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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문서반환 항소한 김중호 변호사

    佛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문서반환 항소한 김중호 변호사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문서 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는 문화연대가 프랑스 행정법원을 상대로 항소를 제기했다. 반환소송 법률대리인인 김중호 변호사는 25일 서울 세종로 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심은 비록 패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가 외규장각 문서 취득 과정을 사실상 ‘약탈’로 인정하는 성과를 얻었다.”며 “완전한 반환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법무법인 알레리옹 소속인 그는 2007년 시작된 1심 소송 때부터 문화연대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김 변호사는 “세계인권선언의 모태가 된 프랑스인권선언이 1789년에 나왔다고 해서 그때부터 인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인권’을 재천명한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약탈 문화재 반환 또한 이에 대한 국제협약이 병인양요 이후에 생겼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외규장각 고문서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프랑스 법원의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사법부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 두 나라 정부가 외교적으로 풀 사안이라는 게 프랑스 법원의 태도여서 쉽게 결론이 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당장은 항소과정을 통해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게 더 큰 관심사다. 문화연대는 “시민의 이름으로 문화재를 환수하겠다.”는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의 전략<서울신문 1월29일자 21면>대로 ‘외규장각 되찾기 1만 시민 서포터스’를 꾸린다. 시민들의 관심과 손길로 소송비용 10만유로(약 1억 6000만원)를 모을 계획이다. 함께 자리한 황 위원장은 “시민답사, 거리캠페인, 토론회 등을 병행해 가며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을)즐거운 문화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다물사리 소송’으로 본 조선 법제사

    드라마 ‘추노’의 노비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도망친다. 그런데 1586년 나주에서는 한 양인(良人·일반 백성)이 스스로를 노비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이 희한한 ‘노비 소송’의 주인공은 ‘다물사리’라는 이름의 여든 살 노파. 대체 이 노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간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는 이 ‘다물사리 소송’을 중심 서사로, 역사소설의 옷을 입힌 법제 연구서다. 책은 노비를 자처하는 여든 노파와 진실을 추적하는 재판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조선의 사회와 제도를 아우르면서, 한 편 이야기 속에 조선의 법제사를 녹여 넣었다. 우선 글쓴이 임상혁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다물사리 소송’의 전말을 고문서 5건을 통해 밝혀낸다. 경북 안동 학봉 김성일(1538~1593)의 고택에서 나온 이 판결문들은 그간 용도가 알 수 없었으나 임 교수의 연구로 판결문임이 밝혀졌다. 문서를 보면 다물사리는 실제 양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뇌물로 관리를 매수해 성균관 공노비로 신분을 위장하고 노비 노릇을 한 것이다. 물론 거짓말은 수사 끝에 탄로가 났다. 사정은 이랬다. 다물사리의 남편은 양반의 사노비. 당시에는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자식들도 노비가 됐는데, 제도대로라면 그녀의 자식들도 사노비가 돼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식들을 사노비보다는 대우가 좋은 공노비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성균관 노비가 된 것이다. 당시에 부모 중 한쪽이 공노비면 자식들도 공노비가 됐다. 후손을 사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이 법정투쟁기를 통해 임 교수는 조선 소송제도의 특징까지 짚어본다. 공정성이 의심될 때 다른 관할로 재판을 이관하는 ‘관할 상피제’, 3차례까지 제소할 수 있는 ‘심금제도’ 등을 소개하면서, 그는 “조선의 소송제도는 합리적으로 정비돼 있었다.”고 평한다. 나아가 노비제를 중심으로 조선의 신분제, 또 사회제도 전반의 특징까지도 함께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조선 사회의 근간인 노비제에 대한 총체적 논의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1만 5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전국플러스] 대전 족보박물관 4월 완공

    대전 중구는 침산동 ‘뿌리공원’에 건립 중인 족보 전시장의 명칭을 ‘한국족보박물관’으로 확정하고 오는 4월 완공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전체 면적 1478.95㎡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한국족보박물관에는 족보 등을 전시하는 상설전시실 3곳 외에 기획전시실, 수장고, 시청각실, 정보자료실, 문중협의회실, 세미나실 등이 들어선다. 족보박물관 건립에는 전국에서 82개 성씨별 문중이 참여했으며, 356건 1100여점의 족보와 문집류, 고문서, 탁본, CD와 영상자료, 영정사진 등이 기증됐다.
  • 율곡도 못견뎌낸 ‘과거 신참’ 신고식

    율곡도 못견뎌낸 ‘과거 신참’ 신고식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시곗바늘은 조선시대, 장소는 과거시험장으로 맞춘다. 팔도에서 올라 온 유생들이 시험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응시생들이 직접 준비해 온 필기도구와 함께 답안 종이를 품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도련지(?鍊紙)라는 하등품 종이다. 일부 부유층 집안 자제들은 고급 종이를 쓰다가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있었다. 유생들은 시험지 앞에 신원조회서격인 ‘녹명’을 작성해야 한다. 조·증조·외조의 인적사항까지 낱낱이 기재해야 하는데, 형식이 어찌나 까다로웠던지 ‘성호사설’을 쓴 대실학자 이익조차 녹명을 잘못 기입해 합격이 취소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답안 작성 방법은 더 까다로웠다. 시권(詩卷)은 반드시 해서체로 써야 했다. 음양서(陰陽書)와 패설(稗說), 당파 등을 언급하는 것도 금했다. 역대 왕의 이름을 범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고시보다 까다로웠던 과거시험 절차 특히 채점 절차의 공정성은 대단했다. 우선 봉미법이라 해서 응시자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곳은 서너 번 말아 실로 꿰맸다. 문과시험에서는 녹명 부분과 답안 부분을 칼로 자른 뒤, 수험번호를 각각 기록해 채점이 끝날 때까지 보관했다. 이뿐 아니다. 특정인의 필체가 드러나면 채점할 때 부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해서 서리들에게 모든 답안지를 옮겨 적도록 했다. 이처럼 당시 양반 계급에 들기 위해서는 신분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 과거를 통해 관직에 들려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조선시대 총 804회 과거를 통해 배출된 합격자는 1만 5000명. 조선의 고을 수가 360개였던 것에 비춰보면 10개 고을당 합격자가 일년에 한 명도 나오기 어려웠던 셈이다. ●선배 가혹행위로 종종 불미스런 사고도 합격자는 ‘면신례’(免新禮), 이른바 신참 신고식을 치렀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선배들의 가혹행위로 종종 불미스러운 사고가 뒤따랐다. ‘새 귀신’이라 불리며 사람 대접을 못 받은 것은 물론 선배들이 마련한 잔치에서 얼굴에 오물칠을 하고, 미친 여자의 오줌을 강제로 마시는 등 갖은 수모를 겪었다. 신참의 ‘굴욕’은 50일 넘게 지속되기도 했는데, 율곡 이이는 면신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향했을 정도로 심했다. ‘조선양반의 일생’(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글항아리 펴냄)은 이처럼 나라의 중심세력이면서도 때론 조선 사회의 그늘이기도 했던 양반들의 화려하고도 고통스러운 세계를 엮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고문서들은 그들 실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양반들의 ‘경제 시스템’을 다룬 대목에서는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식상한 모습에 외려 놀라고, 충격을 받는다. 양반을 지탱해 준 한 축은 그들 사이의 은밀한 거래, 즉 ‘선물경제’였다. ●관직생활 10년동안 2885번 선물 받아 양반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은 국가로부터 받는 녹봉. 하지만 과연 녹봉으로만 생활이 유지됐을까. 실제 관리들의 녹봉은 규정과 달리 65%정도만 지급됐다고 한다. 국가 재정이 곤궁해지면 녹봉부터 줄였다는 것. 따라서 양반들은 ‘선물’로 가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단적인 예로 유희춘이란 관리는 관직생활 10년 동안 2885번이나 선물을 받았다. 선물 내용도 일상 용품에서 사치품까지 다양했다. 그는 이 물건들로 가계를 꾸리고, 재산 증식의 ‘종잣돈’으로 삼았다. 책은 이밖에도 양반의 유년 교육과 관·혼·상·제 등에 관련된 글을 많은 도판 자료와 함께 엮어 놓았다. 2만 2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려 田出은 소작료” 태안 앞바다서 발굴한 죽간 해석

    800년 전 고려시대 첫 죽간(竹簡)에 쓰였던 ‘전출(田出)’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단순히 논, 밭에서 난 소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경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나 공신(功臣) 등에게 해당 지역에 대한 독점적 세금 징수권을 준 지역인 식읍(食邑)에서 거두어 들인 공납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4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밝힌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의 고려시대 선박에서 발굴된 죽간에서 보이는 ‘대장군김순영댁상전출조일석(大將軍純永宅上田出租壹石)’을 비롯한 64점의 죽간, 목간 중 ‘전출’에 대한 해석에서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고문서학 전공인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기획사업단 연구기획팀장은 “‘전출’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 고문서는 물론이고, 명나라 법전을 토대로 조선 초기에 만든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라는 법률서에도 자주 보이는 이 시대 숙어로서, 일제시대 이후 요즘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소작료 정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지난 1991년 ‘전출’이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실제 토지 주인에게 소출 중 일정 부분을 바친 수입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이토록 뜨거웠던 삶이 있었을까. 서른의 나이로 러시아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했던, 또 한국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었던 여성혁명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1885~1918). 이미 90여년 전 떠난 그녀가 소설가이자 시인, 기자인 정철훈(50)의 손에 되살아 났다. 혁명가로서 그녀의 활약을 담은 ‘소설 김알렉산드라’(실천문학사 펴냄)를 내고 지난 6일 서울 종로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한마디로 그녀는 여성 김산(1905~1938·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이라고 말을 꺼냈다. 누구보다 그 영역에서 활약했지만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였다. 알렉산드라와 작가의 인연은 오래 됐다. 그는 1990년 한·소련 수교를 기회로 북방에서 활약한 운동가들의 자료를 찾기 위해 3년 정도 러시아에 머물렀다. 거기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도 그때 알게 됐고, 그녀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공산당문서보관소, 중앙아시아 쪽에 있는 고문서보관소 등을 모두 뒤졌죠. 중앙아시아를 7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지인들을 수소문해 만나서는 구술까지 받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김알렉산드라 평전’(1996). 이번 소설도 그때 모은 것을 활용했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는 현재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그는 “그녀가 보여줬던 자기 삶을 바꾸려는 진보적 에너지, 치열했던 사랑은 여전히 우리와 우리 사회에 유효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현재성을 위한 장치로 작품은 3부로 나눈 액자소설 형식을 취했다. 1·3부는 그녀의 아들이 등장해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며 그 삶의 의의를 짚어본다. 본문 격인 2부에는 김알렉산드라가 직접 화자로 나와 처음 우랄 지방의 한 목재소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때부터의 생생한 활약상을 전한다. 1900년대, 1950년대가 작품배경이지만, 작가는 “이건 오늘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곁에서 함께 했던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나 억눌려 있었다.”면서 “그랬기에 격렬한 시위나 노동운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런 비참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전한다.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했지만 의외로 문체는 서정적이다. 사건을 중심으로 한 2부는 짧게 끊어친 문장이 긴박감을 주지만, 픽션이 많은 1·3부에서 배경을 그리는 솜씨나 도입부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한편의 동화나 애틋한 편지를 읽는 것 같다. 일간지 문학전문기자 출신으로서의 자기 작품을 보면 어떨까. “2% 정도 모자란다고 할까요. 상업성의 눈치를 좀 안 본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팔리는 글도 있어야겠지만, 누군가는 써서 남겨야 할 글도 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정선 ‘별천지 박물관’ 개관

    강원 정선 시골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별천지 박물관’이 개관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주민들은 21일 폐교를 활용해 추억의 옛 교실 등을 갖춘 별천지박물관을 만들어 전날 개관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별천지박물관은 지난해 3월 폐교된 숙암분교의 옛 교실을 활용해 고문서와 생활사 자료 중심의 제1전시실과 교육자료 중심의 제2전시실, 복도전시실, 창고를 개조한 사진전시실, 옛 교실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 등으로 꾸려졌다. 야외 공간에는 편의시설과 무대 등을 설치해 음식과 차를 즐기고, 농특산물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600여점의 전시자료는 정선아리랑학교(교장 진용선) 추억의 박물관에서 대여한 것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쳐 1980년대까지의 교과서, 북한교과서, 공책, 방학책, 학용품, 만화와 잡지, 장난감 등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자료들이 선보인다. 개관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김기용(47·이장) 위원장은 “마을 체험 활동을 겸한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운영해 관광객 등에게 추억의 향수 및 교육의 장으로서, 지역문화 공간으로서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최선을 다해 운영해 나가겠다.” 말했다.  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길이 2m가 넘는 10폭 병풍.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림이 아니라 중국의 여러 가지 기물들을 그리고 그 위에 자수를 놓은 작품이다. 배색의 조화가 아름답고 기물들의 특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 기물들은 모두 각각의 상징을 담고 있다는데…. 화려한 병풍에 담긴 알찬 의미를 알아 본다.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귀순 가수 김용, 김혜영이 반짝이는 황금빛 보리밭으로 출동한다. 가수로 깜짝 변신한 개그우먼 김미연이 푸른 초원 목장 아가씨로 변신해 사슴, 양 돌보기에 나선다. 천년초 선인장 수확에 나선 탤런트 김청은 뜨거운 태양 아래 따가운 쇠스랑으로 천년초 뿌리까지 쏘옥 캐낸다.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작업을 직접 하고 계신 강서 노인기자단.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지금은 후배 수습기자 어르신들의 촬영 작업에 도움을 주실 정도로 베테랑이 되셨다. 뉴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강서 노인영상기자단을 만나 본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1912년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희귀한 책 한 권. 235쪽의 고문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책. 과연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류의 땅, 지구. 그런데 지구에 또 하나의 신인류가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선데이 뉴스 플러스(SBS 오전 7시25분) 정부가 요즘 외래종인 ‘가시박’대책을 놓고 고심 중이다. 가시박은 북미산 덩굴 식물로 1980년대 후반 경북 지역 농민들이 접붙이기 용도로 국내에 들여 왔다가 전국적으로 번져 식물계의 황소 개구리로 불리고 있다. 우리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외래종의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알아 본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SBS 오후 8시50분) 갑수마저 결혼을 반대하자 봉선은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갑수는 민규와 애숙이 둘이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고 그 일로 애숙과 얘기하던 중 방 밖에서 금란이 듣게 된다. 민규는 금란의 카페에 찾아 왔다가 풍란을 만나게 되고 애숙에게 전해 달라며 시집을 건네는데….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2001년 1월 26일,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에 지진이 발생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1만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복구하기까지의 길은 막막했으나 다행히 인도와 세계 각지에서 즉각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문제는 원조 받는 이들이 원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계획하도록 하는 것이다.
  •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우리나라 종가 가운데 문화재급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 대학자 명재(明齋) 윤증(1629~1714) 선생의 유물과 유품 1만여점이 7일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됐다. 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날 회의실에서 윤증 선생의 12대 종손인 윤완식(53)씨가 참석한 가운데 윤증 집안 유물 영구 기탁식을 가졌다. 윤씨가 이날 기탁한 유물은 8999점으로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기탁한 1644점을 합치면 모두 1만 643점에 이른다. ●보물 1495호 ‘윤증 초상’ 6점 포함 윤씨는 2004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을 수탁기간이 끝나자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했다. 당초 이 유물들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윤증고택 등에 있었다. 윤씨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은 유물을 보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면서 “유물은 본래 있던 지역에 있어야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도역사문화연구원으로 옮겨 영구 기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탁한 유물 가운데 보물 제1495호인 ‘윤증 초상’ 6점이 가장 눈에 띈다. 윤증 초상은 1744년 어용화사인 장경주가 그린 것부터 일제 강점기 때까지 그려진 것으로 국내 초상화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초상화 제작연대와 내용을 기록한 ‘영당기적(影堂紀蹟)’도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도역사문화연구원 서흥석 연구원은 “누가, 언제, 얼마를 받고 초상화를 그렸는지 자세히 기록한 책자를 남긴 것은 국내에서 매우 드물어 사료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상투관·빗·합죽선 등 중요민속자료도 중요민속자료 제22호로 지정된 유품 54점도 기탁됐다. 윤증 선생 등이 쓰던 상투관, 빗, 신, 합죽선, 인장 등으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초기 천문과학 형성과정과 우주관을 보여주는 해시계와 혼천의도 있다. 논산시 향토문화유적 제12호 ‘윤증가의 책판’ 1039점과 고문서 6000여점도 기탁됐다. 서흥석 연구원은 “고문서를 해독하면 윤증 선생 조상 때부터 교류해온 이율곡과 성혼, 김장생, 송시열 등 기호학파 거두들의 숨은 얘기나 학설, 인물평 등이 기록돼 있을 가능성이 커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윤증 선생은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로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해 평생 후학양성에 힘쓴 소론의 영수이다. 스승 송시열의 주자학적 조화론과 의리론을 비판한 진보세력으로 노론의 정국 전횡을 견제했다.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번에 기탁받은 윤증 선생의 유물을 훈증처리한 뒤 수장고에 보관하고 훼손된 것은 보수할 계획이다. 도록을 발간하고 특별전시회와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른 문중도 유물 기탁하는 계기됐으면” 종손 윤씨는 “문중의 유물이지만 지역 것이기도 하다. 집안에 남아 있는 유물 1000여점도 정리되는 대로 기탁할 계획”이라며 “이번 유물 기탁이 연구자료나 후손 교육에 쓰이고 다른 문중에서도 사회에 유물을 기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화사 거두 오세창 ‘근묵’ 완역 출간

    서화사 거두 오세창 ‘근묵’ 완역 출간

    한국 근대 서화사의 거두인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槿墨)’이 66년 만에 완역출간됐다. ‘근묵’은 고려말 정몽주, 길재부터 조선조 정도전, 성삼문, 이황을 비롯해 대한제국 말기 이도영에 이르기까지 1136명의 서간류와 시 등 소품을 모은 글씨첩으로 1943년 완성됐다. 1964년 위창의 유족에게서 ‘근묵’을 양도받아 소장해온 성균관대박물관(소장 조선미)은 29일 “34첩 첩장본의 원본 크기와 질감을 그대로 살려 촬영하고, 알아 보기 힘든 초서를 탈초(정자체로 쓰기)·번역해 전 5권으로 출간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1981년과 1995년 두차례 영인본을 낸 적이 있으나 축소 판형에 일부만 출판하는 등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이번에 전체 실물 크기의 영인본에 한글 번역과 해설을 충실히 덧붙여 서예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34첩 첩장본 원본 크기·질감 그대로 살려” ‘근묵’은 서예와 전각에 능하고, 고서화 감식에도 탁월했던 위창이 수십년 간 모은 서체의 결과물이다. 이보다 30여년 앞서 나온 위창의 또 다른 필첩 ‘근역서휘’(서울대박물관)와 더불어 600년 서예사를 집대성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위창은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가로 활약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신문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근묵’에 실린 묵적은 서체별로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서가 대부분이다. 문장별로는 편지가 724점으로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데, 격식과 제약이 없는 서간의 특성을 보여 주듯 글쓴이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서체가 눈길을 끈다. 다만 이번 번역 과정에서 박은, 안평대군 등 고려와 조선 초기 몇몇 작가의 필적은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주석을 따로 달았다고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밝혔다. 서간의 내용을 통해 당시 의식주와 생활상, 감상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잃은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아내는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차군(대나무)과 같다. 나는 일찍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맛과 쓴맛을 잘 안다.”면서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위로한다.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은 한 편지에서 “오랜 침상에 누워 날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어 다시 일어나 사람이 될 가망이 전혀 없다. 사는 것이 정말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정조가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원에서 재배한 담배가 맛이 좋다는 자랑이 포함돼 있어 당시 창덕궁 후원에서 담배를 재배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새달 29일까지 특별 전시회 서간 외에 사제 간, 선후배 간, 친구 간에 전별하면서 지은 시고(詩稿)와 서(序), 기(記), 발(跋) 등의 작품도 대부분 유일한 기록들인 경우가 많아 문학사적인 의미가 크다. 이밖에 시대에 따른 편지지의 변화와 피봉의 형식, 전각의 종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이번 완역출간을 기념해 이날부터 7월29일까지 ‘근묵’ 원본과 영인본, 위창의 글씨 등을 모은 특별전시회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가면 1950년대 말죽거리 풍경과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 등 과거 서초의 모습을 담은 진귀한 사진과 자료를 감상할 수 있다. 서초구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지와 주택의 변천사는 물론 서초의 과거와 최근의 모습을 소개한 ‘토지·주택 역사자료 전시회’를 다음달 2일까지 연다고 29일 밝혔다. 전시회에서는 고문서나 고지도, 옛 사진, 항공사진 등 총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5개 테마로 나뉜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사시대~현대주택 전경 ▲1580~1920년대 고문서에 남겨진 토지의 역사 ▲17세기~현재의 모습을 지도로 본 변천사 ▲1972년~현재 풍경을 항공사진으로 본 서초 ▲사진으로 본 과거의 모습 등이 선을 보인다. 특히 ‘사진으로 본 과거 서초의 모습전’을 통해 1950년대 서래마을 풍경과 1960년대 잠원동 나루터 모습, 1970년대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모습, 1980년대초 강남고속터미널 주변 풍경, 1990년대 법조단지 전경 등이 고스란히 담긴 다양한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성중 구청장은 “많은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회 무대를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에 꾸몄다.”면서 “고문서나 사진, 지도, 항공사진 등을 통해 우리 고장의 역사와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삶의 흔적, 문화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한국 혼 서린 곳… 개발논리 지양·체계적 보존해야

    한국 혼 서린 곳… 개발논리 지양·체계적 보존해야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왕릉으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와 역사가 민족적 특수성을 넘어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쾌거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몇 년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이 성취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익집단들의 개발 논리에 이끌리지 않도록 체계적인 보호·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민(民)이 시작해 관(官)이 완성 #장면1 2004년 6월20일 구리시민 4327명의 청원이 구리시의회에 제출된다. 9왕릉, 17위가 모여 있는 동구릉에 ‘조선왕조특구’를 지정해주면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풀뿌리 시민들의 무모해 보였던 첫 걸음이었다. #장면2 2004년 12월13일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조선왕릉 40기를 한꺼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2006년 1월16일 이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고, 2008년 1월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에 등재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장면3 2008년 9월21일 WHC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단을 한국에 보낸다. 그리고 올해 1월6일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 철거 문제, 한국종합예술학교 이전, 서오릉 능역 내 일부 건물(골프장, 목장 등) 환경 개선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한 달 남짓 뒤인 2월27일 ICOMOS측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사실상 결정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보고 실제로 조선왕릉은 고구려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그저 옛 왕· 왕비들이 묻혀 있는 무덤이 아니다. 한국인의 의식 기저에 자리잡은 유교와 도교 등 철학적 가치와 함께 봉분· 석물 등의 문화적 성과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또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전통 제례의식의 계승 공간이며, 고문서와 유물 역사적 사료의 보고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연결지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ICOMOS가 WHC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왕릉이 탁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라는 점과 능침·제향·진입공간으로 나눠진 곳마다 독특한 조성방식과 석물이 있는 등 전체 공간 구성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또한 풍수지리로 왕릉을 선택하는 등 자연의 법칙을 중요시했다는 점과 현재까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각 왕릉에서 제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향후 관건은 개발과 보전의 조화 세계유산 보유국은 6년마다 한 번씩 현황을 조사해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개발 논리 일변도에 휩쓸리는 것이다. 독일 쾰른 성당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나 성당 주변에 고층 건물 계획이 세워지며 2004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또한 오만 아라비아 사막의 아라비아 오릭스(영양) 보호구역은 축소를 택하면서 취소되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종묘가 종로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 계획 등으로 등록 취소의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도 여당 국회의원이 내놓은 ‘15층 고도제한 완화’ 공약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우리도 세계유산에서 퇴출된 엘베 계곡과 같은 운명에 처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면서 “조선왕릉의 능묘 제도 복원 사업 기본계획을 토대로 복원정비하고, 능역 안에 들어선 태릉선수촌이나 군사시설은 유네스코와 약속한 시점까지 철거하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징비록, 백성 버린 선조 비판하려 써”

    “징비록, 백성 버린 선조 비판하려 써”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은 정계 은퇴 뒤 고향 안동 하회마을에서 수년간 은거하며 ‘징비록’을 썼다. 임란 한가운데 있었던 류성룡은 ‘내 지난 잘못을 반성해, 후환이 없도록 삼간다’(징비·懲毖)는 제목 그대로 선조의 거듭된 정계 복귀 회유도 물리치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전란의 전말을 기록했다. 과연 류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진정 반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박준호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출간한 ‘풀어쓴 징비록, 류성룡의 재구성’(동아시아 펴냄)에서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근본적인 의도는 백성을 버리고 떠난 선조와 위정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으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직설적인 비판은 불가능했으므로 류성룡은 행간에 이런 의도를 숨겨두었다. 예컨대 징비록에는 서울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는 선조 임금을 향해 어느 농부가 이렇게 소리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라님께서 우리를 버리고 가시니, 우리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박 연구사는 “전란의 소식을 접하기 힘든 시골 농부가 이런 말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류성룡이 농부의 입을 빌려 선조 임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류성룡은 임금이 조선 땅을 떠나면 조선은 우리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일본과 결사 항전할 것을 간곡히 청했으나 선조는 결국 피란을 선택했다. 전란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은 민초들이었다. 박 연구사는 “민심을 버리고 떠난 임금과 위정자들은 특권만을 누렸지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징비록은 반성과 책임을 모르는 그들을 대신한 류성룡의 반성문”이라고 말했다. 고문서학을 전공한 박 연구사는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 특별전 ‘하늘이 내린 재상, 류성룡’의 담당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류성룡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안동 종가를 드나들면서 문중의 도움으로 국보 132호인 ‘징비록’초간본 등 희귀 자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종가 어른의 설명을 들으며 유적을 답사하는 기회도 얻었다. ‘풀어쓴 징비록’은 징비록의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자료를 취합해 류성룡의 삶과 인생철학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민심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류성룡은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주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연구사는 “류성룡의 진면목을 알아갈수록 인생의 사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면서 “민심을 읽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위정자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영웅의 표상인 류성룡을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발로 뛰어 뒤져낸 동이족 문명

    요동지역 랴오허 문명(遼河·BC 6000년경)은 황허문명(BC 5000년경)보다 훨씬 먼저 동북아시아 지역에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중국은 이 문명을 중국 역사 속으로 끌고 갔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한족이 아니라 동이(東夷)족이 서 있었다. 지은이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를 ‘발해연안문명’이라 이름 붙였다. 발해연안에 터를 잡고 은(殷), 고죽국, 고조선, 부여 등의 국가를 세운 동이족의 문명을 고고학적 방법론과 유물 및 사료를 통해 되살려 냈다. 고문서와 박물관 유물만 뒤진 것이 아니라 직접 옛 동이족 활동지역에 있는 유적들을 찾아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다. 동이와 한족의 격전지였던 청쯔산·싼줘뎬 유적, 동이족 마을인 차하이·싱룽와 지역, 웅녀의 원형이 나타난 둥산쭈이 지역 등 동북아 일대를 답사했다. 지은이 이형구 교수는 평생 동북아 지역의 고고학을 연구한 인물. 공동 저자인 이기환 기자는 문화재 전문기자로 수년간 각종 현장을 발로 누볐다. 1년간 신문에 연재한 글을 대폭 수정·보완해 책으로 묶은 것. 학자 글쓰기의 치밀함과 기자 글쓰기의 대중성을 두루 갖췄다. 유적지, 출토 유물, 발굴현장 등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지도도 삽입해 보는 재미와 더불어 이해를 돕는다. 1만 75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책꽂이]

    ●러셀, 북경에 가다(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천지인 펴냄) 20세기 지성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이 1920년부터 1년 동안 베이징대학 철학과 초빙교수를 맡으며 얻은 중국에서의 경험과 철학적인 고민을 담았다. 동양의 지혜를 배우지 않고 멸시하면 서양 문명은 종말로 치달을 것이라는 내용. 1만 5000원. ●세계인문지리사전(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지음· 펴냄)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2만여곳의 지명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최근 외래어 표기법 반영. 로마자·한자·원어가 병기돼 있고, 인구·면적·산업·기후 등 지리와 지역의 역사 등 인문적 내용이 담겨있다. 19만 7000원.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펴냄) ‘고려무인 이야기’ 등을 통해 고려사를 꾸준히 탐색해온 저자가 1,2차 여·몽연합군의 실패한 일본원정을 통해 몽골과 고려의 관계를 분석했다. 1만 7500원. ●굴러가는 통나무의 아픔과 행복(안호범 글·그림, 이종문화사 펴냄) 서양화가 안호범 미술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원로화가의 글과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지면 갤러리. 1만 8000원. ●실러 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찰스 니콜 지음, 안기순 옮김, 고즈윈 펴냄) 런던의 뒷골목 모퉁이 집에서 하숙생활을 한 40대의 셰익스피어. 고문서를 통해 작가이자 배우, 극장 운영자로서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을 재현. 1만 5800원. ●세계사를 뒤흔든 전쟁의 재발견(김도균 지음, 추수밭 펴냄)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어느 분야도 전쟁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입증. 순대는 몽골 군대의 전투식량이었고, 인터넷도 군사용이었다. 1만 3000원. ●미네르바의 촛불 (조정환 지음, 갈무리 펴냄) 진보적 관점에서 촛불집회 1주년을 조명했다. ‘촛불은 광기다.’라는 말에는 현존 권력질서가 통제할 수 없는 괴물적 힘에 대한 강렬한 인정이 들어 있고, 촛불이야말로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반박한다. 1만 5000원.
  • 충무공종부, 정부에 유물 기탁

    충남 아산 현충사 경내의 충무공 이순신 종가 고택부지가 법원 경매로 넘어간 가운데 종부 최모(53)씨가 종가 소장 충무공 및 종가 관련 유물 100여점을 지난 30일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에 기탁 보관했다고 문화재청이 1일 밝혔다. 기탁 유물은 현재 국보나 보물로 지정돼 현충사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과는 별개이며, 서적이나 고문서류가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는 충무공에게 내린 교지(敎旨)를 비롯해 보물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유물도 5점 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이번 유물 기탁으로 일각에서 제기한 ‘이충무공 유물의 임의처분’ 문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탁 유물은 보존처리 및 소유자 측과의 협의를 거쳐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기탁은 소유권 일체를 넘기는 기증과는 달리 소유권은 원래 소장자가 그대로 유지한 채 보관 등의 관리권만 다른 기관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거대한 기계같은 다듬이질 소리… 가엾은 아낙네 밤낮없이 힘든 일”

    “거대한 기계같은 다듬이질 소리… 가엾은 아낙네 밤낮없이 힘든 일”

    “조선에서 지내는 첫날 밤은 여행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땅이나 이웃집에서 울려나오는 듯싶다가 이윽고 다른 초가지붕 밑으로 멀어지는가 하면 또다시 돌아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62쪽) 벽안의 이방인에게 구한말 조선은 집집마다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의 강렬한 청각적 자극으로 먼저 다가왔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음에 불과했던 다듬이질 소리는 그러나 수년간 체류하면서 조선 여성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실감케 하는 안타까움의 소리로 바뀌었다. “그칠 줄 모르는 맹렬한 발굽 소리 같다. 나는 이 가엾은 아낙네들이 밤낮없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는 현실에 얼마나 못마땅해 했던가.”(261쪽)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가 1904년 출간한 조선 체류기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정진국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원제가 ‘대한제국에서(En Coree)’인 이 책은 20세기 프랑스에서 출판된 조선 관련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으로 꼽힌다. ●잔칫날 풍경·죄수 이송 등 생생히 묘사 에밀 부르다레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 광산 및 철도 개발과 관련한 기술 자문역으로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구한말 문화와 풍속, 일상생활 등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밤마다 도시 전체에 퍼지는 다듬이질 소리를 비롯해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 나가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 잔칫날 풍경, 죄수 이송, 술 마시고 취한 사람들의 모습 등 비극적 격동기에서도 각자의 일상을 사는 각계각층 조선인들의 현실을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협률사 내부 구조와 공연 레퍼토리에 관한 글과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대목은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낯선 타국의 관찰기 성격이 강하지만 고고학자로서의 학구적 열의가 느껴지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북방의 고인돌에 관심이 많아서 개성을 여행할 때 가는 마을마다 고인돌에 대해 묻고, 강화도 전등사에선 귀중한 고문서들이 허술하게 관리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식탐 강한 민족·시어머니의 나라 폄하 외국인이 쓴 조선에 관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조선을 근대화의 대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적지 않다. ‘민중을 지배하는 귀신들’이란 표현으로 무속 신앙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는가 하면, 조선인을 식탐이 강한 민족으로 묘사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위세를 떨치는 ‘시어머니의 나라’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그가 책 말미에 적은 결론은 조선에 대한 애정과 반제국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진보에 대한 욕구가 있다. 최근 몇 년간 황제께서 보여준 기백 덕분이기도 하다. 이 풍부한 자연에서 행복과 독립을 보장받아야 하고, 그 민중의 따뜻한 정과 선의는 모든 이의 공감을 얻을 테니까.” (373쪽) 1만 6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추사 김정희 과거급제 증서 첫 공개

    추사 김정희 과거급제 증서 첫 공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문과 합격증인 홍패(紅牌)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일 한국학의 대가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소(SOAS) 명예교수가 추사의 홍패를 비롯해 조선시대 대표 역관 이경수, 광수 형제 가문의 제문 등 고문서 20여점을 장서각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홍패는 문과의 회시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던 증서로 붉은색 종이에 성적, 등급, 이름을 먹으로 적었다. 추사는 1819년 정기 과거시험인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9인으로 합격했다. 당시 장원은 김정희의 절친한 친구 조인영이었고, 합격자 총 39명 중 김정희는 18등이었다. 한중연은 “추사의 필적과 유품 등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홍패의 발견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 출신으로 유럽 한국학의 선구자인 도이힐러 교수는 1960년대 초반부터 한국학 관련 고문서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현재 서강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영월 신씨 문중자료 등 도난문화재 595점 회수

    문화재청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북 전주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도난문화재를 유통시키려던 강모(55)씨 등 문화재절도범 3명을 붙잡고, 영월 신(辛)씨 고문서와 문중자료 등 도난문화재 595점을 회수했다고 6일 밝혔다.되찾은 영월 신씨 문중자료 548점은 전라남도 민속자료 26호인 ‘영광 신호준 가옥’ 에 보관하고 있다가 지난 3월13일 한꺼번에 도난당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제문(祭文), 노비문서, 편지글 등 영월신씨 문중 자료 외에도 한말 독립운동가들의 문집도 여럿 남아 있다. 특히 의병장 기우만(1846-1916)이 쓴 신굉규(1815-1886)의 행장은 의병장의 친필 저술이라는 점에 가치가 높다. 독립운동가 면우 곽종석(1846-1925)과 그의 문하생 회봉 하겸진(1870-1946)의 문집도 들어 있다. 함께 되찾은 고문서 47점은 조선후기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서예작품을 모은 병풍이나 그림첩 등이다. 역시 호남지역에서 훔쳐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문화재청은 보고 있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가사문학 테마마을로 가꿔주세요”

    “가사문학 테마마을로 가꿔주세요”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인 전남 담양군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의 유적지에 ‘생태·문화마을’이 조성된다. 23일 자연환경국민신탁에 따르면 송강의 16대손 정구선(70)·홍혜미(64) 부부는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 마을 일대 4만㎡를 국민신탁에 내놓기로 했다. ●‘계당’·임야 등 20억원대… 경관 수려 정씨 부부가 신탁한 재산은 6·25전쟁 때 소실된 송강의 고택과 송강의 4남인 홍명이 1616년 지어 편액한 ‘계당(溪堂)’, 음식점, 임야 등이 포함됐다. 20억원대에 이른다. 이곳은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송강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계당이 있는 만수동 계곡은 수려한 경관과 함께 송강이 만년에 머물며 ‘만수명산로(萬壽名山路)’로 부르던 옛길로 유명하다. 정씨 부부는 지난해 계당에 보관해 온 고문서 등 4100여점을 전남대 등에 위탁한 데 이어 또다시 문중 재산을 신탁했다. 정씨는 “400년 넘게 간직한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도 모자라 투기꾼까지 주변에 들어오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의 재산이 아닌 공유의 재산으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싶었다.”며 “가사문학 테마마을을 조성해 모든 사람이 머물고 두루 둘러보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택 복원… 생태·문화마을로 국민신탁은 정씨의 뜻대로 소실된 고택을 복원해 가칭 송강 문학의 집으로 꾸미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임야를 보존해 생태·문화마을로 만들기로 했다. 국민신탁은 또 문화유산 국민신탁과 함께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 인근 누정(亭)을 소유한 문중으로부터 신탁을 유도해 이 일대를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살아 있는 문화 벨트로 조성할 방침이다. 국민신탁은 2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정씨와 신탁계약식, 프로젝트 구상 발표회를 열고 27일에는 이만의 장관 등 환경부 관계자를 초청해 현지를 답사할 예정이다. 담양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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