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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 ‘금값 마스크’ 매점매석·폭리 단속

    지자체 ‘금값 마스크’ 매점매석·폭리 단속

    “오픈마켓에서 품절이던 마스크 가격이 두 배 올랐더라고요.” 4일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정부가 단속 대상 품목을 고시한 6일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나선다. 지자체별 매점매석 신고센터에 마스크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몰에서 주문이 취소됐다거나 가격 인상과 관련된 소비자 불만이 많은데 마스크, 손소독제 등 의약외품은 현재 단속 품목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마스크나 손소독제 등을 단속 대상 품목으로 정하는 내용의 고시를 6일 발표한다. 이후에는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가 민생사법경찰단을 활용해 적극 단속에 나선다. 불법행위가 적발되면 식약처로 관련 내용을 전달하고, 식약처장이 고발하면 수사로 이어진다. 서울시 점검 결과 매점매석 행위는 적발되지 않았지만 소규모 약국이나 마트는 물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 역사 비치용 마스크 목표치를 1160만개로 세운 서울교통공사도 재고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일분 확보가 목표지만, 현재 확보한 것은 약 4일분인 230만개에 불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에서 마스크 업체 7~8곳과 거래하는 만큼 조만간 재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단독] 객실에 껌 붙이고 “스위트룸 내놔”…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독] 객실에 껌 붙이고 “스위트룸 내놔”…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비스·판매직 갑질 피해 경험률 83.6%폭력에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응답 25%‘실적 달성’ 때문에 갑질 제대로 대응 못해 ‘갑질’이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한 가운데 서비스·판매직 종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무 기간 동안 소비자에 의한 갑질 피해경험률이 83.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1~2명을 제외한 대다수 서비스직 노동자가 갑질 피해를 경험한다는 의미다. 지난 1년 동안 갑질을 당했다고 밝힌 비율도 68.2%나 돼 ‘갑질 사회’라는 무수히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갑질 행태가 근절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4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소비자 갑질 폭력에 대한 피해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팀은 지난해 9월 서비스·판매직 종사자 중 만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갑질 피해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갑질 피해를 입은 노동자의 평균 피해 건수는 13.7회로 최소 1개월에 1회 이상 소비자 갑질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회사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갑질 피해는 더 많았다. 모욕이나 고함에 대한 대응(복수응답)은 ‘개인적으로 대응했다’(43%), ‘그대로 받아들였다’(37.5%)는 응답이 ‘회사 응대 매뉴얼에 따랐다’(29.1%), ‘회사 대처방법에 따랐다’(23.8%)는 응답보다 많아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성적인 신체접촉이나 성희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응답도 22.5%나 됐다. 폭력 등 물리적인 신체접촉에는 같은 대답이 25.2%였다. 성적인 신체접촉이나 성희롱 뒤 회사를 그만둔 인원은 9.1%로 10명 중 1명 꼴이었다. 폭력을 당한 뒤 직장을 그만둔 인원도 6.8%나 됐다. 사업장에 ‘소비자 갑질 대응 매뉴얼’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1.3%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상사의 갑질은 어느 정도 법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지만, 소비자 갑질은 여전히 체계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회사가 ‘서비스·판매직 노동자를 적절히 보호하고 있다’는 응답은 42.0%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43.2%)보다 적었다. 회사가 갑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갑질에도 불구하고 실적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연구팀은 판매, 숙박, 공연, 자동차, 미용, 승무원, 전화상담 등 12개 분야의 24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들의 인터뷰 내용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실태가 녹아있다. 무응답 4명을 제외한 11명은 과거에 비해 ‘갑질이 증가했다’고 말했고, 8명은 ‘갑질이 줄었다’, 1명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아래는 서비스·판매직 노동자들이 밝힌 주요 갑질 피해 내용이다. ●“속옷·팬티 사와라. 왜 안 사주냐” “아무래도 여직원들은 성희롱이나 성적인 신체접촉에 대한 게 더 많죠. 남자 손님이 속옷만 입고 나온다거나 객실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면 문을 닫아버린다거나, 객실 방문을 잠그고 ‘커피나 한 잔 하고 가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업 특성상 치료를 위해 신체 접촉을 하는데 ‘시원한데 거기 좀 더 기쁘게 해줘봐’라고 했습니다. 하인 부르듯 하고 심지어 자기 속옷, 팬티 같은 것을 사달라고 합니다. ‘왜 안 사주냐’고 물건을 막 집어던지기까지 했죠.” “전화 상담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잠이 안와서 그러는데 잘 자요 한 마디만 해 달라’는 분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해줄 수 밖에 없어요. 욕설이 아니니까 먼저 못 끊잖아요. 성인 채널에 대해서 ‘어떤 게 더 진해?’라고 물어보고, 여직원이 당황하면 ‘왜 그것도 모르냐’고 유도한 적도 있어요.” “대표이사 사장실에 그 여자 고객 2명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서 ‘내 돈 내놓으라’고 그랬어요. 1시간도 안 돼 회사에 소문이 다 퍼져서 제가 스타가 됐어요.” “항상 똥을 모아서 건물의 폐쇄회로(CC)TV 없는 곳에 던지는 여성 고객이 있었어요. 잡긴 잡았는데 경찰도 경범죄 말고는 처벌이 불가능다고 해요. 그 뒤로 주차요금 500원 때문에 팀장, 사장 오라고 하고 욕하고…대학교수인데 당연히 내야 할 주차요금 1500원을 못 내겠대요.” “욕하면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욕만 빼고 다 얘기하는 거에요. 2시간 동안. ‘너 내가 하는 말 제대로 안 들었잖아’라고 하면서. 욕과 폭언을 하는 사람만 괴로운 건 아니잖아요.” ●물건 헤질 때까지 쓰고 1년 뒤에 “바꿔달라” “체크인을 한 객실 벽이나 안 보이는 곳에 씹던 껌을 붙여놓고 직원들에게 ‘내가 얼마를 내고 이 객실에 예약했는데’라며 호텔에 못 있겠다고 하는 거에요. 고의인 걸 알면서도 ‘죄송하다’고 하면서 객실을 1단계 업그레이드 해드린다고 하면 12배 가격의 객실을 요구해요. ‘안 주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다’고 해요. 총지배인도 너무 시달리니까 ‘말 안 나오게 그냥 줘’라고 했어요.”“파손수리를 하면 세차를 시켜드리거든요. 검정색 차량은 아무리 깨끗한 걸레로 닦아도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요. 그런데 ‘너희들에게 오기 전에는 기스가 하나도 없었다’며 광택비 5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욕이란 욕은 다하면서. 카페에 글 올리고 본사에 전화하면 똑바로 못 한다고 더 욕먹으니 현장에서 끝내는 거죠. 그냥 60만원 현찰로 줬죠.” “손님이 음식에 못이 나왔다고 하는 거에요. 그걸 씹어서 이빨이 깨졌다고 하는데 치료비를 20만원 달라고 한 거에요. 사실 음식에서 머리카락, 벌레 같은 이물은 나올 수 있어도 못은 나오기 어렵거든요. 본사에 연락했더니 ‘돈 드리지 말고 보험처리하라’고 해서 말했더니 무조건 20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본사 직원이 직접 온다고 하니까 그냥 돈도 안 받고 보험도 필요없다고 하고 갔어요.” “물건을 사가서 다 가지고 놀고 그 물건이 헤질 때쯤 가져와요. 단종이 됐을 정도로 1년 뒤에도 오고. 한 달에 1번씩 그래요. 안 해주면 소리 지르고 막 물건 던지고 해서 그냥 해드려요. 회사는 안 도와줘요. 그냥 방패막이로 삼는 느낌이 들어요.” “음료가 잘못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해 환불을 하고 음료도 무료로 제공해 드렸어요. ‘내가 이런 걸 많이 겪어봤는데 다른 곳은 기본적으로 케익을 주는데 너희는 왜 안줘’라고 요구하면서 계산대에서 30분을 언성을 높이고 카드도 던졌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케익을 줄 권한이 없어서 계속 사과하고요. 다음날 점장님이 손님과 전화를 했는데 3시간을 또 요구해서 결국 매장 전화선을 뽑았어요.“ ●뜨거운 음료 시키고 “왜 차가운 걸 안 주냐” “고객이 망원경에 달린 몰래카메라로 공연을 촬영해서 조용히 메모리만 회수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 분이 도망가는 거에요. 경찰에 잡혔는데 쫓아온 제가 더 잘못이라고 하더라고요.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걸로 합의했는데 그 이후에 계속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막을 방법이 없어요.” “뜨거운 걸 주문해놓고 ‘왜 뜨거운 걸 줬냐. 차가운 건 왜 안 주냐’고 말합니다. ‘커피값만 XX 비싸고 서비스는 X판이네’라는 식으로 인터넷에 그대로 남겨요.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저희 회사 고객서비스팀이 다 퇴사했어요.” “갑자기 저한테 ‘이 물건 살 테니까 안아달라’는 거에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분이 손을 이렇게 벌리시더니 10초 정도 서로 정적이 흘렀어요. 아 장난이 아니구나. 무섭고 식은 땀이 나는데 그분은 계속 안아달라는 거에요. 심지어 맨정신에 점심시간이었어요. 포기를 안 하는 거에요. 그래서 악수해준다고 하니까 갑자기 다른 손도 달라고 하면서 끈적거리게 만지고 주먹도 쳐달라고 했어요.”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

    [법인의 활발발]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

    깨달음이란 지금, 여기, 나를 떠나 별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별스러운 것도, 별스러운 짓도 아니다. 내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언가를 벗겨내고 사물을 보는 일이다. 늘 보고 듣는 것들이 매 순간 새삼스러운 모습으로 내게 오는 것, 이것이 깨달음과 환희장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성공과 속도에 눈이 멀어 방향을 잃고, 온갖 근심 걱정으로 살맛을 모르고 있다. 평범 속에 깨달음을 생각할 때 떠오른 분이 있다. 적명 스님이다. 겸손하면서 당당하고, 논리적이면서 직관적이고, 소박하면서 빛나는 스님이다. 그 적명 스님이 작년 세수 80세로 사바의 인연을 접었다. 스님은 그 흔한 방장이니 조실이니 하는 그런 직책이 주는 권위로 사신 분이 아니었다. 또 그런 권위로 선승들의 믿음과 존경을 받은 분이 아니었다. 그저 수행자 적명으로 권위를 인정받으신 분이다. 필자는 적명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지는 못했다. 다만 온몸으로 감동한 한 번의 만남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 2012년 가을로 기억한다. 어떤 인연으로 서울에서 적명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모임이 열렸다. 하늘은 맑고 볕은 고운 날, 성북동 전등사에 수도승(서울 거주하는 스님)과 산승들이 모였다. 간단한 점심공양을 마치고 차 한 잔 곁들이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날 공부는 누가 발제하고 토론한다는 그런 약속도 없었다. 그저 모여서 평소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을 중구난방으로, 횡설수설하면서,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펼치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적명 스님께서 몇 권의 책과 문서를 꺼냈다. 이어 모임에 참여한 각묵 스님에게 말했다. “제가 스님이 번역한 ‘청정도론’을 정밀하게 거듭 읽었습니다. 읽고 나니 수행하면서 평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이 풀리고, 석연하지 않은 점도 확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책의 주요 핵심 내용을 나름대로 간추려 정리했습니다.” 적명 스님은 그날 참석한 공부 대중들에게 간추린 내용을 나누어 주었다. 분량은 아마 50쪽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500쪽의 내용을 그렇게 요약한 것이다. 옆에서 책을 보니 형광펜으로 밑줄이 곳곳에 그어져 있고 포스트잇도 수없이 붙어 있었다. 모두가 내심 놀랐다. 연배도 높으신 분이, 선수행자를 지도하는 봉암사의 수좌 스님이, 북방불교의 간화선 수행을 하는 어른이 우리와는 사뭇 풍토가 다른 남방불교의 논서를 정독하고 요약해 오신 것이다. 아마 세속의 분들은 절집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놀람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이어 적명 스님이 각묵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제가 ‘청정도론’을 읽어가면서 북방의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 선수행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몇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각묵 스님께서 내가 공통점이라고 말한 부분이 맞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그리고 차이점에 대해서도 스님 나름대로 견해를 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적명 스님의 요청에 각묵 스님은 훗날 내게 말했다. “그때 정말 놀랐고, 송구스러웠고, 기뻤고, 감격했다”고.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또 그 자리에서 누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겠는가. 여하튼 공부거리를 착실히(?) 준비해 오신 스님 덕분에 대중들은 그날, 밤을 세워 가며 진지한 경청과, 날카로운 질문과, 성실한 답변을 주고받았다. 수행승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고요한 침묵’과 ‘의미 있는 대화’라는 붓다의 말씀을 실감하는 환희로운 법석이었다. 그리고 지금, 새삼 ‘배움’에 대해 생각한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일깨움일 것이다. 그러나 일깨움 이전에 배움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향상을 위해 누구에게나 물을 수 있는 마음가짐, 설령 그 대상이 아랫사람이라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을 수 있는 그 마음(不恥下問), 그 마음씀이 수행의 결실이고 경지가 아니겠는가. 예전에 절집의 대 강사들은 제자의 공부가 무르익으면 자리를 바꿨다. 제자가 강단에 올라가 강의하고 스승이 밑에서 듣고 물었다. 허튼 권위와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태도다. 그해 가을날의 적명 스님에 대한 기억은 더 뚜렷하다. 하심과 배움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멀리 가는 향기일 것이다.
  • 이하정 아나운서, TV조선 퇴사 “방송인으로 만나요” [EN스타]

    이하정 아나운서, TV조선 퇴사 “방송인으로 만나요” [EN스타]

    이하정 아나운서가 TV조선을 퇴사한다. 3일 이하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장문의 글을 남겼다. 이하정은 “개국 때부터 함께했던 TV조선을 떠나게 됐다”며 “2005년 MBC 아나운서국 입사를 시작으로 저의 15년 넘는 직장생활은 끝이 난다”고 전했다. 이하정은 “직장인에서 자유인이 되다 보니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지만 재미있게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하려고 한다”며 퇴사 심경을 전했다. 지난주 ‘아내의 맛’ 녹화가 TV조선 아나운서로서의 마지막 녹화였다고 밝힌 이하정은 “서프라이즈 꽃다발을 주셔서 감동했다”며 “‘내 몸 사용설명서’ 막방 때는 후배들이 와서 손편지랑 꽃다발을 건네주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하정은 마지막으로 “아나운서 생활하면서 참 행복했고, 감사했다”며 “이제 방송인으로 만나뵙겠다”고 밝혔다. 이하정은 2005년 MBC 아나운서국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1년 TV조선으로 옮겨 활동을 이어왔다. 2011년 배우 정준호와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음은 이하정 인스타그램 글 전문. 안녕하세요, 이하정입니다. 개국때부터 함께했던 TV조선을 떠나게 됐습니다. 2005년 MBC 아나운서국 입사를 시작으로저의 15년 넘는 직장생활은 끝이 나네요. 직장인에서 자유인이 되다보니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지만재미있게 의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하려고요. 지난주 아내의맛 녹화때 TV조선 직원으로서 마지막 녹화였는데 이렇게 써프라이즈 꽃다발을 주셔서 감동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몸사용설명서 막방때는 후배들이 와서 손편지랑 꽃다발을 건네주더라고요. 제작진분들은 녹화 마지막에 노래와 황금케이크까지 선물로 주셔서 울컥했고요. 후배 이진희씨는 저렇게 기념패까지 만들어줘서 결국 저를 울렸네요 아나운서 생활하면서참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이제 방송인으로 만나뵐게요! 참! 이하정TV를 통해서 저희 시욱이, 유담이 많이 예뻐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영화 히트맨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많이 염려되는 요즘인데우리 다같이 잘 지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모두 건강하시길요.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박성국의 인터미션] “힘들 거야 우린… 정치 때문에”

    [박성국의 인터미션] “힘들 거야 우린… 정치 때문에”

    클래식 연주회와 뮤지컬, 발레 등 공연 중간 쉬는 시간, 인터미션. 관객은 인터미션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1부 공연을 반추하며 계속 관람할지 이른 귀가를 할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간 담쌓고 살았던 공연문화를 뒤늦게 업으로 삼게 된 저의 인터미션에선 무대 안팎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제가 태어난 해부터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분이라 처음에는 옆집 할아버지같이 친근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는데, 포디움(지휘대)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팔순이 다 돼 가는데 눈동자는 열여섯 소년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기억이 납니다.” 1992년생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떠올린 클래식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8)의 첫인상이다. 이지윤이 태어나던 해, 바렌보임은 1570년 창단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4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이지윤에게 바렌보임이라는 이름은 해외 명반에나 나오는 아주 멀고, 광활한 바다 같은 존재였다. 25년이 지난 2017년 5월, 독일 유학 중이던 이지윤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디션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그를 한 노신사가 불러 세웠다. 여전히 음악감독으로 독일 명문 악단을 이끌고 있는 바렌보임이었다. 바렌보임의 눈에 든 이지윤은 그렇게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독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의 첫 여성이자 최연소 악장으로 우뚝 섰다.지난달 이지윤의 귀국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보면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고, 또 창창한 앞날이 펼쳐질 이지윤이 아닌, 한 음악감독이 28년이나 계속 같은 악단을 이끌 수 있는 독일의 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과 예술감독은 단순히 단원 지휘 개념을 넘어, 그 단체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 클래식 ‘차르’(황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88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고, 1996년엔 총예술감독으로 올라 30년 넘게 이끌고 있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직에 16년간 재임했다. 국내에서 이들과 견줄 만한 단체는 단연 ‘정명훈의 서울시향’일 것이다.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던 정명훈은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시향은 61세까지 보장되는 정년에, 호봉제로 인상되는 안정적인 급여 시스템 속에 ‘음악 하는 철밥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연간 50억원의 세금을 들이고도 평균 유료 관객 500명을 넘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정명훈식 개혁과 조율의 결과 서울시향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호평을 넘어 세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수준까지 올랐다. 해외의 수준급 연주자들이 서울시향으로 몰려들었고, 유료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그러나 끝은 서글펐다. 시향 대표를 향한 내부 직원들의 폭언 및 성추행 등 폭로와 정명훈을 둘러싼 감사 등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 끝에 정명훈은 2015년 12월 서울시향을 떠났다. “한국은 결국 정치가 문제죠.” 한 클래식 평론가의 입에서 나온 함축적인 진단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제도권 정치는 물론 예술계의 오랜 파벌 다툼을 아우른다. 이런 진흙탕 싸움은 예술감독 선임에 정권 입김이 더욱 짙게 작용하는 국립 예술단체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국립오페라단은 2011년 8월 취임한 제9대 김의준 예술감독을 비롯해 8년 사이 4명의 예술감독이 각종 자격 시비 등으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놨다. 지난해 국립무용단은 안무가와 단원들의 갈등으로 개막 20여일을 앞두고 공연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원로 안무가의 ‘내 사람 심기’와 반발이 있었다.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친하냐가 이 바닥의 경쟁력입니다.” 공연계 한 인사의 말에 이지윤을 바라보는 바렌보임의 눈빛과 표정이 또 한번 떠올랐다.
  •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치 때문에”[박성국의 인터미션]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치 때문에”[박성국의 인터미션]

    정통 클래식의 혁신 보여준 바렌보임‘음악 차르’ 게르기예프·베를린필 래틀16~30년 예술감독으로서 성장 이끌어정치·파벌…국립예술단체 수장의 단명“제가 태어난 해부터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분이라 처음에는 옆집 할아버지같이 친근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는데, 포디움(지휘대)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팔순이 다 돼 가는데 눈동자는 열여섯 소년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기억이 납니다.” 1992년생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떠올린 클래식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78)의 첫인상이다. 이지윤이 태어나던 해, 바렌보임은 1570년 창단한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4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쥔 이지윤에게 바렌보임이라는 이름은 해외 명반에나 나오는 아주 멀고, 광활한 바다 같은 존재였다. 25년이 지난 2017년 5월, 독일 유학 중이던 이지윤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디션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나자 그를 한 노신사가 불러 세웠다. 여전히 음악감독으로 독일 명문 악단을 이끌고 있는 바렌보임이었다. 바렌보임의 눈에 든 이지윤은 그렇게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독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의 첫 여성이자 최연소 악장으로 우뚝 섰다. 지난달 이지윤의 귀국 기자회견 현장을 지켜보면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고, 또 창창한 앞날이 펼쳐질 이지윤이 아닌, 한 음악감독이 28년이나 계속 같은 악단을 이끌 수 있는 독일의 문화와 시스템에 대해.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과 예술감독은 단순히 단원 지휘 개념을 넘어, 그 단체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 클래식 ‘차르’(황제)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1988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고, 1996년엔 총예술감독으로 올라 30년 넘게 이끌고 있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직에 16년간 재임했다. 국내에서 이들과 견줄 만한 단체는 단연 ‘정명훈의 서울시향’일 것이다.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던 정명훈은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시향은 61세까지 보장되는 정년에, 호봉제로 인상되는 안정적인 급여 시스템 속에 ‘음악 하는 철밥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연간 50억원의 세금을 들이고도 평균 유료 관객 500명을 넘기지 못했다.그로부터 10년 뒤, 정명훈식 개혁과 조율의 결과 서울시향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호평을 넘어 세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수준까지 올랐다. 해외의 수준급 연주자들이 서울시향으로 몰려들었고, 유료 객석 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그러나 끝은 서글펐다. 시향 대표를 향한 내부 직원들의 폭언 및 성추행 등 폭로와 정명훈을 둘러싼 감사 등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 끝에 정명훈은 2015년 12월 서울시향을 떠났다. “한국은 결국 정치가 문제죠.” 한 클래식 평론가의 입에서 나온 함축적인 진단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제도권 정치는 물론 예술계의 오랜 파벌 다툼을 아우른다. 이런 진흙탕 싸움은 예술감독 선임에 정권 입김이 더욱 짙게 작용하는 국립 예술단체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국립오페라단은 2011년 8월 취임한 제9대 김의준 예술감독을 비롯해 8년 사이 4명의 예술감독이 각종 자격 시비 등으로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놨다. 지난해 국립무용단은 안무가와 단원들의 갈등으로 개막 20여일을 앞두고 공연 자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원로 안무가의 ‘내 사람 심기’와 반발이 있었다.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친하냐가 이 바닥의 경쟁력입니다.” 공연계 한 인사의 말에 이지윤을 바라보는 바렌보임의 눈빛과 표정이 또 한번 떠올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클래식 연주회와 뮤지컬, 발레 등 공연 중간 쉬는 시간, 인터미션. 관객은 인터미션에 생리현상을 해결하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1부 공연을 반추하며 계속 관람할지 이른 귀가를 할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간 담쌓고 살았던 공연문화를 뒤늦게 업으로 삼게 된 저의 인터미션에선 무대 안팎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유튜버 양예원, 스튜디오 실장 죽음 책임론 일자…

    유튜버 양예원, 스튜디오 실장 죽음 책임론 일자…

    유튜버 양예원이 악플러를 저격했다. 2일 화제가 된 유튜버 양예원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분노의 댓글을 남겼다. 사진 속 악플러는 양예원의 사진마다 “인간이 먼저 되셨으면”, “막 나가시네”, “님은 꼭 벌 받을 거에요. 뿌린대로 거둘 거라고요”등의 댓글을 달았다. 양예원은 악플에 “상대할 가치 없어서 수준 맞춰서 말해준 거야. 잘 들어. 사법부 그 사람들 멍청한 사람들 아니야. 경찰 조사 검찰 조사만 몇 차례씩 10시간 이상 조사하고 법원만 10번을 넘게 들락 날락 거리면서 증언하고 재판 1심 재심 상고심까지 다 가는 동안 내 진술을 검토하고 조사한 경찰과 검사 판사가 몇 명일까? 그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이상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 모든 게 대법원까지 인정이 되어서 형량 단 1일도 안 깎이고 유죄 떨어진 사건이야”라고 말했다. 이어 양예원은 “유가족? 억울한 사람 죽음으로 몰았다고? 그 사람이 인생 망친 여자가 몇 명인지 알아? 어디서 함부로 떠들어”라며 분노했다. 양예원은 “추가피해자가 몇 명이고 추가로 나온 증거들이 몇 갠데 증언할 때 나만 증언한 거 아니야. 추가피해자 증언도 있었고 거기서 사진 찍던 사람들도 와서 증언하고 갔어. 그런데도 유죄야! 알겠니?”라며 “그 상황에 들어가서 겪어본 거 아니면 말을 하지마. 알지도 못하면서 뭐 아는냥 떠들어 대는 거 보면 진짜 토 나온다”라고 털어놨다. 앞서 양예원은 지난 1월에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내가 이런 말 잘 안하는 데 너무 거슬려서 딱 한마디만 할게. 맞춤법 좀”이라고 대꾸했다.한편 지난해 8월 유튜버 양예원의 사진을 유출하고 양씨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최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양씨의 노출 사진을 찍어 유출한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강제추행은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 판사는 “양씨의 진술이 수사 단계부터 매우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지도 않다”며 최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사건 발생 직후 주범으로 지목됐던 스튜디오 실장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복구본을 통해 양씨가 성추행을 당한 후에도 수차례 촬영에 응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씨를 이른바 ‘꽃뱀’으로 몰아세우는 반발 여론이 확산했다. 여기에 양씨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하고, 급기야는 억울함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양씨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서 무고한 피의자를 죽음으로 내몬 ‘살인자’로 둔갑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국가 체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지만,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궈징(29)은 봉쇄된 우한에서 홀로 사는 여성입니다. 그는 중국의 미투 운동에 참여했고, 직장에서 성차별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도왔습니다. 우한이 봉쇄된 지난 23일부터는 일기를 써서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있습니다. 우한 사람들에게 보낼 마스크를 전달받는 일도 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우한에서 지낸 그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도시가 봉쇄되는 일은 전례가 없고,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사회활동가로서 봉쇄된 도시를 기록하고 싶었고, 나의 삶의 일부분도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우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그의 일기 일부를 소개합니다. ● 1월 23일 나는 꽤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1월 20일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가 100명이 넘고, 다른 성에서도 확진자가 생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전까지 공표된 내용에서 은폐된 정황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한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여러 약국의 의료용 마스크는 몽땅 팔렸으며, 많은 사람은 감기약을 사들였다. 마침 이때 조금 감기 기운이 있었다. 평소였으면 약 없이 그냥 지나갔겠지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앞 사람이 감기약 4통 사서 나도 1통을 샀다. 1통에 62위안(약 1만원). 조금 비쌌다. 요 며칠 새 나는 계속 마음을 졸인다. 각지에서 들리는 확진 소식을 보면 대부분 15일 전에 우한을 방문했던 사람이었다. 우한은 전국에서 대학생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1월 중순이면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는다. 게다가 지금은 춘제를 앞두고 역을 오가는 인원이 많다. 그런데도 우한기차역은 엄격히 관리·감독 되지 않았다. 나는 춘절에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지내던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우한이 봉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봉쇄를 얼마나 이어질까.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 모두 알 수 없었다. 최근 화가 나는 소식을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입원할 병원은 모자랐다. 열이 나는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했다. 후베이성의 고위 관료들은 1월 21일 함께 춘제 공연을 관람했다. 친구들은 내게 빨리 물건을 쟁여두라고 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기도 했고 아직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배달이 언제 갑자기 끊길지 모른다는 겁도 들었다. 밖이 어떤지 한번 보자는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섰다. 거리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근처 마트에 가니 계산대 줄이 길었다. 쌀은 이미 거의 동나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도 집어 들었다. 어떤 남자는 소금을 많이 샀다. 누군가 왜 그렇게 소금을 많이 사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혹시 1년 가까이 도시를 폐쇄하면 어떡하냐고. 난 별생각 없이 가방도 없이 나와서 물건을 많이 사지 못했다. 다시 집 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 물건를 사기 위해 경쟁할 때 웃음과 좌절이 떠올랐다. 조금 두려워졌다. 길거리에 보이는 노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더 힘겹지 않을까 싶어졌다. 일상용품은 도시가 봉쇄돼도 공급이 되겠지 싶기도 했다. 두 번째로 마트에 가서는 요구르트나 꿀을 사는 약간의 사치를 부렸다. 집에 가는 길에서는 약국에 들렀다. 약국은 출입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마스크와 알코올은 이미 다 팔린 뒤였다. 감기약도 부족했다. 내가 약국에서 나갈 때가 되자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한 중년여성은 나를 붙잡고 알코올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말투에는 생명줄을 찾는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길거리에서 차와 행인은 점점 더 줄었다. 도시 전체가 멈춘 듯했다. 이 도시는 언제쯤 살아날까. ● 1월 24일온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혼자 사는 나는 이따금 건물 복도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나는 별다른 돈도 인맥도 없다. 나는 아파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목표 중 하나는 내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게 됐다. 꾸준히 운동해야 했다. 살기 위해 음식도 필요했다. 생활필수품이 잘 공급되는지 알아야 했다. 정부는 도시 봉쇄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봉쇄한 뒤 도시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봉쇄가 5월까지 갈 거라고 예상했다. 생존을 위해서나는 내가 생활하는 주변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외출을 했는데, 근처 약국과 편의점은 문을 모두 닫았다. 1km 거리의 마트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직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봤다. 조금 위안이 됐다. 마트에는 여전히 음식 쟁탈전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게 팔렸다. 쌀은 조금 남아 있었다. 야채는 무게를 재기 위해 20, 30명씩 줄을 서 있었다. 소시지나 만두, 고기만 샀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대신 비타민과 요오드 소독약을 샀다. 평소에 아픈 적이 거의 없어서 집에는 상비약을 두지 않았다. 비타민을 꼬박꼬박 먹기로 했다. 계산하는 줄에서 보니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있었다. 다음에 나도 두 겹으로 마스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앞에 선 부부는 뭘 더 사야 할지 한참 얘기를 하더니 일회용 의료용 장갑을 샀다. 외출할 때 끼겠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나도 한 상자 샀다. 조금 뒤에 의료용 마스크 재고가 왔다. 1상자에 100개. 2상자를 집었다가 1상자에 198위안(약 3만 5천원)이라는 말에 조용히 1상자를 내려놓았다. 계산할 때 보니 1상자에 99위안(1만 7천원)이어서 조금 후회가 됐다. 그래도 더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솟았다. 결핍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이렇게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서 말이다. 시장에 또 가니 매대가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파는 야채도 줄었다. 몇몇 채소와 계란을 샀다. 가게는 드문드문 열었는데, 국숫집은 오늘 안에 문을 닫겠다 했다. 꽃집이 문을 열어서 의아했다. 다음에도 꽃집이 문을 열면 화분을 사기로 했다. 집에 와서는 입었던 옷을 몽땅 빨고, 목욕했다. 깨끗이 생활하는 게 지금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루에 손을 20, 30번씩 씻는다. 반나절이 이렇게 지나갔고 점심밥을 지었다. 한번 외출을 하니 그래도 혼자가 아니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 팁도 배웠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시스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개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월 25일우한의 날씨는 지금의 우한처럼 음울하다. 오늘은 춘제다. 원래 명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명절은 나와 더 상관없는 일이 됐다. 어제 이틀 동안의 경험과 느낌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내가 아직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게서 우한에서 경험을 기록하라는 제안을 들었을 때 조금 망설였다. 나는 비극의 피해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 너무 안됐다’라는 인상만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은 내가 우한에 지난해 11월에 이사 왔다는 걸 몰랐다. 너무 많은 질문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평등을 외쳐온 사회운동가인 나는 잘 알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기록을 시작하고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 매일 발포 비타민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는 방법부터 감기약을 아무 때나 먹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마스크와 알코올을 보내줬고, 친구들은 돈을 보내줬다. 최근 이틀부터 나는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평소의 절반 정도 양만 요리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라는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우한 근처 도시에 사는 친구도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친구는 ‘죽음을 무릅쓰고’ 가족과 만났다. 어떤 친구가 통화 중에 기침을 하자, ‘나가라’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거의 3시간 동안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니 밤 11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최근 일들이 뇌를 스쳤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기력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죽음도 떠올랐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삶에 큰 미련은 없다. 페미니스트로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도왔다.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이다. 그래도 내 삶이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도시 봉쇄가 풀리면 무슨 일을 하지 생각했다. 그건 어떤 행복일까. 이 시기가 지나면 내 인생도 한 단계 나아갈 것이다. 아침 7시에 잠이 깼다. 병에 대한 공포가 나를 짓누른다. 아침에 코를 풀었는데 약간 피가 나왔다. 무서웠다. 휴지는 버렸지만, 병에 대한 걱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12월 말에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12월 30일에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1월 9일에 구이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친구에게 감기가 옮았다. 1월 13일에 우한에 돌아왔다. 약은 먹지 않았지만, 감기는 호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가 내 집에 며칠 머물렀고, 친구들은 아직 다 괜찮다. 집에서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열은 나지 않았고 배가 고팠다. 운동을 하고 집 밖을 나섰다. 밖은 조용했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썼다.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마스크가 가짜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국수집이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려고 하자 사장님은 손을 흔들며 영업이 끝났다고 알렸다. 꽃집은 문을 열었는데, 문밖에 국화가 있었다. 조의를 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꽃집과 5m 떨어진 골목 어귀에도 똑같은 국화가 놓여 있었다. 시장에는 야채는 거의 떨어졌고 만두와 국수도 얼마 없었다. 줄 선 사람도 적었다. 가게에 갈 때마다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집에 쌀이 7kg이나 있는데 2.5kg을 더 샀다. 참지 못하고 만두, 고구마, 소시지, 녹두, 팥을 샀다. 소금에 절인 오리알은 좋아하지 않지만, 만일을 대비해 샀다. 봉쇄가 풀리고도 오리알이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이다. 문득 병적으로 먹을 거리를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음식만으로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자책할 수 없었다. 똑같은 약국에 갔다. 알코올은 없다고 했다. 직원은 내게 어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맞아요.” 나는 어쩌면 매일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강가를 걸었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길에는 개와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고, 강가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갇혀있기 싫었을 것이다. 매일 마트에만 갈 수는 없다. 해가 나면 강가를 걸어야겠다.   ● 1월 26일갇힌 것은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갇혀있다. 첫날 웨이보에 일기를 올릴 때 사진이 올라가지 않았다. 글도 쓸 수 없었다. 어제는 글을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이것도 보낼 수 없었다. 1월 24일 쓴 일기는 웨이보에서 5000명이 공유했는데 어제는 45명만 공유했다. 잠깐 나는 내가 글을 잘 못 썼나 고민했다. 인터넷 검열과 제한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잔인하다. 많은 사람은 도시가 봉쇄된 뒤 집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의지해 정보를 얻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스스로가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상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인 나날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도 날이 추웠다. 길 양쪽의 가게는 모두 닫았다. 길에서 3명만 보였다. 1명은 환경미화원, 1명은 수위, 1명은 행인이었다. 국수 가게 앞까지 걸어가면서 8명을 만났다. ● 1월 27일 어제 저녁에는 국수를 먹고, 친구들과 3시간 동안 영상 통화를 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는 아버지가 덤덤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난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2003년에 우리는 사스를 겪었고, 2008년에는 쓰촨 원촨 지진을 겪었다. 어떤 친구는 내년 춘제는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고, 잘 모르는 친척들과 어색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다들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한을 풀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결혼도 재촉할 거라고. 올해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친척들과 만나지 못할 테니 내년에는 더 많이 만날 거라고. 오늘 우한 날씨는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흐렸다. 마트의 야채나 쌀은 거의 텅텅 비었고, 소금도 없었다. 줄 선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물건을 샀고, 오늘은 잘 참아냈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정부청사 앞까지 걸어갔는데 자전거를 탄 중년 여성이 문 앞에서 크게 외치는 걸 봤다. 우한 말이어서 나는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20년이다” 정도만 알아들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해서 외쳤다. 차 몇 대가 들어갔고, 경찰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계속 외쳤다. 아마 이날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100m 이상 떨어져도 내 뒤에서는 여전히 “지도자를 만나게 해달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경찰서 앞에서는 “힘을 합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방역 전쟁을 이겨낼 수 있다”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송은 계속됐다. ● 1월 28일봉쇄는 공포를 가져왔고, 사람 사이의 거리도 벌어졌다. 많은 도시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요구한다. 이 조치는 폐렴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권력 남용도 가져왔다. 어제 광저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이 지하철에서 끌어내려졌고, 최루액을 맞았다. 그들이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안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더라도 외출할 권리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정부에게는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독려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시민에게 마스크를 줄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자가격리된 사람의 집 문을 막는 영상을 봤다. 후베이성 사람들은 외지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다. 끔찍한 일이다. 폐렴 예방이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외지에 있는 후베이성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살 곳을 마련해준다. 봉쇄된 상황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연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제 어떤 기자는 내게 다른 사람들과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도시 전체는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봉쇄는 사람들의 삶을 원자 상태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 관계는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젯밤 8시쯤 창문 밖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함께 “우한 힘내라”를 외쳤다. 함께 외치는 일은 개인에게 힘을 준다. 사람들은 연대를 갈망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는다. 생존에 대한 불안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매일 더 멀리 걷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많이 걷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참여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다. 사회적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삶은 의미가 있다. 오늘의 우한은 마침내 해가 보였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길가에는 사람들이 좀 늘었는데, 2, 3명의 지역 사회복지사가 조사를 하는 듯 했다. 여성 복지사에게 마스크가 있는지 묻자, 없다고 했다. 다른 남자가 급하게 와서 마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8명의 환경미화원을 인터뷰했다. 6명은 여성이고 2명은 남성이었다. 그들은 매일 6, 7시간을 일한다. 월급은 2300, 2400위안이다. 세금을 떼면 2000위안(약 3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폐렴이 퍼진 뒤 월급은 그대로인지 물었다. 누군가는 춘제 3일 동안은 두 배를 받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일 소독약을 받고, 보호장갑을 계속 쓴다. 일회용 장갑은 없고, 대부분 마스크가 부족했다. 사정이 나으면 마스크 20개를 받고, 다 쓰면 다시 받을 수 있었다. 봉쇄 이후 2개의 마스크만 받은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다. 어떤 사람은 일회용 의료용 마스크가 없어서 스카프로 입을 감쌌다. 나는 가지고 나온 3개의 의료용 마스크를 건넸다. 억양 때문에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어떤 이는 잠시 마스크를 뗐다가 곧바로 다시 썼다. 어떤 이는 스스로 마스크를 준비한다. 가족과 다른 이들, 국가를 위해서.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떤 여성은 걱정이 돼서 아들과 며느리는 따로 산다고 했다. 그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대신 그가 물건을 사서 문 앞으로 가져다준다. 자신도 두렵고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들은 적은 월급을 받고, 기본적인 보호 장구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직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3명의 남성 배달원도 만났다. 그들의 근무 시간은 유동적이었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받았다. 적어도 하루에 1, 2개를 받았고, 매일 배달 상자를 소독했다. 손 세정제를 받는 업체도 있었다. 월급이 늘었냐고 묻자, 배달업체나 배달량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어떤 곳은 배달 1건에 평소보다 3.5위안(약 600원)을 더 주고, 어떤 곳은 평소보다 1건당 4위안(약 700원)을 더 준다. 다른 배달 업체는 그대로였다. 편의점 한 곳은 오전 5시에 열고 밤 11시에 닫는데, N95 마스크를 하나 준다고 했다. 알코올은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내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포인트가 되기로 했다. 내 위챗 코드를 공개했다. 연락을 환영한다. 당신이 우한에 있고 봉쇄를 끝내는 데 힘을 보내고 싶다면, 함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외지에 있다면 마스크나 필요한 물건을 보내줘도 된다. 받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겠다. ● 1월 29일2017년 말, 나는 직장에서 성차별을 당한 여성에게 법률지원을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어제 오후 임신으로 인해 받는 차별에 대한 전화 문의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성이었고, 그의 부인은 국가기업의 행정직원이었다. 임신 3개월째인 부인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사가 휴식을 권했다. 휴가를 몇 번 쓰니 회사는 그에게 이 일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접 휴직을 권하지는 않아서, 나는 그에게 일을 계속하면서 증거를 모으라고만 말했다. 마침 그들은 우한에 있는데 먹을거리를 쌓아뒀다고 했다. 봉쇄가 풀린 뒤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일자리는 많은 사람에게 걱정거리가 됐다. 춘제 연휴가 2월 2일까지로 늘어났지만, 만약 병이 계속 확산한다면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을 할 수 있을까. 큰 기업은 계속 운영할 여력이 있지만, 작은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휴일이 길어지면 입는 타격이 심각하다. 남는 이익은 많지 않고, 월세나 월급의 부담도 있다. 그럼 해고를 택할 수 있다. 여성은 보통 가장 먼저 해고된다. 개인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출근을 해야 할지 다들 고민 중이다. 집세를 내야 하고, 돌봐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감세 정책을 펴고,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생계 지원을 할 수 있다. 어제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간호사다. 그는 “너의 일기를 모두 보고 있어. 어떤 말로 너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워. 나는 오늘 (발병지역에 가겠다는) 신청서를 냈어. 갈 수 있다면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싸우고 싶다. 네가 외롭지 않게. 국가의 지원이 부족한 지역도 있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네가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길 바라. 네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 믿는다.” 다 읽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젯밤에도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어떤 친구는 광저우나 북경에서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우리는 환경미화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마스크를 쓰는 법을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이들은 내게 돈을 환경미화원에게 보내 달라며 돈을 부쳐왔다.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를 받을지 의견을 나눴다. 나는 개인일 뿐이고, 투명성과 공신력을 보장하기 쉽지 않다. 기부를 관리할 시스템도 갖추지 않았다. 일단 이미 받은 돈은 기부하겠지만, 더는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기부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기부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환경미화원들과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물건을 사다 준다는 여성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 일을 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이전에 일하던 공장에서 45살에 퇴직했다.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심장병으로 2년 전 수술을 받았다. 아들은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며칠 일하면 며칠은 쉬어야 한다. 그녀는 월급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도 돌봐야 한다. 우한이 봉쇄된 뒤에도 그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한다.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한다. 그는 198위안(약 3만 4000원)을 주고 마스크 100개를 샀는데, 쉬는 시간에 도둑맞았다. 나는 지나가면서 마스크 몇 개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게 고맙다 했지만, 나는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 2월 1일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닫힌 국수 가게 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2월 13일 자정까지 후베이성 각 기업은 영업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공고도 붙어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한참을 서성였다. 옆 가게는 ‘한 달 동안 쉽니다’는 안내가 붙었다. 마트가 오늘부터 입구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야채가 조금 늘었다. 약국 2곳을 갔는데, 마스크와 알코올은 없었다. 약국에서 사람들은 어떤 감기약을 찾았다. 약은 다 팔린 뒤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들이 판단력 없이 감기약을 찾는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인민일보도 웨이보에서 이 약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매일 끊임없이 늘어가는 확진 환자 수를 본다. 만약 특정 약물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물론 인민일보는 나중에 억제가 예방이나 치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우한 정부도 치료된 환자가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완치됐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결국 이는 대중들이 특정 약이 있으면 치료가 된다고 믿게 했다. 알고 보니 완치됐다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연스레 나아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면역력이 강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복잡해져서 강가로 갔다. 날이 흐렸다. 어제의 햇빛이 그리웠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백종원 “유튜브 채널 적자···그래도 하는 이유는”

    백종원 “유튜브 채널 적자···그래도 하는 이유는”

    ●“아이들 장래 희망 유튜버? 잘못된 거 같아” “요즘 어린 친구들의 장래 희망이 유튜버라는데, 전 잘못된거 같아요.” 유튜브 생태계 파괴자라는 말을 들으며 채널 개설 6개월여만에 33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콘텐츠와 수익에 관한 질문에 예상 외의 답변을 꺼냈다. “돈을 벌겠다고 유튜브를 한다는 건 바보에요. 처음부터 수익을 내려고 하면 지옥이지 않겠어요. 재밌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걸 공유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죠.” 장사에 대한 조언을 하듯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돈을 벌려고 음식점 한다? 전 권하지 않아요. ‘먹는 게 너무 좋다’, ‘식당을 차려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모습이 기쁘다’ 라는 게 하나쯤 있어야 식당도 할 수 있죠. 유튜브도 게임처럼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31일 서울 강남구 구글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에 참석한 그는 유튜브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밝혔다. 채널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백 대표의 유명세도 있지만, 나름의 진정성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서점가서 책을 들춰보는 재미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지, 처음부터 유튜브를 해야겠다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제 레시피가 아닌 것이 돌아다니니까, 내 레시피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유튜브를 한다고 하니 아내 소유진은 “하려면 제대로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카메라 하나만 갖고 하려다, 팀을 구성하고 준비 작업을 했다.●“방송은 적자…관광객 불러들일 콘텐츠 하고 싶어” 채널이 인기를 얻고 구독자가 늘면서, 제작 규모도 커졌다. 지금은 10여명의 제작진이 함께 한다. 그러나 단순히 영상을 멋지게 만들려는 건 아니다. 나름의 공익적 목표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 식문화를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심이다.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러다 보면 음식의 질도 높아지고. 먹는 걸 좋아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득이 되겠죠.” 또 다른 목적은 한국의 외식문화를 알리는 것이다. 해외 거주 한국인과 외국인들에게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많이 받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음식문화를 소개하고 관광까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가지 안 쓰고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그게 선순환이 되어서 관광도 오게 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자신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창업 조언을 하는 걸 넘어, 한국 관광까지 고민하는 콘텐츠도 계획 중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 자체로는 적자란다. ●“가족 식사 늘었다는 말 찡해…아이 키우는 기쁨같아” 방송 출연과 사업을 병행하면서 이 ‘적자 방송’을 계속 하는 게 가능할까. 그는 오히려 경영자들에게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소통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소통 과정에서 얻는 피드백들이 사업에도 도움이 되고, 스스로를 다잡게 만들기도 해서다. “제 방송을 보고 가족끼리 밥먹는 시간이 늘었다고 하는 말씀이 제일 찡하고, 외국 분들이 우리 음식에 관심 가져준다고 하는 말이 가장 고마워요. 소통하다 보면 행동도 더 조심하고 더 좋은 영향력을 만들어야겠다 책임감도 들고요. 수익을 위한 게 아니라, 일기장을 쓰듯이 성공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경영자들에게도 권합니다. 늦게 결혼해 아이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만큼 커요”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신종 코로나 확산 속 분주했지만 차분했던 우한 교민 입국기

    신종 코로나 확산 속 분주했지만 차분했던 우한 교민 입국기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발열 체크를 하더라고요.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도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열 체크를 했고요. 입국해서도 발열 체크를 했어요.”(중국 우한 관광객 이모(25)씨)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머물던 우리 교민 368명을 태운 정부 전세기가 31일 오전 8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앞서 우한 교민과 정부 신속대응팀 20여 명이 탑승한 대한항공 KE9884편 보잉 747 여객기는 우한 톈허 공항을 이륙한 지 2시간 만이다.탑승객들은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철저한 검역을 받았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도중에서 이상 증세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추가 검역이 실시됐다. 또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서 별도의 게이트에서 추가 검역을 받았다. 이 비행기에 탑승해 우한에서 한국에 귀국한 이씨는 “비행기에서 자고 있어서 어떤 상황으로 추가 검역이 실시됐는지는 모르지만, 비행기 내에서도 발열 체크를 한 것을 봤다”며 “큰 문제 없이 귀국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귀국자 368명 가운데 12명은 기내에서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을 보였다. 6명은 김포공항에 내린 후 진행된 검역에서 증상을 보였다. 교민 18명 가운데 14명은 국립중앙의료원, 4명은 중앙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비행기 탑승 전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교민 150명은 경찰 버스 16대에 나눠 타 김포공항에서 진천까지 이동했다. 경찰은 인재개발원 주변에 경력 1100여명을 배치하고 진입로 양쪽에 경찰 버스로 차 벽을 세웠다. 이송 차량은 경찰이 확보한 통로를 통해 곧바로 인재개발원으로 들어갔다. 진천 주민 역시 이전까진 거칠게 반대했지만, 교민을 태운 차량이 인재개발원에 들어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봤다. 또 이날 오전 철저한 방역을 요구하는 대신 교민 수용을 받아들인다며 농성 천막과 반대 현수막을 자진 철거했다. 나머지 교민 200명은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도착했다. 인재개발원 진입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전날까지 교민 수용을 거세게 반대한 주민들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교민들은 앞으로 2주간 인재개발원 건물 안에서만 지내게 된다. 방역원칙에 따라 12세 이상은 1인 1실을 사용하고, 보호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12세 미만 어린이는 가족과 함께 방을 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열린세상] 재판관과 공정성/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재판관과 공정성/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눈 감고도 한다’는 말이 있다. 수월한 일을 가리키거나 역량이 탁월한 경우다. 신화 속 여신 디케는 눈가리개를 하고 칼과 저울을 들었다. 우리 대법원 청사에 조각된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뜨고 저울을 들었다. 디케의 칼 대신 법전을 껴안고 있다. 정의 여부를 심판하기 위해 눈을 감아야 하는가, 아니면 눈을 부릅떠야 하는가. 공정하게 재판을 하는 것과 공정성 여부를 재판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십여 년 전 겨울 어떤 국가기관의 회의장에서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어디다 대고 반말하고 그래?” “반말 좀 하면 어때?” “이 양반이 지금!” “이 양반이?” “(양반이 아니면) 그럼 뭐야, 그럼?” 그 무렵의 다른 날 같은 회의장에서 주고받은 말은 이렇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왜 남의 말을 말이 안 된다고 그래?” “말이 안 되면 말이 되도록 하시라고요!” “다른 사람 말이 왜 말이 안 돼요?” “다른 사람 말이 안 되면 당신 말도 말이 안 돼요!” “본인 이야기는 말이 되고 남의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 기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였다. 9명의 심의위원이 방송과 통신의 콘텐츠를 심의했는데 보통은 위원들 간 별 무리 없이 회의가 진행됐다. 그러다가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여부가 심의 대상이 되면 6대3으로 편을 나누는 사달이 벌어지곤 했다. ‘6대3 위원회’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어떤 날은 이런 대화가 공식 회의록에 새겨져 있다. “잡아와! 잡아와!” 심의 안건의 처리 절차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야권 추천을 받은 위원이 도중에 위원장의 의사봉을 갖고 회의장을 나갔다. 화가 난 부위원장이 직원들에게 의사봉을 들고 나간 위원을 ‘잡아 오라’고 외쳤다. 의사봉 사건은 SNS 심의 기구 논쟁 중에 발생했지만,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 시비를 둘러싸고 깊어진 앙금이기도 했다. 공정성 심판은 국가 행정기구의 위원들을 두 편으로 갈라놓았다. 전문직 종사자인 법원의 재판관들은 공정성 심판을 수월하게 눈을 감고도 해낼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언론 소송에서는 그 표현이 의견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사실적 표현에 대해서만 반론과 정정 보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 명예훼손의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의 재판관들조차 어떤 표현이 사실인지 의견인지 헷갈려 한다. 좋은 예가 있다. 2008년 한 방송사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이 문제라고 방송했다. 또 정부의 협상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정부의 대응과 정부의 협상 태도에 대한 방송이 의견인지 사실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두 개의 표현을 모두 ‘의견’이라고, 항소심 법원은 의견이 아니라 두 개 모두 ‘허위의 사실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을 뒤집었다. 두 개 모두 ‘의견’이라고 판단했다. 대법관들의 견해는 둘로 나뉘었다. 정부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7명의 대법관이 ‘의견’이라고 본 반면 6명의 대법관은 ‘사실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정부 협상에 문제가 있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4명의 대법관이 의견이 아니라 ‘사실 표현’이라며 원심을 지지했다. 재판에 관해 대한민국 최고 경지에 오른 분들조차 공정성 판단의 한 요소인 사실성 여부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견해가 갈렸다. 지난해 11월 21일 대법원은 ‘백년전쟁’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 위반 여부를 심판했다. 6명의 대법관은 공정성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7명의 대법관은 공정성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은 방송 공정성 판단의 기준도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그러자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과연 공정한가를 두고 언론 보도의 편이 갈라졌다. 눈을 감든 눈을 뜨든 불공정 시비 없이 공정성 심판에 성공하기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행정기구와 사법기관이 언론의 공정성을 계속 심판하도록 가만히 눈감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언론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자체적으로 불공정 시비를 해소하도록 법제를 개선하는 것이 대안인가. 당연히 후자가 바람직하다. 고쳐야 한다.
  •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허균을 모를 사람이 없다. 허성, 허봉이란 두 형과 누이 난설헌까지 모두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이가 바로 허균이었다. 한번 스친 글도 잊지 않고 모두 외울 정도로 대단한 수재였다.(한치윤의 ‘해동역사’) 그의 기억력이 얼마나 훌륭했던지 실학자 이익도 ‘성호사설’에 기록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붓을 한 줌 움켜쥐고 붓끝을 허균에게 보였다. 그런 다음 붓을 치우고 몇 개인지 물어보았다. 허균은 잠시 생각하더니 붓의 모양을 일일이 다 기억해 내고는 붓이 몇 개였는지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길은 흡사 사진기와도 같았나 보다. 천하의 수재라서 그랬을까. 허균은 살면서 외로움을 탔다. 그가 쓴 ‘사우재기’(四友齋記)란 글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성소부부고’, 제6권). 허균은 자신의 거처를 사우재라고 했는데, 그 자신과 세 명의 벗이 함께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중국의 명사들이었다. 진나라 시절의 도사 도원량, 당나라 시인 이태백 그리고 송나라의 문장가 소자첨이었다. “나는 성격이 소탈하고 호탕하여 세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를 꾸짖고 무리를 지어 배척하니, 집에 찾아오는 벗이 없고 밖에 나가도 뜻에 맞는 곳이 없다.” 허균이 벗으로 선택한 고인들은 비범했다. 한가하고 고요한 자연을 사랑하며 우주를 집으로 삼아 인간 세상을 가볍게 여긴 현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모두가 탁월한 문장가였다. 허균은 당대의 이름난 화가 이정에게 부탁해 세 벗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그러고는 그림마다 직접 추모의 글을 지어,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물론 허균의 생전에는 달랐다. 그는 여행 중에도 그림을 휴대해 머무는 곳 어디서든 방 한쪽에 걸어두었다. 그가 머무는 곳은 항상 네 사람의 선비가 웃으며 담소하는 분위기였다. 허균은 이 그림만 있으면 “내 처지가 외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로서는 세속의 친구는 사귈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허균에게는 정말 친구가 없었을까. 세 군자의 초상을 그려준 화가 이정이야말로 그가 아끼는 벗이 아니었던가. 화가가 별세했을 때 그는 몹시도 슬퍼했다. 애사(哀辭)를 지어 이정의 풍모를 이렇게 묘사하지 않았던가. “그는 술을 즐겼고 마음이 활달하였다. 글씨도 잘 쓰고 시도 잘 알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속기(俗氣)가 없고 비범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생활이 곤궁하여 남에게 의지했으나, 의(義)가 아니면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아무리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더럽게 여겨 사이를 끊었다.” 허균은 나이고 벼슬이고 그 무엇도 따지지 않고 이정을 깊이 사랑했노라고 고백했다. 알고 보면 그들은 두터운 우정을 키우며 산 것이었다. 이 밖에도 허균에게는 수명의 심우(心友)가 있었다. 조지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그들의 우정을 말해 주는 글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 얼마나 좋아했던지 마음에 거슬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로를 찾았고 잠시도 헤어지지 못했다. 날마다 풍아(風雅)를 비평하고 고금의 문장가를 존숭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상 풍파와 무관하게 이렇게 지낸 것이 여러 해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이합집산이 되풀이되는 오늘날이다.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더없이 친해 보이던 두 사람의 유명 인사가 갑자기 갈라섰고, 그중 한 사람은 옛 친구를 완전히 매장하려는 듯 온갖 비방을 일삼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우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까.
  • 여성 한명 한명, 이야기 움트는 책방의 봄

    여성 한명 한명, 이야기 움트는 책방의 봄

    가족이지만 몰랐던 ‘엄마’의 역사 주목 여성 자서전 출판사 ‘허스토리’로 시작 더 자유롭게 생각 나눌 공간 ‘책방’ 꾸려 다양한 사람들 만나며 ‘이어진다’ 느껴 4월부터 회원제로 운영 ‘또다른 봄’으로 편하면서도 때론 급진적인 이야기 기대“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 시작은 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을 만드는 거였다. 주변에서는 아버지의 자서전은 왜 안 만드냐고 했다. ‘시각이 협소하다’는 충고를 들었다. 답답했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더 보탤 생각이었다면 출판사의 이름도 ‘허스토리’(herstory)라고 짓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존 역사에서 배제돼 좀처럼 드러나지 않은 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은 단단해졌다.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일을 하는 동안 여성의 서사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서점도 차리게 됐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 주는 책방’, ‘지금과는 다른 봄이 움트는 책방’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달리, 봄’이라 지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잡은 작은 책방 ‘달리, 봄’을 이끄는 류소연 대표와 주승리 팀장의 이야기다.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 모두 거시적인 역사보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 따로 구술사를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강좌를 듣고 직접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부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구술 인터뷰를 통해 기록한 자서전을 출판하거나 자서전 교육을 하는 ‘허스토리’는 2016년 그렇게 탄생했다. 이듬해 여성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손으로 만지고 눈과 입으로 읽을 수 있도록 책방 ‘달리, 봄’의 문도 열었다. 두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출판사와 책방을 운영하는 건 “여성들의 각기 다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모으고 드러내는 일”이다. 두 사람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봄을 기다리며 지난해와는 또 다른 새로운 ‘달리, 봄’을 꿈꾸고 있는 두 책방지기를 만났다. -‘페미니즘 서점’을 표방하고 책방 문을 열게 된 이유는요. 주승리 저희가 하던 일이 구술사와 관련한 자서전 작업이었으니까 처음엔 ‘생애사 서점’ 혹은 ‘구술사 서점’을 해볼까 했었어요. 류소연 ‘여성 생애사 서점’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어렵고 와닿지가 않더라고요. 주승리 생각해 보면 저희가 하는 전반적인 일들이 페미니즘의 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저희가 책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보니 서점이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고요.-출판사 ‘허스토리’에서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류소연 초반에 집중적으로 하려고 했던 작업은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인터뷰를 통해 주로 어머니들의 생애사를 출판물로 제작하는 거였어요.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될 것을 요구받잖아요. 사람들이 보통 나이든 여성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머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왜 여성들은 다 어머니라고 불려야 할까. 왜 어머니가 되기를 강요받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역사를 쓰는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여성들의 역사가 좀더 구체적인 범위에서 쓰이기를 바랐는데,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지 않으면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게 매력적이더라고요. 류 대표와 주 팀장은 각각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여성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마주한 순간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겪은 구체적인 감정이 와닿았다고. 특히 때를 놓치면 그 세세한 역사들이 공중으로 흩어진다는 사실에 자서전의 중요성을 남다르게 여기게 됐다. -여성의 생애사를 남기는 일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요. 주승리 여성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나는 할 말이 없어’예요. 이 말이 이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만 해도 제가 여쭤 보기 전에 누군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어요. 저는 저희 아버지의 역사는 이상하리만큼 다 알고 있거든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지냈는지도 다 아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는 왜 몰랐을까요. 그게 어떻게 보면 보편적으로 누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들에게 발언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게 언어의 권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류소연 저는 여성들의 경험이 언어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여성들이 다 같지 않잖아요. 세대도 다르고 계층도 다르고요. 다른 것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한명 한명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장년층과 노년층의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의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일이 그분들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할 때가 많다고 느낍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서사가 중요한 이유를 짚는다면요. 류소연 ‘여성의 서사가 중요하다’는 말은 사실 그동안 얼마나 여성이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됐는지를 드러냅니다. 이전까지 ‘남성 서사’라는 말은 존재한 적이 없는데,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여성의 서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미 여성들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고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언어를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미 터져 나오고 있고, 이미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없게 만들 수는 없어요. 그것이 더 많은 각기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드러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달리, 봄’은 책을 판매하는 일뿐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드러내는 여러 모임을 기획하는 데도 노력을 쏟고 있다. 저자 특강을 비롯해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글쓰기 워크숍, 여성주의 교육, 여성 가수들의 공연까지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2015년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달라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갈리아 비포 애프터 경연대회’를 열어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메갈리아 비포 애프터 경연대회’라는 행사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참석자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류소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나’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하면 좌절감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특히 지난해 설리씨와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난 뒤 더욱 그랬죠. 그래도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지) 4년 정도 지났는데 길게 보면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로 그 점에 대해 말해 보면서 다독이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지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서로 위로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건 참석자 중 한 분이 ‘내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승리했다고 느낀 순간과 패배했다고 느낀 순간’에 대해 각각 ‘친구가 줄었다’, ‘친구가 줄었다’라고 답변하셨는데 그 말에 많이 공감했어요. 저도 책방을 한 이후로 내가 너무 소모된다고 느껴지거나 불편한 인연은 정리하게 됐거든요(웃음). 한편으로는 책방과 출판사를 통해 다시 연결되는 사람이 생겨났고요. -책방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여성 단체나 모임, 활동가들과 협업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류소연 정말 기뻐요. 평소 존경하던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함께할 수 있어서 마치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느낌이에요(웃음). 다른 페미니스트 여성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건 저희가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자산이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책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기에 다양한 협업이 가능한 구조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연대 활동과 협업을 해 나가고 싶어요. 주승리 그리고 새로운 분들을 만나면서 ‘이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저희가 출판사를 처음 시작했을 땐 사무실에서만 저희들끼리 이야기하고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책방을 하고 나서는 연결된다고 느껴져요. 그럴 때마다 책방 잘했다는 생각 많이 들죠. ‘여성들이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내가 내 자신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달리, 봄’이 추구하는 목표다. 지난 2년간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선보여 온 두 사람은 그간의 여정을 체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틀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는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달리, 봄’과 ‘허스토리’가 올해 기획하고 있는 주요 행사가 있다면요. 주승리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저희가 기획한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를 많이 마련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같이 배우는 공간은 어떨까 싶어서 4월부터 회원제를 운영하려고요. 3개월 단위로 9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취미 활동이나 모임을 하면서 이 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려고요. 또 여성 뮤지션 다섯 명의 곡으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앨범 작업에 참여한 여성 뮤지션 다섯 명의 인터뷰가 담긴 책도 함께 내려고 해요. 류소연 싱어송라이터 이랑, 슬릭, 신승은, 이호, 성진영씨가 참여했어요. 앨범 주제가 ‘이 사람들 각각의 역사’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파헤치는 일종의 생애사 인터뷰입니다. 매거진도 발행하려고 하는데요. 읽고 쓰고 사유하는 여성들의 글들을 모으는 페미니스트 큐레이션 잡지예요. 여성 명사의 서재에 대한 인터뷰도 함께 실리는데 이 명사가 추천한 책을 추려서 회원들한테 보내드리려고 해요. -‘달리, 봄’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남길 바라나요. 주승리 이 책방은 저희가 만든 공간이지만 저희만의 공간은 아니에요. 누군가의 ‘달리, 봄’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달리, 봄’의 의미를 만드는 것보다 오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각각의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류소연 저희가 ‘허스토리’도 운영하고 있지만 다들 ‘달리, 봄’을 더 많이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책방에 오시는 분들도 이 공간이 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구요. 그걸 보면서 공간이 갖는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편안하지만 급진적이고 한편으로 엄청 편파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지혜 “내 맘에 쏙 드는 남자는 없어요” [인터뷰 ②]

    이지혜 “내 맘에 쏙 드는 남자는 없어요” [인터뷰 ②]

    (인터뷰 ①에서 이어집니다. ▶이지혜, 트로트 가수에 도전 “포인트는 비음 섞인 창법” [인터뷰 ①])현재 이지혜는 약 1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이지혜는 솔직 털털한 매력, 남편 문재완 씨와의 케미 등을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가수에서 유튜버로 전향한 이지혜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Q. 유튜브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매번 새로워야 한다는 게 쉽지 않죠. 내용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태리가 있으면 촬영이 너무 힘들어요. 집중이 안 돼요. 촬영을 하니까 말은 해야 하는데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마 영상 보시면 태리가 조금 나오다가 사라질 거예요. 그건 유튜브 촬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어요. (웃음) Q. 워킹맘으로서도 힘든 점이 많을 것 같다. 있죠. 집에 가는 순간부터 아이 밥 먹는 것부터 챙길 게 많아서 정말 바빠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죠. 사실, 워킹맘 뿐만 아니라 육아맘도 힘들어요. 아이랑 하루종일 있으면 우울증이 걸리겠더라고요.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당장 지금 아이 밥 한숟갈을 더 먹여야 하고, 아이 기저귀 갈아주고, 또 옷 갈아 입히다 보면 또 점심 챙겨야 하고. 똑같아요, 워킹맘 육아맘.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힘들어요. 엄마들, 인생 뭐 있습니까? ‘긴가민가’ 들으면서, 맛있는 것 드시면서 즐겁게 살아봅시다. 내가 힘들다는 생각에 계속 갇히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힘든데 쟤는 왜 행복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저도 힘들 땐 정말 힘든데, 힘든 걸 영상으로 보여줄 순 없잖아요. 조회수가 안 나오니까? (웃음) 나중에 자식을 잘 키웠을 때 행복한 게 있으니까, 우리 잘 견뎌서 버팁시다. Q. 유튜브 댓글도 챙겨 보는 편인지? 다 보죠. 사실 일일이 다 댓글을 달고 싶은데, 많아서 못 해요. 그래도 다 읽으면서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유튜브 컨텐츠 가운데 결혼 관련 영상 조회수가 높다. 어떤 남편을 만나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이야기네요. 이 세상에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이 없다는 걸 인지해야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일단 마음을 내려놓자. 그리고 드라마 그만 봐라. 드라마 남자 주인공, 없다. 가장 첫 번째로는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성품. 정말 착하고, 성실한 성품을 갖고 있는지. 저는 그것만 봤어요. 여태까지 수많은 남자를 만나 봤지만, 남편은 짜증을 안 내요. 짜증을 낼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정말 신기했어요. 언젠가 제가 한 번 ‘왜 오빠는 짜증을 안 내?’라고 물어봤더니 오빠는 ‘난 짜증난 적이 없는데?’라고 답하더라고요. 아무리 화가 나도 한숨을 쉬는 게 다지, 언성이 높아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남편은 정말 저에게 다 맞춰줘요. 그 대신, 문제가 있다면 제가 다 해야 한다는 점. 음식점 선정, 여행지 등 모든 걸 제가 해야 해요. 뭐가 맛있는 지도 몰라요.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하지만 늘 한결 같은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제일 예쁘다고 하고 너무 좋다고 하니까, 최고의 남편이죠. 내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방을 판단하는 내 모습이 어떤지도 봐야 해요. 여자들이 매번 준비된 남자를 만나려고 하지만, 여자들도 준비되지 않으면 그걸 못 보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재밌는 영상 만들면서 구독자들과 소통할 것 같아요. 영상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입덕일지] 이지혜가 ‘관종언니’임에도 밉상이 아닌 이유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지혜, 트로트 가수에 도전 “포인트는 비음 섞인 창법” [인터뷰 ①]

    이지혜, 트로트 가수에 도전 “포인트는 비음 섞인 창법” [인터뷰 ①]

    ‘관종언니’ 이지혜가 트로트 가수에 도전한다. 30일 오후 6시 발매되는 이지혜의 트로트 싱글 ‘긴가민가’는 그룹 UV 멤버인 뮤지가 작곡한 곡이다. 중독성 강한 가사와 트로트 특유의 신나는 리듬이 특징이다. 그룹 샵으로 활동했던 그의 이미지 변신이 기대되는 가운데, 지난 22일 상암 MBC의 한 카페에서 이지혜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최근 유튜브 채널 ‘밉지 않은 관종언니’를 운영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이지혜는 한껏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Q. 트로트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룹 샵 멤버로 활동하기 전부터 사장님께서 저한테 트로트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사람들도 ‘네 목소리에는 뽕끼가 있으니까 트로트를 해 봐라’고도 했어요. 그 때는 트로트를 하기가 너무 싫었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제가 이 나이가 되니까 트로트가 좋아졌어요. 다행히 지금은 트로트가 꼭 트로트 가수만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뮤지 씨랑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있어서 제가 먼저 부탁을 했어요. 곡을 하나 써 달라고. 제 부탁을 받자마자 ‘누나 이거 될 것 같아’라고 말하고서 곡을 써서 들려줬어요. Q. 신곡 ‘긴가민가’에 대해 설명한다면?EDM 트로트 장르의 곡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트로트 느낌에 신나는 EDM 비트를 섞어서, 많이 가볍게 했습니다. (웃음) 제가 원래 흥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제 노래 중에 흥을 풀 수 있는 노래가 없었거든요. 이제는 저도 신나는 곡을 해보고 싶어서 (뮤지 씨에게) 의견을 많이 냈어요. Q. 딸 태리 양도 혹시 노래를 들어봤는지? 너무 좋아해요, 정말로. 유튜브 어제 찍으면서 한 소절 불러줬는데 춤을 추면서 진짜 좋아했어요. Q. 기존 가요과 트로트의 창법이 달라 힘든 점은 없었는지? 아뇨 오히려 다른 장르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제 몸에 배어 있는 비음을 노래에 많이 녹이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트로트의 묘미는 비음 아니겠습니까? 꺾는 창법을 생각하다 보면 너무 만들어진 창법이 나올까 봐 몸이 반응하는 대로, 흥이 나는 대로 불렀어요. Q. 라이브 계획은 있으신지? 아직은 없어요. 키가 생각보다 높아서 지금 고민이에요. 제 컨디션에 따라서, 원하시면 유튜브에서 한 번 보여드릴게요. Q. 음원 순위에 대한 욕심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이제는 제가 차트 이런 거 욕심내지 않을 거예요. 그런 욕심보다는 제가 즐기려고 하는 거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그룹, 솔로 활동 하면서 차트 욕심 냈다가 마상(마음의 상처) 많이 입어서 은퇴 각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서 (차트 진입) 욕심 내지 않으려고요. Q. 이번 음원 발매를 계기로 음원을 계속 낼 생각이 있으신지? 그럼요, 언제나 그러고 싶었어요. 사실 사람들이 가수들에게 ‘왜 음원을 안 내요?’라고 하지만 가수들도 안 내고 싶어서 안 내는 게 아니거든요. 듣는 사람이 있어야 내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반응이 좋으면 탄력 받아서 음원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튜브 댓글에 ‘언니 음원 내주세요’, ‘언니 보컬 너무 좋아요’ 해서 냈는데 그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댓글 쓴 사람들한테 꼭 ‘좋아요’ 누르라고 말하는데. 이번에 잘 됐으면 좋겠네요. 제가 방금 (차트 진입) 욕심 없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웃음) Q. 어떤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는지? 누구나 남녀노소 되게 좋아할 수 있는 노래 같아요. 많이 들어주세요.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이지혜 “내 맘에 쏙 드는 남자는 없어요” [인터뷰 ②])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양경언(35). 2011년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이 젊은 평론가의 이름은 문학이 목소리를 내는 곳이면 어김없이 있었다. 2014년 9월 20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304낭독회’에도, 2016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론화 된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에도 예외없이 등장했다. 그가 첫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창비)을 냈다. 2010년대 초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안녕 대자보’ 현상과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연결해서 살핀 자신의 평론 ‘작은 것들의 정치성’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안부를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평론가를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났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 ‘안녕을 묻는 방식’은 2010년대의 한국 시를 필두로 이 시기 사회를 뒤흔든 여러 사건들 속에서 문학의 역할을 되짚는 책이다. 그는 2010년대를 일컬어 “2009년 용산 참사, 이명박 정권 초기 등을 거치며 시의 미학에 대한 고려가 정치성 역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의 ‘미래파 논쟁’이 전에 없던 화법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러한 고민들의 현실 속 역할을 숙고하던 시절이라는 거다. ‘안녕 대자보’가 기존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의 범위를 확장하듯, 이 시기의 시도 ‘누군가를 대리하려는 욕망 없이 ‘너’를 요청하는 발화를 이어간다는 것’, ‘고독과 다정함이 혼종적으로 묻어나는 희한한 분위기’(21쪽, ‘작은 것들의 정치성’)를 자아낸다는 것이 양 평론가의 분석이다. 2010년대는 세월호, 촛불 혁명, 문단 내 성폭력, 페미니즘 등의 이슈를 거치며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받던 시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평이 중요하다고 양 평론가는 말한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참사 앞에서 문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고 의미화할 것이냐, 말의 무력과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한계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할지 분투하는 과정으로 의미화할 것이냐는 다른 입장이에요.” 그래서 그는 작가와 시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세월호 희생자를 추념하는 한 줄 문장을 읽는 ‘304낭독회’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새삼 그냥 지나쳤던 것도 고양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돼요. 지난해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황정은·박상영·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모르고 있던 걸 가르쳐준다기보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걸 다시 일깨우는 것이 요즘의 문학이고요. 그렇게 작품을 읽고 고양된 순간을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의견을 표출하고 힘을 실으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게 2010년대의 모습이에요.” 일상의 언어를 쓰지만 행간은 더욱 깊어진 요즘의 시. 마지막으로 아직도 ‘시가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지금 시대가 요청하는 확실하게 정리되는 것,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켜가는 자리에 시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시를 읽는 건 사회에서 사람들이 관성화된 움직임으로는 감각할 수 없는 부분들을 느끼는 과정이거든요. 대놓고 사람들이 난감하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시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 시를 잘 겪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소주연♥김민재, 키스신도 묻어버린 ‘심쿵’ 케미 [SSEN리뷰]

    소주연♥김민재, 키스신도 묻어버린 ‘심쿵’ 케미 [SSEN리뷰]

    ‘낭만닥터 김사부2’ 소주연·김민재의 풋풋한 러브라인에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28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연출 유인식·이길복, 극본 강은경, 제작 삼화네트웍스)에서는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던 윤아름(소주연 분)과 박은탁(김민재 분)이 본격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앞서 방송에서 박은탁은 짝사랑 후보로 자신을 말하지 않은 소주연에게 “나는 왜 아니냐”며 퇴근 후 맥주 데이트 신청을 했다. 윤아름은 설레는 모습을 보이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지만 응급 환자로 인해 약속이 무산됐다. 이를 알게 된 간호사들은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했고 윤아름은 박은탁을 찾아가 “어제 맥주 마시기로 한 거 얘기했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다. 우리 아직 그런 사이도 아닌데.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데”라고 토로했다. 이에 박은탁은 “시작한 거 아니었어요?”라고 물어 윤아름을 ‘심쿵’하게 했다. 윤아름은 “직진으로 훅 들어오신다”라며 “너무 능수능란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박은탁은 “설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날 때까지 표현하지 못했고 그대로 끝나버렸다”며 “앞으론 안 그러려고요”라고 말했다. 이에 윤아름은 “혹시 이거 고백인 건가요”라며 얼떨떨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박은탁은 “다음부턴 약속에 안 늦을게요. 대신 윤쌤도 나랑 약속해 놓고 다른 사람이랑 치킨 먹지 마요”라며 질투를 드러내 윤아름은 물론 안방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날 차은재(이성경 분)와 서우진(안효섭 분)의 러브라인에도 큰 진전이 있었다. 서우진은 차은재를 대학시절부터 홀로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차은재는 서우진을 친구로만 생각했던 상황. 차은재는 서우진의 불우한 어린시절을 알게 되며 그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차은재를 찾아가 “너희 부모님이 너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어제 처음 들었다. 그 말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이에 서우진은 “쓸데없이 마음 아프지 말아줄래. 우리 진지해지는 순간 너와 나 답 없다. 그러니까 네가 들은 거 다 잊어. 싹 지워”라고 차갑게 말했다. 차은재는 “어떻게 들은 걸 못 들은 걸로 하냐. 어떻게 싹 다 지우냐고”고 말했고, 서우진은 “내가 방법 다시 알려줘? 리셋”이라고 말하며 차은재에게 키스를 했다. 주연 이성경·엄효섭의 첫 키스신에도 불구하고 화제성은 소주연과 김민재 커플이 더 높았다. 특히 28일 김민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주연과의 ‘아무노래’ 챌린지 동영상을 공개하며 다음날인 29일까지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다. 영상 속 두 사람은 지코의 ‘아무노래’ 안무를 하며 극중 모습처럼 풋풋하고 귀여운 케미를 발산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한편 ‘낭만닥터 김사부 2’ 8회는 시청률 20.3%(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23.2%로 나타났다. 매주 월, 화요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소주연♥김민재, ‘심쿵’ 부르는 커플 탄생 “이거 고백인가요?”

    소주연♥김민재, ‘심쿵’ 부르는 커플 탄생 “이거 고백인가요?”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소주연과 김민재의 러브라인에 시동이 걸리며 안방극장에 ‘심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 “내가 그렇게 별로예요?” 27일 방송된 ‘낭만닥터 김사부2’ 7회에서는 소주연(윤아름 역), 김민재(박은탁 역)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자신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소주연에게 “나는 왜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별로예요?”라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 김민재의 대사로 그동안 짐작만 해왔던 두 사람의 러브라인에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이어 데이트 신청까지 한 직진남 김민재와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소주연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다. #2. “앞으론 안 그러려고요” 이어 28일 방송된 8회에서는 응급 환자로 둘만의 첫 약속이 취소된 뒤, 둘의 사이를 의심하는 주변인들 때문에 걱정하는 소주연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소주연은 “우린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데”라고 선을 그었고, 김민재는 “시작한 거 아니었냐”며 “설레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대로 끝나버렸다. 앞으론 안 그럴 거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에 소주연은 “혹시 이거 고백인 건가요”라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히 안효섭(서우진 역)과 즐겁게 치킨을 먹는 소주연을 본 김민재가 “다른 사람과 치킨 먹지 말아요”라고 질투를 드러내자 두근거리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웃음 짓는 모습은 소주연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가미돼 더욱 설렘 가득하게 표현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갈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 매주 월, 화요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생각 버리고 사람 만나고 매일 걸으면 일상이 명상

    생각 버리고 사람 만나고 매일 걸으면 일상이 명상

    지난 22일 서울 중구의 한 공유오피스. 자유롭게 배치된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에 열중하고 있는 각종 스타트업 관계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혜민스님(47)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한 손에는 코끼리 인형을 들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인형의 정체를 물어 보니 “최근 ‘코끼리’라는 이름의 명상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시작해 일부러 들고 나왔다”고 웃었다. ●공유오피스에 그가?… 앱 론칭 석 달 만에 15만 다운로드 그는 인터뷰에 앞서 “요즘 미국 정보기술(IT)업계에선 ‘명상 관련 앱’이 수천개씩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가운데 ‘캄’(Calm)이라는 앱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등의 비즈니스 이야기를 한참 했다. 스님이 대낮에 공유 오피스에 출근해 있는 모습이 그제서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버드대 종교학과 출신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인 가운데 한 명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힐링 멘토’다. 그가 2012년 펴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교보문고가 선정한 201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혔다. 5년 전부터는 명상 센터인 마음치유학교를 운영하면서 평온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37개국에서 번역된 책 덕분에 그의 강연 무대는 최근 북미, 동유럽, 남미로까지 넓어졌다. 이 바쁜 와중에 어떻게 ‘명상 앱’까지 만든 걸까.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다니엘 튜더(38·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가 불면증을 호소해 개인적으로 명상법을 알려주었는데, 효과를 보더니 명상 앱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면서 “마침 지방 사람들로부터 마음치유학교에 오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월 4500원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코끼리 앱은 론칭 3개월 만에 15만 다운로드를 기록, 국내 앱 마켓 건강·피트니스 분야 1위에 오르는 등 국내 앱 시장에 잔잔한 명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튜더 전 특파원이 보증한 불면증 해소법 먼저 튜더가 확실한 효과를 봤다는 불면증 해소법부터 물었다. 진짜 명상만 잘하면 ‘꿀잠’을 잘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스님은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생각을 버리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하루 종일 지나치게 많은 생각 속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은 자신이 생각에 끌려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어깨나 허리 등 특정 부위의 통증이 느껴진다면 낮에 활동하는 내내 어떤 생각에 빠져 긴장을 하느라 신체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사실부터 인식하는 ‘알아차림’ 단계를 거쳐야만 생각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이후에는 ‘보디 스캐닝’을 해 보라고 권했다. 누워서 몸의 감각에 집중해 머리부터, 가슴, 발끝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어떤 상태인지 느껴 보라는 것이다. 지금 내 몸의 어느 부분이 긴장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면 서서히 그 긴장이 풀린다. 이 단계를 거쳐야 렘(REM) 수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 ●‘생각’보다 적극적 ‘행동’ 필요… “앱서 미팅 주선” 귀띔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주로 어떤 생각에 빠져 특정 감정에 사로잡히고 이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 자존감 결여 등에 시달리는 것일까. 그는 “국내외 강연을 다녀보면 요즘 한국인의 고민은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무기력으로 모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내가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향후 커리어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많다”면서 “이러한 고민들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고, 당장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하다가, 자기 전에, 혹은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불안감이 밀려오면 “마음아, 그 일이 일어나면 생각하자”고 하는 문구를 되새기는 명상법을 통해 생각을 날려 버리라고 조언했다. 외로움에 대해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 사용 등에서 비롯된 ‘초연결사회’의 부작용 탓에 요즘 사람들이 더욱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전과 달리 사람이 싫어지면 온라인에서 쉽게 차단해 버리는 탓에 관계 맺기 과정에서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거나 아예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생각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도 중요하다고 봤다. 우선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혼자가 편하다고 여길 때도 있는데 외롭다고 느껴지는 건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떠오르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면 된다.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연락은 하지 않은 채 수동적으로 연락을 받기만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서로 배우고 공감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서 “만남을 통해 때론 상처를 주고받지만 치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세 번째, 무기력은 “반복되고 지쳐 있는 일상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활력이 생기는지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코끼리 앱에선 명상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싱글 남녀의 활력을 위해 ‘스피드 데이팅’ 등 미팅도 주선하고 있다”고 슬쩍 귀띔하기도 했다. ●‘無毛한 형제들’·‘TMI메이트’ 교류 자체만으로 힐링 그가 아무리 만인의 ‘힐링 멘토’라 해도 생각을 버리지 못할 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도 사람”이라면서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SNS에는 종교인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세속적이다. 땡중이 뭘 안다고 조언하느냐 등의 악플이 잔뜩”이라면서 웃었다. 그는 “기분 나쁜 말을 되새기면 몸이 아프고 힘들다”면서 매일 의식적으로 1시간씩 걷는 것이 생각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걸으면서 나무도 보고, 웃는 아이들도 보고,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달리는 것에 주의하면 잡생각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는 스트레스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해소한다. 헤어 스타일이 서로 비슷한 연예인 홍석천, 하림,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등과 ‘무모한 형제들’이라는 모임을 갖고 정기적으로 만나 ‘폭풍 수다’를 떤다. 스타강사 김미경, 야구선수 박찬호 등도 그의 ‘TMI(Too much talking) 메이트’ 가운데 하나다. 때로는 모임이 오히려 피곤할 때가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모임은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내가 속한 모임이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판단하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는 “진정한 치유의 모임은 좋은 사람들이 교류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마지막 질문에 그는 확신에 찬 눈빛 속에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행복의 조건은 확실히 있습니다. 몸이 건강한 것, 스스로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는 것,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물론 좋은 집, 차를 사거나 명품을 구매하는 것도 기쁨이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순간의 만족뿐만 아니라 의미를 찾으며 살아갑니다. 가장 보람된 삶의 의미는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여길 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자존감과도 연결되고요. 명상을 통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감사함과 자신감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좀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코비의 오점” 트윗했을 뿐인데 WP 기자에 정직 처분

    “코비의 오점” 트윗했을 뿐인데 WP 기자에 정직 처분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등진 코비 브라이언트(41·미국)의 선수 생애에 단 하나 오점이 있었다. 바로 2003년 19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발됐던 일이다. 그런데 코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돼 일간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고인의 성폭행 의혹을 담은 기사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일과 관련해 바로 그날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허핑턴 포스트가 28일 보도했다. 문제의 기자는 국내 정치 담당 펠리시아 손메즈 기자다. 사실 그녀의 잘못은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브라이언트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장(章)으로 보이는 2003년 성폭행 의혹과 그 뒤 법정 밖 화해에 대해 좋지 않게 보도한 2016년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의 기사를 링크 건 게 전부였다. 손메즈 역시 성폭행 피해를 입은 전력이 있다. 그녀 말고도 코비의 죽음 이후 성폭행 의혹을 새삼스럽게 지적한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유독 손메즈 기자의 트윗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코비를 아끼는 팬들의 공격을 받았다. 손메즈 기자는 나중에 트윗을 통해 1만명 이상이 댓글을 달았고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내 “욕설과 살해 협박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제발 잠깐만요, 기사를 읽어보세요. 3년도 전의 기사고요. 제가 쓴 것도 아니에요. 공인이라면 아무리 사랑받고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전체적으로 돌아볼 가치가 있는 거에요”라고 적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증오에 차고 욕설이 난무한 메시지들을 스크린샷 해 트위터에 올렸다. 손메즈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노출돼 있었다. 손메즈 기자는 문제가 되겠다 싶었는지 문제의 글들을 지웠지만 이미 사방에 퍼날려진 뒤였다. 편집 책임자 트레이스 그랜트와 마티 배론이 즉각 문제가 될 만한 트윗 3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특히 배론은 이메일에다 “이 트윗에서는 진짜 판단력 이 부족해 보인다. 제발 그만. 당신은 우리 기관의 명성까지 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랜트는 나중에 성명을 통해 손메즈 기자가 “우리 신문 뉴스룸의 소셜미디어 정책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동안 공무 휴가(administrative leave)를 떠났다. 트윗들은 동료들의 성과를 훼손하는 판단력 결여를 드러냈다”고 단언했다. 1000명 정도의 직원을 대변하는 WP 길드(노조)는 두 편집국 수뇌에게 전달한 문서를 통해 정직 조치는 “잘못된 것”이며 “우리 동료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치를 즉각 취하라”고 촉구했다. 문서에는 200명 이상의 기자가 서명했다. 물론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가르침, 세상을 떠난 이의 명예를 더럽혀선 안된다는 것을 기자들도 안다. 하지만 객관적인 팩트를 전달하는 부음 기사에까지 그런 추한 면을 써선 안된다고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허핑턴 포스트는 지적했다. 코비는 2003년 콜로라도주의 한 호텔에 묵었을 때 19세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본인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인정했는데 다만 상호 합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여성은 한사코 법정 증언을 마다했고, 2년 뒤 민사 소송을 제기한 뒤 화해를 통해 일단락됐다. 많은 부음 기사들이 어두운 그의 과거를 ‘영웅의 단 하나 오점‘이란 식으로 지적했다. 국내 연합뉴스도 짧게 이를 언급했다. WP 길드는 나아가 집 주소가 노출돼 겁에 질린 손메즈가 그날 밤 호텔에 투숙할 정도로 불안에 떨었는데 회사는 그녀의 안전을 살펴주긴커녕 오히려 정직시켜 그녀의 트라우마를 키웠다고 공박했다. 손메즈는 회사가 성폭행 피해자를 대할 때 이런 식인 것인지 혼돈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손메즈는 2018년 LA 타임스에서 근무할 때 당시 베이징 지국장이었던 조너선 카이먼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두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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