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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주병에는 없는 경고 그림… ‘왜 담뱃갑에만?’ 차별 논란

    소주병에는 없는 경고 그림… ‘왜 담뱃갑에만?’ 차별 논란

    최근 보건복지부가 흡연 경고그림에 대한 시안을 공개하면서 담배업계가 주류업계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11일 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소주병에는 연예인들의 웃는 모습이 담기는 반면 담뱃갑에만 혐오스러운 그림이 들어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음주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담배에 비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흡연의 단점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고성 그림의 효과에 대해서도 “흡연자들에게 금연의 효과를 준다기보다 판매자들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www.ilovesmoking.co.kr) 측도 경고성 그림 삽입 정책이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단체는 지난 7일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이미지 사용은 국민건강증진법의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전국민을 시각적 폭력에 시달리게 하는 한국형 경고그림은 즉각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흡연 경고그림 10종에는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졸중 등 질병 부위를 담은 5종과 간접흡연, 조기 사망, 피부노화, 임산부 흡연, 성기능 장애를 주제로 한 5종이 포함돼 있다. 흡연 경고그림은 오는 6월 23일까지 최종 확정돼 12월 23일부터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부착될 예정이다. 담뱃갑 포장지의 앞면과 뒷면 상단에 면적의 30%(경고문구 포함 50%)를 넘는 크기로 들어가야 하며, 18개월 주기로 변경된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네 살 인생, 고통만 알고 떠났다

    친모, 경찰조사 받은 후 자살한 듯 계부만 구속… 학대 가담은 부인 남겨진 4살 동생 맡을 친척 없어 대소변을 못 가린다며 4살 난 딸을 학대하고 딸이 숨지자 시신을 암매장한 비정한 부모의 범행이 4년여 만에 꼬리가 잡혔다. 아이의 엄마는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딸의 행방을 경찰이 수사하자 유서를 남기고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일 구속된 계부 안모(38)씨는 2011년 12월쯤 당시 4살 난 딸이 숨지자 아내 한모(36)씨와 함께 시신을 충북 진천군 백곡저수지 인근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시체유기)를 받고 있다. 친모인 한씨는 지난 18일 오전 딸의 초등학교 입학 여부와 소재에 대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그날 오후 9시 50분쯤 청주시 청원구 율봉로 자신의 다세대주택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서는 번개탄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수사를 진행하는 충북 청주 청원경찰서는 한씨가 숨지면서 아이의 사망 과정을 밝히는 데 난관에 봉착했다. 오로지 안씨의 진술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경찰에서 안씨는 “퇴근 후 오후 9시쯤 집에 와 보니 딸이 숨져 있었다”며 “딸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가 욕조에 물을 받은 뒤 딸의 머리를 수차례 담갔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안씨는 “시신을 이틀 정도 집 베란다에 방치했다가 보자기에 싸 암매장했고, 당시 만삭이던 아내가 신고하지 말자고 했다”며 암매장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딸의 사망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안씨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보고 폭넓게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암매장된 지 오래됐지만 시신을 찾아 뼈의 골절 상태를 확인하는 등 세밀하게 수사하겠다”며 “아이의 사망 과정에 안씨가 가담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9일 암매장 장소를 수색했지만 찾지 못해 21일 수색을 재개한다. 부부의 범행은 최근 미취학 아동 전수 조사에 나선 동주민센터 직원이 수상하게 여기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이들은 주민센터 직원이 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외가에 있다”고 답했다가 거짓말이 들통나자 “경기 평택의 한 고아원 앞에 놓고 왔다”고 하는 등 진술을 바꿨다. 주민센터 직원은 곧바로 경찰에 아이를 유기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미혼모였던 한씨는 딸을 아동시설에 맡겼다가 2011년 5월 안씨와 결혼하면서 집으로 데려왔지만 7개월 만에 학대해 사망케 했다. 한편 한양의 의붓여동생(4)은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졌으나, 돌봐 줄 마땅한 친인척이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시리아 피흘린 5년… 25만명 사망·1130만명 유랑 생활

    [글로벌 인사이트] 시리아 피흘린 5년… 25만명 사망·1130만명 유랑 생활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발생 5년을 맞았다. 초반 반독재 투쟁의 성격을 띠었던 거리 시위에 이슬람 종파 간 갈등,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및 강대국의 개입 등이 얽히면서 내전으로 비화됐다.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들은 유럽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시리아 평화회담은 진척을 보이지 않아 내전의 끝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최근 시리아 분할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중동 국가들은 이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중동의 반정부 시위 물결인 ‘아랍의 봄’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는 남부 도시인 데라에서 청년 15명이 “국민은 정권을 무너뜨리길 원한다”라는 구호를 벽에 낙서했다. 시리아 당국이 이들을 체포해 고문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011년 3월 15일 수도 다마스쿠스, 데라 등 주요 도시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3월 18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에 발포해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반정부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시리아 시민들이 분노한 배경에는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부패, 종파와 민족에 따른 차별, 그리고 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 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대통령직을 세습한 알아사드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의사 출신으로 아버지보다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 활동을 부분적으로 자유화하고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경제 개방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로 정치 개혁은 무산됐으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그의 경제 개혁은 소득 불평등만 확대시켰다. 시리아 국민의 74%를 차지하지만 시아파 주도의 정권에서 배제됐던 수니파의 오랜 불만은 경제 악화로 더욱 고조됐다. 민주적 개혁, 정치범 석방, 부패 척결 등을 정권에 요구하던 시위대는 4월에 접어들며 알아사드 정권 축출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알아사드 정권도 시위 진압을 위해 기갑부대를 동원하면서 5월 말 민간인 사상자는 1000여명에 이르렀다고 BBC가 전했다. 시위대에 대한 정권의 무력 행사가 거세지면서 정부군에 대항해 무기를 든 시민군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정권 지지 기반인 군대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했다. 7~8월에 이르러 반정부 무장단체인 자유시리아군과 국내외 반정부 인사들이 주도한 시리아국가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반정부 세력이 조직화되면서 내전이 본격화됐다. 2012년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수니파 국가와 미국 등 서방 국가가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면서 반정부군은 정부군과 무력으로 맞설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게 됐다. 알아사드 정권이 반정부 세력과 민간인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실시하지 못하자 이들 국가가 개별적으로 반정부 세력 지원에 나선 것이다. 걸프 연안 국가들은 반정부 세력의 무기 구입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터키는 자유시리아군을 지지하며 군사작전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미국도 2012년 7월 자유시리아군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민간단체로 승인했다. 반면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시리아의 우방인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에 재정적·군사적으로 지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13년에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에 참전해 시리아 정부군과 함께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자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013년 시리아 영토의 60%가 반정부 세력의 손에 떨어지자 정부군은 이란, 헤즈볼라, 그리고 시아파 민병대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때 반정부군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의 테러와 과도정부 역할을 했던 시리아국가위원회의 내부 갈등으로 정부군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변수가 시리아 내전에 등장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IS는 2014년 6월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고 8월 시리아의 락까를 점령해 사실상의 수도로 삼았다. IS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잔혹한 테러를 저지르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넓히자 미국은 2014년 8월 알아사드 정권 대신 IS 격퇴로 전략을 수정하고 IS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러시아도 2015년 9월부터 대IS 공습에 나섰으나, 알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해 IS가 아닌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이 IS 격퇴에 힘을 쏟는 사이 알아사드 정권은 올해 초부터 반정부 세력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 반정부 세력의 핵심 근거지인 알레포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시리아 내전 5년 동안 사망자 수는 25만명을 넘어섰다고 BBC가 전했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내전 발발 전 2300만명에 이르던 시리아 인구 중 절반가량이 거주지를 잃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중 650만명은 국내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으며, 480만명은 유럽 등 국외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의 70%가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3분의1가량이 생존에 필요한 식품조차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리아를 떠난 480만명의 난민 가운데 지난해 100만명가량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유럽 또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시리아 난민의 급증으로 반이민 정서가 유럽 각지에 팽배해지면서 극우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각국이 난민 유입 저지를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유럽 통합의 근간이었던 각국 간 자유로운 이동 보장이 흔들리고 있다. 유엔이 주도하는 시리아 평화회담이 14일(현지시간) 열렸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평화회담 개최를 위해 지난달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내 임시 휴전에 합의했으나,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상대방이 공격 행위를 해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정치를 전공한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휴전 합의로 시리아 내전의 강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내전 상황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IS와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누스라 전선이 평화회담에서 배제돼 회담의 실효성이 낮고, 회담 당사자 간 이해관계와 목표가 매우 달라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 서방 등 미국과 수니파 온건 반정부 세력은 알아사드 정권의 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러시아와 이란·시리아 정부는 정권 교체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고착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시아파 정부, 수니파 반군, 쿠르드족이 시리아를 삼분하는 플랜B 계획이 미국 정부와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평화회담을 주도하는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는 13일 “평화회담에서 정치적 해결안을 성공적으로 도출하는 것 외에 실제 가능한 플랜 B는 없다”고 못박았다. 서 교수는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가 임의로 설정한 국경을 따라 다양한 종파와 민족을 불안정하게 아우르고 있는 중동 국가들이 시리아의 3분할론을 받아들일 리 없다”면서 “시리아가 내전으로 분할된다면 이웃 중동 국가들도 국내 여러 종파와 민족의 독립 또는 자치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단독] 이맹희 혼외아들 “상속된 빚 31억 갚겠다”

    [단독] 이맹희 혼외아들 “상속된 빚 31억 갚겠다”

    지난해 10월 상속분 요구 소송도 지난해 8월 별세한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 출생 아들인 재휘(52)씨가 이 전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83) 고문과 이재현(56) 회장 3남매에게 자신의 상속분 재산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휘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억 100원을 청구액으로 소송을 시작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금액을 키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법조계는 관련법을 적용할 때 소송가액이 30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이 전 명예회장은 1964년 한 여배우와의 사이에서 재휘씨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엔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 정착해 사업을 하던 2004년 이 전 명예회장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냈고, 유전자 검사를 거쳐 2006년 친자임을 인정받았다.재휘씨 측은 “CJ 일가가 법원의 친자 확인 판결 이후에도 재휘씨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재휘씨의 이 전 명예회장 장례식 참석을 막기도 했다”고 밝혔다. CJ 측은 재휘씨의 유류분 반환 소송에 대해 “이 전 명예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만큼 유류분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송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창업주의 재산은 장남인 이 전 명예회장이 아니라 며느리인 손 고문에게 상속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휘씨 측은 이 회장 3남매 등이 쌓은 3조원 이상의 재산이 이 전 명예회장과 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 전 명예회장은 사망하면서 재벌가로는 이례적으로 재산(6억원)보다 훨씬 많은 채무(180억원)를 남겼다. 상속법에 따라 손 고문과 이 회장 3남매는 각각 수십억원씩 채무 부담을 지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해 11월 법원에 부분적으로 상속을 포기하는 ‘한정상속 승인’을 신청해 채무가 면제됐다. 이에 반해 재휘씨는 1억여원의 재산과 32억여원의 채무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거액의 채무가 있음에도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유류분 반환 소송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인이 아니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단독] 이맹희 혼외 아들, CJ 3남매 상대 상속 소송

    빚 32억도 상속… 소송 감안한 듯 지난해 8월 별세한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 출생 아들인 재휘(52)씨가 이 전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83) 고문과 이재현(56) 회장 3남매에게 자신의 상속분 재산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휘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억 100원을 청구액으로 소송을 시작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금액을 키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법조계는 관련법을 적용할 때 소송가액이 30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인 이 전 명예회장은 1964년 한 여배우와의 사이에서 재휘씨를 얻었다. 그러나 당시엔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 정착해 사업을 하던 2004년 이 전 명예회장을 상대로 친자 확인소송을 냈고, 유전자 검사를 거쳐 2006년 친자임을 인정받았다. 재휘씨 측은 “CJ 일가가 법원의 친자 확인 판결 이후에도 재휘씨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재휘씨의 이 전 명예회장 장례식 참석을 막기도 했다”고 밝혔다. CJ 측은 재휘씨의 유류분 반환 소송에 대해 “이 전 명예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만큼 유류분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송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창업주의 재산은 장남인 이 전 명예회장이 아니라 며느리인 손 고문에게 상속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휘씨 측은 이 회장 3남매 등이 쌓은 3조원 이상의 재산이 이 전 명예회장과 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전 명예회장은 사망하면서 재벌가로는 이례적으로 재산(6억원)보다 훨씬 많은 채무(180억원)를 남겼다. 상속법에 따라 손 고문과 이 회장 3남매는 각각 수십억원씩 채무 부담을 지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해 11월 법원에 부분적으로 상속을 포기하는 ‘한정상속 승인’을 신청해 채무가 면제됐다. 이에 반해 재휘씨는 1억여원의 재산과 32억여원의 채무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거액의 채무가 있음에도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유류분 반환 소송을 염두에 둔 결과로 보인다. 상속을 포기하면 상속인이 아니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유산은 180억 빚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유산은 180억 빚

    자녀인 이재현 CJ회장 등 3남매 한정상속승인으로 채무 면제 삼성가(家) ‘비운의 황태자’였던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200억원에 가까운 빚을 가족들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9일 CJ그룹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부산가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이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 고문과 장남 이재현 회장 등 3남매가 낸 ‘한정상속승인 신고’를 받아들였다. 한정승인이란 상속자가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피상속자가 남긴 채무 등을 변제하는 것을 말한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이 해외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부채 규모 등이 파악되지 않아 유족들이 한정승인을 신청했다”면서 “남긴 빚은 과거 재판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족이 법원에 신고한 이 명예회장의 재산은 6억여원이지만 빚은 180여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결정으로 이 회장 등 유족들은 이 명예회장이 남긴 6억여원 이외 금액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이 명예회장이 재벌가답지 않게 거액의 빚을 진 이유는 201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2년여간 진행한 재산분할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이 명예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요구한 유산은 9400억원이었다. 그는 재판을 위해 인지대와 변호사 선임비 등으로 200억원 넘게 썼다. 그러나 이 명예회장은 패소했다. 이 명예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남5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68년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의 대표이사에 오를 정도로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그러나 1966년 한국비료(현 롯데정밀화학)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경영 일선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이 창업주는 1976년 삼남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이후 이 명예회장은 해외 각지를 떠돌며 야인 생활을 했다. 그는 84세의 나이로 지난해 8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한편 최근 그룹 내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이재현 회장은 지난 7일 변호인을 통해 대법원에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한 차례 더 연장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만성신부전증과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병을 앓는 이 회장은 2013년 8월부터 일곱 차례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통해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오는 21일 오후 6시까지 구속집행이 정지됐다. 대법원은 그 전에 집행정지를 연장할지, 재수감할지를 결정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어른들의 부끄러운 역사, 아동학대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어른들의 부끄러운 역사, 아동학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 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 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 버린 아이들을 뒤늦게서야 찾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 전 이집트 2~3세 유골서도 학대 흔적 아동학대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은 학부모 소환… 영국은 언어폭력도 처벌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 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 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 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 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란 약자의 지옥…약자 중 약자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이상 올바른 교육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이상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huimin0217@seoul.co.kr
  • 한국전쟁 민간 희생자, 69년 만에 졸업장 받았다

    한국전쟁 민간 희생자, 69년 만에 졸업장 받았다

    “억울하게 죽은 병진이의 꿈을 후배들이 더 크게 펼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에서 친동생 고 이병진씨의 명예졸업장을 대신 받은 이병윤(94)씨는 “1947년 이 대학에 입학한 동생은 유쾌한 달변가였고, 정치에 꿈이 있어 정치와 법을 전공했다”며 “이제라도 졸업을 하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1925년생인 고인은 동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하면서 경남 진주에서 홀로 상경했다. 고인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 의용군에 징집됐다. 같은 해 9·28 서울 수복 직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우익 학생의 고발로 군경에 연행됐다.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 숨졌다. 동생이 사망한 지 60년이 지난 2010년 형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로부터 동생이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배상금 60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을 지난달 전액 동국대에 기부했다. 학교도 고인의 학적을 복원해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유족에게 명예 정치학사 학위를 전달했다. 입학한 지 69년 만의 졸업이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지구촌 아동학대의 역사, 끔찍하고 끈질겼다

    지구촌 아동학대의 역사, 끔찍하고 끈질겼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들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뒤늦게나마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 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잔혹한 갑질,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온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어제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애초에 아이들이 약하게 태어난다고 믿어 신생아를 나무 널빤지에 고정하거나 찬물로 목욕시키는 체벌을 했다. 공공건물이나 다리가 세워지면 봉헌을 목적으로 영아를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아동학대 이야기도 있다. ‘신데렐라’가 그것이다.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됐다. 극중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는다. ‘신데렐라’의 한국판 격인 ‘콩쥐팥쥐’에도 어린 소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를 일삼는 계모가 등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영조의 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가 아동학대에 대처하는 자세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법은 크게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을 겨냥한 것으로 나눠진다.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관련해,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 제도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와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는 약자의 지옥…그중 언제나 빠지지 않는 약자는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 이상 올바른 교육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난세의 약자’ 아이, 그리고 아동학대의 역사

    [송혜민의 월드why] ‘난세의 약자’ 아이, 그리고 아동학대의 역사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싶은 사건사고는 언제나 있었다. 잔인하고 끔찍하며 안타까운 각종 사건들 가운데서도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동학대 사건이다. 장기무단결석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뒤늦게나마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이들은 하나 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이러한 참극은 무릇 대한민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간과 국적을 초월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괴롭혀 온 부끄러운 어른들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잔혹한 갑질,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온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어제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사회적 현상 또는 문제였다. 그 유형 역시 영아 살해부터 성학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아동학대의 오래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연구진은 2013년 이집트 서부에 있는 2000년 된 묘지와 유골을 조사하던 중, 2~3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팔과 쇄골에서 눈에 띄는 골절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골절이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아이의 팔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골격에 극단적인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론했다. 중세 로마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애초에 아이들이 약하게 태어난다고 믿어 신생아를 나무 널빤지에 고정하거나 찬물로 목욕시키는 체벌을 했다. 공공건물이나 다리가 세워지면 봉헌을 목적으로 영아를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로마시대 아버지들은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 부른 가부장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모든 아동에 대한 권한을 손에 쥐었다. 강력한 부권(父權) 행사 과정에서 아이들의 생사는 그 누구도 아닌 친부로부터 결정됐다. 아동이기 이전에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된 것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아동학대 이야기도 있다. ‘신데렐라’가 그것이다.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됐다. 극중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는다. ‘신데렐라’의 한국판 격인 ‘콩쥐팥쥐’에도 어린 소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를 일삼는 계모가 등장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 역시 아동학대를 연상케 한다. 그 유명한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1694~1776)의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영조의 지나친 교육열), 육체적(좁은 뒤주에 감금) 압박은 학대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가 아동학대에 대처하는 자세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선진국은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시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처벌 수위를 높여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법은 크게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을 겨냥한 것으로 나눠진다.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관련해, 미국은 불과 2년 전인 2013년 1월 아동보호법(Protect Our Kids Act)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소아과 및 가정의학과 의사와 검시관 ,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꾸려진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장기무단결석이 발생할 경우, 미국 학교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학부모 소환제’ 제도를 이용한다. 이 소환에 불응하는 부모는 형사 고발되고 벌금형이 내려지며, 이후에도 자녀의 무단결석이 이어질 경우 곧장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일명 ‘신데렐라법’이 제정됐다. 부모가 아동에게 학대를 가했을 경우 최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영국 신데렐라법의 가장 큰 특징은 학대의 범위가 단순한 육체적 학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을 향한 폭언 등 언어적 폭력부터 훈육과 교육을 명목으로 한 체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직계존속에 의한 가정 내 체벌은 유교적 관념이 짙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교육을 넘어선 학대로 인식되면서 법적제재로 이어졌다.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국가는 스웨덴(1975년)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국민 70%가 이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2011년 조사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체벌반대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endcorporalpunishment.org)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핀란드(1983)와 노르웨이(1987), 아이슬란드(2003) 등지의 유럽 국가와 콩고, 케냐, 튀니지(2010), 남수단(2011)등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48개국이 가정 내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난세는 약자의 지옥…그중 언제나 빠지지 않는 약자는 여자와 아이” 권력자의 횡포와 약탈, 학대가 끊이지 않던 고려 말을 다룬 한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다. 각박한 현실을 견뎌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쩌면 현재는 여전히 난세이며, 여자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약자 중 약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거나, 몸이 상처로 가득하거나, 표정이 어두울 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국적을 넘어 온 세상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아동학대 가해자를 향한 처절한 응징이 아니다. 체벌이 더 이상 올바른 교육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 부모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인성, 나이에 관계없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는 자세 등을 세상 모든 어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까.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봄은 없었다”… 청년들의 분노

    시아파 수천명 페인트 폭탄·화염병 투척 경찰과 충돌… ‘종파 간 내전’ 확전 우려 입헌군주국 바레인에서 2011년 촉발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화염병과 페인트 폭탄이 등장한 시위에서 이슬람 시아파 시위대는 소수 수니파 지배층을 대변하는 왕정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 자칫 종파 간 내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P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바레인 수도 마나마 남부의 시아파 거주지를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아랍의 봄 봉기 당시 중심지였던 펄 광장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청년 수백명이 이끄는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는 인근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투척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주요 길목을 선점한 진압 경찰의 최루가스에 막혀 하루 만에 해산했다. 바레인 경찰은 시위를 주도하고 공공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미성년자 등이 포함된 청년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레인의 정치 상황을 거론하며 이번 시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한 바레인에선 1999년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가 왕위에 오른 뒤 철권 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의회도 왕정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에 2011년 아랍의 봄 시위 당시에는 걸프지역 국가 중 가장 많은 15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하마드 국왕은 같은 수니파 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지원을 얻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3000명 이상이 투옥됐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국제앰네스티(AI)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5년간 바레인에서 폭력과 고문이 일상화됐다고 지적했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바레인을 미국의 불쾌한 우방으로 꼽았다. 바레인의 시위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중동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대결구도가 확고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마드 국왕은 수니파의 비호를 받고 있어 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시아파는 늘 왕정에 불만을 품고 있다. 지난달에는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적 충돌 속에 바레인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테러조직을 검거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지금까지 바레인 내정에 표면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으나, 입장을 바꿀 경우 언제든지 내전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바보’가 남기고 간 숙제 “여러분도 사랑하세요”

    ‘바보’가 남기고 간 숙제 “여러분도 사랑하세요”

    일기·강론·편지 등 모아 자취 좇아 불평등한 현 사회가 가야할 길 제시 아, 김수환 추기경 1·2/이충렬 지음/김영사/1권 568쪽, 2권 564쪽/각 권 1만 6500원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병세는 폐렴 증세로 급격히 악화됐다. 문병 온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주교, 명동성당 주임신부 박신언 몬시뇰 등에게 “나는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오후 6시 12분, 명동성당 종탑에서는 열 번의 조종이 울렸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세례명은 스테파노. 다음날,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눈에서 붕대를 풀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빛이 보였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사랑’이었다. (2권 529~530쪽) 오는 16일은 김 추기경의 선종 7주기다. 기일에 맞춰 세상에 나온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은 1권 ‘신을 향하여’와 2권 ‘인간을 향하여’로 나눠 초고 원고만 8000여장, 전권 1132쪽의 장서로 김 추기경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공인한 첫 전기이기도 하다. ‘간송 전형필’ 등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저자는 김 추기경의 개인 일기와 미사 강론, 강연, 언론 인터뷰, 편지,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선후배 신부들과 남다른 인연을 가졌던 이들까지 모두 찾아내 김 추기경의 자취와 삶을 좇았다. 특히 수록된 360여장의 사진 중에서 100여장이 처음 공개될 정도로 김 추기경의 삶의 궤적을 묵직하고도 새롭게 재조명했다. 김 추기경은 30세에 대구 계산동에서 사제로 서품됐고, 1969년 전 세계 추기경 134명 중 최연소인 47세에 추기경이 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었다. 그러한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을 소개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탄 미사 생중계 중지 명령 197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 김 추기경은 1971년 성탄 자정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며 박정희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에서 생중계되던 성탄 미사를 지켜보던 박 대통령은 즉각 방송 중단을 지시했다. ●“하느님이 두렵지 않느냐”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김 추기경은 같은 달 26일 추모 미사 강론에서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다”며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다. 앞서 1980년 12·12 사태 후 예방한 전두환 장군에게 김 추기경은 “전 소장 쪽이 총을 뽑았기 때문에 군대의 실권을 잡은 것 아니오”라고 일갈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력자의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스테파노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김 추기경은 평생을 주님께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이 되고 싶다고 기도하고 갈구했다. 감당할 수 있는 육체의 고통을 달라고도 했다. 김 추기경은 자화상 ‘바보야’ 전시회에서 “안다고 나대고 어딜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다”고 고백하는 등 늘 스스로를 낮췄다. 왜 김 추기경에 대한 전기를 이 시점에서 세상에 선보이는 것일까. 저자는 머리글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의 불균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김 추기경이 생전에 보여준 삶과 정신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과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악마의 배설물’의 경고/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악마의 배설물’의 경고/구본영 논설고문

    ‘나비효과’가 이런 건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며칠 전 60일간의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소비국 중국의 경기 둔화로 가뜩이나 떨어진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칠 기미를 보이면서 지구 반대편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경제 파탄 위기에 내몰렸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재정 수입의 9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세가 길게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연 140%가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신음 중이다. ‘개도 안 물어 간다’는 말이 있지만, 베네수엘라 화폐가 그 짝이란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의 한 시민을 납치한 무장 괴한들이 그의 은행 계좌의 막대한 볼리바르화(貨)엔 손도 안 대고 몇 푼 안 되는 달러만 노렸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의 살인적 인플레이션 강도를 말해 주는 삽화다. 이로 인해 요즘 베네수엘라 보통 시민들의 생활고가 말이 아닌 모양이다. 5인 가구 기준 식료품비가 최저임금의 6배를 넘어선 지 오래란다. 이쯤 되면 펑펑 쏟아지는 오일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던 나라의 시민들이 이제 기본 생필품조차 제때에 구입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 이는 전임 우고 차베스 정권이 극단적 국가사회주의 노선을 택했을 때부터 싹튼, 예고된 비극일 수도 있다. 1999년 권좌에 올라 2013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오일 달러를 공짜로 나눠 주는 인기 영합 정책으로 일관했다. 까닭에 재정에 의존하는 정부 부문은 비대해졌지만, 경쟁 원리가 작동하는 민간 부문은 시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국민을 여름 한철 흥청망청 살다가 추운 겨울을 맞는, 우화 속 베짱이로 만든 결과가 경제 비상사태라면 말이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런 위기를 내다본 선각자는 있었다. 1960년대 석유장관을 지낸 페레스 알폰소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73년 1차 오일 쇼크로 베네수엘라의 재정 수입이 급등했을 때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라는 인상적 어록을 남겼다. “앞으로 석유 때문에 우리 국민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걸 볼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고유가 시절 넘치는 달러를 대중의 비위를 맞추느라 낭비했던 생전의 차베스가 이를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그 반만이라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자했더라면 작금의 ‘석유의 저주’는 없었을 게다. 성남시가 올해부터 만 24세 청년 거주자들에게 연간 50만원을 주는 청년배당과 무상 교복, 산후 조리 등 3대 무상복지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인기 영합적 지출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큰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이라 적잖이 걱정이 앞선다. ‘자원 부국’인 베네수엘라 국민들조차도 오랜 ‘공짜 점심’을 즐긴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동안 시장경제가 복수를 준비한다는 경구를 이번 총선 출마자들이 꼭 유념했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21) 스마트카 ⑤ 자율주행차 성공의 조건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 (21) 스마트카 ⑤ 자율주행차 성공의 조건

    교통사고 치료제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글로벌 IT 기업과 기존 자동차 업체는 2020년 전후를 목표로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EU, 중국, 일본 등 각국의 정부도 관련 법을 제정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전방위적 지원에 나섰다.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도 지난 5월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자율주행 상용화 지원방안을 발표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자율주행차 100대를 시범 운행하고, 2019년에는 무인 주행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소규모 실험도시도 구축할 계획이다. 2020년 상용화 시기에 맞추어 보험, 검사, 리콜 등 관련 제도도 검토 중이다. 이미 고급 차종을 위주로 고속도로 주행 보조, 자동 주차, 충돌 방지 등의 기술은 일부 적용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네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시장이 2015년 5조 8000억 원에서 연평균 56%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 2035년에는 743조 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때는 완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신차의 비중이 75%로 1억 대에 육박하고, 부분 자율주행차는 90%를 넘어설 전망이다. 자율주행차는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경제적인 의미도 크지만, 운전자의 부주의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 생명을 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해마다 교통사고로 130만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고 5000만 명이 부상을 당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해도 연간 5조 6000억 달러, 약 6570조 원에 이른다. 노트르담 대학의 돈 하워드 철학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가 인간에게 질병이라면, 그 치료제는 자율주행 자동차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라며 적극적인 도입을 촉구하였다. 미국의 경우, 자율주행차의 보급률이 90%가 되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3만2400 명에서 1만1300 명으로 65%가 줄어들고 비용도 4500억 달러가 절감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워드 교수는 4000만 명의 맹인과 10억 명의 장애인, 노인과 어린이와 같은 교통 약자들이 값싸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차를 하루빨리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로를 이용하는 효율이 높아져 지금보다 3배나 넓어지는 효과도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꽉 막힌 길에서 운전을 하는 대신 SNS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있다. 이런 장밋빛 시나리오와 함께 여러 가지 우려의 소리도 있지만 자율주행차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이미 다가온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이슈를 짚어보자.  자율주행차의 윤리적 딜레마  살다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때가 있는데 자율주행차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는 소식이 있다. 미국의 기술분석 잡지인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소개한 올해의 논문 중 한편이 관심을 모았다. ‘왜 자율주행 자동차는 사람을 죽이도록 프로그램되어야 하나?’ (Why Self-Driving Cars Must Be Programmed to Kill)라는 다소 섬뜩한 제목의 기사다. 논문에서는 혼자 자율주행차를 타고 갈 때 사고를 피할 수 없는 3가지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그림 a와 같이 달리는 차 앞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이다. 직진을 하면 여러 명의 목숨이 위험하고 방향을 틀면 지나가던 행인 한 사람이 사망하게 된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 두 번째 b는 한 사람의 보행자가 나타났는데 방향을 바꾸면 보행자는 살지만 탑승자가 사망하게 된다. 그대로 달리면 보행자가 죽지만 탑승자는 무사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피해자는 한 명이라 탑승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세 번째 c의 경우는 10명의 보행자가 나타났고 핸들을 돌리면 탑승자는 죽는 상황이다. 한 명의 탑승자를 살리는 것이 옳은가 10명의 보행자를 살리는 것이 옳은가? 어떤 경우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프로그램하는 것이 최선일까? 그렇다면 행인을 보호하기 위해 탑승자를 희생하도록 프로그램된 차를 소비자들은 살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자율주행차가 도로로 쏟아져 나오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도덕적, 윤리적 선택의 문제를 기계가 임의로 결정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은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판단도 기계가 학습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지만 학습의 기술보다는 무엇을 학습 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스스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경로를 판단하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는 이미 로봇이다. 로봇이 인간이 운전하는 차와 함께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공학, 법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법적, 제도적 논의를 시작하였다. 어쩌면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더디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윤리적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편리함보다 안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자율주행차를 규제할 법령의 초안을 공개했다. 핵심 내용은 3가지이다. 첫째는 반드시 자율주행 면허를 소지한 운전자가 탑승해야 한다. 운전자가 없는 무인차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는 핸들, 제동장치와 같이 운전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구글카와 같이 운전대가 없는 자동차는 운행할 수가 없게 된다. 세 번째는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차를 판매할 수가 없고 리스만 가능하다. 검증기관에서 3년 기한의 운행허가증을 받아 대여하고 지속적으로 차량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주 정부는 자율주행차가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저기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내세우지만 아직 눈, 비, 안개와 같은 기상 변화와 도로의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99% 안전한 차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달간 소비자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상용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용화의 최종 목표는 완전 자율주행이지만 실제 적용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동차의 자동화 수준을 4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에서는 자동 브레이크나 앞차와의 간격 유지와 같은 기본적인 운전 보조 기능이 적용된다. 2단계는 부분적인 자율주행 수준이다. 운전자가 운전을 하지만 자동차가 속도 조절이나 방향 조정 등 일부 자율기능을 수행한다. 3단계는 고속도로와 같이 특정한 환경에서 차선 변경, 추월, 장애물 회피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황에 따라 운전자가 전방에서 눈을 뗄 수도 있다. 마지막 4단계는 목적지만 알려주면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운행하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이다. 최근에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모드인 ‘오토파이럿’(Autopilot)이나 제네시스 EQ900의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과 같이 2단계 수준의 기술이 적용된 준자율주행차들이 출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자율주행차의 출시 목표를 2020년으로 정하였지만 완전자율주행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용화 시기에 대해서는 점진적 변화를 원하는 자동차 업계와 급격한 혁신을 시도하는 IT기업의 전망이 엇갈린다. 비교적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학계의 의견이 있어 간략히 소개한다. 최근 캘리포니아공대의 매튜 무어 박사는 기술의 발전 단계를 나타내는 S-곡선을 이용해 자율주행차의 상용화 시기를 예측하였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자율주행만으로 얼마나 멀리 운행할 수 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다. 현재 수준은 100 마일(165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고, 상용화가 되려면 운전자의 도움 없이 100만 마일은 가야 한다. 이 정도 거리는 2025년이 되어야 달성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안전도를 항공기의 자동 비행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2040년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한다 안전성과 함께 상용화의 또 하나의 걸림돌은 가격이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을 위한 추가 비용은 약 10만 달러, 한화로 1억이 넘는다. 최근 아이폰을 해킹해 유명해진 조지 하츠가 천 달러로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다는 기사가 있었지만 안전한 차는 아니다. 구글카의 지붕위에 달려 있는 라이다(LIDAR)는 레이저를 쏘아 도로의 3차원 지도를 만들어 주는 특수 장비이다. 64개의 레이저가 들어 있는 벨로다인(Velodyne)사의 이 장비 하나의 가격이 7만 달러가 넘는다.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한 GPS도 오차가 수 cm 정도의 고정밀 제품은 수천 달러를 호가한다. 자율주행차에는 100개가 넘는 센서와 고가의 컴퓨터가 장착된다.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가격이 내리겠지만 단기간에 소비자의 요구 수준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 밖에도 도로의 인프라, 해킹 방지, 프라이버시 침해 등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자율주행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술적, 윤리적, 제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도로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마음 놓고 운전대를 로봇에게 넘겨 줄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성공을 위한 조건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그것은 ‘안전(Safety)’이다. 스마트카 연재를 마무리 하면서 올해 국제가전전시회(CES)에 등장할 더 스마트한 자동차를 기대해본다.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씨줄날줄] 모란봉과 톈안먼의 간극/구본영 논설고문

    지난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중국의 2차대전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던 광장 성루에서 보기 드문 그림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나란히 섰다. 61년 전 북한 김일성과 마오쩌둥 주석이 섰던 그 자리에.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단면도였다. 북·중 관계에 또다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이번에는 스냅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12~14일 베이징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던 북한 모란봉악단이 이를 전격 취소하면서다. 하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서우두 공항을 빠져나오던 현송월 단장이 굳은 표정으로 귀국길에 오르는 전 과정이 미스터리다. 애초 이번 공연은 서먹했던 북·중 관계의 정상화 신호로 비쳤다.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서열 5위 류윈산 상무위원의 평양행에 이은 ‘공연 외교’ 이벤트였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방중 정지 작업이란 관측도 나왔다. 모란봉악단은 ‘최고 존엄’ 김정은의 친위 선전대다. 까닭에 이 악단의 공연 취소는 우리 걸그룹의 행사 펑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북·중 관계의 난기류를 말한다는 점에서. 악단의 전격 철수 배경은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북·중 양측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다. 다만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중국 외교부가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바란다”(화춘잉 대변인)고 비판적 논평을 내놓으면서 제기된 추론이다. 중국 측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관람 최고위 인사를 정치국 위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추자 김정은이 결국 오기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와 다른 소수설도 있다. 김정은이 옛 애인이었던 현송월이 언론에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거나, 단원 2명이 이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중화권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 김정일 사망 4주기(17일)를 앞두고 북한이 전국에 애도 기간을 선포하면서 해외 공연도 취소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어느 게 맞는지는 당장 확인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단순한 ‘공연 결례’를 넘어 북·중 관계의 앞날에 암초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혈맹이었던 북·중 관계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내부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갈수록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 아닌, ‘전략적 부담’으로 여기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탈냉전 기류와 함께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드는 데다 김정은 정권 들어 핵실험 등 외교적 돌출 행위가 빈번해지면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중국 5세대 지도부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북·중 관계를 정상적 국가 관계로 치환하려 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철수가 남북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지 주목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글로벌 시대] 미얀마 민주화의 꿈, 내툰나잉을 추모하며/이에스더 아리랑TV 글로벌네트워크 부장

    [글로벌 시대] 미얀마 민주화의 꿈, 내툰나잉을 추모하며/이에스더 아리랑TV 글로벌네트워크 부장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의 민족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압승해 53년 군부독재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총선을 두 달 앞둔 지난 9월, 버마 NLD 한국지부 의장인 내툰나잉이 비통한 죽음을 당했다. 46세로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였다. 서울서 양곤까지 3742km, 슬쩍 국경을 넘어 고향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양곤 공항으로 당당히 귀향을 원했던 그였다. 고국에 돌아간다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 그를 많이 이들이 비통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6년 양곤대에 입학한 내툰나잉은 8888 항쟁으로 석 달간 투옥된다. 88년 8월 8일 양곤의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어난 반군부 민중항쟁은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됐으나 정권을 장악한 새 군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시민, 대학생, 승려 등 수천명이 희생됐다. 영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일시 귀국했던 아웅산 수치는 그해 여름, 군부의 무차별 발포 장면을 목격하고 운명처럼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26년간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15년간 가택 연금으로 소중한 두 아들, 알렉산더와 킴이 커 가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남편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미얀마 민주화를 향한 비폭력 저항을 계속했다. 생계를 위해 가구를 내다 팔았고, 영양 부족으로 머리카락도 빠졌다. 세상과 단절된 15년 세월에 대해 수치는 자신의 처지는 다른 동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외출을 원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책과 라디오가 있어 지낼 만했다고 한다. 오히려 함께 민주화 항쟁을 하다 감옥에 갇힌 동지들은 먹을 것도 없고 자녀 교육도 어렵고 온갖 위험과 차별,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수치가 집에 갇혀 있는 동안 수많은 민주투쟁 인사들이 투옥, 고문, 중노동, 때로는 인간 지뢰 탐지기로 희생되었고 망명길에 올라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내툰나잉은 학창 시절 외신을 통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 등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접했다. 8888 항쟁으로 투옥된 이후 계속되는 감시와 탄압을 받다가 군부가 ‘너 같은 인간은 미얀마에 없는 게 낫다’며 내 준 비자를 들고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미얀마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군사정권 타도 과정과 민주화 운동을 배우기 위한 기대가 컸으나, 오랜 기간 불법 체류자로 지내야만 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인의 난민 지위 인정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모임 등을 만들어 활동해왔다. 그는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버마와 미얀마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꼭 버마라고 불러 줄 것을 부탁했다. 버마라는 국호는 100개 이상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이 나라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버마족의 이름에서 유래됐는데, 군부정권은 1989년 국호를 ‘미얀마’로 개칭해 유엔 등 국제기구에도 미얀마로 가입했다. 그러나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들, 망명 중인 민주화 운동가들, 일부 언론 등은 군부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버마’라는 호칭을 써왔다. 한국에 망명한 미얀마 사람들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112명이고 국내 체류 미얀마인 중 1280명이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생전에 내툰나잉은 “아직 한국은 정부나 민간 모두 기대만큼 버마 민주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이 힘든 역사의 여정을 거쳐 온 것처럼 버마도 힘들게 난관을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내툰나잉은 비록 안타깝게 떠났지만, 이제 봉오리를 피기 시작한 미얀마의 민주화 꽃이 활짝 피어오르기를 한마음으로 기원한다.
  • [씨줄날줄] 리을설 사망과 북한 권부/구본영 논설고문

    베일 속 북한 권부의 속살이 슬쩍 드러난 느낌이다. 북한 군부에서 가장 높은 ‘원수’ 계급장을 달았던 리을설이 지난 7일 사망하면서다. 북한 당국이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른다면서 발표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최룡해 노동당 비서 등 실세급이 누락됐기 때문이다. 리을설은 해방 전 빨치산 시절 김일성의 연락병으로 활약했다. 김일성 주석 때와 김정일 당총비서가 권력을 장악한 초반에 경호실장 격인 호위총국장도 지냈다. 탁월한 군략가라서가 아니라 당번병 시절부터 체화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출세가도를 달려온 인물이다. 94세로 사망해 소위 ‘빨치산 1세대’로서 드물게 천수를 누렸다. 그의 죽음보다 장의위원 명단이 더 외부의 시선을 끄는 이유다. 그의 장례식장 풍경이 북한 권부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풍향계란 뜻이다. 김정은의 권력 세습 이후 실세로 분류됐던 최룡해 당비서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이 위원장인 장의위원회에서 ‘물먹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하긴 와병 중인 강석주 당 비서 등이 명단에 들어 있는데도 멀쩡한 그가 빠진 것은 이례적이긴 하다. 그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 격인 최현의 아들로 이른바 ‘혁명 2세대’의 선두 주자다. 하지만 그가 숙청됐다는 관측은 성급한 얘기일 수도 있다. 김정일 집권 때도 그는 일시적으로 철직(해임)됐다가 ‘혁명화 교육’을 받고 복귀한 적도 있다. 다만 이번 ‘리을설 장례위원’ 명단에서 역시 빨치산 1세대인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일정 당 군사부장도 빠졌다. 이들이 숙청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김정은 시대엔 김정일 세대인 ‘혁명 2세대’들도 더는 안주하기 어렵다는 걸 시사하는 징표로 보인다. 그런 조짐은 오래전에 감지됐다. 김정은이 ‘최고 존엄’으로 추대된 후 3개월 만인 2012년 3월 8일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중성의 아들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이 김정은이 참석한 음악회 무대에 올라 온 가족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북한의 권문세가가 손자뻘 앞에서 ‘재롱 잔치’를 한 꼴이다. 이런 기류는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건성건성’ 손뼉을 친 죄목으로 처형되고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졸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면서 더 심해졌다. 지난 6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영상을 보라. 현재 북한의 2인자 격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자신이 김정은보다 한 발 앞서 걷고 있음을 알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3대 세습체제를 다지는 과정에서 불거진, 빙산의 일각 같은 특이 동향일 게다. 하지만 이를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알리는 징후로 보는 건 북의 세습체제 유지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이들의 속단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할 대목은 내부를 단속하느라 김정은 정권이 문을 더 닫아걸 개연성이다. 그러면 통일의 길도 점점 멀어질 것이라는 차원에서.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6년 전 칠성파와의 ‘그날’… 쇠락의 단초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6년 전 칠성파와의 ‘그날’… 쇠락의 단초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형님, 칠성파 아이들이 단체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뭔 일이 터질 것 같은데요.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09년 11월 11일 오후 4시. ‘범서방파’ 두목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태촌(당시 61세)이 출소하기 6일 전이었다. 범서방파 실세인 나모(당시 43세)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부두목급인 정모씨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았다. 나씨는 ‘김태촌의 후계자’로 불리며 2000년 이후 고문 직책을 맡아 범서방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인물이었다. “빨리 애들 대기시켜.” 나씨의 지시가 떨어지자 정씨를 비롯한 부두목급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긴급 소집된 200여명의 조직원이 강남구의 한 식당 앞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타고 온 검은색 차량에는 30㎝ 길이의 회칼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등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같은 시간 강남 인근에서는 칠성파 조직원 80여명이 모여 범서방파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내 3대 폭력조직 중 하나인 범서방파와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간에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대결로 범서방파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양측의 대치는 다음날 저녁까지 이어졌지만 ‘전쟁’ 직전 경찰이 출동하면서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다. 그러나 양측의 상처는 컸다. 경찰은 이때부터 범서방파를 집중적으로 쫓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부두목급 김모(48)씨를 비롯한 간부급 조직원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만인 지난 10월 나씨가 범죄단체 구성 등 혐의로 검거되면서 범서방파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김태촌의 양아들로 알려진 김모(42)씨도 나씨보다 앞선 지난 4월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터였다. 조직의 자금줄인 해외 원정도박을 운영·알선하던 조직원들이 줄줄이 검찰에 붙잡히면서 범서방파가 사실상 와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범서방파 -칠성파 충돌 피한 후 경찰 타깃… 조직원 줄줄이 잡혀 범서방파의 전신은 전남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방면에서 이름을 딴 서방파다. 또 다른 폭력조직인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65)과 쌍벽을 이루며 80년대 주먹계를 평정했던 김태촌은 1975년 서방파의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1977년 ‘번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박종석(당시 34세)을 두목으로 하고 자신은 부두목을 맡으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 세력을 확장했다. 1989년 초여름 서방파의 행동대장 격인 정모씨가 회칼로 난자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태촌은 정씨의 장례식에 조직원 150여명을 집결시켜 서방파의 위세를 과시했다. 이어 경기 파주시에서 300여명의 조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축복기도 대성회’라는 종교 행사를 가장한 옥외 집회를 열었다. 사실상 범서방파의 결성식이었다. 조직을 정비한 김태촌은 본격적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세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주로 서울 강남과 경기 일산 일대를 중심으로 유흥업소 운영 및 도박장 개장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범서방파 김태촌·양은이파 조양은 ‘쌍벽’… 80년대 주먹계 평정 범서방파는 조직 기여도와 나이 등을 고려해 서열을 정했다. 검찰은 이들의 서열을 ‘행동대장급→부두목급→수괴급→고문급’의 순으로 매긴다. 조직 내 예절과 행동강령은 엄격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범서방파 조직원들은 선배를 보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해야 한다. 선배와 대화할 때는 항상 ‘형님’에다 말끝에 ‘요’자를 붙이도록 했다. 선배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물어서도 안 되고 언제 어디서건 전화를 바로 받아야 한다. 식사를 할 때도 나이 순서대로 일어서서 90도로 먼저 선배에게 인사한 뒤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 다른 조직폭력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선배들이 인사를 시켜 주기 전에는 모른 척해야 하고 싸움이 붙었을 때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 신규 조직원들은 합숙 생활까지 하며 이런 예절 교육을 받았다. 단합을 강조하기 때문에 조직 ‘식구’들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조폭들은 조직원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대거 참석해 세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경조사 당사자 밑의 후배들은 전원 동원돼 손님을 영접한다. 평소 ‘줄빠따’ 등으로 조직원들의 ‘군기’를 잡아 배신과 이탈을 방지했다. ●행동강령 엄격·합숙 생활하며 예절 교육… 선배엔 90도 인사 범서방파를 말할 때 라이벌 양은이파를 빼놓을 수 없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과 김태촌의 숙명적인 만남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의 조폭계는 토착 세력인 ‘신상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신상사파라는 이름은 두목인 신상현(83)이 육군 헌병대 상사 출신인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면서 호남 지역의 ‘젊은 피’들이 대거 상경해 신상사파와 맞붙게 됐다. 1975년 1월 당시 범호남파 계열 ‘오종철파’의 행동대장이던 조양은은 조직원 3명과 함께 신상사파 신년회가 열린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을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신상사파는 서울 중심가를 범호남파에 내줬고, 조양은은 범호남파 실세로 부상했다. 이듬해 3월 번개파 행동대장이었던 김태촌은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조양은의 보스 오종철(당시 27세)을 기습해 부상을 입혔다. 조양은과 김태촌은 이때부터 숙명의 라이벌이 됐다. 결국 1980년대 서울 지역은 양은이파와 범서방파, 뒤늦게 세력을 구축한 이동재(65)의 ‘OB파’까지 ‘3대 호남 조폭’이 분할 점령했다. 그러나 김태촌의 계속된 수감 생활로 범서방파의 세력은 점차 약화된다. 게다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0년대 기업형 조폭 변신… 2013년 김태촌 사망 후 흔들 범서방파는 2009년 김태촌 출소에 맞춰 ‘함평식구파’를 흡수하며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유흥업소와 대부업체 운영, 건물 유치권 분쟁 등에 뛰어들어 조직 자금을 마련하며 재기를 노렸다. 2000년대는 조폭들의 범죄 수법이 금융·기업사냥 영역으로 확장된 시기이기도 하다. 범서방파도 기업형 조폭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는 거액의 사채를 끌어와 무자본 기업 인수·합병(M&A) 수법으로 위조지폐 감별기 제조사를 사들인 뒤 회사 돈 200억원을 빼돌리는 지능적 범죄를 저질렀다. 해외로 진출해 마카오,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도박장을 운영하고 손님들을 알선하며 거액의 돈을 챙기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 1월 김태촌이 사망하면서 범서방파는 또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와 후계자 나씨마저 올해 연이어 구속 기소됐다. 최근에는 해외 원정도박 일당도 대거 구속되면서 범서방파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 “평소 합법적 사업… 언제든 신종 불법 뛰어들 가능성” 그러나 조직의 ‘뿌리’까지 뽑히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검찰 등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조폭들이 평소에는 합법적인 자기 사업을 하다가 행사나 특정 시기에 집결했다가 다시 사업으로 돌아가는 등 ‘꼬투리’를 최대한 잡히지 않는 식으로 세력을 유지한다”며 “당분간 조직이 약화될 순 있어도 언제든 신종 불법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조폭 우두머리 모인 서울구치소 ‘골머리’

    서울구치소에 때아닌 비상이 걸렸다.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던 조직폭력배의 두목과 후계자 등이 잇따라 수감되면서다. 4일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이름난 조폭은 1970년대 김태촌의 ‘범서방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3대 조직으로 떠올랐던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65)과 김태촌의 양아들 김모(42)씨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김태촌의 후계자로 알려진 범서방파 고문 나모(49)씨, 최근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원정도박 사건과 관련해 마카오 등에서 도박장을 개설·운영한 범서방파 계열 광주 ‘송정리파’ 조직원들까지 더해졌다. 2013년 가짜 선불금 보증서(속칭 ‘마이낑 서류’) 담보 대출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조양은은 최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지만, 채무자를 협박·폭행한 사건으로 추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백발의 모습으로 나와 “1심에서 재판다운 재판을 못 받았다”며 무죄를 호소하기도 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는 사채로 우량 벤처기업을 인수해 거액의 회사돈을 횡령한 혐의로 올해 4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씨는 과거 범서방파 행동대장으로 활동했다. 범서방파의 나씨는 2009년 11월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범서방파와 칠성파의 흉기 대치극을 주도한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김태촌이 2013년 1월 사망한 이후 나씨가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구치소 측은 같은 시기에 주요 폭력조직원들이 대거 수감됨에 따라 우선 이들이 세력별로 뭉치거나 폭력사태 등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전담 인력을 별도로 편성할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조직폭력배들이 세력화하는 움직임이 보이거나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려 하면 분리하거나 다른 구치소로 보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시리아 난민 문제’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 화제

    ‘시리아 난민 문제’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 화제

    시리아 난민 문제가 왜 일어났고 각국의 현재 난민 수용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상은 독일 스튜디오 ‘쿠르츠작트’(Kurzgesagt)에서 제작한 것으로, 정치·경제·사회·과학·기술·의학·철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지만 정확하게 모르는 이야기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쉽고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유뷰트 채널 ‘인 어 넛셀 - 쿠르츠작트’(In a Nutshell- Kurzgesagt)에 공개되고 있다. 영상은 2013년부터 한 달에 한편, 편당 4~6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으로 발표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상(제목: The European Refugee Crisis and Syria Explained)은 지금까지 743만여 명이 봤으며 이 중 9만 8000명이 찬성을, 2만 6000명이 반대를 누를 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해설은 영어이지만 한국어 자막을 표시할 수 있으니 단 6분 16초만 투자하면 현재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해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영상 자막을 좀 더 쉽고 간결하게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영상을 볼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이것만이라도 읽어보자. 2015년 여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 들어왔다. 왜일까? 주원인은 시리아가 세계 최대 난민 발생국이 됐기 때문이다. 중동에 있는 시리아는 고대 곡창지대였으며 1만 년 이상 거주지역이었다. 1960년대 이후 시리아는 알 아사드 가문이 이끌어 왔는데 2011년 일어난 혁명 ‘아랍의 봄’ 이전까지 준독재 통치를 유지했다.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시위와 갈등의 물결은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와 같은) 많은 독재 체제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물러서지 않았고 잔인한 내전이 시작됐다. 다수의 민족과 종교 단체가 합종연횡하며 서로 싸웠는데 군국주의 이슬람 성전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이 기회를 이용해 전체주의 이슬람 칼리프 정권을 목표로 이 혼란에 뛰어든다. 급속도로 확산한 IS는 지구 상에서 가장 성공한 극단주의 폭력 단체가 됐다. IS는 어느 쪽이든 화학무기, 집단처형, 대규모 고문, 민간인 공격 등 끔찍한 전쟁 범죄를 자행했다. 시리아 국민은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갈등 사이에서 갇혀버렸다. 시리아 국민의 3분의 1은 자국을 벗어나야 했고 4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대다수는 이웃나라의 난민 캠프로 왔으며 이는 전체 난민의 95%에 달한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페르시아만의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국제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이를 “매우 부끄럽다”고 평가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 정도 규모의 난민 위기에 대해 준비 돼 있지 않았다. 결국 많은 난민 캠프들은 붐비고 궁핍했으며, 사람들은 추위와 가난,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시리아인들은 머지않아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유럽으로 망명하기로 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유럽연합(EU)은 약 20억 유로(약 2조 4729억원)를 국가방위와 첨단보안기술, 국경순찰대에 투자했지만 난민 유입에 대비해서는 그리 많이 투자하지 않았기에 몰려드는 망명 신청자들에 대비해서는 준비가 엉망이었다. 유럽연합(EU)에서 난민들은 처음 도착한 국가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는 이미 고충을 겪고 있는 국경국가들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없어서 절망적이고 굶주린 난민들을 관광객들이 가는 섬에 두는 끔찍한 현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 세계는 힘을 합쳐 국경 없이 대처해야 마땅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더욱 분열되고 말았다. 많은 국가가 난민 수용을 완전히 거부했고 국경 국가들만 힘겹게 버티게 됐다. 2014년 영국은 영향력을 행사해 ‘마레 노스트럼’(Mare Nostrum)이라는 대규모 수색 구조 작전을 중단시킨다. 이 작전은 망명신청자들이 지중해에서 익사하는 것을 막을 목적이었다. 영국은 아마 해상 사망자가 많아지면 망명신청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시리아 난민 위기에 관한 세계의 인식은 터키 해변에 엎드려 죽어 있는 시리아 소년의 사진이 퍼지면서 급변하게 된다. 독일은 예외 없이 모든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고 2015년 80만 명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2014년 유럽연합(EU) 전체가 받아들인 수보다 많다. 하지만 며칠 뒤 임시 국경을 통제해야 했으며 유럽연합(EU) 차원의 해결책을 요구하게 된다. 서구 전체에서 점점 많은 사람이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망명신청자들에 관한 이런 지원은 대부분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서방 세계가 두려워하는 바가 있다. 이슬람교, 고출산, 범죄, 그리고 사회 체계의 붕괴 같은 것들이다. 이에 대해서 사실을 짚어 보자. 만약 유럽연합(EU)이 단독으로 400만 명의 전체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100%가 이슬람교도라고 해도 유럽연합(EU)에서 이슬람교도 인구비율은 겨우 4%에서 5%로 오르게 된다. 이는 급격한 변화가 아니며 유럽을 무슬림 대륙으로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이슬람교도 소수민족은 새롭지도 않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서구 세계의 많은 지역은 출산율이 낮기에 망명 인구가 몇십 년 내에 현재 주민을 대체해 버릴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럽에서 이슬람교도 출산율이 높긴 하지만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이 오르면 떨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들은 이미 교육받은 사람들이며 내전 이전 시리아의 출산율은 매우 높지도 않았고 인구는 사실 늘지 않고 줄어들고 있었다. 난민이 범죄율을 높일 거라는 두려움도 오해로 드러났다. 이민을 원하는 난민들은 원래 거주민보다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작다. 취업이 허가되면 경제 활동을 시작하고 노동력으로 빠르게 융합돼 사회체계로부터 받아내는 것보다 더 많이 이바지하게 된다. 서구 세계로 오는 시리아인들은 잠재적인 전문 노동자이며 유럽의 고령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매우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는 모습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왔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은 난민 생활에 필수 요소가 돼 있다. GPS는 유럽까지의 장거리 경로를 안내해주며 페이스북 그룹은 실시간으로 장애물에 관한 팁과 정보를 제공한다. 난민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위험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스마트폰을 두고 가겠는가?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경제 집단이고 효율적인 사회제도, 사회 인프라, 민주주의 그리고 거대 산업을 가진 조직적인 국가들이다. 원한다면 난민 위기를 다뤄낼 능력이 있다. 모든 서구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나라 요르단이 6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는 동안 요르단에 78배에 달하는 GDP를 가지고 있는 영국은 겨우 2만 명의 시리아인을 입국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말이다. 미국은 1만 명을, 호주는 1만 2000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충분히 빠르지 못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는가? 울타리 뒤에 숨은 인종혐오, 부자, 겁쟁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죽음과 파괴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을 우리 국가로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로 통합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이 위기를 무시한다면 분명 잃어버릴 것이 있다. 인류애와 이성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아이의 시신이 해안에 밀려올 것이다. 이를 바로잡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사진=인 어 넛셀 - 쿠르츠작트/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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