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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인가족 설 차례상 10만9,000원

    올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는 4인가족 기준 10만9,000원정도가 들것으로 조사됐다.지난해 11만1,670원보다 2,670원이 줄었다. 사과·배 등 과일류값과 조기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농림부가 16일 통계청 조사가격과 농협 하나로클럽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다. 5개를 구입할때 사과(후지)는 3,170원,배(신고)는 6,140원이 든다. 밤은 400g 기준으로 지난해 1,920원보다 오른 2,090원이 들 것으로전망됐다. 나물류는 시금치와 고사리,도라지를 각 400g씩 장만할 때 모두 6,300원이 든다.쇠고기 국거리용 가격은 1㎏에 지난해보다 1,250원이 오른 1만9,000원,돼지고기는 500g에 3,980원,계란은 30개에 3,220원이다. 참조기는 1마리에 지난해보다 2,000원이 내린 1만원,북어는 1마리에2,900원에 구입할수 있다. 관계자는 “4인가족이 차례상을 차리는 것을 기준으로 추정한 것”이라며 “농협 등 할인판매를 하는 행사장을 이용하면 설차례상 재료를 10∼30%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신토불이 제수용품 구별법

    ‘차례상은 신토불이 상품으로’ 값싼 외국 제수용품이 많이 들어 와 있어도 조상에게 드리는 것만은 여전히 ‘국내산’을 고집하는 이들이 많다.국산과 수입산 제수용품구별법을 알아본다. [조기] 국산은 몸통이 두툼하고 짧은 반면 수입산은 비늘이 거칠고꼬리가 길고 넓은 편이다.또 옆구리 줄이 선명치 않고 머리 아래부분이 회백색 또는 흰색을 띈다.유난히 몸에 광택이 난다.특히 중국 인도네시아산은 몸전체가 회색이거나 흰색이고 눈,복부,지느러미만 붉은 색을 띈다. [명태] 국산은 평균길이가 40㎝정도지만 수입산은 이보다 6∼7㎝길고 가슴지느러미가 검정색을 띤다.또 주둥이 밑에 수염이 없으며 비늘도 매우 작다.등쪽은 갈색 계통이며 배부분은 흰색이다. [쇠고기] 한우는 선홍색이 많으나 수입육은 암적색이 많다. [도라지] 손질한 도라지를 보면 국내산은 길이가 짧고 끝부분이 조금 말려 올라간 반면 중국산은 길이가 길고 동그랗게 말려 있다.씹어보면 국내산은 단단한 섬유질이 적어서 부드럽고 흰색을 띠며 향이 강하다.중국산은 단단한 섬유질이많아 질기고 약간 노란색을 띤다. [고사리] 국내산은 줄기가 짧고 가늘며 줄기 윗부분에 잎이 많이 붙어있으나 중국산은 줄기가 굵고 길며 윗부분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국내산은 연한 갈색이고 털이 적다.반면 중국산은 진한 갈색에 털이 많으며 향기가 약하다. [대추 ]색깔은 선명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풍기는 것이 좋다.국내산은 잘말라 단단하며 대개 과육과 씨가 잘 분리되지 않지만 중국산은 덜 말라 말랑말랑하고 과육과 씨가 쉽게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곶감] 국내산은 과육이 탄력이 있고 표면에 흰가루가 알맞게 있으며 꼭지 부위에 껍질이 아주 적게 붙어있다.중국산은 꼭지 부위에 껍질이 많이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선임기자
  • 설 제수용품값 10년새 2배 껑충

    지난 10년간 설을 앞두고 조기 과일 등 제수용 품목은 약 두배가량값이 올랐다.이는 같은 기간의 소비자물가상승율 63.5%보다 상승속도가 1.6배쯤 빠른 것이다.특히 대표적인 제수용품인 조기값은 무려 세배이상 올라 가장 높은 가격상승률을 보였다.이같은 사실은 12일 한국물가협회의 90∼2000년 가격자료를 토대로 제수용품의 가격변화를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조기 가격은 90년 9,000원(40㎝ 기준)이었으나 2000년에는 3만원(25㎝)으로 크기는 절반 정도로 줄어든 반면 가격은 3.3배 올라,제수용품 상승률을 휠씬 웃돌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연승연구원은 “공산품 생산과 농수산물 수입이늘어 물가 상승폭은 적었으나 제수용품은 국내산 선호경향과 세트상품 증가 등의 현상으로 전체 가격이 올랐다”면서 “조기는 어획량등에 따라 민감해 가격변동폭이 특히 컸다”고 분석했다. ◆제수용품 비용 10년만에 2배=설차례상 비용은 4인 기준으로 지난 90년 5만3,910원에서 지난해 11만2,700원으로 갑절이 늘었다. 제수용품은 나물류(도라지 고사리 숙주) 과일류(사과 배 곶감) 수산물(북어포 조기 명태) 육란류(쇠고기 닭고기 달걀) 견과류(밤 대추)기타(사탕 약과 등)로 모두 22종이다. 전체 비용이 가장 많이 증가한 때는 91년.90년 대비 25%나 올랐다. 주원인은 과일값과 육란류의 폭등이다.과일은 날씨 탓에 생산량이 줄어 값이 2배 이상 뛰었다.쇠고기 등은 91년 부위별 판매자율화가 실시되면서 가격이 올랐고 닭고기와 달걀값 상승은 걸프전으로 유가가폭등하면서 양계장 연료비가 오른 데 따른 것이다. 두번째로 전체비용이 많이 증가한 때는 96년으로,전년대비 14.5%였다.남해안 기름유출 사고 등으로 조기어획량이 감소해 조기값이 95년에 비해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1만원이 올랐다.97년에는 정부가 조기비축량을 방출,전체비용이 5.6% 감소했다. 올해에는 전년에 비해 설차례상 비용이 3%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국내산 참조기 대신 연근해산 조기가 많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제수용품 값은 날씨,국제정세,환경,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재래시장과 대형유통업체희비 교차=제수용품 구입처가 재래시장에서 대형유통업체로 이동하고 있다.90년대 중반 할인점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100개를 넘어서면서 나타난 현상이다.이는 쇼핑의 편리함도있지만 이들 업체가 제수용품을 세트화해 판매,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은 울상을 짓고 대형할인매장은 올해 매출액을늘려잡는 등 대조를 보이고 있다.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설대목의 매기가 과거보다 떨어지고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반면이마트 마케팅팀 안상도부장은 “지난해부터 할인점에서 제수용품을 찾는 사람이늘고 있다”면서 “올해는 특설매장을 확대 운영키로 했다”고 말했다. 강선임기자 sunnyk@
  • 고사리 손으로 가꾼 배추 장애인 복지시설에 기증

    유치원생들이 4개월 동안 땀 흘려 가꾼 배추 2,500 포기를 장애인복지시설에 김장용으로 기증,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전국 50여개 미술학원 연합회인 경기도 고양시일산구 주엽동 홍익아동미술교육연구소 소속 유치원생 2,500여명. 이들 유치원생은 지난 7월 연구소 산하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 홍익가정농장 2,000여평에 씨를 뿌린 뒤 1인당 한 포기씩 인근 농민의 지도를 받아 지금까지 재배에 직접 참여해 왔다. 유치원생들이 가꾼 이배추는 오는 21일 수확돼 장애인 복지시설인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홀트 일산복지타운에 전량 김장용으로 기증된다. 수확에는 유치원생 50여명이 직접 참여하게 되며,홀트복지타운 직원,장애인,백마부대 장병 등 70여명도 뜻깊은 행사에 동참하게 된다.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이들 유치원생의 김장 배추 기증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지난해 처음으로 홀트 일산복지타운에 기증한 뒤학부모와 원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올해도 실시한 것이다. 홀트 일산복지타운 김경주(44·여)과장은“고사리 손들의배추 기증은 그 어떤 기부금품보다 소중하다”면서“특히 어린이들에게 장애인도 우리 이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한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라고 감사해 했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
  • 환갑노년 “아이러브 스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릴적 꿈을 더듬으며 지극한 모교사랑을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금형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최수근(崔秀根·57·영등포구 당산동)씨.최씨는 최근 경북 포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동창생 이명룡(李明龍·56·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호리)씨와 함께모교인 강원도 양양군 양양초등학교를 방문,합창단원 50명에게 250만원 상당의 단복과 모자를 전달했다. 이밖에도 모교로부터 요청이 있을 때마다 교기와 교문 현판,피아노를 기꺼이 기증하는 등 도움을 주어왔다. 최씨가 이처럼 모교사랑 실천에 발벗고 나선 것은 5년여전부터.서울에 사는 동창생들을 수소문해 모임을 결성한 뒤 고향찾기와 모교돕기를 제안했다.친구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은 최씨는 이때부터 4년간 회장을 맡으면서 동창들의 정성을 모아 매년 졸업식 때마다 모교를 방문,후배들의 고사리 손에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양양 조한종기자 bell21@
  • [‘6.15’ 이후의 북한] (3)북한 대학생들

    9월3일.평양에서 맞는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며칠전부터 안내선생들을 졸라오던 대로 대동강 유보도(강변공원)에 나가 소풍나온 시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오전 9시30분 대동강변에 우뚝 서 있는 높이 170m의 주체탑에 올랐다.주체탑 일대는 널찍한 강변공원으로 꾸며져있어 휴일이면 많은 시민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놀러 나온다.주체탑에서 내려다본 대동강에는 양쪽으로 높이 150m의 분수가 치솟고 있었고 보트와 오리배들이 가득 떠다니고 있었다.맞은편의 김일성광장에서는 당창건 55돌 기념 카드섹션 연습이 한창이었다.총지휘자의 목소리가 주체탑 위까지 들려왔다.“다음은 ‘자력 갱생!’ 오자 내지 말아야 겠습니다…”. 어디선가 육중한 종소리가 들려왔다.10시 종이라 했다.카드섹션 연습이 끝나고 시민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유보도로 내려와 강변을 걷는데 통기타 소리가 들려왔다.남녀 대학생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처음 말을 붙이자 다소 낯설어 하는 표정들이었으나 안내선생들이 기자 일행을“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취재하러 온 남조선 기자들”이라고 소개하자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4학년 학생들인데 전날밤 당 창건 55돌 횃불행진 야간훈련을 성공리에 마친 기념으로 놀러나왔다고 했다. “정치경제학부에는 어떤 과들이 있습니까?” “정치경제학과,계획경제학과,경제조정학과,재정금융학과,무역경제학과 등 5개 학과가 있고 학생수는 1,000명쯤 됩니다.” 가만 보니 유난히 붙어앉은 남녀 학생이 있었다.남학생에게 물었다. “옆에 앉은 친구와는 특별한 관계입니까?” 폭소가 터졌다.남학생은 얼른 대답했다.“기자선생님이 아주 예리하게 보셨습니다”.그러나 옆의 여학생은 “아닙니다”하면서 연신 손을 내저었다.순간 남학생이 여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소리쳤다.“넌 내것이야!” 모두들 웃어대다가 한 남학생이 말했다.“난 없습니다.통일되면 남쪽 처녀에게 장가가겠습니다”.그는 정치경제학과 4학년 한명철(25)이라고 했다. “말나온 김에 하나 물어봅시다.북에서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들 마실물도 떠다준다는데 사실입니까?”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남학생들이 말했다.“그런 거야 여동무들이직접 말해야지 뭐.” 기자옆에 앉은 한 여학생이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는 평범한 일 같은데 선생님이 새삼 물으시니 뭐라고 답해야할지…남동무들이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교실청소 깨끗이 해놓으니까수고했다고 물 떠다주는 건데….” “그럼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위해 하는 일을 한 번 대보세요.” 한 남학생이 호기있게 입을 열었다.“우리 학급에 여자가 6명 되는데 3·8부녀절 때는 꽃다발도 갖다주고 식당 조직도 하고….” 다른 학생들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댔다. “왜 웃어요?” “저 동무 말하는 거 좀 보라요.아니 부녀절에 처녀들한테 뭘 준다구?” 웃음소리에 인근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구경왔다.김형직사범대학과김책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대동강 위를 떠다니던 유람선이 선착장에들어왔다. 모두들 유람선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비용은 1원이었다.이번에는 학생들의 질문공세에 기자가 답변하는 입장이 되었다.경제학부 학생들이어서인지대학등록금,대졸초임,집세,취업문제 등 남한의 경제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남한 대학생들이 ‘북녘산하답사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자 “남녘 학우들이 언제쯤 평양에 오는가”라며 큰 관심을 보였다.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명철 학생이답했다.“이번 6월 김대중 대통령께서 평양에 오신 것도 반갑지만 북과 남의 두 수뇌분들이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채택하신 데 대해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우리 청년학생들도 북남공동선언을 이행하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칠 결심으로 있습니다”. 그는 “남의 청년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다. 점심은 염치불구하고 학생들이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얻어 먹기로했다.김밥,물이 많은 열무김치,계란말이,오리불고기,타조고기,도라지무침,고사리무침,삶은 달걀 등 오랜만에 먹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타조고기가 이색적이었다.평양에 타조목장이 있는데 타조 한 마리는120㎏,알도 1∼2㎏이나 나가 하나면 한 가족이 먹는다고 했다. 점심이 끝나자 오락회가 벌어졌다.‘콩깍지놀이’였다.양손으로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세 번째 박자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콩’‘깍’‘지’를 돌아가며 외치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려 박자나 가사가 틀리면 걸리는 놀이였다.세 학교 학생이 섞여서 놀다보니 학교마다 특색이 있었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말이 기본이라,걸려도 말 한마디 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김형직사범대학 학생들은 재기발랄하고 재주가 다양했다.김책공대 학생들은 총명해 보이는 얼굴들이지만다소 순발력이 떨어져 맡아놓고 걸리는 축이었다.그들이 걸려들 때마다 김형직사대 학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댔다. “어서어서 나오세요! 안 나오면 졸장부!”.여학생들이 집단으로 나와 “여성은 꽃이라네,나라의 꽃이라네…”라는 노래를 합창하자 남학생들이 슬그머니 나와 백코러스를 넣었다.“할머니는 떼놓고,할머니는 떼놓고…” 한바탕 춤판을 벌인 후 유람선이 선착장에 닿았다.헤어질 시간이었다.학생들은 저마다 술병을 들고 이별주를 권하고 공책을 꺼내 말 한마디 남겨 달라고 했다.배에서 내려 오랫동안 악수를 나누었건만 학생들은 승용차까지 따라와 눈물을 글썽였다.“통일되는 날 꼭 만납시다”를 거듭 외치는 깨끗한 얼굴들을 뒤로 하고 떠나면서 기자는 서울의 얼굴들을 떠올렸다.한번 만났다 하면 1차,2차,3차,4차를 거듭하면서 새벽녘까지 헤어지지 못하고 몰려다니곤 하는 그들.정 많고 흥많은 면에서도 남과 북은 지독하게도 닮아 있었다. 신준영기자 현지르포 junyoung@
  • 깜짝金 美 로페스 ‘태권가족’

    “태권도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태권도 남자 68㎏급 결승에서 신준식(경희대)을 울리며 ‘깜짝 금’을 거머쥔 미국의 스티븐 로페스(22)는 ‘태권 가족’.형 진 로페스는 94·96년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를 지낸 실력파.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동생의 코치로 참가,온갖 뒷바라지로 스티븐의 금 획득에밑거름이 됐다.동생 마크도 지난해까지 스티븐과 같이 국가대표로 동고동락했다. 형 권유로 태권도를 본격 시작한 스티븐은 “태권도가 축구나 야구처럼 일반 사람들이 즐기는 평범한 운동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것”이라며 “형이 하는 것은 뭐든지 따라하면서 하나씩 배워 나간것이 영광을 가져왔다”며 태권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태권 가정’속에서 자연스레 기본기를 익힌 스티븐의 금메달은 어쩌면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었다.5살짜리 스티븐은 아버지의 성화로새벽마다 고사리 주먹을 불끈 쥐며 힘차게 기합을 넣어왔던 것. 스티븐은 “태권도의 승부에는 결코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서 오르지 자기 실력만으로 승패가 갈리는 태권도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홍원상기자 wshong@
  • 장용호 “할머니 저 금메달 땄어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바칩니다” 개인전 랭킹라운드 1위를 기록했으나 지난 20일 16강전에서 탈락한장용호는 고향 전남 고흥의 할머니(박갑덕·80)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걱정마세요.단체전에선 꼭 금메달을 따낼께요”.겨우 마음이 놓였다.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엄마 아빠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는 늘 든든한 지주였다.곤궁한 살림에 고사리를 캐고 우렁을 잡아가며 손자의 활솜씨를 대견해하며 뒷바라지 해온 할머니.4년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따낸 단체 은메달에도대견해하며 ‘우리 용호 장하다’고 껴앉아주시던 할머니. 95년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금메달을 바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가슴이 허전한 장용호.활을 잡기 2년전인 과역초등학교 2년때 찌든 생활고로 집을 나간 어머니.그리고 아버지마저 돈벌어 오겠다고 멀리 떠나 버린 뒤 어린 용호는 결심했다. 성공하면 부모님도 나를 찾으시겠지….4년전 “금메달을 따내 태극기를 휘날리면 엄마도 보시겠지…”하며 올림픽에 출정했다.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눈물과 회한에 얼룩진 세월을 되돌아보며 아버지를용서했지만 곁에 있지는 못했다. 또 이별이었다.연락처도 모른다.원망어린 방황의 시간 끝에는 오로지할머니와 두 살 터울의 형(국태씨)만이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으니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아,어머니.목놓아 불러보고 싶지만 할머니의 얼굴만 떠오른다. 김한석기자 hans@sportsseoul.co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6)낯선 땅에서

    *제주 똥돼지치기 자연순환 따른 '유기사육법'. 변소에 들어가니 판자를 얹은 변기 구멍 위로 막대기 하나가 비죽히올라와 있다.이건 뭣에 쓰는 막대기인고.급한대로 주저앉는데 갑자기밑에서 꾸울,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돼지 대가리가 널판자 아래로 쑥들어온다. 내려다보니 돼지우리쪽에서 변소의 밑으로 통하는 개구멍같은 통로가 있고 그리로 돼지가 상체를 들이민 것이다.나는 혼비백산하여 얼른 바지를 추스르고 일어나 변소 밖으로 뛰어 나와 버렸다. 대번에 어떤 광경을 머리 속에서 떠올렸기 때문이다.일을 보는 중에오물이 밑에 있는 돼지의 귀에라도 떨어지고 그것이 머리를 흔들며털어댄다면 나의 아랫도리는 그야말로 초토화 될 게 아닌가. 밖으로 나와서 어쩔줄 모르고 발을 구르며 서성대다가 하여튼 일이급하여 다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주저앉는데 또 꾸울,한다.그제서야 나는 구멍 위로 비죽히 솟아 있는 막대기의 쓰임새를 알아차렸다.막대기를 잡아 이곳 저곳 찌르면서 머리를 들이밀려는 동물을 쫓으면서 일을 치뤘다.아래에 신경을 쓰느라고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대충 하고서 얼른 나온다.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돼지가 다시 울타리판자 사이로 그 영리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본다.나는 뒤늦게야 돼지의 눈빛이 어째서 그렇게 영리해 보이는지를 짐작했다.그가 나를 보는 눈빛은 이를테면 “야,밥 온다!” 하는 느낌의 표정 그대로였기때문일 것이다.괘씸한 놈 같으니. 자연보호 좋아하는 이들 말로는 변소를 돼지 식당으로 삼는 제주도의전통식 돼지치기야말로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른 지혜로운 사육 방법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 거시기 먹고 싼 돼지거름은 밭으로 가고 푸성귀는 그걸 먹고 자라나 사람이 다시먹게 된다.그럴듯하기는 해도 어쩐지 먹는 얘기 하다가 싸는 얘기 하려니 께름직하다. 제주의 돼지는 전통적인 사육 방법 때문에 지금은현대식 돈사로 모두 바뀌었지만 옛날 이름 그대로 ‘돋통시(똥돼지)’라는 정답지만 치열한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다. 그러나 조상이 그렇게 자라나 그런지 제주 토종돼지의 맛은 전국에서 알아준다.우선 기름기가 적고연하고 부드러우며 살이 찰지다고 한다.맛있기로는 제주도의 산야에 즐비한 구멍이 촘촘한 화산석을 달구어 그 위에서 소금뿌려 구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기름기를 돌이 흡수해 버린다.적당히구워 먹다가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야만인이라고 하겠지만,세계 어디에서나 민속 음식치고 약간은 야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가령 ‘새끼회’ 같은 것은 여자들은 대부분 먹지 못하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비위 좋은총각 녀석들이 키들대며 서로 격려하며 먹을만한 음식이다.이것은 새끼를 밴 돼지를 잡아 태 속에서 그야말로 태어나기 직전의 돼지새끼를 꺼내어 깨끗이 손질하여 칼로 조아서 갖은 양념한 날 것이다.대접에 담아 내온 것을 보면 거의 물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처음 먹는 사람은 이런 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의문을가져서는 절대로 먹을 수가 없다. 실은 애기보를 함께 존 것이라 양수가 고기와 함께 섞인 것이다.독한 소주와 물회를 함께 먹으면서 찬으로 곁들여서 밥도 먹는다.나는 체험에 대한 욕구가강한 편이고 호기심이 많아서 몇번 먹어보고 나서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씩은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해인가 팔십년대에 일본에 갔다가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작가인김석범 선생과 만났는데 그가 나를 우에노 야시장 부근에 있는 조선음식점 거리로 데려갔다. 그는 아마도 나를 은근히 떠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자리가 네 다섯 밖에 없는 작은 주점으로 데려가서는 김선생이 새끼회를 시켰다.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고 아주 맛있게 그것을 먹어 치웠고 노인은 매우 놀란 듯 했다.이쯤 하면 아마도 두 손을들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엽기적 만찬에 한국에서 온 손님을초대하고 자신도 즐거워하는 고향 잃은 노작가를 열심히 먹어 주는행동으로 위무해 드렸다. 독일 망명 시절에 윤이상 선생도 가끔씩은 추억 속에서 ‘개장’을떠올렸는데 일본에 갔더니 어느 교포가 몰래 하는 보신탕 집이 있다며 초대를 하더라는 것이다.너무도 신이나서 허리띠 끌러 두고 입맛을 다시며 호텔을 나서려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혹시라도누군가 기자가 알고 신문에라도 쓰고 그것이 독일 사회에 알려지면저명한 작곡가인 그의 삶과 예술은 그날로 끝장이라는 것이다.실제로독일에서는 그 무렵에 자르 탄광지대에 있던 한국인 광부 몇이서 놀러 갔다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를 한 마리 잡아 먹고 들통이나서 온 독일의 신문에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이것은 서구에서는우리 사회에서 토막살인 정도의 엽기적인 사건이 된다.그들 광부들은 막대한 벌금을 물고나서 국외 추방을 당했다.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타관 객지에서 그런 강렬한 토속 음식은 알지못하게 시달렸던 다른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달래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돼지고기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육개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제주의한라산고사리는 먹고사리라고 하여 연하고 맛이 좋은데 돼지 살코기와 함께 찢어서 양념하여 육개장을 끓이면 얼큰하고 구수하다.간을맞출 때에 밀가루나 메밀가루 갠 것을 훌훌 뿌리면 국물이 꺼룩하고진득해진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꿩이 살이 오르고 한창 먹을만 해지는데 ‘메밀저배기’는 꿩 고기 음식으로 가장 알려진것이다.메밀을 반죽하여밀어서 칼국수처럼 썰어 두고 꿩은 살을 발라내고 뼈를 칼등으로 두드려서 생강 마늘을 두어 푹 우려낸다.국물에 간을 하고 채 썬 무를넣고 다시 끓이다가 메밀국수와 파를 넣고 끓여낸다. 메밀로 하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빙떡’도 그중의 하나다.메밀 가루를 풀어서 돼지 기름으로 번철에 넙적하니 지진다.그 위에 고명을 얹는데 전통적으로는 고사리와 무를 채 썰어서 넣지만 요새는 표고 돼지고기 당근 파 등속을 쓰기도 한다.조금 더 고급으로하려면 무채와 다진 꿩 고기를 넣기도 한다. 익어가는대로 끝에서부터 돌돌 말아서 지져낸다.이런 빙떡을 칼로 썰지 않고 길다란 채 그대로 손에 들고 먹어야 맛이 좋다.꿩고기 샤부샤부 같은 것은 꿩 사육장이 많아진 뒤에 나온 관광식당의 품목이다. 차조로 하는 것으로는 평안도의 노티처럼 ‘오매기 떡’이라는 게 있다.차조를 불려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다음 동그랗게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서 꿀이나 묽게 만든 설탕에 갠다.여기에 콩고물이나 팥고물을 묻히기도 한다.고구마를 말려서 가루를 내어 생고구마를 얇게저며서 켜로 깔고 시루에 쪄내는 ‘감제떡’도 맛이 있다. 이런 여러 먹을거리 외에도 나는 뭐니 뭐니 하여도,더운 여름날 찬밥에 세닢짜리 콩잎을 따다가 깨끗이 씻어서 멜첫(멸치젓) 한 마리 얹어서 앞니 끝으로 꼬리 지느러미 잘라 뱉어내고 싸먹는 콩잎쌈 맛을잊지 못한다.젓갈이라면 그밖에도 ‘게우젓’과 ‘자리젓’이 밥맛을돋군다.자리젓은 제주도 발음으로 ‘자리젯’이라고 해야 입 안에 침이 고이는데 위에 나온 자리돔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이다.통째로 담근 것을 잘 다져서 풋고추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밥 반찬으로 먹는다.게우젓은 일테면 전복의 내장으로 담근 젓인데 요즈음은너무 비싸서 발발 떨며 먹어야 한다.단골 회집이 있다면 서너번 가서호기있게 팔아 주어야 한번쯤 작은 종지에 내다줄 정도다. 전복내장을 사다가 집에서 소금에 절여 푹 삭이고나서 묵혔다가 조금씩 내어갖은 양념하여 먹는데 잘 묵힌 게우젓은 오래된 고추장처럼 되직하고짙은 암갈색이 된다. 이것을 젓가락 끝으로집어다 뜨거운 밥위에 살살 비비면 쌉쌀하고 비릿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찬다. 황석영
  • 경기 中농산물 수입 급증

    올들어 경기지역의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한국무역협회 경기지부에 따르면 7월말까지 경기지역 중국산 농산물 수입액은 1억8,1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사료용 옥수수 8,120만달러▲현미 1,430만달러▲냉동조기 170만달러▲냉동 낙지 60만달러▲명태알 60만달러▲들깨 58만달러▲붕어 53만달러▲참깨 40만달러▲고사리 38만달러▲냉동 아귀 31만달러▲냉동 복어 30만달러 등이다. 참깨·배추·까나리·옥돔·꽃게 등은 지난해까지 수입실적이 없다가 올들어 수입품목에 추가됐다. 한편 중국산 농산물 가운데 사료용 옥수수와 냉동 복어,냉동 조기의경우 지난해보다 수입이 크게 늘어난 반면 냉동 갈치, 냉동 아귀, 붕어 등은 크게 감소했다. 사료용 옥수수는 그동안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미국산보다 값이싸 지난해에 비해 1,348%나 수입이 늘었으며, 냉동 조기도 국내산과같은 수역에서 잡혀 품질이 비슷하면서도 값이 싸 수입이 82% 증가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 남북이산상봉/ 평양만남 이모저모

    ◇ 평양 단체상봉■평양 방문단은 15일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북녘의 가족·친지들과 50여년 만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을 가졌다. 호텔 2·3층에 마련된 상봉장은 남북 가족이 만나는 순간 울음바다를 이뤘다.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2층의 상봉장에는 방북단 60명이,그리고 3층 상봉장에는 40명이 자리했다. ■20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나온김금자(金今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김금도(72)·금년(69)씨를 만났다.금자씨가 “허리는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라고 말하자 이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 어후씨(71)가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듣고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씨(6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누나 상월씨(70)와조카 이예숙씨(50)를 만나 50년 응어리진 한을 풀었다.2남2녀의막내로 태어나 누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님에게 안겨보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남한에서 올라온 아버지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를 만난딸 경애씨(52)는 “결혼식을 앞두고 왼쪽 뺨에 난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점을 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개성 출신의 이윤용씨(82·경기 성남시)는 처남 김홍규씨(63)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홍규씨는“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고 매형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남동생 후열씨를 만난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씨(70·강원 동해시 부곡동)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느냐.평생 너를 가슴에묻고 한에 사무쳐 돌아가셨다”며 울부짖다 땅에 쓰러져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또 평양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정호씨(91·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1·4후퇴 때 눈보라때문에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씨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흘렸다. ■평북 박천 출신의 김사용씨(74·서울 문래동)는 지난 51년 헤어진아내 이옥녀씨(72)와 당시 1년 6개월 된 딸 현실씨(51)를 보자 왈칵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김씨는 지난 51년평양에서 징집돼 전쟁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상황을 되뇌며 “당신이 애(현실) 고사리 손을 쥐어 올리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봉에는 북측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노동신문,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민주조선,평양신문,통일신보,청년전위,조선기록영화촬영소,내나라 비디오,중앙방송,금성청년출판사 등 20여개사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중국의 신화사,인민일보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 외신들도 취재팀을 파견했다. ◇ 인민문화궁전 만찬■오후 8시부터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적십자회 초청 만찬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방북단 일행은 조금전 북쪽 가족들과의 해후에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가족들이 빠지고 북측 안내원들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자 못내 아쉬워하기도했다.저녁식사로는 고기종합보쌈,생선묵과 감자무침,김치,쉬움떡(술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송이구이,버섯완자볶음,수박,과줄,인삼차 등이 나왔다. ■1층 만찬장에는 헤드테이블 1개와 30개의 원탁테이블이 놓였다.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만찬장에는 ‘반갑습니다’‘아리랑’‘나의 살던 고향은’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들이 연주됐다. ■장재언(張在彦)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모두는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가 가족적 범위를 벗어나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화해와 통일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민족사적 대업을 성취해 나가는 데 기여하게 되도록 뜻과 마음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장인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우리적십자 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한명의 이산가족들이라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교환하며 다시 만나 함께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려항공 기내표정■이날 낮 12시쯤 남측의 평양 방문단이 탑승을 시작한 북한 국적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는 장식이나 시설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흘러나오는 등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비행기내 모든 표지는 우리말과 영어가 함께 기재돼 있었는데 이중 ‘안전벨트’를 ‘박띠’로 표기하는 등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도눈에 띄었다. 비행기 이륙후에는 “이제부터 청량제를 봉사하겠습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6명의 승무원들이 룡성맥주,오미자단물,금강산 샘물 등을제공했다.‘가공물고기’란 이름의 명태포도 인기를 끌었다. ◇ 순안공항 도착■방북단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IL62기는 예정보다 5분 빠른 오후 1시4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 곳곳이 젖어있었고,일행이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렸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허해룡 조선적십자회사무총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북측 장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 고려호텔 도착■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는 차분했다.이산가족 방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나 지난 정상회담 때의 시민들의 열광적 환영은 찾아보기힘들었다. 다만 간간이 지나는 시민들이 멈춰서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을 환영했다. 방북단은 지난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취재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평양 시내를 거쳐 오후 3시5분쯤 상봉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고려호텔 정문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호텔 여직원들이 양쪽에 늘어서 ‘환영합니다’라며 박수로 반갑게맞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점심메뉴로는 녹두지짐,평양냉면,김치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 얼음보숭이와 신덕샘물이 마련됐다.식당 중앙뒤편에 마련된 대형TV에서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기쁨만을 드리고 싶어라’등 각종 경쾌한 음악이연주됐다. ◇ 서울 출발■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취재기자단 등 151명으로 이뤄진 우리측평양 방문단은 오전 9시30분 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호텔을 출발,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10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한 방북단은 대합실에서 배웅나온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 속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여객라운지에 모인 방북단 일행은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거듭 살피며 탑승시간을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뒤 만날 북녘 가족들의 옛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고려항공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 활주로를 이륙,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평양으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특별취재단
  • 송수권 ‘태산풍류와 섬진강’ 風流는 남도를 흐르고…

    남도가락 구성진 순수 서정시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송수권 시인(60·순천대 객원교수).그의 남도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데가 있다.‘지리산 뻐꾹새’나 ‘남도의 밤 식탁’같은 시에 나타난남도의 언어와 정서는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시인의 사랑 남도는 더이상 그 시절 쪽빛 세상이 아니다.세월에 풍화된 남도의모습은 시인을 우울하게 한다. 진달래철이 와도 몽탄강 복바위엔 황복이 오르지 않고,고사리철이 돼도 칠산바위엔 더이상 참조기가 따르지 않는다.하지만 남도의 풍류정신만은 유구해 우리 삶의 자양이 되고 있다. 송수권 시인이 남도풍류의 정신사를 한 권의 기행문집에 담아냈다. 태산풍류와 섬진강(도서출판 토우)이란 책이다.저자는 남도풍류의 일번지로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태수를 지낸 섬진강 북단태산(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을 꼽는다.한 시대를 우울과 방황 속에서보낸 고운은 산자수명한 이곳에 유상대(流觴臺)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유상대는 술잔이 흘러내려 자기 앞에 오면 시를 한 수씩 읊었다는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현장.고운은 풍류를 현묘지도(玄妙之道)라 하여 유·불·도 3교를 아우르는 우리 본래의 사상으로 보았다.유상대에서 청유(淸遊)했던 인물로는 고운 외에 ‘태인향약’을 만든정극인,선운사를 짓고 제염법을 전파했다는 검단선사 등이 있다.경주의 포석정 같은 곳이 칠보의 고운천(반곡천)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지리서 ‘팔역지’에서는 한수(漢水) 이북은 수석(水石)이요,이남은 난초라 했다.저자는 여기에 남도의 대를 하나 덧붙인다.전라도를 관통하고 있는 섬진강 수계는 낙동강 수계와는 달리 어디를가나 난향유곡(蘭香幽曲)과 대숲 마을이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 대나무의 올곧은 정신은 벽골제·눌제·황등제 등 남도벌판의 못자리로 상징되는 ‘물둑’정신,갯벌을 개척해온 ‘갯땅쇠’정신과 함께 남도풍류의 맥을 이룬다.저자는 이 갯땅쇠 정신은 일종의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5·18민중항쟁 정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저자에 따르면 남도의 지세,남도의 역사,남도적인 삶은 그자체가 바로 산바람,강바람이며 나아가 신바람, 선(仙)바람이다. 이선바람 속에서 그가 떠올린 말이 풍류황권(風流黃卷).즉 화랑들의 호적부다.그들은 명패를 차고 한반도 5악중 최남단인 지리산 천왕봉 주벽과 섬진강 모래밭,심지어 남해섬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저자는 화랑의 자취에서 남도 특유의 검약과 절제의 선풍(仙風)을 발견한다. 저자의 남도풍류정신에 대한 탐구는 이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앞으로 ‘계산풍류(원효문풍)와 영산강’‘천관풍류와 탐진강’등 두 권의 책을 더 펴낼 계획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도서출판 동문선 ‘중세에 살기’

    본격 휴가철.자투리 시간을 메워줄 책 한권쯤 배낭 귀퉁이에 꽂아가는 것도괜찮은 아이템이다.도서출판 동문선의 ‘중세에 살기’는 그래서 더 눈여겨볼만하다.너무 가볍지도,그렇다고 바짝 긴장해야할 읽을거리도 아닌 책은 여행 틈틈이 중세서양사에 대한 상식적 지평을 확장해주기엔 아주 맞춤이다. ‘재미있는 서양사 상식’이란 부제를 표지에 명기한 책은 6개 섹션에 걸쳐모두 20가지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그 테마들이 어느 하나 버릴 것없이 흥미롭다. 중세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사랑들을 나누었을까.지금과는 어느 부분이 얼마나 다를까.무엇보다 자손번식은 철저히 결혼제도내에서 이뤄져야했다.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들은 푸대접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고,12세기부터 귀족계층의 사생아들은 아예 유산상속자 명단에서 제외됐다.사정이 그런즉 낙태가 없었을 리 없다.중세교회의 낙태에 대한 정죄가 대단히 엄격했음에도 불구하고,“낙태를 목적으로 고사리나 생강의 씨앗,버드나무나 운향 잎사귀 등이 복용됐다”는 교회자료들이 남아있다.혼외관계를 보는 중세의 시각은 두가지가 혼재했다.남녀 양성을 평등하게 바라본 교회는 어느쪽에도 혼외관계를 허용치 않았던 반면,속인사회는 결혼전남성에게만 성경험을 할 권리를 주었다.여성의 처녀성에는 철통같은 자물쇠를 채워놨음은 물론이다. 내용전개가 쉬운 덕분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중세 성직자들의 가려진 삶이나 돈과 폭력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들이 책읽는 맛을 고조시켜준다 싶을 즈음,너무나 익숙해서 의문조차 가져보지 않았던 사실을 책은 새삼 일깨운다. 패션유행은 언제부터,무슨 연유로 유럽이 주도해왔던 걸까. 마지막 섹션인 ‘도락’편에서 그 해답이 나온다.11∼12세기 경제부흥기를맞던 프랑스에서 패션유행이 만들어졌고,그 유행은 번번이 전유럽의 궁정들로 전파되기 시작했으며,15세기쯤에 이르러서는 프랑스 복식이 유럽의 패션문화를 통째로 점령하게 됐다. 중세에 유럽국가들의 지역적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패션이 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설명이다. 중세 유럽복식이 사회적 정체성을 대변했던 단적인 사례가 소개되기도 한다. 15세기말 런던의 봉재재료상조합은 조합원을 신규모집하면서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유령과 교회,줄무늬 옷의 유래,중세의 매춘부,중세 최고의 구경거리 사형…. 20개 테마 하나하나들이 서양사 연구의 한 주제가 되기에도 충분한 것들이다.자크 르 고프 외 지음,최애리 옮김. 황수정기자 sjh@
  • 휴일 물놀이 사고 잇따라

    연휴 첫날인 16일 전국의 강과 바다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19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 오후 6시30분쯤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남한강 이포대교 아래서 물놀이를 하던 성혜림(10·여)·재현군(8)남매와 정민선(11·여)·이지영양(10)등 초등학생 4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 오후 4시50분쯤에는 경남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하천에서 대구 C학원 학생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던 학원교사 구경회씨(26)가 물에 빠져 숨졌고,오후 2시20분쯤엔 경북 경산시 진랑읍 가야리 당당저수지에서 김문섭씨(50)가 낚시를 하다 2m 깊이의 물에 빠져 숨졌다. 이어 오후 1시20분쯤에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 남쪽 20m 해상에서친구들과 고무튜브를 타고 놀던 이동훈씨(25·상업·제주시 노형동)가 바닷물에 빠져 숨졌고,비슷한 시각 경남 고성군 두포리 와도 방파제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던 곽병준씨(26·공무원·울산시 방어진동)도 물에 빠져 숨졌다. 이에 앞서 오전 9시30분쯤에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목골유원지 앞 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대학생 윤상명씨(23)가 수영 미숙으로 수심 3m의 물에 빠져 숨졌고,오전 9시쯤엔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고사리 내린천에서 박무웅씨(57)가 낚시를 하다 강물에 빠져 익사했다. 오후 6시40분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박은경양(10·초등2년)이 거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고,오후 3시40분쯤에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여차마을 앞 해변에서 낚시를 하던 오기환씨(48·부산시사상구 덕포동)가 바다에 빠져 실종됐으며, 전남 광양시 황금동 엄포마을 앞바다에서는 정일권씨(47)가 양식장에서 바지락을 따다 급류에 휘말렸다. 전국종합 연합
  • [기고] 새만금사업의 得과 失

    계화 간척지구 준공탑이 있는 새봉산(鳥峰山) 옆으로 천혜의 갯벌이 있었다. 밀가루죽 같은 땅은 발이 빠져 걷기가 어려울 만큼 보드라운 진흙이었다.당시는 팩을 하면 좋다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고,게 구멍에 팔을 꽂아 농게(갈기)를 잡는 일에 신명이 나곤 했다. 그리고 계화도 앞바다에 가 그렁이만 끌면 백합이 튀어나와 천혜의 술 안주감이 되었다.그것을 잡아다가 시장에 팔아 생계에 도움을 받는 사람도 없지않았다. 그런 일등 갯벌이 계화 간척공사로 사라지고 이제야 갯벌의 효능을 알고 얼마나 무지한 삶을 살아왔는가 싶다. 그런데 여의도의 140배인가 된다는 새만금간척사업이 착공된지 오래인데,갯벌의 가치와 생태파괴를 들며 그 공사를 중단하라고 환경단체들이 나서고,갯벌에 대한 숙제를 맡은 고사리손들까지 미래를 남겨놓으라고 한다.거기에 평가조사를 한다더니 야당의원들은 반대자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둑 막이 공사가 60%나 진척되었다는 이 마당에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현 시점에서 중단하면 또 다른 환경오염원으로 떠돌것은 물론이오,민초들의 삶을 더 지탱해주는데 어느 쪽이 도움이 되겠는가하는 점이다. 그렇게 좋다는 생합만 잡아먹어도 될 것 같지만 식량이 어렵게 되는 환경에서는 그 생합의 가치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1951년 한해의 연속인 그 부근에서는 아사자가 생겼는데 필자의 마을에서는 한 해에 다섯 명이나 굶어죽게 되었다.그 때 쌀 한 톨의 가치가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았지만 물길이 제대로 닿지 않아 매년 흉년을 당했다.계화도 간척공사로 청호저수지에 넉넉한 물을 담아 놓으면서부터 흉년은 사라졌다.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우리는 통일 뒤까지 생각하는 전 국토 이용이란 측면에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군산열도가 육지되면 범(范)씨 천년 도읍지가 된다”.어른들은 이상한풍수지리설을 들먹이며 그 고장을 미화하였다.고군산열도가 바로 지금의 새만금 간척사업지구다. 그 고장에서 바라보면 해가 지는 곳은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다.해가 편안히 쉬러 가는 황혼녘의 고군산은 더없이 아름답게 채색된다. 따지고보면 우리선인들은 이미 고군산을 육지가 될 가능의 땅으로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그러기에 오래 전부터 바다를 조금씩 메워 육지로 만들어왔고,계화 간척사업으로 이어져 왔다. 먼 훗날 고군산이 육지가 될 때 배고픈 시절을 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었거나 염원하였기에 그런 속설이 민중의 가슴속에서 배태되었지 않았을까 싶다.범씨에 대해서도 굳이 해석을 내린다면 특정 성씨가 아니라 풀과 물이 이루는 세계의 주인인 민중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강과 바다의 물,그리고 농경지로도 활용되는 도시와 농촌이 어우르는 세계를 상정할 수 있겠다.그리고 새만금의 긴 둑과 연계한 관광사업도 결코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 제일 긴 둑이라는 그 긴 둑을 달리며,바다와 초원을 돌아보며 이렇게 개척한 불굴의 의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이 공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우리는 무슨 일을 빨리 끝냈다고 자랑하지만,외국에서는 집 한 채를 짓는데도 몇 십년이 걸렸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계화의 공사로 질 좋은갯벌을 잃었지만 계화앞 호수에 새로운 새떼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부창갯벌이라도 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헛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지적과 반대가 있었기에 시화호의 사례를 연구하게 만들고 환경친화적 개발이라는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공사의 중단으로 현지인들한테 패배감과 황폐감을 심어주어서는 안된다.낙후된 그 고장에 희망을심어주는 사업으로 진척되기를 충심으로 빈다. 최기인 소설가
  • 계곡·원시림속에 숨은 ‘태고의 쉼터’

    우리 국토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운 원시림과,톡 쏘는맛이 일품인 약수의 어우러짐.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의 미천골은 계곡과 원시림,폭포와 물보라가 어우러진 보기드문 장관을 연출한다.설악산과 오대산의 중간지점으로,여름철 적지 않은 이들이 한계령과 미시령을 피해 서울행을 서두르는 56번 국도변에있다.안개가 자욱히 낀 구룡령을 조심스레 넘어 10분을 달리면 미천골 들머리. 곰 입상 두 마리가 포효하며 길손을 맞는 모양이 이곳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전한다.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이 골짝에 호랑이와 곰이 산다고 믿는다. 그만큼 울창하다.들머리에서 4㎞를 오르는 동안 계곡은 험준한 바위를 뚫고성난 듯 넘쳐 흐른다.격한 물줄기로 그 위엄을 길손에게 과시한다.산천어 열목어 등이 남대천 줄기를 타고 올라오다 도저히 더 오르지 못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상직폭포는 물줄기를 내리꽂는 모양새가 기품마저 풍긴다.계곡 곳곳에 이름없는 폭포가 즐비하다. 휴양림 사무소를 지나 3㎞지점에 이르자 왼쪽 돌계단 위에 휑하니 서있는3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봉우리들을 면벽하듯 앉아있는 선림원지. 신라 선종계열의 절터로 어찌나 컸던지 쌀 씻은 물이 계곡을뿌옇게 수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주춧돌은 건재한데 길손을 반기는 것은보물로 지정된 석탑과 부도,석등 등. 9세기경 절은 산사태로 사라지고 이젠잡풀과 이름 모를 야생화만이 과거의 영화를 대신한다. 여기에서 20분을 더 걸으면 50여년전부터 미천골에서 토봉을 키우며 살고 있는 김금녀씨(0396-673-8820)와 남동생의 토봉장을 만날 수 있다.토봉은 양봉에 비해 작고 검은 색이 두드러진다.피나무 싸리나무 엄나무와 당귀 등 귀한약초에서 꿀을 채취,그 질이 전국제일을 자랑한다. 1.8ℓ 한병에 20만원으로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다. 들머리에서 1시간 올랐을까.계류는 어느새 저 아래 낭떠러지로 몸을 숨기고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수풀의 향연이 시작된다.자동차로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곳곳에 커다란 바위가 나뒹굴고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 계곡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박달나무 가래나무 참나무 전나무 잣나무 물푸레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수십m의 키를 자랑하고 서 있다.그번쩍스러움과 기고만장함이 대견하다.분명 이 계곡의 주인은 나무. 그 거만함은 설악에 견줄만한 단풍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을에 진가를 발휘한다. 1시간여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른 끄트머리 폭포에는 요즘 보기 드문 약수 하나가 있다.불바라기 약수.불바라기란 불바닥이 변한 말로서 약수의 철분성분이 샘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기 때문에 붙여졌다.암벽 중간에서 새어나오는약수가 바위를 황갈색으로 물들이며 두개의 폭포를 거느린 자태가 사뭇 신비롭다. 한 잔 들이키니 진한 철분 냄새 때문에 역한 기분마저 든다.하지만 기분은상쾌하다.뒤돌아보니 막 퍼붓기 시작한 빗물이 계류의 찬 기운과 만나 물보라를 일으킨다.사이다를 연상시키는 물맛은 이 계곡의 선경과 맞물려 사바세계를 잊게 만든다.아니 그 자체로 피안이다.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여기서도 25㎞가 더 이어진다고 하니 차라리 수풀의 광란이라 할만하다.그래 저 수풀에 몸을 던지면고스란히 받아주겠지,이런 착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들머리로 돌아 나와,아스팔트 도로를한참 달려 홍천 땅에서 이틀만의 햇볕과 조우했을 때였다. 양양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속사IC를 나와 이승복 반공기념관을 거쳐 창촌리에서 우회전,56번국도를 타고 구룡령을 넘는 것과 44번국도로 양평∼홍천∼내면을 거쳐 역시 56번 국도를 이용하는 두갈래 길이 있다.시간이남는다면 돌아올 때 양양으로 나가 주문진을 거쳐 강릉까지 동해안 일주도로를 탄 다음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것도 괜찮다. 동서울과 상봉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양양까지 온 다음 갈천 가는 버스를타고 황이리에서 내리면 된다.그러나 하루 5회만 운행되는 것이 흠. ■잠잘 곳 김금녀씨의 막내동생 명석씨가 운영하는 불바라기 산장(0396-672-4589)은 계곡의 참맛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입지와 들꽃들이 잘 가꾸어진 잔디밭,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갖춘 내부장식 등으로 찾는 이들이 꾸준하다. 1박 4만원. 미천골 휴양림(673-1806)에는 2만∼6만원의 통나무와 돌집이 있는데 7월은 예약이 완료됐고 8월 예약은 7월1일 오전 9시부터 받는다. 나무로 만든 침상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잘 만든 야영장(100개 수용)도 2,500∼4,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알칼리온천과 소화기 환자들에 인기있는 탄산온천을갖춘 오색약수가 지척이다. ■먹거리 남대천의 명물 뚜거리탕집으로 천선식당(672-5566)과 돌식당(671-2503) 월웅식당(671-3049)이 유명하다. 양양으로 나와 단양식당(671-2227)에서 수육과 막국수를 즐기는 것도 좋다. 양양장에는 인진쑥 장뇌 송이 산채 목이버섯 고사리 등도 넘쳐난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5)잃어버린 먹거리

    *북서 먹어본 단고기 별미...겨자로 무쳐 새콤달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찌개가 생각난다.언젠가 전주에 갔다가 ‘오모가리’라는 민물고기로 끓인 일종의 고추장 찌개가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과도 같았다. 북에서는 여러 초대소를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 오래 있던 곳이 서재골 초대소와 철봉리 초대소였다.서재골은 외국 사절들이 묵는 곳이어서인지 주방의조리 방식이 다분히 중국 요리나 서양식으로 뒤섞여서 나왔다.장기간 머무는이에게는 일종의 연회 음식이 이내 질리기 마련이다. 철봉리에서는 삼십대의 주방장과 연회가 있을 적에는 노인 한 분이 지원차오곤 했다.주방장의 이름은 잊었지만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라는데 나중에 그의 집도 방문했다.그의 어린 두 딸이 고사리 손을 조물거리면서 무용을 하고노래를 하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연회 음식 먹기가 지겨워서 나중에는 스스로 외환상점에 나가 일제 카레를 사오거나 라면을 사다가 점심을 직접 해먹기도 하였다. 이런 얘기가 밝혀져도 괜찮을까는 모르지만 북쪽 초대소의 남녀 접대원에서요리사와 운전수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호위총국 소속의 군인들이었다.나중에그들과 한 식구처럼 친해진 뒤에야 그들의 계급도 알 수가 있었다. 여성 접대원들은 대개는 소위 중위들이고 때로는 사격 훈련도 한다고 하였다.따라서우리 주방장이 소좌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토속으로 자시고 싶다 그거지요?그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도 만들고 된장 뚝배기도 내왔다.북의 통조림으로나오던 볶은 고추장이 해외동포들에게 인기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된장이 더먹고 싶었다.그렇지만 가정식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고장에서 맛깔스러운 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역시 우리가 예전에 진짜 일본의 미소 된장하고는 다르면서도 왜된장이라고 부르던 공장에서 대량으로 속성되어나오는 된장이었다. 북한 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전후 복구에 힘을 쏟던 ‘천리마 운동’ 기간에 가정음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구역마다 밥 공장과반찬 공장을 두어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타다가 먹었다고 하는데, 경제복구가 끝나고도 직장이나 기업소마다 단체급식을 하는 생활은 남아있는 셈이었다.즉 손님 접대는 연회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방장이 고심을 했던지 김치도 보다 맵게 담그고 간고등어도 굽고저 유명한 서해안 곤쟁이젓도 내왔는데 못보던 음식이 나왔다.구수하고 짭짤한 것이 입맛이 확 살아났다.이게 뭐냐고 했더니 ‘호박짠지 지지개’라고한다.열무와 호박이 섞여 있는데 애호박이 보통 호박찌개처럼 물컹하지 않고설익은 것처럼 설컹거렸다. 그는 평양에서 한 시간 반쯤 거리인 안악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역시북에서도 장이나 밑반찬 같은 먹거리는 고향 부모님들이 보내준다고 하였다. 이제 노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젊은 아낙들은 음식을 못해서 큰일이라고사내들마다 걱정인 것은 우리와 같다.그가 안악에 가서 가져온 것은 된장과바로 이 ‘호박짠지’였다. 열무나 배추로 짠지를 담글 적에 호박을 쑹덩쑹덩 썰어서 김치 담그듯이 한켜씩 소금을 뿌려가며 항아리에 담는다.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풀물이나뜨물을 부어 사나흘이 지나면 대충 익게 된다.호박짠지를 꺼내어 물에 헹구고 된장과 까나리 또는 조개를 넣고 찌개를 끓여내는데 파와 마늘과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된 것은 실로 십 년 만의 일이었다.충청도 덕산으로 이사와서 한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안 일을 도와 주러 오게 되었는데,곁에서 며칠 동안 나의 식성을 지켜 보고나서 무슨 음식을 냄비에 담아 왔다. 좋아하실까 모르겄지만 한번 잡숴봐유. 그래서 뭐냐니까 충청도 ‘호박김치’란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호박짐치는 원래가 찌개 끓여 먹을라구 당그는기유. 어허,가만 있어 봐.어디선가 먹은 기억이 나는데.그제서야 이북에서 먹었던생각이 났다.충청도 호박김치는 늙은호박을 속을 긁어내고 쓰는데 무청이며배추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듯이 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까지 쓴다.그냥 먹기에는 호박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것이 어쩐지 김치 맛이 나질 않고 찌개를끓여 먹으면 담백하고 구수하다.얼핏 제주도의 갈치 찌개 생각이 나서 이 호박김치에 잔 갈치를 토막 쳐서 넣고 끓였다.역시 호박김치 찌개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같은 서해안에 지형과 풍토가 비슷해서 그런가 충청도와 황해도의 음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여러 가지 기억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단고기’는아주 특별하다. 개장국은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지만 특히 서울식은 사라져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개장국은 지금 보다는 맑고 오히려 육개장 비슷했던것 같은데 남도식과 섞여 버렸다.들깨나 깻잎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다. 남도 식은 오리탕도 그렇지만 들깨를 거의 죽처럼 갈아서 넣고 고구마순도 함께 넣는다. 북쪽의 개장국도 평안도쪽과 함경도 식이 서로 다른데 평안도 식이 서울의예전 개장국 비슷하다면 함경도 식은 요즈음 서울의 두루치기와 비슷하다. 하여튼 단고기를 먹은 중에서 대단히 맛이 있었던 것은 가장 부드러운 목둘레의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 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것이었다. 백두산 지방을 돌아다녔을 때 삼수에서 먹은 산천어 구이는 특별했다.두만강상류라고 하지만 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되는 개천인데 이쪽은 조선이고 저쪽은 중국이라 하였다.개천에 그물을 쳐두고 기다렸다가 건지면 팔뚝만한 산천어가 걸려서 퍼덕였다.산천어는 송어가 강을 따라서 올라왔다가 붙박이 고기가 된 것인데 백두산 천지에 방류하여 양식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안내인은여러번 해왔던지 부근의 반질거리는 반석 아래 장작불을 때어서 달군 다음에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살아있는 산천어를 던졌다.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굽는다.꼬리와 머리에 은박지를 감아쥐고 옥수수 먹듯이 산천어를 뜯으며 송이로 입가심을 한다.고기의 살이 솜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물비린내가 입맛을 돋구었다. 이런 식의 자연식은 이를테면 해금강에서 먹었던 대합 구이에 비길만 했다. 해금강은 군사분계선 구역이라 무인지경이었는데 주먹만한 자갈이 깔린 바닷속이 온통 대합의 밭이었다.삽시간에 군인들이 두 양동이나 건져 나왔다.해변 자갈 위에 늘어놓고 알콜 한 병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니 파란 불이 좌악퍼져 나가면서 조개들이차례로 입을 벌렸다.사실은 익히려고 불을 놓는 게아니라 대합의 굳은 입을 벌리기 위해서란다.그대로 초장을 조개 안에 한숫갈 치고는 후루룩,하는데 입안이 가득찬다.그리곤 소주 한 잔 캬아! 하면서넘기고.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4)잃어버린 먹거리

    6·25전쟁 전에도 쌀이 늘 모자라서 수제비나 국수를 많이 먹었지만 밥을 지어 먹을 때에도 반찬은 한 두어 가지가 고작이었다.동그란 밥상 가운데에 찌개 냄비 올려놓고 김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씩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밥에다 뭔가 넣어서 해먹으면 양식도 절약이 되고 반찬도 따로 장만할 필요가 없게 된다.나는 요즈음 경양식 집에서 김치와 베이컨과 햄이며 당근 등속을 넣고 버터에 볶은 김치볶음밥은 어딘가 맛이 분명치 않아서 딱 질색이다. 김치가 시어지면 속을 좀 털어내고 송송 썰어서 김치밥을 해먹었고 햇감자가나오면 감자밥을, 고구마가 나오면 고구마밥을,그리고 가을에 김장하고나서남은 무를 넣고 무밥도 해먹었는데,콩나물은 값싸고 가장 흔한 채소라 어느철에도 가끔씩 해먹었다. 영등포의 그 작은 집 뒷뜰에는 화단도 있었고 수돗간과 광도 있었고 광 위에장독대가 있었다. 여름이면 화단에다 일년초의 씨를 뿌렸는데 봉숭아 채송화분꽃 그리고 나팔꽃이 누나들이 매어준 실을 타고 판자 울타리 끝에까지 기어 올랐다.익으면 발간 주황색이되는 유자도 열렸고 수세미 넝쿨도 광의 지붕으로 뻗어 올라갔다.초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광의 뒷편 그늘진 곳에다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곤 했다. 어머니가 뚜껑과 짚으로 둥글게 짠 덮개를 열고 웅크리고 한 손을 집어넣어통배추 김치나 절인 무를 꺼내는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하다. 김치밥은 돼지고기를 써야 더욱 맛이 좋다.돼지 살코기를 다져서 갖은 양념하여 살짝 볶아 놓고 쌀을 앉힐 때 김치와 돼지고기와 쌀을 켜켜로 두어 물을 잡는다.보통 때보다 물을 약간 덜 잡아서 밥을 하면 되지만 약간 질척한듯 짓는 것이 더욱 맛있는 것같다.양념장을 준비했다가 조금씩 밥 위에 두고비벼서 먹는다. 멸치로 다시를 낸 맑은 미역국과 함께 먹으면 다른 찬이 필요가 없다. 콩나물 밥도 짓는 법은 비슷하여 양념이 된 고기를 볶아서 콩나물과 같이 쌀에 앉히는데,더욱 구수한 맛을 내려면 다시마 우린 물이나 멸치 맛국물로 밥물을 잡는다.역시 양념장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국은 재첩이나 조개로 된장국을 끓여서 낸다. 무밥이나 감자밥 고구마밥도 모두 양식이 모자라던 시절의 밥짓기지만,얼마전에 여행길에서 산간에 들어갔다가 감자밥과 막장으로 끓인 호박찌개를 먹고 투박하고 구수한 옛맛이 살아나서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던 적이 있었다.도무지 이런 맛이란 시중의 음식점 어디를 가보아도 없다.요즈음 대중식당의 차림표와 음식은 서울에서 저 남도 끝이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어슷비슷한 맛이다. 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셈이랄까.대충 벽에 붙은 차림표대로 주문을 하고나면어디선가 먹은 그 음식이 같은 모양새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밥은 또 어떤가.밤중에 공부를 하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귀찮기는 하지만 속이 출출해서 슬슬 부엌에 나가서 뭔가 먹을 것을 찾는다.형제들이 많은 집이면 서로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하고 제일 굴풋하고 시장한사람이 부엌으로 나가게 된다. 밥이 솥 안에 조금 남아있고 찬장에는 먹던 김치가 있고 고추장 뿐이다.허름한 양은 냄비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비면서 볶는다.그대로 숫가락 여러 개를 꽂아서 냄비채로 들고 방으로 돌아오면형제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퍼먹는데 밤참의 그 맛이란 세 끼 중에 가장 특별한맛이다. 뭔가 나물이나 김치나 하여튼 먹고 남은 찬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은 어느지방에나 있는데 사람들 추측에 의하면 대개 명절이 지난 뒤라든가 제사를지낸 며칠 후에 ‘먹어 치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전주 지방의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안동에서는 원래의 의미대로 헛제사밥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적에 평양이 고향이던 어머니는 ‘온반’을 제대로 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들은 아마도 수십년 동안을 남쪽에 정착해 살면서도 이곳은 임시 거처려니 여기고 살아온 게 분명할 것이다.더구나 어머니는 농촌 가정 출신이 아니라 개화된 지식인 집안이었고 커서 배운 요리도 거의가 일본식의 개화 음식이었다.아니,그렇다고는 해도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뿌리를 뽑힌 ‘피난살이’의 살림을 의식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게다.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몇 대를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보고 깊은 인상을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들이 찬통에 싸온 여러 종류의 장아찌는 기가막힌 맛이었다. 머니는 나중에 아버지와 사별하고부터는 혼자서 벅찬 생업을 감당하노라고더욱 부엌일과 멀어졌고 우리집 식단은 그야말로 가게에서 그날 그날 사다가후딱 조리해서 먹어치우는 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노티를 외우던 것처럼 고향의 온반이 먹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고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도 했다.그저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등속에다 두어 국물을 부어 만든 것이었는데 우리가보기에는 국밥도 아니고 비빔밥도 아닌 이상야릇한 음식인 듯했다.이렇듯 야릇한 음식으로는 중국집의 울면이 있다.우동이나 짬뽕처럼 시원한 국물도 아니고 짜장면처럼 비비는 것도 아닌 걸죽한 소오스가 아닌가.마치 비벼 먹다가 마음이 변해서 국을 들이부운 것만 같다. 내가 몇 차레 김일성 주석과 나눈 점심에 온반을 먹게 되었다.어느 기록에도보니까 해방후 초기 집권 시절에 부인이 집에서 직접 콩나물 기르는 얘기가나오고 장군(김 주석)이 콩나물 국밥을 즐겨했다고 한다. 이거이 주로 먼길 떠나는 사람들이 먹었디.손님이 많고 일손은 바쁘고 할적에 온반 한 그릇씩 주면 얼마나 편리했겠소.속두 풀리구 든든하디. 온반 역시 설이나 제사 뒤의 비빔밥의 유래와 같은 계통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다만 추운 지방에서는 남은 음식을 차게 먹을 수 없으니 더운 국물을 부어서먹었을 게 분명하다. 이것을 끓인 것으로 온반죽이 있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표고버섯과 고기를 볶고 찢어 놓은 고사리며 갖은 양념하여 무친 숙주나물을두고 달걀 지단을 썰어 밥 위에 얹고 녹두전을 부쳐서 밥 위에 얹고나서, 그위에 푹 곤 양지머리 국물이나 닭 가슴 살을 곤 맑은 육수를 부어서 먹는다. 대개는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잡지만 나는 뜨거운 국물을 밥과 건더기가 푹잠기도록 부어야 직성이 풀린다.벌겋고 시원하게 담근 깍두기나 고추를 갈아젓과 버무린 배추 겉절이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이마에서 땀이 나고 속이후련해진다.과음한 이튿날 속풀이로도 그만이고 별로 입맛이 없는 요즈음의여름 날 점심 때에 땀을 흘리며 먹고나면 이열치열도 될 것이다. 초대소에서도 점심으로 몇번 더 먹은 기억이 난다.요새는 북에서 무슨 국을끓여도 대개는 닭을 고아서 쓰는 모양이었다.내가 된장국의 맛을 내려고 멸치를 찾았더니 주방장은 멸치를 어떻게 국물로 쓰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자꾸만 된장국이나 야채국에는 멸치를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더니 답답했던지 그가 멸치를 가지고 나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아뿔싸,이북에서는 동해안 멸치가 있긴 있는데 크기가 거의 작은 꽁치만이나 했다.이건비려서 못쓰겠지.이것 보다 작은 게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건 멸치가 아니라 까나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역시 지방마다 맛과 조리법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그리고 자연조건에따른 것이다.그러한즉 땅은 작지만 팔도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말과 음식은얼마나 아기자기한가.
  • 강원도 산나물 채취 휴식년제 도입

    무분별한 산나물 채취로 산림 훼손이 우려되고 있는 강원도에 산나물 채취휴식년제가 도입된다. 동부지방산림관리청 평창국유림관리사무소는 9일 평창군 대화면과 진부면의가리왕산, 중왕산,백석산 일대 9,440㏊에 대해 오는 16일부터 2002년 6월말까지 3년간 산나물 채취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가리왕산 등에 입산이 전면 통제되며 산나물을 채취하다 적발되면 산림법에 띠라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곳은 97년부터 5월 중순쯤 1주일정도의 기간을 정해 입산자 1인당 5,000원씩을 받고 산나물 채취를 허용하는 유료 입산제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무분별한 싹쓸이식 산나물 채취가 기승을 부리며 고사리와 곰취,두릅 등이 고갈되고 산림 자원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3년간 휴식년제를도입키로 했다. 아울러 이 지역에 곰취와 두릅,잔대 등 산나물 씨앗을 파종하고 산나물 420만여 포기를 심어 국내 최대의 산나물 보고로 가꾸기로 했다. 평창 조한종기자
  • [대한광장] 신록의 푸른 메세지

    덥다.벌써 여름인가.돌아보니 참으로 잔인한 봄을 지나온 느낌이다.그 지리했던 봄이 이제서야 신록의 소문이 무성히 덮이는 가운데 퇴각해버린 모양이다.돌아보니 온통 신록이다.천문대가 있는 영천 보현산 아래를 지나면서,엊그제까지 산벚꽃이 수놓여 있던 산이 온통 녹색의 구름처럼 새로운 푸르름으로 피어오름을 새삼스런 눈으로 본다. 신록이 꽃보다 아름답다고?그럼,그럼,신록이 지상의 모든 상처를 푸른 생기로 덮어버린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장엄하며,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시 지난 봄은 너무 잔인했다.그만큼 상처도 커서 그 아픔을 쉬 잊어버릴 수 있을 것같지 않다.선거는 너무 시끄럽고 혼탁했다.도데체 질서라곤 없어보였다.‘바꿔’ 열풍이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불어대기도 했다.그 바람에 얼마만큼 세상이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무엇 하나 계절의 바뀜처럼 흔쾌히 변한 것은 없는 듯하여 허탈해진다. 더구나 한 쪽으로 치우친 고집스러움만이 돋을 새김으로 드러난 듯하여 절망감마저 느낀다.정치를 보는 눈도 더욱 실망스러워지고,세상살이는 더욱 가팔라지는 듯하다. 화마의 연기는 또 얼마나 독했던가.선거바람이 한창일 무렵,영동지역을 태우기 시작한 매운 불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도주할 만큼 공포스러웠다.불길은 건조한 지상을 다 태워버릴 듯한 기세였다. 전국의 산들이 크고 작은 불길로 타올라 민심마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그리하여 백두대간의 중간허리가 시커먼 잿덩어리로 사그라들어버렸다.검은 숯기둥만이 지옥의 표석처럼 황량하니 서있을 뿐,짐승과 풀,땅 속의 지렁이와곤충들도 모두 타 죽은 산은 죽음의 세계 그 자체였다. 우리 경제와 사회는 또 어땠는가.현대그룹의 후계파동에 이어 재계의 골간들이 휘청거리고 있다.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거기다 농약 콩나물 소동,가축 구제역 파동,의사들의 집단휴진 파동,마약의 확산,기승을 부리는 충동 살인….날씨마저 얄궂어 지독한 황사바람으로 모두는 흙비를 뒤집어써야 했다. 잔인한 봄이 아니고 무엇인가.모두는 광풍 속에서 부대낀 일그러진 얼굴을펴지도 못한 채 스산한 마음으로어서 이 미친 봄이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보라.세상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록새록 신록으로 덮이면서 거친숨결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상처 자리에도 풀들이 반창고처럼 덮어간다.고령에 있는,나의 고향 산도 올봄에 화재를 면치 못했는데,얼마전 그 산에서 검은 재를 뚫고 올라오는 새순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컬러로 신문의 1면을 장식해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영동의 불탄 산들도 올해를 지나 내년 봄이면 억새,참산부추,고사리같은 풀들이 뒤덮여 검은 빛깔을 지우리라.상처는 오래 없어지지 않지만,그렇게 덮이면서 아물어가는 것.그런 의미에서 신록은 다시 해보자는 의지같다.황무지를 가르는 재생의 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사람의 삶도 다를 바 없으리라. 삶은 강인해서 부단히 꺾이고,상처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 피어나는 것. 잔인한 봄을 지나오면서 저마다 미워하고,애타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지만,그래도 삶은 또 계속되면서 그 상처자국을 쓰다듬으면서 서로 그리워하면서 얽히고 부대끼기 마련인 것.어쩌면 봄의 잔인은 더 찬란한 여름을 열기 위한 진통일까.그렇기 때문에 올 초여름 우리의 산과 들에 새로 돋는 푸름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리라. 올해의 신록은 여느 해와 달리 더 짙고 싱싱해보이는 듯도 하다.그래서 우리는 또 어쩔 수 없이 강인하게 전개될 여름의 무성함을 저 막무가내로 피어나는 신록 앞에서 욕망한다. 신록은 우리에게 이제 저마다 새 삶이 열려올 것이라는 푸른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하 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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