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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연, “맘에 드는 남자에게 고백하면 성공률 80%” 5대 얼짱은 달라

    이주연, “맘에 드는 남자에게 고백하면 성공률 80%” 5대 얼짱은 달라

    이주연이 방송에서 당당한 매력을 뽐냈다. 고교시절 ‘5대 얼짱’ 출신 배우 이주연이 지난 6일 오후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먼저 연락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서 이주연은 솔직하고 내숭 없는 대화로 출연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주연은 고교 시절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 소개된 ‘5대 얼짱’ 1기 출신으로 유명하다. 5대얼짱 1기에는 배우 구혜선, 박한별 등이 함께 거론됐다. 이들은 얼굴이 예쁜 고등학생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인 얼굴짱의 줄임말 ‘얼짱’으로 불리며 원조 인터넷 얼짱 1세대로 거론됐다. 이주연은 “그때 날렸다. 지금보다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들이 제 얼굴을 5대 얼짱 카페에 올렸다. 그때 학교에 연예기획사 사람들이 캐스팅을 하려고 왔다. 그런데 저는 학생이고 끼가 없어서 도망을 다녔다.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 인생을 바꿨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연은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등교를 하면 남학생들이 다 몰려왔다. 저는 일반인이니까 미치겠더라.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것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다.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왜 즐기지 못했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주연은 연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이성의 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한다. 그러면 거의 80%가 넘어온다”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느낌이 온다”며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연애비법을 공개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연애코치’ 박나래 “얼굴 리모델링 전 모태솔로” 고백

    ‘연애코치’ 박나래 “얼굴 리모델링 전 모태솔로” 고백

    라이프타임 ‘밝히는 연애코치’ 박나래가 연애에서 100% 이기는 방법을 공개한다. 라이프타임 채널 ‘밝히는 연애코치’ MC 신동엽, 박나래, 홍석천, 한혜연, 임현주는 새봄을 맞이해 연애 잘 하는 법에 대한 솔직한 꿀팁을 전한다. ‘연애천재’ 임현주의 연애 DNA 존재설부터 ‘국민썸박사’ 박나래의 리모델링 자신감설까지 솔직한 고백이 쏟아질 예정. 박나래 연애코치는 “연애는 자신감이다”라며 썸탈 때와 연애할 때의 마음가짐을 담은 자신만의 사자성어로 현실 공감을 유발한다. 또, 임현주는 ‘경주 김씨 연애천재설’ 등 4차원 대답으로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후문. 또, 박나래는 “썸탈 때는 아님말고, 연애할 때는 어쩜이래, 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국민썸박사의 면모를 뽐낸다고. 한편, 이번주 ‘밝히는 연애코치’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홍석천의 집착하는 애인 대처법이 공개된다. 홍석천은 무엇이든지 같이 하고 싶어하는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이라는 사연자에게 맞춤형 3단계 연애조언을 건네 프로 연애코치의 면모를 뽐낼 예정. 라이프타임 채널 연애 상담쇼 ‘밝히는 연애코치’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공식계정 (@lovecoachtv)를 통해 다양한 연애 사연을 모집 중이다. 시청자들이 직접 보낸 연애 사연에 ‘연애고수’ 신동엽, 박나래, 홍석천, 한혜연 등 연애코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로 매 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라이프타임은 KT올레TV 78번, SK Btv 89번, LG U+ TV 83번, 스카이라이프 86번에서 시청할 수 있다.(케이블은 각 지역 케이블 문의) 티빙, 에브리온 TV, SK옥수수, LG유플러스 LTE비디오포털 등 OTT 서비스를 통해서도 시청 가능하다. ‘밝히는 연애코치’는 라이프타임 채널과 드라맥스를 통해 매주 일요일 밤 11시 동시 방송되며 코미디TV와 K STAR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모자지간 오해받는 23살 연상연하 커플의 러브스토리

    모자지간 오해받는 23살 연상연하 커플의 러브스토리

    모자지간으로 오해받는 23살 연상연하 커플의 러브스토리가 공개됐다.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 주에 사는 50세 여성과 그녀의 23세 연하 남편을 소개했다. 샤론 오스본(50)과 마크 오지(27)는 지난 2014년 크리스마스에 동네 맥줏집에서 처음 만났다. 샤론은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휴가를 낸 크리스마스였고, 내 친구는 나를 동네 맥줏집으로 끌고 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딸이 전남편 집에 가 있는데 안 될 게 뭐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운명적 이끌림이었는지 샤론은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 마크를 만났다.샤론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마크는 SNS와 문자메시지로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쳤다. 권투와 크리켓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한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샤론은 연애도 연애지만 마크와의 나이 차이에 기겁했다. 샤론은 “나는 이혼 후 1년간 홀로 지냈다. 연애에 뛰어들 생각도 없었지만 마크는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샤론에게는 마크와 10살 터울의 딸이 있었다. 샤론은 아들뻘의 마크에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사랑에 빠진 마크에게 나이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샤론의 망설임에도 마크는 꾸준히 샤론의 마음을 두드렸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두 사람은 한동안 비밀연애를 유지했다. 샤론은 “마크와 만나면서 마치 10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주변에 알릴 수 없어 딸에게는 늘 친구를 만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크와 데이트를 즐겼다”고 웃어 보였다. 얼마 안 가 비밀연애가 지겨워진 두 사람은 열애 4개월 만인 2015년 4월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애 사실을 털어놨다.샤론은 “우려와 달리 모두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줬다. 특히 딸 케이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노심초사했는데 딸 역시 마크를 좋아해 줬다”고 기뻐했다. 그녀는 자신과 동년배인 마크의 부모도 만났는데, 마크의 어머니는 샤론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아들의 사랑을 존중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한 번은 주소 변경을 위해 찾은 은행에서 모자지간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마크는 불 같이 화를 냈고 샤론 역시 기분이 언짢았지만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두 사람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고 거리낌 없이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샤론은 “우리가 거리에서 손을 잡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꽂힌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다”고 밝혔다.모자지간이 아니냐는 오해 속에서도 굳건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결혼으로 결실을 보게 됐다. 만난 지 꼭 1년 만인 2015년 크리스마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맥줏집에서 마크는 샤론에게 청혼했고 케이티의 새아빠가 되었다. 샤론은 “남편은 어리지만 나에게 완벽한 남자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매일 잘생긴 젊은 남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단지 내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샤론과의 사이에서 아기를 간절히 원했던 마크는 “우리 사이에 아기는 없겠지만 나는 케이티를 누구보다 훌륭한 딸로 키울 것”이라면서 “샤론은 내 인생에 유일한 사랑”이라고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여자 비명소리 지켜보기만”…버닝썬 VIP룸 성추행 증언

    “여자 비명소리 지켜보기만”…버닝썬 VIP룸 성추행 증언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7일 방송을 통해 강남 클럽 ‘버닝썬’의 각종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먼저 강남클럽에서 은밀하게 사용된다는 수상한 마약에 대한 피해 여성들의 진술은 놀랍게도 똑같았다. 갑자기 기억을 잃는 이 수상한 마약 때문에 끔찍한 일을 겪은 여성들은 약물검사 결과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버닝썬에서 ‘물뽕’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은 “술을 잘 마시는 편인데 남자 한 명이 건넨 위스키 한 잔을 마셨는데 이상했다. 함께 간 동생에게 ‘오늘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근데 눈을 떠보니 호텔 침대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침대에 앉아있었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는 생각도 안 들었던 것 같다. 태국 남성과 둘이 있었다. 성폭행 시도를 하는 거다”라고 고백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태국 남성을 처벌할 수 없었다.성폭행을 피해 호텔방을 빠져 나오기 직전 태국 남성의 강요에 의해 사진을 찍은 것이 빌미가 됐다. 기억을 잃은 시간 동안 피해 여성이 멀쩡하게 걸어서 남성과 호텔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CC(폐쇄회로)TV에 찍혔기 때문이다. 전직 마약 검사인 김희준 변호사는 “몸을 가누지 못할 상태로 마비되는 건(물뽕이) 과도하게 투여 됐을 때”라며 “적절한 용량으로 투약 됐을 때는 본인만 기억을 못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히로뽕이나 대마는 통상적으로 소변에서 1주일, 모발에서 6개월까지 감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뽕은 12시간 이내 길어봐야 24시간 이내다. 현재 감정 기법 상으로는 검출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최근 ‘버닝썬’과 관련된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성추행 동영상과 관련해서 제보자 A씨는 “동영상 속 남성이 VIP룸 단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룸은 고정적으로 5~6명이 잡았다. 2층 올라가면 힙합 존과 바로 옆에 그 (VIP)룸 하나밖에 없다”라며 클럽 내 은밀한 위치에 VIP룸이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버닝썬에서 일한 적 있다는 B씨 역시 “그곳은 진짜 은밀한 룸”이라며 “그곳에 가드를 배치한 이유는 일반 손님이 못 들어가게끔 하기 위해서다. 가드는 안에서 피 터져서 싸우거나 성폭행을 하든 관심 없다. (가드는) 여자 비명이 나도 ‘비명이 나나 보다’하고 지켜보고 있고, 일반 손님이 못 들어가게 통제하는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 촬영 및 유포 경위에 대해 버닝썬 운영진 측이 알고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전직 클럽 MD 출신 C씨는 JTBC에 “지난해 말 해당 동영상이 떴다”며 “이 동영상은 매스컴에 뜨기 전부터 계속 돌았으며 클럽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클럽에선) 취한 여자 데리고 테이블에 올리라고 하는 게 있다. 일부의 일탈이긴 한데, 대표급 이상 업장 운영진 쪽에서는 절대 모를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약류 유통 및 투약 혐의를 받는 중국인 MD 애나에 관해서도 다뤄졌다. 한 제보자는 “손님들한테 여자를 보내주고 대신에 돈 받고 갔다”며 애나의 성매매 관여 사실을 전했다. 이어 “애나한테 테이블을 잡는 애들은 말 안되는 부자들이다. 애나가 거의 하루 2000만원씩 벌었다는 건 하루에 술값으로 몇억을 팔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류담, 외모 변천사 보니..‘부티나는 외모 등장’

    류담, 외모 변천사 보니..‘부티나는 외모 등장’

    류담이 몰라보게 변신한 모습으로 근황을 전한 가운데 그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됐다. 7일 개그맨 출신 배우 류담이 40㎏ 폭풍감량으로 화제를 모았다. 류담이 다이어트에 성공해 그의 변천사가 눈길을 끌고 있고 있는 것. 류담은 과거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 짐승돌vs짐승들 특집에서 “최근 다이어트에 성공해 몸무게가 101.2kg이다”고 말했다. 이날 류담은 “사실 난 잘생겨서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 ‘달인’ 처음 시작했을 때는 72kg였다. 그러나 ‘달인’ 코너를 하면서 약 30kg가 쪘고 120kg까지 쪘다”고 고백했다. 이에 신봉선 역시 “20대 초반 류담을 봤을 때는 정말 훈남이었다. 부티가 났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노우진은 “류담은 ‘달인’ 회의 때 움직이지 않는다. 야식을 시켜놓고 회의를 하면 그거 먹고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폭로했다. 한편, 2003년 KBS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류담은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 ‘달인’ 등 코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미국 유명 TV퀴즈쇼 ‘제퍼디’ 진행자 고백 “췌장암 말기 투병 중...싸워서 이길 것”

    미국 유명 TV퀴즈쇼 ‘제퍼디’ 진행자 고백 “췌장암 말기 투병 중...싸워서 이길 것”

    “췌장암 예후가 나쁜 암이지만 이것과 싸우려 한다. 가족·친구들의 사랑과 성원, 함께 기도해주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 병의 낮은 생존률 통계를 이겨낼 계획이다.” 미국 ABC가 1984년부터 방영해온 유명 퀴즈쇼 ‘제퍼디’ 진행자 알렉스 트레벡(78)이 6일(현지시간)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자신이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끝까지 쇼를 진행하며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며 강한 투병 의지를 드러냈다. 미 암학회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률은 9%에 그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은 악성종양의 대표적인 질환이다. 마이크 홉킨스 소니픽쳐스텔레비젼 회장은 이날 성명을 내 “암 투병을 극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알렉스일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밝혔다. 트레벡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투병 소식을 전하면서도 유머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사실 방송국과의 계약 때문에 나는 제퍼디를 3년 더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니 도와달라. 지지해달라. 우리는 이길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투병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30년간 퀴즈쇼에 출연했던 우승자들과 그의 쇼를 즐겨보는 유명인사, 다른 TV프로그램 진행자들은 트레벡을 향해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미 NBC와 CBS에서 방영되는 유명 게임쇼 ‘운명의 수레바퀴’ 진행자인 팻 사삭은 트위터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면서 “우리의 마음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보다도 강하다. 우리 모두, 그리고 나라 전체가 널 지지하고 있어, 알렉스”라며 쾌유를 빌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동영상]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 美상원의원 청문회에서 “상관에게 성폭행”

    [동영상]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 美상원의원 청문회에서 “상관에게 성폭행”

    미국 최초로 교전에 임한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 유명한 마사 맥샐리(52·공화·애리조나) 연방 상원의원이 공군 복무 시절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맥샐리 의원은 6일(현지시간) 군대 내에서의 성폭력 예방과 대응을 주제로 한 상원 군사위 소위 청문회 도중 한 피해자와 문답을 나누는 과정에 “나도 당신처럼 군 성폭력 생존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용기 있는 수많은 생존자와 달리 난 성폭행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수치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당하고 보니) 무력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처럼 당시에는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맥샐리 의원은 복무 시절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가해자들은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심각하게 남용했다”며 “나 역시 한 사례로 먹잇감이 돼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 때문에 18년 만에 군 복무를 중단할 뻔했다며 “최근 군 지휘부가 성추문을 다루는 방식이나 지휘관들의 부적절한 대응을 보며 다른 많은 희생자들처럼 시스템이 날 다시 성폭행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발언을 잠시 멈추고 감정을 추스른 그는 군 지휘관들을 향해 “군 성폭력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서 지휘관에 따르는 도덕적, 법적 책임에 부응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지난해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교 3학년 때 육상 코치에게 성관계를 갖자는 추근거림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맥샐리 의원은 1988년부터 2010년까지 공군에서 복무하고 대령으로 예편했으며 1991년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A-10 선더볼트 전투기를 몰았다. 제345 비행편대를 이끌어 최초의 여성 전투기 편대 부대장이란 기록도 남겼다. 지난해 8월 별세한 보수진영의 거물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 자리를 지난 1월에 물려 받아 매케인 의원의 잔여임기인 2020년까지 일한다. 재선 하원의원 출신인 그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맥샐리 의원에 앞서 지난 1월에도 다른 여성 상원의원이 군 복무 시절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육군 전투부대 출신인 조니 에른스트(공화 아이오와주) 의원은 불룸버그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오와 주립대학 시절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파란 집에서 8시간, 노인들은 그렇게 생을 끝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파란 집에서 8시간, 노인들은 그렇게 생을 끝냈다

    “인터뷰 안 합니다. 저희는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었어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7일 스위스 취리히주 쿠스나흐트의 한 주유소 1층에는 3평 남짓한 사무실이 쪽방처럼 딸려 있었다. 외국인 조력자살(안락사) 후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반하는 민간 장례업체의 사무실이었다. 굳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작은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주차된 운구 차량을 보고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신분만 밝혔을 뿐인데도 장의업체 직원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기자일 뿐, 우리는 기자를 믿지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이미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았다.한국인 최초로 안락사를 선택한 이들,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8770㎞를 날아 스위스까지 갔을까. 답을 찾고자 서울신문은 지난 1월 4~11일 스위스 취리히에 다녀왔다. 한국인 안락사가 이뤄진 블루하우스부터, 시신을 운반하는 사설 장례업체,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까지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기록은 감춰져 있고, 흔적은 흩어져 있어 아쉽게도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숨진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최초로 내디뎠던 그 길에서 고인들이 보았을 마지막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건 안락사를 그려낸 영화 ‘미 비포 유’처럼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정답 없는 갈림길이었다.블루하우스는 취리히주 파피콘에 있다. 스위스인들은 조력자살을 하더라도 집에서 받을 수 있기에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오직 외국인만이 이 파란 건물에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블루하우스의 외관은 아늑하지만은 않았다. 건물 바로 뒤편에는 대형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크고 암울한 배경화면처럼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 인적 드문 공터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스위스 일정 중 3일을 투자해 블루하우스 앞을 지켰지만,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매일같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만큼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친구의 안락사를 곁에서 지켜본 익명의 제보자 ‘케빈’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블루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오싹했다. 기분이 참 묘했고 안 좋았다.”8일에는 블루하우스 밖에서 안락사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국적 번호판을 단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와 미색 SUV 한 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각각 두 차량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고,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오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 두 시간쯤 지나 가족들이 블루하우스에서 나왔다. 블루하우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디그니타스와 검찰, 법의학자 인터뷰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우선 안락사 전 동행한 가족들은 수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특히 환자의 병명이 적힌 의사 진단서와 환자의 사망 의사가 담긴 선언문 등은 필수다. 물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치사약(펜토바르비탈)을 마시기 전까지 디그니타스 직원은 환자가 지금도 안락사를 원하는지,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수차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리고 환자가 약을 마시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약을 복용하면 보통 수분 내에 사망에 이른다. 죽을 권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날은 예상보다는 조금 늦은 오후 5시 30분쯤 경찰과 법의학자가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경찰이 각종 서류의 확인 등을 마치면 타살 의혹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의 검시가 시작된다. 한 시간 뒤 경찰과 법의학자가 철수하자 곧이어 하얀색 운구 차량이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향했던 노인들은 주검이 돼 8시간 만에 관에 실려 나왔다. 프랑스 노인 두 명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안락사 후 시신은 모두 취리히주 북화장장(Krematorium Nordheim)으로 보내진다. 블루하우스와의 거리는 26.4㎞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 3곳 중 한 곳으로 파피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진 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결정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도 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케빈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국적에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사망하면 현지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례 과정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구분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할 수 있는 대형 장례식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골함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은 스위스 국민들도 꽤 있다.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대략 3일 후 화장이 된다. 화장 전까지는 시신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방에 모신다. 우리가 찾은 회장장에도 23개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케빈은 9번 방에서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북화장장 총책임자인 시릴 지머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외국인들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비용을 스위스 국민이 댄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디그니타스는 조력자살로 외국인들에게 돈을 받지만 정작 자국 화장터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기자는 이곳에서 화장된 한국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빈이 스위스까지 동행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박정호(가명)씨의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디그니타스와 케빈을 제외한 제삼자를 통해 한국인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기록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이름, 한국 주소 등이 적혀 있으며, 사망 장소로는 블루하우스가, 장례 주관자로 디그니타스가 기재돼 있었다.안락사한 한국인의 기록은 더 찾을 수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장의업체 두 곳을 더 찾았다. 한 곳은 파피콘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의업체고, 다른 한 곳은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은 곳이었다. 물론 두 곳에서 더는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수십 년간 죽음을 일상으로 접한 스위스 장례전문가로부터 조력자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파피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례업체인 게르바 린다우의 사장 우르스 게르바(50)는 조력자살도 존엄한 죽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문제라고도 했다.“제 경험으로는 보통 조력자살을 통해 남은 유족들이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가족들은 고인의 조력자살을 원하지 않거나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엔 그런 선택이 남용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하) 오랜 친구로부터 스위스에 함께 가 달라는 제안을 받은 케빈(가명). 암 투병 중인 친구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제안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스위스 여정은 곧 조력자살(안락사)을 위한 마지막 여행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케빈은 일단 함께하기로 했다. 현지에 가더라도 어떻게든 친구의 극단적 선택을 말릴 기회는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친구는 구체적 안락사 일정과 사망 후 시신 처리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을 정도로 결심이 확고했다. 스위스에 도착한 케빈은 친구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설득했지만, 극심한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그의 결정을 끝내 꺾지는 못했다. 당일 아침이 밝았다. 친구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안락사 장소인 ‘블루하우스’로 떠났다. 서울신문은 익명의 취재원 케빈으로부터 그가 경험했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받아 상하로 나눠 연속 보도한다.늘 형 같았던 친구에게 스위스까지 따라와 끝까지 설득해 준 네 뜻을 따르지 못해 미안하다. 날 위해 늘 기도하는 맘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네 마음만은 잊지 않을게.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삶을 마감하고자 한다. 너의 뜻이 신앙적으로도 옳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도 알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유약했던 거 같아.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야. 그 마음 영원히 간직할게. 부디 안녕하길. 스위스에서 박정호 올림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 돌아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미친놈’.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죽으려는 놈이 무슨 걱정을 이렇게 하는지, 또 이런 글을 왜 썼는지, 그의 마음을 알기에 고마움과 함께 답답한 감정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친구는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처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나 봅니다. 편지 속에 저를 마치 안락사에 반대하는 성직자인 양 적어 놓았더군요.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미리 써 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친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는 끝까지 저를 보호해 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지금이라도 정호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급히 호텔방을 나서 렌터카를 몰았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약 먹기로 결정했어. 함께 스위스에 와 줘서 고마워.” 제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가라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도 했습니다. 전화를 끊었는데,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도로 갓길에 차를 잠시 세웠습니다. 가슴이 저린다는 게,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제야 알았습니다. 정호가 죽는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파란 이층집에 도착했습니다. 경찰 두 명이 다녀간 후 디그니타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중간 침대에 담요를 덮고 누워 있는 그를 봤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을 살짝 뜬 채 창백한 얼굴로 표정이 없었습니다.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얼굴도 만져 보고 손도 만져 봤지만, 온기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죽었을지 궁금했습니다. 끝까지 함께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한 장의사 두 분이 들어왔습니다. 직원은 제게 “잠시 나가 있어 달라”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 하늘을 봤더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구나, 과연 이렇게 죽는 게 존엄하게 죽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이 사람은 고통과 걱정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에서 그간 힘들었던 모든 것을 풀어놓고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얀 천과 쿠션으로 꾸며진 서양식 육각 나무 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정호가 바라던 대로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의사들은 집 앞에 세워둔 검은색 영구차에 관을 실었습니다. 차 안에 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날 옆방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인 남성의 관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디그니타스 직원은 크레마토리움(화장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갈 수 없다며 종이에 주소를 적어 주며 내일 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관에 누운 채 홀로 크레마토리움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내 북쪽 화장장으로 향했습니다. 스위스 화장장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화장만 하는 게 아니라 고인을 모시는 빈소도 있고 장례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큰 장례식장도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5분 정도 기다렸더니 직원 한 분이 숫자 9와 고인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줬습니다. 방은 1.5평 정도 크기입니다. 관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길쭉했습니다. 오른쪽 벽 탁자 위에 관이 놓여 있었고, 고인은 관에서 어제 봤던 그대로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 오른쪽으로 굵고 짧은 큰 촛불이 하나 타고 있었습니다. 방은 춥지는 않았지만 서늘했습니다. 화장장 직원은 제게 괜찮으냐고 물었고, 제가 괜찮다고 하니 인사를 하고 나갔습니다. 저는 말없이 그를 봤고, 정호의 얼굴과 손을 만졌습니다. 어제보다 더 차가웠습니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미래에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병의 특성상 앞으로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 나갔을 겁니다. 죽을 것같이 숨이 막혔겠지요. 결국 정신까지 온전하지 않게 될 거란 걸 알았을 때, 그는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 기약 없는 투병과 간병으로 받게 될 가족의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고려해 스위스에 오는 걸 결정했을 겁니다. 그는 똑똑했습니다. 물론 인간적 갈등도 그의 몫이었겠지요. 대학도 못 간 자식들을 뒤로하고 어떻게 비행기를 탔을까 생각하면 제 가슴이 무너지는 듯 아픕니다. 대단한 친구입니다.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저는 그의 죽음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바랐던 바일 겁니다. 호텔에서 만난 의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고통도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말이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친구를 위해 준비해 온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좀더 환하고 편해 보였습니다. 친구도 제 선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제 마음도 편해지더군요. 며칠 후 그는 한 줌의 재가 됐습니다. 스위스에서 그는 자기 삶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존엄한 죽음이었을까요. 미안한 말이지만 적어도 저에게 친구의 죽음은 존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친구 스스로는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고 확신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상)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단독]한국인 최초 안락사 그 길을 쫓다...스위스 현지 르포

    [단독]한국인 최초 안락사 그 길을 쫓다...스위스 현지 르포

    “인터뷰 안 합니다. 저희는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었어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7일 스위스 취리히주 쿠스나흐트의 한 주유소 1층에는 3평 남짓한 사무실이 쪽방처럼 딸려 있었다. 외국인 조력자살(안락사) 후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반하는 민간 장례업체의 사무실이었다. 굳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작은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주차된 운구 차량을 보고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신분만 밝혔을 뿐인데도 장의업체 직원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기자일 뿐, 우리는 기자를 믿지 않는다”며 퉁명스럽게 문을 걸어 잠갔다. 이미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았다.한국인 최초로 안락사를 선택한 이들,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8770㎞를 날아 스위스까지 갔을까. 답을 찾고자 서울신문은 지난 1월 4~11일 스위스 취리히에 다녀왔다. 한국인 안락사가 이뤄진 블루하우스부터, 시신을 운반하는 사설 장례업체,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까지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다. 기록은 감춰져 있고, 흔적은 흩어져 있어 아쉽게도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숨진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최초로 내디뎠던 그 길에서 고인들이 보았을 마지막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건 안락사를 그려낸 영화 ‘미 비포 유’처럼 모든 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정답 없는 갈림길이었다.블루하우스는 취리히주 파피콘에 있다. 스위스인들은 조력자살을 하더라도 집에서 받을 수 있기에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오직 외국인만이 이 파란 건물에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블루하우스의 외관은 아늑하지만은 않았다. 건물 바로 뒤편에는 대형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크고 암울한 배경화면처럼 버티고 있었고, 바로 앞 인적 드문 공터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스위스 일정 중 3일을 투자해 블루하우스 앞을 지켰지만,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매일같이 사망자가 발생하는 만큼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친구의 안락사를 곁에서 지켜본 익명의 제보자 ‘케빈’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블루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오싹했다. 기분이 참 묘했고 안 좋았다.”8일에는 블루하우스 밖에서 안락사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국적 번호판을 단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와 미색 SUV 한 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각각 두 차량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내렸고,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오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덤덤한 모습이었다.두 시간쯤 지나 가족들이 블루하우스에서 나왔다. 블루하우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디그니타스와 검찰, 법의학자 인터뷰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우선 안락사 전 동행한 가족들은 수많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특히 환자의 병명이 적힌 의사 진단서와 환자의 사망 의사가 담긴 선언문 등은 필수다. 물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치사약(펜토바르비탈)을 마시기 전까지 디그니타스 직원은 환자가 지금도 안락사를 원하는지,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수차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리고 환자가 약을 마시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약을 복용하면 보통 수분 내에 사망에 이른다. 죽을 권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날은 예상보다는 조금 늦은 오후 5시 30분쯤 경찰과 법의학자가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경찰이 각종 서류의 확인 등을 마치면 타살 의혹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의 검시가 시작된다. 한 시간 뒤 경찰과 법의학자가 철수하자 곧이어 하얀색 운구 차량이 도착했다. 휠체어를 타고 블루하우스로 향했던 노인들은 주검이 돼 8시간 만에 관에 실려 나왔다. 프랑스 노인 두 명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안락사 후 시신은 모두 취리히주 북화장장(Krematorium Nordheim)으로 보내진다. 블루하우스와의 거리는 26.4㎞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취리히주가 운영하는 공립 화장장 3곳 중 한 곳으로 파피콘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진 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결정된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들도 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케빈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본 곳도 이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국적에 상관없이 스위스에서 사망하면 현지 화장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례 과정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인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구분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할 수 있는 대형 장례식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골함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은 스위스 국민들도 꽤 있다. 화장장으로 시신이 옮겨지면 대략 3일 후 화장이 된다. 화장 전까지는 시신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방에 모신다. 우리가 찾은 회장장에도 23개의 방이 마련돼 있었다. 케빈은 9번 방에서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북화장장 총책임자인 시릴 지머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외국인들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비용을 스위스 국민이 댄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디그니타스는 조력자살로 외국인들에게 돈을 받지만 정작 자국 화장터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곳에서 화장된 한국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찾고자 했던 한국인 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케빈이 스위스까지 동행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박정호(가명)씨의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디그니타스와 케빈을 제외한 제삼자를 통해 한국인의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 기록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이름, 한국 주소 등이 적혀 있으며, 사망 장소로는 블루하우스가, 장례 주관자로 디그니타스가 기재돼 있었다.안락사한 한국인의 기록은 더 찾을 수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장의업체 두 곳을 더 찾았다. 한 곳은 파피콘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의업체고, 다른 한 곳은 디그니타스와 비밀협약을 맺은 곳이었다. 물론 두 곳에서 더는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수십 년간 죽음을 일상으로 접한 스위스 장례전문가로부터 조력자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파피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례업체인 게르바 린다우의 사장 우르스 게르바(50)는 조력자살도 존엄한 죽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문제라고도 했다.“제 경험으로는 보통 조력자살을 통해 남은 유족들이 더 힘들어하더라고요. 가족들은 고인의 조력자살을 원하지 않거나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엔 그런 선택이 남용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안락사 준비하는 107명…“나는 왜 디그니타스 회원이 되었나”

    안락사 준비하는 107명…“나는 왜 디그니타스 회원이 되었나”

    한국인 2명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안락사(조력자살)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삶을 마쳤고, 107명이 같은 방법을 준비 중이다.<서울신문 3월 6일자 1면> 그들은 왜 스위스로 가려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지난 5개월간 답을 듣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한국인 ‘디그니타스’ 회원 3명과 연락이 닿았다. 이 중 30대 남성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죽음이 슬픔, 회한, 한탄으로 가득해야만 할까요. 헤어짐은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거잖아요. 남은 사람이 각자의 삶을 잘 살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도 이별 준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37)씨는 디그니타스 회원이 된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3년 전 인터넷에서 디그니타스를 검색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였다. 근육을 차츰 퇴화시키는 이 병은 처음엔 아버지의 다리를 못 쓰게 했고, 이어서 입, 소화기관, 호흡기, 팔 등 차근차근 모든 기관을 잠식했다. 아버지는 말하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나중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24시간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야 했고, 집도 더 작은 곳으로 이사했다. “3년 넘게 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와 절망하는 가족을 보면서 안락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뇌암에 걸린 미국 여성이 조력자살이 허용된 주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읽게 됐지요.” 29살의 이 여성은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를 만들고 남편과 여행을 떠났다. 임종 전에는 조력자살이 허용된 오리건주로 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김씨는 아버지에게도 디그니타스 안내문을 보이며 스위스에는 조력자살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의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잘 아는 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3년간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현재 8개월째 요양병원에서 코에 연결된 영양 공급 기계에 의존해 버티고 있다. “일부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말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귀중한 것(신체발부수지부모)이라는 유교문화 영향도 큰 것 같고요. 하지만 당사자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이기적인 것 아니겠어요.” 김씨는 자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안락사를 선택할 겁니다. 아버지가 병을 치르면서 차츰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사람들이 멀어지는 걸 느꼈어요. 제가 죽고 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슬픈 모습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요. 요즘 사람들 열심히 운동해서 가장 멋진 모습일 때 프로필 사진 많이 찍잖아요.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진심이 닿다’ 이동욱♥유인나, 단 둘이 야근 중 일어난 일

    ‘진심이 닿다’ 이동욱♥유인나, 단 둘이 야근 중 일어난 일

    ‘진심이 닿다’ 이동욱-유인나의 이보다 더 달콤할 순 없는 야근 현장이 포착돼 연애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tvN 수목드라마 ‘진심이 닿다’(극본 이명숙, 최보림/ 연출 박준화/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측이 6일, 9화 방송을 앞두고 둘만의 야근 중인 권정록(이동욱 분)-오진심(예명 오윤서, 유인나 분)의 사무실 투샷을 공개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8화에서 권정록-오진심은 까치발 뽀뽀에 이은 2단 키스로 연애 가속 페달을 밟으며 시청자들의 숨멎을 유발했다. 마음을 컨트롤 할 수도 없을 만큼 좋아한다는 권정록의 고백에 오진심은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췄다. 이에 권정록은 쑥스러운 듯 돌아서는 오진심을 붙잡아 키스를 하는 모습으로 심장을 떨리게 했다. 더욱이 오진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권정록의 부드러운 두 번째 키스와 함께 그려진 달콤하고 아름다운 투샷이 앞으로의 로맨스를 더욱 기대케 했다. 이 가운데 공개된 스틸 속 권정록은 오진심을 와락 껴안고 있어 설렘을 자아낸다. 오진심을 품에 안은 그의 얼굴 가득 피어난 스윗 미소가 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이에 오진심 또한 그를 살포시 껴안은 모습. 권정록의 따뜻한 포옹에 행복감을 감추지 못하는 오진심의 표정이 매우 사랑스럽다. 꿀 내음을 풍겨 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애 욕구를 수직 상승시킨다. 이는 야근 중인 권정록-오진심의 모습으로, 아무도 없는 로펌 사무실에서 단 둘이 야근을 하던 중 서로에 대한 애정을 터뜨리고 만 두 사람의 투샷이 보는 이들까지 설레게 한다. 특히 권정록-오진심은 로펌 식구들 모르게 사내 연애를 이어가고 있던 바. 비밀스럽게 깊어지고 있는 이들의 사내 연애가 어떻게 이어질지 관심이 높아진다. 한편 tvN 수목드라마 ‘진심이 닿다’는 어느 날, 드라마처럼 로펌에 뚝 떨어진 대한민국 대표 배우 오진심이 완벽주의 변호사 권정록을 만나 시작되는 우주여신 위장취업 로맨스. 오늘(6일) 밤 9시 30분에 9화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비디오스타’ 신이, 짝사랑男에 눈물 프러포즈 “올해 결혼할래?”

    ‘비디오스타’ 신이, 짝사랑男에 눈물 프러포즈 “올해 결혼할래?”

    ‘비디오스타’ 신이가 짝사랑 남성을 향해 눈물의 프로포즈를 했다. 지난 5일 방송된 MBC 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비디오스타’에는 방송인 현영, 클레오 채은정, 가수 레이디제인, 배우 신이, 박재민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신이는 올해 목표를 결혼이 아닌 ‘임신’으로 꼽아 눈길을 모았다. 신이는 “결혼하고 임신하면 되는데 결혼은 빨리 할 수 있지만 임신은 빨리 할 수 없다. 아이를 너무 갖고 싶다. 올해까지 노력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 짝사랑 중임을 고백한 신이는 “올해 계획에 동참시키고 싶은 남자가 있다. 짝사랑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자는 배란기가 되면 더 예뻐 보인다더라. 그래서 그 때 맞춰서 보자고 했다”며 “그런데 자꾸 피한다”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신이의 짝사랑 이야기에 MC들은 상대를 향해 영상편지를 보내라고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자 신이는 울컥한 듯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현영은 “울 정도로 좋아하는 거야?”라며 놀랐고, 신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신이는 “진짜 좋아하는 거 같다. 시간 있으면 올해 결혼할래?”라고 진심을 다해 고백했다. 고백 이후 신이는 “한 번도 먼저 대시한 적이 없었다. 역효과 날까 걱정이다”라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보였다. 사진=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걸그룹 출신 A양, “그룹 내 양다리” 폭로

    걸그룹 출신 A양, “그룹 내 양다리” 폭로

    걸그룹 달샤벳 출신 수빈이 아이돌들의 비밀연애를 폭로했다. 오는 6일(수) 밤 11시에 방송되는 MBN ‘연애DNA연구소X’에서 함께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던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난 주인공의 사연에, 수빈이 “원래 제일 나쁜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친구나 언니를 만나는 사람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수빈은 “아이돌 중에서도 비밀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돌 지인 중에 한 명이)어느 날 ‘남자친구가 생겼다. 너무 괜찮은 사람이다’라며 멤버들에게 남자친구를 공개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멤버랑 썸을 탔던 사람이었다”라고 밝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룹 내 양다리를 걸쳤던 아이돌의 실제 비하인드 스토리에 MC들은 “너무 뻔뻔하다”며 “쉬는 시간에 누군지 좀 알려달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수빈이 주인공의 사연에 자신의 일처럼 격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고 MC들은 “본인의 경험담 아니냐. 본인 경험담 같으니까 너무 흥분하지 말라”라고 농담을 던졌고, 이에 그녀는 “내 경험담은 절대 아니다”라며 강력히 부인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어 붐은 “오늘 수빈 씨 토크가 좋다. 연애 지원금 5만원 주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밖에, ‘사귀기만 하면 바람이 난다’는 걸그룹 출신 미모의 주인공과 ‘세계 100대 부자’가 고백한 사연도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MBN ‘연애DNA연구소X’는 6일(수) 밤 11시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눈이 부시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엔딩..정영숙 죽음 “충격”

    ‘눈이 부시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엔딩..정영숙 죽음 “충격”

    ‘눈이 부시게’가 예상치 못한 엔딩으로 충격을 안겼다. 시청률 역시 10%를 돌파하며 월화드라마 최강자로 등극했다. 5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김수진, 제작 드라마하우스) 8회는 전국 기준 8.4%, 수도권 기준 10.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지상파를 포함한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2049 타깃 시청률에서도 5.7%를 기록, 화요일 방송된 프로그램 가운데 전 채널 1위를 굳건히 지키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날 혜자(김혜자 분)와 정을 쌓아가던 샤넬 할머니(정영숙 분)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포기한 혜자, 떠나기로 결심한 준하(남주혁 분), 여기에 샤넬 할머니의 죽음까지 이어지며 ‘눈이 부시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준하는 새로운 꿈을 꾸며 혜자(한지민 분)가 보고 싶다던 오로라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시간을 돌려 스물다섯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혜자. “못 온대. 혜자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며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스물다섯 혜자를 대신해 눈물 어린 안녕을 고했다. 준하도 “잘 됐다고 전해주세요”라는 말로 마음을 정리했지만, 눈빛엔 상심이 가득했다. 준하에게 미안하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가슴 아픈 혜자는 홀로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혜자와 준하의 인연은 이별을 맞고 있었다. 준하는 집을 아버지에게 넘기며 떠날 준비를 했고, 혜자는 홍보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준하에게 가슴 아픈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의 눈에는 할머니와 손녀의 비주얼이지만, 뼛속까지 친구인 혜자와 현주(김가은 분), 상은(송상은 분)의 관계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주어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지만 70대 혜자의 몸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쇼핑을 나가도 어느새 한걸음 뒤처지는 혜자.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 샤넬 할머니(정영숙 분)와는 한 발 가까워졌다. 스물다섯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패션도, 걷기보다 쉬는 게 편한 취향도 말하지 않아도 통했다. 이제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 혜자에게 “아들을 보러 미국에 간다”고 들뜬 마음을 털어놓는 샤넬 할머니. 결국 준하는 그동안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진실을 고백했다. 거짓에 들떴지만, 진실에 상처받은 샤넬 할머니의 아픔은 누구도 쉽게 위로할 수 없었다. 연락도 받지 않고 홍보관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샤넬 할머니 걱정에 현주와 상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혜자였다. 약속 장소에서 혜자를 기다리던 현주와 상은이 속상한 마음을 나누고 있을 때 혜자가 등장했다. 더 이상 스물다섯이 될 수 없지만, 혜자는 여전히 그들의 친구였다. 현주와 상은은 “체력 좀 달리고 노래방에서 노래하다 말고 자고 그런 애들이랑은 친구 하면 안 되냐”며 “우린 스물다섯 혜자가 아니라 그냥 혜자가 필요하다”고 부둥켜안았다. 그런 혜자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친구들과 영수(손호준 분)가 홍보관에 출동했다. 하지만, 유쾌하고 따뜻한 혜자와 친구들의 모습에 이어 한강에서 시체로 발견된 샤넬 할머니의 처연한 죽음은 이들에게 닥칠 변화를 예고하며 충격을 안겼다. 이날 혜자와 친구들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따뜻한 웃음을 자아냈다. 생체 리듬이 안 맞고 타인들의 시선이 낯설어도 서로에게는 여전히 친구였다. 홍보관 노인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도 훈훈했다. 까칠했던 샤넬 할머니와 속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낯설었던 노인들을 이해하며 익숙해져 갔다.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든, 늦으면 기다려주고 그 자체로 이해해주는 혜자와 친구들. “스물다섯 혜자가 아니라 그냥 혜자가 필요하다”는 그들의 모습은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여기에 샤넬 할머니의 죽음은 무겁고,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가슴 먹먹한 울림을 전했다. ‘눈이 부시게’는 매주 월, 화요일 밤 9시 3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주원, 50kg 감량 비법은 허벅지 “죽기 싫으면 살 빼라고 했다”

    김주원, 50kg 감량 비법은 허벅지 “죽기 싫으면 살 빼라고 했다”

    SNS 몸짱 스타 김주원이 50kg 감량 비법을 공개했다. 5일 방송된 MBN ‘엄지의 제왕’에서는 SNS 몸짱 스타 김주원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올해 36살이라고 밝힌 김주원은 “저는 과거에 몸무게가 104kg가 나갔다. 지금은 50kg 감량에 성공했다. 5년에 걸쳐서 살을 뺐고, 지금은 허리 26 사이즈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건강 상태로는 “정말 장난 아니었다. 원래 여기저기 아프긴 했는데 쨍한 여름날 걸어가는데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서 길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구급 대원들이 왔는데 성인 남자 네 분이 저를 못 들어서 낑낑대시더라. 기절한 척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의사 선생님이 혈당 수치, 혈압,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높다고 죽기 싫으면 살을 빼라고 했다. 또 길에서 뭐만 먹어도 쳐다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살을 빼라고 했다. 심지어 뚱뚱하다는 이유로 눈 버렸다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라 어린 마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체중 감량 비법에는 “단식원도 가서 굶고, 주사도 맞아보고, 약도 먹어봤는데 끊는 순간 요요현상이 왔다. 그 이유가 근육량이 없어서였다. 우리 몸에서 근육량이 가장 많은 허벅지를 키우기로 했다. 근육을 키우니까 기초대사량이 높아지고 지방을 잘 태우는 체질로 변했다. 살을 빼기 위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주원은 건강한 다이어트 방법 등을 공유하며 무려 35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호와 오랜만에 통화 통증 때문에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함께 취리히 교외 파란 2층 집에 갔습니다 시내에서 피자 한 접시를 먹는 친구를 보며 한참 더 살 수 있을 텐데, 죽는 게 말이 될까 서울로 돌아가자 했지만 그는 남았습니다 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 때문에 안락사하고 싶다고 합니다.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익명의 취재원 케빈(가명)은 실제로 스위스행을 결정했습니다. 타인의 자살을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기엔 친구의 부탁이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케빈은 스위스에서 극단적 선택을 끝까지 말렸지만, 친구는 결국 그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위스는 유일하게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로,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한국인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 글로벌 단체를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한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스위스 현지와 한국으로 오가는 추적 끝에 어렵사리 케빈을 만났고, 오랜 설득을 통해 그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케빈은 지난달 자신의 소회를 담은 편지 한 통을 서울신문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는 물론 한국인이며,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선택한 한국인 두 명 중 한 사람의 친구입니다. 그가 처음 케빈이라는 이름을 썼기에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케빈의 편지를 최대한 원문을 살려 상하로 나눠 싣습니다. 케빈의 요청 등을 고려해 안락사한 분의 나이, 가족 관계, 직업 등 구체적 신원과 사망일 등은 적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스위스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앞서간 제 친구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친구의 용기를 사회적으로 헤아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의 이름은 박정호(가명)입니다. 저는 정호와 함께 말기 암환자 등에게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라는 단체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친구는 더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정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안부를 묻고 답하다가 대뜸 스위스에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오던 걸 알았기에 저로서는 그 제안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 기쁨이 잠시 뒤 눈물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너무나 떨렸습니다. 친구가 얘기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 다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 인터넷에 입력한 단어는 ‘스위스’와 ‘안락사’였던 것 같습니다. 검색어 아래로 충격적인 글과 사진, 동영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색된 글들을 읽다가 ‘조력자살’과 ‘디그니타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디그니타스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고 곧 잠에 드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친구는 시한부 삶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세가 더 심해졌을 때 나타날 고통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물에 빠져본 적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면 자신은 결국 익사하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며 그 전에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 겪을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스위스까지 같이 가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아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안 가도 된다는 말도 했지만, 제가 가겠다고 하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난 얼마 뒤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직접 보기는 꽤 오랜만이었지요. 친구는 이전보다 훨씬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말도 잘하고 고집도 있고 아주 똑똑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차를 운전해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그저 농담하고 이야기하니 예전처럼 즐거웠습니다. 친구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스위스로 떠나는 날 아침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출국장에 먼저 도착해 저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미 친구의 몸이 많이 불편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탑승했고, 12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 끝에 취리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실 낯선 그곳에서 아픈 친구를 데리고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호텔에서 가만히 있기가 뭣해 빌린 차를 끌고 일단 나섰습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후 그가 죽을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시내를 빠져 나와 한적한 교외를 한참 달리니 파란색의 2층 집이 나왔습니다. 그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못 내릴 정도로 몸이 오싹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앉은 채로 파란색 집을 바라만 보다가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묘했고, 안 좋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양껏 시켜놓고 냄새 때문에 몇 점 먹지도 못한 스위스 퐁듀 맛도 보고, 피자도 먹었습니다. 피자 한 접시를 다 먹는 친구를 보면서 아직은 한참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모레 죽는 게 말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대로 디데이(D-day) 이틀 전에 디그니타스에서 보낸 의사 한 분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제 친구가 정말 죽을 의지가 있는지와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컵에 든 물을 스스로 마셔 보라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손으로 약물을 마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의사는 다음날 또 왔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구는 약을 마시고 죽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고, 의사는 5분 안에 잠들어 30분 안에 죽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처방한 약이 내일 디그니타스에 가면 준비돼 있을 거라고 말하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자.” 이날 밤 제 입에서는 결국 참고 있던 말이 터졌습니다. 12시간이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오고,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친구가 이대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일단 이번에는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함께 와주겠다며 친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친구가 택시를 부른 이유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자살방조죄로 곤욕을 치르게 될까 봐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배려를 말없이 받아들인 제가 창피하고 비굴하게 느껴집니다. 친구는 호텔방을 나서기 전 반으로 접은 메모지 하나를 주고 떠났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한참 후에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호는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랐습니다. 차창 너머로 저를 발견한 정호가 손을 내밀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손을 잡았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하)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존엄한 죽음’ 화두를 던지다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존엄한 죽음’ 화두를 던지다

    2016년과 2018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안락사로 숨진 것을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숨진 2명 외에 향후 해외 안락사를 준비 중이거나 기다리는 한국인도 10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을 논하는 데 보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안락사 허용 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제적으로 조력자살을 돕는 단체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2명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사망자와 관련한 일체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지난 5개월간 두 한국인이 왜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추적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출신인 40대 남성 박정호(가명)씨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였던 박씨는 한 달간의 준비 끝에 스위스로 향해 삶을 마감했다. 서울신문은 또 박씨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까지 동행했던 친구 케빈(가명)도 만날 수 있었다. 6일과 7일자 2회에 걸쳐 케빈이 전하는 박씨의 마지막 여정을 싣는다. 조력자살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시행하는 일종의 안락사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이를 허용해 왔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과 ‘이터널 스피릿’(Eternal Spirit) 등 3개의 단체가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다.엑시트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조력자살을 도운 곳이다. 당시 구달 박사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음에도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스위스로 향하는 도중 언론과 실시간 인터뷰를 해 많은 화제를 남겼다. 취재 결과 디그니타스 외 두 단체에는 현재까지 한국인 조력자살자가 없었다. 그러나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는 각각 47명, 60명의 한국인 회원이 있어 이들 107명이 향후 조력자살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울신문은 주스위스 한국대사관에 조력자살 사망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프롤로그 ‘병석의 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세요.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제발 안락사 논의를 부탁드려요.’ 지난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사가 나간 후 안락사 문제를 기사화해 달라는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락사 허용’을 원하는 댓글도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안락사´는 간병살인 시리즈 기획 단계부터 언급됐지만, 애써 외면한 주제였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미뤄둔 숙제를 꺼냅니다.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안락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친구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한 분을 어렵사리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달한 의료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낮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건 없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이는 드뭅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온갖 장치를 주렁주렁 걸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역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봤으면 합니다. 기사는 그런 논쟁의 출발점이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임종기 환자들이 가족들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통증을 견디다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스위스까지 가서 안락사를 결정한 이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107명은 준비·대기중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107명은 준비·대기중

    2016년과 2018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안락사로 숨진 것을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숨진 2명 외에 향후 해외 안락사를 준비 중이거나 기다리는 한국인도 10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을 논하는 데 보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안락사 허용 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제적으로 조력자살을 돕는 단체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2명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사망자와 관련한 일체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지난 5개월간 두 한국인이 왜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추적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출신인 40대 남성 박정호(가명)씨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였던 박씨는 한 달간의 준비 끝에 스위스로 향해 삶을 마감했다. 서울신문은 또 박씨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까지 동행했던 친구 케빈(가명)도 만날 수 있었다. 6일과 7일자 2회에 걸쳐 케빈이 전하는 박씨의 마지막 여정을 싣는다.조력자살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시행하는 일종의 안락사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이를 허용해 왔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과 ‘이터널스피릿’(Eternal Spirit) 등 3개의 단체가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다. 엑시트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조력자살을 도운 곳이다. 당시 구달 박사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음에도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스위스로 향하는 도중 언론과 실시간 인터뷰를 해 많은 화제를 남겼다. 취재 결과 디그니타스 외 두 단체에는 현재까지 한국인 조력자살자가 없었다. 그러나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는 각각 47명, 60명의 한국인 회원이 있어 이들 107명이 향후 조력자살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울신문은 주스위스 한국대사관에 조력자살 사망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프롤로그 ‘병석의 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세요.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제발 안락사 논의를 부탁드려요.’ 지난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사가 나간 후 안락사 문제를 기사화해 달라는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락사 허용’을 원하는 댓글도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안락사´는 간병살인 시리즈 기획 단계부터 언급됐지만, 애써 외면한 주제였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미뤄둔 숙제를 꺼냅니다.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안락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친구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한 분을 어렵사리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달한 의료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낮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건 없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이는 드뭅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온갖 장치를 주렁주렁 걸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역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봤으면 합니다. 기사는 그런 논쟁의 출발점이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임종기 환자들이 가족들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통증을 견디다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스위스까지 가서 안락사를 결정한 이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단독]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호와 오랜만에 통화통증 때문에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함께 취리히 교외 파란 2층 집에 갔습니다 시내에서 피자 한 접시를 먹는 친구를 보며한참 더 살 수 있을 텐데, 죽는 게 말이 될까서울로 돌아가자 했지만 그는 남았습니다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 때문에 안락사하고 싶다고 합니다.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익명의 취재원 케빈(가명)은 실제로 스위스행을 결정했습니다. 타인의 자살을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기엔 친구의 부탁이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케빈은 스위스에서 극단적 선택을 끝까지 말렸지만, 친구는 결국 그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위스는 유일하게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로,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한국인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 글로벌 단체를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한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스위스 현지와 한국으로 오가는 추적 끝에 어렵사리 케빈을 만났고, 오랜 설득을 통해 그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케빈은 지난달 자신의 소회를 담은 편지 한 통을 서울신문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는 물론 한국인이며,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선택한 한국인 두 명 중 한 사람의 친구입니다. 그가 처음 케빈이라는 이름을 썼기에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케빈의 편지를 최대한 원문을 살려 상하로 나눠 싣습니다. 케빈의 요청 등을 고려해 안락사한 분의 나이, 가족 관계, 직업 등 구체적 신원과 사망일 등은 적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스위스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앞서간 제 친구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친구의 용기를 사회적으로 헤아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의 이름은 박정호(가명)입니다. 저는 정호와 함께 말기 암환자 등에게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라는 단체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친구는 더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정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안부를 묻고 답하다가 대뜸 스위스에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오던 걸 알았기에 저로서는 그 제안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 기쁨이 잠시 뒤 눈물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너무나 떨렸습니다. 친구가 얘기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 다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 인터넷에 입력한 단어는 ‘스위스’와 ‘안락사’였던 것 같습니다. 검색어 아래로 충격적인 글과 사진, 동영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색된 글들을 읽다가 ‘조력자살’과 ‘디그니타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디그니타스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고 곧 잠에 드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친구는 시한부 삶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세가 더 심해졌을 때 나타날 고통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물에 빠져본 적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면 자신은 결국 익사하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며 그 전에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 겪을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스위스까지 같이 가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아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안 가도 된다는 말도 했지만, 제가 가겠다고 하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난 얼마 뒤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직접 보기는 꽤 오랜만이었지요. 친구는 이전보다 훨씬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말도 잘하고 고집도 있고 아주 똑똑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차를 운전해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그저 농담하고 이야기하니 예전처럼 즐거웠습니다. 친구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스위스로 떠나는 날 아침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출국장에 먼저 도착해 저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미 친구의 몸이 많이 불편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탑승했고, 12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 끝에 취리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실 낯선 그곳에서 아픈 친구를 데리고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호텔에서 가만히 있기가 뭣해 빌린 차를 끌고 일단 나섰습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후 그가 죽을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시내를 빠져 나와 한적한 교외를 한참 달리니 파란색의 2층 집이 나왔습니다. 그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못 내릴 정도로 몸이 오싹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앉은 채로 파란색 집을 바라만 보다가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묘했고, 안 좋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양껏 시켜놓고 냄새 때문에 몇 점 먹지도 못한 스위스 퐁듀 맛도 보고, 피자도 먹었습니다. 피자 한 접시를 다 먹는 친구를 보면서 아직은 한참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모레 죽는 게 말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대로 디데이(D-day) 이틀 전에 디그니타스에서 보낸 의사 한 분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제 친구가 정말 죽을 의지가 있는지와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컵에 든 물을 스스로 마셔 보라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손으로 약물을 마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의사는 다음날 또 왔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구는 약을 마시고 죽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고, 의사는 5분 안에 잠들어 30분 안에 죽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처방한 약이 내일 디그니타스에 가면 준비돼 있을 거라고 말하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자.” 이날 밤 제 입에서는 결국 참고 있던 말이 터졌습니다. 12시간이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오고,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친구가 이대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일단 이번에는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함께 와주겠다며 친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친구가 택시를 부른 이유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자살방조죄로 곤욕을 치르게 될까 봐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배려를 말없이 받아들인 제가 창피하고 비굴하게 느껴집니다. 친구는 호텔방을 나서기 전 반으로 접은 메모지 하나를 주고 떠났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한참 후에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호는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랐습니다. 차창 너머로 저를 발견한 정호가 손을 내밀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손을 잡았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7일 2회에서 이어집니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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