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요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징역 15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30대 투자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아저씨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755
  • [금주의 베스트셀러]봄맞이 꽃단장 도서들, 인기 만발

    [금주의 베스트셀러]봄맞이 꽃단장 도서들, 인기 만발

    꽃이 만발하는 봄, 꽃단장을 한 도서들의 인기가 높다. 29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3월 4주 베스트셀러 현황에 따르면 최근 한정판 봄꽃 에디션을 출시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알에이치코리아)는 16계단 상승해 종합 5위에 올랐다. 벚꽃 에디션을 출시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웅진지식하우스)도 14계단 상승해 10위를 기록했다.SNS 인플루언서들의 힘도 여전하다.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북하우스)는 최근 유튜브 ‘김미경TV’에 소개되며 단숨에 종합 19위에 올랐다. 2014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TV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사생아로 태어난 흑인 여성이 불행을 딛고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설 수 있었던 비결을 그렸다. 이 외 단계적인 자기계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작은 습관의 힘’(비즈니스북스)도 4계단 올라 6위를 기록, 상승세를 이어갔다. 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다산초당) 2.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혜민·수오서재) 3.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마음의숲) 4. 인어가 잠든 집(히가시노 게이고·재인) 5.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한정판 봄꽃 에디션)(곰돌이 푸 원작·알에이치코리아) 6. 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비즈니스북스) 7. 꽃을 보듯 너를 본다(나태주·지혜) 8.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전승환·아르테) 9. 언어의 온도(100쇄 기념 에디션)(이기주·말글터) 10.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한정판 벚꽃 에디션)(하완·웅진지식하우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멕시코 포포카테페틀 화산 대규모 분화 조짐…주민 대피령

    멕시코 포포카테페틀 화산 대규모 분화 조짐…주민 대피령

    멕시코의 대표적인 활화산인 포포카테페틀 화산에서 대규모 분화 조짐이 발견돼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현재 연기가 피어오르고 검은 화산재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멕시코 국가재난예방센터는 28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동남쪽으로 약 71km 떨어진 곳에 있는 포포카테페틀 화산의 분화 경계경보를 황색2에서 황색3으로 격상했다. ‘황색3’은 화산의 마그마 분출과 폭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보를 가리킨다. 재난예방센터는 지난 24시간 동안 이 화산에서 200회가 넘는 소규모 분출이 있었다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포포카테페틀 화산 반경 100km 지역에는 주민 25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포포카테페틀 화산은 지난 18일에 분화한 바 있다. 당시 분화로 인근 마을이 화산재로 뒤덮였으며 화염에 휩싸인 돌덩이가 주변 2.5㎞까지 날아갔다. 지난 26일에도 폭발했다. 연기기둥이 3㎞ 상공까지 치솟았으며, 불타는 암석 파편이 북동쪽으로 2㎞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인근 목초지에 불이 붙었다. 일명 ‘포포’나 ‘돈 고요’로 불리는 포포카테페틀 화산은 해발 5426m의 성층화산으로,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이다. 1994년 이후 매년 수차례에 걸쳐 주기적으로 분화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던 2000년에는 화산을 둘러싼 3개 주에서 약 5만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가시거리가 먼 맑은 날에는 멕시코시티에서 화산이 어렴풋이 보이며 때때로 분화한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시내까지 날라오기도 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현장 행정] 중랑맘 얘기 들으러 마실 간 구청장

    [현장 행정] 중랑맘 얘기 들으러 마실 간 구청장

    산후조리도우미 파견·부담금 지원 등 실제 이용후기 듣고 즉석 응답하기도 올해 대상자 기준 확대해 671명 호응 “출산 장려위해 공공의 책임 고민해야” “노산이라 연로한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고, 주위에 육아 정보를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았는데 ‘따뜻한 중랑 산후조리지원사업’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수유 주기가 너무 짧아서 고생했는데 산후조리도우미 도움으로 수유 습관을 교정했죠.” “산후조리도우미가 방문할 때마다 ‘일일 체크리스트’로 만족도를 평가하더라고요. 저는 다행히 좋은 도우미를 만나서 기쁘게 했지만, 만약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면 얼굴을 마주 보고 나쁜 점수를 주기 난처했을 것 같아요.” 지난 21일 서울 중랑구 면목3·8동 주민센터 3층 ‘아이맘플러스센터’에서 진행된 18번째 ‘중랑마실’ 현장은 생후 4~8개월 아이를 동반한 엄마 25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따뜻한 중랑 산후조리 지원사업’, ‘서울 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 ‘아이맘플러스센터 교육프로그램’ 등 구에서 지원하는 모자보건사업의 이용자들이었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느낀 점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엄마들의 진솔한 얘기에 류경기 중랑구청장도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하며 경청했다. 발언자를 한 명 한 명 거론하면서 그 자리에서 답을 내놓기도 했다. 중랑구가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하는 따뜻한 중랑 산후조리지원사업은 소득에 관계없이 출산 가정에 산후조리도우미를 파견하고, 정부나 서울시가 지원하는 서비스 이용 금액 중 본인부담금의 90%를 구에서 추가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5만~10만원만 지불하면 산후조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가정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올해 1월 2일부터는 산모뿐 아니라 배우자가 신청일 기준 1년 이상 중랑구에 거주하면 지원이 가능하도록 대상자 기준을 확대했다. 지난달 현재 사업 추진 약 5개월 만에 모두 671명의 산모가 이용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중랑구는 지난해 5월부터 임신 20주 임산부부터 2세 영유아까지 전문 간호인력이 가정을 방문해 건강을 돌봐주는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방문을 받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5주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등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날 중랑마실이 열린 아이맘플러스센터에서도 출산준비교실, 베이비체조교실, 건강이유식 만들기 교실 등 다양한 출산·육아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류 구청장은 “저출산 대책은 사회적인 당면 과제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인 만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출산과 산후조리, 육아 등 일련의 과정을 공공에서 책임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오늘 어머니들의 생생한 의견을 통해 다양한 모자보건서비스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서비스의 전문성, 기간 등 질적 측면까지도 확충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속수무책으로 빠른 세상에 현기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넘긴 것 같은데 달력 한 장을 또 넘겨야 할 때, 하루만 뉴스를 안 봐도 대화에 끼기 힘들 때, 1년 전 유행가를 듣는 것도 겸연쩍을 때. 그럴 때는 빠름과 정반대에 있는 어딘가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은 모든 것이 느린 마을입니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시간이 멈춘 마을’이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마을은 1970년대 어디쯤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오래된 골목 따라 녹슨 철문, 빛바랜 간판, 간판 속 예스러운 글씨가 이어집니다. 간판은 마을에 극장, 사진관, 주조장이 있었음을 일러 줍니다. 해묵은 간판이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나 많다고요.키 낮은 집들, 미용실 아랫목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낡은 자전거를 탄 어르신 등 마을의 첫인상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정겹고 소박하지만 낡고 허름하다. 하나 이곳은 서천에서 손꼽히게 잘나가던 마을이었다. ●1930년대엔 인구 8000명 넘었던 큰 마을 1930년, 마을 남쪽에 장항선 판교역이 들어섰고 큰 우시장이 열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 인구는 8000명을 넘었다. 우시장이 열리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고. 판교마을의 시곗바늘이 느려진 건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부지로 묶이며 건축 제한에 걸리면서부터다. 쑥쑥 크던 마을은 개발이 어려워졌고 1980년대에는 우시장마저 사라졌다. 지금 마을에 남은 이들은 480명 남짓.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이가 떠난 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는다. 개발되지 못한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마을이 입소문을 타는 건 예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남은 수십 년 된 간판은 과거로 순간 이동을 한 듯, 19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판교마을 여행은 마을의 옛이야기를 읽어 가는 일이다. 간판에 깃든 이야기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때를 되짚어 보는 일이다. 수십 년 전 세월을 헤아리느라, 간판에 얽힌 사연을 상상하느라 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당연하다. 마을은 1시간이면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관광지가 아닌지라 이정표는 없지만, 오성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마을 중앙에 난 도로를 따라가면 이 골목과도 저 골목과도 이어진다. 판교역이나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스탬프 투어 지도를 챙기는 것도 방법이다. 지도에 가볼 만한 곳이 잘 정리돼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농협 창고는 출발지로 적당하다. 때밀이로 벽을 박박 문지른 듯 외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빨간 철문 위에는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는 표어가 남아 있다. 표어는 마을 농민들끼리 힘을 모아 잘살아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젊은이 핫플레이스 된 옛 풍경 간직한 동네 마을 오른쪽 끄트머리, 판교철공소 맞은편 건물은 ‘공관’으로 불리던 극장이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세워졌으니 50세를 바라보는 극장이다. 극장이 드물던 시절 부여, 보령, 서천 등 인근 주민들도 영화를 보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어둑한 건물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으리라. 낡은 건물이 극장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1960~70년대 흥행작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다. 창구에 새겨진 영화 관람료는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지금의 20분의1 가격이다.공관 건너편, 판교농협하나로마트 옆 골목에 담벼락 벽화가 있다. 사람 반, 소 반, 판교마을에서 열린 우시장을 그린 것이다. 벽화에서 북서쪽 길을 따라가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인 적산가옥이 나온다. 장미사진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많이 남기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면(판교면의 당시 이름) 주민 5500여명을 쥐락펴락한 일본 부호 11명이 살았다. 광복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이 묵는 여관이었다가 그 후 반쪽은 쌀가게, 반쪽은 사진관이 됐다. 간판에 ‘쌀, 잡곡 일절’, ‘사진관’ 글씨가 또렷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수시로 여닫았을 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쌀 한 됫박을 사서 밥을 안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을 순한 사람들을 말이다.장미사진관 맞은편의 백세건강원은 낡고 빛바랜 것으로 가득한 마을에서도 으뜸이다. 지붕 슬레이트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덧댄 나무판자 역시 성한 데가 없다. 건강원 건물은 한때 통닭집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왼쪽 창에 붕어즙, 흑염소 중탕 등 각종 건강식품을, 오른쪽 창에 ‘백숙, 통닭’ 글씨와 ‘근육질’의 닭을 그려 넣었다. 판교마을 여정의 종착지는 마을 북쪽의 주조장이다. ‘동일주조장’ 간판 아래 재미난 숫자가 있다. ‘TEL 45.’ 서천 지역 번호가 041이 아니라 45이던 시절, 그러니까 1996년에 지역 번호가 세 자리로 바뀌기 전에 생긴 주조장이다. 자료에 따르면 건물은 1974년 이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3대째 가업을 이은 주조장은 주민들에게 술을 공급하며 팍팍한 일상을 달래줬다. 쌀이 귀하던 1970년대에 주조장은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술 마시는 낙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주조장의 시간은 20여년 전에 멈춰 있다. 열린 창 사이로 보이는 달력은 2000년 12월. 주조장은 2000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았다고 과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창 사이로 달력 날짜를 짚어볼 때, 마을 사람들이 주조장 앞을 지날 때, 막걸리에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던 날이 되살아날 때, 주조장은 모두에게 확실한 기억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변치 않음’이 판교마을을 지킨다. 1590년대 세워진 문헌서원…4000번을 매만진 한산모시●가정 이곡·목은 이색 정신 깃든 서원 문헌서원은 고려의 대학자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사원이다. 서원이 세워진 건 1590년대, 조선 선조 때다. 19세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으나 100여년 뒤 유림들에 의해 지금 자리에 복원됐다. 문헌서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서원을 둘러싼 언덕의 솔숲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소나무 군락이 서원을 에워싸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재로 나뉜다. 사당은 선현에 제사 지내는 곳, 강당은 원생들이 공부하는 곳, 재는 원생들이 숙식하는 곳이다.●유생들 모여 학문 논하고 수양하던 진수당 홍살문과 진수문을 지나 마주하는 진수당은 강당에 속한다.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자신을 수양하던 강당이다. 훌륭한 건물은 머무는 사람을 담아야 하는 법. 진수당의 건축 양식은 선비 정신을 반영했다. 복잡한 포나 장식을 피하고 단청 색을 줄여 독서하고 사유하기 마침한 공간이 됐다. 진수당을 마주한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면 이색 신도비, 북으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목은이색선생영당이다. 영당은 목은 이색 선생의 초상(보물 제1215호)을 모신다. 바로 옆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영당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늦여름 배롱나무에 진분홍 꽃이 환히 피면 한옥과 꽃의 어울림이 아름답겠다.●1500년 역사 자랑하는 대표 공예품 ‘모시’ 모시 풀이 처음 발견된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전통의 맥을 잇는 공간이다. 한산모시는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의 대표 공예품. 한산모시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늘 세(細)’ 자를 써서 한산 세모시, 올이 가늘고 촘촘해 붙은 이름이다. 얼마나 가늘면 ‘밥그릇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모시짜기 역사부터 제작까지… 한산모시관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 전시관, 전통공방, 한산모시 홍보관 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ㄱ자 모양의 전통공방이다. 공방에는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장인 외 여러 장인이 머물며 모시 짜기 시연을 한다. 눈앞에서 장인이 개량 베틀을 돌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베틀 주변에 가습기를 몇 대씩 놓고 비닐 천막을 친 건 건조하면 날실이 벌어져 끊어지기 때문이란다. 전시관은 한산모시의 역사, 제작 과정과 사용 도구, 모시로 만든 옷 등 한산모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 한산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모시 한 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고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수확한 모시풀로 모시의 원재료인 태모시 만들기, 이로 태모시를 쪼개 일정한 굵기로 만들기, 모시 올의 머리와 꼬리를 이어 모시실 만들기 등 베틀로 모시를 짜기 전의 과정만 일곱 가지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 여름 옷감 정도로만 여겼던 모시가, 4000번의 손길 끝에 태어나는 귀한 옷감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권대홍(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천공주고속도로 서부여IC교차로에서 ‘군산, 서천’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대백제로를 따라간다. 수성교차로에서 ‘판교, 현암리’ 방면 좌회전 후 종판로를 따라가면 판교마을이다. →맛집 : 옛 판교역이 있던 자리에 판교음식특화촌이 들어서 식당이 모여 있다. 판교마을 내 삼성식당(951-5578)은 50년 가까이 된 냉면집이다. 메뉴는 단 세 가지로 물냉면, 비빔냉면, 왕만두다. 메밀면을 써서 쫄깃한 식감과 상큼한 육수의 궁합이 좋다. 서천특화시장 맞은편에 자리한 두레분식(953-4305)은 해물칼국수를 잘한다. 바로 앞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잘 곳 : 문헌전통호텔(953-5896)은 문헌서원 안에 자리한 한옥 호텔이다. 8개의 객실이 있으며 호텔 내 식당에서 정갈한 한정식 메뉴를 차려낸다. 휴모텔(952-0077)은 전 객실에서 서해가 보인다. 창밖 경치가 아름다울뿐더러 갯벌 체험이나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맥주 나라’ 벨기에 국왕도 사랑한 와인맥주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맥주 나라’ 벨기에 국왕도 사랑한 와인맥주

    포도향 머금은 ‘듀체스 드 부르고뉴’ 佛 보르도산 오크통에 장기간 숙성 산미 덕에 스튜와 고기 요리에 애용이번 주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한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27년 만에 방한한 필리프 벨기에 국왕을 환영하는 만찬이 지난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기 때문인데요. ‘맥주와 초콜릿의 나라’에서 온 국왕 부부를 위해 건배주로 국내의 한 크래프트 양조장이 생산하는 벨기에식 맥주가, 디저트로는 벨기에 전통 초콜릿인 프랄린이 선정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필리프 국왕은 해외 국빈 방문 때마다 사절단을 꾸려 자국을 상징하는 맥주 양조장 오너들과 동행할 정도로 맥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하답니다. 국왕과 함께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은 페어헤게 브루어리의 칼 페어헤게(54) 대표 또한 벨기에 맥주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벨기에 남서부 비흐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전 세계에 ‘와인맥주’로 잘 알려진, 벨기에 국민맥주 ‘듀체스 드 부르고뉴’를 생산하는 가족 양조장을 4대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맥주 수출국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맥주입니다. 대중에게 음주를 하는 모습을 공개하지 않는 벨기에 왕실도 평소 이 맥주를 무척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28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만난 그는 그 유명한 ‘와인맥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벨기에 사람들에게 맥주란 무엇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듀체스 드 브루고뉴’가 와인맥주로 불리는 건 와인처럼 붉은색을 띠는 외관과 오래 숙성된 와인 못지않은 짙은 풍미와 화려한 산미를 보여주는 독특한 특성 때문입니다. 평소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와인 매니아들도 이 맥주를 마시면 “잘 익은 포도향과 체리향이 나 맥주 같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곤 하죠. 이 맥주를 스타일로 분류하면 벨기에 플레미시(플렌더스)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지는 ‘플레미시 레드 에일’에 속합니다.그는 “‘와인맥주’ 양조 비결이 와인을 숙성한 오크통을 잘 쓰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쓰는 벨기에에서 플레미시 지방은 불어권에 속하는데요. 오랫동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이 지역 사람들은 홉을 사용해 맥주를 저장하는 독일어권과 달리 오크통 숙성으로 맥주를 장기보관해온 전통이 있다네요. 지역 효모를 사용해 에일 방식으로 양조한 맥주는 포도즙을 품었던 오크통으로 옮겨져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반의 시간을 보내는데, 샤토 탈보 등 프랑스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에서 오크통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크통에 서식하는 야생효모와 와인의 흔적들이 와인맥주를 완성해주기 때문에 수준급의 와인을 만들어낸, 훌륭한 오크통을 사용해야 한다면서요.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맥주는 플레미시 지방 사람들에게 생활 그 자체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식전주로도, 음식과 함께, 디저트로 항상 이 맥주를 마십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알코올 도수가 0.8%로 낮은 테이블 비어를 물처럼 마시며 자랐다”고 웃었는데요. 감기에 걸리면 부모님이 쓴 약을 맥주에 타서 마시라고 주기도 했다네요. 옆에 있던 부인 이자벨은 “벨기에 전통 스튜를 만들때도 이 맥주는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기를 부드럽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산미와 당도가 있어 따로 양념을 하지 않아도 스튜의 간이 잘 맞도록 도와준다”면서요. “주변 사람들과 일상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맥주를 마신다”는 그는 “한국의 맥주 팬들이 우리 맥주 한잔을 놓고 행복의 기운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macduck@seoul.co.kr
  • 관리인 없을 때 주차장에 낀 BMW… 수리비 621만원 책임자는?

    #원고: A손해보험사 vs 피고: 주차장을 운영하는 B사 부산의 한 헬스클럽 회원인 C씨는 2016년 6월 헬스클럽 상가 건물의 기계식 주차장을 이용하다 차가 망가졌습니다. 주차관리인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에 직접 주차기를 조작했는데, 차를 상하단으로 이동시키는 모터와 차의 선루프가 부딪친 것입니다. 수리비 621만 1000원을 지급한 C씨의 자동차보험사 A사는 주차장 관리자인 B사에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1심 주차장 관리회사 구상금 책임 인정 주차장법에는 부설주차장의 관리자가 자동차 보관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멸실·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사는 “C씨에게 주차요금을 받지 않았고 점심시간에 사고가 발생해 관리자 주의의무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1심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지난달 1일 부산지법 민사항소3부(부장 조휴옥)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관리자 주의의무가 없다는 B사 측 주장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항소심은 C씨가 주차하며 B사의 주의사항을 따르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B사의 책임이 없다고 봤습니다. ●2심은 차주 ‘주차 안내문 무시’ 보험사 패소 당시 주차장에는 ‘관리자 부재 시 사용안내’라는 제목으로 주의사항과 자세한 주차 방법이 게시돼 있었습니다. 특히 ‘차량의 길이와 중량, 높이가 적절한지 확인한다’는 문구와 함께 ‘주차가능 차량’으로 ‘길이 5050㎜ 이하, 높이 1550㎜ 이하(상부 돌출물 확인), 중량 1800㎏ 이하 일반 승용차’를 명시했습니다. 사고가 난 차는 2014년형 BMW 그란루리스모로 높이가 1559㎜, 중량 1915㎏이었습니다. C씨가 차를 댄 공간의 바닥과 모터까지 높이는 딱 1550㎜였고요. 재판부는 “주차장 입구에 해당 규격 초과 차량은 주차가 제한된다는 사용 안내문 3개를 부착했는데도 운전자가 이를 무시했다”면서 “이 사고는 차량의 높이가 주차장에 맞지 않아 발생한 것일 뿐 달리 주차장의 기능·작동상 오류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결론 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앨범을 열었더니 펜타곤이 짠~ “유니버스와 함께 만들어 더 뜻깊어”

    앨범을 열었더니 펜타곤이 짠~ “유니버스와 함께 만들어 더 뜻깊어”

    “저희가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다 대봤습니다. 사진 콘셉트부터, 뮤비 시안까지. 자작곡은 당연한 거고요. 그렇게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정말 좋은 앨범을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진호) 펜타곤(진호, 후이, 홍석, 신원, 여원, 옌안, 유토, 키노, 우석)이 6개월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2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미니 8집 ‘지니어스’(Genie:us) 발매 쇼케이스를 열고 ‘자체제작돌’로서의 자부심을 내비쳤다. 앨범 제목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았다. 후이는 “하나는 우리는 모두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 또 하나는 요술램프 속 지니가 되어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앨범 첫 장을 열면 펜타곤 멤버들이 마치 지니처럼 입체카드 속에서 짠하고 튀어나온다. 다음 장에는 독특하게 팬들이 적은 소원이 빼곡하다. ‘대학 합격해서 당당하게 펜타곤 만나기’, ‘펜타곤의 웃는 모습,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등 펜타곤을 향한 사랑을 담은 말부터 ‘인기짱이 되고 싶어요’, ‘로또 일등 다섯 번 당첨’ 같은 개인적인 소원까지 가득 담았다. 후이는 “팬분들과 함께 만든 앨범이라 더 뜻깊다”며 유니버스(팬덤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보너스 트랙 포함 모두 6곡의 수록곡에는 펜타곤의 솔직한 이야기를 녹였다. 신원은 “앨범 전비 준 저희끼리 펜타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20곡 정도 모은 뒤 하나의 스토리가 되도록 6곡을 추렸다. 마지막 트랙이자 보너스 트랙인 ‘라운드 1’(Round 1)은 모든 멤버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멤버 각자가 대결 상대를 만들고 서로에게 유쾌한 디스를 하는 곡이다. 키노는 “친하지 않으면 이런 가사가 나올 수 없다”며 “저희는 의 상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서 디스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타이틀곡은 ‘신토불이’는 2000년대 초반의 인기 예능 ‘천생연분‘의 오프닝 멘트였던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의 준말로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자는 의미를 담은 신나는 댄스곡이다. ‘천재작곡돌’로 불리는 후이가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후이가 만든 7곡의 타이틀곡 후보 중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선택된 곡이기도 하다. 후이는 “‘빛나리’, ‘청개구리’에 이어 나온 노래인데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존보다 조금 더 강렬하고 파워풀하지만, 펜타곤의 색깔 잃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가이드를 부르면서도 속이 시원했다”며 “회사에서 학교에서 지치고 스트레스 받을 때 그런 것들을 해소시키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한 앨범이지만 아쉽게도 ‘신토불이’ 무대는 키노를 제외한 8명이 오른다. 2달 전쯤 키노가 연습 중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날 처음 공개된 ‘신토불이’ 무대가 끝난 뒤 무대를 지켜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키노는 “제가 무대 밖에서 펜타곤을 보는 일은 흔치 않은데 너무 너무 고맙고 너무 멋있다. 옆에서 진짜 감동했다”며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과 뿌듯함을 표현했다. “지금은 목발을 떼고 걸어다니며 재활 중”이라고 설명한 키노는 “무대 외 스케줄은 모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키노가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지만 지난번 ‘청개구리’ 활동 때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빠졌던 옌안의 합류는 큰 힘이 됐다. 옌안은 “건강 문제로 중국에서 부모님 곁에서 쉬면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번 활동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후이는 “옌안이 정말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며 “옌안이 춤추는 걸 보고 멤버들이 눈물을 흘릴 뻔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지난해 ‘빛나리’가 음원 차트 역주행에 성공하며 데뷔 후 최고의 시간을 보냈던 펜타곤은 이번 활동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데뷔 때와 같은 패기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후이는 “저희끼리 가끔 1집 활동 때 음악방송 바닥을 부쉈던 적을 얘기한다. 그때 정말 패기가 넘쳤었다”며 “이번에도 그런 패기와 자신감을 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참기름녀, 화이트 수영복 입고도 참기름을?

    참기름녀, 화이트 수영복 입고도 참기름을?

    서리나의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 최근 서리나는 자신의 SNS에 “공식 석상 전 평소의 리나 모습. 마치 댄스팀 무대에서 내려온 뒤 걸크러시 느낌이 나기도 하고요. 스타일링, 스케줄 모든 준비는 혼자서”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서리나는 크롭탑을 입고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군살 없는 허리가 돋보인다. 앞서 서리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아찔한 수영복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 속에는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서리나의 모습이 담겼다. 완벽한 보디라인과 새하얀 피부가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한편, 모델 서리나는 과거 ‘참기름녀’로 이름을 알렸고 영화 ‘두 남자’,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사진 = 스포츠서울, 서리나 SNS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눈물 흘리기조차 겁났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눈물 흘리기조차 겁났다”

    “처음엔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영화 출연을 거절했어요. 하지만 마음에서 이 작품을 놓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시 출연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앞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같이 아픔을 딛고 잘 살아가자는 뜻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할 줄 아는 베테랑 배우에게도 어려운 배역이 있는 법이다. 배우 전도연(46)은 보통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 여부를 빨리 결정하는 편이지만 영화 ‘생일’(4월 3일 개봉)은 좀 달랐다고 했다. ‘생일’에서 그가 연기한 순남은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아들 수호를 세월호 참사로 잃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듯 살아가는 엄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전도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혹시 제 연기로 인해 오해가 생기거나 그 골이 깊어질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영화를 촬영하고 난 뒤에 이종언 감독님과 진도 팽목항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곳곳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의 색이 빛바래져 있더라고요. 씁쓸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잊혀져서 기억에서 희미해지지 않았나 싶어서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생일’은 해외에서 일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정일(설경구)이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만에 집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정일은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아내 순남과 딸 예솔(김보민)에게 천천히 다가가지만 순남은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냉랭하기만 하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는 순남은 새 옷을 사서 아들의 방에 걸어 놓고, 한밤중 저절로 켜지는 현관 센서등을 아들의 인기척이라고 여긴다. 전도연은 아들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의 내면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표현해냈다. 더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보일 정도로 메마른 표정이었다가도 끓어오르는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에서는 보는 이의 가슴이 무거워진다. 특히 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동네 주민들이 다 들릴 정도로 오열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흠뻑 젖게 만든다.“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부담스러운 장면이었어요. 지문이 ‘아파트가 떠내려가듯 우는 순남’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카메라 앞에 나서기까지 굉장히 무서웠죠. ‘순남의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저 스스로에게 강요하기보다 한발짝 떨어져서 순남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극 중 순남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 제 슬픔에 젖은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요. 그래도 어렵더라고요. 감정적인 소모가 많아서 그런지 촬영 끝나고 밤에 잘 때는 끙끙 앓기도 했어요.” 특히 순남이 남편과 딸의 설득으로 아들을 아꼈던 친구, 이웃들과 함께 아들의 생일 모임을 치르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응축된다. 수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매만지는 이 장면은 40~50명의 배우가 한번에 30분이 넘는 롱테이크(연속적으로 길게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했다. 2015년 안산에 위치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이 감독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감독님께서 실제로 유가족분들이 마련한 생일 모임을 가셨었는데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극 중 수호 가족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인 장면이었어요. 관객분들도 수호의 생일 모임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던 전도연은 자신이 영화를 통해 힘을 얻은 만큼 관객들에게도 그 진심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아이 셋을 키우는 제 친구가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보고 제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일하랴 아이 키우랴 살기 참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루하루 사는 게 참 감사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요. 제 친구의 이 말이 바로 이 작품이 전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싶어요. 보시는 분들이 슬픔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아이 낳지 않는 게 ‘문제’라는 국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아이 낳지 않는 게 ‘문제’라는 국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출산은 선택, 육아는 함께] ③ 저출산 정책들이 실패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2001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 1.30명으로 초저출생 시대를 맞았다. 합계출산율이 1.09명으로 더 낮아진 2005년, 정부는 인구 위기에 범국가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위원회를 만들고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저출산 정책들을 쏟아냈지만 출생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다. 역대 정부가 실시한 정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접근이 잘못됐기 때문이다.“국가가 ‘저출산이 문제’라고 말하면 ‘국가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올해로 5살 된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김정덕(40)씨는 그동안 국가가 여성을 출산의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출생률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든다면서 호들갑 떠는 건 위선적으로 느껴져요. 옛날에 사람이 넘칠 때는 국가가 나서서 여성들에게 하나만, 둘만 낳으라고 장려하더니, 이제는 저출산시대라면서 사문화된 낙태죄를 다시 끄집어내서 여성들을 죄인 취급해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 이후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 대응 기반 구축’(2006~2010년), ‘점진적 출산율 회복’(2011~2015년),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사회’(2016~2020년)를 목표로 기본계획을 세워 각 정책 분야별 세부과제를 수행해왔다. 저출산 원인으로 만혼, 청년 실업, 주택난 등을 지목하며 신혼부부 주거 지원, 청년고용 활성화, 육아 지원 인프라 구축, 가족 친화적 직장문화 조성, 양육비용 지원 확대 등 여러 해법을 내놨다. 그러나 출생률은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각 정책과제들이 목표를 달성한 것도 아니다.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2017년)에 달한다. 장시간 노동이 여전하다. 국내 어린이집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7.8%(2017년)에 불과하다. 2005년(5.2%)과 비교했을 때 2.6% 포인트가 올랐을 뿐이다. 국내 유치원 중 국·공립 유치원의 비중은 2005년 53.3%에서 2017년 52.6%로 오히려 후퇴했다. 정부는 또 유연한 근무 형태를 확산하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의 ‘2016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한국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21.9%에 그쳤다. 결국 여전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기대하기 힘들고 보육 인프라가 열악한 사회에서 가사와 육아 부담은 고스란히 개인, 특히 여성에게 전가됐다. 맞벌이 여성의 평일 하루 육아 시간은 평균 229분인 반면 맞벌이 남성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46분). 휴일에도 맞벌이 여성의 평균 육아 참여 시간(298분)이 맞벌이 남성(146분)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다.(보건복지부 ‘2017 저출산·고령화 국민인식조사’) 정덕씨는 “만일 지금 제가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저는 정말 다시 한 번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로 3살 된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김한샘(38)씨도 “출산부터 양육까지 엄마에게 많은 책임을 지우는 현실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예전과 달리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기 경력의 일부 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녀 양육을 위해 희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양육하려면 보육시설과 아이돌보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부모, 특히 여성의 신체적·감정적 소모가 출산 때부터 엄청 심해요. 그 힘든 몇년을 버텨도 대부분의 여성은 출산휴가를 포함해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사용하는 잦은 휴가들로 경력상 발전을 할 기회들을 잃기 일쑤입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하면 진급 누락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죠.”●출산은 차별로 이어지고 지금도 여성들은 임신, 출산을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임신, 출산, 육아휴직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여성 임금 노동자 480명 중 245명(51.0%)이 출산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245명 중 171명(69.8%)이 배치 및 승진에서, 173명(70.6%)이 보상 및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임신, 출산으로 차별 또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힌 여성 180명 중 134명(74.4%)이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가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44명·32.8%)였고, 다음으로 ‘인사고과, 승진 등 직장 생활에 불이익이 우려돼서’(33명·24.6%)였다. 육아휴직의 경우에도 여성과 남성 응답자 800명 중 159명(19.9%)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는데 이 중 111명(69.8%)이 배치 및 승진에서, 113명(71.1%)이 보상 및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차별은 해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응답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고 (일을) 그만둔 뒤 다시 직장을 어렵게 구했는데, 그때도 정규직이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제가 임신을 했어요. 계속 다니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약간 그만두라는 식으로 나와서 3개월도 못 다니고 나왔습니다.” 직장인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인 백연주(36)씨도 “만일 지금 직장이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딜 가서 일을 해야 하지?’라는 불안감, 두려움, 걱정 이런 게 매우 컸다”고 토로했다. 연주씨는 2015년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출산휴가(3개월)와 육아휴직(1년)을 쓰고 첫째 아이를 돌봤다. 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두고 무직 상태에서 육아를 이어갔다. 2017년 일자리를 찾았고, 현 직장에 면접을 거쳐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출근을 앞두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 뽑은 사람이 6개월 만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회사에 미안하다고 했어요. ‘임신 사실을 숨긴 것이 아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에 인지했다’고 솔직히 얘기하고···. 다행히 회사가 배려해줘서 출산휴가 3개월을 쓰고 복직을 했어요. 그게 무척 감사해요. 30대 중반이라 경력단절에 대한 부담이 컸거든요. 대신 남편이 육아휴직을 사용했죠.” 이런 난관들을 뚫고 어렵게 출산을 해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거부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동들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카페, 식당 등 출입이 제한되고(‘노키즈존’), ‘맘충’이라는 말을 툭툭 내뱉어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엄마들이 신경을 쓰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출산하지 않는 여성, 무자녀 부부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아이를 기르는 부모, 그리고 아이를 얼마나 배려하는 사회인가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한샘씨)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는데, 눈앞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후 희생된 아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차갑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웠어요. 세상이 아이들을 버리는 것 같았어요.” (정덕씨)●아이를 포기하는 이유 그동안 저출산 정책들은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가족 안에서의 출산을 장려하는 데에 집중했다. 여기서 가족은 ‘결혼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낳은 자녀’의 결합만을 뜻했다. 이것을 규범이라면서 여기서 벗어난 형태의 가족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아이를 임신·출산·양육할 권리를 박탈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혼모 가족과 장애인 가족이다. 정수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은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부모가 반대하니까, 그리고 사회의 따가운 손가락질을 받기 싫기 때문”이라면서 “미혼모와 미혼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고 했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땐 아무도 미혼부의 책임을 묻지 않고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미혼부가 아이를 키울 땐 ‘엄마가 버리고 간 아이를 책임지는 아빠’라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설명이다. 이런 낙인 때문에 미혼모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도 심각하다. 정 팀장은 미혼모 사연을 몇가지 소개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한 미혼모는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보육교사로 취업하려고 했는데 학부모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면접관들이 지원서류를 보고 “당신 같은 부도덕한 사람을 선생님으로 고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는 거다. 또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미혼모가 있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무장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직장에 네가 이렇게 있는 게 보기 안 좋다”면서 사직을 권고했다. 여성 장애인이 처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혜영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사무처장은 “결혼한 여성 장애인 중에도 임신과 출산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해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부모의 반대로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육 미혼모와 여성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이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장애인 부모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왕따와 놀림, 괴롭힘을 경험합니다. 결국 부모의 장애로 인해 자존감 상실과 우울, 탈선 같은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죠.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가장 절실합니다. ‘누구나 예비 장애인이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처장) “제 아이도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한테 ‘거지’라고 놀림 받은 적이 있어요. 또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학교에서 ‘엄마와 아빠가 결혼을 해야 아이가 태어난다’고 가르친 거예요. 아이가 ‘엄마는 왜 결혼 안 하고 날 낳았어?’라고 묻더라고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미혼모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있어요.” (정 팀장)●달라진 여성의 삶을 반영해야 출산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결정은 자신이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인지, 자녀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인지 등 자신과 아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한 복합적 산물이다. 지금처럼 저출산을 여성에게 책임을 물으며 ‘위기’로만 간주하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신·출산·육아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 그칠 게 아니다. 출산과 함께 불거지는 여성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또 미혼모 가정이든 장애인 가정이든 모든 가족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자를 지원하는 일에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 구성의 다양성을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돌봄의 공적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한 사람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때 그거야말로 제대로 된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온전히 자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그럴려면 돌봄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가족뿐만 아니라 보육교사들, 아이돌보미들, 방과후 돌봄교사들, 또 간호사들 처우도 개선돼야죠. 돌봄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잖아요. 아이뿐만 아니라 돌보는 사람도 제대로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덕씨)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출산은 선택, 육아는 함께] 기획① “출산을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충분히 행복합니다”② 나도 육아휴직 쓰고, 칼퇴하고 싶은데…아빠들의 고민③ “저출산이 ‘문제’라니···국가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 ‘비행 청소년’ 편견 싫어요… 다른 꿈 가진 10대 입니다

    ‘비행 청소년’ 편견 싫어요… 다른 꿈 가진 10대 입니다

    “가장 좋은 발성은 내 목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입니다. 콧구멍을 열고 호흡으로 허밍을 해봐요.”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 강의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청소년들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박민호(18)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나마 붙임성이 좋은 민호씨가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고 처음 수업에 들어온 수강생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걸어 2시간 동안의 보컬트레이닝 수업이 한껏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은 서울교육청이 운영하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 기관이다. 독서토론, 목공, 드론 등 취미와 교양 수업에서부터 진로 상담, 검정고시 준비, 학업 복귀 컨설팅까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해준다. 민호씨는 이날 오전 10시 친구랑을 찾아 보컬트레이닝 수업을 받았다. 오후엔 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의 하나인 미술 관람을 하고, 오후 5시쯤 친구랑으로 돌아와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민호씨가 학교를 떠난 건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갓 시작할 때였다. 초등학교 때 자신을 따돌렸던 아이들이 중학교에도 그대로 진학하면서 중학교 생활도 상처로 가득했다.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고등학교를 찾아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한 번 손을 놓은 공부를 다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도망치듯 학교를 그만둔 터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만큼은 또렷했다. 당장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 적금을 부었다. 학교를 그만두는 순간 용돈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았다가 친구랑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또래 친구들이 여기 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우고 싶어 제 발로 찾아왔어요,” 학교를 그만두던 해가 끝나갈 무렵 친구랑의 문을 두드린 민호씨는 그때부터 “오늘만 참으면 되겠지”라며 버텨냈다. 사회성을 기르는 법,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법, 살아남는 법 등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학교 밖에서 배웠다. “학교를 그만뒀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저희를 마음대로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다들 잘 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죠.” 민호씨는 “우리 아들은 잘 할 거야”라며 믿어주시는 어머니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제가 여기(친구랑) 다니는 애들 중에 제일 바빠요. 하하.” 그도 그럴 것이 민호씨는 1주일 내내 스케줄이 가득 차 있다. 인근 지역의 청소년 지원기관들을 오가며 보컬 수업과 K팝댄스 수업 등에 참여한다. 입시 공부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대학생 멘토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주말에는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침 저녁으로 틈을 내 운동도 한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고 보니 드디어 ‘하고 싶은 것’도 찾을 수 있었다. 학교를 다녔으면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을 민호씨는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학점은행제를 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자신의 경험을 발판 삼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제 경험은 30, 40대 어른들도 못 겪어본 것일 수 있어요.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제 경험을 알려드리고 싶어요,”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은 5만명 안팎이다.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1%에 가깝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비행 청소년’ 혹은 ‘학교폭력 가해자’로만 바라보는 사회 편견이 여전하지만, 청소년들이 학교를 박차고 나오기까지 어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6~8월 학교 밖 청소년 32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8년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를 그만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학교 다니는 게 의미 없어서(39.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공부하기 싫어서(23.8%)’,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23.4%)’, ‘학교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아서’(19.3%), ‘심리·정신적 문제’(17.8%) 등이 뒤를 이었다. 각종 지원기관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지도하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자기 주도성’을 높이 평가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에는 학교 밖 청소년 90여명이 서울시의 ‘학교 밖 청소년 맞춤형 인턴십’ 면접을 위해 모여들었다.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주관으로 2001년 시작된 사업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민간 업체에서 월 35시간 인턴십을 하면 서울시가 3개월간 월 30만원씩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매년 20~30명 수준으로 지원을 하다 지난해 100명, 올해 300명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참여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목표가 명확했다. 김현수(17·가명)씨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인턴십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사업에 참여했다는 나호연(17·가명)씨는 “바리스타에 관심이 있어 지난해에는 커피전문점에서 인턴십에 참여했지만 제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아 올해는 목공 분야에 지원해 보려 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날 면접관으로 참여한 환경에너지 교육업체인 ‘마을기술센터 핸즈’의 정해원 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올해도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삐딱한 시선에 날개를 펼쳐보기도 전에 상처부터 받곤 한다. ‘2018년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를 그만둔 후 겪는 어려움으로 ‘선입견·편견·무시(39.6%)’를 1순위로 꼽았다. 또 절반 이상(51.9%)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으며 세 명 중 한 명(32.8%)은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인턴십 면접에 참여한 정현주(19·가명)씨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하면 우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제약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면서 “나이와 학생이 아니라는 신분을 밝히는 순간 채용을 꺼리고, 일부 사업장은 이를 악용해 최저임금만도 못한 급여를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포청소년문화의집에서 학교 밖 청소년 상담 등을 맡고 있는 남현철 담당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는 데 필요한 부모 동의서 등 서류를 비치한 사업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구두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터에서 겨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친구랑의 문을 두드린 민호씨, 인턴십에 참여해 일을 배우려는 이들처럼 각종 지원기관과 제도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일부일 뿐이다. 교육당국은 공공 테두리 밖을 겉돌며 방황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연락처를 확보하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스스로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해도 교육과 진로 설계 등 청소년 시기에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이 교육당국과 지방자치단체와의 끈을 놓지 않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이달부터 지급하는 교육수당도 이 같은 방안의 일환이다. 친구랑에 등록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월 20만원의 교육수당을 지급한다는 계획인데, 발표 당시 교육청이 ‘탈학교’를 부추긴다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나 부모가 고소득자인 청소년에게도 수당을 지급하는 게 형평성에 맞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서울교육청은 청소년들로부터 수당 사용 계획을 제출받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유해업소에서 쓸 수 없는 ‘클린카드’ 등에 충전해 교육비나 문화체험비, 교통비 등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수당 사업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두려운 학교 밖 청소년들이 지원기관을 찾아오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게 서울교육청의 판단이다. 실제로 수당 사업이 알려진 뒤 친구랑에 등록하는 청소년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신성희 친구랑 센터장은 “학교 밖 청소년 중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집에서 은둔하던 청소년들이 한 달 20만원으로 학원비라도 보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르고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의 ‘꿈드림센터’와 각 지자체의 각종 사업,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직업교육기관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자원들은 많지만 유기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빈틈이 생겨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위한 지원사업과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서울시의 학교 밖 청소년 인턴십 사업의 경우 지원금(월 35시간, 30만원)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정보를 몰라서 지원자가 적었다고 청소년들은 입을 모았다. 정현주씨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이 사업을 알면 지원자가 더 많이 몰렸을 것”이라면서 “생각보다 경쟁자가 적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청소년이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학교의 관리에서 벗어나고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기관들도 제각각 운영되면서 이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다”면서 “상담시설, 직업교육기관, 보호시설 등 활용 가능한 자원을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어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① ②
  • “너도 죽일 놈의 사랑 중이냐? 같이 사랑학개론 수강하자”

    “너도 죽일 놈의 사랑 중이냐? 같이 사랑학개론 수강하자”

    ‘사랑에 실패했나요? 수업 들을 시간입니다.’ (Failing at love? Maybe It’s time for classes) 지난달 15일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 대학가의 연애와 데이트 강의를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는 한국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책만 파며 주입식 학습을 하던 습관처럼 대학에서 연애도 ‘열공’(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서 “사랑은 훈련과 연습의 분야지만 성적에 집착하는 한국 문화는 이를 교수, 성적, 대학 학점, 재수강 위험까지 포함한 학문으로 바꿔 놨다”고 썼다.외신의 눈에는 독특한 현상으로 비치지만 사랑, 연애, 데이트 관련 수업은 몇 년 전부터 대학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딱딱한 보고서 대신 ‘짝과 데이트하기’를 과제로 내주는 수업들이 입소문을 타고 “모태솔로를 벗어나고 싶으면 수강 신청 때 ‘광클’(미치도록 빠르게 클릭)하라”는 꿀팁도 퍼졌다. 학생들은 왜 연애를 공부로 배우려 할까. 수업을 듣고 나면 정말 없던 연애 기술이 생길까. 학생과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녀 상황극·데이트 해보기… 실전같은 수업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대학에 왔을 땐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낯설었어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예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교양 수업에서 남녀가 짝을 나눠 상황극을 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제 감정을 잘 표현하게 됐죠.” 강현욱(21)씨는 지난해 한국외국어대에서 ‘성, 사랑, 결혼’ 강의를 수강했다. 대학 입학 후 제일 먼저 들은 교양 수업이었다. 대학에 와서 이성 친구들을 만나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던 그는 “연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에 혹해 수강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70명 정원의 이 수업에서는 조별로 역할극을 했다. 술자리에 간 남자친구가 오랜 시간 연락되지 않아 여자친구가 섭섭해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어떻게 하면 둘의 관계를 슬기롭게 풀어 나갈지 고민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적인 고민이 수업 시간에 다뤄진다.세종대 ‘성과 문화’ 수업에서는 제비뽑기로 맺어진 짝꿍과 데이트하는 게 과제다. 학생들은 파트너와 5000원씩 갹출해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를 본 뒤 감상문까지 써내야 한다. 학생들은 주어진 예산 한도 안에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차곡차곡 적립한 포인트로 영화 티켓을 예매하고, 헌혈을 해서 문화상품권을 얻기도 한다. 2011년부터 이 강의를 맡고 있는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겸임교수)은 과제의 목적에 대해 “삶에 대해 겁내지 말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돈이 많아야만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1만원으로 빠듯하게 데이트를 하다 보면 연애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고 소개했다. 학생들이 이런 강의를 굳이 찾아 듣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과 사랑이 이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배 소장은 “한국 10대들에게 성은 금기에 가깝고 수년간 모든 욕망을 억눌려 지낸다”며 “모든 자유를 누리게 되는 스무 살에는 정작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 입학 후 이성과의 만남을 시작하면 허둥댈 수밖에 없다. 당장 지식이 필요한데 이 욕구를 채워 줄 교양 수업이 구세주인 셈이다. 이런 학생들의 욕구는 강의실을 넘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유튜브 등 온라인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실 공간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한 고민도 온라인 익명 상담 때는 용기 있게 털어놓고 답을 구할 수 있다. 연애 상담을 해 주는 유튜브 채널은 20개가 넘는다. ‘헤어진 연인 빨리 잊는 법’, ‘연애가 두려울 때 극복법’, ‘상대방을 설레게 하는 스킬’부터 콘돔 사용법, 성관계 체위 등 수위 높은 콘텐츠들도 다뤄진다. 카카오톡 등 온라인 메신저를 통한 소통이 일반화되면서 채팅을 캡처해 보내면 내용을 해석해 주고 적절한 대화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개인 연애 상담도 해 주고, 연애 이론을 인터넷 강의처럼 만들어 올리기도 하는 유튜브 채널 ‘연애언어TV’ 운영자는 “상담자의 70% 정도는 20대인데 아무리 취업난이 있어도 연애 욕구나 고민은 늘 있는 것 같다”며 “소통 방법이나 인간 관계에 대한 이론을 알면 연애로 상처받을 확률, 실패할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의실 넘어 SNS 등 온라인 상담까지 학생들과 교수들은 연애 관련 수업이 “연애 고민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라고 말한다. 한국외국어대 ‘성, 사랑, 결혼’ 강의를 들은 강씨는 “데이트하기 과제 대상이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 등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커플 수업만은 아니었다”면서 “연애 기술을 배우기보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낯선 상대방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생각의 차이를 배우기도 한다. 올해 경희대에서 ‘즐거운 연애, 행복한 결혼’ 강의를 듣고 있는 공경현(24)씨는 “수업 시간에 데이트 폭력 문제를 다뤘는데 저를 비롯한 남학생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문제를 여학생들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면서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상대를 좀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유진(20)씨도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수업 시간에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듣게 됐다”면서 “이런 입장이 잘못된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등 구체적 사회문제는 물론 젠더 이슈나 페미니즘 등을 함께 다루는 연애 수업도 많아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성에 관련된 수업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나 심리적 차이를 많이 다뤘지만, 최근에는 여성주의적 관점이 포함되는 등 강의 내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성균관대의 ‘성과 사랑의 문화론’ 수업의 경우 성,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개념을 개괄한 뒤 위안부, 여성소설, 신자유쥬의 한국 문학과 페미니즘까지 영역을 넓혔다. 수업을 들었던 김모(23·여)씨는 “정규 수업을 통해 성이나 젠더에 대해 배우면 좀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듣게 되는 것 같다”며 “단순히 생물학 또는 심리적 차이에서 벗어나 좀더 평등한 관계를 고민하고 일상 속 실천도 해 보려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부터 ‘즐거운 연애, 행복한 결혼’ 수업을 맡은 임국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는 관계를 평등하게 유지하기 위한 수업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 강사는 “20대의 연애가 중요한 이유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때문인데, 이는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연결된다”며 “입력된 알고리즘처럼 ‘어떤 상황에선 뭐라고 대답하라’고 조언하는 게 아니라 평등하고 민주적인 소통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가르친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철학은 어떻게…’, ‘공부머리…’ 등 2주 연속 베스트

    ‘철학은 어떻게…’, ‘공부머리…’ 등 2주 연속 베스트

    철학을 주제로 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2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강세를 보였던 에세이 도서는 여전히 승승장구다. 고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윤지오 씨의 책 ‘13번째 증언’이 새로 순위에 진입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인터파크도서는 22일 3월 3주 베스트셀러 집계를 발표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가 지난주와 변함 없는 가운데, 에세이 도서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교보문고 1위는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예스24는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 인터파크도서는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다. 지난주에 이어 모두 변동 없이 1위를 유지했다. 혜민 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에세이 도서가 상위권에 포진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은 ‘출간하면 무조건 베스트셀러’라는 말 그대로다.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아이의 행동 변화 전문가로 활동했던 정유진 아동상담 전문가가 쓴 ‘아이의 떼 거부 고집을 다루다’도 눈에 띈다.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 (3월13~19일) 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3.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4. 인어가 잠든 집 5. 꽃을 보듯 너를 본다 6. 아이의 떼 거부 고집을 다루다 7.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9 8.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9. 언어의 온도 10.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3월14~20일) 1. 공부머리 독서법 2.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3.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4. 아주 작은 습관의 힘 5.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9 6. 쓰레기처럼 사랑하라 7. 아이의 떼 거부 고집을 다루다 8.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9. 말센스 10. 에어프라이어 만능 레시피북 ●인터파크도서 주간 베스트셀러(3월14~20일) 1. 아주 작은 습관의 힘 2.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3. 말센스 4. 공부머리 독서법 5. 13번째 증언 6.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7.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8.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9. 수미네 반찬 10. 융의 영혼의 지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진상고객님 확 먹어버릴까” 서점에서 일하는 늑대님 생각

    “진상고객님 확 먹어버릴까” 서점에서 일하는 늑대님 생각

    호주 퍼스의 한 서점에서 일하는 앤 바넷선이 그린 네 칸 만화입니다. 서점 안에서 늑대님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얼리버드 개님께서 문을 긁다가 영업이 개시되지 않은 것을 알고 화를 내고, 개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문 연거요?”라고 묻네요. 소비자는 늘 옳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비스 업소의 직원들에게 이 말처럼 듣기 싫은 말이 있을까요? ‘감정노동자’ 바넷선은 자신의 감정을 ‘고객 서비스 늑대’님에게 이입해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인스타그램과 텀블러에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고 영국 BBC가 21일(현지시간) 전했습니다. 난동 부리듯 서점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못 본 척하는 부모, 명확하지 않은 발음(똑 기자 얘기인 것 같음)이나 야릇한 정보를 주워대며 요상한 책을 찾는 이들, 그냥 무례할 뿐인 이들이 진상 고객을 대표하는 이들이랍니다. 오죽하면 이 늑대님은 토끼나 새, 또는 다른 먹잇감으로 분한 고객님을 먹어치워 버릴까 생각도 한답니다. 앤은 “긴 하루를 마쳤을 때 사람들은 ‘이 모든 게 지금 당장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고 웃음을 터뜨린 뒤 자신은 실제로는 굉장히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조금 과장되게 그린다고 했습니다.한 고객님이 쪽지를 들고 정말 그런 책이 있을까 싶은 제목을 주워섬기네요. 뜨악한 늑대님 표정 보셨나요? “찾기 힘들겠으면 주문을 넣던가?”란 고객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늑대님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까마귀, 치타와 함께 퇴근하면서도 늑대님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늑대님은 한밤중 숲에서도 여전히 근심에 사로잡혀 있으시네요. 어느날 서점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와 서로 별명을 지어주기로 했는데 앤은 ‘나는 늑대’라고 지었더니 친구는 ‘검은 늑대’라고 지었습니다. 친구가 “이 야만적인 포식자가 가게에서 일하고 자기를 말려 죽이는 고객들을 먹어치우는 식으로 묘사하면 재미있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지요. 그래서 득달같이 그려준 것이 요 네 칸 만화입니다.‘결정 장애’가 있어 보이는 토끼님이 카드라고 해놓고는 나중에 현금이라고 번복하자 카운터 너머로 몸을 날린 늑대님이 토끼님을 드셔버립니다. 둘이 배꼽을 쥐고 웃었는데 곧 앤은 세상에 알려줄 경험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누구라도 진짜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동물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이번엔 단칸 만화. 생일 선물로 책 ‘극지에서의 하루’를 든 손님이 “그애가 펭귄을 좋아할 거라고 확신해?”라고 묻자 “누가 어째?!”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맙소사, 그것도 확인 안한 거야?”라고 재차 묻죠. 그러니까 “파티는 10분이면 끝나”라고 엉뚱한 답을 내놓습니다. 늑대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시고요. 그런데 우리, 결제하느냐에만 관심 있는 서점 직원 앞에서 이런 생뚱맞은 대화를 나눈 경험 있지 않나요? 친구들이나 자신의 상사도 만화에 등장시킵니다. 어느 서점에서 일하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조금씩 알려가며 책을 냈으면 한답니다. 앤은 “주님께 감사하게도 아직 한 사람도 ‘내 얘기 아니냐’고, 명예훼손이나 뭐 그딴 걸로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며 웃었습니다. 가끔 댓글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처음 일했을 때 한 숙녀분이 오렌지 책이 있냐고 묻더군요. 제목도 기억 안나고 줄거리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동료 직원이 ‘big orange book’이라고 말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정말로 그런 책이 있을까 싶다.)“레코드 가게에서 일할 때 이런 주문을 받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지요. ‘이봐요, 요즘 라디오에서 늘 나오는 그 사랑 노래 있잖아요. 당신이 제목을 모를 리가 없는데, 언제나 흘러나오니까’” 이런 경험도 한 번쯤 있지 않나요? 여러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퍼나르기는 2차 가해… 자정 노력만큼 징역형 등 처벌 강화해야

    퍼나르기는 2차 가해… 자정 노력만큼 징역형 등 처벌 강화해야

    2000년대 초 한 연예인의 동영상 사건이 뜨거웠습니다. 영상은 당시 메신저 MSN을 통해 빠르게 퍼졌습니다. “IT 강국 한국의 초고속통신망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준 사례”라는 농담도 있었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봐야 한다”는 무책임한 태도도 드러났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가수 정준영·승리 등이 연루된 ‘성관계 동영상 유포’ 사건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몰카’는 기승이고, 확산 속도는 LTE급입니다. 그나마 공유·유포는 범죄라는 인식이나 ‘2차 피해를 막자’는 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희망적이랄까요. 이번 ‘불온(不on)한 회의’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성범죄와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을 논했습니다. 부장:‘난 소속된 SNS 단체 대화방, ‘단톡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없겠지? 불편한 경험도 한 번쯤은 있을 듯한데. 진호:이번 정준영 사건이 불거지면서 제가 속한 대화방에서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영상 파일이 올라왔어요. 교사인 친구는 말없이 대화방을 나갔고, 저 또한 눌러 보지 않고 나왔습니다. “이러지 말자”라고 얘기를 할까 아니면 그냥 나올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한 거죠. ‘한마디 할걸’이라는 후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단톡방에선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링크나 영상은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의를 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 말 때문에 링크 보낸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화제 전환을 해서 그 방에선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세진:동창들 단톡방에서 작년 초쯤 성적 농담이나, 이른바 사전 유출된 ‘영화 속 엑기스 영상’이 이따금씩 올라왔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힘들어서 그 방을 나왔습니다. 현용:서로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런 일이 있어도 단톡방을 나가기 힘들죠. 유포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사건이 터지면 경찰 수사를 통해 명단이 나오는데 이건 누가 퍼트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선 조직적으로 퍼트리는 곳이 있다고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이 퍼트리는 것도 많을 듯해요. 유민:성적 농담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쓰는 요즘에는 단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와 공유가 가능하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가 더욱 심각해진 것 같아요. 친구나 동료 등 친분 위주의 단톡방에선 불법적인 것을 공유하면서 좋지 않은 쪽으로 결속을 다지기도 하고요. 진호:사실 단톡방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관계 단절을 우려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더이상의 교류를 안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유민:단톡방을 나가고 싶어도 그 방을 나갔을 때 공지 사항이나 약속 모임을 전달받지 못하거나 단톡방을 통해 유지되는 관계를 포기해야 해서 마지못해 그냥 머물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장:이슈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의 성적 농담엔 동참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세진: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과 성적 농담, 평소에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대화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호:대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품평하고 하는 일들은 여성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식 자체로 문제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공적으로 평가받는 게 온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성적 농담의 수위란 게 허용 가능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신중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개인 간 대화의 자유를 너무 위축시키는 건 아닐까요. 부장:사적인 대화라도 불법적인 요소가 있어서 누군가 그 대화를 신고했다면, 그순간 공적 영역에 들어가는 거지. 명백한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범죄이니. 현용:기자들 중에서도 일부가 수위가 높은 성희롱 발언을 해서 크게 논란이 됐었던 적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크게 놀랐습니다. 몸매 품평은 물론이고 성희롱 수준의 대화였죠. 부장:이런 일은 메신저가 자리잡으면서 가끔씩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이걸 ‘정보’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기자는 이런 데서 뒤처지면 안 된다”면서 죄의식 없이 공유했지. 최근엔 이런 행동들을 자제하는 듯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갖고 있더라고. 진호:증권가 정보지 등을 전달받았을 때 ‘내가 이 단톡방에서는 누구보다 정보력이 빠르다’는 승부욕 같은 것이 생겨서 그 내용을 전파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일단 전달부터 하는 일도 있어 보입니다. 유민:문제가 됐던 대학생 단톡방을 보면 주변 친구들을 단순 외모 품평 수준이 아닌 성적 도구로 보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표현을 했더라고요. 그 행동이 어떻게 ‘농담’이 되는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승리도 성접대 알선이 의심되는 대화에 대해 ‘장난’이라고 했었죠. 일련의 단톡방 사건들에 대해 일부 ‘남자들이라면 하나쯤 저런 방이 있는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동정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참 씁쓸했어요. 현용:‘누구나 하나쯤’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 아닌가요. 세진:성폭력 관련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왜 모든 남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냐’는 반론이 많죠. 하지만 잘못된 성 관념에 기초한 ‘남성다움’ 문화를 무너뜨리려면 남성들이 모두 해결에 나서야지 ‘나는 아니야’라고 선을 그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진호:‘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성별(이분법적인 성별을 넘어서)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존중하자는 것이니까 여자든 남자든 타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는 발언들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유민:카톡방에서의 문제를 ‘대화’로만 본다면 성 구분이 의미 없다는 데 동의해요. 불법 영상 촬영과 유출, 공유 문제에서 그 주체가 주로 남성이었다는 점까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자 현실이니까요. 정준영의 경우 문제 영상에 본인이 등장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직접 찍고 공유까지 했는데 평소 성에 대한 인식이 비정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진:많은 남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잘못된 성 인식이 문제인 거겠죠. ‘대부분의 남성이 불법 촬영을 하는 건 아니다. 난 억울하다’ 말해도 믿을 수 없는 게 지금 현실입니다. 그러면 ‘난 억울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남성들의 문화’를 깨뜨려야 하죠. 진호:여자 화장실 몰카 사건 등 여성에 대한 불법 영상 사건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주로 분노하는데, 이번 모텔 몰카 사건(모텔 30여곳에 몰카를 설치해 1600여명이 피해 본 사건)의 경우 남녀 모두 분노하는 반응이에요. 결국 남녀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겠죠. 부장: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말과 함께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거론되는데. 세진:불법 촬영 문제를 포함한 성폭력 문제를 정말 일부의 ‘악질’들이 저지르는 ‘특이한 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학교, 가정 등에서 문화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성별 권력, 성차별적인 인식(여성을 성적 대상과 도구로만 보는)에서 비롯되는 문제라서요. 유민:강력한 제도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법) 이후 실제로 접대나 청탁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요. 현재는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해당 대화 내용을 캡처한 후 출력해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을 방문하거나 ‘스마트 국민제보’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보해야 하는데요. 카카오톡 애플에 신고 버튼을 만들어 직관적인 제보를 돕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용:성범죄에 대해서는 자정 작용을 기대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는 문화 개선이라는 접근으로는 아무런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징역형 정도의 처벌은 필요하다고 봐요. 벌금형으론 국민들의 공분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성희롱이나 영상 유포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익광고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형량 강화와 더불어 처벌이 가능한 명백한 범죄라는 점을 계속 부각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나도 육아휴직 쓰고, 칼퇴하고 싶은데…아빠들의 고민

    나도 육아휴직 쓰고, 칼퇴하고 싶은데…아빠들의 고민

    육아는 여성의 몫이 되기 일쑤다. 아이가 생기면 보통 엄마가 휴직이나 퇴사를 한다. 여의치 않으면 할머니가 아이를 대신 돌본다. 아이돌보미도 대부분 여성이다. 출산과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외치지만,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에게 엄마가 되기를 강요하고 남성에겐 아빠 역할을 배제하는 성별 분업 구조는 견고하다. 남성을 협조자에 머물게 하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육아의 주체가 되는 남성들도 있다. 남녀가 같이 아이를 낳은 만큼 양육 책임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있다고 말하는 아빠들과 배우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남편에게도 찾아온 우울증 결혼 4년차인 홍원표(47)씨는 두 아이의 아빠다. 지난해 8월부터 첫째 아이에 대한 육아휴직을 사용 중이다. 배우자인 백연주(36)씨는 4년 전 태어난 첫째 아이를 돌볼 때 육아휴직을 한 차례 썼다(한 자녀에 대해 부모가 각각 최대 1년까지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연주씨가 직장을 다니고, 원표씨가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과 다음 달 돌을 앞둔 둘째 아이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원표씨의 주양육자 역할은 처음이 아니다. 2015~2016년 연주씨의 육아휴직 기간에 원표씨는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 연주씨가 복직한 뒤로 원표씨는 첫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직 상태로 7~8개월 동안 혼자 아이를 돌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왔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쉴 틈도 없이 빠듯하게 일하는 느낌? 집안일도 같이 해야 하니까요. 주말이라고 해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하루 종일 얘기할 상대가 아이밖에 없잖아요.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이런 생활을 몇 달 동안 하니까 우울해지더라고요. 당연히 우울해지죠.” 하지만 원표씨는 그때도, 지금도 독박 육아는 아니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주양육자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육아 시간에 차이는 있더라도 똑같이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남편이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당신이 지금은 주양육자가 아니어도 이를테면 밥솥에 밥이 있는지 없는지, 분유는 얼마나 남았는지, 일주일 동안 아이에게 어떤 이유식을 먹일지 신경써야 한다’고.” (연주씨) “이렇게 얘기하고 나서 입장이 뒤바뀌었을 때(아내가 주양육자였을 때) 한동안 아내가 역공했죠. ‘당신이 직장 다니느라 청소를 안 하고 빨래를 안 할 수도 있는데 아이가 다음 날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말이 그대로 되돌아왔죠. 하하.” (원표씨) 육아는 나홀로 아닌 팀플레이 올해로 3살 된 아이를 키우는 배재현(45)씨는 직장에서 ‘칼퇴’하고 집에 도착하면 아빠로 변신한다. 육아뿐만 아니라 설거지와 빨래 등 가사노동도 한다. 하지만 재현씨는 아내 김한샘(38)씨에게 “계속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임신·출산도 사실은 여성인 아내가 다 하는 거잖아요. 임신 중에 남편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대신 육아는 저도 할 수 있잖아요. (출산 후) 100일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가 2시간마다 울면서 잠을 깨니 매일 밤을 꼴딱 새고…. 진짜 멘붕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출근도 했거든요. 근무시간만큼 육아와 가사일에서 빠져 있었으니까, 그게 계속 미안했죠. 아내 혼자 집에서 그 많은 일을 해야 했으니….” 한샘씨가 출산 후 3개월이 지나 3~4개월 동안 양육을 도맡았을 때도, 이후 1년 넘게 아이돌보미가 하루에 3~4시간 한샘씨의 양육을 도왔을 때도 재현씨는 변함없이 퇴근 후 귀가해서 집안일을 했다. 한샘씨는 “남편이 기본적으로 ‘같이 아이를 낳았으니까 돌봄도, 살림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아이 씻기는 법, 기저귀 가는 법을 알려줘요. 그런 거 다 영상으로 찍어서 방법 익히고. 아내가 몸이 아프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아내가 매일 집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제가 아이 돌보는 방법을 모르면 큰일 나죠. (육아·가사일)은 정말 스트레스 많이 쌓이거든요. 그래도 제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현씨) 결혼 6년차이자 올해로 5살 된 아이의 아빠인 박범섭(39)씨는 육아와 집안일은 ‘팀플레이’라고 말했다. “‘난 아이만 돌봐야지’, ‘난 살림만 해야지’ 이렇게 무 자르듯이 나눌 수가 없어요. 아이가 지금 엄마랑 놀고 싶다면, 제가 가서 ‘놀아줄게’라고 해봤자 소용없거든요. 그럴 땐 엄마가 가야죠. 그럼 그 사이에 제가 식사 준비, 빨래, 청소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요. 또 아이를 씻겨야 하는데 아내가 몸이 아프면 제가 하는 게 당연하고요. 아이 씻기는 걸 미룰 순 없잖아요.”평등육아를 가로막는 장벽들 지난해 공개된 보건복지부의 ‘2017 저출산·고령화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의 평일 하루 육아 시간은 평균 229분인 반면 맞벌이 남성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46분). 휴일에도 맞벌이 여성의 평균 육아 참여 시간(298분)이 맞벌이 남성(146분)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다. ‘평등육아’라는 개념을 갖다 대기 민망한 통계치다. 여기서 ‘평등’은 두 사람이 일을 5대5로 나눠서 매일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평등한 육아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는 출산을 함께 선택한 두 사람에게 달린 문제다.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맞춰 나가야 한다. 숙고하지 않고 단순히 가사와 육아의 일차 책임자는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 규범에 기댄 분담은 평등한 육아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협의 과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성 불평등이다. 원표씨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가계 입장에서는 손해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제가 직장에서 월 300만원을 벌고, 아내가 월 200만원을 벌어요. 만일 육아휴직 급여로 100만원 받는다고 해보죠. 가구소득면에서 보면 누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답이 나오죠.” 통계청이 여성가족부와 함께 작성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여성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29만 8000원으로 남성 노동자 임금의 67.2%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남녀의 임금 차이는 육아휴직 급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육아휴직을 신청한 노동자에게 휴직기간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한다. 육아휴직 시작일부터 첫 3개월까지는 통상임금의 80%(상한액 월 150만원, 하한액 월 70만원)를, 4개월째부터 휴직 종료일까지는 통상임금의 50%(상한 월 120만원, 하한 월 70만원)를 준다. 급여의 25%는 복직 후 일시불 지급이다. 기본적으로 임금에 따라서 지급액이 달라지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 지난해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전체 육아휴직자의 17.8% 수준에 그쳤다. 육아휴직을 대신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주당 15~30시간) 신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 노동자의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비율 역시 전체의 14.4% 수준에 머물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액도 통상임금과 단축 전후의 노동시간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한샘씨는 “시간제 아이돌보미가 하루 3~4시간 집에 오면 한달에 50만~70만원 정도 지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양육비 지출액은 자녀가 1명인 경우 64만 8000원, 2명인 경우 128만 5000원, 3명인 경우 152만 9000원으로 조사됐다. 가계소득이 중요한 이유, 결국 양육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유 직장 출퇴근 시간과 아이의 어린이집(또는 유치원) 등·하원 시간이 겹쳐 힘들어하는 양육자들도 적지 않다. 범섭씨는 지난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 다행히 회사가 유연근무제를 적용해 ‘오전 9시 30분 출근, 오후 6시 30분 퇴근’이 가능했다. “대신 할당된 일의 양은 채워야 하죠. 일이 많은데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일단은 회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일거리를 싸들고 집에 와서 밤 11시까지 아이랑 놀아주다가 아이가 자면 그때부터 야근을 시작하죠.”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30~44세 남녀 1000명(각각 500명)을 표본으로 분석한 ‘2017년 일·가정 양립 근로자 실태조사’를 보면 ‘유연근무제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74.6%였다. 특히 유연근무제가 필요한 이유 중 ‘돌보아야 할 자녀·가족이 있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비율(34.4%)을 차지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의 90.1%가 유연근무제 사용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또 2016년 고용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21.9%에 수준이다. 미국의 시차출퇴근(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하루 근무시간을 채우는 제도) 도입률은 81.0%, 유럽의 시차출퇴근 도입률은 66.0%이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장시간 노동 관행도 육아 분담을 가로막는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세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멕시코, 그리스 뿐이다. 범섭씨는 이렇게 일하면 몸과 마음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일하는 아빠·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에너지가 바닥나요. 에너지가 있어야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고, 식사도 하고, 아이랑 같이 놀아줄 수 있는데…. 정신없이 일만 하면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렵고 옆을 돌아보기가 굉장히 힘들죠. ‘칼퇴’가 안 된다면 유연근무제라도 제대로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재현씨도 “아빠들로 하여금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 영유아 양육자들이 탄력근무(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출산은 선택, 육아는 함께] 기획① “출산을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충분히 행복합니다”② 나도 육아휴직 쓰고, 칼퇴하고 싶은데…아빠들의 고민③ “저출산이 ‘문제’라니···국가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 ‘사이즈는 그냥 사이즈일 뿐’,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사이즈는 그냥 사이즈일 뿐’,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보통 사람들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꿈을 좇아야 된다’라고 얘기하죠. 동시에 그러한 꿈들이 정말로 자신을 설레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잖아요. 저도 그랬죠. 하지만 제가 목표로 삼고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순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죠. 저의 모델 도전기은 그렇게 시작된 거죠” 20대 중반의 나이, 전 재산 1,500만원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 60일 동안을 모델이란 꿈 하나로 버텼고 마침내 한국인 최초로 미국 최대 플러스 사이즈 패션쇼 ‘풀 피겨드 패션 위크(Full Figured Fashion Week)’에 당당히 섰다. 이후 패션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에 보낸 그녀만의 독특한 콘셉트 사진들은 전 세계 온라인 투표에서 998명 참가자 중 8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대한민국 최초 플러스사이즈 패션잡지 <66100> 편집장이며 방송,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지양 대표.모델로의 시작은 장대한 듯 했으나 그 끝은 ‘다소’ 미약했다. 플러스 모델이란 이름으로 데뷔는 했지만 자신의 몸을 찾아주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제 몸은 미국 기준으로 8사이즈였어요. 미국 여성으로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한 몸매였죠. ‘너 정도면 어디 가서 플러스 사이즈라고 얘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 저를 캐스팅 한 업체의 가장 작은 사이즈 옷도 저에겐 컸으니깐요.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인생 이력서에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란 문구 한 줄 넣을 순 있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물론 돈도 바닥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또 다시 고민했고 ‘잡지’라는 두 글자에 방점을 찍었다. 결국 그녀는 잡지 <66100>를 창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3년째 휴간 상태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66100>의 ‘부활’은 그래서 더욱 간절한지 모르겠다. 그녀를 응원하고 있는 다수의 여성들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문제는 ‘밑천’이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을 위한 속옷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기준들을 정립해 가고 있다. 주위의 관심과 성원의 몸집도 점차 ‘플러스’ 되어가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장대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어 보인다. 그녀가 갖춰야 할 인내심이란 덕목은 그녀의 일에 대한 활동 범위를 넓히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아주 무례한 경우라도 어지간하면 인터뷰에 응해요. 제 인터뷰 내용을 보고 어제와 다른 삶을 살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저를 향해 쏟아내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악플들을 견뎌내는 것이 많이 고통스럽지만 그 사람들의 변화되는 삶은 저의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거죠. 단지 제가 자신감 있고 당당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지난 15일 김대표가 운영하는 동작구 사무실에서의 만남을 정리했다.(Q) 모델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스물네 살에 직장 그만 두고 백수가 됐죠. 그때 뭔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 1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고 응모를 위해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 저를 설레게 한 거죠. 우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최소 열 명 안에는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2차 수영복 심사에서 떨어졌죠. 그런데 여기서 그냥 멈추고 싶지 않더라고요. 모델이란 일을 좀 더 하고 싶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Q) 미국에서 플러스 사이즈 패션쇼 오디션 기회를 얻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꿈을 꾼 건지 아직도 실감이 잘 안나요. 아니면 그들이 나를 뭔가 굉장히 커다란 사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건 아닌지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그만큼 믿기 힘들단 거죠. (Q) 외국 사람들에 비교할 때 본인의 체형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 생각하나저도 미국에 도착해서 알 게 된 거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기준에 한참 부족한 체형이란 걸. 미국 사람 기준에서 볼 때 저는 평균 체형이기 때문에 플러스 사이즈라고 얘기하는 건 좀 어려웠던 거죠. 제가 지금은 미국 사이즈로 14정도 되거든요. 당시엔 8사이즈였으니깐 좀 더 체형이 작았던 거죠.(Q)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지 않았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는데솔직히 좌절감이 매우 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멈춰 있고 싶지 않더라고요. 모델이라는 건 누가 나를 기용해 주지 않는다면 모델일 수 없잖아요. 그런 한계에 갇혀 있는 게 좀 답답했죠. 좀 더 능동적이 되자고 마음먹었죠. 아메리칸 어패럴이란 굉장히 큰 의류 회사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 선발대회에 응모를 했고 998명 참가자 중에 8위로 입상했죠. (Q) 도전들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에 맞서려고 한 건 아닌지당시엔 ‘내가 이 분야에서 프런티어가 돼야지, 혹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누군가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아, 그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저를 통해 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이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크게 이바지하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Q) 한국에 돌아와 매거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데모델로서의 꿈을 위해 돈과 시간 등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 이력서에 또 다른 한 줄이 될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먼 타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지속해 나가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한국에서 잡지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 거죠. 우리 사회 자체는 비만을 혐오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정상 범위의 체형과 체중을 정해놓고 그 범위에서 조금만 빗나가도 손쉽게 비난하고, 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들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게 큰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매거진을 만드는 것이 고비용 저효율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진 강력한 힘을 믿었던 거죠. 보그 등 유명 잡지의 표지 모델 게 꿈이었지만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아?, 뭐, 그러면 내가 만들면 되지 ’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던 거 같아요. (Q) 플러스 사이즈용 의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잡지 휴간한지 벌써 3년이 넘어가는 데 아직도 복귀를 못했죠.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웃음). 서울시 아이디어 공모전에 선정돼 그 지원금으로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들이는 비용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죠. 더 이상 잡지 만들 돈이 없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플러스 사이즈 속옷 쇼핑몰을 운영하게 된 거죠.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 내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겠다는 마음으로요. (Q) 고객을 상담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꼈는지‘저 때문에 인생을 다시 보게 됐다’, ‘나를 알기 전과는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나를 좀 더 좋아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예전에는 편집장님으로 불리는 것이 나의 어떤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손님들이 사장님으로 가끔 불러요. 저를 부르는지 모르고 대답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그만큼 사장님으로 불리는 게 어색하지만 그 분들의 입에서 ‘여기 망하면 안돼요’, ‘여기 망하면 전 벗고 다녀야 돼요’라는 말이 나올 때 큰 힘이 되죠. 이곳에서 옷을 구매하고 판매는 것 자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좀 하게 된 거 같고 그 사람들의 삶의 선택권을 늘려 주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기분이 좋아요.(Q) 다양한 종류의 속옷을 입는 다는 건 ‘인간의 기본권’미국에 갔는데 팬티 사이즈 뿐 아니라 디자인과 패턴도 굉장히 다양한 거예요. 선택권 자체가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우린 다 하나같이 속옷 위로 살이 차올라요. 안 맞는 속옷을 입으니깐 그 속옷 자국이 내 몸의 일부처럼 각인 되는 거죠. 다양한 종류의 속옷을 입는 다는 건, 단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속옷의 편안함과 변화하는 여성의 속옷은 어떤 건지여성의 속옷은 사실 관음적인 요소로 소비돼 왔어요. 성적인 의미에서 여성을 상품화 하고 그것을 포장하는 용도의 기능을 오랫동안 해 온 거죠. 그런 종류의 제품들은 시장에 여전히 많고요. 물론 로맨틱하고 성적인 요소를 아주 배제할 수는 없죠. 하지만 우리의 삶이 매일 그렇지는 않잖아요. 속옷을 입었을 때 불편감이 없어야 하는 데 그런 이벤트성 속옷은 사실 편하기 어려워요. 어떤 소재인지에 따라서 내가 평생 동안 고생할 질병을 얻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기도 하거든요. 질병에 걸리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는지를 가장 우선으로 놓고 본 거 같아요. (Q) 통상적 사이즈 체계 대신 숫자 1~6까지를 표기한 이유는55사이즈까지는 봐줄 수 있지만 66사이즈는 용납할 수 없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이즈는 그냥 사이즈일 뿐’, 내가 어떤 사이즈이던 간에 편한 속옷을 입는 것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라는 생각에 기존 사이즈 체계 대신 1~6번까지 매기게 됐어요.(Q) 어떤 속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체형이 큰 여성들이 속옷을 살 때, 판매자가 ‘언니한테 맞는 거 없어요’라고 얘기하거나 고객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팔게 돼 있어요. 소비자로서 내가 이런 사이즈를 요구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하면 시장은 바뀌게 된다고 생각해요. (Q) 여성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고유의 개성들을 각자가 충분히 만끽하고 발산하면서 사는 게 문제가 되는 사회라면, 그렇게 사는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쯤은 용기내서 목소리 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미식 팟캐스트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건대학에서 외식 조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먹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 쾌락(이노센트 플레저)라는 게 반드시 존재하죠. 근데 사람들은 ‘즐기는 거 다 좋은데, 너 뚱뚱해지면 안 돼’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웃긴 거 같아요. 외모, 사이즈에 대한 강박감이 너무 팽배한 사회에서 살다보니깐, 순결하게 먹는 즐거움에 대해 너무 놓치고 사는 거 같아서 그런 얘기를 좀 더 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하게 됐어요. (Q) 브라렛(bralette)이란 어떤 건지사실 와이어 브라에 대한 압박감이 저에겐 너무 컸어요. 와이어 브라를 대체할 수 있는 게 뭔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브라렛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한 번 입어보고 싶었는데 맞는 사이즈가 없더라고요. 저희가 그 브라렛을 만드는 회사와 협업을 했고 지금은 인수한 상태예요. 제가 감히 장담하는 데 와이어 브라에서 한 번 벗어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브라렛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지 않았나 생각해요.(Q) 노브라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기성복 중에 여성 가슴의 위치를 정해 놓고 만드는 옷들이 있어요. 되게 웃기죠. 실루엣이 좀 드러나는 드레스 종류를 말하는 데, 꼭 입어야 할 경우에라도 보통 3~4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에요. 왜냐면 그런 옷을 입으면 소화가 안 되고 답답하고 숨쉬기도 어렵기 때문이죠. 가슴이 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고요. 재미있는 건 저를 보시는 분들이 눈 둘 곳을 모르시더라고요. (Q)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올해는 매거진 <66100>을 다시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쇼핑몰도 좀 더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도록 재정비 하고 있고요. 아참, 저희 팬티 자랑 한 번 할게요. 저희 팬티 안 입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입었다가 벗은 사람은 못 봤어요. 한 번 입어 보세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애플 세계 첫 심전도 시계…한국이 먼저 개발했는데”

    “애플 세계 첫 심전도 시계…한국이 먼저 개발했는데”

    2015년 심전도 체크 스마트워치 개발 의료기기 인증 테스트만 3년째 기다려 “스타트업 생존 위해 정책 지원 유연해야” 애플이 지난해 11월 심전도 측정이 가능한 ‘애플워치4’를 출시하자 전 세계 언론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붙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심전도를 잴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이미 2015년 말 한국의 스타트업 ‘휴이노’가 개발한 상태였다. 3년 넘게 의료기기 인증을 기다리다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20일 서울신문과 만난 휴이노 길영준(45) 대표는 “해외 출시 소식에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애플이 똑같은 것을 만들어서 홍보를 해주니 나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전히 국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인식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길 대표의 설명이다. 길 대표가 창업의 길에 나선 때는 2014년 7월이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심전도를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겠다며 스타트업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제 연구 분야가 여러 생체신호를 기기로 측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만드는 겁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만성심혈관계 환자수가 1000만명이 넘는데 심전도를 체크할 때마다 병원을 4~5번씩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듬해 말 시계형 심전도 측정 기기를 개발했지만 고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정작 테스트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휴이노의 스마트워치는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반대쪽 손을 기기에 대면 즉각 심전도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로 기존 심전도 장치와는 작동 원리, 크기가 전혀 달랐다. 길 대표는 “제품을 처음 내놨을 때는 검사 담당자들도 ‘이렇게 작은 기기를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반응뿐이었다”며 “1~2년 후에야 시험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앞이 막막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휴이노의 스마트워치가 정보통신(ICT) 분야 1호 규제샌드박스 대상에 선정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비록 특례기간 2년, 환자수 2000명 이내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심전도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길 대표는 “현행 규제 아래에서는 환자들이 스마트워치를 직접 들고 의사를 찾아가야 했는데 이런 불편이 해소된 게 의미가 있다”며 “이달 내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까지 이뤄질 예정이어서 기기를 활용할 일만 남았다”고 웃어 보였다. 국내에서 금지된 원격의료의 초기 단계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진료, 처방이 아닌 스마트 모니터링 기능만 활용되는 것”이라며 “원격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진 (기기) 활용도 한정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길 대표는 스타트업을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당부했다. 그는 “특히 의료기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최소 5~6년은 버틸 만한 계획이 필요한데 이 위험을 알면서도 나서기는 쉽지 않다”며 “지원 기간, 금액을 획일화할 것이 아니라 정책을 산업 특성에 맞게 단계적, 탄력적으로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띵구’ 이승구 작가가 말하는 ‘조각 한류(韓流)’“제 작품의 캐릭터 ‘띵구’를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조각뿐만 아니라 인형과 피규어, 티셔츠까지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각가이지만 중국을 넘어 세계인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어하는 작품을 남기려 합니다.” 中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하얀 강아지 ‘띵구’연예인에서 문화예술로 ‘한류’ 한 차원 높여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조각가 이승구(47) 작가의 포부다. 그의 작품은 베이징의 랜드마크인 파크뷰그린 쇼핑물, 진하오호 리조트 골프장, 상하이 그린랜드, 항저우 인디고 쇼핑몰 앞 등에서 설치돼 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홍콩, 우한, 다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건물 앞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가 그의 작품 주인공이다. TV나 영화의 스타들이 중국에서 일으키는 연예인 한류를 이 작가가 ‘조각 한류(韓流)’ 돌풍을 일으키며 문화예술로 한류를 한 차원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와 예술에서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그가 어떻게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몇 차례의 약속 재조정 끝에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지난 12일 만났다. 코밑과 턱에 수염을 기른 모습에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난 100% 한국 사람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지만, 부모님과 형, 누나 모두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2002년 중앙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킬시립미술학교를 거쳐 2008년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직후인 2008년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에선 저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각을 전공한 대학 동문들만 저를 알지만….” “獨 유학시절 만난 아내와 결혼 중국행…11년째中문화예술 자부심 대단…외국작가 활동 애로 많아”-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개념 미술’을 공부하다 다른 유학생들처럼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아내의 나라 중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전혀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잠시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던 2008년 8월 중국으로 왔는데, 벌써 11년이 됐습니다.” -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떻나.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남다릅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근성’이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홍보하지 않고 전시회를 해도 하루 1000~2000명씩은 거뜬히 옵니다. 고미술전시회라도 열리면 허름한 옷차림의 동네 어른들도 가서 봅니다. 유료 입장이라도 고가의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술가의 거리인 베이징 798 예술구에 있는 갤러리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바닥을 공사해야 할 판’이라고 농담 조로 이야기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중화사상이랄까 자긍심 이런 게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젊은 층으로 퍼져 나가면서 예술품 구매도 활발하지요.” 건물 앞을 보란 듯이 지키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DDinggu)’. 입을 크게 벌리고 붉은 혀를 쑥 내밀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애완견은 “불테리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사냥개 특유의 야생성도 엿보이지만 하얀 이빨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다. 검은 눈은 귀여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순진무구한 느낌이 물씬 풍기며 띵구라는 이름처럼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같다. 좌충우돌하는 강아지 띵구를 왜 중국인들을 좋아할까. 새로 짓는 건축물에 사악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지켜달라는 벽사의 의미로 강아지를 설치하는 걸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동물로 친숙한 느낌이 주는 작품성 때문일까. 신축 건물 앞에 버텨선 띵구, 볼테리어 형상화띵구는 어릴 적 별명…본성 잃어가는 인간 내면사냥개 특유의 야생성에 익살 맞은 장난꾸러기신축 건물의 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벽사 의미도”- 전혀 연고가 없는 중국에서의 활동, 힘들지 않나. “중국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작가들도 살아남기 힘들어하는 곳입니다. 외국 작가들이 얼마 못 버티고 철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사람이 제 작품을 사서 가져간다고 포장했습니다만 ‘작가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포장을 다시 풀더라고요.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한국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몰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작품 평론은커녕 보도자료 하나 부탁할 곳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자국 작가를 열심히 밀어주는 것이 마냥 부러웠죠.” - 전시회, 얼마나 자주 하나. “지난해에만 베이징, 상하이, 샤먼, 다통 등에서 6번 전시회를 가졌다. 요즘엔 상업시설도 있지만, 공공시설에서 전시회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선 한번 하면 2개월가량씩 전시합니다. 그러면 지난해 사실상 1년 내내 전시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너무 자랑 같나요(웃음).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일부러 찾아가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공공시설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예컨대 서울광장처럼 이런 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 공공장소 임대가 쉽지 않을 텐데. “제게 전시해달라고 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당연히 저도 일정한 금액을 받습니다. 공공시설 전시회도 수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중국에 도입한 방식입니다.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것입니다. 요즘엔 중국 작가들도 저를 따라서 공공시설에서 전시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전시작은 솔드아웃(Sold out·매진) 됩니다.” - 작품 소재가 강아지로 특이하다. “제 작품의 모티브는 사냥개인 불테리어입니다. 여기에다 제 어렸을 적 별명인 ‘띵구’를 붙여줬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제 이름을 빗대어 ‘띵구’라고 불렀거든요. 띵구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고 그 바탕에 색깔을 입힌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띵구가 또 다른 저 자신입니다. 원래 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고 입이 큽니다. 그러나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본성을 잃고 애완용이 되었습니다만 그 근성이 남아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이죠. 억압이나 스트레스 속에서 자유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갈망 이런 것을 담았습니다. 이걸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띵구가 저보다 유명해지게 할 겁니다.” “2009년 첫 전시회부터 전시작 매진 행렬지난해 6번 전시회…전시기간은 1년 내내”그의 작품 가격은 얼마나 나갈까. 그는 중국에서도 17%의 세금을 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높이 4m짜리의 대작은 4억 5000만 원에 넘겨줬다고 한다. 최고가라고 한다. 그러나 50cm 전후 크기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그래도 전시회 때마다 그의 작품은 다 팔려나간다. 최근 수년 동안 경기 활성화에 힘입은 중국에 불어닥친 건물 신축 바람도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통이 아닌 현대식 신축 건물의 지킴이로 그의 작품이 불티난 것이다. 요즘엔 그의 작품을 모방한 가짜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는 띵구, 2007년 만들었고, 2008년에 처음 발표했다. - 작품 성격,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 아이가 2014년인가 그때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중국 학생들처럼 목에 빨간 스카프인 홍링진(紅領巾)를 매고 왔습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반공교육을 세게 받았던 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도 미디어나 교육 등의 영향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이걸 전시회에서 한번 차용한 적이 있습니다. 제 전시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홍링진을 매게 했더니 중국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추억했고, 외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 재미있어하였습니다. 저는 뻘줌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20년간 3개국을 떠돌았으니 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겁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띵구에 담은 겁니다.” - 하루 작품 활동은 얼마나 하나. “직접 만드는 것만이 작품 활동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독서나 여행 등도 작품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주기에 작품활동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소재는 스테인리스 강철입니다. 이걸 구부리고, 떼어내고 도색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철공소 풍경과 비슷할 겁니다. 작품을 만들려며 진흙으로 틀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높이 4m짜리 큰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한 6개월 걸립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몸무게도 5kg 정도 빠집니다. 힘들지만 완성되고 나면 카타르시스도 느낍니다. 이럴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요즘엔 작업을 도와주는 스태프,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췄지만, 초창기엔 혼자서 거의 다 했지요.” “4m짜리 대작은 6개월…체중 5kg 빠져작품 최소 수천만원에 대중화 한계 회의사랑받는 작가 되려고 작품 대중화 고민인형·피규어·애니메이션 제작이 돌파구”- 언제부터 중국인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나. “중국에 온 다음해인 2009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제 작품이 운이 좋게도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이 아니라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거의 다 사갔습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 눈에 많이 익어야겠다는 생각에 초창기에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꾸준히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중국인들의 관심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4년 베이징에 있는 호텔 및 백화점인 파크뷰그린의 전속작가가 되었고요. 때마침 소셜네트워크(SNS) 바람을 탔어요. 제 작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제가 덕을 봤습니다.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다 팔려나갔습니다.” - 첫 전시 작품이 다 팔렸다면 중국에서 고생하지 않았겠다. “2008년 중국에 왔을 때, 말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조용하고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독일 문화에 익숙했다가 갑자기 거대도시 베이징의 시끄럽고 복잡한 문화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을 구하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가 버스를 잘 못타는 바람에 베이징 798 예술구 뒷골목을 갔지요. 그곳이 마음에 들어 작업실을 구했습니다만 집에서 작업실까지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중국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작업에만 몰두했지요. 매일 하루 4시간의 출퇴근 때 버스 안에서 작품 드로잉과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 드로잉은 지금도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버스를 종점에서 탔는데 맨 뒤 오른쪽 끝자리가 제자리였지요.” - 작가를 그만둘뻔했다던데. “2016년쯤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깊이 밀려들어서 작가를 때려치우려 했습니다. (두 손을 30~40㎝가량 벌리더니) 요만한 크기의 작품이 몇천 만원이면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나요. 저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대중화 한계에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싼 작품만 만들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2만~3만원 이면 살 수 있는 피규어나 인형 등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각의 범위를 폭넓게 생각하자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물론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니.” - 인가 작가여서 사드 영향은 없었겠다. “왜 없었겠어요.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나가떨어지는데….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의 한인 상가도 거의 절반 가까이 철수했지요. 제가 하려던 전시회나 띵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 취소되었습니다. 중국 회사와 계약해 띵구 피규어와 인형, 티셔츠를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법인등록도 하고, ‘이승구 스튜디오’라는 회사도 만들었습니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화할 계획입니다.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큰 중국에서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심전도 시계, 애플보다 먼저 개발해놓고 3년을 썩혔다”

    “심전도 시계, 애플보다 먼저 개발해놓고 3년을 썩혔다”

    애플이 지난해 11월 심전도 측정이 가능한 ‘애플워치4’를 출시하자 전 세계 언론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붙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심전도를 잴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이미 2015년 말 한국의 스타트업 ‘휴이노’가 개발한 상태였다. 3년 넘게 정부 인증을 기다리다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20일 서울신문과 만난 휴이노 길영준(45) 대표는 “해외 출시 소식에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애플이 똑같은 것을 만들어서 홍보를 해주니 나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전히 국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인식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길 대표의 설명이다. 길 대표가 창업의 길에 나선 때는 2014년 7월이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심전도를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겠다며 스타트업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제 연구분야가 여러 생체신호를 기기로 측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만드는 겁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만성심혈관계 환자수가 1000만명이 넘는데 심전도를 체크할 때마다 병원을 4~5번씩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듬해 말 시계형 심전도 측정 기기를 개발했지만 고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정작 테스트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휴이노의 스마트워치는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반대쪽 손을 기기에 대면 즉각 심전도를 파악할 수 있는 장치로 기존 심전도 장치와는 작동 원리, 크기가 전혀 달랐다. 길 대표는 “제품을 처음 내놨을 때에는 인증 담당자들도 ‘이렇게 작은 기기를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반응뿐이었다”며 “1~2년 후에야 시험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앞이 막막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휴이노의 스마트워치가 정보통신(ICT) 분야 1호 규제샌드박스 대상에 선정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비록 특례기간 2년, 환자수 2000명 이내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심전도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길 대표는 “현행 규제 아래에서는 환자들이 스마트워치를 직접 들고 의사를 찾아가야 했는데 이런 불편이 해소된 게 의미가 있다”며 “이달 내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까지 이뤄질 예정이어서 기기를 활용할 일만 남았다”고 웃어 보였다. 국내에서 금지된 원격의료의 초기 단계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진료, 처방이 아닌 스마트 모니터링 기능만 활용되는 것”이라며 “원격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진 (기기) 활용도 한정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길 대표는 스타트업을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당부했다. 그는 “특히 의료기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최소 5~6년은 버틸 만한 계획이 필요한데 이 위험을 알면서도 나서기는 쉽지 않다”며 “지원 기간, 금액을 획일화할 것이 아니라 정책을 산업 특성에 맞게 단계적, 탄력적으로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