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사리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주차장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유류세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대출 심사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엄중한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70
  • ‘고사리손 장학금’

    ‘고사리손 장학금’

    유치원생 4300여명이 고사리손으로 돼지저금통에 모은 성금이 불우한 가정환경의 언니, 오빠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13일 성북구에 따르면 지역의 41개 사립유치원 원생들이 지난 5월 어린이날부터 5개월 동안 저축한 성금 1300여만원을 구청에 전달했다. 지역의 자율장학협의회(회장 하지연)에 속한 사립유치원들은 2002년부터 ‘따뜻한 마음 이웃과 나누기’를 위한 장학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있다. 성금은 유치원생들에게 저축의 의미와 선행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학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고사리손으로 모았다. 그래서 성금 규모가 작다. 지난해에도 1000여만원을 모았다. 이날 전달된 성금은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된 뒤 자율장학협의회의 뜻에 따라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파파라치 미워요”…할리우드 2세들 ‘뿔났다’

    “파파라치 미워요”…할리우드 2세들 ‘뿔났다’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2세는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와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태어남과 동시에 많은 팬들을 거느리기도 하고 사진 한 장이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스타의 2세도 스타’라는 공식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 스타들의 2세들이 뿔났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는 파파라치들 때문이다. 아직 어리기에 별다른 복수 방법은 없다. 쀼루퉁해 있거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귀를 막는다. 어떤 꼬마는 과감하게 손가락 욕을 하기도 한다. 파파라치를 향해 조용한 복수를 하는 꼬마 스타들에 대해 알아봤다. ◆ “시끄러워요” 귀막은 수리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배기 딸 수리. 두 톱스타의 외모를 빼닮은 수리의 인기는 말 그대로 월드스타급이다. 파파라치 사진에 담긴 수리가 입은 옷, 그린 그림 심지어 기저귀까지도 비상한 관심을 모을 정도. 하지만 수리는 매일 수십 명씩 따라다니는 파파라치에게 질려버렸다. 지난 7일(한국시간) 홈즈와 함께 뉴욕 시내 나들이에 나섰던 수리는 “여기 좀 봐 달라”고 요청하는 파파라치를 피해 얼굴을 숨겨버렸다.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작은 손가락으로 귀까지 막아버린 것. 수리의 얼굴을 찍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린 파파라치들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저리가” 손가락 욕한 로미오 패셔니스타 커플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의 꽃미남 세 아들 역시 파파라치들 때문에 피곤하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는 물론 학교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미는 파파라치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 보다 못한 베컴의 둘째 아들 로미오(4)는 파파라치를 직접 응징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갖던 베컴 가족은 몰려든 파파라치 때문에 제대로 여유를 즐기지 못했다. 이에 화가 난 로미오는 파파라치들을 향해 과감히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베컴 부부는 이런 로미오의 돌발행동에 놀란 듯 주의를 줬지만 로미오의 날선 반응에 파파라치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미워요” 단단히 삐친 샤일로 ‘세기의 커플’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자식들 역시 유명하다. 특히 두 사람이 낳은 첫 번째 딸 샤일로(2)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할리우드 스타 2세’에 뽑힐 정도다. 샤일로는 대체로 파파라치에게 상큼한 미소를 날리는 등 팬 서비스도 최고다. 하지만 화가 나면 180도 변한다. 지난 7월 샤일로는 출산을 위해 입원한 엄마 졸리를 보러 가족들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몰려든 파파라치들의 극성 때문에 샤일로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급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샤일로는 단단히 삐친 듯 작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차에 타서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쀼루퉁한 표정을 지어 파파라치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위협받는 밥상] 먹거리 불안 가중…위협받는 식탁

    [위협받는 밥상] 먹거리 불안 가중…위협받는 식탁

    중국산 꽃게 납 검출, 광우병 쇠고기, 불량만두, 기생충알 김치, 생쥐머리 새우깡, 칼날 참치캔 등 식품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식품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멜라민 파동에서 드러나듯 식품안전사고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불안전한 식품을 마구잡이로 수입하는 일부 식품업계의 양심을 저버린 행태와 정부의 허술한 식품행정 및 검역체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 부담이다. 정체불명의 먹을거리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이런 위해식품들의 유통실태, 그리고 국민건강권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한 대안 등을 4회 시리즈로 심층 모색해 본다. 관련 동영상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올린다. ■ [유기농 이용 안소영씨] “식비 부담스럽지만 농가와 직거래”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유기농 가게에서 안소영(29·여·회사원)씨가 21개월된 딸 지유와 함께 밥상에 올릴 반찬거리를 고르고 있다.“지유, 미역 좋아하지?하나 살까?”라는 엄마 말에 “미, 미”라며 지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안씨는 유기농을 선호한다. 회사 근처 대형마트에도 가지만 대체로 집 앞 유기농 가게나 ‘82cook’ 등 인터넷 직거래장터를 이용한다. 한달 식비는 100만원 남짓. 세 식구 밥값으론 조금 많은 편이지만 가급적 안전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아끼진 않는다. 그래도 안씨는 “불안하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됐는지, 엄격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안씨 가족은 올들어 논란이 된 미국산 쇠고기, 중국산 과자류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안씨는 “저희는 경기도 양주에 아는 분을 통해 직거래해요. 과자는 예전부터 잘 안 먹였는데, 혹시 몰라 일본 과자를 가끔 줬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도 멜라민 파동이 터졌잖아요. 어휴, 더 이상 못 믿겠어요.” 맞벌이하느라 외식이 잦은 안씨 부부는 식당의 위생상태나 음식의 질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특히 반찬 재활용을 한다거나, 싸구려 중국산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남편 박영준씨는 “바쁘다 보니 음식을 시켜 먹을 때가 많은데, 바깥 음식은 대개 중국산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깨끗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죠. 안 먹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죠.” 안씨는 정부가 먹을거리 문제를 좀더 신경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우리나라는 먹을거리 규제에 관해선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허술한 것도 많고, 요즘처럼 사건이 터져도 눈앞 문제만 해결하기에 급급하잖아요. 일본에 가보니 먹을거리에 대한 법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보다 훨씬 엄격했어요.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도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식품안전에 대한 장기대책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밥상추적] 돼지고기 제주, 쌀·콩은 의성산 안소영씨 가족이 집에서 먹는 음식은 거의 100% 국산이었다. “유기농도 엄격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심이 된다.”는 안씨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유기농 매장을 이용한다. 그가 주로 장을 본다는 집 앞에 있는 유기농가게를 함께 가봤다. 전남 진도산 미역, 강원도 설악산 인근에서 나온 고사리 등이 눈에 띄었다. 가게 주인은 “현지 농민이나 조합과 계약해 납품받고 있다.”면서 “우리 같은 유기농마트나 생협에서 농민들에게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고 대신 정기적으로 현지검사와 품질관리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높다.”고 자랑했다. 그는 하루에 찾는 60∼80명의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이라고 귀띔했다. 안씨가 과자를 집어들었다. 딸에게 가끔 먹이는 ‘발아통밀 웨하스’다. 국내산 통밀로 만들었다고 돼 있다. 제품을 생산한 ㈜우리밀은 사단법인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의 사업단으로 국내산 밀의 수매·가공·유통사업을 전담한다. 우리밀 관계자는 “밀은 대표적인 겨울철 이모작 소득작목으로 10월 파종 전에 계약재배를 한 뒤 병충해를 걱정하기 전인 이듬해 6월에 수확해 농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점심 때도 국산 먹을거리를 선호한다. 그가 “재료가 좋아서” 점심에 자주 찾는다는 회사 근처의 한 식당은 값이 만만치 않다. 안씨가 즐겨먹는 고추장찌개만 해도 1만 5000원이다. 식당에서는 모든 식재료가 ‘국내산’이라 비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식당 주인이 밝힌 고추장찌개의 주 재료는 고추장, 감자, 호박, 돼지고기, 목살, 양파 등이었다. 손님에게 내놓는 채소는 거래하는 회사가 서울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국산 여부를 확인해서 납품한 것이었다. 돼지고기는 제주도 흑돼지를 취급하는 도매회사에서 구입했다. 소금은 국산 천일염이고 고춧가루와 쌀, 콩 등은 경북 의성에 있는 농가에서 재배한 것들이었다. ■ [대형마트가는 김성혜씨] “의심가지만 대기업 제품이라니 사요” 지난 3일 오후 5시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대형마트. 새내기 부부 한승훈(27·회사원)·김성혜(27·주부)씨는 생후 6개월된 아들 차윤이를 데리고 장을 보고 있다. 부부는 보리차 코너에 서서 한참 논쟁을 벌인다.“이것 봐, 지난번에 산 건 100% 중국산인데 이건 국산이잖아. 유기농 보리차라면서 중국산인 건 이상하지 않아?” 사연인 즉, 얼마 전 한씨가 아기를 위해 유기농 보리차를 사왔는데 김씨가 중국산이어서 먹지 않고 놔뒀다는 것. 김씨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믿을 수도 없다.”며 국산 표시가 된 보리차를 집어들었다. 한씨 부부는 먹을거리를 주로 대형마트에서 산다. 일주일에 세 차례 장을 보는데, 한 달 식비는 30만원 정도. 이들은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한다. 몰아 사면 시간이 절약되고 가격도 저렴해서다. 대형마트와 대기업 식품에 대한 신뢰도도 있다.“쌀 같은 건 시골에서 떼어오면 좋다고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어디서 하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대형마트에서 전부 사요.”주부인 김씨 얘기다. 그렇다고 김씨가 대형마트와 대기업의 이름값을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한 자락 불신은 “식품정보 표시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이건 신뢰문제 같아요. 미국산 쇠고기나 유전자조작식품(GMO)의 경우, 표시가 제대로 돼 있다면 절대로 안 먹어요. 그런데 표시가 제대로 안 돼 있다면 모르고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일단 사긴 하는데,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죠.” 출산 이후 동갑내기 부부에게 생긴 새로운 기준은 “무조건 국산, 되도록 유기농”이다.“이유식을 시작하면 무조건 유기농을 먹일 생각이에요. 지금은 모유수유를 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신경쓰진 않고요. 그래도 제가 먹는 게 아이한테 가니까 조심하고 있어요. 요즘 들어 중국산은 아무리 싸도 사지 않아요.”라고 김씨는 말했다. 한씨네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에 조기구이, 호박전 등이었다. 식사 내내 부부의 화제는 아들의 미래 먹을거리였다. 한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학교 급식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신경이 쓰일 것 같아요. 시골에서 직거래하는 방법을 알아볼 작정입니다. 회사 동료들은 ‘앞으로는 시골에 부모님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하던데요.”라고 말했다. [밥상추적] 고추장ㆍ된장ㆍ두부 모두 수입원료 김성혜씨가 ‘중국산 유기농’이라는 말에 찜찜해서 그대로 놔뒀다는 보리차는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김씨가 구입했던 ‘유기농 아기보리차’를 판매하는 샘표 관계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중국 헤이룽장성 북부의 중·러 국경지대에서 재배한 보리로 만들었다.”면서 “큰 길 몇 곳만 차단하면 농약과 비료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기업인 가공공장의 담당자가 현지에 상주하고 본사에서도 최소 3개월에 한 차례 이상 현지조사하고 있고 중국에 있는 유기농 인증기관의 심사를 통과한 원재료만 수입, 국내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든다.”며 안전성을 강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외국 농산물을 수입할 때 농산물 생산국가의 공인기관에서 유기농으로 인증한 경우에는 보통 농산물에 대해 적용하는 잔류농약 검사 이외에 유기농 농산물 입증 서류를 추가로 제출받고 있다. 김씨가 저녁 밥상에 올린 김치찌개에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종가집 전통두부’가 들어 있었다. 이 종가집 전통두부는 원산지를 ‘수입산’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수입산이란 3개 국가 이상에서 수입했다는 뜻이다. 이 업체는 두부에 쓰는 콩을 중국, 미국, 호주, 러시아(연해주)에서 수입한다. 국제 콩 시세가 기복이 심해 안정적 공급을 위해 여러 곳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는 수입산보다 비싼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김씨가 사용한 청정원 고추장과 된장도 모두 수입산이었다. 김씨는 ‘콩’ 하면 유전자조작식품(GMO) 여부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이에 대해 농수산물유통공사 관계자는 “미국은 GMO 관리체계가 돼 있고 중국은 인건비가 싸서 종자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GMO콩을 쓸 이유가 없다. 결국 수입처가 중국과 미국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재래시장 가는 김용금씨] “어쩔 수 없어 사긴 하지만 못믿어” 지난 1일 오후 5시 서울 양재역 근처 재래시장. 김용금(59·주부)씨는 한 가게에서 고사리 나물을 이리저리 들춰보기 시작했다. 김씨가 “이거 국산이에요?”라고 묻자 “중국산”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선 김씨는 “난 국산인 줄 알았는데. 이러니 뭘 믿을 수 있겠어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김씨는 일용직으로 자재 운반을 하는 남편 문모(58)씨와 고3 외동딸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양재동 재래시장을 주로 이용하지만 근처 하나로마트와 가락시장도 가끔 찾는다. 웬만한 채소는 마당에 조그만 텃밭을 가꿔 직접 길러 먹고, 쌀이나 고기 등은 시골의 지인을 통해 들여온다. 김씨는 한 달에 두세 번 시장에 간다. 한달 식비는 15만원 정도.“형편이 넉넉지 않아 유기농같이 비싼 재료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이나 미국산 쇠고기 등을 먹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았지만 김씨는 살 것이 마뜩잖은 눈치였다. 생선가게에서 15마리에 1만원이라는 조기를 5000원에 8마리 사고, 그 옆에서는 흑미 180㏄(한 홉)가량을 3000원에 샀다. 요깃거리로 감자떡과 호박떡도 3000원 주고 샀다. 시장을 나오면서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사긴 사지만 못 믿겠다.”고 말했다. “특히 재래시장에선 원산지 표시가 자세히 되어 있지 않아요. 보통 제가 살펴봐서 국산인지 아닌지 판별하거든요. 그런데 아까 고사리는 알고보니 중국산이라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까 산 조기도, 국산이라고는 하는데 지나치게 싼 거 아닌가 싶어요. 가격만 놓고 보면 중국산인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돌아온 김씨가 준비한 저녁 메뉴는 우거짓국에 조기구이, 고구마줄기 무침. 우거지는 남편 문씨가 직접 기른 배추로 만들었고, 고구마줄기는 동네 텃밭에서 따온 것이다. [밥상추적] 조기 5천원에 8마리 원산지 표시 없어 김용금씨가 서울 양재동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조기는 15마리에 1만원이었다. 시장 상인은 조기를 팔면서 “전남 목포산 조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는 없었다. 김씨가 “목포산 조기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자 상인은 “목포산 조기만 나무상자에 담아 출하된다.”고 대답했다. 김씨가 구입한 조기는 다른 생선들과 달리 나무상자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목포산임을 믿기는 어려웠다. 조기가 목포산임을 확인하기 위해 이 상인이 생선을 떼어 왔다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상인이 거래했던 J상회는 국산·중국산 조기를 함께 취급하고 있었다. 국산은 120마리에 6만∼6만 5000원, 중국산은 5만원 선이었다. 목포산 조기를 취급하냐고 묻자 주인은 “있다. 냉동조기는 6만 5000원, 생물(얼리지 않은 것)은 7만원 정도”라고 말했다.“목포산 조기만 나무상자에 담느냐.”고 묻자 그는 “생물일 경우 나무상자에 담지만 목포산 조기라고 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좀더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목포산 생선을 취급하는 목포종합수산시장에 확인을 요청했다. 황춘호 번영회장은 “목포산이라서 나무상자에 담는 게 아니라 생물이라서 담는 것이다. 하지만 상자에 원산지를 일일이 표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양재동 재래시장의 조기는 목포산이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목포산 조기가 중국산 조기와 뒤섞여 유통되다 적발된 적이 있냐는 질문에 황 회장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다. 목포산 조기의 경매를 총괄하는 목포수협 관계자는 “극단적인 경우 수협에서 조기를 낙찰받은 뒤, 중국산 조기와 섞어 팔 수도 있다. 중국산을 목포산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개인의 양심문제”라고 말했다. 글:기획탐사부 조현석 강국진 김민희 기자 tamsa@seoul.co.kr 동영상:나우뉴스팀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훌쩍 자란’ 윤하 “깡으로 외로움 이겼죠”

    ‘훌쩍 자란’ 윤하 “깡으로 외로움 이겼죠”

    윤하(21)는 웃음을 자주 흘리지 않았다. 또래답지 않은 차분함과 진지함이 느껴졌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성숙케 했을까. ‘일본과 한국 사이’를 오가며 가수의 꿈을 키운 윤하를 성장시킨 건 다름아닌 ‘외로움’이었다. 4살 고사리 손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꼬마 윤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클래식 음악에 염증을 느끼고 가수가 되고 싶었다. 16살 윤하는 일본 연예기획사의 제의를 받고 홀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약 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시작된 걸 직감했다. 하지만 뒤돌아 보지 않았다.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었어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 한마디 모르는 타국에서 꿈을 이루겠다며 비행기에 오른 중학생 소녀의 심정…, 마냥 두렵진 않았어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되뇌이며 마음을 굳게 다졌죠.” ◆ 日本 윤하, “내안의 반은 깡” 2004년 일본으로 건너 간 윤하를 기다리던 첫번재 관문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고립이었다. “소통 안되는 고통이 가장 컸어요. 통역으로 한단계 거치게 되면서 소통에 장벽이 생겼죠. 녹음도 길어지고 정체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작정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죠. 약 6개월 만에 말이 트였어요.” 서툰 일본어가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 윤하는 ‘말 자체를 잃은’ 자신을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일본에서의 2년 동안은 고립의 시간이었죠. 점점 소극적인 성격이 되가는 기분이었어요. 나이가 어려 어른인 밴드 멤버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심지어 내가 친구 사귀는 방법을 아예 잊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자책했죠.” 윤하는 약 2년간의 일본 생활이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준것은 오직 자신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깡’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윤하는 여느 사춘기 소녀가 타국에서 느꼈을 법한 얘기들을 하나 둘씩 꺼내두며 뾰루뚱해 졌다. “일본은 보일러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 별로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보냈어요. 찬물로 샤워하다 그만 독한 감기 몸살에 걸렸죠. 막 서러운거 있죠. 가족들이 보고싶어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또 힘들었을 때는… 문득 떡볶이 생각이 간절할 때요!”(웃음) ◆ 韓國 윤하, “고국에서 노래하는 감격…” 2007년 3월, 윤하는 약 3여년 동안의 일본 활동에서 오리콘 차트 10위라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하는 꿈을 이뤘다. 국내 데뷔 곡 ‘비밀번호 486’으로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피아노록을 선보인 윤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윤하는 당시의 기억을 “꿈처럼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소소한 행복에 눈을 뜨는 된거죠. 한국어로 노래할 수 있고 고향 사람들이 응원해 준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를 꺼에요. 데뷔 무대를 마치고 가족들의 문자 메세지를 받는데 ‘아, 내가 한국에서 노래하고 있구나’하고 왈컥 눈물이 쏟아질 뻔 했죠.” 무엇보다 그토록 그리던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윤하에게는 가장 커다란 기쁨이었다. “여동생이 너무 보고싶었어요. 다른 자매들처럼 애틋한 둘만의 우애가 있거든요. 요즘 활동 때문에 낮과 밤이 바꿔서 비록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하지만 그게 어디에요? 여긴 한국이고 저는 충분히 행복한 걸요!(웃음).” ◆ 日-韓 사이, 훌쩍 성장한 윤하 ‘텔레파시’로 컴백 “텔레파시와 일본-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제 모습과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어요. 시작을 어디에서 누구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정말 중요한 건 텔레파시, 즉 통하는 거에요!” 돌아온 윤하가 팬들에게 찌릿한 ‘텔레파시’를 보낸다. 2집 정규 앨범 ‘섬데이(Someday)’의 타이틀 곡 ‘텔레파시’는 ‘비밀번호 486’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경쾌한 피아노 반주에 폭발적인 윤하의 스트레이트 보컬이 어우러진 곡이다. 여린 몸집보다 몇 배나 큰 하얀 피아노를 제압하는 윤하의 카리스마도 돋보인다. 여기에 밴드팀이 합류해 아이돌 솔로 여가수로는 유일하게 공연형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윤하다. 씩씩해 보인다는 말에 윤하는 “실제로 어릴 적 꼬마 윤하는 골목대장이었다.”며 베시시 웃는다. 스물 하나 윤하는 어린 가수가 아니었다. 타국에서 흘린 눈물은 그녀를 성장시킨 자양분이 됐고 윤하는 국내 무대에 서자마자 ‘실력파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꿰찼다. “10년 뒤의 윤하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을 꺼에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 나이에 맞는 음악을 하고 있겠죠. 음악은 하면 할수록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2집 ‘섬데이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어느날’ 들어봐도 좋은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분께 끊임없이 음악으로 소통을 시도할 꺼에요. 이게 바로 윤하의 ‘텔레파시’죠!”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CEO칼럼] 선진국으로 가는 길-文史哲 살리기/박중진 동양생명 부회장

    [CEO칼럼] 선진국으로 가는 길-文史哲 살리기/박중진 동양생명 부회장

    업무에 쫓겨 살면서도 필자는 손이 닿는 곳에 책을 두려 애를 써왔다. 경제·경영 서적뿐만 아니라 시나 소설 책도 즐겨 찾는다. 어느 때는 문득, 책 가격을 확인하고 원가나 이윤 등을 가늠해 보며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혀를 차며 쓴웃음을 짓고, 다시 책 읽기에 빠진다. 금융인은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나의 천직인 모양이다. 얼마 전 김용택 시인에 관한 기사를 서울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시인의 시심(詩心)에 대해 상당히 둔하지만, 그나마 내 깜냥에는 김 시인의 시만큼은 시심에 동화되어 즐겨 읽어왔다. 최근 김용택 시인은 38년 동안 쥐고 있던 분필을 놓고 초등학교 교실을 떠났다. 그에게는 시인이라는 또 하나의 천직이 있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며 시집을 무려 15권이나 펴냈다. 꽃이 핍니다/꽃이 집니다/꽃 피고 지는 곳/강물입니다/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자작시 ‘강 같은 세월’처럼 산 김용택 시인. 나도 그랬지만 우리 세대는 한번쯤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시인의 삶을 꿈꿨다. 책을 읽고, 고사리 손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낭만적이며 지적인 삶. 현실적으로 이루지 못했지만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었고, 그렇게 쌓은 인문학적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지인이 모(某) 기업 신입사원들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강의 도중 소설가 김동리를 언급했는데, 반응이 미지근했다. 혹시나 하며 김동리를 아는 사람을 찾았더니,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당시 지인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동리는 우리나라 20세기 소설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의 대표작 ‘등신불(等身佛)’이나 ‘무녀도’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동리의 소설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명문대학 출신 신입사원들이 우리 세대의 낭만에 대해 들으면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코웃음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젊은 세대의 정서를 가뭄에 메마른 논처럼 만든 것은 아닐까. 우리는 경제부국을 이룰 경쟁력이 필요하다. 미래의 동량인 학생들은 선진국의 경제·경영기법과 연구·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더불어 만국공용어인 영어를 비롯한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기초공사는 고르게 잘 되어야지 어느 한쪽이라도 부실하면 건물을 높게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안전마저 장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근간이 되는 기초학문 가운데 일부를 소외시키고 선진국 문턱을 넘기는 힘들다. 문화적인 뒷받침 없는 국민소득만의 선진국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인문학 특히,‘문사철(文史哲-문학·역사·철학)’은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실용학문에 치여 외면당하고, 서점에서는 실용이나 처세술에 밀려 뒷방지기 신세로 몰락했다. 지금이라도 행정당국의 이해와 정책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그와 별개로 우리 개개인부터 서점을 찾아 ‘문사철’이 담긴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야겠다. 한 손에는 경제·경영 서적을, 다른 한 손에는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들고 있는 젊은 세대가 많아야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반문해 본다. 박중진 동양생명 부회장
  • 추석 남은 음식으로 ‘뚝딱’ …와, 영양만점 별미식 되네

    추석 남은 음식으로 ‘뚝딱’ …와, 영양만점 별미식 되네

    명절이 끝난 뒤 언제나 남은 음식 활용이 가장 큰 골칫거리. 아이들 손이 잘 가지 않는 나물류, 차갑게 식어 기름기 도는 모듬전, 차례 상에 올리고 남은 과일 등으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별미식을 한국요리학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봤다.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신 명절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방치하기만 했던 싱글들도 가뿐하게 만들 수 있는 ‘초간단’ 레시피를 자랑한다. # 나물 누룽지피자 명절 음식 중 가장 많이 남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나물이다. 자연스레 비빔밥의 재료가 되기는 하지만 나물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게 마련. 누룽지를 좋아하는 어른들도 반색하는 한편 피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들까지 제대로 꾈 수 있는 영양 별식이다. ▲재료:밥 1공기, 남은 나물(고사리, 시금치 등 원하는 대로) 약간씩, 불고기 남은 것 100g 정도, 베이컨 4장, 체다치즈 4장, 피자치즈 약간 ▲조리법:1. 사각형 유리용기(450㎖)4개에 밥을 얇게 펴 담는다. 전자레인지나 가스오븐레인지에 사용 가능한 내열유리 제품이어야 한다. 2. 밥 위에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등 등 각종 나물을 적당히 흩뿌려 얹는다. 3.2에 고기-베이컨-체다치즈-피자치즈를 차례대로 올린 뒤 200℃의 오븐에서 15∼20분 정도 구워 낸다. 전자레인지 사용시 ‘강´에서 7분 조리한다. 완성되면 밥이 바삭한 누룽지로 변해 아주 고소하다. # 가지구이 카나페 ▲재료:가지 2개, 삶은 계란 3개, 체다치즈 2장, 피자치즈 약간, 방울토마토, 쇠고기 50g(양념:간장·파 각 1작은술, 설탕·마늘·참기름 각 1/2작은술, 후추 약간) ▲조리법:1. 가지는 1㎝두께로 편썰기한 다음 소금을 약간 뿌려 둔다. 2. 삶은 계란은 껍질을 벗겨 가지보다 얇게 썰어둔다. 3. 쇠고기는 갖은 양념을 한다. 4. 가지-체다치즈-삶은 계란-고기-피자 치즈-방울토마토를 순서대로 올려 유리용기에 넣은 뒤 200℃의 오븐에 약 15분 정도 구워 낸다. 전자레인지 사용시 강에서 7분 조리한다. # 모듬전 유자청 샐러드 한번 부친 전은 식으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집에 있는 유자차를 넣어 만든 새콤달콤한 드레싱이 전의 기름기를 싹 가셔준다. ▲재료:고기전, 생선전, 호박전 등 먹고 남은 각종 모듬전, 샐러리, 양상추 등 냉장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각종 야채. ▲유자청 드레싱:유자청 6큰술, 소금 1/2작은술, 감식초(또는 각종 과일식초) 3큰술, 오렌지주스 3큰술 ▲조리법:1. 드레싱 재료들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2.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한 뒤 샐러드용 야채 위에 뿌리고 모듬전에 곁들여 먹는다. # 과일밥과 바나나 약고추장 그냥 깎아서 먹던 과일, 진작 밥에 한번 넣어볼 것을…. 약간의 변칙이 큰 기쁨을 선사한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 위로 하얀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향긋한 과일향에 마냥 행복해진다. 간장 소스나 고추장 소스와 곁들여 먹으면 반찬이 따로 필요없을 듯. ▲조리법:1. 사과, 배, 키위 등 과일을 깍둑썰기 해둔다. 처음부터 과일을 넣으면 물러지고 색이 나지 않는다. 2. 일반 밭솥을 이용해 평소처럼 밥을 짓는다. 뜸을 들이기 직전 썰어둔 과일을 밥 위에 흩뿌려 주기만 하면 된다.5분 정도 뜸을 들여 밥을 완성한다. ▲바나나 약고추장:바나나 2개, 레드와인 1/2컵, 간장 1/3컵, 꿀 2큰술, 고추장 2컵(계량컵이 없을 때 종이컵을 활용한다. 종이컵 1컵의 분량은 200㎖다.) ▲조리법:1. 바나나, 레드와인, 간장, 꿀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2. 냄비에 담아서 1/3정도 졸인 다음 고추장을 넣고 5분 졸여낸다. *과일밥과 어울리는 다른 양념 ▲과일간장:간장 2컵, 꿀 1큰술. 파 1개, 각종 과일 1컵 1. 간장 2컵에 꿀과 파, 과일을 3시간 정도 절인다. 2. 건더기를 건져내고 센불에서 4분 정도 끓인다. 3. 유리병에 담아놓고 사용한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릇 협찬:락앤락 ‘젠앤락’
  • 국산 추석상차림 비용, 수입산의 2배

    국산 추석상차림 비용, 수입산의 2배

    “제사상에는 수입산을 올리지 말아야 하는데….” 추석을 나흘 앞둔 10일 서울 영등포시장은 제사상을 준비하러 나온 주부들로 붐볐다. 과일이며 생선을 만지작거리는 주부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국산 제수용품 값을 물어보고는 곧바로 외국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부들 1년새 오른 물가에 한숨만… 외국산 제수용품을 고른 주부들은 “누가 신토불이가 좋은 줄 모르나.”면서 “조상께 햇곡식은커녕 수입산을 대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미어진다.”고 말했다. 정육점 주인 주모(50)씨는 “지난해 추석에 한우를 구입하는 주부들이 30%였지만 올해는 10%도 안 된다.”고 전했다. 기자가 수입산과 국내산 제수용품의 가격을 비교해봤다. 국내산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게 수입산보다 2배 정도 비쌌다. 콩이 든 송편, 산적용 쇠고기, 부침용(동그랑땡·돈저냐) 쇠고기, 탕국용 쇠고기, 무, 산자, 약과, 배, 사과, 밤, 대추, 곶감, 북어포, 부침용 동태, 고사리, 도라지, 조기 등 16개 품목을 국내산으로 사면 15만 5000원이다. 그나마 품질이 좋은 것으로 고르면 18만 4500원이다. 수입산으로는 싸게는 7만 2000원, 품질이 나은 것으로 고르면 10만 3600원이다. 대파, 양파, 밀가루, 숙주, 달걀 등 부재료를 국산으로 구입하면 차례상을 차리는 데 20만원이 훌쩍 넘었다. 수입품이 없는 사과, 배, 대추, 밤을 빼고 비교하면 국내산 차례상 비용은 14만 8500원으로 수입산 5만 2500원보다 3배가량 차이가 났다. 주부 임희옥(54·여)씨는 “지난 설까지만 해도 국산 위주로 차례상을 차렸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과일 빼고는 대부분 수입산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싸다는 소식에 경기도 용인에서 올라온 정모(60·여)씨는 중국산 조기 3마리가 1만원이라는 상인의 말에 “6000원에 2마리만 달라.”고 흥정했다. 정씨는 “중국산도 마음대로 못 사는 세상”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중국산도 더 싸게 곳곳 흥정 상인들은 국내산이 잘 안 팔리자 수입산을 가격별로 앞쪽에 진열해 놓고 있다. 야채상인인 최정은(52·여)씨는 “서민들 주머니 사정 생각하면 더 싼 수입품을 갖다 놓아야 한다.400g에 3만원이나 하는 국산 고사리는 찾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아예 갖다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향자(49·여)씨는 “수입 도라지는 쓴 맛이 강하고, 수입 고사리는 너무 억세고, 수단산 참기름은 고소하지 않아 차례상에 올리려니 조상께 죄를 짓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여간첩 원정화 계부 공작 밑천 10억 제공

    탈북자로 위장한 여간첩 원정화(34)의 의붓아버지 김동순(63)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4일 구속기소됐다. 조선노동당 당원인 김동순은 김영남 북한 인민최고위원회 상임위원장과 사돈 관계이기도 하다. 수원지검·경기경찰청·기무사·국가정보원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부는 이날 원정화에게 공작금 명목의 물품을 전달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황장엽씨의 거처를 알아본 김동순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편의제공·잠입·회합통신·탈출·간첩미수) 혐의를 적용, 구속기소했다. ●딸 도와 이중첩보 활동에 무역사업까지 합수부에 따르면 김동순은 2003년 12월부터 3년 뒤 남한에 잠입하기 전까지 중국에서 북한산 냉동문어와 옻, 고사리 등 10억원어치를 남한에 있는 원정화에게 넘겨 판매차액으로 공작금을 마련하게 했다. 중국산 상황버섯을 북한산으로 위장수입하려는 남한 상인들을 북한 간부와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등 장사꾼 역할도 했다. 그는 또 2005년 2∼3월 남한의 군 정보요원에게 정보를 빼내려던 원정화의 부탁으로 청진 로켓 공장 설계도를 그려줘 환심을 끌게 하고, 그 대가로 군 정보요원에게 남한 사람 윤모씨 명의의 위조여권을 받아 ‘이중 첩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탈북자라고 속이고 입국해서는 원정화의 이모부라며 신분을 위장했고, 반북 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와 북한이탈주민후원회 등을 찾아다니며 황장엽씨의 거처를 물어보고, 탈북자 대표 등의 명함과 사진을 수집하는 등 간첩 활동을 벌였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김동순이 간첩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인지는 확실한 물증이 없어 일단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간첩미수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원정화 수사 결과 과대포장 지적 반박 이날 합수부는 원정화에 대한 수사 결과가 과대포장됐다는 일부 지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합수부는 “탈북 공작원 등과의 진술 비교를 통해 원정화의 자백이 모두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고 출입국 조회, 통화내역, 감청자료 등 보강증거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다만 “원정화가 훈련을 받았다는 금성정치군사대학은 금성정치대학을 잘못 기재한 것이고,‘사로청 조직국 서기’는 직책이 아니라 임시로 일했었다는 진술을 줄여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원정화가 임신한 채 남파돼 양육까지 한 점, 김동순이 원정화가 체포된 뒤에도 노동당원증 등을 인멸하지 않고 달아나지도 않은 점 등을 들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김동순은 누구 광복 전 인천 용현동에서 태어난 김동순은 일제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아버지를 따라 청진에 정착했고, 평양미술대학 조각학과를 나와 함북 소재 공기관에서 주로 미술 관련 업무를 맡았다.1974년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김동순은 왕재산대기념비(일명 빨치산 공적비)와 혁명박물관 건설 공사 등으로 공적을 인정받아 국기훈장(2급)을 받기도 했다. 김동순은 2000년 12월 중국으로 건너가 원정화의 대북 무역사업을 돕다가 2006년 12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경유해 탈북자 신분으로 위장 입국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단독]대형마트 추석용품 가격 재래시장보다 최고 2.6배

    [단독]대형마트 추석용품 가격 재래시장보다 최고 2.6배

    최근 대형마트에서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사고 재래시장에도 들렀던 주부 김모(34·서울 강서구 방화동)씨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마트에서는 굴비, 쇠고기, 명태포 등이 재래시장보다 2배 이상 비싸게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품질이 다르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거의 똑같았다. 김씨는 “마트 매장에 ‘특별 할인’이란 문구를 보고 싸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균 1.3배정도 비싸 공식 조사에서도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수용품 값이 재래시장보다 최고 2.6배나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가 추석을 앞두고 많이 팔리는 23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재래시장의 물건 값은 대형마트의 77% 수준이었다. 대형마트가 1.3배가량 비쌌다. 특히 대부분의 나물류는 재래시장 가격이 대형마트의 절반 이하였으며, 축산물도 3분의2 수준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개 도시의 5개 재래시장과 15개 대형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농축산물을 대상으로 지난 27일 실시됐다. 품질은 ‘상품’이고 국산인 똑같은 제품을 비교했다. ●숙주나물·도라지 값은 2배 품목별로 보면 숙주나물(100g)은 재래시장에서는 183원이었으나 대형마트에서는 475원에 팔려 2.59배 비쌌다. 콩나물(100g)과 도라지(100g)도 대형마트에서는 각각 402원,1900원에 팔려 2.29배와 2.23배나 높았다. 고사리(100g)도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의 절반 가격인 1000원에 불과했다. 선물용으로도 인기있는 굴비(10마리)의 경우 재래시장에서는 2만원이었는데 대형마트에서는 4만 1590원으로 2배 이상 비쌌다. 과일의 경우 배(원황 10개)와 곶감(1㎏)은 재래시장 가격이 1만 7000원,2만 6000원으로 대형마트의 79%,86.4% 수준이었다. 사과(쓰가루 10개)는 재래시장에서 1만 2800원으로 대형마트 1만 410원보다 10% 쌌다. ●“매장관리비·인건비 때문” 유통공사 관계자는 “똑같은 농축산물인데도 대형마트가 재래시장보다 훨씬 비싼 것은 유통비용 차이라기보다 매장관리비와 인건비 등 부대 비용이 제품 가격에 전가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추석 차례상 비용 16만 6100원

    추석 차례상 비용 16만 6100원

    올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을 가장 높일 요인은 과일값으로 밝혀졌다. 굵은 사과 1개에 5000원이나 하는 등 사과 값이 지난해보다 43%나 뛰어 체감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예년보다 추석(9월14일)이 빨리 찾아와 출하량이 적은 탓에 성수품 가운데 과일값이 특히 많이 올랐다. 밀가루, 명태, 돼지고기 등도 꽤 비싼 편이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는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4일 가족 기준)이 지난해보다 1만 4280원(9.4%) 증가한 16만 6100원이 될 것으로 26일 예상했다. 사과가 9800원에서 1만 4050원으로 43%, 단감이 7370원에서 1만 590원으로 44% 올랐다. 배(이상 5개 기준)는 9570원에서 1만 2380원으로 29% 상승했다. 명태 1마리는 올해 2280원으로 43%, 참조기 1마리는 8000원으로 10% 올랐다. 수산물의 경우 올해 정부비축물량의 방출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매가격이 강세다. 그러나 김, 멸치 등 건어물류는 생산량과 재고량이 충분한 만큼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돼지고기(500g)도 사육두수가 감소하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33% 오른 7830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반면 쇠고기(1㎏)는 저렴한 미국산 LA갈비 등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2만 8960원으로 되레 10% 내렸다. 따라서 등심 등이 선물용으로 많이 나돌 것으로 보인다. 국제곡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밀가루(3㎏)가격도 3500원으로 43%나 올랐다. 다만 밀가루와 함께 전을 부칠 때 필요한 호박(1개)은 780원으로 54% 내렸고, 계란(30개)도 3500원으로 8% 상승에 그쳤다. 파(-48%), 시금치(-20%), 고사리(0%), 도라지(13%), 파 등 채소 가격은 대체로 싼 편이다. 선물용으로 나가는 포도는 작황이 좋아 작년과 값이 비슷하다. 차례상의 전체 비용은 불과 9.4%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오른 품목이 대체로 주요 성수품이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농수산물공사의 산출가는 중상등품 기준으로, 질 좋은 상등품의 경우에는 가격 상승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 김병철·서울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7) 경남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7) 경남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

    이름 그대로 양지여서 ‘양지정쟁이’로 불리는 양정마을은 위쪽의 음정, 아래쪽 하정과 함께 마천면 삼정리에 속한다. 벽소령대피소가 지척인 데다 영원사∼삼정산(1261m) 산행이 가능한 곳으로 30여가구 대부분이 토종벌꿀, 고사리, 고로쇠, 곶감 등을 수확해 생계를 잇는다.10여년 전 부산에서 들어온 표용기(56)씨는 “때가 묻지 않은 곳”이라고 표현하는데, 인근 마을과 달리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집이 없기 때문이란다. 양정마을 사람들은 벽소령 옆 형제봉(1452m)을 부자(父子)바위라고 부른다. 성불하던 형제가 지리산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등을 맞대고 부동자세로 있다가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형제봉의 전설은 외지인들을 통해 들은 낯선 이야기일 뿐이다.“왼쪽에 홀로 선 바위가 아빠, 우측에 줄줄이 늘어선 건 애들.”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던 양용암(71)옹은 눈썹 끝에 걸린 바위를 가리키며 옛날이야기 한 토막을 쭉 늘어놓는다. “예전 이곳에 살던 ‘인걸’이란 나무꾼이 우연히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인걸은 선녀의 옷을 숨겨놓았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 ‘아미’는 인걸과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걸이 예전 일을 털어놓으며 아내에게 선녀 옷을 입혔더니 아미가 그 옷을 입고 그만 훌쩍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떠난 아미를 기다리다 지친 인걸과 삼 남매가 벽소령의 바위로 굳어진 게 부자바위, 그러니까 주능선 상의 형제봉이다. 인걸과 아미의 이야기는 슬픈 전설에 불과하지만, 반세기 전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서 생명줄을 내어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기록되지도 못한 지리산의 혹독한 역사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그리고 휴전이 되고도 몇 년간은 전쟁보다 더한 날들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빨치산들은 들에 심은 곡식은 말할 것도 없이 돼지, 소, 닭 등 가축을 되는 대로 잡아갔다. 급기야 주민들은 공공기관, 약국, 여관, 가게 등이 밀집된 마천면소재지에 통나무 목책을 3중으로 돌려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련 서적에 따르면 이 방어선은 막강 남부군에게도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통나무 봉쇄선은 1952년 9월2일 뚫렸고(마천 9·2사건), 빨치산들은 생포한 민간인특공대와 이장 등 소위 반동분자들을 바위 밑에다 몰아넣고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하정마을에 있던 끔찍한 바위는 도로 공사로 이젠 찾을 수가 없다. 무차별적인 학살은 빨치산뿐만이 아니었다.‘마천 향토지’는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역시 죄 없는 주민들이 국군의 손에 죽어나갔다고 적고 있다. 지리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산마을의 수많은 주민들이 토벌대에게, 또 빨치산에게 억울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겨우 60년밖에 안 된 이 땅의 역사이다. 양지정쟁이의 비탈진 골목 사이로 큰바람이 분다. 마을의 상처를 보듬는 바람, 어딘가 앉아 슬프게 울고 있을 영혼을 위로하는 바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바람…. 이제는 기억조차 외면한 아픔 대신 산마을 사람들 모두 이 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기만 하면 될 터이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양정마을까지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지리산자연휴양림∼영원사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3) 봄나물 캐는 여인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3) 봄나물 캐는 여인

    작자 미상의 작품 ‘나물 캐기’(그림(1))는 봄나물을 캐는 여자 둘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의 여인은 비 촉촉히 내린 어느 봄날 시누이와 함께 산나물을 캐러 나왔다. 그림(2)는 윤두서의 ‘나물 캐기’다. 그림으로 보자면, 윤두서 쪽이 훨씬 잘 그린 것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나물은 캐는 것이 있고, 뜯는 것이 있고, 꺾는 것이 있다. 뿌리째 먹는 나물은 캠대로 캐고, 뿌리를 먹지 않고 잎을 먹는 것은 뜯고, 고사리처럼 줄기를 먹는 것은 꺾는다. 그림(2)의 왼쪽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캠대다. 도대체 무슨 나물을 캐는가? 우리가 익히 아는 쑥이며 냉이·달래·민들레·곰취·원추리 등이 아닐까? 봄이면 도시에서도 쑥을 캐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해운대 신시가지의 뒷산은 장산이다. 아파트를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곧 산으로 접어든다.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을 때에도 볕이 드는 곳은 제법 따뜻하다. 천변 양지 바른 쪽에는 쑥 캐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그림 같다. 쑥 캐는 사람이 보이면 ‘이제 봄이로구나.’ 하는 상투적 감탄사를 다시 발하게 된다. 이처럼 나물을 캐는 모습은 언제나 정겹게 느껴진다. 위의 그림에도 그런 조용한 정겨움이 있다. 나물은 매일 먹는 것이지만, 정작 나물이 무엇인가 물으면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다. 하기야 일상적인 것, 너무나 익숙한 것을 물으면 원래 답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나물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그것은 나무일 수도 있고, 채소일 수도 있다. 뿌리, 잎사귀, 줄기 어느 것도 다 나물이 된다. 다만 생것 그 자체로는 나물이 아니다. 가공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삶거나 생것이거나 참기름과 간장, 된장 따위의 조미료를 넣어 무쳐야 나물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산과 들에서 나는 푸새와 길러서 얻는 남새를 한국 사람처럼 다양하게 가공해서 먹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서양의 샐러드는 나물에 비하면 그 종류와 가공의 다양성이 한참 모자란다. ●“고려 사람들 도축 서투르고 조리법 형편없어” 나물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고기가 맛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기는 맛도 있고 또 에너지도 높다. 하지만 고기는 귀한 것이다. 고기와 곡물의 교환비율은 6대1 정도 된다. 즉 곡물 6㎏을 가축에게 먹이면 고기 1㎏이 생산되는 것이다. 고기가 부족해서 나물을 먹게 되었던 것인가. 이것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이유도 있다.1123년 고려에 송나라 사신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는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짐승을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양이나 돼지를 잡기는 하지만, 그 방법이 서투르고 조리법 역시 형편 없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의 식생활을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드물었고, 반찬의 주류가 채소, 곧 나물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다면 무슨 나물을 먹었을까. 허균은 1611년 ‘도문대작’이란 글을 쓴다.‘도문대작’이란 푸줏간을 지나면서 입을 쩍쩍 다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먹었던 맛있는 떡과 과실, 새와 짐승 고기, 수산물, 그리고 채소를 소개한다. 그는 고사리·아욱·콩잎·부추·미나리·배추·송이·참버섯·가지·외·호박·무는 어디서나 나고 맛이 좋다고 쓰고 있다. 그 외에 특별한 채소로 죽순·원추리·순채·석전·요목·표고·홍채·황각·청각·참가사리·우뭇가사리·초시(椒)·삼포(蔘脯)·여뀌·동아·산개자·다시마·올미역·김·토란·생강·겨자·파·마늘 등은 어떤 산지의 것이 특별히 맛이 있노라고 소개하고 있다. 양념류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나물이다. 실로 다양하다. ●맑은 식생활과 청렴한 삶의 상징 앞에서도 말했듯 나물은 고기와 대립하는 것이다. 나물은 곧 청렴한 생활의 상징이었다. 한석봉의 시조는 이렇게 말한다.“짚 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박주 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달빛이 뜰에 가득한 밤이다. 짚으로 짠 방석조차 필요 없다. 낙엽에 앉으면 그만이다. 관솔불도 켜지 마라, 달빛이 내려앉지 않느냐? 이때 한 잔 탁주가 없을 수 없다. 안주는 산나물이면 그만이다. 이처럼 나물은 맑은 생활의 상징이다. 나물은 유쾌한 식품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천진암에서 놀고 난 뒤 기념으로 쓴 글’에서 나물을 먹은 모임을 회고한다.1797년 여름 다산은 형제와 일가들과 어울려 집과 가까운 소내로 가서 천렵을 한다. 그물을 쳐서 크고 작은 고기 50여 마리를 잡는다. 고기가 얼마나 실했으면,“작은 배가 고기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이 몇 치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그 고기를 일행은 배불리 먹는다. 다산은 일행에게 “옛날 진나라 장한은 벼슬을 하다가 자기 고향 강동의 농어와 순채가 생각나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갔습니다. 물고기는 우리가 맛을 보았고, 지금은 산나물이 한창 향기로울 때이니, 어찌 천진암으로 가서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이 말에 형제 4명과 일가 3,4명이 천진암으로 향한다. 글을 직접 읽어보자. 산으로 들어서자 초목이 울창하였다. 산 속에는 가지가지 꽃이 만개하여 짙은 향기가 코를 찔렀고, 온갖 새들이 목구멍을 울려 맑고 매끄러운 소리를 주고받았다. 길을 가면서 새 소리를 듣고 서로 돌아보며 몹시 즐거워하였다. 천진암에 이르자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으며 하루를 보냈고, 사흘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은 시는 모두 20여 수고, 먹은 산나물은 냉이·고사리·두릅 등 모두 56종이었다. 다산 일행은 사흘을 머물고 무려 56종의 나물을 먹고 돌아온다. 아, 유쾌한지고. 화목한 가족과 일가가 모여 강과 산을 찾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산채를 먹으며 보내는 여름 한 철은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세종 때도 “나물캐는 백성 들판 뒤덮어” 이처럼 나물은 청빈한 삶의 상징이었고, 또는 다산의 경우처럼 가족과 함께 소박한 행복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물은 굶주림과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나물을 캔다는 것은 곡식이 바닥이 나서 굶주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던 것이다. 세종 시대는 조선조 500년 동안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음에도 굶주리는 사람이 허다하였다.‘세종실록’ 26년(1444) 4월27일조를 보면, 진무(鎭撫) 김유율·박대손 등은 지방 여러 곳을 돌아본 뒤 돌아와서 “쌓아 둔 곡식은 많아야 1,2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적은 사람의 경우 1,2되 밖에 없었고, 혹 다 먹어버리고 남은 것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라고 보고한다. 기근이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덧붙여 나물만 먹는 자도 있으며, 부종이 난 사람도 있었다고 보고한다. 이어 23일 병조판서 정연은 청안 지방의 일부 사람들은 나물만 캐서 먹고 있는 실정이라는 자신의 목격담을 보고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나물을 캐는 백성이 들판을 뒤덮고 있으며 먹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물뿐’이라는 것이다. 나물에 의지하여 사는 백성들의 처참한 삶은 조선후기로 올수록 점점 더하였다. 정약용은 ‘다북쑥을 캐다’(采蒿)란 시에서 그 처참한 삶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 넘어가네/ 푸른 치마 붉은 머리/ 허리 굽혀 쑥을 캐네/ 다북쑥 캐어 무얼 하나/ 눈물만 쏟아지네/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들엔 벼 싹 다 말랐네/ 다북쑥 캐어다가/ 둥글게 넓적하게/ 말리고 또 말려서/ 데치고 소금 절여/ 죽 쑤어 먹을밖엔/ 달리 또 무얼 하리”(송재소 역 ‘다산시선’, 창작과비평사) 조선후기 나물 캐기와 백성들의 처참한 삶의 관계를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은 없을 것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그림 속의 여인들이 캐는 나물은 청빈의 상징인가, 아니면 가난의 상징인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 먹을 단란한 저녁식사의 찬거리인가. 바라건대 맨 마지막의 것이었으면 한다. 지금 세상의 나물은 가난도 아니고, 청빈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채식이 인간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물이야말로 한국인에게 가장 부합하는 즐거운 채식이 아니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지리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지리산

    지리산은 남한의 어느 산보다 덩치가 크다. 한반도 산줄기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산군에는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제석봉(1806m), 촛대봉(1704m), 명신봉(1652m), 칠선봉(1576m), 토끼봉(1534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등 15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장장 45㎞에 이르는 주릉을 형성하며 솟아 있다. 높은 봉우리들이 연이어진 고산능선에서 흘러내리는 유장한 계곡들 또한 남한의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관을 연출한다. ●식물 1500여종 서식… 학명 ‘지리산´ 꽃 즐비 지리산은 산세가 웅장한 만큼 그곳에 살고 있는 식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산자락을 포함해서 지리산에는 대략 1500종류의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남한에서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종류의 식물이 자라는 것이며,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 800m급 산에 700∼800종류의 식물이 자라는 것에 비하면 2배쯤 많은 숫자다. 이처럼 풍부한 지리산 식물들 가운데는 북방계 식물 또는 고산식물로 분류할 수 있는 구름병아리난초, 금강애기나리, 기생꽃, 너도바람꽃, 땃두릅나무, 만병초, 산오이풀, 자주솜대, 참바위취, 회목나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지리산 능선을 대표할 만한 식물들로 다른 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곳 지리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므로 더욱 의미가 크다. 북방계 식물들이 지리산 높은 곳에 자라고 있는 것은 빙하기때 남쪽으로 내려왔던 북쪽 식물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고산지역에만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채집되어 우리말 이름에 ‘지리’ 또는 ‘지리산’이 붙은 식물들도 있다. 지리강활, 지리고들빼기, 지리괴불나무, 지리대극, 지리대사초, 지리말발도리, 지리바꽃, 지리사초, 지리실청사초, 지리오리방풀, 지리터리풀, 지리산고사리, 지리산괴불나무, 지리산김의털, 지리산바위떡풀, 지리산숲고사리, 지리산싸리, 지리산오갈피, 지리산하늘말나리 등이 그것이다. 또한, 학명(學名)에 지리산을 뜻하는 말이 붙은 것도 여럿 있다. 한국특산식물인 누른종덩굴의 학명에는 ‘지이산엔시스(chiisanensis)’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지리산의’ 또는 ‘지리산에 자라는’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이름이나 학명에 지리산을 뜻하는 말이 붙지 않았지만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된 노각나무와 모데미풀 같은 식물들도 있다. ●가시오갈피나무·깽깽이풀 등 보호식물 지정 지리산 식물들 가운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도 많다. 특산속(屬)에 속하는 모데미풀은 물론이고, 구상나무, 금마타리, 노랑매미꽃, 누른종덩굴, 산앵도나무, 세모부추, 세뿔투구꽃, 지리고들빼기, 히어리 등의 특산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멸종위기식물들도 있는데,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한 가시오갈피나무, 깽깽이풀, 기생꽃, 세뿔투구꽃, 자주솜대, 천마, 히어리 등이 자라고 있다. 지리산에 이처럼 다양한 식물이 살 수 있는 것은, 너른 산세에 걸맞게 독특한 조건을 갖춘 식물생육지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생육지는 고산능선으로서 해발 1500m 이상의 지역에 길게 형성된 능선에 특별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주릉 곳곳에 발달한 바위봉우리나 초원에는 귀한 식물이 많다. 이들은 특수한 곳에만 적응해 살아가는 식물들로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나 관리하는 사람 모두 능선과 정상부의 보호에 힘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리산 곳곳에 발달한 습지도 지리산의 독특한 식물생육지 가운데 하나다.90년대 중반에 대원사 북서쪽 왕등재 부근의 해발 1000m 지역에서 발견된 왕능재늪이 대표적인 습지다. 이 습지는 길이 200여m, 폭 80여m로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감자개발나물, 닭의난초, 동의나물, 방울새난, 세모부추, 숫잔대, 애기부들 등 고산지역의 습원에 오랜 세월 적응해 살아온 습지식물들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크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 19번 국도변에 자리한 ‘송정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는데, 각각 한수내(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마을이 되겠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던 것을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때 마을 존재조차 몰라 1590년쯤 금녕 김씨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1800년께 창녕 성씨가 입주해 크게 번성했지만, 여순사건 때 마을 전체가 소개되면서 가구 수가 줄었다. 안한수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건 50년 전쯤으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도 없고 딱히 마을을 떠난 사람도 없어 22호 40명 남짓한 주민이 한 가족처럼 거주 중이다. 당시 뿔뿔이 흩어졌던 집들 중 일부가 신촌에 정착했는데 그런 연유로 ‘새로 생긴 마을’, 즉 ‘신촌’이 된 것이라고. “큰길에서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터라 일제시대 전까지만 해도 내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많아 의병장 고광순이 은거하며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담양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고경명의 후손으로 산능선 너머 연곡사에서 순절했지요.” 여기저기서 마을 설명이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고영만(70)씨는 말이 없다. 그이는 고광순의 손자이다. 안한수내는 한학자들에게도 좋은 피난처였던 터라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한자에 능하다고 한다. 마을 초입 정자의 현판과 상량문도 이장이 직접 쓴 것이란다. 예전엔 개울가 주위로 다랑이 논이 많았지만 소득을 올릴 수 없어 20년 전부터 과실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두릅, 고로쇠, 고사리, 젠피(초피)도 수확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피서를 즐기려는 외지인들이 적잖이 몰려드는데, 부녀회에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매일매일 쓰레기 수거와 오물 처리를 한다. 그렇다고 펜션이나 최신식 민박집이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평상과 유산각 대여료를 받는 게 전부다. 모기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선 잠을 못잘 만큼 시원하다. ●봉화산 봉화축대 아직도 흔적 남아 간혹 등산객들도 보이는데 봉애산을 거쳐 왕시루봉(1212m)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부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이곳을 거쳐 서울까지 소식이 닿았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축대 흔적이 남은 봉애산에는 불을 피웠던 옛 기억 대신 산불을 감시하는 무인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왕시루봉은 2017년까지 출입통제로 묶여 있어 공개적인 산행은 할 수 없다. 마을을 관통하는 한수내는 이 왕시루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다. “고생한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지. 나무를 해다 팔아 식량을 구입했어. 새벽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었지. 소나무 껍질을 말려서 돌로 빻아 먹었는데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어. 산죽 열매를 먹으려고 화개 연동골까지 가곤 했는데 열매를 갈아 채에 내려 죽을 쒔어. 그 열매조차 매년 열리는 게 아니었는데 일설엔 산죽 열매가 맺히면 흉년이 든다는 말도 있고, 봉황이 먹는 음식이란 전설도 있지. 그야말로 안한수내 사람들 모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송기홍(77)옹이 씁쓸히 술잔을 들었다. 마을 자랑은 딱히 할 게 없단다. 전기, 전화, 차가 다 들어오니 불편할 것도 없다.5년 전 2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하루 세 번씩 군내버스도 다닌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가는 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송정리는 구례읍과 하동군 화개면 중간쯤에 위치한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4) 남원시 인월면 구인월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4) 남원시 인월면 구인월마을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 토벌을 위해 급파된 삼도순찰사 이성계와 남부 내륙을 휩쓸던 왜장 아지발도 부대는 그해 가을 남원 황산(697m)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그러던 중 날이 저물어 더 이상의 전투가 어려워지자 이성계는 급기야 하늘의 달을 끌어와 끝까지 싸워 이기는데, 이로 인해 ‘달을 당겨온’ 곳, 즉 ‘인월(引月)’이란 지명이 생기게 된다. ●전라도·경상도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 인월이 신·구로 나뉜 것은 약 반세기 전쯤. 상권이 집중된 지금의 인월이 커지면서 ‘구인월’로 물러났지만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의 중간에 위치해 예전엔 두 지역을 오가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주막과 말터(역)가 있던 곳이었다.88고속도로 지리산IC와 연결된 인월은 예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전국의 보부상이 다 모여든 지역이기도 하다. 인근 운봉·아영·산내뿐 아니라 경남 함양(마천)과 산청 등 지리산에서 생산된 각종 특산물이 거래되던 곳으로, 번창기에는 그 이름이 전국에 두루 퍼질 정도였다. 요즘도 3일과 8일 5일장이 서는데 시장 상인 절반은 경남 함양 사람들이다. 지리산 남쪽의 화개장터처럼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합의 장이지만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와는 달리 소전(우시장)을 포함, “안 나오는 게 없는” 장이었다는 게 구인월 주민 허이봉(62)씨의 설명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로 근래엔 고사리와 고추를 포함한 채소가 대부분이란다. 산꾼들에게 구인월은 태극종주의 초입 마을이다. 이곳에서 3.2㎞를 오르는 덕두봉(1150m)은 바래봉으로 이어져 서북릉 끝까지, 이후 노고단에서 주능선, 천왕봉에서 다시 동부능선을 따라 웅석봉으로, 웅석봉에선 달뜨기능선을 훑듯 덕산으로 무려 90여㎞ 이어지기 때문. 흥부골자연휴양림 등 덕두봉을 오르는 다른 길이 있긴 하지만 이 마을이야말로 지리산 태극능선의 탯자리 같은 땅이다. 마을 입구에 선 날망(언덕)은 빨치산을 토벌하던 고지였다. 지금도 오래된 집들엔 총알 박힌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 운전을 하다 10여년 전 고향으로 내려온 허씨는 그때 받던 월급의 절반만 주는 곳이 있어도 당장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농사일이 쉽지 않다. 그야말로 말도 할 수 없이 죽을 맛이다. ●비료·농약·사료값 폭등에 농사짓기 어려워 작년보다 감자 시세가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비료값, 농약값, 사료값이 폭등해 노력의 대가도 없이 적자만 보고 있다. 마을에 저온창고가 없으니 농작물을 장기 보관할 수 없고, 직거래가 성사되는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작물은 중간 상인들이 소위 밭떼기로 다 가져간다. 올라만 갔지 내려올 줄 모르는 물가 때문에 농사를 지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다. 이맘때면 자매결연으로 맺어진 서울의 모 대학 학생들이 내려와 일손을 돕곤 하는데 그마저도 2년 전부터 끊겼다. “‘장구 칠 때 옆에서 고개만 까딱대도 수월하다.’고, 그 학생들 도움이 적잖이 컸는데 요즘은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내려오질 않네요. 섭섭하지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에 다니는 우리 애도 대통령 얼굴 보기보다 더 힘드니까요.” 최근엔 상수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수질검사에서 늘 합격점을 받는 덕두봉 자연수를 먹고 있으니 굳이 부담금을 내가며 수돗물 먹을 이유가 없는데도 시에선 자꾸 상수도 설치를 강요하고 있다. 이 문제 저 문제로 진정서를 올려보지만 ‘돌을 차면 제 발만 아픈 격’으로 아무 소용이 없단다. 도시든 농촌이든 관광지든 올해는 다들 힘이 드는 모양이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용산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 남원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다. 남원 또는 경남 함양에서 인월은 버스로 30분 거리고, 인월 정류장에서 구인월마을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걸린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나오면 된다. 마을 입구에 ‘흥부골자연휴양림’ 이정표가 있다.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20)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20)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에 솟은 금대봉(1418m)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삼수령 피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피재와 금대봉 사이에는 고랭지채소밭으로 유명한 매봉산이 자리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함백산, 태백산이 연이어진다. 이 산과 북쪽의 대덕산(1307m) 능선을 경계로 하여 안쪽의 계곡일대가 1993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4.2㎢인 보전지역은 태백시에 속하며, 이 안에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가 자리잡고 있다. ●백두산의 나도범의귀 자생해 학계 들썩 보전지역 지정 당시에 환경부 정밀조사를 통해 가시오갈피나무, 개병풍, 한계령풀 등의 법정보호종과 개불알꽃, 골고사리, 대성쓴풀, 털댕강나무, 홀아비바람꽃 등의 희귀식물이 금대봉 일대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 밖에도 구슬댕댕이, 나도씨눈난, 날개하늘나리, 넓은잎노랑투구꽃, 두메닥나무, 산마늘, 선백미꽃, 세잎승마, 인가목조팝나무, 참여로, 큰제비고깔 등의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다. 지금까지도 금대봉의 희귀식물이 하나둘씩 새로 발견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온 나도범의귀가 이곳에서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식물이 남한에 자생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만큼 의의가 큰 일이었다. 남한에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온 대성쓴풀, 넓은잎노랑투구꽃에 이어 또 하나의 귀한 북방계식물이 발견된 것으로서, 금대봉 일대가 식물 지리분포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는 쾌거라 할 수 있다. 개병풍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육상식물 가운데 잎이 가장 크다. 잘 자라면 지름이 1m에 이르고, 잎 아래쪽 중앙에 길이 1m 이상 되는 긴 잎자루가 달려 있으므로 잎 하나가 우산으로 써도 될 정도의 크기다. 세계적으로 만주와 한반도에만 자라는 희귀식물이고, 남한에서 5곳 정도의 자생지만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등산객 발길에 귀한 종 훼손… 대책 시급 대성쓴풀은 몽골 등 북반구의 고위도지방에 자라는 식물로서 이곳에서 발견될 때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북부지방에서조차 기록된 적이 없는 희귀식물이다. 학자들은 이런 식물이 금대봉 계곡에서 자라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20여 년 전에 처음 발견되었을 때 우리말이름이 붙여졌는데,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지형도에 금대봉이라는 산이름이 없었고, 생태조사에 나선 학자들은 정선 쪽 산자락에 대성초등학교가 있다는 데서 대성산이라고 임의로 불렀다. 이 때문에 대성쓴풀을 발견한 학자도 ‘대성산에 사는 쓴풀’이라는 뜻으로 대성쓴풀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당시에 산이름이 제대로 알려져 있었다면, 이 식물의 이름은 대성쓴풀이 아니라 금대쓴풀이 되었을 법하다. 금대봉 일대는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일차적으로 이곳에 사는 희귀식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가보면 위태로운 모습이 한둘이 아니어서 안타깝다. 대성쓴풀은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번식실패가 멸종으로 이어지기 쉬운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발길에 밟히기 일쑤이고, 날개하늘나리는 남한에 분포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이곳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생존여부가 불투명하다. 식물을 포함한 생물종 다양성이 높이 평가되어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지정된 법정 보전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법정보호종을 비롯한 보전대상 식물에 대한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는 이곳에 30억원의 국비를 들여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4월 타당성 검토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생태탐방로, 야생식물 학습장과 증식장을 만들어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시설을 확보하여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주민 소득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최소한의 시설을 설치해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겠다는 계획은 좋지만, 그에 앞서 보전해야 할 식물의 명세와 보전방안을 먼저 내놓는 게 순서일 듯싶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설계획 수립에 앞서 보전해야 할 식물이 어디에 어떻게 생육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해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용을 위한 시설 위주로 이번 사업을 벌인다면 희귀식물 보전에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하다. 보전지역 관리의 주체인 태백시는 길이 없던 나도범의귀 자생지에 새로 나무계단을 설치하며 이 희귀식물의 개체군을 둘로 가르고, 계단 설치 장소에 살던 개체들을 훼손한 전력이 있다. 보전을 내세워 예산을 확보한 뒤, 결과적으로 금대봉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개발행위를 하는 일을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금대봉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취지를 되새겨서 귀하디귀한 금대봉 식물들이 보전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금대봉에는 지금 여름꽃들이 피어 있다. 가는기린초, 둥근이질풀, 미역줄나무, 산수국, 솔나리, 숙은노루오줌, 여로, 하늘나리, 하늘말나리가 언제나처럼 아무 말 없이, 아무 것도 모른 채 피어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9) 강원도 태백시 백병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9) 강원도 태백시 백병산

    태백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태백시 북쪽의 삼수령 피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산줄기가 시내를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다. 시내 중심부에서 솟아난 황지연못은 낙동강이 되어 낙동정맥과 나란히 흘러간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로서 태백에서 시작되어 부산 다대포까지 분수령(分水嶺)을 이루며 이어진다. 낙동정맥이 피재에서 갈래친 후 힘을 모아 높이 솟궈 올린 산이 백병산(1259m)이다.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태백시 통동과 삼척시 도계읍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삼척 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지만, 산 중턱에는 질 좋은 목재로 이름 높은 금강소나무가 숲을 이뤄 자라고 있다. 이 산은 삼척 오십천의 발원지이기도 한데, 산 북쪽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미인폭포를 빚은 후 도계를 거쳐 삼척으로 흘러든다. ●백병산의 원래 이름은 白山 흰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서 있어서 백병산이라고 부른다는 그럴듯한 산이름 유래가 있지만, 원래 이 산은 백산(白山)으로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식 지형도가 제작되면서 백병산이라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병산의 남서쪽 주능선에는 촛대바위, 병풍바위, 마고할미바위 등 바위지대가 발달해 있는데 이 때문에 흰 산 또는 흰 병풍산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태백시 통동의 원통골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산의 북동쪽에는 고비덕이라는 곳이 있는데, 일설에는 고사리의 일종인 고비가 많이 자라는 언덕이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믿기 어려운데, 이 일대는 습기가 많아 여러 종류의 풀꽃들이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고비가 특별히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북방계 약재식물 군락 이뤄 장마철인 이맘때 비가 잦아든 틈새를 이용해 백병산을 둘러보면 가는기린초, 노루오줌, 딱지꽃, 물꽈리아재비, 물레나물, 산꿩의다리, 쉬땅나무, 쥐다래 열매, 하늘나리 등을 계곡에서 만날 수 있다. 까치박달, 다릅나무, 복자기 등이 들어찬 낙엽활엽수림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중 대군락을 만날 수 있고, 원통골 위쪽에서는 정선황기와 함께 갈고리층층둥굴레도 발견된다. 갈고리층층둥굴레는 북한에만 자생하는 북방계식물로서 이곳의 것은 약재로 재배하던 것이 야생처럼 퍼진 것이다. 능선에서는 겨우살이, 딱총나무 열매, 동자꽃, 물레나물, 미역줄나무, 바위채송화, 산일엽초, 속리기린초, 여로, 조록싸리 등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꽃은 이미 졌지만 개불알꽃의 대군락을 만날 수도 있다. 정선황기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의 산자락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정선에서 발견되어 우리말이름을 얻었으며, 바닷가 가까운 산지에서 곧잘 발견되므로 해변황기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한국특산식물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최근의 연구에서 일본 시코쿠 지방에 자라는 것과 같은 종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자생지에서 이미 절멸하여 없고 식물원에 키우는 것만이 남아 있는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편이기는 하지만 석회암지대에서 곧잘 발견된다. 물꽈리아재비는 물가의 습지에서 비교적 드물게 발견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20㎝쯤으로서 네모가 지고 연약하다. 우리나라에는 묘향산 이남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대만에 분포한다. 백병산에서는 원통골 위쪽의 계곡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하늘 향해 꽃피우는 하늘나리 하늘나리는 지리산 이북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높이 30∼70㎝로서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리종류들 가운데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꽃은 하늘을 향해 피며, 고산지역의 풀밭 등 생육조건이 나쁜 곳에서는 1개씩 피지만 저지대의 숲 가장자리 등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5개까지 피기도 한다. 큰까치수염은 큰까치수영이라고도 부르는 여러해살이풀로 이맘때부터 늦여름까지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작고 흰 꽃들이 빽빽하게 붙어서 긴 꽃차례를 이루는데, 꽃들이 한쪽으로만 붙어 있다. 꽃 하나하나도 아름답지만 꽃차례 전체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꽃에는 꽃가루와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백병산에서는 서쪽 능선의 양지바른 임도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장마철에 피는 꽃은 꽃가루받이가 어렵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 활동하는 벌과 나비가 없으니 충매(蟲媒)가 어렵고, 빗물에 젖은 꽃가루가 풍매(風媒)되기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먹구름 사이로 잠깐잠깐 고개를 내미는 해님 덕에 꽃들은 꽃가루받이에 성공할 수 있다. 장마철에도 쉴 새 없이 꽃은 핀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서민 등골 빠지는 ‘新 3고시대’] “콩나물 1000원어치로 한끼 못먹어”

    [서민 등골 빠지는 ‘新 3고시대’] “콩나물 1000원어치로 한끼 못먹어”

    “아유∼ 정말 비싸서 못 사겠네.” 1일 오후 4시 주부 이영선(53)씨의 장보기에 따라나선 지 벌써 30분째. 농산물 가격이 가장 싸다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무를 찾고 있지만 그의 맘에 드는 싸고 질좋은 ‘녀석’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배추값 올라 김치 안 담근지 한참 그의 다리통보다 큰 무가 2000원 푯말 뒤에서 손짓한다. 저렴한 녀석들도 그 뒤에 1000원 푯말 뒤에 줄 서 있다. 이씨는 그네들을 힐끗 보고는 감자부터 사야겠다고 발길을 돌린다.“어휴∼ 작년에 2개에 500원짜리들이 무슨… 국물 우리는 무는 좀 못생긴 거 사도 되는데 안 보이네.” 이씨는 감자가게에서 강원도와 충남에서 올라온 감자 값을 물어봤다.20㎏에 1만 7000원. 비싸다는 이씨의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그럼 말도 붙이지 마요. 2월에 6만원 하던 게 엄청 떨어진 것도 모르나.”면서 쏘아붙였다. 이씨는 발걸음을 옮겨 감자가게를 열 곳 이상 돌아다니며 값을 물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결국 한 가게에서 1000원을 깎아 1만 6000원에 감자 한 박스를 샀다. “우리 아저씨 일감이 없어서 열흘째 놀아요. 기초보호대상자라고 국가에서 주는 돈 20여만원을 쌀로 대신 받고,4년 전에 암을 앓고 나서 먹는 약값·검진비 70만∼80만원 들이고 나면 한 달에 시장 볼 수 있는 돈은 10만원도 안돼요.“ 따라다니기에 지친 기자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과일 가게는눈길도 주지 않는다.1년 전부터 단 한 번도 과일을 사 먹은 적이 없단다. 콩나물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기 옛말이지 콩나물 1000원어치 사도 한 끼도 못먹어요. 싼 걸로 말하면 요즘 식탁에는 얼갈이가 최고 효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옷은 구청 벼룩시장서 해결” 한 단에 1000원짜리 얼갈이 배추를 집으면서 이거면 일주일 동안 된장국·겉절이로 최고란다. 김치는 배추값 올라 안 담근지 3개월째다. 이씨는 호박 3개에 1000원이라는 말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좀 생각에 잠기더니 “하나에 300원도 넘네. 청양고추는 얼마요.”라고 묻는다.2근쯤 돼보이는 바가지 하나에 2000원어치를 주인과 실랑이 끝에 샀다. 이씨가 적어온 쪽지에는 이제 무·두부·고사리가 남았다. 판 두부 한 모에 1300원. 두부 사는 것을 포기했다. 마른 고사리 1개에 2000원. 이제는 이씨도 지쳤는지 고사리는 다 똑같다면서 샀다. 기자가 “무는 안 사세요?”하고 묻자 이씨는 “힘들어서 도저히 못찾겠어요. 그냥 얼갈이 된장국이나 해먹지 뭐….”라면서 짐을 들었다. 그래도 아쉬운 듯 출구로 나가는 동안에 이집 저집 무 가격을 물어 본다. “토요일에 서초구청 벼룩시장에 가면 옷도 500원·1000원이면 사요. 과일이야 비싸 안 먹는다고 해도 두부·콩나물 값은 그러면 안 되지. 프로판 가스 가격이 작년에 3만 3000원이었는데 7월이면 4만원이 된다고 하대요. 라면도 한 달에 40개는 먹는데 한 개에 100원이나 올랐어요. 돈 걱정 없이 며칠이라도 살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www.maedong.org)인 ‘매동’은 마을 왼쪽 능선에 고양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묘동’으로 불리다가 훗날 그 형세가 매화처럼 아름답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지리산 정상 천왕봉부터 멀리 반야봉, 가깝게는 삼정산(1261m) 조망이 가능한 곳으로 지난주에 잠시 언급한 ‘지리산길’의 출발점이자 삼봉산∼백운산을 경계로 도(道)를 달리한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더불어 변강쇠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녹색농촌마을로 인기몰이 마천면 오도재 정상의 변강쇠 공원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매동마을에도 ‘변강쇠 백장공원’이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강쇠가 이곳의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쓰다가 대방장승이 크게 노해 팔도 장승을 모이게 하고 벌을 내린 곳”이라는 것. 공교롭게도 이 이야기 역시 오도재와 벽송사, 그러니까 마천면 일대에 비슷하게 전해 내려온다. 산내면 대정리에 속한 매동은 소년대, 유평, 백장 등으로 조그맣게 나뉘는데 매동만 놓고 보면 50가구가 채 못 된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니 민박집도 여럿 되지만 간판을 내건 곳은 전무하다. 그저 여염집 살림살이와 밥상을 그대로 제공하는 셈이다. 주민들 대다수는 논농사를 포함, 표고버섯, 고사리, 고추, 감자,(하우스)상추, 가지 등을 재배하는데 고사리의 경우 전 농토의 30%를 차지하며 농가 전체 연 수익도 얼추 1억원 정도란다.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작물이다. ●“고시 패스 스무명도 넘어” 소문난 명당 바로 뒷산엔 실상사 말사인 서진암이 있는데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이길춘(65)씨는 “이곳에서 공부해 고시 패스한 사람이 스무 명은 될 것”이라 귀띔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보물 제40호 석등이 있는 백장암, 그리고 단일 사찰로는 문화재가 제일 많다는 실상사 등을 지척에 두고 있다. 비 피해, 눈 피해, 산사태 피해, 바람 피해 없이 매화처럼 곱고 강하게 견디어온 마을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이 이 근방을 붉은 피로 물들일 때도 용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교육열도 대단해서 현역 박사, 교수, 교사, 은행장까지 줄줄이 배출했다며 이길춘씨의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장직을 맡기도 했던 이씨는 도지사에게 편지를 써 마을 앞에 직행버스가 정차하도록 했고, 마을회관 앞 주차장 공사나 녹색농촌테마마을 지정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재춘(59)씨는 매동은 물론 산내면 일대를 손금 보듯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내리 13대째 살고 있는데다 1967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40년간 집배원으로 일한 덕이다. 짬짬이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도맡거나 편지를 대신 읽어주기도 했는데 군대에서 보낸 아들의 편지 앞에선 같이 울어버린 적도 많다. 오토바이는커녕 자전거도 없던 시절엔 ‘숙박구’라 하여 중간에서 잠을 자고 편지를 배달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토끼하고 발맞춘 시골골짜기”이다. 겨울엔 특히 더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3∼4㎞씩 걸어도 내다보는 이 하나 없이 “두고 가시오.”라는 목소리만 들려올 땐 서글퍼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일 뿐이지 대체로 산골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존경받는 직업이었다고 술회한다. 남편이 빨간 가방을 메고 산내면 일대를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아내 차금남(53)씨는 30년 가까이 한봉을 해왔다. 가난과 함께 성장했던 터라 근면 성실이 몸에 밴 부부다. 이씨는 아직도 푸른 제복을 입고 있다. 묵직한 가방은 진즉에 내려놓았지만 그이는 요즘 태양과 땅과 바람과 빗줄기가 전하는 풍요한 소식들을 들고 논밭으로 향한다. 그가 대신 읽어줄 자연의 소리가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법도 하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2) 고달픈 나그네의 휴식처,주막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2) 고달픈 나그네의 휴식처,주막

    김홍도의 그림(1) ‘주막’이다. 짚으로 엮은 지붕 아래 왼쪽에는 주모가 구기로 술독에서 술을 떠내고 있고 옆에는 치마꼬리를 잡고 칭얼대는 어린 아들이 있다. 오른쪽에는 패랭이를 쓴 사내가 격식 없이 만든 밥상을 앞에 놓고 그릇을 기울여 마지막 한 술의 밥을 뜨고 있다. 국에 만 밥인가, 아니면 물에 만 밥인가. 이 사내가 쓴 패랭이는 대를 가늘게 쪼갠 댓개비로 갓 모양으로 엮은 모자다. 패랭이는 원래 여러 계층의 사람이 두루 쓰는 것이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대개 천민이나 보부상이 썼다. 보부상이 쓰는 패랭이에는 목화송이를 달지만 이 사내는 그것이 없다. 아마도 이 사내는 여행 중인 천민일 것이다. ●기둥에 초가지붕만 얹은 옥외공간이 ‘정석´ 패랭이 쓴 사내의 뒤에는 망건도 하지 않은 맨 상투의 사내가 입에 짧은 곰방대를 물고 주머니를 열고 있다. 아마도 밥을 먹은 돈을 내려나 보다. 한데 이 사내 역시 배꼽까지 내놓고 있는 것을 보아서 당연히 양반은 아니고, 패랭이 쓴 사내와 거의 대차 없는 신분일 것이다. 주모가 있는 곳 뒤에 창 같은 것이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건물일 터이다. 그것은 김홍도의 또다른 그림(2) ‘주막’에서도 볼 수 있다. 역시 주막 그림인데, 건물이 확실히 보인다. 갓을 쓴 양반이 마당에서 상을 차리고 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 다시 김홍도 그림(1) ‘주막’으로 돌아가자. 지금 주모가 있는 곳은 기둥에 초가지붕만 얹은 반 옥외 공간이다. 그리고 그 밖에 싸리로 엮은 담이 빙 둘러쳐져 있다. 이것은 익히 알고 있듯 주막이다. 이밖에 주막집 그림이 몇 점 남아 전하는데, 이 그림처럼 아주 간단한 형태를 띠고 있다.TV의 사극을 보면 주막집이라면 초가집이 몇 채가 있고, 가운데 마당이 있어 평상을 군데군데 펼쳐 놓고는 술손님을 받는다. 한데 그런 형태의 주막집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주막은 조선전기에 이미 있었다. 임진왜란 전을 살았던 유희춘은 1574년 경연에서 선조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경기도 일대의 숯막(炭幕)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곳인데, 도둑들이 쳐들어가서 협박하고 그 집을 불태웁니다. 서울 안에서도 밤에 또한 도둑이 많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전부터 주막은 여행자들의 숙박처였던 것이다. 재미난 것은 여기서 주막을 숯막(炭幕)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주막은 숯을 굽는 곳이었던가? 이덕무의 ‘서해여언(西海旅言)’이란 기행문에 그 해답이 있다.“술과 숯은 발음이 서로 비슷하므로 술막(酒幕)이 와전되어 숯막(炭幕)이 된 것이다.” 술막이 숯막이 된 이유다. 조선전기 주막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좀 한심한 수준이었다. 윤국형이 쓴 ‘갑진만록’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중국은 방방곡곡 점포가 있고 술과 음식, 수레와 말을 모두 갖추고 있다. 비록 천리 먼 길을 간다 해도 단지 은자 한 주머니만 차고 가면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그 제도가 아주 편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백성은 모두 가난하여 시전이나 행상 외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직 농사로만 살 뿐이다. 호남과 영남의 대로에 주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것은 술과 물, 꼴과 땔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길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가는데, 먼 길일 경우 말 세 마리에 싣고 가까운 길이라도 두 마리 분량은 되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괴로워한 지가 오래다. 경리(經理) 양호(楊鎬, 임진왜란 때 참전했던 명나라 장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중국을 모방해 연로에 점포를 개설해 그 지방 사람들이 물건을 대도록 했으니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습관을 바꾸기 어렵고 재력이 미치지 못하여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들지를 않았다. 수령들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중국 장수들이 지나갈 때면 관에서 물건을 갖추어 길옆에 진열하여 사고파는 듯 보여주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거두었으니, 도리어 아이들 장난만도 못한 짓이라, 중국 사람들에게 비웃음 사고 말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주막이란 술이나 물, 꼴, 땔나무를 공급할 뿐이고, 먹을 양식과 이부자리 같은 것은 여행객이 모두 갖추어가지고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주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역시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다. 전쟁의 상처가 가라앉고, 대동법 같은 상업을 자극할 수 있는 법령의 제정과 일본과 중국을 잇는 중계무역의 발달, 그리고 농업에서 발생한 잉여 등이 상업을 자극하자, 물자의 이동이 보다 활발해졌던 것이고, 이에 여행객에게 술과 음식,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는 주막들이 제법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김창흡은 1702년 호남 일대를 여행하는데, 천안의 주막에서 아침을 먹고는 주막에서 여행객들에게 팔기 위해 늘어놓은 떡과 술을 보고 곡식을 쓸데없는 데 허비하는 해로움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주막이 술과 떡으로 행인을 유혹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끝난 뒤 본격 성업 이제 직접 주막을 이용한 사람의 기록을 보자. 평민들이야 기록을 남길 리 만무하니, 양반 두 사람의 경우다. 신정(申晸,1628∼1687)은 1671년 9월1일 암행어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임무 수행지가 영남으로 정해진 것은 14일이었고, 그는 그날 출발한다. 그의 암행어사 수행 일기인 ‘남행일록(南行日錄)’을 읽어보면 주막에서 잔 기록이 나온다. 그는 15일 숙소를 새벽에 출발하여 지금의 판교 주막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다. 점심은 용인 어증포 주막에서 먹고, 그 날 밤은 금량역(金梁驛)에서 잔다. 역에서 잔 것은 그가 암행어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민간에서 여러 날 묵는다. 그러다 20일에 조령 고사리(高沙里) 주막에서 아침을 먹었고, 점심 때는 다시 용추의 주막에 들른다. 송상기(宋相琦,1657∼1723)는 신임사화 때 소론의 탄핵을 받아 1722년 1월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는데, 이때의 기록이 ‘남천록(南遷錄)’이다. 그는 1월2일 한강을 건너 과천에서 하루를 자고,3일 정오에 미륵당 주막에 도착하여 밥을 먹고, 그 날 밤은 수원에서 잔다. 이후 간간이 주막에 들른 이야기가 나온다.8일에는 이산(尼山)의 수령 윤의래가 경천(景天)의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날 이산의 주막에 도착했다고 한다. 또 9일에는 오목(五木) 주막을 지나다가 우연히 상경하는 이보혁을 만나 주막에 들렀고,10일에는 참례(參禮) 주막으로 송사윤이 찾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잠은 주막 아닌 민가에서 잘 수도 있지만 식사는 주막에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도적 출몰 잦아 골머리 앓기도 주막은 교통의 요지에 있기 마련이고, 그곳에 들르는 사람은 상인이나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강도가 노리는 곳이기도 하였다.‘영조실록’ 32년 윤9월 5일조에 의하면, 창과 칼로 무장한 도적이 성환(成歡) 주막에 돌입해 사람을 해치고 공주와 영동에서 상납하는 군포전(軍布錢)을 빼앗아 갔다고 하니, 그 사정을 알만 하지만 주막은 그 이름대로 역시 여관업이라기보다는 우선 술집이다. 여행객들이 한 잔 술로 피로를 푸는 것, 그것이 바로 주막의 본 면목이다. 조선 후기에 와서 사람들이 명승지를 찾는 유람이 유행하자 자연히 그런 곳에는 주막이 성행했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걸려들어 곤욕을 크게 치렀던 문인 이옥은 1793년 8월22일 민원모, 김려, 김선 등 친구들과 북한산으로 놀러가자는 계획을 세운다. 가기 전에 세 가지 약속을 하는데,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시를 지을 것, 산행을 할 옷차림을 하고 장비를 갖추었으니(장비래야 지팡이지만) 뛰든 구르든 어디를 가도 무방하지만 절대로 백운대는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산골짜기나 개울가에 다행히 주막이 있거든 술이 붉은지 누런지 묻지 말 것이며, 맑은지 걸쭉한지 묻지 말 것이며, 술 파는 여자가 어떠한지 묻지 말 일이다.…술을 마시기는 하되 석 잔에 이르는 것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탐승을 떠나기 전에 주막에서 술 마실 것부터 걱정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