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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국가유공자’ 후손, 군역 등 면제됐다

    조선시대 전쟁 공신들의 후손에 대한 보훈정책을 보여주는 고문서가 공개됐다. 경상대 한문학과 허권수 교수는 5일 “정구룡 장군의 13대손 정봉영(65)씨가 선조 때부터 보관한 ‘정사은 소지(所志)’에 이같이 기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내용을 확인하려고 최근 허 교수에게 문서 해석을 부탁했다. 정구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왜군 토벌대장 정기룡 장군의 좌막(佐幕·무관 벼슬)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 의령, 함양, 진주, 사천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해 신임을 얻었다. 이듬해엔 거창에서 대승을 거뒀다. 고령·성주·합천·초계·의령 등을 탈환하고 경주·울산을 수복할 때도 선봉에 섰다. 정구룡 장군은 36세이던 1598년 10월 왜군을 토벌하고 돌아가다가 매복해 있던 적군의 조총을 맞고 별세했다. ‘평생 충의충용을 위해 살아온 충신’이란 장계를 받은 조정은 ‘호조판서’ 추증과 선무원종(무공훈장급) 1등 녹훈을 내렸다. 장군의 자손들은 ‘전쟁 공신의 후손을 예우한다’는 호국보훈 정책으로 부역·군역·조세·대동미 등 각종 신역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장군 사후 242년에 8세손 정사은이 양자를 들이자 함안군수가 양자에게 신역을 부과했다. 정사은은 신역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진정서 ‘소지’를 군수에게 냈으나 거부됐다. 1842년 정사은의 진정서를 받은 암행어사는 군수에게 즉각 면제를 지시했다. 이후 정구룡 장군의 후손들은 1910년까지 312년에 걸쳐 정부의 각종 신역을 면제받았다. 정씨는 “전쟁공신의 후손을 대우하는 정책이 조선을 519년간 존속하게 한 힘인 것 같다”며 “대한민국 정부도 6·25 참전자 등에 대한 보훈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 100여년 전 ‘역사적 원본’ 인터넷서 생생히 만난다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 100여년 전 ‘역사적 원본’ 인터넷서 생생히 만난다

    서울신문의 모태로 100여년 전 최대의 항일 민족정론지였던 대한매일신보(등록문화재 제509호·1904년 7월 18일 창간) 원본이 디지털 공간에 옮겨졌다.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해 일제에 맞섰던 민족의 목소리와 정치·사회·문화 등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서울대는 그동안 소장해 온 대한매일신보의 디지털 작업을 완료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대가 소장한 방대한 고(古)신문 원본 가운데 디지털 복원 작업이 이뤄진 것은 대한매일신보가 처음이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지난해 9월 한국언론진흥재단, 국립고궁박물관과 함께 고신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위한 공동협력 협약을 체결하고 이번 작업을 추진해 왔다. 서울대가 원문을 제공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예산을 댔다. 이번에 복원된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8월 11일자부터 1910년 8월 28일자까지 1461일분(호외 4호, 부록 13호 포함)으로 총 5838면에 이른다. 통상 신문은 전체 크기에 비해 종이의 두께가 얇고 질이 낮아 다른 고문서에 비해 복원이 훨씬 까다롭다. 서울대가 소장하고 있던 대한매일신보 역시 바싹 마른 낙엽처럼 잘못 손댔다가는 그대로 바스러질 만큼 열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모두 5개월 이상 걸린 이번 작업에서 서울대 전문복원팀은 6000장에 육박하는 원본을 상하지 않도록 한장 한장 떼어 분리하는 데만 여러 달을 보냈다. 이렇게 분리된 신문은 전문 복원 업체의 사진 촬영과 이미지 보정 작업을 거쳐 이미지로 가공됐다. 이미지 상태로 복원됐지만 문자인식 기술을 통해 인터넷에서 본문 자체에 대한 직접 검색이 가능하다. 홍순영 서울대도서관 학술연구지원팀장은 “대한매일신보는 100년이 넘는 자료라 종이의 질이나 잉크의 상태가 취약해 고도의 예민함이 요구됐다”면서 “마이크로필름에 신문을 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검색도 쉽지 않아 자료가 더 취약해지기 전에 디지털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디지털 복원과 별도로 상태가 극히 안 좋은 신문에 대해서는 물리적 수리를 거쳐 온·습도가 최적 상태로 유지되도록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고문헌 자료실에 영구 보관하기로 했다. 디지털 복원된 대한매일신보는 서울대도서관 홈페이지(library.snu.ac.kr),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www.kinds.or.kr) 등에서 원문 보기 및 기사 검색이 가능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2013년은 고려인의 선조들이 두만강 너머 연해주 지신허에 최초의 고려인 마을이 들어서고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역사는 있지만 역사서는 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서를 건네주고 싶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고려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인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호준(70). 러시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사는 50만 고려인의 역사를 정리한 책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주류성 펴냄)를 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신문사 대선배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의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하다”고 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고려인에 ‘꽂힌’ 건 2002년 여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한국에서 6000㎞나 떨어진 산악지대에 고려인 2만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오지 중 오지인 이곳까지 흘려들어왔고, 무얼하며 먹고사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키르기스 고려인에 대한 궁금증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전체의 고려인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만 15~6차례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인터뷰한 고려인만 100명가량은 된다”고 했다. 고려인 이주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는 대로 모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옛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빛을 본 고려인 강제이주에 대한 기록들이 책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러시아에도 한국에도 고려인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책 한 권이 없더라. 기가 막혔다. 소련의 민족사 교과서는 수천 명밖에 남지 않는 소수민족까지 다루면서 40여만명에 이르는 고려인에 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해방 후 북한정권 창건에 참여해 건설상까지 지냈다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역사학자 김승화가 1960년대에 출간한 ‘소련 한족사’도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 책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별로 개괄한 통사(通史)인 동시에 고려인의 한 서린 수난사인 통사(痛史)”라고 정리했다. 저자는 고려인의 역사를 크게 4차례의 대이주를 경계로 정리, 복원했다. 첫번째는 1860년대 조선 땅에서 살 수 없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다. 두번째는 1937년 일본의 러시아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 두려웠던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내몰리며 삶이 뿌리째 뽑힌 시기다. 이어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인 재이주가 이뤄지며 고려인은 1차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5개의 민족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경제난과 차별정책에 몰려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길에 올랐다. 저자는 연해주 고려인을 다룬 앞부분의 상당 부분을 항일 독립운동에 할애했다.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왔다 남은 사할린 고려인도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저자는 “‘한과 슬픔의 역사’인 고려인의 유라시아 이민사를 정리하면서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시련을 기회로 만드는 강인함과 개척 정신이다”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150년 고려인의 발자취를 530쪽에 정리해놓았는데도 술술 읽힌다.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30년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0여차례의 현지방문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최 류드밀라를 비롯해 키르기스스탄 3선 의원 신 로만, 최장수 각료 김 니키포르, 탈영한 북한군 대위 출신 김수봉 부부, 연해주로 이주한 최 니키타, 고려인 출신으로 16년째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맡고 있는 편 위탈리 등과의 인터뷰와, 이들로부터 들은 일화 등은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들이다. 고려인 작가들의 시와 화가의 작품, 수집한 다양한 사진 자료들도 또 다른 볼거리다. 현재 52만 3000여명의 고려인 가운데 러시아 고려인이 21만 3000명으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1만명의 고려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개척자 정신이라는 DNA를 갖고 있는 고려인들이야 말로 우리(한국)에게 21세기를 함께 열어가야 할 대륙의 인도자가 되고 있다”며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균미 문화부장 kmkim@seoul.co.kr
  • “디브러리 이용 편하게 시스템 구축할 것”

    “디브러리 이용 편하게 시스템 구축할 것”

    국가대표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이하 중앙도서관)이 어째서 그 역량을 민간·대학 도서관에까지 발휘하지 못할까. 중앙도서관 ‘도서관 민간 경력 사무관 제1호’ 이현주(39)씨가 이 조직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민간경력자 5급 일괄 채용에서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중앙도서관 디지털기획과에서 녹봉을 먹은 지 한 달 남짓. 공직에 대한 생각이 수없이 바뀌었다. 일주일 단위로 수백 권씩 쏟아지는 신간 목록을 사서 서너 명이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루종일 꼬박 앉아 일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충남대에서 문헌정보 전공으로 박사까지 마쳤고, 16년간 대학도서관에서 목록 업무부터 학술정보, 디지털업무, 관리까지 전 과정을 섭렵했지만, 중앙도서관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무원은 칼퇴근”이라는 비아냥이 이제 억울할 지경이다. 수영, 라켓볼, 스포츠 클라이밍, 검도 등으로 단련된 체력이지만 한 달 만에 힘이 쪽 빠졌다. 대전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까지 따라와 준 남편과 다섯 살짜리 아들 얼굴을 보면서, 도서관 민간사무관 1호라는 책임감으로 그는 목표를 다잡는다. 7일 만난 그는 “동서양 신간뿐만 아니라 고문서, 서화 족보 등 고전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디브러리’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최대 장점이지만, 이용률이 낮다”면서 “더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학제간 혹은 초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학제간 혹은 초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최근 우리 학계는 통섭과 융합이란 말로 학제 간 혹은 초학제 간 연구 방법을 숙의하고 있다. 물론 통섭이라든가 융합이라든가, 학제 간이라든가 초학제 간이라든가 하는 하나하나의 용어가 지닌 함의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전공의 좁은 범위에서 자족하는 연구가 아니라 전공분야를 뛰어넘는 연구 속에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또 각 분야의 연구방법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은 비슷하다. 얼마 전에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BK21 사업팀이 문화콘텐츠 총서를 간행한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문분야 학제 간 연구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3권은 ‘제화시-인문정신의 문화적 가치’라는 제목인데, 이것은 2007년 2월 세미나를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물이다. 참여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그림 속에 나오는 제화시(題畵詩)를 주제로 글을 모아 그 시대 선비들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또 한림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각각 다른 연구팀이 근대 지식 개념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에 대해 연구한 것도 상당히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고 본다. 사실 그동안 각 대학의 BK21사업은 학제 간 소통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대개의 사업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끝나는 듯한데, 그 득실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할 말이 많으리라.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공만이 아니라 타 전공으로 시선을 확대할 좋은 기회가 되었을 듯하다. 필자 또한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문학을 재해석하게 되었으며, 기초논리학의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초학제 간 연구 방면에서는 올해에 고등과학원이 초학제독립연구단을 결성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단은 사유 패러다임의 문화적 차이와 학문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면서 학문 융합의 방법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2회 심포지엄에 참석했는데, 여러 연구자의 말씀을 청취하면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이 연구단이 사물의 분류와 지식의 탄생, 동서양의 시공간 인식 태도 등등 여러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 나가길 기대한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개별 연구들이 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편, 그것이 거꾸로 개별 분야의 연구를 심화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고 믿는다. 2년 전 일본의 메이지 대학에 객원교수로 있을 때 대학원 전담 과목 이외에 두 개의 대학원 학제 간 연구 과목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과목의 이름은 ‘문화계승학’과 ‘종합사학’이었다. 그 두 과목은 일본문학, 일본사학(특히 고문서학), 중국사학, 고고학, 민속학 분야의 전공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연구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기왓장의 문양, 탑신의 형태, 일본 고문서, 일본 신화론 따위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생각했지만 차츰 많은 흥미가 일었다. 더구나 하나의 문물, 문서 혹은 문자표기체계가 어떻게 전파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방법론은 내 분야에서 지식 담론의 생성과 유통을 분석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우리 대학교에는 아직 학제 간 통합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문과대학 내에 문이회(文以會)라는 교수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신간을 준비 중이거나 출판한 연구자가 자신의 저서를 소개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질의하여 연구주제를 예각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공이 다를 경우 용어도 방법도 모두 생소하지만, 문과대학의 여러 학문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담론들이 이 모임에서 이루어진다. 게다가 학교 차원에서는 학문소통위원회가 정기적인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학문의 소통과 융합에 관해 학내외의 다양한 연구자들로부터 고견을 청취하고 있다. 대단위 연구 사업, 대학 내 학문소통의 모임, 대학을 넘어선 초학제 간 심포지엄 등이 우리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공동 연구나 통합 연구가 더욱 내실 있게 운영되기를 기대하고, 또 정부의 유효한 지원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 동학혁명기념관 유물 구입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전시와 연구, 교육을 위해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물을 구입한다. 구입 대상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전후의 고문서와 무기, 교통, 농경, 의식주 관련 자료 등 동학농민혁명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유물이다. 신청 기간은 다음 달 11일부터 17일까지이며, 유물매도신청서와 매도대상유물명세서, 신분증, 유물 사진 등을 제출하면 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단종 누나 경혜공주 분재기 발견

    단종 누나 경혜공주 분재기 발견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남편과 동생 단종을 비명에 잃은 경혜공주(敬惠公主·1436~1473)가 죽기 직전에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 준 문서, 분재기(分財記)가 발견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은 최근 해주 정씨 대종가에서 제공받은 1300여 점에 이르는 고문서에서 ‘경혜공주인’(敬惠公主印)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찍힌 분재기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김학수 한중연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조선시대 공주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자기 인장을 찍어 남긴 고문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해주 정씨 대종가는 지난해 방영된 KBS 2TV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실제 주인공인 정종의 종가다. 가로 66㎝, 세로 70.5㎝인 이 분재기는 성화(成化·명나라 헌종의 연호) 9년(1473년) 12월 27일 유일한 혈육인 정미수(鄭眉壽·1455~1512)에게 재산을 나눠 준 내용을 담았다. 문서에서 공주는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 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정선방(貞善坊·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에 있는 가사(家舍·집)와 통진(지금의 경기 김포시)에 있는 밭과 땅을 먼저 허락해 준다(물려준다).”고 적었다. 아울러 공주는 정선방에 있는 집은 자기가 죽은 뒤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받들어 자손에게 전하고 오래도록 지니고 살라고 당부했다. 경혜공주는 분재기를 작성하고 사흘 뒤인 12월 30일 별세했다. 문서 작성에는 문종의 서녀인 경숙옹주(敬淑翁主·1439~?)의 남편 반성위(班城尉) 강자순(姜子順) 등 증인으로 참여한 3명의 수결(手決·서명)이 있다. 한편 이번 분재기를 통해 경혜공주가 순천이나 장흥의 관노(官奴)가 됐다는 조선 후기 일부 문집이나 야사의 기록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공주 신분을 계속 유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미수는 이후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이 돼 가문을 일으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고인돌·우포늪 함께 숨 쉬는 땅 창녕

    고인돌·우포늪 함께 숨 쉬는 땅 창녕

    경남 창녕은 역사와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낙동강을 자양분으로 문화와 경제가 번성했고, 국내 최대의 자연늪인 우포늪과 천년고찰 관룡사를 품은 화왕산이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과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 창녕읍·계성면·영산면 등에 있는 고분군, 고려시대 불교문화, 향교와 서원 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즐비해 역사가 살아 있는 땅이기도 하다. EBS ‘한국기행’은 21일부터 25일까지 매일 오후 9시 30분에 생태관광도시로 유명한 창녕을 따라간다. 21일 1부에서는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 생태계의 고문서 등으로 일컬어지는 우포를 조명하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다, 우포’를 방송한다.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우포는 231만㎡에 이르는 지역에 1500여 종에 이르는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곳 생태계 역사를 1억 4000만 년으로 짐작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곳에서 인간은 가장 늦게 발을 디딘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30년째 우포에서 고기를 잡아 온 소목 마을의 어부 노기열 할아버지부터 29세에 시집 와서 지금까지 논우렁이를 잡는 우포 해녀 임봉순 아주머니까지 우포늪을 “생명의 창고이자 금고”라고 추앙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2부 ‘화왕산, 붉게 타오르다’(22일)에서는 한때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 큰불뫼로 불렸던 화왕산을 찾는다.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757m인 화왕산은 봄에는 진달래로, 가을에는 억새로 뒤덮인다. 진달래 향기와 풍경에 취해 오르는 길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 둘레 2600m짜리 화왕산성, 배바위 등을 볼 수 있다. 화왕산의 절 관룡사 용선대에서 석조여래좌상의 미소와 창녕시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화왕산 자락 아래에 있는 옥천마을에서는 진달래 화전을 맛보며, 고암면 감리 마을에서는 화왕산의 맑은 물로 자라는 미나리 향기를 맡으며, 봄 풍경을 만끽한다. 3부 ‘개비리길을 따라 낙동강은 흐르네’(23일)에서는 낙동강을 끼고 펼쳐진 아름다운 벼랑길 ‘개비리길’과 남지읍의 영아지와 용산리를 잇는 ‘남지개비리길’을 만난다. 장수 마을로 꼽힌다는 상길 마을에서는 건강비결이라는 땅두릅 예찬론도 들을 수 있다. 이어 4부 ‘연당리의 봄’(24일)에서는 자연이 만드는 여유와 신명을 즐긴다. 연당리는 창녕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산골 마을. 5월에는 배꽃이 활짝 피어 마을 곳곳이 흰색으로 물든다. 고사리, 두릅, 취나물 등을 산나물을 채취하고 비슬산 계곡에서는 메기를 잡으며 여유를 찾기도 한다. 5부 ‘우(牛)직함을 만나다’(25일)에서는 부곡에서 생활하는 영화배우 남포동씨를 만나 창녕 5일장과 창녕 우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따라가본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는 게 힘!… 교육 앞세워 日독도침탈 격퇴”

    “아는 게 힘!… 교육 앞세워 日독도침탈 격퇴”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다시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민간 차원의 독도 교육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를 넘어 독도의 생태와 환경, 역사 등 독도의 모든 것에 대한 다양하고 실질적인 교육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특히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일반인까지 고려한 학년별·연령별 맞춤형 독도교육이 활발해지면서 독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정부는 ‘2012 외교청서’를 통해 “한·일 간에는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공표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대국민 독도 교육 및 홍보에 나서 독도 지키기에 나섰다. ●동식물 표본·지형 3D영상·앱 활용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내고 “일본의 왜곡된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에 대응해 초·중등학교 독도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도전시회 개최와 교재 배포, 독도 지킴이 거점학교 지정 등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독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수호의지를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3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시작된 ‘아침을 여는 섬, 우리 땅 독도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독도 전시회는 역사와 과학을 접목시켜 전시장을 찾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시에는 독도와 관련된 고문서와 지도는 물론 독도 동식물 표본, 독도 지형 등을 3D영상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활용해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전시회는 다음 달 20일까지 국립중앙과학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오는 12월까지 제주권, 호남권, 영남권에서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 동북아 역사재단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독도교육을 위해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독도학습 부교재를 제작해 지난 2월 전국에 보급했다. 재단은 이 교재를 전국의 중학교 3학년생 모두(70만명)와 고교 1학년생(60만명)에게 배포하고 이달 안으로 전국의 초등 6학년생 전원에게도 추가로 70만부를 배포할 계획이다. 교과부와 재단은 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재량활동 시간 등을 활용해 연간 10시간 내외의 독도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온라인상에서는 독도 교육이 더욱 활발하다. 사이버 독도 교육의 장으로 알려진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http://dokdo.prkorea.com)에서는 청소년과 학생, 일반인들이 직접 세계 곳곳에 잘못 알려진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는 독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가 지난 2009년 3월 시작한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에는 수년간 축적된 독도 관련 사진과 고문서,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갖춰 독도의 역사부터 생태까지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독도와 동해’, ‘60억 세계인에게 독도 알리는 법’ 등 온라인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에서는 독도체험 소감 및 세계인에게 알리는 서한문쓰기와 독도, 동해가 우리나라 영토로 제대로 표기된 세계지도와 한국지도를 초·중·고등학교 교실, 대학 강의실에 무료로 보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도 교육 학문적 기반 구축 목표 국내 최초의 독도 관련 단일 전공으로 눈길을 끈 한국복지사이버대학의 ‘독도학과’는 독도에 관한 대중적인 지식, 지식을 전파하고자 하는 봉사 마인드를 가진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학의 독도학과는 교과부 주관 2011년 원격대학 경쟁력 강화사업에 ‘독도학과 신설 프로그램’을 제출해 현장 활용성이 높은 사이버 학과로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또 지난 1월 경상북도 울릉군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독도의 영유권 강화를 위한 인적·물적, 사회과학적 자원을 교류·협력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최원석 총장은 “독도를 정치·사회·지리·환경·역사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독도학과 신설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도학과는 독도를 둘러싼 다양한 학문 분야와 민간외교, 자원봉사, NGO 활동 등과 같이 실천적 분야로 교육과정이 구성됐다. 졸업 후에는 시민·사회단체에서 독도 전문가로 활동하거난 초·중·고 방과후 수업 등에서 전문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독도교육사’, 관광객을 대상으로 독도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독도해설사’로 활동할 전망이다. ●학생들 고양·양산서 동아리 창단 정부와 학교, 민간단체에서 실시하는 독도 교육 외에도 학생들이 직접 나서 독도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실천하는 동아리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저현고등학교는 지난 2일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침탈 야욕을 규탄하고 독도 동아리 창단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독도 동아리 활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창단식에는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 길종성 독도사랑회장을 비롯한 학부모,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동아리 회장을 맡은 2학년 한주희양은 “독도를 알아야 독도를 지킬수 있다.”면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독도지킴이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학교 오동석 교장 역시 “일본 정부가 학생들에게 위안부, 독도 등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독도 침탈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침탈야욕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시의 양산청소년도서관도 지난 2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청소년 독도사랑 동아리’ 회원을 모집해 지난달 27일 발대식을 가졌다. 동아리에 참여한 청소년 22명은 앞으로 독도에 대한 기본정보 교육과 문헌상의 증거 수집, 독도 알리기 및 독도의 날 홍보 캠페인 추진, 독도탐방 및 현장 캠페인 전개, 독도사태 현안분석 및 토의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세계7대 불가사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본명 밝혀졌다?

    세계7대 불가사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본명 밝혀졌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공중도시’로 잘 알려진 잉카 유적지인 마추픽추의 본명이 밝혀진 것일까. 스페인의 한 역사학자가 마추픽추의 원래 이름이 파탈락타(Patallaqta)라고 주장했다고 20일 스페인 일간 ‘엘 파이즈’ 등 현지 신문이 전했다. 마리 카르멘 마틴 루비오 박사는 페루를 정복한 스페인의 한 기록가가 1551년에 작성한 82장의 고문서를 발견했다. 이 고문서는 당시 후안 드 베타나소스라는 남성이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아타우알파 와 왕비와의 대화를 통해 작성된 것으로, 마추픽추의 본명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마틴 박사에 따르면 마추픽추의 본명이 ‘파탈락타’였으며, 이는 페루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계단의 마을’이란 의미다. 마틴 박사는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란 뜻이지만, 케추아어로 봉우리는 오르코(orgo)였다.”면서 “픽추는 스페인어에서 봉우리(피크)의 발음이다. 마추픽추는 본명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마추픽추 전문가인 페루 역사학자 페데리코 코프먼 도이그는 마틴의 이론을 봤고 파탈락타는 마추픽추의 본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추픽추는 다른 이름이 존재한다는 설이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마추픽추 가까이에 같은 이름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작성자가 두 유적을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어 진위는 불투명하다. 한편 산 위에 계단 형태로 지어진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이 1532년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지난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발견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다수 개최되기도 했다. 사진=엘 파이즈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조선시대 ‘日記 뱅크’ 마련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조선시대 ‘日記 뱅크’ 마련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조선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은 어떤 일기를 썼을까. 설명이 많으면 감동이 없는 법, 흥미로운 몇 가지 예로 직접 느껴보자. #하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채 보름도 안 된 1592년 음력 5월 12일 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광해군의 빈궁이 해산을 했다. 광해군이 생산한 첫 자식이다.’ 이 내용은 당시 내원의 제조로 광해군의 분조(分朝)를 수행했던 정탁(1526~1605)의 ‘피난일기’에 적혀 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졌던 광해군의 첫 자식 출산이 1598년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 기록은 6년이나 앞당겨져 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왕자인지 공주인지 모르며 이후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둘 ‘1617년 6월 25일 김택룡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아들 김각이 내일 과거시험을 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험장에 타고 갈 말을 빌리고 시험 칠 때 사용할 붓을 빌린다. 이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사용한 붓을 통해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목욕재계을 한 후 제물을 꼼꼼히 챙겨서 제사 준비를 마쳐둔다. 이후 시험 답안지를 정부 규격에 맞추어 꼼꼼하게 마름질하고 시험 치는 사람의 신상명세를 기록한 녹명단자도 준비한다. 온갖 기원을 담아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시험장에 가야 하는 26일 모든 가족이 모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낸다. 먼 길 떠나는 아이의 편의를 봐 달라고 의흥현감에게 보내는 편지도 작성한다.’ 요즘 수능 시험을 치르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심정과 비교할 수 있어 눈길을 끄는 일기 내용이다. #셋 ‘1780년 8월 15일 맑음. 어느새 명절이 되고 보니 성묘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주막 사람이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하여 노자가 거의 떨어졌다. 명절날 한번 배부르게 먹는 것도 마련할 수 없으니 진실로 한번 웃고 말 일이다.’ #넷 ‘1599년 11월 15일, 조익(趙翊)과 동지사(冬至使) 일행은 황궁의 서관(西館, 사신관)에 머물고 있었다. 이날 명나라 예부에서 관리가 공문을 가지고 와 내일 하사품을 받을 것이라 알려 주었다. 다음 날(11월 16일) 동지사 일행이 대궐로 나아갔다. 명나라 예부주사(禮部主事)는 조선의 사신들에게 하사되는 물품을 감독하여 지급하였다. 표저의(表紵衣) 각 두 벌, 흑단(黑段) 4필, 황기(黃綺) 각 4필, 청(靑, 청포) 2필 등의 물품이다. 그리고 사신의 옷에는 협금(挾金)을 사용하였고 하사품의 양도 두 배로 하였다. 수행원에게는 다만 견의(絹衣) 한 벌, 청(靑) 2필을 지급하고, 화청(靴淸) 등의 물품도 있었다. 광록시(光祿寺)에서 규례대로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는 것은 5일에 한 차례, 사신과 수행원 21명에게 지급하였다. 돼지고기 52근(斤) 8냥(兩), 향유(香油) 2근 10냥, 염장(鹽醬) 각 5근 4냥, 화초(花椒) 4냥, 엽채(葉菜) 3근 4냥, 쌀 1석(石) 5승(升), 술 52병 반, 야채 2근 6냥이었다. 황제가 내리는 일상 생활 물품은 단지 한 차례 내려주는데 양(羊) 네 마리, 거위 네 마리, 닭 여섯 마리, 다식(茶食) 네 접시, 호두 네 접시, 향유 2근 10냥, 염장 각 5근 4냥, 화초 5냥, 엽채 3근 4냥, 쌀 2석 1두 1승, 술 42병, 야채 26근이었다.’ 당사자가 직접 쓴 일기도 있고 옆에서 본 사람이 쓴 내용도 있다. 얼핏 봐도 당시 시대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말 그대로 재미가 무궁무진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 소장돼 있다. 200자 원고지 4장 분량의 일기 목판이 무려 6만 3000여장이나 보관돼 있다. 10만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국내 유일의 10만대장경을 기록하는 셈이다. 그저 단순한 일기뿐만이 아니다. 첫째 예에서 보듯 정탁의 ‘피난일기’는 사료적 가치가 보물급이다. 현재 번역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올해 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김병일(67) 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김 원장은 국학진흥원뿐만 아니라 선비문화수련원의 이사장도 맡아 ‘선비정신’의 전파,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두루마기가 잘 어울리는 김 원장에게 먼저 국학진흥원에 수집된 자료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고문서와 고서, 목판 등과 같은 민간 소장 전통 기록 유산이 주류를 이룹니다. 기탁 수집 방식을 통해 국학 자료 33만 9000여점이 보존돼 있어 국내 한국학 관련 연구소 가운데 최대 소장량을 자랑합니다. 국보급 1종(징비록)과 보물 52종 등 고문서 16만 7000여점, 고서 10만여점, 일기류 목판 6만 3000여점 등의 다양한 문화재 자료가 보관·보존돼 있지요.” 기탁 수집 방식이란 원 소장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수집된 자료에 대한 관리와 연구 및 학술적 가공의 권리만 가지는 제도를 말한다. 이 방식은 국학진흥원에서 처음 채택했다. 국학진흥원의 보물창고라고 알려진 ‘장판각’으로 장소를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장판각에 보관된 일기류 기록 자료들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러한 일기류 자료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높고 문화 콘텐츠 산업에 활용 가능한 일기류를 선별해 번역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지요. 한문으로 기록된 자료를 한글로 옮김으로써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면서 이야기 소재 뱅크를 구축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600여개의 소재를 개발했고 올해도 600여개의 소재를 개발할 예정이다. 향후 1만여개의 이야기 소재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작자들을 위한 최대의 창작 인프라를 구축해 우리의 이야기에 기반한 세계적인 한류의 전진 기지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특히 장판각에 보관된 일기류들은 우리나라 선비·유교문화의 실생활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특별하다. “선현들이 남긴 거룩한 내용(일기)들이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 여러 사극도 이런 소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요.” 최근 국학진흥원에서는 ‘조선시대 일기류를 활용한 전통문화 콘텐츠 소재 뱅크 활용 방안과 전망’이란 주제로 ‘전통문화 콘텐츠 소재 뱅크 보고 및 시연회’를 가져 창작인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끌었다. 허구의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사실 정보를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이상의 현실 같은 이야기 소재’여서 창작자들에게는 최고의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학진흥원의 장판각 일기 보관소인 셈이다. 세계적인 소설이자 영화인 ‘해리포터’가 영국 전통문화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한국판 ‘해리포터’는 전통문화의 보고인 국학진흥원의 장판각 일기를 참고한다면 충분히 생산 가능한 일이라고 김 원장은 강조한다. 이뿐만 아니다. 국학진흥원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조손(祖孫) 세대 간의 문화 소통을 통해 미래 세대(유아 및 아동)의 인성을 함양시키고 민족적 정서가 배어 있는 이야기 구연을 통해 민족 문화를 전승하는 사업을 말한다. 3년 전 시작한 이 사업은 56세 이상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지난해 300명, 올해 600명, 내년 1000여명의 이야기 할머니들이 전국 3000여개의 유치원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래동화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이야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즘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이런 미담을 들은 아이들이 자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김 원장은 말한다. 이어 화제를 어른들로 돌려 선비수련원 이야기를 꺼냈다. 2001년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설립된 선비수련원에는 그동안 10만명 가까이 다녀갔을 만큼 해마다 인기를 더해가고 있단다. 처음에는 주로 학생과 교원이었으나 최근에는 관공서 직원, 기업인과 일반인 등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오늘날에 선비 정신의 중요성을 새삼 체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퇴계 선생의 청량산행 시를 인용한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친구 이문량에게 쓴 시로 조급해하지 않는 여유와 기다림의 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병일 원장은 194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대에서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를 거쳐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1994), 국회예산결산특위 수석 전문위원(1995~1997), 통계청장(1997~1998), 조달청장(1999~2000), 기획예산처차관(2000~2002), 금융통화위원(2002~2003), 기획예산처장관(2004~2005), 한국개발연구원 자문위원(2005~2008)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장,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상훈으로는 황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다. 구미 선진국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 과정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때는 주권마저도 빼앗겨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전통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급격한 외래 문물의 유입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또다시 걸림돌로 인식돼 우리 것은 점점 멀어지고 버려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그간 우리는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든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안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후진국 수준이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원 폭력 문제도 그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상들의 삶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선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 우애가 넘쳤으며 가정은 화목했다. 또한 사회는 예의가 넘쳐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그것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배려와 양보를 솔선수범하며 몸으로 가르친 어른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인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은 방대한 문헌 기록을 통해 전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인들이 남긴 기록 자료는 보석보다 값진 유산이다. 문제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들 자료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 다른 것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돼 있어 국역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고문서는 초서(草書)가 대부분이어서 탈초(脫草)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예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겪지 않는 우리만의 고충이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그들의 현재 문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칸트의 저작을 읽을 수 있고, 중국과 일본 사람도 지금의 문자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그들 조상의 기록과 만날 수 있다. 유독 우리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오늘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귀감으로 삼는 데 탈초와 국역이 필수불가결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전통적인 교육을 충실하게 익힌 한학 원로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지만 그들을 이어 갈 세대의 배출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 보물을 포클레인이 아닌 숟가락으로 퍼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이런 가운데 임진년 새봄을 맞아 지방에서 한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개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몇 년 전 개원한 전주분원에 이어 밀양분원을 세우고, 한국국학진흥원은 한문교육원 대구강원을 연다. 그동안 한문 교육기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 지방 한문 교육기관의 등장으로 선현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 활용할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국역 전문가 양성은 인성 함양, 화목한 가정의 회복, 예의 염치가 통하는 사회의 구현 등 오늘 우리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고, 옛 기록 속 이야기 소재의 발굴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이다. 그 중심에 새롭게 길러질 국역자가 있다. 국역 관련 인재 양성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과 관심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 ‘보물’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보물’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문화재청은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와 포항 중성리 신라비 등 문화재 15건을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중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양산 통도사 은제도금아미타여래삼존상과 복장(腹藏) 유물, 문경 봉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 유물, 속초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양산 신흥사 대광전 벽화, 불조삼경(佛祖三經) 등 불교 문화재가 10건이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 조선시대 산학(算學) 기본서인 양휘산법(楊輝算法), 조선 중기 문인 김응남의 전기(傳記) 자료인 김응남 호성공신교서(扈聖功臣敎書) 및 관련 고문서, 이순신 장군 관련 고문서인 사패교지(賜牌敎旨), 증직교지(贈職敎旨)도 보물로 지정됐다. 한국적 수각형(獸脚形) 향로인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는 출토 경위가 확실하고 보존 상태가 완벽한 데다 통일신라 시대 대형 향로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빨라 문화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괴물 벌레?…아이슬란드서 괴생명체 포착

    괴물 벌레?…아이슬란드서 괴생명체 포착

    아이슬란드의 한 호수에서 거대한 벌레 같은 괴생명체가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2일(현지시각) 아이슬란드 방송 RU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한 지역 주민이 라가르플리오트 호숫가에서 수십 m 정도로 보이는 뱀처럼 생긴 괴생명체를 촬영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곳곳에 얼어붙은 차가운 수면에 형체를 알기힘든 길고 커다란 괴생명체가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마치 커다란 뱀이나 악어라고 추정할 수도 있지만 이들 파충류는 변온동물로 차가운 물에 들어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소식이 보도되면서 현지인들은 아이슬란드 전설로 내려오는 라가르플리오트 소르뮈린(벌레)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가르플리오트 소르뮈린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지만 14세기인 1345년 고문서를 통해 그 존재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으며 이후 목격담이 이어져 왔다. 전설 속에서는 라가르플리오트 소르뮈린은 길고 커다란 벌레 형상을 하고 있으며 주로 물가에 서식하며 때로는 땅 위로 기어 올라온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런 옛이야기들은 주로 지역 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나 전설이지만, 미국의 ‘빅풋’,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시’, 그리고 아프리카 콩고의 ‘모케레 음베음베’ 같은 미확인괴생명체의 존재를 나타내는 고대 문화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편 아이슬란드의 벌레 괴물은 사람이 준 금반지 등의 보물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RUV 영상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선현들의 삶 스토리텔링을 입는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선현들의 삶 스토리텔링을 입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드라마를 많이 보는 국민도 드물다. 많은 시청자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황금시간대는 대부분 드라마로 채워진다.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시청자들의 흥미를 잘 이끌어 내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사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지구촌 가족을 우리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 가운데 많은 드라마는 흥미 중심으로 제작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잡한 가족관계와 비정상적인 남녀관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잡고 있다. 드라마 내용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도 비판은 하면서도 눈길을 쉽게 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보는 대로 흉내 내면서 배워 가는 시기에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얼마 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반포 과정을 다루었던 드라마만 해도 그렇다. 드라마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한글창제 반대 세력들을 커다랗게 부각시켰다. 그러니 한글 반포의 위대함이나 고마움보다 그 반대 세력들의 실존 여부와 척결 과정에서의 폭력적인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자연스럽게 더 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세종대왕의 넘쳐나는 아이디어, 추진력 있는 리더십, 백성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 등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훌륭한 덕목들은 거의 전달되기 어려웠다. 드라마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우리 역사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요즈음은 사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사극이 흥미와 재미도 있어야겠으나 그것을 보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지구촌의 인기몰이에 성공한 대장금을 비롯한 드라마들에는 단순 흥미를 넘어선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사극마저 흥미 위주로 흐르는가? 이렇게 된 책임의 일부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는 기록자료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창작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은 한문이라는 언어적 장벽에 부딪혀 전통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록자료를 다루는 사람들이 흥미도 있으면서 교훈적인 이야기 소재들을 발굴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한국국학진흥원을 포함한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일에 충실하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조선 시대 도망친 노비를 추적하는 사람들에 관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폭력과 갈등이 부각되었다. 과연 조선사회는 그렇게 잔인한 사회였을까? 여기서 관련 기록 하나를 소개한다. 경상도 예안에 살던 노비 주인 김택룡(1547~1627)은 어느 날(1617년 12월 19일) 도망간 노비를 잡았다. 그러나 노비를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인두질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노비 구실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일정 금액의 손해 배상만 받고, 그 가정을 보호하는 쪽으로 해결을 한다. 재산으로서의 ‘노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선현들이 남긴 많은 기록자료 속의 한 예이다. 우리는 실제 이러한 문화전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조선은 가난하고 힘든 세월을 500년 넘게 지속하면서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 사회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힘의 원천이 한국국학진흥원에만 해도 34만점이나 되는 고서와 고문서와 같은 기록자료 속에서 숨 쉬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을 창작하는 분들이 역사나 전통 기록자료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이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곧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옛 자료의 스토리텔링화 사업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이 스토리를 입고 현대인들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나길 소망한다.
  • 19세기 발명품 ‘속물 취향’

    19세기 발명품 ‘속물 취향’

    여자들은 흔히 서로 명품 가방을 훔쳐 보며 상대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가늠하고 남자들은 서로 차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린다. 하지만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지안 펴냄)의 저자 이지은씨는 “21세기의 속물적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은 19세기에 등장했던 케케묵은 풍속도”라고 주장한다. 도시계획과 재건축, 바캉스와 해외여행, 시즌별 패션과 유행, 부자들의 럭셔리한 취향, 스타 셰프와 유명 레스토랑, 백화점 시즌 바겐세일, 도시가스와 전기, 통조림과 초콜릿…. 현대의 도시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많은 것의 상당수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서울역의 유리 천장 플랫폼 지붕과 철제 의자,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잘못 알려진 전기자동차, 미모를 무기로 한 ‘스폰서 연예인’까지도 19세기의 발명품이다. ‘부르주아’는 ‘모던’(modern)을 발명한 19세기 사람들의 눈으로 당시 급변하던 현대적 생활상을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역사책이다. 19세기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현대의 신세기’는 과연 어떤 풍경이었을까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과연 지금 우리가 19세기보다 더 발전했느냐는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파리는 신작로를 뚫고 현대식 건물을 짓는 등 대대적인 도시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부동산 투기가 벌어지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건설사가 독점하는, 지금과 다름없는 풍경이 인류 최초로 펼쳐졌다. 하지만 공권력을 동원해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는 식의 물리력은 동원하지 않았다. 저자는 2000년 프랑스로 유학해 2002년 크리스티 경매 전문학교에서 18세기 장식미술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파리 1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유럽 장인들의 아틀리에’ 란 책을 썼다. 파리 국립고문서관에서 18세기 의자 다리 모양을 조사하며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고민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국립도서관에서 의궤를 발굴한 고(故) 박병선 박사가 겹친다. 그가 19세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7, 18세기는 하도 오래되어서 보석 상자 속의 보석처럼 신기하기만 했다면 19세기는 잘 건지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차, 전화, 엘리베이터, 전기, 가스 등 우리가 소위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19세기에 태어났다. 전기풍로, 재봉틀, 가로등, 타자기 같은 물건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사고,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는 우리 생활의 많은 관습이 죄다 19세기 소산이다. 19세기는 ‘오늘’을 품고 있는 시대란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미할리 문카시가 1877년에 완성한 그림 ‘파리지엔의 집안 풍경’을 놓고 눈썰미 퀴즈를 던진다. 일체의 배경 지식 없이 그림 속에 그려진 풍경과 화풍만으로 작품의 제작 연도와 작가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게 미술 감정사들이 수업 중에 자주 치러내야 하는 눈썰미 퀴즈다.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주인공은 17세기 초반의 가구들로 집 안을 꾸몄다. 게다가 벽에 걸린 타피스트리는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문화계 인사와 지식인들의 화두는 문화재 복원이었다. 또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주역으로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 즉, 당시의 중산층에 과거 왕정 시대의 성과 그 내부의 화려한 장식은 명예와 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19세기 사람들이 모던하다고 예찬했던 스타일은 우리가 아는 ‘모던’과는 사뭇 달랐던 것.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19세기 부자들의 속물적 취향을 마냥 비웃을 수만은 없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부잣집들, 일명 ‘럭셔리’하다고 일컬어지는 호텔이나 레스토랑, 예식장의 실내장식은 모두 루이 15세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19세기 부자의 취향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엄연히 숨쉬고 있다. 책은 “19세기 부르주아가 아직 빛이 바래지 않은 ‘럭셔리한 스타일’에 대한 모범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19세기 소시민들은 에밀 졸라가 소설 ‘목로주점’에서 묘사했듯 가구를 사면서 언젠가 자신도 중산층 부르주아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더불어 부자의 취향까지 샀다. 2만 4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박병선 박사 타계] 당신이 남겨준 마지막 숙제 ‘반환’으로 꼭 답하겠습니다

    [박병선 박사 타계] 당신이 남겨준 마지막 숙제 ‘반환’으로 꼭 답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외규장각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 달라.”고 당부하던 민제(民齊) 박병선 박사가 23일 오전 6시 40분(현지시간 22일 오후 10시 40분) 프랑스 파리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먼지 더미 속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처음 발견한 박 박사는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대국민 환영식에 참석해 “가슴이 너무 벅차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면서도 145년 만의 귀환이 ‘반환’ 형식이 아닌 ‘5년 단위 대여’로 결론난 데 못내 안타까워했다. ●女유학비자 1호… ‘파란 책 속에 묻혀 사는 女’ 별명 당시 서울신문과 잇따라 가진 인터뷰<4월 13일 자, 6월 14일 자>에서 “의궤를 처음 발견하고 어찌나 좋던 지 10여년 동안 매일 찾아가 보고 또 봤는데도 볼 때마다 신통방통했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던 박 박사는 ‘반환’이라는 숙제를 국민에게 남기고 눈을 감았다. “(직장암) 수술을 받고도 이렇게 살 수 있는 나날은 덤”이라며 마지막까지 의궤 약탈의 계기가 된 병인양요 연구에 매달렸던 그다. 박 박사는 1928년생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1923년 9월생이다. 우리나라 여성 유학비자 1호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파리 제7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198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최초로 발견하여 의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직지심체요절’이 우리 문화재임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것도 직접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직지’가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산파 역할을 해 박 박사는 ‘직지의 대모’로 불린다. 서울대 사범대 사회생활학과(현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은사인 이병도 당시 서울대 교수가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물건이 많으니 꼭 찾아보라.”고 했던 당부를 잊지 않고 지킨 것이다. 그는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한국이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사용했음을 증명하고자 한국 인쇄술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중국, 일본의 인쇄술 관련 책자를 섭렵하고 프랑스의 대장간을 돌며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해 연구했다. 또 감자와 지우개 등 각종 재료를 사용하여 금속활자와 목판 인쇄술의 차이점을 직접 증명하고자 납활자의 재료인 납을 녹이다 세 번이나 화재를 겪기도 했다. ●물·커피로 허기 때우며 의궤 연구 몰입 그는 ‘파란 책 속에 묻혀 사는 여성’으로도 불렸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13년 넘게 근무하면서 매일 외규장각 도서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정리하는 등 혼자만의 외롭고 고독한 연구의 길을 걸었다. 자그만 체구에 파란색 표지의 큰 의궤 책 속에 묻혀 살았기에 ‘파란 책 속에 묻혀 사는 여성’이라 불린 것이다. 연구비가 없어 자신이 갖고 있던 골동품까지 팔았으며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며 물과 커피로 배를 채웠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런 박 박사를 지독하게 냉대했다. 도서관 비밀을 외부에 누설했다며 반역자 취급 했고 결국 박 박사는 도서관을 그만두게 된다. 사실상의 해고였다. 도서관의 의궤 도서 대출 금지 조치에도 박 박사는 매일 출근 투쟁을 벌여 하루에 한 권씩 허가를 받아 빌려 봤다. 몇 년 동안 계속된 박 박사의 지칠 줄 모르는 연구 노력에 결국은 의궤 도서를 자유롭게 대출할 수 있게 됐다. 의궤는 박 박사가 발견한 당시에는 일부 찢어지고 훼손된 상태였다. 하지만 박 박사의 의궤 연구 발표 이후 외규장각 사료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한국 반환 문제가 대두되면서 도서카드도 없던 ‘파지’ 상태에서 중요 도서로 격상했다. 박 박사는 결혼도 포기하고 한국에서의 교수직 제의도 거절하며 반평생 연구에만 몰두했다. ●‘한인 프랑스 이민사’ 말년 역작으로 준비 그의 문화재 발견은 의궤에 그치지 않는다.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선생 일행이 파리 9구 샤토덩 38번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리고 조국의 독립 승인을 위해 외교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장소도 찾아냈다. 집주인의 반대에도 대사관과 협력해 집요하게 노력한 끝에 한·불 수교 120주년인 2006년에 현판을 걸었다. 조선 말기 프랑스에 왔던 사절들의 외교문서와 1900년 만국박람회 고문서를 발굴, 정리하여 2006년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자료집Ⅰ’을 발간하기도 했다. 연구 열정은 말년에 직장암을 앓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병인양요 연구서인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Ⅰ’을 2008년 출간했다. 후속 연구를 마무리하고, 김규식 박사 일행의 파리에서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기념하는 파리독립기념관 건립을 소원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말년 역작으로 ‘한국인의 프랑스 이민사’도 준비하고 있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박 박사는 조카(은정희) 등에게 “내가 직접 출간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병인양요 속편을 꼭 마무리 지어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유족으로는 남동생 병용(81·미국 거주)씨가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故 박병선 박사는 ▲1923년 서울 출생. 5남매 가운데 셋째 딸. 미혼 ▲서울대 사범대 사회생활학과(현 역사교육학과) 졸업 ▲1955년 프랑스로 유학, 소르본대에서 석·박사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프랑스 귀화, 파리국립도서관 사서 재직 시 ‘직지’ 발견 ▲1972년 파리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 출품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세계에 알림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도서 발견해 ‘비밀 누설’ 혐의로 시달리다 파리국립도서관 사직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제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
  • 일본인들 “사흘간 한국인 죽일수 있게 해달라”

    일본인들 “사흘간 한국인 죽일수 있게 해달라”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격분한 일본인들이 사흘동안 한국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촉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4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고문서 전시회에는 안 의사의 의거 이후 극명하게 갈린 한국과 일본의 반응, 러·일 관계 등 국제정세까지 묘사된 러시아 역사기록보존소(RGIA)의 문서 111건이 전시됐다. 이에 따르면 서울 주재 소모프 러시아 총영사는 1909년 11월 6일 자국 외무부로 보낸 비밀전문에서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만족스러워했지만 그 감정을 터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에서는 “이토 저격 사건이 한국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크게 고무시키고 있다.”고 썼다. 반면 일본 도쿄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 직원이 보낸 전문에는 “일본인들은 이토라는 위대한 정치인을 잃은 데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 언론들은 사흘간 한국인들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이 저격이 러·일 관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중국 베이징 주재 공사는 “일본이 러시아를 비난하지는 않고 있지만 러·일 관계의 냉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 자국이 이토의 장례식에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러시아의 문서들은 대체로 안 의사를 ‘살인자’ 또는 ‘범죄자’라고 표기했다. 반면 친러 정책을 취했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공작’ 또는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한편 이 문서들은 러시아 고문서 전시회를 계기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3000년전 밀림에 UFO 추락?…마야 고문서 공개

    마야문명과 외계인의 접촉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대에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 마야인과 만났다는 주장은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나온 게 없다. 설은 무성하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밝혀내겠다고 나선 인물은 멕시코의 영화감독 후안 카를로스 룰포. 그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마야달력에 표시된 마지막 해(2012년)에 맞춰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마야문명의 고대달력은 2012년 12월 21일을 끝으로 더 이상 날짜가 표시돼 있지 않다. 마야문명이 2012년 지구의 종말을 예고했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개봉시기가 내년으로 잡히면서 “소문만 그럴 듯할 뿐 내용은 부실할 게 뻔하다.” “때에 맞춰 돈을 벌려고 호기심만 자극한다.”는 비판도 많지만 룰포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두고 보라.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건 멕시코와 과테말라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과의 접촉설과 관련해 두 나라가 그간 비공개 보관해온 자료를 공개하겠다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PD 라울 훌리아-레비는 “멕시코 정부가 고문서, 유물 등 마야인과 외계인의 만남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고고학자의 엄중한 검증을 거쳐 증거를 채택, 다큐멘터리에 소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멕시코 캄페체 주 관계자는 “마야 고문서가 번역됐지만 비밀창고에 보관돼 그간 공개되지 않은 게 있다.” 며 “3000여년 전 밀림에 UFO(미확인비행물체)가 추락했다는 말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고대 마야인, 외계인과 만난 증거 드러났다”

    “고대 마야인, 외계인과 만난 증거 드러났다”

    고대 마야인들은 외계 문명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더랩’(The Wrap)은 “최근 멕시코 정부가 공개한 마야문서가 외계인 접촉의 증거를 보여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와 유명 영화 제작자가 고대 마야인들이 외계인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멕시코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공개하지 않았던 마야문명에 대한 고대 문서를 영화 제작자 라울 줄리아-레비에게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된 미국배우 라울 줄리아의 아들로 알려진 줄리아-레비는 다큐멘터리영화 ‘마야 2012년과 그 이후의 계시’의 제작을 맡고 있다. 줄리아-레비는 “이 영화에는 마야문명에 대한 고대 문서를 토대로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멕시코 정부가 마야인과 외계인의 접촉 증거를 나타낸 고문서와 유물, 그리고 중요 문서를 발표할 것이며, 그 모든 정보는 고고학자들이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루이스 아우구스투 가르시아 로사도 멕시코 캄페체 주 관광청장은 “정부가 한동안 지하 금고에 보관했던 특정 고문서들을 번역한 결과 마야인들이 외계인들과 접촉했었다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다큐의 촬영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허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로사도 관광청장은 한 사례로 “지역 정글 안에 있는 이착륙장은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줄리아-레비는 “마야인들은 지난 수천 년간 지구 상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으로 이끌었지만 사악한 목적을 가진 종족의 침략 이후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멕시코 정부가 이에 대해 스스로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모든 것은 우리가 말하고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2006 선댄스 수상작 ‘인 더 핏’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룰포가 맡았다. 한편 이번 영화는 마야인들이 예언한 종말인 2012년 12월 21일 이전인 가을께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더랩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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