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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박두진(이세기의 인물탐구:75)

    ◎신·자연·인간을 노래한 “해의 시인”/불의·적당주의·시속과 타협 단호히 거부/독학으로 인생행로 개척한 극기의 인물/등산·수석채집 30여년… 붓글씨·서화에도 능해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산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혜산 박두진의 「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인 그를 일컬어 문단은 「해의 시인」으로 부르고 있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인환(고대교수)은 『밤과 밤을 몰아내는 해와의 대조위에 전개되는 「해」에는 혜산이 희망하는 세계가 투영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세계는 꽃과 새와 사슴과 칡범과 인간이 한 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동심을 이루고 있지만 과연 현실이 기다림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그의 시적 변모는 이러한 질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혜산 박두진의 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한 줄기 정신은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신앙의 영향은그로하여금 인간중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고 가장 위대하게 사랑한 예수의 생애를 통해 언덕과 하늘과,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집단이 감동속에 결속되고 있음을 「갈보리의 노래」로 절규하고 있다. ○“위선과 탐욕 버려야”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같은 치욕을,불붙는 분노를,에어내는 비애를,물새같은 고독을,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꽝꽝 쳐 못을 박고,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달아 죽이려는,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우주의 생명과 우주의 질서」에 눈을 돌려 「이제 사물과 인간은 우주적 무도에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하나의 사건이 되고,가식과 위선과 탐욕을 버리기만 하면 누구나 생명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의 특징은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상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다.86년 한 신문에 발표한 칠순기념 특별기고에서 「가난이라든가 개인적인 슬픔,사람에 대한 배반감이나 기쁨을 시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문학은 인간 누구나가 느끼는 인류공동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 천착하여 진실에 대한 투시력을 보여야 한다」고 논한 바 있다.즉 「시의 사상,시의 윤리,시의 심미적 창조가치는 언제나 그 창조의 주체인 시인에 의해서만 시적 진실이 획득된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개탄하면서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젊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을 업고 나와 학연·지연을 앞세워 설쳐대는 것은 문학의 권위와 문학인의 자존심을 잃는 일」이라고 우려해 마지않았다. 혜산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일컬어 「극기의 인물」로 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앙상하리만큼 야윈 체구에 오랜 등산과 수석채집으로 다져진 강단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굴하거나 적당주의나 시속의 타협이 없이 무엇을 하든 정의감과 선비적 자세를 지켜왔고 그의 시의 소재들은 이런 다양한 지란을 이겨낸 심혼의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인 신대철은 팔순을바라보는 나이에도 언제나 꼿꼿한 자세와 순수무결한 시심을 잃지 않는 혜산을 향해 『자기초월의지를 가진 인격과 고고한 학자의 기풍과 시인의 기상을 흐트리지 않아 문단에서는 물론 대학에서도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안성 「고장치기」로 불리는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청렴한 선비이던 선친으로부터 일찍이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고 안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 외엔 그는 혼자서 독학으로 인생행로를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4세때 「문장」지에 등단 24세에 「문장」지의 시 추천을 거쳐 문학활동을 전개하기 이전까지 그는 측량소·경성부청·금융조합원 생활을 전전했고 45년 해방과 함께 그 당시 유일한 출판사이던 을유문화사에 입사한 것이 조지훈·박목월과 만나 「청록집」을 출간하는 계기가 된다.이후 자연과 신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더니 60년대말부터 수석취미에 침몰하여 「돌」 하나만을 주제로 하는 「수석열전」시리즈를 「현대문학」지에 수년간 연재,지금은 「돌의 시」로써 시인만의 청복을 누리는 시기다. 서대문구 창천동 그의 집에 가보면 마당과 거실과 서재와 베란다는 「뇌뢰낙락하고 고하고 괴하면서 관용자수 한 명석」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고 그의 돌에 대한 사랑은 3천여편 이르는 시작 외에도 서화나 수필에 넘치도록 표현되어 있다. 「작은 한개의 돌이 갖는 형태미와 색채미는 어떤 조각품에도 견줄 수 없는 묘막한 조형미가 갖춰져 있다.난이 정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 극치,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면 수석은 웅혼섬세하고 표일 불기이면서 차라리 성자롭다」등,그리고 「시를 쓸 때의 사무사의 맑은 마음,맑은 눈만이 석격이 심웅하고 석품이 우귀」한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혜산의 취미는 다양하다.시를 쓰는 것과 동시에 30년남짓 등산을 하고 난을 키웠으나 그는 이를 굳이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붓글씨와 서화에 능하여 앞을 향해 질주하는 듯 한 아름다운 필체는 「혜산체」로 일가를 이루고 있으나 서도를 감히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것은 너무 높은 경지라그렇고,어떤 것은 나 자신이 족히 미치지 못해 모자라는 것을 취미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시를 좋아하면서 산을 좋아했는지 산을 좋아하다가 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나 산은 심약한 그를 「의지적 인간」으로 바꾸어놓았고 일목일초에 기울이는 정서적·감각적 운치를 알게 했으며 「한개의 돌에 얽힌 정신적 파동」은 그의 시심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돌아본다. 문단의 교분은 다양하진 않지만 월탄이 생존해 계실 때는 종로구 충신동 월탄댁에 가끔 모여 「문주반생기」의 무애 양주동,「명정사십년」의 수주 변영로,공초 오상순,연포 이하윤등 문단의 주호들과 맥주 두잔의 술실력으로 「도도한 무애의 웅변,월탄의 호통,공초의 무언,수주의 독설속에서 시를 주고받고 휘호를 치면서 철저하게 밤을 새운 이야기」는 문단사의 향기로운 추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수석에 물을 뿌리고 돌보면서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그럼에도 자신을 「시인으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의식해 본 일이 없다」고 끝내 도도하다.다만 「시는 한낱 감상이 아닌 인간이 신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덕윤과 경외의 념」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할 뿐이다.언제나 쓸 것이 밀려 있고 생각에 쫓겨 「한없이 즐겁고 한없이 탄력을 느끼면서 고양된 감정,맑은 생각,투지와 저항,여유와 절박감이 뒤섞인 속에서」 그는 총체적으로는 어떤 즐거움과 보람같은 것을 느껴왔다고 수필집 「돌과 사랑」에서 밝히고 있다. 연세대 교수 정년퇴직후엔 일주일에 두번 추계예술대 강의,그외엔 2박3일정도로 수석채집을 위한 여행길에 오르고 수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지루해 하지 않는다.가족은 동화작가인 이희성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4형제. 『시인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기꺼워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내부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 워즈워스의 말은 그를 두고 적절하다.혜산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 속에는 시가 있고 시를 상실한 사람은 인간의 순수성을 상실한 사람이며 시는 본질적으로 진실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신의말씀」이라는 그의 시론을 시로써 실천해냈고 마지막 붓끝까지도 신과 자연과 인간의 결속을 불후의 명시로 성취할 이 시대 진정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연보 ▲19 16년 경기도 안성출신,호 혜산 ▲39년 「향현」「묘지송」등이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 ▲46년 첫시집 조지훈·박목월등과 「청록집」(을유문화사)출간 ▲48년 한국청년문학협회 시부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49년 제2시집 「해」(청만사)출간,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51∼81년 연세대 교수 ▲65년 우석대 조교수 ▲70년 이화여대 부교수 ▲81년 단국대 초빙교수 ▲86∼현재 추계예대 전임대우교수 시집 「오도(오도)」(54년)「박두진 시선」(56년),수필집 「시인의 고향」(58년),시론집 「시와 사랑」(60년),시집 「거미와 성좌(성좌)」(61년)「인간밀림(인간밀림)」(63년)「하얀날개」(67년)「청록집·기타」「청록집 이후」(68년),시론집 「한국현대시론」,수상집 「생각하는 갈대」(70년),영역시선집 에드워드 W 포이트라스역 「Sea of Tomorrow」(71년),수상집 「언덕에 이는 바람」,시집 「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시론집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한국현대시문학대계 「박두진」(73년),시집 「속·수석열전」(76년)「야생대」(77년),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시집 「포옹무한」「하늘까지 닿는 소리」「박두진 전집」(범조사 81년)「나 여기에 있나이다,주여」(82년)「청록시집」(83년),수상집 「돌과의 사랑」「그래도 해는 뜬다」,시선집 「일어서는 바다」(86년) 「불사조의 노래」(87년),시집 「빙벽을 깬다」(90년),산문전집 「햇살,햇볕,햇빛」(91년)「박두진 전집」(신원문화사 95년) 아세아자유문학상(56년) 서울시문화상(63년) 3·1문화상 예술상(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76년) 인촌(인촌)상(88년) 지용문학상(89년)
  • 이번엔 성폭행/클럽 여종업원 야산 끌고가

    【의정부=김명승 기자】 최근 서울과 춘천에서 미군들이 한국인을 집단구타한 데 이어 경기도 의정부에서도 미군 사병이 미군클럽의 한국인 여종업원을 때리고 성폭행했다. 23일 경기도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2일 하오9시30분쯤 의정부시 고산동 116 일명 「뺍벌」 야산 공동묘지에서 주한미군 2사단 소속 노엘터드 마이클 이병(19)이 부대 인근 D 미군전용클럽 여종업원 조모씨(20)를 주먹으로 때린 뒤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콧등과 입술 등이 터지고 어깨와 다리 등에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고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23일 퇴원했다. 마이클 이병은 이날 미군클럽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평소 안면이 있는 조씨에게 비디오대여점으로 테이프를 빌리러 나가자며 밖으로 유인,3백여m 떨어진 야산으로 끌고갔으며 조씨가 이에 소리치며 반항하자 얼굴 등을 때리고 성폭행한 뒤 달아났다.
  • 전국 일본뇌염 주의보/제주·전남서 작은 빨간집모기 발견

    【제주=김영주 기자】 보건복지부는 10일 제주와 전남지역에서 일본뇌염 매개 모기인 작은 빨간집 모기가 올들어 처음 발견됨에 따라 전국에 일본뇌염 주의보를 발표했다. 제주도 보건당국에 따르면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지역에 설치된 유문등에서 지난 9일 채집된 모기 4마리 가운데 1마리가 일본뇌염 매개 모기로 판명돼 보건복지부가 이날 일본뇌염 주의보를 발표했다. 올해의 일본뇌염 주의보 발표 시기는 지난해보다 10일 빠른 것이다.
  • 풍토병/5∼10년주기 극산병 번져 수백명 희생(두만강 7백리:9)

    ◎1904년 화룡현 일대 1백여명 참변/여우우는 새벽엔 으례 사람 죽어나가/오염된 두만강물 타고 북한쪽 전염병도 확산 화룡에서 숭선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차안은 떠들썩했다.술잔을 얼근히 걸친 한 50대 남자는 유난히 큰 소리를 쳤다.그 취객에 입에서 콜레라라는 말이 연신 튀어나왔다. ○한국서 약품지원 제의 『맨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았지 뭡네까.열이 나고 메스꺼워 토역질도 하고….그래서리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지만 차도를 안보이더라 이 말입네다.그제야 쥐병(출혈열)이라는 예감이 들어 병원을 찾았디요.웬걸,병원에서 검사를 하더니 다짜고짜 격리시키고 중앙에 보고를 한다 뭣을 한다 난리를 칩데다.알고보니 호열자(콜레라)였는데,숭선에만 환자가 셋이라고 기래요』 숭선행 버스에서 주어들은 이야기는 함경도에 돈다던 콜레라가 두만강을 건넜다는 것이다.그리고 북한에 콜레라가 너무 심해서 한국이 약품지원을 제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또 두만강물은 병을 옮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북한땅 대홍단군 전분공장이 감자썩은 물을 마구 흘려버리고 무선철광이 쏟아붓는 폐수도 합류한 두만강물을 더 이상 마실수 없다고 열을 올렸다. 연변의 화룡지역은 역사이래로 지방풍토병이 유행하여 재난이 심했다.그것은 극산병,또는 지방성 심근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청나라 기록에는 「누런물을 토하는 병이 유행했다」는 내용이 보인다.19 04년 화룡현 와룡호 한 곳에서만도 개척민 1백명이 죽어나갔다.그래서 이 일대를 「시체골」이라 했고 타령조 노래까지 구전될 정도였다. 밤에 여우가 캥캥 울어대는 날 새벽에는 으레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했다.여자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었다.부동골에서는 한해 겨울을 났더니 젊은 아낙들이 40여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물을 토해내다가는 밤을 넘기지 못하기가 일쑤였다.매일 밤마다 여우가 울어대고 사람이 죽어나가자 성한 사람들도 실성거렸다.성황당을 찾아 치성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병을 잡지는 못했다. ○손톱부터 죽어가는 병 극산병은 5∼10년 주기로 고봉으로 닥쳐 무려 천여명씩의 목숨을 앗아갔다.19 44년 오늘의 화룡시 덕화진 고산촌 우복동 60여호 2백여명 중 1백8명이 세상을 떴다.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인 19 57년 전후에는 극산병과 함께 천연두와 홍진이 겹쳐 찾아왔다.화룡시 숭선진 고성리촌 김봉용(72)노인이 회고하는 극산병은 무서운 병임에 틀림 없었다. 『내 옥석에 있을때 일입네다.소문을 듣고 가보니 금방 시집을 온 새각시가 배를 붙들고 죽는다고 고아대고 있었다.남편은 먼데,나가 안오고 시부모들과 같이 있는데 노인들은 어쩔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합데다.그때 침깨나 놓는 의원이라구는 시만 상촌에 한분이 있어서 달려가서 모셔왔디요.의원은 극산병이라면서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습데다.환자는 애고대고 죽는다고 광기를 쓰는데 이거 야단이 아닙네까.손톱이 하나씩 색이 죽는데 바른 손이 끝나니 왼 손으로넘어 가더라 이겁네다.명색이 의원인데 보고만 있을수 있냐고 하니 한다는 소리가 엉뚱하기라니….듣자니 극산병은 하신에서 온다는데 젊은 아낙을 벗겨 볼수도 없지 않느냐고 대듭데다.물에 빠진 사람 짚오리도 잡는다고 하신을 보이고도 완쾌된다면 대수냐고 내가 주동해서 아낙을 짓누르고 다짜고짜 치마를 들추고 반쓰(팬티)를 벗겨 내렸디요.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신을 벌려보니 음질속에 좁쌀알만큼씩한 것이 잔뜩 돋아 있습데다.의원이 침으로 마구 쪼았디요.달거리 때처럼 피가 흘러나옵데다.소랭이(대야)를 대고 피를 받았디요.사람이 죽은듯 늘어지기를 한 시간쯤이 지났나….환자가 물을 찾습데다.한 바가지 물을 들이키더니만 언제 앓았더냐 싶게 일어나 앉는 걸 봤디요.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여자들은 배만 아프다하면 속곳들을 훌렁 벗었디요.내 평생 마누라말고 다른 여자 살을 섞은 적은 없어도 웬간한 바람쟁이보다는 여자 하신 구경은 더 했수다』 ○미역훔쳐 삶아 먹어 극산병은 여지껏 병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토질이 문제라는 사람도 있고 가난이 근원이라는 말도 들린다.지방마다 치료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그러다가 1957년께 극산병이 돌 때에는 인민공사시절이었는데 귀동냥으로 병의 원인을 대강 알게되었다.극산병은 수토병으로 혈액순환이 안되면 죽게된다는설명을 현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이다.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 두만강에서 사는 조선족들의 생각으로는 미역이 혈액순환에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그러나 인민공사시절이라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판국에 미역을 어디서 구하랴.궁리 끝에 한밤중 두만강을 건너 북한땅 함북 무산의 수산사업소를 쳐들어갔다.죽는 사람들 살리고 보자는 일념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수산사업소에서는 조선족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쌀여섯되와 미역 몇잎을 얻어왔다. 그리고 나서는 간덩이들이 부어 감옥소 갈 작정을 하고 무산에 가서 창고를 털었다.수레에 싣고 와서 집집에 나누어 주었다.마을 전체가 한군데서 해먹고 사는 집체식당 때라 집에서 음식을 해먹으면 경을 치는 시절이었지만 그날 만큼은 집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북한에서 수산물을 몰래 가져오다 변방부대(국경수비대)에 들켰다.마침 부대연장(중대장)이 조선족이어서 『내가 눈감아 줄테니 위에서 물어오면 딱 잡아 떼라』고 일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밀수조사를 나왔다.이경화 구장도 모르쇠를 댔다.그래서 그해 겨울을 그럭저럭 무사히 보낼 수 있었고 캥캥대던 여우 울음소리도 뜸해졌다.해산물이 명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쥐처럼 먹고 소처럼 일했던 당시 조선족들에게 해산물은 명약 구실을 했을 것이다.당시 여우가 울어대던 시절에 유행했다는 타령 한가락을 떠올리면서 수성진에 다시 콜레라가 돈다는 사실이 끝내 못마땅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극산병 열이 걸리면 아홉이 숨 지나니 주검은 산과 들에 쌓이고 일가 식솔 영 이별한다네 황폐한 옥토 풀이 무성하고 가난한 농사꾼 애간장 다 타네 한 많은 우리 살림 언제 펴날고 따사로운 해볕 쪼일 그 날을 고대하네』
  • 건축폐자재 7천t/불법처리 6명 구속

    서울경찰청 수사3계는 12일 김완수씨(44·마포구 삼암동) 등 무허가 폐기물처리업자 6명을 페기물 관리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김씨 등은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성산도 526일대 6천4백여평의 밭을 빌려 포크레인 등 폐기물 처리장치를 갖춘뒤 서울시내 건축현장에서 나오는 폐자재를 1t당 3만원식 6천t을 처리해 주고 1억8천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있다. 또 방배경찰서는 이날 정해조(40·경기 동두천시 고산동)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정씨는 지난 2월 경기 포천군 포천읍 동교리 전보산 계곡에서 건축페자재를 1t당 3만여원에 몰래 폐기해주는 등 지금까지 1천t을 불법처리 해주고 4천여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도 받고있다.
  • 34년간 희귀수목 2천종 채집/나무사랑 한평생…홍릉수목원 한상배씨

    ◎고산·섬지방 등 전국 돌며 찾아내/6·25때 불탄 표본 1만점도 복원 나무사랑으로 일생을 바친 산림청 홍릉수목원 관리담당 한상배(58·기능직9급)씨는 「재야의 나무박사」로 불린다. 한씨는 34년동안 전국을 누비며 수천종의 희귀한 나무와 풀을 채집해 지금의 풍성한 홍릉수목원을 만드는 데 정열을 바쳤다. 덕분에 체험적으로 익힌 그의 식물에 관한 지식은 산림청 임업연구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박학하다. 한씨가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출생에서부터.그가 태어난 곳이 다름아닌 현재의 직장인 산림청내 관사다.선친도 역시 산림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관사생활중에 그를 낳았다. 그가 산림청에 근무하게 된 것은 「나무할아버지」로 유명하던 김이만(85년 작고)씨의 추천 때문이었다.홍릉수목원 관리담당으로 있던 김씨는 한씨의 선친과 친구로 지내면서 어린 한씨의 나무가꾸는 솜씨를 눈여겨보았다.그의 「싹수」를 알아챈 김씨는 한씨가 군에서 제대한 직후 그를 보조원이자 제자로 삼았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발로 뛰는 식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그가 산천 곳곳을 뒤지며 채집한 희귀나무와 풀만도 2천종이 넘는다.제주도·울릉도·백령도·한라산·지리산 등 희귀종이 있을 만한 곳은 안 가본 곳이 없고 열번을 넘게 찾은 곳도 많다.산림청에 보관되었다가 6·25전쟁으로 불탄 1만여점의 식물표본도 스승인 김씨와 그의 채집활동으로 거의 복원되었다.이렇게 복원된 기초자료 덕택에 식물연구에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임업연구원들은 늘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한씨의 나무사랑은 가히 자식사랑보다 더하다.한라산 「암매」는 아직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나무다.1,800m 고지절벽 바위틈에서 어렵사리 캐온 「암매」를 한씨는 2년여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았지만 평지의 환경에 적응 못해 결국 죽고 말았다.이때 그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나무와 벗하며 욕심 없이 살아온 한씨는 오는 6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업을 이을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민이다.그가 확인한 온갖 희귀종 자생지들이 사장될 형편이다. 『요즘 어떤 젊은이가 돈 안되는 궂은 일을 나서서 하겠어요.남북통일이 되면 북한에 있는 나무도 수집해야 하는데…』 그는 식목일을 맞아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저 나무들을 열심히 돌보아야죠』라며 익숙한 솜씨로 나무들을 가꾸기 시작했다.
  • 중부의 관정굴착기 영호남 투입/정부 가뭄대책

    ◎전국 43곳 매일 수질검사 정부는 9일 이홍구 국무총리 주재로 제2차 가뭄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중부지역의 암반관정착정기 3백20대를 가뭄이 극심한 영호남지역에 집중투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전주공단의 공업용수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산천 하류 취수사업에 81억원을 지원하고 13개 업체가 입주한 정읍공단의 용수고갈에 대비해 6천만원을 들여 섬진강 광역상수도의 물을 공단안의 공업용수관로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정부는 수질오염을 막기 위해 전국 43개 지점에 대해 날마다 1∼3차례의 수질분석을 실시하고 수질오염의 정도에 따라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6ppm을 넘을 때는 정수시간을 연장해 수돗물의 생산량을 줄일 방침이다.
  • 정부 올 입법계획 1백24개 법안 내용

    ◎각본·대본 사전심의제 폐지/공연법/석유수출입·유통업 등록제로 전환/석유사업법/청소년 유해출판물 포장판매 의무화/「청소년법」/만성질환자 의보기간 2백10일로/의료보호법/숙박·목욕탕·이용법 신고제로 완화/공중위생법 정부가 올해 국회에 제출할 법률안과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제정 또는 개정여부와 국회에 제출되는 시기. ▷재정경제원(19건)◁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제·2월)=부동산등기의 명의신탁을 금지▲선물거래법(제·7월)=선물거래제도 신설▲한국소비자협동조합법(제·9월)▲조세감면규제법(개·9월)=각종 세액공제,소득공제,세액감면제도를 정비▲세무사법(개·6월)=세무사의 잘못으로 인한 납세자피해 구제수단을 규정▲법인세법(개·9월)=법인세율을 연차적으로 인하▲주세법(개·9월)=위스키와 브랜디의 세율을 인하▲관세법(개·9월)=기본관세율을 개편▲신용보증기금법(개·7월)=신용보증기금에 대한 금융기관의 출연기한을 연장▲근로자의 주거안정과 목돈마련지원에 관한 법률(개·7월)=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주택금융기관의 출연기한을 연장▲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법(개·4월)=원예·과수조합등 특수조합에도 보증부대출을 허용▲외국환관리법(개·4월)=외국환 매각의무를 폐지▲담배사업법(개·9월)▲한국담배인삼공사법(개·6월)▲금융감독원법(제·2월)=금융감독원의 업무에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추가▲보험업법(개·2월)▲증권거래법(개·2월)=증권관리위원회와 증권감독원을 폐지▲은행법(개·2월)=금융기관의 주식 또는 다른 주식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20%를 넘는 주식을 담보로 하는 대출금지규정을 삭제▲한국은행법(개·2월)=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장을 위원가운데서 임명하고 의장이 한국은행총재를 겸임 ▷외무부(2건)◁ ▲한국국제협력단법(개·6월)▲외무공무원법(개·3월)=외무공무원의 특채범위를 「특수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에서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으로 확대 ▷내무부(7건)◁ ▲온천법(개·5월)=보양온천제를 도입▲자연공원법(개·4월)=공원안의 영업행위자에게 출연금을 부과▲풍수해대책법(개·9월)▲전당포영업법(개·10월)=가벼운 행정법규위반에 대한 벌금형을 과태료로 전환▲총포·도검·화약류등 단속법(개·9월)=석궁에 대한 규제근거를 마련▲사격및 사격장단속법(개·9월)=석궁관련 허가제도를 신설▲미성년자보호법(개·9월) ▷법무부(7건)◁ ▲검찰청법(개·2월)=대검찰청의 과장직급을 검찰서기관 또는 검찰사무관등에서 검찰부이사관 또는 검찰서기관등으로 변경▲검사정원법(개·5월)=96년이후 검사정원을 증원▲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개·4월)=지방 횡령등으로 자치단체의 손실을 발생하게 했을때도 가중처벌▲신고자보호법(제·9월)=보복받을 우려가 있는 신고자에 대한 신변보호및 이사·전업을 알선▲형사소송법(개·3월)=체포영장제도를 도입▲어음법(개·8월)▲수표법(개·8월) ▷국방부(2건)◁ ▲군인복지기금법(제·9월)=군인복지기금을 설치▲국방·군사시설사업에 관한 법률(개·6월) ▷교육부◁ ▲학교용지확보특별법(제·10월)=신도시및 택지개발지역의 개발사업시행자가 학교용지매입비의 일부를 부담▲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법(제·9월)=초·중등학교의 학교노후시설개선을 위한 특별회계를 신설▲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개·9월)=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을 내국세의 11.8%에서 98년까지 15%로 상향조정▲교육법(개·5월)=산업계 전문기술자도 시험검정을 거쳐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교육공무원법(개·5월)=임기중 또는 임기가 끝난 교장을 교사로 임용▲대한교원공제회법(개·9월)▲사립학교교원연금법(개·9월)=퇴직수당부담금을 학교경영기관 또는 국가가 부담▲사회교육법(개·7월)=최소경비를 학습자가 부담▲독학에 의한 학위취득에 관한 법률(개·5월) ▷문화체육부(6건)◁ ▲영화진흥법(제·6월)=영화업등록제를 개선하고 의무제작제를 완화▲청소년유해출판물의 유통법제에 관한 법률(제·6월)=제2종 청소년유해출판물의 포장판매를 의무화▲청소년기본법(개·9월)▲공연법(개·4월)=일정한 공연물이외의 각본및 대본의 사전심의제 폐지▲음반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개·4월)=음반·비디오물 제작및 수출입절차에 관한 규제를 완화▲저작권법(개·9월)=외국의 저작권및 저작인접권 보호강화 ▷농림수산부(11건)◁ ▲농약관리법(개·9월)=정부가 주관하는 시험에 의한 품목고시를 폐지▲농산물검사법(개·9월)=검사결과의 취소에 앞서 청문을 실시▲인삼사업법(개·6월)▲인삼협동조합법(개·6월)=한국담배인삼공사의 조합 또는 중앙회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중단▲초지법(개·9월)=초지조성 적지조사를 국·공유지및 다른 법의 제한을 받는 지역에 한해 실시▲축산물위생처리법(개·8월)=수육에 물을 주입하는 행위도 규제▲농촌진흥법(개·3월)=지방농촌진흥기구를 신설▲임업진흥촉진법(제·10월)=독림가 후계자 기업등 산림경영자를 육성▲수산업법(개·9월)=어촌계원이 직접 어획 또는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의 어로권을 제3자에게 파는 행위를 금지▲연안어장보호관리법(제·11월)=어장보호관리를 전담하는 법인을 설립▲유어선업법(제·4월)=유어선(유어선)업을 허용 ▷통상산업부(14건)◁ ▲대한무역진흥공사법(개·7월)=해외무역관을 현지기업의 대한투자상담센터로 활용▲대외무역법(개·9월)=국제통상협정의 국내 이행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무역업무자동화 촉진에 관한 법률(개·6월)=전자문서의 변조및 불법유통방지를 위한 사후관리및 벌칙을 강화▲심해저광물자원개발법(제·9월)▲석유사업법(개·9월)=석유수출입승인제를 등록제로,석유정제업및 유통업허가제를 등록제로 전환▲대한석탄공사법(폐지 또는 개정·9월)▲환경친화적 산업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제·9월)=환경경영인증제도와 환경감사제도등을 신설▲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개·9월)=방문판매업의 요건및 소비자보호규정을 보완▲상업용 선박 건조및 수리산업의 정상적 경쟁조건에 관한 협정의 시행법률(제·9월)=조선소에 대한 지원을 금지▲염관리법(개·9월)=소금 수입과징금을 부과▲특허법(개·9월)=특허권의 존속기간을 출원일로부터 20년으로 연장▲의장법(개·9월)=출원공개뒤 의장권설정전에 제3자가 출원의장을 모방했을때 의장권이 설정된 뒤에 소급해서 보상금 청구권을 행사▲상표법(개·9월)=상표의 정의규정에 색채관련사항을 추가▲변리사법(개·9월)=특허공무원의 변리사자격 취득기간을 연장 ▷정보통신부(7건)◁ ▲한국체신공사법(제·7월)=97년에 한국체신공사를 설립▲정보화촉진기본법(제·7월)=정보화촉진기금을 설치▲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개·9월)▲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개·9월)=저작권보호기간을 연장▲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개·9월)▲우편법(개·9월)=우편물운송법,별정우체국법,체신창구업무의 위탁에 관한 법률,군사우편법을 통·폐합▲체신예금·보험에 관한 법률(개·9월)=공공자금관리기금 예치규정을 신설 ▷환경부(3건)◁ ▲환경정책기본법(개·5월)=환경오염방지사업 실시에 따른 수익자부담원칙을 명시▲오수·분뇨및 축산폐수의 처리에 관한 법률(개·9월)=방지시설등록업자에게 오수정화시설의 설계·시공을 허용▲해양오염방지법(개·8월) ▷보건복지부(9건)◁ ▲보건의료기술진흥법(제·3월)▲위생사등에 관한 법률(개·3월)=위생업무의 범위에 공중이용시설의 위생관리와 위생용품 제조업체의 위생관리등을 추가▲공중위생법(개·6월)=숙박업,목욕장업,이용업,미용업,유기장업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화▲식품위생법(개·3월)=품목제조허가 또는 신고제를 폐지▲농어촌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개·3월)▲보건소법(개·5월)▲마약류 불법거래에 관한 특례법(제·6월)=마약수사상 필요할때 출입국관리법에 불구하고 마약소지자의 입국을 허용▲의료보호법(개·3월)=의료보호대상 만성질환자의 보호기간을 연간 1백80일에서 2백10일로 연장▲국민연금법(개·5월)=우리나라에 머무르는 외국인에게도 국민연금을 적용 ▷노동부(2건)◁ ▲공인노무사법(개·9월)▲기능대학법(개·9월)=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사람도 기능대학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 ▷건설교통부(16건)◁ ▲전문건설공제조합법(개·4월)=조합의 보증업무및 사업범위를 확대▲골재채취법(개·3월)=광업권 설정지역과 초지지역의 골재채취허가 간소화▲화물유통촉진법(개·3월)=화물터미널 개발절차를 간소화▲유통단지개발촉진법(제·4월)=유통단지개발과 관련한 인·허가를 일괄 의제로 처리▲지가공시및 토지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개·3월)=감정평가사자격시험 응시자격을 외국인에게 개방▲한국토지개발공사법(개·8월)=자본금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확대▲도시재개발법(개·10월)=공공기관의 재개발사업 참여범위를 확대▲도시계획법(개·6월)=도시계획입안및 결정권한을 지방으로 이양▲자동차운수사업법(개·9월)=시내버스등 구역업종의 면허업무를 시·도에 이양▲도시교통정비촉진법(개·9월)=혼잡통행료부과 근거를 신설▲도시철도법(개·9월)=전동차량의 성능시험과 부품등의 품질인증제를 도입▲해운법(개·9월)=해운업을 등록제로 전환▲한국해운조합법(개·3월)▲선원법(개·5월)=선원송환기금을 신설▲해상교통안전법(개·9월)▲철도법(개·6월) ▷총무처(3건)◁ ▲공무원연금법(개·9월)=연금비용의 징수율을 상향 조정▲정보공개법(개·9월)=정보공개 대상기관에 입법부와 사법부를 포함▲공무원교육훈련법(개·9월)=별정직 교수요원의 국내외 교육파견과 교육휴직을 허용 ▷과학기술처(3건)◁ ▲과학기술진흥법(개·7월)▲기술사법(개·9월)=기술중재를 개인위주에서 조직차원의 방식으로 확대▲기상업무법(개·9월)=기상청의 관측지도 공동활용방안을 구축▷공보처(2건)◁ ▲방송법(개·4월)=위성방송사업의 허가·운영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광고진흥법(제·9월)=광고산업의 진흥과 지원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 ▷공정거래위원회(1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개·9월)=시정조치에 대한 기준을 설정 ▷공동제출(1건)◁ ▲화학무기금지협약 국내이행법(제·6월)=화학무기생산,개발,획득,보유,사용을 금지
  • 강사이 오가던 인정(두만강 7백리:2)

    ◎60년대초엔 북한냉면 먹으러 수시 왕래/물길러 오가던 아낙네들 문화혁명뒤에 사라져/용정 백금발전소 전기는 아직도 상계리에 공급 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김 노인은 마을 앞 강건너 북한 땅인 무산군 화평리(화평리­옛 이름은 봇더기)에 사는 조카잔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어느날 강에 나갔다가 강 건너에서 목욕을 하는 조카를 보았다.아무 날 잔치를 한다고 높은 소리로 알리더라는 것이다.그런데 미처 출국 수속을 하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그는 잔치날 강언덕에 서서 형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가깝고도 먼 이웃땅 참으로 두만강 양안의 마을은 가까우면서도 멀다.거리로 계산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국법으로 따지면 멀다.그러나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벽을 쌓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눈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대면 두만강은 보통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국경선 구실을 변변히 못했다.강 양쪽의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통행증이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이 왕래를 했다.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사람들은 냉면 먹으러 대안의 종성으로 다녔다고 한다.개산둔에 가야 식당추념들을 할 수 있었는데 20여리나 떨어졌고 국수맛도 엉망이었다.그래서 가까운 강건너로 가면 걸음도 덜고 입맛도 돋굴 수 있었으니 진짜 꿩 먹고 알 먹기였다.더구나 종성의 냉면은 함경도에서도 제일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연변 텔레비전방송국 아나운서 박홍섭씨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 강을 건너 친척 잔치에 참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달을 놀다가 돌아오려니 그만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디 뭡네까.교두로는 감히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이 다 풀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디요.그래서 두껍고 긴 널빤지를 가져다 량켠 얼음우에 걸쳐놓고 허리에 바줄을 동여매고 건너왔댔시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북한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국경선은 쌀쌀한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그러나 1970년 주은래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후 완화되긴 했다.겨울이면 두만강에서 아이들은 함께 썰매나스케이트를 타는 경우도 있다.말하자면 중국과 북한의 국제경기라 하겠다. 용정시 백금향 동광촌 제3촌민소조(옛명 현암동)는 10여호 오붓한 마을이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마을에서는 두만강물을 길어 음료수로 했다.겨울에 강이 얼면 아예 대안의 북한 상계리에 건너가 물을 길어왔다.온 마을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국경을 넘어 이국으로 간다.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출국했다간 입국했다.아마 중국에서 출국 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을 꼽으려면 이 마을 아낙들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삼 내내 펄럭거리고 다니자니 미안하기 짝없더만요.상계리 분들이 얼굴한번 찡그리는 일없이 반겨 줄수록 죄송했디요.그래서 가끔 사탕,과자며 과일이며 떡을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그러면 상계리 분들은 「이러지 마시라우요.엎음 갚음이랍니다」고 기래요.「우리가 쓰는 전기가 백금발전소의 전기 아닙니까」라면서….물고생을 무던히도 했디요.그때는 언제면 집에서 물을 받아 먹나고 학수고대했는데….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뽐프를 놓아주어서야물동이를 팽개치게 되었다구요.그런데 정작 물고생을 덜고 나자 상계리의 고마운 분들이 그리워집디다.물을 긷는다는 핑계로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세울 명목을 잃은거디요. 동광 마을 김씨가 들려준 국경을 드락거릴 시절의 회고담이다. 북한 땅 상계리와 서쪽으로 마주한 용정리 백금향 안개골에 들어선 백금발전소는 7백리 두만강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소다.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처 이호성과장이 안개골을 답사하고 발전소 건설구상을 구체화했다.그해부터 착수한 공사는 만 10년이 걸려 지난 1970년 5월부터 정식 발전을 시작했다.그런데 상계리는 조개형국으로 된 언덕이 북으로 뻗어내려 두만강이 병풍처럼 둘러선 두렁바위(둘러선 바위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를 핥으며 10여리를 굽이 돌아간다.강을 따라 전깃줄을 늘리려면 인력과 물력 낭비가 엄청나 사전에 북한측과 협의하고 곧바로 조개언덕으로 전선대를 세우게 되었다.그 보상으로 상계리와 상계리에 있는 북한 공전소에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안개골이 전기골로 백금발전소 퇴직간부 서현석(67·경상북도 영천군 고견면 태생)씨는 『예전에 안개골은 이름 그대로 늘 안개에 묻혀 있었수다.발전소가 세워진 후로 안개골은 별무리가 내려 앉은 격이 되었지.안개골이 전등골로 탈바꿈한 셈이우다』라고 말했다. 누누천년 이 땅을 적시며 흘러온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는 테였다.재난을 덮어씌우고 혈육간의 이별을 주고,그래서 아리랑고개 다음 가는 눈물이 강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반 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정복하고 두만강문화를 창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문명시대가 열리면서 두만강 푸른 물이 누렇게 혼탁해졌다.그래도 두만강연안 사람들은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백금향 백금촌 제2촌민소조 박길남(함북 무산군 풍경면 소학동 태생)노인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는 꿩고깃국에 햇 이밥으로 후더운 접대를 했다.연변에서 평강벌 입살이 제일미라 만주국시기 공품이었다고 하지만 백금의 입쌀도 못지 않았다.최몽필잠장은 이밥맛이 어떠냐고 묻고는 수입해온 종자라고 부언했다. 『백금은 연변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고 서리가 빨리 내려 논벼산량이 많이 떨어지는 땅입네다.그런데 백금 제4촌민소조 분이 어느 해 가을 강을 건너가 조선(북한)논에서 잘 영근 벼이삭을 몰래 가져 왔댔습니다.이듬해 그것을 심었는데 그 품종이 지금 백금에 많이 퍼진겁네다.서리가 빨리오는 고산지대에 맞는 우량품종을 수입 한 걸로 봐주시라요.그 다음부터 좋은 소출을 내게 되고 맛도 훨씬 좋아졌고…』 ○봄이면 과일꽃 만개 지난해 11월 2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후더운 정을 한가슴 지니고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을 찾았다.시루형국의 두개의 시루봉사이 안침진 곳에 터를 잡고 강건너 오국산성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모여 앉은 대소 과수농장은 봄이면 과일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싱그러운 사과향기에 젖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된다.현재 1천7백명의 인구에 4백여명 노동자를 가진 이 농장의 과수밭은 4백50㏊.국광,홍성,진홍,계광 등 20여가지 사과품종의 총산이 4백50만근이라고 했다. 광복전에 대소 땅은 거의가 이씨 성을 가진 지주 차지였다.천성이 부지런한 이씨 지주는 북한땅 길주에서 사과묘목을 사다가 아래 시루봉과 웃 시루봉줄기가 만나는 움푹지고 양지바른 비탈에 심었다.그리고 식구들과 소작인들을 총 동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다.사과원을 만들면서 이씨지주의 며느리는 일에 지쳐 죽기까지 했다.이씨지주는 며느리의 묘를 사과밭속에 썼는데 지금도 임자 없는 묘가 쓸쓸히 남아있다.그러나 광복이 나고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지주를 청산하자 자기가 심은 사과가 열매를 맺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씨지주는 몰래 떠나버렸다.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덕해 제1대 주장이 대소로 시찰을 왔을 때 촌에서는 이씨지주과원의 사과를 대접했다.홍조를 띤 처녀의 볼마냥 탐스러운 사과를 받아든 주장은 대대적으로 사과원을 꾸려볼 구상을 했다.그는 요녕성 개현에서 초빙받아온 과수전문가 관치성(만족)을 대소에 파견하여 농장을 세웠다.이씨지주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두만강변에 사과원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몇해 전에 대소과수농장허경진(46)부농장장이 20여리 떨어진 백금향에 초빙되어 가 30㏊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매서운 강바람에 겨울을 나면 얼어 죽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다. 대소 맞은 쪽 대안 마을은 북한 함북 회령군 상수리다.그들은 강 하나 사이두고 대소에 사과꽃이 만발한 것을 볼 때마다 승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느 해엔가 그들은 대소의 사과묘목을 떠다가 옮겼다.한해 겨울을 났는데 무사했다.신심이 생긴 회령군에서는 과수지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시찰을 했다.원래 회령군에는 1천여㏊의 살구나무와 다른 과일나무가 있을 뿐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1985년 가을 대소에서는 묘목을 대량 보내고 이듬해 4월 22일 대소과수 농장에서 관치성,허경진,김수돈(57)등 책임자와 기술자들이 회령으로 건너갔다.그들은 회령군의 6개 이를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했고 자동차로 접수를 싣고 가서 접목 등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85년부터 88년까지 4년동안 대소과수농장에서는 묘목과 접수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1988년 회령군에서는 세 상자의 사과를 따가지고 대소과수농장으로 와서 감사드렸다.1993년 여름에는 대소에 친척이 있는 상수 사람이 친척앞으로 편지를 보내 과수농약을 보내달라고 했다.농장지도부에서는 토론하고 밤을 타서 농약상자들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주었다.이치로 따지면 국경을 사사로이 넘나드는 것은 불법이다.하지만 후더운 인간애앞에서 그런 것들이 때로는 무시되었다.
  • 거문고 명인 김영재(이세기의 인물탐구:69)

    ◎흐트러짐 없는 연주… 이론·작곡 밝아/신쾌동씨에 귀사… 피나는 연습끝 정상 올라/정규교육 1세대… 가야금·아쟁에도 일가견/93년 지하실에 상설무대 설치… 발표할곳 없는 동료들에 개방 송강 정철은 거문고 대현을 타는 데 있어 그 소리를 「얼음에 막힌 물 여흘에서 우니는 듯」하다 했고 영조때의 풍류객 송계연월은 「북창송음에 거문고줄을 얹어두니 바람이 줄을 건드려 타지 않는데도 스스로 우는 소리야말로 참으로 듣기 좋다」고 노래한 바 있다. 거문고의 명주실로 꼰 여섯줄 중에서 선율을 타는 유현은 소리가 맑고 부드러운 반면 대현은 줄이 굵고 투박하여 해죽으로 만든 술대를 단단히 거머쥐고 내리쳐야만 짙푸른 소리를 얻을 수 있다.거문고의 고매한 자태와 음률은 남성적인 화평정대와 악기 중의 으뜸인 백악지장에 비유되어 연주자는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고뇌어린 표정을 짓거나 박자를 맞추거나 몸을 흔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귀에 듣기 좋게 하는 것은 저속하며 음악 자체에 몰두하는 것도 금물이다. ○지영희씨에 해금 배워 거문고연주에서 한올 흐트러짐 없이 엄격한 법도를 지켜가는 이가 바로 명인 김영재다. 그는 『음악성이 비범하여 거문고 주자로서 일급일 뿐만 아니라 지영희 문하에서 오랫동안 학습한 해금도 그를 따를 이가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백낙준에서 신쾌동으로 이어진 그의 「거문고 산조」는 비감과 청정을 떠나 무념무상의 흐름속에서 극청 극탁을 끌어낸다. 느린 장단인 진양조로 괘를 짚어 먼저 장엄한 우조로 소리를 울리고 슬픈 느낌의 계면조와 화평스런 우조를 교차시키다가 중모리·엇모리,마지막 자진모리에 이르기까지 가슴 한복판을 후빌 듯 두들기는 장탄식은 절묘하다.손과 줄이 얽히고 풀리면서 흥청거리는 기교와 기량으로 천변만화를 농현하면 남자가 울분을 참듯 한을 안으로 다스리듯 듣는 이도 켜는 이도 어느 샌가 눈가에 눈물이 스미는 감동에 젖는다. 우리 음악은 일시에 피어오르는 장미꽃과는 달리 부단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그 선율을 일사불란하게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그러나 그의 연주는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보기 좋게 꾸민 표정에는 인이 드물다』고 한 것처럼 정 가운데 동을 감춘 정중유동의 자세다. ○처음엔 무용으로 입문 또 스승으로부터의 피나는 훈련과 연습으로 전수되던 우리 국악현실에서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받은 일세대이며 가야금·양금·아쟁을 고루 다루고 작곡과 이론에도 밝아 우리 고전악기가 갖는 가능성을 다양하게 타진해왔다. 그는 처음엔 「춤추는 사람」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으나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던 부친(김세종씨)을 따라 일찍이 서울로 이사,마포구 합정동에 정착하면서 마포 강나루터에 산재해 있던 남사당패들의 굿판에 정신이 팔려 그곳에서 하루해를 보낼 때가 많았다.이런 그를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차은식 여사)가 부친 몰래 김천흥 전통춤연구소에 보내준 것이 국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다.그러나 무용특기자가 되어 국악예고에 진학하자 이번엔 「승무」를 가르치던 벽사 한영숙이 『얼굴이 예쁘고 춤태가 곱긴 하지만 춤보다 악기를 해보라』고 권했다.거문고·해금은 「연잎에 지는 빗소리」처럼 아름다운 가락을 엮지만 『악기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이를 이어갈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거문고산조 인간문화재인 신쾌동과 해금의 대가인 지영희를 만나 거문고의 유현한 가락과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해금의 음률에 숙명처럼 잦아들어갔다.학교에서 배우는 외에도 스승의 개인연구소에 따라가서 이를테면 「스승들을 모시고 살다시피」하면서 그는 멀고 아득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남성적인 거문고는 특히 연주법이 까다로워 술대(시)끝을 현침 가까이 내려치거나 거슬러 쳐도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었다.무릎이 저리고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도 그는 제소리를 낼 때까지 몸에서 악기를 떼어놓지 않았다. 국악의 「국」자도 모르고 시작한 음악이지만 초기엔 스승의 열성에 감동되어 한음 한가락도 놓치지 않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는 자세로 자신이 악기가 되기를 주저치도 않았다.특히 남모를 내력이 굽이굽이 숨겨져 있는 해금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손아귀의 혈맥이 악기에 이어지고 기맥이 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제자를 기특히 여긴 스승이 하루는 자신이 못 배운 것을 한탄하며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 민속악은 무대에서 왕인데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어 서러운 대접을 받고 있다.너희 세대에선 제자리를 찾아 반드시 무대의 주역이 되라』는 절규였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기 시작하더니 벌써 고교 2학년때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최연소단원이 되었고 당시 이름을 날리던 리틀엔젤스의 무용반주자가 되어 세계 45개국 순회공연에 따라나섰다.돈을 벌면서 세계무대에 서는 동안 그는 우리 음악만의 특성과 미감에 눈떴고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작곡에 손대기 시작했다. 서라벌예대 졸업후 경희대 작곡과에 편입,대학원과정에서 서양음악의 발성법·지휘법·화성악을 공부하고 고전악기와 현대악기를 대비시킨 「거문고와 해금」 「해금과 기타」 「해금과 하프」등 이중주곡·독주곡·관현악곡들을 창작하여 국악의 연주영역을 넓혀나갔다. 82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개인발표회에서 그의 「거문고 즉흥곡」을 들은 황병기(이대교수)는 『마치 진흙의 뿌리에 내린 연꽃의 심도를 느끼게 하는 신기오른 솜씨』라고 호평했고 국악평론가 한명희도 『손끝의 느낌으로 음을 고르고 소리를 찾아내며 활대 아닌 눈짓만으로도 해금을 부리는 귀신 같은 실력』을 찬양해 마지않았다.그의 거문고산조가 심연과도 같은 무변광대를 누빈다면 그의 해금은 장자가 일컫듯이 「하늘의 소리처럼 신기하고 땅의 소리처럼 투박하며 인간의 속소리처럼 즐겁고 애절하여」 희비애락의 인생사를 꾸밈없이 담아낸다. ○“신기같은 솜씨다” 호평 그의 성격은 완고하다 못해 차분하다.어느 자리에서나 나대지 않아 예인 특유의 신기나 광기가 넘쳐 보이지도 않는다.한천의 난처럼 고절한 기상으로 연주에 임할 뿐 연주장이 아닌 장소에서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겉으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이 상할 듯 섬약해 보이지만 참으로 오랫동안 방대한 학습경륜을 쌓아온 사람이라 속을 들여다보면 태산준령 같다』고 한 이보형씨(문화재전문위원)의 말은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남과의 번거로운 교류는 외면하지만 연주활동에는 열의가 대단하여 지난 93년 마포구 합정동 그의 집 지하층에 국악상설무대 「우리소리」를 개설,발표장을 구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이를 개방해왔고 오는 3월에는 개관 2주년 기념무대를 갖는다.가족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부인 최광희 명지대교수와 남매. 이제 그는 스승들이 물려준 모든 것을 보존하고 계승시키는 위치다.그리고 「단순히 줄을 고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장 우아한 거문고 연주자는 선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무위자연의 경지에서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현학금의 대도에 입신하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47년 경기도 용인출생 ▲1959년 김천흥 전통춤연구소 입소 ▲1965년 서울시립 관현악단 단원 ▲1967년 서울국악예술학교 졸업,신쾌동 지영희사사,난계예술제특상 ▲1966∼75년 리틀엔젤스와 미국 유럽등 세계45개국 순회연주 ▲1971년 서라벌예대졸업 ▲1972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뮌헨올림픽 세계민속예술제 참가 ▲1977년 경희대 작곡과졸업 ▲1980년 동 대학원졸업,일본 산게이홀과 한국문화원서 독주회 ▲1982년 제1회 국악발표회(국립극장 소극장),대한민국국악제 참가 ▲1985년 제2회 김영재 작곡발표회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 국악제 해금독주자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16호 (거문고산조)준인간문화재 지정 ▲1990년 동아일보 창사 70주년기념 소련공연 창극 「아리랑」작곡및 연주,미국 링컨센터 연주 ▲1991년 환일본해 국제예술제참가 ▲1993년 「해금명인 김영재의 밤」(국립극장 소극장) 전남대 국악과 교수,도립남도국악단 상임지도위원 「조명곡」「비」「아리랑연곡」「현금곡」「가야금 병창곡」「거문고 즉흥곡」「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2중주」,창극 「수궁가」,무용곡 「그날이 오면」등 1백여곡 「현금곡전집」「가야금 병창곡집」 「남도의 창」「줄풍류 거문고 가락의 비교관찰」「한국근현대사의 음악가 열전」 국민훈장석류장(73년)KBS국악대상 작곡부문수상(89)
  • 전주서 후학양성 힘쓰는 서예가 송성용옹(향토에 산다)

    ◎“고향서 묵향에 묻혀 사는게 기쁠 따름”/상투 고집하는 「서예의 달인」… 작품전시관·학술재단 설립 앞장 지금 우리 주변에는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살찌운 정신적 양식을 「향토사랑」으로 실천하는 명사들이 꽤나 많다.고향에서의 삶을 통해 건전한 「향토문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향토사랑」을 국가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명사들.그러기에 이들의 삶은 늘 우리네 인생의 귀감이 되고 있다.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성이라는 비뚤어진 향토의식을 바로 잡으며 향토에 살기를 고집하는 이들의 고귀한 삶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고풍스런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전북 전주시 교동 남천교 첫들머리에 들어서면 묵향이 물씬 풍긴다.이 시대 최후의 한학자요 최고의 서예가 강암 송성용(83)옹의 체취가 골골마다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조 한학을 지금으로 이어주는 한학자이자 강암체의 원조로 흔히 「서예의 달인」으로 칭송되는 강암선생. 『향리에 묻혀서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예술의 고장에서 내 예술의 천분을 누릴수 있음이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선생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 13년 전북 김제군 백산에서 태어났다.5살때부터 역시 호남의 뼈대있는 한학자였던 유제 송기면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며 서예를 익혔다. 한국 서예의 일가를 일궈낸 선생의 서예공부 정진은 일제의 단발령에도 목숨걸고 상투를 자르지 않았던 선비의 올곧은 고집이기도 했다.상투를 틀고 갓을 쓴 한복차림의 자세를 한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선생은 아버지가 작고하고 1년이 지난 43살때인 56년 처음으로 국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입신양명하여 세상과 더불어 사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며 사는 것도 또한 재미』라는 가르침을 거스르지 못해 뒤늦게 세상에 강암체를 선보였다. 선생의 작품은 국전 출품과 함께 세상의 이목을 끌었고 10년만인 66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 추앙됐다.국전초대 작가가 되면서 선생은 향리를 떠나게 하려는 유혹에 시달렸다.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고 싶다』는 선생의 고집도전북지방의 서예를 중흥시키자는 동료 서예가들의 강권만은 이겨내지 못했다. 실제로 선생은 전주로 거처를 옮긴 67년 전북도 미술전시회를 만들어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방문만 열면 남고산,승암산자락이 어울려 아름다운 산수를 이루고 완산봉 기린봉이 저만큼씩 좌정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는 곳,나는 이 하늘 아래서 숨쉬고 살 수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예술의 분위기가 갖추어진 도시요 내 예술을 키워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게 선생의 향토예찬론. 전주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 선생의 향토 예찬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한국서단에 강직한 선비품격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서필로 호남을 대표해온 그는 요즈음 향토문화를 새롭게 일구기 위한 일들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강암서예전시관 건립과 강암서예학술재단 설립이 바로 그것이다.독특한 향토문화를 꽃 피우고 꼿꼿한 선비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평생숙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강암은 예술의 고장 전주를 서예발전의 본 고장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90년 국내 최초로 서예작품상설전시관건립사업에 착수,오는 4월 준공을 눈앞에두고 있다.93년에는 그동안 모은 재산 6억원을 흔쾌히 기증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예학술재단을 설립함으로써 서예를 학술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흥,보존하고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20여년전부터 국내에서 가장 큰 서단인 연묵회를 만들어 후배,제자들과 함께 일본,대만,중국 등 동남아를 돌면서 서예교류전을 갖는 등 서예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예·해·행·초서 등 모든 서체와 사군자의 달인,일생을 한복만을 고집하며 유학을 숭상,창씨개명과 단발령에 항거했던 한국의 마지막 선비인 강암. 향리에 눌러사는 재미가 어떠하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 대신 벽에 걸린 글귀를 조용한 미소로 응시한다. 「문여하사 서벽산 소이불답 심자한(왜 산중에 묻혀사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더라)」 가장 크고 넓은 세상에서 서예를 익혔으니 나머지 여생도 이 고장 후학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강암 송성용옹은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 남부에 단비/평균 20㎜… 해갈 미흡/밭작물 생육 큰도움

    12일 새벽부터 남부지방에 내린 단비가 이날 하오 늦게까지 이어져 일부지역은 밭작물 해갈에 다소 도움이 됐다. 특히 평균 30㎜안팎의 비가 내린 제주지방은 이날 하오 11시까지 ▲고산 45.6㎜ ▲서귀포 39.1㎜ ▲제주시 29.9㎜의 강수량을 보여 가뭄이 완전 해갈됐다. 기상청은 『우리나라 남서쪽에서 다가오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전국이 흐린 가운데 영호남 등 남부지방과 중부 일부지방,제주지방에 비가 내렸다』고 밝히고 『이번 비는 남부지방에 20㎜ 안팎의 비를 뿌렸던 지난달 22일 이후 20여일만에 찾아온 단비여서 밭작물 해갈에 다소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비는 남부지방 10∼20㎜,중부지방 5㎜ 정도에 그쳐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극심한 식수난 등 가뭄해갈에는 미치지 못했다. 특히 극심한 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던 남부지방의 경우 호남지역은 20㎜ 안팍의 비가 내려 다소 나은 편이었으나 영남지역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이날 내린 비는 하오 11시까지 ▲해남 25.0㎜ ▲장흥 24.0㎜ ▲완도 22.1㎜ ▲광주 23.1㎜ ▲목포 22.5㎜ ▲진주 19.2㎜ ▲전주 18.6㎜ ▲대전 11.6㎜ ▲부산 12.4㎜ ▲대구 8.3㎜의 분포를 보였다. 기상청은 남부지역에서는 앞으로 5㎜안팎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기상청은 『기압골의 영향에서 벗어나 북서쪽에서 다가오는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13일은 전국적으로 구름이 조금끼거나 흐린뒤 맑은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영동지방에서만 상오 한때 비나 눈이 내리겠다』고 밝혔다. 13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6도∼영하5도로 12일보다 조금 낮아지겠으며 낮기온은 4∼13도로 비슷한 분포를 보이겠다.
  • 가이드는 무자격/구명조끼 미지급/태국 밀림관광 “안전 무방비”

    ◎한국 대학생 뗏목 뒤집혀 익사 【방콕 연합】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열대밀림지역에서 뗏목을 타고 트레킹(trekking)을 하던 한국 관광객이 물에 빠져 숨졌다. 11일 하오3시30분쯤 치앙마이시로부터 약 30㎞ 떨어진 산바통 열대정글에서 한국인 2명과 태국인 관광안내원등 1명과 함께 대나무로 엮어만든 뗏목을 타고 노를 저어가던 이중석씨(24·충남대 경영학과 2년 복학예정)가 급류에 휘말려 갑자기 뗏목이 전복되면서 물에 빠져 숨졌다. 이씨는 이날 고교동창생 정주희씨(23·대학생)등 한국 관광객 6명,미국인 1명,이스라엘인 2명등과 함께 모두 10명이 조를 이루어 3개의 뗏목에 나눠 타고 가다 변을 당했다.사고당시 이씨는 맨 선두를 달리던 뗏목의 후미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각뗏목에는 태국인 안내원이 앞에서 노를 젓고 있었을뿐 관광객들에게 만약의 사태에대비한 구명조끼는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한국관광객이 태국의 정글투어도중 사고로 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씨 등의 정글투어를 주선했던 태국 여행사는여행안전수칙을 무시하면서 무자격 안내원을 고용하고 보험도 들지않은 영세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제2의 도시로 「아시아의 장미」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치앙마이는 주변에 뛰어난 경관과 함께 풍물이 많은데다 여러 종족의 고산족들이 살고있어 이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트레킹이라는 여행상품이 개발돼 큰 인기를 끌고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사랑의 미로」 「타향살이」 1순위

    ◎동요는 「새야새야」 민요는「신고산타령」/남북음악교류때 공연예상 가요 북한에서도 한국민들이 애창하는 몇몇 노래가 불려지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남·북한간의 음악교류가 이루어질 경우 무리없이 공연 대상물로 선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노래를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가요쪽에서는 「사랑의 미로」와 「타향살이」가 꼽히고 있다. 「사랑의 미로」는 가사가 일부 바뀌긴 했지만 김정일의 애창곡인데다 평양서 발간된 「외국 민요집」에 수록돼 있어 실제로는 북한서 공인된 거의 유일한 남한가요로 파악되고 있다. 「타향살이」는 「사랑의 미로」와는 달리 북한 당국에 의해 강력히 규제되고 있으나 노년층에서 많이 불려직 있어 「민족정서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공연 대상물로 선정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 가요가 「애수와 비애에 찬 노래」라고 소개되고 있다. 동요로는 「새야 새야」가 남·북한에서 모두 불려지고 있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문예잡지를 종합해 보면 이 「새야 새야」는 음조만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다를뿐 가사는 남쪽 지방의 가사와 똑같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 노래를 『…가사에는 갑오농민전쟁의 승리와 새 생활을 갈망하는 인민들의 소박한 염원,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농민봉기에 대한 애끊는 동정이 반영돼 있다.이것은 선율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모두가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구슬픈 정서로 일관돼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민요로는 「신고산 타령」이 대표적인 노래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에서 이 「신고산 타령」은 여성독창,제창,가야금 병창 등으로도 많이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 미/“새차 값 너무 비싸다” 불만 고조

    ◎신차 평균단가 지난해말 2만달러 처음넘어/“부유충 겨냥한 고가전략” 업계선 밀어 붙이기 자동차의 왕국 미국에서 곧 갈아야 될 중고차는 늘어나는데 새차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불평이 높아지고 있다. 신차의 출고단가를 경쟁적으로 높게 책정한 자동차회사들의 고가전략은 그동안 미국자동차경기 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했으나 이젠 고가의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지난 91년도까지 내리막길을 걷던 미국의 자동차산업과 미국내 자동차 판매실적은 이후 상승세로 반전했고 특히 94년엔 전례드문 호황을 구가했다. 지난해 미국내에서는 총 1천5백20만대의 새 승용차와 경트럭이 팔렸다.1년전 보다 9.4% 증가했으며 91년에 비해선 3백만대 가깝게 늘어난 규모이다. 지난해 4%나 성장했던 미국 경제가 올해도 3% 정도 커질 전망이고 무엇보다도 미국인이 현재 몰고다니는 자동차의 나이가 어느 때 보다 「고령」임에 따라 앞으로 자동차는 더욱더 많이 팔릴 것이라고 업계는 장담한다.지난해 그렇게 많은 새차가 팔렸음에도 미국내 보유차량의 평균수령은 8.1년으로 2차대전 이후 최고령이다. 교체를 위한 신차구입 붐이 곧 불붙을 것으로 기대하는 미국의 빅스리와 미국시장의 23%를 점유하는 일본기업들은 올해,늦어도 내년중으론 1천6백만대 판매의 신기록을 세우리라 내다본다.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새차 값이 너무 비싸 판매 붐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팔리는 신차의 평균 단가는 지난해 4·4분기에 처음으로 2만달러 선을 넘어 2만62달러에 달했다.이 가격에는 평상적인 옵션은 물론 딜러 수수료및 세금까지 포함됐다.수입차 평균가가 2만4천2백17달러로 미 빅스리의 1만9천3백52달러 보다 비쌌다. 문제는 구매자인 미국인의 수입동향과 대비해 살펴볼 때 이같은 새차 값은 예년에 없는 고가로 부담스러운 수준이란 점이다.20년전인 지난 74년의 신차 평균가는 당시가 4천4백달러,인플레감안 현재가로 환산하면 1만2천8백달러에 그친다.이 값은 전국평균치의 수입을 올리는 가계가 당시 1년에 번 총수입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그것이 지난해에는 2분의 1이상으로 커졌다.지난해 미국가계의 평균연수입 3만7천달러에 대비할 때 평균가 2만달러의 신차를 구입하기 위해선 28주간의 총수입을 쏟아부어야 되는 것이다.94년도의 이 28주 비중은 앞에 예를 든 74년의 17.5주는 물론 67년의 20.5주,84년의 23주,90년도의 25주를 상회하는 30년래 최대부담률이다. 이같은 가계부담률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 빅스리들이 총 2천7백억달러의 매출실적을 올린 것은 이들 역시 일본기업과 마찬가지로 평균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부유층을 판매타깃으로 선정,효과를 본 탓이다.GM,포드,크라이슬러의 빅스리 모두 예상을 웃돈 판매신장에 즐거워하면서 고가및 부유층겨냥 전략을 계속 밀고나갈 눈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의 판매신장은 『고산등반과 같아 곧 산소부족에 걸릴지도 모른다』도 경고한다.
  • 광고전문가/“ABC 시행 시급” 60%/공보처 광고종사자 여론조사

    ◎광고 창작자유보장 등 포함/“「진흥법」 조속제정 필요” 81% 광고전문가들은 광고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광고 진흥법」(가칭)의 제정과 신문부수공사제도(ABC제도)및 시청률조사등 광고의 과학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보처가 21일 한국광고연구소에 의뢰,광고주·광고회사·매체사등 광고관련 기관의 광고전문가 1백명을 대상으로 광고산업 진흥 방안에 대해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1%의 응답자들이 국내외 경쟁력의 강화및 광고 저작물에 관한 창작의 자유보장등을 포함하는 광고진흥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며 19%의 응답자만이 제한기능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국내 광고산업이 안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점으로는 ABC제도의 시행과 정확한 시청률 자료제공등 광고의 과학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 사람이 60%였다.광고의 과학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ABC제도의 조기정착 46%,마케팅·광고조사연구 강화 16%,시청률 조사의 정확성 제고 15%등으로 응답했다. 응답자의 74%는 광고 거래상의 가장 큰 문제점이 광고료를 높게 책정해 놓고 광고주에 따라 적게 받는 덤핑행위라고 밝혔다. 광고개방에 대한 대책과 해외 광고시장의 개척을 위해서는 해외정보자료의 체계적 수집및 제공 65%,전문인력의 해외연수 61%,광고산업 국제화에 대한 정부지원 56%,외국광고사와 제휴확대 46%로 나타났다. 우리의 해외광고 중점전략시장으로는 중국 61%,동남아 48%,미주 45%로 전망했으며 응답자의 76%가 국제화 추세에 맞추어 외국인 모델의 국내활동 제한을 지금보다 더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그 이유로는 국내모델료가 비싼 점도 들었다.
  • 제주 고산리 유적/한·일 선사문화 교류 뒷받침

    ◎돌 화살촉 대량 발굴… 일 큐슈 화산재 이동설 자료/신석기이후 3천∼4천년 공백 연결 큰성과 우리나라 선사의 한 공백을 메워 준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유적이 최근 주목을 받고있다.제주대 박물관 이청규교수팀이 지난해 여름 발굴한 이 유적에서는 모두 6천5백여점의 석기와 토기가 출토되었다.이 가운데 큰 관심의 대상이 된 유물은 정삼각형과 이등변삼각형을 이룬 돌화살촉.제주도 이외 한반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 유물은 일본 서남부 여러지역에서 나온다. 북제주군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돌화살촉은 4백4점에 이르고 있다.이들 유물은 한결같이 화산이 폭발할 때 쌓인 화산재층 바로 아래에서 나왔다.그런데 화산재는 흥미롭게도 일본 큐슈 가카이(귀계)의 아카호야 화산에서 날라온 화산재라는 점이다.일본에서 가장 컸던 아카호야 화산폭발 영향은 일본 전역은 물론 우리나라 동해를 비롯 멀리는 인도차이나 바닷속에 까지 미쳤다.지금도 바닷속을 볼링하면 아카호야 화산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화산이 폭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8백년전.그러니까 북제주군 고산리유적은 그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고산리유적을 더 정확히 추정하면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왜냐하면 고산리유적 출토 돌화산촉과 똑같은 유물이 나온 일본 에히메(애원)미가와무라(미천촌)의 가미구로이와(상흑암)유적연대가 과학적 방법에 의해 1만년전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나가사키(장기)기타마츠우라군(북송포군)의 후쿠이(복전)유적서도 북제주군 고산리유적에서 나온것과 같은 돌화살촉이 쏟아져 나왔다.크기나 모양이 너무 흡사하게 닮았다는 것이다.또 북제주군 고산리 토기의 경우도 가미구로이와 유적의 토기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었다.이들 두 군데 유적의 토기는 모두 갈색을 띠었고,홈을 파서 빗선을 그은 뒤에 문질러서 무늬 효과를 낸 시문방법도 같은 수법인 것으로 가려졌다. 북제주군 고산리유적의 발굴성과는 그동안 선사시대 가운데 한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부분을 연결시켰다는데 있다.한반도에서 BC1만년전에 구석기시대가 막을 내리고신석기시대가 시작된 이후 약 3∼4천년은 공백으로 남겨진 상태.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유적이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가운데 가장 오래된 BC6천년경으로 밝혀졌을뿐 그이상 올라가는 유적이 없었다. 서울대 임효재교수(고고학)는 고산리유적에 대해 『한반도 본토와 확연히 구분되는 문화양상을 지닌 우리나라 최고의 신석기유적』이라고 평가하면서 『고산리유적을 표준유적으로 삼아 우리나라 선사문화에 고신석기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임교수는 이어 당시 자연환경은 현재와 달라 일본과의 교류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다시말하면 한반도가 중국,일본 남서부와 연결된 구석기시대의 연육상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제주도와 일본은 쉽게 왕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한국통신,32개 공공DB 무료서비스

    ◎문화행사·입찰·해외기업 등 정보수록 한국통신은 지난해 1백30억원을 들여 개발한 32개 공공DB를 오는 16일부터 PC통신망 하이텔을 통해 무료로 서비스 한다. 이번에 새로 제공되는 공공DB는 문화·업계·노동·경제산업·행정정책·법률·학술예술·환경정보 등을 망라,문화행사 및 소비자 구매에서부터 입찰·경매,해외기업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한국통신은 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지난해부터 오는 97년까지 8백억원을 투입,4백개의 공공DB를 개발한다는 목표아래 1차연도에 개발 완료한 32종을 이번에 선보이는 것이다.한국통신은 올해도 2백70억원을 투입,1백33종의 공공DB를 개발할 계획이다. 분야별 공공DB의 정보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상생활분야=문화·차림생활백과·월력소사·사회교육안내·시청각교육자료·직종·적성·직업·전국관광정보 ▲경제산업분야=사업 및 부업아이디어·경영기술지도·종합입찰 및 경매·소비자상품 및 구매·중고산업설비 및 기자재·업종별 업계정보·영문기업정보·해외대기업·농림수산·연안어장·산업정보가이드·영문국내산업정보·산업디자인·국내유통DB목록·공개용 소프트웨어뱅크·정보통신기기부품·금융상품·S/W수발주 및 예정가격지원·국제운송물류·일본산업·경제일일정보·환경공해정보 ▲행정정책·법률분야=공보처정보·노동부정보·국가연금정보 ▲인문·사회과학분야=한국역사정보 이 정보를 이용하려면 한국통신이 무상 임대한 하이텔 단말기나 모뎀이 장착된 PC를 통해 접속번호 「01 410」을 눌러 하이텔망(HiNET-P)에 접속하고 「20.공공DB」를 선택하면 된다.
  • 구오동·이팔리/김일성 현지지도 날짜서 지명 따와(오늘의 북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북한 행정지명 유형별 분석/김일성 가계/김정숙군·김형직군·정일봉/혁명의식고취/충성동·전승동·해방리 등/체제 충성자/김책시·김제원리·이수덕리 나진·선봉시는 북한당국이 요즈음 외자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특구이다. 그러나 북한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조차도 선봉이라는 지명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당국이 함북 웅기군을 없애는 대신 「매사에 선봉에 서라」는 뜻으로 새로운 행정지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에선 김일성일가에 대한 충성심 고취나 사회주의식 노력동원을 부추기기 위한 이른바 「북한식 지명」이 수없이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치성을 띠고 개명된 북한의 행정지명은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김일성 가계의 이름을 직접 딴 행정지명으로 81년 8월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김정일의 생모)으로 개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88년 양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김일성의 부)으로,90년 풍산군을 김형권군(김일성의 숙부)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밖에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밀영속의 한 봉우리 이름을 김정일 이름을 따 정일봉으로 고친 사례도 있다. 둘째 일반어휘에 사회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혁명업적 찬양 및 사회주의적 변화상을 반영한 지명이다. 이를테면 충성동(자강도 강계시,남포시 대안구역 소재),은덕군(경흥군),은혜리(황남 은률군),은정리(황북 서흥군),영광군(함남 오로군)등이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과 감사를 기리기 위해 새로 지어진 행정지명들이다. 이와는 달리 81년 함남 회조군을 낙원을 건설했다는 뜻으로 락원군으로 개칭한 것을 비롯해 수령의 업적과시를 행정지명으로 부여한 것도 적지 않다.개선동(평양시 모란봉구역,강원도 원산시),전승동(평양시 모란봉구역)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적 변화의 현실을 강변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는 해방리(황남 옹진군,강원도 고산군),혁신리(자강도 장강군),평화리(함남 금야군,황남 강병군)등이 있다. 셋째 이른바 김일성의 「현지지도」날짜가 지명으로 정착된 곳도 많다.오일노동자구(자강도 장강군,양강도 갑산군),구오동(자강도 만포시),이팔리(함남 부전군),구월동(평남 평성시)등이 그것이다. 넷째 김일성과 북한체제에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빌린 지명이다.성진시와 학성군을 김책시와 군으로 바꾼 것이라든가 김제원리(황남 재령군),이수덕리(강원 평강군),박춘 로동자구(함북 경성군)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 총무원장 누가 될까/월탄·월주스님 불뿜는 대결

    ◎21일 선거… 조계종 선거열기 “후끈”/두후보 덕숭문중 월자항렬의 사형사제/월탄스님/교구본사 순회하며 지지호소/월주스님/개혁회의 실세들의 지지받아 불교조계종은 개혁진통 속에 오는 21일 실시하는 제28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열기에 휩싸여 있다. 이번 선거전은 지난 9일 후보등록을 이미 마친 유월탄스님과 송월주스님이 먼저 경선에 나섬으로써 불이 붙었다.한때 경선이 예상되었던 오고산스님이 후보등록을 끝내 사양하는 바람에 총무원장 선거는 2파전으로 압축되었다. 월탄스님과 월주스님은 덕숭문중 「월」자 항렬의 사형사제.모두 금오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다만 월탄스님이 승가나 속가의 나이로보아 월주스님 보다 한살 아래다.그런 인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낸 공격은 자제하는 형편.다만 교구본사 순회방식의 뜨거운 선거운동에 돌입했다.투표권자는 이미 설출한 81명의 중앙종회 의원과 24개교구에서 15일 선출하는 2백40명의 선거인단을 포함해 모두 3백21명.이 가운데 선거인단이 가장 큰 표밭이 되고 있다. 이들 두 후보의 경력도사형사제를 떠나 난형난제일 정도로 지명도를 가리기가 힘들다.월탄스님은 종단에서 학비를 대주어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온 종비생 1기.지금까지 배출한 종비생 승려들의 모임인 석림회 회장을 맡고 있다.석림회는 동국대 불교대학원 출신들이 만든 동림동창회와 더불어 월탄스님의 지지기반.조계사,전등사,법주사 주지를 거쳐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한 그는 비구·대처승을 가르는 불교정화 당시 6비구의 하나로도 이름이 높다. 월주스님의 경우는 지난 80년 총무원장에 선출된 큰 경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군부에 의한 이른바 10·27법란으로 물러난 뒤 사회활동에 주력했다.현재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의회 회장,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오랫동안 맡아온 금산사 주지를 총무원장 출마를 위해 이번에 내놓았다. 월주스님의 이러한 성향은 서의현 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리고 개혁회의를 출범시킨 실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특히 월주스님 상좌를 지낸 몇몇 스님을 포함한 개혁회의와 현 과도체제 집행부 일부에서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월탄스님 쪽의 불만. 세속선거에 흔히 나타나는 관권개입과 같은 양상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맞서 월탄스님은 지난날 교구본사 주지급으로 구성된 여여회를 발판으로 표모으기에 나서고 있다.그러니까 개혁회의 비주류 쪽과 보수세력의 간접지원을 받고있는 셈이다.따라서 양쪽이 출마선언을 통해 밝힌 소신의 색깔도 차이를 보인다. 월탄스님이 「종단 대화합과 점진적인 개혁」을 주창한 반면 월주스님은 현재의 「개혁의지와 정신을 살려 개혁을 완성」한다는 기치를 들었다. 월탄스님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내자빌딩에 한국불교발전연구원을 개원하는 것으로 총무원장 출마를 위한 캠프를 일찍 차렸다.월주스님은 이 보다는 늦게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다 최근 선거지휘소를 차리고 태공월주종책연구소 간판을 달았다.양쪽은 서로 자파가 약간 우세한 것으로 24개 교구에 대한 표의 향배를 분석하고 있다°수덕사 법주사 금신사 불국사를 잇는 덕숭문중을 제외한 교구본사 가운데 송광사와 월정사는 월탄스님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덕숭문중과 법맥이 닿아있는 쌍계사는 월주스님을 민다는 분석.현재 경북·대구지역 교구본사들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들 본사의 표가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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