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전시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천공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지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159
  • 신각수·최상용 前주일대사 “한일 타협 여지 있다”

    신각수·최상용 前주일대사 “한일 타협 여지 있다”

    ‘한일 관계가 힘든 상황이지만 양국 정상의 발언을 분석할 때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신문 광화문라운지 포럼 ‘지금, 한일 관계를 생각한다’에 참석한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과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메시지를 공통적으로 밝혔다. 두 사람은 주일본대사를 역임했다. 신 전 대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얽힌 현 상황에 대해 “복합다중골절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는 “과거에도 한일 간 5~6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부분 과거사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영토·지정학·국민감정 등이 겹쳐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배경으로는 역사교육을 중시하는 한국과 근대사를 배우지 않는 일본의 인식 격차 증대, 경제 격차의 축소, 잃어버린 20년을 통한 일본의 보수우경화, 한일 간 소통 통로의 축소 등을 꼽았다. 그러나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진전된 안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라며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의 제안(한일 기업의 자발적인 기금 마련)이 최종적인 게 아니고 발전시킬 용의가 있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에 최 전 대사는 “아무리 어려워도 한일은 외교적 협상으로 갈등 사안을 해결해 온 경험이 있다”며 “두 정상이 힌트를 보냈으니 정부는 양국의 불일치 속에서 접점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 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동의했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반한 감정이 우려할 정도로 반영되지 않았고, 국정과제 1호인 개헌 동력이 주춤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일 갈등의 주요 변수로 부상한 미국의 관여에 대해 신 전 대사는 “일이 나기 전에 (미국의 관여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 일이 난 다음에는 비용도 크고 효과도 적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미국이 한일 관계 악화를 막는 기능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신 전 대사는 “일례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빼는 조치를 동결하게 하고 한국에 구체적 방안으로 협의를 시작하라고 한다면 미국 자국의 이익도 있고, 한일 갈등을 푸는 데도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 전 대사는 “외교 역량을 민족주의화하지 말고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치밀하고 조용하게 접근해 주기를 바란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우상’ 요시다 정한론 가슴에 품고…아베의 21세기판 침탈 야욕

    ‘우상’ 요시다 정한론 가슴에 품고…아베의 21세기판 침탈 야욕

    1910년 8월 29일 밤 서울 남산 기슭 통감관저.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자축하는 연회가 열렸다. 첫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경복궁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어줍잖은 하이쿠(일본의 단형시) 한 줄이 흘러나왔다. “고바야카와 다타카케,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오늘 저녁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까.” 1592년 조선을 정복하려다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수들이었다. 전임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 하이쿠를 이어받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조선 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데라우치는 도요토미와 그 장수들 그리고 이토에게 ‘조선 병탄’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역사는 한 번도 끊이지 않았다. 기록된 것만 조선조까지 무려 1000회 이상이다. 663년 4만여 명 이상을 동원해 신라와 전투를 벌였고, 760년에는 발해에 신라 침공을 유혹하기도 했다. 고려 실록엔 600여건의 왜구 침략 기사가 실려 있고, 조선왕조실록엔 312건이 올라 있다. 침탈의 주력은 일본의 서남단 지금의 야마구치현(옛 지명 조슈번)이거나 구마모토, 가고시마현(옛 지명 사쓰마번)이었다. 이 중에서도 조슈번은 특별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물론 1, 2대 조선 총독이 모두 조슈번 출신이었다. 조슈번은 외지고 작았지만, 특유의 공격성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했다. 유신 이후 총리만 무려 8명이나 배출해 하나의 벌(閥)족을 이뤘다. 두 번째로 많은 도쿄는 4명뿐이다. 한국에서 대통령 12명 중 5명을 배출하고, 정부 수립 후 70년 가운데 40여년을 집권한 ‘TK’(대구·경북)와 비슷하다. 군벌이 주력이었다는 점도 같다. 다만 조슈번 벌은, 무작정 권력만 추구한 ‘TK 벌’과 달리 나름의 이념과 책략이 있었다. 그 스승은 요시다 쇼인. 지난 17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우호적으로 인용했다가 망신을 당한 인물이다. 지금도 야마구치현에선 그에게 ‘선생님’이란 경칭을 쓰지 않으면 바로 외면당한다. 그가 제시하고 가르친 책략이 바로 정한론(征韓論·조선정복론)과 ‘일본 굴기’다. 조슈번에는 사이코데이(채향정)라는 130년 전통의 요정이 있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100여년간 일본 요정 정치의 꽃이었다. 거기엔 박정희 군사정권 실세들을 불러들여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별실도 있다. 채향정의 대연회장인 오히로마에는 좌우 벽을 따라 묵서가 20여점 걸려 있다.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등 ‘정한’(征韓)의 주역과 현대의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동생 사토 그리고 아베 신조 등이 그 필자다. 아베의 묵서 내용은 “적연부동”(寂然不動).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불과 1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은 아베 신조는 자신의 지역구(시모노세키)에 머물며 채향정을 드나들었다. 숭배하는 인물의 신조가 빼곡하니, 권토중래를 꿈꾸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아베가 묵서를 가져온 것은 2009년 9월. 다시 출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마음은 조용하고 편안하고,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곧 도쿄로 올라간다. 아베는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두 번째로 총리가 된다. 그때 내건 슬로건이 ‘강한 일본’, 현재 한일 관계를 흔드는 책략이다. 아베는 총리가 되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차 집권 때 참배하지 않은 것을 두고 ‘통한의 극치’라고 했다. 이어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전쟁 가능한 국가 만들기, 역사 왜곡, 도덕 교과서 부활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뒤따랐다. 그런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그는 외조부 기시로부터 요시다 쇼인과 그의 수제자 다카스기 신사쿠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성장했다고 자랑처럼 말하곤 했다. 아베 할머니의 할아버지(외고조부)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 오시마 요시사마다. 1894년 일본군 8000명을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한 자다. 이토와 오시마가 조선 정벌에 앞장섰다면, 기시는 일제의 괴뢰 만주국 창설의 주역이었다. 기시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됐지만, 재판도 받지 않고 3년 만에 출소해 ‘쇼와의 요괴’로 불리며 일본 정계를 주물렀다. 아베의 할아버지 아베 칸은 조슈번 향리에서 ‘현세의 요시다 선생’이라고 불렸다. 아베의 이름 신조(晉三) 가운데 ‘신’, 아버지 이름 신타로 가운데 ‘신’은 요시다의 수제자 신사쿠에서 따왔다. 요시다의 ‘지성’(至誠)은 아베의 정치적 신념이 됐다. 아베는 “지성이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2006년 8월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했던 “사무라이 된 자, 그 뜻(志)을 세워야 그 뜻한 바, 기(氣) 또한 따른다”는 말도 요시다의 말이다. 새로 출간된 도덕 교과서엔 요시다의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2013년 8월 총리가 된 뒤 현역으로는 처음으로 요시다 묘소를 참배했다.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다짐했다. “올바른 판단을 하겠다.” 요시다는 1830년 조슈번의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존왕양이’를 위한 과격한 행동으로 수감된다. 금고 상태에서 송하촌숙(쇼카손주쿠)이라는 학당을 만들어 인근의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지은 ‘유수록’엔 그 내용이 잘 담겨 있다. ‘왕조가 바뀌는 중국과 달리 황손이 만세일계를 이루는 일본이 우월하다.’ ‘신성이 있은 연후에 창생이 있다.’ ‘조선의 나라들은 덴노(일왕)의 속국이었으나 국체(덴노 중심체제)의 쇠퇴와 함께 교만해졌다.’ 요시다의 몽상적 역사 인식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국체가 손상된 도쿠가와 막부 시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 신성의 도에 부합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공황후(3한을 정벌했다는 신화 속 인물)나 히데요시야말로 황도를 밝게 하고 국위를 신장한 것으로서, ‘신주의 광휘’다.” 요시다가 수감됐을 때 미국와 프랑스가 함포를 앞세워 개항을 압박했고, 막부는 이에 굴복했다. 요시다는 ‘국난 극복’의 책략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疆域(강역)을 소중히 하고 조약을 엄히 지켜 二虜(이로·미국과 러시아)를 제어하고, …쉬운 조선을 취(取)하고, 만주를 꺾고, 지나(支那)를 누르고, 인도에 臨(임)함으로써 진취(進取)의 세를 펴고, 이로써 退守(퇴수)의 기반을 굳히고, 신공과 히데요시의 나라가 달성하지 못한 바를 이룩해야 한다.” 그 세례를 받은 자들의 면면은 이렇다. 다가스키 신사쿠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제자로 막부 타도의 1등공신이다. 이토는 그를 “동하면 우레 같고, 발하면 풍우 같았다”고 평가했다. 기도 다카요시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메이지유신의 3걸. 조슈 군벌의 수장으로 ‘일본 육군의 교황’이었던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청일전쟁 때 조선군 사령관이었다. 아베의 외고조부 오시마는 청일전쟁 전날 경복궁을 점령해 조선을 청일전쟁의 교두보로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총리대신을 2차례 역임하고,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제한 뒤 초대 통감이 됐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조선에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뒤 주한 공사를 역임했으며, 그의 후임 미우라 고로는 부임하고 불과 한 달 뒤 명성황후 살해를 지휘했다. 가쓰라 다로는 미국으로부터 조선의 병탄을 묵계받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주역이었으며, 다나카 기이치는 총리 시절 중국 침략을 기획했고, 데라우치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 2대 조선 총독이었다.요시다는 1858년 막부의 2인자 마노베의 암살계획을 추진하다가 체포돼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편지를 보낸다. “민초들을 산처럼 일으켜 체제를 바꾸라.” 이른바 ‘초망굴기’(草莽起)다. 유신을 주도하고, 힘을 길러 조선부터 인도차이나까지 집어삼킨 뒤 미국과 맞붙고, …제자들은 그 길을 갔다. 아베의 ‘강한 국가’도 그 연장이다. (평화헌법) 체제를 뒤엎어, 쉬운 나라부터 취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경제적 침략을 앞세워 우리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바꾸려는 것은 1894년 외고조부 오시마가 군대를 앞세워 했던 짓과 다르지 않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부고]

    ●명희진(경남도 정무특별보좌관)씨 모친상 22일 창원시립상복공원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30분 (055)712-0900 ●김응규(신건에너지 부사장)씨 별세 김용채(전 국회의원)씨 아들상 전옥하(금전디엔아이 대표)씨 남편상 김성재(벨로스 과장)희재씨 부친상 김혜나(LG유플러스 강남지사 주임)씨 시부상 김경범(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씨 장인상 22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2258-5940 ●이용일(전 KBO 총재 직무대행)씨 부인상 승규(SK 플래닛 재팬 대표)금희(C플라밍고 대표)씨 모친상 신상헌(GE 고문변호사)씨 장모상 22일 서울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5시30분 (02)2072-2018 ●백삼기(경남도민신문 사회2부 국장 통영주재)씨 별세 22일 통영서울병원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9시 (055)644-9959 ●김정환(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씨 별세 이혜원(연세대 간호학과 명예교수)씨 남편상 제완(고려대 법학과 교수)제우(서울 연세우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제성(매스웍스 수석개발자)씨 부친상18일 고대안암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 20분 070-7816-0229
  • [부고]

    ●명희진(경남도 정무특별보좌관)씨모친상 22일 창원시립상복공원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30분 (055)712-0900 ●김응규(신건에너지 부사장)씨별세 김용채(전 국회의원)씨아들상 전옥하(금전디엔아이 대표)씨남편상 김성재(벨로스 과장)희재씨부친상 김혜나(LG유플러스 강남지사 주임)씨시부상 김경범(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씨장인상 22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2258-5940 ●이용일(전 KBO 총재 직무대행)씨부인상 승규(SK 플래닛 재팬 대표)금희(C플라밍고 대표)씨모친상 신상헌(GE 고문변호사)씨장모상 22일 서울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5시30분 (02)2072-2018 ●백삼기(경남도민신문 사회2부 국장 통영주재)씨별세 22일 통영서울병원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9시 (055)644-9959
  • 日 수출규제에도… 한·중·일 혁신기업 “4차 산업혁명 협업”

    日 수출규제에도… 한·중·일 혁신기업 “4차 산업혁명 협업”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로 동북아 산업체계 구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22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 2019 한·중·일 기업가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한·중·일 혁신 기업가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 자리에서 김은석 전경련 국제고문은 “한·중·일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윈-윈-윈 협업 플랫폼을 갖출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日 수출규제에도… 한·중·일 혁신기업 “4차 산업혁명 협업”

    日 수출규제에도… 한·중·일 혁신기업 “4차 산업혁명 협업”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로 동북아 산업체계 구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22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 2019 한·중·일 기업가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한·중·일 혁신 기업가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 자리에서 김은석 전경련 국제고문은 “한·중·일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윈-윈-윈 협업 플랫폼을 갖출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부고] 백삼기씨 별세, 이용일씨 부인상, 김응규씨 별세

    ●백삼기(경남도민신문 사회2부 국장 통영주재)씨 별세, 21일, 경남 통영서울병원장례식장 1층 VIP실, 발인 23일 오전 9시. 055-644-9959, 010-4557-5499 ●이용일(전 KBO 총재 직무대행) 씨 부인상, 이승규(SK 플래닛 재팬 대표) 이금희(C플라밍고 대표) 이지현 씨 모친상, 하정(개인사업) 신상헌(GE 고문변호사) 장모상, 22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5호실, 발인 24일 오전 5시30분. 02-2072-2018 ●김응규(신건에너지 부사장)씨 별세, 김용채(전 국회의원)씨 아들상, 전옥하(금전디엔아이 대표)씨 남편상, 김성재(벨로스 과장)·김희재씨 부친상, 김혜나(LG유플러스 강남지사 주임)씨 시부상, 김경범(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씨 장인상, 15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4일 오전 9시. 02-2258-5940
  • 차기 유력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노딜’ 엄포에 장관들 줄 사임 선언

    차기 유력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노딜’ 엄포에 장관들 줄 사임 선언

    영국의 유력한 차기 보수당 대표 겸 총리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이번주 중 총리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그의 입장에 각료들이 반기를 들며 잇달아 사퇴 선언을 했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21일(현지시간)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이 BBC 인터뷰에서 존슨 전 장관이 차기 총리가 되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해먼드 장관은 오는 23일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존슨 전 장관이 이길 경우 해임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 시점이 되기 전에 사임할 것이기 때문에 해임되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해먼드 장관은 이어 “차기 내각에 참여하는 것은 곧 오는 10일 31일 노딜 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데이비드 고크 법무장관도 해먼드 장관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었다. 존슨 전 장관이 총리가 되면 내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고크 장관도 노딜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대표적인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인 존슨 전 장관은 보수당 대표 경선 기간 내내 EU와 새로운 합의안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노딜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합의가 있든 없든 반드시 그 날 EU를 떠나겠다고 재차 반복해왔다. 해먼드 장관을 비롯해 다른 각료들이 차기 내각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떠한 합의도 없이 영국이 EU를 떠나는 노딜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자신이 EU와 맺은 합의안이 의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부결됐음에도 노딜은 선택지에 두지 않았었다. 해먼드 장관은 “우리는 의회 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면서 “새 총리가 노딜에 대해 의회를 설득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지만 의회의 목소리를 부인하고자 의회 일정을 정지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장관 이외에도 로리 스튜어트 국제개발부 장관 등 노딜에 반대하는 또 다른 장관들도 존슨 전 장관에 반발해 사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그렉 클락 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은 노딜엔 반대하지만 사임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은 물론 EU도 노딜을 막고자 물밑 움직임을 분주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타임스 일요판인 더선데이타임스는 이날 EU 회원국들이 노딜을 피하기 위한 새 브렉시트 계획을 논의하고자 존슨 전 장관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기고문을 통해 아일랜드가 타협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무즙으로 감투도 벗긴다고?/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무즙으로 감투도 벗긴다고?/손성진 논설고문

    1965년 전기 중학교 입학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엿을 만드는 순서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는데 학부모들은 ‘무즙’도 될 수 있다며 들고일어났다. 학부모들은 집단 농성을 벌이며 반발했다. 학부모들의 항의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자연 교과서에 “디아스타제는 엿기름이나 침, 무즙에도 들어 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정답은 디아스타제 하나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K교육감은 “무즙으로 엿이 된다면 떨어진 학생들을 구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들은 직접 솥단지에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서울시교육위원회로 몰려가 “무즙엿 좀 먹어 보라”고 외쳤다. 서울시교위는 국립과학연구소에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는지 검증을 의뢰했지만 딱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결국 그해 2월 25일 무즙을 정답으로 써낸 학생 38명이 ‘입학시험 합격자 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소송이 진행되던 도중 학부모들은 교육감의 개인 집 안방까지 들어가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무즙으로 만들었다는 엿을 교육위원회 담벼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서울고법 특별재판부는 다음달 30일 “무즙도 정답”이라는 판결을 내려 학부모들의 손을 들어 줬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은 경기중(30명), 서울중(4명), 경복중(3명), 경기여중(1명)에 정원 외로 추가 입학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더 커졌다. ‘무즙 학생’들의 전입학을 틈타 경기중 4명, 경복중 11명 등 특권층 자제 15명이 부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권층 중에는 청와대 비서관 2명과 한전 사장도 포함돼 있었다. 대통령의 엄단 지시에 따라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공보비서관이 해임되고 문교부 차관, 서울시교육감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관가 주변에서는 “무즙으로 엿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감투도 벗긴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즙을 정답으로 써내고도 소송하지 않은 학생들이 문제였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그들까지 점수를 조정해 주면 연쇄 이동을 일으켜 학교 행정에 큰 혼란이 따른다며 구제해 주지 않았다. 1967년에는 ‘창칼 파동’이 일어났다. 미술 문제 13번에서 미술 도구 창칼의 용법을 ‘앞으로 당기는 것’만 정답이라고 했다가 경기중에 고위층이 다녀간 뒤 ‘뒤로 당기는 것’도 정답으로 인정, 채점 기준을 바꿨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정답을 둘로 인정하는 바람에 당락이 뒤바뀌었다고 주장하며 추운 강당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 ‘가짜 유공자’ 판명나도 후손이 훈장 반납·이장 거부 땐 강제 못해

    ‘가짜 유공자’ 판명나도 후손이 훈장 반납·이장 거부 땐 강제 못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던 재중 교포 김세걸(72)씨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국 가요를 부르려고 반주기를 켜자 서울 현충원이 등장했는데, 거기에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있었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지린성 일대에서 항일단체 국민부의 참사(하사)로 활동한 김진성(1914~1961). 1934년 일제 밀정 김용환을 처단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해방 뒤 출소했다. 가족을 찾으러 만주로 다시 갔지만 남북이 분단돼 발이 묶였고 1961년 선양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세걸씨는 아버지의 묘지가 왜 한국에도 있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당시 마흔을 갓 넘긴 그가 30년 넘게 가짜 독립유공자 실태를 파헤치게 된 ‘역사 추적’의 시작이었다. 베이징대 의대를 나온 최고 엘리트였지만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자 부친 묘지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미련 없이 한국으로 건너왔다. 현충원에 있던 ‘가짜 김진성’은 ‘진짜 김진성’과 생몰 연대만 빼고 나머지 공적이 같았다. 누군가 아버지의 공적을 훔쳐 1968년 건국훈장 애국장(현 독립장·3등급)을 받고 국립묘지에 안치된 것이다. 그는 정부에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그때마다 담당자는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동명이인”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단다.세걸씨는 수년에 걸쳐 자료를 모아 가짜 김진성이 아버지 행세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김영삼 정부는 진짜 김진성에게 서훈을 추서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짜 김진성에게 준 훈장은 취소하지 않았다. 현충원의 묘지도 그대로 뒀다. 세걸씨는 “가짜 김진성 묘지를 하루빨리 없애고 거짓 서훈에 가담한 이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보훈 담당 직원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받아 한국으로 귀화했으면 됐지 더이상 뭘 바라느냐”며 되레 그를 힐난했다고 한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결국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7월 가짜 김진성의 묘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부친의 유해가 안장됐다. 선양의 한 노래방 화면에서 가짜 김진성의 묘를 본 지 10년 만이었다. 김세걸씨 사례는 그간 우리나라에서 가짜 유공자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됐지만 ‘가짜 독립유공자와의 전쟁’은 이제야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는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통해 가짜 유공자를 가려내겠다”고 밝히며 과거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수많은 법적·제도적 허점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가로막고 있다.●30여년 추적 끝 3代 5명 ‘가짜’ 밝혀내 1998년 세걸씨는 부친의 공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가짜 김진성뿐 아니라 친척 상당수도 유공자로 둔갑해 ‘독립운동 명문가’ 행세를 한 것이다. ‘부친의 묘 옆에 가짜 유공자를 둘 수 없다’고 마음먹고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비밀을 캤다. 3대에 걸쳐 5명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이들 일가의 엽기적 범죄가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 나왔다. 가짜 김진성의 사촌형 김정수(1909~1980)는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의 대표적 항일조직 참의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1968년 건국훈장 애국장(현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평안북도 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정범(1899~?)의 공적을 가로챈 것이었다. 김정수의 조부 김낙용(1860~1919·건국훈장 독립장)과 백부(큰아버지) 김병식(1880~?·건국훈장 애족장), 부친 김관보(1882~1924·건국훈장 독립장)도 거짓 행적으로 의심되는 증거로 서훈을 받았다. 가짜 유공자들은 호적을 위·변조한 뒤 연고자가 없는 진짜 유공자의 항일투쟁 공적을 가져와 훈장을 받는다. 후손 확인이 쉽지 않은 북한이나 중국에서 활동한 이들을 주된 ‘신분 세탁’ 대상으로 삼는다. 김정수 일가도 이 수법을 그대로 썼다. 세걸씨는 국가보훈처에 이들의 사기 의혹을 폭로하고 시정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늘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한다. 세걸씨는 포기하지 않고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이 사건을 꾸준히 공론화했다. 우공이산이라고 했던가. 지난해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김정수 일가 가짜 독립유공자 5명의 서훈을 모두 취소한다”고 선언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지 20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간 정부가 왜 이 문제를 질질 끌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공무원들이 책임감이 부족해서다”라고 잘라 말했다. 세걸씨는 일생을 바쳐 김정수 일가의 가짜 유공자 행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의 서훈이 취소된 것 말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35조에 따르면 독립유공자가 취소되면 훈장과 독립유공자증을 반납해야 한다. 현충시설에서 철거되고 보상금 지원도 중단된다. 하지만 김정수 일가에 대해서는 이런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보인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1968년부터 최근까지 김정수 등 가짜 유공자 유족에게 보훈급여 4억 5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간 물가가 25배 이상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 40억~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고 의원은 “가짜 독립유공자 후손 행세를 하며 받아 간 수십억원 상당의 보훈연금을 전액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최근 5년간 지급된 금액만 돌려받을 수 있어 대부분 금액은 회수가 불가능하다.●후손들 거짓 서훈 신청해도 ‘밑져야 본전’ 지난해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전수조사 결과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 부당이득 반환 청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명이인 여러 명의 공적을 짜깁기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대전 김태원’의 후손에게 “그간 지급된 보훈연금을 반납하라”고 요구했다가 행정소송이 제기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후손은 “국가에서 훈장을 주니까 받은 것이다. 검증을 소홀히 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오히려 보훈처를 비난한다. 앞으로 가짜 유공자로 밝혀진 후손에게서 보훈연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나도 후손이 자진 반납하기 전까지는 훈장이나 혜택을 되가져오기 힘들다. 현충시설 이장 역시 후손이 버티면 강제할 수 없다. 정부가 가짜 유공자 후손들에게 “제발 묘를 옮겨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이다. 세걸씨가 찾아낸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그대로 묻혀 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이미 안장된 자도 이장을 강제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유영옥(국민대 교수) 국가보훈학회장은 “진짜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가로챈 것은 분명한 범죄행위지만 이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 나중에 가짜로 밝혀져도 후손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이들에게 거짓 서훈 신청은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인 것”이라면서 “국가는 가짜 독립운동가 일가족에 대해 서훈 취소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들이 받았던 혜택을 모두 회수하고 국가와 국민을 속인 것에 대해 형사책임도 물을 수 있게 강한 제제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5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손잡고 한반도에 침투하려고 했던 광복군 소속 OSS 대원 이병돈(1914~2005)의 딸 예숙(57)씨는 자신이 겪은 유공자 심사 비밀주의를 질타했다. 그는 “보훈처는 심사 대상자가 어떤 이유로 통과했거나 탈락했는지 대략의 이유조차도 말해 주지 않는다”며 “훈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예다. 심사는 무엇보다도 공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면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지게 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단독] 전국 29곳 수도시설 우라늄 초과 검출… 충북 음성 기준치 20배

    [단독] 전국 29곳 수도시설 우라늄 초과 검출… 충북 음성 기준치 20배

    지하수 등 이용 목적… 지자체가 설치 주변 토양서 천연 우라늄 녹아들어 독성 크고 장기간 노출 땐 신장 손상 주민 “계속 사용”… 지자체 폐쇄 난감 환경부 ‘음용 금지’ 경고판 설치 검토 일부 지자체는 방사능 측정설비 없어충북 음성군, 경기 포천시 등 전국 29곳에 있는 소규모 수도시설의 우라늄 수치가 환경부 기준치를 최대 20배나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수도시설의 방사능을 측정하기 위한 설비조차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신문은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전국 소규모 수도시설 우라늄 수치 검사 최신 현황’(올해 1분기 기준)을 분석했다. 그 결과 환경부가 정한 우라늄 상한 기준인 30㎍/ℓ를 초과한 지역은 음성군 5곳, 인천시 3곳 등 총 2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성군 감곡면 선골은 우라늄이 604.7㎍/ℓ 검출돼 환경부 기준을 20배나 넘는 등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포천시 화현면 강구동은 235㎍/ℓ가 검출돼 뒤를 이었다. 이어 경북 예천군 보문연 읍실 228.3㎍/ℓ, 대전 유성구 외삼동 안말 206.9㎍/ℓ, 포천시 화현면 영선동 201.1㎍/ℓ,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운 200㎍/ℓ 등이 기준치를 크게 넘었다. 소규모 수도시설은 지하수 등을 이용하려고 지자체에서 설치한 수도시설을 의미한다. 문제는 소규모 수도시설에서 끌어 쓰는 지하수에 주변 토양에 섞인 천연 우라늄이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이다. 우라늄은 중금속 화학적 독성이 크며 장기간 과도하게 노출되면 화학적 독성에 의한 신장 손상으로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기준치 이상 우라늄이 검출된 시설은 폐쇄해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시설 폐쇄에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 검출 사실을 알고도 수돗물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주민이 많아서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수도시설에 경고문구를 붙이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은 우라늄이 기준치를 넘게 검출됐다 해도 수도시설을 폐쇄하는 건 어렵다고 말한다”며 “환경부에서는 주민들이 최소한 이 물을 생활용수로는 쓰더라도 마시지는 않도록 수도꼭지에 경고판을 붙이는 등의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우라늄 수돗물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수돗물에 함유된 방사성물질을 측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비조차 마련하지 않는 지자체도 있었다. 우라늄 수돗물 문제가 처음 불거진 2017년 환경부는 지하수를 원수로 사용하는 전국 약 1만 3000곳의 소규모 수도시설에 대해 방사능 함유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우라늄뿐 아니라 라돈 수치도 2019년 상반기까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라돈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장비인 액체섬광계수기를 올해 상반기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에 따르면 대구시·광주시·경남도·제주도 등 4곳의 지자체 산하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은 액체섬광계수기를 여전히 구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액체섬광계수기가 없는 곳은 민간에 검사를 맡기고 있다”고 해명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오는 25일 취임하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겠다는 한 어부가 있습니다. 이 어부는 박정희 정권 당시 간첩 누명을 뒤집어 쓴 채 50년을 살아오다 최근 재심심판을 통해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면서 지난한 재판을 다시 이어가야 합니다. 어부는 “검찰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은 지켜달라”면서 새로이 검찰조직을 이끌어갈 신임 검찰총장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실질적으로 불법구금·가혹행위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 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을 존중하여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고, 재심 무죄 선고시 일률적인 상소를 지양하고, 유죄 인정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소를 제기하지 않는다.”- 2019년 6월 27일 대검찰청 ‘과거사 사건 관련 후속조치’ 中 위 문장은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선 새로운 증거가 있지 않은 한 상소하지 않겠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달 27일 전국 검찰청을 지휘하는 대검은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과거사 재심사건 업무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과거 검찰이 일부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문무일 현 검찰총장이 직접 사과한 데 따른 변화입니다. 검사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과거사 사건은 고문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진술이 많기 때문에 검찰도 적극적으로 ‘무죄 가능성’도 찾아내겠다는 취지죠. 군사 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던 이들에게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과거사를 반성하겠다고 외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 벌써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간첩 누명은 쓴 6명 가운데 이미 5명이 세상을 떠난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재심 이야기입니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검찰은 즉각 항소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말뿐인 원칙과 약속이었느냐”고 절망했습니다. ■납북된 18살 막내 선원…불법감금·고문으로 ‘간첩’ 누명 1968년 5월, ‘제5공진호’ 막내 선원 남정길씨는 조업 도중 동료 5명과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가 5개월 만에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남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군사 독재정권의 ‘간첩몰이’였습니다. 정보과 형사들은 남씨 일행을 한달 동안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해 ‘납북 피해자’에서 ‘간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당시 남씨의 나이는 고작 18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969년 징역 1~3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검찰 공소장엔 “피고인들이 1968년 5월 24일 12시경 제5호 공진호에 승선해 경기도 연평도 근해 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선장인 김창록이 북괴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인 안골에 들어가야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으니 안골에 들어가서 어로작업을 할 것을 제의하자, 피고인들은 모두 이에 찬동했다”면서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고 명시됐습니다. (남씨 일행은 군사기밀 누설 관련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당시 법원은 ‘북괴 구성원들에게 강요된 행위’라며 이 부분에 국한해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유죄 판결의 핵심 근거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자백이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스스로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영해에 들어간 사실을 인정했고, 법정에서도 유사하게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받아낸 진술은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고, 고문 경찰은 법정까지 나타나 어부들을 지켜보며 심리적으로 압박했습니다. 그 속에서 경찰, 검찰, 법원, 누구도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남씨 일행은 평생을 반공법을 위반한 간첩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50년 만에 무죄 판결 “고문, 가혹행위에 의한 진술은 증거능력 없다” 그렇게 50년을 억울함 속에서 살아온 남씨는 원곡 법률사무소를 만나 이미 세상을 떠난 납북 어부 5명의 유가족과 함께 지난해 7월에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지난 3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고, 4개월 만인 지난 11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는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장기간 불법구금과 광범위하게 이뤄진 가혹행위, 협박, 회유 등으로 인해 피고인들이 경찰 진술뿐만 아니라 검찰 및 법정에서의 진술까지도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추단되거나, 적어도 그 임의성에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란 허위진술을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1968년 경찰 조사나 법정에서 나왔던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죠.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납북됐다가 1968년 10월 인청항으로 귀환한 뒤 11월 군산경찰서로 이동해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 ▲군산경찰서 소속 수사관 등이 무허가 여관에서 자백을 강요하면서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으로 강압적인 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요의 진술서 등을 작성한 사실 ▲검찰 조사와 공판기일(법정)에서도 고문 경찰관이 배석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 등을 기록에 의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50년 만에 이뤄낸 명예회복이었지만, 남씨의 동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가장 모진 고문을 당했던 기관장 박남주씨는 징역을 마치고 2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남씨 본인도 고문 후유증으로 뇌출혈이 생겨 말이 어눌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무죄 결과를 받아든 남씨는 “50년의 세월 동안 누구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는데 이제 우리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지만, 대검이 불과 한 달 전에 ‘과거사 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에 남씨 측은 사실상 재판이 끝났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행보를 남씨 측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것입니다.■검찰의 항소 “재판부가 법리 오인…법정에서 진술은 유효” 1968년 남씨 일행을 재판에 넘겨 유죄를 이끌어내고, 51년이 흘러선 이번 재심 공소유지를 맡은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지난 17일 ‘납북어부 사건’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6일 만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임의성’, 즉 강요에 의한 진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 재판부가 법리적으로 오인을 했다는 취지입니다. 군산지청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대검에서 규정한 ‘과거사 원칙’의 방향과 취지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해도 법정에서 고문받은 건 아니잖아요?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일부는 인정했습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진술했다고 판단되기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재판부가 그 부분에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 입장에선 유사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유죄로 인정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대로 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경찰 단계에선 고문을 받았더라도, 재판 단계에서까지 고문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검찰은 재심심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신문이 확보한 검찰 변론재개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은 ‘피고인 등이 그 공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에서 받은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하기 어렵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거나 그런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을 찾아보긴 어렵다’며 혐의를 자백한 당시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그 근거로 1969년 당시 공판 조서를 제시했습니다. 조서를 살펴보면 남씨 일행은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사실이 있느냐는 판사의 물음에 대부분 ‘맞다’는 취지로 대답한 내용이 나옵니다.재판장 : 연평도에서 고기잡이가 여의치 않아 선장인 김창록의 제의로 군사분계선 넘어 황해도 구월골에 고기잡이를 간 사실이 있는가요남정길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재판장 :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북괴에 납치된다는 사실을 몰랐던가요남정길 : 그런 위험성은 인식하였읍니다만 고기를 못 잡으면 보수를 못 받게 되니까 설마 붙잡히지는 않을 터이지 하는 요행수를 믿고 고기 잡을 목적으로 선장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넘어가서 조업을 한 것입니다검찰은 남씨 일행이 법정에서 경찰의 고문을 폭로하기도 했다며, 이는 강요받아 진술하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재판장 : 군산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는데 어떤가요피고인1 : 그런 말은 전혀 한 일이 없는데 군산경찰서 정보과에서 너무 심한 고문을 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거짓 진술했습니다재판장 : 군산비행장의 비행기 대수가 500대쯤 금년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든가요피고인2 : 이북에서는 그런 말을 묻지 아니하여 말한 사실이 없는데,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배 안에서 그런 말이 있었는데 왜 말한 일이 없다고 하느냐면서 고문을 하기에 할 수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변호인의 반격 “고문 29일 만에 열린 재판, 자유로운 환경이었다고요?” 남씨의 변호를 맡은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의 입장이 충격적”이라고 탄식부터 내뱉었습니다. 고문을 당하고서 겨우 29일이 지나 공판이 열렸는데, 그들이 고문당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문으로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는데,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는데, 법정에서 제대로 된 진술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법정에서 고문을 당하진 않았겠죠. 또 누군가는 혐의를 인정하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 고문 사실을 밝혔겠죠. 그렇다고 이미 짓밟힌 상태에서 한 법정 진술을 꼬투리 잡으며 ‘너네 그때 자백했으니까 지금도 유죄야’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에 억압된 환경이 아니다’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남씨 측은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검사가 일부 부인 취지, 고문 폭로라고 언급한 진술들은 현재 재심심판절차에서의 유무죄 판단대상으로 삼는 공소사실과 관한 군사기밀누설과 관련된 진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고문 관련 진술을 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서류의 진정성립과 진술의 임의성은 다투지도 않는 등 강한 의심이 듭니다.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할 수 없다는 사정은 명백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무죄 판결을 통해 어부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검사가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만으론 임의성에 대한 의문점을 없애는 검사의 적극적인 입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상급법원이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어부라서 무시하는 건가요” 항소와 상고, 즉 상소제도는 형사소송법 체계의 기본입니다.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만큼은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이미 수십 년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제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 변호사는 “일반 사건이라면 이해한다. 검사도 법률가인데, 당연히 자기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으니 법률 판단을 더 받아보고 싶겠다”면서도 “그런데 과거사 사건에 대해 대검이 매뉴얼까지 만든 것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국가도 할 말은 있겠지만, 국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니까 적어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한 ‘우리가 물어뜯진 말자’는 취지 아니었냐”고 덧붙였습니다.남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고 합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들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까지 말했지만, 검찰 항소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에 다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항소 소식을 듣고 “유학생 사건은 자체적으로 조사까지 해주면서, 우리 사건은 고작 어부라서 무시하는 거냐”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동료들을 떠내보내고서 외로움도, 허망함도 큰 탓이었을 겁니다. 오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 취임합니다. 윤 신임 총장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 전쟁범죄 등 반인권적인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를 비롯한 국가권력의 피해자들은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납북선원들 50년만에 재심서 무죄

    1960년대 납북됐다가 풀려나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선원들이 5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5공진호 선원 6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1968년 5월 24일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나포돼 5개월간 억류됐다. 같은 해 10월 말 귀환한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월선한 혐의로 연행됐고, 경찰에서 불법 구금된 채 구타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선원들은 재판에 넘겨져 1969년 징역 1∼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유죄 증거들이 수사단계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로 만들어져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중국 여자 대학원생 살해한 미국인 남성에 종신형, 가족들은 “사형”

    중국 여자 대학원생 살해한 미국인 남성에 종신형, 가족들은 “사형”

    미국에 유학 온 지 두 달도 안 된 중국 여자 대학원생을 납치한 뒤 끔찍하게 살해한 대학원생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남서쪽 피오리아 지방법원의 제임스 샤디드 판사는 18일(이하 현지시간) 지난 2017년 6월 일리노이 대학 교내에서 방문 학생 장잉잉(당시 26)을 납치한 뒤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숨지게 하고 참수한 혐의로 브렌트 크리스텐센(30)에게 종신형을 언도했다. 장잉잉의 주검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판사는 5주 동안 이어진 심리 끝에 배심원단에게 사형 선고를 언도해도 되는지 물었는데 만장일치를 이루는 데 실패하자 크리스텐센의 행동은 “용서 받을 수 없는 폭력”이었다며 석방 없는 조건의 종신형을 언도했다. 이날 법정에는 장잉잉의 부모와 약혼남, 중국 영사관 간부가 참석해 샤디드 판사의 선고를 지켜봤다. 현지 일간 시카고 트리뷴 보도에 따르면 샤디드 판사는 장씨 가문은 앞으로도 영원히 딸의 시신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며 “아무리 피고가 자기중심적 생각을 가졌더라도 감옥에서 어느 순간 종이를 꺼내 그녀의 부모에게 죄송하다고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버지 장롱가오는 딸의 주검을 찾을 때까지 가족은 “평화나 안식을 찾지 못할 것”이라면서 “피고인의 영혼에 털끝만큼의 인간애가 있다면 우리를 고문하는 일을 끝내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장잉잉은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샴페인에서 아파트 임대 계약을 체결하는 길에 실종됐는데 크리스텐센이 사복 경찰인 것처럼 그녀를 자동차에 태우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포착됐다. 크리스텐센은 같은 날 먼저 다른 젊은 여성을 차에 태우려다 퇴짜를 맞았던 것으로 재판 결과 드러났다. 여자친구였던 테라 불리스는 둘이 함께 참석한 실종 여학생 추모 행사 도중 남자친구로부터 살해했다는 고백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녀는 나아가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몸 속에 녹음기를 숨긴 채로 크리스텐센을 만나 진술을 유도했다. 배심원단은 크리스텐센이 장잉잉을 어떻게 성폭행하고 살해하고 참수했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과 그녀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했는지를 다 들었다. 일리노이주는 사형제를 폐지했지만 연방 법원이 그를 기소해 사형제 언도가 가능하기는 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는 해시태그 장 살해범에 종신형 선고가 4억 회 넘게 공유됐는데 많은 이들이 사형을 피한 것에 분노를 표시했다. “위대한 정의가 실현됐다”거나 “이번 선고는 정의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판사는 크리스텐센에게 죽음을 피할 기회를 준 반면 장잉잉은 그런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했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킴스제약 오송 공장 준공식 개최

    킴스제약 오송 공장 준공식 개최

    ㈜킴스제약(대표이사 김승현)은 19일 충북 오송 제2생명과학 산업단지에서 GMP 공장 준공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준공식에는 임직원을 비롯해 이시종 충청북도 도지사, 이자희 수석고문, 황성주 연세대 약학대 교수, 이충기 영남의대 교수, 임채운 서강대 교수, 천종기 씨젠의료재단 이사장, 한국콜마 조홍구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킴스제약 오송 제약공장은 2017년 3월 충청북도 및 청주시와 투자협약 체결과 동시에 설계를 시작한 뒤 지난해 8월 착공해 1년 만에 준공했다. 총 17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총면적 1만2000㎡, 연면적 약 4600㎡ 규모로 내용고형제를 주력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공장에는 최첨단 자동화 설비의 생산시설과 물류창고를 갖추었다. 또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생산 중단 없이 단계적으로 증설이 가능하다. 연내 적격성평가 및 밸리데이션을 진행한 후 GMP허가를 받을 예정이며, 이후 연구·개발중인 개량신제품을 중심으로 주력 제품군인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키마라, 세콕시아, 페북손 등의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김승현 킴스제약 대표이사는 기념사에서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도 항상 충족되지 못한 필수적인 의료 수요가 반드시 존재하는 만큼 고통받는 환자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노력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품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화를 위해 환자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혁신 의약품, 오프라벨 의약품, 개량신약 및 새로운 약물 전달 기술을 활용한 신제품 개발 및 생산으로 국내 뿐 만 아니라 해외 신시장 개척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EU 전역에 뿌려지는 담뱃갑에 자신의 잘려진 다리 사진이 실렸다면

    EU 전역에 뿌려지는 담뱃갑에 자신의 잘려진 다리 사진이 실렸다면

    유럽연합(EU) 전역에 뿌려지는 담뱃갑 경고문에 자신의 잘려진 다리 사진이 실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알바니아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 동부 메츠에 살고 있는 60세 남성은 지난해 룩셈부르크를 찾았던 아들이 들고 온 담뱃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말아 피우는 담배가 가득 든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가족들은 한눈에 아버지의 다리 사진임을 알아채고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잘려진 다리에 남은 흉터 자국, 다른쪽 다리의 화상 자국은 너무도 확연하게 아버지의 다리 사진임을 알려줬다. 경고문은 “흡연은 당신의 동맥을 고장 낼 수 있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이 남성이 다리를 잃은 것은 담배 때문이 아니라 1997년 알바니아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그는 의족을 찰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찾았던 지방 병원에서 찍힌 사진으로 보인다며 자신은 사진을 담뱃갑 경고문에 쓰라고 동의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남성의 변호인은 유럽 이사회(EC)를 접촉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영국 BBC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변호인 앙투안 피탕트는 “유럽 전역에 통용되는 담뱃갑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사진이 실린 것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 믿기지 않는 일”이라며 “의뢰인은 담배 성분을 표시하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장애가 전시된 것을 보고 배신당했으며 존엄을 해쳤다고 느끼고 있다. 아주 즐겁지 않은 일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탕트는 병원에 편지를 보내 이들 사진들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EC에도 접촉해 책임지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EC는 보통 데이터베이스의 사진들을 이용하는데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법원 ‘마약왕’ 구스만 종신형 선고

    美법원 ‘마약왕’ 구스만 종신형 선고

    멕시코의 ‘마약왕’이자 ‘탈옥예술가’ 호아킨 구스만(62)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AP통신은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구스만이 20년 이상 살인과 대혼란으로 이어진 대규모 마약 밀매를 꾸민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코건 판사는 검찰의 추가 구형을 받아들여 종신형에 징역 30년을 추가했으며 마약 밀매 등으로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126억 달러(약 14조 8800억원)의 추징도 명령했다. 구스만은 멕시코 마약 밀매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을 운영하며 ‘엘 차포’(땅딸보)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약왕으로 불려 왔다. 그는 1989~2014년 미국 각지에서 200t이 넘는 마약을 밀매한 혐의 외에 돈세탁, 살인교사, 불법 무기 소지 등 17건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받았다. 코건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구스만의 범행을 “압도적인 악”이라고 평했다. 구스만은 “재판에 정의는 없었다”면서 구속된 30개월 동안 “24시간 심리적, 감정적, 정신적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구스만은 잡혔으나 마약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미인도 진품 주장’ 현대미술관 前학예실장 무죄 확정

    고 천경자 화백 본인이 생전에 위작이라고 했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기고한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모(62)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정씨는 2015년 10월과 11월에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취지의 기고문을 언론사 두 곳에 보내 기사가 보도됐고, 이 기사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기고문의 내용이 일부 허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허위 사실을 적시한다는 인식이나 고의를 갖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망인의 사회적 평가나 역사적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도 “기고문 내용은 작가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갖게 된 피고인의 주관적 견해를 밝힌 것이어서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망인의 명예를 훼손할 의사로 작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천경자 위작 논란 ‘미인도 주장’ 글 허위라면서 무죄 판단 이유는

    천경자 위작 논란 ‘미인도 주장’ 글 허위라면서 무죄 판단 이유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한 글이 일부 허위라 하더라도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5년 천경자 화백이 사망한 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됐다. 천 화백은 1991년 이 그림이 위작이라고 주장했지만,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가 진품이라고 판정 내렸고 이에 반발한 천 화백이 예술원을 사퇴하는 등 진위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천 화백 사망 이후 유족들이 재감정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정모씨는 2015년 10월 시사저널에 기고문을 전달했고, ‘나비와 여인은 왜 위작 미인도가 되었을까’, ‘미인도는 어떻게 김재규의 손에 들어갔나’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에는 “천 화백이 미인도 아트포스터만 보고 감정했는데 이유도 반론도 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이 진품으로 결론내렸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뉴시스에도 기고문을 전달해 ‘미인도, 천경자는 자식을 몰라 볼 수 있느냐 했지만....’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에는 “국과수가 진품 결론을 내린 것이다. 천경자가 인물의 눈동자에 금분을 쓴 것은 80년대 중후반 이후이고, 70년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은 정씨가 기고한 두 글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천 화백은 미인도 원작을 직접 확인하고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며 위작을 주장했고, 국과수는 판별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했으며 과기연도 안료분석결과 분석불가하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금분에 대해서도 “천 화백은 1970년대에도 ‘수녀테레사’(1977년),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년)에서 안료로 금분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천 화백 유족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판단했다. 프랑스 감정팀의 감정과는 정반대 결과였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불기소 처리했지만, 학예실장 정씨만 허위사실을 적시해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박강민 판사는 정씨가 쓴 기고문을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 허위라고 판단했다. 국과수는 유화에 화필로 기재한 필적 감정을 시행한 적이 없어 판별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했고, 과기연도 안료분석결과 시료가 극소량이어서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국과수나 과기연 모두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판단한 적 없으므로 기고문 내용은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씨가 허위사실을 적시하려는 고의는 없었다고 봤다. 피고인이 기고문을 작성할 당시 나무위키 등 인터넷 게시글, 언론 기사 등을 참고해서 그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명예훼손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미술품의 진위 여부가 미술계에서 종종 발생하는만큼, 그런 논란이 작가의 사회적 평가를 해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고문이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망인의 사회적 평가나 역사적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수영)는 “기고문은 ‘미인도’의 소장 경위와 신빙성을 밝혀 미인도를 위작으로 볼 수 없는 근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글”이라며 “망인의 명예를 훼손할 의사로 작성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김상환)도 18일 하급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문현웅의 공정사회] 원님재판이 그리우세요?

    [문현웅의 공정사회] 원님재판이 그리우세요?

    형사사법의 본질은 국가의 고유한 기능인 국가형벌권 행사에 있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도뿐 아니라 실제적 측면에서도 실체 진실의 발견이 본질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형사사법제도가 실체 진실의 발견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형사사법제도로 인한 주권자인 국민의 신체 자유 및 재산권을 침해받을 위험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어 주권자가 위임한 국가형벌권 행사의 정당성은 붕괴되기 때문이다. 즉 형사사법제도가 도달해야 하는 궁극적 목표는 ‘실체 진실의 발견’에 있다. 역사적으로 실체 진실의 발견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다양한 형사사법제도가 존재했는데 현대의 형사사법제도는 기본적으로 판결의 주체와 수사, 기소의 주체를 엄격하게 분리한다. 그리고 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피의자나 피고인에게도 제대로 된 방어권 행사를 도모하기 위해 변호인 제도를 둔다. 현대의 형사사법제도는 판결의 주체와 수사 및 기소의 주체가 구분되지 않았던, 소위 ‘원님재판’으로는 더이상 실체 진실의 발견을 추구할 수 없다는, 무지막지한 국가 공권력이 행사되는 형사사법영역에서 상대적으로 그 힘이 매우 미약한 주권자인 국민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한다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실체 진실의 발견을 추구할 수 없다는 역사적 반성의 결과물이다. 문학 작품이나 사극을 통해 접하는 원님재판의 모습은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원님의 호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저 놈(년)을 매우 쳐라”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명민하고 청렴한 원님을 만나면 억울한 옥살이를 겪지 않을 수 있으나 재수없게도 그렇지 않은 원님을 만나면 억울한 옥살이에 고문까지 당하는 데 이어 목숨까지 잃고 재산까지 거덜날 판이다. 판결의 주체와 수사 및 기소의 주체가 구분되지 않아 서로 견제되지 않는 반인권적인 형사사법제도로는 오판의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어 실체 진실의 발견은 도외시되고 국가 스스로 국가형벌권 행사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원님재판 시절에 현대와 같은 변호인 제도가 있었다면 원님재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니까 관(官)의 수사 및 재판의 모순점을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확보해 제출할 수 있으며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을 수 있도록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수 있는 변호인 제도가 존재했었다면 말이다. 오로지 상상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원님재판은 오판의 대명사라는 불명예를 조금은 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변호인 제도는 형사사법에서 실제 진실의 발견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이고, 변호인의 변호 업무는 실체 진실의 발견을 도모하기 위한 공익적 성격을 띠는 것이며,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수행하는 실체 진실의 발견을 위한 역할에 버금가는 역할을 똑같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에서 발생한 전 남편 살인 사건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모두 사임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연일 쏟아지는 비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살인 혐의를 받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정말로 비난받아 마땅한 비도덕적인 행태인가? 그 피고인이 살인자라고 확정이라도 됐다는 말인가? 살인죄로 기소만 됐을 뿐인데도 피고인은 재판 시작 전부터 이미 살인자가 돼 있다.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는 재판은 보여 주기 위한 단순한 쇼에 불과한 것인가. 죄를 지었다고 의심받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실체 진실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태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호인 없는 형사재판을 상상해 보라. 국가가 알아서 나의 억울함을 다 해소해 주겠지 하다가 “네 죄를 네가 알렷다”와 “저 놈(년)을 매우 쳐라”라는 원님재판을 받게 된다. 억울한 옥살이는 늘어나고 진범은 찾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은 하늘을 찌른다. 진정 원님재판이 그리우세요? 그렇다면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아낌없이 비난을 쏟아부어 주세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