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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4회]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양승태 법정서 불거진 ‘매춘’ 설전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4회]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양승태 법정서 불거진 ‘매춘’ 설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 23차 공판 지상중계檢, 위안부 재판 검토 보고서 내 ‘매춘’ 표현 문제 삼아보고서 작성 판사 “일본 주장을 그대로 적은 것일 뿐”“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일부 표현만 문제 삼아 유감”일제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전범기업의 개인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한 일본의 경제보복과 이에 맞서는 정부와 국민들의 대응으로 올해 광복절은 더 뜨겁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1400회째 수요시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만여명이 참석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겹쳐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달궈졌다. 그리고 같은 날,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놓고 청와대·정부와 이른바 ‘재판 거래’를 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정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매춘’ 표현을 두고 설전이 오갔다.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3회 공판에서는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조모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양승태 사법부’가 일제 강제동원 사건과 관련한 외교부 입장을 대법원에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동안 조 부장판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6년 1월 4일자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관련 검토’ 보고서다. 조 부장판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임 전 차장이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소부 판결”이라면서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위안부 손해배상 사건의 여러 쟁점사항을 설명해 주면서 “(원고들이 승소하기) 어려운 사건 아니겠느냐”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주권면제(국가간 주권은 평등하므로 국가와 그 재산이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의 집행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법 원칙), 통치행위, 한일 위안부 합의, 소멸시효 등을 핵심 쟁점으로 언급했고, 이러한 취지에 맞춰 조 부장판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결론도 부정적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조 부장판사는 “일단 사건을 검토해보니까 강제징용 사건과는 달리 국가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주권면제 원칙상 다른 국가가 한 국가를 법정에 세울 수 있냐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자료를 검토했고 그 부분이 해결되지 못하면 나머지 부분은 사실 각론적인 부분이어서 자료 정리하면서 (임 전 차장이) 말씀하신 내용이나 또 보좌하는 입장에서 반대되는 판례나 견해나 그런 들을 같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前심의관, 위안부 관련 보고서에 ‘매춘’ 단어…검찰 “부적절한 것 아니냐” 특히 보고서 가운데 한 단어가 논란이 됐다. 보고서 말미 ‘향후 심리 및 결론 방향에 대한 검토’ 부분에 ‘문제점’을 다룬 내용 가운데 ‘1. 현재 통설인 제한적 면제론에 의할 때, 일본의 일본군 동원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인지, 상사적(매춘) 행위인지, 일본이 국가면제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 등이 아직 명백하지 아니한 상태임 → 반드시 국가면제에 해당하여 재판권 없음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음’에 등장한 ‘매춘’이라는 단어였다. 검찰은 먼저 “매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당시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임종헌의 지시였나, 아니면 증인이 직접 판단해서 사용한 것인가”를 물었다. 조 부장판사는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조 부장판사는 이어 “이게 주권행위라고 보면 참 딜레마인데 지금 일본이 국가적인 주권행위가 아니라 상사(商事)적 행위라고 계속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데 주권행위를 부인해야 재판권이 인정되는 것이고 주권행위라고 인정하면 또 재판권이 없어지는 그런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래서 제가 직접 기록을 본 것은 아니지만 관련 논문을 보니까 당사자들도 재판권 자체를 판단할 때는 그게 상사적 행위냐, 주권적 행위냐가 명백하지 않으면 일단 재판권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나와있었고 그래서 일본의 주장이 그러하면 재판권이 없다고 각하할 것이 아니라 본안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기재한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것을 어떻게 위안부 피해자들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검찰은 “보고서 각주를 보고 논문을 다 찾아봐도 상사적 행위인지, 주권적 행위인지에 대한 논쟁이 검토된 부분은 있지만 상사적 행위를 매춘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래서 이 표현이 생경해서 임 전 차장이 지시한 것인지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장판사는 “그런 구체적 표현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검찰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피해를 알린 처음 세상에 알린 이후로 8월 14일 오늘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해당 법률이 통과돼 국가기념일로 법적으로 확정됐다. (위안부 문제는) 국민적 합의 내지 국가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매춘이라는 표현은 이와 달리…” 이 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증인이 말을 했는데 추가적 질문을 장황하게 하는 게 의미없다”며 말을 가로막았다. 재판부는 “질문 내용을 들어봤으면 한다”며 검찰에 다시 질문을 이어가라고 했다. 검찰은 “매춘이라는 표현은 이와 달리 귀책사유 또는 고의가 인정되는 표현인데 이런 표현을 현직 법관인 증인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사용했는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조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보고서 괄호 안 표현 하나를 계속 짚어서 말씀하시니까 마치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자꾸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을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제가··· 그 보고서의 전체적인 방향을 보시면 일본이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재판권을 인정할 여지가 있는지에 집중한 것이고 재판권이 있다고 하면 일본이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게 전시 국가적으로 피해자를 동원한 행위라고 하면 할수록 주권면제의 대상이 돼 재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일본 주장이라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서 재산권을 인정할 여지가 없을까 그 부분을 보고서의 전체 방향이 그런 것이지… 그래서 그 이후에도 각하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공시송달을 해서 일본을 우리가 법정으로 불러낼 방법이 있는지 국제법적으로나 민사소송법상 각하해야 한다고 해도 일본의 그런 범죄에 해당하는… 국가적으로도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것을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서 기재한 것이고 그러한 전체적인 방향에서 보셨으면 그러면 이해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현직 판사 “전체적으로 재판권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맥락을 봐달라” 억울함 호소 조 부장판사의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당혹스러움과 억울함이 역력했다. 쟁점을 정리하면서 위안부가 국가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닌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된 것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 쟁점별로 재판권이 어떻게 인정될 수 있는지를 정리한 것인데 그 괄호 안 단어 하나로 자신이 마치 위안부 피해자들이 매춘을 했다고 표현한 것으로 공격을 받자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조 부장판사가 답변을 마치자마자 “기본적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하고 검사의 질문이 뭐가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이고 제3자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고 증언한 이후에도 거기에 대해 증인에게 이런 식으로 묻는 것은 형사소송규칙 74조 2항 1호에서 금지하는 ‘모욕적 신문’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공소사실과의 관계에 비춰봐서 물어볼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증인이 이 보고서를 임 전 차장의 대외적인 공보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했다고 증언했는데 이게 만약 대외적 공보자료라면 임 전 차장의 입장에서는 ‘상사적 매춘행위’ 이런 부분을 대외적으로 언론에 얘기하는 것은 매우 실언일 수 있고 부적절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증인이 실제 보고서를 작성할 때 임 전 차장의 대외적인 공보활동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 맞나? 그렇다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아 질문하는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이 표현을 언급했다. 조 부장판사는 언론에 직접 건네지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언론을 비롯해 대외적으로 관련 문의가 왔을 때 임 전 차장 등 법원 관계자들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도록 정리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부장판사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저기 저 부분(매춘)을 형광펜으로 쳐서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질문을 하시는데 그것이 아니라 재판권을 인정하려면 일단 일본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인지, 우리나라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인지 불분명하다면 재판권은 일단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에서 기재한 것이다. 전체적인 방향을 보지 않고 그 문구 하나만을 보시고 질문하실 때는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검찰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며 약 15분 남짓 이뤄진 설전을 멈춰세웠다. 그러나 오후 재판에서도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몇 차례 이 보고서가 도마에 올랐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반대신문을 통해 조 부장판사에게 “증인은 일제의 위안부 동원 행위의 성격을 상사적 행위라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으시죠?”라고 물으며 그의 입장을 거들었다. 조 부장판사는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또 이 보고서가 사건이 계류된 서울중앙지법 민사재판부에 전달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재판부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냐고도 물었고 여기에도 조 부장판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박병대 측 반대신문 질문 딱 하나… “박병대 강제징용 판결 관여한 사실 알았나”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례적으로 반대신문에서 딱 한 가지 질문만 증인에게 건넸다. “증인은 심의관으로 지시받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이 사건으로 검찰에서 장기간 조사를 받고 관련 사건 재판에서 증언하고 다시 이 사건에 증인으로 채택돼 박병대 피고인과 변호인은 미안한 마음이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좀 있지만 딱 한 꼭지만 물어보겠다. 증인이나 다른 기조실 심의관들은 (검찰이) 문제삼는 보고서 작성 당시 박병대 피고인이 강제징용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들 중 한 명이란 사실을 알았나?” 박 전 대법관은 2012년 강제징용 사건을 처음 파기환송한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에 속해있었다. 양승태 사법부가 일제 강제징용 사건으로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박 전 대법관은 이미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인 만큼 재판 거래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질문으로 해석된다. 조 부장판사는 변호인의 질문에 “몰랐다”고 답했다.이후 검찰의 재주신문 과정에서 조 부장판사는 다시 한 번 심경을 호소했다. 검찰이 “보고서 맨 마지막 부분에 보면 ‘국민적 비판이 예상되니 국가(주권)면제 해당 여부, 반인권적 행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 전제로 위안부가 일본의 조직적 행위, 반인권적 행위라는 걸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여론을 악화하도록 검토’라는 부분이 있다. 판결 이외의 내용을 검토한 것인가?”라고 묻자 조 부장판사는 “그런 식으로 됐으면 좋겠다라는…보고서를 쓰다가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그 보고서를 쓸 때는 저도 막연히 당연히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억울할 것 같고 검토를 해보니 재판부가 인정하기는 어려운 사건이고… 그러면 이 분들은 어떻게 하면 한이 풀릴까 생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제 생각을 아셨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나중에 지금은 뭐 행정처에서 공보 목적으로 하지만 나중에라도 재판하게 될 수 있는데 이런 내용을 기록하고 기억하면… 차장님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 제 생각을 담았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3회] ‘법관 해외 파견’과 강제징용 거래?…현직 판사 “그냥 아이디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3회] ‘법관 해외 파견’과 강제징용 거래?…현직 판사 “그냥 아이디어”

    “혹시 금요일 재판을 대법정에서 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다른 법정은 너무 덥고 열악해서…” 지난 7일 재판이 끝날 무렵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급히 일어나 재판부에 이 같은 요청을 했다. 법정 크기에 따라 냉방과 환기의 차이가 크다 보니 좀 더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재판장은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려해보겠다고 하고 재판을 마쳤다. 그리고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2회 공판에서는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법정을 바꾸는 이례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날 원래 재판이 열린 곳은 311호 중법정이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주로 열리는 재판은 수요일은 대법정, 금요일은 중법정을 사용했다. 두 법정 모두 일반 형사재판이 열리는 소법정에 비하면 매우 넓은 규모이지만 냉방에 차이가 났다. 이날 재판이 열리자마자 재판부는 “법정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는데 417호 법정 사용이 가능한지 보니 어제 기준으로 오늘하고 8월 16일, 10월 이후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면서 “자, 오늘도 사용이 가능하긴 한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검찰은 “(준비된) 양이 많지 않아서 저희는 특별히 문제는 없다. 재판부 뜻대로 하시라”고 했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저희는 기온이 높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옮겨서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법정을 옮기기 위해 재판이 멈춰졌다. ●양승태 측 “다른 법정은 너무 덥고 열악” 재판 도중 법정 옮겨 오전 10시 10분 417호 법정에서 다시 재판이 열렸다. 이날 법정에는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국제심의관으로 일한 김모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김 부장판사는 국제심의관 재직 기간 동안 법관 재외공관 파견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대법원은 2006년부터 사법 교류를 목적으로 한 ‘사법협력관’ 제도를 두고 해외에 판사를 파견했지만 2010년 중단됐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파견을 재개하기 위해 외교부를 설득하고 그 대가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등에 외교부의 편의를 봐주는 이른바 ‘재판 거래’를 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주 유엔대표부와 주 제네바대표부, 네덜란드 대사관 등에 법관 파견이 재개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김 부장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법관 재외공관 파견과 관련한 새로운 전략을 추진해 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 추진 검토’(2015년 7월 2일자)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돼 있다.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 관련)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지만 기존 보고서가 계속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편집하는 건 의미가 없어서 제가 추가해서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법관의 해외 파견 관련 검토는 국제심의관들의 기본적인 업무였기 때문에 관련된 보고서가 매년 있었는데 여기에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법관 해외 파견이 중단됐으니 이를 재개하기 위해 행정처에서 꾸준히 관련 검토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판사가 작성한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 추진 검토’ 보고서에는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최근 외교부 본부에 법관 파견 요청→재외공관의 요청을 계기로 우리 측에서 법관 파견을 검토하는 형식으로 추진’한다는 내용과 함께 추진방안(4쪽)으로 ‘보고라인: (외교부) 장관-1차관-기획조정실장-인사기획관-인사제도팀장’, ‘외교부 고위인사에 대한 접촉. 1단계: 외교부 기조실장 면담 추진 - 과거 주미대사관에서 사법협력관과 같이 근무하면서 법원에 대한 좋은 인상 보유하고 있다고 함. 2단계: 기조실장을 우군으로 포섭한 후 인사기획관, 인사제도팀장에게 영향력 행사 가능. 1차관 면담추진’ 등 구체적인 외교부 접촉 방안이 담겼다. (※보고서가 작성되기 전인 2015년 6월 25일 임 전 차장은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주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에 대해 요청했고 조 전 차관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검찰이 질문했지만 김 부장판사는 “그런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前국제심의관 작성한 해외공관 파견 검토 보고서에 ‘신일본제철 사건’ 명시 특히 이 보고서의 5쪽에는 ‘외교부 추가 설득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신일본제철 사건: 외교부 측 입장을 절차적으로 최대한 반영(정모 판사 활용)’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날 증인신문에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이 부분의 의미와 이 문구가 들어가게 된 경위를 거듭해서 물었지만 김 부장판사는 “아이디어 차원일 뿐”이라고만 답했다. 검찰이 이 문장의 의미를 묻자 김 부장판사는 “의견서 제출제도가 생겼으니 제가 알기로는 외교부에서 의견을 제출하고 싶다고 들어서 내고 싶으면 내 보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임 전 차장이나 다른 상급자의 지시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다만 왜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사건을 특정해서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증인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취지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법관 재외공관 파견에 활용하는 추진방안을 수립해보라는 취지였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그런 지시 받은 기억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그해 1월 28일자로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소송 당사자가 아닌 제3자나 외부 기관이 재판과 관련해 참고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시행했다. 검찰은 이 제도 역시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외교부가 재상고심 과정에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가 도입되면서 외교부가 의견서를 제출하고자 한다면 행정처의 협조 없이도 제출이 가능한데 어떤 의미로 절차적으로 최대한 반영한다는 건가?”라고도 물었지만 김 부장판사는 “기존 설득방안이라는 보고서가 수년간 누적돼 있었고 새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지 사법협력관들로부터 기존 그 양반들의 성과를 듣고 새롭게 작성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기재한 것이고 구체적으로 이걸 어떻게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제징용 재상고 담당 재판부에 절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느냐”는 검찰의 질문과 이후의 “이를 토대로 외교부와 어떤 거래를 하고자 검토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의 질문에는 모두 “그런 인식은 없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 법관 해외공관 파견 검토 지시는 없었다” 변호인들은 김 부장판사에게 이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특정 사건의 재판과 관련한 내용을 설득방안으로 넣게 된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여러 차례 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 보고서(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 추진 검토)가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 전혀 알지 못하죠?”라면서 “기조실 국제심의관으로서 (법관 파견 관련) 방안을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증인의 고유업무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알지 못했고,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한 것이 맞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읩 변호인은 “법원이 재외공관에 법관을 파견하는 것은 사법부 기관의 이익이라기보다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보이는데 맞느냐”고도 물었다. 김 부장판사도 “저는 그렇게 인식한다”고 답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런 질문도 했다. “행정처 관계자 분들이 일본과의 분쟁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안이 회부되는 경우와 관련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국제사법재판소에 아시아 지역 출신 재판관의 TO(정원), 할당된 재판관 수가 3명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출신 재판관이 한 명도 배출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ICJ 재판관으로 선출될 수 있는 역량있는 인물을 판사 출신 중에서라도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당시 공유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증인의 기억은 어떤가요?” 최근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과 극심한 대립을 겪는 상황을 빗대 법관들의 해외 파견을 확대하는 데에는 국제사법 관련 전문가를 키운다는 목적도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질문으로 해석된다. 김 부장판사는 “앞 부분은 얘기할 게 아닌 것 같다”면서 “ICJ는 우리나라가 가입이 안 돼서 재판관 자체가 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정까지 옮겨가며 진행된 이날 재판은 김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끝으로 오후 1시쯤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2회]‘양승태 독대’ 김앤장 변호사의 ASMR “비밀유지 해야···”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2회]‘양승태 독대’ 김앤장 변호사의 ASMR “비밀유지 해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21차 공판 지상중계김앤장 전관 출신 중심으로 청와대·사법부 소통전범기업과 논의 공개는 “변호사 윤리 위반” 과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법관 사무실과 대법원장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서울 강남의 고급 호텔 식당에서 자주 만나 식사도 했다. 자신이 소송 대리를 맡은 대법원 사건에 대해 서슴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 궁금점과 의견을 말했다. 오랜 친분이 있었고 만나서 “사담을 나눈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상 로펌과 법원의 창구 같은 역할을 했다. 그가 속한 로펌에서는 판사 출신은 물론 고위 관료를 지낸 ‘전관’들로 구성된 대응팀을 만들었다. 서울대, 전관, 김앤장 법률사무소. 이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 모이니 정부와 사법부가 움직였다.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1회 공판에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변호사는 특히 양 전 대법원장과 독대해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지목돼 더욱 주목을 받았다. 한 변호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네 기수 후배이고 같은 판사 출신에 1994년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도 있어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날 오전 10시 8분쯤,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법정에 들어선 한 변호사는 증인석에 앉자마자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의 방청석에서는 도무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제징용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한 변호사의 출석으로 휴정기에도 절반 가까이 찬 방청석에 있던 모든 이들이 법정 앞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법정 경위가 한 변호사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그의 입에 더 가까이 대기도 하고, 증인석 스피커의 볼륨을 키우느라 왔다갔다 분주했다. ●김앤장 변호사, 전범기업과의 논의 내용 묻자 “변호사윤리장전 어긋나” “변호사가···의사교환에 대해 ···”, “제시된···윤리장전···의사교환 내용들을···없습니다” 검찰이 김앤장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한 변호사 작성의 메모나 문건들에 대해 진정성립 절차를 갖고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자 한 변호사는 연신 이렇게 답했다. 그가 증언을 거부한 메모나 문건들은 신일철주금과 논의한 내용들이었다. 의뢰인과 주고받은 내용을 밝히는 것은 변호사의 비밀준수 의무를 어기는 것이라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2015년 9월 8일자 한 변호사의 메모를 검찰이 제시하며 직접 작성한 것이 맞는 지 묻자 증언을 거부했다. 검찰이 “그럼 이 메모에 있는 필적이 증인의 필적이 맞는가”라고도 바꿔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양승태 피고인의 변호인 의견서를 보면 한상호 증인을 비롯한 김앤장 관계자 증언에 대해 이들의 증언이 업무상 비밀누설죄로 형사처벌받거나 변호사윤리장전에 따른 윤리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증인으로서의 진술은 공익성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상이고 증언거부권을 증인의 권리여서 기밀누설죄가 성립이 안 돼 업무상 기밀누설이라는 이유로 증인이 작성한 메모에 대한 진정성립을 따지고 있는데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증인의 증언을 통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매우 중요한 공익상의 법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소송 지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 변호사를 가운데 두고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의 공방이 몇 차례 오가다 재판부가 3분 휴정을 한 뒤 “증인의 필적이 맞냐는 질문에 대해선 증인의 증언거부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다. 한 변호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실 발견을 위해 감사드리고···저도 계속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말씀드렸다시피···(변호사)윤리장전에 해당돼···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필적은 제 필적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거듭 강조했다. “저는 재판에 협조하러 나온 사람입니다.” 그나마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신일철주금과의 논의 과정을 제외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작은 목소리로나마 답변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의 대화 내용이나 양 전 대법원장의 의견 등 이른바 ‘재판 거래’와 관련된 혐의와 직결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지만 그의 희미한 기억과 목소리로도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움직임, 그리고 전범기업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대응과정이 다시 확인됐다. 한 변호사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질문과 그의 답변을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양승태 “강제징용 왜 소부에서 선고했는지” 불만 드러내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가 1·2심 모두 패소로 결론났던 강제징용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선고 이틀 뒤인 26일 오전 김앤장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김영무 대표와 한 변호사, 김용갑·권오창·조귀장 변호사 등이 모였고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도 참석했다. 올해 5월 14일 윤 전 장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고 밝히며 “특별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한 변호사는 “잘 생각이 안 난다”며 참석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 회의를 통해 한 변호사는 재상고심까지 신일철주금 측 소송 대리를 맡기로 했다. 그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에도 한 변호사는 대법관 사무실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났고,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는 사무실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 식당에서 자주 만났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증인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파기환송이 선고된 날로부터 양승태 피고인이 대법원장인 시절에 15번 정도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가 모두 기억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2013년 3월, 두 사람이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김능환 전 대법관의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김 전 대법관이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서 퇴직한 뒤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보도들이 나오며 화제가 됐다. 김 전 대법관의 근황에 대해 얘기하다 한 변호사가 “강제징용 사건이 (파기환송으로) 선고될 때 알고 계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이 “주심인 김 전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줬다”면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을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선고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 변호사는 “(2012년) 강제징용 판결은 선례에도 어긋나고 한일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라는 의견도 슬쩍 내밀었다. 다만 검찰이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적정성에 대한 대화도 있었느냐”고 묻자 한 변호사는 “직접적으로 적정 여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눈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5월엔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으로부터 재상고심과 관련해 연락이 왔다. “새로 제출된 증거를 근거로 소부에서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남은 대법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부 의견서가 필요하니 김앤장에서 법무부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내달라”는 요청이었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한 변호사는 “정확히 기억 못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검찰이 제시한 한 변호사가 듣고 전달해 김앤장에서 작성된 문건에는 ‘5/14 법원 동향. 기조실장과 (외교부) 법률국장이 직접 만났음. 기조실장은 외교부 의견서 꼭 있어야 한다는 입장 vs 대국제법률국장은 대법원의 정식 요청이 있어야 제출가능하다는 입장. 대법원은 새 증거 근거로 파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대로 전합이 회부키로 함’ 한 변호사는 임 전 차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들었다고 말했다. ●임종헌, 김앤장 변호사에 “의견서 내달라” 요청 후 절차 상의 같은 문건에는 ‘5/18 법원 동향. 기조실장 왈 협의 완료됐다. 민사소송규칙은 언급 안 할 예정’이라고도 적혔다. 그리고 한 변호사는 당시 임 전 차장에게 “재상고 사건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검찰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임종헌 기조실장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논의 끝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양승태 피고인의 결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한 변호사는 “전원합의체 말씀을 한 건 (대법원장의 결심이) 어느정도 감안됐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기도 하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이러한 의견서를 받았다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 말했는지 물었지만 한 변호사는 “사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검찰 조사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전달했다고 말했다며 거듭 질문하자 “(김능환) 전 대법관 말씀이 나왔을 때 이 사건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그런 차원에서 임 실장님께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알려드린다는 취지에서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 뒤에도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과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 재차 “그래서 만난 것은 아니다. 꼭 그렇지 않다. 오가며 사적인 자리에서 말씀은 드리려고, 관심이 있으신지 물어보고 그런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후 의견서를 내는 문제를 두고 임 전 차장과는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전범기업 측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에서는 기존 송무팀과 별도의 대응팀이 꾸려졌다. 한 변호사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현홍주 전 주미대사, 최건호·조귀장 변호사가 포함됐다. 대응팀은 ‘새로운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정부, 특히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반한다고 판단해 반감이 큰 외교부의 입장을 근거로 대법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 전 대법원장 등 법원과 원활한 소통이 되는 한 변호사에게도 역할이 요구됐다. 대응팀은 정부와 청와대, 사법부 등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취합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유 전 장관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 학자, 전·현직 관료들이 모인 ‘한일 현인회의’를 주도하며 일본의 아베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번갈아 만나며 강제징용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관 출신 ‘김앤장 대응팀’ 전방위 로비… ‘외교부 움직여 대법원 설득’ 시도 2014년 11월쯤 현 전 대사가 유 전 장관과 한 변호사를 불러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무총리가 보고를 했고,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법원에 직접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는 설명이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모두 같은 의견임을 확인한 김앤장은 이들과 더욱 활발히 소통했다. 현 전 대사와 유 전 장관의 대화내용이 담긴 메모 ‘10월 11일 유명환 식사, 대통령 주재 회동. 연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확인. 신영철 전 대법관 유 장관 법과 대학 동기. 12년 판결 문제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고바야시 검사’에는 특히 ‘※법무부로부터 들었는데 연말에 전합으로 하기로. 적어도 올해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일(2015년 6월 22일) 전에 선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검찰이 이 같은 정보를 2014년 11월 13일 접하고 일본 관계자에게 상황을 보고했냐고 물었지만 한 변호사는 “오전에 말씀드렸듯 의사교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김앤장 조귀장 변호사가 미쓰비시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문건이 있다며 질문을 계속했다. ‘※클라이언트 반응. 대법원 심사숙고. 매스컴, 식자층 등 반성 여론으로 재상고심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음. 다만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바꾸려는 노력은 계기가 부여돼야 가능성 높아짐. 청구권 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한국 정부의 긍정적 입장 표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 지금까지는 준비서면 등으로 법률적 주장을 했으나 외교부 등 외부에서도 대법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게 무르익었음’이라는 문건 속 문장들이 읽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증인이 증언거부 하고 있는 내용을 왜 밝히느냐”며 항의했다. ●양승태 직접적인 입장이나 재판거래 혐의는 “기억 안 나” 함구 이날 검찰로부터 제시된 한 변호사가 작성한 메모들에는 이런 내용들도 있었다. ‘(2015년 11월) 지난 토요일 조 차관(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과 미팅. 대법원과 커뮤니케이션 문제 없나. 혼네(本音·본심에서 우러나온 말)로 문제 없다. 지난번 장관 미팅 때 10월 30일 전후로 추진. 한일 정상회담 OK, 개각 전에 해야 하지 않겠나? 외교부가 먼저하는 게 좋겠다. 대법원이 조심스러워진 건가? 윤 장관이 VIP(대통령)와 논의해야’(한 변호사가 작성한 메모) ‘(2015년) 11월 17일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 전화. 외교부, 위안부 문제 진전 전까지 곤란하다. 대법원이 이니셔티브(주도권)을 쥐고 먼저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유명환, 대법원 시작하면 외교부는 따라올 것으로 예상. 대법원 외교부 설득해 진행되도록’(한 변호사가 곽 전 비서관과 통화한 내용을 적은 메모) ‘곽 프로(곽 전 비서관) 오찬. 곽 부장도 조심스런 반응. 위안부 문제도 있는데 이 시점에 꺼내든다는 게 헌법재판소 사건에 제출된 의견서 언급하며 외교부 초안, 헌재 의견서 보완 방안 언급하니 좋은 아이디어라는 반응. 늦어질 가능성 대비 필요’(한 변호사 작성 메모) ‘외교부 장관→BH(청와대) 실장→외교안보·민정수석→법원행정처→대법원’ (한 변호사 작성 메모 ※본인의 상상을 적은 것이라고 주장) “증인은 양승태 피고인을 만난 자리에서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 등 소송 대응에) 소극적이라 걱정이라 말했더니 양승태 피고인이 ‘외교부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느냐”고도 검찰은 물었다. 한 변호사는 “거기에 대한 공감을 표시한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자신은 없지만 그런 취지로 답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지만 사적 대화를 하다가 재판에 대해 가볍게 말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사적인 대화, 가벼운 언급으로 강제징용 사건은 피고 측 대리인과 대법원장 사이에 지속적으로 대화가 오갔다. 그 사이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김앤장과 소통했고, 김앤장은 정부와 청와대,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어 대응했다. 재상고심이 결과가 나오는 데만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과정에는 이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대법원은 민형사 소송규칙 개정안을 시행해 판사가 변호사 등 소송 관계인과 법정 밖에서 만나거나 전화 변론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전관예우 근절을 강조하며 법관들에게 경계를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다음달 18일 다시 법정에 나오게 된다. 증인신문이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재판부가 한 기일 더 부르기로 하고 재판을 서둘러 마친 이유에서다. 한 변호사는 건강 문제로 9월 초에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추석 연휴 뒤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증인들이 말하는 모든 사정을 고려해주면 향후 재판 진행이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고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항의의 뜻을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1회] ‘김명수 트라우마’가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이어져···“양승태, 임기 내 인사모 정리한다고 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1회] ‘김명수 트라우마’가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이어져···“양승태, 임기 내 인사모 정리한다고 해”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두세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부터 전국 법원이 2주간 휴정기에 들어갔다. 매주 2~3차례씩 열리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도 지난 한 주 숨을 고른 뒤 5일 열흘 만에 다시 열렸다. 늘 규모가 큰 법정에서 진행되다가 소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니 법정의 긴장이 더욱 높아졌다.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0회 공판에는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가 두 번째로 법정에 나왔다. 지난달 19일 현직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증인으로 출석했다가 밤 11시까지 재판이 이어지자 양 전 대법원장이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급히 마무리됐던 증인신문을 다시 이어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의 주신문과 고 전 대법관 측 반대신문에 이어 이날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열흘 만에 재판 재개···소법정이라 재판 밀도 높아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한 김 부장판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여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들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돼 검찰의 피의자신문만 최소 14차례 받았다. 그가 작성한 문건들 중에는 동료 법관들을 겨냥한 내용들이 여럿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가 추진한 각종 사법행정 정책에 반대하거나 반감을 드러낸 판사들에 대한 ‘대응’, 일종의 견제 또는 압박을 위한 방안들이 담겼다. 주로 임 전 차장이 불러준 대로, 임 전 차장의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작성한 것이라는 등 문건을 작성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지난 증인신문에서 많이 다뤄졌다. 이날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을 통해서는 당시 사법부 수뇌부가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판사들을 바라보던 시각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내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 대한 제재 방안들이 기획조정실 명의 문건들로 만들어졌고, 김 부장판사는 ‘전문분야 연구회 개편방안(2016년 3월 8일자)’,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대응방안(2016년 4월 7일자)’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했다는 진술이 검찰 수사 과정에 이어 이날 법정에서도 확인됐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2003년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주도한 ‘사법파동’ 때 당시 행정처 차장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심한 불쾌감을 느꼈고 이후 차장직에서 물러나게 돼 김명수 대법원장과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임종헌 차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렇게 진술한 게 사실이냐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임 전 차장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사법파동 때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 전 대법원장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 부장판사의 진술과 동일한 말을 한 건 아니라고 진술했는데 당시 임 전 차장이 그 워딩을 사용한 게 정확한가”라고 묻자 김 부장판사는 “정확하다.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답했다. 4차 사법파동으로도 불리는 2003년의 사법파동은 당시 서울지법 북부지원의 박시환 판사가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 법관들의 의견’이라는 글을 통해 기수·서열에 따라 대법관을 인선하는 관행에 항의한 것을 시작으로 판사 160여명이 이에 동의하는 연판장을 돌린 사건이다. 김용담 대법관이 관행에 따라 예정대로 인선됐지만 사법파동으로 인해 열린 전국법관회의 이후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첫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첫 여성 대법관이 되며 대법관 인선 관행이 크게 달라졌다. ●양승태, 2003년 4차 사법파동으로 법원행정처 차장 떠나특히 그해 8월 열린 전국법관회의에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참석했고, 수원지법 부장판사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관 대표로 회의에 들어가 양 전 대법원장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은 이행정처를 떠나 특허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당시 행정처 총무국장이던 박 전 대법관도 행정처에서 나왔다. 이를 계기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모두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트라우마’와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임 전 차장에게 들었다고 김 부장판사는 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11년 9월 대법원장이 된 다음달 김 대법원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만들었다.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던 사법행정위원회와 상고법원 도입에 잇따라 반대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판사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소속이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행정처 내부에서 “(인사모를) 단속하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김 부장판사 스스로도 상급자들의 인사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갈수록 더 심각하게 체감했다고도 밝혔다. 기획조정실에 함께 근무한 박상언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으로부터 “대법원장님께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제 임기 중 정리하겠다, 후임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씀해주셨다”는 말을 전해들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뒤 2017년 2월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온 이탄희 판사는 이규진 당시 양형위 상임위원이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는데 놀라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들은 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는 것이 추진돼 왔고 그것이 자신의 업무이기도 하다는 점에 놀라 사표를 던졌다. 이 일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법원의 자체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 등을 거쳐 양 전 대법원장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 등 행정처 수뇌부가 갖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질문과 답변이 서너 차례 오가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김 부장판사에게 물었다. “증인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입니까?”, “네”, “양승태 피고인이 대법원장을 시작한 이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사에서 불이익한 처분을 받거나 불이익한 대우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제가요? 없습니다.”2016년 초 양승태 사법부가 사법행정위원회(법관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취지의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송모 판사에 대해서도 기조실 차원의 검토 및 대응 문건이 만들어졌다. (2016년 2월 2일자 ‘송OO 판사 관련 검토’) 당시 이민걸 기획조정실장은 김 부장판사와 최모 부장판사를 불러 화를 내며 “송 판사는 어차피 1년 뒤면 행정처 심의관으로 올 사람인데 조용히 유학이나 갔다오지 왜 그런 글을 올려 재를 뿌리느냐”고 말했다고 김 부장판사는 말했다. “왜 기조실장이 우리를 혼내지? 의문이 들면서도 그만큼 대법원장이나 차장님 입장에서 사법행정위원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봤다”고도 설명했다. 송 판사도 인사모 회원이었다.●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뒤 부정적 인식 있던 인사모 정리 입장 보여 “대법원장이 임기 안에 인사모를 정리하겠다고 했다”는 말들이 전해졌고, 구체적인 와해 방안이 추진됐다. 지난해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에서부터 잘 알려진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실행됐다. 판사들에게 연구회나 커뮤니티를 하나만 가입할 수 있도록 하면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에서 탈퇴하는 법관들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 부장판사는 “처장님(고 전 대법관)의 구체적 워딩은 들은 바 없고 결정된 사항을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서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예산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을 우려가 있으니 기존에 허용됐던 연구회 중복가입을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17년 2월 13일 이민걸 당시 기획조정실장과 고 전 대법관의 승인으로 전산정보관리국(전정국)에 연락해 국장 명의로 코트넷에 중복가입 금지 관련 공지글을 올리도록 했다. 이와 관련, 김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가진 9차 피의자신문에서 “중복가입 해소 조치는 이 전 상임위원이 임 전 차장의 지시라면서 (저에게) 지시했다. 전정국 심의관과 기술적인 사항을 통화하면서 검토를 부탁하니 ‘이제 피바람이 부는구나’라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여 전정국도 (지시 내용을) 알고 있구나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법원 진상조사단 등의 조사로 이 문제가 거듭 제기되자 임 전 차장이 보인 반응도 김 부장판사를 통해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다 한 것이라고, 박 부장판사가 알아서 법원 조사과정에서 그런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취지였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솔직히 임 전 차장이 대법원장님에게 원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반대신문과 이어진 김 부장판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증인신문조서 등에 대한 서류증거 조사를 마친 뒤 변호인들이 차례로 반박하는 의견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지난해 2월 9일자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대면 조사에서 김 부장판사가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읽었다. “행정처 내부의 보고서 작성 시스템에 대해 좀 열린 마음으로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보고서라는 게 누가 기안해서 누구의 생각을 올리면 고유 업무에 관한 것들은 윗분들에게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닌 정무적 사안에 관한 것들은 임 전 차장의 스타일도 그렇고 세세하게 어떤 방향을 주면 저희가 문서화하는 작업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보고서는 판결과 달리 반드시 실행을 하려고 작성하는 게 아니거든요. 가능한 방안을 전부 정리해서 드리는 게 심의관의 역할이고 결국은 부장 회의든 차장 주재 회의든 실장 주재 회의든 거기서 논의돼서 실행하기로 하면 정말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옵니다. 지시가 내려온 것은 (연구회) 중복 방지 관련 공지글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중략) 기본적으로 다들 이대로 실행된다고 생각 안 하는 게 보고서의 특성임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위 심의관들이 물어봐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겁니다.” ●변호인 “정무적 성격 보고서 구별이 중요, 대법원장 보고, 승인 없어”변호인은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은 고유 업무에 대한 보고서와 정무적 성격을 띤 보고서를 구별해야 하고, 심의관이 최초로 작성한 보고서와 실행을 전제로 한 보고서가 어떻게 구별되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중복가입 해소 조치 등 핵심 쟁점에 대해 김민수 증인이 대법원 조사과정에서 가장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심의관들이 작성한 보고서가 모두 대법원장에게 보고됐거나 대법원장의 승인을 받아 실행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소법정에서 재판부와 검찰, 그리고 증인과 더욱 가까이 마주해야했던 양 전 대법원장은 오전 10시부터 줄곧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질끈 힘주어 감고 있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이따금씩 김 부장판사를 빤히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다만 이날 증인신문에서 김 부장판사는 기획조정실장 외에 법원행정처장이나 대법원자에게 직접 지시를 받지도, 직접 보고를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중복가입 해소 조치 관련, “(인사모에 대한) 견제 목적을 알고 있어 고민이 깊었으나 법원 예규에 근거하고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박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일 때 지시된 것으로 지목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2015년 9월 22일자) 등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은 피고인이 지시한 게 아니다”고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0회] ‘우병우 바이패스→궤도 수정‘ 靑설득전략 보고서… “양승태에 보고됐다고 들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0회] ‘우병우 바이패스→궤도 수정‘ 靑설득전략 보고서… “양승태에 보고됐다고 들어”

    ‘입법추진 BH(청와대) 현황. 전반적으로 견제 분위기이고 전임 비서실장의 영향에 따른 부정적 분위기 고착된 상황, BH 핵심보좌진의 친(親)검찰 구성 변화 없음. 공식 창구는 민정수석실, 6월 임시국회까지 적극 협조 획득 사실상 불가능. - 원인 1. 민정수석 경찰 경험 2. 문고리 권력 행사하며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전달+사법부 부정적 영향 확대 시도. 이에 따라 발상의 전환, ‘바이패스(bypass·우회로)’ 전략 필요’ 2014년 상고법원 설치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못하자 대법원은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전략’을 세운다. 2015년 3월 26일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명의로 작성된 ‘상고법원 BH 대응전략’에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기 때문에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협조가 어렵다며 우 전 수석이 아닌 다른 우회로를 접근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한 청와대와의 공식 창구는 민정수석실이지만, 우 전 수석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생각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26일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9회 공판에서는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시 부장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015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소속 기획제2심의관으로,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는 기획제1심의관으로 일하며 직속 상사인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날 재판은 고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과는 관련이 없어 고 전 대법관은 변론이 분리돼 증인신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시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상고법원 BH 대응전략’에 우 전 수석을 피해 접촉할 우회로는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지목됐다. 이 전 비서실장의 주요 관심사항에 대해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 최대 관심사-한일 우호관계의 변화 등. 주일대사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시 삼계탕 1500봉지를 들고 후쿠시마 피해자들을 방문해 한일 양국에서 큰 호응’이란 부분이 별도로 기재됐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 사건의 파기환송을 예상한다는 내용이 이 전 실장에게 공감의 뜻을 피력하는 방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보고서의 최종 작성자인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靑설득전략 ‘우병우 피해 이병기 접촉’…이병기 관심사안인 ‘강제징용’ 언급 다만 시 부장판사는 이러한 ‘바이패스’ 전략이 실행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의 영향력이 청와대 내에서 너무 강해서 바이패스 전략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 20일~28일 사이 몇 차례 수정됐다가 7월 28일자로 완성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보고서에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서술내용이 빠졌다. 7월 20일자 보고서에는 ‘바이패스 전략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에 대해 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2015년 7월쯤 이병기 실장이 힘이 없고 우병우 민정수석이 건재하다고 판단해 바이패스 전략에 대해 궤도수정을 하자고 했다”, “2015년 7월까지도 우병우의 장악력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아 ‘이병기 우회 전략’이 큰 쓸모가 없다고 판단돼 폐기됐다”고 검찰 조사에서 각각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부장판사는 그렇게 진술한 게 맞다고 이날 법정에서 확인했다. 그해 7월 20~24일 사이 임 전 차장은 시 부장판사에게 “(박병대) 처장님 지시”라며 메모를 하나 전달했다고 한다. 메모에는 청와대를 설득하는 방안으로 ‘정부 협력 사례, 과거 왜곡의 광정, 과거사 사건’이 적혀 있었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판결, 정부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 제시 등 키워드가 적힌 한 장짜리 메모였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보고서를 보고받고 수정을 지시한 내용을 메모로 넘겨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7월 20일자와 28일자 보고서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댓글사건 재판과 관련 ‘현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원세훈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실체 판단의 문제가 남아있다’는 내용도 구체적인 설득방안으로 담겼다. 또 7월 말까지 민정수석실과 회동하고 우 전 수석과의 면담 일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시 부장판사는 7월 28일자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완성된 다음날 임 전 차장으로부터 “처장님과 대법원장님께 잘 보고되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고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상고법원은 당시 대법원의 역점사업이었기 때문에“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가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그해 8월 초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하기 전에 작성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이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국정 운영 협력 사례를 나열한 것에 대해서도 “법원에 대한 청와대·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 만든 것이지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사례로 해석하는 것은 굉장한 오해라고 생각한다”며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을 일축했다. 2014년 11월 10일자로 작성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검토’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문건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경우까지 상정해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문건을 만들면서 재판개입 우려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고 진술했다. 시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들은 주로 상고법원과 관련됐다. 상고법원 입법의 협조를 얻기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방안을 작성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득하는 방안을 세웠다. 특히 여기에는 판사 출신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국회의원이 된 서기호 전 의원에 대해 ‘법안심사1소위 심사에서 고립시켜 서 의원의 반대의견을 부기하고 법안 자체는 통과시키는 최후의 방법도 염두’라는 내용도 적혔다. 또 서 전 의원의 재임용 탈락소송을 신속히 종결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이 역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적은 부분이라고 시 부장판사는 말했다. “상고법원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대의 뜻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소송을 계기로 투사 이미지를 하고 있으니 신속히 종결시키자”는 게 임 전 차장의 말이었다고도 전했다. ●”재판 거래·재판 개입 생각지도 못해…보고서 대부분 실현 안 됐을 것“ 그러나 시 부장판사는 “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일선 법원에서 재판 중인 재판을 신속히 종결시키겠다고 한 계획은 재판의 개입이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당시 임 전 차장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제가 이해한 것은 임 전 차장이 사건이 오래됐기 때문에 종결단계가 왔다, 끝날 것 같으니 그러면 달라지겠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그리고 임 전 차장의 당시 지위가 기획조정실장인데 일선 재판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상조차도 못하고 인식도 못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임 전 차장이 서 전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 전 의원의 행정소송을 빨리 종결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을 했다면 부적절한 일이 맞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작성한 다수의 보고서는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맞춰 작성된 것일 뿐 대부분 실현이 안 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지난 24일 법정에 나온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도 자신이 쓰는 보고서가 모두 헌법적·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적절하게 활용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5년 2월 14일자 ‘‘이판사판 야단법석’ 다음 카페 현황 보고’ 문건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뒤에 보고도 하지 않고 “뭉갰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추진을 반대하는 법관들의 목소리가 나오자 임 전 차장은 법관들이 모인 익명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됐고 현황과 대응방안을 작성해 보라는 지시를 시 부장판사에게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시 부장판사는 “법관들이 활동하는 익명 카페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심의관의 업무라고 생각했지만 ‘대응방안’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카페를 자진 폐쇄하거나 탈퇴하도록 하는 방안 등 여러 대응방안을 써내긴 했지만 “결과물을 내야하니 임 전 차장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머리를 짜내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어본 것”이라면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고드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가운데 다른 판사가 같은 주제로 보고서를 보고한 것을 알게 됐고 속으로 잘됐다 생각하고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는 말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가장 마지막에 시 부장판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박 전 대법관이) 아까 증인에게 제시한 5개의 문건을 검토하여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게 이 사건 공소사실의 구성이다. 증인이 그 문건을 작성해 보고할 때 의무없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나 느낌이 있었느냐?” 그러자 시 부장판사는 “명확하게 그런 인식을 하고 작성한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밤 10시 가까이에 증인신문을 마치고 시 부장판사의 검찰 진술조서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조서에서 대법원장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라는 내용들은 대부분 추측이고 결과적으로 오늘 법정 증언상 대부분은 보고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한 부분(2015년 7월 28일자 보고서)도 만약에 임 전 차장의 진술이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오늘 증인의 그 부분 진술은 재전문진술이 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9회] “임종헌 흥분 잠재우려 보고서 세게 써…우리도 다른 판사들과 같아”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9회] “임종헌 흥분 잠재우려 보고서 세게 써…우리도 다른 판사들과 같아”

    -‘[검토] 재항고 인용 결정→ (BH(청와대)와 대법원)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임. (중략) 결정 시점 - 대법원의 이득을 최대화할 시점에 관한 분석 필요. BH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두 사법 최고기관이 어려운 국정현안에 얼마나 조력, 협력하는지에 따라 양 기관을 평가할 것임. (중략)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선고기일 전에 결정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음’ (2014년 12월 3일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대외비) 문건 중) -‘국정원 사건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유죄 선고 시 청와대가 불만을 표시했던 전교조 효력 집행정지 사건 등 관심사안 암시 전달, 국정원 사건의 상고심을 조속히 선고해 청와대의 불만과 오해의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 항소심 선고 직후 적당한 비공식 라인을 통해 사법부의 진위가 곡해되지 않도록 절차 거쳐야’ (2015년 2월 8일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문건 중) 판결의 결과를 미리 내다보는 시나리오와 판결 선고는 언제 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를 묻자 현직 부장판사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문서화 해줄 것을 요청해서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시를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문서로 작성해주기를 저에게 얘기해서 작성하게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지시자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었고 작성자는 그 때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다. ●정다주 “임종헌 지시로, 임종헌이 불러준 그대로 보고서 작성”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8회 공판에서는 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선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석을 바라보지 않고 곧장 증인석에 서 재판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가장 첫 질문인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어떤 경위로 작성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문건을 작성했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답했다. 이후엔 임 전 차장을 “저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 저에게 지시를 한 사람”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여러 문건의 작성 배경을 묻는 물음에는 거의 이렇게 답했다. “지시한 사람이 불러준 문구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정 부장판사가 작성한 2014년 12월 3일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검토’ 보고서에는 재항고 사건이 인용될 경우와 기각될 경우 각각 청와대와 대법원이 어떤 이득과 손해를 보는지 표로 정리된 내용이 담겼다. 재항고가 기각되면 양측 모두가 손해를 입는 반면 인용되면 양측에 모두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양 기관의 손해와 이득을 기준으로 작성한 내용인데 아무리 임종헌의 지시를 받았어도 이런 내용을 작성해도 되는지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표시한 사실이 있는가“ 묻자 정 부장판사는 “이의제기 한 바 없다”고 답했다. 이어 “(판결을 하는) 대법원에서 판단한 게 아니라 법원행정처에서 판단 내지 작성한 보고서였고, 저는 당시 어디까지나 이런 보고서들이 헌법적 테두리 그리고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쓰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의문을 갖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선고공판 전인 2015년 2월 8일자로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보고서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사건 관련 BH 불만이 누적된 상황’, ‘BH와 여권의 신뢰관계 유지 회복방안을 위한 다양한 방안 실시’,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사건 등 관심사건 신속 처리’ 등의 문구가 담겼다. 이에 대해서도 정 부장판사는 “임종헌 기조실장으로부터 원세훈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면 사법부 주변의 상황 변화라든지 그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에 관해 예상하는 보고서를 지시를 받았고,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상정해놓고 작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정 부장판사는 이밖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2015년 2월 10일자)’, ‘헌법재판소와 관계에서 대법원 이미지 설정방향(2014년 12월 19일자)’, ‘이판사판 야단법석 카페 동향 보고(2015년 3월 2일자)’,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부정을 바로잡아 고친다는 뜻)(2015년 7월 27일자)’ 등의 여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짙은 보고서들을 작성했다. ‘국무총리 대국민담화의 영향’과 같은 정세를 분석하는 보고서도 썼다. 역시 지시에 따라 불러준 대로 쓴 뒤 일부 문건에 대해서만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직접 생각해서 작성해낸 게 아니라며 정확한 작성 경위나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정 부장판사가 보고서를 잘 쓰고 정세 분석 능력과 정무감각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양승태 측 “대법원장에게는 보고 안 돼…보고서 실제 실행도 안 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반대신문을 통해 정 부장판사가 작성한 다수의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보고되지 않았고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가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증인은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게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는 몰랐죠?”(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그렇습니다.” (정 부장판사) “실제 보고됐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죠?” (변호인) “그렇습니다.” (정 부장판사) 이후에도 “임종헌 구술을 통해 급히 작성돼 다소 정제되지 못한 측면이 쓰인 부분이 있죠?”, “그래도 증인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생각한 방안을 작성한 것이지 위법한 내용을 작성한 게 아니죠?”, “‘대외비’라는 표시가 있는데 증인은 외부에 공개될 것을 전제하지 않고 작성한 거라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었죠?”, “대응방안과 예상 시나리오가 있는 부분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될 것을 전제로 기재된 게 아니죠?” 등의 변호인 질문에 정 부장판사는 연달아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전교조 효력정지 관련 검토 보고서 가운데 ‘재항고 사건을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대법원은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등에 청와대의 협조를 받는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는데, 정 부장판사는 “반대급부라는 단어가 분명히 기재돼 있지만 이 보고서에 언급된 사건의 재판과 반대급부라고 표현된 여러 정책적 조치들 사이의 1대 1 개념, 서로 맞바꾸거나 거래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다”며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을 일축했다. 뒤에 이어진 이에 대한 검찰의 재주신문에서 다시 “거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데 무슨 의미인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라고 검사가 묻자 그는 “제가 저 문구를 작성 지시자 요청에 따라 사용한 것이다. 제가 사용하면서 이해하면서 인식하기를 문구는 저렇지만 재판의 결과와 행정부의 정책 결정을 협상하는 개념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상황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일하지 않았다. 저도 그런 상황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전제로 해서 비록 문구 표현은 저렇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봐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러한 문건들을 작성한 자신에 대해 판결을 하는 법관으로서가 아니라 사법행정의 업무, 특히 기획조정실장을 보좌하도록 직제상 규정돼 있던 기획조정심의관으로서 작성한 것임을 강조했다. 반대신문을 시작하기 전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재판부에 추가로 증거를 하나 신청했다. 정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추가진상조사위원회에서 가진 조사 내용이 담긴 문답서였다. 앞서 검찰도 문답서의 일부를 증거로 제출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에서 동의하지 않았다가 이날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전체 문답서를 다시 증거로 낸 것이다. 문답서가 법정 내 스크린에 띄워졌고 양 전 대법원장은 위원회 조사를 마친 정 부장판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읽기 시작했다. ●정다주 대법원 진상조사위 진술 공개… “임종헌 흥분하고 성격 급해 불 끄기 위해” “행정처에 처음 부임했을 때 어떤 실장님들 차장님들하고 여러 안에 대해 대화 해보고 업무를 해보고 하면 항상 생각이 같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거는 세대차이가 있고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고 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 차장님이나 실장님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논리 대 논리로 설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는 어떤 급한 상황에 대해서 특히 임종헌 차장님 같은 경우에는 막 흥분하고 워낙에 성격이 급하시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한테 채근하고 할 때는 그 대응방법이 제가 보기엔 좀 너무 좀 아니다 싶었던, 너무 급진적이라든지 좀 이거는 부작용이 많겠다고 할 때, 제가 우리 후배들한테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 논리 대 논리로 부딪히려고 하면 오히려 해결이 안된다. 차라리 어떤 경우에는 “알았다, 제가 보고서로 정리해 작성하겠다”라고 지금 막 생각하고 있는 그 생각하는 바를 어쩌면 더욱 더 적나라하게 써 가지고 가서 보고를 드리면서 이렇게하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드리면서. 그런데 실제 이렇게 하면, 그렇게 보고서를 쓰는 동안에는 또 기간이 지나갑니다. ‘쿨링 다운’이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냥 우리가 나이 많은 우리 부모님들 싸움 말리고 이럴 때처럼, 표현이 영 안 맞습니다만 화도 좀 풀어지시고, “그래 그럼 뭐 굳이…영” 이런 상황이 되면 남는 것은 그 보고서입니다.” 여기까지 읽던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과격한 표현이 있거나 그런 보고서는 이런 경우에 해당돼서 작성한 것도 있었다는 건가” 물었다. 정 부장판사는 “추가조사위 진술 당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제가 마지막으로 부탁 말씀을 드린 내용이었다”면서 “특히 통상적인 보고서가 아닌 경우, 그리고 시의성이 급한 보고서의 경우 실제로 보고서의 내용들이 저렇게 논의하고 검토하는 단계에서 상당 부분은 실제로 채택이 되지 않고 다만 그 논의, 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한 번 세게 만들어서 써 놓으면 자연스럽게 보고서 내용대로 실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하나의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보고서를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모든 가능성을 정말로 극한까지 낱낱이 적은 거다. 그래야 판단할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거다. 제가 바라는 것을 적은 게 아니다. 소수만 보는 보고서에 읽는 사람이 효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사용했다”고도 조사 과정에서 말했다고 한다. 변호인이 실물화상기에 올려놔 법정에 그대로 공개된 조사위원회에서의 정 부장판사의 나머지 진술은 이랬다. “행정처의 보고서는 뭐 이렇게 서면보고 받아서 하는 계획보고서도 있지만 그런 건 물론 거기에 서명한 사람들이 토씨 하나까지 다 본인들이 동의하고 책임지고 앞으로 이걸 집행하겠단 뜻이지만, 그런 것들이 없는 보고서는 발제문 차원에서, 그리고 또 염치 없지만 저희 심의관들은 어떻게 보면 불 끄는 차원에서 활용하는 그런 보고서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법관들과 똑같이 판결쓰러 판사된 사람들”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보고서들이 나름대로는 하나하나 다 사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책, 우리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결과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구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고 하기는 하지만…. 위원님들께서 저희 보고서를 보실 때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판사들이 하지?’ 꼭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다른 결과물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도 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후배들한테도 그렇게 ‘논리 대 논리’로 부딪혔을 때 결과가 더 안 좋은 경우,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그런 것들이 자꾸 쌓이다 보면 요새 말로 당신이 ‘패싱’되고,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패싱되고, 오히려 그 정책결정자 옆에는 진짜 ‘예스맨’들만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현명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불 같이, 현명한 방법을 써야겠단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결과물들이 좀 다양한 시각으로 아니라는 것을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지금 저희들 평심의관들은 다른 법관들하고 똑같이 법원에 들어와서 재판하고 판결문 쓰리라고 생각하고 시험보고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다른 법관들하고 똑같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당장은 닦달하는 상급자에게서 터져 나오는 불을 끄는 데 더욱 급급했던 심의관들. 그래서 법관이 아닌 사법행정 담당자의 태도로 철저히 무장한 채 지시자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오히려 더 거칠게 살을 보태 적어낸 보고서들. ‘우리는 현명해야 한다’며 만들어낸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작성한 보고서들은 지금 사법부의 많은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정 부장판사의 말대로 이 재판에 불려나올 많은 심의관 출신 판사들은 그저 판결에만 몰두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행정처 심의관이라는 자리에 앉은 평범하고 성실한 판사들이었을 것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8회]양승태 보석 후 첫 재판··· 46분 만에 종료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8회]양승태 보석 후 첫 재판··· 46분 만에 종료

    양승태 전 대법원장 17차 공판 지상중계증인도 안 나오고···증거조사도 반대하고‘법잘알’들의 끝 없는 재판 지연 릴레이재판부는 팔이 안으로 굽는 공판 진행 지난 1월 24일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79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하루 만인 23일 오전 자택에서 다시 법원으로 향했다. 전날 재판부의 직권 보석 결정에 따라 석방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9시 40분쯤 변호인과 함께 법원 청사 입구를 걸어서 들어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보석 후 첫 재판 소감이 어떤가”, “고의로 재판을 지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법정에서 직접 변론할 생각 있는가” 등의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았지만 입을 굳게 닫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17회 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 들어선 양 전 대법원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동안은 교도관들과 법정 옆 구치감에서 재판이 시작되길 기다렸다가 재판이 시작된 뒤 피고인을 입정시키라는 재판부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법정에 들어서야 했다. 석방된 바로 다음날, 가장 먼저 피고인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다른 변호인들과 두 전직 대법관이 도착할 때마다 연신 웃는 표정으로 반갑게 악수를 했다. ●구치감 아닌 집에서…가장 먼저 도착해 다른 피고인들 활짝 반긴 양승태 양 전 대법원장이 석방되면서 앞으로 재판 진행이 더욱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처음 재판에 출석한 이날 재판은 시작한 지 46분 만에 별다른 진척 없이 끝났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열리던 재판이 이날 열린 것은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28일 재판 일정을 이유로 불출석한 박 부장판사는 이날도 본인이 진행해야 할 재판 일정과 겹친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이날로 증인신문 일정이 다시 잡힌 것을 지난 15일에서야 재판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면서 재판 일정을 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통상 증인의 경우 1회 불출석하면서 증인출석 가능 날짜를 재판부에 고지했다면 재판부가 신문기일을 다시 정할 때까진 그 날짜에 재판을 잡지 않고 증인 출석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도리”라면서 “그런데 재판부의 연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미리 고지한 날짜에 본인 재판을 또 잡았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 불출석 사유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증인 출석요구서가 송달되는 시점에 재판부가 증인에게 연락을 하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증인신문 기일을 지정해주시면 소환장을 발송할 때 증인과 연락해 주신다면 원활한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는 건의사항을 덧붙였다. 지난 19일 증인신문을 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와 각종 보고서, 이메일 등에 대한 서류증거 조사도 무산됐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에서 김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312조 4항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이 아닌 사람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그 조서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음이 원 진술자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나 영상녹화물 등에 의해 증명되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기재 내용에 관해 원 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에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는 규정이 있다. 김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 당시 진술한 내용이 담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증거능력이 인정되려면 김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자신이 검찰 조사 당시 한 진술이 사실이라는 점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법정에 나와 검찰의 주신문과 고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을 통해 피의자 진술조서 속 내용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그러나 재판이 밤 11시를 넘기면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갑자기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프다”며 퇴정 명령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했고 김 부장판사를 다음달 5일 법정에 한 번 더 부르기로 하고 재판이 마무리됐다. ●박상언 증인 또 불출석… ‘김민수 피신조서’ 서류증거 조사도 불발 그러자 반대신문을 하지 못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이 아직 자신들이 신문하지 못한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증거조사를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지난 신문 과정에서 본인이 진술한 대로 기재된 게 맞다고 진술했지만, 저희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원 진술자인 김 부장판사의 증언이 전체든 일부든 본인이 진술한 대로 기재가 안 돼있다, 또는 일부가 그렇다는 취지로 진술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저희가 포괄적으로 반대신문을 할 기회이기 때문에 개인적 소견으로는 증거능력 인정 요건이 되는 진술자의 진술도 아직 완전히 진술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검찰과 고 전 대법관 측의 신문 과정에서 했던 말을 김 부장판사가 번복할 수도 있고 또는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 측의 신문 내용에 따라 검찰 조서와는 다른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증인신문을 모두 마친 뒤에 서증조사를 해달라는 요구다. 만약에 김 부장판사가 검찰 조서의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번복하거나 부인할 경우 그 부분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못한다. 검찰은 “312조 4항 가운데 ‘원 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에 증거로 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원 진술자의 신문기회가 보장됐냐는 점이 증거 채택 여부의 요건이고 그렇다면 지난 기일에 원 진술자에 대한 신문이 이뤄지는 기회를 (피고인 측이) 제공받았는지가 쟁점”이라면서 “재판장님은 분명히 반대신문을 진행하겠다고 소송 지휘를 했으니 피고인들에게 반대신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됐는데 양승태 피고인이 재판에 계속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들에게 충분히 반대신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피고인 측에서 원하지 않아 진행이 되지 못한 것이니 법에서 정한 ‘신문할 수 있었던 때’가 이미 충족됐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의 조서 양이 상당히 많아 서증조사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늘 그런 이유로 심리 기일이 또 바뀌어서 서증조사를 마치지 못하면 그만큼 일정이 또 지연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재판부에 예정대로 서증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내며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보고서를 작성한 김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피의자 신문만 14차례 받았고 각 조서가 모두 증거로 신청됐다. 재판부는 “검찰에서 얘기했듯 ‘원 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라고 해서 신문 기회가 부여되면 되는 것이지 실제로 반대신문까지 되어야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면서 “지난번 기일에 원 진술자가 출석을 했으면 이미 원 진술자에 대한 신문 기회는 부여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실제로 피고인 측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하지 못했고,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가 검사 앞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됐는지부터 다툴 여지가 있다, 번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변호인이 주장한다면 진정성이 문제될 여지가 있어 오늘 증거로 채택해 서증조사하면 나중에 절차가 논란이 되고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부장판사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다음달 5일 증인신문을 모두 마친 뒤에 증거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한 시간도 안 되 끝난 재판, 양 전 대법원장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빠른 발걸음으로 법정을 나가 집으로 향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179일 만에 석방된 후 첫 재판 출석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179일 만에 석방된 후 첫 재판 출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부의 직권으로 보석 결정이 내려져 석방된 후 처음 재판에 출석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속행 공판을 연다. 22일 구속된 지 179일 만에 풀려난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 불구속 상태로 법정에 서게 된다. 지난 2월 1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된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한(6개월)이 다가오자, 재판부는 구속 만기 전에 전제 조건을 붙여서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재판과 관련된 이들과 어떤 방법으로도 접촉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도주나 증거인멸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은 사전에 정당한 사유를 신고하지 않는 한 법원이 요구한 날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고, 3일 이상 여행하거나 출국할 때도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은 주 2∼3차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자택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를 오가며 재판을 받게 된다. 전날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신병이 어떻게 됐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앞으로 성실하게 재판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구속 상태에서도 주 2회 재판에 불만을 드러냈다”면서 “앞으로 재판 횟수를 더 줄이자며 심리를 지연시킬 것 같아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7회] 야간 재판하자 양승태 “머리 빠개진다”며 퇴정 명령 요청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7회] 야간 재판하자 양승태 “머리 빠개진다”며 퇴정 명령 요청

    “오늘 재판할 때 원만하고 효율적으로 진행이 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재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6번째 재판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날 재판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역할을 한 심의관 출신 4명의 현직 법관들 가운데 처음으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법정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청석을 채웠다. 핵심 증인 중 한 명이 법정에 나오게 됐으니 재판은 시작부터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 29일 첫 재판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서 입을 열었다. 오전 10시에 재판이 시작됐고 첫 현직 법관 증인인 김민수 부장판사가 10시 27분에 증인석에 섰다. 검찰의 주신문이 오후 7시를 넘겨 끝났다. 김 부장판사는 검사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배경설명과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자세히 풀어놨다. 김 부장판사가 심의관으로 일하던 때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밤 11시까지 계속되자 11시 5분쯤 양 전 대법원장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10시부터 13시간째 재판을 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제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서, 지금 13시간째 증인의 증언을 듣고 판단하다 보니까 판단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여기 앉아있을 수가 없고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반대신문을 다 하더라도 최소한 5시간 이상은, 예정 시간만 해도 3시간씩입니다. 그 때까지 제 체력이 견딜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재판부가 하시는 이 재판을 방해하기는 싫습니다. 제가 없어도 변호인도 있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따가 법정에서 오히려 폐를 끼칠 것 같습니다. 제가 없어도 여기 공판에 아무 지장받지 않고 재판을 계속할 수 있는 만큼 재판장께서 퇴정 명령을 해 주시면 일단은 퇴정을 하고 재판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일단 지금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 체력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퇴정 명령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승태 “13시간째 재판…머리아파 못 앉아있는다, 내보내달라” 오후부터 변호인들이 잇따라 “반대신문을 오늘 다 마치지 못할 것 같다”며 재판 일정을 고려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입을 열기 바로 전 그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휴정을 잠시 하겠다고 하자 “진행에 대해 알려주시긴 해야 하지 않나. 오늘 일정이 어디까지 하실 예정이신지를 알려주셔야 그걸 가족에게도 연락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호소했다. 그리고는 양 전 대법원이 직접 요구를 한 것이다. 10분 가까이 휴정을 한 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퇴정 명령을 할 수 있는 경우인지가 좀 불분명한 것 같다”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 건강을 이유로 호소한 만큼 증인신문을 다음 재판을 한 번 더 잡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형사소송법 277조의 2를 보면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도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면서 “갑자기 이렇게 재판을 거부하면서 증인신문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하는 이상 피고인이 없는 상태로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여지고 실제로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출석을 거부해 증인신문 등 여러 공판절차가 진행된 전례가 있다. 양승태 피고인의 주장의 부적절성에도 공판절차가 흔들림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만 법정에서 나간 뒤 김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계속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아파서 몸이 안 좋다 그래서 퇴정하게 배려해 달라고 말하는 게 그게 재판 거부인지 상당히 의문스럽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변호인은 이어 재판부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피고인 몸이 설령 건강하다 하더라도 재판을 지금, 밤 11시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소한 소송관계인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야간재판이 진행되는 거라고 저는 지금까지 알아왔다. 만약 재판장님의 지휘대로 소송관계인의 반대가 있더라도 강행하시는 게 가능하다면 검사님들은 야간 조사에 대해 피의자 동의를 왜 받나? 재판장님은 그럼 앞으로 우리나라 피의자들은 조사 동의 안 받고 검사들의 판단에 의해 피의자 신문권이 있으니 밤새 조사해도 된다는 취지이신가? 동의할 수 없다.” ●검찰 “양승태의 ‘재판 거부’” vs 변호인 “야간 재판 시 동의받아야” 감정이 섞인 발언이 이어졌다. “검사가 ‘재판 거부’니 이런 말 붙이는 것 자체가 그럴 상황도 아니고, 한 가지 팩트를 지적해 드리면 오늘 검찰의 주신문 예정 시간은 3시간이었다. 아까 아무리 늦게 잡아도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몇 시에 끝났나? 저녁 7시에 끝났다. 증인신문이 이렇게 늦어진 거에 대해서 검찰이 이렇게 얘기하실 수 있는 상황인가?” 검찰은 “‘재판 거부’라는 표현 때문에 이의제기를 하셨는데, 재판장님께서 증인신문을 어디까지 하겠다고 분명히 소송지휘를 하셨다. 그런데 양해를 구하는 것을 넘어서 퇴정 명령을 내달라고까지 발언했다. 이런 피고인을 제가 본 적이 없다”고 다시 반박했다. 그러나 박·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들도 모두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는 것에 반대해 결국 재판은 끝나게 됐다. 김 부장판사는 다음달 5일 다시 법정에 나오게 됐다. 변호인이 재판부를 향한 불만을 쏟아내고 자정을 앞두고 끝난 이날 재판은 시작부터 양 전 대법원장 측과 재판부의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다. 지난 17일 재판에서 “보석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같은 입장을 반복해 밝혔다. “양승태 피고인에 대해서 구속기간 만료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어서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는 자체에 대해서도 검찰도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법률 규정상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든지 아니면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되는 게 타당하다는 게 저희 의견입니다. 구속 취소로 인한 석방 결정에 비해 특별히 불이익이 되지 않는 내용으로 석방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되고 설령 보석결정을 하더라도 재판부가 조건 여부를 판단할 때 그와 같은 부분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피고인의 사정을 혜량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거지 외의 외출 제한이나 보증금 납입 등의 조건을 내건 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재판부 “22일 보석 관련 결정” 변호인은 주거지·보증인 확인 안 해줘 재판부는 “구속 피고인 신병에 관한 쌍방 의견은 충분히 진술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양 전 대법원장 측에 주거지가 첫 공판기일에 확인한 경기 성남시 자택 주소가 여전히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변호인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다”며 답을 피했다. “변호인 의견은 충분하게 들었다고 보고 재판부도 거기에 대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라면서 “(확인을 해달라고) 지난번 공판에 말씀드렸는데 이번 의견서에 없어서 보증금에 갈음하는 보증을 서줄 사람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달라”고 다시 재판부가 물었지만 변호인은 “재판부께서 적절한 방법으로 확인하실 방법이 있으면 변호인 입장에서는 (보석을) 신청을 한 게 아니라 확인 가능한 방법으로 특히 직권으로 어떤 결정을 한다면 재판부가 적절한 방법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변호인의 의견이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정보제공을 명하시거나 협조요청을 하신다면 피고인과 상의해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주거지 제한 및 보증금 납입 등의 조건을 내건 석방 가능성이 높아보이자 아예 주거지와 보증을 서줄 가족의 인적사항조차 확인을 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재판부는 “최대한 협조해주시고, 구속 피고인의 직권 보석 여부를 심리해 왔는데 다음주 월요일(22일)에 구속 피고인에 대한 직권 보석에 관해서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등 이 재판의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세 명의 전직 사법부 고위법관들은 16회에 이른 재판 과정에서 각종 증거능력을 문제삼으며 거듭 형사소송법 관련 규정을 재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 다뤄지지 못한 각종 원칙과 규정들을 꺼내 재판의 정석을 새삼 알리고 있다. 22일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이 이번에는 보석과 관련해 어떤 새로운 선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이 재판의 증인석에 선 첫번째 현직 법관인 김 부장판사는 오전부터 밤까지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매우 차분했다. 그는 피고인석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곧바로 재판부를 바라보고 서 양 전 대법원장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한 김 부장판사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 및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의 폐지 추진 방안 등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짙은 보고서들을 작성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 징계위원회로부터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날 검찰이 진정성립(문건의 작성자인지, 조서의 진술자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을 하는 데만 한 시간 남짓이 걸렸다. 피의자 신문조서만 14회. 그리고 김 부장판사가 작성한 각종 보고서와 이메일이 모두 그가 진술하고 작성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만 긴 시간이 소요됐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이 연구회의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 대한 제재 방안을 비롯해 대법원의 긴급조치 판례에 반하는 하급심 판결을 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 사법행정위원회 추진에 대해 반대를 한 송모 판사에 대한 대응방향 검토 등 이른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추진하는 사법행정 관련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판사들에 대한 ‘전략’을 세워 보고서에 담은 배경과 그에 대한 김 부장판사의 생각이었다. 법원 내부에서 행정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판사들과 관련, 김 부장판사는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다음의 보고서들을 작성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차OO 판사 게시물 관련’(2015년 8월 18일자) -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판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담은 보고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대외비)’(2015년 9월 22일자)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김기영 당시 부장판사의 판결에 대한 대책을 담은 보고서. (※보고서 중 ‘대응 방안’으로 항소심에서 심리가 지연되면 사회적인 논란이 커질 수 있다며 신속한 처리가 되도록 ‘사건 신속처리 트랙(패스트트랙) 개발’ 방안을 담음. 또 ‘법관연수 강화’ 방안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자신의 개인적 양심을 앞세워 대법원 판례를 위반한 하급심 판사들에게 자신의 판결이 법관연수에서 강의 및 토론자료로 사용된다는 사실 자체를 일정한 ‘시그널’로 줄 수 있음’이라고도 기재) ·‘송OO 판사 건의문 검토’(2016년 2월 2일자) -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법관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확대하는 취지의 사법행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공지글이 코트넷에 올라간 뒤 이에 대해 반대하는 글을 올린 송 판사에 대해 분석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방안’(2016년 2월 24일자) -송 판사 이후에도 위원회 구성을 반대하는 글들이 올라오자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담은 보고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검토’(2016년 3월 28일자) ●첫 현직 법관 증인신문 “임종헌 차장님 지시, 임종헌 차장님의 생각”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아 문건을 작성했고 주요 내용들도 임 전 차장이 불러준 그대로를 적은 게 많다고 했다. 또 애초에 지시를 받을 때부터 임 전 차장 윗선에 보고될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법행정위원회 관련된 보고서들의 작성을 임 전 차장이 지시한 배경을 설명하는 그의 발언이 유달리 들렸다.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방안’ 가운데 ‘핵심그룹의 조직적 활동으로 사법행정위원회 출범 의의가 크게 반감될 우려 존재. 소수 핵심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핵심그룹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음’이라는 내용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임종헌 차장님 생각에는 같은 정책이라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한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님이 하시는 정책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당시 생각했던 것 같다. 임종천 차장님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현 대법원장님께서 하시는 정책은 전부 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당시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같이 모여서 그런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을 핵심그룹이라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치밀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문구의 대상이 누구냐는 질문에 “임종헌 차장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현재 대법원장님께 자꾸만 대립하려는 분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했다”고 답했고, 그게 국제인권법연구회였냐는 물음에도 “그런 분들이 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어떤, 임종헌 차장님이 보시기에 문제되는 행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했다. ‘(위원회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출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의도가 있는 사람이 선출되는 결과가 우려됨. 특정 소수세력이 장악할 우려가 있음’이라는 기재 중 특정 소수세력이 뭐냐는 질문에는 “일단 기존의 다른 보고서가 하나 있는 것을 내용이 임종헌 차장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내용이 있어서 복사해서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종헌 차장님 생각으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하시는 분들 중에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님께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법행정위원회 반대글에 대해) 임종헌 차장님께서 취지가 좀 순수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는 식의 답변들이 이어졌다. 동료 판사들에 대한 ‘대응 전략’을 문건으로 만들어낸 그의 판단과 생각이 잘 들리지 않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6회]양승태 “구속 만기 채우겠다...(조건부) 보석 안원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6회]양승태 “구속 만기 채우겠다...(조건부) 보석 안원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15차 공판 지상중계법원 직권 보석 가능성 놓고 줄다리기 팽팽 17일을 기준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한이 끝나는 다음달 10일까지 앞으로 남은 날들은 24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의 직권 보석 가능서이 높아지자 검찰은 이날 재판이 시작하자 마자 재판부를 향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수준의 엄격한 보석 조건을 붙일 것을 요청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얼마 남지 않은 구속기간을 꽉 채우고 아무 조건 없이 석방될 수 있도록 보석을 원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5회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 14회 재판에서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가능성을 언급하며 구속기간 만료와 관련한 의견을 내라고 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영장전담판사가 증거인멸 우려를 사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재판부도 증거인멸 우려가 타당하고 적시재판(신속히 재판을 해야하는 사건)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구속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피고인 측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고 구속기간(2개월)도 갱신했다”면서 “구속 기간 갱신의 사유인 증거인멸 우려는 현재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피고인이 재판 단계에 이르러 수사 과정에서 다투지 않은 서류증거들의 동일성까지 다투는 것을 보면 진술조작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더욱 높아 피고인을 보석으로 석방할 사유는 찾기 어렵고 남은 구속기간에라도 최대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보석조건 MB처럼 엄격하게” vs 변호인 “그냥 석방되도록” 검찰은 “다만 피고인을 석방하되 증거인멸의 우려를 최소화할수 있는 합리적 조건을 부과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부에서 그렇게 보석 석방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고, 그렇다 하더라도 20여일 남은 시점에서 핵심 증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신속히 진행한 다음 구속기간 만료에 근접했을 때 보석을 허가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은 준비 절차만 석 달이 걸렸고, 정식 재판이 열리고도 서류증거 조사 및 검증절차 등으로 재판이 지연되면서 지금까지 법정에 나와 신문절차를 가진 증인은 겨우 두 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나와야 할 증인은 210명이 더 있고,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현직 판사들은 자신들의 재판 일정을 이유로 거듭 법정에 나오길 미루고 있다. 검찰은 “피고인을 보석하더라도 증거인멸을 방지할 수 있는 엄격한 조건을 걸 필요가 있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하면서 외출 제한 뿐 아니라 사건 관련자들과 일체 연락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조건을 걸었는데 피고인도 증거인멸 가능성과 재판 관계자들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할 수 없는 조건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변호인을 통한 제3자 접견 금지 및 재판 출석을 당부할 장치로 주거 및 출국제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검찰은 “증거인멸 우려가 가장 걱정되지만 피고인 측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한다면 어떤 보석조건도 제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향후 신속한 재판을 진행하는 것 뿐이 대안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주 2회 재판이 진행됐지만 다수의 증인들의 출석 기피로 미뤄지고 있으니 주 3회 재판을 고려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양승태 측 “구속기한 다 채우고 아무 조건 없이 나오겠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최종 의견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형사소송법상 규정이나 취지에 비춰 현 상황에서 보석 결정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면서 “어떤 조건이 붙든 안 붙든 구속기간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검찰이 지적한 증거인멸 우려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변호인은 “지난 3월 보석심문 기일 당시 피고인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블랙박스 SD카드를 없애려고 시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핵심이었는데 분실경위 등 검찰이 파악한 기록을 검찰이 열람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서 “재판부에서 검사가 주장하는 증거인멸을 했는지, 아니면 검사가 그런 상황을 이용해 피고인이 마치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견강부회식 무리한 주장을 했고 피고인이 구속까지 이르게 된 게 아닌지를 검토해주시는 게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구속 피고인의 신병을 해지하는 방법이 반드시 직권 보석이어야 된다는 걸 염두에 두고 말씀드린 건 아니고 여러 방법이 있다”면서도 “구속해지 방법으로는 직권 보석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이달 말에서 늦어도 다음주 초까지는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관련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1심 구속기간(6개월)이 다 끝나기 전 7~10일 정도 전에 보석을 하기도 한다. 유죄 판단 시 법정 구속을 하게 되면 항소기간인 일주일간의 구속기간도 1심의 구속기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보석을 결정해도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달 10일까지 구속기간을 꽉 채우고 어떠한 조건도 붙지 않은 자유의 몸으로 석방되는 게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가장 좋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보석 조건과 이를 양 전 대법원장이 받아들일지가 앞으로 재판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보석조건을 두고 날이 선 검찰과 변호인은 곧바로 증거를 놓고 또 한 차례 부딪혔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과 한상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에게 제시할 문건 가운데 이메일 출력물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증거능력을 문제삼으며 이메일 원본과 대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서였다. 검찰은 “(한 변호사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지난 12일에 다뤄졌어야 했는데 그 때는 안 했던 증거능력 주장을 또 하는데, 계속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을 하는 부분에 대해선 제지해 주시는 게 타당하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원본과 대조를 해봤으면 하는 게 못할 주장인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새로운 게 아니고 당연한 권리”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원본이 아닌 증거들에 대해선 변호인이 원본 확인을 요구하면 확인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정리했다. ●법원행정처·외교부 면담 배석한 사무관 “법정 밖 소통 너무 놀라워” 이날 오후 3시에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외교부 국장의 면담에 배석한 김모 전 사무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사무관은 변호사로 일하다 2013년 민간경력자 채용을 통해 2016년까지 외교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2016년 9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과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면담을 갖는 자리에 배석했다.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관계자 3명, 조 전 차관 등 외교부 관계자 3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 외교부의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김 전 사무관은 당시 면담 자리에 대해 검찰 조사 때부터 “매우 놀라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정에서 검찰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보통 재판을 하면 법원에 의견을 낼 게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제출을 한다든지 하는 과정이 대부분 법정 안에서 이뤄지지 않나.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직접적인 당사자라든지 관계인과 만남이 있는 것이 그냥 좀, 뭐라고 할까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만남의 자리가 일종의 사건 절차에 대해 진행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것을 제가 알게 됐고 기존의 일반적인 재판할 때 과정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이제 법정이 아닌 곳에서도 협의들을 하는구나’ 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좀 놀랍다고 생각했다.” 김 전 사무관은 검찰 조사에서는 “그날 자리는 쌍방향 소통 자리였고 제 기본 관념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어른들 말처럼 세상이 이랬구나 하고 무너지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정에서 다시 묻자 김 전 사무관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에 대해 공개되지 않은 자리에서 만남이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제 상식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제가 전후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단편만 봤을 때 법원 같은 경우 공정하고 그런 식의 노력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본 것 같아 그렇게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사건의 당사자 또는 관계자들과 법정 밖에서 ‘소통’을 한다는 것이 법조인인 그의 상식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된 업무의 담당자는 아니고 당시 배석만 했던 김 전 사무관은 원래 담당자였던 정모 사무관에게 면담자리에서의 논의내용을 전달해주며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차례 배석한 실무진의 ‘기본 관념’을 무너뜨린 일. 그러나 그날의 면담은 강제징용 사건의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5회] 또 USB 증거능력 논란…재판부는 ‘양승태 보석 가능성’ 시사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5회] 또 USB 증거능력 논란…재판부는 ‘양승태 보석 가능성’ 시사

    지난 10일 첫 증인신문이 시작되고 약간의 속도가 붙는 듯 했던 재판이 간만에 시작하자마자 검찰과 변호인의 신경전으로 긴장감이 고조됐다. 외교부에서 압수수색된 USB의 증거능력을 놓고 언성이 높아진 것을 시작으로 양측이 내내 예민했고, 재판이 마무리될 즈음 재판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 만료 전 석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4회 공판에서는 당초 계획했던 증인신문 대신 서증조사가 이뤄졌다. 증인 출석을 요구받은 한상호 변호사가 건강이 좋지 않다며 불출석사유서를 냈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의 일본 기업 측 대리인을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다. 검찰은 “가급적이면 양승태 피고인의 구속기간 등을 감안해서 다음달 7일에 한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문 기일을 지정해 주십사 한다”며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또 불출석할 경우 김앤장 사무실에서 압수한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태 피고인의 구속기간 만료 전에 가급적이면 강제징용 관련 핵심 증거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뤄지도록 지휘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을 비롯한 변호인들은 김앤장에서 압수된 자료들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을 다투고 있다. 재판부가 임종헌 USB에 이어 법원행정처 임의제출 문건들에 대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잇따라 내놨지만 변호인 측은 여전히 검찰의 압수물에 대한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노파심에서 일부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면서 한 변호사의 증인신문에서 제시할, 김앤장에서 압수된 문건들에 대해 말을 열었다. 그는 “한 가지만 지적하면 압수물에 대해 ‘증거물인 서면’의 성격만 기재했는데 검찰의견서에는 그 증거들이 증거물인 서면의 성격과 동시에 진술서의 성격이 있다고 밝혔다”면서 “두 가지 성격이 다 있는 이상 해당 증거를 조사하려면 당연히 진술서, 전문증거, 진술증거로서의 능력이 부여된 뒤에야 조사가 가능한 게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상호 불출석으로 증인신문 무산…또 ‘증거능력’ 다툼 형사소송법에 따라 특정 문건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할 때 이런 문건이 있다는 그 자체만을 증거능력으로 삼는 ‘증거물인 서류’와 문건 속에 담긴 내용이 사실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증거 서류’로 증거의 성격을 구분된다. 예를 들어 많은 형사재판에서는 몇 년 전 특정 사건이 있었음을 보도한 언론기사의 경우 주로 해당 날짜에 그런 기사가 있다는 것이 증거가 되는 ‘증거물인 서류’로 주로 채택되고 사건에 당사자가 직접 말한 내용이 담긴 문건의 경우 그 내용이 맞는지 인정되는 ‘증거 서류’로 쓰인다. 증거 서류의 경우 피고인 측에서 증거로 쓰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진술한 사람을 법정에 불러 본인이 한 말이 맞는지를 확인받은 뒤에야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고, 증거능력이 인정된 증거들만 법정에서 보여질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한 변호사를 법정에 부르기 전에 관련 문건들을 증거조사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주장에 “모든 문건들은 모두 증거물인 서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이미 밝혔고, 다만 그 중 일부는 증거 서류로서 경우에 따라 내용의 진실성까지 입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서 “변호인은 과연 입증하고자 하는 게 기재 내용의 진실성인지를 우려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이후 한 변호사 증인신문에서 입증하면 된다”며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검사님이 기분 나쁘실지 몰라도 증거능력제도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난 주장이라 이게 받아들여지면 강력히 이의제기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검사님의 취지는 입증취지를 어떻게 편의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여되기 전에 증거조사를 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재판부가 당연히 검사님 주장을 받아들일 거라 믿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재판부에도 호소했다.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완전히 결정된 다음에 증인신문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엔 공감하고 있다”며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임종헌 USB’이어 이번엔 ‘외교부 사무관 USB’ 위법수집증거 주장 그러나 곧 이어서 검찰이 외교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뒤 확보한 USB에 대한 증거능력을 두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외교부 사무관이 소유한 USB를 검찰이 압수한 게 적법한 건지에 대한 검찰의 증거를 발겨할 수 없고 USB를 압수하고 추출하는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없는 파일까지 압수된 게 아닌가 의심된다. 그리고 해당 사무관에게 USB 포렌식 또는 파일 분류, 추출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됐는지 의문”이라며 USB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의심을 밝혔다. 검찰은 USB 압수절차에 위법성이 없었음을 거듭 설명하며 “변호인은 지난 기일에 (임종헌 USB) 검증 결과 동일성 등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직접 확인하고도 검찰 수사에 흠집을 내려고 이런 주장하는 걸로 보인다”며 불쾌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마치 저희 주장이 검찰 수사를 흠집내는 걸로, 이유가 없다는 걸로 말하는 것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며 얼굴을 붉혔다. “변호인들이 좀 화가 나신 것 같은데 변호인의견서에도 ‘검사가 모르고’라는 등의 마찬가지의 표현이 많다. 상호 인격과 품격, 양식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 부분은 각자 주장하고 화가 나셨으면 화를 풀어달라”고 검찰이 달래자 이번엔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의심하는 의미로 서로 표현이 오간 건 맞지만 법정에서 말한 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단 감정적인 설전은 정리됐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 이어 외교부 사무관의 USB를 두고도 당분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외교부 직원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 뒤 USB 소유자인 사무관을 법정에 불러 신문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재판부 “양승태 석방해도 재판 공정성 영향 미치지 않을 것” 이후 서증조사가 이어졌고 오후 4시쯤이 되자 재판이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때 재판부는 “구속 피고인 신병에 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다”면서 “저희들이 지금까지 한 주도 빼지 않고 꾸준히 재판을 해왔는데 구속기간 제한으로 피고인을 구속한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에 대해 언급했다. 재판부는 특히 “사건의 내용이나 증거의 방대함 때문에 남은 기간 아무리 서둘러 재판을 한다고 해도 판결을 선고까지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에 다들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어차피 그 기간 이후에도 상당히 불확정한 기간 동안 심리해야 할 중요사안이 너무 많이 남기도 해서 현재 이후 어느 시점에서는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더라도 공정한 재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보긴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변호인 측에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에 관한 의견이나 주장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검찰이 “정확히 말씀의 취지를 이해 못해서 묻는다”며 “구속기간이 만료되면 당연히 형사소송법상 (석방)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의견을 구하시는 건 직권 보석을 고려하시는 건가“라고 묻자 재판부는 “직권 보석 말씀은 안 드렸고 현 시점 이후 구속 피고인의 신병에 관한 의견이라고 했다. 여러가지를 가정해서 의견을 제출하셔도 무방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기간이 만료되면 당연히 석방이고 만료되기 전에도 석방되는 것이 있는 걸로 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다음달 10일 전에 양 전 대법원장을 보석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른 형사재판에서도 1·2심 선고 후 항소·상고기간(일주일) 등을 고려해 구속기간이 완전히 다 끝나기 일주일~열흘 전에 피고인을 직권으로 보석하거나 피고인이 이전에 신청한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주는 일이 종종 있다. 다음달 10일만 기다렸을 양 전 대법원장은 서증조사 내내 눈을 질끈 감고 뒤로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세웠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4회] 임종헌 지시로 ‘강제징용 재판’ 시나리오 쓴 판사… “적절한가” 고민 담은 보고서 속 흔적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4회] 임종헌 지시로 ‘강제징용 재판’ 시나리오 쓴 판사… “적절한가” 고민 담은 보고서 속 흔적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기관으로 실체적 판단에는 관여할 수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사건 재상고심을 청와대·정부와 ‘거래‘를 한 정황으로 지목된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이 보고서에 포함시킨 문구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에 따르면서도 일부 상황들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서에 소극적이고 우회적으로나마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10일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3회 공판기일에서는 정식 재판이 시작된 지 44일 만에 첫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핵심 증인으로 꼽힌 정다주·박상언·김민수·시진국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현직 부장판사)들이 모두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이 재판의 첫 증인은 행정처 사법정책지원실 심의관이었던 박찬익 전 부장판사(현 변호사)가 됐다. 박 전 심의관은 2012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사법정책심의관으로 일하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판 관련 보고서들을 작성했다. 대부분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앞서 4월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그렇게 진술했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서는 박 전 심의관이 스스로 판단해 몇몇 보고서에 있던 문구를 빼거나 새로운 문구를 추가한 정황들이 확인됐다. ●“외교부 오해할까봐”… ‘재판 독립’ 우회적 강조 2013년 9월 30일자 ‘강제동원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 이 문건을 작성하기 전 임 전 차장은 그보다 일주일 전인 9월 23일 ‘일제 강제징용사건 판결 요약 검토’ 보고서를 쓴 박 전 심의관에게 추가적인 사항에 대해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외교부 사람 얘기를 들어보니 대법원 결론이 외교적 문제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면 우리가 질 거라고 한다”, “심리불속행으로 바로 끝내기는 어려운 사건 아니겠느냐. 한 번 정리를 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특히 “외교부에 대한 절차적 배려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박 전 심의관은 “국제법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임 전 차장이 외교부 의견을 듣고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셨기 때문에 보고서에 외교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검토한 내용을 담았다”면서 “같은 결론을 내리더라도 외교부 의견을 경청했다는 게 필요하지 않느냐는 취지에 맞춰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심의관은 보고서 가운데 ‘3. 외교부를 배려하여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안’의 가장 앞부분에 ‘가.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기관으로 실체적 판단에는 관여할 수 없음에 대한 이해 구함’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검찰은 보고서를 완성하기 전날인 9월 29일 오후 9시쯤 문서에는 ‘가’항의 이 문구가 없었다면서 “보고서를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서 포함했느냐”고 물었고 박 전 심의관은 “시간상 그렇다면 그게 맞을 듯하다”고 답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첫번째 방안으로 이 내용을 포함시킨 이유가 무엇이냐”는 검찰 질문에 박 전 심의관은 “외교부가 혹시나 오해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에는 ‘나. 외교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서면으로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제출하는 규정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임을 설득’, ‘마. 간접적 방법을 통한 사실상 의견제출에 협조 가능. 상고이유서나 외교부의 입장을 담은 각종 서류를 간접 제출하는 방안’, ‘바. 현재 사건처리 절차사항 등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 제공, 관련 사건 정보 제공’등이 적혔다. 박 전 심의관은 이 부분들은 임 전 차장이 전해준 방안들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마’항과 관련해 검찰이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의 피고 소송 대리인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는 의미인가“라고 물었다. 박 전 심의관은 “주선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실 이 무렵 외교부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게 맞는 건지 하는 생각이 있었고 실현되기 어려운 안이긴 하지만, 다른 건 제도상 불가능하고 사실상 가능하지만 외교부에서 실제로 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 기재했다”면서 “처음에 이것 저것 썼다가 다 안 되니까 사실상 가능한 걸 써보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의견 반영되도록… ‘참고인 서면 의견서 제출제도’ 마련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의 협조를 얻고, 법관들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한 외교부의 협조를 얻으려고 일제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을 정부의 입장에 맞게 결론이 날 수 있도록 지연시킨 이른바 ‘재판 거래‘를 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당시 법원행정처는 재상고심에서 배상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심각한 외교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외교부의 입장이 재판에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고,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참고인도 서면으로 의견서를 재판부에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대법원 규칙개정안으로 참고인 서면 의견서 제출제도가 만들어졌다. 박 전 대법관은 이전 보고서를 통해 “전원합의체나 소부에서 공개변론을 열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임 전 차장이 외교부를 절차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란 지시를 다시 내리자 9월 30일자 보고서 ‘나’항에 참고인이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점을 외교부에 설득하는 방안이 있다고 적었다. 2013년 11월 8일자 ‘강제동원자 검토(대외비)’ 보고서에도 박 전 심의관만의 소심한 표시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임 전 차장이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등 4개 단체가 강제징용 관련 입장표명한 기사를 언급하고 외교부 문건을 주며 이를 반영해서 이전의 보고서를 업데이트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외교부에서 작성한 2013년 9월 23일자 ‘강제동원피해자 문제 관련 설명자료’를 전달받은 박 전 심의관은 외교부 문건에 있던 우리 외교부의 입장과 일본 측 움직임,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의 강제동원 피해조사 결과 20여만건의 피해자들이 잠정적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의 내용을 11월 8일자 보고서에 담았다. 특히 박 전 심의관이 작성한 대외비 보고서 가운데 ‘외교부 입장’ 부분에 ‘대법원 상대로 외교적 문제 설명, 신중한 판결의 필요성을 알려 조기 선고되지 않도록 노력’이라며 외교부에서 선고가 조기에 이뤄지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기재했다. 이어 ‘선택할 수 있는 방안’과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긴 뒤 판단’ 등의 표현을 담았다. 그는 법정에서 “심리불속행은 접수한 지 4개월 내에만 할 수 있는데 당시 국외송달로 송달이 되지 않았고, 상고이유서 제출기한이 20일이고 제출 후 대법관이 검토하고 판단하는 데 적어도 10일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당시 한 달밖에 안 남은 상태였는데 한달 이내에 송달이 이뤄져 상고이유서 제출, 검토 및 판단까지 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객관적 상황을 기재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최종 확정돼선 안 되고 판단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정부 측 입장과 같은 맥락이었다. ●임종헌, ‘심리불속행 기간 지나고 판단’ 보고서 재판연구관 전달 지시 박 전 심의관은 다만 임 전 차장이 이 보고서를 대법원 민사총괄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자 “보내드려도 될까요”라고 되물은 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방안’과 심리불속행 관련 문구들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임 전 차장에게 그런(전달) 지시를 받았을 때 어떤 의견을 표했느냐”는 질문에 박 전 심의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곤 “대부분의 보고는 행정처 내에서만 이뤄졌던 거라 연구관실에 보낸 경험이 없어 제가 보내드려도 될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증인은 임 전 차장에게 ‘민사총괄재판연구관이 부담 느낄 수도 있는데 이거 보내드려도 되나요?’라고 물었느냐”고 재차 확인했고 박 전 심의관은 “제가 임 전 차장에게 직접 했는지 그 당시 그 말이 제 마음 속에 있었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 보내드려도 되냐고 여쭸던 건 기억나고 앞부분에 민사총괄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 전 차장은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이 (민사총괄재판연구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니 그를 통해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동기 판사들끼리 참고자료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주라는 것이다. 박 전 심의관은 “민사총괄재판연구관에게 보고서를 직접 전달하길 꺼린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검찰의 물음에 “ICJ나 조약에서의 중재 내용에 대해서는 별 부담이 없을 것 같은데 심리불속행에 대해서 검토한 부분이 있어서 이런 건 연구관실에 보내드리는 게 예의에도 어긋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주저했다”고 설명했다. 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도 “심리불속행 검토 부분을 보내면 그런 영향이 있을 것 같아 주저돼 그 부분은 삭제했다”고 답했다. “결론이 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부분과 연관된 것”이라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삭제했다는 것을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 제도와 관련된 내용 외에 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가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박 전 심의관도 자신이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행정처로부터 보고서를 전달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심의관이 작성해 재판연구관에 보내진 보고서에는 ‘대법원에 신중한 판결의 중요성을 알려 조기 선고되지 않도록 노력’이라는 외교부 입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박 전 심의관은 “그 당시 심리불속행에 대해 검토한 부분을 삭제해야겠다는 게 최우선이었던 것 같고 이 부분은 깊게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양승태 측 “보고서 전달한 게 범죄는 아니지 않느냐” 이후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보고서를 재판연구관실에 전달할 때 일부를 삭제하고 나머지를 전달한 것을 보면 보고서를 전달해도 이것이 꼭 위법한 범죄가 된다는 생각을 안 가졌을 것 같은데 맞느냐”, “‘심리불속행’을 뺀 것도 그 부분이 들어간 상태에서 전달되면 위법하지만 빼면 괜찮다는 게 아니라 재판연구관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 있겠다는 정도가 아니었는지” 등의 질문을 하며 단순히 사건과 관련된 검토 보고서를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주장했다. 박 전 심의관은 “예의도 아니었고 적절한 건지 의문이 있었다”고 부적절한 상황이었음을 거듭 설명했다. 박 전 심의관은 이밖에도 ‘독일의 기억책임 미래재단 검토’, ‘장래 시나리오 축약’ 등 강제징용 사건의 예상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들을 다수 작성했고 대법관들에게 대면보고도 했다. 2013년 11월쯤 권순일·차한성 대법관에게 보고서를 대면보고한 상황에 대해 박 전 심의관은 “권순일 대법관은 기억나지 않고 차한성 대법관은 보고드리러 갔을 때 강제징용사건이라고 하니 ‘이 사건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서 소멸시효를 얘기하니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야 시효가 진행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당시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너무 많다며 “언론에서도 이게 문제라 머리가 아프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차한성 대법관은 그해 12월 1일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서 열린 소인수회의에 참석해 재판 지연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3회] 양승태 측 “증인들 압박하지 말라”…위법수집증거 주장은 또 배척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3회] 양승태 측 “증인들 압박하지 말라”…위법수집증거 주장은 또 배척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각종 파일들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겼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국민 메시지도 있었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은 최근 재판에서 이같은 임의제출로 검찰이 확보한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했다.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인 심의관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고 이들을 임의제출 과정에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5일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2회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위법하게 수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도 재판부는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도 위법 수집 증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놨다. 다만 그날도, 이날도 “최종 판단은 아니고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조사를 통해 내놓은 현재까지의 결론”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위법 수집 증거가 아니라는 판단을 바탕으로 재판부는 이날 행정처에서 임의제출된 정다주·박상언 전 기획조정심의관 작성 문건들의 일부를 증거로 채택했다. 파일과 출력물의 동일성에 대한 검증을 마친 문건들에 대해서다. 여기에도 재판부는 “문자 정보 내용의 진실성이 아닌 문자정보의 존재 자체가 증거가 되는 것으로 채택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더했다. 앞서 ‘임종헌 USB’ 속 파일들에 대한 검증이 한참 진행되던 지난달 26일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행정처 문건에 대한 증거능력을 처음 문제삼았다. 검찰이 행정처에서 보고서를 임의제출 받을 때도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처럼 당사자의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문건들에 법관들의 사생활이나 재판 관련 비밀사항들이 담겨있는 만큼 이러한 정보가 검찰에 임의제출 되는 데 대해 작성자들이 동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압수수색 집행 과정에서 당사자와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조항이 임의제출 시에도 적용됐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재판부는 열흘 만인 이날 판단을 밝혔다. “기본적으로 압수수색 당사자가 영장 집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규정은 압수수색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집행받는 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취지”라면서 “그러나 영장에 의하지 않은 압수수색에 해당하는 임의제출의 경우까지 이러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의제출물 압수의 경우에는 압수물 취득 과정에서 강제력이 행사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영장에 의한 압수보다는 당사자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임의제출의 적법성은 임의성을 엄격히 판단하거나 제출자에게 제출권한이 있는지 등을 심리해서 충분히 결정할 수 있고 현행 법상 명문에 근거가 없는 당사자의 참여권 요건을 추가로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판부 “법원행정처 임의제출 문건 ‘위법 수집 증거’ 아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에서 임의성 부분을 살펴보면 검찰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변호인이 주장하는 보고서 등을 제출받음에 있어 그 범위와 방법에 관해 행정처와 사전에 충분히 검토와 협의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제출의 임의성이 보장돼야 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기관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임의제출받은 보고서는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행정처 공용 PC를 이용해 작성하고 저장했던 문건들”이라면서 “행정처가 압수물의 소유자, 소지자, 보관자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임의제출자로서의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 행정처 임의제출 문건들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 뒤에는 검찰이 신청한 증거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사이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박찬익 전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앞두고 임 전 차장 재판에서 있었던 박 전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조서를 증거로 신청한다고 밝혔다. 박 전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정책실 심의관을 지낸 2013년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의 증거 신청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곧바로 반발했다. “검찰은 주신문 과정에서 ‘증인이 과거 다른 재판에서 이렇게 진술한 바가 있느냐’는 신문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형사소송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유도신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도 “증인에게 자연스럽게 직접 질문하며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임종헌 재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죠?’라고 질문하면 과거 재판에서의 증언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임종헌 재판 신문조서 증거 신청…변호인들 “유도신문 하지 말라” 검찰과 변호인의 서로 다른 주장의 쟁점은 형사소송규칙 75조였다. 이 조항에 따르면 ‘주신문에서는 유도신문을 해선 안 된다’는 게 변호인들의 주장이다. 반면 ‘다만 다음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 조항과 함께 ‘증인이 종전의 진술과 상반되는 진술을 하는 때에 그 종전 진술에 관한 신문의 경우’ 유도신문이 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전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것 자체가 유도질문”이라면서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건 이게 허용되면 다음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다른 사건 재판에서 한 진술이 다룰 경우, 그리고 공소사실 입증이 어려울 경우 ‘수사기관에서 증언한 게 맞는 것 아닌가요?’라는 식의 질문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유도신문을 넘어서 증인에 대한 압박이고 자유로운 증언을 막는 위험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다른 재판의) 증인신문 조서 없이 하자는 것이 재판부 의견이었지만 검찰이 추가 증거신청을 했으므로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시진국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결국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늘 출석을 하지 못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봐서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는 걸로 하겠다”고 밝혔다. 시 부장판사는 두번째로 증인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당직 법관이라는 이유로 출석하기 어렵다는 사유서를 냈다. 시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일정은 오는 26일로 미뤄졌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2회] 양승태 석방 앞으로 한 달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2회] 양승태 석방 앞으로 한 달

    “담당 재판때문에” “야근 때문에” 현직 법관들 계속 증인 출석 미뤄재판부 별다른 대응 안하고 일정 순연··· 검찰 ‘속터진다’ 강한 성토“현재로서는 추가 기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8월 석방을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월 11일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기간(6개월)은 다음달 10일 끝난다. 검찰이 다른 혐의를 더해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는 지금의 방침을 유지하면 다음달 11일 자정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구치소를 나서게 된다. 구치소가 아닌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피고인들이 서는 법정은 서두를 이유가 확 줄어든다. 재판이 열리지 않는 날 누구와 연락하고 만나는지 법정은 알 길이 없다. 양 전 대법원장과 법정에서 마주해야 하는 증인은 211명이나 된다.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을 심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당초 지난달 21일부터 3일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현직 법관 4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열기로 했었다. 해당 법관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각각 근무하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보고서)들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이들이다. 지난달 14일부터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검증절차도 이들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제시할 문건의 출처를 명확히 하고 임 전 차장의 USB에 담겨 있던 문건과 같은 것인지, 이들이 사용한 이메일 속 파일과 같은 문건인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이다.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21일부터 26일, 28일에 이어 이날까지 이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각각 진행하려고 했지만 네 사람 모두 자신이 맡고 있는 재판 일정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재판부는 다시 5일부터 7월 중하순쯤으로 증인신문 일정을 차례차례 조정했다. ●시진국 부장판사의 두 번째 불출석 사유 “당직근무 때문” 그런데 5일 오전 10시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은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이번에는 다른 이유를 들어 재판부에 불출석사유서를 냈다. ‘당직 법관으로 지정돼 있어 출석이 어렵다.’ 지난달 26일 예정된 증인신문 일정에는 자신이 맡고 있는 재판 때문에 어렵다고 해 재판부는 시 부장판사의 재판이 없는 5일로 일정을 다시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직 때문이라는 게 출석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됐다. 각 법원에서는 법관들이 순번을 정해 평일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 영장 업무를 도맡아 하는 당직제도가 있다. 주로 경력 15년 미만의 단독 또는 배석 판사들이 하던 업무였는데 젊은 판사들이 줄어들면서 부장판사들도 하게 됐고, 과거에 비해 순번이 빨리 돌아오게 되자 매해 사무분담 시기가 되면 법원마다 당직 법관의 대상과 순번 등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있을 정도다. 시 부장판사의 불출석 사유는 쉽게 말해 ‘야근이라 재판에 못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대법원 내부 규정까지 확인하며 시 부장판사를 비판했다. 검찰은 “대법원 규칙인 ‘법원 당직 및 비상근무 규칙’에는 당직 지정을 받은 법관이 출장·휴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당직 근무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지체 없이 당직 지정자에게 신청해 당직 근무일 변경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같은 규칙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당직 법관 사무를 처리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이튿날에 당직을 대행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사재판의 증인 출석은 출장·휴가와 같이 규칙에 있는 사유 못지 않게 더 불가피하다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금요일(지난달 21일) 증인신문 기일이 지정되자 다음날 중요한 개인 일정이 있고, 그 다음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자신의 재판이 있다며 불출석했다. 증인신청된 법관들의 재판 기일과 준비기일, 당직근무 일정까지 모두 고려해 일정을 지정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라는 게 검찰 지적이다. 검찰은 그러면서 재판부에 “일반적인 사건에서도 증인이 회사에서 본인 대신 다른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일 또는 당직 근무가 있다는 이유로 불출석한 경우 이를 불출석하는 합당한 사유로 보는지 의문이다.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기준을 이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검찰 “일반인들도 당직근무로 불출석 되나…원칙 동일하게 적용” 형사소송법 151조에는 법원으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의) 결정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이후에도 다시 출석하지 않으면 결정으로 증인을 7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한두 번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처분을 받는 게 아니다. ‘정당한 사유’와 ‘결정으로’라는 문구는 오롯이 재판부의 몫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반발에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그리고는 4명의 법관을 비롯해 추가 증인신문 일정 계획을 설명했다. 오는 19일 오전 10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일정은 지난달에 잡혔고 이 다음 일정을 박남천 부장판사가 읊기 시작했다. “(앞 부분 생략) 7월 23일 오전 10시 박상언. 7월 24일 오전 10시 정다주.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잘 살펴보고 또 필요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이번주 금요일에 시진국을 신문하지 못한다면 시진국은 7월 26일 오전 10시.” 시 부장판사가 재판부에 출석이 가능하다고 밝힌 날짜다. 핵심 증인들과의 대면이 미뤄진 법정에서는 다시 ‘디테일’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임종헌 USB’ 속 파일에 대해서는 변호인들이 검찰청에서 직접 원본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검증절차를 줄이긴 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양만큼 법원행정처나 외교부 등에서 임의제출 받은 문건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늘어났다. 심의관이나 공무원들이 작성한 문건을 검찰이 해당 기관으로부터 임의제출을 받는 과정에서 작성자들로부터 동의를 받거나 작성자들의 임의제출 과정에서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행정처와 검찰은 2018년 7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목적 아래 임의제출의 범위 및 방법을 협의했고, 심의관들이 사용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등을 받아 포렌식 등을 거친 다음 현직 심의관들이 추출된 파일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심의관들이 업무상 작성한 문건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행정처 컴퓨터에 보관된 뒤 행정처에서 소지, 관리하는 문건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작성자가 아닌 기관 측의 동의를 받고 협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작성자인 전직 심의관들의 임의제출 과정에서의 참여권이 배제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임의제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USB 담은 봉인지 ‘누가 처음 붙였다 뗐나’ 확인 공방에도 불구하고 결국 출처를 명확히 하고 실제 검찰이 임의제출받은 각종 파일들과 출력물이 같은 것인지, 흠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검증이 또 종일 이어졌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사건과 관련해 제시될 외교부 문건들에 대해 검증할 때는 지난해 외교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USB를 감싼 봉인지가 언제 처음 붙었다가 언제 떼여졌다가 또 언제 다시 붙여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도 있었다. 검증을 위해 USB를 실행해야 했는데 그 전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USB를 봉인해 두었다가 포렌식 작업과 분석을 하기 위해 USB를 사용했다가 다시 봉인해두고 그 외에 USB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최초 봉인지를 해제한 그곳에 부착되어 봉인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변호인들, 이 봉인지를 해제하기 전에 확인할 필요성이 있으면…”(재판장) “최초에 봉인을 해제해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게 될 텐데 최초에 있는 외교부 사무관을 참여하도록 했다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 부분이 확인돼야 할 것 같고 봉인해제 한 날짜를 지난해 8월 6일로 했는데 누가 이 봉인을 해제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사이에 봉인 해제한 검찰 관계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 오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의문이 해소되자 박 부장판사는 “저희가 이 부분에 대해 봉인을 해제하기 전에 이 상태로 사진을 한 장 찍도록 하겠습니다”라며 USB를 꺼내기 전 봉투의 모습까지 법원 직원을 통해 사진으로 남겼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1회] ‘양승태 재판’ 변곡점…법원 “‘임종헌 USB 압수수색’ 위법 없었다” 판단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1회] ‘양승태 재판’ 변곡점…법원 “‘임종헌 USB 압수수색’ 위법 없었다” 판단

    첫 재판이 열린 지 꼬박 한 달, 2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두 자릿수에 접어들었다. 서류증거의 실체적 내용이 아닌 출처와 형식 등을 따지는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한 검증이 계속되던 재판은 10회째 접어들면서 중요한 변곡점을 맞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이날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0회 공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를 검찰이 압수수색한 과정은 적법했다는 판단을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의 임 전 차장 재판에서도 USB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된 피고인들은 잇따라 USB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주장을 내놨다. ●재판부 “‘임종헌 USB 압수수색’ 적법했다” 첫 판단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할 때와 같은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판단이 아니라 현재까지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조사 결과에 의한 재판부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여러가지 판단 근거를 기초로 해서 현재까지는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절차에서 검사의 위반행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변호인들은 지난해 7월 검찰의 임 전 차장의 주거지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 전반에 대해 문제삼았다. 임 전 차장이 자신의 재판에서 “식탁에 검사와 마주보고 앉았고 앞에 영장이 놓여있어 열람은 했지만 메모를 하지 못하게 했고, 영장을 보면서 계속해서 대화를 걸어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처럼 압수수색을 시작할 때부터 임 전 차장에게 영장이 적법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영장에 ‘압수할 물건’으로 기재되지 않은 물건이 압수됐으며 영장에 기재된 ‘전용공간’이 아닌 공용사무실에 있던 USB를 압수했다는 주장이었다. 또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USB 5개 가운데 혐의와 관련된 내용만 복제할 수 있는데도 USB 자체를 압수했고 압수한 파일의 상세목록도 교부하지 않아 적법한 압수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들은 “임 전 차장이 사후에 임의제출 동의서를 제출했더라도 증거수집 절차의 하자가 치유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USB 파일 8635개 가운데 1142개를 양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의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기 전에 검사가 임 전 차장에게 영장을 제시했고 임 전 차장은 영장의 내용을 검토해서 그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당사자에게 적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영장에는 ‘압수할 물건’으로 ‘외부 저장장치에 저장된 범죄 사실과 관련되는 물건’이 기재됐고 검사가 압수한 8635개의 파일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리고 임 전 차장 진술에 의해서 압수할 물건이 사무실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법무법인 사무실도 압수수색 영장에 따른 수색 장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 “압수조서 속 ‘김백준 주거지’는 단순 실수” 압수수색 집행 당시 작성된 압수조서에 ‘김백준의 주거지’라고 장소가 표시된 데 대해서도 변호인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다른 증거들이나 압수수색에 참여했다는 관계자들의 진술에 비춰보면 단순한 실수나 오기 정도로 볼 수 있겠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임 전 차장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검사가 ‘PC 및 USB 추출목록.html’ 파일을 복사하는 방법으로 상세 목록을 교부한 것으로 볼 수가 있는데 그 증거조사 결과에 의하면 파일 목록의 속성에서 바뀐 날짜가 2018년 7월 21일 오후 6시 28분 08초로 압수수색을 종료한 시점인 오후 6시 40분쯤과 상당히 근접한 시간으로 보여 (상세 목록을) 복사해서 줬다는 검사의 주장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혐의와 관련된 일부만 USB에서 복제해 가져가지 않고 USB 전체를 압수한 이유에 대해 검찰은 임 전 차장이 136개의 파일을 삭제한 정황이 있었고 일부 파일명을 마치 변호사가 된 뒤 최근에 맡은 사건인 것처럼 파일명을 바꿔놓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임 전 차장이 USB 5개 중 명함형으로 된 한 개는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원 파우치에서 발견됐는데 검찰은 이것 역시 임 전 차장이 핵심 증거인 USB를 감추려 한 정황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 설명을 받아들여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보면 검사가 압수한 USB 전체에 대해 이미징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이고 당시 휴대하고 갔던 장치로는 현장에서 전체를 이미징하기는 곤란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결국 ‘원본 반출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당시 압수수색 영장 집행 과정에 임 전 차장의 변호인도 참여를 했고 임 전 차장도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USB에 대한 이미징 등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 서울중앙지검 디지털수사팀에서 진행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아 압수수색 절차를 마무리하는 과정도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피의자나 변호인의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날 재판부의 판단으로 변호인들이 강하게 다퉜던 ‘임종헌 USB’의 압수수색 과정에 대해서는 일단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임종헌 USB 속 파일들과 검찰이 제출한 출력물 사이의 동일성과 무결성에 대한 검증은 법정 밖에서 이뤄지고 있고, 변호인들은 임종헌 USB 외의 다른 출처의 문건 파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출처를 문제삼고 있어 여전히 증거능력을 위한 다툼은 지속될 전망이다. ●변호인들 “행정처 임의제출 문건 증거능력 부정” 앞서 오전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지난 재판에서 “검토 중”이라며 예고했던 법원행정처로부터 검찰이 임의제출 받은 문건들에 대한 증거능력도 문제삼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찬익 전 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의 검찰 조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진술자가 조사된 전 과정이 기재되지 않은 조서로, 조서에 기재된 내용과 달리 신문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내용이 누락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임의제출된 문건들에 대해서도 법관이 발부항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경우에도 문서 작성자든 관련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거나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한데 영장에 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기관 자체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문서와 관련된 사람의 참여나 동의 없이 제출하는 것은 더더욱 위법 요소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변호인의 주장은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고 변호인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피조사자의 모든 진술을 조서에 기재해야 한다는 것은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어 “변호인의 의문을 줄이기 위해 설명하면, 형사소송법 244조 4항에 따라 박찬익 전 심의관의 조사 시작 시간과 마친 시간을 정확히 기재했고 그 밖에 진행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 장소와 도착시간, 시작시간에 따라 본인의 보고서를 확인했다고 기재했다”면서 “지난 4월 24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 박 전 심의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는데 검찰 조서에 문제가 있다는 진술은 없었다. 신빙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검찰 수사에 흠집을 낼 의도로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행정처에서 임의제출한 문건이나 이메일 등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들이 지난 재판에서 ‘임종헌 USB’ 검증 방식으로 논의했듯이 검찰청에 직접 변호인들이 찾아가 참관하면서 검찰이 파일 원본의 속성을 변호인들에게 확인해주는 방식으로 법정 밖에서 검증을 하기로 겨우 의견을 모았다. “아주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고 말하는 재판장의 얼굴에 간만에 옅은 화색이 돌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0회] ‘임종헌 USB’ 검증 보류…대신 법원행정처 문건·이메일도 “출처 검증”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10회] ‘임종헌 USB’ 검증 보류…대신 법원행정처 문건·이메일도 “출처 검증”

    “지금 얘기하는 의견들이 공판준비 절차에서부터 처음부터 의견 진술이 돼서 해결이 다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공판준비 절차에선 없었다가 새롭게 제기된 의견들이 있는 것 같다”, “증거능력 부분에 대해서는 준비절차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3월 25일 첫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지 꼬박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다섯 차례의 준비절차가 있었고 5월 29일부터 정식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재판장은 거의 매 재판마다 “준비기일 때 정리했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매번 새로운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늘어나기만 하는 주장의 핵심은 결국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방식이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9회 공판 초반에도 변호인들은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 대한 검증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임의 제출한 문건들에 대해 문제삼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법원행정처에서 임의 제출된 파일들도 임의 제출 자체가 증거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도 힘들 수 있다”면서 “행정처가 임의 제출한 문서가 개인의 사적 영역과도 관련 있을 수 있다면, 작성자의 동의를 안 받고 제출됐을 경우 증거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들 “법원행정처, 前심의관들 동의 없이 임의제출했다면 문제” 이전 재판에서도 거듭 검찰에 원본 파일을 제공해 달라고 변호인들이 요구하자 검찰이 문건 내용 가운데 법관들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는 이유로 파일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자 작성자들의 사생활 관련 내용이 노출되는 데 대해 작성자들이 동의했는지를 문제삼는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최소한의 동일성을 저희가 이의 제기를 안 할 정도의 수준은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다른 두 전직 대법관들의 변호인들은 어떤 입장이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박 전 대법관 측은 “동일하다. 어느 정도 검찰에서 입증하셔야 한다”고 했고, 고 전 대법관 쪽에서도 “공소사실과 무관한 증거라 다른 피고인들과 같은 의견”이라고 답했다. 임 전 차장의 USB에 대한 검증은 이날 재판에서 보류됐다. 지난 14일부터 다섯 기일에 거쳐 쳇바퀴 돌 듯 검증절차를 진행했는데 변호인들이 이번에는 내용이나 형식이 아닌 파일을 언제 작성하고 수정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의의 시작은 박 전 대법관 측에서 검찰이 파일을 그대로 복사해 주도록 재판부가 지휘해 달라는 내용의 열람등사허용 신청을 내면서였다. 지난 재판에서도 박 전 대법관 측은 원본 파일의 제공을 검찰에 요구했다. 검찰도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임종헌 USB 파일에는 사건관계인들의 명예나 사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가 포함됐고 법령상 타인에게 누설하거나 제공할 수 없는 자료에 해당한다”면서 “현재 임종헌 USB에 대한 검증을 하고 있어 열람등사를 신청해서 얻을 실익도 없다”며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강조했다. 검찰은 재판의 증거가 되는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파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USB 파일은 전자정보에 해당해 복제가 쉽고 휘발성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파일의 열람을 넘어서 교부해줄 경우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비밀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첫번째다. 임종헌 USB 파일에는 특정 판사의 재산 관계 등을 분석한 문건과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게시글을 작성한 판사들의 평소 성향과 그들이 쓴 게시글을 요약한 문건, 사법행정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위원 후보자 명단에 그들의 정치적 성향 등을 분석한 것들이 있다. 해당 파일이 외부에 유출될 경우 앞에서 언급한 전·현직 법관 등의 사생활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 ●”검찰청에서 변호인들이 직접 출력 보게 해달라“ 요구 이어 검찰은 “변호인들이 유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유 대상자의 착오, 오류 등으로 삽시간에 외부에 유출될 수 있고 명예와 비밀이 침해되는 주체가 현직 법관들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재판의 공정성이나 법관의 신뢰에도 직결되는 문제여서 이런 위험성을 재판부도 충분히 고려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이유로 검사가 지난해 7월 24일 법원에 동일한 전자파일 열람허용을 신청했는데 행정처도 지속적으로 거부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처에서 법관들의 명예나 사생활, 재판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해당 문건 파일의 공개를 거부한 그 논리 그대로 검찰도 변호인들에게 파일 원본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면서 “재판부께서 파일에 대해 열람 기회를 줘야 한다고 판단하신다면 ‘이규진 일정표’ 파일을 확인했던 것처럼 검사 사무실에 변호인들이 오셔서 확인하신 뒤 파일을 그 자리에서 출력해서 받는 방식으로 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저희가 임종헌 USB의 원본을 봐야된다는 건 재판부도 보셔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동일성에 대한 다툼은 별론으로 하고 심의관이 작성한 파일 자체를 원본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종헌 USB를 원본으로 보면 심의관들이 작성한 날짜와 USB에 포함된 1000여개의 문서를 수정한 날짜를 보면 심의관이 작성한 날짜를 확인할 수 있어 임종헌 USB 파일 자체를 변호인과 재판부가 보는 것이 문서의 수정된 날짜를 확인해서 진정하게 심의관들이 작성한 건지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의 “지금 얘기하는 의견들이 공판준비 절차에서부터 처음부터 의견 진술이 돼서 해결이 됐어야 하는데 새롭게 제기된 의견들이 있는 것 같다”,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준비절차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하는데…”라는 말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새로운 주장을 냈으니 무작정 배척할 수도 없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은) 파일 자체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 하니 변호인이 참관한 가운데 검사가 파일에서 출력을 하고 출력물을 받는 방법으로 하고 대조 결과 여전히 동일성과 무결성 검증이 필요한 부분을 특정해서 계속 검증하는 방식으로 하면 어떤가”라고 검찰과 변호인단에 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들이 잠시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변호인들이 참관한 가운데 검사가 출력하면 변호인이 의견을 제기하는 것처럼 증거를 출력해서 신청하는 단계에서 (검사가) 파일을 건드린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박 부장판사가 한 번 더 물었다. ●검증 제안한 박병대 측 “검증 너무 많은 시간 걸려 의미 없어” 양 전 대법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는 “저희의 의견은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으로 가고, 다만 ‘이규진 일정표’도 같은 방식으로 했는데 이규진 파일 해시값과 검사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의 해시값을 비교해서 동일성을 확인한 다음 그 파일에 문서 속성에 대한 정보를 별도 표기했다. 그 뒤 프린트해서 가져왔다”고 답했다. 가장 처음 모든 파일의 검증을 요구했던 박 전 대법관 측에서도 “저희는 사본을 확인하기 위해 원본을 달라는 거였지만 사실은 검증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많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검사님들도 출처를 확인하고. 그래서 검증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 (검찰청에) 가서 문서정보와 해시값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갈음하면 기일을 적어도 한두 기일 정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거들었다. 변호인들의 요구는 이랬다. 검찰에 직접 가서 변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증절차를 아직 거치지 않은 임종헌 USB 속 문건 파일들을 열어서 ‘문서정보’ 메뉴에 담긴 파일 수정 날짜와 해시값을 직접 확인한다. 법정에서 일일이 한글 파일을 열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스크롤을 넘겼던 검증작업에 일단 약간의 효율성을 더할 수 있는 방식이다. ‘검증의 늪’ 트라우마인지 검찰은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분명히 폰트(글자체)나 날짜 등 외형이 다른 게 분명히 있을 텐데 또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다시 검증절차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확히 거기에 대해 다투지 않겠다고 정리하지 않으면 저희가 다시 편의제공을 할 필요가 없다.” 변호인들이 몇 차례 상의 끝에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저희가 확인하고자 한 게 그간 검증에서 많이 확인됐다. 출력일자와 폰트 문제는 저희도 납득한다. 나머지 파일들에 대해서도 (외형상의 차이점은 다투지 않고) 원본과의 동일성을 인정하겠다.” 드디어 법정에서의 검증은 속도를 내는가 싶었다. 매 기일마다 새로운 주장이 튀어나온 데 대한 트라우마 탓인지 재판장은 그 이후 같은 문구를 몇 차례 반복해 언급했다. 변호인이 신청한 열람등사신청을 허용한다는 결정문의 문구를 정하는데 양쪽이 더 이상 새로운 다툼을 벌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 그러면… 다시 정리를 하면, 문서정보하고 해시값을 출력한 출력물을 교부하는 것은 검증신청서 첨부2에 있는 전체 파일에 대한 것이고 출력물까지 다 받는 것은 아직 검증이 남아있는 부분에 대해서 출력물을 교부받는 방법으로 허가한다. 대조 결과 여전히 동일성과 무결성에 대해 확인이 필요한 출력물을 특정하고 특정한 이외의 나머지 출력물에 대해서는 다 증거로 할 수 있음을 동의하는 것으로 정리하겠다.” ●1000여개 파일 정보 일괄 추출할 수 있다는데도 “한글 파일 다 열어야” 검찰이 “저희가 기술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파일 창을) 하나하나 띄워서 문서정보를 캡처해서 출력해 드리는 게 있고, 기술적으로 그 정보를 추출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가급적 후자로 원하는 대로 드릴 수 있고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00여개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문서 속 메뉴에서 문서정보를 클릭하고 다시 해시값을 캡처하느니 일괄적으로 문서정보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더욱 효율적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변호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기술적으로 편리한 절차가 있는 것은 동의하는데 재판장님의 정리는 향후 이의 제기할 여지를 없애자는 취지여서 조금 불편하셔도 창을 띄워서 문서속성을 한 번씩 확인하는 방법을 원한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인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변호인들이 불편할 수 있어 방법을 제안한 건데 싫으시면 저희도 뭐 굳이 발전시켜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고 말했다. 결국 1000여개의 한글 파일을 검찰 사무실에서 다시 하나씩 열어서 모든 문서정보를 캡처하고 그걸 출력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이 생각하듯 기술적으로 일괄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안 된다, 파일별로 다 열어서 캡처하고 추출하고 그걸 원한다는 거죠?”라고 되묻고 “하…” 짧은 탄식을 뱉었다. 법정에서는 일단 멈춰졌지만 검증의 속도가 좀 더 빨라질지는 오는 3일 재판에서나 확인이 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임종헌 USB 외 행정처에서 임의제출한 문건들과 검찰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이메일 등 여전히 변호인들이 출처를 문제삼는 증거는 산더미 같이 남아있다. 이날 오후 재판에서도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등 심의관 출신 법관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 이메일 속 첨부파일을 일일이 여러보는 방식이었다. 메일 속 첨부파일이 검찰의 출력물과 동일한지, 또 조작의 흔적은 없는지. 쳇바퀴는 여전히 돌고 있고 늪의 출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9회] “이러다 40주간 검증만” vs 7·8월 한여름 기다리는 양승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9회] “이러다 40주간 검증만” vs 7·8월 한여름 기다리는 양승태?

    법정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청석에 앉았다. 지난 5월 29일 첫 재판이 열린 날 가득 메워진 법정은 서류증거 조사에 돌입하자 바로 휑해졌다. 가장 넓은 대법정과 그보다는 작은 중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면 방청석에는 기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그런데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8회 재판에는 10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방청석을 채웠다. 재판 첫 날 부엉이 그림이 그려진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재판을 지켜보던 ‘두눈부릅 사법농단 재판방청단’에서 온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농단TF에서 중요한 증인신문 일정이 있을 때 참관하자며 모집한 시민 방청단이다. 당초 이날은 오전부터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 19일 정 부장판사가 자신의 재판 일정을 이유로 출석이 어렵다고 밝혀 첫 번째 증인신문이 무산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문건들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정 부장판사의 증언을 듣기 위해 법정을 찾은 두눈부릅 방청단은 매 재판마다 반복된, 증거조사를 비롯한 재판 진행방식을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으로 오전 재판이 거의 통째로 쓰여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첫 증인신문 무산…절차 공방으로 또 오전 재판 소모 지난 19일 7회 공판에서는 변호인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의 압수과정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조사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이날 “임종헌 USB의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한지 여부는 앞으로 진행을 위해 증인신문 전에 바로 결정돼야 할 쟁점“이라면서 “오늘 조사할 증거들을 포함해 혹시라도 더 낼 제출할 의견이 있다면 늦어도 월요일(24일) 오전까지는 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28일 예정된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의 증인신문 전에 임종헌 USB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USB 압수수색의 위법성에 대해 변호인들이 많이 주장했지만 또 논의하다 보면 새로운 위법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26일 수요일을 언급했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의 마이크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자 변호인은 “그럼 화요일까지만…하루만 늦춰주십사…”라고 말했다. “충분히 주장을 냈고, 입증도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주장할 게 남았냐”고 박 부장판사가 되물었다. 검찰도 “변호인이 또 뭘 검토하시겠다는지 잘 모르겠다. 공방이 충분히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 이뤄졌고 의견서로도 충분히 이뤄졌는데 자꾸 미루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 밖에 안 든다”며 재판장이 제시한 24일까지 의견서를 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저도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알 수가 없다”면서도 “피고인들에게 기회를 드리겠다. 의견서 제출기한은 화요일(25일)까지로 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의견이 일리가 있지만 워낙 절차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쟁점이라 철저하게 확인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검찰 ”변호인 말만 듣고…검사 의견 안 받아들이나“ 반발 다음은 검찰이 준비한 서증설명서에 대해서였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재판부께서 부적절하다 하셨던 부분, 증거능력 제도를 형해화(부실하게)할 수 있는 부분의 시정을 요청하셨는데 47~48페이지만 보더라도 양승태 피의자신문조서에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이나 일정표를 캡처한 게 그대로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은 5월 31일 2회 공판 때 증거로 신청해 증거조사를 할 자료들의 간략한 내용과 입증취지를 요약한 서증설명서를 냈다. 그런데 설명서에 변호인들이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은 부분들이 포함됐다는 점을 변호인들이 문제삼아 재판부는 제출받았던 서증설명서를 곧바로 검찰에 돌려줬다. 법관에게 예단을 형성하게 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 따라 동의되지 않은 증거를 재판부가 미리 봐선 안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또 같은 지적을 하자 박 부장판사는 “보지 못했다”면서도 곧바로 서증설명서를 검찰에 반환한다고 밝혔다. 당연히 검찰은 반발했다. “이번에는 재판장님이 지휘하신 사항을 고려해 전반적으로 다 수정한 걸 제출했고 쟁점과의 관련성, 입증취지에 대해서는 다른 증거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해서 그 부분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변호인이 말한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인데 반환하겠다는 것은 검찰의 어떠한 의견진술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로 보여서 부당하다고 검사는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증설명서를 재판부에서 보지 못한 상태에서 변호인 주장만 듣고 반환을 결정했는데 다음에는 변호인이 주장하는 우려가 있는지 봐주신 다음에 결정해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확인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어 변론 내용 기초로 결정한 것이니 양해해달라”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검찰에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증거능력 제도를 형해화시키기 위해 저희로서는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데…”라고 말하자 검찰은 “형해화시키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자제해 주십시오. 근거가 무엇입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검증만 하다 양승태 구속기간 만료“ vs ”시간끌기 아냐“ 잠시 뒤에는 검증과 증거방식을 놓고 또 부딪혔다. 지난 14일 4회 공판부터 재판에서는 임종헌 USB나 다른 방법으로 확보된 문건들의 파일과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출력물이 같은 것인지, 누군가 임의로 조작하지는 않았는지 동일성과 무결성을 따지는 검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다 보니 검찰은 한 사람을 증인신문할 때 그에게 제시할 같은 문건이 여러 개라면 그 중에 대표순번을 정해 그것만 먼저 검증하고서 증인에게 제시하는 방식을 재판부에 제안했다. 검사는 “현재 증거의 5%를 검장하는 데 4회 기일을 소요했다. 이 속도면 80회 기일, 40주 동안 검증만 하고 어떠한 본안 심리도 없이 양승태 피고인의 구속기한(8월 10일)이 끝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검증절차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파일과 문건이 다른 것이) 페이지가 다른 경우, 글자체(폰트)가 달라진 경우, 출력물에 수기를 적은 경우, 문서작성일이 달라진 경우가 있었는데 출력한 컴퓨터 버전에 따라 달라진 것이고, 파일을 출력한 뒤 수사기관이 문서 위에 수기로 기재한 것이라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증거파일을 일일이 검증해야만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이 아직까지는 실익이 없이 재판의 진행만 늦추고 있다는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 사건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건이 한 사람이 작성해서 완료된 게 아니라 심의관이 하나 작성해서 임 전 차장이 수정하고, 경우에 따라 다른 심의관에게 보내 수정을 하는 식으로 수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추가된 버전이 달리 있기 때문에 검사가 입증하려는 ‘피고인 등이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로서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는 것’을 확인하기위해서는 그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가 무엇인지 확인해서 제시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반박했다. “검사님 입장에서는 시간끌기로 보이지만 당연히 상식적으로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 부장판사는 “갑자기 재판부가 예정했던 것과 다른 진행에 관한 의견이 나와서 즉시 대답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오후 재판에서도 계속해서 검증이 이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 전 대법원장의 머리는 벽에 가까워졌다. 틈틈이 열심히 자료를 훑어보고 메모를 하던 박·고 전 대법관도 잠시 손을 놓고 멍한 듯한 표정이 늘어갔다. 지난 재판에서 더해져 1180개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글씨체와 날짜, 간인과 형광펜 자국, 페이지수를 모두 확인하고 있는 검증절차를 애초에 요구한 변호인들도 앞서 피고인 세 사람은 검증절차 동안에는 법정에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정해진 공판기일과 다른 검증기일을 따로 잡아 출석에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게 그만큼 고역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금 하고 있는 검증은 공판기일에서 하는 검증으로 생각하면 된다. 검증을 하다 재판내용을 다루기도 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검증기일을 별도로 지정해야 하는 것도 번거롭고 부담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이르면 7월 대법 선고’ 보도에 양승태 측 ‘촉각’ 이날 저녁식사를 위해 오후 5시 30분쯤 휴정을 하고 한 시간 뒤 다시 법정에 모였을 때, 재판부가 들어서기 전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뒷줄에 앉은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국정농단…전합…7월달…보도는 그렇습니다.” 한 시간 전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의 상고심에 대한 심리를 마쳤다고 알렸다. 이어 이르면 다음달 세 사람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속보가 나왔다. 그 내용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변호인이 설명한 것이다. “그게 일단 애매한 게…박 대통령…블랙리스트…다른 주장이긴 한데…직권남용…”의 단어들이 방청석으로 흘렀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대법원의 판단이 특히 주목되는 쟁점은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가 뇌물로 인정되느냐로 꼽힌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쟁점은 바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1·2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기조에 따라 직접 블랙리스트를 총괄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김 전 비서실장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쟁점이 남아있어 좀 더 심리한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사법부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등 이른바 ‘물의야기’ 법관 명단에 포함된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 조치를 했다는 혐의가 있다. ‘법관 블랙리스트’ 외에도 주요 혐의들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 직권남용죄에 대해 중요한 판례가 될 대법원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판단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질 사람이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일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변호인의 작은 목소리에 박·고 전 대법관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8회] 이번엔 “증거마다 출처 밝히라”… ‘임종헌 USB’ 또 공방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8회] 이번엔 “증거마다 출처 밝히라”… ‘임종헌 USB’ 또 공방

    하루 만에 다시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이 법정에 모였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열리는 재판을 이례적으로 화요일에 한 번 더 진행한 이유다. 서증조사와 검증기일. 수많은 파일을 열어보며 글씨체가 왜 다른지, 이 부분에 왜 형광펜이 그어져 있는지, 출처가 무엇인지, 재판의 내용과 방식도 거의 비슷했다. 한 가지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면 피고인석에 앉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전날과 달리 이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흰 셔츠에 양복만 걸쳤다. 전날 재판장이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협조 공문을 소개하며 여름에는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며 “지금 바로 푸셔도 된다”고 농담을 건넨 뒤의 변화다. 넥타이 하나 풀렀을 뿐인데 고 전 대법관은 휴정시간에 다른 변호인들과 서서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등 한결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는 다르다. 고 전 대법관은 항상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의 옆에서 가장 분주하게 무언가를 적고 읽으며 매우 꼼꼼하게 재판의 진행상황을 체크한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의 7회 재판에서 고 전 대법관 측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증거들의 출처를 문제삼았다. 지난 14일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확보한 법원행정처 문건 파일과 이를 출력해서 증거로 낸 검찰의 출력물 1142개가 서로 같은지 일일이 검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임 전 차장의 USB가 아닌 다른 곳에서 확보된 증거에 대해서 출처를 분명히 밝히라는 주장이다. 이른바 ‘실물 압수증거’라고 고 전 대법관 측의 의견서를 검토한 재판부가 언급했는데 형사소송법이나 관련 규정에 정식 명칭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흔히 쓰이는 개념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자료, 법원행정처나 이 사건의 고발인들이 임의로 제출한 문건 등 검찰이 입증자료라고 낸 문건들의 출처를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선 재판에 이어 이날 재판에서 47건에 대해 추가로 조사할 것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원칙대로라면 기존에 신청된 증거들 가운데 입증자료라는 것을 다 서증조사 해야되는 게 맞겠지만 지금 서증조사의 목적이 실물 압수증거의 내용이 아니라 출처만을 심리하는 것이고 다른 변호인은 문제삼지 않고 고영한 피고인의 변호인만 문제삼고 있다”면서 “고영한 피고인의 변호인 측에서 문제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특정해서 출처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검찰과 변호인이 동의했고, 이날 점심시간 동안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검찰에 찾아가서 일부 ‘실물 압수증거’를 확인하고 오기도 했다. ●변호인들, USB는 압수수색 위법 주장 ·USB 외 증거는 ‘출처’ 문제삼아 ‘위법수집증거’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된 재판들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사건의 ‘스모킹 건’으로 불릴 정도로 핵심 문건들이 확보된 임 전 차장의 USB가 검찰에 넘어간 과정은 임 전 차장의 재판 초반에도 치열하게 다퉈졌다. 이날 재판에서도 위법수집증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증거조사로 지난해 7월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이 담긴 문건들이 낱낱이 공개됐다. “지금부터 (증거순번) 1만 1705번부터 1만 1718번, 위법수집증거 관련 증거에 대한 서류증거를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재판부가 말했다.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되지 않았다는 것을, 또는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것을 각각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조사하겠다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어 “지금 조사하는 증거들을 통해 재판부가 특히 알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리 말씀드리겠다”면서 “지난해 7월 21일 압수했던 임종헌 USB에서 일부 파일을 삭제한 정황이 있는지, 파일의 상세목록을 (임 전 차장에게) 교부했는지, 그리고 압수를 한 다음에 임 전 차장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8635개의 파일 리스트를 저장해 주었는지, 압수수색 조서에 압수수색할 장소가 다르게 기재된 이유가 무엇인지, 또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무관한 파일을 압수했다는 주장이 있다.” 변호인들이 임종헌 USB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들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7월 21일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검증영장’이 공개됐다. 영장을 화면에 띄우고 검사가 주요 혐의를 요약한 소제목을 읽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관련: 피의자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 임종헌’, ‘이판사판 야단법석 카페 관련 범죄사실’, 이어 ‘상고법원 정책추진과정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범죄사실’ 이후가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를 통한 여론조작 시도’, ‘지역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 시도’, ‘상고법원 정책추진 과정 법무부 상대 빅딜 시도’, ‘오연천 명의의 기고문 게재 관련: 피해자 조선일보에 대한 업무방해’(지난해 검찰 수사 결과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을 찬성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울산대 오연천 총장의 이름으로 대필해 조선일보에 게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압수수색 영장 속 행정처…언론·국회 상대로 상고법원 협조 전략 영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는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과 관련된 재판에 개입해 상고법원 도입에 힘을 얻으려 했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 공동발의 가능 국회의원’ 명단과 설득전략을 검토하도록 지시했고, 새누리당 김재원·김학용·김회선·나경원·노철래·유기준·윤상현·이병석의원을 찬성 명단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박영선·서영교·양승조·우윤근·최원석·최재천 의원을 설득 거절 의원 명단에 담았다. 마찬가지로 상고법원 도입에 협조를 얻기 위해 ‘국회의원 안덕수의 회계책임자 선거법 위반 사건’을 비롯해 몇몇 의원들과 관련된 내용, 접촉루트 등이 영장에 범죄사실 중 하나로 담겼다. 최유정 변호사, 김수천 전 부장판사 관련 내용,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현직 법관이 관련된 형사사건 재판 개입 관련 사건도 영장에 기재됐다. 다만 재판에서 영장에 기재된 혐의 사실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혐의들로 임 전 차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겠다고 했는데 임 전 차장의 USB는 압수수색에 적힌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는 게 위법수집증거 주장의 주요 쟁점이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1. 주거지 2. 피압수자 등의 진술 등에 의해 압수할 문건이 다른 장소에 보관돼 있음이 확인되는 경우 그 보관장소’라고 적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동의로 사무실도 압수수색을 했고 캐비닛에서 USB를 꺼낸 것이라며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재판에서 USB를 꺼낸 캐비닛이 자신의 전용공간이 아닌 사무실 공용공간에 있던 곳이었고, 자신이 보관하지 않았다며 영장에 기재된 ‘보관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도 ‘“압수수색 영장의 취지는 주거지에 있는 대상 물건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권한을 준 것이고 원칙적으로 주거지나 기타 적시된 곳이 아니라면 위법하다고 보는 게 맞다는 것”이라면서 “검찰의 설명은 주거지 PC에 있던 USB가 어디 있느냐고 묻다가 사무실에 있다고 해서 사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했다는 건데 이미 임 전 차장의 협조로 물건을 제출받았음에도 사무실 PC도 보자고 하고 여러 흔적을 찾게 돼 추가로 USB를 찾기 위해 압수수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택에 있던 USB만 사무실에서 받아왔어야 하는데 USB를 핑계로 사무실 전체를 압수수색해 더 많은 증거를 찾아냈다는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영장주의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강해 이 부분에 대한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종헌 공판조서 양승태 법정서 낭독…변호인 ”영장주의 위배“ 또 USB 5개에서 확보된 8635개 파일 가운데 혐의와 관련된 내용만 검찰이 확보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파일들까지 모두 얻어 수사에 활용했다는 지적도 이어갔다. “별도의 절차로 입수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었다면 혐의 사실이 아닌 파일이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파일이라도 눈감고 가셨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변호인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혐의 중 하나인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법원장들에게 현금을 지급했다는 내용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정보들을 입수해 위법행위에 대해 의심이 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보관실 운영비는 독수독과로 증거능력이 없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수독과(毒樹毒果)는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말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해 발견된 2차 증거(독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비슷하게 다뤄진 USB의 증거능력을 두고 이날 법정에서도 임 전 차장의 공판조서가 줄줄이 낭독되며 공방이 오갔다. 오후 3시가 되기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약 4시간을 USB를 입수한 과정이 복기됐다. 이후에는 또 다시 USB 속에 담겼던 파일의 원본과 검찰이 증거로 낸 출력물이 동일한 것인지 검증이 이뤄졌다. 이 같은 검증과 서증조사는 21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1일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던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재판 일정을 이유로 증인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다음달 24일이나 26일이 법정에 출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오전에는 “불출석 이유를 아직 확인 못 했다”고 했다가 오후에서야 “재판 일정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증을 한 주요 목적은 증인신문에서 정 부장판사에게 제시할 문건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증인신문이 한 달이나 뒤로 미뤄지자 검찰은 또 한숨을 쉬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7회]‘임종헌 USB’ 파일과 출력물의 동일성 검증 ‘쳇바퀴’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7회]‘임종헌 USB’ 파일과 출력물의 동일성 검증 ‘쳇바퀴’

    박병대 측 검찰의 조작 가능성 주장하며 파일 1142개 검증 요구지난 14일에도 7시간 내내 파일과 출력물 일일이 대조 작업 반복18일에는 “안과 진료 가야하는데”···재판부는 불허···검찰은 분통“파일의 제목은 HY수평선B체이고 날짜는 휴먼옛체입니다. 날짜도 지금 이의를 제기하십니까?”(재판장)“날짜는 비슷해 보입니다.”(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날짜는 빼고요. (작성자인) ‘기획조정실’이 다르다는 거죠? 기획조정실은 파일에는 HY수평선B체로 돼있고 출력물에는 제목과 기획조정실 표시는 글자체가 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내용은 똑같고 글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재판장) “네, 이 문건은 컴퓨터에 설치된 폰트 부족 등으로 글자체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출력 시에 기본 글자체로 출력된 것으로 보입니다.”(검사)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들어있던 267번 파일과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885번의 문건은 같은 내용이다. 2015년 1월 18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최민호 판사 관련 대응방안’ 문건이다. 그런데 PC로 보는 파일 내용과 종이로 보는 문건의 제목과 기획조정실 표기가 글씨체가 달랐다. 변호인은 이의를 제기했다. 2014년 12월 3일 작성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은 임 전 차장의 USB 7636번 파일에서는 1쪽부터 8쪽까지 페이지 번호가 매겨졌는데 검찰이 출력물로 제출한 증거 932번 문건에서는 77쪽부터 84쪽까지 페이지 번호가 적혀있었다. 문건의 내용은 같다. 변호인들은 이의를 제기했고 검찰은 “여러 파일을 하나로 합쳐놓으면서 페이지 순서가 1쪽이 77쪽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종헌 USB’ 속 파일과 출력 문건 같은지…일일이 열어 글씨체까지 확인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6회 공판기일에서는 오전부터 내내 이 같은 검증이 이뤄졌다. 지난 14일 5회 공판에서도 오후 2시 20분부터 밤 9시 20분 남짓까지 7시간을 내내 파일과 출력물을 비교했지만 검증해야 할 전체 양의 15%에 불과하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증하기로 한 파일의 양은 무려 1142개. “증거 순번 871번, 2015년 10월 1일자 사법정책실 양형위원회 작성의 ‘헌재 관련 비상식 대처 방안 검토(대외비)’ 문건, 임종헌 USB 파일 목록 순번 3872번 출력물입니다.” “네. 871번 출력물 같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재판장) 검증 방식은 이렇다. 검찰이 해당 문건의 한글 파일을 열어 페이지 끝까지 천천히 스크롤을 넘긴다. 재판부와 변호인들은 빠르게 출력물과 비교를 한 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선언하면 그 다음 파일로 넘어간다. 이렇게 온종일 재판이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이 발견되면 곧바로 변호인들이 설명을 요구했다. PC 화면에서 파일을 하나씩 모두 열어보고 페이지수와 글자체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갖고 있는 출력물과 같은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애초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재판준비 절차에서부터 박 전 대법관 측은 ‘동일성’과 ‘무결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임 전 차장의 USB를 통해 많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문건들이 확보됐지만, 임 전 차장이 받은 파일이 심의관 등 전·현직 법관들이 사용한 파일 그 자체인지는 사실 분명하지 않다. 임 전 차장이 수정을 해서 USB에 담아놨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문제삼는 건 그것이 아니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검찰이 압수한 파일과 법정에 증거로 낸 출력물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몇 차례 논쟁을 벌이며 핵심 문건 30여건에 대해서만 검증을 하도록 의견을 좁혔다가 박 전 대법관 측에서 전체 파일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증거로 쓰기로 한 1142건의 파일을 모두 법정에서 열어보게 됐다. 지루한 검증에 검찰과 변호인은 예민해진다. 거의 매 재판마다 “증거를 파일 원본으로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변호인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검찰은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있어 원본은 제공할 수 없다. 확인이 필요하면 검사실로 오시라”는 대응을 반복했는데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또 한 차례 고성이 오갔다. 박 전 대법관 측에서 임 전 차장의 USB에서 확보되지 않은 144건의 출력물에 대해서도 원본 파일과 동일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였다. 예를 들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410개의 파일과 같이 법원행정처에서 임의로 제출했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확보된 문건들에 대해서 또 다시 무결성과 동일성을 주장한 것이다. ●박병대 측 “안과 진료 위해 오후 변론 분리해 달라”…검찰 “무책임” 발끈이와 함께 박 전 대법관 측에서 박 전 대법관이 이날 오후 3시 30분 안과 진료가 예약돼 있어 이날 재판만 변론을 분리해 따로 재판을 진행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고 재판부가 소개하자 검찰은 불만을 터뜨렸다. 검찰은 “주로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검사가 증거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중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했고 결국 재판장님께서 문건 하나 하나를 확인하겠다고 하고 지난 기일부터 원본과 출력물을 일일이 대조하고 있다”면서 “임 전 차장의 USB 속 파일만 1142개인데 그 중 15%만 검증을 했다. 이런 검증 절차를 마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시며 부득이 오늘 추가 기일을 또 지정했는데 정작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은 어제 오후에서야 오늘 오후 재판을 분리하겠다고 한다. 지금 이걸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 때문에 진행하고 있는데 그 피고인은 불출석하고 변호인은 방청석에서 보겠다고 하니 매우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실제 지난 기일에 밤 9시까지 검증을 했음에도 문제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변호인의 문제 제기 근거는 ‘검사가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왜 원본에는 간인이 돼있는데 여긴 안 돼있느냐’, ‘원본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있는데 출력물엔 왜 가려져있느냐’는 것들이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증거가 조작됐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매우 놀랍다. 경력이 풍부한 여러 변호인도 계시지만 검찰의 신뢰와도 직결된 증거 검증 과정에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 1명(박현상 변호인)에게만 맡겨두고 다른 변호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변호인들이 웅성웅성하며 일어나서 반박하기 위해 몸을 들썩거렸다. 재판부가 잠시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자 검사가 발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된 근거 없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고, 다른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쪽수와 날짜가 다르다는 것이 의혹의 전부인지, 다른 내용이 의심되는 무언가 있는지, 박병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지 재판부께서 변호인들에게 설명을 요구해 주시고 향후 이런 근거없는 의혹 제기가 아무런 검토 없이 법정에 노출돼 국가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해주시기 바란다.” ●현직 법관들 “재판일정 때문에 증인신문 못 나간다”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 중 한 명이 일어섰다. “변호인으로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따지는 것을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한다면 지금 (법정에) 앉아 계신 기자들을 위한 말일지는 모르나 재판부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결국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변론을 분리하지 않기로 했고 이날 오후 박 전 대법관은 안과를 갈 수 없었다. 파일 하나 하나에 대한 확인은 금방 지나갔지만 양이 너무 많다 보니 마치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 같이 법정의 시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은 눈을 질끈 감고 피곤한 기색을 자주 보였고, 두 전직 대법관도 고개를 뒤로 제꼈다가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메모를 했다가, 표정은 지루했지만 경계를 놓지 않아 보였다. 오는 21일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낸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핵심 문건들을 작성한 현직 법관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 부장판사를 비롯해 시진국(6월 26일)·김민수(7월 3일) 부장판사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재판 일정을 이유로 정해진 날짜에 법정에 나올 수 없다고 재판부에 알렸다. 재판부는 증인신문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에도 계속해서 이 같은 검증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오후 3시 45분부터 15분 휴정을 한 뒤 다시 시작된 재판에서 박남천 부장판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지난달 30일 하계 법정에서의 복장에 관한 협조요청 공문을 법원에 보내왔다”면서 “6월부터 8월까지 변호인들이 넥타이를 하지 않도록 권고했으니 법원에서도 적극 협조를 해달라는 내용이다. 법원장님도 결재를 하셨으니 넥타이를 매지 않으셔도 된다”고 알렸다. 박 부장판사는 이어 “피고인들도 넥타이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장 지금부터 넥타이를 푸셔도 됩니다”라면서 “검사님들은 여기(공문)에 없네요. 검사님들은 어떻게 되시는 건지”고 말하자 상기됐던 법정에 잠시 웃음이 돌았다. 그리고 다시 파일들이 열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피고인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꼿꼿하다.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의 깃이 그의 목을 가려 더욱 고개가 꼿꼿해 보인다. 혼자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나와 미리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옆에 앉는다. 아주 가끔씩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세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주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괴는 모습을 보인다. 세 사람 중 가운데 앉은 박 전 대법관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에 놓여진 서류들을 살펴본다. 고 전 대법관은 특유의 엷은 미소 띤 얼굴이다. 미세하게나마 다른 자세와 표정들이 다른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모여 재판을 받고 있지만 사건에 관여한 정도나 역할, 입장이 모두 다르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세 사람의 5회 공판에서는 지난 재판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일부가 공개됐다. 지난 재판에서는 검찰이 피의자신문조서 가운데 혐의와 관련된 핵심 부분들을 설명하며 증거조사를 했고, 이날 재판은 변호인들이 검찰의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반박하거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인 변은석 변호사가 먼저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검찰 증거는 외교부에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공관에서 회의를 갖고 있다는 점과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연결시켜 묻고 있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이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해외 공관에 법관들을 파견시키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을 이른바 ‘거래‘라고 지적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BH(청와대) 협조요청사항. 재외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 외교부의 긍정적·전향적 태도 유도’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2010년 중단된 해외공관 법관 파견은 2013년 주 유엔 대표부와 네덜란드 대사관 등에서 재개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해외공관 파견하는 걸 어떻게 재판으로 연결시키겠느냐. 법관의 자질이나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다. 안 보냈으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가지고…(그런 거래를 하느냐)”라며 혐의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양승태 “법관 해외공관 파견 안 보내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앞서 지난 4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은 검찰 쪽 서류증거 의견을 반박하며 관련 혐의에 대해 “저와 외교부 관계자 모두 강제동원 사건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 문제를 대가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두 가지를 연계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외교부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주장은) 남녀 간에 썸만 타고 있는데 확대해석해서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회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한 것은 그가 ‘유능한 사람’이어서, 알아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거듭 부인하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5년 9월 지금은 헌법재판관이 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대법원 판례와 달리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징계가 검토됐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짧게 축약을 하니 전체 뜻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내 취지는 당시 이런 사안에 관한 여러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혼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쪽으로 통일하는 대법원 선고가 되고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급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는 선고를 한다면 혼선은 여전히 계속되어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고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기능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대법원의 일방적 기능은 법적 안정성을 위한 통일 등 기능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지 간섭한 것은 전혀 아니다. ”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했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 방침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이었다. 처음에는 저는 물의야기 법관이라고 해서 인사심의관이 인사안을 만들어온 것을 보고 ‘인사는 일방적으로 행정처에서 다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것은 나보고 다 하라는 것인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한 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방안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결재를 했다고 해서 (내용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물의야기 법관은 취임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 변호인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설명을 덧붙였다. “인사안에 대해서는 제가 거의 다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이런 문서가 있으니까 전부 대법원장이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은 행정처에서 제가 이렇게 만들어오라고 지시하거나 행정처가 만들어온 안에 제가 고치라고 지시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인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이 실질적으로 강행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다. 제가 관여한 게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을 이 자리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대법원장이 하나 하나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처에서 만들어 오는 것이지 어떤 사람을 특정해서 한 적이 없다.”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사건의 재상고심과 관련,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에 대해서도 다른 언급이 공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 변호사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서도 한 변호사가 이 사건의 소송대리를 맡은 것은 몰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2016년 말쯤에는 사건 대리를 한다는 걸 알았겠지만 그 전에는 언제 알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처음에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은 사건 접수 후 상당 기간 동안은 몰랐고 적어도 2016년 말쯤 전원합의체 들어갔을 때는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바꿨다. 다만 한 변호사와 사건과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부인했다. “그러면 한 변호사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는 데 대법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닌지 저는 되묻고 싶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장 권한이 전혀 아니다” 변호인은 이게 양 전 대법원장의 일관된 주장이라며 만약 전원합의체 회부가 대법원장의 권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법원의 사건 처리 방향을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어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차례로 검찰 측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오전 재판이 더딘 속도를 이어갔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의견서를 토대로 검찰에 석명을 요구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기준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넘겨진 범행의 수가 129개라며 이게 맞는지 검찰에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변호인들 “휴정기엔 재판 하지 말아달라…재판부도 쉬셔야” 박 전 대법관은 증인신문 일정에 대한 재판부의 검토를 요청했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휴정기에도 재판을 할지 검찰과 변호인들에 의견을 물었다. 법원은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 2주간 휴정기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재판은 진행하지 않지만 일부 시급한 사건이나 중요한 경우 재판이 열리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휴정기에도 재판을 이어갔다. 검찰은 “저희가 알고 있는 전례로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하계 휴정기에도 공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판이 많이 늦어졌다는 생각을 저희는 누누이 말씀드렸고 휴정기에 만약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다면 그 전에라도 보충해서 재판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며 재판을 쉬지 않고 열어 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8월 10일이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만큼 검찰은 재판이 늦어지는 데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변호인들은 휴정기에 재판을 하지 말아달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속된 피고인이 있는 경우에 구속기간을 어느 정도 존중해서 재판을 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감안이 되는 게 맞지만, 구속 기간 안에 기일 진행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사건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시 일반 원칙으로 돌아가 휴정기 지침에 따른 기일 지정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여름에 하계 휴정기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오래된 관습법에 해당한다. 재판부도 쉬셔야 되고 증인도 쉬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재판하는 게 고군분투, 악전고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다가 좀 기간을 주시면 저희가 정리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박 전 대법관 변호인), “증인신문에 들어간 뒤에는 3~4주 일정을 소화한 뒤 한 주 쉴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재판부도 좀 쉬시고 정리하실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 대법관 변호인) 매주 두 차례씩 온종일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에 대한 걱정도 새삼스레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이날 재판은 오후 9시 23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임 전 차장의 이동식 저장장치(USB)에서 확보된 각종 파일들과 검찰이 증거로 낸 출력물이 같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박 전 대법관 변호인 측 요구에 따라서다. 오후 2시 20분부터 시작된 검증기일이 7시간 이어져 1142건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임 전 차장의 USB 속 파일과 검찰의 출력물과 내용과 형식이 같은지 확인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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