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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이야기] 국민안전처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이야기] 국민안전처

    ‘공무원이 들려주는 공직 이야기’ 19회에서는 안전·재난 관련 정책을 수립·운영하는 것은 물론 소방·방재, 해양 경비·안전·오염방제 등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 소속 공무원을 소개한다. 국민안전처의 역할과 업무를 살펴보고,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드는 새내기 사무관의 입직 과정, 공직에 입문한 소회 등을 들어 봤다. 2014년에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를 시작으로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후진국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매번 문제로 지적됐던 것이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300여명의 실종·사상자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 때 정부의 현장 대응을 경험한 피해 가족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실망에 빠졌다. 대형 사회적 재난에 대비한 현장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시종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는 이런 배경에서 신설된 재난안전 총괄 기관, 이른바 ‘컨트롤타워’다.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의 안전정책 기능이 안전처로 이관됐고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등 2개 조직이 해체되면서 그 기능을 국민안전처가 흡수했다. 입직 경로는 5·7급 행정직이나 소방직, 해양경찰직 등 공무원 공채시험이 일반적이다. 윤세열(29) 사무관은 2012년 연세대 행정학과 재학 시절 5급 공채로 뽑혀 지난해부터 국민안전처 안전기획과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2014년 5월 전북도청에서 수습 근무를 거쳐 희망 근무 부처였던 국민안전처에 배치받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가 공직에 입문하기까지 꼬박 2년 6개월이 걸렸다. “성실한 것도 좋지만 장기전이라는 생각에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윤 사무관은 가장 어려웠던 과목으로 정치학을 꼽았다. 윤 사무관은 “행정법, 행정학 등 과목은 어쨌거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답안에 쓰면 되는데, 정치학은 보다 거시적 담론이라 정답이 없고 자신의 주장을 써야 해서 평소 관심을 갖고 고민하지 않으면 좋은 답이 안 나온다”며 “고시반에서 만난 친구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데, 그 친구는 행정법을 어려워해서 서로 답안을 읽고 조언해 주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안전처 모임 ‘마중물터’… 공무원들 뭉쳤다 윤 사무관이 국민안전처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2013년쯤 친동생이 유학 중인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지진이 났는데 당황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5분 전에 지진 발생 위치, 지진의 강도 등 정보가 담긴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고 가장 가까운 대피시설로 침착하게 대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재난 대응 매뉴얼 같은 게 우리나라도 절실하다고 느꼈습니다.” 안전기획과는 국민안전처에서도 ‘예방’ 업무를 관할하는 안전실 소속 주무과다. 윤 사무관은 “북핵실험 등 현안이 터지면 각 과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취합 정리하는 것은 물론, 국민안전처 신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8시 30분에 열리는 장관 주재 상황보고회의 준비를 한다”며 “그날그날 사건, 사고를 가지고 실별로 안건을 준비해 가는데, 재난 발생 시 대응 모의 훈련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안전기획과에서는 대외적으로 국민안전처 업무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윤 사무관은 매달 안전 관련 주제를 선정하고 각 과에서 보내 주는 관련 내용을 취합해 언론에 장·차관 기고 형태로 내보낸다. 지난달 열린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 준비 때도 안전실 관련 내용은 안전기획과에서 맡았다. 실 전체 업무를 항상 파악하고 취합해 정리하는 역할이다 보니 늘 마감 시간에 쫓기는 고충도 따른다. 윤 사무관은 “모든 업무를 정해진 시한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각 과에서 자료가 늦게 들어오거나 하면 불안하고 초조할 때도 있다”며 “반면 매일 새로운 사건, 사고와 관련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지루함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서로 다른 세 조직이 모인 국민안전처에는 ‘마중물터’라는 모임이 있다. 행정직 공무원은 물론 소방·방재, 해양 경비·안전·오염방제 담당 사무관, 주무관들이 점심시간에 함께 모여 재난 관련 정책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거나 더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하는 자리다. 모임은 안전정책실장 주재로 열린다. 그는 “재난 영화를 함께 관람하기도 하고, 행정학 교수를 초빙해 강의를 듣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면서 “저처럼 새내기들이 업무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국민에게 믿음 주는 안전처 만들래요” 2년 차에 접어든 공직생활에 대해 윤 사무관은 “생각한 것보다 주어지는 역할이 너무 커서 정말 놀랐다”고 했다. “시험 준비할 때는 실무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몰랐는데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개정하는 등 공무원의 정책결정이 수천, 수만명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윤 사무관이 되새기는 세 글자가 있다. 청(淸), 신(愼), 근(勤)이다. 공직자는 청렴해야 하고,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하며 부지런히 공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 사무관은 “5급 공채 시험에 합격했을 때 지도 교수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선물해 주셨는데, 현대 공무원에게도 이 세 글자는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고 했다. 윤 사무관은 마지막으로 공직자로서 자신의 바람을 털어놨다.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국민의 정책참여도를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국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국민에게 다가가 믿음을 얻고, 이 악순환 구조가 선순환 구조로 바뀌도록 하고 싶습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학교 떠난 청소년 절반은 “후회”… 고1 가장 위험하다

    학교 떠난 청소년 절반은 “후회”… 고1 가장 위험하다

    “일어나기 힘들어” “공부가 싫어” 어른 관심으로 막을 수 있는 이유들 10명 중 2명 “누구와도 상의 못해” 42% “가장 힘든 건 편견·무시” 학교 등지는 고1 32.6% 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정의 순간 조언이 필요했지만 어른들은 무관심했다. 10명 중 2명은 학교를 그만둘 때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28일 학교 밖 청소년 469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학교 밖 청소년의 56.9%가 학교를 떠나 후회한다고 답했으며, 특히 소년원과 보호관찰소에 입소한 청소년은 10명 중 7명이 당시 결정을 후회했다고 밝혔다. 학교를 그만둔 시기는 아직 어린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32.6%)에 집중됐다. 청소년 14.5%는 아무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학교를 그만뒀다. 소년원, 보호관찰소를 드나든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관심에서 더 소외됐다. 소년원의 청소년 26.4%, 보호관찰소의 청소년 17.5%가 학교를 그만둘 때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했다. 부모 다음으로 가까운 어른인 학교 선생님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중복 응답을 허용한 설문에서 33.1%만 담임선생님이나 상담선생님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67.0%는 부모, 44.7%는 친구, 12.8%는 형제자매와 학교를 그만두는 문제를 상의했다. 누구라도 청소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상담해 줬다면 학교를 나서지 않아도 됐을 정도로 학교를 그만둔 사유는 단순했다. 원하는 것을 배우고(22.3%), 특기를 살리고자(12.0%) 학교를 나선 청소년도 있었지만 27.5%는 일어나기 어려워서, 27.2%는 공부하기 싫어서, 14.4%는 자신과 학교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특히 소년원과 보호관찰소의 청소년은 공부하기 싫어서(36.5%), 학교와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13.2%)라고 응답한 비율이 다른 청소년보다 높았다. 청소년에게 학교 밖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53.5%가 학교를 그만둔 뒤 친구 집, PC방, 모텔·여관, 고시원 등을 전전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해 음식점 서빙, 편의점 점원, 배달, 전단 돌리기 등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점주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해 주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어릴수록 더해 13~15세 학교 밖 청소년 가운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아르바이트를 한 비율은 16.5%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교 밖 청소년을 힘들게 한 것은 사회적 편견이었다. 42.9%가 선입견·편견·무시 등으로 힘들다고 답했고, 26.3%가 부모와의 갈등으로 괴롭다고 했다. 28.8%는 진로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정부에 바라는 정책은 검정고시 지원(4점 만점/2.87점), 건강검진 제공(2.82점), 진로탐색 체험(2.78점), 직업교육훈련(2.76점)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검정고시가 끝난 후 대학입시설명회를 열고 취업사관학교를 6곳에서 8곳으로 확대하는 한편 진로지도 매뉴얼을 보급해 학업과 취업·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정기 건강검진도 올해 도입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청년 위해 “값싼 임대” 노인 위한 “공유주택”

    청년 위해 “값싼 임대” 노인 위한 “공유주택”

    전·월세난으로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서대문구가 서민 주거복지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었다. 서대문구는 전·월세난과 1~2인 가구의 증가, 청년·노인가구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달 29일 SH공사와 업무협약도 맺고 지역 내 주거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구는 올해부터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준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 구 관계자는 “대학이 밀집한 특성을 고려해 대학생들에게 우선 임대주택을 공급할 것”이라면서 “청년층의 주거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 역사를 살린 맞춤형 주택을 저소득 독립·민주유공자와 홀몸어르신, 한부모가정 등에 제공한다. 이들 주택은 공유주택(쉐어하우스) 형태로 공급해 단순한 주거문제 해결을 넘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할 예정이다. 주거급여 대상자를 중심으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와 불편사항 등을 실태조사한다. 구는 맞춤형 주택에 입주할 대상자 선정 등 행정지원을 맡고, SH는 맞춤형 주택공급과 주거실태조사 등을 맡는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실태조사 사업은 주택바우처 대상자를 중심으로 주거욕구조사, 심층주거상담 등을 통하여 얻은 주택 수요정보를 토대로 지역주민 주거지원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모든 복지 중 주거복지가 가장 기본”이라면서 “청년·노인 등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으로 복지 1등 자치구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대문구 고시원 리모델링해 대학생과 한부모가정 등에 주거복지 제공

    서대문구 고시원 리모델링해 대학생과 한부모가정 등에 주거복지 제공

    전·월세난으로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서대문구가 서민 주거복지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었다. 서대문구는 전·월세난과 1~2인 가구의 증가, 청년·노인가구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12월 29일 SH공사와 업무협약도 맺고 지역 내 주거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구는 올해부터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준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 구 관계자는 “대학이 밀집한 특성을 고려해 대학생들에게 우선 임대주택을 공급할 것”이라면서 “청년층의 주거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 역사를 살린 맞춤형 주택을 저소득 독립·민주유공자와 홀몸어른신, 한부모가정 등에 제공한다. 이들 주택은 공유주택(쉐어하우스) 형태로 공급해 단순한 주거문제 해결을 넘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할 예정이다. 주거급여 대상자를 중심으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와 불편사항 등을 실태조사한다. 구는 맞춤형 주택에 입주할 대상자 선정 등 행정지원을 맡고, SH는 맞춤형 주택공급과 주거실태조사 등을 맡는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실태조사 사업은 주택바우처 대상자를 중심으로 주거욕구조사, 심층주거상담 등을 통하여 얻은 주택 수요정보를 토대로 지역주민 주거지원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모든 복지 중 주거복지가 가장 기본”이라면서 “청년·노인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으로 복지 1등 자치구의 명성을 이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경제 블로그] 농협銀 김 과장 새해 벽두 납치극의 전말

    [경제 블로그] 농협銀 김 과장 새해 벽두 납치극의 전말

    농협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 그는 지난 4일 첫 출근길에 오르며 새해 다짐을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커먼’ 남성 두 명이 다가오더니 “잠시 같이 가자”며 양팔을 끼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이후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합숙 당일 인사부서 출제위원 데려가 납치극(?)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농협은 1년에 한 번씩 계장(5급)에서 과장(4급)으로 올라가는 승진 시험을 치릅니다. 지금이 바로 그 ‘고시철’입니다. 농협중앙회와 은행 등에서 해마다 1500명 정도 응시하는데 합격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고시촌 못지않게 몸살을 치릅니다. 올해 시험 날짜는 오는 17일입니다. 6개월 전부터 집을 나와 서울 서대문 농협 본점 주변 고시원에서 머리를 싸매고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지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출제위원 선정 과정도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출제위원은 중앙회와 은행 직원 중에서 60명가량 차출됩니다. 올해도 지난 4일부터 모처에서 합숙하며 문제를 뽑고 있습니다. 이들은 채점이 끝나는 19일까지 2주 동안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출제위원 당사자에게도 선정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습니다. 합숙 당일 인사부 직원들이 출제위원을 ‘납치’해 오지요. 김 과장도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선정될 낌새 땐 해당 직원 휴가·탈출 그런데 정작 해당 부서에서는 출제위원 차출을 몹시 부담스러워한다네요. 2주 동안 업무 공백이 생겨서죠. 그래서 머리싸움도 치열합니다. 출제위원으로 선정될 낌새가 보이면 미리 해당 직원을 휴가 보내 버리거나 사무실 외부로 탈출시킨다고 하네요. 한바탕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는 거지요. 농협에만 있는 이런 풍경도 내년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7년부터 승진 고시를 폐지하려고 노사가 논의 중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은행들은 이미 일찌감치 없앴지요. 애초 승진 고시 취지는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직원에게 승진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지만 “영업하기도 바쁜데 언제 시험공부하느냐”, “(상대적으로 시간 관리가 쉬운) 본점 직원이 더 유리하다” 등의 불만이 뒤따르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취임 뒤 1년은 낡은 관행을 바꾸는 데 쏟겠다”고 일성을 날린 김병원 차기 농협중앙회장이 유달리 지역주의, 온정주의가 뿌리 깊은 농협에 새로운 성과주의를 확산시킬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현장 행정] 관악구 ‘브랜드’로 키우는 노랑머리 구청장

    [현장 행정] 관악구 ‘브랜드’로 키우는 노랑머리 구청장

    ‘고시촌 1번지’인 관악구는 2009년 사법시험 폐지, 로스쿨 도입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2010년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취임과 함께 다양한 브랜드의 도시로 새로 태어났다. 유 구청장은 ‘인문학의 도시’,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도시’, ‘365일 자원봉사 도시’ 등 다양한 관악구만의 브랜드를 개발했다. 구청장 본인도 브랜드화시킨 유 청장은 파격적 염색머리로 유명하다. 또 본인의 얼굴을 담은 명함(큰 사진)도 네 가지 색깔과 사진으로 만들어 관악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청장뿐 아니라 관악구 직원들도 명함 경진대회를 열어 나이트클럽 웨이터 명함, 책처럼 펼치는 명함 등 공무원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명함을 만들었다. 관악구는 올해 ‘걸어서 10분 텃밭 도시’란 브랜드를 하나 더 추가할 계획이다. 미림여자정보과학고 인근의 삼성동 산 86-6 일대에 약 1만㎡의 도시농업공원을 조성한다. 도시농업공원은 텃밭, 논, 토종씨앗을 보급하는 채종원, 도시양봉 시설 등을 고루 갖추고 올 연말 문을 연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도시양봉을 시도한 관악구는 질 좋은 꿀 생산에 성공했다. 유 청장은 직원 공모를 통해 꿀이름 짓기를 시도하다 결국 스스로 ‘관악산 꿀벌의 선물’(작은 사진)이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관악구 고시촌은 1975년 서울대 이전과 함께 형성됐다. 1984년 지하철 2호선 신림역과 서울대입구역이 개통되면서 관악산 고지대에 하숙촌과 고시원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주택가 원주민이 고시생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던 고시촌은 2000년대 주민의 50% 이상을 고시생이 차지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2009년 로스쿨 도입과 함께 고시원 공실이 생겼고 현재 공실률은 35%에 이른다. 1995년 2만 8000여명이었던 대학동(옛 신림동) 인구는 2013년 2만 3000여명으로 급락했다. 관악구는 고시촌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지식창조마을로 변화하고자 다각도로 애썼다. 대학18길에서 20년 넘게 운영된 고시원인 태학관은 유학생 아들이 돌아와 물려받으면서 서울대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커뮤니티 하우스로 탈바꿈했다. 고시촌 영화제, 1인 가구 축제 등을 열어 전국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관악구에 ‘인간이란 섬을 연결하는 다리’도 세웠다. 유 청장은 “관악산과 이웃한 관악구는 자연이 바로 이웃으로 행복한 친환경 도시란 목표에 근접했다”며 “도시농업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고 주민들의 삶에 여유를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누에의 변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누에의 변

    누에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통령이 “누에가 나비가 돼 힘차게 날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노력하면 누에가 나비도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그러나 누에는 자기를 고치 속에 갇히게 해서 명주실을 만든다. 땅은 뽕나무를 키우고, 뽕나무는 누에를 키우고, 누에는 거문고 소리를 키운다는 말이 있다. 거문고 줄을 만들려면 2만여개의 누에고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거문고를 ‘신의 악기’라고도 한다. 그래서 강진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은 누에치기를 귀하게 여겼다. 명주실을 만들기 위해 고치에 갇히듯 스스로 ‘갇힘’을 자청하는 자발적 유배인들도 있다. 빅토르 위고는 “잉크 한 병과 목부터 발까지 몸을 감싸 줄 두꺼운 회색 털옷을 한 벌 샀고, 외출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으려고 옷들을 자물쇠로 채웠으며, 마치 감옥 속에서처럼 소설에 몰입했다. 그때부터 식사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파리의 노트르담’은 완성됐다. 27년을 갇혀 지냈던 현대의 대표적인 유배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도 예외가 아니다. 말이 27년이지 그 시간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20세기 최악의 악마였던 흑백 인종분리 정책을 물리치고 끝내 화해와 용서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배지 로벤섬에서 키운 내공 덕분이었다. 그 내공으로, 홀로 갇혀 있으면서 갇혀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고, 어떤 최악의 갈등과 대립도 대화로 풀어 갈 수 있다는 전범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었다. 이렇게 갇혀 있으면서도 각고의 노력을 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 경우는 명주실이 의복혁명을 가져왔고 또한 만델라가 그러했듯이 사회적인 노력과 파급이 병행될 때였다. 위고가 말년에 왕정 쿠데타 기도에 대항하는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을 목표로 정치적 참여를 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젊은이들도 갇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미래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들은 알바에, 비정규직에, 고시원에 갇혀 있으면서 스스로를 쓸모없이 남아도는 잉여인생이라고 자조한다. 그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개인의 노력보다 더 중요해진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좌절하고, 그 때문에 3포, 5포라고 포기하면서 부모보다 못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거라는 경고까지 받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이다. 이 같은 퇴행적인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그들에겐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무엇보다 정치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세계가 누에치기용 채반인 잠박”(世界皆箔也)이라 했다. 바로 잠박을 크게 해 줘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명주실을 뽑고, 귀한 비단을 짜낼 수 있는 환경을 과감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면 다그치지 않아도 그들은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누에가 과연 나비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들이 갇혀 있기만 한 채 실을 켤 수 없는 ‘죽은 고치’가 되는 날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는 날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헬조선일 것이다. 제주대 교수
  • [단독] 창업 청춘들 ‘4평의 도전’… 年매출 7억 창조경제 열다

    [단독] 창업 청춘들 ‘4평의 도전’… 年매출 7억 창조경제 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언덕에 있는 1인 창조기업을 위한 공공 원룸주택 ‘도전숙’(挑戰宿)은 일터와 삶터가 같다. ‘도전하는 사람들의 숙소’라는 도전숙은 대한민국 최초의 직주(職住) 혼합형 공공주택으로 기존 원룸주택을 개조한 5층짜리 건물이다. 입주자들은 ‘젊은이들이 패기 없이 고시원에서 공무원시험만 준비한다’는 편견을 산산이 깬다. 2014년 ‘성북구 도전숙 1호와 2호’를 시작으로 ‘성동구 도전숙 1호’에 이어 올해 서울시에 4곳의 도전숙이 추가로 문을 연다. 서울의 기초자치단체들이 지원하고 후원하는 1인 창업에 20~50대가 도전해 창조경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도전숙에 온 지 1년 반 만에 프로그래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어요. 옆방 문을 두들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책이 나오죠.” “투자 제안서를 만들 때 ‘남의 돈을 받으려면 이런 서류로 되겠어!’라며 옆방 동료가 도와줍니다.” “해외 사업을 할 때 필수적인 비즈니스 영어도 동 대표님에게 배우고 있어요.” 2014년 4월 정릉동 보국문로에 ‘도전숙’이라는 생소한 간판을 단 원룸주택이 생겼다. 비즈니스센터나 대학의 앱 창작터 등에서 창업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사무실을 낼 공간이 없어 괴로워하자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뛰어다닌 결과다. 서울지방중소기업청, 성북구청, SH공사가 뜻을 모았고, 까다로운 공공주택 입주자 선정 지침도 개정했다. 14~29㎡(4~8평)의 방은 임대보증금 1200만~1900만원에 월 임대료 6만 7000~10만 6000원이다. 입주 조건은 월 소득 240여만원 이하, 보유 부동산 5000만원 이하, 자동차 2200만원 등이고 사업계획서 심의를 통과해야 입주할 수 있다. ●월소득 240만원·부동산 5000만원 이하땐 입주 4평의 좁은 방에서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벌이는 21개의 창조기업은 1년여 만에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인 기업이라는 한계 때문에 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 개발 사업의 비중이 높은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도전숙 1호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하는 업체는 기능성 유아용품 개발 업체인 ‘퍼니스’다. 퍼니스 김희정 대표는 “건축 디자인을 하다 시장조사 끝에 유아용품을 개발해 제조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하고 판매와 디자인에 주력한다”고 했다. ‘쭈쭈미아’라는 재기 넘치는 이름의 퍼니스 제품은 젖병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워머다. 유아용 패션 턱받이도 백화점, 공항 면세점 등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다. 김씨는 “백화점의 판매 수수료는 보통 40% 안팎인데 청년기업은 샤넬, 루이뷔통과 같은 15%의 수수료만 백화점에 문다”고 자랑했다. 제품이 뛰어나 중소기업청이 지원한 덕분이다. 올해 오프라인 매장도 3곳 열어 여성가족부와 연계해 경력 단절 여성을 채용할 계획이다. ‘디오인사이트’의 유승환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여행지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빅 3 여행사의 데이터 100만건을 분석 중이다. 유 대표는 “올해 초 8년간 모인 복지 데이터를 분석해 3인 가구가 2년 동안 200만원 이상 소득이 있다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데이터 더미에서 보석 찾기’가 유 대표의 업종이다. 유 대표는 구글이 공개한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진 속의 옷, 신발의 브랜드를 찾아 싸게 살 수 있는 앱도 개발한다. 유 대표가 데이터를 가공하면 이미지 분석 앱은 도전숙 동료 입주자인 ‘Appist’의 이경진 대표가 개발한다. 이런 패션 관련 앱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접근이 어려웠는데 구글,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에서 알고리즘을 공개해 가능해졌다. ●내 방서 데이터 분석하면 옆방선 앱 개발 구글은 양날의 칼이다. 도전숙 1호 입주자 중에는 구글 탓에 1년마다 열린 평가 상담에서 ‘취업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는 조언을 듣고 창업을 접은 이도 있다. 결혼 정보 관련 앱을 개발했는데 구글에서 검색어에 문제가 있다며 앱스토어에 등록해 주지 않은 탓이다. 네트워킹 시스템을 개발하는 ‘넷토커스’의 조은주 대표는 도전숙에서 네트워킹의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조 대표는 전 직업이 영어 교육 쪽이라 시스템과 프로그램 개발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조 대표는 “도전숙에서는 옆방을 두들기면 바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만드는 시스템의 개발자는 서울시 창업스쿨 동기”라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것은 중소상공인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해외에도 진출해 영국 현지 업체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Appist’의 이 대표는 지금까지 40여 개의 앱을 개발해 모두 200만 건이 배포됐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앱은 전자메뉴판이다. 홍대나 강남역의 최신 식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한 경험이 있다면 이 대표가 개발한 시스템을 사용한 것이다. 음식 주문뿐 아니라 결제 기능까지 탑재해 1만 개 식당에서 그의 앱이 사용되는 게 올해 중반까지의 목표다. 소비자의 반응을 듣고 만남과 예약 기능도 추가하는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골방에서 일하는 외골수 개발자로, 이는 흉기와 같다”고 최승철 도전숙 센터장은 말한다. 최 센터장은 1인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전숙 내부에서 활발한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창업이 결실을 얻도록 방향타 역할도 한다. 도전숙에서는 여름이면 정릉천에 모여 수박을 나눠 먹고 주말에는 북한산 등산을 한다. 기타, 영어회화를 서로 배우고 익힌다.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한다. 입주자협의회는 매달 반상회를 연다. 회비는 1만원이지만 불참하면 페널티가 2만원이다. 반상회비로 정수기, 복합기기 등 여러 물품도 마련했다. 도전숙 1호에는 21개 기업이, 2호에는 15개의 기업이 있다. 2000년 초 한국의 벤처 신화가 사무실 한쪽의 간이침대에서 생겼다면 2016년 창조경제는 공유 공간에서 실현되고 있다. 매일 정릉 언덕길을 오르는 1인 창업자들은 작은 방에서 큰 꿈을 펼치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유사 성폭행 가해자도 화학적 거세… 총선서 ‘안심번호 경선’ 가능

    유사 성폭행 가해자도 화학적 거세… 총선서 ‘안심번호 경선’ 가능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어 유사 성폭력 가해자에게도 성충동 조절 약물을 투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성폭력범죄자 성충동약물치료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등 비쟁점법안 212건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의 대상이 되는 성폭력 범죄에, 직접적 성행위 대신 신체의 다른 부위나 도구를 사용하는 ‘유사 강간’을 추가했다. 또한 해상에서 일어난 강간 범죄의 대상을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여야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 등에서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이동통신사에서 ‘안심번호’를 받아 휴대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안심번호란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지 않은 채 이용자의 성(性), 연령, 거주지역만 알 수 있도록 이동통신사가 생성한 임시 번호다. 기존의 유선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표본 집단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반영하는 한편 조직력을 이용한 동원선거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경선 후보들이 조직을 동원해 여러 대의 유선전화를 설치한 뒤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해 여러 차례 같은 응답을 하는 데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사회적 재해’ 발생으로 영업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대해 정부가 피해복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메르스 등 감염병 발생 시 지방의료원이 지역거점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등을 사용해 범칙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한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도 눈에 띈다. 현재 국세, 관세, 지방세, 공공요금 납부 시에는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보복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운전면허도 함께 취소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운전면허 시험 부정행위자도 해당 시험은 무효로 하고 2년간 재응시가 제한된다. ☞ 31일 본회의를 통과한 전체 법안과 주요 내용 ‘제2의 김운하’를 막기 위한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이 법안은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극심한 생활고와 건강악화에 시달리다 지난 6월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일을 계기로 발의됐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용역 계약서가 서면으로 남지 않는 관행을 고려, 당사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계약서를 주고받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에 따르면 배기가스 관련 부품의 설계를 조작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개정안은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이른바 ‘매 맞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은 고교 이하 일선 학교장이 학생 등에 의한 교원 폭행·모욕 행위를 알게 되는 경우 즉시 피해 교원에 대해 보호 조치를 한 뒤 사건 내용과 조치 결과를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연초 ‘가짜 백수오’ 논란에 따른 후속 대책인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도 의결됐다. 우수건강기능식품 제조 기준을 의무 적용하고, 원재료 사용 함량과 관계 없이 유전자변형(GM) 기술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표시토록 하는 안이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세명의 소설가와 한명의 건축가, ‘문학의 공간’을 말하다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곳, 즉 공간은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세 명의 젊은 소설가와 건축가가 모여 ‘문학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소설가 김봄, 서현경, 장성욱 그리고 건축가 이덕종이 그들이다. 이번 기획을 맡은 소설가 김봄은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을 했고, 소설가 서현경은 2011년 문화일보로, 장성욱은 2015년 조선일보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건축가 이덕종은 AA School을 졸업했고, 현재는 BCHO Architects에서 건축가로 일하고 있다. 3강에는 하성란 작가의 특강이 마련되어 있다. 소설가 하성란은 1997년 서울신문을 통해 등단했으면,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견 작가이다.  이번 강의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 선정작으로 1강에서는 소설 속 ‘방’을 중심으로 이상의 ‘날개’ 속 33번지 방에서부터 박민규의 ‘갑을고시원체류기’의 고시원까지 문학 안에 나타나는 ‘방’의 변천사와 더불어 건축 분야에서는 방을 어떻게 형상화하는지를 살펴본다. 2강은 소설 속 감각의 공간인 환상적 공간과 더불어,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건축이 어떠한 방식으로 인간의 감각과 조우하는지를 조명한다. 3강에서는 하성란의 ‘곰팡이 꽃’과 ‘옆집 여자’ 속에 그려진 집합공간에 대해 소설을 집필한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매주 강의의 끝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을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강의는 연희문학창작촌의 협찬으로 연희문학창작촌 미디어랩실에서 각각 1월 9일, 16일, 23일 세 번에 걸쳐 오후 3시부터 세 시간 동안 진행되며, 수강료는 2만원, 강의 신청 및 문의는 kimbom0519@gmail.com을 통해 할 수 있다.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이사해도 쓰던 종량제 봉투 그대로… 만 56세 무료 정신건강 검진

    이사해도 쓰던 종량제 봉투 그대로… 만 56세 무료 정신건강 검진

    새해부터 서울 종로구에서 관악구로 이사를 해도 쓰다 남은 종로구 종량제 봉투를 그대로 쓸 수 있다. 내년 4월부터 지하철 5~8호선에선 이동 중에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하다. 서울시는 이처럼 새해에 시행되는 5개 분야 45개의 변화된 정책을 담은 책자 ‘2016 달라지는 서울생활’을 29일 발간했다. ▲복지·여성 ▲주택·교통 ▲경제 ▲녹지·환경 ▲민원·행정 등이다. 우선 복지·여성 분야에선 내년 3월부터 ‘베이비붐 세대’(만 56세)를 대상으로 무료 정신건강 검진 및 상담 서비스를 전국 최초로 한다. 또 베이비붐 세대에 일자리 연계와 교육 상담, 문화·건강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서북권·도심권의 ‘50+캠퍼스’가 각각 상·하반기에 문을 연다. 직장맘들의 고충을 처리할 전용콜도 신설된다. 120다산콜센터에 직장맘 고충 상담을 위한 핫라인을 신설해 전담 노무사가 상담부터 고충 해결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자리 대장정’을 진행하며 필요성을 제기했다.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은 7월부터 확대 실시한다. 훈련된 전문 간호사가 영·유아 가정을 직접 찾아가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평가하고 신생아 돌보기 및 모유 수유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주택과 교통, 경제 분야에서는 ‘서울형 장기안심상가’ 운영이 대표적이다. 소상공인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도록 돕는다. 임대료를 과도하게 인상하지 않고 상가를 장기 임대하는 건물주에게 최대 3000만원까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한다. 내년 2월부턴 영세 소상공인들이 폐업을 대비해 ‘노란우산 공제’에 새로 가입하면 장려금으로 월 가입액의 5%도 돌려준다. 아울러 시는 노후 고시원과 모텔 등 숙박시설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5월부터 1인 가구에 주변 시세의 50% 이하로 임대한다. 43억원 예산으로 60개의 방을 마련한다. 환경, 민원 분야의 경우 민원 신청 안내에서 방문 접수까지 한번에 도와주는 ‘민원 도우미제’를 도입하고, 민원으로 입은 피해를 최대 10만원까지 보상해 주는 ‘민원처리보상제’ 등을 실시한다. 이사로 도시가스를 연결할 땐 예전 같은 출장·시공비 부담 없이 재료비만 내면 된다. 4월에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반려견 놀이터가 문을 열고, 마포구 상암에는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이 개관한다. 관련 책자는 동주민센터,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되며 구글플레이와 스마트서울앱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
  • 어느 프리랜서 언어재활사의 고독사

    한 지방대 언어치료학과를 나온 황모(30·여)씨는 2013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고시원 관리인에게 자신을 언어재활사라고 소개한 그녀는 이따금 외출을 하면서도 인사 정도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고시원 관리인이 보기에 황씨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조용한 직장인이었다. 친구를 데려온 적도 없었다. 황씨의 이웃 중에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프리랜서 언어재활사로 일하던 그는 휴대전화 요금마저 밀려 결국 가족과의 통화도 공중전화로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보내 달라는 말을 전화로 하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 갔다. 지난해 겨울 결국 요금 미납으로 전화 착신마저 정지됐다. 삶의 위안이 됐던 남동생의 안부 전화조차 받을 수 없게 됐다. 어려서부터 앓아 온 기관지 질환은 그녀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고시원 관리인이 파악해 둔 황씨 남동생의 휴대전화 번호가 황씨와 가족을 잇는 유일한 고리였다. 지난 15일 오후 1시 30분쯤 황씨는 고시원 자기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밀린 두 달치 월세를 받으러 간 관리인에 의해 발견된 그녀는 이불을 덮은 채 잠을 자듯 누워 있었다. 관리인은 “지난달 27일에도 월세를 받기 위해 찾아갔을 때 몸이 아프다며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며 “창백한 얼굴로 겨우 말을 잇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시신의 부패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황씨가 보름 전쯤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보고,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17일 “황씨가 홀로 생활하다 고독사했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추위에 떠는 이웃 없도록… 눈 부릅뜬 강서구

    강서구가 내년 2월까지 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을 집중 발굴하는 ‘동절기 복지 사각지대 특별조사’에 나선다. 복지 박탈감과 위험성이 더욱 커지는 겨울철에 위기 가구를 찾아 체감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구는 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을 위한 ‘위기 가정 발굴 지원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한다고 15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수급 신청 탈락자와 수급 중지자 가운데 복지 지원이 필요한 가구 ▲실직·질병·노령 등 과중한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은 가구 ▲주 소득자의 사망·실직 등 긴급 위기 사유 발생 가구 등이다. 프로젝트에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을 비롯해 서울시의 복지서비스인 더함복지상담사, 통합사례관리사 등 공공 자원을 적극 활용한다. 이달 중 더함복지상담사를 충원하고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 주거 취약 지역을 돌며 방문 조사 활동을 펼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복지통장과 동희망드림단 등은 ‘우리 동네 한번 더 둘러보는 날’을 통해 발굴 활동에 가세한다. 집배원, 가스검침원들도 어려운 이웃을 발굴하고 보호하는 데 합류시키고 보건복지부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도 활용해 어려운 가구와 보호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이렇게 발굴한 틈새계층에게 신속한 판단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공적 급여 신청을 유도하고 긴급 지원을 추진한다. 공적 지원 범위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위기 가구라고 판단되면 지역 민간 자원과 연계해 도울 계획이다. 노현송 구청장은 “추운 겨울이면 삶이 팍팍한 이웃들이 더 고통받기 십상”이라면서 “위기에 처한 이웃이 희망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복지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기성작가 뺨치는 신인들…살기 벅찬 세상을 담았다”

    “기성작가 뺨치는 신인들…살기 벅찬 세상을 담았다”

    2016 서울신문 신춘문예가 진일보했다. 신인 작가 최고의 등용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기성 작가들의 작품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수작들이 국내외에서 대거 몰렸다. 이번 신춘문예 등단 작가들이 침체된 한국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일 마감된 응모작은 모두 4041편이다. 분야별로는 시 2640편, 소설 429편, 시조 595편, 희곡 155편, 동화 213편, 평론 9편이다. 지난해보다 시(2905편), 소설(445편), 희곡(206편), 동화(257편), 평론(11편)은 소폭 줄었지만 시조(446편)는 큰 폭으로 늘었다. 시는 예년에 비해 산문화 경향이 두드려졌다. 내용 면에선 세대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고, ‘나 하나도 살기 벅찬’ 현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많았다. 개인적인 사유나 정서보다는 다른 텍스트나 책, 영화, 드라마, 그림, 음악 같은 데서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시 예심을 맡은 김선우 시인은 “사회적 약자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서가 약해졌다. 파편화되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개인의 고립감이 깊어지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나 혼자 살기도 급급해진 힘든 현실이 나 아닌 다른 외부 세상이나 타자에 시선을 돌릴 만한 여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강계숙 문학평론가는 “세대 차가 심해지는 현상이 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층이 쓴 시와 중장년층이 쓴 시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에 접어들지 않은 세대는 그 세대의 시들을 공감하기 힘들고, 자기 얘기에 치중하면서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세대의 시들은 인생 경험이 쌓인 세대가 공감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두 심사위원은 “이야기 출처가 생생한 생활 경험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에서 나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걸 차용하는 형태여서 전반적으로 정서가 메마르고 건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유의 목소리나 환상, 이미지 같은 개성을 찾아보기 드물었다” 등 따끔한 지적도 했다. 소설도 영화나 다른 명작 소설 같은 데서 모티브를 가져온 게 많았다. 대다수 작품이 연인, 부부 등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를 소재로 삼았고 내용은 연애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때 유행했던 고시원, 원룸을 무대로 한 ‘20대 백수 소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예심에 참여한 편혜영 작가는 “인간관계를 사회적 맥락에서 보지 못하고 축소된 표피적 맥락에서 보고 있다.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마저 폭력으로 파탄 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전성태 작가는 “소설은 독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고민해 볼 수 있는 틈, 여백과 여백 사이가 있어야 하는데 상황 중심으로만 전개된다. 묘사도 없다. 묘사가 없는 소설들은 한두 편의 실험 소설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추세가 된다면 소설 존립 근간이 흔들린다. 상상력이 너무 영상화됐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연애 얘기가 압도적인데 모두 다 ‘사랑 없는 사랑 소설’이다. 관계가 파탄 나거나 전혀 사랑이 아닌 관계인데도 사랑으로 포장돼 있다. 상상력도 신인의 참신함보단 익숙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형화된 상상력’을 보였다”고 평했다. 시조는 예년과 달리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우리 시대의 당면 문제들을 직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심사위원인 박기섭 시조시인은 “그동안 자연, 역사 문제에 치중해 왔던 데서 벗어나 현실 문제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쪽으로 확 바뀌었다. 청년실업, 구조조명, 명예퇴직 등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살아 있는 시로서의 시조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근배 시조시인은 “시조가 옛 형식을 갖고 있어 낡거나 서정적인 것만 글감으로 쓸 것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깼다. 당대 우리 사회의 문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을 자유시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형상화했다”고 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분쟁 많은 고시원 계약, 결제는 신용카드로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 등이 고시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계약을 취소할 때 방값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고시원 주인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계약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로 방값을 계산하고, 현금이나 계좌 이체로 결제하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반드시 받아야 유리하다. 한국소비자원과 서울시가 30일 공동으로 ‘고시원 관련 민생 침해 경보’를 발령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고시원 피해 상담 건수는 2011년 1239건에서 매년 늘어 최근 5년간 총 6507건에 이른다. 구제가 필요한 소비자 피해 총 341건 가운데 ‘계약 중도 해지에 따른 환급 요구 시 거절’이 92.1%(314건)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소비자원의 합의 권고에 따라 환불이나 배상이 이뤄진 경우는 44.3%(151건)에 불과했다. 박두현 소비자원 서비스팀장은 “고시원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이나 계좌 이체로 방값을 준 경우 주인에게 현금영수증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계약은 1개월 단위로 맺고 계약서에 환불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만약 계약 중도 해지 요구를 주인이 거절하면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해야 추후 절차를 진행할 때 입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청년주거포털 서비스 실행을”

    “청년주거포털 서비스 실행을”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김인제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구로4)은 25일 열린 시정질문을 통해 서울시의 청년주거대책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고 5대 청년주거대책을 제시했다. 김인제 시의원은 시정질문을 통해 “헬조선”, “망한민국”, “수저계급론” 같은 신조어가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근 발표한 ‘2020 서울시 청년정책’과 ‘민간임대주택 공급’ 사업에서 드러난 서울시의 안일한 청년주거대응 태도를 지적했다. 특히 김의원은 "2020 서울형 청년대책을 마련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여전히 청년을 나이로 구분하고 있고, 다양한 청년계층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등 여전히 정책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냉철히 분석했다. 또한 청년 주거지원 정책으로 발표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및 대학생 희망하우징, 빈집살리기 프로젝트,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들은 기존 사업 중 실적이 매우 부진한 사업들로서 정책적 실효성이 의문스러우며, 공급목표치마저 향후 3년간 약 4천호에 그치고 있어 청년주거문제 해결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적 의지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김 의원은 “청년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확대‧공급해야 한다”며 ‘5대 청년주거대책’을 제시하였다. 5대 대책 중 가장 강조한 ‘청년 주거포털 서비스’는 대학주변 원룸 및 고시원, 오피스텔 등 임대료 시세 및 시설수준에 대한 임대인 및 임차인간 정보 공유의 장을 제공하고 정보를 축적하는 등 필요성 및 활용도가 매우 높은 사업으로 즉각적인 실행을 촉구했다. 또한 착한 공인중개사(가칭 ‘공공 공인중개사’)를 위촉하여 일정소득수준이하 청년이 공공 공인중개사를 이용하여 주택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경우 서울시에서 중개수수료를 지원하는 방안과 청년실태조사 및 청년 주택바우처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더 이상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의 위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며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실의에 빠진 청년을 도와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서울시 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미술 강의는 시각 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놀라워요.” 1994년 출간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열풍을 일으켰던 최영미(54) 시인이 서울 관악구의 미술 전도사로 나섰다. 1997년 유럽미술관 순례 산문집인 ‘시대의 우울’을 낸 최 시인은 9일 관악구 평생학습관에서 세계의 명화를 주제로 ‘인문학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8개월 전 관악구로 이사 와 관악구민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1회로 끝나는 특강이 아니라 한 달 반 가까이 강의를 하니 관악구민이란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시인의 ‘관악구살이’는 처음이 아니라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닐 때 관악구에서 자취했고, 20여년 전엔 관악구 고시원에서 머물며 첫 시집을 완성했다. 각 지역에서 유명 문인을 유치하려고 집필실 등을 제공하지만, 서울 출신인 최 시인은 50세가 넘어서도 아직 월세 신세를 지고 있다. 관악구로의 이사도 단지 방세가 싸서 결정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관악구는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시인에게는 거의 그대로다. 언덕이 많아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걸 걱정해야 하고 벌써 온풍기를 끼고 살아야만 하는 등 집 난방도 허술하다.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교통도 불편하다.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의라 걱정이 많았다. 서양미술은 누드 작품도 많아 도판을 고를 때도 조심스럽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수강생들이 시인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당황이 된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해야 할 귀중한 낮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미술 강의를 들으려 시간을 낸 수강생들이 시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역사가 화두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고 다양한 양식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어요.” 최 시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 사진을 칠판에 크게 띄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조각한 것 같지 않나요?”라고 열띤 질문을 던졌다. 흰머리의 노신사부터 젊은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은 일제히 “네~”라고 착하게 답했다. 글 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오 마이 베이비(SBS 토요일 오후 5시 30분) 강화도 농장에서 일일 농부로 변신한 가수 김태우의 딸 소율이와 지율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고구마 캐기에 돌입하자 율자매는 극과 극으로 대비된 모습을 보여 줘 눈길을 끈다. 동생 지율이는 고구마만 캤다 하면 잔뿌리나 흙덩이만 올라와 번번이 허탕을 치는 데 반해 언니 소율이는 캐는 곳마다 대형 고구마가 줄을 잇고 올라와 농부로서의 잠재력을 선보인다. 이날 방송에서는 지난 방송에 이은 ‘엑소’ 카이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카이는 동생에게 양보가 서툰 태오를 위해 마술쇼를 보여 주며 동생과 나눠 먹는 법을 알려줘 남다른 육아법을 선보인다. ■드라마 스페셜(KBS2 토요일 밤 11시 50분) 노량진 고시원에 살고 있는 희준은 1점이 모자라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다시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희준의 일상에 한때 유망한 체조선수였다는 유하가 등장한다. 희준은 사사건건 유하와 부딪히면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1901년 미국. 한밤중에 파헤쳐지는 무덤. 그 무덤의 주인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덤을 파헤친 사람은 바로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이었다. 또 영화에 얽힌 놀라운 사연도 소개된다. 1987년 미국 코미디 영화 ‘세 남자와 아기’가 개봉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 [서울 핫 플레이스] 서울대와 135개 협력사업… 지역민에 맞춤 교양강좌

    [서울 핫 플레이스] 서울대와 135개 협력사업… 지역민에 맞춤 교양강좌

    관악구의 또 다른 별칭은 ‘대학 도시’다. 1975년 국립 서울대가 관악산 기슭에 이전한 데다 구와 대학 간 활발한 협력 사업을 벌인 덕분이다. 올해 구가 대학과 진행하는 협력 사업은 모두 135개. 서울대가 아닌 이화여대, 숭실대, 중앙대 등도 구와 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 구는 서울대와 2011년부터 공동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구의 지식문화국장과 서울대의 부처장이 각각 위원장을 맡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협력 사업을 논의한다. 구는 서울대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재능기부를 요청하고 대학은 경전철 서부선 서울대 연장, 서울사범대 제2부설고등학교 신설, 기숙사 옆 산사태 예방 공사 등을 구에 요구했다. 서울대는 체육관, 미술관, 박물관, 규장각 등 학교 시설도 주민과 공유하고 있다. ‘5060 골든웰빙 운동 프로그램’은 50~60대 성인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도 주민을 대상으로 교양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구와 서울대의 협력 사업 가운데 서울사대 제2부설고교 설립은 가장 굵직한 사업이다. 서울시의회의 고교 설립안에 대한 보류 결정으로 시의회 재상정이 필요한 상태다. 구는 교육청에 건의하고 기존 고교들도 설득해서 제2부설고 설립의 필요성을 계속 알릴 예정이다. 서울사대 부속고는 성북구에 이미 있다. 구는 지역의 우수 인재들이 다른 구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국비 290억원을 들여 국제학급 6개 반을 포함해 학년당 10개 반 규모의 공립고를 세울 계획이다. 서울대 외국인 학생을 위해 홈스테이를 알선하고 사법시험 폐지 등으로 빈방이 늘어난 고시원을 서울대 기숙사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협력사업은 서울대 교수진과 학생들의 재능기부다. 서울대 관악영재교육원은 중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과 방학에 과학, 수학 등을 가르친다. 관악 창의예술영재교육원은 초등학생에게 인문, 역사, 미술에 기반을 둔 융합교육과정을 제공한다. 과학영재 양성 주말 물리학 교실도 인기며 여름방학에는 ‘청소년 공학 프런티어 캠프’도 열린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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