 탈 때는 돈 안낸다. 그것도 안즉 몰랐나?” “할머니, 지하철 탈 때는 돈 안내지만 기차 탈 때는 영세민도 돈을 내야 되는데예....” “뭔 소리 하노..나는 이 때까지 기차 탈 때 한 번도 돈 내고 탄 적 없다.” 할머니는 “한 번도”를 말할 때 목젖을 꾸욱 눌러 강하게 말했다.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똑같은 대화가 서너 번 오갔다. 할머니와 나의 대화를 지켜보던 동 주민센터 방문객 한분이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긋해졌던 할머니 목소리가 다시 쇳소리로 변했다. “그라모 기차 탈 때 말고 또 어디에 쓸 수 있노?” 내가 어르신들에게 이 카드를 발급해주면서 가장 난처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 카드는 기차나 고속버스 탈 때 외에는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어르신들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다시 한 번 다그쳤다. “할머니, 이 카드는 책 살 때, 영화 볼 때, 연극 볼 때 쓰는 거라예.” “뭐라카노.” “책요 책, 책 살 때 이 카드 쓰시라고요. 아니면 영화를 보러갈 때, 연극 보러 갈 때. 그리고 놀이공원 알아요? 놀이공원 갈 때요.” “크게 쫌 말해라. 안 듣긴다.” “책요 책, 그라고 영화 보러 갈 때요, 놀이공원 갈 때나....” 나는 슬리퍼를 신은 할머니가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옆에 서 있던 방문객도 똑같은 장면을 떠올렸는지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쌩하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구만 괜히 왔네.” 영화나 연극을 보시라, 놀이 공원에 가시라고 안내할 때 이것이 웃을 일은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짧고 씁쓸한 웃음 뒤엔 곧 슬퍼지리라는 것까지. 하지만 웃음이 났다. 할머니는 앞코가 막힌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절름거리며 동 주민센터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서 밖을 향해 냅다 욕을 쏟아냈다. 쇳소리가 났다. 슬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부처님오신날이 멀지 않았다. 불자든 아니든 절집을 찾을 때다. 수많은 절집 가운데 어디를 찾아야 할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도전하고 있는 절집을 고려하는 건 어떨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 사찰은 경북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경남 양산 통도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충남 공주 마곡사 등이다. 이름만 들어도 자부심이 충만해지는 절집들이다.일곱 산사 가운데 부석사, 법주사, 통도사, 대흥사 등 4개 사찰은 등재가 확실시된다. 반면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등은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결과는 올 7월 초 바레인에서 나올 터. 아무렴 어떠랴. 세계유산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우리에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보물 사찰’이다.역사가 오래되고 명성이 자자한 만큼 일곱 산사가 품은 문화재도 다양하다. 국보가 가장 많은 절집은 부석사다. 한국 목조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무량수전(18호)을 비롯해 무량수전 앞 석등(17호), 조사당(19호), 소조여래좌상(45호), 조사당 벽화(46호) 등 모두 5개의 국보가 있다.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처음 지어졌다.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고려 우왕 2년(1376)에 재건됐다. 이어 1916년 대대적인 해체·수리 공사가 이뤄졌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빼어난 비례미가 일품이다. 소조여래좌상은 무량수전 안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이다. 조사당은 우왕 3년(1377)에 세워졌다. 개창 조사인 의상 대사의 초상화가 있다. 조사당 벽화는 불법의 수호신인 법천과 제석천, 사천왕을 그린 그림이다.법주사도 ‘보물 사찰’로 불린다. 부석사 다음으로 많은 3개의 국보가 있다. 목탑 형태의 팔상전(55호)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덧대 짜맞췄다. 그 기술이 워낙 뛰어나 한 부분이 소실돼도 나머지는 끄떡없다고 한다. 팔상전 뒤엔 쌍사자석등(5호)이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석등을 받치고 선 모양새다. 연꽃 모양의 석연지(64호),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확, 독특한 모양의 희견보살상, 바위에 새긴 마애여래의상 등 경내에 독특한 볼거리가 많다. 마당에는 높이 33m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세워져 있다. 한때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행하는 의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관람객을 굽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고요하다. 봉정사는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을 품은 절집이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어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확인됐다.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과 배흘림기둥,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이라는 극락전 앞마당의 삼층석탑 등 익히 알려진 볼거리들이 많다. 조선시대 전기에 지어진 대웅전(311호)은 내부에 단청이 잘 남아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저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 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고 적었다. 그러니 겉만 대충 훑을 게 아니라 목을 빼고 극락전 내부를 살필 일이다.대흥사는 고려시대 마애불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308호)이 국보다. 다만 대웅전 뒤 급한 산길을 1㎞ 가까이 걸어 올라야 한다.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장춘(長春)숲길이다. ‘명품’이라 부를 만한 숲이 4㎞ 정도 이어진다. 요즘엔 문재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했던 요사채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 안에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으나 방문 요청이 쇄도하면서 안거 기간을 제외하고 개방하고 있다. 주말이면 ‘대통령 특별한 기운’을 받으려는 발걸음으로 북적댄다고 한다. 서산대사 등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도 인상적이다. 통일신라 시대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탑의 양식을 볼 수 있다. 절집 초입에 있다.통도사는 대웅전과 대웅전 뒤편의 금강계단(290호)이 국보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사찰로도 불린다. 은입사동제향로(보물 334호), 봉발탑(보물 471호) 등도 볼 만하다.선암사와 마곡사에는 국보가 없다. 그렇다고 볼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선암사 진입로에 있는 승선교(보물 제400호)는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돌다리다. 건축 기법이 매우 정미하다. 각황전, 무우전 등 오래된 전각과 돌담 등의 운치도 빼어나다. 선암사엔 모두 14개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다. 마곡사의 신록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마곡사는 주차장 입구에서 경내까지 1㎞ 정도 이어진 진입로가 아름답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찬찬히 엿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오층석탑, 백범 김구 선생이 기거했던 백범당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특히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등 절집의 중심 건물이 두 곳인 점이 이채롭다. 절집 주변으로 백범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마곡사엔 모두 5개의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시스템에 복종 ‘합리화’의 민낯…자기모순에 빠진 보통 사람들

    시스템에 복종 ‘합리화’의 민낯…자기모순에 빠진 보통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을 한다. 예컨대 조직의 부패를 눈 감거나 옹호하는 극단적인 타협일 수도 있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개인은 그래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데 능숙해진다.소설가 편혜영(46)이 전작 ‘홀’ 이후 2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편혜영은 8일 “겉으로 봤을 땐 윤리적이지만 이익 집단과 다를 바 없는 병원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의료진이 아닌 행정직 직원들을 등장인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구매과 직원이었던 주인공 무주는 리베이트를 챙기다 소도시의 병원으로 쫓겨난다. 그는 새로 옮겨 간 병원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된다. 무주는 이석이 3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 때문에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무주는 평소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이석을 고발해야 할지 고뇌한다. 스스로 “순도 높은 정의감과 도덕심”을 가졌다고 여기는 무주는 곧 태어날 아이 앞에서만은 떳떳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의 비리를 고발한다. “무주는 자신의 행동을 시스템에 복종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계속 모순에 빠지는 인물이죠. 어떤 사람을 ‘선하다 악하다’라고 명확하게 나누기는 힘들잖아요. 무주처럼 스스로 갈팡질팡하면서도 변명에 능한 복합적인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한 집단의 관행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따라야 한다는 등장인물들의 현실 순응적인 태도는 책 제목에도 함축돼 있다. “성경 마태복음에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구절이 있어요. 무주도 그렇고 이석도 그렇고 다들 자기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변명하면서 조직의 이익에 끌려가죠. 자기 모순에 빠져 자신을 잃어 가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본다면 ‘죽은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도 확신에 차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권하는 인물들 역시 성경의 이 구절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요.” 무단결근한 무주가 동네의 한 도로를 따라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맺음된다. 회사 혹은 가족으로부터 희망을 찾았는지 여운을 남기지 않은 작품의 결말은 “기존 시스템과 사회는 변하지 않고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병원 직원들은 부정을 저지른 경영진이 물러났지만 새 인수자가 빨리 나타나길 희망해요. 새 사람이 병원을 인수해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악순환에 빠질 게 자명한데도 말이죠. 저의 생각과는 달리 무주가 희망의 작은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독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작은 빛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늘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 ‘리셋’하고 싶을 때 있죠”

    “늘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 ‘리셋’하고 싶을 때 있죠”

    정치권·영화제작자 경험 녹여 기업·정치·사법부 얽힌 비리 속 정의·상식 편에 선 변호사 그려 “윤리적 가치, 개인 선택과 책임”“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젠 관심사를 더 펼칠 수 있는 여력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주목하는 일은 제 생업인 변호사 일과 소설 딱 두 가지입니다.”조광희(52) 변호사는 다채로운 이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법률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는 그는 2007~2012년 영화사 ‘봄’ 대표로 일하면서 다수의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영화계 법률 자문일을 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06년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과 2012년 안철수 대통령 선거 후보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정치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새로운 직함을 하나 더 얻었다. 바로 소설가다. 최근 만난 조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는 첫 소설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소설가라는 명칭은 여전히 버겁고 민망하다”며 웃어 보였다. 최근 조 변호사가 펴낸 첫 장편소설 ‘리셋’(솔)은 주인공인 변호사 강동호가 기업 총수와 정치권, 사법부가 얽힌 비리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회적 압박과 그로 인한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조 변호사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현실이 절묘하게 녹아든 작품이다. 조 변호사는 “윤리적 가치가 정해져 있다기보다 개인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선택한 윤리에 책임을 지면서도 한 개인이 위험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불법이 횡행하고 권력에 휘둘리는 현실 속에서도 정의와 상식의 편에 서고자 애쓰는 주인공 강동호라는 인물은 조 변호사의 분신과도 같다. “소설을 쓰는 게 처음이라 아무래도 제가 잘 아는 사람을 묘사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의 나쁜 점은 줄이고 좋은 점을 최대한 부각해서 창조한 인물이 강동호죠(웃음). 특히 혼합적인 인물을 만들려고 애썼어요. 현실에 너무 잘 적응하거나 혹은 자신의 신념대로만 사는 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어색하죠. 그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듯이 고민하며 헤쳐 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강동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 구조 속에서 늘 선택하며 살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나 이 사회의 시스템을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앞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SF 법정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조 변호사는 소설의 주제를 법에만 가둬 두지는 않을 생각이다. “동물 해방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닭, 개 등 동물을 죄의식 없이 잡는 게 충격이었어요. 동물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할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상황은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동물들이 부당한 상황에 맞서 인간과 싸우는 이야기죠. 마르크스적 사고에 기반한 한 젊은이 그룹이 동물 해방을 위한 정치적 노선을 걷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요. 인간과 동물 문제를 공상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접근하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을까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유해진 “생활 밀착형 애드리브 밤마다 고민한 연기죠”

    유해진 “생활 밀착형 애드리브 밤마다 고민한 연기죠”

    “연기 경력 21년 갈수록 어깨 무거워” 배우 유해진(48)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은 견고하다. 어떤 전형적인 장면도 현실에 살을 착 맞댄 섬세한 표현으로 맛깔나게 살려내기 때문이다. ‘럭키’(700만), ‘공조’(781만), ‘택시운전사’(1218만), ‘1987’(723만) 등 2년 새 출연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한 데는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의 노력도 깔려 있다. 9일 개봉하는 ‘레슬러’는 그의 매력에 한껏 기대 굴러가는 영화다.“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져요. 제 이름을 보고 시나리오를 건네고 투자하는 분도 많으니 제가 앞장서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죠. 제 작품을 보러 일부러 극장까지 찾아오는 관객들의 믿음에 만족을 드려야 한다는 걱정도 크고요. 그래서 20년 넘게 연기 생활을 했는데도 새 작품을 낼 때마다 매번 겁이 나요. (비슷한 이미지에) 관객의 피로도가 쌓일까 고민도 되고요. 항상 새로울 순 없으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보는 거죠.” ‘레슬러’에서도 그의 남다른 분투가 장면 장면마다 엿보인다. 전직 레슬링 국가대표였으나 이제 정육점에서 고깃값 흥정하기에 바쁘고 색 고운 국산 고춧가루에 열광하는 ‘프로 살림꾼’이 된 귀보(유해진). 동네 체육관을 운영하며 레슬링 선수인 아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는 그는 레슬링을 그만두겠다는 아들 성웅(김민재)의 난데없는 반항과 아들 친구 가영(이성경)의 엉뚱한 고백으로 혼란에 빠진다. 영화에서 그는 평소 쌓아 둔 살림 내공을 발휘하며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관객을 웃긴다. 체육관에서 주부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치다 사무실로 슬쩍 도망쳐 구토라도 할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면에선 유해진 특유의 친근하고 능청스러운 매력이 잘 드러난다. 영화 ‘블랙잭’(1997)에서 악역으로 연기에 발을 들인 지 21년째인데도 그는 밤잠을 설치며 연기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골몰한다고 했다. “촬영 전날 유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왜 이렇게 안 풀리지’하며 잠 못 자고 고민해요. 사소한 것이지만 그런 걸 모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쾌감도 있고, 촬영 현장에서도 서로 좋다고 ‘으으’ 할 수 있어야 분위기도 좋아지거든요.” 그의 표현을 빌리면 ‘레슬러’는 부모와 자식의 성장, 배우로서의 성장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의 성장뿐 아니라 부모의 성장이기도 해요. 서로 갈등을 겪은 뒤 여물어가는 과정이 짠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죠.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요. 아버지께서 오십대 때 약주를 드시고 들어오신 밤에 ‘어머니’하고 목놓아 우셨던 기억이 있거든요. 삶에서 힘든 것이 갑자기 확 오셨던 것 같은데 요즘 그게 자꾸 기억이 나더라고요. 이번 영화는 어느새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된 저를 돌이켜보는 시간이기도 했죠.” 배우로서 그의 진통과 성장은 언제였을까. 그는 30대 초반을 기억에서 꺼냈다. “생활도 힘들고 배우로서 활동도 쉽지 않았던 30대 초반 연기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얘기가 배우 인생에 큰 힘이 됐어요. 맡고 싶은 배역이 안 오고 그래서 속상했을 땐데 그러셨죠. ‘해진아 넌 평생 연기할 것 같은데, 한 작품 가지고 왜 그래. 내가 70년 넘게 살아 보니 제일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걸 했나 안 했나더라.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그때 제가 성장했던 것 같아요.” 어느덧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에게 숫자는 순간의 기쁨일 뿐이라고 했다. “요즘은 너무 (영화에 대해) 숫자로 이야기하는 시대라…. 흥행은 기쁘긴 하지만 몇만의 의미보단 함께했던 사람들이 웃음 지을 정도면 좋은 것 같아요. 제일 기분 좋은 건 현장에 있을 때죠. 서로 손발이 잘 맞고 느끼는 걸 함께 이야기할 때가 참 행복하지 않나, 그게 연기하는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살기 위해 죽음을 썼다

    베트남에서 온 작가는 한국의 해물탕을 좋아한다. 이유는 국토 한 면이 바다에 접한 나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제 병원까지 다녀왔던 분이라 뵐 수 없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내주셨다. 서태지가 나왔던 1991년 현재, 16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는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은 제목만치 서글프다. 그를 만난 아침은 소설의 첫 장면처럼 축축한 습기로 가득했다. 소설 주인공 끼엔은 열일곱 살 때 북베트남 정규군에 입대한다. 당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많이 자원입대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던 끼엔은 전쟁 후 살아남은 단 열 명의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전사자 유해발굴단으로 끼엔은 부대원이 몰살당한 지역을 찾아간다. 가는 곳마다 끼엔은 생시를 구별할 수 없는 혼령을 목격하곤 한다. 머리가 잘려나간 한 무리의 흑인 병사가 산기슭으로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도 찾아온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끼엔에게 프엉만은 확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다. 전쟁은 그녀를 변화시키고,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끼엔은 글을 쓴다. 악몽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고자 끼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쓰는 일이었다.“신짜오(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며 외웠는데 금방 잊은 인사말, 통역해 주시는 하재홍 선생께서 가르쳐 주셔서 인사할 수 있었다. 하 선생은 천호동에 있는 한 모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모시고 내려왔다. 그는 담배를 맘대로 태울 수 있는 모텔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홍마초의 뿌리와 이파리, 꽃잎을 담뱃잎에 섞어 말아 피워 물고 환각에 들어가곤 했다던 북베트남 병사들이 떠올랐다. 꼬박 밤을 새운 나보다 더 초췌한 그를 만나 가까운 해물탕집으로 가려 할 때 비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얘기를 시작할 때 마치 정글에 비 내리듯 한꺼번에 빗물이 쏟아졌다. 장딴지까지 차오른 핏물 속을 행군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벌건 내장을 드러낸 해물탕이 나왔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의 흐름대로 쓴 톨스토이식 소설이 아니다. 끔찍한 비극의 찌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 지금과 과거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의 글쓰기와도 달랐다. “그래요. 맞아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소설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쓰자 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비슷하다는 데 베트남어판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번역이 이상한지 읽기 어려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1988년 베트남말로 번역됐는데 참 좋았어요.” 그가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단순히 마르케스의 영향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신화나 전설을 차용했던 마르케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달리, ‘전쟁의 슬픔’은 비극적 사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자체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끌어 쓰고 있었다.소설에서 2375회나 이름이 등장하는 끼엔은 1969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대해 북베트남 보병사단의 병사로 서부고원 전선에서 싸웠던 작가의 이력과 유사하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보기에 끼엔이 아니다. 숨은 주인공이 있다. 끼엔이 외면적 주인공이라면, 950회 이름이 나오는 프엉은 내면적 주인공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작가들,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 같은 이들은 여러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 넣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끼엔은 베트남 전쟁을 겪은 베트남 병사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이고요. 프엉은 내면의 제 자신입니다.” 마르케스와 다른 그의 글쓰기에는 베트남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혼령들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끼엔이 찾아가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고이 혼’이라는 지역이다. 우리말로 하면 ‘혼을 부른다’는 초혼(招魂) 지역이랄까. 거기서 끼엔은 죽은 자를 두 눈으로 자주 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으스러진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귀신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이다. 정신병이 아니라 해질녘 나무들이 바람결에 내는 신음이 귀신의 노랫소리로 들린다. 소설에는 귀신 72회, 유령 24회, 혼령 18회, 망령이 4회 등장한다. 모두 죽은 이의 영혼들이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상력이 아니에요. 동남아 사람들은 육신이 사라져도 혼령이 일상에 함께한다고 믿지요. 내 작품에서 영혼, 귀신,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정서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대로 쓴 거예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어도 혼령으로 떠돌죠. 문화권이 다르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공산주의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유령이 뭐냐 하지요. 가톨릭 신도들은 영혼이 위로 간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위가 아니라 혼령은 영원히 우리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작가로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소통시키는 영매(靈媒)다. 죽은 자 중에 호아라는 여성 병사 얘기가 가장 마음 아팠다. 호아라는 이름은 이 소설에서 98회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호아는 부대원의 길을 인도하는 선도병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미군이 있는 곳으로 부대원을 인도했다. 그들을 포위한 미군이 다가오자 부대원을 남기고 호아가 미군에게 뛰어든다. 풀밭에 쓰러진 호아 위로 알몸의 미군들이 숨을 헐떡이며 먼저 차지하려고 으르렁댔다. 집단 강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보면서도 끼엔은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을 던지면 위치가 발각돼 죽을까 봐. 수류탄을 던지지 못했던 비겁함은 살아남은 끼엔에게 가장 아픈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 때 여군들이 생포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군에게 강간당한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얘기를 쓴 거죠.”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택시 드라이버’, ‘람보’, ‘플래툰’ 등은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미국의 시각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오리엔탈이면서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베트남을 소비해 왔다. 이 영화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들이 겪는 내면의 싸움이며, 자가치유 방식이다. 미국인이 겪는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이 주제다. 그나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우리의 입장에서 전쟁이 파괴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한편 ‘전쟁의 슬픔’에는 영웅이 없다. 도박과 환각에 빠진 베트남 병사들이 등장한다. 짐승으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하는 장면도 나오기에, 베트남 정부로서는 지금도 꺼림칙한 소설이다. 승리한 전쟁을 ‘슬픔’으로 표현했다며 처음엔 제목이 ‘사랑과 숙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1995년 런던 인디펜던츠 번역 문학상, 1997년 덴마크 ALOA 외국문학상, 2011년 일본경제신문 아시아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정작 베트남 정부로서는 감추고 싶은 금서(禁書)였다. 베트남 국내에서 학생들은 지금도 이 소설을 잘 모른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에게 물어 보면 외국에서 이 소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 알았다는 학생도 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인공 끼엔처럼 그는 아직도 악몽에서 괴로워하는 걸까. 이만큼 끔찍한 소설을 쓴 사람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까. 베트남 파병을 다녀와서 매일 군인 수통에 소주를 넣어 마시고, 군용 단도를 차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한국인 얘기를 전했다. “많이 회복됐어요.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울어 주고 그러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더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예요. 미군이나 한국군은 낯선 타국에서 전쟁의 비극을 겪은 것이죠. 베트남 군인은 함께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이 위로해 주고 풀 수 있었는데, 미군이나 한국군은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화 상대도 없으니 몸부림치다가 죽어갔을 거예요.” 이제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제27청년여단 소년병 5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방황하던 그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교수였던 아버지는 작가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전쟁 무용담이나 문학 작품 얘기를 많이 했죠. 군에 입대하고 6년 동안 전쟁터에 있느라 글을 잊었지요. 전쟁 끝나고 돈 벌러 다녔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글재주 있다며 기억해 주셔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거죠. 처음엔 전쟁 중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장 깊은 체험이 전쟁이었기에 전쟁 소설을 쓴 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극복하는 생존 방식이었다.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 작가로 한국인에게 전할 말씀을 부탁드렸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이었기에 승자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체제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통일 후 갈등이 컸어요. 남베트남 사람 중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은 보트피플로 망명했어요. 전쟁을 통한 통일은 가짜 통일이에요. 진짜 통일은 평화를 통한, 대화를 통한 통일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인내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의 교역국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 3위는 베트남이다.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과의 교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소설과 베트남 문학은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텍스트다. 내년에 베트남 문학과 교류를 추진을 위해 베트남에 가볼 요량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000년에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작가회의 회장이었을 때 베트남 작가협회와 결연을 했어요. 이후 경제협력은 많이 하는데 문학 쪽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죠.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문학이 많이 번역되는데 한국 문학 번역은 고은, 방현석, 김영하 외에 뜸해요.” “깜언깜언(정말 감사합니다).” 배운 표현을 이제야 써 봤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금씩 베트남 말을 써 봐야겠다. 해물탕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쓰렸다. 아차,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의 필명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다. 개울물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흐르는 베트남의 지명이다.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적지 않은 인세를 받아 서방으로 이민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쟁 중 정글에서 자던 병사처럼 지금도 허름한 곳에서 노숙인처럼 살아야 편하다는 그의 선조가 견디며 살던 땅의 이름이다. 1952년생 바오닌. 시인·숙명여대 교수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연봉 3000만원 공기업 친구와 비교땐 상대적 박탈감”

    병원비 부담에 아플까봐 겁나 하위직 처우 좀더 개선됐으면 저는 서울의 한 자치구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 한지만(30·가명)입니다. 2015년에 임용돼 현재 4호봉입니다. 지난달 급여는 모두 208만 3580원을 받았습니다. 기본급 128만 5580원, 여비 10만 7000원, 급량비 13만 6000원입니다. 초과근무 수당은 25만원, 복리후생비(직급보조, 대민활동비, 정액급)는 30만 5000원입니다. 그런데 지출은 무려 216만 7540원이었습니다. 우선 큰돈은 월세와 관리비, 공과금 등 50만원이 나갔습니다. 저축과 청약통장에 모두 60만원을 씁니다. 보험은 10만원, 경조사비는 이달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5만원이 들었습니다. 통신비는 대략 5만원쯤 되고요. 아 카드값이 빠졌네요. 77만 2540원입니다. 부분 생활비입니다. 문제는 병원비였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25만원이 추가로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좀더 저축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사소한 감기 정도야 의료보험으로 처리가 되지만, 큰 병이 날까 두렵습니다. 경조사비는 그에 못지않은 부담이고요. 아플까 봐 겁이 납니다. 성과급을 포함하면 연봉이 3000만원을 조금 넘으니 못 견딜 수준은 아니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고정적인 지출 외에 경조사비나 병원비 등은 예측이 불가능하니까요. 이렇게 한 달에 60만원에서 100만원 저축해서 장가를 가고, 집을 살 수 있을지 사실 좀 막막합니다. 물론 취업이나 결혼 등을 포기한 ‘N포세대’도 있고, 여름 날씨라지만 아직도 냉기가 차오르는 고시원에서 머리띠를 둘러매고 공부하는 분들에 비하면 훨씬 낫지요. 저도 시험정보 수집기간 2개월을 포함해 시험 준비에 2년 2개월가량이 걸렸습니다. 남 못지않게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2년 만에 합격해서 다행이지만, 동생이나 친구와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크기만 합니다. 수도권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저와 경력이 비슷하지만 연봉이 4000만원쯤 됩니다. 물론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하위직 공무원들의 처우도 좀 개선됐으면 합니다. sunggone@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12월 8일, 아침에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유시(오후 5~7시)에 푸른 하늘에 갑자기 흰 구름이 몰려와 지붕 위에 모이더니 눈이 한 치 남짓 쌓였다. 잠시 뒤에 선생이 자리를 정돈하고 부축해 일으키게 하시고 일어나 앉아서 서거하시니, 곧바로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그쳤다.1570년 음력 12월 8일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년)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제자 이덕홍이 보고 기록한 것이다. 참으로 성자의 장엄한 낙조라 아니할 수 없다. ‘고칠현삼’(古七現三)이란 말이 있다. 현대에 나온 책을 세 권 읽으면 고전은 일곱 권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전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라 이미 검증돼 믿을 수 있다고 보증된 책이다. 우리나라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일까. 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 화엄종에서도 채택돼 ‘해동소’(海東疏)로 불리고, ‘십문화쟁론’은 당나라 때 이미 인도에서 번역됐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읽히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이 읽힌 고전은 아마 이황의 저술인 ‘퇴계집’이 아닐까 싶다. 퇴계집이야말로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저술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우리 고전 중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황의 저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찍부터 간행됐다. 일본에서는 이황을 ‘주자 이후 일인자’로 칭송했다. 그중에서 1811년 무라지 교쿠스이가 편집한 ‘이퇴계서초’(李退溪書抄·전10권)는 이황의 편지를 가려 뽑은 책이다. 중국에서는 1945년 이전에 북경 상덕여자대학 재단에서 이황의 ‘성학십도’를 인쇄해 판매한 일도 있었으니, 유학의 본고장에서도 이황은 크게 존숭받은 셈이다. 현대에 와서는 대만 국립사범대학에 퇴계학연구회가 부설됐고, 미국과 독일에도 퇴계학연구회가 생겼다. 또한 국제퇴계학회가 창설돼 1976년 이래로 거의 해마다 한국·일본·대만·미국·독일·홍콩 등지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주자학 시대 연 대학자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라 하지만 이황 이전에는 주자학의 정밀한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수용되지 못했다. 고려 때 크게 유행한 불교의 영향도 남아 있었다. 이황 이전에도 ‘심경’, ‘근사록’, ‘성리대전’ 등 성리학 저술이 있었지만, 조선에서 ‘주자대전’을 최초로 완독하고 연구한 학자는 이황이다. 주자대전 완질은 중종 18년(1523년) 교서관에서 처음 간행됐으나, 20년 후인 1543년 43세의 이황이 처음 그 책을 입수했다. 이황은 주자대전을 읽고 연구한 지 13년 만인 56세 때 편저인 ‘주자서절요’를 완성했다. 주자대전의 편지 중에서 정수를 추려 모은 것으로, 비록 편저이지만 이황의 주자학 연구의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 준 명저다. 학자들이 방대한 주자대전을 다 읽지 않아도 주자학의 정수를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이 간행되자 학계 신진 학자들이 크게 호응해 이 책을 통해 주자학에 입문했으니,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자서절요는 조선에서만 도합 8차례 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됐고, 일본에서도 4차례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실로 ‘사서삼경’에 버금가는 권위와 영광을 누린 것이다. 한편 이황은 호남 선비들과의 우정이 특히 각별했다. 33세 때 성균관에서 하서 김인후와 만나 의기투합한 이후 환로에서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금호당 임형수, 칠계 김언거 등과 사귀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던 58세 때에는 고봉 기대승을 만났다. 이황과 기대승이 주고받은 편지는 100여통이 넘지만, 기대승은 불과 세 차례 서울에서 이황을 만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황은 문하에 출입한 제자 중에서 도산서당의 강석에서 직접 배운 영남의 많은 학자를 제치고 기대승을 가장 높이 인정했다. 그래서 이황이 벼슬을 그만두고 조정을 떠날 때 선조가 조정 신료 중 누가 학문이 뛰어난 사람인지 묻자 “기대승은 글을 많이 보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통유(通儒)라 할 만합니다”며 기대승을 추천했으니, 그가 기대승을 내심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황과 기대승은 유명한 ‘사칠논변’(四七論辯)을 펼쳤다. 이황은 기대승과 토론을 거쳐 “사단은 리가 발해 기가 이를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 리가 이를 탄다”(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고 하는, 소위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사단과 칠정의 관계와 개념을 더욱 분명히 분석하고 정의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자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향후 학계에 오랜 세월 토론할 큰 쟁점을 던졌다. 실로 주자학 역사에 대서특필할 큰 학문적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도산서원에서의 만년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 고요한데 새는 시냇가 나무에 울고 물은 잔잔해라 우연히 산 뒤로부터 제자들을 데리고서 한가로이 산 앞에 이르러 서당을 보노라. 계상의 집에서 산을 넘으며 도산서당에 이르러 읊은 시로, 이황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회갑 해인 1561년에 지은 시로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노학자의 정신세계가 담담한 필치로 잘 그려져 있다. 이 시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읊었을 뿐이라 일견 단조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오히려 자신의 상념을 개입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그대로 그려낸 데에서 시의 울림은 오히려 크다. 우연히 본 경치를 그대로 읊어 놓은 작품인 데도 오래 두고 욀수록 작자의 깊은 정신세계가 느껴지면서 더욱더 좋다. 신유년(1561) 4월 15일에 선생이 조카와 손자 안도(安道) 및 덕홍(德弘)과 더불어 달밤에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반타석(盤陀石)에 배를 정박했다가 역탄(灘)에 이르러 닻줄을 풀고 배에서 내렸다. 세 순배 술을 마신 다음 선생이 옷깃을 바루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한참 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전적벽부’(前赤壁賦)를 읊으셨다. 제자인 이덕홍이 기록한 글이다. 이 무렵이 이황으로서는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시절이었다. 이후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출사와 사직, 상경과 귀향을 반복해야 했던 이황은 노병을 이유로 누차 간곡히 사임한 끝에 1569년 3월에야 69세 나이로 우찬성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해 뒤에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이었다. 1569년 3월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듬해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꿈에도 그리던 도산서원에서 안돈한 지 2년이 채 못 되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듣자 선조는 3일간 정무를 보지 않음으로써 애도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문순의 시호를 받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 퇴계집 해제 총 63권…편지에 학문·인간적 면모 잘 나타나퇴계집은 도합 6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중에서 이황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것은 편지들이니, 어떤 것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 되고 어떤 것은 깊은 철학 논문이 된다. 이 중에서도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특히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 밖에 68세 때 어린 선조 임금에게 올린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는 이황의 대표적 저술이다. ‘천명도설서’, ‘심경후론’, ‘전습록변’ 등도 이황의 저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도연명과 두보, 주희의 시를 배웠다고 하는 이황의 시도 매우 격조와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황의 인품은 대개 근엄하고 신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편지들을 보면 매우 자상하고 진솔하며 인정이 많고, 의외로 활달한 면도 보인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서 이황의 저술들을 샅샅이 모아 정리하는 정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정본에는 ‘퇴계집’을 간행할 때 빠진 글들을 다 수록하는데, 학문적인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을지 몰라도 이황의 일상과 인품을 읽을 수 있는 글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읽기에는 오히려 더 수월하고 재밌다. 끝으로 그중에서 이황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짧은 편지 한 부분을 소개한다. 손자 안도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두고 겸사로 한 농담이다. “안도 녀석이 과거에 급제했고 게다가 혹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하니, 쑥대 그물에 범이 잡혔고 장님이 문지기를 선 셈이로군. 마음이 기쁘면서도 괴이쩍다.”
  • 울산옹기박물관 ‘동아시아 옹기’ 특별전 개최

    울산옹기박물관이 4일부터 오는 12월 2일까지 ‘동아시아 옹기, 자연을 닮은 그릇’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3일 울산옹기박물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세계 41개국의 도기 647점 중 특색 있는 유물을 선별해 대륙별로 살펴보는 ‘세계도기 특별전’ 시리즈 중 두 번째 기획전이다. 전시는 3부로 나눠 한·중·일 옹기의 독특한 양식을 각각 비교하고 동아시아 생활문화 속에서 꽃 핀 옹기의 역사와 특징을 탐색한다. 1부 ‘한국의 옹기’는 한옥의 주재료인 나무와 다양한 문양을 입힌 우리나라 옹기의 조화가 엿보이는 공간이다. 추상적인 문양이 장식된 대형 옹기를 빈 곳에 단독 설치해 현대적인 설치미술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2부 ‘일본의 옹기’는 아기자기한 옹기를 모래 정원과 함께 설치한 공간이다. 일본 특유의 고요한 정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부 ‘중국의 옹기’는 큼직하고 넉넉한 옹기와 군자를 상징하는 대나무의 정취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옹기박물관 관계자는 “동아시아 옹기는 서로 다르면서 각각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담고 있다”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옹기의 소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참모습을 보여주려고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스프레이, 안전하다고요?

    스프레이, 안전하다고요?

    환경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2일 서울역 광장에서 스프레이형 화학제품이 안전기준 등을 잘 지키는지를 검증하는 ‘스프레이 팩트체크 전국 공동 캠페인’을 홍보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박진영 아내는 유병언 조카…배용준과 함께 성경공부 모임

    박진영 아내는 유병언 조카…배용준과 함께 성경공부 모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재혼 후 아내와 성경공부 모임을 가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절친 배용준도 함께였다.박진영은 2일 디스패치가 구원파 집회 참석 의혹을 제기하자 “구원파 집회라구요? 제가 돈 내고 제가 장소를 빌려 제가 가르친 성경공부 집회가 구원파 집회라구요?”라며 “100명이 제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고 그 중에 속칭 ‘구원파’ 몇 분이 제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고 와서 앉아있었는데 그게 구원파 모임이라구요?”라고 반박했다. 이어 “JYP와 회사 차원에서 속칭 구원파 모임의 사업들과 어떤 관계도 없다. 도대체 저와 우리 회사에 입히신 피해를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사실 확인조차 없이 이런 글을 보도하신거죠?”라며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디스패치는 박진영이 100여명이 모인 ‘구원파 집회’에서 간증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구원파 유병언의 조카로 알려진 박진영의 아내가 모임을 관리했으며 세월호 지주회사인 ‘천해지’ 대표 변기춘이 해당 모임에 나타났으며 박진영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배용준도 함께였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박진영은 줄곧 ‘무교’라고 답해왔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이후 구원파 신도라는 구설이 불거지자 박진영은 “제 아내가 문제가 된 회사 소유주들과 친척이라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 몇 년간 많은 종교를 공부했으나 여전히 무교다”라는 입장글을 밝힌 바 있다. 다음은 박진영의 입장 전문. 구원파 집회라고요? 제가 돈 내고 제가 장소를 빌려 제가 가르친 성경공부 집회가 구원파 집회라고요? 100명이 제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고 그 중에 속칭 ‘구원파’ 몇 분이 제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고 와서 앉아있었는데 그게 구원파 모임이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나 혹은 JYP 엔터테인먼트 회사 차원에서 속칭 ‘구원파’ 모임의 사업들과 어떠한 관계도 없는데 구원파라고요? 도대체 저와 우리 회사에게 입히신 피해를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사실 확인조차 없이 이런 글을 보도하신거죠? 전 4년 전 친구와 둘이 일주일에 두 번 모여 성경공부를 하다가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가 더해져 이제 한 30명 정도 모이는 모임을 하고있습니다. 근데 이게 속칭 ‘구원파’ 모임이라고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제 간증문을 올릴테니 꼼꼼히 한 번 봐주시죠. 그 내용 중에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당신들의 취재는 합당한 것이겠지만 만약 없다면 저희에게 입히신 모든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시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려인 애환 담긴 곳… 베이스캠프서 2시간 반 ‘최장거리’

    고려인 애환 담긴 곳… 베이스캠프서 2시간 반 ‘최장거리’

    한국 대표팀의 F조 두 번째 멕시코와의 경기는 인구 113만명으로 러시아 10대 도시에 들어가는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치러진다. 러시아 문학과 음악 배경에 잔잔한 물결로 자주 등장하는 돈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자리했다. 긴 도시 이름은 러시아 북동부 로스토프와 구분하기 위해 ‘나도누’를 붙였는데 쉽게 말해 ‘돈강의 로스토프’란 뜻이다. 모스크바에서 1109㎞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대한민국 베이스캠프가 차려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 가운데 가장 멀어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돈강 하류와 마니치강 유역을 가로질러 넓은 범람원이 펼쳐진다. 돈강 유역의 볼고돈스크에는 대규모 원자로 생산공장이 있다. 볼가강으로 이어지는 볼가돈 운하와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 카프카스 지역과 러시아 중앙지대를 연결하는 철도, 석유 및 가스 송유관이 지나가 ‘카프카스의 관문’으로 통한다. 농업의 발달로 밀과 보리 옥수수, 해바라기, 겨자, 멜론 등이 많이 생산되고 무연탄, 철광석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의 딸 엘리자베타 여제가 1749년에 세운 무역도시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을 때의 감동보다 더한 즐거움을 안긴다는 길손들의 체험담이 숱하다. 유려한 강변 풍경과 멋진 체메르니츠키 교량, 고색창연한 제정 러시아 건물들이 조화를 이뤄서다. 196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이 이곳을 무대로 제정 러시아로부터 달아나 독립을 꿈꿨던 코사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담았다. 스탈린 시대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해 쌀 농사 등을 강요받은 고려인이 무려 2만 5000명에 이르러 지금도 이곳에 드리운 애환과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것도 뜻깊겠다. 흑해와 연결되는 아조프해와 가까워 습한 대륙성 기후로 6월 평균 기온이 섭씨 22도로 따듯하다. 6~7월 비 오는 날은 나흘, 강수량도 70㎜ 정도로 경기를 하거나 관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건을 제공한다. 습도는 63%, 해발 고도는 50m밖에 안 된다. 멕시코와 결전을 펼칠 장소로 지난해 개장한 ‘로스토프 아레나’는 4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에선 E조, A조, D조 예선 한 경기씩과 16강전 한 경기가 열린다. 현재 러시아 프로축구 FC 로스토프의 홈 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신태용호’를 응원하러 로스토프나도누를 찾는 이라면 표트르 대제가 멀지 않은 아조프 해변에 세운 당찬 계획도시 타간로그도 들러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고향이어서 여기저기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울러 위대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이 산책한 아조프 해변을 거니는 것도 좋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뉴스를부탁해]‘인천 초등생 살해’, 무엇이 ‘살인 공모’ 판단을 바꿨나

    [뉴스를부탁해]‘인천 초등생 살해’, 무엇이 ‘살인 공모’ 판단을 바꿨나

    지난해 11월 22일 첫 공판기일부터 9번의 재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404호 법정에는 유독 높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8세 초등학생 여아를 유괴해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해 버리기까지 한 혐의로, 1심에서 각각 미성년자와 성인에게 선고할 수 있는 징역형의 최고 형량을 선고받은 이들의 나이는 겨우 18세와 20세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항소심 첫 재판은 열리기 30분 전부터 법정에 들어가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이어진 재판도 모두 방청석이 꽉 찬 채 진행됐습니다.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의 심리로 6개월간 이어진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주범 김모(18)양과 공범으로 지목된 박모(20)씨의 항소심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범 김양은 초등학생을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최고 형량인 징역 20년과 위치추적 장치 부착 30년의 명령을 선고받은 상태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재수 생활을 하던 박씨는 김양의 살인 범행의 공범이 맞다고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를 했고요. 성인인 박씨가 주범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게 된 이유였습니다. 이 사건의 수사부터 공판까지 맡아오며 1심에서 박씨의 살인 공모관계를 밝혀낸 나창수(44·사법연수원 31기) 부장검사의 열의는 항소심에서도 계속됐습니다. 항소심이 서울고법 형사7부에 배당된 뒤 박씨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인 12명을 선임했습니다. 3명의 변호인들이 매번 재판에 출석해 매우 적극적으로 박씨를 변론했고 그 과정에서 검사와의 언쟁도 끊이질 않아 여러 차례 재판장의 주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씨도 재판에서는 항상 고개를 세우고 재판부를 응시했고, 항상 별다른 표정도, 미동도 없이 덤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달 20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의 최후 의견을 들으며 갑자기 흥분해 큰 소리로 검사를 향해 욕설을 할 때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박씨 측은 박씨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저질렀고 사람의 신체 일부를 갖고 싶어하는 박씨를 위해 사체를 훼손했다는 김양의 주장과 이를 받아들인 원심의 판단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박씨 측은 김양이 범행 이전부터 잔혹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고,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인터넷 캐릭터 커뮤니티와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즐기던 잔혹함을 현실에서 실행하면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양이 부여한 캐릭터의 특성과 역할을 김양 스스로가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 바로 이 사건이라는 얘깁니다. ◆적극적 변론·방어 ‘공범’ vs 고개 푹 숙인 ‘주범’ 김양이 가상세계에서 설정한 캐릭터가 폭력적인 성향을 가져 고문 등의 잔혹한 행위를 즐겼고, 또 특정 신체 부위에 흥분을 느꼈는데 이러한 특성이 이 사건 범행 과정에도 반영됐다는 게 박씨 측의 주된 주장이었습니다. 김양과 박씨는 캐릭터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을 이용해 대화를 나눴는데요. 이른바 ‘고어(gore)썰을 풀며(잔인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 대화를 나눴고, 다른 커뮤니티 회원과는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씨의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김양이 박씨를 비롯한 커뮤니티 회원 등 지인들과 나눈 대화들을 지속적으로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김양이 사용한 단어와 문장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잔인한 것을 즐기고 폭력적인지를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가상세계의 설정을 실제로 범행을 통해 실현시켰다고 강조하기 위해 김양이 설정한 온라인 상황들을 이 사건에 빗대어 거듭 질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씨의 변호인(남성)은 미성년자인 김양에게 “증인은 목이나 귀를 성감대라 생각하고 목과 귀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죠?”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김양은 “제 성감대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라며 화를 냈고, 변호인은 재차 “관련 있으니까 묻지 않겠어요?”, “답 안 할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다. 김양은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끝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김양의 주장은 1심에서와 같이 “박씨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일관됐습니다. 특히 박씨가 자신에게 ‘J’라는 잔혹한 성향의 인격을 부여했고, 지난해 3월 벌어진 범행은 바로 박씨가 부여한 J라는 인격이 행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사 초기에 기억이 잘 나지 않은 이유 역시 다른 인격이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거였죠. 또 자신이 온라인상에서 잔인한 내용의 대화를 즐긴 것에 대해 “이게 저에게만 국한된 잔혹한 상황이 아니라 트위터 안에 보편적 생각이라 생각합니다”라며 반박했습니다. 김양은 꽤 수준높은 단어와 논리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2016년부터 트위터에 잔인한 글들을 썼는데 그 때는 왜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제 (잔인한 내용의) 트윗에 맞장구 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잠재적 살인자로 볼 수 없지는 않나요?”라고 박씨 측 변호인에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평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김양은 대부분 두 손을 꼭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범행 사실이 언급될 때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한 번은 손을 계속해서 세게 긁으며 불안한 듯한 태도를 보여 재판장의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양은 재판이 시작되자마자부터 재판부에 모두 11건의 반성문을 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마무리될 쯤 되자 반성문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박씨가 재판 중반부터 선고 직전까지 6건의 반성문을 냈습니다. 김양은 지난달 20일 최후 진술을 통해 “피해자가 어떻게 죽은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제가 조금만 (징역을) 덜 살게 해달라고 빌 수가 있겠느냐”면서 “그래서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성은 자살하는 것이지만 저에게는 자살로 도피할 권리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김양은 거듭해서 박씨를 향해 진실을 밝힐 것을 추궁했습니다. “네가 시켰잖아!”라며 화를 내기도 했고, 박씨나 변호인의 말에 자주 못마땅해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재판에 임하는 태도로만 보면 김양은 모든 진실을 떠안고 있는 것처럼 괴로워했고, 박씨는 그저 덤덤했습니다 ◆박씨의 ‘살인 공모’ 무죄로 판단된 이유는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 결과는 달랐습니다. 지난달 30일 재판부는 김양의 범행을 박씨가 공모한 공범관계라는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박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박씨에게는 살인 방조와 사체 유기 혐의만 인정돼 1심에서 선고받은 무기징역형은 징역 13년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박씨의 살인 공모에 대한 판단이 뒤집힌 데는 김양의 진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재판부는 “김양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양이 박씨가 사건이 발생하기 약 일주일 전부터 범행 대상과 방법, 장소, 시간 등에 대해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 공모가 인정될 만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했다”, “유독 검사의 질문에 맞춰 적극적으로 진술하려 하는 등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진술이 변화됐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김양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검찰 측 질문에는 비교적 성실히 답을 하면서도 박씨 변호인의 질문에는 거듭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박씨 측 질문에 대해서도 모든 상황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자세히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를 재판부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만약 김양의 주장대로 박씨의 살인 범행 지시를 자신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김양의 진술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죠. 재판부는 또 두 사람의 대화나 행동의 패턴을 들여다 본 결과, 범행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언행들은 박씨보다는 김양이 먼저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박씨가 김양에게 만들어 주었다는 잔혹한 인격인 ‘J’도 박씨가 먼저 김양에게 지정해 준 것이 아니라 김양이 먼저 자신에게 다중인격 분열 증세가 있다고 말했고, 박씨가 “다른 사람으로 봐주길 원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을 하면서 J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 살인에 관한 이야기나 “만약 사람의 장기를 갖게 된다면 어떤 것을 갖고 싶으냐”는 등의 질문도 김양이 먼저 박씨에게 건넸고, 박씨는 여기에 ‘소극적으로’ 답한 게 전부라는 게 판단의 배경에 깔렸습니다. 박씨의 살인 지시가 있었다고 밝혀질 경우 김양의 양형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등 서로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과장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범행 전과 후…달라진 두 사람의 대화 패턴 그렇다면 살인 방조는 어떻게 유죄가 됐을까요. 재판부가 공모관계를 부인하면서도 방조 혐의는 인정한 데에는 범행 직전과 범행 당시부터의 두 사람의 대화 양상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범행을 만약 두 사람이 공모를 했다면 사전에 매우 구체적으로 범행 과정을 특정해 모의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누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아 언제 어떤 식으로 범행을 할지 등을 모의한 대화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양이 범행을 결심한 때부터는 달랐습니다. 범행 당일 새벽까지 두 사람은 평소와 같이 캐릭터 커뮤니티 등에서 비롯된 다양한 가상세계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범행 이전에도 언젠가 김양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하자 박씨가 여기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답니다. 김양에게 “센 척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박씨는 말했습니다.하지만 “사냥 나가러 간다”는 김양의 문자메시지는 가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양은 “사람을 죽일 때엔 어떤 복장을 한다”는 등의 말을 박씨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범행 당일 김양은 그 복장을 한 모습을 셀카로 찍어 박씨에게 보냅니다. 그 다음부턴 더 이상 가상의 대화가 아니었다고 재판부는 본 것입니다. 따라서 박씨는 김양의 범행 의도와 진행 과정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양이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인다”고 하자 박씨는 초등학생 중 한 명이 범행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언급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또 초등학교 하교 시간을 묻는 김양에게 “12시부터 점심시간인데 저학년은 밥을 먹고 집에 간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김양은 범행 당일 오후 12시가 넘자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두 사람은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박씨가 미필적으로나마 범행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이를 제지 하지 않고 김양의 범행을 “정신적으로” 도운 혐의가 성립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과 배석 판사들도 이따금씩 눈을 질끈 감고 인상을 쓸 정도로 사건의 내용은 참혹했습니다. 기사에 차마 담을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재판부는 주범인 김양을 향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성마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히 잔인한 수법을 썼다”면서 “형기(20년)를 마치고 나오더라도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잔인성이 사라질 것으로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질책했습니다. 징역 20년과 함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을 명령한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자의 유족들을 찾아가지 말라”고도 명했습니다. 김양이 적어낸 반성문들은 오히려 김양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박씨에 대해선 “살인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보호관찰 및 부착명령을 기각했습니다. 김양은 선고 다음날인 1일 곧바로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박씨와 김양의 공모관계 여부, 김양의 심신 미약, 양형 부당 등의 주장은 다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재판의 긴장감은 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그래도, 당신은 꽤 잘 견디고 있어요

    그래도, 당신은 꽤 잘 견디고 있어요

    SNS 위로글 유명세에 공간 마련 숙소처럼 쉬거나 1대1 상담가능 찾아가는 위로 ‘새봄 프로젝트’도 “1050 다양한 손님, 고민 털어놔 난 그저 묵묵히 이야기 들어줄 뿐 지칠 때 찾는 상징적 공간 되길”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 다양한 책이 꽂힌 책장과 책상, 아늑한 침실까지만 보면 여느 여행자의 숙소처럼 보인다.그런데 내부 벽마다 쪽지들이 붙어 있다. ‘봄을 생각하니 웃음꽃이 피고 너를 생각하니 사랑꽃이 핀다’, ‘특별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하루 속에 있는 건 모두 특별했다’, ‘바람이 이렇게 차고 내일은 또 어렵다. 세상에 아무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꽤 잘 견디고 있는지 모른다.’ 따뜻한 글귀들이 부드럽게 마음속에 내려앉는다.이 모든 건 지난 1월 헤이리 예술마을에 ‘세상에 하나뿐인 고민상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소장으로 나선 작가 글배우(김동혁·30)의 ‘글배우 서재’ 풍경이다. 책 ‘걱정하지 마라’, ‘신호등처럼’(이상 답),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쌤앤파커스)를 펴내며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그가 상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신부터 실패자였다. 20대 때 시작한 의류 사업이 망하고 절망에 빠진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2014년부터 단문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그의 글들은 SNS에서 폭발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으면서 스스로 생명을 갖고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그때부터 SNS를 통해 그와 대화하고 싶다는 상담 요청이 쏟아졌다. ‘죽고 싶다, 힘들다, 위로받고 싶다.’ 각자마다 전하는 메시지는 무겁고 음울했다. 고민 끝에 글배우는 2015년부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치고 고민을 듣고 위로의 글을 건네는 ‘불빛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려 2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지난해부터는 사연을 보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고민을 듣고 위로하는 ‘새봄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서울에 머물 곳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했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작 위로를 받은 건 나 자신이었어요. 잘 살지 못했다고 여겼던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은 것이죠. 그때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상담소를 차리자고 마음먹게 됐어요. 2년간 전국을 돌며 300회 넘게 강연을 한 덕분에 이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죠.” 고민상담소를 찾는 사람들도 각인각색이다. 부산에서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상경한 19살 학생부터 고시생, 50대 타투이스트에 이르기까지 글배우에게 속을 터놓기 위해 상담소를 찾았다. 한 개인에게는 지구만큼이나 무거울지도 모른 각자의 고민 앞에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인간 관계, 꿈, 자존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정답을 이미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하죠. 어느 분은 1시간 내내 제 앞에서 울다 가시기도 해요. 전 그저 충직하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잠깐 동안의 동행자 같은 존재일 거예요.” 글배우는 여행자들의 숙소이자 상담소인 이 공간을 위로나 힐링을 추구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희망했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찾을 곳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위로잖아요.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글배우는 상담을 바탕으로 현 시대의 불안을 탐구하는 ‘걱정의 인문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가 언젠가 펴낼 이 책에서는 어떤 따뜻한 위로의 언어들이 빛을 발할까.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몸짱 변신’ 김인석 “머슬마니아 예선 탈락, 그래도 만족”

    ‘몸짱 변신’ 김인석 “머슬마니아 예선 탈락, 그래도 만족”

    최근 몸짱으로 변신한 개그맨 김인석이 자신을 향한 악플에 대해 언급했다.30일 김인석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운동을 하기 전후의 사진을 공개하며 “아무것도 없던 몸에서 대회에 맞춰 4개월이란 짧은시간 준비하고 몸을 만들다보니 사실 부족한게 많은건 사실입니다. 운동 오래하신 분들이 보기에. 빈약한 몸 맞고요. 그리고 얼굴 큰 것도 사실입니다”라며 악플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김인석은 “그런데 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 몇장 더 던져봅니다. #머슬마니아 #출전 #예선탈락 #그래도좋아 #즐거워라 #자기만족”이라 덧붙이며 긍정적인 면모를 보였다. 김인석은 마지막으로 “안젤라박 고마워”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아내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한편, 김인석은 지난 28일 ‘2018 맥스큐 머슬마니아 오리엔트 챔피언십’ 스포츠 모델 부문에 출전했다. 이날 그는 선명한 복근과 구릿빛 근육질 몸매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라이프 톡톡] 내가 명동의 ‘짝퉁 저승사자’다

    [라이프 톡톡] 내가 명동의 ‘짝퉁 저승사자’다

    “공무원이 낮엔 뭐하고 밤에 일하냐고요? ‘짝퉁’(위조된 상표가 붙은 상품) 시장을 알면 그런 소리 못하죠.”서울 중구청에는 낮과 밤을 바꿔 일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야간에 일을 할 때는 사무실보다 차량 또는 의류공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2016년 7월부터 지난 2년간 ‘짝퉁 저승사자’를 자처해온 박광일(58)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유통질서정비팀장은 29일 “짝퉁 시장의 생리를 파악하고 움직여야 현장을 덮칠 수 있기에 밤낮 구분 없이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낮엔 공장·밤엔 명동 노점상 위조상표 단속 중구청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상표법 위반 범죄인 짝퉁 판매 단속에 본격 나선 것은 2013년부터다. 자치구 시장경제과로는 유일하게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특별사법경찰권도 부여받았다. “다양한 근현대문화유산이 있는 중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관광 1번지’인 동시에 ‘짝퉁 천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었습니다. 명동 일대 노점상에 버젓이 널려 있는 짝퉁 옷들이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가는 광경이 익숙했으니까요.” 박 팀장은 이전에도 관광공보과, 의료관광과에 연이어 근무한 덕분에 관광 업무에 잔뼈가 굵었다. 그는 “똑같은 시장 옷에 위조 상표를 붙이면 가격이 2~3배 껑충 뛰니, 단속이 없는 한 짝퉁 판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팀장을 필두로 꾸려진 단속반 인력은 5명이다. 평소에는 2개 조로 나눠 조별로 주2~3회씩 오후 10시~오전 4시에 주로 단속을 나간다. 한 달에 2회 정도는 단체로 나가기도 한다. 그는 단속의 핵심으로 ‘증거’를 꼽았다. “짝퉁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나온 차량의 이동경로를 밟습니다. 어느 노점, 상가로 가는지 확인하고 증거를 확보합니다. 그러고는 자정 이후 공장 앞에서 잠복을 서다가 용의자가 나타나면 따라 들어갑니다. 오리발을 내밀다가도 증거를 내밀면 대부분 고개를 떨굽니다.” 상표법 위반죄가 성립되면 7년 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잠복하며 ‘증거’ 포착… 오리발 업주 일망타진 박 팀장은 “대부분 업주들이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단속 전엔 폭력적으로 저항하진 않을까 두려움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1회 적발로 정품시가 수백억원에 이르는 상품을 압수하기도 했다. 다행히 단속이 강화되면서 명동, 남대문시장 일대 짝퉁을 드러내 놓고 판매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길거리 음식이 노점상 주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업종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박 팀장은 “사실상 짝퉁이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지하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달 프랑스 특허청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갔는데, 중앙정부도 아닌 기초지자체가 상표권·지적재산권 보호에 이토록 앞장설 수 있다며 참가자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우리나라 시장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참 뿌듯했습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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