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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결혼식’에 전국민 감동했다니…

    ‘고아 커플의 지하철 결혼식’은 대학 동아리 학생들의 연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6일 호서대에 따르면 이 학교 연극과 동아리 ‘연극사랑’ 학생 7명은 지난 10일 서울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을 지나는 전동차 안에서 ‘결혼식’이라는 실험극을 3차례 공연했다. 연출은 조교 신진우(25)씨가 맡았고 신랑신부는 이기린아(21)씨와 조윤정(23ㆍ여)씨가 맡았다고 학교측은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신씨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상황극을 꾸몄다. 일부 여성 승객이 눈물을 흘리는 등 반응이 너무 좋았던 게 문제였다. 당시에는 연극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관객분들을 우롱하는 것으로 판단해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하철 결혼식’이 연극임이 알려지자 비난하는 글과 옹호하는 글이 오르고 있다. 네이버 게시판에서 아이디 iq4001은 “연극이라는 걸 감추고 연극을 하는 것은 남을 기만하는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아이디 declared는 “가난한 연인의 사랑을 보고 도와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멋지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친부모님 보셨죠”… 도슨의 ‘설원 아리랑’

    1978년 어느 겨울날, 강보에 싸인 사내아이가 부산의 한 파출소 계단에 버려졌다. 고아원으로 보내진 이 아이는 4살 때 한국 땅을 떠나게 된다.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에서 스키 강사로 일하던 마이크-데보라 도슨 부부에게 입양된 것.●양부모 사랑에 입양고통 잊어토비 도슨(28·한국명 김수철)에게 스키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장시간의 비행을 거쳐 베일에 도착한 첫 날, 양아버지 마이크는 눈으로 뒤덮인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해 하는 꼬마를 슬로프로 데리고 나갔다. 혹시나 다칠까봐 벨트를 아이의 가슴에 묶고 자신의 손에 꼭 쥔 채 눈밭에서 마음껏 뒹굴게 했다. 이들 부부의 애정은 각별했다.토비가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도록 1년 뒤 서울에서 동생 K.C. 도슨(한국명 김권)을 또 입양했다.4살때 스키에 입문한 그는 12살때 모굴로 전향했다. 슬로프를 질주할 땐 잊을 수 있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여느 입양아와 같았다. 하지만 도슨 부부는 아들에게 출신배경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 음식과 문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양부모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 덕에 도슨도 자신을 버린 한국을 포용할 수 있었다. 한국말도 조금 배웠고, 입양가족을 위한 상담원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고민을 안은 아이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애썼다.정신적 안정을 찾으면서 도슨의 스키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02∼03시즌엔 세계랭킹 2위에 올랐고, 지난달 열린 05∼06시즌 프리스타일 월드컵스키에선 올림픽 챔피언인 얀네 라텔라(핀란드)를 꺾고 정상에 섰다.16일 토리노 북부 소재 둘스 조벤소에서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에서 도슨은 26.30점을 획득, 데일 베그-스미스(호주·26.77점)와 미코 론카이넨(핀란드·26.62점)에 이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1차시기에선 긴장한 탓에 6위에 머물렀지만,2차시기에서 720도 공중 회전묘기 등 고난도 연기로 높은 평점을 얻어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것. 도슨은 “이제야 양부모가 내게 투자해 온 값을 한 것 같다.”며 활짝 웃으면서도 “친부모를 찾는 일은 천천히, 신중하게 계속하겠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친부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면서 혼란스러웠던 과거를 감추지 않았다.●다음달 1일 방한 예정하지만 도슨의 ‘뿌리 찾기’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2004년 2월 국내에서 열린 모굴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데 이어 새달 1일 지산리조트에서 개최되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대회에 출전, 어디에선가 지켜 보고 있을 친부모에게 당당하게 자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유색쌀’ 효능과 종류

    쌀은 찰벼와 메벼로 나뉜다. 녹말인 전분구성 가운데 아밀노스가 20% 안팎이면 메벼, 전혀 없으면 찰벼로 분류된다. 찰벼에는 아밀노스 대신 수분이 차 있어 건조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빛에 반사돼 황백색의 뽀얀 빛을 띠게 된다. 벼의 ‘조상’은 당초 붉은 색이었으나 자연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흰색으로 많이 바뀌었다. 쌀에는 전분 이외에 단백질과 아미노산, 섬유질, 비타민, 색소 등의 성분이 있다. 이 가운데 색소에는 노화방지와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항산화물질인 탄닌계와 안토시아닌계가 포함됐다. 이를 특화한 품종이 붉은색 계통의 흑진주벼와 적진주벼, 조생흑찰벼다. 특히 흑진주벼에는 피부질환 효과가 탁월해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물질이 나왔다. 조생흑찰벼는 흑미와 찰벼를 결합, 한과용으로 쓰인다. 찰기가 메벼와 찰벼의 중간으로 저당 현미인 ‘백진주벼’는 당뇨병 환자에 유용하다. 식이섬유가 보통 쌀보다 3배 이상 많아 비만 환자의 체지방 감소 효과가 입증된 ‘고아미2호’도 개발됐다. 콜레스테롤 분해 기능이 있는 홍국균을 쉽게 발효시킬 수 있는 메벼인 ‘설갱벼’도 나왔다. 혈압강화와 항암, 항균 효과가 있다. 설갱벼에 홍국균을 발효시키면 자주색으로 바뀐다. 단백질인 라이신이 많이 함유된 ‘영안벼’는 이유식에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신장병이나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제거한 ‘저 단백미’와 철분·아연 등 미량원소의 함량을 높인 ‘미네랄 쌀’도 나오게 된다. 밥맛을 좋게 하기 위해 냄새나는 쌀, 즉 향미(香米)도 12가지나 개발했다. 향미에다 찰벼 성분을 첨가시킨 ‘설향찰’과 ‘아랑향찰’도 나왔다. 일반 쌀에 향미와 찹쌀을 각각 10%씩 섞으면 밥맛이 좋아진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풋풋한 10대들의 무서운 비상

    풋풋한 10대들의 무서운 비상

    최근 들어 10대 여성 연예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국민 동생’ 문근영(19)에 이어 고아라·박신혜·이연희·한효주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는 신인 하이틴 스타들만도 줄잡아 10여명에 이른다. 지난 1980년대 채시라·하희라·이미연 등이 10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면 2006년에 들어 10대 스타의 전성시대가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한 문근영이 몰고온 10대 스타 신드롬은 드라마와 영화,CF 등에서 두드러진다. 청소년드라마 ‘반올림’,‘반올림2’의 주인공 고아라(16)는 활발한 여중생·여고생 역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말 디자이너 앙드레 김 패션쇼에서 최연소 모델로 발탁, 성숙미를 보이기도 했다. 이미 드라마와 영화 섭외가 이어져 2∼3편에 출연한다.3월부터 방송되는 ‘반올림3’에도 뮤직비디오·CF 출연으로 얼굴을 알린 신인 정성미(16)가 발탁됐다. 최세경 PD는 “10대 연기자들은 일찍부터 연기교육을 받아 빨리 틀을 갖출 수 있다.”면서 “성인 연기자 못지않게 성숙할 뿐더러 뮤직비디오·CF·미니시리즈 아역 등을 통해 개성과 끼를 갖춘 배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100% 촬영 중인 SBS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는 박신혜(16)가 출연, 한류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배운 일본어 실력을 발휘, 눈길을 끈다. 박신혜는 “전작 ‘천국의 계단’에서 맡았던 아역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숙한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뮤직비디오, 드라마,CF 출연에 MC 등 다양하게 활동해온 한효주(19)는 최근 관객 600만명에 육박한 영화 ‘투사부일체’에 출연, 풋풋한 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다음달부터 KBS에서 방송되는 윤석호 PD의 계절시리즈 완결편 ‘봄의 왈츠’의 주인공을 꿰찼다. 전작들에 출연한 송혜교, 최지우, 손예진과 차별화해 신인으로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최근 개봉한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 현빈의 파트너로 출연, 여성 관객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연희(18)도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메인 타이틀곡 ‘인사’를 불러 노래실력까지 과시했다.170㎝의 키에 청순한 외모로, 각종 CF와 뮤직비디오, 드라마 등을 누비고 있다. KBS 드라마 ‘황금사과’에서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고은아(18)도 171㎝의 키에 개성 있는 외모의 CF모델 출신으로 최근 MC로 활약하는 등 끼를 과시하고 있다.9일 개봉한 영화 ‘썬데이서울’에도 봉태규·이청아 등과 함께 출연,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CF모델로 시작해 지난해 영화 ‘제니 주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민지(17)도 최근 화장품 CF와 드라마 등에 출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와 함께 댄스그룹 동방신기의 ‘마법의 성’ 뮤직비디오에 출연, 주목받은 임윤아(16)는 패션잡지와 CF 등에 출연,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관계자는 “고아라와 이연희 등도 동방신기 뮤직비디오에 출연, 가능성을 보인 뒤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CF·뮤직비디오 출연을 통해 기본기를 닦은 10대 연예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쌀 색소가 영양성분 열쇠”

    성인병이나 피부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건강지킴이 쌀’이 개발될 수 있을까. 농촌진흥청 산하 작물과학원의 김홍열(54) 박사는 “충분히 가능하며 현재 이같은 기능을 갖춘 신품종 쌀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5년 뒤에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는 기능성 쌀이 시장에서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약품 쌀’이 나온다는 얘기인가. 김 박사는 ‘의약대체 신소재 기능성 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한 효능을 지녔지만 치료 목적의 의약품은 아니라는 것. 쌀의 색깔을 내는 색소 등에서 특수성분의 기능성 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쌀에는 여러가지 색소가 있으며 각 색소마다 특이한 성분이 있다.”면서 “최소한 그 성분만 밝혀도 건강에 도움되는 다양한 쌀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포만감을 오래 느낄 수 있는 성분을 활용해 비만과 당뇨 환자에 적합한 쌀(고아미2호)을 개발한 게 대표적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기능성 쌀의 개발은 쌀 소비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색미 등의 쌀은 일반 흰쌀과 섞어 먹기 때문에 기능성 쌀에 대한 수요가 늘면 일반 쌀의 소비도 증가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쌀시장 개방을 맞아 농가에는 대체소득을 올려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논 면적이 현재의 100만㏊에서 점차 75만㏊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습지인 논에 심을 수 있는 대체작물로는 쌀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색깔뿐 아니라 벼알의 크기와 모양을 조합한 쌀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벼알의 크기는 0.5㎝에서 2㎝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까만 색깔에 참깨만 한 쌀을 조합하면 좁쌀형 까만 쌀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 김 박사는 특히 “종자에 감마선을 쪼이거나 화학물질을 처리, 염색체에 변화를 주지만 새로운 종의 동·식물을 만드는 유전자 변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내 작물분야의 유전육종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 박사는 서울 농대에서 조교와 연구원 활동을 하다가 20년전인 1986년부터 농진청에서 신품종 개발을 주도해 왔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경영은 일종의 전쟁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경영인들은 군사 고전 ‘손자병법’으로부터 커다란 지혜를 얻는다.‘손자병법’은 요즘으로 말하면 신세대 지식인인 손무가 쿠데타로 막 정권을 잡은 오나라 왕 합려에게 내놓은 군사전략보고서다.6000여개의 한자로 이뤄진 이 전쟁에 관한 짧은 보고서는 지금도 국경을 초월해 널리 읽힌다.‘손자병법’에는 단순한 전쟁의 기술을 넘어선 철학과 휴머니즘이 있고, 현대를 살아갈 치열한 생존전략이 담겨 있다. 경영자들이 ‘손자’를 즐겨 찾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칭기즈칸이다.‘손자병법’이 선인들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한 병법서라면, 칭기즈칸의 전략 사상은 오로지 스스로의 실전 경험을 통해 쌓아올린 것이다. 그런 만큼 더욱 생생한 데가 있다.‘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김보경 옮김, 일빛 펴냄)는 최근 부쩍 주목받고 있는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다. ‘CEO 칭기즈칸’이란 말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만큼 벤치마킹의 대상이 돼 왔다는 얘기다. 칭기즈칸에게는 아시아의 비옥한 들판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침략자,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야만인 등 혹독한 비난이 따른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자신의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칭기즈칸을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간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으며, 세계적인 CEO 잭 웰치는 “21세기는 새로운 유목사회이며, 나는 칭기즈칸을 닮겠다.”고 했다. 이 천년의 영웅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는 짐작한 대로 노마드, 즉 유목민의 정신을 강조한다. 인류가 1만년의 정착생활을 끝내고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세계를 떠도는 신(新)노마드 시대, 유목민의 상징인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것이다. 아시아 내륙의 초원을 떠돌던 몽골족을 통합하고 10만명의 기마병으로 태평양에서 지중해까지 동서 8000㎞의 대제국을 지배한 칭기즈칸. 그에게는 남다른 통치철학과 글로벌 경영전략이 있었다. 비록 유목민의 흉포함과 잔인함으로 몽골제국을 건설했지만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 잘 짜여진 조직체제와 효율적인 정보망, 기술자를 죽이지 않는 기술우대 정책,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개방적 리더십 등은 오늘날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반드시 주목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책은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43가지의 칭기즈칸 관리잠언을 통해 진정한 ‘노마드 경영’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칭기즈칸의 대표적인 전법 가운데 하나가 대우회(大迂廻) 전략과 번개전술이다. 대우회 전략은 몽골인의 사냥 습관에서 비롯됐다. 특징은 속도와 흉포함. 일단 광활한 전투 공간을 확보한 뒤 집중 공격, 분할 포위, 신속 돌격, 원거리 기습, 위장 퇴각, 이동 중 공격 등의 방법을 두루 사용한다. 칭기즈칸은 송나라와 금나라의 원한관계를 이용, 송나라의 길을 빌려 전략적 대우회를 했고 송의 군대와 연합해 금나라를 섬멸했다. 중국의 ‘가전왕국’ 갈란츠가 에어컨 시장을 공략할 때 구사했던 방법이 바로 이같은 대우회 전략이다. 스피드 경영의 중요성은 “계속 이동하면 살고, 성을 쌓으면 패배한다.”는 말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백락(伯樂)이 나고 천리마가 났다.’는 옛말이 있다. 백락은 춘추시대 천리마 감정의 명인. 천리마가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이 없으면 천리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른바 인재경영, 인재제일주의를 강조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칭기즈칸의 기술자관(觀) 역시 이와 통한다. 몽골군은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저항하면 모든 사람을 다 죽일 만큼 잔인했다. 하지만 기술자만은 예외였다. 어느 나라 어느 성을 함락하든 기술자는 학살 대상에서 제외해 몽골제국의 무기 제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문화발전에 기여하도록 했다. 이같은 기술우선주의는 신기술을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오늘의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칭기즈칸의 잠언들이 모두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름의 정신적 각성을 얻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칭기즈칸 경영학’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1만 2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지자체, 복지예산 ‘맘대로 축소’

    아동복지시설 지원금의 대폭 축소는 국고보조금 사업의 상당부분을 지난해 분권교부세를 신설해 지방자치단체에 넘긴 것과 연관이 있다. 정부가 분권교부세를 총액 관리 수준으로 점검하다 보니 자치단체들은 자의적으로 배분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인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은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에 국고보조금을 보내면, 지자체가 일정 비율의 자체 예산을 보태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국고보조금은 주어진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자치단체도 국고보조금을 쓰려면 지방비 분담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분권교부세가 신설되면서 530여개 국고보조금 사업 가운데 149개 사업이 자치단체 업무로 바뀌었고, 예산도 자치단체 몫이 됐다. 지차단체가 분권교부세를 자체 판단에 따라 해당 사업에 배분할 수 있도록 재정운용의 자율성이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자치단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데다 국고보조금을 줄 때의 지방비 의무분담 기준도 사라지는 바람에 오히려 이들 사업에 대한 재정투자는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즉, 자치단체 재정능력에 따라 복지시설 지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업별 예산을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려도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서 “예산 편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내지만 권고일 뿐, 강제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행자부 관계자도 “자치단체의 자율성 확대라는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분권교부세 집행내역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권교부세 지원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다.2004년 149개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 규모는 9581억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고보조금을 대체한 분권교부세는 8454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분권교부세율을 내국세의 0.83%에서 0.94%로 높여 1조 24억원을 배정했다. 따라서 이들 사업에 대한 예산 증가율은 2년 동안 4.6% 그쳐 매년 10%를 웃도는 정부 복지부문 예산 증가율은 물론, 전체 예산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분권교부세의 60∼65%가량이 사회복지 분야에 지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국세에 고정시킨 분권교부세는 늘어나는 사회복지 분야 재정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분권교부세 대상사업과 재정규모의 적정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한약 몸보신 20~30대 직장인 ‘부쩍’

    한약 몸보신 20~30대 직장인 ‘부쩍’

    입사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회사원 윤모(26·여)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무려 4곳의 한의원을 찾아 보약을 지어먹고 있다. 밥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힘들기만 하고, 휴일에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피로회복에 좋다는 보약만 벌써 여덟재째. 지금 먹고 있는 보약이 떨어지고 나면 경동시장에 가서 여자 몸에 좋다는 대추 달인 물을 구해 먹을 생각이다. 윤씨는 “입사 전까지만 해도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과음과 스트레스가 이어지다 보니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면서 “얼마 전 회사에서 받은 건강진단에서는 간 수치가 위험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까지 받았다.”고 한숨지었다. 약관, 방년, 이립…. 인생의 꽃봉오리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시기, 그런 창창한 나이에 보약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어르신들은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 호사”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생존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항변한다. 많은 2030이 체력 보충, 만성피로 해소, 피부·키 등 외모 개선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한의원과 병원 등을 찾고 있다. ●“잘 하고 싶은데, 잘 안돼”심인성 피로가 병 불러 한의원을 찾는 2030 가운데 열에 아홉은 푹 자거나 쉬어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피로를 호소한다. 한방에서는 피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번째는 근육에 젖산이 쌓여 느껴지는 생리적인 피로. 운동선수가 무리하게 운동을 했을 때 오는 현상과 같다. 두번째는 실제 간질환이나 당뇨, 결핵 같은 소모성 질환이나 갑상선 질환 등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 세번째는 심인성 피로로 입사 초년병이나 진급시험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이 초조함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생기는 수가 많다. 3년 전 기업체에 들어간 김모(30)씨는 심인성 피로와 질병이 겹친 대표적인 경우. 입사 1년 만에 과음으로 식도염에 걸렸다.2개월 동안 양약을 먹고 치료했더니 반년만에 허리에 이상이 왔다. 한방병원을 찾아 이를 치료하고 나자 막바로 귀에서 이상한 울림이 계속됐다. 대학병원을 찾아 MRI(자기공명영상)까지 찍어봤지만 이명(耳鳴)의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약물치료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다시 한방병원으로 옮겨 3개월간 매일같이 귀에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지만 끝내 완치되지 않았다. 김씨는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이 지경까지 온 것 같다.”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은행원 이모(31)씨도 구조조정 등 회사에서 극한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자꾸 살이 빠지고 혈압이 떨어져 한의원을 찾았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데다 많이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기만 한 생활이 계속돼 병원에 갔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진단만 받았다. 한의원에서는 정신적인 긴장이 지속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이씨의 위장이 무기력해졌다고 진단, 탕약과 침·뜸 등을 처방했다. 이씨는 3개월동안 60만∼90만원 정도의 치료비를 들여 겨우 상태가 호전됐다. ●“키 크게, 피부 깨끗하게” 외모 콤플렉스 시달리는 2030도 취업면접이나 결혼을 앞두고 외모 콤플렉스로 한의원을 찾는 젊은이들도 많다. 여성뿐 아니라 젊은 남성들도 비만을 고민하며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장이 끝난 나이지만 키를 더 크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남성도 많다. 서울 강남의 한 한의원 원장은 “여성의 경우 여드름 등으로 고민하며 피부를 맑게 하고 싶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스트레스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나 생리불순 등과 연관돼 있다.”면서 “의외로 성기 왜소로 고민하거나 뱃살을 빼고 싶다고 하는 은 남성들도 많다.”고 했다. 뚜렷한 질병징후를 보여 아예 병·의원을 찾는 2030도 많다. 회사원 서모(26·여)씨는 눈다래끼와 감기몸살로 2주일째 병원을 찾고 있다. 최근 진행해 오던 큰 프로젝트를 끝내면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 여러 군데에 한꺼번에 이상이 찾아온 것. 며칠동안 안정을 취하면서 낫나 싶었던 눈다래끼는 자리를 바꾸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안과에서는 “다래끼는 피로 누적이나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성인 환자의 경우 잠이 부족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염증이 나은 것처럼 보여도 몸이 피곤하거나 다른 병으로 저항력이 약해지면 지방샘에 숨어 있던 균으로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음식문화 서구화…노쇠현상 빨라지며 성인병도 일찍 찾아와 전문의들은 음식 문화가 서구화되고 급진적인 사회 발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증가하면서 노쇠현상도 빨라지는 것이 ‘2030 허약증’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해 영향 불균형이 되면서 심장과 신장 질환,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이 일찍 찾아온다는 것. 특히 미혼인 경우 이미 부모의 보호를 벗어난 성인인 데다 딱히 챙겨줄 배우자가 없으므로 건강관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병을 키워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동광한의원 채종걸 원장은 “상당수 젊은이들이 이미 증세가 만성화돼 치료가 힘든 것은 물론 병명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로 찾아오곤 한다.”면서 “운동과 식사조절 등 근본적으로 생활습관을 고치면서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윤설영기자 wisepen@seoul.co.kr ■ 한약 알고 먹읍시다 보약은 말 그대로 몸을 보하고 저항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허약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보강하면 생리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좋다는 약재를 쓰기보다는 전문의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고 자기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의학 전문가들로부터 보약에 대한 오해와 음식을 이용한 건강요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젊어서 보약을 많이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애초에 간이 좋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보약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한의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보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대목이다. 혈액순환 촉진이나 피부질환 치료 등을 위해 쓰는 약재는 몸무게와 상관이 없다. 복용방법을 제대로 지키면 원치 않게 몸이 불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보약을 먹으면서 적당한 반주를 하는 것는 오히려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하지만 과음이나 섞어 마시는 술은 독이 될 수 있다. 또 술 안주로 많이 먹는 기름지거나 자극이 심한 음식, 찬 음식은 흡수가 힘들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술보다 더 안 좋은 것은 흡연. 담배를 한번 빨면 온몸 구석구석까지 니코틴이 퍼진다고 보면 된다. 담배를 피우면 온몸의 미세혈관이 사라지고 성 신경이 죽기 때문에 정력이 약해지는 젊은이들도 많다. 보약 외에도 전문가들이 전하는 가벼운 생활 속의 한방요법은 다음과 같다. 스트레스로 심장이 약해지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경우에는 피부빛이 탁해지고 변비가 생기게 되는데 이때 결명자와 율무를 볶지 않고 달여서 한 수저씩 섞어 차로 마시면 좋다. 아욱 역시 변비약에 쓰이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심장이 나쁜 사람은 솔잎을 말려서 차로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고, 해바라기씨를 달여 차로 먹으면 신장에 좋다. 늙은 호박의 속을 긁어내고 팥을 채워 고아서 호박팥죽을 끓여먹으면 몸 속의 불순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리불순은 나중에 불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쑥을 달여 먹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 야콘을 같이 먹으면 피부가 맑아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건강식품도 우선 전문의와 상의를 한 뒤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인스턴트 음식과 자극이 심한 음식을 피하고 하루에 5∼10분이라도 운동을 하는 등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도움말 김병우 상지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한방병원 전 병원장), 유승원한의원 원장, 채종걸 동광한의원 원장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8) 일본의 茶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8) 일본의 茶室

    차를 마시는 공간인 ‘차실(茶室)’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든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차와 선(禪)에 관심있는 많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일본의 차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의 차실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그 가치가 깊고도 넓다. 요즘 들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차인들간의 국제교류다. 한국내 차인 교류가 아니라 중국·일본 차인들과의 교류가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차인들의 최근 관심사는 각 나라의 차의 역사성과 교류, 그리고 그 원류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가에 있다. 2001년 일본내 한국문화원들의 주선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을 초청한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차인회들이 결집해 있는 교토, 도쿄, 고베 등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이었다. 한국문화원들은 한국-일본차 교류를 통한 문화적 교류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차인들간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고베문화원에서의 일이다. 차회에 참석한 차인들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초의차문화연구원에서는 초의 스님의 선차를 선보였다.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는 초의 스님의 선차법은 일본의 차인들이 선호하는 말차의 행다와 많이 흡사하다. 그들은 초의차문화연구원의 행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차인들이 보였다. 행다시연이 끝난 뒤 그중 한 명과 대화를 했다.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맑고 담백한 행다가 참으로 격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의 스님의 행다와 우리 일본차의 행다에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차인은 조심스럽게 초의 스님 행다에 얽힌 의문을 놓고 대화를 시도했다. “초의 스님의 행다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행다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행다와 초의 스님 행다가 비슷한 것은 차 문화 역사가 흘러온 역사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본 차 유파들의 행다와 우리의 행다는 크게 다를 수 없다고 봅니다. 여러 역사적 사료에서 밝혀지듯 일본문화의 많은 부분은 백제와 고구려 등 삼국의 것을 받아들인 것들입니다. 그것에 대해 일정 정도 동의한다면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보여준 행다의 역사와 원형에 대해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만약 여러분들이 백제시대 고구려시대의 차 문화 원형을 유지 보존해 왔다면 당연하게 유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도 옛 행다법을 복원, 그 전통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차회 인사들은 필자의 답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필자의 역사성과 발언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읽혔다. 그들의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문화는 몰라도 초암과 말차로 대표되는 일본 차문화만큼은 충분히 독자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행다뿐만 아니라 일본 차문화의 대표격일 수 있는 초암다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차인들이 일지암을 방문했다. 다음해인 2002년 한국문화의 달을 맞아 일본의 한국문화원들과 연결, 일지암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의 검증과 철저함에 필자는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2차세계대전의 실패를 딛고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그들의 저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2년 5월 일본차회를 대표하는 인사 40여명이 일지암을 찾았다. 일지암 초당을 본 그들은 경악할 만큼 당혹스러워했다. 졸졸 흐르는 유천, 그리고 작고 아담한 봉창을 가진 일지암의 초당, 자우홍련사의 작은 연못과 툇마루를 본 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지암 차실과 행다는 우리 전통 차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의 스님의 선차와 차실은 여러분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행다와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행다와 일본의 행다는 뿌리가 같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본의 한국문화원에서 만났던 초의차문화연구원의 초의스님 행다가 결코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그들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초암차실에 대해서도 그 역사성을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아직도 시골 산간에 남아있는 우리 전통 초가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일본차인들에게 전해진 충격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었다. 눈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진 초가집들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일상화된 삶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차문화의 자존심인 초암다실의 원형이 어디에 있었는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차문화와 차실이 아름다움의 미학 차원에서 준비되고 이루어졌다면 우리의 차와 차실은 바로 삶이었다는 것이 매우 다른 점입니다. 우리의 초가집은 삶의 여유를 즐기려는 차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삶의 전부로 그 기능성을 갖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초가집은 바로 궁핍한 삶속에서도 넉넉한 여유를 담을 수 있었던 우리 민중의 삶을 그대로 닮은 것입니다. 일본의 차실과 우리의 초가집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의 차실은 자연에 조금 더 다가가 차를 마시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일체화를 이루기 위해 작고 아담한 차실을 가꾸고, 차실을 감싸고 있는 봉창(덧문)도 작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초가집의 덧문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탄생했다. 제대로 된 건축설계도 없이 어림 눈대중으로 겨우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초가집인 것이다. 일본차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회귀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차실과 이른바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은 이같은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지방의 토호들인 지방막부들을 동원해 일궈낸 통일의 성과로 돌려주고 분배할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도요토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황금차실이다. 도요토미는 황금차실을 만들어놓고 지방막부들이 참여한 대규모 차회를 열었다. 당시 지방의 막부들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중앙문화에 굶주려 있는 지방막부들의 관심을 사치스러운 엘리트 차문화로 돌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화적 갈증해소를 통해 지방막부들의 불만을 해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황금차실은 아마도 최초의 차 문화상품일 것으로 보여진다. 도요토미는 지방막부들에게 행다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값비싼 도자기 문화를 조성했다. 그러나 송나라의 찻그릇은 너무도 고가여서 지방의 몇몇 막부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빈약한 재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도요토미는 이들을 위해 값싼 조선의 도자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은 일본내의 정치적 목적이 교묘하게 배합된 도자기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다성’으로 불리는 센노리큐와 도요토미와의 관계도 일본 차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다. 당시 센노리큐는 일본차문화의 정신적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도자기를 판매, 이윤을 남기는 찻그릇 상인이기도 했다. 센노리큐는 청나라 도자기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센노리큐의 이윤은 상대적으로 국가로 귀속될 재정에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권력과의 다툼을 피할 수 없었다. 센노리큐는 제자들이 목상을 만들어 추앙하고 경배할 정도로 거대한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 이같은 현상은 당시 최고통치자였던 도요토미에게 큰 부담이었다. 죽음으로 일본차의 세계를 연 센노리큐가 탄생할 수 있는 주·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차실은 한발짝 더 나아가서 통치이데올로기를 형성할 수 있는 담론의 장 역할도 했다. 막부시대로 대별되는 일본의 무사시대는 통치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할 수 없는 파괴적인 권위를 담보하고 있었다. 그런 통치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메워준 곳이 바로 차실이다. 일본의 차실은 평화와 담론의 공간이었다. 무사들도 차실에 들어갈 때는 칼뿐만 아니라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까지 빼놓아야 했다. 차실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정치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차실은 그런 점에서 문화아카데미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초암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센노리큐는 권력자들이 정치적 야망을 비판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황금차실과 비교되는 차실을 창조해낸 것이다. 일본초암차실의 원형은 결국 정치와 자연, 그리고 차와의 절묘한 배합에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교묘하게 정치와 접목시켜 당대의 정신문화를 창조해낸 것이 바로 일본 초암차실의 미학인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차실은 그러면 얼마나 많을까. 그 숫자가 통계학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많은 유파가 존재하듯 수백개가 될 듯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교토의 금일암, 무마모토의 차실, 나고야의 차실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100∼200년의 역사를 갖는 일본의 차실은 매우 많다. 일본통계에 따르면 현재 교토의 사찰 수는 약 2000곳에 달한다. 각 사찰들은 그 사찰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곳에 차실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교토에만 일본의 차실은 2000곳 정도가 존재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역사성을 갖지 않은 일본의 차실은 수만개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자연을 축소지향적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차의 문화를 구현해냈다. 자연 그 자체를 삶속에 끌어들여 정서적인 보편성을 확보했던 우리의 차실과는 너무도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일지암 암주 ■ 日 상국사 차실 이야기 차 교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많은 일화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명원문화재단의 자문역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바로 상국사(相國寺) 차회. 상국사는 태평양전쟁 후 가장 눈길을 끈 지식인 유키오의 작품무대가 됐던 금국사의 원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상국사를 방문한 명원문화재단은 우리 차의례 중 가장 아름답고 고아한 행다미를 주는 육법공양을 시연했다. 육법공양의 전통행다례를 본 상국사와 일본차인들의 눈길은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상국사에서는 두 가지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우리 전통다례 중 하나인 육법공양 시연이었고 또 하나는 온양의 민속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들을 전시한 것이다. 상국사는 정원부터 독특했다. 정원이 사찰의 앞에 있지 않고 사찰의 뒷쪽에 있었다. 그 정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수천년을 견뎌온 듯한 노송들이 숲처럼 우거졌고, 세월속에서 이끼가 끼고 끼어 마치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작은 샘물은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아름다웠다. 상국사의 차실은 그 사찰의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방장실이었다. 방장실 자체가 바로 차실인 것이다. 상국사의 방장은 그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차로서 접대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법(法)도 논하고 있었다. 상국사의 방장 스님은 찾아온 손님들이나 제자들에게 직접 말차를 우려내 권한다. 찻물은 뒤편 정원에서 천년 넘게 바위 틈에 흐르는 물을 사용했다. 자연과 차에 대한 그들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완 역시 매우 진귀했다. 아름답고 품격이 있어보이는 녹유다완을 준비한 방장 스님은 우리에게 물었다.“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한국땅의 작은 연못은 매우 아름답기 짝이 없습니다. 그 작은 연못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연못에 피는 수련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수련의 문양 같은 아름다운 말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그 방장 스님은 검푸른 하늘을 아름답게 밝히고 있는 은하수가 두둥실 떠있는 것처럼, 또한 별이 아름답게 떠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별빛 같은 말차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참으로 쉽게 맛볼 수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일본 차실이 갖는 정신적인 권위와 풍부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실은 매우 아담하고 담백했다. 전형적인 다다미방이었으며, 차의 비조로 불리는 백장선사의 초상화와 백제향로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상국사의 방장 스님이 직접 주관한 차회는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었다. 저 멀리 임진왜란이라는 처절한 민족적 상처 속에서 탄생한 찻그릇으로 보여준 저들의 차 정신 속에 우리의 거친 삶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삶 속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삶이 싹트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조선 찻사발들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보면 그곳에는 우리의 잃어버린 피와 땀, 그리고 도공들의 쓸쓸한 영혼이 아직도 우리곁을 떠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탄생한 조선 찻사발들로 일본의 차인들은 차문화의 품격과 역사성을 높이고 있다. 그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 탓에 한 사람의 차인으로서 한 사람의 민중으로서, 차회 내내 영혼을 속절없이 태우고 있었다.
  • [새영화] 9일 개봉 ‘백만장자의 첫사랑’

    브라운관의 삼식이가 이번에는 스크린에 도전했다.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9일 개봉·제작 보람영화사)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이어받고 있다. 현빈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현빈이 맡은 재경 역은 ‘삼식’을 닮아있어선지 아예 ‘업그레이드된 삼식’을 내세웠다. 그렇기에 꼬치꼬치 따지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절대 금물. 예쁜 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백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멋진 현빈을 큰 화면으로 즐기는 기쁨과, 은환역을 맡은 배우 이연희의 예쁜 모습을 누릴 수 있다. 이연희는 KBS 드라마 ‘해신’에 나왔던 얼굴이다. 재경은 제 멋대로 구는 재벌3세 고등학생.“12자리 숫자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말을 남발하고 다닌다. 그러니 하는 짓이라곤 싸움질이나 외제차 운전 같은 ‘폼 나는’ 것들. 그런데 상속 전선에 이상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원도 산골 고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아야 유산을 주겠다는 유언장이 공개된 것. 재경은 어쩔 수 없이 강원도 산골 고등학교로 전학간다. 이 동네, 딱 동막골이다. 그러니 퇴학당하려고 엉뚱한 싸움을 벌이고,‘큰 거 한 장’으로 교장 선생님을 매수하려해도 통할 턱이 없다. 그런 재경이 변신하는 계기는 은환과의 만남. 은환도 만만치 않다. 친엄마가 자신을 알아보길 간절히 바라는 고아에다, 이쁘고 똑똑하고 마음 씀씀이도 좋고, 여기에다 몹쓸병에 걸려주는 센스까지 고루 갖췄다. 당연하게(!) 이 둘은 토닥거리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가는데…. 영화의 두 축 재경과 은환이라는 캐릭터를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간결하게 제시하는 영화 초반부나, 마지막 부분을 울고불고 하는 사랑타령으로 채우지 않았다는 점 등은 미덕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재경과 은환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되는 건 아무래도 걸린다. 따라잡아야 하는 관객들로선 숨이 찰 뿐 아니라 재경의 캐릭터가 ‘시건방진 부잣집 도련님’과 ‘철부지 고등학생’ 사이에서 너무 심하게 널뛰는 바람에 야누스 같다.12세 이상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실전논술] 학교의 역할과 오늘날의 대학

    ●다음은 황종희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일부이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러한 역할이 오늘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나 옛날 성왕들의 의도는 단지 거기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반드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학교를 설립하는 의의가 갖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정에서 서열을 정하고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활동,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는 후생 복지 사업, 신속한 법 절차, 전쟁 상황에서의 통신 체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장병의 징집, 커다란 소송 사건에 연루된 관리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소환 조사, 큰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조상에게 흠향하는 일 등이 모두 옛날 국립 대학인 벽옹이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비롯된 제도인데, 그렇다고 물론 이러한 일들만을 모든 구비 조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조정에 있는 군주로부터 방방곡곡의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군주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요, 군주가 그르다고 해서 반드시 다 그른 것만도 아니다. 군주라도 함부로 자신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옳고 그름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 학교는 오로지 인재만을 길러 내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삼대 이후로 천하의 옳고 그름은 한결같이 조정에서 결정하여 왔다. 그래서 천자가 칭찬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옳다고 말하였고, 천자가 욕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그르다고 하였다. 문서 정리, 회계, 조세, 군사, 소송 등의 실무적인 일들은 하급 관리들에게 위임시키고 다만 세속의 풍습이나 대중적 유행을 벗어난 몇몇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마땅히 세속적 거래나 술수가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학교란 과거 시험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부귀 영화의 꿈을 불태우는 곳이 되었고, 마침내 조정 내에서 일어나는 세력과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본령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선비들 가운데 재주와 덕있는 학자들은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덕을 닦고 학교와는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교는 그나마 인재를 길러내는 마지막 남겨진 기능마저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의 설립 취지는 서원 형태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조정의 생각과 노선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만약 서원에서 그르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서원에서 옳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그르다고 비난하였다. 서원에서 주장하는 일이라면 그 진실이 어찌되었든 무조건 거짓된 학문이라 하여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거나 서원을 철폐하거나 탄압하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조정의 권력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들었다. 그래서 벼슬하지 않은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면서,“이 자는 천하의 사대부들을 선동하여 조정을 배반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당초에 학교는 조정과 각별한 관계는 없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조정과 학교는 대립하면서 마침내 인재를 길러내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인재들을 해치며 탄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학교라는 이름만 남겨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동한(東漢) 시대 태학(太學)의 3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권력자들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통렬하게 비판하자 공·경·대·부 등 고위 관리들은 그들의 비판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송나라 시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대궐문 앞에 모여 북을 두드리면서 이강(李綱)의 복직을 강력히 청하기도 하였다. 하·은·주 삼대가 남긴 유풍 중에서 오직 이러한 사실만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조정 중신들에게 학생들의 옳고 그르다는 기준에 따라 그들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게 하여 장차 도적의 무리들과 간신배들이 학생들의 올곧고 준엄한 기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군주도 편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의 일이 쇠퇴하여 간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해가던 원인은 당인을 잡아들이고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을 유배 보냈기 때문이며, 게다가 학교를 파괴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의 사람들만 탓하고 있다. 아!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아 군주에게 맡겨서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였으나 밭을 주던 법은 사라져 백성들은 밭을 사서 스스로 먹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금을 부과하여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교를 폐지시켜 백성들은 바보처럼 교육받을 기회도 잃게 되었는데 오히려 권익과 이익만으로 그들을 유혹하니, 이는 매우 어질지 못한데도 공허한 이름으로 칭송해 높여 군부(君父)라 부르니, 누구를 속일 수 있겠는가? ●지문의 분석 교육의 역할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가 담겨 있는 이 책의 제목은 퇴조하는 명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정치 체계 내지는 원리를 세워 어진 군주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맹자의 민본 사상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하·은·주 삼대의 정치를 이상으로 국가 체계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천하의 정치는 한 성(姓)의 흥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과 행복의 문제임을 밝히고, 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을 여러 사람이 큰 나무를 옮겨 가는 모양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제시문은 그 중 학교 역할의 변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학교는 인재 양성 기관이라는 점을 전제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학교 설립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말하면서 학교는 단순히 인재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가지도록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비 판단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역사적으로 학교가 인재를 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과, 대학을 파괴하면서부터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학교의 역할, 학생들의 직언, 대중 운동의 정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하여 분석한 후에 이를 다시 우리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시문에 나타난 학교 교육의 역할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의하면, 학교는 우선 천하를 다스리는 수단을 제공하고 성인의 감회를 가르쳐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관대한 기풍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시비를 판단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본래적인 역할이 변질됨으로써 과거 시험을 위한 경쟁, 세속적 욕망의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재 양성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학교 교육은 통치 원리의 제공, 국민 인성의 함양, 시비의 판단, 인재 양성, 권력 비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용 분석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이러한 학교 교육의 역할을 오늘의 대학에서도 똑같이 담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수험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제시문에 나타난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역할을 전적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어느 관점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지만, 어떤 주장이든지 논거가 분명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제시문을 토대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것을 오늘날 대학과 연관지어 논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제시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논술문의 주제로는 ‘전문적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의 대학은 전문성을 지닌 인재 양성의 책무에 전념하고 인성 교육을 통해 전문적 능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면 자연스러운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역할 분담에 대하여 언급하고 학교의 역할 변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 본론을 이어가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도입하면 논의의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주어진 논제대로 제시문을 분석하여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나타난 인재 양성과 권력 비판 등과 관련지어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면 된다. 이어서 사회와 학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논지를 이어가면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 현안과 관련지어 언급을 하면 그만큼 논의가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제시문의 내용 핵심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해 논점을 이끌어내고 있는지가 채점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오늘날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이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한계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 논의가 심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앞부분에서 논의한 학교의 역할과 그 역할이 대학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핵심적 주장을 요약해 강조하면서,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고양과 교육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강조하며 마무리지으면 좋은 답안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신은 사랑” 性상품화 비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첫 회칙(回勅)에서 ‘성의 상품화’를 비판하면서 기독교적인 사랑으로의 회복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선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5일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라틴어 및 7개 언어로 발표된 ‘신은 사랑이다’란 제목의 회칙에서 교황은 “육체적 사랑이 상품처럼 사고파는 물건으로 추락했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도 상품으로 전락했다.”면서 사랑의 회복을 강조했다. 회칙은 교황이 작성한 최고형식의 문서로 첫 회칙은 새 교황의 재위 중 교황청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가늠대로 간주된다. 교황은 “전세계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기독교적인 사랑이 필요하다면 가톨릭 교회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또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교회 자선활동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고 기독교의 신앙의 토대라면서 자선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황의 주요 관심을 보여주는 71쪽 분량의 회칙은 그의 재임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그는 기독교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과 불공정한 세계에서 더 큰 자선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네딕토 교황은 회칙에서 과부와 환자, 고아를 돌보는 교회의 자선활동이 성사(聖事)나 복음전파만큼이나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같은 발표에 대해 바티칸 주요 성직자들과 학자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보수적으로 알려진 베네틱토 교황이 생명윤리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할 것으로 예상했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박상면, 설날 특집극서 사기꾼역

    “따뜻한 감동과 향수로 시청자들에게 세배를 올리겠습니다.” 박상면이 이번 설 안방극장을 통해 박치기왕 레슬러 김일로 변신한다. 지난 20일 막바지 촬영에 땀을 쏟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런데, 어색하다. 몸에 쫙 달라붙는 검정색 삼각팬티 위로 옆구리 살이 날개를 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뱃살도 출렁∼.1960∼70년 대 ‘레슬링 전설’로 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 알고보니 그는 가짜(!) 김일이었다. SBS가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설날 특집 드라마를 마련했다.30일 오전 10시부터 방영되는 ‘박치기왕’(연출 김진근, 극본 이희명)이다. 이 드라마에서 박상면은 김일 행세를 하고 전국 시골을 돌며,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 역할을 맡았다. 때는 1960년 대 중반.TV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 시골 사람들은 라디오로만 김일 경기를 접했다. 때문에 교도소에서 만난 김철석(박상면)과 호미(이재포) 등은 순박한 사람들을 속여 돈을 뜯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박치기왕이 박정희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탓에 가는 고장마다 군수가 찾아와 굽신거린다. 코믹 풍자극은 고아 대복(원덕현)이가 등장하며 감동 드라마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동네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던 대복이는 김일이 자기 아버지이며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철석 일행은 역시 사기를 치러 대복이가 사는 마을에 들른다. 폐결핵으로 시한부 삶 선고를 받은 대복이를 보살피던 초등학교 여교사(윤세아)는 철석에게 대복이 아버지 행세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알고 보니 대복이는 오래 전 철석이 고아원에 보냈던 진짜 아들이었다. 영화 ‘반칙왕’ 이후 6년 만에 다시 레슬러 연기를 하게 된 박상면은 “한 달 정도 이왕표 관장 등에게 훈련받았는데 정말 힘들다.”며 너스레를 떤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겨울에 홀딱 벗고 난방기도 없는 체육관에서 촬영하는 것. 삼각팬티만 입는 것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라고 쑥스러워하기도 한다. 또 배가 나오니까 촬영 전에는 절대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막상 벗고 촬영하는 것에 익숙해지니 몸매가 어떻게 비춰질지는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최근 연극으로,KBS 1TV 대하드라마 ‘서울 1945’로 눈코 뜰 새 없는 그가 이번 특집극에 굳이 출연한 이유는 엔딩 장면이 감동의 물결이었기 때문이다. 대본을 읽으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박상면은 “재미와 감동이 동시에 담겨 있다.”면서 “설날 안방을 포근하게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병든 아이 입양한 ‘처녀 천사’

    19세 처녀가 아이를 입양할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국 루턴시(市)에 거주하는 새라 웨이드(사진 오른쪽)는 19살 때 어린이들을 버리는 것으로 악명 높은 루마니아의 집시 수용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한살짜리 딜런을 양육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딜런을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선 숱한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입양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의욕적으로 기획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BBC 방송 인터넷판은 25일(현지시간) 방영 예정인 다큐멘터리 ‘내 아이 만들기’를 제작하면서 녹취한 그녀의 경험담을 전하고 있다. “그애를 처음 봤을 때 3∼4개월짜리로밖에 안 보이더군요. 앉지도 기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머리조차 들지 못했어요.”태어나면서 뇌사와 비슷한 저산소증을 앓은 딜런은 폐렴과 기관지염에 중증의 빈혈까지 앓고 있었다. 웨이드가 안아올릴 때마다 딜런은 울음을 터뜨렸다. 고아원 의사는 그가 결코 걷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날리는 다른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웨이드의 눈에는 자꾸 딜런이 밟혔다. 그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입양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딜런을 그 암울한 고아원에서 빼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딜런을 데려온 이튿날부터 그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안을 때마다 터뜨리던 울음을 멈췄고 깍지낀 채 얌전히 앉아 있기도 했다. 확연히 달라진 딜런을 보고 입양을 결심한 그녀에게 루마니아의 어린이 보호 담당관은 “배 아파 낳은 아이가 아니다.”는 사실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웨이드가 딜런의 병력을 이야기하자 이 담당관은 “그러니까요, 그냥 평범한 아이를 데려가지 그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영주권을 얻어야만 입양할 수 있다는 말에 웨이드는 당국과 기나긴 실랑이를 벌인 끝에 손에 넣었다.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일은 매일 아침 딜런에게 먹일 것을 요리하고 낯선 사람에게 발길질을 예사로 해대는 딜런을 친엄마처럼 돌보는 일이었다. 지난 2004년 11월 딜런은 유치원에 들어갔지만 친구들을 이유없이 때리는 바람에 웨이드는 걸핏하면 학교에 불려다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딜런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그녀는 말했다.웨이드는 지금 ‘루마니아 도움’ 재단을 창설, 딜런같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가정을 찾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BBC는 덧붙였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청소년드라마 ‘반올림#3’ 공개오디션 현장

    청소년드라마 ‘반올림#3’ 공개오디션 현장

    “경력은 없지만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를 발탁했지 않습니까? 일단 뽑아주시면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옆 사람이 CF는 기본이고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단역 출연 등 경력을 줄줄 읊는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일장연설로 심사위원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연예인이 선호 직업 상위권에 오르는, 너도나도 스타를 꿈꾸는 세상이다. 여기저기서 오디션이 열리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최근 ‘제2의 비 만들기’ 프로젝트에는 무려 4000여 명이 몰렸단다. 지난 18일 KBS 신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청소년드라마 ‘반올림#3’ 공개 오디션 현장을 엿봤다. 자기소개, 특기, 연기로 꾸려지는 1차 예선.6인 1조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1∼2분. 빗자루를 소도구로 들고 등장하기도 하고, 그냥 입던 교복 차림으로 나오기도 한다. 왕에서부터 불량 청소년까지 연기 스타일도 다양하다. 특기는? 통기타, 플루트 연주에서부터 기성가수 뺨치는 노래와 브레이크 댄스, 부채춤, 심지어 태권도 발차기까지 나왔다. 연기학원이나 기획사를 통해 철저한 준비를 해온 지원자도 많았다. 심지어 같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행여 심사위원이 관심을 보이면 옆에서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쏟아진다. 아무 것도 준비 못했다며 인사만 꾸벅하고 내려가는 친구도 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10∼20초 정도 “아악∼!”하고 찢어질듯 비명을 지르더니 “다 보여 드렸습니다.”하고 내려간다. 이어지는 박장대소. 심사위원이 나직하게 말하는 “오케이”가 전국노래자랑에서의 “땡” 소리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읍소(泣訴)가 넘쳐난다.“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조금만 더 보여 드리면 안돼요? 더 재미있는 게 남았는데….” 무대 밑으로 달려가 심사위원들의 다리라도 붙잡을 태세다. 1년 정도 연기 공부를 했다는 박은식(17)군. 무대에 서자 말문이 막혔다. 더듬거리는 게 안쓰러웠는지 심사위원들이 조금 있다가 해보라고 한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첫 순서였는데 마지막에야 다시 무대에 섰다. 오디션을 마쳤지만 못내 아쉽다. 그는 “머리 속이 텅 빈 것처럼 평소보다 더 떨렸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이날 오디션에는 고아라(‘반올림#1,2’의 여주인공)를 꿈꾸는 지원자 223명이 몰렸다. 오후 6시에도 밖에는 100여 명이 초조하게 1차 예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올라왔다는 서하재(18)군의 번호는 204번. 낮 12시에 왔는데 이미 줄이 길었다. 무려 7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오래 기다렸지만 연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생각하면 지루하지 않던데요.”라고 했다. 오디션은 이튿날(!)까지 이어졌다.50명이 살아남아 자정쯤 2차 예선에 들어갔다. 상황을 설정해 놓고 즉흥 연기를 펼치는 시간이다. 여기서 15명이 눈물을 뿌렸다. 가대본을 받아 보고 연기하는 3차 예선이 끝난 시간은 19일 새벽 3시. 무려 13시간이나 걸렸다. 오는 3월 전파를 탈 ‘반올림#3’에 투입될 새 얼굴로 낙점 받은 응시자는 모두 12명.8명은 연기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었고, 나머지 4명은 전혀 없었다. 최세경 PD는 “연기학원이 많다 보니 지원자들 연기도 특색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격렬한 연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연기가 눈에 띌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리랑/이상배 글·김세현 그림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이 있었다.‘아라’산이라고 했다.…고갯마루에 늙은 소나무가 우뚝 서 있다.…눈길이 가는 데까지 들녘이다.” 아이들에게 읽힐 창작동화 치고는 운을 떼는 품새가 범상찮다. 인기 동화작가 이상배의 ‘아리랑’(김세현 그림, 파랑새어린이 펴냄)은 첫장부터 우리말의 유려한 질감이 혀끝을 착착 감친다.‘우리 노래’ 아리랑의 유래를 작가 나름대로 재구성했으니 불끈불끈 서사의 힘줄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난한 소작농들이 많이 모여사는 작은 고을 구만리. 김 좌수의 집에서 대물림 종살이를 하는 고아 머슴 리랑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그런 어느날 우물가에서 말뚝댕기를 한 반빗간(음식 만드는 곳) 소녀 성부를 만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에게선 그리운 어머니 냄새가 난다. 흉년이 극심해져 김 좌수가 곡식을 있는 대로 빼앗아가자 견디다 못한 리랑과 소작농들이 난을 일으킨다. 김 좌수에게 멍석말이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리랑, 동변상련의 우정을 키우던 성부는 안타깝기만 한데…. 고만고만한 생활동화들 속에 우뚝 키가 커보이는 책이다.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파렴치 벼슬아치와 소작농들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모처럼 색다른 글 소재의 향미를 만끽할 듯하다. 순우리말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달구비’‘똥탈’‘살꽃’ 등 토박이말의 향연에 배가 불러진다. 책 뒤쪽에 ‘우리말 찾아보기’가 따로 붙어 있어 학습효과를 챙기는 데에도 그만이다. 초등생.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국계 입양아 토비 도슨 동계올림픽 美대표 뽑혀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수철이로 불리던 입양아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미국 대표팀에 선발됐다. 지난 13일 2005∼2006시즌 프리스타일 월드컵스키 남자 모굴에서 우승한 한국계 입양아 토비 도슨(27). 도슨은 남자 모굴에서 27.34점을 얻어 2002년 동계올림픽 챔피언인 얀 라텔라를 물리치고 정상을 차지했다. 모굴은수많은 구덩이와 언덕으로 이뤄진 슬로프를 통과하는 경기이다. 그는 세살 때인 1982년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의 스키강사 부부에게 입양됐다.4살 때 처음 스키를 배웠고, 12살 때 모굴을 시작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가서 살고 싶어요』-「미스·코리어」진(眞)을 자퇴한 김지연양은 이마를 짚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가인박복(佳人薄福)이라고나 할까. 거국적인 미녀뽑기에서 아무튼 제1위를 차지한 여자다. 진을 자퇴하고 주최자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유가 응모자격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지, 그 자태나 용모에 있어서 모자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 본명 김정혜(金正惠), 마감 이틀 전 미장원 마담 권유로 응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러쿵 저러쿵 풍문이 시끄럽게 나돈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요즘 자택(서울특별시 갈월동)에서 바깥 출입을 일절 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방 한구석에 박혀 산다. 일이 모두 수습이 되고 잠잠해질 때까지 얼굴을 내놓기가 싫은 심정이다. 자퇴한「미스·코리어」김지연양의 본명은 김정혜. 1949년 6월 30일 생이니까 만 20세.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287의 1. 평소 자주 드나들던「센추리」미용실「마담」의 권유로「미스·코리어」서울 예선에 응모한 것이 대회 이틀 전인 4월 25일. 응모자「프로필」난에 소개된 金양은 - . 『 … 현재 숙대(淑大) 가정과에 재학 중인 金양은 서울 태생으로 올해 나이 20세 … . 결혼문제엔「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엉뚱하게도「40세가 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신장 166, 무게 51, 36-23-36』으로 되어 있다. 4월 27일 상오 10시 대한체육회관에서 열린 서울예선대회에서 金양은「미스·서울」9명 중에 뽑혔다. 전국 결선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운명의 5월 1일 밤 9시 35분.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미스·코리어」진으로 선발되는 순간 金양은 정신이 아찔했다. 당선의 감격은 벅찼는데 그날부터 소문나기 시작 『뜻밖의 영광에 뭐라 할 말을 잊었다』며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은 잠깐, 다음날부터『「미스·코리어」진은「미스」가 아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입이 빠른 미용실, 양장점 사이로 소문은 삽시간에 확산. 이렇게 되자 金양은 5월 7일자로「미스·코리어」진 사퇴서를 냈다. 심사위원회의 재심이 있고 5월 9일자로 주최측 지상을 통해『1969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된 김지연양은 본 대회 선발규정에 의하여 그 자격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본인이 자퇴하였으므로 당선을 취소합니다』로 정식 발표되었다. 金양은 감격 9일만에「미스·코리어」의 왕관을 되돌려 주어야 했던 것이다. 취소되자 숙대선 “그런 학생 없다” 공한(公翰) 이렇게 되자 金양의 출신교로 알려진 풍문(豊文)여고와 숙대측에서도 해명공한을 냈다. 金양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닌 사실이 없다는 것. 먼저 숙대측이 재학한 사실이 없음을 10일자 공한으로 각 신문사에 밝혔다. 다음은 숙대측 공한 전문. 『1969년「미스·코리어」당선자에 대하여 금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되었다가 그 자격이 취소된 김지연양에 대하여 그가 자칭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이라고 보도된 바 있으나 본 대학교에서는 그의 학적을 둔 사실이 전혀 없사옵기 이에 알려드리오니 보도에 정확을 기하는데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선에서 진으로 당선된 임현정양은 본명이 임희선으로서 본 대학교 영문과 3학년에 재학 중임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1969년 5월 9일.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처장』 당사자인 金양과 그 가족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공한 낸 풍문여고엔 고3까지 다닌 것은 사실 그러자 이번엔 金양이 다녔던 풍문여고측에서도 공한을 띄웠다. 다음은 공한 전문 - . 『「미스·코리어」진 김지연의 학력사항 정정의 일 - 금번「미스·코리어」진에 당선되었다 취소된 김지연이 본교 졸업생인양 보도된 바 있으나 본교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하오니 학력사항을 정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69년 5월 10일. 풍문여자고등학교장』 알고 보면 金양이 풍문여고를 다닌 것은 사실. 그러다 고3 되던 해인 67년 5월 가발을 쓰고 어떤 군인과 극장에 갔다가 여선생에게 적발되어 자퇴형식으로 제적을 당한 것이다. 한편 金양은 여고시절부터 사귀어오던 김태문(23·무직)씨와 그 해(67년) 10월 31일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金양이 정식으로 김태문씨의 호적에 결혼신고 된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10월 28일자. 이런 金양은 왜「미스·코리어」선발대회에 출전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9일만의 여왕」金양이 밝히는 그 전모는 다음과 같다. 요정 나간다는 건 뜬소문, 그 집 마담과 친한 사이뿐 - 추천자인「센추리」미용원의 유숙자「마담」과 알게 된 것은? 『제가 그곳을 단골로 다녔거든요. 「미스·코리어」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 집에 다니고 있었어요』 - 소문으로는 거의 매일 다녔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나요? 『1주일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어요. 매일 나갈 돈도 없었구요』 - 듣기로는「바」에도 나갔다느니 혹은 한남동에 있는 간판 없는 고급요정에 나갔다는 말도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취소가 되니깐 별의별 말이 다 나오는 거예요. 그 집「마담」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잘 어울려 다녔어요. 그 소문이 난 것이겠죠. 저의 집은 그런 장소에 안 나가도 괜찮을 만큼은 삽니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 술을 따르러 나가겠어요?』 그녀의 조부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있는 일간신문 C일보의 초대편집국장을 지냈다. 아버지 金씨는 현주소에 대지 280평의 4층짜리「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땅값이 평당 10만원은 되는 곳. 그 부동산 값만 해도 2천 8백만원은 된다. 딸에게 충분한 용돈은 안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색하게 딸의 벌이로 살아나가야 하는 그런 가정은 아니다.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을 부모님들이 알고 있었어요? 『전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예선에 당선된 뒤 신문을 보고 부모님이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최자측은 제가 고아가 아닌가라고 몇 번이나 묻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결승날에 겨우 2백원짜리 표를 사서 입장했습니다』 막상 진으로 뽑히고 보니 미녀를 낳은 모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취소가 되었을 때의「쇼크」와 집안 체면 걱정이 컸을 것이다. 金양의 어머니는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요즘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다. - 이미 기혼자이고 숙대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미스」로 둔갑하고 숙대 재학 중이라고 학력을 속였습니까? (응모요령 중의 자격규정에는「1951년 7월 1일 이전에 출생한 미혼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저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예선이 박두해서 미용원측에서 자꾸 나가라고 부채질 했어요. 저는 숙대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콘테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미용원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어물어물 숙대에 다닌다고 했구요, 여자가 또 자기가 기혼여성이라고 미용원에서 밝힐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었어요. 「마담」이 다 적당하게 적어 넣으면 된다기에 맡겨버렸죠』 - 학교관계는 결격이유가 안되겠지만 호적에 버젓이 기혼녀로 되어 있는 것을 몰랐나요? 『호적에까지 그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 일은 있었죠. 그렇지만 입적은 하지 않았고 사실상 별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미혼일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저는 67년 10월 31일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4개월 뒤에는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 계속 별거 중입니다. 그리고 저와 김태문씨와는 이혼하기로 서로 서약서까지 쓴 것이 있어요』 그 서약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968년 10월 21일 이후에 본인 김태문은 김정혜와 해어질 것을 약속함. 21일까지 김정혜는 김태문과 같이 있어야 됨. 만약 이 약속을 이행치 않을 시는 모든 것이 무효임. 헤어지지 않을 시는 내 목숨을 끊음. 1968년 10월 18일. 본인 김태문(지장), 김정혜(지장)』 이러한 서약서를 교환한 뒤 10월 28일에 남자쪽이 멋대로 입적시켰다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 학력관계는 어떻든 결혼문제에서는 법률적으로「미스」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군요. 『네, 그런데 제가 호적상 기혼자로 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호적을 펴 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미스·코리어」로 당선되면 외국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다는 소문인데. 『별의별 소문이 다 나죠. 세상사람들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지금 심경은 외국에 나가고 싶습니다』 - 진으로 뽑혔다는 자부 같은 것은 있겠죠? 『네, 거기 나온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제가 진으로 뽑혀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 세상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배운 점이 있다면? 『저를 뽑아주신 주최자에게 감사드리고 싶구요. 그 다음에는 어린 제가 앞으로는 만사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찮은 저로 인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점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 시아버지는 “며느리 잘못 둔 덕에 기막혀” ◇ 김태문씨 아버지의 말 창피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며느리 한번 잘못 둔 덕택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둘이 서로 알기는 우리애(태문)가「카투사」로 미8군에 근무할 때부터다. 둘이 좋다는데 부모가 어쩔 도리가 있는가? 정혜가 학교를 그만두던 해인 67년 가을에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주었다. 혼인을 끝내곤「벌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68년 2월) 둘이 따로 나가서 살아보겠다기에 다 큰 애들을 굳이 시부모 밑에 잡아둘 생각도 없었기에 살림을 내보냈다. 처음 저희들 말로는 신촌 어디다 전세방을 얻는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집에 가서 같이 산 모양이다. 「미스·코리어」로 뽑힌 다음 친정집 두 처남이 찾아와『제발 이혼을 해주어야 이번 일이 무사해진다』면서 이혼하자기에 너무 어이없는 일이 되어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은 어떤 회사에서 찾아와 또 그런 이야길 하길래『며느리한테 속은 것도 괘씸한데 당신네 사업을 위해 이혼하라니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 호적만 해도 그렇지 양가 부모가 다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까지 올려놓고서 시집에서 결혼신고한 게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결혼식 직후에 호적에 안올린 것이 차라리 글렀지, 안그래요?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서로 마음잡고 잘 살기를 빌 뿐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자살하기 직전의 상태이니 그 애를 만나야 더 충격을 줄 뿐이다. 제발 애비로서의 부탁이니 우리 아들을 만나는 것만은 그만둬 주시오. [ 선데이서울 69년 5/18 제2권 20호 통권 제34호 ]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나눔세상] 세밑 덥힌 시각장애 아줌마

    [나눔세상] 세밑 덥힌 시각장애 아줌마

    새해 사흘 전인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에 탤런트 김혜자씨가 어떤 사람의 성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전달했다. 김씨를 통해 세계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돈을 보낸 사람은 서울 마포에 사는 유용임(55)씨였다. 유씨는 시각장애인이고 그 돈은 남편의 사망보험금이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양로원에도 성금 유씨는 이 500만원 외에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고아원에 각각 500만원, 양로원에 200만원을 기부했다. 모두 1700만원. 부자들에게는 큰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난해 12월 남편 김창호씨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나온 보험금 전액이다. 마사지사인 유씨와 한푼두푼 어렵사리 모았던 재산을 사기당하자 남편은 홧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남편의 목숨과 바꾼 돈과도 같은 1700만원을 선뜻 내놓기까지, 유씨의 인생역정은 기구하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1000만원을 아이들 몫으로 기부한 데는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만나 동반자가 된 남편과의 사이에 1971년 아기가 생겼다. 끼니 잇기조차 어려웠을 때 아기가 생기자 덜컥 겁이 났다.“혹시 아이도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자신은 세살 때 홍역으로 시력을 잃은 후천성이었지만 남편은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었다. 동냥으로 돈을 마련해 낙태수술을 했다. 뱃속에서 거의 다 자란 아기를 떼어내 가슴에 묻었다. ●입양한 아이도 시각장애… 佛로 입양 보내 다행히 마사지 일자리를 얻어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우연히 어린 미혼모를 알게 됐다. 가슴 속 아기를 다시 낳는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사내아이를 입양했다. 지금 서른네 살이 된 아들 영주였다. 영주가 여덟살 되던 해 유씨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공사장에서 놀던 아이 머리에 근처에 서 있던 철문이 넘어져 덮쳤다. 상처가 아물어가던 즈음, 영주는 자꾸만 눈을 비볐다.“엄마, 눈이 점점 안 보여.” 부모 자식이 모두 맹인이 될까 겁이 났다. 몸에 좋다는 건 닥치는 대로 먹였다. 조금 회복은 됐지만 키우는 데 자신이 없었다.1979년 말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입양아인 영주는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다시 입양되어 갔다. 남편의 보험을 들면서 보험금을 받을 사람을 영주 이름으로 해두었다. 영주가 외국에 있어도 앞이 안 보여 아픈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죄스러운 엄마의 마음이었다. 남편이 죽고 보험금을 받았지만 영주가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생활이 더 어려워진 유씨가 써도 욕할 사람은 없었겠지만 사회에 내놓기로 했다.“제 돈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건 당연하지요.” ●“새해에는 굶는 아이 없었으면” 유씨는 이런 사연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워 인터뷰를 거절해 왔다. 생각이 바뀐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단체들이 실제로 도움을 주는 것도 없이 생색내기 겉치레 자선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서였다. 자신의 사연을 보고 돈을 아껴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2006년에는 모든 아이들이 굶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의안(義眼)을 하고 있어 눈물이 나오지 않는 유씨. 고아원에서 자란 유씨의 마음 속에서는 불우한 어린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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