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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길교수 ‘공권력에 의해 희생’

    지난 73년 간첩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최종길(崔鍾吉·당시 42세) 서울법대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는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최 교수는 강제로 간첩자백을 받아내려던 중정의불법수사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면서 “적극적 항거 외에도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 순응하지 않은 소극적인 저항 역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활동에 포함되는 만큼 최 교수의 죽음은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는 의문사”라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또 “최 교수는 고문으로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수사관들에 의해 7층 비상계단에서 내던져져 사망했거나 고문으로 사망한 뒤 수사관들에 의해 자살로 위장되는 등의 수법으로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비록직접적인 타살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사관들의 고문이 죽음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숨졌다.”고 덧붙였다. 진상규명위는 조사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최 교수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를 요청했다. 진상규명위는 진정사건 85건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금까지 모두 16건을 결정했다.이 가운데 최 교수 사건 외에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의문사’로 인정된 경우는 84년 청송감호소에서 재소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숨진 박영두씨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임기윤 목사 사건 등 2건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帝政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4)새로 밝혀진 사실들

    러시아 문서보관소는 구한말 역사의 보고(寶庫)였다.발굴된 문서중에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흥미진진한 사실들이 수두룩했다.특히 고종의 해외망명기도와 헤이그밀사 파견의 좌절,아관파천의 진실 등은 근세사를 새로 고쳐 써야 하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헤이그밀사사건의 전말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주권불가침을 인정하며 국제회의에서 상기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하였다.초청장은 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에게 외교문서로 전달되었다.러시아 정부는 이범진 공사를 합법적인 공사로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그곳에있는 고종황제의 밀사에게 이 뜻을 전해도 무방하다.(1905년 11월1일 외무장관이 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 파그딜로프에게 보낸 지시문) 이 지시문은 고종이 서울의 프랑스어학교교사 마르텔을베이징주재 러시아공사에게 극비리에 파견,헤이그회의에대한제국 대표를 초청토록 요청한 데 따른 러측의 공식 답신이다.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장은 대한제국의 독립국가유지였으며 헤이그회의 참가지원이었음을 알수 있다.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니콜라이2세가 주창해 열렸고 러시아는 이 회의의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을사늑약체결(1905년 11월17일)이후 새로운 국제정세가 전개되면서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혼선과 모순을 노출했다. 1907년 6월30일 회의가 막상 개막되자 러시아는 대한제국 대표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했다.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본의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여론의힘을 빌려 국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의 마지막 시도가 무참하게 꺾이는데 러시아가 일조한 것이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이처럼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일본과의 비밀협상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양국은 1907년 7월30일 체결한 협약에서 대한제국과 만주,몽골 등 3개 지역에 대한 이해득실을 각각 정리했다.두나라는 ▲만주에서 양국간 분계선을 확정하고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간에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결속에 대해 간섭과 방해를하지 않으며 ▲일본은 외몽골에서 러시아의 특수권익을 승인한다 ▲쌍방은 협약체결을 비밀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러·일비밀조약 체결 한달전에 고종이 밀사를 파견하자당황한 러시아 외무부는 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전 파리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부랴부랴 전문을 보내 입장을 거부토록 지시했다.넬리도프도 “한국인들이 왔지만 접견을거부했다”는 보고문을 본국에 띄웠다.뿐만 아니라 러시아 외무부와 주일 러시아대사 등은 대한제국의 헤이그밀사파견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일본측에 흘렸다.밀사들의 회의장 입장이 좌절된 뒤 이토(伊藤博文)가 고종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양위를 요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고종황제의 측근인 윤택영(순종의 장인)과 권신목(영어통역원)이 총영사관으로 찾아와 헤이그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설득해보냈다.또 이종호(이용익의 손자)를 위시한 일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지사에게 헤이그에 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왔다는 주지사의 전보를 받고 저지하도록 조치했다.(1907년 7월25일 플란손 총영사가 헤이그밀사사건과관련,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국제정세에 어두워 러·일비밀협상이 진행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고종은 니콜라이2세와 러시아의 ‘변함없는우정’만 믿고 3인의 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결국 밀사들은 황제접견은커녕 외무장관도 만나보지 못했다.러시아 외무부는 밀서를 서류철속에 보관해 놓았을 뿐이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 포츠머스조약(1905년 9월5일 러·일전쟁후 양국이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을엄격히 준수하려고 한다.이 조약으로 외무부는 대한제국이 러시아의 지원이나 협조를 얻어 일본의 압제를 벗어나려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때문에 러시아 지방당국은 전고종황제(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7월19일 순종에게 양위)정부의 지시에 의거,러시아 국경안에서 투쟁하는 한인폭도(의병)의 기도를 분쇄하고 있다.…한인들은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독립투쟁을 바란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헤이그에서 개최된 평화회의에 갑작스러운 대한제국 밀사의 출현은 서울에무질서를 발생시켰으며 일본은 이 기회를 활용해 분명한 본보기(고종의 퇴위)를 보였다.일본에 구실을 주는 한인들의 항일투쟁 고무발언을 삼가야 한다.(1908년 10월6일 외무장관이 새로 취임한 소모프 총영사에게 보낸 훈령) 니콜라이2세는 이 훈령문 상단에 “공감한다.”는 친필의견을 남겼다.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밀사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밀사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관파천의 막전막후 1896년 2월2일 전문으로 보고한 바와 같이 신변의 위협을느낀 고종이 밀지를 보내 수일안에 왕세자와 함께 공사관에 피신하겠다는 희망을 밝혀왔다.전임 대리공사 베베르와 함께 고종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보호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궁중을 떠나는 날짜와 시간을 사전 통보해줄 것을 부탁하고 고종의 밀지를 전해온 이범진에게 궁중에서 러시아공사관까지 오는 도중 예상되는 위험성을 지적해 주었다.이범진은 고종이 궁중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미 모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다음날(2월3일) 고종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2월9일 저녁 공사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이날 결행하지 않고 경비병 증원을 요청해왔다.공사관은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긴급요청,2월10일 해군대령 몰라스가 100명의 수병을 인솔하고 서울에 왔다.고종은 2월11일새벽 7시30분에 공사관에 왔다.(1896년 2월11일 스페이예르 대리공사가 로바노프 외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결심한 뒤 측근 이범진을 통해 밀지를 보내고 당초 결행키로 한 날짜를 어겨가면서 피신하기까지 10일동안의 급박했던 순간을 보고한 비밀전문 내용이다.당시 서울에는 전임 베베르 대리공사도함께 있었다.멕시코 공사로 발령을 받은 베베르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서울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본주재 러시아공사 히토로보가 갑자기 사망하자 러시아는 고종과의 친분을 고려,스페이예르를 도쿄로 보내고 베베르를 유임시켰다. 문서내용에 따르면 아관파천은 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노리고 고종과 친러파들의 공사관 피신요청을 모르는 척들어준 러시아의 ‘기획외교’의 결과물처럼 보인다.물론서울에 부임해온 지 한달밖에 안된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의 입장에서는 주재국 국왕의 공사관 피신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맞아 다소 흥분,실체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당시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이던베베르는 1903년에 쓴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에서 “뜻밖의 정변이 발생했다.러시아공사관 경비해군은 160명이었으나 서울주둔 일본군 수비대는 1000명이 넘었다.러시아는 이때부터 이전 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하게되었으며 한·러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라고 외교적으로 해석했다.스페이예르는 러시아공사관에 375일동안 피신해 있던 고종이 환궁한 지 1년도 채 안된 1898년 2월21일 전문에서도 “고종에게 러시아공사관으로의 피신을 권했다.라고 보고하는 등 제2,제3의 아관파천을 꾀했다.이에 대해 베베르는수기에서 “스페이예르가 대한제국 정부와 독립협회,그리고 일본과 자주 충돌하는 경솔한 행동을 해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실됐다.”고 질책하고 있다. ■고종의 러시아 망명기도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거론된다.최근 이범진 공사가 수차례에 걸쳐 고종황제가 친일파의새로운 간계 때문에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필요할경우 다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하려 한다고 하며 친일파들은 의친왕 이강을 제위에 오르도록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1902년 5월15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파블로프 대리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고종황제가 위험에 처했다는 어떠한 증후도 현재 포착하지 못했다.(1902년 5월19일 파블로프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답신) 이처럼 러시아공사관으로의 재피신 가능성이 오가는 가운데 러시아망명에 대한 비밀보고서는 1903년에 처음 등장한다. 오늘 고종황제가 신임하는 환관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점령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서울주둔 일본군은 궁정을 포위하고 있고 그들에게 매수된 시위대가 자신을 살해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러시아정부의 조언을 요청했다.아마 고종황제는 자신이 위기에처하면 공사관이 러시아로 망명을 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제공하겠다는 약속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1903년 12월30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황제가 일신상에 위험이 있을 경우 불가피하게러시아공사관에 피신처를 구하거나 아니면 러시아로 탈출하는 문제에 대해 러시아측의 협조가능성을 은밀하게 타진해왔다.고종은 대궐을 빠져나오기 쉽고 피신을 예상할 수없도록 하기위해 대비(1904년 1월2일 서거)의 시신을 이장할때 사당에서 공사관 담장의 샛문을 통해 오겠다는 것이다.(1904년 1월21일 파블로프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서) 하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 본국의 답신은 없었다.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으로 퇴위하고 난 뒤인 1908년부터 합병직전인 1910년 사이에 망명설이 집중적으로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전 고종황제가 배편으로나 육로로 러시아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고종이 러시아영토에 출현하면 다시 극동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되어 대한제국 문제를 둘러싼 한·러관계는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조치는 극동정세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고종황제의 망명계획을 거부하는 것이 좋다.(1908년 11월20일 도쿄주재말레비치대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전 고종황제가 러시아나 청국으로 피신할 마음을 갖고 있다.이는 황제자신이나 백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권고를 했다.(1909년 1월8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당시 고종은 일본의 핍박과 잇따르는 시해기도에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 상태였던 것 같다.심지어 “차라리 해외에나가 죽어도 좋다.”는 말을 소모프 총영사에게 했을 정도였다.의병의 도움을 받아 일본 감시요원을 따돌린 뒤 러시아나 청국국경까지 탈출할 기회를 엿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역사에 ‘만약’이란 가정법은 없다지만한일합병이전에 고종의 러시아 망명이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또 어떻게,어디로 흘러갔을지 자못 궁금한 장면이다. 노주석기자 joo@
  • “최종길 교수 자살 아니다”

    지난 73년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던 중 의문사한 서울대 최종길 교수 사건과 관련,당시 최 교수를 조사했던 대부분의 중정 수사관들은 “최 교수가 간첩임을자백하지 않았고,자살하지도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30일 “최 교수를 직접 담당했던 차모씨와 김모씨 외에 10여명의 수사관들은 이같이 진술했으며,고문 사실도 인정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또 “검찰 송치에 필요한 피의자신문조서,긴급구속영장,첩보보고서,수사보고서 등 모든 서류는 최교수가 사망한 뒤 12시간만에 중정 수사과 주도로 허위 작성됐다.”면서 “중정 수사관이 사고 직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찾아가 최 교수의 부검 원장을 강제로 빼앗으려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중정 수사관들은 최근 조사에서 “당시 경비가 철저해 최 교수 혼자 7층 화장실에서 뛰어내릴 상황도 아니었고,뛰어내리기 위해 밟고 올라갔다는 변기에 발자국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현역의원등 5~6명 수뢰 포착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의 수뢰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진승현 게이트’를 재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朴榮琯)는 30일 진씨의 정·관계 로비 내역을 정리했다는‘진승현 리스트’에 거명됐던 정·관계 인사 30여명중 권 전 고문과 김방림(金芳林) 의원 이외에 3∼4명이 진씨 돈을 받은 단서를 포착,수사중이다. 검찰의 수사망에 포착된 인사들은 민주당과 한나라당 현역 의원 각 1∼2명,민주당 지구당위원장과 공기업 사장 1명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전 고문을 소환해 조사한 뒤 곧 이들을 차례로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로 했다. 검찰은 2000년 7월 권 전 고문이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차장으로부터 진씨가 준비한 5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검찰은 이 과정에서 진씨가직접 권 전 고문에게 한스종금(옛 아세아종금)과 열린상호신용금고 등 계열사에 대한 금융감독원 검사 무마 등의 청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중이다.검찰은 이날부터 권 전 고문 및 측근 인사들 명의의 금융계좌에 대한 추적 작업을 시작했다. 한편 권 전 고문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朴澈俊)는 “2000년 8월 최고위원 경선 당시 권 전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고 공개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의원을 금명간 소환,정치자금을 받고도 지역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이에 앞서 검찰은 선관위 관계자와 김 의원 회계책임자에 대해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검찰은 권 전 고문의 돈을 받았다고 밝힌 민주당 정동영(鄭東泳) 의원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당시정황을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권 전 고문이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당시 일부 후보자들에게 개인 기부한도(2000만원)를 초과한 5000만원을 건넨 정황도 포착,돈을 받은 인사의 신원과 금품의 출처 등을 캐고 있다. 검찰은 또 권 전 고문이 당 소속 의원 등 6∼7명에게 수천만원씩의 금품을 제공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권 전 고문의정치자금 제공과 관련)불법적인 게 나오면 수사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박홍환 조태성기자 stinger@
  • 민주 대선 후보 노무현/ 정치역정

    어느날 갑자기 한국정치의 중심인물로 급부상한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선후보는 ‘남들이 가길 꺼려하는 길’을고집스럽게 걸어온 덕을 톡톡히 본 정치인이다.88년 5공청문회때 거물급 증인을 호되게 몰아세우는 장면과,90년 3당합당 당시 기자회견을 하던 김영삼(金泳三·YS) 통일민주당총재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몸짓,그리고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한 직후 멋적게 웃는 표정이 일반국민들에게 각인된 노무현의 전부다.그만큼 정치의 중심무대에 가까이 있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의 지지가 ‘노무현의 신화’를 일궈낸 토양이 됐다.특히 2000년 총선때재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 종로 지역구를 기꺼이 버리고지역감정의 벽을 깨겠다며 민주당 깃발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것은,‘정치인 노무현’을 결정적으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때 노무현 홈페이지엔 하루 1000건이 넘는 격려 메시지가 폭주했고,이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노무현스스로도 “그때부터대통령에 대한 꿈이 구체화된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노무현은 1946년 경남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3남2녀(큰형은 작고)중 막내로 태어났다.6살때 천자문을 외우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1,2등을 놓치지 않을정도로 머리가 좋아 ‘노 천재’로 불렸던 그는 자존심과우월감이 남달리 강한 학생이었다.반면,어려운 집안형편은그의 얼굴 한구석을 열등감과 반항심으로 그늘지게 했다. 이처럼 ‘개인적 자질’과 ‘가정형편’간 형평이 맞지 않았던 성장기 특성이 기존질서에 대한 강한 도전의식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소년 노무현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을 만큼,당돌하고 오기있는 학생이었다.초등학교 6학년때 교내 붓글씨 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1등을 한 학생이 종이를 바꿔 새로 쓴 것을 알고 분개해 상을 반납했을정도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생일기념 글짓기를 강요받자 ‘턱도 없다.’는 뜻의 ‘우리 이승만 택통령’이라는 글만 달랑 써서 제출했다가 퇴학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당시 그의 성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생활기록부에는 “극히 독선적이다.”는 평가가 게재돼 있다.노 후보가“유력언론에 굽신거리지 않겠다.”며 일전불사의 태도나,미국에 무작정 저자세로 나가지 않겠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성품의 연장으로 보인다. 또래에 비해 조숙했던 노무현은 집안형편을 고려해 장학금과 은행취업을 기대하고 부산상고에 진학했다.그러나 가난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불만스러웠던지 친구들과 술,담배를 하는 등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결국 졸업후 농협 취직시험에 떨어지자 독학으로 고시공부에 나서 75년 17회 사시에 합격함으로써 입신양명의 전기를마련한다. 판사 8개월여만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두고 78년 변호사로 개업한 노무현은 수임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당사자간 합의가 가능한 사건도 서둘러 처리하는 평범한 변호사였다. 대학생들과 요트를 즐기는 등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그는81년 우연히 시국사건인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인생이 바뀌게 된다.고문을 심하게 받아 몸이 무참하게 망가진 학생을 보고 분개한 노무현은 그때부터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뛰어든다.87년엔 대우조선 노동자 사망사건 처리과정에 불법개입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23일간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에 힘입어 88년 13대총선때 YS의 공천으로 부산 동구에서 출마해 당선,정치권에 입문한다. 초선의원 노무현은 88년 5공청문회에서 정주영(鄭周永) 현대 회장 등을 가차없이 추궁해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그러나 당시 증인으로 나온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고,청문회가 여당의 일방적 불참선언으로 파국을 맞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뒤 잠적해버린 일 등으로 “불안하다.”“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이런 지적은 지금까지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노무현은 90년 3당합당때 YS의 합류 권유를 “역사적 반역”이라며 뿌리치는 정치적 소신을 고수했다.이는 오늘날엔‘원칙’이란 명분에서 노무현의 큰 정치적 자산이 됐지만당시엔 춥고 배고픈 기나긴 정치험로에들어선 것을 의미했다. 지역감정의 벽에 막혀 92년 14대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96년 15대총선에서 잇따라 낙선,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았던 노무현은 97년 대선직전 김대중 대통령과 손잡은 것을계기로 여당에 몸담게 됐다. 노 후보는 개성과 정치역정이 워낙 선명하기 때문에 주위의 평가 또한 극단으로 갈린다. 비판하는 쪽은 13년동안 정치를 한 그의 실질적 경력이 1.5선 국회의원에 해양수산부장관 8개월이 전부라는 점을 두고 나라를 맡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호(好)·불호(不好)가 분명하고 매사를 2분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국가 구성원 전체의 갈등을 제대로 조율할 수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과거 파업현장에서 노동자들편에 서서 외친 격한 발언과 최근에 불거진 언론국유화 발언 논란 등은 그의 이념적 성향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지지하는 쪽은 노 후보의 원칙을 향한 비타협적 자세만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고질적 모순을 철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가인기에 민감한 정치감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정책은 펴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지난해말 당내 쇄신파동때 동교동계를 공격하지 않은 점은 ‘정치적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례로 제시된다. 서민 이미지이면서도 구력 3년에 핸디 20의 골프실력을 갖고 있는 점도 그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때 휴일 사이에 평일이 끼여있으면종종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난 모습에서도 노무현의 파격적인,또한 ‘자유분방한’면모를 느낄 수 있다. 고시공부를 할 때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독서대를 개발,실용신안 특허출원을 했던 일화는 94년 인명관리 컴퓨터 프로그램인 ‘노하우 2000’을 스스로 개발한 사례와 함께 노무현의 창의적 기질을 엿보게 한다. 노무현은 작은 체구에 고개를 숙이고 걷는 모습과 소탈하고 편하게 말하는 어투 탓에 카리스마가 절대 느껴지지 않는다고 직접 본 사람들은 말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 뉴스라인/ 강상춘 黨중앙위 서기실장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서기실장에 강상춘 서기실 부실장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한 소식통은 25일 “지난해5월 이성복 전 서기실장이 사망한 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강상춘 부실장이 실장으로승진했다.”고 밝혔다. 노동당 중앙위 서기실은 북한 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기실’로 불리며 남한의 청와대 비서실과 외형은 비슷하다.하지만 기능은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깊이 참여하는 청와대 비서실과 달리 김 위원장과 그 일가족의 생활을돌보는 일을 주로 수행하고,당내 각 부서의 보고문건 등을전달하는 보조적 역할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與경선 5일부터 ‘슈퍼3연전’/ TK표심 자극 ‘색깔 공방’

    이번 주말 대구와 경북지역 경선 대회전을 앞두고 있는민주당 이인제(李仁濟)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이념공방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두 후보는 3일에도 보수성향이 짙은 것으로 알려진 대구·경북지역 ‘표심’을 자극하려는 듯 치열한 이념 공방을 주고 받았다. 더욱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이날 현 정부를‘좌파정권’이라고 공격함으로써 당내에선 두 후보간 색깔 공방이 더욱 가열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온다. 이 후보는 이날 경북지역 지구당 방문에 앞서 대구시내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노 후보가 지난 90년에 발표한 재야 성명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국가 안보에 위기를 조성했고 ▲2001년 1월8일 안동시민학교 특강에서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은 분열세력,남한은 미국을 등에 업은 분열세력으로 표현,남북한을 등가(等價)로 보는 인식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또 노 후보가 지난 2000년 모 시사주간지 기고문에서 ‘통일이후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거나,남북회담 과정에서 정체성을 유지해야한다는 등 소모적인 체제논쟁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적시했다며 이념문제를 집중 비판했다. 특히 이 후보측은 ‘노 후보의 장인이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부역을 제공해 53년 이후 휴전 이후 옥살이중 사망했다.’고 보도한 주간지를 배포하며 공세를 취했다. 이 후보측은 경북지역 16개 위원장중 10명이 이 후보 지지를 선언,판세를 장악했다며 서명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측은 “이 후보가 이념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수구·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인지를 방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노 후보 장인의 좌익활동 논란에 대해서도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유신시절인 지난 77년에 대한민국의 판사를 지냈고,이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며 해명했다. 이날 경북지역 지구당 10여곳을 순방한 노 후보도 이 후보의 공세에 대해 “자살공격과 비슷하다.자해행위 아니냐.”며 차단을 시도한 뒤 “당내 경선은 본선에 내보낼 후보를 뽑는 것인 만큼 본선 경쟁력이 가장 중요하다.”며직접적 대응을 자제했다. 노 후보측은 이 후보측이 제기한 색깔,재산공세 등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이 지역에서 50% 이상의 압승을 자신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美, 예멘에 100여명 파병 결정

    미국의 대테러전이 아프가니스탄 이외의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부시 행정부는 필리핀과 그루지야에 이어 예멘에도 군사고문관을 포함한 100여명의 미군 병력을 파견키로 했다.아프간 동부에서는 1월23일 아프간 양민 16명을 학살한 이래 탈레반 및 알 카에다 병력에 대한 최대 규모의 지상군 공격이 감행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일 아이오와주를 방문,“테러와의전쟁은 아프간 국경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며 “예멘 정부도 우리의 기대에 반응하고 있다.”고 강조,예멘 파병을기정사실화했다.앞서 빅토리아 클라크 국방부 대변인은 1일예멘 정부군의 훈련을 돕기 위해 미 병력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부시 대통령이 예멘 파병을 결정했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에게 전권을 위임,예멘과 파병 문제를 협의토록 했다고말했다.군사고문관을 비롯 100명 이상의 특수부대가 파견되고 군사장비도 지원할 것으로 전해졌다.예멘 정부도 이를 시인했다.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가 태어난 예멘을 테러세력의 주요 은신처로 여러차례 지목해 왔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그러나 이날 CNN에 출연,“테러활동이 의심되는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 미군을 파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군사개입은 통제가능한 소규모 단위로 이뤄질 것이며 전 세계 테러세력의 추적에 무한정한 임무를 씌우지 말라.”고 강조했다.그루지야 파병 계획으로 러시아와 마찰을 빚는데다 예멘 파병이 자칫 이라크 공격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중동국가들의 우려를 감안한 외교적 발언이다. 한편 미군은 올들어 파키스탄 국경에서 65㎞ 떨어진 팍티아의 주도 가르데즈 주변 산악지대에 대규모 공습과 함께 101공수부대원과 특수부대를 동원,지상전을 벌였다.중부사령부는 교전에서 미군 1명과 아프간 동맹군 2명이 사망했으며 10여명의 미군이 부상했다고 밝혔으나 특별한 전과는 거두지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공습에는 열추적 장치가 부착된 BLU-1186 레이저 유도탄과 같은 신형무기들이 동원돼 미 첨단무기의 시험장이 됐다는 지적이다.공격 목표가 된 아르마 산악지대에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병력이 4000∼5000명 재집결한 것으로 추정됐다.그러나 빈 라덴의 존재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에듀토피아/ 청소년 금연교육 이대로 좋은가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69.7%로 세계 1위다.청소년 흡연율도 급증해 남자 고교생 27.6%,여고생 10.7%를 기록하고 있다.초등학생의 흡연 경험률도 12%를 넘어섰다.문제의 심각성에 놀란 서울시교육청은 새해부터 ‘담배와의전쟁’을 선포하고 오는 6월부터 시내 모든 초·중·고교를 절대금연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청소년 흡연은 어른이 되어 담배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피해가 심각하지만가정에서,길거리에서 어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현실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금연정책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캐나다의 금연정책을 통해 교훈점을 알아본다. ■금연정책 선진국선 어떻게. “담배는 멋진 게(cool) 아니라 악취가 나요(stinks).”“4만5000명의 캐나다인이 해마다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죽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듀람시 제르투르드 코퍼스 초등학교.학교도서관에는 커다란담배 모형과 팸플릿을 손에 든 8학년(13) 서너명이 6학년생 수십명을 앞에 앉혀놓고 금연교육에 열심이다. 캐나다의 성인흡연율은 77년 54%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감소하기 시작해 현재 25%까지 줄었지만,청소년들의 흡연율은 계속 증가해 99년 29%까지 늘었다. 이 때문에 각 지역 교육청은 90년대 중반부터 담배,마약,알코올 등 약물 오남용의 위험성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했다. 특히 듀람 교육청이 지역 경찰청과 함께 자체개발한 VIP프로그램은 탄탄한 구성으로 다른 도시에서 교재를 구하러 올 정도이다.VIP는 가치(Values),영향력(Influences),동료(Peers)의 머리글자.약물에 노출되기 시작하는 6학년부터 집중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금연교육에 경찰,또래 총동원= VIP 수업은 주로 교사와경찰 등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6주동안 주1회씩 수업을 진행하지만 교육을 마친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설문조사에 따르면 75%의 청소년이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운다고 답할 정도로 또래집단이 청소년 흡연에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하다. 캐나다의 명물인 RCMP(왕립기마경찰)가 특별손님으로 나와 관심을 돋우기도 한다.수업은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의관심을 끌 수 있도록 다채롭게 꾸며진다. 비디오를 보며 율동도 하고 군것질거리와 스티커를 나눠줘 흥미를 끈다.인간의 폐와 유사한 돼지폐는 물론 실제폐암 사망자의 시신에서 떼낸 폐를 보여주며 종양의 모양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이들에게는 안돼요(Not to Kids!)= 흡연자 10명중 9명은 10대때 담배를 처음 피운다.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는것이 청소년들의 흡연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판단한 정부는 ‘구할 수 없으면 피울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청소년 금연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밀집한 온타리오주의 경우94년 담배규제법(Tobacco Control Act)을 통과시켰다.19세미만에게 담배를 파는 것은 범죄이며 학교는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소매업자가 청소년에 담배를 팔다가 적발되면 4000달러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학생이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법정에 소환되거나 5000달러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일부 학교에서는 흡연중 적발된 학생은 정학시킨 뒤 별도의 금연교육기관에서 교육을 시킨다.게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전학시킨다.흡연에 대한 처벌이 가혹할정도로 엄한 것이다. ●담배 피우면 ‘죄인’?= 캐나다는 88년 담배광고 규제법,연방 건물 및 교통시설내 금연법 등 2개의 금연관련법을통과시키고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다. 담배 자판기는 95년부터 전면 폐지됐고 약국이 입주한 백화점,슈퍼 등에서는 담배를 팔 수 없다.담배 진열장은 손님의 눈에 잘 안띄는 구석자리에 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담배연기를 마시는 간접흡연에 대해서도 너그럽지 않다.99년부터 토론토 전역의 모든 작업장에서 금연이 의무화됐고 식당,볼링장 등은 25%의 금연석을 지정하고 환풍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오타와,듀람 등지에서는올해부터 모든 식당이 완전 금연지역으로 정해졌다.건물의 현관입구에는 가로 세로 10㎝이상 크기로 ‘금연 건물’표시를 해야한다. 토론토 허윤주기자 rara@ ■캐나다 비흡연 권리 연합회장 마후드. 캐나다 담뱃값은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5000∼6000원으로엄청나게비싸다.게다가 담뱃갑 겉면의 절반에는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병든 심장,암에 걸린 폐 등 끔찍한 컬러사진이 실려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게 만든다.사진 옆에는 ‘담배는 폐암,구강암 등을 일으킵니다.’‘담배 피우면 성 불구’등 직설적인 문구가 크게 인쇄돼 있다. 2000년 6월,담배 제조회사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러한강력한 경고문을 담뱃갑에 싣도록 한 것은 캐나다 정부가아니다.25년전 설립돼 회원이 2000명에 이르는 비정부 단체인 ‘캐나다 비흡연자 권리 연합회’가 바로 주인공. 토론토 대학 이웃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가필드 마후드회장은 “해마다 20억개 이상 팔리는 담뱃갑에 씌어진 흡연 경고문은 전세계에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종”이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가 만든 흡연 경고문은 컬러사진,그래픽 등으로구성돼 있다.여론조사에 따르면 흡연자의 44%가 ‘적나라한 사진이 담배를 끊고싶게 한다.’고 응답했다. 이 경고문은 지금 호주,뉴질랜드,폴란드,싱가포르 등에도영향을 미치고 있다.유럽연합 의회도 지난해말 ‘흡연은살인’등 강력한 경고문을 내년부터 싣기로 결정했다. 이 단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흡연.담배제조업체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청소년을 유혹한다. 또한 광고,이벤트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청소년을 고객으로 흡수하려 한다. 마후드 회장은 “담배가 예쁘장하게 포장돼 구멍가게의사탕 진열대 옆에 놓여있고 수많은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흡연을 비정상적이라기보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후드 회장은 담배를 콜레라 등 전염병과 같은 수준의질병으로 비유한다.그는 “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염된다면 물을 못먹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수원(水源)부터차단해야 한다.”며 담배회사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비흡연자 권리 연합회는 앞으로 담뱃세를 더 높이도록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다.또 간접흡연의 유해성을 전국민에알려 흡연율을 최대한 낮춰볼 작정이다.아울러 작업장,식당의 금연 등 일부 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금연제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계획도 세우고 있다. 허윤주기자
  • 정계개편 논란 가열/ “2월 안되면 全大후에라도”

    민주당내 ‘정계개편’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30일 유력 대선주자인 이인제(李仁濟) 고문과 동교동계의 수장인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반면,추진 주체인 중도개혁포럼의 정균환(鄭均桓) 의원은 공론화를 천명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공식 테이블’로 올려지는 모습이다.이에따라 당분간 정계개편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정계개편론의 전말] 이번 정계개편론은 당 외곽조직이 지난해 말부터 구상한 ‘작품’이며,여기에는 여권과 가까운 모대학 H교수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 구상을 정균환 의원이 받아 추진에 돌입했으며,김한길전 장관은 정 의원과 교감 아래 의견수렴에 나섰다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권노갑 전 고문이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청와대나 동교동계가 전면에 나설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정치상황을 감안할 때,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정계개편론은 ‘과연 이인제 고문으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이길 수 있나.’란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쉽게 소멸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면충돌 양상] 이번 정계개편론은 예상보다 강한 ‘역풍’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특히 대선주자 가운데 한화갑(韓和甲) 고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반대하고 있어,중도개혁포럼측의 ‘시행착오’가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이에 따라 2월내 정계개편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균환 의원측이 입장을 굽히기는커녕,정계개편 논의를 공론화하겠다고 강하게 천명함에 따라 논란이 쉽사리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민주당의 한 의원은 “2월 정계개편론이 소멸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며,설사 2월에는 어렵다 하더라도 지방선거전까지 계속 돌출하면서 의외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계속될 시도] 일각에서는 동교동계가 최악의 경우 정계개편에 반대하는 당내 세력을 모두 뿌리친 채,자민련,민국당 등‘반(反)이회창’세력과 연합해 신당을 창당한 뒤 영남권 후보를 내세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정가의 한 소식통은 “동교동계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것은 곧 사망선고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차원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이날 자민련측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조부영(趙富英)부총재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다 안고갈 생각은 없으며,민주당이 통째로 신당 창당에 참여할 수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대선주자들이 다 빠져도 신당에 참여할 민주당 의원은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국전 양민학살은 美軍지휘부 명령”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를 포함,여러 지역에서 미군에의해 자행된 무차별적 양민학살이 미군 지휘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주장했다. BBC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모두 죽여라:한국전에서 미국의 전쟁범죄(Kill Them All:American War Crimes In Kore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2월1일(현지시간) ‘타임워치’ 시간에 방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BC는 ‘타임워치’ 제작진들이 이 프로그램을 위해 1년여에 걸쳐 미국과 한국 등에서 취재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최근 발견된 관련문서와 새로운 증언들을 토대로 한국전 당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이 미군 지휘부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문서에는 “모든 피란민들을 살해하라.”는 미군 지휘관들의 명령이 담겨 있다.학살이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자행됐다는 병사들의 솔직한 증언도 뒤따르며 전 미 국방부 고문의 “미 국방부가 노근리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한 해변가에서 미 해군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민간인 400여명이 사망했으며,미 제25보병사단 소속 병사들이 한 마을에서 어린이 25명을 포함,82명을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보도한다. BBC의 이같은 추적보도는 미 국방부가 지난해 5월 보고서를통해 노근리에서 학살사건이 있었지만 학살 명령은 없었다는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앞으로 한국전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BBC는 주장했다. 박상숙기자 alex@
  • 자치 안테나

    ◆ 구속 곽달영의장 '어록집' 눈총. 충북 청주시의회가 국민주택건설기금 횡령 혐의로 지난달 구속된 곽달영 의장(59)의 ‘어록집’ 성격이 짙은 연설문집을 펴내 눈총을 받고 있다.청주시의회 사무국은 최근‘2001년도 연설문집’이란 제목으로 곽 의장의 개회사,격려사,대회사,추모사등 지난해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각종 행사에서 실시한 149건의 연설과 행사 시나리오등을 실어 380쪽 분량으로 묶었다.그러나 이 책의 90% 이상이 곽 의장의 연설문인데다 의장 개인 기고문 등까지 실려 있어 개인 어록집 성격이 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제천시 공무원 판공비 1억 반납. 최근 자치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판공비) 사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권희필 충북 제천시장을 비롯한 시 공무원들이 업무추진비 1억원을 반납했다.권 시장은 3,800만원을,다른 공무원들도 모두 6,200만원을 반납,모두 1억원을 이번 추경에서 삭감해 현안 사업비로 전환시켰다. ◆ 미등기 누락 취득세 15억 추징. 강원도는 사망에 의한 상속재산 중 미등기로 인한 취득세 신고 누락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15억1,000만원을 추징했다고 24일 밝혔다.도는 지난 3월부터 96년 이후 상속이 개시된 과세물건에 대한 취득세 신고누락을 조사,비과세 및 감면 대상을 제외한 9,232건에 대해 취득세 13억8,800만원과 농어촌특별세 1억2,200만원을 추징했다. ◆ 공공행정 ISO9001 취득. 부산진구가 부산지역 16개 구·군 가운데 처음으로 공공행정분야에서 국제품질규격인 ISO 9001 품질인증을 취득했다.부산진구는 고객만족 행정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기획감사실,민원봉사과,청소행정과,허가민원과등 4개 부서에 대해 ISO인증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받은 결과,인증서를 취득하게 됐다고 24일 밝혔다.부산진구는 31일 구청 대강당에서 국제인증기관인 BSI인정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ISO 9001 인증서 수여식을 가질예정이다.
  • [김삼웅 칼럼] 이후락씨 역사앞에 증언하라

    생존한 한국현대 인물중에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처럼의혹과 베일에 가려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박정희 독재시대그는 명실상부한 권력의 요리사였다. 마치 유방(劉邦)의 장자방(張子房),히틀러의 루돌프 헤스와 비슷한 존재였다. 이씨는 5·16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면서 3선개헌,1971년 대선,박동선 공작사건,1973년 김대중씨 납치살해미수사건과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등에 깊숙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다. 남북조절위원회 남한측 공동위원장과 제10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10·26사태로 박 정권이 붕괴되면서 몰락길에 들어서 신군부세력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의 일부를 환수당하고 지금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제작을 하며 은거중이다.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최 교수 의문사와 관련,출두요구서를 보냈으나 건강상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치매증세’란다.현재 77세로서 출두거부 이유는 ‘칭병’일지모른다.이씨는 중정부장 재임중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있는 두가지 ‘엽기적’사건의 핵심인물이다.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의 DJ 납치살해미수사건과 같은해 10월19일일어난 최 교수 살해사건이 그것이다. DJ는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박 대통령과자웅을 겨뤄 46%를 득표한 야당지도자이고 최 교수는 유망한 국립대학 교수였다.이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하는데 이씨는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고 지금까지 진상을 밝히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DJ 납치살해미수 사건과 관련,이씨는 한때 자신의 소행임을 밝힌 바 있다.사건 후 박 대통령은 미국의 칼럼니스트잭 앤더슨에게 “나는 하나님께 맹세코 납치사건과 관계가없다.아마 중앙정보부의 소행일 것”이라고 말했다.이씨는1980년 3월 동향친구인 최영근 전의원에게 “1973년 봄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 김대중을 죽이라고 지시했다.나는 곤혹스러운 나머지 실행을 미루고 있었는데 박 대통령은 김종필과도 이야기가 되었다면서 다시 명령을 내렸다.김대중을 납치한 것도 나지만 살려준 것도 나다”고 말했다가 1987년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하늘에 맹세코’ 납치를 지시한 바 없다”고 말을 바꿨다. 지금까지 드러난 납치사건은 이씨가 총지휘하고 김치열 차장과 이철희 차장보가 국내에서 지휘감독했으며 일본의 총지휘는 김기완 주일공사,행동대장은 본국에서 파견된 윤진원 공작 제1단장이다.김동운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등이 하수인이다.납치사건을 ‘총지휘’한 이씨는 사건 후 중정부장에서 해임됐다. 최 교수 살해사건은 DJ사건과는 달리 권력핵심에서 모의한흔적을 찾기 어렵다. 최 교수의 비중으로 보아 그렇게까지할 이유는 없었을지 모른다.정황상 수사관들이 고문을 하다가 숨지거나 위독해지자 자살로 꾸미고자 중정 건물에서 밀어 떨어뜨렸을 개연성이 크다.며칠전 의문사진상규명위는“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중정간부가 ‘조사를 담당한 중정직원이 최 교수를 7층에서 밀어 떨어뜨렸다’는 말을 다른중정직원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발표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1988년 10월 최 교수 의문사 관련자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차철권 당시 주무 수사관을 비롯,고문 관여자와 이후락 부장·김치열 차장·조일제 차장보·안경상 수사국장등 수사라인상의 명단이었다. 최 교수 의문사 수사라인 책임자 이후락,김치열씨는 당시중정의 구조나 기능으로 보아 최 교수 살해와 은폐사실을몰랐을리 없다.지금 ‘하수인’들이 사망·도피·증언거부를 하는 마당에 수사지휘 책임자가 진상을 밝혀야 한다.의문사 진상규명위는 지난 8일 두사람에게 소환장을 보냈으나약속이나 한 듯이 ‘치매 등 건강’상의 이유로 출두불가를 통보했다.규명위가 재소환에 나섰고 ‘치매’라면 의사의 진단서를 요구할 방침이라 한다. 두 사람은 이제 인생 황혼녘에서 국민과 역사앞에 진실을밝히고 사죄할 일은 사죄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 무덤까지 ‘원죄’를 가져갈 것인가.우선 진상규명위에 출두할 것을 촉구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사설] 최교수 타살증언과 역사의 힘

    지난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에서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숨진 서울대 법대 최종길(崔鍾吉)교수는 ‘투신 자살’했다던 당시 중정의 발표와는 달리 “수사요원에 의해 7층에서 떼밀려 떨어졌다”는 중정핵심 간부의 증언이 나왔다.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10일 당시 최 교수 사건 조사계통에 있던 A씨를 소환조사한 결과 “부하 직원 B씨가 ‘최 교수를 조사하던 차모씨 등 2명이 7층 조사실 옆 비상계단에서 최 교수를 밀어 떨어뜨렸다’고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또 수사관들이 최 교수에 대해 잠 안 재우기,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꿇리기,몽둥이 찜질 등 고문을자행한 사실도 밝혀냈다.뿐만 아니라 최 교수 조사 및 사망과 관련해 중정이 작성한 긴급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은 물론,사망진단서와 사체검증조서 등 5건의 서류가 모두 허위라는 사실도 밝혀냈다.중앙정보부가 최 교수의 ‘타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규명위는 중정이 최 교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지 이틀째인 73년 10월18일 최 교수에게 간첩 혐의가 없다고 인정한 사실 등을 들어 ‘최 교수의 죽음은 중정의 공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타살’을 밝혀내는 데는 난관이있을 수도 있다.타살 사실을 상관 A씨에게 보고한 B씨가사망한 데다 타살 혐의를 받는 수사관들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최 교수가 고문끝에 사망했거나 가사상태에 빠지자 이를 감추기 위해 ‘투신 자살’을 위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항간에 팽배해 있음을 규명위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규명위는 또 중정의 조직적 은폐 혐의도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이 문제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당시 중정의수뇌부 이후락(李厚洛)부장과 김치열(金致烈)차장은 규명위의 소환 요구에 ‘치매’등 질병을 이유로 불응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국민들은 이들이 ‘칭병(稱病)’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의학적 증거’를 제출해야한다.우리가 최 교수 의문사 진상의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나 그 사실의 조직적은폐는 ‘반인륜적 범죄’로 시효와 관계없이 단죄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최 교수 ‘타살 증언’을 접하면서 ‘역사의힘’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한다. 지난날 독재정권 아래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있다.뉘라서 감히 도도하게 전진하는 역사의 힘을 거스를수 있는가.역대 독재정권에 봉사해 왔던 권력기관들은 스스로 거듭나기 바란다.그럴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장준하(張俊河)선생 등 그동안 숱하게 제기돼 온 ‘의문사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다.
  • “최종길 교수 타살됐다”中情수사관이 7층서 떠밀어

    지난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과관련해 조사를 받다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서울대 법대 최종길(崔鍾吉·당시 42세)교수는 조사 도중 스스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는 당시 발표와는 달리 수사관에의해 떠밀려 떨어졌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에 따라 최 교수가 고문을 피하기 위해 또는 모욕적인수사에 항의해 투신했을 가능성보다는 수사관들에게 ‘타살’됐으며 중정은 이를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김형태 제1상임위원은10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시 최 교수를 조사했던 수사진의 핵심 간부인 A씨를 조사한 결과,최 교수가 타살됐다는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 부하 직원 B씨가 ‘최 교수를 조사하던 차모씨 등 2명이 조사실 옆 7층 비상 계단에서 최 교수를 밀어 건물 밖으로 떨어 뜨렸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는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은 B씨 등 3명을 추적해 조사했으나 “B씨는 이미 사망했고,국내에 있는 차씨와 미국에 있는 C씨는혐의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진상규명위 조남관 조사 1과장은 “B씨가 사망해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될수도 있지만,특별히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망자의 진술도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특히 “최 교수 조사 및 사망과 관련해 중정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 등 5건 모두가 허위로 작성됐다”면서 “특히 현장검증 조서의 경우 검증참여자로 기록된 인사들 중 실제로 검증에 참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형태 위원은 “당시 중정부장이던 이후락씨와 차장 김치열씨에게 지난 4일 소환장을 보냈으나 건강상의 이유를들어 둘다 거부했다”고 전했다.그러나 규명위는 이 전 부장과 김 전 차장을 소환해 중정의 조직적인 조작 여부를조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규명위는 남아공,영국,일본 등 3개국 법의학자에게최 교수의 사인 규명을 의뢰,이 중 2개국 법의학자로부터답신을 받아 분석 중이며 이달말쯤 조사를 마무리 해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창구 이영표기자 tomcat@
  • ‘최종길교수 타살’ 증언 파장

    '의문사 1호'.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타살됐다는 진술이 중정 핵심 관계자에게서 나옴에 따라 이 사건의 진상이 곧 밝혀질 전망이다. 최 교수가 타살된 것으로 최종 결론날 경우 당시 지휘계통에 대한 전면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 밝혀진 사실] 당시 최 교수를 수사한 중앙정보부 5국 핵심 관계자 A씨는 “최 교수가 숨진 직후 직계 부하 B씨로부터 ‘조사관들이 최 교수를 건물 밖으로 나 있는 7층 비상계단으로 끌고가 밀어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B씨가 “”사건 발생 직후 동료인 수사관이 (나를) 비상계단 쪽으로 데려가더니 양손으로 미는 시늉을 하면서 '(내가) 여기서 밀어버렸어'라는 말을 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최 교수가 가혹한 고문으로 가사상태에 빠졌거나, 이미 죽음에 이르러 수사관들이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최 교수를 건물 밖으로 밀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식이 있었던 최 교수를 건물 밖으로 던져 숨지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시 중정은 “”조사를 받던 최교수가 화장실에 갔다가 동행했던 김모 수사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소변기를 발로 딛고 창 밖으로 투신했다””고 자체 감찰 결과를 발표했었다. 규명위는 “중정은 조사 이틀째인 1973년 10월18일 최 교수에게 간첩 혐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면서 “최 교수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명백히 중정의 공작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고문에 직접 참여했던 수사관 2명을 조사한 결과, 잠 안 재우기,모욕,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꿇리기,몽둥이 구타 등의 고문을 한 사실도 밝혀냈다. 규명위는 또 중정이 최교수에 대한 긴급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은 물론, 사망현장 검증조서 등을 검찰을 통하지 않고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수사 전망 및 과제] 규명위는 중정 수사관들에 의한 의도적 살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건 공작 전모와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 교수가 타살됐다면 이 사실이 당시 지휘계통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후락 부장 등 당시 중정 최고 간부들이 자살로 은폐하도록 지시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타살로 결론이 나도 공소시효가 지나 당시 중정 간부들을 국내법으로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김형태 상임위원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처벌 가능한 ‘반인륜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적용 배제 국제조약’을 적용해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 이영표기자 window2@. ■최 교수 아들 광준씨 “의문사 진상 이번엔 밝혀야”.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국가가 스스로 아버지의 타살 사실을 고백해야만 그동안 쌓인 우리 가족의 한도 풀릴 수있습니다.” 최종길 교수가 지난 73년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떠밀려 숨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10일 최 교수의 아들 광준(光濬·37·경희대 교수)씨는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이같이 절규했다. 최씨는 “정부가 지난 28년 동안 이 사건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의문사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만이비뚤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은 아버지를 고문했던 중정 수사관들에 대한 미운 감정마저 사라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만 죄인을 용서하고 싶어도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는 현실이 갑갑하다는 말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토로했다. 최 교수의 사망사건 당시 9살이었던 광준씨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이틀 전 건장한 체격의 중정 수사관 두명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곧 집에 오실거야’라고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면서 “진실은 100%밝혀야 진실이지 일부만 밝히는 것은 진실이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고홍주교수 美 IHT 기고 “”라덴 美 법정에 세워야””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낸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 예일대 교수는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HT) 1일자 기고문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비밀 군사법정에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다음은 기고문 요지. 빈 라덴이 체포되면 그를 비밀 군사재판이나 국제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둘다 미국 연방법원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못할 것이라는 그릇된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인들이 전세계에 테러범들이 파괴하려한 법의 통치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면 왜 미국 시민을 죽인 대량 학살범을 미국 땅의 미국 법원에서 재판하지 않는가.나는 빈 라덴이 살아서 재판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빈 라덴의 최측근 모하메드 아테프의 경우에서 보듯 국제법은 9·11테러의 주범들을 처단할권리를 미국에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투항한다면 이들에게 린치보다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해야 한다.그래야복수보다 더 높은 가치를 고양하고 전세계에 범죄의 진상을 알리고,문명사회는 인류에 대해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도 정당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캄보디아와 시에라 리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국제재판소를 세우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운 협상을 거쳐야 한다.또 재판이 지정학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기 쉬워 빈 라덴을 국제법정에 세운다면 이슬람권이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미국은 항공기 납치범,테러리스트,마약밀매자뿐만 아니라 미군에 항복했던 파나마의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미국내 법정에 세웠다.또 1993년 무역센터 폭파 사건과 1998년 탄자니아와 케냐 주재 미국 대사관 폭파 기도 혐의로 기소됐던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 대해 공개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경험과 더불어 훌륭한 사법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4,000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인 학살범을 나라밖 국제재판소에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 119 장난전화 크게 줄었다

    ‘119 장난전화’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2일 서울시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119신고전화 총 357만건 중 허위신고는 3만6,000여건(1.0%)으로 허위신고율이 사상 처음 1%대로 떨어졌다. 지난 99년의 경우 서울지역 119 신고전화 406만건 중 허위신고가 195만건(48%),지난해엔 384만건 중 42만건(10.9%)이었던 점에 비하면 장난전화는 거의 사라진 셈이다. 장난전화가 급감한 것은 99년 최첨단 위치정보시스템 도입으로 발신자의 이름과 위치,전화번호 등의 확인추적이가능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또 삼진아웃제 도입으로 공한문 발송,경고문 발송 조치 후 또 다시 장난전화를 걸면 소방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을 강화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시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홍제동화재로인한 소방관 사망 사건과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발신자 직접 확인 서비스 등의 영향으로 장난전화가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한편 92년부터 발신자 추적시스템이 가동된 경찰의 범죄신고 전화(112) 역시 감소 추세인데 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의 경우 지난 10월 말 현재 신고전화 114만1,567건중 허위신고는 1,999건(0.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폴리시 메이커] 출범 일주일 국가인권위 김창국 위원장

    “3년 임기를 마친 뒤 국민들로부터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같이만 일한다면 세금을 더 내도 전혀 아깝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달 26일 사무처를 꾸리지 못한 채 파행적으로 출범한지 꼭 일주일을 맞은 국가인권위 김창국(金昌國·61)위원장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벌써 두달여 동안 휴일도 없이 새벽 회의까지 거듭 강행,피로가 누적됐고 다른 행정부처와 갈등이 큰 만큼 고충이 적지 않을 텐데 김 위원장은인터뷰 내내 낙관적인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번주 중 행정자치부와 직제안에 대한 협의를 확정짓고 현장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라면서 “이번달에 채용 공고 등을 낸 뒤 내년 1월이면 인권침해와 차별 행위에 대한 조사,연구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밝혔다. 기획단 시절부터 행자부와 법무부,중앙인사위 등 여러 부처와의 갈등으로 인해 위원 11명만으로 시작한 출범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진정은 무려 408건이 접수됐고 800여건의상담이 쏟아졌다. ▲출범한 지 일주일이 됐는데 인권위에 진정된 대표적 사건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주민등록증과 사진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행기 탑승이 거부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가 많았습니다.가장 중요한성과는 그동안 인권침해라면,국가기관으로부터 당한 고문이나 폭력만을 생각했으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 행위도심각한 인권 침해라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는점입니다. ▲인권위가 담당해야 할 가장 주된 임무는 무엇이 될까요. 국가인권위가 담당해야 할 주된 임무는 공권력 침해 구제와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보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할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자 삶의 질이 높은 사회’입니다.그러나 인권위가 생겼다고 해서 인권 수준이 하루아침에 성장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장기적인 관점에서사회 구성원,특히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인권위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 논란이 많이 일고 있는데요. 아직 국가인권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기인합니다.인권위는 인권위법을 통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구’로 규정돼 있습니다.업무 결과 역시 대통령이 아닌 국회에 보고하게 됩니다.전례없이 독립성이 강조된 만큼 위상을 올바르게 잡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업무 특성상 어느 조직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될 수 없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기관,사회 인권 수준을 끌어올리는 기관으로 자리매김될 것입니다.헌법재판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도 ‘옥상옥이다’라는 등 비판과 반발이 많았지만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 인권 수준 향상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습니까.인권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행령과 특례규정 등을 놓고 다른 정부부처들과 어떻게조율이 될 전망입니까. 행자부와 인사위 등과 많은 얘기를나누면서 서로 양보했습니다.애초 최소한의 인원이라고 판단한 427명을 321명으로 줄였고 다시 200여명선으로 제안해행자부와 협의를 거의 마쳤고 다음주 중 타결될 것입니다. 물론 인권단체 출신 직원을 특별 채용하는 문제는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저는 9급 공무원이 5급으로승진하는 데 평균 27년이 걸린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반발도 이해가 됐습니다.하지만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구와 달리 인권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뽑아서 안정적인 신분으로 일하게 해야 합니다.이 부분도 계속협의해 타협점을 찾을 것입니다. ▲위원 신분보장 미흡이나 특검제 조항 누락 등을 보완하기위해 인권법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십니까. 물론 아쉬운 대목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법개정을 말할단계는 아니고 활동을 해나가며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때 논의해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했다는것만 해도 큰 성과입니다.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13회)를 합격해 전주·광주지검 부장검사를 지내다 지난 8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재야 법조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모두 역임할 만큼두루 신망을 얻고 있다.부천경찰서 권인숙씨 성고문사건과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우리 사회 현대사의 굵직한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원칙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소박한 인품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평소 사무처 준비단 직원들에게 “지금까지살아오면서 했던 많은 일 중 원칙에 근거해 옳은 일이라는판단이 들었을 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며 실패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곤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 ◇인권위원회 첫 현장조사 어떻게. 국가인권위원회가 3일 청송보호감호소 등 구금시설 3곳에 대해 첫 현장조사에 나섬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국가인권위법 제24조에 따라 인권위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구금·보호시설을 방문해 직접 조사를 할 수있다. 이번 현장조사는 유현 위원과 인권위 사무처 준비기획단에 파견나온 공무원 1명이 담당할 예정이며 2∼3일 동안계속된다. 청송보호감호소에 수용돼 있는 류모씨는 지난달 29일 우편 진정접수를 통해 “동료 수형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해갈비뼈가 부러지고 횡격막이 손상됐는데도아무런 의료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했다.인권위는 현장조사를 통해 류씨와 교도관,다른 재소자들을 직접 면담해 진정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교도소 측의 관리소홀과류씨 긴급구제조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울산구치소 현장조사에서는 지난달 16일 벌금미납으로 울산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틀 후에 갑자기 숨진 구숭우씨(40) 사망사건 진정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한다. 그동안 인권실천시민연대 등 인권단체들은 “구씨는 경찰에 연행돼 울산구치소에 넘겨질 때까지만해도 정상적인 상태였다”면서 구치소의 가혹행위 여부,적절한 응급조치 여부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인권위는 또 대구교도소를 방문해 지난달 28일 교도관을통해 진정 접수한 한 수감자를 면담할 방침이다. 인권위 사무처준비단 최영애 단장은 “그동안 400여건의진정이 쏟아졌지만 사무처 구성이 안돼 현장조사를 못했다”면서 “첫 현장조사를 계기로 인권위가 제대로 활동할수 있도록 관련 부처의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美 테러전쟁/ 美軍 1,500명 칸다하르 압박

    미국 지상군 1,500여명이 탈레반의 마지막 거점인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인근에 도착,탈레반과의 최후 일전을준비하고 있다. 북부동맹은 26일 쿤두즈를 완전 장악했다고밝혔다. 한편 쿤두즈에서 생포된 외국인 지원병 포로들이 25일 마자르 이 샤리프 인근 수용소에서 유혈폭동을 일으켜수백명이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칸다하르 결전 임박] 미 해병대 1,500명이 25일 칸다하르인근에 도착,탈레반의 최후 보루에 대한 지상군 공격이 임박했다.미군의 아프간에 대한 보복전은 마무리단계로 접어들었다. ABC방송은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병대 병력 1,200∼1,600명이 칸다하르 근처에 배치됐다고 26일 보도했다.이방송은 “이들의 임무는 칸다하르 인근 공항의 안전확보와탈레반 목표물에 대한 공격”이라고 전했다. AP통신은 아라비아해에 정박중인 미 함정에서 해군 수백명이 추가 배치될것이라고 보도했다. [포로 수백명 사망 참극] 쿤두즈에서 생포된 외국인 지원병포로들이 25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서쪽으로 15㎞ 떨어진칼라이 장히 요새에서 폭동을 일으켜 미 공군기까지 동원된 진압과정에서 수백명이 사망했다. AP통신은 북부동맹 관계자 말을 인용,700명이 숨졌다고 전했으나 AFP통신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각각 수십명과 300∼400명이 숨졌다고 보도,사망자 규모는 크게 엇갈린다. 모하메드 모하키크 북부동맹 사령관의 대변인 야사우는 AP통신에 칼라이 장히 요새에 수용된 외국인 지원병들이 폭동을 일으킨 뒤 문을 부수고 ‘자살공격’을 가하며 탈출하려다 경비병들과 하루종일 전투를 벌였다고 밝혔다.야사우는최대 700명이 숨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댄 스톤킹 대변인은 폭동진압을 위해 미군 공습이 이뤄졌으며 미 특수부대원들은 모두 안전하다고 밝혔다. 스톤킹 대변인은 이번 폭동에 파키스탄과 체첸 출신의 ‘강경파’ 300여명이 가담했다고 말했다. 한편 폭동과정에서 북부동맹 군사고문관 미국인 1명이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미국 ABC방송은 숨진 사람이 미 중앙정보국(CIA)과 계약하에 일하고 있지만 정부 관리는 아니라고 보도했다.독일 ARD TV도 미군 특수부대원 1명이 요새안에 갇혀있는 장면을 방영했다. [유엔,정파회의 구성비 제안] 유엔은 27일 독일 본에서 개막되는 아프간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정파회의를 앞두고 4개 정파에 집행위원회 구성비를 제안했다고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유엔이 제시한 정파별 구성비는 ▲북부동맹 5 ▲모하마드자히르 샤 전 아프간국왕을 중심으로 한 ‘로마그룹’ 4 ▲이란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주축인 ‘키프로스그룹’ 4 ▲파슈툰족 난민중심의 ‘페샤와르그룹’ 3이다.집행위 구성은정파의 권력배분을 의미,합의도출에 난항이 예상된다. 김균미기자 k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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