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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우뉴스] “바닷가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으면 불법”…英 동물복지법 개정안 나와

    [나우뉴스] “바닷가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으면 불법”…英 동물복지법 개정안 나와

    영국 당국이 내놓은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영국인들의 주방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인디펜던트, 스카이뉴스 등 현지 언론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영국 당국은 바닷가재(랍스터)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넣어 삶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동물복지법 개정안의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영국은 당초 개와 고양이 등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복지법을 시행해 왔는데, 조개류와 갑각류도 외상을 겪고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공개되면서 법 개정을 준비해 왔다. 지난 5월 의회에 제출된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영국에서는 살아있는 바닷가재나 게 등을 뜨거운 물에 넣어 삶거나 산 채로 배송하는 것이 금지된다. 어부나 요리사 등은 바닷가재를 요리하기 위해 끓는 물에 넣기 전 반드시 기절시키거나 뜨겁지 않은 물에 넣어야 한다. 여기에는 문어와 오징어 등의 동물도 포함된다. 해당 법안을 지지하는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바닷가재와 같은 생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이 생물들은 식품업계에서 매우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바닷가재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숨이 끊길 때까지 15분 걸린다”며 “산 채로 삶는 것은 불필요한 고문”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익숙한 개와 고양이 등 척추동물이 아닌 갑각류와 조개류도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갑각류가 내부에서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반사신경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한다. 일부는 통증 신호가 뇌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반사 반응과 통증 유발 반응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 갑각류가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물이므로 살아있는 채로 끓는 물에 삶는 행위를 통제하는 국가는 영국만이 아니다. 이미 2018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등지의 국가에서는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바닷가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으면 불법”…英 동물복지법 개정안 나와

    “바닷가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으면 불법”…英 동물복지법 개정안 나와

    영국 당국이 내놓은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영국인들의 주방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인디펜던트, 스카이뉴스 등 현지 언론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영국 당국은 바닷가재(랍스터)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넣어 삶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동물복지법 개정안의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영국은 당초 개와 고양이 등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복지법을 시행해 왔는데, 조개류와 갑각류도 외상을 겪고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공개되면서 법 개정을 준비해 왔다. 지난 5월 의회에 제출된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영국에서는 살아있는 바닷가재나 게 등을 뜨거운 물에 넣어 삶거나 산 채로 배송하는 것이 금지된다. 어부나 요리사 등은 바닷가재를 요리하기 위해 끓는 물에 넣기 전 반드시 기절시키거나 뜨겁지 않은 물에 넣어야 한다. 여기에는 문어와 오징어 등의 동물도 포함된다. 해당 법안을 지지하는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바닷가재와 같은 생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이 생물들은 식품업계에서 매우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바닷가재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숨이 끊길 때까지 15분 걸린다”며 “산 채로 삶는 것은 불필요한 고문”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익숙한 개와 고양이 등 척추동물이 아닌 갑각류와 조개류도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갑각류가 내부에서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반사신경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한다. 일부는 통증 신호가 뇌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반사 반응과 통증 유발 반응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 갑각류가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물이므로 살아있는 채로 끓는 물에 삶는 행위를 통제하는 국가는 영국만이 아니다. 이미 2018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뉴질랜드, 호주 등지의 국가에서는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왔다.
  • 부패·법정모독 혐의에 버티던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 제발로 수감

    부패·법정모독 혐의에 버티던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 제발로 수감

    제이콥 주마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경찰에 자진 출석해 구금됐으며 15개월 형기를 시작했다고 AP통신 등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주마 전 대통령은 2009~2018년 대통령 재임 기간 저지른 부정으로 부패, 공갈, 사기, 돈세탁 등 16개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반부패 조사위원회’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혐의를 부인하고 출석을 거부해왔다. 이에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부패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할 것을 명령했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고 법정 모독죄로 징역 15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 때부터 헌재와 주마 전 대통령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헌재는 이달 4일까지로 경찰 출석 시한을 제시했고, 주마 전 대통령은 법원에 체포 중지 긴급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날 찾으러 올 수 있다”고 올렸고, “희생양 삼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법원에 체포 연기 요구 탄원서를 제출하며 오는 9일까지 체포 시한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거부했다. 헌재는 사흘간의 시차를 두고 경찰에 체포 명령을 내렸고, 이 기간 경찰은 주마 전 대통령을 체포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해왔다. 결국 주마 전 대통령은 이날 자정을 몇 분 앞두고 콰줄루나탈주 은칸들라에 있는 사저를 떠나 호송 차량을 타고 경찰에 출석했다. 자택 주위에는 그의 지지자들이 체포를 막기 위해 ‘인간 장벽’을 치고 있었다. 주마 재단(Zuma Foundation)은 트위터에 “주마 전 대통령이 감금 명령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콰줄루나탈주에 있는 교정시설에 구금되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공개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앞서 부통령 재임(1999년~2005년) 마지막 해 자신의 재정 고문이 뇌물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타보 음베키 당시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2007년에는 음베키를 물리치고 소속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총재로 선출됐고 이를 기반으로 2009년 총선 승리 이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후 의회의 불신임 동의에 직면한 2018년 2월 사임했다. 그는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 남아공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 김호진 서울시의원, ‘서울시 임신 중 당뇨병 조례안 제정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서울특별시의회 김호진 의원(더불어민주당, 서대문2)이 주관하는 ‘서울시 임신 중 당뇨병 조례안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오는 8일 오후 6시 30분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무청중 온라인 방식으로 개최된다. 이번 토론회는 임신 중 당뇨병 환자를 위한 정책연구 경과를 발표하고 앞으로의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각계 전문가와 서울시 관계자가 참여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임신 중 당뇨병은 태아가 분비하는 호르몬에 의해 임산부의 췌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것으로, 출산 과정에서 임산부와 태아에게 후유증을 발생시킨다. 또한 임신 중 당뇨병을 겪은 여성은 이후 제2형 당뇨병이 발병하기 쉽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임산부 27만 명 중 임신 중 당뇨병 환자는 4만 8623명으로 임산부 5명 중 1명이 당뇨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인슐린 투여와 식사조절 말고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고, 하루에도 수십 번 혈당검사를 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와 교육을 필요로 하나, 제도적 장치 마련이 부족한 상황이다. 김 의원은 “임신 중 당뇨병 환자의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면서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제시되는 여러 과제를 서울시 및 관계 기관들과 논의해 실질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오한진 대한비만건강학회장의 주재로, 심강희 대한당뇨병교육간호사회 고문이 발제를 맡고, 대한당뇨병간호사회 소속 이정림 고문, 이정화 부회장, 박혜은 연구이사, 심영은 한국소아당뇨인협회 이사, 장숙이 송파문화회관 관장, 구민정 대한당뇨병교육간호사회장, 서울시 관계자가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 [길섶에서] 서울극장/손성진 논설고문

    19년 전 서울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을 때 추억의 일부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갓 스물에 상경해서 지리도 모르던 내가 시내에 나오면 약속 장소로 잡던 곳, 적은 용돈을 쪼개 비싼 책을 선뜻 집어들곤 했던 곳이 종로서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꿋꿋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럽의 카페처럼 오랫동안 살았거나 드나들던 곳들이 건재하다면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고향을 몇 개나 가진 것처럼 든든할 것이다. 아쉽게도 개발 바람은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과거에 살았던 집들은 흔적이 없고 철없던 시절 다녔던 허름한 술집이나 음악 다실도 이젠 찾을 수 없다. 사라지는 것들은 저만 사라지지 않고 잇닿은 기억마저 가져가 버리니 마음이 아릿아릿하다. 매개체들이 없는데 나만의 힘으로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을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다. 스카라, 명보, 단성사, 국도…. 청춘의 발자국이 찍혔던 영화관들도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동안 잘 버텨왔던 서울극장이 42년 만에 결국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극장’이란 간판도 몇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내 삶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기억의 순례’라도 해야겠다.
  • 문헌에만 있던 ‘흠경각 옥루’ 581년 만에 되살려낸 ‘복원의 달인’

    문헌에만 있던 ‘흠경각 옥루’ 581년 만에 되살려낸 ‘복원의 달인’

    홍대용 자명종·청동반가사유상 등 살려中日 잃어버린 기술 ‘고대 금도금법’ 성공멸실된 문화재 복원하려 고문헌과 ‘씨름’中 북송시대 고서·터키에서 실마리 찾아장영실은 동서양의 기술 융합해 재창조 1400~1450년 전세계가 일군 최첨단 기술日 과학사에 조선 29개·中 5개·日 0개 기록세종 때 확보한 첨단기술 다른 국가 압도“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정확히 가르쳐야”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가 자동 물시계를 움직이면 366개의 톱니를 가진 동력기륜이 12신기륜, 시보기륜, 4신 기륜과 천륜을 회전시킨다. 4신 기륜에 연결된 4신 옥녀는 1시간마다 방울종을 흔들고 동시에 4신 동물이 시계 방향으로 90도씩 회전한다. 산 중턱에 선 3명의 무사는 각각 종, 북, 징을 친다. 산 아래 평지에는 12지신과 12옥녀가 짝을 이뤄 누웠다가 2시간마다 일어선다. 천륜의 톱니와 연결된 혼천의 태양은 시계 방향으로 하루 한 바퀴 회전한다.1438년 세종과 장영실이 백성의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설계한 ‘흠경각 옥루’는 당대 국내외 최신 과학기술을 종합해 만들어 낸 첨단 자동 물시계였다. 문헌에만 남아 있던 흠경각 옥루를 581년 만에 복원한 이가 6일 인사혁신처의 협조로 서울신문이 만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장 윤용현 박사다. 윤 과장은 고천문학자, 고문헌학자, 고건축학자 등과 협력해 2019년 흠경각 옥루 복원에 성공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이 만든 자명종, 삼국시대 청동반가사유상, 청동기시대 잔무늬거울, 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가 그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다. 윤 과장은 “일본 과학기술사 사전에 1400~1 450년 반세기 동안 전 세계가 일군 최첨단 기술이 기록돼 있는데, 조선이 29개, 중국이 5개, 일본이 0개였고 동아시아 이외 기타 지역 하이테크 기술 합계가 28개였다. 조선 세종 때 확보한 최첨단 기술은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뛰어난 과학 문화재를 복원하지 않으면 선조들이 이룩한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무시하게 된다”며 “그간 학교에서 우리 선조들의 과학기술을 정확히 가르치지 못했던 것도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불행히도 흠경각 옥루를 비롯한 당시 과학기술 문화재 일부는 멸실돼 고문헌에만 남았다. 윤 과장은 흠경각 옥루를 복원하려고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흠경각기’, ‘동문선’, ‘여지승람’, ‘어제궁궐지’ 등 고문헌을 파고들었다. 그는 “흠경각기에 ‘수차를 사용했고, 외부에는 12옥녀, 12지신이 있었다’ 같은 내용이 있어 외부 복원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기륜이 몇 단위이고 수차는 얼마나 크고 바퀴가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마리는 의외로 중국 북송시대 소송이 지은 ‘신의상법요’에서 찾았다. 조선 천문학자 이순지가 쓴 ‘제가역상집’에서 중국 송나라에 ‘수운의상대’라는 자동 물시계가 있었다는 기록을 찾았고, 신의상법요에서 수운의상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확인했다. 윤 과장은 “이순지와 장영실이 동시대 사람이니 장영실도 수운의상대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고, 관련 문헌도 꿰뚫고 있었을 것이란 가정하에 수운의상대 관련 기록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다만 수운의상대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흠경각 옥루는 쇠구슬을 이용해 소리로 시간을 알려 줬다는데, 관련 기록이 어디에도 없었다. ‘쇠구슬을 이용한 시계는 어디서 처음 만들었을까?’ 윤 과장은 해외로 눈을 돌려 터키를 찾았다. “과학사학자들이 셀주크튀르크 시대 앨제재리라는 과학자가 코끼리 자동 물시계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찾았어요. 터키로 건너가 직접 관련 문헌을 확인하고 복원한 실물을 보고서 장영실이 흠경각 옥루에 적용한 쇠구슬 원리의 원형을 찾은 거죠.” 그럼 장영실은 먼 이국땅 터키의 기술을 어떻게 습득했던 걸까. 윤 과장은 “앨제재리가 활동한 시기에 셀주크튀르크가 원나라의 침략으로 150년 정도 나라를 잃었고, 그때 이런 기술이 원나라로 들어가 장영실에게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장영실은 동서양의 기술을 융합해 재창조하는 창의력이 뛰어난 과학자였다”고 말했다. 고대 금도금법을 복원하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다. 지금은 금속을 질산에 담가 표면을 부식시키고 아말감을 칠해 도금한다. 하지만 질산이 없었던 과거에는 도금을 어떻게 했을까. 여러 문헌에서 찾은 비법은 바로 매실이었다. 윤 과장은 매실을 3~4개월 숙성하고 착즙·농축해 1.9 수준의 강산성 매실산을 만들었다. 그다음 금속을 20분가량 매실산에 담갔다가 문헌에 나온 대로 숯으로 세척한 뒤 가열해 아말감을 발랐는데 생각처럼 도금이 되지 않았다. “일단 다음 일정이 있어 연구팀은 철수하기로 하고 함께 도금 작업을 하던 장인에게 마저 시험을 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이분이 아말감을 바르고서 잊고 있다가 하루 정도 지나서야 ‘아차’ 한 거예요. 부랴부랴 숯에 올려 가열했더니 도금이 기가 막히게 됐어요. 실수에서 방법을 찾은 거죠. ‘아, 아말감도 숙성을 해야 하는구나.’ 그때 알았죠.” 고대 금도금법은 중국도, 일본도 잃어버린 기술이었다. 그는 “남은 문헌에만 의존하면 그 이상 진전할 수 없다. 동시대 기술이라면 동북아시아든 서양이든 문헌을 조사해야 좀더 실물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 또한 성분 분석을 하고 당시 미국인이 남긴 기록을 보고서 합금 비율을 알아내 복원했다. 윤 과장은 “청동으로 동전을 만들다 조선 숙종 때 구리에 아연을 넣은 황동으로 바꿨고, 이 신기술을 적용한 화폐가 상평통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 시대에는 주조기술이 굉장히 뛰어나 연산군 때 아연과 납에서 은을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는 중국 명나라보다도 200년 앞선 것이었다”면서 “은 추출 기술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부강하게 했고, 부강해진 일본이 조총을 사서 결국 우리를 침략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윤 과장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청동유물 주조와 복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일한 건 1994년부터다. 공개경쟁채용 시험을 통해 학예연구사로 입직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이 자리한 대전 유성구 구성동의 지명을 따 자신의 호도 ‘구성’으로 지을 만큼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는 “전문 지식만 있다고 과학기술 문화재를 복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끈기와 노력을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과장의 정년은 2024년까지로 3년 남짓 남았다. 그는 “정년 전까지 철 불상 주조기술을 복원해 조상들의 첨단기술을 국민께 알려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에 태영호 “대북전단 보내라”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에 태영호 “대북전단 보내라”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군 점령군’ 발언에 대해 탈북민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반격에 나섰다. 이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나”라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나 예우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충격적 역사관”, 황교안 전 총리는 “역대급 막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셀프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 측은 캠프 대변인단을 통해 미군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표기했다며 ‘미 점령군’은 맞다고 했지만, 윤 전 총장에 대해서만은 이 지사가 직접 반박했다. 이 지사는 국정을 열심히 공부중이란 윤 전 총장에게 국정은 사법고시 공부와 달리 계속 공부해도 부족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해방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은 모두 점령군이 맞다면서, 6·25이후 주한 미군은 주둔군이라고 밝혔다.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한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역사 논쟁에 대해 태 의원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발언으로 남남갈등이 첨예하다”면서 “포고문에 적힌 문구 그대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볼 때 과연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등식이 성립할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소련군이나 미군은 다 같이 해방군이자 점령군이었지만, 미군보다는 소련군이 더 점령군에 가까웠다고 태 의원은 강조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 등 소련군 내 조선인들의 군복을 벗기고 사민복을 입혀 당과 군대 국가건설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소련군이 많은 나라들에 진주하였지만 북한처럼 소련군 내 장교들과 사병들을 제대시켜 정권의 핵심 인사로 임명하는 식으로 정권을 세운 나라는 없었다고 태 의원은 짚었다. 태 의원은 “남한에 사민 정권이 수립되도록 도와준 미군이 해방군인가? 아니면 북한에 소련군 출신들의 군사정권을 세운 소련군이 해방군인가?”라고 물으면서 대한민국 건국 초기 정부 내각에 미군 출신 인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특히 광복회장에게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차라리 대북전단이라도 북한에 보내 북한을 해방시킨 것은 김일성 부대가 아니라 소련군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국익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 “‘피해호소인’ 표현 상처였다면 사과” 조희연, 뒤늦은 사과

    “‘피해호소인’ 표현 상처였다면 사과” 조희연, 뒤늦은 사과

    “추도사 쓸 때는 ‘피해자’와 혼용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한 데 대해 뒤늦게 사과했다. 조 교육감은 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피해자’와 ‘피해호소인’을 혼용했던 부분에 대해 상처가 있었다면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앞서 조 교육감은 지난해 한 신문에 추모 기고문을 통해 박 전 시장의 업적과 그와의 인연에 관해 적으며 “부디 이 절절한 애도가 피해 호소인에 대한 비난이자 2차 가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 학교 내 성범죄 발생 시 “교육감이 가해자 편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이에 대해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조 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도사를 쓴 것은 피해자의 기자회견 전”이라며 “기자회견 전에는 ‘피해 호소인’과 ‘피해자’라는 표현이 혼용됐다. 추도사에 ‘피해자’라는 말도 썼다”고 해명했다. 이어 “기자회견 전에 두 표현이 혼용되던 시점이라 다른 사례와 동일시하기보다는 조금 세밀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아 추도사를 수정했고 이 자리에서도 필요하다면 피해자에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며 “새 시장 취임 이후 새로운 자리로 가서 일하는 걸로 아는데, 정상적인 활동 하시길 바란다”고 사과했다. 2018년 재선에 성공한 조 교육감의 임기는 내년 6월에 끝난다. 아직 3선 도전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교육계에서는 그가 내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사상·진영 경계 넘어… 시민이 완성한 ‘통일 구상안’ 공개합니다

    사상·진영 경계 넘어… 시민이 완성한 ‘통일 구상안’ 공개합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5일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해 마련한 ‘통일국민협약안’을 전달받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통일 정책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인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전국시민회의)와 시민참여단은 이날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이 장관에게 통일국민협약안과 권고문을 전달했다. 통일국민협약안은 전국시민회의와 102명의 시민참여단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4차례의 권역별 대화와 8차례의 종합토론을 거쳐 완성한 시민들의 통일 구상안으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통일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이를 위해 2018년 사회적 대화기구인 전국시민회의가 구성됐으며, 2019년 보수·중도·진보 시민사회단체와 7대 종교단체를 포함한 3400명의 시민이 참여해 30차례의 대화가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통일국민협약안 마련이 추진됐으며, 권역별 예비대화와 종합토론회 등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도출했다. 협약안 전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일관성 없이 흔들렸다”고 지적하며, “통일국민협약은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정책 결정과 집행이 민주적으로 일관되게 이루어지도록 정파와 이념을 넘어선 공통의 합의 기반을 도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명시했다. 본문에는 ▲국민 참여와 합의 형성 ▲대북 통일정책 일관성 확보 ▲한반도 군사갈등 해소와 비핵화 ▲주변국 관계 ▲인도지원 협력과 개발협력 ▲사회문화 교류협력 ▲경제협력과 남북균형발전 ▲평화통일교육에 관한 세부 과제 등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과 방법을 제시했다. 통일부는 협약안이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장관은 “그동안 남북 관계 정책이 정부와 전문가 주도로 수립돼 진정한 평화의 주인이자 통일의 기반인 국민의 목소리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협약을 대통령께도 전달 드리겠다. 국회와도 긴밀한 협조를 통해 통일국민협약에 대한 여야의 지지와 뒷받침을 끌어내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결혼 75년 지미 카터의 평범한 진리 “화난 채 잠들지 않는다”

    결혼 75년 지미 카터의 평범한 진리 “화난 채 잠들지 않는다”

    결혼 75주년 인터뷰에서 백년해로 비결 전해딱 맞는 배우자 만나고 싸울 땐 조속히 화해를관심사를 공유하되 서로에게 충분한 공간 주길“매일 부부간에 화해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난 채 잠을 자지 않습니다.” 오는 7일(현지시간) 결혼 75주년을 맞는 지미 카터(96) 전 미국 대통령은 로잘린 여사(93)와 백년해로하는 비결에 대해 AP통신에 4일 이렇게 말했다. 카터는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면, 딱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나의 비결”이라며 자신들은 “완벽한 동반자 관계”라고 했다. 카터는 과거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도 “TV프로그램을 뭘 볼거냐 같은 사소한 다툼도 있었다”며 “나는 그녀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었다. 나도, 그녀도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런 다음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카터는 62세 때 세 살 적은 부인 로잘린 여사와 스키를 배웠고, 미국 곳곳은 물론 몽고까지 플라이 낚시를 갔으며, 조류관찰 여행을 다니며 약 1300종의 새들을 만났다. 정리하자면 서로 맞는 배우자를 만나고, 싸울 땐 조속히 화해하며,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 카터 내외의 부부생활 노하우인 셈이다.둘은 전형적인 남부 마을인 조지아주 플레인에서 자랐으며, 카터가 해군으로 복무하던 21살, 로잘린이 18살 때 결혼했다. 로잘린은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 인터뷰에서 카터의 여동생인 루스와 친구였는데 “루스 집에 갔다가 카터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고 했고, 카터는 “첫 데이트 다음 날 어머니에게 로잘린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가부장적인 시대배경 탓인지 결혼 초기에 카터는 로잘린과 상의없이 거주지나 직업을 바꾸곤 했다. 하지만 카터는 이후 조지아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역임하면서 로잘린의 정치 및 정책 조언 능력을 보면서 양성평등 옹호자로 바뀌었고, 로잘린은 처음으로 백악관에 영부인 사무실을 만들고 별도의 직원을 거느리면서 당시 여권 신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카터는 “백악관에 있을 때 로잘린은 내 많은 정책을 반대했지만, 결코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며 ‘가장 신뢰하는 고문’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1961년 백악관에서 플레인으로 돌아왔을 때 카터 부부는 50대 중반이었고, 이들은 1982년 카터센터를 세워 전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이 공로로 카터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카터 내외는 현재 대통령 부부 중 가장 오래 결혼생활을 했다. 2년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고 바버라 여사의 73년 102일을 넘어섰다. 카터 부부는 향후 고향 플레인스에서 지인들과 조촐한 결혼기념식을 열 계획이다.
  • 동급생 돈 빼앗고 모텔 감금 뒤 물고문까지…무서운 10대

    동급생 돈 빼앗고 모텔 감금 뒤 물고문까지…무서운 10대

    도박자금 마련 위해 800만원 빼앗아경찰, 중감금상해 등 혐의로 구속 동급생에게 수백만원을 빼앗고 돈을 더 내놓으라며 물고문까지 한 10대가 구속됐다. 경기 평택경찰서는 중감금상해 등 혐의로 A(17)군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A군은 지난달 18일부터 20일까지 B(16)군을 평택시의 한 모텔에 감금한 뒤 돈을 마련해오지 않는다며 물고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A군은 지난 5월부터 지난달까지 온라인 불법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B군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800만원 상당을 빼앗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B군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로 유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B군 측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폭행과 공갈이 계속됐고, 최근 들어 A군이 온라인 불법 도박자금을 이유로 큰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A군은 “장난으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가 중하다고 판단해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오디션 가수 고복수·황금심 부부/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최초의 오디션 가수 고복수·황금심 부부/손성진 논설고문

    트로트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를 1926년 윤심덕이 불러 히트시킨 ‘사의 찬미’라고 하지만 그보다 앞선 1923년 무렵 많은 국민들이 따라 불렀던 ‘이 풍진 세월’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노래로 원래 제목은 ‘희망가’다. 사의 찬미가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에서 곡을 따왔듯이 이 풍진 세월도 원 작곡자는 영국인이다. 토르트라고 부르는 전통 가요는 1930년대에 형식이 갖추어져 유행하기 시작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트로트’라는 이름은 서양 춤곡의 하나인 폭스트롯(foxtrot)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폭스트롯이 일본 토속 음악에 접목돼 엔카가 됐고 한국에 전해졌다고 하는데 사실 엔카와 우리 민요의 감정이 녹아 있는 트로트는 정서와 박자 등 여러 면에서 다르다. 오히려 일본의 유명한 엔카 가수 다카기 이치로는 엔카의 뿌리가 한국의 트로트라고 말한다. 엔카의 원점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천재 작곡가 고가 마사오는 부모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점을 근거로 들며 그가 작곡한 멜로디의 기원이 한국 가요라고 한다. 1932년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일명 황성 옛터)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켜 한국 대중가요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후 고복수의 ‘타향’(일명 타향살이·1934),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 등이 나오면서 우리 전통 가요의 형식이 대체로 정립됐다고 한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등 전통 가요의 명곡들이 줄줄이 나와 가요의 저변을 넓혔다. 당시 가수는 기생이나 배우를 겸업하기도 했고 요즘의 기획사처럼 레코드 회사에서 전속 가수를 뽑아 키우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금의 오디션과 같은 가수 선발대회나 콩쿠르도 자주 열렸다. 1934년 3월 열린 ‘전조선 가수대회’에서는 심사위원 채점으로 1등에 정일경, 2등에 조금자와 고복수가 선발됐다. 그중에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은 가수는 고복수였다. 한 극성 팬은 손수건에 ‘사랑 애(愛)’ 자를 혈서로 써서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고복수는 이난영과 쌍벽을 이루던 10년 연하의 가수 황금심과 결혼했는데 황금심도 1936년 15세의 나이에 오케레코드 전속 가수 선발 모집에서 1등으로 입상해 데뷔했다. 유명한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은 이듬해 녹음했다.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자녀들도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맏아들은 트로트 가수 고영준, 둘째 아들은 가톨릭 복음가수 고영민, 둘째 며느리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가수 손현희, 셋째 아들은 작곡가 고병준이다.
  •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형제원행...자식 찾아 8년 헤맨 아버지는 빚더미에[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엄마 만나려 기차탔다 형제원행...자식 찾아 8년 헤맨 아버지는 빚더미에[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엄마 만나려 기차 탄 남매...잘못내린 부산역에서 형제복지원 끌려가 1983년 어느 가을날, 5살짜리 꼬마 김승준(43·가명)씨는 엄마를 만나러 누나의 손을 잡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서 깊은 잠에 든 남매가 눈을 떴을 때 도착한 곳은 부산역이었다. 목적지인 대전역을 한참 지나쳐버린 것이다. 남매는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손을 내민 이는 경찰의 탈을 쓴 ‘인신매매범’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매는 그날 형제복지원에 끌려갔고 4년의 세월동안 감금됐다. 형제복지원에서는 5살짜리 자그마한 몸뚱이로는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폭행이 계속됐다. 김씨는 각목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홍역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어떤 날은 구타를 넘어 물고문이 이어졌다. 엄청난 고통에도 공포감에 압도돼 작은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김씨의 한 여자 동료는 개금분교(형제복지원 내 운영된 학교시설)의 담당자에게 수시로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됐지만 김씨 남매는 가족을 찾지 못한 채 한 고아원으로 옮겨져 또다시 4년의 세월을 보냈다. 김씨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아 전국을 헤맨 끝에 1991년 고아원에서 남매를 발견해 품에 안았다. 그러나 가족 상봉의 기쁨도 잠시, 그들은 형제복지원이 남긴 고통과 상처, 가난과 마주해야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8년의 세월을 전국을 떠돌며 빚더미에 앉은 상태였다. 김씨는 결국 형제복지원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배고픔에 남의 것을 훔쳤고, 사람을 때렸다.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한 것이다. 김씨는 오늘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꾼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가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도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김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김승준 진술내용: 저는 김승준이라고 합니다. 1983년 10월 엄마를 만나러 대전에 가기 위해 작은누나와 함께 탔던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가 눈떠보니 부산역이었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저희 남매의 희망은 정의로운 경찰관이 아닌 경찰의 탈을 쓴 인신매매범들의 악행 때문에 기약없는 종신형을 받은 듯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어 우리 남매의 꿈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가족과 고향, 그리고 부산역 이전까지의 기억은 애초에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잊혀졌습니다. 5살이란 어린 저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버린 형제복지원과 남광복지원에서의 참혹한 고통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상처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고 왜 여기에 있어야 하며 왜 맞아야 하는지, 왜 때리는지, 생각할 수도 반문할 수조차 없이 계속 반복된 폭력과 기합. 그저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또 폭행을 당하지 않기위해 다섯살 밖에 안된 제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바로 눈치였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임에도 도망갈 수 없어 오롯이 제가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온몸 구타에 물고문까지...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공포감 엄습원산폭격(땅에 머리 박기)에 상상할 수 없는 기합, 각목 등으로 엉덩이와 발바닥 할 것 없이 온몸에 구타는 기본이었고 물고문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아프다고 울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권을 무시당한 채 짐승취급을 당했습니다. 굶주림에 허덕였고 배움의 기회 또한 박탈된 채 형제복지원에서 4년가량을 감금당해 온갖 폭력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번은 도망가지 못하게 담 위에서 감시하는 경비가 시끄럽다며 저에게 집어던진 각목에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몇 달간 깁스만 한 채 누워지내야 했고, 홍역에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개금분교(형제복지원 내 운영된 학교시설)를 다녔지만 저와 같은 반 여자아이 한 명은 자주 학교 담당자실에 불려갔습니다. 한쪽에 가짜 눈(의안)을 한 담당자에게 온갖 추행에 시달림을 당하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고 반복해서 이뤄지는 행위로 일상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사람들이 맞아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공포는 더욱 커졌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게 되며 지난 4년간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누나와 함께 부산 남광복지원이란 고아원으로 옮겨간 저희 남매는 조금은 달라진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갇혀 있는 게 싫었고, 힘들고 벗어나고 싶어서 수차례에 걸쳐 고아원을 탈출했지만 다시 잡혀오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고아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조기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환경과 상황, 그리고 형제복지원에서 당한 고통으로 계속해서 같은 또래에 비해 뒤처졌고 모든 것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8년만에 가족 품에 돌아갔지만...자식찾아 전국 떠돈 아버지는 빚더미에고아원에서 4년가량을 더 지내다가 아버지의 노력으로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8년이란 시간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찾아 헤매느라 직업과 전 재산 등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저희 남매가 형제복지원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차례 찾아왔다가 폭행을 당하고 쫓겨나기도 하셨습니다. 저희 남매를 찾느라 8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고 나니 빚과 가난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가난한 집으로 돌아온 저희 남매는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는 더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저희 남매를 팔아넘긴 악질 경찰들과 형제복지원, 그리고 남광복지원에서 당한 고통과 상처로 저희 남매의 인생은 꼬여버렸습니다.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실패자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적응을 못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배운 적도, 배울 수도 없었던 학업 또한 따라갈 수 없어서 늘 놀림의 대상이었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가족의 그늘에서 보호받으며 학교와 사회에 잘 적응해야 함에도 전혀 그럴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이었습니다. 5살부터 12살까지의 8년 동안 범죄에 노출돼 원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트라우마 극복하지 못한 채 범죄자로 전락....시간 되돌리고 싶어 중학교도 몇 번 다니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으며 가족과의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저는 집을 도망쳐 나와 사회를 떠돌며 폭력성을 가진 채 나쁜 범죄를 저지르게 됐습니다. 떠돌이들끼리 어울리며 배가 고파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고 때리는 등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부끄럽지만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삶을 살게 됐습니다. 형제복지원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아직도 품고 있습니다. 폭력성을 가진 실패자로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기에 다시 제대로 인간답게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어린 시절 겪은 큰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저는 살인과 방화 그리고 마약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를 저지르는 전과자의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 8년에서 비롯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지금까지의 제 32년의 삶을 누가 책임질 것이며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 국가에 의해 자행된 인권 침해와 유린, 탄압에 대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바로잡고 국가의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해 형제복지원에 불법으로 잡혀갔거나 팔려갔던 모든 피해자분들과 그의 가족분들께 사과와 보상을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위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2021년 4월 30일 진 술 인 : 김승준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패드 같은 조선의 ‘유연전’ 상속 둘러싼 욕망 엿보다

    패드 같은 조선의 ‘유연전’ 상속 둘러싼 욕망 엿보다

    조선시대 문신 이항복이 낸 책 중에 ‘유연전’이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실재했다는 점에서 수사보고서나 다름없는 책이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이 ‘유연전’을 바탕으로 조선의 상속 제도를 돌아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당시 상속 제도와 정치적 역학관계 등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여기에 유럽의 장자 단독 상속제 등 다양한 사례를 거울삼아 당대를 톺아보고 있다. ‘유연전’은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패륜 드라마에 가깝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대구의 한 고을 현감을 지낸 유예원은 3남2녀의 자식을 뒀다. 한데 맏아들 부부가 후사 없이 세상을 뜨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맏아들 역할을 떠맡게 된 둘째 유유는 여렸다. 대구 무반의 딸 백씨와 결혼했지만 자식이 생기질 않았다. 이 탓에 아버지와 불화하고 급기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후 8년 만에 유유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황해도 해주에서 채응규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이는 삼남 유연의 자형이자 왕족인 이지였다. 해주로 달려간 유연은 채응규와 함께 대구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채응규는 가짜였다. 이지 등과 짜고 처가의 재산을 가로채려던 일당 중 하나였다. 한데 유연은 형이 가짜라는 걸 알아봤지만 희한하게도 유유의 부인 백씨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보방(보석) 조치로 집에 머물던 채응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 일로 유연은 유유(채응규) 살해범으로 고발당해 모진 고문을 받고 결국 능지처참으로 죄 없이 죽었다. 유연을 고발한 이는 백씨였다. 재산을 탐해 형을 살해했다는 혐의였다.그로부터 16년 뒤, 경북 영주에서 훈장 노릇을 하던 진짜 유유가 나타나자 유연의 아내 이씨의 발 빠른 대처로 유연은 신원됐다. 이지는 신문받다 목숨을 잃었고 채응규는 압송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유 역시 아버지 상을 등한시한 죄로 옥살이를 한 뒤 2년 만에 세상을 떴다. 악녀 정황이 다분했던 백씨는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해 처벌받지 않았다. 장자 상속이 만연했을 법한 조선시대지만 사실 ‘유연전’의 배경이었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은 남녀 균분상속제였다. 예컨대 백씨 입장에서 상속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세도가 집안의 적녀였던 백씨는 서자들에 비해 더 많은 친정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시가는 좀 달랐다. 남편이 죽고 자식마저 없다면 ‘형망제급’ 규정에 따라 남편 재산이 시동생인 유연에게 돌아가게 된다. 집의 소유권 등 총부(婦·적장자손의 부인)의 각종 권리도 유연에게 넘어갈 위기였다. 백씨가 채승규 첩의 아들을 의자녀 삼아 자신의 집으로 들인 건 이런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가 던지려는 화두는 사실 “상속의 목적에 대한 고민”이다. 상속을 통한 기대와 목적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가부장제도가 와해된 요즘, 상속은 그저 일방적인 혜택에 머물고 있다. 저자는 “태어나면서 획득된 조건이 개인의 성취를 좌우한다면 신분제 사회와 다름없다”며 “상속된 부를 일정 부분 사회화하는 등 상속의 가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 ‘이길 수 없는 싸움’ 몰아넣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설계자

    ‘이길 수 없는 싸움’ 몰아넣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설계자

    ‘매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설계자’ 등으로 불린 도널드 럼즈펠드(88) 전 국방장관이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9·11 테러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지 약 80일 만이다. “6일 또는 6주이지, 6개월은 아니다”라며 호기롭게 이라크전을 시작했던 그는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여전히 비판받고 있다. 프린스턴대를 나온 뒤 30세에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럼즈펠드는 41세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고,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43세로 최연소 국방부 장관에 올랐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등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부를 쌓기도 했다. 총 4명의 공화당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비서실장, 대통령 고문, 중동 특사 등을 역임했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두 번째 국방장관을 6년간 맡았을 때 존재감이 가장 컸다. 74세 최고령 국방장관으로 퇴임했고, 국방부를 두 번 이끈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 기간에 그는 2001년 9·11 테러 책임을 묻기 위한 이라크 전쟁을 앞장서 주장했고, 2003년 3월 시작한 이라크전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하는 그간의 전투와 달리 럼즈펠드는 군살을 덜어내고 드론 등 첨단무기를 이용한 속도전으로 바그다드를 효율적으로 함락시켰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같은 해 12월 생포했다.하지만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가 테러리스트에게 공급했다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이 3년 넘게 지속되자 반전 세력의 비판도 커졌고, 아부그라이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수용자 학대와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결국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패하자 부시는 12월에 럼즈펠드의 사의를 수리했다. 그는 2002년 WMD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정보에는) ‘안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knows),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unknowns),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들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증거 없는 전쟁을 일으킨 철학적 배경으로 이해된다. 그는 2011년 이 말을 차용한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에서 이라크전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라크전으로 4400명 이상의 미군과 수십만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고, 직접 비용만 8150억 달러(약 923조 5000억원)였다고 전했다. 또 이라크전 때문에 아프간전이 뒷전으로 밀려났고, 탈레반이 다시 힘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당시 럼즈펠드의 연설문 비서관이었던 맷 래티머는 럼즈펠드의 ‘오명’을 정치적 희생으로 봤다. 그는 이날 폴리티코 칼럼에서 “후세인 정권의 교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공식 정책”이었고 WMD 관련 주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등도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모두 등을 돌려 전쟁을 비난했을 때, 럼즈펠드는 정치 대신 책임을 졌다는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럼즈펠드는 “모범적인 공직자이자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며 책임을 결코 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럼즈펠드는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1974년에 이은 2003년 두 번째 방한 때 “분명히 우리는 북한의 정권이 교체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여기저기에서 나라들이 없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우리는 보아 왔다”고 말해 북한을 자극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외교·경제적 대북 압박으로 북한의 군부가 당시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 “가슴에 담배불을…성폭행 위협도” 미얀마 고문실은 생지옥

    “가슴에 담배불을…성폭행 위협도” 미얀마 고문실은 생지옥

    미국으로 추방된 미얀마 언론인쿠데타 이후 군부 고문·폭행 폭로“담배로 지지고 얼음에 발담그고”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이후 잡아들인 시민 2000여명이 전날(6월30일) 석방됐다. 길게는 2월1일 쿠데타 이후 5개월 가까이 구금됐다. 이들 가운데 반군부 인사들이 체포된 뒤 심문 과정 및 교도소에서 어떻게 고문이나 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미국 국적의 미얀마 언론인으로 군부에 체포돼 3개월간 구금됐다가 지난달 풀려나 미국으로 추방된 나탄 마웅(44) 카마윳 미디어 편집장은 1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군경은 나흘 동안 잠도 안 재우고 물과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끊임없이 추궁했다”고 밝혔다. 마웅은 3월 9일 사무실에서 체포된 직후 동료 언론인 한 명과 함께 군 심문센터에 끌려갔다가 다시 한 가옥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먹으로 머리와 얼굴, 어깨 등을 치고 발로 차는 폭행이 이어졌다. 두 손으로 귀를 마구 때리기도 했다.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눈을 가렸다.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을 안 뒤에는 미국에 어떻게 정보를 제공했는지 묻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옷 벗긴 채 강간하겠다고 위협도” 끔찍한 경험 함께 잡혀간 동료 한타 녜인이 자신에게 전한 상황은 더 끔찍했다. 그들은 문민정부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관계자들의 연락처가 있을 것으로 보고 녜인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기 위해 가슴에 담배를 비볐다. 커다란 얼음을 담은 물에 수 시간동안 발을 담그게 하기도 했고, 옷을 벗긴 채 강간하겠다고 위협도 했다. 고문과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녜인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털어놓았다. 고문하던 군인들은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사진이 나오자 무슬림 여성들을 비하하는 저속한 표현까지 써가며 몹시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한 뒤 마웅과 녜인은 2주 뒤인 3월 23일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 인근 한 감옥으로 이송됐다. 그곳에는 쿠데타 이후 체포된 정치범 2000여명이 수용돼 있었다. 약 80명이 한 방에서 생활했다. 학생, 작가, 가수 등과 NLD 고위 인사들도 있었다. 매일 50~100명이 군 심문센터에서 교도소로 들어왔다. 부상한 이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부상이 없는 이들은 교도소에서도 고문 및 폭행에 시달렸다. 소 뉜 샨주(州) 재무장관은 50세가 넘었음에도 교도소 바닥 위에 쭈그려 앉은 채 잔인하게 두들겨 맞았다고 마웅은 밝혔다. 마웅은 “그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동물처럼 취급했다”며 “노정치인들로부터 30여년 전 구금 당시 군부에 의해 겪은 생지옥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와 같은 생지옥에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조카 물고문‘ 이모 부부 친자녀 정서적 학대 혐의 추가 기소

    ‘조카 물고문‘ 이모 부부 친자녀 정서적 학대 혐의 추가 기소

    10살짜리 조카를 폭행하고 물고문 학대를 해 사망케 한 이모와 이모부가 친자녀에게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 심리로 1일 열린 이 사건 4차 공판에서 검찰은 이모 A(34·무속인) 씨와 이모부 B(33·국악인)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해자에 대한 A씨 부부의 학대가 집 안에 함께 있던 친자녀 2명 앞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사망한 피해자를 매우 많은 부분 때리고 학대하고 욕을 하고 한 내용에 대해 친자 2명이 그 행위를 모두 목격했다”며 “어린 동생이 학대받는 과정을 지켜본 자녀들의 정서적 충격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추가 기소 사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추가 기소한 내용을 본사건 재판에 병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 부부는 지난 2월 8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조카 C(10) 양을 3시간에 걸쳐 폭행하고,화장실로 끌고 가 손발을 빨랫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여러 차례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대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저항하는 C양에게 개의 대변을 억지로 먹게 하거나,알몸상태의 C양에게 장시간 손을 들게 하고 국민체조를 시키는 등 학대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라크의 위험 과장해 전쟁 몰아간 럼즈펠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라크의 위험 과장해 전쟁 몰아간 럼즈펠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며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끈 도널드 럼즈펠드가 세상을 등졌다. 향년 88.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족들은 30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럼즈펠드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우리는 그의 아내,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그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삶의 진실함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뉴멕시코주 타오스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부음을 접한 뒤 고인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 했으며 “모범적인 공직자였으며 진짜 좋은 남자였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럼즈펠드는 1975~1977년 제럴드 포드 행정부, 2001~2006년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다. 2004년 미군의 이라크 수감자 학대가 드러나 사의를 표했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신임했다. 그러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2006년 11월 부시는 럼즈펠드의 사의를 받아들였고 다음달 퇴임했다.  미국 국방장관을 두 차례 역임한 것은 그가 유일했다. 첫 재임 때는 43세로 역대 최연소였고, 두 번째 재임 때는 최고령 장관이었다.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백악관 비서실장, 대통령 고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 일리노이주 하원의원, 중동 특사 등 다양한 역할을 다해봤다.  성격이 많이 다른 두 대통령을 무리 없이 보좌하며 워싱턴 정가에서 오래 살아 남았다. 일부에서는 반대파를 속여먹기도 잘하고 더할 나위 없는 워싱턴 인사이더이며 “생존능력 슈퍼 갑”이란 평판을 들었다.  특히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끌었다. 로이터 통신은 럼즈펠드가 이라크 전쟁의 주요 설계자였다고 전했다.  BBC는 그의 장관 재임 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2년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을 꼽았다. 그는 대량살상무기와 사담 후세인을 연결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질문에 “뭔가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고는 항상 내 관심을 끈다”며 “왜냐면 (정보에는) ‘안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knows),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unknowns),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9·11 테러로 미국이 준비되지 않은 전쟁으로 끌려들어간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9·11과 아무런 상관 없는 이라크로 눈을 돌린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에 앞서 그는 행정부 안에서 가장 앞장 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세계평화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막상 이라크를 침공한 뒤 보니 그런 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이 쓸데없이 이라크전쟁을 벌여 자원과 관심을 낭비하는 동안,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다시 힘을 추스렸고, 그 결과 미군은 현재 아프간 완전 철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매파이며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얼굴’이었으며 가차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조차 마키아벨리 같은 면모, 전쟁 기획 능력 만큼은 높이 샀다.  럼즈펠드는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1974년 포드 대통령을 수행해 방한하고 두 번째 국방장관 임기 중인 2003년과 2005년에도 한국을 찾았다. 퇴임 후 회고록에서 외교적, 경제적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내 군부가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도록 나서게 유도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932년 7월 9일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자원했으며 부동산 영업사원으로 일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레슬링을 무척 좋아했으며 이글 스카우트에 가입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한 뒤 부친처럼 자원해 1954년부터 1957년까지 항공대 교관으로 일했다. 전역한 뒤 워싱턴 DC로 와처음에는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 1962년 직접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1969년에 의원 직을 그만 두고 리처드 닉슨이 만든 경제기회청을 이끈 뒤 1973~74년 NATO 미국 대사 등 행정부 내 여러 요직을 경험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파문으로 물러나자 포드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장을 맡은 뒤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그는 핵잠수함 트라이던트 건조 과정을 총괄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 피스키퍼 MX 개발을 주도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전략무기감축협상(SALT II)을 놓고 옛 소련과 마주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장관 직에서 물러나 일이 있을 때만 행정부 일을 거들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중동 특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제약사 GD Searle & Co의 임원을 지낸 뒤 전자업체 제너럴 인스트루먼트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거쳐 다시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에 취직했다.  1998년 의회의 초당파 위원회를 이끌어 미국에 닥친 유도미사일 위협을 평가하는 일을 맡았는데 옛 소련 붕괴로 북미 대륙이 직접 위협을 당할 여지가 없다는 빌 클린턴 행정부 정보기관들의 평가와 충돌하는 보고서로 갈등을 빚었다. 이란과 이라크, 북한 등 잠재적인 적국들의 미사일 제조 능력을 5년이면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정보기관들은 15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불러 국방장관을 다시 맡은 그에겐 콜린 파월 국무장관, 딕 체니 부통령이란 만만찮은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둘은 민간이 조금 더 펜타곤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럼즈펠드는 오히려 군이 더 일사불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개월도 안돼 9·11 테러가 발생해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그는 그날 아침 하원의원들과 미사일 방어망 예산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펜타곤이 항공기 테러의 타깃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항공기 추락 지점을 찾았다. 그가 들것에 누군가를 눕히는 것을 돕는 모습이 CNN 카메라에 잡혔다. 그 뒤 청사 안에 들어가 공동 대응을 지휘했다.  나중에 기밀 해제된 메모에 따르면 벌써 그는 이 무렵에 오사마 빈 라덴 뿐만 아니라 후세인의 이라크를 공습으로 보복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달도 안된 10월 7일 미군은 알카에다와 탈레반 공습에 나섰다. 곧이어 지상 작전이 개시됐다. 그리고 이 전쟁을 채 마무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역시 당시 메모에 “길고 어려운 진창”이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는데 현재 아프간이나 이라크 상황은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두 차례나 사의를 표했는데도 변함없이 지지하던 부시 전 대통령은 재선된 뒤 아버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럼즈펠드를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표현하며 그가 아들의 대통령 직을 망친다고 말하더라며 사의를 받아들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인은 2011년 회고록에서 전쟁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발언에 문제가 있었으며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파병했어야 했다는 점을 실책으로 인정했다.  2013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에롤 모리스가 그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The Unknown Known’을 만들었다. 모리스는 로버트 S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처럼 냉전의 환상에 찌든 사람으로 생각하고 제작에 임했는데 럼즈펠드와 33시간 인터뷰를 한 결과 이라크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더욱 모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루이스 캐럴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중에 체셔 캣이란 등장인물을 만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고 비유했다.  모리스는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 할배가 뭔가를 숨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의심스러웠다. 이 할배는 완전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갈파했다.
  • “다이어트 위해 입에 자물쇠 채운다”…당당한 개발자

    “다이어트 위해 입에 자물쇠 채운다”…당당한 개발자

    뉴질랜드에서 개발한 다이어트 보조 장치가 논란에 휩싸였다. 30일 메트로·인디펜던트지 등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연구팀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치아에 장착하는 체중 감량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덴탈 슬림 다이어트 컨트롤(Dental Slim Diet Control)’이라는 이름의 장치는 윗니와 아랫니에 각각 1개씩 장착하는 자석 장치로, 잠금 볼트가 있어 착용하면 입을 2mm 정도만 벌릴 수 있다. 말하거나 호흡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구강의 움직임이 제한돼 액체류와 유동식만 섭취할 수 있다. 저칼로리 식단을 강제로 지키게끔 해 체중을 감량하고, 새로운 식습관을 길들이는 장치인 셈이다. 폴 브런턴 교수는 “치과에서 장착하지만 응급 시 사용자가 풀 수도 있고, 반복적으로 착용하거나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비만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연구팀은 임상시험에 참여한 비만 환자들이 2주 동안 평균 6.36kg의 체중을 감량했다고 밝혔다. 또 부작용도 없어 계속 다이어트를 하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팀의 기대와 달리 이날 장치가 공개되자마자 “섭식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고문 기구인가?”, “다이어트 위해 입에 자물쇠 채운다”등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브런턴 교수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 장치는 의학적 이유로 급격한 체중 감량이 필요한 병적인 비만 환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타고 대학 측도 “이 장치는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으로 체중을 감량하지 않으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라고 해명했다.
  • 김태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委 부위원장, 서태협 관리단체 지정 본안소송 진행 촉구

    김태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委 부위원장, 서태협 관리단체 지정 본안소송 진행 촉구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태호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강남4)은 30일 개최된 제301회 정례회 본회의 시정질문 2일차에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서 서울시태권도협회(이하 서태협) 관리단체 지정과 관련하여 서울시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본안소송을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서태협의 관리단체 지정은 2019년 4월 서울시의회의 ‘서울특별시의회 체육단체 비위근절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조사특위)’ 활동과 국회의 국정감사 등 다각도의 노력을 통해 서태협의 비위사실을 밝혀낸 결과로 서울시체육회 이사회 표결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서태협은 서울시체육회 이사회 결정에 불복하여 관리단체 지정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하였으며, 최근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어 본안소송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김 부위원장은 시정질문 발언을 통해 최근 서태협 관리단체 지정 관련 소송에서 서울시의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태협의 정상화를 위한 행정적 절차인 관리단체 지정에 대해 서태협이 국내 최대 로펌에 막대한 소송비용까지 지불하면서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반면, 서울시는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을 포기하려는 징후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부위원장은 “시의회의 조사특위와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결의된 관리단체 지정의 결과를 서울시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소송을 포기하려는 것은 의회를 무시하고 천만 서울 시민의 대리인인 시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라면서 서울시의 서태협 관리단체 소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서태협은 지속적으로 국내 최대로펌에게 상상 이상의 법률비용을 지불하면서 이들을 방패삼아 자신들의 비위사실을 무마해왔다. 이번 가처분신청 인용과정에서도 석연찮은 부분들이 포착 되었는데, 첫째, 가처분신청이 접수된 법원이 서태협의 사무소 주소지인 남부지방법원이나 서울시체육회의 사무소 주소지인 북부지방법원이 아니라 서태협 박창식 직무대행의 주소지인 동부지방법원이었다는 점. 둘째, 가처분신청 판결이 있기 바로 직전 서태협 박창식 직무대행이 스스로 신청인에서 자신을 제외한 후 서태협만 신청인으로 남게 된 점. 셋째, 가처분신청 판결의 주심인 이종훈 판사는 경력직 판사로 채용되었는데, 채용 전 소속 로펌이 현재 서태협의 법률대리인인 로펌이었으며, 경력직 판사의 제척기간이 지나자마자 이번 사건에 배당이 된 점이다. 김 부위원장은 시정질문 발언에서 2013년도 승부조작으로 인한 한 선수의 아버지가 자살한 사건부터 독점적인 승품단 위임사무를 악용한 심사비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 승품단 심사비 수입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재원을 볼모로 한 자치구협회에 대한 겁박, 서태협 임모 고문의 조직사유화 및 무자격 임원에 대한 근거 없는 수당지급 행위, 이를 무마하기 위한 거액의 송사비 지출 등 각종 서태협의 비위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서태협 관리단체 지정 본안소송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참석한 의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특히, 김 부위원장이 승부조작사건으로 인해 자살한 아버지와 홀로 남은 아들의 사연을 소개하자,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안타까움을 전하며 재발방지의 필요성에 동의하였다. 이와 더불어, 김 부위원장은 재석한 동료 의원들과 오 시장 등을 향해 이번 본안소송이 가지는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첫째,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가 지금까지 서태협의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부실한 관리를 해왔다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한편, 안하무인의 서태협에게 관리감독 기관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어 서태협의 비위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 둘째, 의회의 조사특위 활동을 거쳐 체육회 이사회를 통해 서태협을 관리단체로 지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태협 뒤의 대형로펌과의 소송을 두려워해 소송을 포기한다면, 의회 특위에서 지적된 사안들을 서울시가 서태협의 ‘무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서태협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어 서태협은 지금보다도 더욱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게 된다. 셋째, 서울시가 본안소송을 포기하게 되면 서태협의 비위행위들은 잘못된 선례로 남게 되어 다른 체육종목단체는 물론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제2의, 제3의 서태협의 사태가 촉발될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세 가지 이유를 근거로 서울시는 지체 없이 서태협과의 본안소송을 진행해야 함을 주장했다. 김 부위원장은 “최근 세계태권도연맹 소속 시범단이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서 골든버저를 받는 등 전 세계에 태권도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하고 지원해줘야 할 서태협은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임을 강조하면서,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태권도인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본안소송은 많은 의미가 있으며, 본안소송 이후 서태협의 정상화를 통해 이제는 서태협의 재정이 무의미한 소송비용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분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태호 부위원장은 “이번 본안소송은 단순한 소송의 성격이 아니다. 지금까지 부정과 비위행위를 일삼아 온 서태협을 도덕적으로 회귀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며, 비정상적인 서태협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주장하면서, “이번 본안소송을 통해 서울시는 서태협에게 경종을 울리고 서울시 태권도인과 천만 서울시민의 단체로 돌려놓아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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