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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준 “생모, 나 겁탈당해 낳았다고..” 충격 고백

    박일준 “생모, 나 겁탈당해 낳았다고..” 충격 고백

    혼혈 가수 박일준이 생모에 대해 입을 열었다. 24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박일준의 일상이 그려졌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 태어난 박일준은 3살 때 친어머니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에 대해 박일준은 “그 당시 한국 군인한테 겁탈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거야. 우리 생모가. 미군이었는데 한국군이라고. 내가 자라면서 다른 나라 사람처럼 얼굴이 나오니까 바로 나를 고아원에 놓고 버리고 가버린 거지”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제작진은 “친어머니와 만나보신 적이 있냐?”고 물었고, 박일준은 “한 번도 못 만났지. 나를 버리고 간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오! 진아’ 불렀을 때 친어머니를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 그랬었다. 그런데 결국 못 찾았지”라고 답했다. 박일준은 이어 “양부모님하고 우리 친어머니하고 언니, 동생하고 친했던 사이였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내가 고아원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강냉이를 주워 먹고 있는 걸 보고 양부모님한테 얘기를 했대. 그래서 가봤더니 내가 ‘엄마’하고 달려오더래. 그때부터 나를 키우기 시작했대. 양부모님들이 자식이 없다. 자식을 못 낳으셔. 그래서 나를 자식처럼 키웠지”라고 고백했다. 이후 박일준은 우연히 미국의 친아버지와 이복동생들을 찾았지만 그리움보다는 원망이 더 커 그 뒤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일준,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 “수혈팩 6개로 연명”

    박일준,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 “수혈팩 6개로 연명”

    [서울신문EN] 가수 박일준의 근황이 공개됐다. 박일준의 인생 이야기가 24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공개된다. 박일준은 “병원에 오다가 죽는 병, 수혈팩 6개로 연명했다”며 간경변과 정맥파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화를 공개했다. 박일준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박일준이 세 살 때 외모가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고아원에 그를 맡겼다. 이름도 없이 ‘개똥이’라 불리며 고아원에 살고 있을 때 동네에서 생모와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입양해 키웠다. 어린 시절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라는 혼혈의 특징들 때문에 ‘연탄’, ‘라면’이라는 별명으로 늘 놀림을 받은 박일준. 때문에 젊은 시절 반항기로 엇나갔다는데. 그 모습을 본 친척들은 박일준을 왜 키우냐며 양어머니를 만류하지만 ‘내 아들 내가 키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하며 사랑으로 박일준을 키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계속됐고, 술과 담배로 그 스트레스를 푸는 일상도 계속 됐다. 그렇게 30년 넘게 술을 마신 결과는 간경변. 식도정맥이 파열되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살아날 확률이 반반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성실한 투병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박일준은 이후 가족의 소중함에 보답하고자 1등 남편, 1등 아버지로 180도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혼혈의 아픔을 극복하고, 죽음의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일준의 우여곡절 인생 스토리는 24일 밤 10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거듭 극찬하면서 임청각(보물 182호)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다. 500년의 역사보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 곳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해봤지만, 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허은 여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라에)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했다.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임청각의 소유주였던 독립지사 이상룡 선생의 후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경북 안동출신으로 한국상업은행 노조위원장과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이다. 이용득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항일 독립운동의 산실과도 같은 공간인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저의 종갓집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현충일이 있는 주 토요일에 온 가족이 현충원에 모여 (이상룡 선생에 대한) 추모와 헌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방문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방문에 이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임청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주신데 대해 석주 선생의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며 아흔아홉칸 가택을 팔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조상님들의 정신을 본받아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임청각 등 전 재산을 처분한 이후 이상룡 선생 후손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일제강점기 탄압은 물론 광복 이후엔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이로인해 후손들은 거리로 내몰리거나 고아원에 가는 등 뿔뿔히 흩어졌다. 임청각은 광복 뒤 가문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02년 국가에 헌납했다. 이를 주도한 것이 서울은행장과 제일은행장 등을 지내고 2001년 타계한 원로 금융인이자 고성 이씨 탑동파 종손이었던 고(故) 이보형 선생이다. 이보형의 친손자가 바로 배우 이서진(탑동파 16대손)으로 알려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우장춘 박사의 삶/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우장춘 박사의 삶/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육종학의 아버지’ 고(故) 우장춘 박사는 벼를 비롯해 우리 밥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채소의 종자를 만들어 냈다. 칼만 갖다 대면 쫙 하고 갈라져서 튼실한 속살을 드러내는 배추와 아삭아삭 씹히는 단맛이 일품인 속이 꽉 찬 무도 우 박사의 작품이다. 오늘날 제주가 감귤의 성지가 된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고, 강원도 대관령 감자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것도 우 박사의 종자 개량 덕이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한국 농부들에게 종자를 개량하는 육종학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고, 그의 학문적 업적은 일본에서 완성됐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일부 뒤집는 ‘종의 합성’ 이론을 담은 논문을 썼지만, 1950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농업 발전에만 매달려 배추, 무뿐 아니라 고추, 오이, 양파, 토마토 등 20여 가지 품종의 우수한 종자를 확보해 식량 자급의 길을 연다. 광복절에 우 박사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그만큼 한국과 일본 양국의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도 없기 때문이다. 우 박사의 부친 우범선은 무과에 급제한 무신이었는데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 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 여성과 결혼했으며 전 만민공동회장 고영근에 의해 암살된다. 우 박사는 아버지가 살해됐을 때 고작 다섯 살이었는데 한때 고아원에 맡겨질 정도로 힘든 성장 과정을 보냈다. 어머니는 식모로 일하며 힘겹게 아들을 키웠고 그는 일본에서 사는 내내 일본 성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에 시달렸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연구 생활도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 때문에 그가 어머니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우 박사의 꼼꼼하고 치밀한 연구 업적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국가기록원에 의해 공개됐다. 나팔꽃 줄기의 단면을 직접 그린 그림은 마치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은 듯 세포 하나하나까지 묘사했으며, 1930년대에 만든 나팔꽃 표본은 어제 딴 것처럼 하나도 시들지 않고 색깔까지 생생하다. 무척 섬세한 압화 과정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 박사가 한국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했다고 알려진 맹세인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나라 일본을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아버지의 나라에 뼈를 묻고자 한다”를 그는 61년의 인생 동안 충실하게 지켰다. 한국에서의 삶이 고작 9년밖에 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공부하며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다면 한국 무는 여전히 주먹만 한 크기의 순무 신세였을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인기인 위인전 학습만화 ‘후’에 일본 최고 거부인 손정의는 있어도 우장춘은 없다. 한때 교과서와 위인전에 자주 등장했던 우 박사가 위인 대열에서 사라진 것이 혹시 식민사관과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 갈등의 부산물은 아닌지 모르겠다. 광복절에 다시 보는 일본은 여전히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존재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 때문에 추진하는 정책은 일본의 것을 벤치마킹한 게 많다. 청년이 지방으로 가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지역희망뿌리단, 고향기부제, 도심재생사업 등이다. 우 박사가 만약 한국을 아버지를 암살한 나라로만 생각했다면 우린 아직 식량 수입국일 수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지만 과거에만 매달려 미래를 망칠 수도 없다. geo@seoul.co.kr
  • 연봉 5천 받는 프로선수의 품격…롯데 신본기 묵묵한 선행

    연봉 5천 받는 프로선수의 품격…롯데 신본기 묵묵한 선행

    2012년 프로구단 입단. 구단 2군과 경찰청 야구단 복무를 거쳐 입단 6년차를 맞은 현재 연봉 5500만원. 올 시즌 프로야구 선수 평균 연봉 1억 3800만원에 비해 매우 적은 돈을 받고 뛰는 선수.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소속 내야수 신본기(28) 선수의 이야기다. 이미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신본기의 남다른 선행이 뒤늦게 ‘전국구’로 주목받고 있다.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봉 5000만원 받는 선수가...”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올랐다. 사진에는 부산 동래구 명륜동의 한 식당에서 10만 8500원이 계산된 영수증과 이를 계산한 체크카드가 담겨있다. 해당 카드 사용자 이름은 ‘SIN BON KEE’. 롯데 유격수 신본기와 같은 이름이다. 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신 선수가 “매달 10만원씩 고아원 애들에게 밥을 사준다”고 밝혔다.이후 이 게시물이 온라인커뮤니티 곳곳에 퍼지며 신 선수의 조용하지만, 오래 된 선행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9일 롯데자이언츠 구단 측에 문의한 결과 사진 속 체크카드는 실제 신본기가 쓰는 카드로 확인됐다. 구단 관계자는 “어제부터 기부 기사가 나오고 있어 신 선수한테 물어보니 말을 잘 안 해주지만 그 내용은 맞다”라면서 “신 선수도 누가 그런 사진을 찍어 올렸는지 궁금해 하지만 언론의 이런 관심에는 부끄럽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라고 전했다. 사실 신본기의 선행은 2012년 프로구단 입단 직후부터 꾸준히 계속됐다. 2013년에는 입단 계약금 1억 2000만원의 10%에 달하는 1200만원을 모교인 동아대에 쾌척했다. 또 500만원 상당의 제빙기도 기부했다. 2013년 7월 올스타전 이벤트 게임에서 얻은 상금 200만원 역시 모교인 부산 감천초등학교에 전액 기부했다. 당시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언젠가 돈이 생기면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신본기의 선행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번 ‘10만원 밥값’은 부산 서구 암남동의 아동 양육시설 ‘마리아꿈터’ 아이들과의 식사로 확인됐다. 신본기는 2013년 자신의 팬클럽 ‘우리본기’가 마리아꿈터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때부터 함께 봉사를 하고 있다. 신본기는 경찰서 복무 중에도 휴가 기간에는 마리아꿈터를 찾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등 꾸준히 선행을 이어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졸리 새 영화 캄보디아 아이들 캐스팅하며 “도둑질 시켰다고?”

    졸리 새 영화 캄보디아 아이들 캐스팅하며 “도둑질 시켰다고?”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45)가 크메르 루즈의 학살을 다룬 새 영화에 출연할 어린이 배우들을 오디션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속임수를 썼다는 비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발단은 졸리가 최근 연예 잡지 베네티 페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가 돈과 스트리밍 배급을 맡고 자신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에 관한 영화 ‘First They Killed My Father’를 제작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조감독들은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슬럼가와 서커스단, 고아원들을 돌아다니며 배우 후보들을 물색했으며 “고난을 경험한 어린이들을 특별히 찾고 있다”고 털어놓은 것이었다. 이 인터뷰를 본 이들은 유엔 친선대사인 졸리가 너무 잔인한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제작진이 캐스팅 게임을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돈을 훔치게 하고 붙잡혔을 때는 돈을 훔친 이유를 대보라고 거짓말을 시키기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졸리도 잡지 인터뷰를 통해 “(주연으로 발탁된) 스레이 모크가 돈을 오래, 아주 오랫동안 응시했던 유일한 아이였다”고 소개한 뒤 “돈을 돌려줘야 했을 때 감정에 복받쳤다. 무엇 때문에 돈을 훔쳤는지를 묻자 그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잘 치르려면 돈이 모자라 그랬다고 말했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이 인터뷰를 보고 “감정적 학대이며 잔인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은 “졸리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캄보디아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그녀가 이토록 병적이고 사악한 스턴트를 밀어붙였다니”라고 씁쓸해했다. 다른 이는 “졸리의 전체주의적 캐스팅은 명백한 아동 학대”라며 “당신은 이제 우리 세계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아이들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가난으로 다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졸리를 옹호하는 팬도 있긴 했다. 나탈리 앤더슨은 “그런 얘기는 문맥을 벗어난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인도주의자이며 결코 아이들을 그렇게 상처주는 방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졸리는 성명을 내고 캐스팅 과정에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고 오해받는 것은 “잘못되고 황당한 일”이라며 “영화에 실제로 들어가는 장면을 연습하며 약간 변형해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나아가 “이 영화의 포인트는 전쟁 중에 아이들이 직면하는 두려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보호하는 싸움을 돕는 데 있다. 오디션 도중 실제 돈으로 아이들을 꾀었다는 가정은 잘못되고 황당한 것이다. 만약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부터 분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디션부터 지금까지 제작하는 과정에 아이들을 안전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했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느린 걸음에 발맞춰 주는 사랑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느린 걸음에 발맞춰 주는 사랑

    화가들은 많은 수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이나 관점을 체득해 작가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완벽한 기교와 철저한 자기 미학 그리고 계산된 완벽함이 보는 사람들을 질리게도 한다. 가끔 조금 빈 듯 허술하고 부족한 사람이나 말이 평안과 편함을 준다.영화 ‘내 사랑’(Maudie, My Love·2016)의 주인공 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 분)는 그런 위로를 주는 인물이다. 영화는 실존했던 캐나다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모드(1903~1970)의 삶과 사랑, 그림에 대해 들려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모드가 장애와 가난 등 불우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화가로서, 당당한 여성으로서 삶과 사랑을 어떻게 이뤘는지 보여 준다. 선천적 관절염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모드는 친오빠로부터 버림받고 이모집에서 얹혀살았다. 이모로부터 독립을 꿈꾸던 그녀는 우연히 자신의 집안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던 마을 생선장수 에버렛 루이스(1893~1979)를 만난다. 가정부로 그의 집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선 호크가 연기한 에버렛은 나중에 모드의 남편이 되는데 그는 고아원에서 자라 함께 사는 일에 서툴 뿐만 아니라 문맹이었다. 거칠고 무뚝뚝했고 때론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은 오히려 자신의 약한 내면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었는지도 모른다. 만난 지 1년 만에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사랑에 서툰 에버렛의 심술은 여전했다. 에버렛은 키우는 개, 닭보다도 못하게 모드를 대했으나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 마을 언덕, 바다 등 자연환경과 주변 인물, 동물 등 일상을 종이나 과자상자, 시트 등에 그렸던 모드는 화가로서 타고난 재능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처음엔 에버렛의 생선장사에 도움을 줄 정도로 미미한 취급을 받았다. 어느 날 뉴욕에서 온 산드라(캐리 매쳇 분)가 처음으로 25센트를 주고 사면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드의 그림이 신문에 나고 TV에 등장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밝고 따뜻한 모드의 그림처럼 무뚝뚝했던 에버렛도 서서히 변해 간다. 물감을 사다 주기도 하고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모드의 불편하고 느린 걸음에 보조를 맞출 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는 대목에서 스산하고 차가웠던 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의 풍광은 따스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영화를 연출한 에이슬링 월시 감독의 삶도 어쩌면 모드와 닮았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더블린 근처 항구도시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했지만 정규 영화교육을 받지 않았다. 영국에서 영화보다 TV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그는 10여년 동안 진정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궁리했고, 그 결과물이 ‘내 사랑’이다. 이 영화는 토론토, 베를린,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최근 정식 개봉 전 전주영화제에서 일찌감치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모드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른바 ‘민속화가’(Folk Artist)다. 민속미술이란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고 지역 공동체의 가치와 미학을 담아낸 작품을 말한다. 꼭 캔버스가 아니더라도 천, 목재, 종이, 점토, 금속 등 실생활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가지고 장식성이 강한 작품들을 만든다. 화가 개인의 독창적 취향이나 유행에 좌우되기보다는 세월과 함께 대대로 전승, 지속되는 ‘자생적인 전통’이 특징이다. 용어상으로는 소박파, 부족미술, 원시미술, 대중예술, 아웃사이더예술, 전통예술, 노동자예술 등과 의미가 같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야만적인’ 뜻의 아르브뤼(Art Brut)와는 약간 다르다. 아무튼,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돼 외국에서는 소위 ‘포크아트 뮤지엄’을 두고 있기도 하다. 주장이 강하고 똑 부러졌던 모드는 사랑에서도 주체적이었다. 자신을 가정부로만 취급하려던 에버렛에게 당당하게 결혼을 요구하며 관계를 주도하고, 에버렛을 변화로 이끈다. 변변한 사랑 장면 하나 없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감정이 묵직하게 전달되면서 사랑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다. 미국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등 유명인들이 그녀의 고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드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마샬타운을 대표하는 명사가 된다. 사정이 달라졌지만 모드와 에버렛은 변함없이 전기와 보일러가 없는 작은 오두막에서 살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집 앞 길가에 “그림 팝니다”라는 표지판을 세웠다는 정도. 한결같이 순수한 삶을 살던 모드는 에버렛을 두고 1970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에버렛마저 9년 뒤 강도에 의해 살해되면서 주인을 잃은 오두막은 급속도로 쇠락한다. 지역 주민들이 ‘모드 루이스 집 보존위원회’를 결성해 모금 활동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노바스코샤주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 1984년 모드의 집을 보존키고 결정하고, 1996년 캐나다 연방정부도 가세하면서 그녀의 오두막은 오늘날 노바스코샤미술관으로 변모했다. 모드는 꽃과 동물, 마을 풍경 등을 주로 그렸지만 마치 꿈을 꾸듯 겨울의 단풍, 그림자가 없는 사람, 다리가 3개인 황소 등 공상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화판을 우선 흰색으로 칠한 다음 외곽선을 그리고 색을 섞거나 혼합하지 않고 고지식하게 튜브에서 직접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초기 그림은 25~70센트 정도에 팔렸고 1960년대 후반에도 고작 7~10달러밖에 안 나갔다. 현재 그녀의 그림이 약 1만 5000달러에서 4만 5000달러까지 거래되면서 일찌감치 그림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모드는 돈보다는 오직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세상을 긍정하고 자신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도 그녀의 그림처럼 그대로 전해진다. 물처럼 스며들고, 따뜻한 바람처럼 파고드는 사랑, 느리지만 오래가는 그런 사랑이 거기 있었다.
  • 전후 재건사업에 헌신했던 ‘부산의 사령관’

    전후 재건사업에 헌신했던 ‘부산의 사령관’

    1953~54년 부산 군수사령관 부산대 건립 지원·이재민 구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리처드 위트컴(1894~1982) 전 유엔군 부산군수사령관의 35주기 추모식이 추모사업회 주관으로 12일 부산 유엔 기념공원 내 장군의 묘소에서 거행됐다.추모식에는 유가족인 딸 민태정 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과 김재호 교수를 비롯한 재단 관계자, 부산대 전호환 총장 등 4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1953년부터 54년까지 부산 지역 군수사령관을 지낸 위트컴 장군은 부산대 건립비 지원에 적극 나섰고, 부산역 대화재 때 이재민 구호를 위해 군수물자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또 부산 메리놀병원 신축과 고아원 건설 등 전후 부산 지역 재건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전역 후에도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전쟁 고아를 위한 사업과 전쟁 중 사망한 미군 부하들의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기 위한 사업을 벌였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유언에 따라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극심한 가뭄에 농민은 고통받는데…의회는 ‘관광지 해외연수’ 논란

    극심한 가뭄에 농민은 고통받는데…의회는 ‘관광지 해외연수’ 논란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커져 농민들은 애가 타는데 정작 지방의회 의원들은 해외연수를 떠나 비난을 받고 있다.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회 도의원 4명은 가뭄이 절정이던 지난 23일 의회 사무처 직원 3명과 함께 유럽 연수를 떠났다. 연수는 11일 동안 프랑스 신재생 에너지와 곤충산업 현장, 스위스 치즈 공장, 이탈리아 와이너리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도비 4480만원이 드는 이 연수에서 의원들은 280만원(6.3%)을 자부담했다. 외유 논란이 일자 도의회 관계자는 28일 ”가뭄이 신경 쓰이지만, 이미 오래 전 일정이 확정돼 있어 변경하기 어려웠다“면서 ”외유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정책을 연구하고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데 연수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충청도 내에서 가뭄이 심한 지역 중 하나인 영동군은 올해 내린 비가 186.2㎜로 지난해(282.2㎜)의 66%에 불과하다. ‘물 고통’이 심각해 학산면 하시마을 등은 군청에서 떠다 주는 물을 받아 생활할 정도다. 그런데 영동군의회 의원 7명과 의회 사무과 직원 4명은 24일 인도의 농업정책과 농업용수 공급시스템 등을 둘러본다며 출국했다. 이들의 방문 지역은 델리·자이푸르·아그라 등으로 인도의 대표적 ‘관광 도시’다. 일정에 시청과 의회, 고아원 방문이 있지만 구색 맞추는 수준에 불과하다. 5박 7일짜리 이 연수에는 2560만원의 예산이 사용된다. 임대경 영동지방자치참여연대 회장은 “최악의 가뭄으로 군민 전체가 힘들어하는데, 민의를 추슬러야 할 군의원들이 외유성 해외연수에 나선 것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면서 “연수를 통해 의원들이 어떤 정책을 도입하고,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청주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는 다음달 5일부터 9일 간 보스니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를 잇는 발칸 4국 연수에 나선다. 이 연수에는 의원 7명이 인당 250만∼316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참가한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지도 논란거리다. 연수 목적은 ‘동유럽 행정제도를 돌아보고, 전통시장과 골목시장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정이 대부분이다. ‘연수’라는 이름만 붙였을 뿐 사실상 여행사에서 파는 패키지 여행상품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청주시의회 관계자는 “연수 목적에 관광진흥방안 등도 포함돼 있어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도 여러 곳 포함돼 있다”면서 “귀국 후 연수 보고서를 보고 평가해 달라”고 말했다. 오창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회문화국장은 ”아무리 예정된 일정이라지만 최악의 가뭄이 겹친 상황 등을 고려했어야 한다“면서 ”연수 보고서 등에 대해 엄격해질 잣대를 각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미망인 최혜숙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미망인 최혜숙

    최혜숙(70)씨는 33년 넘게 보훈선양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 서울시지부 서대문구지회장으로서 1997년부터 지금까지 국립서울현충원 및 인근 현충시설 관리를 도맡는가 하면 나라사랑큰나무 배지 달기 운동을 벌이면서 호국안보 교육에도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봉사 활동 또한 남다르다. 정기적으로 요양원과 고아원 등을 찾아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 등 각종 재해가 발생할 때에는 앞장서 찾아가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보훈대상자들인 지회 회원들을 위해서도 불철주야 뛰고 있다. 서대문구 보훈대상자 조례를 개정하는 데 앞장서 사망위로금을 신설하고 유족 대상 보훈명예수당 신설을 추진했다. 또한 불우회원들을 돌보고, 김장을 제공하는가 하면 서대문구 보훈회관 건립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회원들의 여가활동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 [공연리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공연리뷰]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어린 시절 소녀들이 한 번쯤 꿈꾸는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말없이 내 뒤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누구나 소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훌쩍 나이를 먹고 마음이 각박해지면서 어느 순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지금 다시 그를 꿈꿔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가 191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고아원에서 살고 있는 한 소녀가 정체 모를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랜 시간에 걸쳐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구성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명작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명예 연출가이자 토니어워즈 최고연출상을 수상한 존 케어드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지난해 국내 초연에 이어 올해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 제루샤 애봇은 고아원 밖의 넓은 세상을 꿈꾼다. 어느 날 제루샤의 대학 공부를 후원하겠다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후원의 조건은 후원자의 정체를 알려고 해서는 안 되고 한 달에 한 번 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 제루샤는 베일에 싸인 후원자에게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칭을 붙이고 그에게 꼬박꼬박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감정을 편지에 담는다. 한 뼘씩 성장하는 제루샤의 모습을 지켜보는 키다리 아저씨는 그저 흐뭇하다. 그러던 중 제루샤는 룸메이트인 줄리아의 젊은 삼촌 제르비스 펜들턴을 만나게 되고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제루샤는 정체 모를 후원자와 제르비스 사이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막장 드라마’가 여전히 브라운관에서 떠나지 않는 가운데 요즘 찾아보기 힘든 순수하고 착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미 익숙한 친숙한 소재에다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 단 두 명이 무대에 오르는 2인극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제루샤 역의 임혜영, 유리아와 제루샤를 감싸 안으며 깊은 사랑을 느끼는 제르비스 역의 신성록, 송원근 등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고 황홀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추억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아름다운 동화다. 7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4만 4000~6만 6000원. (02)744-4033.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0년 연 끊은 아버지가 합의…‘동거녀 암매장범’ 결국 징역 3년 확정

    20년 연 끊은 아버지가 합의…‘동거녀 암매장범’ 결국 징역 3년 확정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이모(39)씨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3년형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부친이 자신의 딸과 20년 넘게 연을 끊고 지냈으면서도 합의금을 받고 이씨를 선처하도록 재판부가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단독] ‘동거녀 암매장’ 징역 3년, 20년 연 끊은 아버지가 합의).청주지검은 폭행치사·시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씨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충북 청주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은 지난 1일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2년을 감형해 줬다. 검찰은 1심과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법리적 다툼 사항이 없기 때문에 상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상고 기한은 항소심 판결 이후 일주일인 이날 자정까지이지만,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씨의 형은 사실상 확정됐다. 이씨는 2012년 9월 중순쯤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있는 피해자 이모(당시 36세)씨의 원룸에서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피해자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인근 밭에 암매장했다. 이씨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고 웅덩이를 파 피해자의 시신을 넣고 미리 준비해 간 시멘트까지 개어 붓기도 했다. 하지만 ‘한 여성이 동거남에 의해 살해돼 암매장됐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수사 끝에 범행 4년 만인 지난해 10월 18일 붙잡혔다. 구속기소된 이씨에게 청주지검은 1·2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부장 이승한)는 지난 1일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사망하고 사체 은닉까지 했지만, 유족이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감형 이유였다. 그러나 재판부가 ‘유족과의 합의’를 이유로 감형을 한 것이 지나치다는 시민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피해자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한 이후로는 고아원을 전전했고, 결국 16세 무렵 독립해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경찰이 피해자가 숨진 지 4년 만에 아버지에게 연락해 사망 소식을 알릴 때까지도 가족으로부터 실종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아버지는 이씨로부터 돈을 받고 법원에 이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 이씨의 감형이 결정되자 검찰은 “생전 피해자와 절연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합의로 감형돼 유감스럽다”면서 “이런 경우를 유대 관계에 있는 유족의 일반적인 합의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독] ‘동거녀 암매장’ 징역 3년, 20년 연 끊은 아버지가 합의

    사망 4년 후 연락 닿은 아버지 합의금 받고 가해자 선처 호소항소심, 부친 합의 근거로 감형…“양형에 합의 과하게 고려” 비판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이모(39)씨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징역 3년을 선고해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피해자의 부친이 자신의 딸과 20년 넘게 연을 끊고 지냈으면서도 합의금을 받고 이씨를 선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가 ‘유족과의 합의’를 이유로 감형을 한 것이 지나치게 기계적인 법 적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충북 청주지법의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청주재판부는 지난 1일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2년을 감형해 줬다. ●피해자 사망 때까지 실종신고 없어 5일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2012년 9월 이씨에게 얼굴을 수차례 맞고 숨진 피해자 이모(당시 36세)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조모와 함께 생활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한 이후로는 고아원을 전전하다 나이가 들면서 퇴거를 요구당했고, 결국 16세 무렵 독립해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경찰이 피해자 이씨가 숨진 지 4년 만에 아버지에게 연락해 사망 소식을 알릴 때까지도 가족으로부터 실종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연히 아버지는 사고 자체를 알지 못한 상태였고, 어머니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주변에 이씨의 친구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 이씨는 1심 이후 형을 감경받기 위해 아버지와 합의를 시도했고, 법원은 이들의 합의를 감형의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지만 2심 재판부는 ‘유족이 피고인을 용서하고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이 이씨에게 유리한 사유라고 판단했다. 이씨가 줄곧 혐의를 인정한 만큼 유족과의 합의 여부가 1·2심 선고의 차이를 불러온 유일한 요소였다. 이씨 측 변호인은 “1심부터 합의를 시도하다 2심 전 아버지와 합의에 성공했다”며 “특정 금전이 오간 것도 맞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상 ‘남’에 가까운 가족이 합의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그것을 양형의 요소로 고려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며 법원 판단에 유감을 나타냈다. ●상고 사유 없어 3년형 확정 가능성 사건을 맡은 청주지검은 1·2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다만 이씨의 폭행치사·시체은닉 혐의가 모두 유죄로 선고되면서 법원이 정한 상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지는 불분명하다. 판사 출신 변호사도 “살인 범죄의 경우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유족들의 의사를 양형에 반영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사건은 합의라는 형식을 과하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법원 관계자는 “피해자와 유족이 친밀하지 않다는 점은 기록을 통해 재판부도 알고 있던 내용”이라면서 “유족과의 합의는 양형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폭행치사에 대한 양형 기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률상 이씨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은 폭행치사죄와 시체은닉죄를 합쳐 최대 징역 37년에 이른다. 다만 감경 요인을 감안할 경우 최저 형량은 3년이다. 현 폭행치사의 기본양형 기준은 징역 3~5년으로 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살인죄의 양형 기준은 10~16년이지만, 피해자가 백골화된 채 발견돼 이씨의 진술에 따라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알렉스 카츠 : 스몰페인팅’전 1960년대 이후 대표적인 현대회화 작가로 꼽히는 알렉스 카츠가 인물, 풍경, 꽃을 주제로 2000년대에 작업한 작은 회화작품들을 선보인다. 6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PIBI갤러리. (02)6263-2004. ●류단화 개인전 중국 징더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류단화 작가의 개인전. 징더전의 전통적 도자 방식과 수공예로 유약을 덧입히는 기술을 활용해 불에 탄 재의 형태를 종이처럼 얇고 날카로운 재질로 묘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6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 (02)3789-6317. 대중음악 ●홀린 소극장 콘서트 감성 모던록 밴드 홀린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지난해 말 정규 2집을 선보인 홀린은 리더 겸 보컬 정준혁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도맡아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일부 멤버가 바뀌는 등 5인조에서 4인조 체제로 전환했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 3만원. (02)558-4588.●해리빅버튼 정규 2집 ‘맨 오브 스피릿’ 발매 기념공연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이 5년 만에 정규 앨범을 선보이며 펼치는 단독 공연이다. 빈티지와 모던한 사운드를 오가는 정규 2집에는 사회적 이슈들을 간과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취지의 노래 등을 담았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 (02)325-6071. 뮤지컬·연극●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제루샤 애벗’과 고아원 밖의 넓은 세상을 꿈꾸는 제루샤의 대학 공부를 후원하며 그녀의 성장을 돕는 ‘제르비스 펜들턴’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다. 7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4만 4000~6만 6000원. (02)744-4033. ●연극 ‘작전명:C가 왔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극단 몽씨어터가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노조 파괴 노무법인으로 악명 높았던 ‘창조컨설팅’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C컨설팅’과 이곳에 노조 파괴를 의뢰하는 기업이 몰래 벌이는 부조리한 상황을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하게 그린다. 6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 1만 5000~2만원. 070-4233-7609. 클래식·국악●호로비츠를 위하여 전설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의 음악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등을 피아니스트 이대욱, 조재혁, 알렉산더 신추크가 각각 연주한다. 6월 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4만~8만원. (02)2658-3546. ●모던 국악 기행-경기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각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음악과 지역 음악의 특성을 토대로 창작한 현대음악을 함께 소개하는 연주회. 경기 지역 전통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경기 시나위’와 ‘경기 대풍류’가 연주된다. 6월 2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3만원. (02)2280-4114.
  • 서울시의회 김창원의원 노인복지관서 짜장면 무료급식봉사

    서울시의회 김창원의원 노인복지관서 짜장면 무료급식봉사

    서울시의회 김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3)이 가정의달을 맞아 5월 15일 ‘짜장면맛난데이(Day)’로 노인들에게 짜장면을 대접했다.짜장면맛난데이는 (사)중찬문화교류협회가 운영하는 ‘엔젤쿡 봉사단’이 2013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봉사활동이다. 엔젤쿡 봉사단은 장애인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관, 고아원 등을 순회하는 무료급식활동을 통해 연 1만여 명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드리고 있다. 김창원 의원과 엔젤쿡 봉사단은 5월 15일에 서울시립도봉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다. 이날 행사에는 도봉구 어르신들이 다수 참석해 담소를 나누며 짜장면을 나눴다. 김창원 의원은 “중식 요리사들이 직접 나서 소외된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가는 앤젤쿡 봉사단의 꾸준한 활동에 박수를 보낸다”며 “지속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짜장면 봉사활동이 서울시 전역에 더욱 크게 퍼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총리 후보자의 일본 친구/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총리 후보자의 일본 친구/황성기 논설위원

    지난 12일 전라남도 도청에서 열린 이낙연 지사의 퇴임식. 한 일본인이 눈길을 끈다. 고치현의회 의장을 지낸 니시모리 시오조(오른쪽·77). 니시모리 전 의장은 이 지사로부터 10일 “총리 지명을 받고 지사직을 그만둘 건데 퇴임식에 오시지 않겠는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체없이 행장을 꾸렸다. 산 넘고 바다 건너 9시간 걸려 무안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니시모리가 같은 고치현 출신으로 목포의 고아원 ‘공생원’에서 생을 바친 다우치 지즈코(1912~1968?한국명 윤학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97년이었다. 다우치는 아버지를 따라 조선으로 건너와 “웃지 않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 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봉사를 시작한다. 1936년의 일이다. 공생원을 설립한 윤치호(1909~1951·한국전쟁 중 광주에서 행방불명)와 결혼한 그녀는 ‘목포의 어머니’라는 별칭처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목포에서 생을 마쳤다. 다우치의 삶에 매료된 니시모리는 고치에서 모금 활동을 벌여 그녀의 고향땅에 기념비를 세웠다. 다우치로 맺어진 인연은 니시모리를 목포, 전남과 연을 맺게 했고, 전남과 고치의 교류를 낳았다. 전남 도민이 고치를 단체 방문하는가 하면 고치현 방문단이 전남을 찾았다. 묵묵히 이어 온 교류가 20년이 됐다. 박근혜 정권 내내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로 민간 교류가 중단됐지만 니시모리는 고치현 사람을 전남에 데리고 왔고, 한국인을 고치에 데리고 갔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2015년 12월 니시모리는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전남 명예도민증을 받는 일본인이 됐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1년 만에 전남이 2016년 일본 지자체와는 처음으로 고치현과 자매결연하는 계기를 만든 것도 그였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는 신문사 도쿄특파원과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을 지내면서 숱한 일본인 친구를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인 가와무라 다케오 의원,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2016년 사망) 전 주필, 한국 연구의 대가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니시모리도 그중 한 명. 이 지사는 그에게 명예 도민증을 주면서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한국과 일본, 좁게는 전남과 고치의 우정과 신뢰를 깊게 했다”고 감사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친구가 큰 벼슬에 오르는 소회를 묻자 니시모리 전 의장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줬던 이 후보자가 총리가 되면 분명 따뜻한 국정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진하고 깊은 우정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덕담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 잘되라고 혼냈어도 아동학대일 수 있다

    잘되라고 혼냈어도 아동학대일 수 있다

    올해 초 강원도 지역의 한 도시에서 30대 후반의 여성이 자신의 아이 둘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 놓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엄마는 몇 시간 뒤 아이들을 데려가며 “아이들이 너무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피워서 혼내 주려는 의도로 잠시 두고 갔던 것일 뿐 기관에 맡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아이 엄마는 평소 “자꾸 이렇게 엄마 말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버린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기관이 정식 신고를 하지 않아 아이 엄마에게 법적 조치 없이 끝났다. 그러나 훈육과 학대의 인식 차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아이의 엄마가 훈육을 목적으로 한 행동이었더라도 실제로 아이를 두고 떠났다는 점에서 유기학대로 볼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게 고아원에 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점은 정서 학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엄마가 학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재단 관계자의 지적이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5년 1만 9214건에서 2016년 2만 9669건으로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54.5% 급증했다. 반면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 아이를 가해자에게서 격리 조치 등을 하는 피해 아동 보호명령 사건은 지난해 63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동학대 당사자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아동학대를 개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가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해 아동의 부모(80.7%)가 이를 학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강원도 아동보호기관 유기사건이 단적인 예다. 최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는 아빠의 폭력으로 격리조치된 중학생 수진(가명)양 사건이 접수됐다. 수진양의 친부는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내 아이를 내가 가르치는데 이게 왜 학대냐”면서 자신의 학대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수진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거주하며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다녀 주변 사람들도 학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례는 제3자가 봤을 때 명백한 경우인데도 가해자인 부모나 피해 아동은 스스로 그것이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추후 조치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명확한 아동학대의 기준이나 체계적인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복지부 산하 전국 6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사례판정위원회를 열어 학대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폭력, 방임 등 명확한 학대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강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 적지 않다. 서울 경찰서에서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나 아이를 부모로부터 격리 조치하도록 결정이 내려진 경우에도 오히려 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지기 싫다며 결정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경우 격리 조치 없이 외부 모니터링만으로 추가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고 이와 관련한 판례도 많아지는 만큼 현재는 다양한 기준을 만들고 있는 과도기라고 보면 된다”며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해결 방안 역시 다양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당사자인 부모와 아이들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명확하게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부모들 스스로 내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팔순 할머니 빈곤 아동에 1억 기부

    팔순 할머니 빈곤 아동에 1억 기부

    팔순을 앞둔 할머니가 어린이날을 맞아 빈곤 아동을 위해 써 달라며 거액을 쾌척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정정자(79) 할머니가 재단에 1억원을 기부했다고 4일 밝혔다. 정 할머니는 교사였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4남매를 키운 뒤 60대 중반 때부터 양로원과 고아원, 병원을 다니며 아코디언 연주 봉사를 해 왔다. 정 할머니는 “평생 봉사하고 싶었는데 5년 전 무릎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어려워졌다”며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정 할머니의 후원금을 저소득가정 아동 장학금과 어린이환자 의료비에 쓸 예정이다.
  • [단독] 1917년 피부과서 시작한 한국 의료 ‘백년 금자탑’

    [단독] 1917년 피부과서 시작한 한국 의료 ‘백년 금자탑’

    오긍선 교수 피부질환 연구 시초 베체트병·아토피 등 치료법 도입 연세의대 9일 ‘100년 비전’ 발표한국 의료가 드디어 100년 역사를 썼다. 1885년 미국 선교사 알렌(1858~1932)이 광혜원을 설립해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을 도입한 이래 외과 등 주요 임상과목 창설은 모두 선교사들이 담당해 왔다. 시간이 흘러 1917년 5월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현 연세의대)에서 오긍선(1878~1963) 교수가 ‘피부생식비뇨기과’를 만들고 과장 겸 주임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인이 개설한 임상과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3일 연세의대에 따르면 국내 피부질환 연구의 역사는 연세의대 피부과학교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 교수는 1924년부터 매독 연구에 집중해 처음으로 성병 환자 통계를 공개하며 공창(公娼)을 없애자는 ‘폐창’ 운동을 벌였다. 그는 국내 최초로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1983년에는 이성낙·방동식 교수가 난치성 염증 질환인 ‘베체트병’을 치료하는 전문클리닉을 열었다. 입안과 눈, 각종 장기에 궤양이 생겨 실명하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지만 이전에는 병의 치료는커녕 명확한 진단을 내려 줄 전문의조차 드물었다. 1984년에는 박윤기 교수가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자외선 치료기를 이용해 건선과 백반증을 치료하는 ‘광선 치료법’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난치성 피부질환인 ‘아토피 피부염’ 완치도 현실화됐다. 1995년 이광훈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의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고 ‘면역치료’를 도입해 최근까지 8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면역치료는 알레르기 질환 원인 물질(알레르겐)을 환자에게 소량씩 투여해 과민반응을 줄이는 치료법이다. 정기양 연세의대 피부과학교실 주임교수는 “이 교수는 현재 정부에서 50억원을 지원받아 전량 수입하고 있는 고가의 알레르겐을 국산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환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도 피부암 치료법 중 완치율이 가장 높고 5년 내 재발비율이 3% 미만인 ‘모즈미세도식수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로 2000건이 넘는 수술을 집도했다. 이승헌 교수는 국내 최초로 ‘피부장벽학’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각질층 손상과 회복에 대한 기전을 밝혀내 눈길을 끌었다. 온몸에 물집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는 ‘천포창’은 유일하게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과에만 클리닉이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피부과 환자는 10만 3000명, 강남세브란스병원은 4만 8000명으로 국내 대학병원 중 가장 많았다. 한편 연세의대 피부과학교실은 오는 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난치성 피부질환 정복’을 목표로 한 비전을 발표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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