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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크 불 대통령 취임

    【파리=박정현 특파원】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당선자(62)가 17일 제5공화국 제5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앞으로 7년동안 프랑스를 이끌게 됐다. 시라크 대통령당선자는 이날 낮 12시10분(한국시간 하오 7시10분)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엘리제궁에 도착,퇴임하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78)으로부터 국가비밀및 핵공격명령코드 등을 인계받았다. 그는 이날 하오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총리내각에서 지난 2년동안 외무장관을 역임한 알랭 쥐페(49)를 총리에 임명할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한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퇴임을 하루 앞둔 16일 프랑스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함으로써 고별인사를 했다.
  • 길옥윤의 투혼(외언내언)

    휠체어에 앉아 고국에서의 고별무대를 지켜보던 길옥윤씨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시한부 인생이었고 이 무대에는 오래전 이혼한 부인 패티김이 그의 대표작인 「이별」,「서울의 찬가」「4월이 오면」을 열창하고 있었다.국내서 마지막 콘서트를 갖고 싶다는 길씨의 소원에 따라 마련된 무대에 패티김은 미국·유럽순회공연을 취소하고 참여했다.공연명칭은 「길옥윤 이별 콘서트」. 지난해 6월의 이 무대는 세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남남이 돼 돌아선 이혼부부가 20년만에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 우리정서에는 좀 생소하긴 했지만 길씨의 한마디는 많은 여성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노래를 가장 열정적으로 불러준 가수』라면서 『우리는 몸만 끝났지,마음은 영원하다』고 했다.사랑과 이별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들려주는 듯했다. 작곡가이자 색소폰의 명연주자였던 길씨는 1천5백곡이 넘는 노래를 남겼다.「사랑하는 마리아」나 「이별」은 국민의 노래라고 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그가 암 선고를 받고 귀국한 것은 지난해 10월.병상에서 그는 불꽃같은 예술혼을 발휘,마지막 6개월동안 5백곡을 작곡했다.「나 이제 떠나가노라」라는 노래와 TV 드라마의 주제곡인 「작별」도 만들었다.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던 길옥윤의 작가정신은 치열했다.그는 행복한 작곡가로 불릴 것이다. 부산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는 부산시민을 위해 「부산찬가」를 작사·작곡해 부산시에 기증했다.「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항구/동백꽃 피고지는 정겨운 항구…/부산이여 영원하라」.휠체어에 의지한채 매일 두시간씩 2개월동안 병실 한구석에 설치된 건반을 두드렸다고 한다.그는 갔지만 그의 예술투혼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소프라노 김영미씨 고별무대/이 출국 앞둔 콘서트,6일 예술의 전당

    ◎자장가·아리아·각국 민요 등 노래 최근 국내 최초의 본격 자장가 음반을 낸 소프라노 김영미씨(41·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가 음반 출반기념 크로스오버 콘서트(6일 하오 7시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를 갖는다. 「사랑과 꿈의 밤」이란 부제를 단 이번 콘서트는 김씨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갖는 마지막 무대.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근하고 정감있는 음악회가 되도록 가곡,오페라 아리아외에 대중가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 들려준다. 레파토리는 자장가 음반 「서영이에게」에 실린 슈베르트·차이코프스키의 자장가와 「예쁜 아기 자장」(김영일 작사·김대현 작곡),이탈리아 민요 「한떨기 장미꽃」,오스트리아 민요 「에델바이스」,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주여 평화를 주소서」 등. 이밖에 패티김이 부른 「초우」,변진섭이 부른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를 들려주고 대중가수 박정운과 듀엣으로 조지 거쉰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중 「서머타임」을 부른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반주를 맡고 MBC합창단이 협연한다.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3)

    ◎월스트리트/국제금융 중심가서 「정오 콘서트」26년/고건축 벽조각과 현3대식 건물 조각물 조화 볼링 그린에서 힘차게 출발한 브로드웨이에 추진력을 달아주는 것은 월 스트리트다.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자본주의의 산파역이자 물질문명의 대명사로 불리는 월 스트리트와 약간 북쪽의 풀턴 스트리트에서 연결되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2백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브로드웨이를 동서로 떠받치고 있다. 북쪽 인디언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통나무 담(wall)을 둘러친데서 유래했다는 월 스트리트는 트리니티 교회와 마주하고 있는 브로드웨이 80번지(뉴욕은행)와 100번지(도쿄은행)사이 동쪽으로 5백여m 뻗어나간 폭10m도 되지않는 작은 골목길이다.고딕 양식의 웅장한 교회첨탑으로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정도로 트리니티 교회는 엄숙하게 월 스트리트를 내려다보고 있다.인간의 물욕에 대한 신의 심판을 가하는 형상이다. 뉴욕증권거래소와 연방준비은행을 중심으로 수많은 금융기관과 증권회사들이 몰려 있는 월 스트리트는 브로드웨이의 또다른 얼굴이다.하얀와이셔츠에 단정하게 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청년들과 무릎에 와닿는 우아한 투피스 차림의 단정한 아가씨들이 서류철등을 들고 골목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모습은 자유분방하고 느슨한 브로드웨이의 보통 모습과는 사뭇 큰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막상 미국인들에게 월 스트리트는 금융의 거리에 앞서 역사의 거리로 인식돼 있다.페더럴(연방)홀을 비롯,구석구석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체취가 흠씬 배어있다.그리스 신전처럼 8개의 석조기둥으로 전면을 장식한 이 홀은 1789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1년동안 대통령 집무실이자 연방청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건국초기 미국의 틀을 짠 곳이다.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둘레의 전시실에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선서할 때 쓴 성경책,집무책상등이 진열돼 있으며 중앙홀에는 의자들이 놓여있어 각종 공연이나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건물앞에는 워싱턴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 있어 또하나 월 스트리트의 감독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간 아래 펄 스트리트 모퉁이에는 워싱턴 장군이 자주 다녔다는 선술집 프론세스 태번이 있다.붉은 벽돌 3층집인 이 집은 1783년 12월 파리평화회의후 전쟁영웅 워싱턴 장군이 지휘권을 대륙회의에 반납하고 마운트 버넌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면서 부하들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했던 곳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본인은 그 빛나고 위대했던 활동의 무대에서 물러나려 합니다….이렇듯 위엄에 넘치는 대륙회의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작별의 인사를 드리며 아울러 본인의 임명장을 반납하고 모든 공직생활에서 물러나겠습니다』 ○2층엔 연설문 보관 ○…워싱턴이 연설했던 2층방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 낡은 연설문 종이 한장은 물러날 때를 아는 한 위인의 우렁찬 음성으로 후세에 남아있다.그러나 그로부터 6년후 워싱턴은 국민적 추대를 받아 초대 대통령으로 이곳에 다시 왔다.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인 이 집은 현관에 커다란 워싱턴 초상화와 독립당시 성조기를 걸어놓고 그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한편 브로드웨이를 건너 허드슨강 쪽으로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110층 높이의 쌍둥이 건물로 1973년 완공,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세계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그 파낸 흙으로 강을 메워 건설한 배터리 시티의 월드 파이낸셜 센터와 함께 월 스트리트를 압도하는 새로운 금융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트리니티 교회와 그 두 블록 위쪽의 세인트 폴 교회가 있다.세인트 폴 교회는 1766년 트리니티 교회 지교회로 설립됐으나 모교회가 두차례 허물어지는 동안에도 굳건히 버텨와 맨해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교회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예배도 트리니티 교회의 화재로 이 교회에서 행해졌다. 두 교회의 위치를 유심히 보면 재미있다.트리니티 교회가 월 스트리트를 내려다보고 있듯이 세인트 폴 교회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내려다보고 있다.즉 트리니티 교회 강대상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세인트 폴 교회는 강대상이 서쪽을 향해 나있는 것이다.2백년후의 상황에 맞게 향이 반대로 지어진 것을 보면 이곳에도 풍수지리와 비슷한 신의 계시가 있었나 보다. 1792년 이곳 플라타너스 나무밑에서 24명의 브로커들이 모여 시작한 이래 세계각국의 2천여개 상장 주식에 4천7백만 개인주주와 1만여 기관투자가를 거느리는 세계최대 증권거래소로 성장한 뉴욕증권거래소는 견학코스를 마련,증권의 모든 것을 이해시키고 마지막에는 중앙홀의 거래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회랑으로 안내한다. 각기 50여개의 텔레비전 모니터와 20여개의 시황안내 로보트팔을 갖고 있는 7개의 커다란 기둥이 서 있으며 그 주위에 기능에 따라 빨간색·청색·녹색·하늘색 재킷을 걸친 브로커들이 세계의 주가를 요리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중앙홀은 긴장감과 열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가 브로드웨이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역사 때문도 금융 때문도 아니다.어느곳 못지않게 살아 숨쉬고 있는 예술성 때문이다.특히 세인트 폴 교회의 「눈데이(정오) 콘서트」는 이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신성모독을 자비로 다스리는 위대함이다. ○5백여 관중석 “만원” ○…23일 낮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러시아 음악을 베이스 아나톨리 판초스니의 노래와 릴리야 코보트코바의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는 눈데이 콘서트의 현장은 5백여석 교회 의자가 꽉찰 정도로 성황을 보였다.샐러리맨도 관광객도 쇼핑객도 고급연주의 클래식 음악을 이같이 생활의 일부로 할 수 있음은 브로드웨이만의 축복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오 교회에서 맨해튼의 중견 연주자들을 초청,한시간씩 클래식 연주회를 갖는 눈데이 콘서트는 26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3개월치씩 인쇄돼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30일에는 앤젤리스 현악 4중주단의 하이든곡 연주,내달 2일에는 영콘서트 아티스트상 수상자인 마코토 나쿠라의 마림바(목금의 일종) 연주와 마리아 마틴의 플루트 연주,21일에는 특별 오페라 순서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중에서 「발퀴레」1막 공연등 다양하게 계획돼 있다. 이 지역에 살아 숨쉬는 또하나의 예술성은 조각품에서 발견된다.브로드웨이 양편에 늘어선 고건축물들의 벽 장식조각에서부터 현대식 건물들앞에 세워진 현대조각까지 다양한 조각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도리아식 기단을 8층까지 올리고 사이에 수많은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운 벽면에 파라오의 벽화를 조각한 AT&T건물(195번지),역시 도리아 양식에 8개의 여신상을 2층기단에 세워놓은 도쿄은행 건물등 구석구석을 모두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한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동그란 구멍이 뚫린 빨간 정육면체를 모로 세운 브로드웨이 140번지 머린 미들랜드 뱅크 사옥앞의 이삼 녹치 작품 「레드 큐브」는 이지역 현대조각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체이스 맨해튼 은행 앞에는 거대한 4개의 버섯모양인 뒤뷔페의 「포 트리」와 역시 이삼 녹치의 「물위의 정원」등이 있다.특히 연방준비은행 옆 루이스 네벨슨 광장은 검은 철골 7개로된 「셰도우 앤드 플래그」조각이 서 있으며 작가의 이름을 따서 가로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유명하다. 한편 월드 트레이드 센터 쪽으로도 네벨슨의 「스카이 게이트」를 비롯,프릭 쿠닝,호앙 미로,다니엘 맨체스터등 세계적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잡아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이 거리에 늘 생동감을 뿜어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는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20년래 오피스빌딩의 첨단화로 사무실의 지리적 원근개념이 없어지면서 20개 대형 증권회사중 1개만 남고 모두 이곳을 떠났고 딴 금융회사들도 떠나려 하고 있다.이곳의 낡은 건물로는 첨단설비가 어렵고 임대료도 비싸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떠나간 금융회사들을 월 스트리트로 다시 불러들이고 더이상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보려 5년동안 부동산 취득세와 영업세를 대폭 감해주고 건물 신축 및 개축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21세기 새로운 브로드웨이 건설의 원동력인 월 스트리트의 대변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 당신의 미래는 방송에 있다/강용식 지음(화제의 책)

    요즘의 비디오 크기만한 녹음기를 둘러메고 방송기자로 입문했던 지은이가 파란많았던 60∼70년대 자신을 포함한 일선기자들의 취재담을 모은 책. 현재 민자당 의원인 지은이는 지난 64년 TBC 공채 1기로 입사해 85년 KBS 보도본부장을 떠나기까지 20년간 꼬박 방송 외길을 걸었다. 때문에 책속에는 화면하나,목소리하나라도 더 따려고 숨가쁘게 뛰는 방송기자들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의 해프닝이 옆에서 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판문점 장군 휴게실에서 CATV를 훔쳐보며 눈발날리는 현장의 기자들보다 생생한 보도를 한 푸에블로호 납북자 송환,단파수신기로 납치범과 공항타워간의 대화를 깨끗이 도청해 「한줄기 빛」같은 뉴스를 낸 요도호 비상착륙 등 큼직한 사건에 얽힌 특종담이 흥미를 더한다. 이밖에 김종필 전총리 내외와 함께 육영수여사 묘지에 들른 「가봉」의 「봉고」대통령을 바꿔 말하지 않는데 신경쓰다 「김총리 부인 육영수여사」라고 해 문책당한 모 아나운서와 TBC 고별생방송에서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부르다 오열하는 바람에 3개월 출연정지를 당한 여가수 등 지난시절의 씁쓸한 단면도 엿볼수 있다. 중앙일보사.5천원.
  • 일 진주만공격 선전포고/대사관실수로 전달지연

    ◎일 기밀해제 문서공개로 드러나/주미공관서 본국지시사항 경시/「긴급」 이행않고 직원송별연 참석 일본은 2차대전 당시 하와이 진주만 공격에 앞서 미국에 선전포고문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사전연락을 받지 못한 워싱턴의 주미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자리를 비워 제시각에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20일 기밀해제된 문서에서 드러났다. 이문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다음날 상오중에 공격시한을 알리는 긴급전문과 선전포고문의 마지막 부분을 발견했으나 타이핑이 늦었던데다 교정을 보느라 공격 개시 한시간 뒤에야 미국측에 전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항공모함의 비행기를 이용,41년 12월 7일 진주만에 기습공격을 감행,비행기 1백20대와 전함 19척을 파괴시키고 2천4백명을 숨지게해 미국이 2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 외무성의 야부나카 미소지씨는 이문서와 관련 지금까지 워싱턴의 대사관 직원들의 사무착오때문에 협상의 공식중단을 알리는 통지문의 전달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져왔다면서 이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이들뿐만 아니라 일본 외무성과 당시 주워싱턴 대사관측간에 이해차가 있었음이 드러났기때문에 외무성 전체가 이문제에 책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밀에서 해제된 이문서들은 당시 대사관 직원들이 전후에 작성한 회고록들로 구성돼 있다.일부 문서간에는 모순되는 점이 있지만 외무성 관리들은 이번에 공개한 문서들이 진주만 공격직전 최후의 시각에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유일한 정부의 공식기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문서들은 21일중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문서들은 협상을 중단하는 선전포고문의 대부분의 암호가 해독된 뒤에도 「긴급사항」을 지시하지 않아 대사관 직원전원은 고별파티를 하기위해 중국식당에 참석했다고 기록했다.호리우치 마사나 당시 공보관은 『우리 모두는 비상사태에 우리가 대비할 수있게끔 경보전보가 올줄 알았다』고 쓰고 있어 사전에 일본 본국과 대사관측간에 진주만 공격에 대해 연락이 취해지지 않았음을 내비치고 있다.
  • 가요계/휴면기 가수 컴백 뜨거운 겨울 예고

    ◎김건모·심수봉·「015B」 등 곧 활동 재개/신승훈·변진섭·박미경은 가을부터 시작/사탄소동 휘말린 「서태지…」 국내 활동 중단 찬서리가 내려 낙엽이 지고 겨울이 와도 가요계는 뜨거울 것같다.가을과 함께 일부 가수는 떠났지만 겨울과 함께 대형 가수들이 잇따라 돌아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활동을 재개할 가수는 김건모·심수봉 그리고 그룹 「015B」.가을과 함께 활동을 재개한 가수는 신승훈·변진섭 그리고 박미경 등.반면에 그룹 「전람회」는 낙엽과 함께 떠났고 사탄소동을 겪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겨울이 오면서 우리곁을 비켜섰다. 돌아온 가수중에 가장 주목되는 가수는 김건모.올 초 가요계를 휩쓸다가 여름과 가을동안 활동이 뜸했지만 다음 달 초 3집 음반을 내면서 방송활동등을 재개,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를 계획이다.노래는 여전히 흑인음악이지만 레게 위주에서는 탈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015B」도 다음 달 초 5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가요계의 정상을 겨냥한다.지난해 「신인류의 사랑」으로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에 신세대 바람을 일으켰던 이 그룹은 반년여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중년 가수 심수봉도 이 계절이 가기전에 돌아올 가수.오는 25∼27일 단독 콘서트를 갖고 활동을 재개한다.「아이야」등 신곡을 담은 새 앨범도 곧 출반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신승훈과 변진섭은 이미 가을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있다.신승훈은 지난 9월 4집 음반 「그후로 오랫동안」을 내면서 6개월만에 방송 출연등 다시 무대에 선 가수.10월 2∼3일에는 개인 콘서트도 가졌다. 현재 활발한 방송출연을 하고있는 변진섭은 지난 9월 6집 음반 「니가 오는 날」을 내면서 서울과 부산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련했다.변진섭은 2년여만에 새 음반을 내고 1년여만에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10월 중순에 3년만에 2집 음반 「이유같지않은 이유」를 내면서 댄스풍의 노래로 인기를 얻고있는 박미경도 3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가수.박미경은 「민들레 홀씨되어」와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으로 인기를 얻다가 표절시비로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었다.신승훈의 「그후로 오랫동안」은 이미 상당한 인기를 얻고있으며 변진섭과 박미경의 신곡도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슈퍼스타없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있는 가요계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지가 주목되고있다.가요종사자들은 돌아온 스타들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요계에 바람을 일으켜주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 「기억의 습작」으로 인기정상을 구가하던 그룹 「전람회」는 지난 10월 말 방위입대로 당분간 활동을 중단했다.또 야심적인 복귀를 꿈꾸던 「서태지와 아이들」도 새 음반이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엉뚱하게 사탄소동에 휘말리자 국내활동을 중단한 상태.앞으로는 일본에서의 활동에만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내년 1월 국내활동을 당분간 중단하는 고별 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다.
  • “넌 아직 할일이 많잖아” 통곡/박용현 사회부기자(현장)

    ◎숨진 무학여고 이연수양 고별미사 『연수야,어린이같은 순수함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불같은 정열로 그림을 그리던 너.지금 간다는 건 너무 억울해.넌 아직 할일이 많잖아』 성수대교붕괴 참사로 꽃망울을 터뜨려보지도 못한채 세상을 떠난 이연수양(17·무학여고2년)의 고별미사가 열린 23일 상오8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천주교회. 떨리는 목소리로 조사를 시작한 급우 김유지양(17)은 이내 말끝을 흐리며 울음을 삼켰다.소리없이 흐느끼던 어머니의 어깨는 더욱 심하게 떨렸고 주위사람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영안실에 안치돼있던 이양의 시신을 성당안으로 인도해온 동생 성규군은 누나의 영정과 십자가를 가슴에 꼭 부둥켜 안은채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꾹 다물었다. 미사를 집전한 나원균 주임신부는 노란 국화꽃 사이에 잠들어 있는 이양의 시신 앞에 향을 피우고 성수를 뿌렸다.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분노를 담고 있었다. 『이양의 죽음은 결코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다.이 시대,이 사회의 부정비리와 무책임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습니다.우리가 올바른 정치,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낼 때에만 연수양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신부는 『주일마다 이자리에서 기도하던 연수양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게됐지만 연수의 모습과 깨끗한 마음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사는 30여분만에 끝났다.줄곧 부인을 부축하며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딸을 지켜보던 아버지 이식천씨(46)도 나신부가 건네는 위로의 말에 끝내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갔다. 이씨 부부가 딸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하기 위해 주저앉을 듯한 발걸음을 옮겨 영구차에 오르자 차량행렬은 장지인 경기도 용인군 천주교 묘지로 떠났다. 하늘은 이양의 영혼을 맞이하려는 듯 티없이 맑았다.남아있는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했다. 『주님 품에 안긴 한마리 양처럼 편안히 쉬거라.부디…』
  • 정명훈감독 “서글픈 승리”/바스티유와 협상 마무리 “안팎”

    ◎배상금·가을공연 지휘권 찾아 명예회복/소송과정서 정신적 상처… 향후 활동 주목 정명훈씨 해임파동은 7일 정씨와 바스티유 오페라측이 해결방안에 합의를 이뤄냄으로써 20여일 만에 완전히 종결됐다. 양측 합의의 기본정신은 계약서가 유효하다는데 있다.이점은 계약서의 무효를 주장해온 바스티유 오페라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정씨에게는 사법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바스티유 오페라측은 유효한 계약서의 내용 가운데 계약파기조항을 들어 계약을 파기했고 정씨는 대신 금전적인 배상을 받아냈다.바스티유 오페라로서는 당초의 의도대로 정씨 해임을 관철할수 있게 돼 만족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일만 하다. 정씨는 법적인 승리와 배상금외에 오는 19일 개막되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공연을 할수 있어 음악감독으로서 모양새를 구기지는 않을수 있게 됐다.정씨가 1백25% 흡족함을 밝히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19일부터 10회에 걸쳐 공연될 예정이어서 정씨가 바스티유 오페라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정씨는 지난 89년5월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5년4개월 만에 시몬 보카네그라를 고별 무대로 중도하차하는 셈이다. 정씨가 받을 배상금은 2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이나 정씨는 구체적인 숫자 밝히기를 꺼린다.다만 바스티유 오페라측이 1천만프랑(15억원)을 제시했다고만 말하고 있다. 지난해 연봉이 6백30만프랑(한화 8억8천만원)정도로 알려지고 있어 배상금 1천3백만프랑을 훨씬 웃돌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소송은 당초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으나 항소에 들어간지 이틀만에 속전속결 형식으로 끝났다.이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정씨의 사건이 법적해결 보다는 협상을 통해 원만한 해결이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아래 협상을 중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씨측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소송이 진행되면서 바스티유 오페라측의 신임사장 취임예정자인 위그 갈씨는 정씨와의 임금협상 등의 내용을 밝히기 시작해 정씨에게 부담으로 작용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정씨는 언론에는 『위그 갈씨와 임금협상과정에서 한푼도 안받고 일할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으나 정작 위그 갈씨는 정씨가 2000년까지의 봉급 4천만프랑의 10%는 삭감할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등이다. 또 지난 5일 연주가 노조가 파업찬반에 대한 투표결과 부결시킨 것도 정씨에게는 맥빠지게 하는 대목이다. 정씨는 사법적인 승리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송과정에서 「2급 지휘자」라는 폄하를 당하는등 음악가로서 상처를 입었다. 이런 실추된 이미지를 그가 극복해 유럽의 무대나 다른 국제무대에서 빠른 시일내에 다시 설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정씨,“모국위해 일할 방법 모색”/국립교향악단 창단 구체화 가능성/향후거취에 관심 쏠려 가을시즌 개막작품인 「시몬 보카네그라」(베르디 작곡)의 지휘를 끝으로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을 떠나기로 결말지어진 「정명훈 사태」에 대해 국내 음악계는 무난한 선에서 마무리되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찌됐든 정명훈씨는 지난 89년부터 몸담아온 바스티유 오페라극장과 결별하게 돼 그 이후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의 정씨 측근은 8일 『외국의 유명 악단들로부터 초청제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1∼2년간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면서 『다음달 잠시 귀국,팬들의 성원에 감사함을 표시하고 한국 음악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씨 자신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바스티유 극장에서 물러난후 여가가 나면 후진양성 등 한국 음악계 발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이 때문에 다소 성급한 추측이긴 하지만 정씨가 이 기간중 국내 음악대학의 강의를 맡거나 그동안 여름마다 잠깐씩 호흡을 맞춰온 청소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지도활동을 강화할 지 모른다고 점치고 있다. 또 정씨로 인해 국립교향악단의 창단이 구체화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정씨의 「예기치 않았던 장기간의 휴가」가 한국 음악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베를린 적군 기지/러,독에 정식 인도

    【베를린 로이터 연합】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동독에 주둔하고 있었던 전소련군 서부군단 사령관 마트베이 불라코프 장군이 25일 이곳에서 개최된 의식석상에서 마지막 적군기지중 하나인 베를린의 칼스호르스트 기지를 테오 바이겔 독일재무장관에게 정식으로 인도했다. 유럽의 제2차 대전은 지난 45년5월8일 나치독일군 장성들이 칼스호르스트기지에서 무조건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끝났으며 그후의 냉전상황에서 한때 공산동독에는 33만8천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1천8백명의 러시아군은 오는 31일 베를린에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총리가 참석하는 정식고별식이 개최된후 독일을 떠난다.
  • 러시아 태생 세계적 지휘자 로스트로포비치 연주가로 “새출발”

    ◎17년 몸담은 미 「내셔널 심포니」 떠나/97년까지 첼로 연주계획 짜여 러시아태생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67)가 지난 17년동안 자신의 심혈을 기울여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키워놓은 미국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서방망명생활중 대부분을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보내왔는데 이제 그 악단장 자리를 떠나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내셔널 심포니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러시아에서의 연주회등 그에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일을 하기 위해 내셔널 심포니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로스트로포비치는 말한다. 그는 첼리스트 그리고 지휘자로서 1997년 9월까지 공연스케줄이 이미 빈틈없이 짜여있다.『휴가는 없다』고 그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있다. 『1분1분이 신에게서 받은 것이다.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로스트로포비치는 평소에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할 일이 너무도 많다.빈에서 두차례 그리고 스톡홀름 ·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각각 한차례 등 모두 5번의 오페라 지휘,신인 작곡가들의 작품 초연,젊은 음악인들과의 만남,필라델피아로부터 시작되는 미국순회공연 등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스케줄은 정선할 수 밖에 없다.신이 내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몇년이나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내 나이 67세는 너무 많다』고 그는 말한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하루에 취하는 수면은 불과 3∼4시간.나머지 시간은 모두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그는 빈틈없이 그리고 열심히 삶을 즐긴다.그의 삶은 음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그가 구사하는 자유롭고 풍부하고 개방된 언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의 친구들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러시아인 기질 그대로라고 말한다.그래서인지 그는 느닷없는 행동을 잘 한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질 때 그는 혼자 첼로를 들고 나타나 그 폐허속에서 바흐를 연주했다.작년에는 그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보수파 의원들을 국회의사당에서 몰아낸지 며칠만에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료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조국 러시아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그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나기에 앞서 15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행한 고별연설을 통해 미국국민들을 향해 러시아에 공산주의이후의 경제운용방법을 가르치려고 하기전에 인도적인 지원부터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면서 소련공산주의 붕괴후 러시아를 자주 찾았을 땐 미국대사와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지난 17년간의 미국망명생활중에는 러시아의 문화사절이 된 기분이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또 러시아에 대한 실망감이 들때에는 『언제나 차이코프스키,무소르크스키,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푸슈킨을 떠올리며 「아니야,훌륭한 나라야」라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 고 김호길총장 영결식 엄수

    【포항=이동구기자】 동료교직원과 체육대회중 사고로 숨진 고 김호길포항공대총장의 영결식이 4일 상오 포항공대학교장으로 엄숙히 치러졌다. 포항공대 강당앞 광장에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상오7시30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념을 시작으로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는 김영삼대통령의 조의전문낭독과 고인의 약력소개,장수영장례위원장(부총장)의 고별사,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유해는 경북 안동군 임동면 지례리에 안장됐다.
  • 「증인채택」 심야협상도 무위로/「국조」 등 줄다리기… 긴박한 여야

    ◎“현직은 절대불가” 마지노선 제시/민자/“50명 반드시 관철” 막판 강경선회/민주 국무총리임명동의안등 3개 안건의 처리는 여야의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29일로 미뤄졌다.여야는 임시국회회기 마지막날인 28일 이들 안건을 일괄타결하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공식·비공식접촉을 가졌으나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증인·참고인채택을 둘러싸고 진통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합의에 실패했다.이만섭국회의장은 이날 자정까지 열린 본회의에서도 야당의 반대로 원만한 처리가 어렵게 되자 직권으로 회기를 하루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이날까지 나타난 여야의 대립양상으로 미루어 이들 안건이 29일에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임시국회폐회시한을 불과 6분 남긴 밤11시54분 이만섭의장은 직권으로 임시국회회기를 하루 연장할 것을 상정,여야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뒤 곧바로 정회를 선포. 이의장은 이어 양당총무를 의장실로 불러 향후 의사일정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9일 하오2시에 본회의를 재소집하기로 결정. ○…이에 앞서 밤11시10분쯤 회의장에 입장한 이만섭국회의장은 『산적한 국내외현안을 해결하고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의 임무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면서 총리임명동의안과 국무위원해임안을 직권상정. 이에 민주당의 김대식총무,조홍규부총무는 차례로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로 인준동의안 처리를 지연. 김대식총무는 『상무대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이번 임시국회의 의제였다』고 주장. 조부총무는 『총리인준동의라는 중대한 문제를 굳이 밤이 깊은 지금 해야 할 이유가 뭐냐』면서 회기를 연장할 것을 의장에게 제의. 그러나 민자당의 현경대국회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정치선전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반복,더이상 합의가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 2건의 처리를 촉구. ○…민주당은 하오10시30분부터 의장실에 부총무단을 보내 총리임명동의안및 국무위원해임건의안만의 상정을 저지하는 한편 김대식총무가 민자당 이한동총무와의 총무회담을 요청,회기를 연장하자고 제의.그러나 이총무는 『더 할 얘기없다.의장결심대로 국조권을 뺀 두건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 ○…이날 하오9시부터 30분에 걸쳐 네번째 여야총무접촉을 가진뒤 민자당의 이한동총무는 『고별만남이었다.10시에 의장이 총리임명동의안과 각료해임안을 상정한다고 양당 총무에게 통보했다』고 말해 협상타결을 통한 회기내 안건처리가 사실상 물건너갔음을 시사. 이총무는 『최선을 다했으나 도저히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난항의 원인을 민주당측의 과도한 요구에 돌렸고 김대식총무는 『정치자금의혹을 규명하는데 정치인은 다 빼버린채 스님과 사업자들만 불러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역으로 민자당측에 화살. ○…이날 저녁 9시 총무회담이 결렬되자 이만섭국회회장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회담결과를 설명하고 『의장직권으로 국정조사계획서를 제외한 두가지 안건을 처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 이의장은 성명을 발표한뒤 『야당도 국정조사를 하자는게 목적이 아니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뒤 『당이 집단지도체제로 얽혀 의견조정이 어려운 모양』이라고 한탄. 이에 앞서 민자당의 이총무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민주당의 김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외부에서 세번째 접촉을 갖고 민자당의 최종방침을 전달. 이총무가 제시한 방침은 이날 청와대측과의 몇차례에 걸친 조율끝에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으로 『현직은 절대불가』라는 것.즉 노태우전대통령과 서석재전의원은 물론 김윤환·김영일 두 민자당의원까지 증인으로 채택할 수 없으나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이진삼전육참총장,정구영전청와대민정수석,이종구전국방부장관등 몇몇 6공인사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간접전달했다는 후문. ○…국정조사 증인채택과 관련,이날 하오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던 민주당은 하오6시를 넘어서면서 이기택대표등 당지도부의 강경한 뜻이 전달돼 다시 완강한 태도로 돌변. 이기택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은 이날 저녁7시 의원회관 2백16호 대표실에 모여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협상전략을 숙의. 이 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은 민자당이 의외로 증인문제에 완강한 모습을 보이자 당혹해 하면서도 『국회가 파국을 맞더라도 여론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면서 50명의 증인및 참고인채택을 반드시 관철시킬 것을 결의.
  • 신무용개척자 배구자 새롭게 조명/미래춤학회「우리춤 선구자」학술회의

    ◎본격활동 최승희보다 2년 빨라/“한국 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 월북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근대무용의 개척자 정도로만 알려진 무용가 배구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이 처음 이루어진다. 한국미래춤학회는 26일 하오2시 문예진흥원강당에서 「우리춤의 선구자를 말한다」주제의 학술모임을 갖고 배구자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갖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우리 근대춤의 효시가 과연 누구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서는 단국대 유민영교수는 미리 발표된 「신무용 개척자 배구자 누구인가」에서 배구자는 1905년 출생,11세에 일본의 대표적 곡예단인 덴가츠예술단과 함께 도일해 이 곡예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구자는 곡예단에 회의를 느껴 탈출했으며 미국유학차 1928년 4월 장곡천정공회당에서 고별음악무도회를 가졌고 이무대에서 한국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아리랑」과 함께 안나 파블로바작 「빈사의 백조」「집시댄스」등을 선보였다는것. 배구자는 이후 결혼으로 미국행을포기,1929년 배구자무용연구소를 세워 30대 후반까지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유민영교수는 최승희가 창작무용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배구자보다 2년뒤인 1930년이었고 발표회등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배구자보다 2년쯤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구자가 신무용의 선구대열에서 제외됨은 무용만을 고집하지 않은채 활동무대가 넓었고 활동도 지속적이지 못했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무용평론가 박용구씨는 배씨의 1928년 고별공연은 한국무용무대에선 처음으로 서양무용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무용을 소재로한 창작무용을 선보여 한국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와함께 『최승희가 무용의 예술적 순수성에 치중했다면 배구자는 대중속에 파고드는 직업성을 중시했다』면서 배구자의 업적과 예술관이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YS노믹스 1년의 「명과암」(문민정부 1년)

    ◎「신경제」 궤도진입… 경기곡선 지속상승/실명제로 투명경제의 발판 구축/4년만에 경상수지 흑자로 돌려/물가대책 오락가락… 오름세 못잡고 고전 경제부처가 모인 과천 정부청사.김영삼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과천청사의 분위기는 신경제의 출범으로 긴장했던 한해 전에 비해 부드러워졌다.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기획원 관료들의 표정도 한결 밝다. 과천의 분위기가 밝아진 것은 문민정부가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추진한 신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말해준다.한해 전만 해도 밑바닥을 헤맸던 경제가 지난 연말을 고비로 불황을 벗어나는 중이다. 새 정부 출범 직전인 92년 2·4분기 2.8%였던 성장률은 93년 1·4분기의 3·4%에 이어 2·4분기 4.5%,3·4분기 6.5%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지난 해 성장률은 5.3%로 추정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 성장률은 7%를 넘을 전망이다.이같은 불황탈출에는 엔고나 저유가 등 외부 요인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불황과 고별하고 경기곡선이 상승세에 들어섰다는 기대를 부풀게한다. 경제는 정치와는 달리 통치권자가 행정부를 닦달한다고 해서 곧바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그러나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김대통령의 의욕적인 주마가편은 경제정책의 내용과 스타일을 바꿔 놓았다. 취임 초인 3월3일 청와대에서 첫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이래 격주로 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열성적인 현장확인은 곧 「YS노믹스(경제학)」란 말을 낳았다.기획원 김태연차관보는 『당시는 경기가 곧장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았지만 취임 초의 1백일 계획과 신경제 5개년 계획 중 1차 연도의 성과가 최근의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YS노믹스 1년의 성적표는 명암이 엇갈린다.정부는 지난 한햇 동안 개혁과 경기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가한다.실명제를 비롯해 경제정의 구현을 위한 재정·세제·금융 등 경제제도 전반에 관한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9년 이후 내리 적자를 보였던 경상수지가 4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또 92년 4·4분기에 마이너스 8.2%였던 고정투자 증가율이 93년 4·4분기에는 14.5%를 기록하는 등 투자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주가는 새 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41.2%나 올랐다.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데다 부동산 가격의 안정,사상 최저수준의 금리 등에 힘입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YS노믹스 1년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들도 적지 않다.경기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회복으로 간주하기에는 미심쩍고,거시지표 전반으로 볼 때는 다소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물가문제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최대의 복병이다.연초부터 치솟는 물가는 지난 1년의 경제적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정도로 압박을 주고 있다.올들어 소비자물가는 1월 한달동안 1.3%나 올랐고 2월 들어서도 농산물과 개인서비스 요금을 중심으로 오름세를 계속하고 있다. 물가가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필요악」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현재와 같은 오름세가 지속된다면 그동안 쌓은 성장과 국제수지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지난 한햇 동안우리 경제의 열쇠이자 숙제는 개혁사정과 경기활성화라는 2대 명제의 조화였다.지난 해 8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YS노믹스의 개혁적 측면을 잘 나타낸다.한해를 회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경제적 「사건」이다. 전임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이 공약을 해 놓고도 똑같이 실패한 실명제의 도입은 김대통령의 개혁의지가 없고서는 불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실명제의 궁극적 목표는 금융소득의 종합과세이다.따라서 성패를 따지기는 이르지만 투명한 경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선경제제도 개혁,후경기활성화」의 목표 아래 신경제 5개년 계획상의 제도개혁을 먼저 시행한 뒤 1백일 계획 같은 활성화 대책을 실시했더라면 회복의 속도는 좀 더디더라도 확고한 성장의 기반을 다졌을 것이라는 반성도 있다.산업 각 부문의 자금지원을 염두에 둔 1백일 계획으로 돈을 풀고,물가가 오르니까 다시 강압적인 방법으로 억제하는 악순환이 이를 반증한다. YS노믹스 1년은 냉정히 보면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우세한 편이었다.2기 경제팀장인 정재석 부총리가 보다 경제논리를 갖추고 정책의 일관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지난 1년으로 족하다.지난 해의 경험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4년의 거울이 돼야 한다.아울러 최고 통치권자가 경제팀에게 책임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주고 올해 안에 2단계 경제개혁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월2백만원 과학공로연금 첫 수혜자/KIST 윤한식박사

    ◎「아라미드 섬유」 개발은 도전정신의 결실/“연구는 천직… 실험기회 게속 주어졌으면” 세계적 과학전문지「네이처」에 연구가 실렸고 한국 최초의 석좌연구원이며 월2백만원의 과학기술자 공로연금 첫수혜자….그의 앞에는 이런 수식이 붙는다.동안에 가냘픈 체격이지만 누구 보다도 대단한 연구에의 집념으로 뭉쳐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윤한식박사(65).85년 강철보다 5∼6배 강하지만 5배이상 가볍고,탄소섬유에 비해 4배이상 싼「기적의 섬유」아라미드섬유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한 그가 26일 과기연 존슨강당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정년퇴임을 한다. 『정년퇴임이 실감나지 않습니다.아직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연구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지만 『퇴직후 뭣보다 연구에 대한 실험기회가 줄어들 것이 아쉽다』고 밝힌다. 55년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교사및 작은 기업연구소 연구원도 거쳤다.67년 과기연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한뒤 줄곧 과기연에 몸담으며 84년에는 서울대 섬유공학과에서 지천명을 넘은나이에 늦깎이 박사가 됐다. 과기연에서 겪은 가장 큰 고비는 연구행태가 맞지않아 떠나려 생각한 79년.당시 연구비를 따내려면 여러분야의 연구가 불가피했다.따라서 전문분야 심층연구 보다는 백화점식 연구에 매달려야 했다.그러나 「연구는 천직」이라고 알고 있던 그는 극복했다.그 방법은 상상을 뛰어넘는 연구과제를 선정,도전해보는 것. 미듀폰사가 개발한 꿈의 섬유「케블라」를 국산화하는 것이 목표.결과는 대성공이었다.세계 처음으로 아라미드섬유를 개발해냈기 때문이다.이때 그만두었다면 아라미드섬유는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주로 응용분야에 연구를 하다보니 점점 기초분야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이제부터 그동안 연구해온「젤 크리스털(물과 고분자물질이 혼합돼 만들어지는 결정체)」과 관련된 기초과학의 연결고리를 찾아 논문으로 엮어볼 작정입니다』정년을 맞은 과학자는 이제부터 진짜 연구를 할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과기연 어디든 한칸 실험실이 마련되기를 기다린다.
  • 퇴역 미 전 합참의장 콜린 파월(뉴스 인물)

    ◎“강력한 이미지”… 정치할지 관심 미국 군인으로서 최근 십여년래 최고의 국민적 신뢰와 인기를 누렸던 콜린 파월 미합참의장(56)이 지난달 30일 퇴역,4년간의 합참의장직을 포함한 35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군문을 떠난 파월의장은 당분간 6백만달러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회고록 출판준비와 강연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보이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파월의 정계입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돌고 있다. 자메이카출신의 부모아래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이자 ROTC출신임에도 불구,흑인출신 최초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군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을 역임한 파월은 재임중 걸프전,소련의 붕괴등 역사적 사건을 맞아 전황과 군사력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민들에게 단순한 군인이 아닌 강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폭넓게 심어주었다. 한편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은 같은 날 파월장군에게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했는데 미국 흑인인사가 영국왕실로부터 작위를 받기는 그가 처음이다. 이에 앞서 가진 고별회견에서 파월의장은 『북한의 핵무기개발 노선은 마땅히 저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퇴임사 3분… “파문 진정됐으면”/김대법원장 퇴임식 이모저모

    ◎직원들 침통한 표정… “신뢰회복 계기로” 11일 열린 김덕주 대법원장의 퇴임행사는 25분만에 간략하게 종료. 그러나 이날 김대법원장의 짧은 퇴임식을 지켜본 법원관계자들은 그의 용퇴가 지난 7월 소장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요구 파동과 이번 재산공개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바람을 한결같이 피력. ○25분만에 끝나 ○…이날 퇴임식은 13명의 대법관과 각급 법원장등 법원 간부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퇴임사 낭독,꽃다발 증정 순으로 숙연한 분위기속에 9분동안 진행. 김대법원장은 10시 정각에 식장에 입장,기립박수로 맞이하는 참석자들에게 착잡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뒤 국민의례가 끝나자 미리 준비한 퇴임사를 3분가량 평소와 다름없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독. 퇴임사 낭독에 이어 여직원의 꽃다발이 증정되는 동안 대법관등 참석자들은 지그시 눈을 감은채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일부 참석자들은 간간이 고개를 떨구기도. ○조기수습 부탁 ○…김대법원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용퇴의 아쉬움을 밝힌뒤 자신의 사퇴로 사법부에 몰아닥친 재산공개 파문이 진정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 그는 특히 외압에 밀려 퇴진했다는 일부 여론을 의식한듯,『 지금의 모든 법관들이 정직,깨끗한 마음으로 법률과 양심에따라 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고 사법부의 독립도 어느때보다 보장돼 있다』고 강조해 눈길. 한편 이날 김대법원장의 퇴임식에는 법원간부들뿐 아니라 일반직원들까지 일손을 놓고 나와 침통한 표정으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으며 하루빨리 신망있는 후임 대법원장이 임명돼 사법부의 위기를 추스르기를 기대. ○…김대법원장은 퇴임식을 마친뒤 강당옆 귀빈대기실에서 김비서실장과 법원행정처 서성 기획조정실장만을 불러 5분가량 머무르면서 사법부 진통이 조기에 수습되기를 당부하는 의견을 거듭 천명. 그는 취재진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은 채 짧게는 2년9개월의 대법원장직을, 길게는 35년동안 법관으로 몸담았던 법관생활의 감회에 젖는 듯 한동한 창밖을 응시하기도. 이어 그는 대법원 현관앞에서 법원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대법원 정문까지 도열해 있던 법관들과 일일이 고별악수를 한뒤 한차례 손을 흔들어 보이고 승용차편으로 청사를 떠났다.
  • “에미 가슴 찢어놓고 어데 가노”/박상열 사회부기자(현장)

    ◎장례참석 경관들 “시위없는 하늘나라로” 『에미 가슴 찢어놓고 혼자서 어데로 가노…』 16일 상오10시.고 김춘도순경(27)의 영결식이 거행된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연병장. 영정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김순경의 어머니 유차분씨(59)의 흐느낌소리가 경찰악대의 진혼곡에 뒤섞였다. 이해구내무장관등 5백여명의 관계기관인사,동료경찰들,3백여명의 시민들은 아들의 주검앞에서 오열하는 유씨와 그 곁에서 소리없이 눈물만 떨구고 있는 아버지 김학용씨(59)의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삼켰다. 오열끝에 탈진한 유씨는 제1기동대 의무실장의 팔에 기대어 마지막 보내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느님 우리 춘도의 영혼을 따뜻이 보살펴 주시고 앞으로 이 땅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소서』 유씨는 몸을 가눌수 없는 상태에서도 한동안 기도를 계속했다. 『친구여,꽃다운 나이 그대의 소중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찬란한 디딤돌이 되도록 노력하려네…』 김순경의 가장 친한 친구인 고윤근순경(27)은 고별사를 읽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동지여,폭력학생도 저 세상에서는 용서하고 폭력시위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도록 굽어 살펴주소서』 여관구 서울경찰청장의 조사가 끝나자 15발의 조총이 발사되고 마지막 장송행진곡이 울려퍼지며 영결식은 끝났다. 이어 경찰들의 일제 경례를 받으며 김순경의 유해는 태극기로 덮은 붉은 관에 입관되었고 김순경이 밝은 미래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참으면서 피곤한 몸을 쉬었던 기동대숙소 앞마당을 한바퀴 돌아 대전국립묘지로 향했다. 『또 다시 김순경과 같은 불행한 경찰이 있어서는 안됩니다.젊음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무참하게 생명이 꺾이는 불행은 꼭 막아야 합니다』 눈물 속에 동료를 떠나보내는 제1기동대 이김수순경(25)의 한스러운 탄식이 오랫동안 기자의 귓가를 맴돌았다.
  • 「냉전시대 안보전략」의 퇴장/미 「스타워즈 계획」 포기 의미

    ◎소 붕괴로 「핵위협」 감소… 국지미사일 전환 미국이 전략방위구상(SDI: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미사일 요격망구축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냉전시대 안보전략의 명실상부한 종언을 의미한다. 레이건대통령시절인 지난 83년에 시작된 「별들의 전쟁」계획은 적국의 핵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우주공간에 이를 요격할 수 있는 무기체제를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아래 레이건·부시행정부가 10년동안 3백억달러를 투입한 방대한 사업이었다. 레스 애스핀국방장관도 13일 회견에서 밝혔듯이 미국에 대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핵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소련이 붕괴된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이같은 계획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클린턴행정부의 판단이다.미국은 그동안 레이건·부시 공화당행정부가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SDI계획의 추진및 완성이라고 주장한 반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스타워즈계획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함께 「국방비 절감을 통한 경제회복」을 공약한 클린턴 민주당행정부의 출범은 SDI시대의 고별을 일찌감치 예고해주었다. 애스핀장관은 스타워즈계획을 추진,감독해온 국방부 산하의 전략방위구상기구도 그 명칭을 탄도미사일 방어기구로 바꾸어 간판에 걸맞게 내용도 바뀌게 될 것임을 밝혔다. 애스핀장관이 구상하고 있는 미사일요격망구성의 2가지 목표는 ▲이라크가 걸프전 당시 사용했던 스커드와 같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차세대 무기 ▲장거리 미사일에 대항할 지상방위체제의 구축 등이다. 애스핀장관은 비록 SDI계획을 폐기하더라도 이미 행정부가 미사일요격망 개발을 위해 38억달러의 예산을 요구한 액수를 다시 수정할 생각이 없음을 비쳤다.사실 이 액수는 부시행정부가 계획했던 예산규모에 비해 25억달러나 줄어든 액수이다. 클린턴행정부는 미사일 요격망구성과 관련,▲전구미사일방어에 13억달러 ▲국지미사일 방어망에 18억달러 그리고 ▲연구비에 6억∼7억달러를 책정했다.부시행정부시절엔 국지미사일방어보다는 전구미사일방어에 더중요성을 부여,현재의 예산배정과는 대조를 이뤘었다. 이같이 국지미사일방어망 구축에 더 힘을 쏟는 것은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앞으로 10년내에 미국을 강타할 수 있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획득할 수 있는 테러국가들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동서양극의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지역간,종족간,종교간 분쟁이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마당에서는 전구미사일방어망보다 국지미사일방어망의 구축이 더 시급할지 모른다. 클린턴행정부의 SDI계획폐기선언이 한국의 안보에 특별히 영향을 미칠 일은 없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그러나 미사일 요격망구성과 관련,국지적인 방어망의 강화는 북한의 새로운 장거리 스커드 미사일개발에 적극 대응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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