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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특수부 여검사/손성진 논설위원

    1961년 4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판사인 황윤석 판사가 약물을 복용하고 사망했다 해서 한동안 떠들썩했다.미모의 32세 여판사의 죽음을 싸고 억측이 난무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타살이나 자살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남편은 감기 때문에 ‘베나드릴’이라는 약물을 복용했다고 말했다.서울법대를 졸업하고 23세에 고시에 합격한 황 판사의 요절을 세인들은 몹시 안타까워했다.1951년 황 판사보다 한해 먼저 고시 사법과 2회에 합격한 여성 법조인 1호는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어머니인 고 이태영 여사다.이씨가 32세의 유부녀로서 서울법대에 입학해 늦깎이 법학도가 된 것은 신민당 부총재와 고문을 지낸 고 정일형 박사의 외조 덕이 컸다.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명을 거부해 줄곧 변호사로 활동하며 여성 권익 향상과 인권 변론에 헌신했다. 그 뒤 여성 법조인은 한동안 배출되지 못하다가 환경처 장관을 역임한 황산성 변호사와 대통령직속 여성특위위원장을 지낸 강기원 변호사가 사시 12회로 합격했다.1971년에는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이 사시에 수석합격해 화제를 낳으면서 최초의 여성 부장판사,최초의 여성 법원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이 변호사의 뒤로는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국회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김영란 대법관 후보자와 전수안 서울고법 부장판사,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여성 판사의 맥을 이었다.이영애 전 법원장과 강 전 장관은 가톨릭 세례를 통해 모녀의 인연을 맺은 사이다. 최초의 여검사는 사시 22회인 조배숙 변호사 등 2명이다.얼마후 판사로 전직한 조 변호사는 여성에게는 영장 당직을 맡기지 않고 지방에는 여판사를 배치하지 않던 관행을 깼다.지난 6월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발령나 첫 여성 부장검사가 된 조희진 검사는 가장 오래 근무한 여검사로 기록되고 있다. 여성 파워는 법조계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전체 법관 가운데 여성은 274명으로 14.6%에 이르렀고 검사는 약 7%인 104명이 여성이다.이지원 검사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지검 특수부에 입성했다.여성 특수부 검사로는 김진숙 검사에 이어 두번째다.거친 특수수사 분야에서의 여검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조국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잊지 않고 불러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59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훈처 초청으로 지난 11일 한국에 온 키가이 라사(46)씨는 이렇게 입을 뗐다.키가이씨는 1926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 선생의 외고손녀이다.그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미국 등에서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 11명과 함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다. ●할아버지 묘역서 발을 떼지 못해 6박7일간의 고국방문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 참배로부터 시작됐다.현충탑 분향을 마친 키가이씨는 현충원 임정 묘역으로 발길을 옮겼다.선생의 유해는 1990년에야 중국 하얼빈 근교에서 발견돼 봉환됐다. 그는 일행들이 위령탑으로 발길을 옮기자 못내 아쉬운 듯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가기 전 기어이 차를 세워주도록 부탁했다.선생의 묘역에서 키가이씨는 달아오른 뜨거운 땅에 한참을 머리를 대고 있었다.그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할아버지가 많이 고생했다는 얘기를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그는 “현지에서도 독립유공자협회가 결성돼 후손간에 유대를 갖고 있다.”면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말을 못해 할아버지께 죄송스럽다.”며 돌아가면 한국어를 꼭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키가이씨가 부럽기만 하다는 표정인 장 타치아나(42·모스크바 거주)씨.그는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의 외증손녀다.이동휘 선생도 현충원 임정묘역에 묻혀야 하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장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한다.다만 살던 곳에 기념비만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라면서 “그래도 러시아 현지에서 책과 자료 등을 통해 외증조부가 레닌을 만나는 등의 활동상을 관심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한 일행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 일제의 만행을 듣고는 모두들 얼굴이 흐려졌다.고문을 당해 한쪽 귀가 없어진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보던 키가이씨는 고개를 돌리며 “할아버지가 이런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 임정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던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파벨(55·카자흐스탄 거주)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인들을 증오하셨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역사분쟁 이해 안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됐던 이위종 선생의 외증손녀 프로야예바 타치아나(43·모스크바 거주)와 피스쿨로바 율리아(35·〃) 자매도 한국을 찾았다.선생은 1910년 을사조약에 통분해 자결한 이범진 선생의 차남이다.타치아나 자매는 “두 분은 각각 러시아 초대 공사와 헤이그 밀사로서 독립운동의 산 본보기로 독립운동사에 많은 정신적·물질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한국학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율리아씨는 “외증조부가 1918년 모스크바 공산당대회에 참석한 이후 사망과정이 불분명해 이에 대한 연구와 1910∼20년대의 한·러 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최근의 한국·중국간 고구려사 분쟁을 의식한 듯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민족의 땅에서 벌어진 한민족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는 15일 충북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서울과 경주,울산을 관광한 뒤 오는 17일 출국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설] 휴대전화 불안 해소책 마련하라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사람이 낙뢰를 맞아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중국 등 외국에서는 가끔 있던 사고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사고가 처음이라고 한다.업계에서는 휴대전화 사용과 낙뢰 사이에 상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망한 박모씨는 휴대전화 외에 우산과 같은 벼락을 맞을 물건을 갖고 있지 않았다.따라서 이번 사고는 휴대전화 때문에 발생했다는 강한 의심이 들게 한다.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는 3300만명에 이르러 휴대전화는 마치 입는 옷과 같이 몸에서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그러나 편리한 만큼 숨겨진 위험 요소도 많다.서울과 거창 등에서는 휴대전화 배터리 폭발 사고가 발생해 소비자보호원이 지난달 ‘소비자 안전경보’를 발령한 일도 있었다.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어떤 전자기기보다도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근에는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남성의 생식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또 세포나 혈관,신경을 손상시킨다는 보고도 잇따랐다.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해성에 대한 아무런 인식없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단말기에는 전자파의 발생량이나 유해성에 대해 사용자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어떤 표시도 없다. 관련 당국과 기업은 휴대전화가 어떤 위험 요소들을 갖고 있는지 체계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결과에 따라서는 정보 공개와 소비자 경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담배에 경고문을 싣듯,위해의 내용과 회피하는 방법에 대한 문구를 전화기에 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전자파나 배터리 폭발,벼락 노출 등 위험차단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한층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부고]

    ●정은임 MBC아나운서 지난달 교통사고를 당한 MBC 정은임(36) 아나운서가 결국 사망했다. 정 아나운서는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뇌부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지난달 22일 오후 흑석동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정 아나운서는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92년 MBC에 입사한 정 아나운서는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유족으로는 남편과 아들 1명이 있다.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발인은 6일.(02)3410-6915. ●김정규(해동철강 상무)씨 부친상 김현태(전 국민은행 지점장)정진하(해동철강 대표)김혁(고려인쇄 대표)이목희(서울신문 논설위원)빙부상 4일 오후 8시4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590-2538 ●金采庸(제5대 국회의원)씨 별세 丞雨(신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玄聖(오픈원 대표)씨 부친상 3일 오후 2시15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5시30분 (02)590-2697 ●金基麟(평통자문회의 고문)基胤(자영업)基白(대전시청 여성문화회관장)基申(한국자산관리공사 국유재산관리부 권리보전T/F팀장)씨 모친상 3일 오후 9시25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590-2538 ●金虎仁(경주시의회 의원)씨 별세 4일 오전 8시 동국대 경주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54)742-3905 ●洪聖燦(프렉스 부사장)씨 별세 美珍(한국로레알 직원)씨 부친상 3일 오후 6시20분 서울대병원,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760-2022 ●洪源植(기림 고문)晩植(전 보광 전무)寬植(수팩스 대표)憲植(커널시스템 〃)씨 모친상 李斗周(부양실업 대표)씨 빙모상 4일 오전 3시2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9 ●金商龍(자영업)商鎬(포스코 상임고문변호사)씨 모친상 4일 오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 ●姜鎬洙(동명정보대 사회과학대학장)씨 모친상 4일 오전 6시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55)750-8651 ●金勝鎬(파이낸셜뉴스 기자)씨 조모상 3일 오후 9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590-2538 ●金道執(전 조흥은행 지점장)相執(삼성문화재단 마케팅팀장)씨 모친상 韓錫原(전 대한약사회장)趙始衡(자영업)씨 빙모상 4일 오전 8시24분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5시30분 (02)590-2352 ●金南翊(수성엔지니어링 상무이사)南宰(신라교통 직원)南湖(오토반 〃)씨 부친상 4일 오전 9시5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2)3010-2254 ●曺起陽(상업)起龍·起出(미국 거주)起興·起源(사업)씨 모친상 朴龍錫(전 동원증권 상무)崔慶浩(사업)씨 빙모상 4일 낮 12시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2)392-0299 ●金珍煥(종교인평화봉사단 기획실장)씨 부친상 金東奭·李雲龍·崔在勳(사업)씨 빙부상 4일 오후 6시30분 고대안암병원,발인 6일 오전 7시 (02)929-4099
  • 대통령-김지태씨 ‘부일장학금’ 인연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인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다고 2002년 대선 때 밝혔다고 시사저널 최신호(8월5일자)가 보도했다.부일장학회는 (주)삼화,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 등을 창업한 고 김지태 전 의원(2,3대)이 지난 1958년 설립한 재단으로,김씨 유족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2년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을 강제로 빼앗았다.”며 “박 대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한편 이름도 부일장학회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시사저널은 김씨 유족측 주장을 인용,“5·16쿠데타를 앞두고 김씨에게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이 집권 이후 김씨에게 부정축재·농지개혁법과 관세법 위반 등의 누명을 씌워 거액의 추징금과 부일장학회 운영권 포기 등의 각서를 받아냈다.”고 보도했다.5·16 이후 김씨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추징금 5억 4570만환을 내야 했고,1962년에는 재산해외도피 및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부일장학회 운영권과 부산 서면 일대 토지 10만평을 군사정권에 넘겨야 했다는 것이다.시사저널은 또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부산 유세 과정에서 “부일장학회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고 밝혔고 당선된 뒤에는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디딤돌을 놓아준 분이 있다.”며 김지태씨를 회고했다고 보도했다.공납금이 없어 진영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노 대통령이 부일장학금을 받아 졸업했고,부산상고 3년 동안에도 ‘김지태 장학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이런 인연으로 노 대통령은 김씨가 경영했던 삼화고무의 고문 변호사를 맡았고,1982년 김씨 사망 후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0억원대 상속세 부과 취소 행정소송의 변호를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초선 의원이던 지난 1988년 10월 부산일보 전무 윤우동씨 등이 국회에 낸 ‘부산일보 등의 소유권 원상회복 청원서’에 김영삼·이기택·서석재·최형우·김정길 의원 등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함께 서명한 바 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간첩 민주화운동 인정못해”

    “간첩 민주화운동 인정못해”

    간첩 혐의로 수감 중 사회안전법 철폐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 숨졌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볼 수 없다.’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최근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비전향 장기수들의 사상전향 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것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6일 제111차 회의를 열고 지난 2002년 9월 1기 의문사진상규명위(활동기간 2000.10.17∼2002.9.16)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해 민주화보상심의위로 이송한 변형만·김용성 건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안건을 기각시켰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민주화운동이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를 부인하고 국가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이 수감 중에 반(反)민주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9명의 위원 가운데 7명은 기각에,2명은 인정에 표를 던졌다. 이는 1기 의문사위가 “변씨 등이 보호감호처분의 부당성을 알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켰고,간첩행위의 형기는 종료됐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결정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변형만씨와 김용성씨는 1957년 각각 북에서 간첩으로 남파됐다가 붙잡혀 복역 중 사회안전법에 의해 2차례나 보호감호처분을 받자 사회안전법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 감호소측의 강제 급식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1980년 7월 숨졌다. 이에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이들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하고 같은 해 10월25일 민주화보상심의위로 이송했다. 의문사위 유한범 홍보팀장은 “의문사위는 주어진 권한대로 판단을 내린 것이고,민주화보상심의위도 권한에 따라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서 “독립기관이 한 판단을 이렇다 저렇다 논평할 필요는 없으며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기구·독립기구 등의 합의나 결정과정이 달라 이들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도 한 가지 기준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혀 이같은 일련의 결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조덕현 구혜영 김효섭기자 hyoun@seoul.co.kr
  • “간첩 민주화운동 인정못해”

    간첩 혐의로 수감 중 사회안전법 철폐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 숨졌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볼 수 없다.’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최근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비전향 장기수들의 사상전향 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것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6일 제111차 회의를 열고 지난 2002년 9월 1기 의문사진상규명위(활동기간 2000.10.17∼2002.9.16)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해 민주화보상심의위로 이송한 변형만·김용성 건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안건을 기각시켰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민주화운동이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를 부인하고 국가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이 수감 중에 반(反)민주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9명의 위원 가운데 7명은 기각에,2명은 인정에 표를 던졌다. 이는 1기 의문사위가 “변씨 등이 보호감호처분의 부당성을 알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켰고,간첩행위의 형기는 종료됐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결정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변형만씨와 김용성씨는 1957년 각각 북에서 간첩으로 남파됐다가 붙잡혀 복역 중 사회안전법에 의해 2차례나 보호감호처분을 받자 사회안전법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 감호소측의 강제 급식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1980년 7월 숨졌다. 이에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이들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하고 같은 해 10월25일 민주화보상심의위로 이송했다. 의문사위 유한범 홍보팀장은 “의문사위는 주어진 권한대로 판단을 내린 것이고,민주화보상심의위도 권한에 따라 판단을 내린 것”이라면서 “독립기관이 한 판단을 이렇다 저렇다 논평할 필요는 없으며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기구·독립기구 등의 합의나 결정과정이 달라 이들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도 한 가지 기준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혀 이같은 일련의 결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조덕현 구혜영 김효섭기자 hyoun@seoul.co.kr ˝
  • [사설] 전향거부가 민주화운동이라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상전향 공작과정에서 숨진 남파간첩 2명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가 민주화운동과 연관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무리한 처사다.의문사위는 이들이 과거 유신시절 공권력의 불법적인 전향공작에 항거하다 사망했고,이후 전향제도나 준법서약 등 그와 관련된 악법들이 철폐됐으므로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당국이 비전향장기수들을 상대로 가한 가혹행위는 규탄받아 마땅하다.특히 고문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다.미군의 이라크포로 학대에 전세계가 분노한 것도 그래서이다.가혹행위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아울러 우리는 이들의 죽음에 조건없는 애도를 표한다.이들의 비극은 분단조국을 사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저항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다.이들은 대한민국의 체제와 존립기반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다.의문사위 주장대로 이들의 저항행위가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다손 치더라도,그것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이들의 활동 목적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난 2002년 의문사위는 이들 3인에 대해 공권력에 의한 죽음은 인정하면서도 민주화운동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그 뒤 불과 1년 반 사이 입장이 바뀐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사위는 밝혀야 한다.민주화활동을 하다 의문사를 당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명예회복과 보상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이들 3인이 보상을 받을 만한 민주화 운동을 한 것으로 일반 국민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의문사위가 국민의 불안감을 어떻게 감당하고,어떤 후속조치를 취해나갈지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 비전향장기수 의문사 인정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일 유신정권 시절 교도소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숨진 비전향 장기수 손윤규,최석기,박융서씨 등 3명에 대해 의문사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1기 의문사위는 이들의 의문사에 대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사회주의자로서 민주화운동 연관성이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는 “전향 강요는 기본적으로 불법이었고 헌법이 보장한 사상·양심의 자유는 내심(內心)의 자유로,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를 침해당했고 이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 등 악법이 철폐된 것은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74년 4월 교도소 전향공작반 박모씨 등이 꾸민 ‘2대 1 특별전향 공작’과정에서 폭력과 고문으로 숨졌다. ‘2대1 특별전향 공작’은 폭력재소자 2명을 비전향 장기수 1명과 합방시켜 폭력과 고문으로 전향을 강요했던 조치이다. 같은 교도소에 있던 박씨는 같은 해 7월 사방 청소부 이모씨에게 온몸을 바늘로 찔리는 고문을 당한 뒤 방 벽에 ‘전향 강요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유리파편으로 목과 다리의 동·정맥을 끊어 숨졌다. 손씨는 76년 4월 대구교도소에서 고문과 협박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이다 고무호스를 위까지 집어넣고 소금물에 가까운 죽물을 넣는 강제급식 과정에서 사망했다.의문사위는 “당시 중앙정보부와 법무부가 전향공작을 지휘하고,이들의 사인을 조작·은폐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각종 문서와 관련자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심오석·정은복씨 의문사 인정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2일 심오석·정은복(여)씨의 사망 사건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의문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심씨는 1972년 경북대 의대에 입학,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던 현모(77년 군 복무중 사망)씨 등과 함께 유신정권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당했고,검거령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간 뒤 실종됐다. 의문사위는 “심씨가 공안기관의 밀착감시와 고문 등 복합적 요인으로 실종·사망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의문사위는 또 “정씨는 여성인권 보호,남녀 평등의 민주사회 실현 등을 위해 노력하고 불법 수사의 후유증을 앓다 실종된 사건”이라고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알카에다 테러 책임자 2명 피살

    알카에다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 반격을 예고하는 것인가? 19일과 20일 이틀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알제리에서 각각 알카에다에 연계된 최고지도자 2명이 잇따라 살해됐다.지난 12일 알카에다에 납치됐던 미국 민간인 폴 존슨(49)이 18일 참수된 시체로 발견되고 미국이 이에 대한 응징을 다짐한 직후다.이에 따라 사우디에서 테러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미국은 사우디에서 미국인을 겨냥한 추가테러가 임박했다면서 미국인들에게 사우디를 떠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하젬 살란 이라크 국방장관은 최근의 치안 악화와 관련,6월30일 주권 이양 전이라도 계엄령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아랍어 일간 알타아키가 20일 보도했다. ●이라크 “주권이양전 계엄령 가능” 사우디의 외교고문인 압둘 알 주바이르는 19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우디 내 알카에다 총책인 압둘 아지즈 알 무크린을 사살,알카에다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이로써 알카에다의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크린의 추종자들은 무크린이 사살된 것을 확인하면서도 “성전은 신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다.무크린을 비롯한 형제들의 죽음은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기는 커녕 우리의 결의를 더욱 다지게 할 뿐이다.”며 성전은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미 국무부도 사우디에서 미국인을 겨냥한 추가 테러가 임박했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사우디를 떠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사우디에서의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한편 알제리 정부는 20일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제리 내 테러조직 책임자 나빌 샤라위가 사살됐다고 라디오방송을 통해 밝혔다.샤라위의 사살이 무크린의 사살과 연관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틀 사이에 사우디와 알제리 양국에서 알카에다 최고지도자가 잇따라 사살된 것을 우연으로만 돌리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앞서 ‘아라비아반도의 알카에다’는 자신들의 웹사이트인 ‘사우트 알 지하드’에 존슨의 것으로 추정되는 잘려진 머리와 몸통 등 3장의 사진을 공개했다.미국도 록히드 마틴사의 직원이었던 존슨의 사망을 사우디 대사관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알카에다는 사진 공개와 동시에 게재한 성명에서 “이번 참수는 미국인과 그 동맹에게 누구든지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교훈”이라고 주장했다. ●자르카위 사살은 불확실 알카에다 소탕작전은 이라크에서도 동시에 이뤄졌다.미군은 19일 최근 이라크에서 잇따르는 차량폭탄테러 공격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팔루자 교외의 주거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이날 공격으로 22명이 사망했지만 미군은 공격 당시 자르카위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살란 국방장관은 “몇몇 인접 국가들이 이라크 국내 문제에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이라크는 주권 이양 전에 계엄령을 실행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유세진기자 외신 yujin@seoul.co.kr˝
  • 사우디서 미국인 겨냥 또 테러

    |리야드·제다 AFP 연합|최근 연쇄테러로 국제유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일 또 미국인을 겨냥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외국인 19명을 포함해 22명의 사망자를 낸 알 호바르 유혈인질극이 종료된 지 사흘 만이다. 이날 오전 8시께(현지시간) 수도 리야드 남쪽 이스칸 지역에서 무장괴한들이 사우디 군대의 훈련을 담당한 미군 군사고문들을 태운 차량 두 대를 공격했다고 사우디 주재 미 대사관이 밝혔다.군사고문 두명은 차량 두대에 나눠타고 있었으며 이 중 한명이 부상했다고 대사관은 덧붙였다.경찰은 차량 3대를 나눠 타고 달아난 무장괴한들을 검거하기 위해 인근 도로에서의 검문검색을 강화했다.미국인을 겨냥한 이번 테러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사우디에서 비무슬림 외국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촉구한 이후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편 사우디 경찰은 리야드 남서쪽 타이프에서 알 카에다 요원으로 수배중이던 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이들은 알 호바르의 유혈인질극과 관련된 인물들이라고 내무부가 밝혔다.
  • 송미령 권력을 사랑한 여인

    ●‘송가왕조’ 세 자매중 막내로 태어나 ‘송가왕조(宋家王朝)’ 세 자매 가운데 한 명인 송미령은 20세기 중국사의 화두이자 상징이다.큰언니 송애령은 산서성 최대의 금융재벌이던 공상희와 결혼했고,둘째언니 송경령은 부친의 친구이자 중국혁명의 아버지인 손문과 결혼했으며,송미령은 22년 동안 중국대륙을 통치한 국민당 총통 장개석과 결혼함으로써 이른바 송가왕조를 이뤘다.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980년대 중반 송씨 자매들을 이렇게 평했다.“이들은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낙양의 모란꽃처럼 이들 각자에겐 운치가 있다.사람들은 말하기를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고,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했으며,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한다.” 세 자매의 인생관과 인생역정은 이처럼 판이했다.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韓 ‘송미령 평전’(첸팅이 지음,이양자 옮김,한울 펴냄)은 조국과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동시한 사랑한 한 여인의 ‘모순된’ 삶을 통해 20세기 현대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책은 먼저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송이 아니라 한(韓)임을 밝힌다.송미령의 부친 한교준은 집안이 어려워 열 세살 때 양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우여곡절 끝에 송가수(찰리 송)로 성과 이름을 바꾼 그는 신학대학을 졸업,선교사가 돼 귀국한다.송가수는 훗날 절강재벌로 성장해 손문의 혁명자금을 지원하는 혁명동지가 된다.송미령은 이런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인 어머니 예계진 사이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장개석과 결혼… 퍼스트레이디로 송미령은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었지만 미모와 교양,외교력 등을 두루 갖춘 강한 면모의 ‘서구적’ 여성이었다.송미령을 중국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게 한 결정적 사건은 장개석과의 결혼이었다.장개석에겐 이미 맏아들 장경국의 어머니인 첫 부인 모복미가 있었고,둘째 부인 진결여와 첩 요이성이 있었다.송미령에게도 미국 유학시절부터 사귀어온 유기문이란 연인이 있었지만,언니 애령의 권유와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는 권력욕이 어우러져 장개석과 결혼에 이르게 됐다.언니 경령에 이어 중국의 두 번째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다.경령은 이들의 결혼에 대해 “둘의 결합은 정치의 일부분이지 사랑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송미령과 장개석의 48년 결혼생활은 화려함과 허영,용기,외로움으로 점철된 것이었다.1·2차 세계대전과 중국 내전,권모술수와 배신의 한복판에서 송미령은 늘 주인공이길 원했다.결혼 후 그는 국민당을 이끌고 공산당과 일제침략에 맞서 싸우는 장개석을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개인비서,통역관 겸 외교고문으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특히 1936년 ‘서안사변’은 송미령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장학량에게 납치 감금된 장개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美서 ‘차이나로비’ 주역으로 주목 송미령은 ‘차이나로비’의 주역으로 대접받았다.1943년엔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청으로 외국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는 연설을 해 기립박수를 받았다.루스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했다. 1949년 대륙에서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쫓겨났지만 송미령은 장개석을 도와 외교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송미령은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한 뒤 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그의 미국생활은 외로웠다.장개석의 성병과 송미령의 나팔관 수술 등의 이유로 자식이 없었고,본처의 아들인 장경국과는 불화의 연속이었다.두 번에 걸친 유방암 수술에도 불구하고 송미령은 106세까지 장수했다. ●만년의 장개석, 송미령에 찬사 만년의 장개석은 수많은 신화를 남긴 아내 미령에게 “당신은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비교할 수 없고,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도 비교할 수 없으며,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 더 강하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20세기 현대사를 풍미한 송미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그러나 중국의 개방 이후 본토에서 씌어진 이 책은 비난도 찬양도 하지 않는다.송미령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적인 문체로 그릴 뿐이다.소설처럼 부담없이 읽는 가운데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중국에서 13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번역본은 800여 페이지에 이른다.3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영국군 이라크 민간인도 학살”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연합군의 학대 행위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지난해 3∼11월에 조사한 실태 보고서에서 또다시 실체를 드러냈다.국제사면위원회(AI)는 민간인 학살도 무차별적으로 이뤄져 영국군은 8세 소녀까지 살해했다고 폭로했다. ●위협,구타,벗기기 ‘고문 백화점’ 11일 주요 외신들이 인용,보도한 ICRC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들의 포로 학대는 형태도 다양했다.앞을 볼 수 없게 두건을 씌워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고 주먹과 발,개머리판으로 마구 때리기도 했다.음식을 먹고 대소변을 볼 때 잠시 두건을 풀어준 시간을 빼면 4일 내리 두건을 씌워 두기도 했다고 한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시멘트 독방 속에 넣는가 하면 옷을 벗겨 가두고 물과 음식도 주지 않은 채 잠을 재우지 않기도 했다. 발가벗기는 고문도 다양했다.다른 포로들과 여군들 앞에서 남성 포로 얼굴에 여성용 팬티를 뒤집어 씌우고 옷을 벗겨 세워 두거나 감옥 쇠창살에 손목의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수갑을 채워두기도 했다.섭씨 50도를 웃도는 땡볕에 내버려 두기도 했고 폭행은 아무때고 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학대는 더욱 심해 몇 개월씩 독방에 감금했다.지난해 6월 이후 100여명이 하루 24시간 가까이 칠흑 같은 어둠만 있는 독방에 가둬졌다고 한다.ICRC 조사원들은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를 빼고도 바그다드 국제공항 내 캠프 크로퍼와 티크리트 포로 수용지역 등 10개 이상의 수용 시설에서 포로 학대 행위를 목격했다고 AP통신이 11일 보도했다.AFP통신은 이라크인들의 증언을 인용,이라크 전역의 포로 수용시설에서 학대 행위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국제사면위 “영군,8세 소녀도 학살” 영국군 병사들은 명확한 위협이 없는 상황인데도 8세 소녀를 살해하는 등 이라크 민간인들을 살해했다고 AI가 11일 폭로했다.AI는 지난 2월과 3월 이라크 영국군 주둔지를 방문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AI는 영국군에 의해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 숫자를 추정할 수 없다면서도 킹스연대 1대대의 한 병사가 지난해 8월 카르마트 알리라는 마을에서 8세 소녀 하난 살레 마트루드를 사살했다고 주장했다.사건을 목격했다는 미즈헤르 자바르 야신은 AI의 조사원들에게 “한 병사가 55m쯤 떨어진 거리에서 하난을 조준하고 총을 쐈다.”고 말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라크 포로학대 고문기법의 하나”

    미군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 이라크전을 주도한 미·영 양국이 동병상련을 앓고 있다.특히 이라크 포로 학대와 관련한 사진 기록 등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학대의 고의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번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 미군에 의한 포로학대가 고문기법의 일부라고 보도했다.가디언이 인용한 퇴역 영국군 장교의 주장에 따르면 미·영 특수부대 요원들은 포로가 됐을 때를 대비해 ▲잠 안재우기 ▲나체로 오래 방치해 두기 ▲여군 앞에서 자위 강요하기 ▲나체로 피라미드 쌓기 등의 고문기법을 미리 체험해 저항능력을 키운다.이 장교는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들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학대 장면 촬영 이유도 미스터리다.워싱턴 포스트는 학대장면이 병사들의 일상에 관한 1000여장의 사진 속에 섞여 있었다고 밝혔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 미러는 8일 익명의 영국군 병사들의 말을 인용,수감자들에게 무차별 폭행이 가해지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군인들이 자신의 강함을 (친지들이나 지인들에게)자랑하기 위해 학대행위를 촬영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파문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병사들의 변호인들은 ‘추억용 기록’이 아닌,수사기법에 의해 조직적으로 촬영됐다고 주장하고 있다.포로들에게 모욕감을 안겨 자포자기의 심리와 공포 속에 몰아넣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다. 영국군은 수감자들에게 킥복싱 연습까지 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9일 보도했다.영국 육군 랭커셔 연대 소속 군인 8명에게 3일간 폭행당한 이라크인 엔지니어는 영국 형사법원에 제출한 증인진술서에서 군인들이 주먹 또는 발로 누가 수감자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지 시합을 했다고 주장했다.함께 폭행당한 이라크인 호텔 접수계원이었던 바사 무사는 폭행으로 생긴 상처가 악화돼 사망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파키스탄 폭탄테러 100여명 사상

    |카라치 연합|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의 시아파 이슬람사원에서 7일 폭탄이 터져 14명이 숨지고 최소한 90여명이 부상했다고 병원 관계자들이 밝혔다.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은 정부가 운영하는 종교학교 내 시아파 사원에서 금요예배 시간인 오후 1시 직후 신도들이 가득 찬 상황에서 발생했다.카라치 외곽의 시민병원은 사망자가 9명,부상자가 45명이라는 공고문을 게시했으며 한 관리는 사망자 1명, 부상자 5명이 다른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전했다. 테러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이날 테러가 자살공격인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목격자들은 이 학교가 금요일이면 학생들을 일찍 귀가시키는 관행에 따라 사고발생 당시 학생들이 거의 없었고 희생자 대부분이 성인들이었다고 전했다. 카라치가 있는 신드주(州)의 아프탑 쉐이크 내무장관은 “이 야만적 행위 배후에는 카리치에서 행해진 다른 테러공격의 범인들이 있다.”며 반국가 사범을 배후로 지목했으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파키스탄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카라치는 테러와 분리주의자에 의한 폭력사태 등이 빈발하는 지역이다.˝
  • 후세인 시절 고문·처형 악명

    미군이 이라크인 포로들에게 비인간적 가혹행위를 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도 반체제인사 등이 고문·처형된 것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군사 관련 웹사이트 글로벌시큐리티에 따르면,바그다드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32㎞ 가량 떨어진 외곽에 있는 아부 그라이브에서는 1984년 한 해에만 40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처형됐고 2001년에는 수감자 상당수가 생물·화학무기 생체실험에까지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 시절 교도소 안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정확한 사망자 수도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미군 주도 연합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아부 그라이브를 운영하면서 미군에 의한 인권침해 의혹이 불거졌다.가혹행위 사진이 공개되기 전인 지난 3월에도 미군 병사들이 포로들을 학대한 사실이 보도됐었다.미군은 현재 “포로 대부분이 저항세력과 후세인의 바트당 잔당”이라고만 할 뿐 수감인원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라크 내 전체 수용시설들의 수감인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글로벌시큐리티는 아부 그라이브에만 5000명 가량이 수용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
  • 이라크파병국 美에 등돌리나

    1일로 이라크전 종전(終戰) 선언 1주년을 맞지만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미군 사망자의 급증으로 국내 여론이 악화하는 가운데 미군의 이라크 포로 성추행 장면이 미국 방송에서 보도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영국 등 우방국이 등을 돌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희생자 급증에 정책 급선회? 개전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은 736명.이중 596명이 종전 선언 이후 숨졌다.4월 한 달에만 126명의 미군이 숨져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이라크 민간인 희생자도 30일 현재 8958명∼1만 81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9일 미군이 이라크 수니파 저항세력의 본거지 팔루자에서 철수하고 이라크 병력 1100여명으로 이뤄진 보안군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희생자 급증에 따른 정책 급선회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면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와 그로 인한 아랍세계의 불만 고조를 우려 미국이 행정부 내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팔루자 철수를 결정했다며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이 치안 유지의 상당 부분을 이라크인에 맡기는 현지화로 선회함을 알리는 중대 신호”라고 30일 분석했다. 그러나 새로 창설된 이라크 경찰의 협력이 만족스럽지 못한데다 동맹국들의 자세도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어 이같은 미국의 현지화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것인지는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英軍수뇌부, 관할지역 확대 반대 영국군 최고 수뇌부가 이라크에 대한 추가 파병과 이라크에서 영국군 관할지역을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29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군 수뇌부가 6월30일 이라크 주권 이양 이후 이라크 주둔 영국군의 법적 지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향후 국제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추가 파병 입장을 피력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 병력이 충분하다고 본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편 폴란드의 예르지 즈마진스키 국방장관이 내년 1월 이라크 총선이 끝난 뒤 현재 2500여명인 이라크 주둔 병력을 큰 폭으로 줄일 것이라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포로 성추행 파문 바그다드 인근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 남녀 병사들이 이라크인 포로들에게 성추행을 비롯한 가혹행위를 하는 모습이 29일 CBS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고문 등 가혹행위를 없애기 위해 이라크에 간 미군이 후세인 체제와 다를 바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미군은 병사 6명을 군법회의에 회부하고 수용소장인 재니스 카핀스키 여단장을 비롯한 11명의 직무를 정지시켰지만 파문은 쉽사리 수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황장석기자 surono@˝
  • 한국영화계 대부 유현목 감독

    “유현목은 영화다.”“아니다,유현목은 인간이다.” 오발탄(1960년),임꺽정(61년),김약국의 딸들(63년),카인의 후예(68년),나도 인간이 되련다(69년),사람의 아들(80년)….건국 이래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인정받은 ‘오발탄’을 비롯,43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미학을 이끌어온 유현목(79) 영화감독.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이자 영화계의 영원한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삶은 흑백과 컬러필름으로 50년 동안 모질게도 온몸을 친친 감아왔다.까닭에 ‘유현목’하면 덜도 더도 없이 한편의 ‘영화’에 비유된다.평론가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영화사를 관통했던 용감한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장 콕토는 ‘영화란 영상으로 쓰는 문장’이라고 했다.유 감독은 더 나아가 ‘영상으로 사고한다.’고 했다.일흔아홉의 성상은 그렇게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질그릇에 켜켜이 담아왔다.이같은 그의 ‘시네마인생’을 흐트러짐없이 끄집어낼 수 있을까. 서울 남대문 옆 명지빌딩 20층에 자리잡은 ‘태평관기영회(太平館耆英會)’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태평관기영회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이사장 유영규)이 지난 2002년 12월 마련한 최고 원로들의 사랑방이다.명지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 외교공관 ‘태평관’과 중국 송나라 때 은퇴한 현사들의 모임이었던 ‘낙양 기영회’에서 이름을 땄다.참여멤버는 유 감독을 비롯,고병익 전 서울대총장,이영덕 전 국무총리,정원식 전 국무총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 내로라 하는 원로 32명이다.유 감독은 “매월 첫째주 수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이곳에 온다.같이 늙어가는 각계 원로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일 또한 공부가 아니냐.”고 했다. 근황이 궁금해졌다.그는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야트막한 동산을 뒤로 한 노독일처(老獨一處)인 셈이다.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30평의 주말농장에서 땅을 일구는 일에도 새록새록 재미를 느낀다.시금치,쑥갓,마늘 등 28가지의 채소를 가꾸며 동네사람들에게도 나눠준다. 나들이할 때는 늘 부인 박근자 여사와 동행한다.부인은 서양화가로 현재 여류화가협회 고문이기도 하다.부인은 지금까지 ‘여보’ 대신 ‘감독님’이라고 부른다.그는 부인 얘기가 나오자 ‘무던한 순둥이’라며 웃는다. 그는 지독한 골초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도 술을 거른 적이 없다.저녁 식사후 TV 9시 뉴스를 보고나면 반드시 맥주 3∼4병은 마신다.부인이 술을 못하기 때문에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세월을 음미한다.영화 같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즐거움에 푹 빠지는 시간이다. 그의 예술가적 역마살은 소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됐다.어느날 지방순회 공연차 온 유랑 신파극에 매료됐다.교회에서 성극대본도 쓰고 연출도 직접 했다.방학때면 동네 창고에 천막을 치고 성냥갑 몇개로 입장시키는 놀이도 했다.그렇게 모인 성냥갑으로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1939년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의 휘문중학에 입학했다.하숙생활이 시작됐다.중학때는 기계조립에 취미가 붙었다.남산의 과학관을 다니며 ‘어린이 과학’이니 ‘학생과학’이니 하는 잡지에 탐닉했다.하루는 ‘에디슨 위인전’을 읽었다.발명왕 에디슨의 학력이 겨우 소학교 4학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중학2년 때 휴학을 했다.담임 선생한테는 중이염이라고 둘러댔다. 때마침 담임선생 아들이 만성 중이염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던 터여서 휴학계를 선뜻 받아주었다.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고독의 가을을 만나면서 도화지와 수채화 도구를 둘러멨다.이리저리 쏘다녔다.흙을 반죽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하루는 바이올린 곡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폐장을 쥐어짜는 듯한 슬픔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어머니한테 졸라서 ‘스즈키 7호’ 바이올린을 샀다.그걸 끼고 다시 복학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조택원 무용발표회’를 관람했다.그는 처음 대하는 육체의 선율에 반해 무용가가 되기로 다짐하고 무용연구소를 맴돌았다.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모습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 겨울이었다.조선인징병 신체 검사에서 불합격되는 바람에 졸업장을 쥐고 고향에 내려가 세무서 임시고용원으로 취직했다.그러나 숫자놀음이 격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두고 평양을 드나들면서 헌책방에서 건축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건축미술가의 꿈을 꾸었다. “하마터면 목사가 될 뻔도 했지.어머니의 성화로 인해 서울의 감리교 신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영어시험에서 낙방했어.그런데 외가집 소개로 아펜젤러 박사를 만나 연희전문학교 백남준 교장에게 입학시켜달라는 메모까지 받게 됐지.목사가 다 된 기분이었어.그런데 그만 메모쪽지를 잃어버렸지 뭐야.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자격 없는 놈으로 계시하신 줄 알고 포기했지.” 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는 다시 서울로 왔다.거리 곳곳에는 연극포스터들이 쫙 붙어있었다.그는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연극 연습장 한구석에서 하루종일 지켜보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결국 그 이듬해,희곡공부를 위해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이 무렵 그는 프랑스의 피에르 슈날 감독의 영화 ‘죄와벌’을 관람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 열 네번이나 미친 듯이 봤다.강의가 끝나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죄없는 전선’ 촬영현장을 찾아다녔다.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무성영화였던 임운학 감독의 ‘홍차기의 일생’에 조감독 겸 출연까지 했다.이때 영화감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미술,음악,무용,문학,건축,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라는 답을 얻었다.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재학시절,한국대학에선 처음으로 ‘영화예술연구회’를 창설해 ‘해풍’이란 영화를 만들었다.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풍파에 아버지를 잃고 미치광이가 된 젊은 아들의 이야기이다.이는 배우로서 데뷔작이며 마지막인 셈이다. “납북된 시인 김기림 선생이 지도교수였지.당시 신문기사에는 영화과가 없는 대학에서 이같은 유성(토키)대작을 만든 것은 동양에서 처음이라고 하더군.양주동 선생은 ‘배짱 하나 컸군,내 막걸리 한 잔 사지.’라고 거들기도 했어.돌이켜 보면 선무당이 사람잡는 모험이었으나 오늘날의 길을 굳혀준 출발점이기도 하지.” 그는 50년 영화인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아끼는 작품은 ‘오발탄’이라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오발탄’은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 10’에서 1위,98년 ‘건국50년 영화,영화인50선’에서 1위,99년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작’에 1위로 뽑힐 정도였다.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백발홍안’의 노(老)감독.예나 지금이나 술이 얼큰하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베마리아’를 부른다.집앞 골목에 이르면 정지용의 시에 채동선이 작곡한 ‘고향’을 부른다.그러면 기다리던 ‘무던한 순둥이’가 마중나와 팔짱을 낀다.이렇게 영화같은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45년 휘문고졸.49년 동국대 문과졸.64년 동국대 강사. ▲73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장.76∼90년 동국대연극영화과 교수.80년 유네스코 문화위원. ▲81년 예술원회원(현).89년 한국영화학회장.90년 동국대예술대학장. ▲97년 부산국제영화제심사위원장,99년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2000년 영화감독협회 고문(현). ▲주요 수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상,예술원상,대종상 등. ▲주요 작품=‘오발탄’‘인생차압’‘잃어버린 청춘’‘막차로 온 손님’‘카인의 후예’‘사람의 아들’‘불꽃’‘장마’ 등 43편. 김문기자 km@seoul.co.kr˝
  • ‘범죄의 재구성’ 관객과 감독 퍼즐 맞추기

    15일 개봉하는 ‘범죄의 재구성’(제작 싸이더스)은 정교한 퍼즐게임을 푸는 것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다.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최동훈 감독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 등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솜씨로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감독은 일단 ‘한국은행 50억 사기대출’이라는 사건의 현장을 툭 던져 놓는다.주범 창혁(박신양)은 경찰 추적을 피해 도주하다 사망한 것처럼 처리한다.돈의 행방 역시 오리무중이다.이후 촘촘한 그물을 던지며 ‘범죄의 재구성’에 나선다.잔뜩 궁금증을 자아낸 뒤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관객의 머리를 고문(?)하는 식이다. 범죄를 재구성하는 주역은 두 명.범죄를 저지른 사기단의 대부인 김선생(백윤식)과 수사를 맡은 차반장(천호진)이다.물론 관점은 다르다.김선생은 손에 거의 넣었다 놓쳐버린 돈을 찾느라 혈안이 된 ‘비분 강개파’.차반장은 김선생을 비롯,나머지 범인들의 체포에 열중한다.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 범인들을 추적하면서 중간중간에 범죄 구성과정을 회상신으로 비춘다. 영화의 모티프는 1996년 경북 구미의 한국은행 사기 사건.사기 전과자인 창혁은 출소하자마자 한국은행을 털 계획을 갖고 ‘사기계의 전설’로 통하는 김선생을 찾아간다.창혁의 카드에 공감한 김선생은 잡학다식한 떠벌이 얼매(이문식)와 제비 김철수(박원상),그리고 화폐 위조의 달인 휘발유(김상호) 등으로 팀을 만든다. 위조한 50억원의 당좌수표를 갖고 일반 은행원과 현금 호송원으로 위장한 일당은 한국은행에서 현금과 무기명채권으로 교환한 뒤 문을 나서는데,갑자기 정체불명의 여인이 제보전화를 하면서 범죄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한편 김선생의 동거녀로 사기극에 합류한 ‘구로동 샤론 스톤’ 서인경(염정아)은 동생 창혁의 사망보험금을 타게된 창호(박신양)의 돈을 노리고 그에게 접근한다. 사건의 진상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영화는 범죄를 재구성하는 한 주범이 창혁임을 암시한다.하지만 김선생이 창혁의 옛 애인을 찾아가 형인 창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최동훈 감독의 ‘사기극’은 거의 완벽하다.창혁의 실체에 대한 낌새를 조금씩 노출해 영화의 밀도를 높여간다.일당의 존재가 하나 둘 밝혀지고 그들의 증언과 테이프 등의 자료에 기대면서 톱니처럼 맞물린 범죄 퍼즐을 정교하게 맞춰간다.그에 비례해 관객의 궁금증도 조금씩 증폭된다. 꼬일 대로 꼬인 채 물고 물리는 사건 전개,앞 장면의 대사를 받아 다른 상황으로 이어지는 편집 방식 등 최동훈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인다.직접 취재하면서 건져 올린 생생한 ‘업계 은어’와 치밀한 시나리오,사기의 먹이사슬을 빠르고 활기차게 이어가는 힘은 할리우드 영화 탓에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눈맛’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목소리를 빼고는 창호·창혁 1인2역 캐릭터를 잘 소화한 박신양의 연기에다 염정아·백윤식·이문식 등 개성파 연기자들의 개인기와 팀워크로 빚는 ‘연기 화음’도 영화에의 몰두를 도와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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